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5권
대반열반경 제15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8. 범행품(梵行品)①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청정한 행[梵行]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르면 일곱 가지 착한 법에 머물러야 범행을 구족하는 것이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법을 알고, 둘째는 뜻을 알고, 셋째는 때를 알고, 넷째는 만족함을 알고, 다섯째는 스스로 알고, 여섯째는 대중을 알고, 일곱째는 높고 낮음을 아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법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선남자야, 이 보살마하살이 12부경을 알아야 하나니, 수다라[契經]ㆍ기야[重頌]ㆍ수기(授記)ㆍ가타[孤起頌]ㆍ우타나[自說]ㆍ니타나[因綠]ㆍ아파타나[譬喩]ㆍ이제목다가[本事]ㆍ사다가[本生]ㆍ비불략[方廣]ㆍ아부타달마[未曾有]ㆍ우파제사[論議]이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수다라경이라 이름하는가? 곧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에서 ‘기쁘게 받들어 행하였다[歡喜奉行]’까지의 모든 것을 수다라경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기야경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나와 너희들이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4진제(眞諦)를 실상 그대로 보지 못하고 오래도록 생사에 헤매면서 고통 바다에 빠졌다. 네 가지 이치는 무엇인가? 괴로움[苦]과 집(集)과 열반[滅]과 도(道)이다. 부처님께서 예전에 비구들에게 수다라경을 설하여 마치셨다. 그때 자격이 훌륭한 중생이 법문을 들으려고 나중에 부처님 계신 데 와서 다른 이에게 묻기를 ‘여래께서 어떤 것을 말씀하셨는가?’ 하기에, 부처님께서 그 일을 아시고 근본경에 의지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멀고 먼 옛적에는 나나 너희나
네 가지 참 이치를 보지 못하고
났다가는 죽고 하는 고통 바다에
오래오래 헤매면서 지내었으니
네 가지 참 이치를 보았더라면
나고 죽는 뿌리를 끊어 버려서
나는 일이 다하여 없어지고
다시는 여러 몸을 받지 않으리.
이런 것을 기야경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수기경이라 이름하는가? 어떤 경이나 계율에서 부처님께서 법을 말하다가 천상 사람이나 세간 사람에게 부처님의 수기를 주신다. 곧 ‘너 아일다여, 오는 세상에 양거(蠰佉)라는 왕이 있을 것이니 바로 그 세상에서 부처의 도를 이룩하고 이름을 미륵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을 수기경이라고 한다.
또 어떤 것을 가타경이라고 하는가? 수다라나 계율을 제외하고 그 밖에 네 글귀 게송을 가리키는 것이니 다음과 같다.
여러 가지 나쁜 짓 짓지도 말고
여러 가지 착한 일 모두 행하라.
자기 마음 스스로 깨끗이 하면
이를 일러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한다.
이런 것을 가타경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우타나경이라고 하는가? 부처님께서 저녁나절에 선정에 들어서 하늘 대중들에게 법문의 요지를 자세히 말씀하셨는데, 그때 비구들은 ‘여래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시는가?’하고 생각하였다. 여래께서는 다음날 아침에 선정에서 일어나 물은 사람이 없지만 타심통으로 알고 스스로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알아라. 모든 천인들은 수명이 엄청나게 긴데, 너희 비구들은 남을 위하고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잘하는 일이며, 탐욕이 없는 것이 잘하는 일이며, 만족한 줄을 아는 것이 잘하는 일이며, 고요하게 지내는 것이 잘하는 일이다.’
이런 경들은 묻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우타나경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니타나경이라 하는가? 어떤 경이나 게송에서 원인이 되는 근본을 다른 이에게 연설하는 것이다. 마치 사위성(舍衛城)에 어떤 장부가 그물로 새를 잡아서 새장에 넣어두고 모이와 물을 주다가 도로 놓아주었는데, 세존께서 그 근본과 나중의 인연을 알고
게송을 말씀하셨다.
작은 악을 업신여겨
죄가 없다 하지 마라.
물방울이 작지만
큰 그릇을 채운다.
이런 것을 니타나경이라 한다.
어떤 것을 아파타나경이라고 하는가? 계율 가운데서 말한 비유와 같은 것을 아파타나경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이제목다가경이라고 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은 마땅히 알아라. 내가 세상에 났을 때에 말한 것은 계경(契經)이라 하고, 구류진불(鳩留秦佛)이었을 때에는 감로 북[甘露鼓]이라 하였고,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때에는 법 거울[法鏡]이라 하였고, 가섭불(迦葉佛) 때에는 분별공(分別公)이라고 하였다’고 하는 이런 것을 이제목다가경이라고 하였다.
또 어떤 것을 사타가경이라고 하는가? 부처님께서 본래 보살로서 고행을 닦던 일이니,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라. 내가 지난 세상에서 사슴이 되고 곰이 되고 노루가 되고 토끼가 되고 좁쌀이 흩어진 것처럼 많은 임금이 되고 전륜왕이 되고 용이 되고 금시조가 되었는데,
이와 같은 것은 보살의 도를 닦을 때에 받던 몸이다’라고 한다면 이런 것을 사타가경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불략경이라고 하는가? 대승의 방등경전을 말하는 것이니 뜻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다. 이런 것을 비불략경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미증유경이라고 하는가? 저 보살이 처음 났을 때에 붙들어 주는 이가 없었지만 일곱 걸음을 걸었고, 큰 광명을 놓으며 시방을 두루 보았고, 원숭이가 손으로 꿀 그릇을 받들어 여래께 드렸고, 목이 흰 강아지가 부처님 곁에서 법을 들었고, 마왕 파순이 푸른 소로 변하여 옹기 발우 사이로 다니면서 발우가 서로 부딪치게 하여도 깨어지지 않았고, 부처님께서 아기 때에 천신의 사당에 들어가니
천신의 동상이 일어나서 예배하던 일 따위를 미증유경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우바제사경이라고 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에서 논란하고 분별하여 그 모양을 말하는 것을 우바제사경이라고 한다.
보살이 이와 같이 12부경을 분명히 알면 이것을 법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온갖 글자와 말에 대하여 그 뜻을 널리 알면 그것을 뜻을 안다고 한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때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이 이런 때에는 고요함을 닦을 만하고 이런 때에는 정진을 닦을 만하고 이런 때에는 버리는 선정을 닦을 만하며, 이런 때에는 부처님께 공양할 만하고 이런 때에는 스님께 공양할 만하며, 이런 때에는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을 닦아서 반야바라밀을 구족할 만한 줄을 잘 아는 것을 뜻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만족함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만족함을 안다고 하는 것은 음식ㆍ의복ㆍ약과, 다니고 머무르고 앉고 눕고 자고 깨고 말하고 침묵하는 따위이니 이것을 만족함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 보살이 내게 이러한 믿음ㆍ이러한 계행ㆍ이러한 기억ㆍ이러한 버림ㆍ이러한 지혜ㆍ이러한 거래ㆍ이러한 바른 생각ㆍ이러한 선행ㆍ이러한 물음ㆍ이러한 대답이 있음을 아는 것을 스스로 안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중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은 이러한 이는 찰리(刹利) 대중이며 바라문 대중이며 거사 대중이며 사문 대중들이니, 이 대중에게는 이렇게 가고 오고 이렇게 앉고 일어나고 이렇게
법을 연설하고 이렇게 묻고 대답하여야 할 줄을 하는 것을 대중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사람의 높고 낮음[尊卑]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선남자야, 사람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믿는 자이며, 둘째는 믿지 않는 자이다. 믿는 자는 착하고 믿지 않는 자는 착하지 않다는 것을 보살은 알아야 한다. 믿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절에 가는 자와 가지 않는 자이다. 가는 자는 착하고 가지 않는 자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은 알아야 한다. 절에 가는 자에 또 두 가지가 있다. 예배하는 자와 예배하지 않는 자이다. 예배하는 자는 착하고 예배하지 않는 자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은 알아야 한다.
예배하는 데도 두 가지가 있다. 법을 듣는 자와 듣지 않는 자이다. 법을 듣는 자는 착하고 듣지 않는 자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은 알아야 한다. 법을 듣는 데 또 두 가지가 있다. 지성으로 듣는 자와 지성이 없는 자이다. 지성으로 듣는 자는 착하고 지성이 없는 자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은 알아야 한다. 지성으로 법을 듣는 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뜻을 생각하는 자와 생각하지 않는 자이다. 뜻을 생각하는 자는 착하고 뜻을 생각하지 않는 자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은 알아야 한다.
뜻을 생각하는 데도 두 가지가 있다. 말한 대로 행하는 자와 말한 대로 행하지 않는 자이다. 말한 대로 행하는 자는 착하고 말한 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은 알아야 한다. 말한 대로 행하는 데 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문을 구하고 모든 괴로움 받는 중생을 이익 되게 하여 편안하게 하지 못하는 자이며, 둘은 위없는 대승으로 회향하여 여러 사람을 이익 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자이다. 여러 사람을 이익 되게 하여 안락을 얻게 하는 자가 가장 높고 가장 선한 줄을 보살은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모든 보배 가운데는 여의주가
가장 훌륭하고 여러 가지 음식 중에는 감로가 제일이다. 이런 보살은 천상과 인간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높아서 비유할 수 없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일곱 가지 선한 법에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 일곱 가지 선한 법에 머물면 청정한 행을 구족한 것이다.
또 선남자야, 또 청정한 행이 있으니 사랑하고[慈] 가엾이 여기고[悲] 기뻐하고[喜] 버리는[捨]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사랑함을 닦으면 성내는 마음을 끊고, 가엾이 여김을 닦아도 성내는 마음을 끊는데, 어찌하여 4무량심이라고 합니까? 이치로 미루어보면 세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사랑함에 세 가지 반연함이 있습니다. 중생을 반연하는 것과 법을 반연하는 것과 반연함이 없는 것이며, 가엾이 여기는 마음ㆍ기뻐하는 마음ㆍ버리는 마음도 그와 같아서 이런 뜻을 따른다면 셋만이 있겠고 넷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중생의 반연은 5음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주려는 것이 중생의 반연이며, 법의 반연은 중생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보시하여 주는 것이 법의 반연이며, 반연함이 없다고 하는 것은 여래를 반연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반연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慈]이란 흔히 가난한 중생을 반연하는 것인데, 여래께서는 가난을 영원히 여의시고 첫째가는 기쁨을 받으셨습니다. 만일 중생을 반연한다면 부처님께서는 반연하지 않으시며 법도 그러하니, 이런 이치로 여래를 반연하는 것을 반연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사랑으로 반연하는 모든 중생은 부모ㆍ처자ㆍ권속을 반연하는 따위이니, 이런 뜻으로 중생의 반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을 반연하는 것은 부모ㆍ처자ㆍ권속을 보지 않고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긴 줄을 보는 것이니 이것을 법의 반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연이 없다고 하는 것은 법의 모습과 중생의 모습에 머물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반연이 없다고 하며, 가엾이 여기는 것과 기뻐하는 것과 버리는 일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 가지가 마땅하고 네 가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람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보는 행[見行]과 애욕의 행[愛行]입니다. 보는 행을 하는 사람은 사랑함과 가엾이 여김[慈悲]을 많이 닦고, 애욕의 행을 하는 사람은 기뻐함과 버림[喜捨]을 많이 닦습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가 마땅하고 네 가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한량없다[無量] 함은 가없다는 것이니, 가를 짐작할 수 없으므로 한량없다고 합니다. 만일 한량이 없으면 하나라 함이 마땅하고, 넷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넷이라 하면 어찌 한량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가 마땅하고 넷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부처님 여래가 중생들에게 말씀하시는 법은 그 말씀이 비밀하여 분명하게 알기가 어렵다. 혹은 중생을 위하여 한 가지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무엇이 한 가지 인연인가? 온갖 함이 있는 법이다. 선남자야, 혹은 두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인과 과이다. 혹은 세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번뇌와 업과 괴로움이다. 혹은 네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무명과 행과 나는 것과 늙어 죽는 것이다.
혹은 다섯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수(受)ㆍ애(愛)ㆍ취(取)ㆍ유(有)ㆍ생(生)이다. 혹은 여섯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3세의 인과 과보이다. 혹은 일곱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식(識)ㆍ명색(名色)ㆍ6입(入)ㆍ촉(觸)ㆍ수(受)ㆍ애(愛)ㆍ취(取)이다. 혹은 여덟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12인연에서 무명ㆍ행ㆍ생ㆍ노사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이다. 혹은 아홉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성(城)을 지나던 중에 무명과 행과 식을 빼고 설한 나머지 아홉 가지와 같다. 혹은 열한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살차니건자를 위하여 말할 때에 생(生) 한 법만 빼고 설한 나머지 열한 가지와 같다. 혹은 12인연을 구족하게 말씀하셨으니 왕사성에서 가섭 등을 위하여 열두 가지를 구족하게 말씀하신 것으로 무명으로부터 생ㆍ노ㆍ병ㆍ사까지이다.
선남자야, 한 가지 인연에서도 중생들을 위하여 가지가지로 분별하시니 한량없는 마음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여래의 깊고 비밀한 일에 의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선남자야, 여래는 큰 방편이 있어서 무상을 항상하다 말하고 항상함을 무상하다 말하며, 즐거움을 괴롭다 말하고 괴로움을 즐겁다 말하며, 부정함을 깨끗하다 말하고 깨끗함을 부정하다 말한다. 또 나[我]를 내가 없다[無我] 말하고 내가 없는데 나라 말하며, 중생 아닌데 중생이라 말하고 참 중생에겐 중생이 아니라 말한다. 또 물질이 아닌데 물질이라 말하고 물질을 물질이 아니라 말하며, 진실이 아닌데 진실하다 말하고 진실한데 진실이 아니라 말한다.
경계가 아닌데 경계라 말하고 경계를 경계 아니라 말하며, 생(生)이 아닌데 생이라 말하고 생을 생이 아니라 말하며, 나아가 무명을 명(明)이라 말하고 명을 무명이라 말한다. 색을 색 아니라 말하고 색 아닌 것을 색이라 말하며, 도가 아닌 것을 도라 말하고 도를 도가 아니라 말한다. 선남자야, 여래가 이러한 한량없는 방편으로 중생들을 조복함을 어찌 허망하다고 하겠는가?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재물을 탐한다면,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몸을 변화하여 전륜왕이 되어 한량없는 세월 동안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갖가지로 공급한 뒤에 그를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할 것이다. 어떤 중생이 5욕락을 탐한다면, 한량없는 세월에 미묘한 5욕락으로 그 뜻을 만족스럽게 한 뒤에 그를 권유하고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할 것이다.
어떤 중생이 영화와 귀함을 누리려고 한다면, 한량없는 세월 동안 그 사람의 하인이 되어 심부름하고 모시면서 그의 마음에 들게 한 뒤에, 권유하고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할 것이다. 어떤 중생이 성질이 사나워서 다른 이의 충고가 필요하게 되면, 내가 백천 년 동안에 그를 타이르고 달래서 마음이 조복된 뒤에 다시 권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할 것이다.
선남자야, 여래가 이와 같이 한량없는 세월 동안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는 것을 어찌 허망하다고 하겠느냐? 부처님 여래는 갖가지 나쁜 것 가운데 있더라도 물들지 않음이 연꽃과 같다. 선남자야, 이렇게 4무량심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이 한량없는 마음의 성품이 넷이 있으니 이것을 닦아 행하면 대범천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한량없는 마음의 짝이 네 가지가 있으므로 넷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성내는 일을 끊고, 기뻐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즐겁지 않음을 끊고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내고 성내는 중생을 끊는다.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넷이라 하고, 하나나 둘이나 셋이라고 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그대는 말하기를 ‘사랑으로 성내는 일을 끊고, 가엾이 여김도 그렇다 하여 셋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이제부터 그런 질문을 하지 마라. 왜냐하면 선남자야,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생명을 빼앗는 것이고 둘째는 채찍질을 하는 것이다. 사랑을 닦으면 생명 빼앗는 일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것을 닦으면 채찍질하는 일을 끊는다. 선남자야, 그런 이치로 보면 넷이 아니겠느냐?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중생에게 성내는 것과 중생 아닌 것에게 성내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중생에게 성내는 일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중생 아닌 것에게 성내는 일을 끊는다.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연이 있는 것이며, 둘째는 인연이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인연 있는 것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인연이 없는 것을 끊는다.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난 세상에서 오래전부터 익힌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지금 세상에서 금방 익힌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지나간 것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지금 것을 끊는다.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인에게 성내는 것이며, 둘째는 범부에게 성내는 것인데,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성인에게 성내는 것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범부에게 성내는 것을 끊는다.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상품이며 둘째는 중품인데, 사랑을 닦으면 상품을 끊고 가엾이 여김을 닦으면 중품을 끊는다. 선남자야, 이런 이치로 넷이라고 한다. 어찌 세 가지가 마땅하고 네 가지가 아니라고 힐난하겠는가?
그러므로 가섭아, 이 한량없는 마음을 짝으로 상대하여 분별하면 네 가지가 되고, 또 근기로 말하여도 네 가지가 된다. 근기에 사랑함이 있으면 가엾이 여김과 기뻐함과 버리는 마음은 있을 수 없으므로 네 가지가 마땅하고 감할 수 없다.
선남자야, 행으로 분별하여도 네 가지가 있어야 한다. 만일 사랑을 행할 때에는 가엾이 여김과 기뻐함과 버리는 마음이 없으므로 네 가지가 있다. 선남자야 무량하기 때문에 또한 네 가지라고 한다. 곧 무량한 것에 네 가지가 있다. 어떤 무량한 마음에는 반연은 있으나 자재함이 아니고, 어떤 무량한 마음은 자재 하나 반연이 아니다. 어떤 무량한 마음은 반연도 있으며 자재도 하고 어떤 무량한 마음은 반연도 아니며 자재도 아니다.
어떤 무량한 마음을 반연은 있으나 자재가 아니라 하는가? 무량하고 가없는 중생을 반연하면서도 자재한 삼매를 얻지 못하거나, 얻더라도 확고하지 못하여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무량한 마음을 자재는 하지만 반연이 아니라 하는가? 부모ㆍ형제ㆍ자매를 반연하여 안락을 얻게 하려는 것들은 무량한 마음의 반연이 아니다.
어떤 한량없는 마음을 반연도 있고 자재도 하다고 하는가? 부처님과 보살들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무량한 마음을 반연도 아니고 자재도 아니라 하는가? 성문과 연각은 한량없는 중생을 반연하지도 못하고 자재도 아니다.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4무량심은 성문이나 연각들이 알 바가 아니고, 부처님 여래의 경계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네 가지는
성문이나 연각은 무량하다고 하지만 너무 적어서 말할 것이 못되는 것이며 부처님과 보살만은 무량하고 가없다고 하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참으로 거룩한 말씀과 같아서, 여래께서 가지신 경계는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미칠 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사랑하는 마음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얻더라도 큰 사랑과 크게 가엾이 여김[大慈大悲心]이 아닐 수도 있습니까?”
“그럴 수 있다. 선남자야, 보살이 만일 중생들 가운데 3품으로 분별하면 첫째는 친한 이, 둘째는 원수, 셋째는 친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친한 이를 또 3품으로 나누면 상품ㆍ중품ㆍ하품이며 원수도 그러하다. 이 보살마하살이 상품의 친한 이에게는 더 나은 낙을 주고, 중품ㆍ하품의 친한 이에게도 평등하게 더 나은 낙을 주며,
상품의 원수에게는 조그만 낙을 주고, 중품의 원수에게는 중품 낙을 주고, 하품의 원수에게는 더 나은 낙을 주며, 보살이 이렇게 점점 더 닦아서 상품의 원수에게 중품 낙을 주고, 중품ㆍ하품의 원수에게 평등하게 더 나은 낙을 주며, 더 점점 닦아서 상품ㆍ중품ㆍ하품에게 평등하게 상품 낙을 준다. 만일 상품의 원수에게 상품 낙을 주면, 그때는 사랑하는 마음을 성취한다고 한다. 보살이 그때는 부모와 상품의 원수에게 평등한 마음을 얻어 차별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얻었다 하지만 크게 사랑하는 마음[大慈]은 아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보살이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얻은 것을, 오히려 크게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성취하기 어려우므로 큰 사랑이라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 하면 지나간 옛적 한량없는 세월에 오래오래 번뇌만 쌓았고 선한 법을 닦지 못하였으므로 하루 동안에
마음을 조복할 수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마치 완두(豌豆)가 말랐을 때에는 송곳으로 찌를 수 없는 것처럼, 번뇌의 굳기도 그와 같아서 하루 밤낮에 마음을 두어 산란하지 않아도 조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 집에 있는 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산에 있는 들 사슴은 사람을 보면 무서워서 달아난다. 성내는 마음을 버리기 어렵기는 집을 지키는 개와 같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기 쉽기는 들 사슴 같으므로 조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뜻으로 큰 사랑이라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돌에 그린 그림은 문채가 항상 있지만 물에 그린 것은 빨리 없어져서 오래가지 못하는 것처럼, 성내는 마음은 돌에 그린 그림 같고 선한 근본은 물에 그린 그림 같다. 그러므로 조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마치 큰 불더미는 밝은 빛이 오래 머물고, 번개 빛의 밝은 것은 잠깐도 머물 수 없는 것처럼 성내는 마음은 불더미 같고 사랑하는 마음은 번개 빛 같으므로 조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뜻으로 큰 사랑하는 마음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초지(初地)에 머물면 크게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가장 나쁜 이는 일천제라고 하는데, 초지 보살은 큰 사랑을 닦을 때에 일천제에 대하여 차별하는 마음이 없으며, 그의 허물을 보지 않으므로 성을 내지 않는다. 이런 뜻으로 크게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 없는 일을 덜어 버리므로 크게 사랑함이라 하고,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이익을 주고자 하므로 크게 불쌍히 여김이라 하고, 중생들에 대하여 환희한 마음을 내므로 크게 기뻐함이라 하고, 내 것이라 하여 옹호하려는 생각이 없으므로 크게 버림이라 하고, 만일 나[我]라는 법의 모양과 내 몸을 보지 않고, 모든 법이 평등하여 둘이 없는 것을 보면 이것을 크게 버림이라 하고, 자기의 즐거움을 버려 다른 이에게 주면 크게 버림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4무량심이라야 보살이
6바라밀을 늘게 하며 구족하게 할 것이며 다른 행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먼저 세간의 4무량심을 얻은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어서 차례로 출세간의 것을 얻는다. 선남자야, 세간의 무량한 마음을 원인으로 하여 출세간의 한량없는 마음을 얻는 것이므로 크게 한량없는 마음이라고 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익 없는 것을 덜어 버리고, 이익과 안락을 준다는 것은 실제로는 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유하는 것은 빈 관찰뿐이고 실제로 이익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비구들이 부정한 것을 관찰할 때에 입은 옷을 모두 가죽이라고 보지만 실은 가죽이 아니며 먹는 것을 모두 벌레라고 생각하지만 실로 벌레가 아니며, 콩국을 똥물[卞汁]로 생각하지만 실은 똥이 아니며, 먹을 수 있는 타락을 골수와 같다고 관찰하지만 실은 골수가 아니며, 뼈 부순 가루를 보릿가루와 같다고 관찰하지만 실은 보릿가루가 아닌 것처럼 4무량심도 그와 같아서 진실하게 중생을 이익 되게 하여 즐거움을 얻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입으로만 중생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말하여도, 실제로는 즐거움을 얻지 못할 것이니 이러한 관찰은 허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허망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즐거움을 준다면 모든 중생들이 어찌하여 부처님과 보살의 위덕의 힘으로 모두 즐거움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만일 진실로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같이, ‘네가 옛적에 사랑하는 마음만을 닦고서도 이 세계가 일곱 번 이루어지고 파괴되는 동안에 여기 와서 나지 않았다. 세계가 성취될 때에는 범천에 태어나고 세계가 파괴될 때에는 광음천(光音天)에 태어났는데, 범천에 나서는 세력이 자재하여 아무도 꺾을 이가 없었다. 그리고 1천 범천 중에 가장 훌륭하고 가장 높아서 대범천왕이 되었으며 모든 중생들이 나에 대하여
가장 높은 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서른여섯 번이나 도리천의 제석천왕이 되고, 한량없는 백천 번은 전륜왕이 되었다. 다만 사랑하는 마음만을 닦고도 이렇게 인간과 천상의 과보를 얻은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만일 진실하지 않다면 어떻게 이 이치와 서로 맞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야, 너는 참으로 용맹하여 두려움이 없구나.”
그리고는 가섭보살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였다.
한 중생에게라도
성내는 맘 내지 않고
즐거움 주기를 원하면
이를 일러 자선이라고 한다.
모든 세계 중생들을
가엾이 여긴다면
성인의 종성(種性)이니
한량없는 복 받으리.
온 세계에 가득하온
5통(通) 얻은 신선들과
대자재천에게
온갖 것을 보시해도
그 복으로 얻는 과보
사랑하는 한 마음을
닦은 복에 비긴다면
십육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선남자야,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것은 허망한 생각이 아니고 이치가 진실하다. 만일 성문이나 연각의 사랑이라면 허망하다고 하지만 부처님과 보살의 사랑은 진실한 것이며 허망하지 않다.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로서 이러한 대반열반을 닦는 이는 흙을 관하여 금을 만들고 금을 관하여 흙을 만들며, 지대로 수대를 만들고 수대로 지대를 만들며, 물로 불을 만들고 불로 물을 만들며, 지대로 풍대를 만들고 풍대로 지대를 만들어서, 마음대로 성취하여 허망함이 없으며, 참된 중생을 관하여 중생 아닌 것을 만들고 중생 아닌 것을 관하여 참된 중생을 만들되, 모두 뜻대로 되어서 허망하지 않다. 선남자야, 마땅히 보살의 4무량심은 진실한 생각이며 진실하지 않음이 아니다.
또 선남자야, 어찌하여 진실한 생각이라 하는가?
모든 번뇌를 끊어 버리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사랑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어 버리고, 가엾이 여김을 닦는 이는 성냄을 끊어 버리고, 기쁨을 닦는 이는 즐겁지 않음을 끊어 버리고,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과 성냄과 중생이란 모습을 끊어 버린다. 그러므로 진실한 생각이라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의 4무량심은 모든 선근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만일 가난한 중생을 보지 못하면 사랑하는 마음을 낼 인연이 없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못하면 보시할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다. 보시하는 인연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편안한 쾌락을 얻게 하니, 곧 음식ㆍ 수레ㆍ의복ㆍ꽃ㆍ향ㆍ평상ㆍ집ㆍ등불 등이다. 이런 것으로 보시할 때에 마음이 속박되지 않고 탐착함을 내지 않으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회향할 것이다.
그때 그 마음에 의지함이 없고 허망한 생각을 끊어 버리고 두려움이나 명예나 이양을 위하지 않아, 인간과 천상에서 받는 쾌락도 구하지 않고 교만한 마음도 내지 않으며, 은혜 갚기를 바라지도 않고 다른 이에게 속아서 보시하는 것도 아니며 부귀를 구하지도 않는다. 보시를 행할 때에는 받는 이가 계행을 가지거나 계행을 파하거나, 복밭이거나 복밭이 아니거나 선지식이거나 선지식이 아니거나도 보지 말아야 한다. 보시할 때에 정당한 그릇인지 아닌지도 보지 말며 보시할 때거나 보시할 곳이거나 아닌 것도 가리지 말아야 하며, 또 흉년과 풍년도 아는 체하지 말고 원인이나 결과나, 중생이다 중생 아니다, 복이다 복 아니다 하는 것을 보지 말아야 한다. 비록 보시하는 이와 받는 이와 재물을 보지 않으며, 나아가 끊는 것과 과보를 보지 않더라도 항상 보시를 행하여 끊이지 말아야 한다.
선남자야, 보살이 만일 계행을 가짐과 계행을 깨뜨림과 나아가 과보를 본다면 마침내 보시하지 못하고, 보시하지 않으면
보시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며, 보시바라밀다를 구족하지 못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한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을 때에, 그 권속들이 편안하게 하고 독을 없애기 위하여 의원을 청하여 살을 뽑으려 하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아직 손을 대지 마라. 이 독한 화살이 어느 쪽에서 왔으며 누가 쏘았으며, 찰리인지 바라문인지 비사인지 수타인지를 내가 살펴보아야겠다’고 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그 살이 나무인지 대나무인지 버들인지? 그 촉은 어디서 만들었으며 강한 것인지 연한 것인지? 깃[羽]은 무슨 새의 깃인지? 까마귀 깃인지 올빼미 깃인지 독수리 깃인지? 그 독은 만든 것이냐 저절로 생긴 것이냐? 사람의 독이냐 뱀의 독이냐?’ 하고 따지려 하면, 이런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것은 알지도 못한 채 목숨이 끊어질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도 그러하여 보시를 행하려 하면서 받을 사람이 계행을 지키는가, 계행을 파하였는가? 과보는 어떠할 것인가를 분별하려 들면 마침내 보시하지 못할 것이다. 보시하지 못하면 보시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고 보시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보시를 행할 때에는 평등한 자비심으로 중생을 아들처럼 생각할 것이며, 또 보시할 때에는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서 마치 부모가 병든 자식을 돌보듯이 할 것이며, 보시를 행할 때에는 마음이 기쁘기가 아들의 병이 쾌차함을 보는 부모와 같아야 하며, 보시한 뒤에는 마음 놓기를 마치 부모가 장성한 아들이 스스로 생활할 수 있음을 보듯이 하여야 할 것이다.
이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밥을 보시할 때에 항상 이렇게 서원하여야 한다.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 모든 중생들이 큰 지혜의 밥을 얻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위없는 대승으로 회향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좋은 지혜의 밥을 얻고 성문ㆍ연각의 밥을 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법의 기쁜 밥[法喜食]을 얻고 사랑의 밥[愛食]을 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모두 반야바라밀 의 밥을 얻어 만족하고 걸림 없이 늘어가는 선근[增上善根]을 섭취하길 바랍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공한 모양을 깨닫고 허공과 같이 걸림 없는 몸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들이 받는 이를 위하여 모든 것을 불쌍하게 여기며 중생들의 복밭이 되기를 원합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을 닦으면서 밥을 보시할 때에는 마땅히 이러한 서원을 세워야 한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마실 것을 보시할 때에는 항상 이렇게 서원하여야 한다.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 모든 중생들이 대승의 강에 들어가 여덟 가지 맛을 마시고 위없는 보리도에 들어서며, 성문 연각의 목마름을 여의고 부처님의 법을 구하며, 번뇌의 갈증을 끊고 법의 맛을 갈망하길 원합니다. 나고 죽는 애착을 끊고 대승의 대반열반을 좋아하며, 법신을 갖추고 모든 삼매를 얻어 깊고 깊은 지혜 바다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감로의 맛과 보리와 출세간과 탐욕을 여읜 고요한 맛들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한량없는 백천의 법의 맛을 구족하며, 법의 맛을 구족 하고는 불성을 보고, 불성을 보고는 법의 비를 능히 내리며, 법의 비를 내리고는 불성이 두루 덮이기를 허공과 같이 하며, 또 다른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한 법의 맛을 얻게 하되
대승의 법의 맛이며 성문ㆍ벽지불의 맛이 아니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법의 맛과 걸림 없는 불법을 행하는 맛을 얻고 다른 맛을 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마실 것을 보시할 때에는 마땅히 이러한 서원을 세워야 한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수레 등을 보시할 때에는 마땅히 이렇게 서원하여야 한다.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대승을 이루게 하며, 대승에 머물러서 법에서 물러가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법과 금강좌(金剛座) 같은 법을 얻게 하며, 성문승이나 벽지불승을 구하지 않고, 부처님 법ㆍ굴복할 수 없는 법ㆍ부족함이 없는 법ㆍ물러가지 않는 법ㆍ위가 없는 법과 10력승(乘)ㆍ대공덕승ㆍ미증유승 그리고 희유한 법ㆍ얻기 어려운 법ㆍ가[邊]가 없는 법ㆍ온갖 것을 아는 법으로 향하길 원합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에서 수레를 보시할 때에는 마땅히 이러한 견고한 서원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옷을 보시할 때에는 마땅히 이렇게 서원하여야 한다.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써 모든 중생들이 부끄럽다는 옷[慚愧衣]을 얻게 하며, 법계로 몸을 덮어 잘못된 소견의 옷을 찢으며, 옷이 몸에서 1척 6촌을 떠나고 금빛 몸을 얻으며, 여러 가지 받는 촉감이 부드러워 장애가 없으며, 얼굴빛이 윤택하고 피부가 보드라우며, 뚜렷한 광명이 한량없고, 색(色)이 없고 색을 여의길 원하옵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모두 색 없는 몸을 얻고, 온갖 색을 뛰어넘어 색이 없는 대반열반에
들기를 원합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옷을 보시할 때에 마땅히 이런 견고한 서원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함을 닦으면서 꽃과 향과 바르는 향ㆍ가루향ㆍ여러 가지 잡색향을 보시할 때에 마땅히 이렇게 서원하여야 한다.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써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불화(佛花)삼매를 얻고 일곱 가지 깨달은 미묘한 화만으로 머리에 매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의 형상은 보름달 같고 보이는 색들은 미묘하여 제일이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모두 한 모양을 이루어 온갖 복으로 장엄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마음대로 뜻에 맞는 색을 보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들이 항상 선지식을 만나서 걸림 없는 향기를 얻고 더러운 냄새를 떠나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선한 근본인 위없는 보배를 얻게 되길 바랍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서로 보고 기뻐하며 괴로움이 없으며, 모든 선한 일을 갖추어 근심과 염려가 없게 되길 바랍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계율의 향기를 구족하게 되길 바랍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걸림 없는 계율을 지녀 향기가 아름답게 사방에 가득하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견고한 계행ㆍ후회가 없는 계행ㆍ온갖 지혜의 계행을 얻고, 여러 가지 파계를 떠나 없는 계율[無戒]ㆍ미증유한 계율ㆍ스승 없는 계율ㆍ짓지 않는 계율[無作戒]ㆍ더러움 없는 계율ㆍ물들지 않는 계율ㆍ끝낸 계율[竟已戒]ㆍ끝까지의 계율[究竟戒]을 모두 얻으며, 평등한 계율을 얻고 향을 몸에 발라주거나 살을 깎아도 사랑하고 미워함이 없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위없는 계율ㆍ소승이 아닌 계율을 얻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마다 지계바라밀을 구족하여 부처님들이 성취한 계율과 같은 것을 얻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모두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에
훈습하는 수행을 하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모두 대반열반의 미묘한 연꽃을 얻고, 그 꽃의 향기가 시방에 가득하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대승 대반열반의 위없는 음식을 먹되, 벌이 꽃을 가려내듯이 향기로운 맛만을 취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모두 한량없는 공덕으로 닦아 얻은 몸을 성취하게 되길 원합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에서 꽃과 향을 보시할 때에 마땅히 이렇게 견고한 서원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평상을 보시할 때에 마땅히 원하기를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써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하늘중의 하늘[天中天]이 눕던 평상을 얻으며 큰 지혜를 얻고 4선정의 지위에 앉아서, 보살들이 눕던 평상에 눕고 성문ㆍ연각의 평상에 눕지 말며, 나쁜 평상에 눕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안락하게 눕게 되고, 나고 죽는 평상을 여의며 대반열반의 사자가 눕는 평상을 성취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이 평상에 앉아서 다시 한량없는 다른 중생들을 위하여 신통과 사자(師子)의 유희(遊戱)를 보여주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이 대승의 궁전에 있으면서, 여러 중생들을 위하여 불성을 연설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위없는 평상에 앉아서 세상 법에 굴복하지 말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인욕의 평상에 앉아 생사의 흉년과 춥고 굶주림을 여의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두려움 없는 평상을 얻어 온갖 번뇌의 도적을 여의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청정한 평상을 얻어 위없고 진정한 도를 오로지 구하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선한 법의 평상을 얻어 선지식이 항상 옹호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오른쪽 옆구리로 눕는 평상을 얻어 부처님들이 행하던 법을 의지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평상을 보시할 때에 마땅히 이렇게 견고한 서원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주택을 보시할 때에, 마땅히 원하기를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써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대승의 집에 있어서 선지식들이 행하던 행을 닦되, 크게 가엾이 여기는 행ㆍ6바라밀 행ㆍ큰 정각의 행ㆍ모든 보살이 행하는 도행ㆍ그지없이 넓고 커서 허공 같은 행을 닦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모두 바른 생각을 얻고 나쁜 생각을 여의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마다 항상하고 즐겁고 내가 있고, 깨끗한 데 머물러 네 가지 뒤바뀜을 여의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마다 출세간 하는 글을 배우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반드시 위없는 온갖 지혜의 그릇이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모두 감로의 집에 들어가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첫 마음ㆍ중간 마음ㆍ나중 마음이 항상 대승열반의 집에 들어가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오는 세상에서 항상 보살의 거처하는 궁전에 있게 되길 원합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주택을 보시할 때에 마땅히 이렇게 견고한 서원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등불을 보시할 때에 마땅히 이렇게 서원하여야 한다.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써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광명이 한량이 없어 부처님 법에 편안히 머물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항상 밝게 비침을 얻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미묘하고 광택이 제일가는 빛을 얻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눈이 깨끗하여 흐리터분한 병이 없어지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지혜의 횃불을 얻어 내[我]가 없고 중생(衆生)이 없고 사람[人]이 없고 수명[壽]이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마다 청정한 불성이 허공과 같음을 보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육안(肉眼)이 깨끗하여 시방 항하의 모래 같은 세계를 철저하게 보게 되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부처님의 광명을 얻어 널리 시방을 비추길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막힘없는 눈을 얻어 청정한 불성을 모두 보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지혜의 등불을 얻어 온갖 어둠과 일천제를 깨뜨리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한량없는 광명을 얻어 한량없는 부처님세계를 널리 비추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대승의 등불을 켜고 2승의 등불을 여의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얻은 광명으로 무명의 어둠을 없애는 것이 일천 해가 함께 비치는 공덕보다 뛰어나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큰 광명을 얻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어둠을 소멸하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네 가지 눈을 구족하고 법의 모양을 깨달아 스승 없이 깨달음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무명을 보지 않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중생들마다 대승 대반열반의 미묘한 광명을 얻고 이 중생들이 진실한 불성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등촉을 보시할 때에 마땅히 이러한 서원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모든 성문ㆍ연각ㆍ보살과 부처님 여래께서 가진 선근에는 인자한 마음이 근본이 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을 닦으면 이렇게 한량없는 선근을 낸다. 이른바 부정한 것ㆍ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ㆍ무상하게 나고 없어지는 것ㆍ4념처(念處)ㆍ일곱 가지 방편ㆍ세 가지 관하는 곳ㆍ12인연ㆍ내가 없는
등의 관[無我等觀]ㆍ난법(煖法)ㆍ정법(頂法)ㆍ인법(忍法)ㆍ세제일법(世第一法)과 견도(見道)ㆍ수도(修道)와 정근(正勤)ㆍ여의(如意)ㆍ여러 근(根)ㆍ여러 역(力)ㆍ7보리분법ㆍ8정도ㆍ4선정ㆍ4무량심ㆍ8해탈ㆍ8승처(勝處)ㆍ10일체입(一切入)과 공한 것ㆍ모양이 없는 것ㆍ원이 없는 것ㆍ다툼 없는[無諍] 삼매와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ㆍ모든 신통ㆍ본고장을 아는 지혜[知本際智]ㆍ성문의 지혜ㆍ연각의 지혜ㆍ보살의 지혜ㆍ부처님의 지혜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법에는 인자함이 근본이 된다. 선남자야, 이런 이치로 인자함은 진실하고 허망하지 않은 것이다. 어떤 이가 ‘무엇이 모든 선근의 근본인가?’하고 묻는다면 인자한 마음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런 이치로 인자함은 진실하고 허망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능히 선한 일을 하는 것을 진실한 생각이라 한다. 진실한 생각은 곧 인자한 마음이며 인자함은 곧 여래이며 인자함이 곧 대승이다. 대승은 곧 인자함이며 인자함은 곧 여래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보리의 도이니, 보리의 도가 곧 여래이며 여래는 곧 인자함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은 곧 대범(大梵)이니 대범이 곧 인자함이며, 인자함이 곧 여래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은 모든 중생의 부모가 되는데, 부모는 곧 인자함이며 인자함이 곧 여래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은 곧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경계이니,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경계가 곧 인자함이며 인자함이 곧 여래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중생의 불성이니 이러한 불성이 오랫동안 번뇌에 덮여 있었기 때문에 중생이 불성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불성이 곧 인자함이며 인자함이 곧 여래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대공(大空)이니 대공이 곧 인자함이며 인자함이 곧 여래이다. 선
남자야, 인자함이 곧 허공이니 허공은 곧 인자함이며 인자함은 곧 여래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항상함이니 항상함은 곧 법이며 법은 곧 승가이며, 승가는 곧 인자함이고 인자함은 곧 여래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즐거움이니, 즐거움은 곧 법이며 법은 곧 승가이며 승가는 곧 인자함이고 인자함은 곧 여래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깨끗함이니, 깨끗함은 곧 법이며 법은 곧 승가이며 승가는 곧 인자함이고 인자함은 곧 여래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나이니 내가 곧 법이며 법은 곧 승가이며 승가는 곧 인자함이고 인자함은 곧 여래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감로이니, 감로는 인자함이며 인자함은 곧 불성이며 불성은 곧 법이다. 법은 곧 승가이며 승가는 곧 인자함이니 인자함은 곧 여래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모든 보살의 위없는 도이니, 도는 곧 인자함이며 인자함은 곧 여래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부처이니 세존의 한량없는 경계이며, 한량없는 경계가 곧 인자함이니, 인자함이 곧 여래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무상하다면, 무상함이 곧 인자함이니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괴롭다면, 괴로움이 곧 인자함이니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부정하다면, 부정이 곧 인자함이니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내가 없다면, 나 없음이 곧 인자함이니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허망한 생각이라면, 허망한 생각이 곧 인자함이니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보시바라밀이 아니라면, 보시바라밀이 아닌 것이 인자함이니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 것이며, 나아가 반야바라밀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중생을 이익 되게 하지 못한다면, 이런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한 모양인 도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모든 법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여래의 성품을 보지 못한다면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법이 모두 모양새가 있는 줄로 본다면,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유루(有漏)라면 유루인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함이 있는 것이라면, 함이 있는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초주(初住)에 머물지 못한다면, 초주가 아닌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소외를 얻지 못한다면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4사문과를 얻는다면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있거나 없거나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라면, 이러한 인자함은 성문이나 벽지불들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헤아릴 수 없으면, 법도 헤아릴 수 없고 불성도 헤아릴 수 없고 여래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이렇게 인자함을 닦으면 비록 자는 가운데 편안하더라도 자는 것이 아니니 부지런히 정진하는 까닭이다. 항상 깨어 있더라도 깨어 있는 것이 아니니 잠이 없는 까닭이며, 자는 가운데 하늘 사람들이 보호하더라도 보호함이 없으니 나쁜 짓을 행하지 않는 까닭이며, 자면서도 나쁜 꿈을 꾸지 않으며 선하지 못함이 없으니
잠을 끊은 까닭이며, 목숨을 마친 뒤에 범천에 나더라도 태어남이 없으니 자재함을 얻은 까닭이이다. 선남자야, 인자함을 닦는 이는 이렇게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도 이와 같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을 성취하며, 부처님 여래도 이와 같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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