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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17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8권

by Kay/케이 202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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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8

 

대반열반경 제18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8. 범행품④

또 선남자야, 어떤 것을 이름하여 모든 세간에서는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6념처(念處)이다. 여섯 가지는 무엇인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보시를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떻게 부처님을 생각하는가?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께서는 항상하여 변하지 않는다. 10력과 4무소외를 구족하여 크게 사자후 하시므로 이름을 대사문(大沙門)이라고 하며 대바라문(大婆羅文)이라고 하며 깨끗하게 구경(究竟)의 저 언덕에 이른 이라고 하며, 이길 수 없는 이ㆍ정수리를 볼 수 없는 이ㆍ두려움 없는 이ㆍ놀라지 않고 변동 없는 이ㆍ혼자이며 짝할 자가 없는 이ㆍ스승 없이 혼자 깨달은 이이다. 빠른 지혜ㆍ큰 지혜ㆍ예리한 지혜ㆍ깊은 지혜ㆍ해탈한 지혜ㆍ함께하지 않는 지혜ㆍ넓은 지혜ㆍ필경의 지혜로서 지혜의 보배를 성취한 이며, 사람 중의 코끼리와 사람 중의 우왕(牛王)ㆍ사람 중의 용왕ㆍ사람 중의 장부ㆍ사람 중의 연꽃과 분타리꽃ㆍ조어장부[調御]ㆍ천인사[人師]ㆍ큰 보시의 주인ㆍ대법사(大法師)라고 한다.
법을 알기 때문에 대법사라 하고 이치를 알기 때문에 대법사라 하고 때를 알기 때문에 대법사라 하고 만족함을 알기 때문에 대법사라 하고 나를 알기 때문에 대법사라 한다. 또 대중을 알기 때문에 대법사라 하고 중생들의 갖가지 성품을 알기 때문에 대법사라 하고 모든 근성의 영리하고 둔하고 중간임을 알기 때문에
대법사라 하고 중도(中道)를 알기 때문에 대법사라고 한다.
또 어떤 것을 여래라고 하는가? 지나간 세상의 여러 부처님들처럼 말씀하시는 것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부처님들이 중생을 제도하시느라고 12부경을 연설하였는데, 여래도 그러하시다. 그러므로 여래라고 한다. 또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 6바라밀과 37품과 11공(空)부터 대열반까지 이르렀는데, 여래도 그러하시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여래라고 한다. 또 부처님 세존께서 중생을 위하여 적당한 방편으로 3승을 열어 보이셨으며 수명이 한량없어 계산할 수 없는데, 여래도 그러하시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여래라고 한다.
또 어떤 것을 응공[應]이라고 하는가? 곧 세간 법은 모두 원수라고 하는데, 부처님께서 마땅히 해(害)할 것이므로 응공이라 하며, 네 가지 마군은 보살의 원수인데, 부처님께서 보살이던 때에 지혜로 네 가지 마군을 깨뜨렸으므로 응공이라고 한다. 또 응공이란 말은 멀리 여읜다는 뜻이니, 보살이던 때에 한량없는 번뇌를 마땅히 멀리 여의었으므로 응공이라고 한다.
또 응공이란 말은 즐겁다는 뜻이니, 지난 세상 부처님들이 보살이던 때에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중생들을 위하여 많은 고통을 받더라도 싫어하지 않고 항상 즐거워하셨다. 여래도 그러하시므로 응공이라고 한다. 또 응공이란 말은 모든 인간ㆍ천상 사람들이 응당 여러 가지 향과 꽃과 영락과 짐대[幢]와 깃발과 음악으로 공양하므로 응공이라고 한다.
또 어떤 것을 정변지(正遍知)라고 하는가? 정이란 말은 뒤바뀌지 않았다는 뜻이며, 변지란 말은 네 가지 뒤바뀐 것을 모두 안다는 뜻이다. 또 정은 고행(苦行)이라는 말이며, 변지는 고행의 원인으로는 반드시 괴로운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또
정은 세간의 중도라는 뜻이며, 변지는 중도를 닦으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을 끝내는 안다는 뜻이다.
또 정은 셀 수 있고 요량할 수 있고 일컬을 수 있다는 뜻이며, 변지는 셀 수 없고 요량할 수 없고 일컬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정변지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성문이나 연각은 변지이기도 하고 변지가 아니기도 하다. 왜냐하면 변지라고 하는 것은 5음ㆍ12입ㆍ18계를 말하기 때문에 성문이나 연각도 두루 알 수 있으므로 변지라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변지가 아니라고 하는가? 선남자야, 가령 2승(乘)이 한량없는 겁에 한 색음(色陰)을 관찰하더라도 다 알지 못하므로 이런 뜻으로 성문ㆍ연각은 두루 알 수 없다고 한다.
또 어떤 것을 명행족(明行足)이라고 하는가? 명은 한량없는 선한 과보를 얻는다는 말이며 행은 발[脚足]이란 뜻이다. 선한 과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말하는 것이며 발은 계율과 지혜를 말하므로 계율과 지혜의 발을 의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므로 명행족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명은 주문이며 행은 길(吉)하다는 말이며 족은 과보이다. 선남자야, 이것을 세간의 뜻이라고 한다. 주문은 해탈이라 하고 길한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고 과보는 대반열반이다. 그러므로 명행족이라고 한다. 또 명은 광명이며 행은 업이며 족은 과보이니 선남자야, 이것은 세간의 뜻을 말한다.
광명은 방일하지 않는 것이며 업은 여섯 가지 바라밀이며 과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또 명은 3명이니 첫째는 보살의 명이며 둘째는 부처님의 명이며 셋째는 무명의
명[無明明]이다. 보살의 명은 곧 반야바라밀이며 부처님의 명은 곧 부처님 눈이며 무명의 명은 곧 필경공이다. 행은 한량없는 겁에 중생을 위하여 선한 업을 닦음이며 족은 불성을 분명히 보는 것이다. 이런 뜻으로 명행족이라고 한다.
또 어떤 것을 선서(善逝)라고 하는가? 선(善)은 높다는 말이며 서(逝)는 높지 않다는 말이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의 뜻이라고 한다. 곧 높은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며 높지 않은 것은 여래의 마음이다. 선남자야, 마음이 높은 이는 여래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래를 선서라고 한다. 또 선은 선지식이라는 말이며 서는 선지식의 과보이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의 뜻이라고 한다.
선지식은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것[初發心]이며, 과보는 대반열반을 말하는 것이다. 여래는 최초에 낸 마음을 버리지 않고 대열반을 얻는 것이므로 여래를 이름하여 선서라고 하는 것이다. 또 선은 좋다는 뜻이며 서는 있다는 뜻이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의 뜻이라고 한다.
또 좋다는 것은 불성을 보는 것이며 있다고 하는 것은 대열반이다. 선남자야, 열반의 성품은 실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 세간을 의지하여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마치 세상 사람이 실제로 아들이 없지만 아들이 있다고 말하고, 실제로 길이 없지만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열반도 그러하여 세간을 의지하여 있다고 말한다. 부처님 세존께서는 대열반을 이루는 까닭으로 선서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세간해(世間解)라고 하는가? 선남자야, 세간이란 것은 5음이란 뜻이며, 해란 것은 안다는 뜻이니 부처님 세존께서는 5음을 잘 아시는 까닭으로 세간해라고 한다. 또 세간은 다섯 가지
탐욕이며, 해는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 가지 탐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세간해라고 하는 것이다. 세간해라고 하는 것은 동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를 모든 성문ㆍ독각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모두 알고 모두 보고 모두 이해하신다.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하방도 그와 같으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세간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세간은 온갖 범부이며, 해는 범부들의 선하고 악한 원인과 결과를 아는 것이니, 성문과 연각이 알 것이 아니고 부처님만이 아시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세간해라고 한다. 또 세간은 연꽃이라 이름하고 해는 더럽히지 않는다 고 한다. 선남자야, 이것을 세간의 뜻이라고 한다. 또 연꽃은 곧 여래이며 더럽히지 않는다는 것은 여래가 세간의 여덟 가지 법에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세간해라고 한다.
또 세간해는 부처님과 보살들을 세간해라고 한다. 왜냐하면 부처님과 보살들은 세간을 보는 까닭으로 세간해라고 한다. 선남자야, 마치 밥을 의지하여 생명을 보존하므로 밥을 이름하여 생명이라 하듯이,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세간을 보기 때문에 세간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어떤 것을 무상사(無上士)라고 하는가? 상사라는 말은 끊는다는 뜻이며, 끊을 것이 없으므로 무상사라고 한다. 부처님 세존께서는 번뇌가 없으므로 끊을 것이 없고,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무상사라고 한다. 또 상사는 다툰다는 뜻이며 무상사는 다툼이 없다는 것이다. 여래는 다툼이 없으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무상사라 한다. 또 상사는 말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이며 무상사는 말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니, 여래가 말한 것은 모든 중생들이 깨뜨릴 수 없으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무상사라고 하는 것이다.
또 상사는
윗자리를 말하며 무상사는 위가 없는 자리이다. 3세의 부처님들께서는 다시 그보다 뛰어난 이가 없으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무상사라고 하는 것이다. 상(上)은 새것이며 사(士)는 낡은 것이니, 부처님 세존께서는 대열반을 체득하여 새것도 없고 낡은 것도 없으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무상사라고 한다.
또 어떤 것을 조어장부(調御丈夫)라고 하는가? 자기가 이미 장부(丈夫)인데 다시 장부를 조복하여 이끄는[調御] 것이다. 선남자야, 여래는 실제로는 장부도 아니고 장부 아닌 것도 아니지만, 장부를 조복하여 이끌기 때문에 여래를 이름하여 조어장부라고 한다.
선남자야, 모든 남자나 여인이 네 가지 법을 갖추면 장부라고 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선지식이며, 둘째는 능히 법을 듣고, 셋째는 뜻을 생각하고, 넷째는 말한 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남자나 여인이나 이 네 가지 법을 갖추면 장부라고 한다. 선남자야, 남자라도 이 네 가지 법이 없으면 장부라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몸은 비록 장부이나 행동은 짐승과 같기 때문이다. 여래는 남자와 여인을 조복하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조어장부라 고 한다.
또 선남자야, 말을 다루는 데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털에 닿고, 둘째는 가죽에 닿고, 셋째는 살에 닿고, 넷째는 뼈에 닿는 것이다. 닿는 대로 따라서 이끄는 이의 뜻에 맞게 하는 것이다. 여래도 그러하여 네 가지 법으로 중생을 조복한다. 첫째는 태어나는 일을 말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받도록 하는 것으로 마치 털에 닿게 하여 모는 이의 뜻에 맞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태어나고 늙는 일을 말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받도록 하는 것이니, 털과 가죽에 닿게 하여 다루는 이의 뜻에 맞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태어나고 늙고 병드는 일을 말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받게 하는 것으로 털과 가죽과 살에 닿게 하여 모는 이의 뜻에 맞게 하는 것이다. 넷째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말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받게 하는 것으로 털과 가죽과 살과 뼈에 닿게 하여 모는 이의 뜻에 맞게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말을 다루는
이가 말을 조복하는 것에는 결정되는 것이 없지만 여래 세존께서 중생을 조복하는 것에는 반드시 결정되어 허망하지 않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조어장부라고 한다.
또 어떤 것을 천인사(天人師)라고 하는가? 사(師)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착하게 가르치는 것이며, 둘째는 나쁘게 가르치는 것이다. 부처님과 보살은 항상 착한 법으로 중생들을 가르치신다. 무엇을 착한 법이라고 하는가? 몸과 입과 뜻으로 하는 선이니, 부처님과 보살이 중생을 가르치실 때에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선남자야, 너는 마땅히 몸으로 짓는 나쁜 업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왜냐하면 몸으로 짓는 나쁜 업을 여의면 해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법으로 너를 가르치는 것이다. 만일 이 나쁜 업을 여의고도 해탈을 얻을 수 없다면 너로 하여금 멀리 여의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중생들이 나쁜 업을 여의고도 세 가지 나쁜 갈래에 떨어진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멀리 여읨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 대열반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과 보살이 항상 이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입과 뜻으로 짓는 업도 그와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위없는 스승[無上師]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예전에 얻지 못하였던 도를 지금 얻었으므로 얻은 도를 중생에게 말씀하시며, 본래는 깨끗한 행을 닦지 못하였다가 지금에는 닦았으므로 자신이 닦은 것을 중생에게 말씀하시며, 스스로 무명을 깨뜨렸으므로 중생을 위하여 무명을 깨뜨리게 하시며, 스스로 깨끗한 눈을 얻었으므로 다시 중생을 위하여 어두운 눈을 없애고 깨끗한 눈을 얻게 하시며, 스스로 두 가지 이치[二諦]를 알고 다시 중생을 위하여 두 가지 이치를 말씀하시며, 스스로 해탈하고 중생을 위하여 해탈하는 법을 말씀하시며, 스스로 가없는 생사의 강을 건너고 중생들로 하여금 건너게 하시며, 스스로 두려움 없음을 얻고 중생들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게 하시며, 스스로 열반을 얻고 또 중생들에게 대열반을 연설하시므로
부처를 이름하여 위없는 스승이라고 한다.
천(天)은 낮이라고 이름한다. 천상은 낮이 길고 밤이 짧으므로 천이라고 한다. 또 천은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항상 쾌락을 받으므로 천이라고 한다. 또 천은 등불이라고 한다. 컴컴한 어둠을 깨뜨리고 밝게 하므로 천이라고 하며, 또 나쁜 업의 어둠을 깨뜨리고 선한 업을 얻어 천상에 태어나게 하므로 천이라고 한다. 또 천은 길하다는 뜻으로 길상하므로 천이라고 한다. 또 천은 해라는 뜻이며, 해는 광명이 있으므로 해를 이름하여 천이라고 한다. 이런 뜻으로 천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人)이라고 하는 것은 은혜가 많다는 뜻이며, 또 인은 몸과 입이 부드럽다는 것이며, 또 인은 교만하다는 것이며, 또 인은 교만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선남자야,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위없는 스승이 되시지만 경전에서 천인사라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모든 중생 중에 천신과 인간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낼 수 있으며, 10선업을 닦아서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과와 벽지불의 도를 얻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천인사라고 한다.
어찌하여 불(佛)이라고 하는가? 불은 깨닫는다는 뜻이다.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마치 도둑이 주인이 있는 줄을 알면 당황하여 어찌할 수 없듯이 보살마하살도 한량없는 온갖 번뇌를 깨달았으며 깨달은 뒤에는 번뇌로 하여금 어찌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불이라고 하며, 깨달았으므로 나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불이라고 이름한다.
바가바(婆伽婆)라는 것에서
바가는 깨뜨린다는 뜻이며 바는 번뇌라는 뜻이다. 번뇌를 능히 깨뜨리므로 바가바라고 한다. 또 모든 선한 법을 성취하는 까닭이며, 모든 법의 뜻을 잘 아는 까닭이며, 큰 공덕이 있어 이길 자가 없는 까닭이며, 큰 소문이 시방에 두루 퍼진 까닭이며, 갖가지 큰 지혜로 보시하는 까닭이며,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여근(女根)을 받지 않은 까닭이다. 선남자야, 남자나 여인이 이렇게 부처님을 생각하면,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낮이나 밤이나 밝거나 어둡거나 간에 항상 여의지 않고 부처님 세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찌하여 여래ㆍ응공ㆍ정변지 나아가 바가바라고 이름하며,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과 큰 이름이 있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옛적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부모와 화상과 스승들과 상좌(上座)와 장로를 공경하였으며, 한량없는 겁 동안에 중생들을 위하여 항상 보시를 하고 계율을 가지고 인욕을 익히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선정과 지혜와 대자와 대비와 대희와 대사를 행하였으므로 지금 32상과 80종호의 금강 같은 몸을 얻었다. 또 보살이 옛적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신심과 생각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의 근본을 닦았으며 여러 스님들을 공경하고 공양하였으며 항상 법의 이익을 위하였고 음식의 이익을 위하지 않았다.
또 보살이 12부경을 가지며 읽으며 외우는 것은 항상 중생을 위하여 해탈과 편안함과 쾌락함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으며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보살은 항상 출세간의 마음ㆍ출가한 마음ㆍ함이 없는[無爲] 마음ㆍ 다툼이 없는 마음ㆍ때[垢穢]가 없는 마음ㆍ속박이 없는 마음ㆍ집착이 없는 마음ㆍ덮임이 없는 마음ㆍ무기(無記)가 없는
마음ㆍ생사가 없는 마음ㆍ의심이 없는 마음ㆍ탐욕이 없는 마음ㆍ성냄이 없는 마음ㆍ어리석음이 없는 마음ㆍ교만이 없는 마음ㆍ더러움이 없는 마음ㆍ번뇌가 없는 마음ㆍ괴로움이 없는 마음ㆍ한량이 없는 마음ㆍ넓고 큰 마음ㆍ허공 같은 마음ㆍ없는 마음[無心]ㆍ없음이 없는 마음[無無心]ㆍ조복한 마음ㆍ보호하지 않는 마음ㆍ숨김이 없는 마음ㆍ세간이 없는 마음ㆍ항상 정한 마음[常定心]ㆍ항상 닦는 마음ㆍ 항상 해탈한 마음ㆍ갚음이 없는 마음ㆍ서원이 없는 마음[無願心]ㆍ잘 원하는 마음[善願心]ㆍ잘못이 없는 마음[無誤心]ㆍ부드러운 마음ㆍ머물지 않는 마음ㆍ자재한 마음ㆍ무루(無漏)한 마음ㆍ제일의 마음ㆍ물러가지 않는 마음ㆍ무상한 마음ㆍ정직한 마음ㆍ아첨이 없는 마음ㆍ순전히 선한 마음ㆍ다소가 없는 마음[無多少心]ㆍ견고함이 없는 마음ㆍ범부가 없는 마음ㆍ성문이 없는 마음ㆍ연각이 없는 마음ㆍ잘 아는 마음ㆍ계를 아는 마음ㆍ생기는 계를 아는 마음ㆍ머무는 계를 아는 마음ㆍ자재한 계의 마음을 닦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에 10력과 4무소외와 3념처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은 것이며 여래 나아가 바가바라 일컫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을 생각한다고 한다.
또한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법을 생각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생각한다.
‘부처님들이 말씀하신 법은 가장 묘하고 가장 높은 것이니 이 법을 의지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현재의 과보를 얻게 한다. 오직 이 바른 법만이 시절이 없으며 법안(法眼)으로 볼 수 있고 육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비유로도 비교할 수도 없다. 또 태어나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비롯하지도 않고 마치지도 않으며 함도 없고 셀 수도 없다.
또한 집이 없는 이에게는 집이 되고 돌아갈 데 없는 이에게는 돌아갈 데가 되며, 밝음이 없는 데는 밝음이 되며 저 언덕에 이르지 못한 이는 저 언덕에 이르게 하며, 향(香)이 없는 곳에서는 걸림 없는 향이 된다. 볼 수도 없으며 동(動)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고[不轉]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모든
즐거움을 아주 끊었으나 편안한 쾌락이 끝까지 미묘하다. 색이 아니고 색을 끊었지만 그래도 색이며, 나아가 알음알이가 아니고 알음알이를 끊었지만 그래도 알음알이이다.
또한 업이 아니고 업을 끊었으며 맺힘이 아니고 맺힘을 끊었으며 물건이 아니고 물건을 끊었지만 그래도 물건이다. 계(界)가 아니고 계를 끊었지만 그래도 계이며, 유(有)가 아니고 유를 끊었지만 그래도 유이며, 입(入)이 아니고 입을 끊었지만 그래도 입이다. 인이 아니고 인을 끊었지만 그래도 인이며, 과가 아니고 과를 끊었지만 그래도 과이다. 빈 것도 아니고 참된 것도 아니고 온갖 참된 것을 끊었지만 그래도 참된 것이다.
또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고 멸함을 아주 끊었지만 그래도 생멸하는 것이다.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고 온갖 모양을 끊었지만 그래도 모양이다. 가르침도 아니고 가르치지 않음도 아니지만 그래도 스승이다. 공포도 아니고 편안함도 아니고 온갖 공포를 끊었지만 그래도 편안하다. 참음도 아니고 참지 않음도 아니고 참지 않음을 아주 끊었지만 그래도 참는 것이다. 고요함도 아니고 고요하지 않음도 아니고 모든 고요함을 끊었지만 그래도 고요하다.
또한 온갖 법의 정수리[頂]여서 모든 번뇌를 온통으로 끊었으며, 청정하고 모양이 없어 온갖 모양을 영원히 벗어났으며, 한량없는 중생이 끝내는 머물 곳이며, 모든 생사의 왕성한 불을 멸하였으며, 부처님들께서 노닐며 계시는 곳이어서 항상 변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법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승가를 생각한다고 하는가?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聖衆]들은 법답게 머물러 있으면서 정직한 법을 받고 법에 따라서 수행한다. 또 볼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깨뜨릴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고 생각하고 말할 수도 없다. 또 모든 중생의 좋은 복밭이며, 비록 복밭이라 하더라도 받는 것이 없고 청정하여 더럽지 않으며 새는 일도 없고[無漏] 함도 없다.
또한 넓고 두루하고 가없으며 마음은 부드럽고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시끄러움이 없고 항상하여 변하지 않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승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계율을 생각한다고 하는가? 보살은 생각한다.
‘계율을 깨뜨리지 않고 새지 않고 무너뜨리지 않고
흩어지게 하지 않는다. 비록 형상이 없으나 보호하여 가질 수 있으며, 비록 마주 대할 수 없으나 방편을 닦으면 구족할 수 있다. 허물이 없어 부처님과 보살께서 칭찬하시니 이것이 대방등 대열반의 원인이다.
선남자야, 마치 땅덩이와 같고 배ㆍ영락ㆍ큰 족성[大姓]ㆍ바다ㆍ잿물ㆍ집ㆍ칼ㆍ다리[憍]와 같으며, 의원ㆍ약ㆍ아가타약ㆍ여의주와 같으며, 발ㆍ눈ㆍ부모ㆍ그늘과 같다. 억지로 빼앗을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으며, 불로 태울 수도 없고 물로 휩쓸어 버릴 수도 없으며, 큰 산의 사다리 길이며 불보살의 묘한 보배이며 훌륭한 당기이다.
이런 계율에 머물면 수다원과를 얻을 것이며, 나도 얻을 명분이 있지만 나는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만일 수다원과를 얻는다면 모든 중생을 널리 제도할 수 없는 까닭이다. 만일 이 계율에 머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나도 얻을 명분이 있고 내가 요구한다.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면 중생들을 위하여 묘한 법을 말하여 구제하고 보호할 수 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계율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보시를 생각한다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깊이 관하기를, 보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원인이 된다 하며 부처님과 보살들이 이와 같이 보시를 가까이 하고 닦았으니 나도 그와 같이 가까이 하고 닦는다고 한다. 만일 보시하지 않고는 사부대중(四部大衆)을 장엄할 수 없으며, 비록 보시하여 끝까지 번뇌를 끊지 못하더라도 현재의 번뇌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시한 인연으로 시방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세계의 중생들에게 칭찬을 받을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중생에게 밥을 보시하면 곧 생명을 보시하는 것이니 이
과보로 성불할 때에 항상 변하지 않는다. 즐거움을 보시한 인연으로 성불할 때에 안락을 얻으며, 보살이 보시할 때에 법답게 재물을 구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침노하여 이 사람에게 보시하지 않았으므로, 성불할 때에 청정한 열반을 얻는다.
또한 보살이 보시할 때에 중생들로 하여금 구하지 않고 얻게 하였으므로, 성불할 때에 자재한 나를 얻는다. 보시한 인연으로 다른 이로 하여금 힘을 얻게 하였으므로 성불해서 10력을 얻으며, 보시한 인연으로 다른 이로 하여금 말할 수 있게 하였으므로 성불하여서 4무애(無礙)를 얻는다. 부처님과 보살이 보시를 닦아서 열반의 원인이 되었으므로 나도 그와 같이 보시하여 열반의 원인을 삼을 것이라고 한다. 자세히 말한 것은 『잡화경(雜花經)』과 같다.
어떤 것을 가리켜 하늘을 생각한다고 하는가? 사천왕천으로부터 나아가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이 있다. 만일 신심이 있으면 사천왕천을 얻게 되며 나도 얻을 명분이 있다. 만일 계율과 많이 아는 것[多聞]과 보시와 지혜가 있다면 사천왕천으로부터 나아가 비상비비상처천을 얻을 것이다. 나도 또한 얻을 명분이 있지만 내가 구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천왕천과 나아가 비상비비상처천은 모두 무상한 것이며, 무상하기 때문에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다. 이런 뜻으로 내가 구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환술로는 어리석은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하게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환술은 사천왕천과 나아가 비상비비상처천이며,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범부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리석은 범부와는 같지 않다.
또 나는 제일의천(第一義天)이 있음을 들었으며 부처님과 보살들이 항상하여 변하지 않으며, 항상 머물러 있으므로 나지 않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 나는 중생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제일의천을 구하게 한다. 왜냐하면 제일의천은
중생들로 하여금 번뇌를 끊어버리기를 의수(意樹)와 같게 한다. 만일 나에게 신심이 있고 나아가 지혜가 있으면 제일의천을 얻게 될 것이다. 마땅히 중생들을 위하여 제일의천을 자세히 분별하여 말하겠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하늘[天]을 생각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이것을 보살이라 하며 세간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을 말하여 세간은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다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나의 제자가 말하기를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연설하는 것과 『대열반경』을 받아 지니고 잃고 외우고 쓰고 연설하는 것은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대열반경』은 모든 부처님 세존의 깊고 깊은 비밀한 법장이며, 여러 부처님들의 깊고 비밀한 법장이므로 가장 훌륭하다. 선남자야, 그런 이치로 『대열반경』은 매우 기특하여 말하거나 생각할 수 없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이 『대열반경』이 매우 기특하여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압니다. 또 부처님ㆍ교법ㆍ승가도 불가사의하며, 보살의 보리인 대열반도 불가사의한 줄을 압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뜻으로 보살이 불가사의하다고 다시 말씀하십니까?”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가르치는 이가 없지만 스스로 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마음을 내고 부지런히 정진하며, 설사 큰불이 몸과 머리를 태우더라도 마침내 구원을 청하려고 법을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항상 생각하기를 ‘내가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혹은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이나 인간이나 천상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번뇌의 불에 몸을 태웠지만, 일찍이
결정한 법을 얻지 못하였다. 결정한 법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몸과 마음과 목숨을 아끼지 않겠다. 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해서라면 몸이 티끌같이 부서지더라도 뜻을 버리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할 것이다. 왜냐하면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원인이기 때문이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보지 못하고도 이렇게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데, 하물며 이미 보았는데 어떻겠느냐? 그러므로 보살은 불가사의하다. 또 불가사의한 것은 보살마하살이 생사의 한량없는 허물을 보는 것으로 성문ㆍ연각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생사의 한량없는 허물을 알지만 중생을 위하여 그 속에서 받는 고통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시 불가사의라고 하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비록 지옥에서 여러 가지 고뇌를 받더라도 3선천(禪天)의 즐거움과 같이 여긴다.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장자가 집에 불이 난 것을 보고 뛰어나왔으나, 아들들이 뒤에 떨어져서 화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장자는 아들들이 불에 타게 될 것을 알고 다시 들어가서 구원할 때에 자기의 몸을 돌아보지 않는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비록 생사의 허물을 알지만 중생을 위하여 싫어하지 않고 그 속에 있다. 그러므로 불가사의라고 한다.
선남자야, 한량없는 중생들이 보리심을 내었다가도 생사 가운데 걱정이 많은 것을 보고는 마음이 퇴몰(退沒)하여 성문도 되고 연각도 된다. 보살들로서
이 경을 들은 이는 마침내 보리심에서 물러나 성문이나 연각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보살은 비록 초지의 변동되지 않는 자리에 이르지 못하였더라도 마음이 견고하여 물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가사의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큰 바닷물에 떠서 건너갈 수 있다’라고 하면 이 말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세존이시여, 그런 말은 생각할 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이 건너간다고 하면 생각할 수 없지만, 아수라가 건너간다고 하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남자야, 나는 아수라를 말한 것이 아니고 사람을 말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사람들 중에도 생각할 수 있기도 하고 생각할 수 없기도 합니다. 세존이시여, 사람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성인과 범부입니다. 범부라면 생각할 수 없고 성현이라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남자야, 나는 범부를 말하였고 성인을 말하지 않았다.”
“세존이시여, 만일 범부라면 진실로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남자야, 범부들은 참으로 큰 바닷물을 건너갈 수 없다. 보살만이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갈 수 있으므로 불가사의라고 한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연뿌리에서 나는 실로 수미산을 매달 수 있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하겠느냐?”
“세존이시여,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잠깐 동안에 온갖 생사를 헤아릴 수 있으므로 불가사의라고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벌써 한량없는 아승기겁부터 생사는 항상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중생을 위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연설하는 것이다. 비록 그렇게 말하더라도
삿된 소견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불가사의라고 한다.
선남자야, 마치 사람이 물에 들어가도 물이 빠뜨리지 못하며 맹렬한 불에 들어가도 불이 태우지 못한다면 이런 일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비록 나고 죽는 가운데에 있더라도 나고 죽는 것이 시끄럽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불가사의라고 한다.
선남자야, 사람에게는 3품이 있으니 상품(上品)ㆍ중품(中品)ㆍ하품(下品)이다. 하품의 사람은 처음 태속에 들어갔을 때에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더러운 것들이 모여드는 뒷간에 있는 것이, 마치 송장들 속이나 가시덤불 캄캄한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또 태에서 나와서는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더러운 것들이 모여든 뒷간에서 나왔고 나아가 캄캄한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또 중품 사람은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많은 나무숲 속에나 깨끗한 강 가운데나 방안에 들어갔다’고 하고, 나올 때에도 그러하다. 상품 사람은 생각하기를 ‘나는 전당(殿堂)에 올라가서 꽃과 숲 속에 있으며, 말도 타고 코끼리도 타고 높은 산에 올라갔다’ 하고, 나올 때도 그와 같다. 보살마하살은 처음 태에 들 때에도 드는 줄을 알고, 머물 때에도 머무는 줄을 알고, 나올 때에는 나오는 줄을 알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탐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지만 초주(初住)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불가사의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비유로도 말할 수 없다. 선남자야, 마음도 역시 비유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스승에게 묻고 배운 곳이 없지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다. 이 법을 얻고 아끼는 마음이 없이 중생을 위하여 연설한다. 그러므로 불가사의라고 한다.

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몸으로 여의었고 입으로 여읜 것이 아니다. 또 입으로 여의었고 몸으로 여읜 것이 아니다. 또 몸도 입도 아니면서 멀리 여읜 것이 아니다. 몸으로 여의었다고 하는 것은 살생과 훔치는 일과 음행을 떠난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몸으로 여의었고 입으로 여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또 입으로 여의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ㆍ이간하는 말ㆍ욕설ㆍ옳지 않은 말을 여읜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입으로 여의었고 몸으로 여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몸도 입도 아니면서 멀리 여의었다고 하는 것은 탐욕ㆍ성내는 일ㆍ나쁜 소견을 멀리 여읜 것이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몸도 입도 아니면서 멀리 여의었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한 가지 법도 몸과 업(業) 및 주재[主]를 여읜 것을 보지 못하면서도 여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불가사의하며 입도 역시 그와 같다.
선남자야, 몸으로부터 몸을 여의고 입으로부터 입을 여읜다. 또 지혜로부터 몸이 아니고 입이 아님을 멀리 여읜다. 선남자야, 진실로 이 지혜가 있지만 보살로 하여금 멀리 여의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한 가지 법도 능히 깨뜨리거나 능히 짓게 하지 못하며, 함이 있는 법의 성품은 다르게 나고 다르게 없어진다. 그러므로 이 지혜가 능히 멀리 여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지혜가 깨뜨리지 못하며 불이 태우지 못하며 물이 헐지 못하며 바람이 흔들지 못하며 땅이 지키지 못하며 나는 것이 나게 하지 못하며, 늙음이 늙게 하지 못하며 머무름이 머물게 하지 못하며 깨뜨림이 파괴하지 못하며, 탐심이 탐하지 못하며 성냄이 성나게 하지 못하며 어리석음이 어리석게 하지 못한다. 함이 있는 성품은 다르게 나고 다르게 없어지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마침내 생각하기를 ‘내가 이 지혜로 모든 번뇌를 깨뜨린다’ 고 하지 않지만,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번뇌를 깨뜨린다’고 한다. 비록 이런 말을 하여도 허망한 것이 아니므로 또 불가사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가섭이 다시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에야 보살마하살이 불가사의하고, 부처님ㆍ교법ㆍ승가ㆍ
『대열반경』을 받아 지니는 이와 보리ㆍ열반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위없는 부처님의 법이 얼마 동안이나 머물며 어느 때에 없어지겠습니까?”
“선남자야, 『대열반경』과 같은 것은 다섯 가지 행이 있다. 거룩한 행[聖行]ㆍ청정한 행[梵行]ㆍ하늘의 행[天行]ㆍ병난 행[病行]ㆍ어린 아기의 행[嬰兒行]이다. 만일 나의 제자가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뜻을 연설하여 중생들이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고 여러 가지로 공양하면, 그런 때에는 부처님의 법이 없어지지 않는다.
선남자야, 만일 『대열반경』이 구족하게 유통되는 때에 나의 제자들이 계율을 많이 범하고 나쁜 짓을 하며 이러한 경전을 공경하여 믿지 않으면, 믿지 않기 때문에 받아 가지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쓰거나 뜻을 해설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공경과 나아가 공양함을 받지 못할 것이며, 받아 가지는 이를 보고는 비방하고 업신여기면서 ‘너는 육사외도(六師外道)이며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이런 때에는 부처님 법이 오래지 않아서 없어질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께서 ‘가섭부처님의 법이 세상에 이레 동안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가섭여래께도 이 경이 있었습니까? 만일 있었다면 어찌하여 없어졌다고 하며, 만일 없었다면 어찌하여 『대열반경』은 모든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먼저 말하기를 ‘문수사리가 이 뜻을 안다’고 하였다. 이제 다시 말할 것이니 지성으로 자세히 들어라. 선남자야, 부처님 세존께 두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세상 법[世法]이며 둘째는 제일의법(第一義法)이다. 세상 법은 멸할 수 있지만 제일의법은 멸하지 않는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함이 없는 것이며, 둘째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것이다.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함이 없는 것은 없어지지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2승들이 가지는 것이며 둘째는 보살들이 가지는 것이다. 2승들이 가지는 것은 멸하는 것이며, 보살들이 가지는 것은 멸하지 않는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바깥 법이며 둘째는 안의 법이다. 바깥 법은 멸함이 있고 안의 법은 멸함이 없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함이 있는 법이며 둘째는 함이 없는 법이다. 함이 있는 법은 멸함이 있고 함이 없는 법은 멸함이 없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얻을 수 있는 법이며 둘째는 얻을 수 없는 법이다. 얻을 수 있는 법은 멸할 수 있고 얻을 수 없는 법은 멸할 수 없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함께하는 법이며 둘째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다. 함께하는 법은 멸하는 것이며 함께하지 않는 법은 멸하지 않는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람 가운데의 법이며 둘째는 하늘 가운데의 법이다. 사람 가운데 법은 멸하고 하늘 가운데 법은 멸하지 않는다. 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1부경이며 둘째는 방등 경전이다. 11부경은 멸하는 것이며 방등 경전은 멸하지 않는 것이다.
선남자야, 만일 나의 제자가 방등 경전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뜻을 해설하며 공경하고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 그때는 부처님의 법이 멸하지 않을 것이다.
선남자야, 그대가 묻기를 ‘가섭여래에게도 이 경이 있었습니까?’라고 하였다. 선남자야, 『대열반경』은 여러 부처님의 비밀한 법장이다. 왜냐하면 여러 부처님이 비록 11부경이 있지만 불성을 말하지 않고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 세존께서는 언제까지나 열반에 들지 않는 일을 말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이 경을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라고 한다. 또 11부경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므로 장(藏)이라고 한다. 마치 사람들이 7보를 들고 나와서 쓰는 것이 아니므로 장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그 사람이 이런 물건을 간직하여 두는 것은 다음 일을 위한 것이다. 어떤 것을 다음 일이라 하는가? 곡식이 귀할 때나 대적이 와 나라를 침노할 때나 나쁜 임금을 만났을 때에 보배로 생명을 바꾸거나, 길을 가다가 어려울 때에나 재물을 구하기 어려울 때에 보배를 내어 쓰려는 것이다.
선남자야, 부처님 여래의 비밀한 법장도 그와 같다. 그래서 말세(末世)의 나쁜 비구들이 부정한 물건을 쌓아 두며, 사부대중에게 여래께서 필경에 열반에 든다고 말한다. 또 세간 경전을 읽고 외우며 부처님 경전을 공경하지 않는다. 이러한 나쁜 일이 세상에 나타날 때에 여래께서 이런 나쁜 일을 없애고 잘못 생활하는 이양을 여의게 하기 위하여 이 경전을 연설하신다. 만일 비밀한 법장인 이 경전이 없어지고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부처님 법도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대열반경』은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가섭 부처님 때에도 이 경이 있었습니까?’하고 묻느냐? 선남자야, 가섭부처님 때에는 중생들이 탐욕이 적고 지혜가 많았으며, 보살마하살들도 부드러워 교화하기 쉽고 큰 위덕이 있었다. 또 모두 기억하여 잊지 않음이 마치 청정세계의 코끼리왕과 같았다.
또 모든 중생들도 여래가 마침내 필경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항상 머물러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경전이 있지만 연설할 필요가 없었다. 선남자야, 지금 세상의 중생들은 번뇌가 많고 어리석어 잊기를 잘하며 지혜가 없고 의심이 많아서 믿음이 뿌리박히지 못하고, 세계가 깨끗하지 못하다. 또 중생들은 모두 생각하기를 ‘여래께서는 무상하셔서 자주 변
천(變遷)하시며 필경에는 대반열반에 들어가신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이 경전을 연설하시는 것이다.
선남자야, 가섭부처님의 법은 진실로 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항상하여 변천하지 않는 까닭이다.
선남자야, 만일 중생들이 나인 것을 내가 없는 것으로 보고 내가 없는 것을 나라고 보며,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 보고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 보며, 즐거운 것을 즐겁지 않다 보고 즐겁지 않은 것을 즐겁다고 보며, 깨끗한 것을 부정하다 보고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 보며, 멸하는 것을 멸하지 않는다 보고 멸하지 않는 것을 멸한다고 보며, 죄를 죄가 아니라 보고 죄가 아닌 것을 죄라고 보니라 보고 승이 아닌 것을 승이라 보며,
도를 도가 아니라 보고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보며, 진실한 보리를 보리가 아니라고 보고 진실한 보리가 아닌 것을 보리라고 잘못 보며, 고통인 것을 고통이 아니라 보고 집(集)인 것을 집이 아니라 보며, 멸(滅)인 것을 멸이 아니라 보고 진실한 것을 진실하지 않다고 보며, 세제(世諦)를 제일의제(第一義諦)라 보고 제일의제를 세제라 보며, 귀의할 데를 귀의할 데가 아니라 보고 귀의할 데가 아닌 것을 귀의할 데라 보며, 참으로 부처님 말씀을 마군의 말이라 하고 참으로 마군의 말을 부처님 말씀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때에 부처님들께서 『대열반경』을 말씀하신다.
선남자야, 모기의 입으로 바다의 밑바닥까지를 말린다고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입으로 불어서 수미산을 날린다고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새끼로 폭풍을 얽어맨다고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거타라(佉陀羅) 불속에 연꽃이 난다고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 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아가타약이 독약이라고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달을 뜨겁게 하고 해를 차게 한다고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4대가 각각 제 성품을 버린다고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께서 처음 세상에 나오셔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지만 제자가 깊은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처님 세존께서 열반하신다면, 이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또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처음 세상에 나오셔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한다면, 부처님께서 열반하셔도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 것이다.
또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처음 세상에 나오셔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지만, 굳게 믿는 단월이 부처님 법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이가 없는데, 부처님께서 문득 열반하신다면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또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처음 세상에 나오셔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제자들도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굳게 믿는 단월들이 있어 부처님 법을 공경하고 존중한다면, 부처님께서 열반하셔도 그 부처님의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 것이다.
또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처음 세상에 나오셔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굳게 믿는 단월이 있어 부처님 법을 공경하고 존중하더라도, 제자들이 경법을 연설하면서 이양을 탐하고 열반을 구하지 않는데, 부처님마저 열반하신다면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또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처음 세상에 나오셔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제자들도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굳게 믿는 단월이 부처님 법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저 제자들이 경법을 연설하되 이양을 탐하지 않고 열반을 구하면, 비록 부처님께서 열반하시더라도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 것이다.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처음 세상에 나오셔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굳게 믿는 단월들이 부처님 법을 공경하고 존중하더라도 제자들이 다툼을 일으켜 서로 시비하는데, 부처님마저 열반하신다면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또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처음 세상에 나오셔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며 신심 있는 속가의 단월들이 부처님 법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제자들도 화합하고 공경하는 법[和敬法]을 닦고 서로 시비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면, 부처님께서 열반하시더라도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고 없어지지 않는다.
또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처음 세상에 나오셔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신심 있는 속가의 단월들이 부처님 법을 공경하고 존중한다. 그리고 제자들이 모두 열반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면서 서로 공경하고 다툼을 일으키지 않는다. 온갖 부정한 물건을 받아 저축하면서 또 스스로 찬탄하기를 ‘나는 수다원과와 나아가 아라한과를 얻었다’라고 하는데, 부처님마저 열반하신다면 이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못한다.
또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처음 세상에 나오셔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신심 있는 속가의 단월들이 부처님 법을 공경하고 존중한다. 그리고 제자들이 대열반을 위하여 경법을 연설하고 화합하여 공경하는 법을 닦으며 서로 존중하고 모든 부정한 물건을 저축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다원과를 얻었으며 나아가 아라한과를 얻었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저 부처님 세존께서 비록 열반하시더라도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 것이다.
또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처음 세상에 나오셔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나아가 제자들도 부정한 물건을 저축하지 않는다. 또 스스로 말하기를 ‘수다원과나 아라한과를 얻었다’라고 하지 않지만 제각기 소견을 고집하여 갖가지로 말을 만든다. 장로여, 부처님께서 제정한 4중이나 나아가 일곱 가지 다툼을 없애는 법도 중생을 위해서는 막기도 하고 열기도 한다.
또 12부 경전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국토와 시절이 각각 다르고 중생이 한결같지 않으며, 영리함과 둔근의 차별을 아시므로 여래가 막기도 하고 열기도 하시며 중요하기도 하고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용한 의원이 병을 위하여 우유를 쓰기도 하고 병을 위하여 우유를 금하기도 한다. 열병에는 먹게 하고 냉병에는 금하는 것과 같이, 여래도 그러하셔서 중생들의 번뇌의 병을 관찰하여 열기도 하고 막기도 하시는 것이다. 장로여, 나는 부처님으로부터 친히 이런 뜻을 들었다. 오직 나만 이 뜻을 알고 당신은 모르며, 나만이 계율을 알고 당신은 모르며, 나만이 경을 알고 당신은 모른다고 하는데, 부처님마저 열반하신다면 그 법은 오랫동안 세상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또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처음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나아가 제자들도 ‘내가 수다원과나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 중생을 위하여 막기도 하고 열기도 하신다. 장로여, 나는 부처님을 따라 친히 이런 뜻과 이런 법과 이런 계율을 들었다. 장로여, 마땅히 여래의 12부경을 의지하여 이 뜻이 옳으면 내가 받아 가지겠고, 만일 그르다면 내가 버리겠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부처님 세존께서 비록 열반하시더라도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 것이다.
선남자야,
나의 법이 멸할 때 성문 제자들이 혹은 신(神)이 있다고 하고 혹은 신이 공하다고 하며 혹은 중음(中陰)이 있다고 하고 혹은 중음이 없다 한다. 혹은 3세(世)가 있다 하고 혹은 3세가 없다고 하며, 혹은 3승이 있다 하고 혹은 3승이 없다고 한다. 혹은 온갖 것이 있다고 하고 혹은 온갖 것이 없다 한다. 혹은 중생이 처음도 있고 나중도 있다 하고 혹은 중생이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다고 한다. 혹은 12인연이 함이 있는 법이라 하고 혹은 12인연이 함이 없는 법이라 하며 혹은 여래가 병고행(病苦行)이 있다 하고, 혹은 여래는 병고의 행이 없다고 한다.
혹은 여래가 비구들에게 열 가지 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하셨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곧 사람ㆍ뱀ㆍ코끼리ㆍ말ㆍ나귀ㆍ개ㆍ사자ㆍ돼지ㆍ여우ㆍ원숭이이다. 다른 것은 모두 허락하셨다 하고 혹은 모든 고기를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혹은 비구들은 다섯 가지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짐승ㆍ칼ㆍ술ㆍ낙사(酪沙)ㆍ참기름을 팔지 말아야 하고, 다른 것은 모두 허락하셨다고 한다. 혹은 다섯 종류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고 한다. 백정의 집ㆍ기생집ㆍ술집ㆍ왕궁ㆍ전타라의 집이며 다른 집은 다 허락하셨다고 한다.
혹은 교사야 옷은 허락하지 않으셨고, 다른 옷은 모두 허락하였다고 한다. 혹은 여래가 비구들에게 옷이나 음식이나 침구 따위의 값이 금 10만 냥쯤 가는 것까지는 허락하셨다 하고 혹은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혹은 열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고, 혹은 열반이라 함은 번뇌가 다한 것이며 다른 법이 없는 것을 열반이라고 한다. 마치 실을 짠 것이 옷인데, 옷이 이미 해진 것을 이름하여 옷이 없다고 하는 것처럼 옷이 없다는 딴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열반의 자체도 그러하다고 할 것이다.
선남자야, 이런 때를 당하여 나의 제자들도 바른 말 하는 이는 적고 삿된 말 하는 이가 많으며, 바른 법을 받는 이는 적고 삿된 법 받는 이가
많으며, 부처님 말을 받는 이는 적고 마군의 말을 받는 이는 많을 것이다.
선남자야, 그때 구섬미국(拘睒彌國)에 두 제자가 있었다. 하나는 아라한이며 하나는 파계한 사람이었다. 파계한 이의 무리는 500이며 아라한의 무리는 100이었다. 파계한 이가 말하기를 ‘여래는 끝까지 열반에 드는 것이니 나는 부처님에게서 이런 뜻을 친히 들었다. 여래가 마련한 네 가지 중대한 법은 가져도 좋고 범하여도 죄가 없다.
나도 지금 아라한과와 4무애지를 얻었으며 아라한도 이러한 네 가지 중대한 법을 범하였다. 네 가지 중대한 법이 만일 참말로 죄라면 아라한은 마침내 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꼭 가지라 하셨지만 열반하실 때에는 모두 버렸다’고 하셨다.
그때 아라한 비구가 말하기를 ‘장로여, 당신은 여래께서 끝까지 열반에 든다고 말하지 마시오. 나는 여래께서 항상하시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에나 열반하신 뒤에나 4중금(重禁)을 범한 죄는 차별이 없다. 만일 아라한이 4중금을 범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수다원을 증득한 사람도 계율을 범하지 않는데 하물며 아라한이겠는가? 장로가 아라한이라고 말하지만 아라한은 마침내 내가 아라한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 아라한은 오직 선한 법만 말하고 선하지 않은 법은 말하지 않는다. 장로의 말은 모두 잘못된 법이니, 12부경을 보면 장로가 아라한이 아님을 반드시 알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남자야, 그때 파계 비구의 무리들이 달려들어 그 아라한을 죽이고 말았다. 그때에 마왕은 이 두 무리들이 분노한 마음을 틈타서 600명의 비구들을 모두 살해하였다. 그때 범부들은 각각 함께 말하기를 ‘애달프다. 부처님의 법이 이제
없어지는구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의 바른 법은 진실로 멸하지 않았다.
그때에 그 나라에는 12만 보살들이 있어서 나의 법을 잘 가지고 있었는데, 어찌하여 나의 법이 멸한다고 말하겠는가? 그때 염부제 안에는 한 비구도 나의 제자가 없었고 파순은 큰불로써 모든 경전을 있는 대로 태워버렸다. 혹 남은 것은 바라문들이 훔쳐다가 군데군데 뽑아서 자기들의 경전에 써넣었다.
그런 뜻으로 여러 작은 보살들이 부처님께서 출현하시기 전에는 모두 바라문의 말을 믿었다. 여러 바라문들이 비록 ‘우리에게 재계(齋戒)가 있다’고 말하지만 외도들에게는 참으로 없는 것이다.
또 외도들이 말하기를 ‘나이고 즐겁고 깨끗함이 있다’고 말하지만, 참으로 나이고 즐겁고 깨끗한 이치를 알지 못한다. 부처님 법에서 한 자 두 자 한 구절 두 구절을 가져다가 자기들 경전에 그런 이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 구시나성 사라쌍수 사이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 대중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말하기를 ‘세상이 비었다. 세상이 비었다’라고 하였다.
곧 가섭보살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걱정하지 말고 울지 마라. 세상은 비지 않았다. 여래는 항상 계시고 변하지 않으며, 교법과 승가도 그러하다.’
대중들은 이 말을 듣고 통곡을 그치고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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