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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16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7권

by Kay/케이 202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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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7

 

 

반열반경 제17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8.범행품③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아는 것은 무슨 이익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알면 4무애(無碍)를 얻는다. 법에 걸림이 없고[法無碍] 뜻에 걸림이 없고[義無碍] 말에 걸림이 없고[辭無碍] 말하기를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다[樂說無碍]. 법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든 법과 법의 이름을 아는 것이다. 뜻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든 법이 가지고 있는 뜻을 알고, 모든 법의 이름을 따라서 뜻을 짓는 것이다. 말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이름을 따르는 언론[隨字論]ㆍ바른 음성의 언론[正音論]ㆍ천타론(闡陀論)ㆍ세간 변재의 언론[世辯論]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무릇 연설하는 것이 걸림이 없어 변동할 수 없으며 두려움이 없어 굴복할 수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이렇게 보고 알면 4무애지를 얻는다고 한다.
또 선남자야, 법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성문과 연각과 보살과 부처님의 법을 두루 아는 것이며, 뜻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승(乘)은 비록 셋이나 하나에 돌아감을 알아서 마침내 차별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말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한 가지 법에 대하여 갖가지 이름을 지어서 한량없는 세월을 지나면서 말하여도 다할 수 없으며 성문이나 연각은 이렇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한량없는 세월에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되, 이름과 뜻을 갖가지로 말하여도 다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법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뜻에 걸림이 없다 함은 보살마하살이 모든 뜻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말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이름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말하기 좋아하는 것이 이렇게 훌륭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만일 집착하면 보살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집착하지 않으면 법을 알 수 없습니다. 법을 안다는 것은 곧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알고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법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집착하는 것은 걸림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집착함이 없어야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그러므로 모든 보살이 집착이 있으면 걸림이 없을 수 없고, 만일 걸림이 없지 않으면 보살이라고 하지 않으며 이런 사람은 범부라고 한다. 어찌하여 집착하는 이를 범부라고 하는가? 온갖 범부들은 색(色)에 집착하며 나아가 알음알이[識]에 집착한다. 색에 집착함으로써 탐심을 내고 탐심을 내기 때문에 색에 속박되며 나아가 알음알이에 속박되는 것이다. 속박되기 때문에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온갖 번뇌를 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집착하는 이를 범부라 하며, 이런 이치로 범부들은 4무애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벌써 법의 모습을 알고 보았고, 알고 보았으므로
그 뜻을 알았고, 법의 모습을 보고 뜻을 알았으므로 색(色) 가운데 집착을 내지 않고 나아가 알음알이[識] 가운데서도 그와 같다. 집착하지 않으므로 보살이 색에 대하여 탐심을 내지 않고 나아가 알음알이에도 탐심을 내지 않는다. 탐심이 없으므로 색에 속박되지 않고, 나아가 알음알이에도 속박되지 않으며 속박되지 않으므로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온갖 번뇌에서 해탈한다. 이런 뜻으로 모든 보살이 4무애를 얻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런 인연으로 내가 제자들을 위하여 12부 경전에서 말하기를 ‘얽매고 집착함은 마군에게 속박되는 것’이라 하였다. 만약 집착하지 않으면 마군의 속박을 벗어날 것이니, 마치 세상에 죄 있는 사람은 임금의 속박을 받지만 죄 없는 사람은 임금도 속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얽매이고 집착하면 마군의 속박을 받고, 얽매이고 집착하지 않으면 마군이 속박하지 못한다.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은 집착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법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글자를 잘 가지고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가진다는 것은 땅과 같고 산과 같고 눈[眼]과 같고 구름과 같고 사람과 같고 어머니와 같다. 온갖 법도 그와 같은 것이다. 뜻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보살이 비록 모든 법의 이름을 알지만 뜻은 알지 못하다가 뜻에 걸림 없게 되면 곧 뜻을 안다.
어떻게 뜻을 아는가? 땅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마치 땅이 모든 중생과 중생 아닌 것을 모두 가지는 것과 같다. 이런 뜻으로 땅을 가진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산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무슨 이유로 산을 가진다고 하는가? 산이 땅을 붙들어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진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무슨 이유로 눈을 가진다고 하는가? 눈은 광채를 가졌으므로 가진다고 한다. 무슨 이유로 구름을 가진다고 하는가? 구름을 용의 기운이라 하고 용의 기운은 물을 가지는 까닭에 구름을 가진다고 하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사람을 가진다고 하는가? 사람은 법과 법 아닌 것을 가지므로 사람을 가진다고 하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어미를 가진다고 하는가? 어미는 자식을 가지므로 어미를 가진다고 한다. 보살마하살이 온갖 법의 이름과 구절과 뜻을 아는 것도 그와 같다.
말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갖가지 말로써 한 가지 뜻을 연설하지만 역시 뜻이 없는 것이다. 마치 남자나 여자나 집이나 수레나 중생의 이름과 같다. 어찌하여 뜻이 없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뜻은 곧 보살과 부처님의 경계이며 말은 범부의 경계이니 뜻을 아는 까닭으로 말에 걸림이 없게 되는 것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말을 알고 뜻을 아는 까닭으로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말을 연설하고 뜻을 연설하여 다하지 않았다. 이것을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다고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겁에 세상 법[世諦]을 수행하고 수행하였으므로 법에 걸림 없음을 알며, 또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제일의제를 수행하였으므로 뜻에 걸림 없음을 얻으며, 또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비가라나론(毗伽羅那論)을 익혔기 때문에 말에 걸림 없음을 얻으며, 또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세상 언론을 말하기를 익혔으므로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 없음을 얻었다.
선남자야, 성문ㆍ연각이 만일 이 4무애를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선남자야, 9부 경전 중에서 내가 말하기를 ‘성문ㆍ연각이 4무애가 있다’고 하였으나, 실제로 는
성문ㆍ연각에게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을 제도하느라고 4무애지를 닦아 익히지만 연각들은 고요한 법을 닦아서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만일 중생을 교화하려면 신통을 보일 뿐이고 종일토록 잠자코 있으면서 말하는 일이 없는데, 어떻게 4무애지가 있겠는가?
어찌하여 잠자코 말하는 일이 없는가? 연각은 법을 말하여 사람을 제도해서 난법(煖法)ㆍ정법(頂法)ㆍ인법(忍法)ㆍ세제일법(世第一法)이나,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ㆍ보살마하살을 얻게 하지 못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연각이 세상에 날 때에는 세간에 9부 경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각은 말에 걸림이 없는 일과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는 일이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연각들은 비록 여러 가지 법을 알아도 법에 걸림이 없지 못하다. 왜냐 하면 법에 걸림이 없다는 것은 글자를 안다는 것인데, 연각들은 문자를 알지만 글자에 걸림이 없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항상 머문다는 두 글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각들은 법에 걸림이 없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뜻은 알지만 뜻에 걸림이 없지는 못한 것이다. 참으로 뜻을 안다고 하는 것은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불성이란 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 이런 이치로 연각들은 뜻에 걸림이 없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각들은 모두 4무애지가 없는 것이다.
어찌하여 성문들은 4무애지가 없는가? 성문들은 세 가지 좋은 방편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세 가지 방편이라고 하는가? 첫째는 반드시 부드러운 말을 한 뒤에야 법을 받는 것이며, 둘째는 반드시 거친[麤] 말을 한 뒤에야 교화를 받는 것이며, 셋째는 부드럽지도 않고
거칠지도 않은 말을 한 뒤에야 교화를 받는 것이다. 성문들은 이 세 가지가 없기 때문에 4무애지가 없는 것이다.
또 성문이나 연각들은 끝까지 말을 알지 못하고 뜻을 알지 못하며 자재한 지혜가 없어 경계를 알지 못하며 10력이 없고, 4무외심이 없어서 필경에 12인연의 강을 건너가지 못하며, 중생들의 근성이 예리하고 둔한 차별을 알지 못하며, 두 가지 참된 이치[二諦]의 의심을 끊지 못하였으며, 중생들이 갖가지 마음으로 반연하는 경계를 알지 못하며, 제일의공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2승들은 4무애지가 없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성문이나 연각은 모두 4무애지가 없다면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리불은 지혜가 제일이며, 목건련은 신통이 제일이며, 마하구치라는 4무애가 제일이다’라고 하셨습니까? 만일 4무애지가 없다면 여래께서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가섭보살을 칭찬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마치 항하에 한량없는 물이 있고, 신두하(辛頭河)에도 한량없는 물이 있고, 박차하(博叉河)에도 한량없는 물이 있고, 실타하(悉陀河)에도 한량없는 물이 있고, 아뇩달(阿耨達) 못에도 한량없는 물이 있고, 바다에도 한량없는 물이 있다 하여 여러 곳의 물을 모두 한량없다 하지만 그 분량은 진실로 같지 않은 것처럼, 성문ㆍ연각ㆍ보살의 4무애지도 그와 같아서 같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내가 범부들에게 ‘마하구치라는 4무애지가 제일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대가 질문한 것은 그 뜻이 이러한 것이다. 선남자야, 성문들은 혹은 한 가지를 얻고 혹은
두 가지를 얻었지만 네 가지를 구족한 것은 아니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신「범행품(梵行品)」중에서 ‘보살은 알고 보는 것으로 4무애를 얻는다’고 하셨으나 보살이 알고 보는 것은 얻는 것이 없고, 얻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마하살은 참으로 얻는 것이 없습니다. 만일 보살이 마음에 얻는 것이 있다면 보살이 아니고 범부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보살이 얻는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훌륭하고 훌륭하다.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데 그대가 다시 묻는구나.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진실로 얻는 것이 없다. 얻는 것이 없는 것을 4무애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무슨 뜻으로 얻음이 없는 것을 걸림이 없다고 하는가? 만일 얻는 것이 있으면 곧 걸림이 있는 것이라고 하며, 걸림이 있는 것은 4전도(顚倒)라고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4전도가 없기 때문에 걸림 없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을 얻는 것이 없다[無所得]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얻는 것이 없으면 지혜라고 하며 보살마하살이 이 지혜를 얻었으므로 얻는 것이 없다고 한다. 또 얻는 것이 있는 것은 무명이라고 하며 보살은 무명의 어둠을 아주 끊었으므로 얻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보살을 이름하여 얻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얻는 것이 없는 것은 대열반이라고 한다. 보살마하살은 이 대열반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온갖 법의 성품과 모양을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살은 얻는 것이 없다고 한다. 얻는 것이 있는 것은 25유라고 하며 보살은 25유를 영원히 끊고 대열반을 얻었다. 그러므로 보살을 이름하여 얻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얻는 것이 없는 것을
대승이라고 하는데,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에 머물지 않으므로 대승을 얻었다. 그래서 보살을 얻는 것이 없다고 한다. 얻는 것이 있는 것은 성문ㆍ벽지불의 도라고 하며 보살은 2승의 도를 아주 끊었으므로 부처님 도를 얻었다. 그러므로 보살을 이름하여 얻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얻는 것이 없는 것은 방등경(方等經)이라고 하는데, 보살은 이런 경전을 읽고 외우므로 대열반을 얻었다. 그러므로 보살을 얻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얻는 것이 있는 것은 121)부 경전이라고 이름하며 보살이 닦는 것은 방등 대승경전만을 말한다. 그러므로 보살을 얻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있는 바가 없음을 허공이라고 하고 세간에서 물질이 없는 것을 허공이라고 한다. 보살은 이 허공삼매를 얻었으니 보는 것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보살을 얻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얻는 것이 있는 것은 나고 죽는 바퀴[生死輪]라고 한다. 모든 범부는 나고 죽는 데서 바퀴 돌듯 하기 때문에 보는 것이 있지만 보살은 온갖 나고 죽음을 영원히 끊었으므로 보살을 일러서 얻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얻는 것이 없는 것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한다. 보살마하살은 불성을 보았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었으며 그래서 보살은 얻는 것이 없다고 한다. 얻는 것이 있는 것은 무상하고 즐거움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함이 없다고 하지만 보살마하살은 이 무상하고 즐거움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함이 없는 것을 영원히 끊었으므로 보살을 일러서 얻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얻는 것이 없는 것을 제일의공이라고 하며 보살마하살은 제일의공을 관찰하여 보는 바가 없으므로 얻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얻는 것이 있는 것은 다섯 가지 소견이라고 하며 보살은 이 다섯 가지
소견을 아주 끊었으므로 제일의공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을 이름하여 얻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얻는 것이 없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는데,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는 보는 바가 없으므로 얻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얻는 것이 있는 것은 성문ㆍ연각의 보리라 고 하며 보살은 2승의 보리를 영원히 끊었으므로 보살을 이름하여 얻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네가 물은 것도 얻는 것이 없고 내가 말하는 것도 얻는 것이 없다. 만일 얻는 것이 있다고 말하면 그는 마군의 권속이며 나의 제자가 아니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보살이 얻는 것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실 때에 한량없는 중생이 모양이 있는 마음을 끊었습니다. 이런 일로써 제가 감히 얻는 것이 없는 이치를 여쭈어서 이러한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마군의 권속을 떠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또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먼저 사라쌍수 사이에서 순타(純陀)에게 게송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래는 있어도 지금은 없으며
본래는 없어도 지금은 있으니
이 세상 앞 세상 지나간 세상에
있다는 모든 법 옳은 것이 없네.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나는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기 위하여 이 말을 하였고, 또 성문ㆍ벽지불을 위하여 이 말을 하였고, 또 문수사리 법왕자를 위하여 이 말을 하였고, 순타 한 사람만을 위하여 이 게송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나에게 묻고자 하기에 내가 그의 마음을 알고 말하였으며, 내가 말한 뒤에는 문수
사리가 곧 이해하였다.”
가섭보살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문수사리 같은 이가 몇 사람이나 이 뜻을 알았는지 모르겠으나 바라건대 여래께서 대중을 위하여 다시 분별하여 말씀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자세히 들어라. 이제 너희들에게 다시 말하겠다. ‘본래는 있어도[本有]’라는 것은 나에게는 옛날에 본래 한량없는 번뇌가 있었다는 것이니 번뇌가 있으므로 현재에 대반열반이 없다는 것이다. ‘본래는 없어도[本無]’라는 것은 본래 반야바라밀이 없었다는 것이니, 반야바라밀이 없었으므로 현재에 번뇌의 결박이 두루 있다는 것이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에 번뇌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옳지 않은 일이다.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나에게 본래 부모의 화합한 몸이 있으므로 현재에 금강 같은 미묘한 법신이 없다는 것이다. 본래는 없다는 것은 나의 몸에 본래 32상과 80종호가 없다는 것이니, 본래는 32상과 80종호가 없으므로 현재에 404가지 병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지난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에 병의 고통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옳지 않은 일이다.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옛적에 본래 무상함과 내가 없음과 즐거움 없음과 부정함이 있었다는 것이며 무상함과 내가 없음과 즐거움 없음과 부정함이 있으므로 현재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없다는 것이다. 본래는 없다는 것은 불성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니, 불성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에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옳지 않은 것이다.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범부로서 고행을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니, 이런 일이 있으므로 현재에 네 가지 마군을 깨뜨리지 못하는 것이다. 본래는 없다는 것은 나에게 본래 6바라밀이 없다는 것이니, 본래 6바라밀이 없으므로 범부로서 고행을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에 고행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옳지 않은 것이다.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옛날에 본래 잡식하는 몸이 있었다는 것이니, 잡식하는 몸이 있으므로 현재에 가없는 몸이 없다는 것이다. 본래는 없다는 것은 본래 37조도법이 없다는 것이니, 37조도법이 없으므로 현재에 잡식하는 몸을 갖추고 있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에 잡식하는 몸이 있다’고 한다면 옳지 않은 것이다.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옛날에 본래 온갖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으므로 현재에 필경까지 공한 선정이 없다는 것이다. 또 본래는 없다는 것은 나에게 중도의 진실한 뜻이 없다는 것이니 중도의 진실한 뜻이 없으므로 온갖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에 온갖 법이 모양이 있다’고 말한다면 옳지 않은 것이다.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내가 처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에 근기가 둔한 성문 제자가 있었다는 것이니, 근기가 둔한 성문 제자가 있었으므로 1승의 참다운 법을 연설하지 못하였다. 본래는 없다는 것은 본래 근기가 영리한 사람 중의 코끼리인 가섭보살 같은 이들이 없었다는 것이니, 근기가 영리한 가섭 같은 이가 없었으므로 마땅한 방편으로 3승법을 열어 보였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에 필경까지 3승을 연설한다’고 하면 옳지 않을 것이다.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내가 본래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사라쌍수 사이에서 반열반에 들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현재에 방등경전인 대반열반을 연설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본래는 없다는 것은 옛날에 본래 문수사리보살들이 없었다는 것이니 보살들이 없었으므로 현재에 말하기를 ‘여래가 무상하다’고 하였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에 무상하다’고 말하면 옳지 않을 것이다.
선남자야, 여래께서는 여러 중생들을 두루 위하기 때문에 모든 법을 아시지만 모른다고 말씀하시며, 모든 법을 보시지만 못 본다고 말씀하시며, 모양이 있는 법을 모양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모양이 없는 법을 모양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진실로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 말씀하시며 진실로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 말씀하시며, 나이고 즐겁고 깨끗한 것도 역시 그러하다. 3승의 법을 1승이라 말씀하시며 1승의 법을 마땅한 대로 3승으로 말씀하시며, 간략한 것을 자세하게 말씀하시며 자세한 것을 간략하게 말씀하시며, 네 가지 중대한 법을 투란차(偸蘭遮)라 말씀하시며 투란차 법을 네 가지 중대한 것이라 말씀하시며, 범한 것을 범하지 않았다 말씀하시며
범하지 않은 것을 범했다 말씀하시며, 가벼운 죄를 중대하다 말씀하시며 중대한 죄를 가볍다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여래는 중생의 근성을 분명히 보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여래가 비록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끝내 허망한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허망한 말은 허물이 되는데, 여래는 모든 허물을 끊으셨다. 그런데 어찌 허망한 말이 있겠는가? 선남자야, 여래는 비록 허망한 말이 없지만 만일 중생들이 허망한 말을 의지하여 법의 이익을 얻을 줄을 알면 적당한 방편대로 말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온갖 세상 법[世諦]이라도 여래께는 곧 제일의법[第一議諦]이다. 왜냐하면 부처님 세존께서는 제일의법을 위하여 세상 법을 말씀하시며, 또 중생들로 하여금 제일의법을 얻게 하신다. 만일 중생으로 하여금 제일의법을 얻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부처님께서는 마침내 세상 법을 말씀하지 않으신다.
선남자야, 여래가 어떤 때에 세상 법을 연설하시더라도 중생들은 부처님께서 제일의법을 말씀하신다 하고, 어떤 때에 제일의법을 연설하시더라도 중생들은 부처님께서 세상 법을 말씀하신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깊은 경계는 성문이나 연각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남자야, 그러므로 그대는 먼저 힐난하여 말하기를 ‘보살마하살은 얻는 것이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보살은 항상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얻는데, 어찌하여 얻는 것이 없다고 힐난하겠는가?”
가섭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일의제는 도(道)라고도 하고 보리(菩提)라고도 하고 열반(涅槃)이라고도 합니다. 만일 보살이 도나 보리나 열반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곧 무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이 항상하다면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허공을 누가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세간의 물건은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을 무상하다고 하는 것과 같이 도(道)또한 그러합니다. 도를 만일 얻을 수 있다면
무상이라 이름할 것이며, 법이 만일 항상하다면 얻는 일도 없고 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마치 불성(佛性)은 얻을 수도 없고 나는 일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도는 색도 아니고 색 아닌 것도 아니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으며, 나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붉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고, 푸른 것도 아니고 누른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보리와 열반도 그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선남자야, 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항상함이고 둘째는 무상함이다. 보리의 모양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항상함이고 둘째는 무상함이다. 열반도 그와 같다. 외도의 도는 이름하여 무상이라 하고, 내도(內道)의 도는 이름하여 항상하다 한다. 또 성문과 연각의 보리는 무상이라 하고 보살과 부처님의 보리는 항상하다고 한다. 밖으로 해탈함[外解脫]은 무상하다 하고 안으로 해탈함[內解脫]은 항상하다고 한다.
선남자야, 도와 보리와 열반을 모두 항상하다고 하지만 온갖 중생들은 한량없는 번뇌에 덮여서 지혜의 눈이 없으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중생들이 보기 위하여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닦으며 수행하였기 때문에 도와 보리와 열반을 보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도와 보리와 열반을 본다고 하지만 도의 성품과 모양은 진실로 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포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도라는 것은 모양을 볼 수도 없고 헤아려 알 수도 없지만 실제로 작용이 있다. 선남자야, 중생의 마음이 색도 아니고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고 굵지도 않고 가늘지도 않고 묶인 것도 아니고 풀린 것도 아니며 볼 수 있는 법도 아니지만 그러나 있는 것이다. 이런 뜻으로 내가 수달에게 말하기를 ‘장자여, 마음은 성(城)의 주인이니 장자가
마음을 수호하지 못하면 몸과 입을 수호하지 못하고, 마음을 수호하면 몸과 입을 수호한다. 몸과 입을 수호하지 못하면 중생들로 하여금 3악도에 이르게 하고, 몸과 입을 수호하면 중생들로 하여금 인간ㆍ천상이나 열반을 얻게 한다. 얻는다면 진실하다 하고 얻지 못하면 진실하지 않다’고 하였다.
선남자야, 도와 보리와 열반도 그와 같아서 있기도 하고 항상하기도 하다. 만일 없다면 어떻게 모든 번뇌를 끊겠는가? 그것이 있기 때문에 모든 보살들이 분명하게 보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는 것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양으로 보는 것이며 둘은 분명하게 보는 것이다. 어떤 것을 모양으로 본다고 하는가? 멀리 연기를 보고 불을 보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불을 보지 못하였으며, 비록 불을 보지 못하였더라도 허망한 것은 아닌 것이다.
공중에 있는 학을 보고 물을 보았다고 말하는데, 비록 물을 보지 못하였으나 허망한 것은 아니다. 마치 꽃과 잎을 보고 뿌리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비록 뿌리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허망한 것은 아닌 것이다. 어떤 사람이 멀리 울타리 너머로 소뿔을 보고 소를 보았다고 하면, 비록 소를 본 것은 아니나 허망하지는 않은 것이다. 여인이 아기 밴 것을 보고 탐욕을 보았노라 말하면 비록 탐욕을 본 것은 아니나 허망하지는 않은 것이다.
나무에 잎이 난 것을 보고 물을 보았노라 말하면 비록 물을 본 것은 아니나 허망하지는 않은 것이다. 구름을 보고 비를 보았다고 말하면 비록 비를 본 것은 아니나 허망하지는 않은 것이다. 몸으로 하는 짓이나 입으로 하는 짓을 보고 마음을 보았노라 하면 비록 마음을 본 것은 아니나 허망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런 것을 이름하여 모양으로 본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분명하게 본다고 하는가? 마치 눈으로 색을 보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사람의 눈이 깨끗하여 파괴되지 않았으면 손바닥에 아마륵 열매를 보는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이 분명하게 도와 보리와 열반을 보는 것도 이와 같다. 비록 이와 같이 보지만 애초부터 보는 모양은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런 인연으로 내가 예전에 사리불에게 말하기를 ‘모든 세간의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오직 여래만이 모두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다. 여러 보살들도 그와 같다. 사리불아, 모든 세간에서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은 나와 보살도 알고 보고 깨닫는다. 세간 중생들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서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줄도 스스로 알지 못한다.
세간 중생들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은 문득 말하기를 〈나는 알고 보고 깨달았다〉고 한다. 사리불아, 여래는 온갖 것을 모두 알고 보고 깨닫지만 스스로 내가 알고 보고 깨달았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보살들도 그와 같다. 왜냐하면 만일 여래가 알고 보고 깨닫는다는 상을 지으면 이는 부처가 아니고 범부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살도 그러하다’고 하였던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시기를 ‘세간에서 아는 것은 나도 알고 세간에서 모르는 것도 나는 안다’고 하셨는데 그 뜻은 무슨 뜻입니까?”
“선남자야, 모든 세간은 불성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만일 불성을 알고 보고 깨닫는 이가 있다면 세간이라 하지 않고 보살이라고 한다. 세간 사람들은 12부경과 12인연과 네 가지 뒤바뀜과 4제(諦)와 37품(品)을 듣는 일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대반열반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만일 알고 보고 깨달으면 세간이라 하지 않고 보살이라고 할 것이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은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세간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고 하는가? 범천ㆍ자재천ㆍ8비천(臂天)ㆍ성품ㆍ때[時]ㆍ티끌ㆍ법ㆍ그리고
법 아닌 것[非法]ㆍ조화의 주인[造化主]ㆍ세계의 나중과 처음ㆍ아주 없다는 것[斷見]ㆍ늘 있다는 것[常見]ㆍ초선(初禪)에서 비비상천(非非想天)까지를 열반이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선남자야, 이런 것을 이름하여 세간에서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보살마하살은 이런 일도 알고 보고 깨닫는다. 보살이 이렇게 알고 보고 깨닫고도 만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말하면, 이것은 허망한 것이며 허망한 법은 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죄로는 지옥에 떨어진다. 선남자야, 남자나 여인이나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도와 보리와 열반이 없다고 말하면 이런 이는 일천제이며 마군의 권속이며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이렇게 법을 비방하는 것을 부처님들을 비방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세간이라 이름하지도 않고 세간이 아니라고 이름하지도 않는다.”
그때 가섭보살은 이 일을 듣고 곧 게송을 읊어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큰 자비로 중생들을 사랑하시니
제가 지금 귀의합니다.
중생들의 독화살을 뽑아 주시기에
큰 의원이시라고 일컫습니다.

세상의 의원들이 고친 병들은
나았다가 또다시 도지거니와
여래께서 고치신 우리의 병은
끝끝내 다시 도지지 않습니다.

세존께서 훌륭한 감로약을
중생들에게 베푸시므로
중생들이 그 약을 한번 먹으면
죽지도 않고 다시 태어나지도 않습니다.

여래께서 지금 우리를 위해
대반열반 큰 경을 연설하시니
중생들이 비밀한 법장 듣고
나지도 죽지도 않는 일 얻었습니다.

가섭보살은 이런 게송을 말하고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세간 사람들이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보살도 세간이라면 세간 사람들은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이 알고 보고 깨닫는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세간이 아니라면 어떻게 다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세간이기도 하고 세간이 아니기도 하다.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세간이라 이름하고,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은 세간이라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다르냐고 네가 물은 것을 지금 말하겠다.
선남자야, 남자나 여자가 처음으로 이 『열반경』을 듣고 공경하고 믿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는 이는 세간 보살이라고 한다. 모든 세간이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보살도 세간과 같아서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보살이 『열반경』을 듣고 세간에서는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나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달아야 할 줄을 아는 것이다.
이런 것을 알고 나서 또 생각하기를 ‘내가 무슨 방편으로 닦아 익혀야 알고 보고 깨닫게 되겠는가?’ 하고, 다시 생각하기를 ‘오직 깊은 마음으로 깨끗한 계율을 닦아 지녀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남자야, 보살은 그때의 이러한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계행이 항상 깨끗할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계행이 깨끗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곳마다 교만이나 삿된 소견이나 의심이 없다. 또 여래께서 필경에 열반에 드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깨끗한 계행을 닦는다고 한다.
또 계행이 깨끗하므로 다시 선정을 닦는다. 선정을 닦았기 때문에 태어나는 곳마다 바르게 기억하고 잊지 않는다. 곧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는 것과 12부경과 부처님들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과 모든 보살이 방등 『대열반경』에 편안히 머물러서 불성을 보는 것 따위의 일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다.
또 선정을 닦는 인연으로 11공(空)을 얻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청정한 선정을 닦는다고 한다. 계행과 선정을 구비하고 다음에 깨끗한 지혜를 닦는다. 지혜를 닦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몸속에 내가 있다거나 내 속에 몸이 있다거나 이것이 몸이고 이것이 나라든가 몸이 아니고 내가 아니라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깨끗한 지혜를 닦는다고 한다.
지혜를 닦음으로써 받아 지니는 계율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다. 선남자야, 마치 수미산이 네 가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네 가지 뒤바뀜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이 그때에 스스로 받아 지니는 계율이 흔들림이 없는 줄을 알고 보고 깨닫는다. 그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 세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이 자기가 지니는 계행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아서 뉘우치는 마음이 없으며, 뉘우침이 없으므로 마음이 기쁘고, 마음이 기쁘므로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을 얻으므로 마음이 편안하여지고, 편안하므로 동요하지 않는 선정을 얻고, 동요하지 않는 선정을 얻으므로 진실하게 알고 보게 되며, 진실하게 알고 보았으므로 생사를 싫어하여 여의고, 생사를 여의므로 해탈을 얻고, 해탈을 얻으므로 불성을 분명하게 본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며 세간이 아니라 한다. 선남자야, 이것을 말하여 세간이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들은 알고 보고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가섭이 여쭈었다.
“어떤 것을 보살이 깨끗한 계행을 닦아 마음에 뉘우침이 없으며 나아가서 불성을 분명하게 본다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드렸다.
“선남자야, 세간의 계율은 청정하다고 이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간의 계율은 생존[有]을 위하기 때문이며, 성품이 결정되지 못한 까닭이며, 끝까지 이르지 못한 까닭이며, 모든 중생을 널리 위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깨끗하지 못하다고 한다.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에 뉘우치는 마음이 있고, 뉘우침이 있으므로 마음에 기쁨이 없고, 기쁨이 없으므로 즐겁지 못하고, 즐겁지
못하므로 편안하지 못하고, 편안하지 못하므로 동요하지 않는 선정이 없고, 동요하지 않는 선정이 없으므로 진실하게 알고 보지 못하고, 진실하게 알고 보지 못하므로 싫어함이 없고, 싫어함이 없으므로 해탈이 없고, 해탈이 없으므로 불성을 보지 못하고, 불성을 보지 못하므로 마침내 대반열반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간의 계율은 청정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의 청정한 계율이란 것은 계율이 계율 아닌 까닭이며, 생존을 위하는 것이 아닌 까닭이며, 반드시 끝까지 이르는 까닭이며, 중생들을 위하는 까닭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계율이 청정하다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의 청정한 계율 속에서는 뉘우침이 없는 마음을 내지 않고자 하더라도 뉘우침이 없는 마음이 자연히 생긴다. 선남자야, 마치 사람이 밝은 거울을 들었으면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더라도 얼굴이 저절로 나타나고 또 농부가 밭에 씨를 심으면 싹이 나기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싹이 저절로 나는 것이며, 또 등불을 켜면 어둠을 없애려 하지 않아도 어둠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깨끗한 계율을 가지면 뉘우침이 없는 마음이 자연히 생기는 것도 그와 같다. 깨끗한 계율을 가지므로 마음이 기쁘게 되는 것이다. 선남자야, 마치 단정하게 생긴 사람이 자기의 얼굴을 보면 기쁜 마음이 생기듯이 깨끗한 계율을 가지는 것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파계한 사람이 계율이 깨끗하지 못한 것을 보면 마음이 기쁘지 않다. 마치 병신이 자기의 모양을 보면 기쁘지 않은 것처럼 파계한 사람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소를 기르는 두 여인이 있었는데, 한 여인은 타락이 들어 있는 병을 가지고 있었고 또 한 여인은 물만 들어 있는 병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성안에 가서 팔려다가 길에서 넘어져서 두 병이 모두 깨졌다. 그런데 한 사람은 기뻐하고 한 사람은 근심하였으니, 계율을 가지는 이와 계율을 파한 이도 그와 같아서
깨끗한 계율을 가지는 이는 마음이 기쁜 것이다. 마음이 기쁘기 때문에 문득 생각하기를 ‘부처님 여래께서는 『열반경』에서 청정한 계율을 가지는 이는 열반을 얻는다고 하셨으니, 내가 지금 깨끗한 계율을 닦는 일로 열반을 얻으리라’ 하고 이 인연으로 마음이 즐거운 것이다.”
가섭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기쁨과 즐거움은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나쁜 짓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기쁘다고 하고, 마음이 깨끗하여 계율을 가지는 것은 즐겁다고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생사를 관찰하는 것은 기쁘다고 하고, 대열반을 보는 것은 즐겁다고 한다. 하품(下品)은 기쁘다 하고 상품(上品)은 즐겁다고 한다. 세간과 함께하는 법을 여의는 것은 기쁘다 하고 함께하지 않는 법을 얻는 것은 즐겁다고 한다.
계율이 깨끗하므로 몸이 가벼워지고 입에 허물이 없으면 그때 보살의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아는 것에 나쁜 일이 없다. 나쁜 일이 없으므로 마음이 편안하여지고, 편안하므로 고요한 선정을 얻고, 고요한 선정을 얻으므로 진실하게 알고 보고, 진실하게 알고 보므로 생사가 싫어서 끊으려 하고, 생사를 여의므로 해탈을 얻고, 해탈을 얻으므로 불성을 보고, 불성을 보았으므로 대반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보살이 청정하게 가지는 계율이며 세간 계율이 아니라고 한다.
무슨 까닭인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받은 깨끗한 계율은 다섯 가지 법이 돕는 것이다. 다섯 가지는 무엇인가? 첫째는 믿음[信]이며, 둘째는 제부끄러움[慚]이며, 셋째는 남부끄러움[愧]이며, 넷째는 선지식이며, 다섯째는 공경하는 계율을 숭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5개(蓋)를 떠났기 때문에 소견이 깨끗하다. 또 5견(見)을 떠났기 때문에 마음에 의심이 없다. 다섯 가지 의심을 떠났으니 첫째는 부처님을 의심하는 것이고, 둘째는 법을 의심하는 것이고, 셋째는 승가를 의심하는 것이고, 넷째는 계율을 의심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방일하지 않음을 의심하는 것이다. 보살은
그때에 5근(根)을 얻는데, 믿음ㆍ생각ㆍ정진ㆍ선정ㆍ지혜이다. 5근을 얻으므로 다섯 가지 열반을 얻으니 색에서 해탈하고[色解脫] 나아가 알음알이에서 해탈하는 것[識解脫]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깨끗한 계율이라 하며 세간의 계율이 아닌 것이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 사람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데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나의 제자로서 『대반열반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면서 계율을 깨뜨리는 이가 있다면 어떤 사람이 꾸짖고 업신여기고 훼손하여 말하기를 ‘만일 부처님의 비밀한 법장인 『대반열반경』이 위력이 있다면 어찌하여 너로 하여금 받은 계율을 깨뜨리게 하겠느냐? 이 『열반경』을 받아 가지는 사람이 계율을 깨뜨린다면 이 경이 위력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위력이 없다면 비록 읽고 외운들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열반경』을 업신여기고 훼손하는 인연 때문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을 지옥에 떨어지게 할 것이다. 이 경을 받아 가지면서 계율을 깨뜨리는 이는 중생의 악지식(惡知識)이며, 나의 제자가 아니고 마군의 권속이다. 이런 사람은 이 경전을 받아 가지는 것을 나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받지도 않고 가지지도 않고 닦지도 않을지언정 계율을 깨뜨리면서 받아 가지고 닦지는 못하게 할 것이다.
선남자야, 나의 제자로서 『열반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한다면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조심하여 희롱하거나 경솔한 동작을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몸은 희롱하고 마음은 경솔한 동작을 하기 때문이다. 곧 어떤 것을 구하는 마음을 경솔한 동작이라 하고, 몸으로 여러 가지 업을 짓는 것을 희롱이라고 한다. 만일 나의 제자로서 어떤 것을 구하여 업을 짓는 이는 대승경전인 『대열반경』을 받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이가 경을 받아 가지면 사람들이 업신여기며 꾸짖어 말하기를 ‘부처님의
비밀한 법장인 『대열반경』이 위력이 있다면 어떻게 너로 하여금 어떤 것을 구하여 업을 짓게 하겠느냐? 경을 받아 가지는 사람이 어떤 것을 구하여 업을 짓는다면 이 경이 위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만일 위력이 없다면 비록 받아 가진들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열반경』을 업신여기고 훼손 하는 인연으로써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을 지옥에 떨어지게 할 것이니, 이 경을 받아 가지면서 어떤 것을 구하여 업을 짓는 이는 중생의 악지식이며, 나의 제자가 아니고 마군의 권속이다.
또 선남자야, 나의 제자로서 이 『열반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연설하고자 한다면 때 아닌 때에 말하지 말며 나라 아닌 데서 말하지 말며 청하지 않는데 말하지 말며 경솔한 마음으로 말하지 말며 곳곳마다 말하지 말며 자기를 찬탄하여 말하지 말며 남을 업신여겨 말하지 말며 부처님 법을 없애는 말을 하지 말며 세상 법을 치성(熾盛)하게 하는 말을 하지 마라.
선남자야, 만일 나의 제자로서 이 경을 받아 가지고 때 아닌 때에 말하거나 나아가 세상 법을 치성하게 말을 하는 이는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꾸짖어서 말하기를 ‘부처님의 비밀한 법장인 『대열반경』이 위력이 있다면, 어찌 너로 하여금 때 아닌 때에 말하며 나아가 세상 법을 치성하게 하는 말을 하겠느냐? 경을 받아 가지는 이가 이와 같은 말을 한다면 이 경이 위력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만일 위력이 없다면 비록 받아 가진들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열반경』을 업신여기고 훼손하는 인연 때문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을 지옥에 떨어지게 할 것이다. 이 경을 받아 가지면서 때 아닌 때에 말하거나, 나아가 세상 법을 치성하게 말하는 이는 중생의 악지식이며, 나의 제자가 아니고 마군의 권속이다.
선남자야, 만일 받아 가지려는 이ㆍ대열반을 말하려는 이ㆍ불성을 말하려는 이ㆍ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말하려는 이ㆍ대승을 말하려는 이ㆍ방등경전을 말하려는 이ㆍ성문승을
말하려는 이ㆍ벽지불승을 말하려는 이ㆍ해탈을 말하려는 이ㆍ불성을 보려는 이는 먼저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 몸이 깨끗하므로 꾸짖는 책망이 없고, 꾸짖는 책망이 없으므로 한량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열반에 들어가서 깨끗한 신심이 나게 할 것이며 신심이 생기므로 이 경을 공경할 것이다. 만일 한 게송ㆍ한 구절ㆍ한 글자를 듣거나 법을 말하는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낼 것이다.
이 사람은 중생들의 선지식이고 악지식이 아니며, 나의 제자이고 마군의 권속이 아니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고 하며 세간이 아니라고 한다. 선남자야, 세간 사람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데,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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