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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063 불교(광홍명집 14권/ 廣弘明集)

by Kay/케이 202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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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광홍명집(廣弘明集) 14

 

 

당 석도선 지음

이한정 번역

 

 

2. 변혹편

 

19) 내덕론(內德論) 문하전의(門下典儀) 이사정(李師政)

10()의 조어장부(調御丈夫)가 법주(法舟)를 고해에 운항(運航)하여 3()을 급인(汲引)하여 이도(夷道)를 화택(火宅)으로 이르게 하니, 선을 권장하여 공덕으로 나아가는 그 광대함은 7()으로 미칠 바가 아니고, 악을 경계하여 근심을 예방하는 그 깊음은 9()로써 견줄 바가 아니다.

신령함을 다하여 교화를 내리어 깨닫게 하니 그 말씀이 광대하기가 놀랍기만 하다. 미혹을 없애어 진구(塵垢)를 끊어 가되 자취가 맑고 아득하여 답습하기조차 어렵다. 중화와 이족의 선비나 백성 및 조야(朝野)의 문유(文儒)가 각자 편안한 대로 따르며 이 같은 도를 맛보는 자는 적었다. 정신을 가다듬어 그 참다움과 망령됨을 살피고 깊이 생각하여 고()가 공한 것을 헤아리는 것은 비석(匪石)과 같은 신근(信根)을 세우는 것 아니고 그물과 같이 뒤덮인 의심을 털어 내려는 것이 아니다. 멀게는 정명(淨名)의 묘한 덕에 이르러 그 도의 훌륭함을 넓히어 열심히 노력하고 가깝게는 천친(天親)1)과 용수(龍樹)2)의 이치가 진실됨을 깨달아 돈독히 기뻐하는 것이다. 구마라집3)과 도안(道安)4)의 독실한 공부는 현종을 연구하여 날로 공경을 더하였고, 승예(僧叡)5)와 혜원(慧遠)6)의 귀의하는 그 같은 믿음은 백발에 이르도록 더욱더 견고하여 사안(士安)7)의 음서(淫書)를 넘어서고 선니(宣尼)8)주역을 즐겨한 것보다 심하다. 천금이라도 그 보는 것을 놀라게 하지 못하고 8()이라도 그 듣는 것을 바꾸지 못하였다. 널리 배우면 즐거움이 더욱 깊어지고 깊이 사유하매 신심이 더욱 돈독해지니, 모두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는데, 이것이 어찌 거짓됨이겠는가?

우리 황제가 천명을 받아 천하[區宇]를 널리 다스리매 창민(蒼旻)을 고루 뒤덮고 두터운 땅을 다 함께 실었다. 재앙을 털어 내어 8()을 깨끗이 하고 도탄을 구하여

 

억조의 창생을 편안케 하며 5()를 공경스럽게 펼치고 9()을 베풀었다. 만고의 좋은 도를 총괄하고 백왕의 폐단을 고쳐서 온갖 선을 망라하고 3보를 기려서 진량(津梁)9)으로 삼는다. 모든 악을 잘라 내고 4()의 돌피[稊莠]10)를 가로막아 부촉하신 유지(遺旨)를 따르고 이어받아 진작시킨 요술(要術)을 넓게 퍼뜨리니 공덕의 숭고함은 호천(昊天)으로도 이를 비유하지 못한다. 단지 진신(縉紳)의 선비들이 여러 갈래의 길을 이어 와서 각기 그 배우는 것만 스승으로 삼으니 이론이 분분히 일어났으며, 3()의 시절에는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아 연조가 장구하였다고도 하고, 2()11)의 시절에는 스님들이 있어 정치가 가혹해졌다거나, 풍화가 훼손됨은 부처님을 받드는 것에서 연유했다거나, 나라를 이롭게 함은 스님들을 없애는 것에 있다고도 하였으니, 참으로 소견이 편벽되어 이치에 형통하지 못했음이 분명해진다. 그 흥하고 망한 것을 널리 고찰해 보면 거짓됨이 그대로 증명된다. 진나라를 망하게 한 이는 호해(胡亥)인데, 이 때에는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았는데도 나라가 무너졌고 불법을 일으킨 한나라 명제 때에는 스님들이 계셨었는데 어찌 나라가 다스려졌는가?

주나라 때 불사(佛寺)를 없앴는데도 천원(天元)의 국조가 길지 못하였고, 수나라 때 석씨의 가르침을 넓게 펼쳤는데도 개황(開皇)의 법령(法令)에 가혹함이 없었다. 조정이 흥성하고 쇠퇴하는 것은 정치를 펴는 것에 빌미하고, 천하가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관리에 달려 있는데, 이처럼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허물을 돌리는 것은 참으로 형통한 논조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직 선을 넓히고 악을 기르지 않으면서 백성과 신하에게 근본을 지켜서 그릇됨을 예방케 하시는데, 어떻게 집안이나 나라가 다스려지는 데에 손해가 있다고 하는가?

만약 사람마다 선을 지키고 집안마다 계율을 받는다면, 형벌이 어찌 널리 펴지겠는가? 난리가 일어나는 연고마저 없어질 것이다. 아무리 준마가 날렵하더라도 타지 않으면 멀리 가지 못하고, 약석(藥石)이 넉넉하더라도 먹지 않고서야 어찌 병이 낫겠는가?

항적(項籍)이 전쟁에서 진 것은 범증(范增)의 계책이 모자라서가 아니듯이, 석씨(石氏)가 가혹하게 다스린 것을 어떻게 부도가 어질지 못하다 하겠는가?

단지 거슬리게 행하면 어지러워지고 따르지 않으면 흉악해지니, 이로써 살펴보더라도 그 증거가 분명해진다. 다시 정각(正覺)을 요망한 신이라 말하고, 청정한 보시를 방자한 제사에 견주니, 그릇되게 비방하는 것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성조(聖朝)가 선을 권장하고자 가람을 지어

 

복을 기리는데, 백성을 현혹시켜 비방을 일으키며 그 공덕에 반대하여 혹으로 여기니, 이것은 윗사람을 깊이 비방하는 것이지, 헛되이 부처님을 욕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슴을 쓰다듬으며 한숨이나 내쉬다가 발분하여 뜻을 깊이 한 것은 황제의 은덕에 기대어 법우(法雨)의 단비에 윤택해졌으니, 미혹된 것을 소탕하여 점차 풍성케 하고자 한다. 믿음은 법을 듣고서야 생겨나기에 의혹이 이로써 풀어진다. 예전에 늘 이를 비방하며 믿지 않았다가 지금 믿음이 돈독하여 비방하지 않게 되었다. 가깝게는 자신에게 미루고 넓게는 남을 헤아려 보면, 대체로 모두 가볍게 비방하여 삼가지 않은 것들로 그 말이 모두 토론하여 궁구하지 못한 것들이다. 만약 쌓인 것을 살펴보고 숨어 있는 것을 찾아보면 그 공은 불도징(佛道澄)과 구마라집(鳩摩羅什)에 필적하니, 반드시 신심이 깊어지고 존경이 돈독해져서 그 뜻마저 이름난 스님들과 같아질 것이다.

사정(師政) 나의 배움은 깊숙하게 탐구하지 못하였고 학식은 오묘함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들은 것이 적고 그 미혹됨을 없앤 것이 적다. 삼가 열심히 애를 써서 용렬한 재주로 세 편의 논을 지었는데, 변혹(辯惑)의 제1편은 사도(邪道)와 정도(正道)의 원통(圓通)과 폐단(蔽端)을 밝힌 것이고, 통명(通命)의 제2편은 재앙과 경사의 기복(倚伏)을 가리는 것이고, 공유(空有)의 제3편은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에 집착하는 소견을 끊는 것이다.

많은 말을 조사하고 온갖 선을 고찰하되, 위로는 성조(聖朝)의 깨끗한 도를 드러내고 아래로는 음사(淫祀)라는 헛된 비난을 끊었다. 참으로 뜻은 이와 같아도 재주가 모자라고 글 짓는 것이 비루한 데다 증거로 삼은 것도 천박하다. 비록 내가 노력을 다했다 하나, 어떻게 성덕을 선양하겠는가?

참으로 그 병을 같이하여 고치지 못한 이는 천박한 비유를 듣고도 깊이 깨치기만 바란다. 뜰 안의 화분이 혹 마음의 근심을 없애듯이 나물 음식으로 구덩이 속에서 굶주리는 이를 구한다 할 것이다. 이처럼 금단(金丹)이 눈앞에 있고 진수성찬이 밥상에 가득한데도, 자신의 누추함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비루하다.

 

(1) 변혹편(辨惑篇)

변총(辯聰)서생이 충정(忠正)군자에게 말하였다.

대체로 듣자오니, 석가가 천축에서 태어났고 수다(修多:)가 서쪽에서 나왔다는데, 호나라의 명호가 주공과 공자에게 전해진 것이 없었고 그 공덕도 전모(典謨)에서 이른 적이 없습니다. 참으로 멀리 변방의 오랑캐나 존경하는 것으로, 일찍이 중하의 선비들이 스승으로 삼은 적이 없습니다. 섭마등이 한나라 때 들어오고 강승회가 오나라를 다니던 때에 이르러 남국에 사리가 출현하여 동도(東都)에서 초제(招提:사원)를 이룩하였으니, 이 때 이후로 부도를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사문이 수사(洙泗)12)의 대중을 융성히 하고 정사(精舍)가 왕후의 거처처럼 빛나는데, 그 높은 곳에다 운영하고 비옥한 곳에서 이를 기르되, 높이 세운 당간(幢竿)이 해처럼 빛나면서 갑제(甲第)와 같이하여 네거리를 막습니다. 왕공과 대인(大人)이 금백(金帛)으로 이를 돕고, 농상(農商)의 호족(豪族)이 밭과 거처를 보시하니, 그 복스러움은 이와 같은데, 어찌 존중하여 남음이 있겠습니까?

쇠를 녹여 불상을 만드는 일을 금하면 화천(貨泉)의 낭비가 없어지고, 경전을 훼손하여 비단에 사경하는 것을 금지하면 지필묵이 귀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스님들을 폐지하여 호적에 편입하면, 서직(黍稷)의 세()가 풍부해지고, 탑과 사찰을 무너뜨려 모자란 것을 보충하면, 구휼(救恤)하는 어진 은혜가 넓어질 것입니다. 대궐에 참례하여 이를 본받게 하고자 미욱한 충심(忠心)이나마 상서를 올려 이 같은 계책을 헌납하니, 참으로 나라를 넉넉히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한다고 이를 만합니다만, 선생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충정군자가 말하였다.

무슨 말을 이렇게 지나치게 하는가? 충효의 길이 아니다. 충신이 나라를 받드는 것은 끝없이 복을 받고자 원함이고, 효자가 부모를 편안히 하는 것은 재앙을 막는 데 힘써서 조짐이 없게 함이다. 다복(多福)의 인연을 짓게 되면 이를 구하되

 

미치지 못하듯이 하고, 화가 이르는 씨앗을 보게 되면 이를 피하되 끓는 물을 만지듯이 한다. 나라에서 천지에 대한 기원을 중시하는 것은 복을 빌고자 함이고, 집안에서 음양의 기피하는 것을 피하는 것은 화를 피하고자 함이다. 복이라 생각되는 것은 따라 행하고 화라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없애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듯이 충성의 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대가 사람들이 복이라 하는 것을 없애고 사람들이 재앙이라 부르는 것을 취하려 하니, 이것이 어찌 충신이 나라를 받드는 계책이겠는가? 이는 효자가 부모를 편안하게 하는 방법도 아니다.

필부가 스스로를 아끼는 것을 보면, 일찍이 의사의 말을 거스르지 않고 점친 것에 어긋나지도 않는데, 하물며 충신이 임금을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재앙을 권하고 복을 막는가? 약물을 채집한다고 임금을 부추겨 농기(農岐)13)가 기피하는 것을 취하는 일과 무엇이 다른가? 의술을 구하여 부모를 받든다면서 도리어 화작(和鵲)14)의 깊은 이치에 어긋나므로, 저와 같이 기피하는 것을 취하여 독을 쓰려고 하니, 참으로 그 마음씨가 신중하지 못하다. 자신에게 베푸는 것도 두려워하는데 어떻게 하늘에 감히 따를 수 있겠는가?

만약 종묘 제사의 풍성함을 폐지하여 자손에게 어육을 공급하고, 증상(蒸嘗)의 불면(黻冕)을 훼손하여 자기 침실의 옷으로 충당하려는 것은, 참으로 아랫사람에게 은혜 내리는 것만 구하고 윗사람을 편안케 하는 복을 숭상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를 공양하는 데에 반찬이 낭비된다고 싫어하고 부양하지 않고 방만을 윤택하게 하는 것에만 골몰하니, 이같이 하면서도 충()이라 부를 수 있으며 효()라 부를 수 있겠는가?

또한 주기(周棄)15)는 씨를 뿌리고 생산하는 가르침을 널리 퍼뜨려 드디어 후직(后稷)으로 배향되어 오래도록 존숭되었다. 구룡(句龍)16)은 수토(水土)의 공을 세워 사()가 되어 항상 존경을 받게 되었다. 제방을 고치는 것[坊墉]은 작은 이익인데도 오히려 8()17)의 제사에 참례하였으며, 수풀과 소택의 미미한 영혼에게도 일헌(一獻)의 제사를 행하였다. 그러므로 3()의 걸림없는 슬기로움은 백신(百神)으로도 짝하지 못하고 10력의 비할 데 없이 존귀함은 천성(千聖)으로도 대하지 못한다. 만 가지 의혹[]이 다하였으며 만 가지 덕이 갖춰졌기에 범천(梵天)도 이를 우러르고 제석(帝釋)도 이를 스승으로 삼았다. 도는 사생을 구제하고 교화는 삼계를 형통하므로,

 

윤회에서 생사를 뽑아내고 열반의 상락(常樂)을 드러내었으니, 그 몸의 광명이 뚜렷이 비추어 해의 빛을 빼앗고, 형상이 단정하여 성인의 기특한 징표를 갖추었다. 미묘하고 그윽하게 통하는 것은 주공과 공자도 말하지 못하고, 이를 널리 베풀되 다 같이 구제함은 요 임금과 순 임금도 근심하였으니, 평등한 자비로 내치는 물건이 없음은 참으로 어질다고 이를 만하지 아니한가? 지혜를 갖추되 묘한 깨달음이 있으니 성스럽다고 이를 만하지 않은가?

인성(仁聖)의 덕을 체득한 사람이 어찌 거짓된 말을 하겠는가? 고요히 생각하면 그 믿지 못하는 것을 도리어 멸시하게 된다. 사찰을 세우는 공덕은 큰 바다보다도 깊고, 스님들을 득도(得度)시키는 복은 높은 산악보다 무거우니, 법왕께서 밝히신 말씀은 개사(開士)가 돈독하게 믿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를 일으키면 경사스러움이 늘어나 나라가 이로워질 터인데 어찌 크지 아니한가? 이것을 존중하면 선법(善法)이 생겨나 백성을 이롭게 할 터이니 어찌 넓지 아니한가?

혹 작은 손실이 있더라도 이로움이 크다면, 어찌 나라에서 마땅히 기릴 바가 아니겠는가? 혹 작은 이로움이 있더라도 손실이 크다면, 어찌 백성이 이를 피하지 않겠는가?

법안(法眼)이 뚜렷해서 복의 과보가 무량함을 보고 금구(金口)가 미덥고 실다워서 허물되는 인()이 썩지 않음을 말한다. 백성들이 모두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기에 만약 반드시 그렇다고 믿을 수 없다면 어찌하여 이로써 그것이 옳지 못함을 알 수 있다 하겠는가?

명매(冥昧)는 마음으로 결정할 수 없으니 길고 먼 것은 오로지 성스럽게 증득하여야 하는데, 어찌 복을 기원하고 존숭하여 임금과 아비에게 미치게 하지 않고 이를 욕하여 집안과 나라에 누가 되게 하는가?

신하가 그 임금에 대해 이와 같이 근신함이 없으면 충신이 아니고, 자식이 그 부모를 이와 같이 염려하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다. 그대가 질투하는 비뚤어진 마음으로 충성되고 삼가는 깊은 사려를 넓히지 않고 복을 기원하는 큰 연()을 가로막아 윗사람을 편안히 하는 선업을 훼손하니, 이것은 바로 허물을 취하는 도이니, 어찌 충성스런 의를 다한다 하겠는가?

내가 예전에 유림(儒林)의 뜻을 돈독히 품고 문원(文苑)에 마음을 써서

 

그대가 말하는 바와 같이 하였어도, 늦게나마 법을 듣고 지남(指南)에 의지하여 미혹(迷惑)을 제거하면서 다행히도 길을 잃은 것이 멀지 않았기에 매번 허물을 반성하고 친히 자신을 탓하여 밥을 먹어도 밥맛을 잃었다. 내가 만약 널리 살펴서 깊이 따져 보면 장차 미혹된 것을 뉘우치고 깨달아 돌이키게 되리라.

가만히 들어 보면 태사령 부혁(傅奕)이란 자가 나보다 밝은 해를 가리는 미혹이 깊다고 하겠으니, 안으로 예전의 미혹됨을 반성하면 열 가지 가운데 다섯 가지는 같아질 것이다. 부혁의 미친 소리를 가려내어 그대의 삿된 소견을 풀어 주겠노라.

 

부처님은 서쪽 오랑캐 나라에서 출생했다는 의혹[惑佛出西胡]

부혁이 불법이 원래 서쪽 오랑캐에서 비롯되어 중국에서는 이를 받들지 말아야 한다고 이르는데, 나도 예전에는 이것에 함께 미혹되었으나 지금은 그 옳지 못함을 깨달았다.

유여(由余)는 서융(西戎) 출신으로 진나라 목공(穆公)을 보좌하여 패업(霸業)을 열었고, 일제(日磾)는 북적(北狄)에서 태어났으나 한나라 무제를 받들어 위난을 극복하였는데, 신하로서 스승을 섬기는 것 또한 이와 같아야 하는데, 어찌하여 풍속이 같은 것만 취하고 그 처소가 다르다고 버릴 수가 있겠는가?

스승을 삼는 것은 도의 원대함을 존중하는 것이지 이곳인가 저곳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법은 착한 것을 훌륭하게 여기며 가깝고 멀고를 따지지 않는다. 만약 인()을 숭상하는 것으로 아름다움을 삼고, 욕심을 없애는 것을 높다고 칭한다면, 악을 쌓아 재앙을 남기는 것을 훈계하고 선을 쌓아 복을 부르는 것을 권장하는 일은 백가(百家)가 함께 하는 바로서 7()조차 이에 변함이 없다. 단지 소견이 좁고 얕아 깊이 이르지 못하고, 악착(齷齪)같이 넓지 못하여 자신을 용서하듯 만물을 대하는 것이, 어떻게 부처님과 견주어 넓다 하겠는가? 끝을 보고서야 근본을 알게 되니, 어떻게 부처님과 견주어 원대하다 하겠는가?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것이 어떻게 부처님과 견주어 넓다 하겠으며, 텅 빔[]을 밝히고 유()를 분석하는 것이 어떻게 부처님과 견주어 깊다 하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그 도가 참으로 오묘하니 성인의 덕이 어떻게 이에 보탬이 되겠는가? 이역 땅에서 태어났다고 그 도를 천대한다면 변방에서 나온 그 보물조차도 버려야 한다.

 

비길 데 없는 준마는 중읍(中邑)에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드문 진보가 반드시 중화의 물건만은 아니다. ()나라 때에는 서역(西域)의 명마를 구하였고, ()나라 때에는 남해(南海)의 명주(明珠)를 거두었으며, 코뿔소의 뿔과 코끼리의 상아를 얻었고 비취의 가죽과 털을 채집하였다. 이와 같이 물건이 먼 곳에서 생겨날수록 진보로 삼았는데, 도가 먼 곳에서 나왔다고, 어찌 유독 버려야 한단 말인가? 대체로 약초는 융이(戎夷)에서 비롯되었고 금주(禁呪)는 호월(胡越)에서 일어났는데, 이것은 대체로 삿된 것을 막아 병을 없애는 것으로, 어찌 멀리서 왔다고 쓰지 않을 수 있는가?

3()을 멸하여 무위(無爲)를 증득하는 것은 삿된 것을 막음이 가장 크다. 8()를 없애어 상락(常樂)에 이르게 하고, 병을 없애는 것이 참으로 깊은데, 어떻게 중화와 이적에 구애받아 가깝고 먼 것만을 따지겠는가? 하물며 백억 일월의 아래 삼천세계의 안에서는 그 중앙이 저쪽 땅에 처하고 이쪽 땅에는 처하지 않는다.

 

주공과 공자가 말한 적이 없다는 의혹[惑周孔不言]

부혁이 시경서경에서 말하지 않은 것만을 말하여 수다(修多)는 숭상하기에 부족하다라고 여기는데, 나도 예전에는 이 같은 것에 함께 미혹되었다가 지금에서야 그 옳지 못함을 깨달았다.

천문과 역상(曆象)의 비오(秘奧)나 지리와 산천의 탁궤(卓詭)나 경맥(經脈)과 공혈(孔穴)의 진후(診候)나 침약(針藥)과 부주(符呪)의 방술(方術)시경서경에 실려 있지 않고, 주공과 공자도 이를 명확하게 말한 적이 없다. 그러나 길흉을 살펴보면 징조가 있고 그 행의 쓰임새를 살펴보면 효험이 많다. 또 주공과 공자가 말하지 않은 물건은 아득하여 무궁하고, 시경서경에 실리지 않은 법은 망망하니 무슨 한계가 있겠는가? 참으로 책마다 말을 다하지 못하였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6()의 소소한 가르침에 구애받아 3()의 형통한 이치를 등질 수 있겠는가?

능사(能事)는 상고시대에 일어나지 않았으나 성인은 후세에 힘써 열었다. 이 때문에 지붕 있는 건물로

 

새 둥지와 같은 거처를 바꾸었고, 문자가 결승(結繩)의 제도를 대신하였으며, 피를 마시고 고기를 먹는 성찬은 예전에 쓰였어도 귀히 여기지 않게 되었고, 불로 곡식을 익혀 먹는 공적은 비록 후대에 만들어졌어도 그릇되게 여기지 않았으니, 저것이 쓰이고 버려지는 선후는 이교의 폐단이 아닌데, 어떻게 시경서경에 일찍이 적혀진 것만 특별하게 기리려는가?

수다(修多)가 늦게 나왔어도 마땅히 이것들을 대체해야 하니, 사람도 어릴 때는 음식을 조촐하게 먹다가 커서는 고기와 밥을 먹는다. 어려서는 베옷을 입다가 늙게 되면 비단옷을 입는데, 어떻게 나물죽을 먼저 얻었다고 밥과 고기의 맛보다 뛰어나다고 하겠으며, 어떻게 비단옷을 늦게 얻었다고 베옷보다 귀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만물은 유전[有遷]하나 3보는 항상 머물러 있으니 적연(寂然)하여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감득(感得)하여 모두 만난다. 그 몸을 화현(化現)하여 숨고 드러나는 자취를 드러내나, 그 법의 바탕에는 흥망의 운수가 끊어졌다. 왕궁에 처음 태어나지도 않았고 사라쌍수에서 영구히 떠나가신 것도 아닌데, 어떻게 나고 죽는 것으로 감득에 임하는 것을 논하고,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으로 오고 가는 것을 헤아리겠는가?

 

부처님을 헐뜯고 도가를 칭찬한 의혹[惑毁佛譽道]

부혁이 노자를 기리되 석가를 깎아내렸고 도가의 경서를 찬양하되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르다 하였는데, 나도 예전에는 이것에 함께 미혹하였으나, 지금은 그 옳지 못함을 깨달았다.

석가와 노자의 가르침의 바탕은 매한가지이며 둘이 아니다. 유욕(有欲)의 쌓임을 함께 덜어내고 무위(無爲)의 종지를 함께 드러내는데, 노씨는 밝다고 하나 융화(融和)하지 못하였기에 석가의 전적에서의 말씀만이 그 극치를 다하였다. 도가가 만약 결과적으로 옳다면 부처님도 본래 그 올바름을 같이 하여 그릇됨이 없었을 것이다. 부처님이 만약 결과적으로 그르다면, 도가 역시 그릇되어 옳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치적으로도 모순과 같은 차이는 아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우러르거나 등을 돌리는 다름을 품는 것은 마치 원숭이 무리가 기뻐하고 화를 내는 것과 같으며, 섭공(葉公)이 애호하고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주하사 도덕의 이치와 칠원(漆園) 내외(內外)의 편장(篇章)과 같은 것에 이르러서는 그윽하여 보태기 어렵고, 맑고 높아서 기릴 만한지라 늘 틈틈이 읽어 보더라도 차이가 나지 않는데, 어떻게 석가의 경전을 믿는다고 이를 욕하겠는가?

 

또한 이를 논해 보자면 생사는 무궁한 연이고 보응(報應)은 썩지 않는 이치이니, 이를 석가가 밝게 드러내었으나 황제와 노자는 언급조차 하지 못하였다. 지금의 도서(道書)가 무엇에 근거하는가? 부처님의 경전을 흉내내어 3세를 논하여 권계(勸戒)하고 9()의 자취를 벗어났다. 만약 눈으로 보고 말을 하자면 바로 부처님과 같이하여 그 비춤을 균등히 하고, 귀로 듣고 새기자면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아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비춤이 같다면 함께 그릇되지 없으며, 스승처럼 모신다면 스승을 욕할 수 없다. 도를 기리면서 부처를 그르다 하니 이 얼마나 잘못이 크겠는가?

부처님을 요매에 비교한 의혹[惑比佛妖魅]

부혁은 부처는 요매(妖魅)의 기운이고 사찰은 음사(淫邪)의 사당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사려가 깊지 못한 말이다. 요매란 나쁜 것만 일삼는 것인데 어떻게 10()의 교화를 넓히겠으며, 이매(魑魅)는 삿된 것에 근거하는 것인데 어떻게 8정도(正道)를 일으키겠는가? 요매는 개를 두려워하고 이매는 고양이를 무서워한다는데, 어떻게 제석(帝釋)의 거만한 마음을 항복받고 천마(天魔)의 거대한 힘을 꺾겠는가?

또 불도징과 구마라집의 도반(道伴)과 도안(道安)과 혜원(慧遠)의 반려(伴侶)처럼 덕이 높고 명성 높은 스님들이 미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애욕을 버리고 명예조차 버리면서까지 이매의 삿된 도를 구하겠으며, 그 몸을 가꾸어 고행을 행하며 망량(魍魎)의 요신(妖神)을 섬기겠는가?

또 옛날 동한(東漢)에서 우리 대당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요신(妖神)의 말을 금지하였고 곳곳마다 음사(淫祀)를 단절했는데, 어떻게 그 재물을 희사(喜捨)하고 선비와 백성을 보내어 이매의 불탑을 운영하고 망량의 무리로 들어가겠는가?

또 재보(宰輔)와 관개(冠蓋)는 인륜의 우의(羽儀)이며, 왕도(王導)18)와 유량(庾亮)19)의 무리와 대규(戴逵)20)와 허순(許詢)21)의 무리는, 하늘과 사람의 끝에다 마음을 두어 그 자취를 안개의 바깥에 들어 올려 가르침을 본받아 귀의하고는, 모두 마음을 다스려 존중하고 신봉하였는데 어떻게

 

요신을 높이고 이매를 받들고자 스스로 허리를 굽혔겠는가? 참으로 묘한 것을 보고 참다움을 알았기에 이와 같이 한 것이다.

또 부혁의 선조인 부의(傅毅)는 자()가 무중(武中)이었는데, 재주가 높고 학식이 깊어 세간에서는 통인(通人)이라 불렀다. 현종(顯宗)이 상서로운 꿈을 분별하고 금인(金人)의 명감(冥感)을 징험하였기에 석가의 도가 동쪽에 가피를 받은 것에는 부의의 공이 있었다. 상서령 부혁의 재주와 식견을 들여다보면 가히 무중에 비할 바가 못되는데도, 어떻게 부처님을 욕하고 법을 비난하여 그 선조에 반()하는가?

오나라의 상서령 감택(闞澤)이 오나라 군주 손권에게 대답하기를, ‘공자와 노씨, 2()를 불법에 견주어 보면 뛰어나고 열등함이 심합니다. 어째서 이같이 말하는가 하면 공자와 노씨가 가르침을 이루되 하늘을 본받아 제정(制定)하여 감히 하늘에 어긋나지 않았으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하늘조차도 받들어 행하여 감히 거스르지 못합니다라고 일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로도 참으로 견줄 수 없으니, 감택의 이 같은 변론은 우열의 한 모퉁이를 알게 합니다.

대체로 백가의 군자들은 그 말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니, 대사(大士)나 고승(高僧)이라야 그 이치를 살펴봄이 깊다. 현명한 군주와 어진 신하가 국가를 도모함이 충성스럽다. 그러므로 대대로 그것을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 대훈(大訓)으로 삼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이치를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도에 더 보탤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부혁이 이름난 스님들을 깊게 보지도 못하고 지나간 현철(賢哲)들을 정미롭게 생각하지도 못하면서 홀로 그 마음대로 하여 법을 등지고 복을 함부로 끊어 죄를 지었으니, 어찌 그 나라를 위해 도모하는 것이 이리도 충성스럽지 못하며, 그 몸을 위해 염려하는 것이 이리도 원대하지 못한가?

대각(大覺)이 정신(精神)을 다하여 교화를 깨닫고 그 근심스러움을 생각하고 깊이 한탄하여 이를 예방하였다. 백 살의 나이는 쉽게 다하고, 오복(五福)은 항상하기 어렵기에 그 목숨이 시냇물 흐르고 번개가 치듯이 흘러가버렸으나, 그 업은 땅이 오래고 하늘이 긴 것과 같다. 3()에 머뭇거리며 4()가 끝없이 아득하니 법주(法舟)에 의지하여 이롭게 구제하고, 신심의 날개에 의지하여 높이 날아올라 마땅히 죄를 돌이켜 복을 지어야 하는데도 어떻게

 

그릇된 생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해대는가?

 

 

예로부터 스님들을 배반한 적이 있다는 의혹[惑昔有反僧]

부혁이 조나라 때와 양나라 때에 모두 스님들의 반란이 있었는데 지금 천하에 승니가 20만 대중이다라고 말하니, 이것 또한 사려 깊지 못한 말이다.

이처럼 예전에 스님들의 모반이 있었다고 지금 정법의 대중을 폐지해야 한다면, 어떻게 옛날에 반역한 신하가 있었다고 지금의 여러 선비들을 내칠 수 있겠는가? 옆집에 불량스런 아이가 있다고 자기의 효순한 아이를 내쫓을 수 있는가? 예전에 반란을 꾀한 백성이 있었다고 지금의 백성[黎庶]을 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넓은 천지 아래 출가한 대중은 한 고을에 운집하지 않고 별처럼 9()에 흩어져 있는지라, ()와 현()으로 서로 규제하고 관문(關門)과 하진(河津)으로 제한하여 그들을 징발할 권위가 없으나, 헌장(憲章)의 금법(禁法)과 약칙(約則)이 있다. 가령 서넛의 부랑한 이와 한 둘의 천제(闡提)22)가 있더라도 이들은 연이 없는 오합지졸이니 그 개미처럼 모인 것에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또 사문이 도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망명(亡命)의 계책을 품을 것이며, 여자가 출가하는데 어찌 갑옷을 두르는 쓰임새를 구하겠는가? 게다가 무슨 연고로 승니의 명수(名數)를 섞어 계산하고, 효경의 무리에게 부하뇌동하여 헛되게 날조하여 그 참다움을 어지럽히면서 착한 것은 가리고 나쁜 것만 지목하는가?

군자에게는 세 가지 두려움이 있으니,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 대체로 청금(靑衿:儒生)에게 죄가 있더라도 이는 중니의 허물에 관련되는 것이 없는데, 조복(皂服:沙門)에 그릇됨이 있더라도 어찌 석가 세존의 잘못이겠는가?

스님들이 조정의 헌장에 어긋나고 승니가 세속의 형벌을 범하는 것도, 비유하자면 그 계율을 외우면서 이를 천착하고 예경(禮經)을 읽으면서 으스대는 것과 같다. 단지 사람이 완고한 성품을 받았으면 쉽게 어짊으로 옮겨 가지 않는 것뿐인데, 이것이 어찌 경전에서 그 반역하는 근원을 열어 악으로 물들게 하는 것이겠는가? 사람이 모두 어질지 못하더라도 법은 실다워 지극히 선한 것인데, 어떻게 그 악한 것의 미움을 선한 것에 이르게 하면서 사람을 탓하여 법을 버리려 하는가?

입으로는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를 말하면서도 행동은 걸 임금이나 도척같이 하고, 귀로는 시경예경을 들으면서도 마음에는 삿되고 편벽한 것만 남겨 두었으니, 하나라와 은나라 이래로 어느

 

조대에 이와 같은 이들이 없었겠는가? 어찌 도척이 밉다 하여 백이와 유하혜를 싫어할 것이며 삿된 것이 밉다고 시경예경을 폐지하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주살할 만한 죄가 있는 법이나, 정법에는 폐지할 만한 허물이 없다. 단지 그릇된 것만 금지하되 법을 넓혀 가면 사람이 도를 천대하지 못할 것이다. 참으로 묘한 법을 돈독하게 믿으면 소소하게 사문이 무리 짓는 것에 구애받지 않을지니, 가라지와 돌피를 골라내어야 좋은 곡식을 거두듯이 간악함을 숙청하여 큰 가르침을 맑게 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참으로 바라는 바이다.

 

스님들을 올빼미에 비교한 의혹[惑比僧土梟]

부혁이 도인ㆍ올빼미ㆍ노새ㆍ당나귀의 네 가지 물건은 모두가 그릇된 것만 탐내는 악한 종자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또한 사려가 깊지 못한 말이다. 세속을 버리고 도를 닦기에 도인이라 칭하는데, 도를 배워 탐욕을 없애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그릇된 것만 탐낸다고 이름하겠는가?

이처럼 보리도(菩提道)를 탐하고 생사의 흐름을 거스른다고 일러야 할 것이나, 부혁은 말을 하되 이 같은 이치에 통달하지 못하였다. 사문의 율법(律法)만을 보면 보통 사람이 행하지 못한 바를 행하고, 보통 사람이 삼가지 못할 바를 삼가게 하는 것이다. 온갖 석가의 경전을 갖춰서 궁리하며 꿈틀거리는 생물조차도 해치지 않는데, 하물며 효경(梟獍)과 같은 일을 행하겠는가? 결혼하는 예법도 버리고 행하지 않는데 어떻게 금수처럼 행하겠는가?

어떻게 욕심을 여읜 상인(上人)을 끌어다가 취진(聚塵)의 하물(下物)에 짝지우고, 도가 있는 현자를 미루어 무지한 당나귀나 노새에 견주며 큰 자비의 어진 대중을 욕하고자 상스럽지 못한 나쁜 새에 비유하고, 도인을 역종(逆種)이라 불러서 그 청정한 행실을 축생의 마음에 견주어 최상의 선을 해치려는 것이 어찌 이리도 심한가? 흰 것을 되돌려 검은 것으로 만드는 류()가 이와 같은가?

 

머리 깎은 것을 헐뜯고 비난한 의혹[惑譏毁鬚髮]

내가 예전에 매번 효경(孝經)의 훼손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인용하여 사문이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는 것을 비난하며, 선왕(先王)의 도에 어긋나고 충효의 의로움을 잃었다고 일컬었는데, 지금 그 옳지 못함을 깨달았다.

만약 임금과 부모를 모시게 되면 절개를 다하여 그 몸을 죽이더라도 어질다고 칭하며, 충효를 저버리면서 헛되이

 

목숨만을 구하여 그 피부를 온전히 하는 것을 의롭지 못하다고 한다. 위험한 일을 보고 목숨을 바치는 것을 아름답다고 이르니, 예의는 어려움에 임하여 구차하게 면하는 것을 막는다. 어떻게 한결같이 훼손하고 상하게 하는 것을 꾸짖어 부화뇌동하여 피부와 머리카락을 돌보겠는가? 넓적다리를 자르고 간을 바치니 그 손상이 참으로 심하다. 수염을 자르고 머리카락을 깎는 것은 그 훼손함이 미미한 것이다. 충성을 다하고자 그 목숨을 돌보지 않는 것을 논하여 허물로 여기지 않는데, 도를 구하고자 그 터럭을 아끼지 않는 것을 어떻게 유독 허물로 여기지 않는가?

탕 임금이 백성을 구하고자 오히려 자신의 몸을 불태워 연못에서 기도하였고, 묵자(墨子)가 겸애(兼愛)를 돈독히 하여 발바닥부터 갈고 닦아 정수리에 이르게 하였는데, 하물며 임금과 아비에게 복리(福利)를 깊이 구하고자 머리카락과 수염을 훼손하는 것을 어떻게 흘겨 볼 수 있겠는가?

성인의 가르침은 길은 다르나 돌아가는 바가 같고, 군자의 도는 혹 경위(經緯)가 어긋나더라도 의로움에는 부합하니, 태백(太伯)이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이다. 집에 있으면서 기르는 것을 폐지하고 약을 구하고자 돌아오지 않았으나, 중국의 복장(服章)을 버리고 머리카락 자르는 것으로 치장을 삼았으니, 경법에 어긋나고 예절에 그릇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그러나 중니는 이것을 칭찬하여 태백이야말로 덕이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비록 그 자취는 임금과 아비를 등졌다 하나, 마음은 나라와 국가를 생각하여 형체를 백월(百越)에서 훼손하고 세 번 양보하여 그 덕을 온전히 하였다. 이 때문에 태백이 의관의 제도를 버렸어도 지극한 덕에 손상함이 없었다. 바로 사문이 진신의 용모를 버리더라도 어떻게 묘한 도를 상하게 하겠는가?

옷을 바꿔 입고 용모를 고치고 신하와 자식의 항상된 위의에 어긋나더라도, 도를 믿고 마음으로 귀의하여 임금과 아비가 다복하기를 발원하고, 그 몸과 마음으로 고행을 행하며, 출가해서 온갖 선법을 닦아 임금과 아비에게 역겁(歷劫)의 깊은 경사(慶事)를 남기니, 그 충성되고 효도됨이 어찌 넉넉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은 어진 사문을 충성스럽지 못하다고 일컫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미덥지 못한 것이다.

 

진흙을 섬긴다는 의혹[惑埿種事埿]

부혁이 또 서역의 호나라 사람은 진흙에서 생겼으니 이리하여

 

진흙덩이를 섬긴다고 이르는데, 이 또한 사려 깊지 못한 말이다. 신령스런 불상을 경건하게 세우고 성인의 모습을 모사하자면 진흙을 많이 사용하니 어찌 진흙덩이만 쓰겠는가?

조각하기도 하고 주조하기도 하니, 쇠와 나무와 금과 구리로써 그림을 그리고 수를 놓으며, 또한 흰 비단에 단청을 입히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서역의 선비와 아녀자가 이 같은 물건에서 생겼다고 하는데, 대체로 중국의 묘당(廟堂)은 나무를 위주로 하니, 예법을 제정한 군자가 모두 나무에서 길러졌단 말인가?

부모를 잊을 수는 없으니 이로써 종묘로 삼는 것이고, 부처님을 잊을 수 없으니 이로써 그 형상을 세워서 망극한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엎드리는 것으로 살아계시듯 공경하고 성덕(聖德)을 우러르는데 어떤 허물이 있단 말인가? 선을 허물 삼는 자는 이와 같이 악을 공덕으로 삼는다 할 것이다.

 

부처님이 있으면 정치가 가혹해진다는 의혹[惑有佛政虐]

부혁이 다시 제왕이 부처가 없으면 나라가 다스려져 연조가 길어지고, 부처가 있으면 정치가 가혹하여 국조가 짧아진다고 이르나, 이 또한 사려가 깊지 못한 말이다.

능인(能仁)이 설교하는 것은 모두가 가혹한 풍화를 천양하려는 것이고, 보살이 말씀하시는 것은 오로지 걸 임금과 주 임금을 회개시키려는 것이라 하는데, 진실되게 논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대체로 은나라가 대보(大寶)를 잃은 것은 그 재앙이 달기(妲己)의 말에서 비롯되었고, 주나라가 제후를 잃은 것은 그 화가 포사(褒姒)의 미소에서 비롯하니, 3대가 망한 것이 모두가 이 같은 상황이나, 3()의 가르침이 어찌 이 같은 것을 우러르겠는가?

부처님께서 행하신 도는 자()ㆍ비()ㆍ희()ㆍ호()이니, 만물과 나를 고루하여 원수 맺은 이와 친한 이를 균등히 하고 안락하게 하면서 고난에서 구해 주는 것이다. 예로부터 그 백성을 얻은 이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넓혀 주셨다. 백성이 그 윗사람에게서 달아나게 되면 경전에서는 이것을 심하게 경계하였다. 복희씨(伏羲氏)ㆍ헌원(軒轅)ㆍ순 임금ㆍ우 임금의 덕도 6(:육바라밀)에서 감싸 안고 예와 한착(寒浞)이 계신년(癸辛年)에 난을 일으킨 것도 한결같이 10()으로 거두어 금지하셨으니, 걸 임금에게 욕심을 줄이는 가르침을 넓히고 주 임금에게는 큰 자비를 따르는 도에 순응하게 하였으므로 이윤(伊尹)과 여망(呂望)

 

그 도모함을 쓸 바가 없고 탕왕과 무왕도 어떻게 그 정벌을 행할 수 있었겠는가?

만약 명조(鳴條)23)에서 거국(去國)의 화를 면하고, 목야(牧野)24)에서 도과(倒戈)의 난을 쉬고, 하후(夏后)가 낙수(洛水)와 예수(汭水)의 노래를 따르고,25) 초나라 왕이 건계(乾溪)의 어려움에서 벗어났다면 석씨의 교화의 이익됨은 적지 않아 복리와 국조가 무궁하게 늘어나 위망(危亡)에 이르는 조짐이 없었을 것이다.

부혁이 있으면 손해가 되고 없어야 이롭다고 이른 것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도대체 무엇을 말한 것인가? 부처님과 도대체 무슨 원수가 졌다고 이와 같이 모함하는가? 부처님과 도대체 무슨 빚이 있다고 그 싫어하는 것이 이처럼 원수 같은가?

 

부처님이 없으면 백성이 화목하다는 의혹[惑無佛民和]

부혁이 또 불법이 있기 전에는 사람들이 모두 순박하고 화목하여 세상에 찬탈하는 일이 없었다고 이르니, 이 또한 사려가 깊지 못한 말이다. 9()26)가 덕화를 어지럽힌 것이 어찌 부처님이 없었던 때가 아니며, 삼묘(三苗)27)가 천명을 거스른 것이 어찌 정법이 있었던 이후가 아니겠는가?

하나라와 은나라의 말엽은 어찌 순박하고 화목하였겠는가? 춘추의 시절에 어찌 찬탈과 역모가 없었겠는가? 도적들이 간악하니 고요(皐陶)가 힘을 다하였고 험윤(玁狁)이 극성을 부리니 길보(吉甫:윤길보)가 큰 공적을 이루었다. 부혁은 부처님이 있으면 찬탈과 역모가 일어나고 정법이 순박함과 화기로움을 망친다고 일렀으니, 이는 오로지 거짓된 말만 날조한 것인지라 모두 실록과 어긋난다.

실 한 오라기를 훔치는 것도 부처님께서 경계하셨는데, 어떻게 찬탈과 역모의 난을 기르겠는가? 한마디의 거짓도 부처님께서 막으셨는데, 어떻게 순박하고 화기로운 도를 망쳤겠는가?

부처님께서 가르침으로 삼은 것을 생각해 보면, 신하에게는 충성을 권하고 자식에게는 효도를 권하고, 나라에서는 다스림을 권하고 집안에서는 평화를 권하며, 선을 넓히고자 천당의 즐거움을 보이셨고, 그릇됨을 징계하고자 지옥의 고통을 드러내셨다. 한 글자로 칭찬하거나 깎아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어떻게 5()을 그치게 하고자 계율을 지은 것을 화기로움을 상하게 하여 환난을 기른다고 말하는가?

모함하는 것이 참으로 심하지 않은가? 어찌 해와 같은 부처님을 손상시킬 수 있겠는가? 단지 스스로 고해에 빠질 뿐이다. 다만 업신여기며 환난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슬프도다.”

마침내 서생이 그 마음을 굽히고

 

송구스러운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다음과 같이 사죄하였다.

제가 속된 것만 익혀 늘 상도(常道)만 일으키고 도에 거슬리어 스스로를 그르쳤으니, 소홀히 하여 참구(參究)하지 않고 예전에 지어진 것만 익히느라 정법(正法)을 등지고 그 논을 달리 하였으며, 삿된 말을 받아 허물을 같이 하였습니다. 지금 부처님 교화의 깊고 원대함을 듣고 보니, 비로소 석가의 가르침이 충실함을 알겠습니다. 분명하게 마음으로 깨치고 이치를 따져 보니, 미혹됨을 거두어 병든 것을 털어낼 만합니다. 예전에는 삿된 것을 따랐으나 지금은 정법에 귀의하겠으니, 삼가 앞으로는 계율을 외워 구실(口實)로 삼겠습니다.”

 

(2) 통명편(通命篇)

이에 선생이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인이 복을 말하여 선()을 권장하고 화를 보여 악을 경계하는데, 소인배는 선을 이롭지 못하다 하여 행하지 않고 악도 해로움이 없다 하여 뉘우치지 않는다. 그러나 재앙이 있으면 복이 있다는 말은 겉만 번드레하고 실답지 못하여 이익도 손해도 없는 말이다. 바로 믿을 만한 징표가 있는데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

백이(伯夷)는 굶어 죽었고 계기(啓期)28)는 가난하였으며 안회(顔回)는 요절하였고 염경(冉耕)29)은 병을 앓았다. 혹 넉넉하여 풍성하더라도 그 말이 의로움에 이르지 못하고, 혹 오랫동안 살아 있더라도 그 이름이 죽을 때까지 불리지 않는다. 어질더라도 장수하지 못하고 넉넉하더라도 어질지 못한 것은 서계(書契)에도 이미 언급되었지만 모두 다 기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중니(仲尼)재앙과 경사의 말은 모두 헛되이 사람을 속일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문명(文命)과 영향(影響)의 비유조차 거의 믿기 힘들다. 선행을 돈독히 하여 게을리 하지 않는 이들이 이 같은 말에 오래도록 미혹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를 논하여 풀이한다면 재앙과 복덕은 그 뿌리가 있으니, 그 원인을 없다고 함부로 이르지 못한다. 선과 악은 마땅히 그 보응을 거두게 되니 반드시 그 응보를 잃어 헛되이 하지 않는 법이다. 단지 뿌리가 깊으면 보응이 멀고 눈과 귀로 상세히 보거나 듣지 못하기에 원래의 자초지종을 따지자면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에서는 이에 대해 논하지도 못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따르며 만나는 명[隨遭之命]

 

하늘에 맡겼으니 자세히 알지 못하고, 일찍 죽고 오래 사는 연수는 사람에게 달려 있기에 쉽게 미혹되는 것이다. 사람이 상주고 벌을 줄 때에 오히려 밝게 살핀다면 함부로 하게 되지 않는다. 하늘이 재앙과 복을 내린다 하여 어찌 거꾸로 어지럽다 하여 윤상(倫常)을 그르다 하는가? 그러므로 이치가 이에 있음을 깨닫고 나면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대각(大覺)의 편지(遍知)가 아니고서야 누가 그 이치를 궁리하여 미혹을 없애겠는가?

복상(卜商)과 가의(賈誼)가 말을 하고 반표(班彪)와 계강(季康)30)이 논을 지었다. 단지 혼돈되어 그것을 천명(天命)이라 이르는 것은 알았지만 천명이 그렇게 되는 이유를 분별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창고에서 곡물[黍稷]을 보고 그것이 심고 가꾼 것에서 비롯됨을 알지 못하며, 상자에 고운 비단을 두른 것을 보고 그것이 베틀(機杼)을 움직인 결과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

사마천이 보시의 명백함을 한탄하였으나, 끝내 의심이 쌓여 이를 통달하지 못하였고, 범방(范滂)은 선악의 이치에 미혹되어 울분만 머금은 채 풀지 못하였다. 모두 그 흐름은 보았으나 근원을 찾지 못하였기에 하나를 보고 둘을 알지 못하니, 오로지 석씨의 경론을 보아야만 그 자초지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는 과보는 그 가지를 찾아보면 천 가지 잎사귀로 갈라지니, 목숨이 두텁고 얇은 것도 그 근원을 만고(萬古)로 조명(照明)하고, 6()로 왕래하는 것을 가려내어 3세의 재앙과 복덕을 보여 준다면 형체는 없어지더라도 업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죽더라도 정신이 다시 태어나니, 혹 어질더라도 숙세의 재앙을 받고, 6신통(身通)이 있더라도 입에 넣는 음식이 모자라기도 하기에 비록 금수일지라도 여타의 복을 지니고 있다. 4()이 여의보(如意寶)를 안고 있으니, 업을 삼는 것이 하나의 단서만이 아닌 데다 보응에 감득하는 것도 참으로 천 가지 변화가 있다. 업이 각각 달리하는 것이 그 마음에 따르듯이 보응도 그 얼굴처럼 한결같지 않다. 그 마음의 근원을 혹 예전에 미혹했다가 나중에 돌이키기도 하고, 혹 처음이 있다 하였으나 나중이 없다고도 하고, 혹 항상 악한 일을 하더라도 뉘우치지 않기도 하고, 혹 선에 올곧이 하여 늘 기리기도 하고, 혹 공덕을 쌓되 허물을 겸하기도 하고, 혹 복덕은 미미하되

 

지혜가 융성하기도 하고, 혹 지은 죄는 같으나 그 마음을 달리 하기도 하고, 혹 공덕은 다르나 뜻이 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보응에는 먼저는 울부짖다가 나중에 웃기도 하고 혹 이미 얻었다가 그 잃은 것을 걱정하기도 하고, 혹 어려서도 비천하였고 죽을 때도 흉하고, 혹 처음에도 영예로웠으나 죽을 때도 길하고, 혹 행동이 절조가 있고 깨끗하나 요절하기도 하고, 혹 행실이 부박하면서도 재물이 넘쳐나기도 하고, 혹 죄는 같이 지었으나 형벌을 달리 하기도 하고, 혹 덕을 같이 하였으나 그 녹봉을 달리 하기도 한다. 업이 그 단초(端初)가 교차하여 서로 보태지고, 과보는 두루 응수하되 실낱같이 모두 갖춰지니, 비유하자면 화공(畫工)이 단청의 색깔을 입히고, 거울에 비치는 그림자가 밉고 고운 바탕에 응하듯이 한다. ()으로 6()을 불러들여 계자(季子)가 유담(遊談)에 형통하였고,31) 업으로 만금(萬金)을 끌어당겨 주공32)이 계술(計術)을 완수하였으며 청자(靑紫)33)를 취하는 것을 마치 엎드려 줍는 듯이 한다는 것은 예전의 인()이 도운 것이다.

()ㆍ악()에 통달하였으나 도리어 곤궁한 것은 숙세(宿世)에 복을 지은 밑천이 없는 것이다. 논어를 읽은 이는 자취를 잇게 되니 장문(張文)34)이 홀로 그 영예를 향유하고, ()를 설하는 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여 광형(匡衡)35) 우뚝 높은 지위에 처하였다. 혹 그 공적을 기록할 만하나 녹이 개추(介推)36)에도 미치지 못했고, 혹 죄를 지어 주살해야 하나 작위가 옹치(雍齒)37)보다 더 먼저 보태지기도 한다. 위현(韋賢)38)의 경술(經術)은 황금을 남기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나, 조일(趙壹)39)의 문적(文籍)은 주머니에 가득 채운 돈보다 못하니, 이 어찌 공업(功業)이 다르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숙명(宿命)이 다른 것에 연유할 뿐이니, 혹 재주는 적더라도 소임이 커서 재상(宰相)과 아형(阿衡)으로서 혁혁한 공이 있고, 혹 도를 밝혔으나 신세가 미미한지라 공자와 묵자조차 천대받는 욕을 당했다. 또한 공덕과 지위가 함께 드러나기도 하였으니, 원개(元凱)40)가 당()ㆍ우()의 조정에 종사하여 재주와 목숨이 함께 융성하였고, 부열(傅說)과 여망(呂望)이 염매(鹽梅)41)의 의지를 받아 두 가지 인을 함께 심은 것이 바로 이를 겸한 것이다.

이처럼 한 가지 업만을 홀로 닦으면 그 편벽됨이 저와 같아서 관중(管仲)은 갇혔으나 풀려나 나중에 재상에 오르고, 이사(李斯)는 재상이 되었으나 나중에 형벌을 받았으며, 범휴(范睢)가 먼저는 욕을 보았으나 나중에 영예로워지고, 등통(鄧通)이 처음에는 부유하였다가 끝내는 굶어 죽은 것과도 같다. 처음에는 눌변이었다가

 

나중에는 변재(辯才)가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어찌 예전에는 어리석었다가 지금 지혜로워진 것이겠는가? 과보가 익음에 연유해서 태평이 도래하고 복이 다하여 곤궁함이 미친다. 오자서(伍子胥)를 쓰러뜨린 이가 태재(太宰) ()인데, 이것은 예전의 재앙에 연유한 것이 아니다. 장창(張倉)을 구제한 이가 왕릉(王陵)인데 이것이 어찌 지나간 복과 관련이 있겠는가? 이것은 그 연()을 보아도 인()을 알지 못한 단견(斷見)의 허물이 있게 된 것이다. 만약 업()이 좋은 작위에 매어져 있다면 함께 오르는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이 어진 풍화(風化)에 짝한다면 내소(來蘇)의 은택(恩澤)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없을 것이니, 이로써 인()을 안다 하더라도 연()을 가리지 못하기에 그 은덕에 배반하는 죄가 있게 된다. 만약 그 이치를 겸하여 통달하고 양쪽으로 그 누를 내치고서 덕으로 나아가 업을 닦는다면, 이 어찌 고루하게 닫혔다 하겠는가?

봄에 좋은 곡식을 심고 나면 여름철의 단비에 의지하여 번창하듯이 숙세에 좋은 인을 심게 되면 금생의 연에 의지하여 발동한다. 고택(膏澤)을 받더라도 황폐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 되고 명시(明時)를 만나더라도 가난하여 인()이 없는 선비가 된다. 인연의 이치는 경과 논에 갖춰져 있으니 그 마주 닿는 갈래가 장구한 것도 모두 이와 같은 부류이다. 만약 그 하나만을 보고 그 둘을 보지 못한다면, 허물이 싹터서 그 공덕이 상하게 될 것이다. 석가의 경전에서 밝힌 바를 보면, 흑업(黑業)과 백업(白業)에는 반드시 정업(定業)과 부정업(不定業)이 있다. 화복의 보응은 옮겨질 수 있는 것[可轉]에서 옮겨질 수 없는 것[無轉]까지 미칠 수 있다. 덕이 되기도 하고 허물이 되기도 하는 것은 오직 옮겨질 수 있는 업을 비는 것이다. 어질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한 것이 반드시 정해진 운명을 옮기는 것이 없더라도 선을 크게 쌓아 재앙을 없애고 악을 가득 채워 복을 없애는 것은 이치의 필연으로써 믿어서 어긋남이 없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약석(藥石)이 뛰어나 질병을 제거하고 비가 내리면 불이 꺼지고 큰 강둑으로 흐르는 물결을 막고 소부(蕭斧)가 조균(朝菌)을 벌하는 것과 같다. 단지 병이 고황(膏肓)에 들면 좋은 약으로도 구하지 못하고 불길이 초원으로 번지면 물을 붓더라도 해결하지 못한다. 등림(鄧林)의 나무를 한 자루 칼로 다 베어 내지 못하는데, 장강(長江)의 물결을 한 덩이의 흙덩이로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큰 덕은 소소한 잘못을 가릴 수 있으나 소소한 공덕은 큰 허물을 메울 수 없다. 금석(金石)에 새긴 것은 공을 이루기 어려우나 썩은 나무를 꺾는 것은 힘쓰기가 쉽다. 그 업이 미미하면 과보가 굳지 못하고, 그 행이 견실하면 과보도 반드시 결정되니, 견고하지 않기에 되돌릴 수 있고 반드시 정해져 있다면 옮기기 어려운 것이다. 되돌리기 어려우니 이 때문에 세 번 부르짖어 거해(巨海)의 파도를 쉬게 한다. 액운을 옮기기 어려우니 4()를 얻더라도 흉악한 이의 해침을 당하게 된다.

유곤(劉昆)42)은 소현(小賢)인데도 역풍(逆風)을 일으켜 불을 끄고, 당요(唐堯)가 대성(大聖)이더라도 홍수가 나서 언덕에까지 범람하였다. 이로써 논하자면 미혹될 것이 없다. 진나라 문제(文帝)가 덕을 늘려 길모퉁이에서 큰 뱀을 죽였고, 송경(宋景)이 말을 하여 하늘의 요사스런 별을 물러가게 하였으니 이는 부정(不定)의 업이다. 주문(邾文)이 자기를 가벼이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여 덕이 있었으나 보응은 없었다. 초나라 소왕(昭王)이 재앙을 일으켰으나 선양(宣讓) 받는 복이 있었으니, 선하더라도 그 몸이 흉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운명에 정해진 것이다. 혹 악을 같이하더라도 감득은 달리하고 혹 선이 같더라도 보응이 다른 것도 모두 예전의 인에 따른 소치인데, 어떻게 하나의 생으로 이를 괴이하다 하겠는가?

공자도 소인은 천명을 알지 못하기에 두려워하지도 못한다’43)고 일렀는데, 다시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라 하지 못한다’44)고도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업()이 바로 유가에서 이르는 명()이다. 대체로 말은 틀리나 이치가 부합되기에 더불어 함께 논할 수 있다. 명이 업에 매여 있고 업은 사람에게서 일어나는데, 사람이 명을 받아 곤궁하기도 통달하기도 한다. 명이 업에 따라 두껍고 얕아지는데도, 두껍고 얕아지는 명은 자신에게서 연유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것이 어찌 그릇되지 않겠는가?

시경에서는 백성이 받는 재앙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에서는 화와 복에는 문이 없으니, 사람만이 불러들이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것은 하늘에게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맹가(孟軻)가 노나라에서 벼슬을 구하면서 장창(臧倉)의 폐단을 한탄하지도 않았고, 중유(仲由)가 계손씨에게 벼슬 살면서

 

백료(伯寮)의 참언에 노여워하지도 않은 것은, 사람들에게 책임을 미룰 수 없고 하늘에 책임을 물은 것임을 말한다. 그 말은 같지 않으나 그 이치는 다른 것이 아니다.

요약하여 논하자면 함께 돌이켜 덕으로 나아가고 자신을 억제하여 남을 계책하는 것이니, 뜻을 건실하게 힘써서 하늘을 즐기고 명을 알며 우울하게 원망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안으로는 생각을 이기는 공덕에 힘쓰고, 바깥으로는 다투지 않는 공덕을 넓히며,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는 허물을 없애고, 아래로는 남을 탓하는 누를 끊으니 중화(中和)를 행하는 것은 이곳에 있다.

옛날에 도를 잘하는 사람은 이와 같은 것에 종사했다. 옛날에 석가의 경전을 처음 듣고 이를 믿되 돈독히 하지 않고, 그 눈과 귀 사이에 구애받아 보고 듣는 바깥을 의심하였으니, 전인(前因)과 후과(後果)의 설법은 장주(莊周)의 우언(寓言)과 같이 보고 천상과 지하의 말씀은 상여(相如)45)의 오유(烏有)46)와 견주었으니, 악한 이가 법망(法網)을 비켜 가는 것을 보고서도 이를 그르다 하여 징벌하지 않고, 충직한 이가 재난을 만나는 것을 듣고서도 선을 가벼이 하여 권장하지 않았으니, 이 같은 미혹이 참으로 심하였다. 그러나 업을 알고 나면 그렇지가 못하다.

업을 통달한 군자는 사사로움을 없애 명에 맡기고, 성현의 맑은 덕을 우러르며, 금옥의 높은 행실을 돈독히 하면서 누항(陋巷)에 사는 것을 번민하지 않고 명리(名利)로 서로 다투는 것을 잊어버린다. 이로써 이미 지나간 여업(餘業)을 끝내고 장래의 경사스러움을 열어 가되 세속의 조롱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어떻게 향곡(鄕曲)의 칭송을 구하겠는가?

씨앗을 심더라도 그 자라나는 것을 보지 못하니, 어떤 때에는 크게 갈더라도 그 어그러진 것을 보지 못하고 마침내 그 두터움을 없애 버린다. 지금 선악의 보()가 나타나더라도 때는 가까우나 무르익지 않고 예전 세상에서 길하고 흉했던 과()는 반드시 되풀이하여 끝낸 다음에야 시들어진다. 비유하자면 감자를 심는데 아침에 심어서 저녁에 거두지 못하고 질려(蒺藜)가 가시가 되는데 봄에 생겨나 가을에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밭을 갈지 않고도 배부른 것은 예전 세상에

 

남아 있던 곡식에 기인하는 것이고, 어질지 못하면서도 장수하는 이는 전생에 오래된 복이 피어나는 것이다. 천도(天道)는 가깝고 먼 것이 없으나 사람의 업에는 차고 기우는 것이 있으니, 이로써 천명을 미루어 보면 의혹을 없앨 수 있다. ()ㆍ하()ㆍ상()ㆍ주()의 전()과 황제ㆍ노자ㆍ공자ㆍ묵자의 말과 같은 것은 도는 한 생에만 펴질 뿐이고 말은 3세에 미치지 않는다면 의혹될 만한 것이 여섯 개이니 말로써 거기에 통해지는 것은 없다.

선을 행하여 그 이로움을 보이는 것은 작봉과 명예를 말하고, 악을 행하는 해로움을 설명하는 것은 치욕(恥辱)과 형벌을 밝힌다. 그러나 상을 피하고 이름을 숨기는 선비에게 어떠한 것으로 이로움을 삼겠는가? 진실로 면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필부는 그 해로움을 받지 않는데 어떻게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 하겠는가? 미혹될 수 있는 것의 첫 번째가 된다.

하늘과 더불어 착하면 백 가지 서상이 내린다고 이르고, ()이 음란한 것을 바로잡고 6()47)을 보탠다고 이른다. 그러나 백우(伯牛)가 덕행이 있으면서도 병에 걸렸다고, 하늘이 그가 선한 일을 한 것을 어찌 미워한다고 하겠는가? 도척이 흉포하면서도 재앙이 없었다고, 신이 어찌 그 악함을 기린다고 하겠으며, 어떻게 재앙과 복이 함부로 내려진다고 하겠는가? 이것이 미혹됨의 두 번째이다.

또 혹자는 죄는 그 형체에 따라 함께 망하고 공은 그 몸과 더불어 함께 썩는다고 말하는데, 선을 행한다고 어떠한 경사로 이를 논할 수 있으며, 악을 행한다고 어떠한 재앙으로 이를 경계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선과 악의 과보는 진실하여 없는 것이 아니나, 산에서 고사리를 먹다가 굶어 죽었는데 어떠한 곳에 복이 내린다 하며, 사람의 간을 회쳐 먹고도 장수를 누렸는데 어떠한 때에 그 재앙을 받는다 하겠는가? 그러므로 어찌 선악의 과보가 없다고 하겠는가? 이것이 미혹됨의 세 번째이다.

혹자는 화와 복이 조상에 연유하는지라 그 재앙과 경사가 자손까지 이른다고 말하나, 예전에 실린 것을 고찰해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백종(伯宗)과 양힐(羊肹)의 후사가 진조(晋朝)에서 절멸하였고, 경보(慶父)와 숙아(叔牙)의 후예가 노나라에서 번창한 것이, 어찌 조상에 빌미하는 것이겠는가? 이것이 미혹됨의 네 번째이다.

혹자는

 

선을 보고 악함을 살피되 때때로 상천(上天)에 잘못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복을 내리고 재앙을 내리되 하토(下土)에 균등하게 하지 못하였다고 이른다. 그러나 하늘의 맑은 명이 어떻게 상주고 벌주는 것을 어둡게 하겠는가? 일찍이 천도(天道)는 왕도의 제작만 못하다고 이르는 것이, 미혹됨의 다섯 번째이다.

혹자는 화와 복은 사람이 부르는 것이 아니기에 선과 악도 나중의 보응이 없어서 백왕(百王)이 선을 상주고 방자한 것에 형벌을 가한다고 이른다. 그렇다면 6()에서 그 덕을 기리고 허물을 깎는 것이 이익도 없이 헛되이 권하는 것이고 손해도 없이 망령되게 계책하는 것이니, 어찌 공구(孔丘)의 홍교(弘敎)를 귀하다 할 것이며, 영정(嬴政:진시황)이 책을 불태운 것을 허물이라 하겠는가? 이것이 미혹됨의 여섯 번째이다.

그러나 선악을 감득하여 이르는 것과 화와 복이 서로 인연이 되어 생겼다 감추어졌다 하는 것은 오직 일생에 한정시키고 3세가 되도록 그것을 통하게 하지 않는다. 그 이치가 소소하여 넓지 못한데 어떻게 사람의 미혹을 가리겠는가? 악을 방비하더라도 다하지 못하고 선으로 인도하더라도 결여된 것이 많아서 그 취하는 이치가 오히려 천박하고 그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도 미미하다.

10()의 깊은 말씀과 3()의 묘한 법과 화택(火宅)에서 4()을 구제하고, 고해에서 여섯 척의 배를 운항하는 것과 견주자면 그 높고 낮음의 현격한 차이는 언덕과 곤륜산를 비기는 것과 같고 얕고 깊은 것이 같지 않음은 웅덩이의 물과 강한(江漢)을 비교하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해를 같이하여 말할 수가 있겠는가?

예전에 유마힐(維摩詰)이 밝게 통달하였고 사리불(舍利弗)의 총명한 변재(辯才)는 경과 논마다 상세하였으니, 참으로 비교해 보면 항탁(項託)을 넘어서고 공구(孔丘)를 뛰어넘으며, 이로(李老)를 제치고 허유(許由)를 넘어서고, 묵적(墨翟)을 굴복시키고 장주(莊周)를 꺾기에 족하다. 백씨(百氏)를 삼키고 9()를 두루 갖추기 때문에 서적에 실린 것조차도 이와 더불어 짝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도(異道)를 받더라도 올바른 믿음을 훼손하지 않고, 세간의 전적에 밝더라도 불법을 늘 기뻐하여 석가를 스승으로 섬기며 선한 가르침을 가슴 속에 새긴다면, 어찌 뛰어난 도를 가려서 이를 찬양하지 않겠는가?”

 

 

(3) 공유편(空有篇)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혹 악()이 공()을 취하여 단견(斷見)을 낳게 되니 그만 부끄럽고 두려워하는 바도 없어서 스스로 대승(大乘)이라 이르는데, 이는 정법(正法)에서 심히 경계하는 것이다. 그 단견은 경전에서 법을 물거품과 그림자로 비유하며 그 생이 마치 아지랑이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죄와 복은 둘이 아니며 업보는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인()을 심고 과()를 거둔다는 말과 천당과 지옥의 설법은 사마상여가 상림(上林)의 귤나무를 서술하고48) 맹덕(孟德)49)이 앞길의 매화 과수원을 가리킨 것과 다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방편으로 어리석은 이를 꾀어 진귀한 것이라고 거짓으로 말하는 것이니 그 말에 진실됨이 없다. 염유(冉由)가 병을 앓고 안회가 일찍 죽은 것은 섭양(攝養)이 이치에 어긋났기 때문이고, 팽조(彭祖)가 장수하고 노담(老聃)이 명을 부지하는 것은 장위(將衛:양생)의 유술(有術)에 연유한다고 한다. 귀하고 천한 것은 자연적으로 갈라지는 것이고 괴로움과 즐거움도 우연히 그 짝을 만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풀이 난 자리와 나무가 서 있는 구역을 달리하듯 한다.

만약 명협(蓂莢)50)이 상서로움을 드러내고 연리(連理)51)가 휴명(休明)에 응하여 그 이름이 죽백(竹帛)에 실려 있고, 그 정황이 단청(丹靑)에 그려져 있다면, 이와 같은 것은 초목 가운데 귀한 것이다. 만약 3()52)에는 넝쿨이 지기 쉽고 7()에는 잘라 내기 어려워서 복첩(僕妾)의 신증(薪蒸)에나 충당하고 소나 양이 밟고 지나가게 되면, 이와 같은 것은 초목의 천한 것이다. 만약 구름으로 둘러싸인 봉우리에 줄지어 피고 자취가 끊어진 곳에 연이어 피어나되, 도끼와 톱마저 이르지 못하고 나무꾼이 가지 못하면, 이와 같은 것은 초목으로서 그 수명을 온전히 할 것이다. 만약 석공(石工)이 몇 번이고 되돌아보거나 농부가 애써 가서 삼태기에 담고자 부지런히 괭이질하는 것을 만나거나 뗏목에 싣고자 도끼를 휘두르는 것을 만나게 되면, 이와 같은 것은 초목으로서 요절하는 것이다. 만약 조릿대와 왕대가 송백(松柏)과 그 바탕을 나란히 하고 혜초(蕙草)와 두약(杜若)이 난초ㆍ백지(白芷)와 기운을 같이 하며 비취색은 추위를 이겨내고도 바래지 않고 향기는 그윽한 그대로 끊임이 없으면, 이와 같은 것은 초목으로서 뛰어난 것이다. 만약 질리(蒺䔧)가 생겨나

 

보기 흉한 데다 지극(枳棘)이 많아서 아름답지 못하며 시경이소(離騷)에서도 이를 비유하여 간부(姦夫)에 짝하여 그 비루함을 풍자하였다면, 이와 같은 것은 초목으로서 용렬한 것이다. 만약 그 냄새가 다르고 맛이 특별한 것에 이르기까지 천 가지 종류와 만 가지 형태를 심어 기른다면, 어찌 그 이름을 훌륭하다 하겠는가?

무슨 업으로 존중되고, 무슨 인()으로 경시받고, 무슨 죄로 일찍 죽고, 무슨 공덕으로 오래 살고, 무슨 허물로 말라 죽고, 무슨 복으로 명예로우며, 무슨 습()으로 독을 품으며, 어떻게 닦았기에 향기가 나겠는가? 이것이 어찌 숙업(宿業)에서 이루어진 것이겠는가? 이에 자연적으로 만 가지 차별이 있게 된 것이다. 사람이 명을 달리 하는 것도 대체로 이와 같은데 어떻게 전업(前業)에 의해 그리된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다는 것이 대승의 깊은 이치이고, 선도 밝히고 악도 밝히는 것이 소승의 얕은 가르침이다. 어리석은 이도 진리에 합치되고 근신하는 이도 도에 어긋나니, 어떻게 악을 버리고 선으로 나아가며 마음의 분별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또 부처님의 설법이 그 단서가 너무 많다고 싫어하며 공()을 논하며 유()를 말하니 그 자체적으로 서로 어긋나며 이 또한 부처님과 중생이 싸우는 것일 뿐인데 어떻게 한 종류의 법만을 밝히겠는가? 삿된 공[邪空]의 설법에서는 이같이 말하나 바른 공[正空]에서는 그렇지 않다. 공과 유의 이치를 아는 이가 어찌 이 같은 말을 하겠는가? 그릇된 것을 풍자하여 넓히고 거짓된 말을 하여 후세 사람들을 미혹되게 하여 사견을 늘릴까 두렵다.

가벼이 들은 대로 논해 보자면, 꿈과 같고 아지랑이 같고 메아리 같고 물거품 같아서 실로 이와 같지 않은 법은 한 가지도 없다. 만상(萬象)을 거두어 함께 쌓아 가니, 상품의 선비는 이를 보아 성인에 이르고 성인에 다다르면 이를 체득하여 홀로 초월하니, 홍수에 하늘까지 잠기더라도 빠지지 않고 큰 바람이 산악을 쓰러뜨리더라도 흩날리지 않으면서 육신통을 갖추어 자재하며 삼계를 뛰어넘어 노닌다. 그러므로 이치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였기에 정관(正觀)으로 비추어 보며 그 마음이

 

적정(寂靜)하지 못하다면 정섭(靜攝)하여 조절하여 장애를 남기지 않고 대치(對治)하여 녹이는지라, 덕을 스스로 갖추지 않아도 열심히 닦아 풍부하게 한다.

6()가 이미 제거되었다면 진여(眞如)가 드러날 수 있고 세 가지 장애[三障]가 미처 소멸되지 않았다면 보리(菩提)는 여전히 아득하다. 그러므로 진제(眞諦)는 더럽고 깨끗한 모양을 여의었으나 속제(俗諦)는 시비의 갈래를 세운다. 만물을 지칭하자면 반드시 분별에 빗대어야 하는데, 법을 논하면서 어찌 혼란함에 따라야 하겠는가?

6()는 고()를 떨구는 업이 될 수 없고, 3()은 세간을 벗어나는 다리가 될 수 없다. 계곡에 몸을 던지면 떨어지지 않기 어렵고 불에 뛰어든다면 어떻게 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순을 우매한 걸 임금과 견줄 수 없고,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을 성군(聖君)인 요 임금과 같다고 할 수 없고, 충신과 현자를 벌판으로 내칠 수 없고, 삿된 간신배를 명조(明朝)에 올릴 수 없고, 흰 것을 거꾸로 검다 할 수 없고, 낮을 밤이라고 할 수 없고, 삿된 것으로 바른 것을 해칠 수 없고, 봉황을 가져다 짐새에 견줄 수 없는데, 어떻게 인과(因果)가 토끼뿔과 같다 하며, 죄와 복이 따르는 것을 거북의 털에 비기려는가?53)

비록 대승의 묘한 말씀을 인용하더라도 그 오묘한 참다운 이치를 얻지 못했으면서, 입으로 그것을 설하면 같다 하고, 마음으로 그것을 쓰면 다르다고 하니 다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법은 공()으로써 그 탐욕을 없애고, 사설(邪說)은 공()으로써 그 애착을 취한다. 지혜로운 이는 공을 보고 노여움을 없애고, 미혹된 이는 공을 논하여 함부로 해친다. 통달한 이는 공을 행하여 지혜로 깨닫고, 미혹된 이는 공을 취하여 미쳐 버린다. 대사(大士)는 공을 체득하여 덕에 나아가고, 소인은 공을 말하여 선()에서 물러난다. 그 다른 것이 이와 같은데, 어찌 함께 이르겠는가?

참으로 바른 말씀을 반대로만 새기니 삿된 고집만 생겨난다. 준마를 물에 띄우면 아무리 애를 써도 공이 없고, 배가 산으로 오르면 수고로이 해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어찌 준마와 배가 잘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단지 물에 띄우고 산에 오르는 쓰임새가 어긋나기 때문이다. 정명(淨名:유마거사)의 모양을 여읜[離相] 경전을 읽고는

 

그만 나아가 닦는 것을 폐지하고 장주의 제물편(齊物篇)의 말을 외우며 정욕(情欲)을 마음대로 한다면 준마를 채찍질하며 물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것이나, 방주에 노를 저으며 언덕길을 오르고 조부(造父)54)가 앞을 향해 계속 달리는 것을 바라보며 추격하고 월나라 사람이 순조롭게 강을 건너는 것에다 견주려는 것과 다른 것이 없으니, 어찌 어렵지 아니한가?

정명에게는 맑고 높은 덕이 있고, 장주에게는 욕심을 일삼는 누가 없다. 그러므로 단견(斷見)으로 공을 논하는 것이 무위의 도와 어긋남을 알 수 있다. 묘한 도의 그윽한 이치는 군유(群有)에 나아가 공()을 밝힌다. 이미 참됨과 접촉하여서는 거짓됨을 알아 나아감이 다르더라도 비추는 것을 같이하는데 이것을 무엇에 비길 것인가?

비유하자면 넓은 거울을 마주보고 주위를 살피고 푸른 연못에 임하여 허리를 굽혀 비춰 보는 것과 같다. 온갖 모양이 찬란하여 눈으로 볼 수 있으나 참된 성품이 없다. ()은 유()를 낳게 하여 형체를 이루고 그 연()을 여의면 바탕도 없어진다. 물이 추위를 만나면 얼음으로 굳어지고 얼음이 온기를 접촉하면 단단함을 잃는다. 대체로 연에 따라 유()가 되는데 비록 대유(大有)라 하더라도 어떻게 참되다 하겠는가?

그러므로 천지는 나와 더불어 모두 공허하고 나는 만물과 더불어 하나가 된다. 보리(菩提)는 얻는 것이 아니기에 이를 일러 유()라 하거늘 하물며 군생과 중술(衆術)에 있어서랴? 그러한 까닭에 물건을 살피면 물건이 아니고 자기 몸을 취하면 몸이 아니니, 그 빼어남이 하늘처럼 빛나더라도 모두가 허망하며, 안정되기가 땅처럼 높더라도 참답지 못하다. 말로 논하여 이치를 다하되 말이 없고 손님이 객실에 가득하더라도 사람이 없으며, 절세의 미인이라도 아름답지 않고 보배를 치장하여 눈이 부시더라도 귀하지 않다. 선과 악의 길이 다르더라도 두 가지가 아니고, 성인과 범부가 등급을 달리 하더라도 늘 균등하다.

경과 논의 큰 이치를 찾아보면, 연에 따라 유()가 아닌 것을 밝히고 연기(緣起)로써 무()가 아닌 것을 분별한다. 사물이 있다 하나 묘한 참됨이 없고 이치가 공하다 하나 태허(太虛)가 아니다. 사람이 없다는 것[無人]이 문 안의 고요함을 엿본다는 것이 아니고, 보는 것이 없다는 것[無見]이 담장을 마주하는 어리석음이 아니고, 말이 없다는 것[無說]이 금인(金人)의 입이 아니고, 몸이 없다는 것[無體]이 극후(棘猴)의 몸이 아니고, 움직임이 없다는 것[無動]

 

산이 서 있는 모습이 아니고, 분별이 없다는 것[無別]이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아첨이 아니고, 진실이 없다는 것[無眞]이 고기 눈깔 같은 보물이 아니고, 참됨이 없다는 것[無實]이 기러기 발에 묶인 편지[雁足之書]55)가 아니다. 재물을 꿈속의 재물과 견주어 보아도 별다름이 없는데, 색이 환색(幻色)과 더불어 무엇이 다르겠는가?

의돈(猗頓)56)은 원헌(原憲)57)의 재산과 같고, 송리(宋里)는 평성(平城)의 아름다움에 짝할 만하다. 도지(道智)는 공()을 깨우쳐 속박된 것을 끊는데, 속정(俗情)은 유()에 머물러 언제나 구애받으니, 사람이 업보와 함께 하는 것은 유()가 아니나 업보가 사람에 따르는 것 또한 무()가 아니다. 천당을 하늘에 비하는 것도 허망하지 않은데 지옥을 땅에 비기려 하는 것이 어찌 헛된 것이겠는가?

양웅(楊雄)이 옥수(玉樹)라고 거짓으로 칭해지고, 만도(曼都)58)가 신거(神居)로 잘못 보여지는 것과는 같지 않다. 어떻게 공()이란 말만 취하여 이치에 어긋나는데 풀과 나무를 함께 끌어다가 모든 것에 짝하려 하는가? 야광주(夜光珠)는 결록(結綠)의 보배이고 남위(南威)는 모장(毛嫱)의 빛깔이다. 사람들이 모두 그와 같은 것이 있음을 보게 되면 아끼는 마음이 생기는데, 어떻게 그 공을 체득하였다 하여 물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눈흘김[睚眥]은 체개(蔕芥)59)의 틈이고 청승(靑蠅)60)은 패금(貝錦)61)의 원수이니 그 모양을 보면 분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없는데, ()에다 비겨 근심하지 않는 것은 드물다. 홀로 이르기를 비루한 행동을 공하다고 여기면서 경계하지 않고 선법도 공하다 하여 따르지 않는다. 3()을 버려야 하나 이를 깨우치지 못하고, 5()을 닦아야 하되 도리어 내버리니, ()으로써 누를 내치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단지 공()을 취하여 선법(善法)만을 폐한다. 이것이 어떻게 정명이 둘이 아닌 깊은 이치이며, 장주가 만물을 고루하는 그윽한 도리이겠는가?

크도다. 지극한 사람이라야 공()을 체득하는구나. 만물의 본적(本寂)을 증득하여 4()가 허망함을 깨닫고 서시(西施)를 보면 측간에 가는 것 같이 하고 남금(南金)62)을 깨진 기왓장에 견주니, 5()마저 그 마음을 어지럽힐 수 없고 4()조차 그 곧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지혜가 해처럼 밝고 덕이 넉넉하여 미혹이 날마다 제거되어 부족함을 채우고 손과 발을 자르더라도 유감이 없고 머리와 눈을 달라 하여도 능히 희사(喜捨)한다. 8()63)2()64)을 낳지 않고 만물을 지나침이 한 필의 말과 같다. 그러므로

 

무상지(無上智)를 증득할 수 있으면 살바야(薩婆若如者反)가 된다. 그 이치를 터득하여 해탈하는 것은 이와 같으나 그 뜻을 잃어버려 지나치게 근심하는 것은 저와 같으니, 어떻게 그르다 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삿된 것을 기리면서 이를 옳다 하겠는가?

배를 보고 물을 살펴보면 모두 진제(眞諦)가 아니나, 큰 냇물을 건너되 배 없이는 건너가지 못한다. 병든 몸과 약의 성품이 모두 공허한 것이나 사람이 병으로 인하여 죽고 병은 약에 기인하여 없어진다. 코뿔소의 뿔과 짐새의 털은 물거품과 같은 것이나 짐새의 털을 물에 타서 마시면 죽어 버리고 코뿔소의 뿔을 갈아 마시면 살아난다. 맑은 물과 독한 술은 진유(眞有)가 아니나, 음료는 사람을 어지럽히지 않는데 술은 허물을 낳는다. 충성과 반역이 모두 계곡의 메아리 같으나 반역은 주살당하고 충성은 상을 탄다. 죄와 복의 성품이 평등하여 둘이 아니나 복은 선으로 모이고 화는 악으로 다다른다. 선과 악의 제법(諸法)이 모두 공()하여 모양이 없으나 선법은 도를 보태고 악법은 장애를 낳는다.

그러므로 만법(萬法)의 참다운 성품이 다 같이 한 가지이나 인연법(因緣法) 가운데 만 갈래가 있어도 방해됨이 없고 공()과 유()의 두 가지 문이 서로 어긋나지 않으며, 진제와 속제의 두 가지 이치가 함께 돌아가는 것이다. 만약 소승에는 죄와 복을 가리는 말이 있고 대승에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말이 없다고 이른다면, 이는 호나라와 월나라가 그 갈 길을 달리 하고 창과 방패가 서로 거역하는 것과 같다. 어린아이조차도 말 뒤집는 것을 부끄러워하는데 성인이 어찌 주저하겠는가? 참으로 도를 듣자마자 도중에 이를 발설해 버리면서 끝내 잘못 헤아려 나쁘게만 취한다. 만약 널리 따져 보고 깊이 생각한다면, 반드시 의심이 풀어지고 미혹됨이 해소될 것이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10()의 세웅(世雄)이신 무상(無上)의 자부(慈父)는 그 말씀에 실답지 않음이 없고, 자비에 넓지 않음이 없으며, 모양을 여의지 않음이 없고, 보시되 보지 않음이 없다. 공덕이 두루하지 않음이 없고, 다니시되 가지 않음이 없고, 선은 권하지 않음이 없고, 악은 막지 않음이 없으며, 향을 뿌리더라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칼로 자르더라도 화를 내지 않으시며, 자신을 따른다고 아끼지도 않으시고, 자신을 거역한다고 미워하지도 않으시니, 복덕과 지혜가

 

원만하여 남음이 없는 데다, 번뇌의 구덩이가 다하여 실마리가 없어서 삼계에 빠지는 것을 건지고 4()의 귀 멀고 눈먼 것을 열어 주신다. ()과 유()를 함께 비추어 서로 구제하고 진제와 속제를 회통(會通)하여 양쪽을 들어 올린다. 병을 헤아려 약을 베풀되 중도(中道)를 벗어나 편벽된 처방을 하지 않는다. 이처럼 방등(方等)의 일승(一乘)과 바야(波若)65)8()는 거룩한 지혜가 가득하여 대승의 으뜸으로, 널리 수지하는 이로움을 펼치고 깊이 비방하는 허물을 늘어놓지 않는 것이 없다. 경전에서는 다시 인과를 깊이 믿어야 대승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데, 어째서 대승의 이치에 인과가 없다고 말하는가?

모양을 취하여 선()을 행하면 그 선이 정밀하지 못하고, 모양을 보고 악을 끊으면 끊었어도 다시 생겨난다. 만약 선성(善性)의 적멸함을 깨닫게 되면 작위(作爲)가 없어지고, 만약 악체(惡體)가 공()함을 알게 되면 무엇을 끊겠는가?

이리하여 세 가지 장애가 얼음이 녹듯이 하여 적멸하며, 만덕(萬德)이 운집하여 가득하다. 지혜가 바다와 같아서 게 껍질 하나로 담을 수 없고, 도가 천상과 인간을 뛰어넘으니 어찌 잣대나 구멍 속으로 이를 들여다 볼 수 있겠는가? 이것을 나무 그루터기에 비유하여, 어리석게 헤아리는 것 또한 잘못이 아니겠는가?

공을 말하며 마음대로 하는 자는 고()된 바의 원인을 없앨 수 없어서 병들어 근심하며 잠자리조차 불안해진다. 칼과 톱으로 상처를 내면 그 몸이 온전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먹지 않으면 굶주리며, 겨울에 입을 털옷이 없으면 추위로 괴로워진다. 그러므로 고통에 이르는 업을 업신여겨 어찌 피하지 않겠는가?

5()6(:육바라밀)은 인정(人情)이 제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궁하게 되면 현달(賢達)을 생각하고, 위급하면 편안함을 구하고, 병에 걸리면 낫기를 바라고, 근심이 있으면 기쁨을 선망하고, 수고(壽考)를 좋아하면 단명(短命)을 꺼리고, 세간의 녹봉을 영예롭게 여기면 형잔(形殘)을 부끄럽게 여기고, 즐거움이 보태지면 좋아서 웃음이 나오고, 괴로움이 다다르면 근심하며 한탄하는데, 어떻게

 

선악에 부화뇌동하며 복의 인을 닦지 않겠는가?

만백성의 품성을 갈래 짓는 것을 보면 1천의 종족마다 그 급수(級數)를 달리하는데, 혹 상품의 장수(長壽)에 견주어도 남음이 있거나, 혹 하품의 요절에 짝하더라도 미치지 못하거나, 혹 홑겹의 베옷을 입고도 근심이 없거나, 혹 두터운 비단옷을 입고도 추위를 타거나, 혹 풀자리에 의지해서도 편안하거나, 혹 침대와 이불에 누워서도 바람과 습기를 느끼거나, 혹 치료하지 않고도 저절로 낳거나, 혹 치료하여도 일어서지 못하거나, 혹 방술(方術)이 없어도 그 몸이 건강하거나, 혹 잘 보양하더라도 질병이 몰려든다. 그 형태의 거죽은 모두가 머리카락과 피부인데, 살가죽 안쪽에 있는 부장(腑臟)이라고 어찌 다르겠는가?

모두 피를 머금어 근육을 싸고 힘줄이 연이어 뼈를 부지하는 것인데, 어떻게 한 사람은 장수하고 한 사람은 요절하며, 어떻게 한 사람은 살찌고 한 사람은 메마르는가? 어떠한 혼령을 받았기에 홀로 건실하며, 어떠한 기운을 받았기에 편중되게 허약한가?

허약한 이라고 유독 티끌로 그 몸을 이룬 것이 아니고, 건실한 이라고 어찌 편중되게 쇠와 돌로 그 신체를 삼았겠는가? 장수하는 이에게는 반드시 의술(醫術)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수명이 짧은 이에게는 반드시 도가의 서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어찌하여 오로지 양생(養生)에만 빌미하여 업()에 달려 있지 않다고 이르는가?

또 태() 안에서 목숨이 끊어지거나, 갓난아이 적에 병에 걸리기도 하는데, 이처럼 희노애락(喜怒哀樂)에 미처 치달리지도 못하고 좋아하는 바가 열리지도 않았으며 추위와 더위에 접촉하지도 않았고 슬픔에 초췌해지지도 않았는데, 목숨이 어찌 이리도 짧은가? 질병이 어디서부터 오는가? 그렇게 되는 이치가 모두 전생의 업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나라 소왕(昭王)과 애왕(哀王)의 두 임금과 위나라 문제와 명제의 두 황제가 세 살과 아홉 살도 채 안 되어서 죽었고, 겨우 다섯 살이나 여덟 살이 되어서 세상을 떠나기도 하였으니, 술법하는 이가 운집하여 이씨의 혼령을 부르고 방사(方士)가 숲과 같았어도 급작스럽게 죽는 것을 구하지 못하였다. 임금이 약이 부족하지도 않았을 터이고, 무당과 의사가 그 기술을 감추지도 않았을 터인데, 어째서 질병이 낫지 못했으며 어째서 수명이 짧아 명을 잇지 못했는가? 이 어찌 업에 따라 보응을 감득하는 것이 아니겠으며, 또한 도술(道術)로 구제할 바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경전에서는 약을 베푸는 공덕을 칭찬하고, 부처님은 의왕(醫王)의 덕에 감탄하신 것이다. 공공(孔公:공자)도 질병을 조심하는 자취를 밝혔으며, 노자(老子)도 섭생(攝生)의 법칙이 있었으니, 업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미혹된 것이고,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 이도 이미 현혹된 것이다. 능히 인과의 깊고 얕음을 따질 수 있어야 약석(藥石)으로 통하고 막히는 것을 가리게 되니, 이를 따져 보는 지혜는 한묵(翰墨)으로는 갖추기 어렵다. 공명(公明)66)이 귀신의 재앙을 내쳤고, 편작(扁鵲)이 병을 낫게 하였으며, 하동(河東)의 곽박(郭璞)과 초군(譙郡)의 화타(華他)와 광릉(廣陵)의 오보(吳普)와 팽성(彭城)의 번아(樊阿)가 혹 흉한 것을 내치고 길함을 이루기도 하였고, 혹 병을 고쳐서 조화롭게 하였으니, 어떻게 의술의 이로움을 믿지 않겠는가?

그러나 경순(景純)67)이 형벌 받는 날을 미리 알고도 형벌을 피하지 못하였고, 공명(公明)이 목숨이 다하는 햇수를 알고도 그 햇수마저 다하지 못하였다. 편작과 화타도 그 부모를 죽지 않게 하지 못했고 오보와 번아도 그 몸을 죽지 않게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장수와 단명이 업에 따른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의사도 업에 빌미하여 만나고 약도 연에 따라 모인다. 의사가 실제로 공덕이 있다면 약도 취하지 못할 것이 없다. 반드시 죽는 병은 성인이라도 이를 막지 못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은 의사를 기다려서야 낫게 된다. 혼백(魂魄)은 업에 연유하여 되돌려지고, 강시(僵尸)는 재생의 약을 얻더라도 그 목숨이 업에 의해 끊어지고, 명의(名醫)마저도 한 짝의 관이 되어 흙에 묻힌다. 수명의 길고 짧음과 몸의 편안함과 고통스러움은 때에 따라 비()와 태()68)를 만나는 것이다. 예쁘고 못생기거나 키가 늘씬하고 곱추처럼 굽었거나 천 가지 품류와 만 가지 단서가 모두 업을 위주로 하고 삼계(三界)6()가 업에 따라 처한다. 백 가지 화초는 정()이 없기 때문에 아름답고 못생긴 것이 업보에 관여하지 않으나, 4생은 목숨이 있어서 인연이 풀더미와는 같지 않다. 도끼로 나무를 잘라도 놀라지 않으나 칼과 창으로 사람을 겨누면 두려워한다. 포과(匏瓜)는 매여 있어 먹지 않으나, 날개가 있고 털이 있는 것은 먹으면 놀라서 달아난다. 유정(有情)한 것을 무지(無知)한 것과 비교하는데 어떻게 짝이 아닌 것을

 

끌어다 비유하겠는가?

()과 유()로 간략하게 말하는 것은 모두 마음에 연유한 업이니, 앞서는 그 삶을 항상하는 것만 읊조리다가 지금에는 정법을 드러내게 되었다. 소승은 과보에 의지하여 업유(業有)라고 하였고 대승에서는 만 가지 경계를 식조(識造)라고 하였다. 환업(幻業)을 따라 천지에 펼쳐지고 허망한 마음을 쫓아내고 식()의 풀잎을 드러내는 것이, 마치 눈병이 나서 공화(空花)를 보듯이 하고 꿈속에서 살아있는 늙은이가 나타나는 듯하다. 만약 그것을 심업(心業)에서 깨닫고자 한다면 오로지 불도(佛道)만을 배워야 한다. 원래 소승과 대승은 소학(小學)이나 대학(大學)과 같은 것이다. 어릴 때는 글자와 산수만을 가르치다가 장성하면 예()와 악()으로 넓혀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리석기가 소의 털과 비견되나 끝내는 탁월하기가 기린의 뿔과 같아진다. 이것이 배우는 순서이니 어찌 같고 다름이 있다고 잘라 버릴 수 있겠는가?

참으로 중생의 근기에는 이근(利根)도 있고 둔근(鈍根)도 있으니, 이 때문에 성인의 가르침에는 점오(漸悟)도 있고 돈오(頓悟)도 있다. 혹 깊고 멀리 이르기도 하고, 혹 한치 한치 나아가기도 하나, 끝내 백 가지 생각이 한 갈래에 이르게 된다. 이리하여 도가 달라지고 논이 어긋나는 것인데, 공문(空門)을 고집하여 가르침에 어긋나고 대승을 논하면서 소승을 비방한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해치지 않으시는데, 중생이 스스로 이를 깨치지 못한다. 비유하자면 어두운 방안에 촛불이 없는 것과 같고 밤에 다니는데 밝지 못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서로 깎아 내리며 시끄럽게 하고 옳고 그름을 다투며 떠들썩하게 하는 것이, 어찌 나무 끝에서 부용(芙蓉:연꽃)을 따려고 하고 오나라와 초나라를 연나라와 조나라에서 찾으려 하는가? 이 어찌 그릇되지 않은가?

한 숟갈의 조미료로는 국을 맛있게 하지 못하고, 한 그루의 나무로는 집을 짓지 못하며, 한 벌의 옷으로는 여러 명의 몸을 덮을 수 없고, 한 알의 약으로는 다른 병들을 치료하지 못하며, 한 바늘의 색실로는 수를 놓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한마디의 소리로는 금슬(琴瑟)을 이루었다고 하지 못하며, 한 마디 말로는 여러 착한 일을 권할 수 없고, 한 가지 계율로는 많은 허물을 막아 내지 못한다. 어째서 돈오와 점수가 달리하는 것을 괴이쩍다 하여 법문(法門)을 한 가지로 통일하려 드는가?

법문의

 

품류(品類)가 많은 것은 약석(藥石)마다 그 공이 다른 것과 같아서 추위를 구하자면 따뜻한 물건을 사용하고 열을 없애자면 차갑게 해주는 약이 많아야만 한다. 혹 습()을 다스리고자 특별히 조제하기도 하고, 혹 풍()을 멈추게 하고자 편중되게 쓰기도 한다. 병이 같은데 약을 달리해서는 안 되고, 병이 다른데 약을 같이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나무 그루터기만 지킨다면 반드시 망하게 되리라. 변화에 통달하여야 나중에 통할 수 있는데, 어째서 한 갈래의 길에 구애받아 서로 깎아 내리며 그 가운데에서 논쟁을 일으키려는가?

3세의 인과는 부처님께서 속임수로 속이신 것이 아니고, 10력의 계율을 권장하셨으니, 이것을 들으면 의심내지 말아야 한다. 권하는 것은 마땅히 닦고 계율로 금하는 것은 마땅히 멀리해야 한다. 참으로 모든 정()이 탐하는 것을 억누르고 성지(聖智)의 발원하는 것을 행하니 어떻게 경과 논에서 밝힌 것과 어긋나고 억측으로 끊어 버리며 선악이 모두 공하여 이롭고 해로움이 없다고 이르겠는가?

법안(法眼)이 명료하면 다하지 못하는 법이 없고, 설상(舌相)이 넓고 길면 참되지 않은 말이 없다. ()를 분석하면 한 터럭이 만 가지인데 그것이 모두 똑같이 공하니 만상(萬象)이 모두 한 가지이다.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이 허물 만드는 것을 예방하고 공()과 유()를 겸하여 병을 없앤다. 저와 같은 보리의 묘한 이치는 진실로 매우 깊고 미세해져서 진로(塵勞:번뇌)를 싫증내어 해탈의 지혜를 구하려 한다면 마땅히 근신하여 방일하지 말아야 한다. 성자(聖者)가 아닌 것은 모두 끝내 흉하게 되기 때문에 도에 순종하여야 마침내 대길해질 것이다.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밝은 해와 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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