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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058 불교(광홍명집 9권/ 廣弘明集)

by Kay/케이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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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광홍명집(廣弘明集) 9

 

 

당 석도선 지음

이한정 번역

 

 

2. 변혹편

 

9) 소도론(笑道論)그 글이 많은지라 간단하게 가소롭다는 말을 취한 것이다.

신 견란(甄鸞)이 말씀드립니다.

칙령을 받들어 불교와 도교 두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서 그 시대의 앞뒤와 이치의 깊고 얕음과 종지의 같고 다름을 가리라 하시매 신이 미욱한 재주를 마다않고 삼가 이를 모두 기록하여 알려 드립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불교는 도교와 그 자취가 같지 않기에 세상에 나오거나 피하고 은거하거나 현달(顯達)하고 변하거나 통하는 것 역시 다릅니다. 그윽함과 오묘함은 쉽사리 따져 볼 바가 아니나, 한 번 지나간 것으로 그 모양을 대조해 보니, 불교는 인연(因緣)을 으뜸으로 삼고, 도교는 자연(自然)을 이치로 삼습니다.

자연이란 무위(無爲)로 이루어지는 것이나, ‘인연이란 행()을 쌓아 증득하는 것입니다. 본분을 지키면 적정(寂靜)에 힘쓰게 되어 이치가 균일(均一)해지나, 그 종지를 어기면 마음이 어지러워져 가르침과 어긋나게 됩니다. 이치가 균일하면 그 시작과 끝이 한결같으나, 가르침에 어긋나면 하지 않을 것이 없게 됩니다. 노자의 오천문에 따르면 그 같은 이치가 모두 위대하여 참으로 귀하다고 하겠습니다. 그 몸을 세우고 나라를 다스린다 하니, 이로써 임금과 백성의 도리가 넉넉해집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도교에는 부서(符書)1)와 염조(厭詛)의 방술(方術)이 있습니다만, 불교에서는 저같이 괴이한 힘과 어짊을 등지는 술책을 엄금합니다. 서로 간에 그 형태가 비슷하여 세인들에게 그 삿되고 올바름을 의심하게 하지만 이것이 어찌 대도(大道) 자연(自然)의 허적(虛寂) 무위(無爲)의 뜻이겠습니까?

이는 후세 사람들이 근본을 등지고 함부로 천착(穿鑿)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도가의 방술(方術)은 신선으로 승천하여 신()이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참으로 웃다 못해 눈가의 물기를 훔쳐 내어야 하는 일입니다.

예전에 서복(徐福)2)이 망령되이 임금을 속이고 이단(夷丹)에 나라를 달리 세웠고, 문제(文帝)와 성제(成帝) 때는 다섯 가지 이익으로 한나라의 치세를 요사스럽게 하였습니다. 3()3)은 서량(西梁)을 미혹시켰고, 손은(孫恩)4)은 동월(東越)에서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이와 같이 거대한 좀벌레를

 

예로부터 간사하다고 이르니, 이로써 정치를 바로잡으면 정치에 삿된 것이 많아질 터이고, 이로써 백성을 인도하면 백성의 미혹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 책을 징험하자면 권수마다 서로 어긋나고, 그 이치와 뜻을 논하자면 처음과 끝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다른 이를 아비처럼 대한다 하였는데, 그 군주에게 예의바른 것을 보면 그를 공경하여 효자가 부모를 봉양하듯 하고, 그 임금에게 무례한 것을 보면 그를 미워하되 새매가 까마귀를 쫓는 듯합니다. 선니(宣尼:孔子)군자(君子)는 임금을 섬기되, 나아가면 생각하는 바가 충성을 다하는 것이고, 물러나면 생각하는 바가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니, 장차 그 아름다움에 따르되 그 사악함을 반듯하게 바로잡아야 위아래가 서로 친근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춘추전(春秋傳)에서는 임금이 옳게 여기는 것이 만약 그른 경우, 신하가 간언하여 그 그른 것을 없애지 못하면, 어찌 신하라 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비록 칙령으로 질문하신 바를 받들게 되었으나, 외람되이 도교는 실답지 못하다고 답할 만합니다. 도덕경2권은 실로 유림(儒林)의 종지라 할 만하나, 그 비류(紕謬:잘못하여 일을 그르침)가 의심스러워 양 모서리를 버리고 그 가운데를 재어 산정하였습니다. 오천문에 따르면, ‘상품(上品)의 선비가 도를 들으면 힘써 행하고, 중품(中品)의 선비가 도를 들으면 있는 듯 없는 듯하고, 하품(下品)의 선비가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비웃지도 아니하고 이름 붙이지도 않는 것이야말로 도()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하품 선비의 소견으로 소도론3권 도합 36()를 지었습니다. 3권은 삼통(三洞)이란 이름을 비웃는 것이고, 36조는 그 경전에 36()가 있음을 비웃는 것입니다.

식은 땀을 흘리며 주상께 이를 올리니, 혼백마저 아찔합니다. 삼가 다음과 같이 아룁니다.

대주(大周) 천화(天和) 5215일 전 사례(司隷) 모극현(母極縣) 개국백(開國伯) 신 견란이 아룁니다.”

 

■ 「소도론상권의 목차

1장 조립천지(造立天地)

2장 연호차천(年號差舛)

3장 기위천인(氣爲天人)

4장 결토위인(結土爲人)

 

5장 오불병출(五佛竝出)

6장 오련생시(五練生尸)

7장 관음시로(觀音侍老)

8장 불서법음(佛西法陰)

 

■ 「소도론중권의 목차

9장 일경부동(日經不同)

10장 곤륜비부(崑崙飛浮)

11장 법도립관(法道立官)

12장 칭나무불(稱南無佛)

13장 조적전문(鳥跡前文)

14장 장건취경(張騫取經)

15장 일월보집(日月普集)

16장 태상존귀(太上尊貴)

17장 오곡명착(五穀命鑿)

18장 노자작불(老子作佛)

20장 사사구도(事邪求道)

21장 사기란정(邪氣亂政)

22장 계목고사(誡木枯死)

 

■ 「소도론하권의 목차

23장 북방예시(北方禮始)

24장 해친구도(害親求道)

25장 연생연부(延生年符)

26장 춘여겁제(椿輿劫齊)

27장 수겁생사(隨劫生死)

28장 복단금색(服丹金色)

29장 개불위도(改佛爲道)

30장 투불인과(偸佛因果)

31장 도경미출언출(道經未出言出)

32장 오억중천(五億重天)

33장 출입위의(出入威儀)

34장 도사봉불(道士奉佛)

35장 도사합기(道士合氣)

36장 제자도서(諸子道書)

 

 

(1) 조립천지(造立天地)

태상노군(太上老君)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였다는데, 처음 기록에는 노자라 칭하였으나, ()나라 유왕(幽王)의 덕화(德化)가 쇠락해지자, 서쪽으로 관문을 건너가고자 하여 윤희(尹喜)에게 3년 후 장안에 푸른 양의 간을 파는 곳에서 서로 만나기로 기약하였는데, 노자가 바로 황후(皇后)의 뱃속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약속한 날짜에 이르러 윤희가 푸른

 

양의 간을 파는 이를 만났으니, 그 찾아가 만난 것에 기인하여 노자가 어미의 뱃속에서 일어났는데, 머리는 이미 백발인데다 키가 6()이나 되었으며 천관(天冠)을 쓰고 금 지팡이를 짚었습니다.

윤희를 데리고 호나라를 교화하고자 수양산(水陽山)에 숨었는데, 자줏빛 구름이 그를 덮었습니다. 호나라 왕이 혹시 요괴가 아닌가 의심하여 가마솥에 넣고 삶아도 익지 않았는데, 태상노군이 이에 크게 진노하여 호나라 왕을 죽이자 일곱 아들과 그 나라 사람 대부분이 함께 죽었습니다. 호나라 왕이 이에 굴복하여 국인(國人)들로 하여금 교화받게 하였으니, 머리를 자르고 처첩을 두지 않게 하고 250계를 받고서 사람 형태를 만들어 향을 피우고 예배하였습니다. 이윽고 노자가 그 형태를 변화시키자, 왼쪽 눈은 해가 되고, 오른쪽 눈은 달이 되고, 머리는 곤륜산이 되고, 머리카락은 별자리가 되고, 뼈는 용이 되고, 살은 짐승이 되고, 장은 뱀이 되고, 배는 바다가 되고, 손가락은 5()이 되고, 터럭은 초목이 되고, 심장은 화려한 보개(寶蓋)가 되었는데, 두 개의 신장이 합쳐져 진요(眞要)의 부모가 되었다 합니다.

(신 견란을 말함)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한서에서는 장안(長安)을 원래 함양(咸陽)이라 이름하였는데, 한나라 고조가 천하를 평정하고 그 수도를 낙읍(雒邑)에 두었다 합니다. 누경지(婁敬之)가 이를 간언하자, 고조가 탄식하며 짐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편안히 지내고자 한다[長安]’고 말하였으니, 이로써 그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나라 유왕(幽王) 말엽에 노자가 어떻게 장안을 미리 알고 윤희와 약속했겠습니까?

삼천정법혼돈경(三天正法混沌經)에 따르면, ‘혼돈(混沌)의 시초에 맑은 기운은 하늘이 되고 탁한 기운은 땅이 되었다고 하면서 7()와 만상(萬像)의 형태를 이룬 지 오래되었다고 이르는데, 어찌 호나라를 교화한 이후에야 노자가 변화하여 일월과 산천의 부류가 되었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유왕 이전에는 천지간에 만물이 생겨나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도가의 경전에서는 3()5()3()이 있었다고 합니까? 그러므로 천지는 유왕 시절 이전부터 있어 왔다고 하겠습니다.

조천지기(造天地記)에서는, ‘곤륜산의 높이는 4,800리이니 그 위에 옥경산(玉京山)

 

대라산(大羅山)이 있는데 각각의 높이가 또 4,800리이다. 이 세 곳의 산을 합치면 높이가 14,400리이다라고 합니다. 광설품(廣說品)에서는 하늘과 땅의 거리가 15천 리라 이르는데, 자미궁(紫微宮)5억 리 중천(重天)의 위에 있는 것을 따져 보면, 이는 바로 곤륜산보다 수백만 리나 높은 것입니다. 그러나 태상노군의 심장이 화려한 보개가 되고, 그 간장이 청제궁(靑帝宮)이 되고, 그 비장이 자미궁이 되고, 머리가 곤륜산이 되었다 하니, 노군이 대체 무슨 죄로 이같이 땅바닥에 거꾸로 엎어졌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머리는 밑에 있고 간장은 위에 거꾸로 놓였으니, 그 보는 것조차도 거꾸로 일 것입니다. 장안으로 관문을 넘은 햇수를 정하고 유왕으로 천지가 개벽한 세월을 삼고서 장차 만물을 교화한다 하니, 어느 누가 이를 곧이듣겠습니까?”

 

(2) 연호차천(年號差舛)

도덕경의 서문에서는, “노자가 상황(上皇) 원년 정묘년 이래로 주나라의 국사(國師)였다가, 무극(無極) 원년 계축년에 주나라를 떠나 관문을 넘었다고 합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옛적 선대(先代)의 제왕(帝王)은 비록 연수는 세웠으나 연호는 없었다가, 한나라 무제 때에 이르러 처음으로 건원(建元)이라 연호를 지었는데, 그 이후의 임금들이 이를 본받아 오늘날까지 이르렀습니다. 상황(上皇)이 어쩌구 하는, 그 허무맹랑함이 참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문시전(文始傳)에서는, ‘노자가 3() 이래로 대대로 국사가 되었다가 호나라를 교화하였다고 이르고, () 임금의 시절에는 석수자(錫壽子)라 이름하였으며, ()나라 초엽에는 곽숙자(郭叔子)라 이름하였다고 하는데, 이미 국사가 되었다면 이미 전적에 기록되어 전해졌을 텐데 어째서 그는 사전(史傳)에 기술되지 않고 단지 이윤(伊尹)ㆍ부열(傅說)ㆍ여망(呂望)ㆍ강소(康邵)만을 열거했는가?

부열(傅說)노자의 주에 주하사(柱下史)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도가에서는 주나라 국사로 고쳐 새기더라도 바로 속관(俗官)일 뿐인데, 어떻게 사전(史傳)에서는 이를 말하지 않습니까?

또 상황 원년이 정묘년이라는 것도, 희왕(姬王:周王朝)17백여 년간을 따져 보더라도, 상황이란 연호를 듣지도 못했습니다. 여러 사전을 검토하더라도 모두들 노자는 경왕(景王)의 시대에 관문을 넘었다 하고, 노나라 애공(哀公) 16년에

 

공구(孔丘)가 죽었다 하니, 바로 주나라 경왕(敬王) 시절에 해당합니다. 경왕(敬王)은 경왕(景王)의 아들이니, 경왕(景王)은 바로 유왕 이후로 10여 세()나 뒤쳐집니다. 이로써 공자와 노자는 시대가 같다고 하겠는데, 화호경에서는 유왕의 시대에 관문을 건넜다고 말하니, 그 다시 되돌아온 것을 듣지 못했는데, 어떻게 공자와 서로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화호경에서는, 또 주나라 주하사를 7백 년 동안 역임하였다 하는데, 주나라 초엽부터 유왕에 이른 때를 따져 보면, 3백여 년에 불과한데 어떻게 망령되이 날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상황의 햇수란 도문(道門)에서 날조한 연호입니다. 영보(靈寶)에서는 내가 상황 원년 이래로 반 겁 동안이나 사람을 제도하였으니, 그 때 사람의 수명이 18천 살이었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반 겁 이전에 그 미래의 연호를 소급해서 적용하여 근세에 이르기까지 쓸 수 있겠습니까?” 한결같이 어느 것이나 가소롭습니다.

또 상황이나 무극(無極)도 아울러 천착한 것을 알지 못하고 지은이가 그 술법을 신령스럽게 하고자 연호를 날짜에 보탠 것으로, 믿음직스럽게 하여 이에 따르게 하려는 의도라 하겠습니다.

또 대대로 국사였다는 것이, 갈홍(葛洪)신선전(神仙傳)서문에도 나오는데, 참으로 찾아볼수록 괴이쩍습니다. 성인이 이미 출세하여 널리 구제하는 것을 우선하였으나, 하나라의 걸 임금이 가혹하여 생민(生民)을 도탄에 빠뜨리고 성탕(成湯)과 무정(武丁)이 어진 이를 갈구하되 목마르듯 하였는데도, 노자가 어째서 어진 임금을 보필하지 않았으며, 정무가 가혹한데도 다스리지 않았습니까? 그 몸을 닦고 성품을 길러 자신을 지키다가 늙어 죽을 때가 되자, 스스로 죽을 것을 알고는 몰래 서쪽으로 건너가면서 윤희에게만 전하여 독송케 하고 다른 이에게는 알릴 것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그 몸이 관중(關中)에서 죽었기에 그 봉분을 지금껏 볼 수 있어서 진일(秦佚)이 조문하여 세 번 통곡하고서 떠나갔습니다. 앞서 전한 경전을 후세 사람이 헛되이 논하는 것을 살펴보면, 비록 존중한다고 이르더라도 도리어 도가를 욕되게 할 뿐입니다.”

 

(3) 원위천인(元爲天人)

태상삼원품(太上三元品)에서는, “상원(上元)은 일품(一品)의 천궁(天宮)인데, 원기(元氣)가 처음으로 뭉쳐져서 3()이 빛을 발하자, 푸르고 누런

 

기운은 상원의 3()에 두었는데, 1궁을 현도(玄都)의 원양칠보자미궁(元陽七寶紫微宮)이라 이름한다. 밝히면 청원시양(靑元始陽)의 기운이 있어 상진자연(上眞自然)의 왕궁(王宮)과 영보상황(靈寶上皇), 여러 천상의 여러 제왕과 상성(上聖) 및 대신(大神)을 통틀어 주재하는데, 그 궁궐들이 모두 555555억만 중()이 청양(靑陽:봄을 일컫는 말)의 기운이라 합니다. 그 가운데 신선ㆍ관료ㆍ인간 대중이 각각 55만 내지 앞서의 1만 중에 이르니, 모두 자연청원(自然靑元)의 기운이 맺혀 사람이 되었는데, 9()의 중수(重數:숫자로 나타낸 무게의 단위)와 관료 및 인간 대중은 모두 자미와 같다고 합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삼천정법경(三天正法經)에서는, ‘하늘의 빛이 밝지 못하고 땅이 쌓이되 깨끗하지 못하였으니, 7천여 겁 현경(玄景)의 시분에 구기(九氣)가 남아 있었는데, 기운 하나마다 서로 99990리나 떨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맑은 기운은 높이 올라가 맑아지고 혼탁한 것은 아래로 내려왔는데, 구천(九天)의 진왕(眞王)인 원시천왕(元始天王)이 구기(九氣) 가운데에서 태어나되, 그 기운이 맺혀서 이 같은 형태를 이루어 바로 구진(九眞)의 제()가 되었으니, 모두 구천의 맑은 기운이 맺혀 구우(九宇)의 위()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삼원(三元)은 저 사람들이 기운에 따라 통방궁(洞房宮)에서 태어난 것으로, 옥동(玉童)과 옥녀(玉女)가 각각 3천 명이 있어 그 시중을 드는데, 하늘을 아비로 삼고 기운을 어미로 삼아 삼원의 군()이 태어났다 합니다.

영보죄근품(靈寶罪根品)에 따르면, ‘태상도군이 원시천존(元始天尊)을 예배하고 10() 따위의 법을 묻자, 마침내 천존이 명을 내려 신선을 불러들여 각각 인연을 설하게 하니, 마침내 득도하여 여래를 이룬 이가 항하의 모래와 같았고 또 이루지 못한 자도 항하의 모래만큼 되었다고 합니다. 문시전(文始傳)에서는 천당은 지옥과 상대되는데, 착한 이는 하늘로 올라가고 악한 이는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록 말은 옳다 하더라도 이치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왜냐하면 원시천왕(元始天王)과 태상도군 및 여러 천상의

 

신인은 모두가 자연청원(自然淸元)의 기운이 맺혀져 화현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실로 계율을 닦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저들이 근본적으로 지계(持戒)에 기인하지 않고 이루었는데, 어떻게 우리들 홀로만 선법(善法)을 행하여 이를 얻게 한다는 것입니까?

도인본행경(度人本行經)에 따르면, ‘태상도군은 자신이 무량한 겁 동안 제도한 사람이 셀 수 없는데, 원시천존(元始天尊)이 자신으로써 인연의 공훈을 삼고자 자신에게 태상(太上)이란 호를 내렸다고 말하니, 이 같은 것을 미루어 보아도 참으로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유무생성품(有無生成品)에서는, ‘허공은 만물의 어미이고 도는 만물의 아비라고 말하니, 이는 도가 먼저 있고 나서야 중생이 있다는 것으로, 이같이 도의 아비라 하는 것은 참으로 중생이 지은 바가 아닙니다. 도가 원래 이러하다면 중생이 무엇으로 어떻게 선()을 닦아 이루겠습니까?

또 도에서 만물이 생하고 만물이 생하는 처음이 바로 그 시작이니 내가 생을 시작함에 염습(染習)이 없었다고 할 것인데, 어떻게 6()4()에 괴로움과 즐거움의 차별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이 역시 불가합니다.

또 중생은 신식(神識)을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지 이것은 도에서 생겨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도가 만물을 이미 낳을 수 있는데 신식조차 어찌 물건이 아니겠습니까? 이 역시도 불가합니다.”

 

(4) 결토위인(結土爲人)

삼천정법경(三天正法經)에서는, 구기(九氣)가 갈라지매 구진천왕(九眞天王) 내지 삼원부인(三元夫人)과 삼원지군(三元之君) 및 태상도군이 이로써 형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황제(皇帝)에 이르러 처음으로 생민을 세우고 흙을 빚어서 넓은 뜰에 모양을 만들어 두었는데, 만들어 놓은 지 3년이 지나자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각 방위마다 두었기 때문에 창진(傖秦)5)ㆍ이()ㆍ강()이 있게 되었는데, 5()이 그 덕에 합치되고 5()이 자연스럽게 상진(上眞)의 기운을 이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신 견란이 이를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삼원품(三元品)에서는, ‘선과 악의 그 업이 마주하는 것은 모두 이 한 몸에 연유한다고 이르고,

 

문시전에서는 음탕하고 도둑질하고 효성스럽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다섯 가지 고통과 8()을 받는데, 나중에 여섯 가지 축생이나 변방의 오랑캐 속에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이 같은 말을 미루어 보더라도, 그 어긋남이 심합니다. 또 황제(皇帝)가 흙으로 그 모양을 빚은 날로부터 3년을 거쳐야 상진(上眞)의 기운이 들어와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하니, 이 같은 상청(上淸)의 기운은 태상과 그 근원이 동일한 것이기에 그 앞서는 것을 논하자면 선과 악이 있을 수 없는데, 어떻게 흙으로 빚은 형상에 들어갔다고 바로 8()으로 떨어지고 야만의 오랑캐가 된다는 것입니까? 이같이 흙으로 빚은 형상은 예전부터 그 원인이 없는데도, 어떻게 만들고 난 후에야 중토와 변방의 차별이 있게 되겠습니까?

또 상진의 기운이 치매나 힐수(黠首)가 된다고 하니, 만약 그와 같이 어리석다면 흙에 들어가더라도 말을 하지 못해야 마땅합니다. 그 힐수라면 다섯 가지 고통과 여덟 가지 환난을 가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선악을 즐기지 않고 고난을 탐하겠습니까?

이 같은 여러 가지 조항을 미루어 보면 가소롭기 짝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5) 명오불병흥(明五佛竝興)

문시전(文始傳)에서는, “노자가 상황(上皇) 원년 이래로 주사(周師)였다가 무극(無極) 원년에 푸른 소가 끄는 박판거(薄板車)를 타고 관문을 넘어서면서 윤희에게 오천자를 말해 주며 당부하기를, ‘내가 천지 사이로 다니고자 하는데, 당신이 도를 얻지 못했으니 서로 따를 수가 없습니다. 마땅히 오천자를 만 번 외운다면 귀로 환히 들을 수 있고, 눈으로 꿰뚫어 볼 수 있으며, 몸이 날아다니되 6()에 통하고 4()에 이를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성도(成都)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였기에 윤희가 그 말대로 하여 이것을 얻고 나서 찾아가 서로 만났다고 합니다.

계빈(罽賓)의 단특산(檀特山) 가운데 이르자 왕이 불로 태우고 물속에 집어넣어도 노자는 연꽃 위에 앉아 태연히 경을 외웠기 때문에 마침내 왕이 자비를 구하며 허물을 참회하였다고 합니다. 노자가 윤희를 스승으로 추천하며 왕에게 우리 스승은 부처님이라 이름하는데, 부처님은 무상도(無上道)를 섬기니, 왕께서는 그 도를 따라 교화를 받으십시오. 남자와 여자는 머리를 깎고 처첩을 취하지 말아야 이 같은

 

무상도(無上道)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을 계승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윤희를 계빈국의 부처로 삼았으니 그 호가 명광유동(明光儒童)이었다 합니다.

제가 이에 대해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광설품(廣說品)에서, ‘시로국(始老國)의 왕이 천존(天尊)의 설법을 듣고 처자식과 함께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게 되자, 청화국(淸和國)의 왕이 이것을 듣고 여러 신하들과 천존의 처소를 찾아가서 마침내 모두 백일승천하였는데, 왕이 범천(梵天)의 우두머리가 되어 그 호를 현중(玄中) 법사라 하였고, 그 부인이 법을 듣고 함께 날아올라 묘범천왕(妙梵天王)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계빈국의 분타력(憤陀力)이라 이름하는 왕이 함부로 살생하여 무도하였기에 현중 법사가 이를 제도하고자 이씨의 태중으로 화생하여 82년 만에 왼쪽 옆구리를 가르고 태어났는데, 머리가 백발이었다 합니다. 3개월이 지나자 흰 사슴을 타고 윤희와 함께 서쪽으로 나가서 단특산(檀特山)에 숨어 버렸습니다. 3년 만에 분타력왕이 사냥을 하다가 그를 보고 바로 불로 태우고 물속에 빠뜨렸는데도 노자가 죽지 않자, 마침내 왕이 항복하여 바로 머리를 깎고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 그의 성이 석()씨이고 법호를 사문(沙門)으로 이름하였습니다. 정과(正果)를 이루어 석가모니불이 되었으니, 한나라 치세에 그 법이 동쪽으로 흘러 왔다 합니다.

문시전(文始傳)에서는, 노자가 호나라를 교화하고자 윤희를 스승으로 추천하여 호나라를 교화하였다고 하는데, 소빙경(消氷經)에서는, 윤희가 노자를 스승으로 추천하였다고 합니다. 문시전에서는, 우리 스승을 부처님이라 이름하니, 부처님은 무상도를 섬겼다고 말하면서 다시 무상도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 윤희를 부처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누가 스승이고 제자인지 여러 갈래로 헷갈리니, 어떻게 그러한 가르침을 가르침이라 이름하여 기릴 수가 있겠습니까?

화호소빙경(化胡消氷經)에서는 모두 노자가 계빈국을 교화하고 스스로 부처가 되었다고 말하고, 광설품에서는 분타력왕(憤陀力王)이 늙어서 부인을 얻었는데, 마침내 도를 얻게 되자 그 호가 석가모니불로 진()나라와 한()나라에 유포되었다고 합니다. 현묘편(玄妙篇)에서는 노자가 관문에 들어가 천축 유위국(維衛國)에 이르러 청묘(淸妙)부인의 입 속으로 들어간 뒤, 다음해 48일에

 

옆구리를 가르고 태어나 손을 들면서,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높다[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가 다 고통뿐인데 무엇이 즐겁겠는가?’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계빈의 한 나라에서만 다섯 부처가 함께 출현하였으니, 첫 번째가 윤희로 호를 유동이라 하였고, 두 번째는 노자로 계빈을 교화하였다 하고, 세 번째는 노자가 분타왕의 부인이 되어 그 호를 석가라 한 것이고, 네 번째는 노자가 유위국(維衛國)에서 부처를 이루었는데 역시 그 호를 석가라 하였고, 다섯 번째는 백정왕(白淨王)의 아들인 실달(悉達)이 부처를 이루었는데 역시 그 호를 석가라 하였습니다.

문시전에 따르면, 5백 년마다 한 사람의 현자가 나오고 천 년마다 한 사람의 성인이 나온다는데, 지금 다섯 부처가 함께 나왔으니 어찌 번거롭게 생각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성인이 그 몸을 갈라서 만물을 제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경전을 말씀하시는 것도 다방면으로 나뉠 수 있는데 어째서 노자의 교화가 이렇게 많은데도, 그 경이 변함없이 두 권의 경뿐이겠습니까?

심지어 유동(儒童)ㆍ윤희(尹喜)ㆍ분타불의 경전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없고 단지 백정왕의 아들이 말한 것만이 있으니, 이로써 미루어 보면 노자와 윤희가 부처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거짓인지 낱낱이 폭로됩니다. 또 노자 경전의 비설(秘說)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전후로 순서 매기는 것조차 참으로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자는 부처를 만들 수 있었으나 단 한 사람의 도사조차도 부처를 받들 줄 모르니 참으로 그 미혹이 심합니다. 아비가 도사인데 어떻게 도인의 자식으로 도사를 삼겠으며, 어떻게 도인이라면서 그 아비를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6) 오련생시(五練生尸)

오련경(五練經)에서는, “멸도(滅度)한 자는 빛깔 있는 비단을 쓰고, 천자는 1(), 공경이나 왕후는 1(), 서민은 5()을 사용한다. 임금은 금 다섯 냥으로 한 마리의 용을 수놓고 서민은 철사를 사용한다. 다섯 가지 빛깔의 돌 다섯 매에 옥문(玉文)을 써서 밤을 새었다가 이슬이 내리면 묻는데 깊이는 3()이다라고 하였다.

여청문(女靑文)에서는, “9대 조상의 유혼이 바로 긴긴 밤에 나와 광명천(光明天)으로 들어가니, 32년 동안 공양하면 그 옛날 형태를 되돌려

 

다시 태어난다고 합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삼원품(三元品)가운데 천지의 대수(大水)가 있고, 3()9()9()120()가 있어서 죄를 내리고 복을 주는 공을 행한다고 하는데, 생각해 보면 관서(官書)와 차이나는 것이 없습니다. 착한 이는 수명을 늘리고 악한 이는 줄여서 계산한다 하는데, 어떻게 업행(業行)에 기인하지 않고 5척의 비단실을 써서 9대 조상의 영혼을 광명천(光明天)에 들어가게 하며, 32년이 지나야 예전 형태로 되돌리게 된다는 것입니까?

참으로 합당하지 못한 말이라는 것을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오련의 글을 따져 보면, 천지가 갈라지기 이전에 나왔다는데, 지금까지도 이를 응용합니다. 32년 후에 묘지를 뚫고 나온다는 것은 귀와 눈으로 알 수 있는 것인데, 희황(羲皇) 이래로 도사들의 죽은 송장들이 9대 조상까지 땅에서 나왔다는 것을 어째서 듣지 못한 것입니까? 그 합당하지 못한 작태가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지금 근교에 있는 오래된 분묘는 대개 구멍이 나 있는데, 이 어찌 도사의 조부가 다시 태어난 장소가 아니겠습니까? 이 또한 참으로 이를 드러내고 웃을 만합니다.

 

(7) 관음시도(觀音侍道)

도사가 태상도군을 노자의 형상으로 만들고, 두 분의 보살을 옆에 세웠으니, 첫 번째는 금강장(金剛藏)이라 이름하고, 두 번째는 관세음(觀世音)이라 이름합니다. 또 도사가 누런 베옷을 입고 그 옷을 몸에 둘러 치마처럼 입는 것은 옛날 현자들의 옷이라 했는데 지금은 멋대로 입고 앞에다 두 개의 띠를 두르는 것조차 없앴으니, 이것은 스님들의 옷 입는 모양을 그대로 본 뜬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제천내음팔자문(諸天內音八字文)에 따르면, ‘범형낙공(梵形落空), 구중추전(九重推前)’이라 하였는데 천진황인(天眞皇人)이 해석하여 말하기를 범형(梵形)이란 원시천존이니, 바로 용한(龍漢)시대의 호입니다. 적명년(赤明年)에 이르러 관음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촉기(蜀記)에 따르면, ‘장릉(張陵)이 질병을 피하고자 구사(丘社) 가운데에서 귀신을 부리는 술법을 얻었다. 스스로 부서(符書)를 만들어 백성을 속이다가 큰 뱀에게

 

먹혔는데도 제자가 이를 부끄럽게 여겨 백일승천하였다. 장릉의 아들 장형(張衡)이 계사(係師)가 되고, 장형의 아들 장로(張魯)가 사사(嗣師)가 되어 요망한 법을 이어가며 대대로 천하를 어지럽혔습니다라고 하였다. 한서(漢書)에서는, ‘유언(劉焉)이 장로를 독의사마(督義司馬)로 삼았는데 한중태수 소고(蘇固)를 죽이고 한중을 차지하고서 귀도(鬼道)로 사람을 교화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에 누런 옷이 임금이 되리라는 말을 퍼뜨리고서 장로가 바로 그 부하들에게 누런 옷과 모자와 두루마기로 고쳐 입도록 하여 한실(漢室)의 대를 잇는 징조로 삼았습니다. 이 이래로 누런 옷이 끊이지 않다가 끝내 사문의 복식을 흉내내니, 참으로 불쌍하다 하겠습니다.

입신(立身)의 근본은 충효를 우선하는 것인데, 자식이 상()으로 아비를 모신다는 것은 천지 개벽 이래로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관음은 그 지위가 지극하신 대사(大士)이시나, 노자는 대현(大賢)에도 미치지 못하니, 이야말로 할아버지를 세워 손자를 시중들게 하는 꼴인지라 참으로 불효막심하다 하겠습니다. 또 장로와 같은 반역자의 옷을 흉내 냈으니, 참으로 불충합니다. 이미 불충하고 불효한데, 그 자취를 어떻게 따르겠습니까?”

 

(8) 불생서음(佛生西陰)

노자의 서문에서는, “음양의 도가 만물을 바꾸어 이룩한다. 도는 동쪽에서 생겨나서 목()이 되고 양()이 되나, 부처는 서쪽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금()이 되고 음()이 된다. 도가 아비이면 부처는 어미이며, 도가 하늘이면 부처는 땅이고, 도가 생하는 것이면 부처는 죽는 것이고, 도가 인()이면 부처는 연()이니, 이처럼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처란 도가 생겨난 것이고, 대승(大乘)이 선도(善道)를 지키는 것은 자연에서 생하는 바가 없습니다. 부처가 법회를 크게 여는 것은 땅의 방정함을 본받으려는 것이고, 도가가 법회를 작게 여는 것은 하늘의 원만함을 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도인이 병역(兵役)을 받지 않는 것은 음기(陰氣)의 여인의 모습이라 하니, 이 때문에 병역을 부과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가는 이로써 병역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도인이 천자와 왕후를 만나더라도 절하지 않는 것은 여인들이 궁궐 깊숙이 있어 정치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본뜬 것이고, 도사가 천자와 수령을 만나 뵙고 절하는 것은 그 정치에 관여하여 신하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가의 법회에서는

 

술을 마셔도 허물이 없으나, 부처의 법회에서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은 여인들이 술을 마시면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범하기 때문입니다. 도가의 법회에서 재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생()을 중시하기 때문에 살려면 반드시 먹어야만 하나, 부처의 법회에서 재법을 지키는 것은 사()를 중시하기 때문에 죽으려면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여인들은 음식을 절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도 풀이합니다. 도인이 혼자 자는 것은 여인들이 한 명의 지아비를 수절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도사들이 혼숙하는 것은 삼갈 것이 없기 때문이라 합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문시전에서는, ‘도가 동쪽에서 생겨나니 목남(木男)이고, 부처는 서쪽에서 생겨나니 금녀(金女)이다. 지금 오행(五行)으로 이를 미루어 보면, 금이 나무를 깎아낼 수 있으니 나무가 금으로써 관부(官府)와 귀신을 삼고, 금은 나무로써 처첩과 재물을 삼는다고 합니다. 이로써 헤아려 보면, 부처는 도의 관부(官府:朝廷政府)와 귀신이고, 도는 부처의 처자식과 재물이라고 합니다. 다시 도에서 부처가 생겼다고 말하는데, 이 이치 또한 온당치 못합니다.

음양 오행(五行)에 어떻게 금()을 생하는 목()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도가 부처를 낳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인이 가부좌하는 것은 바로 도의 관부이기 때문이고, 도사가 무릎 꿇고 앉는 것은 위로 관리에게 핍박받기 때문입니다. 도인이 병역과 조세를 내지 않는 것은 그 근본이 왕족이기에 면제받는 것이고, 도사는 천민인지라 병역과 조세를 늘 내야 하는 것입니다.

도가의 경전이 이러하므로, 만약 병역과 조세를 면제하면 도교의 가르침과 어긋나게 됩니다. 영보대계(靈寶大誡)에서는, 도사가 술을 마시지 않고 귀한 것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는데, 어떻게 고의적으로 대계(大誡)를 위반할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제멋대로 말하는 것은 모두 가리킬 것조차 없는 것입니다. 또 도사는 재법을 사법(死法)으로 여기는지라 재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음식을 먹지 않고 해가 지도록 이 같은 몸뚱이를 길러서 곡식을 끊고 옥기(玉氣)를 마시는 것으로 장생(長生)을 구하는 술법이 되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그 끝을 보지 못할지니, 참으로 그림자를 붙잡는 논리라 하겠습니다.

또 도인은 혼자 자고 도사는 함께 잔다 하였으니, 이같이 그 기운을 합하는 것에 근거하더라도 황서(黃書)가 어찌 망령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9) 일월주경(日月周徑)

문시전에서는, “하늘은 땅에서

 

409천 리나 떨어져 있다. 해와 달의 직경은 각각 3천 리이고, 그 둘레가 6천 리이다. 하늘과 땅의 정남과 정북[午子]은 서로 9천억 리나 떨어져 있고 묘유(卯酉)의 사우(四隅)도 이같이 둥근 형태라 합니다. 제고경(濟苦經)에서는, “곤륜산의 높이는 15천 리라 합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제고경에 따르면, 하늘과 땅의 거리가 15천 리라 하는데, 이는 앞서의 문시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문시전에서는 해와 달의 주위가 6천 리이고 직경이 3천 리라 하는데, 산법(算法)에 따르면, 그 주위가 최소한 9천 리는 되어야지, 어떻게 6천 리에 불과합니까?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도가에서는 늘 이렇게 기술하는데, 지금 사우(四隅)가 사방(四方)과 길이가 같다면, 바로 하늘과 땅이 모두 둥글어야 마땅합니다. 화호경에서는, 불법은 그 상한이 33개 천상에 그치기에 도가의 81개 천상에 미치지 못한다고 이르고, 다시 곤륜산은 9()으로 그 중마다 거리가 9천 리인데 산에는 네 기슭이 있어 기슭마다 한 곳의 천상이 있다 하니, 이 때문에 넷에 아홉을 곱하여 36개의 천상이 있으며, 1중은 제석(帝釋)이 산다고 합니다. 지금 곤륜산의 높이가 15천 리라 하는데, 이에 9중이 있어 1중마다 9천 리라고 하면, 전체 높이는 81천 리가 되는데 구태여 15천 리라 말하니, 이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 참으로 가소로울 뿐입니다.”

 

(10) 곤륜비부(崑崙飛孚)

문시전에서는, “만만억(萬萬億)하고 만만 년 전에 하나의 대수(大水)에 곤륜산이 떠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에 비선(飛仙)이 천왕(天王)과 선민(善民)을 맞이하여 산 위에 안치하였습니다. 다시 만만억 년 이후에 큰 불이 일어났는데, 이때 성인이 천왕과 사람을 날아가 맞이하여 산 위에 안치했다고 합니다.

신 견란이 이를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제고경에서는, ‘천지가 겁수마다 불타서 텅 비어 환해지니 맑은 기운은 하늘이 되고 탁한 기운은 땅이 되는지라, 거령(巨靈)

 

호해(胡亥)를 시켜 예전처럼 산과 강이나 해와 달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곤륜산조차도 떠 있는 판에 어떻게 선인(仙人)을 맞이하여 산 위로 안치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하늘과 땅이 텅 비었다면 산조차도 불에 타 버렸을 터이니, 참으로 이치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천왕과 선인(仙人)을 맞이하여 산 위에 안치했다는 것입니까?

도인묘경(度人妙經)에서는, ‘5억의 중천(重天) 위 대라천(大羅天)에 옥경산(玉京山)이 있는데 3()가 미치지 못한다고 이르니, 태상도군이 자비로운 것을 계산해 보면, 어째서 이들을 옥경산으로 맞이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그 죽는 것을 보면서도 맞이하지 않았다면, 이는 자비롭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맞이할 수가 없었다면 이는 단순히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도인본행경(度人本行經)에서는, 태상도군이 자신이 겁수에 따라 죽고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태상도군은 대라천상에 있어서 3()가 미치지 못하는데도, 어떻게 겁수에 따라 죽고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나머지에 불과한 비선(飛仙)이 어떻게 천왕과 선인을 맞이하여 산상에 안치하여 죽음을 면하게 할 수 있습니까?

참으로 크게 어리석으니 이 또한 가소로울 뿐입니다.”

 

(11) 법도천치관(法道天置官)

오부경(五符經)에서는 중황도군(中黃道君)의 말을 인용하여 하늘이 만물을 낳되 사람을 귀한 것으로 삼았다. 사람 몸에는 천지를 머금었으므로 본받지 않는 것이 없는지라, 천자(天子)를 세우고 3()9()27대부(大夫)81원사(元士)9()120()1200()을 두었다. 담장(膽臟)으로 천자대도군(天子大道君)을 삼고, 비장(脾臟)으로 황후를 삼고, 심장으로 태위(太尉)를 삼고, 왼쪽 신장으로 사도(司徒)를 삼고, 오른쪽 신장으로 사공(司空)을 삼고, 8() 및 배꼽을 봉()하여 9()을 삼았는데, 주루(珠樓)의 신()12, 위장(胃臟)의 신이 12, 삼초(三焦)의 신이 3명이라 합니다. 도합 27명의 대부에다 다시 사지(四支)의 신인 81명 원사를 합치면 120명입니다. 이것을 본받아 군()의 숫자를 정했다고 하며, 폐장은

 

상서부(尙書府)로 삼고, 간장은 난대부(蘭臺府)로 삼았다고 합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도가 경전의 주()와 현()의 명칭을 검토해 보면, 그 글의 출전이 근대와 비슷한데, 옛날의 현은 크다 하고 군은 작다 하였습니다. 춘추주서(周書)낙고(洛誥)를 살펴보면 지금은 도리어 군이 현보다 크게 되었으니, 이것은 반드시 춘추 이전에 나온 도가 경전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거짓되게 속이는 것뿐으로 볼 만한 것이 없으니, 이 또한 가소롭다 하겠습니다.”

 

(12) 칭나무불(稱南無佛)

화호경에서는, “노자가 호나라를 교화하였으나 왕이 그 가르침을 받지 않자, 노자가 왕이 이처럼 믿지 않는다면, 내가 남쪽의 천축으로 가서 여러 나라를 교화하여 그 도를 크게 일으킬 것이다. 이 이래로 남쪽에는 존귀한 부처님이 없었다고 말하자, 호나라 왕이 여전히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만약 남쪽에서 천축을 교화한다면, 내가 마땅히 머리 숙여 남쪽에 부처님이 없었다고 말하겠다고 하였다고 이릅니다. 유사(流沙)6)의 변방에는 가이국(加夷國)이 있어 늘 겁탈을 일삼았기에 호나라 왕이 이것을 근심하여 남자를 시켜 변방을 지키게 하였다. 이로 인해 그와 같은 남자를 우바새(憂婆塞)라 이름하였다. 여자는 가이족에게 겁탈을 당할 것이 두려운 데다, 또한 그 지아비가 가이족(加夷族)에게 곤란 겪는 것을 근심하였기 때문에, 이로써 우바이(憂婆夷)라 이름하였다고 합니다.

신 견란이 이를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호나라에서 나무(南無)라고 이르는 말은 귀의(歸依)한다는 뜻이고, 또한 나를 구제해 달라는 것입니다. 호나라에서 우바새라고 하는 말은 착하고 신심 있는 남자를 가리키고, 우바이는 착하고 신심 있는 여자를 뜻합니다. 만약 노자의 말대로, 부처님이 남쪽에서 출현하시는 것을 가리켜 나무불을 남쪽에는 부처님이 없다는 뜻으로 새긴다면, 만약 부처님이 서방에서 출현하시면 서무불(西無佛), 서쪽에는 부처님이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만약 남자가 변방을 지키느라 이름을 우새(憂塞)라 이름하고, 여자가 그 지아비를 걱정하면서 한편으로 가이족을 두려워하여 우이(憂夷)라 이름하였더라도, 우바새와 우바이의 가운데 할머니 바()라는 글자는 그 뜻을 알지 못한다고, 이를 다시 할머니를 근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같이 글자에 따라 풀어 새기느라 스스로 졸렬함에 곤욕 치르는 것이 참으로 우습기만 합니다.”

 

(13) 조적전문(鳥跡前文)

통신삼황경(洞神三皇經)에서는, “서역에 있는

 

선인을 일컬어 황문(皇文)이라 하니, 이는 바로 3() 이전의 새이다. 그 발자취가 바야흐로 문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3황이란 바로 삼통(三洞)의 존신(尊神)으로 대유(大有)가 그 기운에 뿌리한다. 천황(天皇)은 기운을 주재하고, 지황(地皇)은 신령을 주재하고, 인황(人皇)은 생민(生民)을 주재하는데, 이 세 가지가 합쳐서 덕을 이루어야 만물이 화생한다고 합니다.

신 견란이 이를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남극진인문사품(南極眞人問事品)에서는, ‘영보(靈寶)의 진문(眞文)이 모두 36권인데, 옥경산(玉京山) 현대(玄臺)의 옥실(玉室)에 있으니, 진문(眞文)의 대자(大字)는 그 가운데 가득하다. 하늘과 땅이 꺼지고 가라앉으며 만 번 이뤄졌다가 만 번 무너지더라도 진문은 홀로 빛난다고 하는데, 이 같은 진문이 바로 삼통(三洞)의 문자이다라고 합니다. 3황이 바로 삼통의 존신(尊神)이라면, 그 문자가 삼통 이후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때에는 날짐승과 들짐승조차 없었는데, 어떻게 3황 이전의 새 발자국이 문자의 시초가 되었겠습니까?

만약 복희(伏羲)3황으로 삼는 경우라도, 회남자(淮南子)에 따르면, 황제가 창힐(倉頡)을 시켜 새 발자국을 살펴 문자를 만들게 하였다고 이르니, 이는 황제의 시절에 해당되는데, 어떻게 3황 이전에 새의 문자가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까?”

 

(14) 장건취경(張騫取經)

화호경(化胡經)에서는, “가섭(迦葉)보살이 말하기를, ‘여래가 멸도한 이후에 5백 년이 지나면 내가 동쪽으로 가서 도를 한평자(韓平子)에게 수여하고 백일승천(白日昇天)하리라. 다시 2백 년이 지나서 도를 장릉(張陵)에게 수여하고, 다시 2백 년이 지나면 도를 건평자(建平子)에게 수여하고, 다시 2백 년이 지나면 천실(千室)에 수여할 것이다. 이 이후로 한나라 말엽에 이르면 모두 흩어져서 내 도를 받들지 않게 되리라고 하였다. 마침내 한나라 명제 영평(永平) 7년 갑자년에 별이 낮에 나타나 서쪽의 밤하늘에 빛나고, 명제(明帝)가 신인을 꿈꿨는데, 키가 16척이고 정수리에 해와 같은 빛이 있었다. 새벽에 여러 신하에게 물어 보았는데, 부의(傅毅)서방 호나라 왕의 태자가 성도하여 부처가 되었으니, 그를 부처님이라 부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명제가 바로

 

장건 등을 보내 하원(河源)을 지나 36개 나라를 거쳐서 사위국을 찾아갔으나, 부처님께서 이미 열반하셨기에 그 경전 605천 자를 필사하여 영평 18년에 돌아왔다고 이릅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한서에서는, ‘장릉(張陵)은 후한 순제(順帝) 때 사람인데 촉에서 유학하다가 학명산에 들어가 뱀에 먹혔다고 이릅니다. 순제가 명제의 7대손인 것을 따져 보면, 명제보다 1백여 년이 앞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또 명제가 장건을 파견하여 하원(河源)으로 보냈다는데, 이 또한 망령되이 조작한 것입니다. 한서에 따르면, 장건은 전한의 무제를 대신하여 하원으로 갔는데, 어떻게 후한의 명제가 저 사람을 또다시 파견할 수 있습니까? 장건이 얼마나 오래 장수를 누린 신선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대로 부림을 받았으니 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 망령되이 인용하는 것이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15) 일월보집(日月普集)

제천내음(諸天內陰)의 제3종표천(宗飄天)의 팔자문(八字文)에서는, “()ㆍ낙각(落覺)ㆍ보대(菩臺)는 대라(大羅)의 천천(千天)에 연유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진황인(眞皇人)이 해석하여 택이란 하늘 가운데의 산 이름으로 온갖 용이 깃드는 곳이다. 낙각은 태상도군의 내명(內名)이다. 보대는 진인(眞人)의 은밀한 호칭이고, 옥대(玉臺)는 택산(澤山)의 양()에 처하는데, 3만 개의 해와 달이 그 좌우를 비추니 나한월부인(羅漢月夫人)이 된다. 대겁(大劫)3재가 그치고 나면, 제천(諸天)의 해와 달이 옥대의 밑으로 모이고 대천세계가 나뉘어 천하가 바뀌매 마침내 대천세계가 텅 빈다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제고경에서는, ‘건곤(乾坤)이 텅 빈 이후에 거령(巨靈) 호해(胡亥)를 시켜 산과 내를 이루고 깜깜한 속에서 해와 달을 이룩한다. 곤륜산의 남쪽 30()리 떨어진 곳에 다시 곤륜산이 있으니, 이 같은 순서대로 1천 개의 곤륜산이 있는 것을 소천세계(小千世界)라 이름하고, 다시 1천 개의 소천세계를 중천세계라 이름하고,

 

다시 1천 개의 중천세계를 1대천세계라 이름한다고 합니다. 이를 따져 보면, 대천세계 가운데에 1백억 개의 해와 달이 있다고 합니다. 다시 경전에서는, ‘대겁이 교차하면 천지가 뒤바뀌는데 해와 달과 성신이 남아 있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만약 그와 같이 널리 모여들어 1백억 개가 함께 온다면, 어떻게 단지 삼천세계만 이루겠습니까?

만약 달리 남아 있어 모이지 않는다면, 이는 재앙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되기에 반드시 그 본계(本界)보다 작을 것입니다. 만약 작다고 하면, 땅 위의 범부들이 여전히 해와 달의 비춤을 받는다는 것인데, 천상의 복이 훌륭하다면서 어떻게 홀로 그 비춤조차 없게 됩니까?

또 해와 달의 밑이 욕계(欲界)라면 그 아래 사람들은 대라천(大羅天)의 상계에도 재앙이 미치지 않는 공덕이 없기에 지금 오지 않았다고 해야만 이치에 들어맞게 됩니다. 이 같은 경전을 지은 이가 오직 대천세계란 이름만을 주워듣고, 해와 달의 수효는 미처 알지 못했음을 알 수 있으니, 어찌 이를 옳다고 하겠습니까?”

 

(16) 태상존귀(太上尊貴)

문시전에서는, “노자가 윤희와 더불어 천상을 다니면서 구중(九重)의 백문(白門)에 들어가자 천제(天帝)가 노자를 보고 절을 하였다. 이에 노자가 윤희에게 천제와 함께 맞절을 하라고 명하면서 노자가 말하기를, ‘태상은 존귀하기 때문에 태양조차도 불러들여서 만나 본다. 태상은 옥경산 칠보궁(七寶宮)에 있으니, 여러 천상을 벗어나 있기에 고요하고 그윽하며 맑고 아득하다고 하였다고 이릅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신선전(神仙傳)에서는, ‘오군(吳郡)의 심의(沈義)가 대낮에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가 4백 년 후에 집에 돌아와서, 처음 천상에 올라가서 천제를 알현하려 하였으나, 너무 존귀하여 만나 뵐 수 없었고, 그 다음에 드디어 먼저 태상(太上)을 친견하였는데 정전(正殿)에 앉아 있으면서 시중드는 남녀가 수백 명이나 되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그 정황이 분명해지니, 태상이 천제보다 열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태상이 존귀하여 온갖 천상의 위에 존재한다니, 참으로 허무맹랑합니다. 지금 구천생신장(九天生神章)에 근거하면, 태상은 현도궁(玄都宮)에 머물고 있다는데, 옥청궁(玉淸宮)

 

현도의 위에 있다면, 어떻게 동궁(童宮)이 다시 옥청궁 위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로써 현도의 양중(兩重)보다 높다 하겠습니다. 그런데도 노자가 태상이 온갖 천상을 다스린다고 말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합니까?”

 

(17) 오곡위고명지착(五穀爲刳命之鑿)

화호경에서는, “3황이 도를 닦았기에 그 백성들이 모두 죽지 않았다. 상고시대(上古時代)에 하늘에서 감로(甘露)가 내리고, 땅에서는 예천(醴泉)이 나는지라, 이를 먹고 마셔서 장생하였다. 중고시대(中古時代) 이래로 하늘에서 오기(五氣)가 내리고 땅에서 오미(五味)가 나와 이것을 먹으면 수명이 늘어났다. 하고시대(下古時代)에는 하늘은 비바람을 내리고 땅은 온갖 짐승을 길렀는데, 세상이 천박하고 경솔해져서 사람들이 이것을 잡아먹게 되었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서 일찍이 백곡을 억조창생에게 내렸는데, 마침내 3황이 각각 5()의 미곡을 바쳐서 신표(信標)로 삼아 세세생생 그 자손들에게 오곡이 끊어지지 않고 신주(神州)에서 살아가게 할 것을 구하였다고 이릅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오부경(五符經)에서는, ‘삼선왕(三仙王)이 황제(皇帝)에게 고하기를, 사람이 늙도록 장수하는 까닭은 오곡을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고 이르고, 대유경(大有經)에서는 오곡은 목숨을 뺏는 연장이다. 오곡의 냄새만 맡아도 그 명이 단축되는데, 이 같은 곡식을 뱃속에 넣으면 오래 살 희망이 없으니, 그대가 죽지 않으려면, 장 속에 썩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이릅니다. 오부경에서는, ‘황정(黃精)3()의 기운이다. 태청궁(太淸宮)에 올라가 먹어 보니 참으로 맛이 있어서 장수할 수 있다고 일렀는데, 노자가 어째서 일찍이 이것을 맛보지 않고 오곡을 먹으면 사람의 장을 썩게 한다고 하였는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3()이란 모두 신인(神人)인데, 어째서 그 자손들에게 장생의 나라에서 왕이 되게 하지 않고, 도리어 5두의 곡식으로 자손들에게 신주에서 왕이 되기를 청하게 하여 목숨을 끊고 장이 썩어서 수명이 단축되는 것을 구하였겠습니까? 이 또한 참으로 가소로울 뿐입니다.”

 

(18) 노자작불(老子作佛)

현묘내편(玄妙內篇)에서는, “노자가 관문에 들어가 유위국(維衛國)으로 가서 청묘부인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왼쪽 옆구리를 가르고 태어나 일곱 보를 걸으면서 천상천하에 내가 제일 높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마침내 불법이 있게 되었다고 이릅니다.

신 견란이 이를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화호경에서는, 노자가 계빈국을 교화하여 모두 부처님을 받들게 하였는데, 노자가 이 이후로 다시 1백 년이 지나 도솔천상에 계시는 진불(眞佛)이 사위국 백정왕의 궁전에 태어나니, 내가 이 때 윤희를 하계(下界)에 태어나게 하여 부처님을 따르게 할 것인데, 그는 아난(阿難)이라 이름하면서 십이부경(十二部經)을 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노자가 떠난 지 1백 년 후에 사위국 왕이 과연 태자를 낳았으니 6년간의 고행 끝에 성도하여 부처님이라 명호하면서 자()를 석가문이라 하였습니다. 49년 동안 있다가 열반에 들고자 하기에 노자가 다시 찾아뵈었으니 세간에서 가섭(迦葉)이라 이름한다고 합니다. 사라쌍수(沙羅雙樹) 사이에서 여러 대중을 위하여 여래에게 서른여섯 가지 질문을 드리고 나자, 부처님이 바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에 가섭보살이 부처님의 시신을 화장하여 사리를 얻어 나라마다 갈라 주고 탑을 이룩하였는데, 아육왕이 다시 84천 개의 탑을 이룩하였다고 합니다. 이 같은 일로 미루어 보면, 노자가 원래 부처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부처가 되었다면, 어떻게 노자가 다시 자신의 몸을 손수 불태워서 탑을 이룩할 수 있었는지 참으로 가소롭기만 합니다.

또 노자는 여러 경전마다 부처가 되었다고 자주 이르는데, 혹 국사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어찌 천하의 국사와 부처가 반드시 백양(伯陽:노자의 자)을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람을 제도하고 세속을 교화하는데 반드시 이이(李耳)가 필요했겠습니까?

만약 부처님이 이루지 못하여 반드시 도가 필요했다 하더라도, 기운이 시작된 이래로 오직 노자 한 사람뿐이니, 다른 사람이 대도를 깨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어찌 국사 노릇을 온전히 하였겠습니까?

이는 바로 노자가 자신의 공적을 위해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도록 도모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불경에서는 사람마다 행하기만 하면 모두 불과(佛果)를 얻는다고 하나, 도가의 경전에서는 이를 기술하지 않고 오직 한 사람의 태상노군만을 기리니, 어찌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와 같이 넓으며, 도가의 경전은 이처럼 좁습니까?

또 망령된 말과 거짓된 기술이 서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촉기(蜀記)에는, 장릉이 뱀에 먹혔다고 적혀 있는데도,

 

백일승천 하였다고 거짓 주석을 달았고, 한서에는 유안(劉安)이 처형당했다고 적혀 있는데도, 오래 살아 죽지 않았다고 헛되이 일컬으니, 도가에서 노자가 부처가 되었다고 속인다 해도, 어찌 이상할 것이 있겠습니까?

조천지경(造天地經)에서는, ‘서쪽에서 호나라 왕을 교화하고 노자가 그 형태를 변화시켜 떠나가니, 왼쪽 눈은 해가 되고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다고 이르는데, 현묘경(玄妙經)에 따르면, 노자가 해의 정기(精氣)를 타고 청묘(淸妙)부인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하니, 이것은 노자가 외눈박이의 정기를 타고 입에 들어간 게 됩니다. 이를 따져 보면, 대도는 통신(洞神)하여 있지 않는 곳이 없는데, 하필이면 한 가닥의 정기에 의지하여 태중에 들어가야만 하겠습니까?

만약 반드시 정기를 빌려야 한다면, 그 정기가 머리에 의지해야 합니다. 만약 머리를 타고 들어갔다면, 두 눈을 갖추어 나와야 하는데, 지금 외눈박이를 타고 들어갔으니, 바로 외눈박이 편견(偏見)의 대도를 이루는 것인지라, 이 어찌 가소롭지 않겠습니까?”

 

(19) 칙사구담(勅使瞿曇)

노자화호가(老子化胡歌)에서는, “내가 사위국에 있을 때에 구담 너에에게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너는 마하살과 함께 경을 가지고 동진(東秦)으로 오너라. 신주(神州)의 경계에서 동해에 이르도록 널리 세존의 법을 선포하여 귀먹은 속인들에게 전해 주어라. 그대에게 위신법(威神法)을 전하노라. 도를 교화하여 1천 년을 채우되 1천 년을 채운 때에는 돌아오되 동진에 연연하지 말아야 하니, 천재가 진노하고 태상이 땅을 구르며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거라하였다고 합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구담(瞿曇)이란 바로 석가(釋迦)입니다. 화호경에서는, ‘주나라 장왕(莊王) 본초(本初) 3년 병진년에 백정왕의 세 아들이 정각(正覺)을 얻어 호를 석가불이라 하였는데, 노자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을 보고서 사람들이 게을러지는 것을 염려하여 다시 다라(多羅) 마을에 내려왔으니, 호를 가섭이라 불렀다.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시신을 화장하고 뼈를 거두어 탑을 세우고 나누어 주었다고 이르는데, 만약 앞서의 글과 같다면, 석가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미리 구담을 동쪽 땅으로 보낼 수가 있었겠습니까?

또 이미 태어나 부처가 되었다면, 그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 같은 일이 허용되지 않는데,

 

어떻게 가섭이 영을 내려 천 년간 사자를 얻을 수 있겠으며, 어찌 보살이 몸소 부처님을 섬기면서 부처님께 영을 내려 사자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또 주나라 장왕(莊王) 1세의 정치는 15년에 불과한데, 그 원년이 을유년이기에 근본적으로 병진년이란 햇수가 없으니, 저 본초라는 연호조차도 얼마나 황당합니까? 이미 귀를 막기에도 충분한데, 어찌 또 태상이 땅을 구르며 노했다고 날조하는 것입니까?”

 

(20) 이주포사사구도(以酒脯事邪求道)

도인묘경(度人妙經)에서는, “삼계(三界)의 마왕(魔王)이 각각 노래를 지었으니, 이를 1백 번 외우면 남궁(南宮)으로 건네준다. 1천 번 외우면 마왕이 보호하여 맞이하고, 1만 번 외우면 대공(大空)으로 날아올라 삼계를 지나 선공(仙公)에 오른다고 이릅니다. 현중정경(玄中精經)에서는, “도사가 계율과 부록(符籙)을 받으면, 오악에 단위를 설치하고 술과 고기를 늘어놓고 두 번 절해야 한다고 합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관신대계(觀身大誡)에서는, 도를 배우는 이는 귀신에게 제사지내거나 절을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욕계의 마왕이 제유(諸有)를 제도하지도 못하였는데, 어떻게 백 번 외우면 남궁으로 건네준다는 것입니까?

3()의 법에 따르면, 춘분과 추분 2분에 토지신[]과 조왕신[]에게 제사지내고 동지와 하지 2지에는 세속과 같이 제사지내되, 병부(兵符)ㆍ사계(社契)ㆍ군장(軍將)ㆍ이병(吏兵) 모두에게 계율을 권장하는 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사(神社)가 신을 위한 것이고 도를 위한 것이라면, 어떻게 신에게 도사가 절하지 않을 것이며, 그 도에 따라 술과 고기를 늘어놓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입으로는 마왕의 말을 암송하며 몸으로는 예배하고 제사를 지내면서, 어찌 삼계를 벗어나고자 간구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불쌍합니다.”

(21) 불사란정(佛邪亂政)

화호경에서는, “부처님이 호나라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서방은 금기(金氣)가 강해서 예의가 없다. 신주(神州)의 선비는 그 의법(儀法)을 본받아 부도(浮圖)를 만들고 곳곳마다 오로지 불경만을 숭상하여 근본을 등지고 지말로 치달았다. 말이 실답지 않아 묘한 법에 부합되지 않고, 경전과 불상만을 꾸며서

 

국왕과 대신을 속인다. 이로써 천하에 홍수나 가뭄이나 전쟁이 일어나 서로를 정벌하게 되었는데, 10년도 되지 않아서 재난이 널리 드러나고 5()7)이 도수(度水)8)를 잃어 산이 무너지고 강이 마르게 되었다. 왕법의 교화가 태평하지 못한 것은 모두가 부처에 연유한 환난이니, 황제가 종묘를 섬기지 않고 서인(庶人)이 그 조상을 배향하지 않는지라, 이로써 신기(神祇)의 도()의 기운이 다시 회복되지 못한다고 이릅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지혜죄근품(智慧罪根品)에서는, ‘원시천존이 내가 상황 원년 이래로 반 겁 동안 사람을 제도하였으니, 그 목숨이 18천 년이나 늘어났다. 내가 떠난 이후에 후세 사람들이 마음이 피폐해져 삿된 신에게 방자하게 제사지내고 산 것을 죽여 기도하며, 서로 간에 해침이 더욱 심해져서 스스로 단명을 구하니, 마침내 그 나이에 정해진 햇수가 없다고 이릅니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삿된 신을 방자하게 제사지내면 만신(萬神)이 기뻐해야 하고, 기운이 도()와 합쳐지면 복과 이로움을 얻어야만 하는데, 어째서 목숨이 짧아져 수명에 정해진 햇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까?

또 한나라 명제 이전에 불법이 행해지지 않고 도의 기운만이 융성하였는데 어째서 전쟁은 줄지어 일어나고, 가뭄과 홍수는 연달아 찾아왔으며, 피가 뿌려지고[雨血] 산이 무너졌으며, 굶주리고 황폐함이 끊이지 않았으며, 어찌 걸() 임금과 주() 임금은 산 사람조차 불로 지졌습니까?

명제 이후로 불법이 전하여 내려온 5백 년 동안 전대보다 심한 학정이나 재난이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지금으로부터 고대를 징험해 보면, 누군가 속이려 해도 그 일이 죽백(竹帛)에 쓰여 있기에 감출 수가 없습니다.

제가 재주가 용렬함에도 애써 두 가지 가르침을 살펴보니, 도법은 겸양하여 물러서는 것인데, 이같이 내놓고 행하려 들면, 도리어 부처님의 참다움만 드러내게 됩니다. 부처님의 법은 맑고 곧아서 이치를 보존하고 만물의 성품을 열어주는 것인데, 만약 이와 같지 않으면서 도()에 통했다고 하면, 이는 사람을 웃게 만들어 죽이려는 것입니다.”

 

(22) 수목문계고사(樹木聞誡枯死)

노자백팔십계중률(老子百八十戒重律)에서는, “내 계율은 아주 중하니, 나무에 대고 말하면 바로 말라 죽고, 짐승에게 말하면 즉사한다고 이릅니다. 영보경에서는, “현소(玄素)의 도는 옛 사람이 이것을 닦아 햇수를 늘리고 수명을 늘렸으나, 지금 사람은 이것을 닦으면

 

햇수가 줄고 목숨이 다한다고 말합니다. 도사가 삼오장군(三五將軍) 금염(禁厭)이 법을 받을 때, 원망하거나 싫어하는 이는 문둥병에 걸리거나 미쳐서 목숨이 끊어진다고도 이릅니다. 도국왕품(度國王品)에서는, “동방(東方)이 밝아질 때 진신(眞身)을 부르는데, 몸에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문신을 새겼으니, 발의 크기가 1백 보나 된다. 머리는 하늘을 받치고 삿된 귀신을 주로 잡아먹으니 입이 산을 삼킬 만큼 크다. 아침 식사에 귀신 5백 마리를 잡아먹고 저녁에는 355마리를 옷을 입은 채로 삼켜 버린다고 말합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삼원대계(三元大誡)에서는, ‘천존이 10()10() 따위의 법을 말하여 한량없는 사람이 도를 얻었다. 계율에 대해 나쁜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되니, 계율을 듣고서 이를 비방하면 죄를 짓는다고 말합니다. 지금 나무는 마음이 없기에 이를 비방하여 죄를 얻을 만한 생각조차도 없을진대, 어찌하여 계율을 말하면 말라 죽게 된다는 것입니까?

만약 반드시 말라 죽어야 한다면, 이것은 아는 것이[有知] 있다는 것인데, 만약 아는 것이 있다면 그 같은 법을 듣고 깨달아야 도리에 맞습니다. 이 같은 말이 참으로 이처럼 도리에 맞지 않는데도, 어째서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까?

지금 사람이 도를 닦게 되면 목숨이 손상 받는다는 것을 익히 알 터인데, 재난이 이미 행해지는데도 대도(大道)가 관용을 베풀어 다스려야 하는 것을 다스리지 않아 재앙을 후대에까지 미치게 하면서, 어째서 그것을 수록하지 않는 것입니까?

3장의 술()을 살펴보면 외귀과(畏鬼科)9)에서는 왼쪽에는 태극장(太極章)을 차고, 오른쪽에는 곤오철(昆吾鐵)을 차고서 해를 가리키면 해가 공중에 머물고, 귀신을 가리키면 천 리 이내에 그 피가 가득하다. 또 황신(黃神)과 월장(越章)을 만들어 귀신을 죽이고 주장(朱章)으로 사람을 죽인다. 또는 도탄재(塗炭齋)를 행하여 황토를 얼굴에 칠하고 노새가 끄는 연자방아로 갈아 낸 진흙 가운데에 머리를 매달고 두들겨 멍들게 합니다. 마침내 진()나라 의희(義熙) 연간에 도사 왕공기(王公期)가 타박법(打拍法)을 없앴는데도, 육수정(陸修靜)은 여전히 황토를 이마에 바르고 머리를 거꾸로 하여 매달렸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방자한 제사를 여럿이 보게 되면 그만 모두 함께 웃어버릴 것입니다.

한첩여(漢婕妤)를 살펴보면 황제가 그 저주를 의심하자, ‘만약 귀신이 이를 안다면 도리에 맞지 않는 저주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만약 알지 못한다면 저주하여도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를 행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변명하였습니다.

실제 사례로써 이를 추측해 보면, 보통 사람의 지혜로도 가려낼 수 있는데, 하물며 귀신에게 령()이 있어 정직한데도 어리석은 염매를 받아들인다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그 글을 보게 되면 말뜻이 취할 만한 것이 없으니, 세속의 무당처럼 왜곡되게 풀어내면서 어떻게 대도를 기약한다 하겠습니까?

만약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잘못되지 않다 해도, 장차 술찌끼를 즐기지 않는다 하면서 술에 취해 세월의 끝을 보니, 이치로 그 참다움을 미루어 보더라도, 어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23) 기례북방위시(起禮北方爲始)

십계십사지신경(十戒十四持身經)에서는, “북방에 먼저 절을 해야 하니, 북방을 시초로 삼아 동쪽에서 시방에까지 두루하면서 태상의 진형(眞形)을 보듯이 생각하라고 이릅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문시전에서는, ‘노자가 윤희와 천상을 다니면서 윤희가 태상을 만나려 하자, 노자가 태상은 대라천의 옥경산에 있는데 산이 높고 험준해서 멀리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말하여 보지도 못하고 돌아섰다고 이릅니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현도의 옥경은 태상이 머무는 곳으로 지금 상방(上方)에 있는데, 어찌하여 상방(上方)을 으뜸삼지 않고 헛되이 북방을 예배하는 것입니까?

게다가 도는 동방의 양()에서 생겨나는 것인데, 어찌하여 동방을 시초로 삼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서방에 태어나셨기에 음()에 해당한다면, 북방도 역시 음에 해당하는데, 예전에는 이것을 비루하게 여기다가 지금은 존귀하다고 먼저 절할 수 있겠습니까?

죄근품(罪根品)에서는, ‘태상도군이 동양관(同陽館) 가운데에서 원시천존에게 머리 숙여 절하고 10선법(善法) 따위의 법을 질문하였다고 이르는데, 이같은 계율은 바로 천존이 말한 것인데도, 어째서 천존을 예배하지 않고 태상을 만나는 일에만 골몰합니까?

근본을 버리고 말단으로 치닫는 것은 도대체 어느 쪽의 허물입니까?”

 

(24) 해친구도(害親求道)

노자소빙경(老子消氷經)에서는, “노자가 윤희에게 말하기를, ‘만약 도를 배우고자 하면 먼저 다섯 가지 정()을 끊어야 하니, 첫 번째는

 

부모이고, 두 번째는 처자식이고, 세 번째는 정색(情色)이고, 네 번째는 재물이고, 다섯 번째는 벼슬이다. 만약 이것을 끊는다면 나와 함께 서쪽으로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윤희가 날카로운 비수로 일곱 사람의 목을 잘라 가지고 오자, 노자가 웃으면서 내가 그대의 마음을 시험해 본 것이니, 이는 일삼을 만한 것이 아니다. 죽인 것은 부모가 아니고 금수일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머리 7수가 7()가 되고 송장 일곱이 금수 일곱 마리였는지라, 윤희가 의아해 하며 집에 돌아가 보니 7()이 모두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이릅니다. 조립천지기(造立天地記)에서는, “노자가 오랑캐를 교화하는데 오랑캐왕이 굴복하지 않자, 노자가 오랑캐 왕의 일곱 아들과 그 나라 사람 일부분을 죽였다고 이릅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삼원계법(三元誡法)에서는, ‘도를 배우는 이는 나쁜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고 이르는데도, 부모에 효성스럽지 못하고 처자식을 아끼지 못했습니다. 윤희가 부모를 죽인 것을 따져 보더라도, 만약 이것이 허깨비인 줄을 미리 알았다면, 어째서 의심을 품고 돌아가 살펴보았겠습니까? 만약 그 마음이 진실했다면 계율에 의지하면서도 나쁜 마음을 품었으니 이미 중죄를 범하였는데 하물며 양친의 머리를 자른 것이겠습니까? 또 오랑캐 왕이 굴복하지 않는다고 그 아들 일곱을 죽였으니, 이 얼마나 심합니까? 또 그 나라 사람 일부분을 죽였으니, 어질지 못함이 이보다 심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 같은 법을 후대에 행한다면, 바로 도를 구하는 이는 양친과 처자식을 죽여야 할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의 왕이 굴복하지 않는다고, 그 나라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같이 했어도 그 도로 나아가고 물러선 이가 겨우 두세 사람에 불과하니, 제가 그 괴이쩍음을 참으로 가소롭게 여깁니다.”

 

(25) 연생부(延生符)

삼원품(三元品)에서는, “자미궁(紫微宮)에 수명을 늘리는 부과서(符瓜書) 팔방(八方)이 있는데 팔기(八氣)가 이에 응하여 바로 사람을 이룬다. 이 부서를 훼손하여 태워 버리면 사람이 그 연기에 따라 기화되는데, 그 진문(眞文)4만 겁에 한번 출현한다고 이릅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문시전에서는, ‘만만 억억 년에 한 대수(大水)가 있으니, 곤륜산이 이 위에 떠 있는데, 신선이 날아가 천왕과 선인을 맞이하여 산 위에 안치시켰다. 이처럼 만만 년 전에 천지가 혼돈한 것이

 

마치 계란 노른자위 같았는데, 이를 1겁이라 이름한다고 합니다. 살펴보면 대수(大水)의 나날에 천인이 죽지 않는다면 이들을 산 위로 맞이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고경(濟苦經)에서는, ‘건곤(乾坤)이 텅 빈 이후로 휑하게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1겁의 시절에는 사람과 물건이 남아 있지 않다가 그 연생부(延生符)4만 겁 이후에 출현한다면 어찌 4만 겁 가운데 끊겨져 천인(天人)이 없을 수 있겠으며, 텅 비어 그윽한 것이 어떻게 그리 길다고 하겠습니까?

또 만만은 1억이고 억억은 1조에 해당하는데, 1억조 년이라 말하면 될 것을 만억 만억이라 말하니, 대체로 경을 만든 이가 초학자(初學者)인지라 숫자의 크고 작음조차도 모른다고 하겠습니다.”

 

(26) 춘여겁제(椿與劫齊)

통현동방청제송(洞玄東方靑帝頌)에서는, “구오(九五)가 늘 있지 않으니 천지가 기우는 위태로움이 있다. 대겁의 종말은 대춘나무 한 그루와 같아서 106()의 운세가 돈다고 이릅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대수(大水)가 이미 도도하여 곤륜산조차 여기에 떠 있으니, 나중에 큰 불이 일어나면 쇠도 녹아 버려 땅에 풀조차 나지 않을 터인데, 만만억 년에 이르도록 천지가 계란 노른자위 같은 것을 통틀어 1겁이라 이름합니다. 그러나 대춘나무는 한낱 세상의 나무일 뿐으로 세상의 불로 그것을 태우면 재만 남습니다. 겁화(劫火)를 만나면 곧 없어지는데, 마침내 대겁이 대춘나무와 그 햇수를 같이한다고 이르니, 이 얼마나 황당합니까? 이 또한 가소로울 뿐입니다.”

 

(27) 수겁생사(隨劫生死)

도명묘경(度命妙經)에서는, “대겁이 서로 돌게 되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가라앉아 욕계(欲界)가 멸망하여 없어진다고 이르고, 태평도경(太平道經)불법화대소품(佛法華大小品)에서는, “위아래 열여덟 곳의 천상 가운데를 돌게 되니, 색계(色界) 이내는 대겁에 이르러 교차되면서 그 진문마저 없어진다. 옥청(玉淸), 상도(上道), 삼통(三洞)의 신경(神經), 진문(眞文)과 옥자(玉字)가 원시(元始)에서 나왔으며, 28천 무색계 위의 대라천

 

옥경산의 현대(玄臺)는 재앙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다. 그러므로 자연의 진문에 따라 함께 태어나고 함께 멸하기에 이를 받들면 7대 조상까지 천상에 태어나고 전륜성왕이 대대로 끊기지 않는다고 이릅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도인본행경(度人本行俓)에서는, ‘도의 말씀은 원시에서 비롯되었는데, 개광(開光) 이래 적명(赤明) 원년까지 9천여 억 겁을 거치면서 1항하사 수효의 중생을 제도하였으니, 나중에 상황(上皇) 원년에 이르기까지 제도한 사람이 한량없습니다. 내가 겁수에 따라 나고 죽으며 세세생생 끊이지 않고 늘 영보(靈寶)와 더불어 함께 나왔습니다. 오랜 겁을 지나 구기(九氣)가 끝나고 운이 바뀌어 태중에 들었는데, 홍씨(洪氏) 이래로 3천 년이나 쌓였다가 적명(赤明)에 이르러 개통하여 갑자년에 부력(扶力)의 개천(蓋天)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시 영보와 더불어 나와 사람을 제도하였습니다. 원시천존(元始天尊)이 나의 인연으로 나에게 태상(太上)이란 호를 하사했으니, 바로 현도의 옥경에서이다라고 이릅니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진문은 옥경산에 있어 재앙이 미치지 못하는데도, 자연의 진문이 운세와 더불어 함께 나고 함께 없어진다 하니, 함께 나고 함께 없어지면서 어떻게 삼제에 피해 입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내가 영보와 같은 때에 나왔다가 없어진다고 하고, 내가 겁에 따라 나고 죽는다고 말하는데, 이를 따져 보면, 영보의 운세가 소멸하면 태상도 따라 망하는데 오래 살아 죽지 않는다고 말하니, 이 얼마나 거짓됩니까?

또 옥경은 여러 천상에 있어서 재앙이 미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이치도 참으로 의심스럽습니다. 모든 형색은 남아 있지 못하니, 옥경의 옥대(玉臺)는 바로 색계에 해당합니다. 색계는 항상된 것이 아닌데, 옥경이 어찌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또 적명(赤明)의 갑자(甲子)의 호는 특히 하한(河漢)의 실제와 같습니다.”

 

(28) 복단성금색(服丹成金色)

신선금액경(神仙金液經)에서는, “금액(金液)을 단()으로 환원시켜 태상이 복용하였는데, 신기하게도 지금

 

수은을 태우면 다시 단으로 환원되기에 이것을 복용하면 신선이 되어 백일승천한다. 신선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니, 이 같은 도는 헛되이 스스로만 괴롭게 할 뿐이다[단을 태우면 수은이 되고, 수은을 태우면 단이 된다. 그러므로 환단(還丹)이라 이른다]. 예전에 한종(韓終)이 이것을 복용하고 그만 얼굴색마저 누렇게 변해 버렸습니다. 또 부처님 몸의 황금색조차도 대체로 도법(道法)의 징험이라 하여 그 몸의 안팎을 쇠금 같이 굳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금강신(金剛身)이라 이름한다고 합니다.

신 견란이 이를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문시전에서는 태상노자와 태일원군(太一元君) 두 성인이 한 몸이다라고 이르고, 금액경(金液經)에서는 태일(太一)이란 중황장부(中黃丈夫)와 태일군(太一君)뿐이니, 이 두 사람이 선인의 주재자이다. 금액을 마시고 승천하여 대신(大神)이 되어 음양을 조절한다고 이릅니다. 한종이 금액을 마시기 전에는 단지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이를 마시고 승천하여 바로 노군(老君)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군은 태상만진(太上萬眞)의 주재자로 어느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면서, 어째서 금액을 마신 연후에야 음양을 조절하게 된 것입니까?

또 태일대신(太一大神)을 이룬 자가 얼마나 되며, 음양을 조절하는 이는 다시 몇 사람이나 됩니까? 만약 복용하기만 하면 모두 얻는다 하니, 실로 그 숫자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또 단()과 수은이 땅마다 두루하여 어디에나 있으며, 불에 태워 단을 이룬다고 하지만 이것을 만들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어째서 도사들은 이를 마시고 백일승천하여 천선(天仙)의 주재자가 되지 않고 괴롭게 이빨만 두드리며 헛되이 한 생을 보냅니까? 참으로 불쌍할 따름입니다.

만약 일부러 마시지 않는 것이라면 이는 단()이란 것이 그릇됨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으로, 그림자나 붙잡는 말에 불과할 뿐입니다. 또 부처님 몸의 금색도 단약에 연유해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데, 이는 행()이 필요 없이 단지 한 알의 단약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삿된 소견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니 참으로 슬픕니다.”

 

 

(29) 투개불경위도경(偸改佛經爲道經)

묘진게(妙眞偈)에서는, “설령 성문(聲聞)의 대중이 그 숫자가 항하사와 같아서 함께 생각하고 따져 보더라도, 도지(道智)를 헤아릴 수 없다고 이릅니다.

신 견란이 이를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법화경의 불지(佛智)를 도지(道智)로 고친 것일 뿐입니다. 이 이래로 같은 글이 한둘이 아닙니다.

예전에 도사 고환(顧歡)에게 물었더니, 고환이 대답하기를, ‘영보묘경(靈寶妙經)은 천문(天文)의 대자(大字)로 자연에서 나온 것이다. 근본적으로 법화경이 아닌데도, 구마라집이 망령되이 승조(僧肇)와 함께 우리의 도가 경전을 고쳐서 법화경으로 만들었고, 도리어 영보(靈寶)법화경에서 훔친 것이라 하며, 동하(東夏)를 속이는데, 법화경은 영보와 다른 것으로 서역에는 있지도 않다. 지금 번역하는 이가 원래 경문과 같지 않게 만든 것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그 훔쳐다 개작한 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불경은 글귀가 간략하면서도 이치는 넓고 깊은데 천 권()과 백 부()마다 겹치는 글귀가 없는 것이 실로 노자의 경전과는 같지 않습니다. 스스로 달리 따져 보지도 않고 불경을 모방하여 그 권수와 부질(部帙)을 열어 내었어도, 오천문에서는 부처님을 말하는 대목이 근본적으로 없고, 부처님의 8()에서도 도를 논하지 않았습니다. 여타의 나중에 만든 것은 모두 불경을 표절한 것입니다. 이것은 후세에 자연히 밝혀질 것이기에 여기서는 그 부류를 따져 보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어질고 통달한 자들이 불경을 암송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전하되 대대로 끊기지 않았는데, 도법이 훌륭한 것이라면 어째서 이를 외워 지니지 않겠습니까? 나라 전체를 통틀어도 도가의 경전을 외우는 이가 어디 있습니까? 이 때문에 그릇됨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30) 투불경인과(偸佛經因果)

도왕품(度王品)에서는, “천존이 순타왕(純陀王)에게 이르기를, ‘도를 얻은 성인의 무리는 항하사와 같이 많습니다. 여래는 평범함에서 쌓아 행동하여 얻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10()은 셀 수도 없으나, 이 또한 한 가지를 일으켜야만 한 가지 선위(仙位)에 오르게 됩니다. 다시 겁수 동안 그 공에 의해 높이 올라가면 일거에 그 공을 버리게 되니, 이처럼 10()에 열 가지

 

계급이 있습니다. 환희(歡喜)에서 법운(法雲)에 이르러야 상호(相好)를 갖추게 됩니다라고 말하자, 마침내 여러 왕이 그 설법을 듣고 사과(四果)를 얻었다고 이릅니다.

도신품(度身品)에서는, “니건자(尼乾子)가 천존에게 법을 듣고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고 이릅니다. 문시전에서는, “노자가 계빈국에서 손가락을 튀기자 여러 천왕과 나한과 오통선인(五通仙人)이 하늘에서 날아와[飛天] 모두 모여서 윤희를 그 스승으로 삼았다. 이에 도를 얻은 보살이 노자를 위해 찬송을 지었다고 합니다.

신 견란이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불교와 도가는 가르침의 자취가 같지 않고, 그 변통(變通)도 다른 것으로 도는 자연으로 종지를 삼고, 부처는 인연으로 이치를 삼습니다. 자연이란 무위(無爲)로 이루어지고, 인연은 행을 쌓아 증득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소승(小乘)에선 4()의 차별을 두고 대승에는 10()의 지위가 있게 됩니다. 범부가 진()에 들어가는 것이 모두 경론에 갖춰져 있는데, 어째서 도가가 나열하는 4과와 10()의 명칭이 불교와 같은데도, 수행의 인연에 관해서는 그와 같은 설법을 보지 못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므로 도가에서 수양한다는 것은 기운을 마시어 하늘에 오르고 물을 마시어 도를 증득하며 법을 듣고 허공을 날아다니며 풀을 뜯어먹고 시해(尸解)10)하는 것일 뿐입니다. 행업(行業)이 이미 다르기에 그 증과(證果)의 이치 또한 다릅니다. 단지 천상은 5()이 있다거나, 또는 삼천세계나 육천세계가 있다거나, 또는 81곳의 천상이라 하거나, 또는 60의 대범천(大梵天)이라거나, 또는 36()이라거나 또는 55만여 천상이라거나, 또는 구진천왕(九眞天王)ㆍ구기천군(九氣天君)ㆍ사방기군(四方氣君)ㆍ삼원(三元)ㆍ삼천(三天)ㆍ구궁(九宮)ㆍ천조(天曹)ㆍ옥청(玉淸)ㆍ대유(大有)ㆍ현도(玄都)ㆍ자미(紫微)ㆍ삼황(三皇)ㆍ태극(太極)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류는 이치적으로도 그 인연하는 바가 있어야 하는데, 어찌하여 헛되이 늘어만 놓고 혼자 외람되이 취하면서 다르다는 것입니까?

이 같은 천상에 대한 설명을 청해 보면, 서로 겹치기도 하고 이치가 어긋나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고 그럴 듯하기도 합니다. 어떠한 단약과 약초를 복용하여야 이 같은 천상에 나게 되는지, 그 해탈 과정이 실로 상세하지 않기에, 참으로 헛된 가르침이

 

갈수록 우스워질 따름입니다.

 

(31) 도경미출언출(道經未出言出)

현도도사(玄都道士)가 올린 경목(經目)을 살펴보면, 송나라 사람 육수정(陸修靜)이 찬술한 경목을 인용하여, “상청경(上淸經)186권인데 117권이 이미 시행되었고 시청(始淸) 이하의 4069권은 아직 세간에 퍼지지 않았다고 이릅니다. 지금의 경목을 검토해 보면 그 운운하는 것을 볼 수 있으니, 통현경(洞玄經)15권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천궁에 소장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그 경목과 주석을 검토해 보면, 이를 언제나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육수정은 송나라 명제 때의 사람으로 태시(太始) 7년에 칙령이 내려 경목을 바치면서 이미 천궁에 감춰져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1백여 년 동안 천인(天人)이 하강했다는 것을 듣지 못하고 도사가 하늘로 올라간 것을 보지 못했는데, 이 같은 경전이 어떻게 여기에 다다랐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옛날 문성(文成)11)이 글을 써서 소에게 먹이고 서왕모(西王母)의 명령이라고 거짓말을 하였고, 황정(黃庭)원양(元陽)에서는 도라는 말로 부처라는 글자를 바꾸고, 장릉이 영보를 날조한 것이 오나라 적오년 때에야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상청은 갈현(葛玄)에게서 나와 송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널리 퍼졌습니다. 포정(鮑靜)12)3황을 날조하였다가 그 일이 탄로나서 사형당했고, 문성(文成)이 글을 써서 소에게 먹이다가 능지처참 당한 것이 한나라 시절입니다. 지금 학자들이 그 술책을 다시 따라가니 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한서에서는, 장로의 조부가 장릉이고 환제 때에 부서(符書)를 날조하여 백성을 현혹시키되, 그 도를 받는 이는 쌀 5()를 내야 했으므로 세속에서는 쌀도둑이라 일컬었습니다. 장릉이 그 아들 장형에게 전하고, 장형이 그 아들 장로에게 전하면서 호를 삼사(三師)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의 처를 삼부인(三夫人)으로 삼았는데, 모두 백일승천했다고 말합니다. 처음 도를 받게 되면 귀졸(鬼卒)이라 이름하다가 나중에 제주(祭酒)라 호칭하였으니, 요사스러움이 매우 깊어서 방자하게 행하였다는데, 이와 같은 것이 모두 그 실례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32) 오억중천(五億重天)

문시전에서는, “천상에 555555()이 있는데, 땅도 이와 같아서 그 두께가 1만 리이다. 네 모서리마다 금으로 된 기둥과 축이 있다. 네모나고 둥근 것이 36백 리인데 신풍(神風)이 불어 이를 부축한다. 4()로써 지맥(地脈)을 삼는데, 천지(天地)의 산천과 하한(河漢)이 기를 통하고 풍운(風雲)이 모두 이 산에서 나온다고 이릅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삼천정법경(三天正法經)에서는, ‘하늘이 7천여 겁이나 빛을 밝히지 않았고, 현천(玄天)과 구경(九景)이 처음 갈라져 구기(九氣)가 이로써 드리워졌다. 구진천왕(九眞天王)과 원시천왕(元始天王)이 자연을 본받아 태어났다 하여 그 호를 구천이라 하였고, 상중하의 진진(眞眞)을 일원(一元)으로 삼았으니, ()에는 삼천(三天)이 있다. 상원궁(上元宮)은 바로 태상대도군(太上大道君)이 다스린다고 이릅니다. 이를 따져 보면, 천상 하나의 거리가 99990리이니, 9천의 거리가 799920리입니다. 1리는 3백 보인데 1보는 6()이니, 바로 1439856천 척이 됩니다. 이로써 5억의 중천(重天)을 나누어 보면 바로 매 하늘의 거리가 2척 정도인데, 어떻게 그 두께가 1만 리나 되는 땅이 있을 수 있으며, 그 높이가 겨우 2척인 하늘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문시전에서는, ‘노자가 사천왕(四天王)을 제도하였으니, 그 대중들의 키가 6()이고 작은 이는 2장이다라고 이릅니다. 이를 따져 보면, 사람은 크고 하늘은 작은데, 어떻게 이를 용납하여 늘 드러누운 채로 일어서지도 못하는지, 그 괴이쩍음에 참으로 아연할 따름입니다.”

 

(33) 출입위의(出入威儀)

현중경(玄中經)에서는, “도사의 집간(執簡)은 금옥(金玉)을 쓰는데 너비가 1()이고 길이는 55()이다. 이 같은 집()을 황()이라 부른다. 중고시대의 왕이 집()을 잡고 사군(師君)을 조회하였고, 하고시대(下古時代)에는 금과 옥이 자취를 감춰 나무를 집이라 하였다. 그 길이는 9촌인데 이를 수간(手簡)이라 이름하였다. 이는 집()으로

 

교만한 마음을 덜어 내고 도사를 훈계하려는 것이다. 만약 왕궁이나 마을이나 다른 사람의 방에 들어갈 때는 그 바깥 10보 떨어진 곳에서 두건과 도포를 쓰고 간()을 짚고서 들어가되 옆으로나 등진 채로 하면 안 된다. 집 바깥으로 나와서는 두건과 도포를 벗고 소복을 입은 채로 다니되 이를 드러내어 도법을 훼손시키면 안 된다. 만약 속가에 들어가면, 위의(威儀)를 가지런히 하고 집간(執簡)을 짚은 채로 좌정하되 저속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도사가 백 리 바깥을 다닐 때에는 집()ㆍ지팡이ㆍ두건ㆍ도포ㆍ향로ㆍ구리 주전자ㆍ발우 따위의 출가인의 도구를 갖추고 위의(威儀)를 완비해야 열 가지 공덕을 얻게 된다고 이릅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자연경(自然經)에서는, ‘도사의 두건과 도포와 법갈(法褐)은 길이가 36척으로 360촌인데 법년이 36()이고 1년에는 360일이 있다. 그 몸 하나에 양각(兩角)이 있으니 각()은 각각 여섯 조가 있다. 양수(兩袖)가 있는데, ()에도 각각 여섯 조()가 있어서 모두 24조인데, 이는 24절기를 본받고자 함이다. 2()는 음양을 본받는 것이고, 가운데의 양각(兩角)은 양의(兩儀)를 본받는 것이니, 관모에 이르기까지 연꽃 두건을 본받은 것이다라고 이릅니다. 그러나 자연경(自然經)에 이미 과율(科律)이 있는데, 어찌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 장로의 황건의 복식을 흉내 내어 계율에 어긋나게 하니, 참으로 무식하다고 하겠습니다.”

 

(34) 도사봉불(道士奉佛)

화호경에서는, “원하노니 우담발화를 올리며, 바라건대 전단향을 피워 부처님 천여 분께 공양하고, 머리 숙여 정광불(定光佛)에게 예배한다고 이릅니다. 부처님께서 어찌 이리도 늦게 태어나셨으며, 어찌 이리도 빨리 니원(泥洹)에 드셨는가? 석가문을 뵙지 못하니 마음이 크게 괴롭구나라고도 이릅니다. 대계(大誡)에서는, “도를 배운 이는 마땅히 대류경궁(大流景宮)으로 찾아가 부처님께 예배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일렀습니다.

신 견란이 이를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부재경(敷齋經)에서는, ‘천존이 우현진인(右玄眞人)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석가문은 생사에 윤회하는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는데,

 

천로우현진인(天老右玄眞人)으로 하여금 선도(仙度)의 도와 죽지 않는 대법을 쓰게 하였다라고 이릅니다. 노자(老子)서문에서는, ‘도는 생()을 주로 하고 부처는 사()를 주재하며, 도는 더러운 것을 기피하나 부처는 기피하지 않는다. 도는 양()에 속하기에, 생은 더러운 것을 기피하나 부처는 이와 반대된다고 이릅니다. 이같이 맑고 흐린 천분(天分)과 나고 죽는 대판(大判)에 근거한다면서도, 어찌하여 청허대도(淸虛大道)를 마음에 두지 않고, 삶과 죽음, 예악(穢惡)의 부처만을 원하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예전에 은()나라에 태재 비()가 공자(孔子)에게 성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3황ㆍ5제ㆍ3왕 및 공구 모두가 성인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서방에 성인이 계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같은 말에 근거해 보면, 공자는 부처가 성인이고 도로써 성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화호경에서는, ‘천하의 대술(大術)은 부처의 술법이 제일이다라고 이르고, 승현경(昇玄經)에서는, ‘우리 스승이 천축으로 화현하였다고 이르고, 부자(符子)에서는 노씨 스승 이름이 석가문이다라고 이릅니다. 이처럼 도제경(道齊經)에서는, ‘다시 신선을 범천이라 부르고, 부처를 은문(隱文)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읽는 경전은 대부분 범천(梵天)인데, 도사가 좋아한다는 범()이 바로 부처입니다. 이는 부처를 배운 지가 오래되었기에 이에 연유해서 범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영보삼십이천대범(靈寶三十二天大梵)은 은어(隱語)가 됩니다. ‘하늘마다 각각 팔자(八字)가 있으니, 이를 만 번 독송하면 날아다니게 되고, 7대 조상이 모두 남궁(南宮)으로 승천한다고 이르는데, 이 또한 도사가 부처를 배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도사가 그 아는 것이 범을 배운 것에만 그치기에, ()이 어떠한 부처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리석게 그것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 하니, 그 무식한 것이 참으로 가소롭지 않습니까?”

 

(35) 도사합기법(道士合氣法)

진인내조율(眞人內朝律)에서는, “진인이 말하기를, 대저 남자와 여자는 삭망(朔望)에 이르면 먼저 3일 동안 목욕 재계하고 사방(私房)에 들어가 스승이 이룩한 공덕에 참례하되, 음과 양을 함께 드리워 낮과 밤 6()에 합기(合氣)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외설스럽고 추잡하니 그 말을 듣기조차 민망합니다. 도율(道律)에서는, “합기(合氣)를 행하는 것은 순서에 따라야지,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못생겼다고 배척하고 예쁘다고 가까이하여 그 차례를 생략하여 어기면 안 된다고 이릅니다.

 

현자(玄子)에서는, “홀로 떨어지지 않아야 세상을 건너가게 되고, 질투하지 않아야 세상을 제도할 수 있다. 음과 양이 합쳐져야 용을 타고 떠나간다고 운운합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신이 스무 살 되던 때에 도술을 좋아하여 관()에 나아가 배웠습니다. 먼저 신에게 황서합기(黃書合氣)와 삼오칠구(三五七九), 남녀교접(男女交接)의 도()와 네 개의 눈과 두 개의 혀를 바로 대하여 도를 행하는 것이 단전에 있다는 것 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행하는 이는 액운을 넘겨 햇수를 늘립니다. 지아비가 부인을 바꿀 것을 가르쳐 오직 여색(女色)만을 시초로 삼았으니, 아비나 형제가 앞에 있어도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면서 스스로 중기(中氣)의 진술(眞術)이라 호칭하였습니다. 지금 도사들이 이 같은 법을 늘 행하면서 이로써 도를 구한다고 한다면 어찌 다투지 않겠습니까?”

(36) 제자위도서(諸子爲道書)

현도경목(玄都經目)에서는, “도경(道經)의 전기(傳記)ㆍ부도(符圖)ㆍ논() 6,363권이 있는데, 2,040권은 책이 남아 있으니 그 낱장이 도합 454장이다. 그 가운데 1,100여 권은 경전과 부도이고 그 가운데 884권은 제자의 논서이다. 4,323권은 모두 육수정이 기록한 것으로 그 수목(數目) 및 책은 모두 남아 있지 않습니다라고 일렀습니다.

제가 이것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도사가 올린 경목과 육수정(陸修靜)의 목록 가운데 소견되는 경서와 약방(藥方) 및 부도는 1,228권에 불과한 데다 원래가 조잡한 책이기 때문에 제자(諸子)라 이름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도사들이 지금 2천여 권을 열거하니, 한서』「예문지의 서목에서 884권을 베껴다가 도가의 경론을 삼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정황에 근거하면 그 이치 자체도 의심스러운데, 어떻게 한자(韓子)ㆍ맹자(孟子)ㆍ회남(淮南)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도에 관한 일이라 말합니까?

또 팔로(八老)

 

황백(黃白)의 방법13)과 도주(陶朱)14)의 변화(變化)의 술책과 하늘을 뒤집고 땅을 엎는 부서(符書)와 군사를 내치고 귀신을 죽이는 방법 및 약방(藥方)과 주염(呪厭)이 도가의 서책으로 편입된 것도 필요에 따라 모두 멋대로 끌어댄 것인데, 연산(連山)ㆍ귀장(歸藏)ㆍ역림(易林)ㆍ태현(太玄)ㆍ황제(黃帝)의 금궤(金匱) 및 태공(太公)의 육도(六韜)가 어째서 도가 서책의 반열에 들지 못했습니까? 또한 육수정의 서목 가운데는 원래 제자가 없었는데 무슨 근거로 지금 이를 보태어 안치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작년 7월 중에 도사들이 올린 경목은 제자의 350권을 도경으로 삽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지금은 800여 권이라 하니, 어찌하여 앞뒤가 맞지 않습니까?

또 사람은 잘못이 있으면 혹 남들이 알까 두려워하고, 자신에게 어짊이 있으면 혹 남들이 보지 못할 것을 염려하는데, 도사가 스스로 기록하며 도계(道戒)를 받지 않은 이는 도경을 읽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그 정황이 이와 같기에 아마도 남들이 그 추악함을 눈치챌까봐 삼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만약 제자로서 도가의 서책을 삼는다면, 사람 가운데의 제자(諸子) 또한 반드시 쫓아가서라도 취해야지, 어찌 버려 둘 수 있겠습니까?

또 도사가 예로 삼는 우리들의 노자 도덕경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제자에 해당하는 것인데, 지금은 이것을 경전으로 존중하면서 그 유()와 예()를 서로 끌어다 부치는 것은 도대체 무슨 허물이 있어서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노자와 황자(黃子)의 제자의 유에 속하는 것을 알고서도 어찌하여 유류(儒流)7()과 서로 다투는 것입니까? 반고(班固)6()을 앞세우고 두 편을 뒤로 하면서 도를 중상현(中上賢)의 부류로 차례를 매기니, 이야말로 실다운 기록이라 하겠습니다.

또 도주(陶朱)는 바로 범려(范蠡)입니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섬겼는데, 임금된 이를 그 신하가 오나라 석실에 가두어 두고 똥을 먹이고 오줌을 마시게 하였으니, 이 얼마나 황당합니까? 지금은 도리어 그러한 술법만을 존중하니, 이 어찌 어리석지 않겠습니까? 또 범려의 자식이 제나라에서 처형당했는데, 어찌하여 아비의 술법대로 변화하여 형벌을 면하지 않았습니까?

 

조천지경(造天地經)에서는, ‘노자가 유왕(幽王)황후의 뱃속에 의탁하였다고 이르니, 바로 유왕의 아들이 됩니다. 그 몸이 다시 주하사(柱下史)였으니 바로 유왕의 신하가 됩니다. 화호경에서는 노자가 한나라 때의 동방삭(東方朔)이었다고 이릅니다. 만약 이것을 살펴보자면, 유왕이 견융(犬戎)에게 살해되었는데, 어찌 임금에게 신부(神符)를 주지 않아 그를 죽게 만든 것입니까?

또 한나라 무제가 병무(兵務)에만 힘써서 중국을 전역(戰役)으로 피폐시켜 천하의 호구(戶口)를 절반으로 줄였는데도, 노자가 동방삭이었다면서, 어째서 병무를 내치고자 곡기(穀氣)를 끊는 부적이니, 사람을 염매하고 귀신을 저주하는 방술로 한나라를 지키지 않았습니까? 눈으로 그 폐단을 보면서도 이를 구하려는 마음조차 내지 않았으니, 이 어찌 속임수가 아니겠습니까?

또 도가 경전이 목록에 수록된 것만 6천여 권이나 됩니다. 그러나 총괄하여 논하여 근본을 볼 것 같으면 240권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헛되게 이름만 지목하면서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고 이르나, 실은 연묵(鉛墨)을 미처 갖추지 못해서 경본의 제작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타의 것은 허무맹랑한 논리만 분분하므로 자세히 따져 볼 필요조차 없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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