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광찬경(光讚經) 3권
축법호 한역
김두재 번역
7. 마하반야바라밀요공품(摩訶般若波羅蜜了空品)
이때 수보리(須菩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 단(檀:布施)바라밀을 갖추어 만족하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시(尸:持戒)바라밀ㆍ찬(羼:忍辱)바라밀ㆍ유체(惟逮:精進)바라밀ㆍ선(禪:禪定)바라밀을 갖추어 만족하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물질〔色〕을 견제(蠲除)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하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痛痒:受〕ㆍ고정관념〔思想:想〕ㆍ나고 죽는 행업〔生死:行〕ㆍ인식작용〔識〕을 제거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을 제거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細滑〕ㆍ법(法)을 제거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눈과 빛깔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귀와 소리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코와 냄새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혀와 맛으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몸과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뜻과 법으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을 제거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눈의 접촉으로 인하여 생긴 느낌〔眼更〕, 귀의 접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느낌〔耳更〕, 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느낌을 제거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물질에 대한 느낌〔色更〕, 아프고 가려움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작용ㆍ인식작용에 대한 느낌과 인연의 습기를 제거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탐욕ㆍ음행ㆍ성냄ㆍ어리석음을 없애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몸을 탐하고 자기라는 소견을 없애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의심을 내거나 계율 범하는 것을 없애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탐욕과 여러 가지 물질에 집착하는 욕망과 물질적 존재는 없다고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인연이
모여 얽어매는 결박에 대한 집착과 받아들이는 처소를 제거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사과(四果), 즉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을 제거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네 가지 근심〔憂〕ㆍ 네 가지 집착〔著〕ㆍ 네 가지 흉한 느낌〔受〕ㆍ 네 가지 뒤바뀐 소견〔顚倒〕을 제거하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다섯 가지 덮힘〔蓋〕ㆍ육입(六入) ㆍ 칠식(七識) ㆍ 팔사(八邪) ㆍ 구뇌(九惱) ㆍ 열 가지 악함과 죄복(罪福)의 업을 제거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선업〔善〕ㆍ 네 가지 선정〔禪〕ㆍ 네 가지 진리〔諦〕ㆍ 다섯 가지 신통을 제거하려 하거나, 네 가지 의지(意止) ㆍ 네 가지 의단(意斷) ㆍ 네 가지 신족(神足) ㆍ 오근(五根) ㆍ 오력(五力) ㆍ 일곱 가지 각의(覺意) ㆍ 여덟 가지 유행(由行:正道)을 제거하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힘〔力〕ㆍ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無所畏〕ㆍ 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分別辯〕ㆍ 네 가지 평등심〔等心〕ㆍ 네 가지 무색정〔無色定〕과 모든 의지(意止),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을 제거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의 각의삼매정수(覺意三昧正受)에 들어가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허공혜(虛空慧)삼매를 분별하려고 하거나, 식혜삼매(識慧三昧)ㆍ불용혜삼매(不用慧三昧) ㆍ 유상무상혜삼매(有想無想慧三昧) 정수멸정(正受滅定)을 분별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사자오락삼매(師子娛樂三昧)와 사자진후삼매(師子震吼三昧)를 성취하려고 하거나, 총지문(總持門:多羅尼門)을 증득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 ㆍ 보해삼매(寶海三昧) ㆍ 혜인삼매(慧印三昧)의 정수(正受)를 증득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월요삼매(月燿三昧) ㆍ 월당영삼매(月幢英三昧) ㆍ 입일체제법삼매(入一切諸法三昧)의 정수를 증득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도명인삼매(覩明印三昧) ㆍ 생제법삼매(生諸法三昧) ㆍ 출어권사당번악삼매(出於勸祠幢幡惡三昧)의 정수를 증득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금강유삼매(金剛喩三昧) ㆍ 입일체제법문삼매(入一切諸法門三昧) ㆍ 정의왕삼매(定意王三昧) ㆍ 제왕인삼매(帝王印三昧)의 정수를 증득하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세력청정삼매(勢力淸淨三昧) ㆍ 초제평등삼매(超諸平等三昧) ㆍ 순생제법소귀입삼매(順生諸法所歸入三昧) ㆍ 입일체제법언성삼매(入一切諸法言聲三昧)의 정수를 증득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관시삼매(觀十方三昧)를 증득하려 하거나 일체제법총지문인삼매(一切諸法總持門印三昧) ㆍ 일체제법평등인조인삼매(一切諸法平等印造印三昧)1) ㆍ 주어공처삼매(住於空處三昧)의 정수를 증득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엄정삼매(嚴淨三昧) ㆍ 도량삼매(道場三昧) ㆍ 초월신통삼매(超越神通三昧)의 정수를 증득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초고출삼매(超出三昧) ㆍ 등당호영삼매(等幢護英三昧)를 증득하려 하거나, 또는 이와 같은 삼매의 정수와 그 밖에 삼매문을 성취하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또한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소원하고 있는 것을 갖추어 만족하게 해주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또한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이 공덕의 근본을 갖추어 만족하고 그렇게 갖추어진 선한 근본으로 인하여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으려 하거나, 하천(下賤)한 무리를 보지 않고 성문(聲聞)ㆍ벽지불(辟支佛)의 경지로 되돌아가지 않으려 하거나, 보살이 최상의 법을 다투려 하지 않으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현자(賢者) 사리불이 현자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보살마하살은 최상의 법을 다투지 않습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은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善巧方便)를 일으키지2) 않고 생겨난 곳이 없음도 일으키지 않나니 구화구사라로 여섯 가지 바라밀을 행하여 생겨나게 된 곳이 없음을 분명하게 깨달아 알고, 공(空)ㆍ무상(無想)ㆍ무원(無願)의 삼매문(三昧門)에 들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지도 않지만 또한 보살의 멸정(滅定)에도 들어가지 못하나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순숙(淳淑)하지 못함을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보살의 생각이 순숙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순숙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모든 법에 애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물질은 공(空)한 것이라고 집착하고 감각〔知〕ㆍ생각〔想〕ㆍ의식〔識〕은 의지하는 곳이 있다고 하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思想〕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또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공하다고 주장하면서 감각ㆍ생각ㆍ의식은 의지하는 곳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곧 보살마하살이 법인(法忍)의 애착을 유순하게 따르기만 하는 것으로서 생각이 순숙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물질은 무상(無想)이라고 주장하면서 감각ㆍ생각ㆍ의식은 의지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물질은 무원(無願)이라고 주장하면서 감각ㆍ생각ㆍ의식은 의지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법인의 애착을 유순하게 따른다고 합니다.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또한 그러하여 존재함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감각ㆍ생각ㆍ의식은 의지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눈과 빛깔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眼色識〕ㆍ귀와 소리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코와 향기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혀와 맛으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몸과 섬세하고 매끄러운 감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뜻과 법으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을 주장하면서 감각ㆍ생각ㆍ의식은 의지하는 것이 있다고 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법인의 애착을 유순하게 따른다고 합니다.
물질은 덧없는 것이요,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덧없는 것이며, 물질은 괴로움이요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괴로움이라고 생각하며, 물질은 내가 아니요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주장하지만 감각과 생각은 의지하는 것이 있다고 집착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법인의 애착을 유순하게 따르는 것으로서 생각이 순숙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나니, 마땅히 이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을 끊어야만 한다.
이 물질은 물질이 아니니 곧 이 물질을 제거해야 하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또한 그런 것이다. 이것은 멸진(滅盡)이니 마땅히 시설(施設)하여 증명해야 한다. 이것은 멸진은 아니지만 조증(造證)이니 마땅히 이 길은 닦아야 한다. 이것은 더러운 먼지요 쟁계(諍戒)이며, 마땅히 이것은 익히고 닦아야 하고 이것은 익혀서는 안 된다. 이것은 보살이 마땅히 수행해야 되는 것이요 이것은 보살이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의 도이다. 이것은 보살이 배워야 하는 것이다. 마땅히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보살의 단바라밀이요 이것은 보살의 시바라밀이다. 이것은 보살의 찬바라밀이요 이것은 보살의 유체바라밀이다. 이것은 보살의 선바라밀이요 이것은 보살의 반야바라밀이다. 이것은 보살의 구화구사라요 이것은 보살의 구화구사라가 아니다. 이것은 보살이 적연(寂然)한 경지에 들어감이요 이것은보살의 생각이 순숙(淳淑)하지 못함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여기에 머물러 이와 같은 모든 법을 건립해 놓고 감각ㆍ생각ㆍ의식은 의지하는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을 곧 보살마하살이 법인의 애착을 유순하게 따르는 것으로서 생각이 순숙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적연함입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안〔內:六根〕이 공하다고 보지도 않고 밖〔外:六境〕이 공하다고 보지도 않으며, 안과 밖도 공하다고 보지 않고 안과 밖이 공한 것도 공하다고 보지 않으며, 공(空)한 가운데 안과 밖이 공함이 없음을 보지도 않으며, 공에서 안과 밖이 공함을 보지 않고 공한 가운데 시방세계가 공함〔大空〕을 보지 않고 공한 가운데 시방세계의 공함에서 공함을 보지 않으며, 공한 가운데 시방세계가 공함에서 최후〔究竟〕의 진공〔眞空〕을 보지 않고 최후의 진공에서 세계가 공함을 보지 않으며, 최후의 진공에서 작용이 있는 공〔有爲空〕을 보지 않고 최후의 진공을 보지 않으며, 작용이 있는 공에서 작용이 없는 공을 보지 않고 작용이 없는 공〔無爲空〕에서 작용이 있는 공을 보지 않으며, 작용이 없는 공에서 마치고 시작함이 길고도 먼 공〔終始長遠空〕을 보지 않고 마치고 시작함이 길고 먼 공에서 작용이 없는 공을 보지 않고 마치고 시작함이 길고도 먼 공에서 분별하지 못하는 공〔末分別空〕을 보지 않는다.
분별하지 못하는 공에서 광야가 길고도 먼 공〔曠野長遠空〕을 보지 않고 분별하지 못하는 공에서 근본이 깨끗한 공을 보지 않으며, 깨끗한 공〔淨空〕에서 분별하지 못하는 공을 보지 않고 근본이 깨끗한 공〔本淨空〕에서 자연상〔自然想〕이 공함을 보지 않으며, 자연상이 공한 가운데 근본이 깨끗한 공을 보지 않고 자연상(自然相)이 공한 데에서 모든 법이 공함을 보지 않으며, 모든 법이 공한 가운데 자연의 모습이 공〔自然相空〕함을 보지 않고 모든 법이 공한 가운데 존재함이 없는 공〔無所有空〕을 보지 않으며, 존재함이 없는 공에서 모든 법이 공함을 보지 않고 존재함이 없는 공에서 자연이 공〔自然空〕함을 보지 않으며, 자연이 공한 가운데 존재함이 없는 공을 보지않고 자연공이 공한 가운데 존재함이 없는 공을 보지 않으며, 존재함이 없는 공에서 자연공이 공함을 보지 않습니다.
이와 같아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능히 이와 같이 하면 보살은 적연(寂然)한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또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고 하는 이는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고 마땅히 이와 같이 따라야만 합니다. 마땅히 물질〔色〕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나니, 아프고 가려운 느낌〔痛痒〕ㆍ고정관념〔思想:想〕ㆍ나고 죽는 행업〔生死:行〕ㆍ인식작용〔識〕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의식에서 의식을 생각하지 않고 마땅히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을 생각하지 않으며, 마땅히 빛깔 ㆍ 소리 ㆍ 냄새 ㆍ 맛 ㆍ 섬세하고 매끄러운 촉감 ㆍ 법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단바라밀 ㆍ 시바라밀 ㆍ 찬바라밀 ㆍ 유체바라밀 ㆍ 선바라밀 ㆍ 반야바라밀을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마땅히 네 가지 의지 ㆍ 네 가지 의단 ㆍ 네 가지 신족 ㆍ오근 ㆍ 오력 ㆍ 일곱 가지 각의 ㆍ 여덟 가지 유행 ㆍ 열 가지 힘 ㆍ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 ㆍ 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 ㆍ 네 가지 평등심 ㆍ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가진 법을 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보살마하살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같음이 없는 이와 같은 마음〔等無等心〕과 미묘한 경지에 들어갔다는 마음을 생각하지 않아야만3)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은 무심하기 때문이요 마음은 본래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본래 깨끗한 마음은 즐거우며 밝고 밝아서 투명합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어떤 것을 마음이 맑고 밝아서 깨끗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가령 마음이 욕심으로 인하여 화합하지 않고 또한 욕심을 여의지도 않으며, 성냄과 화합하지도 않고 성냄을 여의지도 않으며, 어리석음과 화합하지도 않고 어리석음을 여의지도 않으며, 인연에 머물지도 않고 결박(結縛)도 없으며, 얽매임도 없고 또한 얽매이지 않음도 없으며, 모든 의심에 대하여 예순두 가지 견해와 합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며, 성문ㆍ벽지불의 심행과 합하지도 않고 또한 여의거나 합하지도 않나니 사리불이여, 이것이 곧 보살마하살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고 맑고 밝아서 깨끗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자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이 마음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마음은 마음이 없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어떤 것을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합니까? 어떤 것을 이 마음이 있어서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습니까? 이 마음은 증득할 수 있고 획득할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얻을 수 없습니다, 현자 사리불이여, 가령 그 마음이 또한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다면 또한 증득할 수도 획득할 수도 없습니다. 또 이런 일이 있다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런 말이 생겨, 이 마음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마음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수보리여, 어떤 것이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작용하는 것도 없고 생각함도 없는 것을 곧 모든 법은 마음도 없고 생각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수보리여, 어찌하여 그 발심은 작용하는 것도 없고 생각함도 없습니까? 가령 물질은 만들어지는 것인데도 생각하는 것이 없습니까?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또한 그러합니까? 가령 작용하는 것도 없고 생각함도 없다면 성문ㆍ벽지불의 생각에서부터 위로 보살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마음이 없고 생각도 없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이와 같은 마음은 작용하는 것도 없고 기억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도 역시 이와 같이 작용하는 것도 없으며 기억하는 것도 없습니다.”
사리불이 현자 수보리를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수보리여, 진실로 어진 그대야말로 세존의 아들이고,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좇아 태어나 항상 법에 순종하는 이로서 법을 삼아 교화하며, 법으로 인하여 영화롭게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자연의 인연으로 법신(法身)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어진 이여, 그대는 진실로 공(空)을 행함에 있어서 제일가는 사람입니다. 세존께서 어진 그대를 공을 깨달음에 있어서 최상(最上)이라고 찬양하셨습니다만 참으로 미치기 어렵고 어렵습니다.
이와 같아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때에는 마땅히 이와 같이 순종해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하면 아유월치(阿惟越致:不退轉)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또 성문의 경지를 배우고자 해도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하고 마땅히 들어야만 하며, 마땅히 받아야만 하고 마땅히 지녀서 읽고 외워야만 하고 마땅히 생각하고 기억해야만 합니다.
벽지불의 경지를 배우고자 해도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하고 항상 들어야 하며, 마땅히 받아 지녀서 읽고 외워야 하며 항상 생각하고 기억해야만 합니다.
보살의 경지를 배우고자 해도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하고 마땅히 들어야만 하며, 마땅히 받아 지녀서 읽고 외워야만 하고 생각하고 기억해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이 반야바라밀은 널리 삼승(三乘)인 보살ㆍ성문ㆍ벽지불을 갖추어 만족하게 이룩하고 있기 때문에 보살이 다 배워 깨달으면 걸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8. 반야바라밀가호품(摩訶般若波羅蜜假號品)
그때 현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성인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저는 또한 보살마하살을 보지도 못하였고 얻지도 못하였습니다. 수행하는 이도 저와 같이 보지도 못하고 얻지도 못하였사온데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 수행하는 것을 어떻게 설하라고 하시나이까?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어떻게 가르치고 수행하나이까?
제가 모든 법을 설하여 얻는다 해도 보살을 위하여 이름을 지어 보살이라고 한다면 가령 이와 같은 것은 의혹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이름을 헤아려보면 존재하는 것도 없고 머무르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무명(無明)으로부터 이러한 이름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은 이와 같아서 또한 처소도 없고 머무름도 없습니다. 처소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므로 물질을 내 것이라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을 내 것이라고 해도 또한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임시로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그 인연이 되는 것과 이름을 헤아리는 것도 또한 머무는 것이 아니요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무명(無明)의 생각을 좇아 이러한 명호(名號)들이 이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이라는 것은 머무는 것도 아니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눈〔眼〕에 대하여 관찰해보니 내 것이라고 말할 만한 것을 영원히
얻을 수 없고, 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또 마음에 대하여 관찰해보니 이 또한 내 것이라고 말할 만한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미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에 대하여 관찰해보아도 그 근원이나 본말(本末)과 내 것이라는 것을 영원히 얻을 수 없사온데, 마땅히 어느 것으로 인하여 보살을 위하여 이름을 붙일 수 있겠습니까? 또 눈을 관찰해보았더니 그 또한 허무하고 황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은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옵니다.
왜냐 하면 그 원인은 모두가 무명을 좇아서 거짓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을 헤아려보니 모두가 이와 같이 임시로 붙여진 것이어서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요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물질의 형체〔色形〕에 대해 본말을 구해보았으나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도무지 얻을 수 없었으며, 육정(六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명호의 본말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찾아 봤으나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영원히 얻지 못하였으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또한 이와 같아서 그 본말을 구해보았으나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영원히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눈과 빛깔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귀와 소리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코와 냄새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혀와 맛으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몸과 섬세하고 매끄러운 감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ㆍ뜻과 법으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에 대해서도 그 본말(本末)을 살펴보았으나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설사 눈과 빛깔의 본말을 살핀다 해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얻을 수가 없었으며 육정(六情)과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 등 열여덟 가지 요소에 대해서도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마땅히 무엇으로 인하여 이름을 붙여 보살이라고 부르겠습니까?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 등 열여덟 가지 요소를 살펴보아도 그에 대한 이름이 없으므로 머무름도 없고 머물지 아니하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무명으로 인하여 이름이 생겨났기 때문이며, 또 이름을 살펴보니 그 또한 머무름도 없고 머무르지 아니함도 없습니다.
눈의 습갱(習更:觸)과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습갱도 이와 같습니다. 눈의 습연(習緣)으로부터 심행(心行)에 이르기까지와 색(色)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 등의 인연 습기의
촉감으로 인하여 이 느낌〔痛〕이 생겨나는데, 그 본말(本末)을 살펴보건대 내 것이라고 말할 만한 것을 영원히 얻을 수 없었습니다.
육정(六情),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과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과 열여덟 가지 요소〔十八種〕의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말할 만한 것은 영원히 얻을 수 없고 또한 이름도 없으니, 그것도 모두가 임시로 붙여서 부르는 이름일 뿐이요, 또한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며, 그것은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그렇게 이룩된 것이니, 여기에서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행(行)ㆍ식(識)ㆍ명색(名色)ㆍ육입(六入)ㆍ소갱(所更:觸)ㆍ아픔〔痛:受〕ㆍ애욕〔愛〕ㆍ취함〔受:取〕ㆍ유(有)ㆍ나고 늙고 병들어 죽음에 대하여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말할 만한 것은 전혀 얻을 수 없고, 또한 머무름도 없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무명의 멸(滅)함과 행ㆍ식ㆍ명색ㆍ육입ㆍ소갱ㆍ아픔ㆍ애욕ㆍ취함ㆍ존재ㆍ나고 늙고 병들어 죽음의 멸함에 대하여 그 본말을 관찰해보아도 내가 소멸한다는 것은 전혀 얻을 수 없습니다. 음욕ㆍ질투ㆍ성냄ㆍ어리석음에 대하여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얻을 수 없으니, 그것은 이름으로 인하여 이러한 것들이 성립되었기 때문이며, 그 이름을 헤아려보아도 그 또한 머무르는 것도 없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질ㆍ아픔과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ㆍ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ㆍ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미세하고 매끄러움ㆍ법ㆍ열여덟 가지 요소 등이 사라져 소멸됨에 대하여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영원히 얻을 수 없으니, 그것은 명호(名號)를 따라 이런 것들을 이룩한 것이기 때문이며, 그 이름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바라밀ㆍ시바라밀ㆍ찬바라밀ㆍ유체바라밀ㆍ선바라밀ㆍ반야바라밀에 대하여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영원히 얻을 수 없으니, 그 원인은 이름을 따라 일어나서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나에 대하여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말하게 된 원인은 명호로부터 그렇게 된 것으로서 명호조차도 임시로 붙여진 것이라서 전혀 얻을 수도 없고,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며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수명(壽命)과 조작하고 관찰하는 것, 보는 것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아서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말할 만한 것은 영원히 얻을 수 없으니, 그 원인은 명호(名號)만을 따라 일어나서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요. 또한 그 이름마저도 머무는 것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네 가지 의지(意止:念住)ㆍ네 가지 의단(意斷:正斷)ㆍ네 가지 신족(神足)ㆍ오근(五根)ㆍ오력(五力)ㆍ일곱 가지 각의(覺意:覺支)ㆍ여덟 가지 유행(由行)에 대하여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영원히 얻을 수 없으니, 그 원인은 이름을 따라서 일어나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며, 또 그 임시로 붙여진 이름도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空)ㆍ무상(無想)ㆍ무원(無願)에 대하여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얻을 수 없으니, 그 원인은 이름을 따라서 일어나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요, 또 그 임시로 붙여진 이름조차도 머무는 것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네 가지 선정〔禪〕ㆍ네 가지 평등한 마음〔等心〕ㆍ네 가지 무색삼매〔無色三昧〕의 정수(正受)에 대하여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얻을 수 없으니, 그 원인은 이름을 따라서 일어나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요, 임시로 붙여진 이름조차도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ㆍ법을 생각하는 것ㆍ거룩한 대중을 생각하는 것ㆍ의식을 생각하는 것ㆍ보시를 생각하는 것ㆍ널리 듣기를 생각하는 것ㆍ들고 나는 호흡〔守意〕을 생각하는 것ㆍ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얻을 수 없고 또한 보지도 못했으니, 그 원인은 이름만을 따라서 일어나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요, 또 그 임시로 붙여진 이름조차도 머무는 것이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열 가지 지혜의 힘〔力〕ㆍ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無所畏〕. 네 가지 분별있는 말솜씨〔分別辯〕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부처님만이 지닌 법에 대하여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얻을 수 없으니, 그 원인은 이름만을 따라서 일어나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요, 또 임시로 붙여진 그 이름조차도 머무는 것이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말을 보지 못하고 처소(處所)도 없으며 또한 얻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마땅히 보살을 위하여 이름을 지어서 보살에게 말하겠습니까?
그 명호(名號)는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니, 그 원인은 무명(無明)으로부터 인하여 이름이 지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은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니, 그 이름을 헤아려보면 다섯 가지 성음(盛陰:取蘊)으로 이룩된 것이니,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또한 얻을 수 없고 그 원인은 이름만을 따라서 일어나 그렇게 된 것이며, 또 그 이름조차도 머무는 것이 없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 인식작용ㆍ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ㆍ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 열여덟 가지 요소, 열두 가지 인연, 부르는 소리로 인하여 생긴 메아리ㆍ그림자ㆍ아지랑이ㆍ물 속의 달ㆍ요술로 변화된 것을 살펴보고, 오음(五陰)ㆍ오성음(五盛陰)을 살펴보아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인데 그 본말에 대하여 살펴보니,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 원인은 이름만을 따라서 일어나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요, 또 그 이름조차도 머무는 것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며 허무하고 황홀할 뿐입니다.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과 공(空)ㆍ무상(無想)ㆍ무원(無願)에 대하여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얻을 수 없으니, 그 원인은 이름만을 따라 일어나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요, 또 그 이름조차도 머무는 것이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부르는 소리로 인하여 생긴 메아리와 그림자ㆍ아지랑이ㆍ파초ㆍ물 속의 달〔水月〕ㆍ허깨비와 같아서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전혀 얻을 수 없고 생겨나지도 않으며 소멸되지도 않습니다.
마치 물그림자와 같아서 더러움에 물들지도 않고 성냄이나 한스러움도 없습니다.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미세하고 매끄러운 감촉ㆍ법, 열여덟 가지 요소, 열두 가지 인연, 법계(法界)의 본제(本際), 법법(法法)의 소취(所趣)와 적연한 법〔寂然法〕ㆍ선(善)ㆍ악(惡)ㆍ화(禍)ㆍ복(福) 등 모든 법의 이름과 작용이 있는 법〔有爲法〕ㆍ작용이 없는 법〔無爲法〕ㆍ소유(所有)가 있는 것ㆍ소유가 없는 것ㆍ유루(有漏)와 무루(無漏)에 대해서도 그 본말을 살펴보면 이러한 것들은 법을 좇아 일어난 것이어서 전혀 얻을 수도 없고,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며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니, 마치 그림자나 메아리ㆍ물 속의 달ㆍ아지랑이ㆍ파초ㆍ
허깨비와 같습니다.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법에 대해서 그 본말을 살펴보았으나 그 또한 얻을 수 없었고 머무는 것도 아니며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은 그 근원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떤 것을 무소유법(無所有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소유법이란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없는 것이며, 작용이 없는 법〔無爲法〕을 찾아 그 본말(本末)을 살펴 보아도 전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동방(東方) 강하(江河)의 모래알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살펴보고, 또 그 본말을 찾아보았으나 영원히 볼 수 없었으며, 또한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怛薩阿竭阿羅呵三耶三佛)과 모든 보살, 그리고 성문ㆍ벽지불의 무리들의 그 본말을 찾아보아도 전혀 볼 수 없고, 남방ㆍ서방ㆍ북방ㆍ동남방ㆍ서남방ㆍ서북방ㆍ동북방ㆍ상방ㆍ하방의 아홉 방위에 있는 모든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과 모든 보살의 무리, 성문ㆍ벽지불의 그 본말을 살펴보아도 전혀 볼 수 없으며, 어느 곳에서도 보살의 반야바라밀을 볼 수 없으니, 무엇을 근거하여 마땅히 보살의 이름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그 명호(名號)는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중생들의 무명의 마음〔無詰心〕을 따라 거짓 이름이 행해지기 때문입니다.
행(行)ㆍ식(識)ㆍ명색(名色)ㆍ육입(六入)ㆍ소갱(所更:觸)ㆍ느낌〔通:受〕ㆍ애욕〔愛〕ㆍ취함〔受:取〕ㆍ존재〔有〕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도 또한 이와 같이 임시로 글자가 있게 된 것이니, 그 글자의 근본을 살펴보아도 전혀 머무는 것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다 근본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 본말(本末)을 찾아보아도 얻을 수 없음을 깨달았사오니, 마땅히 무엇을 인연으로 해서 보살을 위하여 이름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천중천이시여, 그 근본이 없는 것은 이름도 없고 머무르는 것도 없으며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중생은 밝지가 못하여 이 무명(無明)을 좇아 이러한 이름들이 이룩되었기 때문이며, 또 그 이름들은 머무는 것도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며, 인연법(因緣法)이 모여서 임시로 이름을 붙여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니, 그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음〔諸陰〕ㆍ여러 가지 요소〔衆種〕ㆍ모든 처소〔諸入〕ㆍ무명(無明)ㆍ열여덟 가지 요소〔種〕ㆍ열두 가지 인연(因緣)과 모든 불법은 없는 것이어서 인연이 합하여 임시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임시로 붙여진 이름들은 비유하면 그림자나 메아리ㆍ아지랑이ㆍ파초ㆍ허깨비와 같아서 다만 임시로 붙여진 이름일 뿐입니다. 그것은 마치 허공과 같으니, 허공은 이름이 없는 것이어서 비유하면 마치 땅ㆍ물ㆍ불ㆍ바람도 허공과 같으니, 땅ㆍ물ㆍ불ㆍ바람 그 자체도 이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름하여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지견(解脫知見) 등의 일과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이라고 하지만,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며, 성문ㆍ벽지불도 또한 이와 같아서 다만 임시로 붙여진 이름일 뿐입니다.
이른바 보살 및 보살이라는 글자도 다만 임시로 붙여진 이름일 뿐이며, 이름하여 부처님, 모두 부처의 법이니 하고 말하지만 그 또한 실상은 없고 다만 임시로 붙여진 이름일 뿐입니다.
선(善)이니, 악(惡)이니, 화(禍)니, 복(福)이니 하는 것과 항상하다느니, 덧없는 것이라느니, 괴로움이니, 즐거움이니 하는 것 같은 것과 나라거나 내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은 것과 적막함ㆍ편안함ㆍ두려움ㆍ있다고 하는 것ㆍ없다고 하는 것4)에 대하여 제가 이 진리를 관찰해보면 이런 것들은 이른바 모두가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그렇게 된 것으로서, 가령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이름을 세운다면 모든 법에 대하여 의심만 생길 것입니다. 또한 그 본말을 살펴보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그 이름은 법계에도 없고 또한 머무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중생의 무리들은 무명(無明)의 마음을 따라서 이러한 이름이 이룩되었기 때문인데 또한 그 명호조차도 머무는 것이 없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며 처소도 없습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가령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비유와 방법으로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으며, 겁내지도 않고 어려워하지도 않으며, 마음 속에 성급한 생각도 품지 않습니다. 그 보살마하살은 곧 아유월치과(阿惟越致果)에 머물고 있으므로 머물되 머무는 것이 없고 행하되 행하는 것이 없다고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또 천중천(天 中天)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물질에 머물지 않아야 하고 아픔과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눈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귀ㆍ코ㆍ혀ㆍ몸ㆍt에도 머물지 않아야만 하며, 마땅히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미세하고 매끄러운 감촉ㆍ법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눈과 빛깔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 귀와 소리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 코와 냄새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 혀와 맛으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 몸과 미세하고 매끄러운 촉감으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 뜻과 법으로 인하여 생기는 인식작용에도 머물지 않아야만 하며, 눈의 접촉〔所習更〕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눈의 인연 습기로 인하여 생긴 느낌〔痛痒〕과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인연 습기로 생긴 느낌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땅ㆍ물ㆍ불ㆍ바람의 요소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허공이라는 요소에도 머물지 않아야만 하며, 마땅히 모든 의식의 요소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무명ㆍ행ㆍ식ㆍ명색ㆍ육입(六入)ㆍ소갱(所更)ㆍ느낌ㆍ애욕ㆍ취함ㆍ존재ㆍ나고 늙고 병들어 죽음에도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천중천이시여, 물질은 공이기 때문이요 아픔과 가려운 느낌ㆍ고정 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또한 공이기 때문이며, 물질이 공(空)이라면 이름도 공과 다르지 않고 물질이 공이면 공이 곧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인연의 생각을 가지고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마땅히 물질에 머물게 될 것이요 마땅히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에 머물게 될 것이며, 마땅히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미세하고 매끄러운 촉감ㆍ법ㆍ열여덟 가지 요소〔種:界〕ㆍ열두 가지 인연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은 공(空)하기 때문이요 열두 가지 인연도 공하기 때문입니다.
열두 가지 인연과 나고 죽음의 근원은 공과 다름이 없고 머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저 열두 가지 인연인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곧 공이 되면 나서 늙고 병들이 죽는 열두 가지 인연도 자연히 공하며 그 근본 또한 저절로 공할 터이니, 이러므로 천중천이시여, 마땅히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 ㆍ 고정관념 ㆍ 나고 죽는 행업 ㆍ 인식작용 ㆍ 눈 ㆍ 귀 ㆍ 코 ㆍ 혀 ㆍ 몸 ㆍ 뜻, 물질 ㆍ 소리 ㆍ 냄새 ㆍ 맛 ㆍ 미세하고 매끄러운 촉감ㆍ법ㆍ열여덟 가지 요소 ㆍ 열두 가지 인연의 단서(端緖)에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또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네 가지 의지(意止:念住)에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네 가지 의지를 관찰해 보면 그 또한 공(空)하기 때문입니다. 네 가지 의지가 공과 다르지 않다면 또한 공과 다름없어서 그 네 가지 의지는 자연 공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보살은 네 가지 의단ㆍ네 가지 신족(神足)ㆍ오근(五根)ㆍ오력(五力)ㆍ일곱 가지 각의(覺意:覺支)ㆍ여덟 가지 머물러 가는 길〔由行:正道〕ㆍ열 가지 요소의 힘〔種力〕ㆍ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無所畏〕ㆍ 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分別辯〕ㆍ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에도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그 의지 ㆍ 의단 ㆍ 신족 ㆍ 근 ㆍ 힘 ㆍ 각의 ㆍ 머물러 가는 길 ㆍ 열 가지 요소의 힘 ㆍ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 ㆍ 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 ㆍ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도 자연 공이어서 공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가진 법도 그 본성(本性)은 공한 것이어서 공(空)과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 법을 헤아려보면 그 또한 공한 것이고 공하므로 불법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천중천이시여, 이러한 까닭에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오음(五陰:五蘊) ㆍ 육쇠(六衰:六根) ㆍ 열여덟 가지 요소〔種:界〕ㆍ 열두 가지 인연(因緣) ㆍ 서른 일곱 가지 조도품(助道品) ㆍ 열 가지 요소의 힘 ㆍ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 ㆍ 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 ㆍ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가진 법에도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또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단바라밀 ㆍ 시바라밀 ㆍ 찬바라밀 ㆍ 유체바라밀 ㆍ 선바라밀 ㆍ 반야바라밀에도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반야바라밀도 또한 공(空)하기 때문이니, 가령 반야바라밀이 공하다면 반야바라밀을 공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반야바라밀이 공과 다르지 않다면 반야바라밀은 자연 공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반야바라밀이 자연 공한 것이라면 그것은 오직 문자일 뿐이며 임시로 붙여진 이름일 따름이니, 문자가 곧 공이요 공이 곧 반야바라밀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반야바라밀에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오음ㆍ육쇠(六衰) ㆍ 열여덟 가지 요소 ㆍ 열두 가지 인연 ㆍ 서른 일곱 가지 조도품 ㆍ 열 가지 요소의 힘 ㆍ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 ㆍ 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 ㆍ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도 공하니,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그 가운데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또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문자(文字)에 머물지 않아야 하고 문자로 된 말에 머물지 않아야만 하며, 한 끼니의 밥이나 두 끼니의 밥에 머물지 않아야 하고 또한 세 끼니의 밥과 네 끼니의 밥, 췌식(揣食) ㆍ 심식(心食) ㆍ 식식(識食)에도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문자로 말하는 그 모든 문자는 공이요 공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자는 자연 공이니 그 공에는 문자가 없으며, 문자의 근본은 공이니 공에는 명자(名字)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신통(神通)에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저 신통이라고 말하는 신통은 자연 그대로 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통의 근본이 공하므로 다른 신통이 없이 공한 것이니 신통은 공하고, 공과 다름이 없으니 신통은 자연 그대로 공한 것이요 공이 곧
신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오직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신통에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또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물질을 생각하는 데에 머물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아프고 가려운 느낌〔痛痒:受陰〕ㆍ고정관념〔思想:想陰〕ㆍ 나고 죽는 행업〔生死:行陰〕ㆍ 인식작용〔識:識陰〕의 생각에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항상 하지 않은 것이 항상 하지 않다면 공이요, 항상 하지 않다는 것이 자연 공하다면 항상 하지 않은 것이 아니요 항상 하지 아니함과 다름이 없어서 공한 것이라면 공과 다름이 없어서 항상 하지 아니함이 곧 공이 될 터이니 공은 항상 하지 아니함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물질이 공하다는 데에 머물지 않아야 하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이 공하다는 데에 머물지 않아야만 하며, 물질이 덧없는 것이라는 데에 머물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 ㆍ 나고 죽는 행업ㆍ 인식작용은 무상(無常)한 것이라는 데에 머물지 않아야만 하며, 마땅히 눈 ㆍ 귀 ㆍ 코 ㆍ 혀 ㆍ 몸 ㆍ 뜻이 덧없는 것이라는 데에 머물지 않아야 하고 빛깔 ㆍ 소리 ㆍ 냄새 ㆍ 맛 ㆍ 미세하고 매끄러운 촉감 ㆍ 법이 덧없는 것이라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열여덟 가지 요소와 열두 가지 인연의 시작과 마침이 덧없는 것이라는 데에도 마땅히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괴로움에 머물지 않아야 하고 즐거움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물질이 내 것이라거나 내 것이 아니라거나 하는 그 가운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이 내 것이라거나 내 것이 아니라거나 하는 그 가운데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물질이 공(空)이라거나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이 공이라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공(空)이라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미세하고 매끄러운 촉감ㆍ법이 공이라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열여덟 가지 요소와 열두 가지 인연, 즉 나고 죽음에 대한 근심이 공이라는 데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고 작용이 있고 작용이 없음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본제의 법〔本際法〕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고 물질이 적연(寂然)하다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은 적연한 것이라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물질은 공하여 황홀하다는 데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 ㆍ 고정관념 ㆍ 나고 죽는 행업 ㆍ 인식작용은 허무하여 황홀하다거나 하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여섯 가지 감관〔六衰:六根〕ㆍ 열여덟 가지 요소 ㆍ 열두 가지 인연법도 또한 이와 같이 해야만 합니다.
또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근본이 없다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근본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없어서 그 또한 공하기 때문입니다. 근본이 없으면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근본이 없으면 그것은 곧 정이 되므로 공과 다를 게 없고, 공과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곧 근본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본이 없으면 저절로 공할 것이며 공은 곧 근본이 없는 것이니, 이러한 까닭에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근본이 없는 데에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 관념ㆍ나고 죽는 행업 ㆍ 인식작용은 근본이 없는 것이라는 데에 머물지 않아야 하고 마침내는 모든 법과 모든 법계(法界)와 모든 적연한 법으로부터 본제(本際)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또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일체의 총지문(總持門:多羅尼門)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또한 일체의 삼매문(三昧門)에도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이른바 총지문은 그 총지문 또한 공하기 때문이요 삼매문이라고 말하는 저 삼매문도 공(空)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삼매문과 총지문은 자연히 공이 되므로 공과 다른 것이 아니요 자연히 공한 것까지도 공과 다르지 않기때문입니다. 총지문과 삼매문은 그 근본이 깨끗하지만 그 깨끗하고 공한 법까지도 자연 공한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비유하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善巧方便)가 없기 때문에 나〔我〕니 내 것이니 하고 말하는데,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 물질에 머물게 되고 물질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조작함과 나고 죽는 행음이 있게 됩니다.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에 머물러 있으면서 조작하는 것이 있어 작용하므로 조작과 나고 죽는 원인을 없애지 못하고 도리어 반야바라밀을 받아도
반야바라밀을 정밀하게 부지런히 닦기를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반야바라밀에서 생겨나는 일을 갖추어 만족하지도 못할 것이요 살운야(薩芸若:一切智)에 이르지도 못할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비유하면 보살마하살은 구화구사라가 없기 때문에 그 마음 속에 나니 내 것이 아니니 하는 생각과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ㆍ괴로움ㆍ즐거움ㆍ착함ㆍ악함과 총지문ㆍ삼매문이라는 생각을 내어 총지문을 닦을 수도 없고 삼매문을 닦을 수도 없으며 생각이 없는 행(行)을 지을 수도 없어서 반야바라밀을 받아도 또한 반야바라밀을 정밀하고 부지런히 닦을 수가 없으니 반야바라밀을 갖추어 만족하게 하지 못하고 살운야의 지혜를 성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구화구사라가 없기 때문에 마땅히 물질을 받지 않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을 받아들이지 않아야만 하는데, 보살은 도리어 물질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이란 본래 청정한 것이니 깨달으면 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말하면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을 받아들이는 것과 말과 가르침은 본 성품이 청정하므로 그 또한 공한 것입니다.
모든 총지문(總持門)과 갖가지 삼매문(三昧門)을 받아들이지 않아야만 합니다. 가령 삼매문과 총지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근본 성품이 깨끗하여 공함을 일으켜 세울 수 있고, 또한 반야바라밀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리니, 그것은 근본이 깨끗하여 공하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와 같이 모든 법은 그 본성이 청정하고 공한 것이라고 관찰해야 하고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하는 데에 머물러서, 법과 나는 작용하는 행위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받아들임이 없는 무수삼매(無受三昧)라고 합니다.
도량을 갖추어 만족하고 넓어서 끝이 없고 한량없는 작용은 모든 성문과 벽지불로서는 미칠 수 없습니다.
또
살운야(薩芸若)도 받아들이지 않나니 안〔內:六根〕이 공하고 밖〔外:六境〕도 또한 공하며 안과 밖이 모두 공하기 때문입니다. 공을 구해보면 그 또한 공하고 세계〔大〕도 공하며, 마침내 진공(眞空)도 공하고 존재함이 있는 것도 공하고 존재함이 없는 것도 공하며, 최후의 경지까지 다 공하고 넓고 먼 곳도 공하며, 조작도 공하고 그 깨끗한 근본 성품도 공하며, 자연의 모습도 공하고 일체의 법도 공하며, 소유함이 없는 것도 공하고 자연도 공하며 원인을 따라 발기하는 것도 자연 공하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문득 변화에 나아가기 때문이며, 그 변화는 번뇌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변화라고 하며 무엇을 생각이라고 하는가 하면, 모든 물질은 변화되는 것이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 이것은 문득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열여덟 가지 요소ㆍ열두 가지 인연ㆍ총지문ㆍ삼매문은 곧 번뇌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잘 알아 마땅히 받아들여 봉행해야 하고 여기에 의지하지 않아야 하며, 이것을 양육함이 없어야만 합니다.
성문과 벽지불은 살운야를 믿고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니, 어떤 것을 믿고 즐거워함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믿음이란 이 반야바라밀을 독실하게 즐거워하여 의지하지 않고 생각하여 분별하며, 그 요의(要誼)를 관찰함에 생각함이 없고 행함에 있어서도 생각함이 없나니, 이런 까닭에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아야만 합니다.
반야바라밀을 전일하게 의지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고 독실하게 믿게 되면, 그 근본 성품이 깨끗하고 공하게 되어 문득 해탈을 얻게 되어서 다시는 물질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아픔과 가려운 느낌ㆍ고정 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모든 법의 모양은 자연 공하여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성문ㆍ벽지불이 삼매선정〔三昧定〕으로 안을 얻지 못한 것을 시혜(時慧)라 하고 또 밖을 얻지 못한 것을 시혜라 하며, 안과 밖을 얻지 못한 것을 시혜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볼 수 없는 까닭은 안과 밖이 다 공(空)하여 그 인연을 제거하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마치 외도들이 배우고 믿는 것을 그들도 즐거워하고 독실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살운야(薩芸若)로써 모든 법을 한정하고 모든 법을 헤아려보아도 전혀
어느 곳을 따라 일어난 것인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믿어 깨닫고 나면 받아들일 법이 없으며 또한 존재하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능히 무앙수(無央數)의 많은 법을 얻을 수가 없으며, 마땅히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것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또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에 노닐고 머물면서 능히 닦고 익히며 모든 법에 대하여 생각할 것도 없기 때문에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니, 이는 또한 가고 옴도 없고 열반에 이르고 열반에 이르지 못함도 없이 두루 노닐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은 물질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모든 법에 대해서도 또한 받아들일 것이 없고 모든 총지문(總持門)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모든 삼매문(三昧門)도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법에 대하여 일으키고 받아들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또한 그 가운데에서 반열반(般涅槃)을 취하지 않고 열 가지 요소의 힘〔種力〕ㆍ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無所畏〕ㆍ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分別辯〕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ㆍ네 가지 의지(意止)ㆍ네 가지 의단(意斷)ㆍ네 가지 신족념(神足念)ㆍ오근(五根)ㆍ오력(五力)ㆍ일곱 가지 각의(覺意)ㆍ열여덟 가지 유행(由行)을 다 갖추어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왜냐 하면 저 네 가지 의지는 그칠 곳이 없는 데에 그치기 때문이요, 네 가지 의단ㆍ신족ㆍ오근ㆍ오력ㆍ일곱 가지 각의ㆍ여덟 가지 유행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그 끊는 것도 끊을 것이 없는 것을 끊기 때문입니다. 열 가지 요소의 힘ㆍ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ㆍ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에 대해서도 깨달을 대상이 없는 법을 깨달으려고 하기 때문이니, 그 법은 아무리 헤아려보아도 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이니, 물질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에서부터 총지문과 모든 삼매문에 이르기까지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또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와 같은 관찰을 해야만 하나니, 무엇이
반야바라밀이며, 무엇 때문에 이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하는 것이가? 누가 이 반야바라밀을 닦으며, 무엇 때문에 이러한 반야바라밀이 있는가? 이 반야바라밀을 닦아도 또한 얻는 것이 없고 보는 것도 없으며 보지 못하는 것도 없으니,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라고 합니다.
또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법도 아니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반야바라밀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어진 분이시여, 어떤 법을 있는 것도 아니요 얻을 수도 없는 법이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반야바라밀이라는 법은 있는 것도 없고 얻을 수도 없으며, 단(檀:布施)바라밀ㆍ시(尸:持戒)바라밀ㆍ찬(羼:忍辱)바라밀ㆍ유체(惟逮:精進)바라밀ㆍ선(禪:禪定)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도 역시 이와 같아서 있는 것도 없고 얻을 수도 없습니다. 안〔內:六根〕이 공(空)하고 밖〔外:六境〕이 공하며, 안과 밖이 모두 공하니 저것들이 공함으로 인하여 마침내 세계〔大〕가 공하게 되고 진공(眞空)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소유(所有)함이 없는 공, 그 공으로 인하여 마침내 존재함이 없는 것도 공하고 덧없는 것도 공하며, 두렵고 황홀함도 공하고 만들어진 일도 공하며, 본래의 성품이 깨끗함도 공하고 자연의 모양도 공하며, 모든 법도 공하고 소유함이 없는 것도 공하며, 자연(自然)도 공하고 자연 속의 모든 물질도 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물질이란 존재하는 것도 없고 얻을 수도 없으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또한 존재하는 것이 없고 얻을 수도 없으며, 저 안이 공하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도 없고 얻을 수도 없음, 존재하는 것의 공함, 존재하는 것이 없는 것의 공함, 자연의 공하몯 모두 존재하는 것이 없고 또한 얻을 수도 없습니다.
네 가지 의지도 다 존재하는 것이 없고 얻을 수도 없으며, 네 가지 의단ㆍ네 가지 신족ㆍ오근ㆍ오력ㆍ일곱 가지 각의ㆍ여덟 가지
유행도 모두 다 존재하는 것이 없고 얻을 수도 없습니다. 열 가지 요소의 힘ㆍ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ㆍ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도 모두 존재하는 것이 없고 얻을 수도 없으며, 저 여섯 가지 신통도 존재하는 것이 없고 얻을 수도 없으며, 근본 성품이 없는 것도 존재하는 것이 없고 얻을 수도 없으니, 이른바 법이다 법에 머문다고 하는 것과 적연한 법과 본제(本際)를 살피는 것도 모두 존재하는 것이 없고 얻을 수 없으며, 부처라고 말하는 것도 다 존재하는 것이 없고 살운야도 다 존재하는 것이 없고 얻을 수도 없으며, 모든 갖추어진 지혜도 다 존재하는 것이 없고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안이 공하고 밖이 공하며, 안과 밖이 모두 공하고 존재하는 것도 공하며, 자연도 공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와 같이 생각하고 이와 같이 관찰해야만 됩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마치면 마음이라는 견해도 내지 않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며, 더럽게 물드는 것도 없고 두렵지도 않으며, 무섭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으며 어려워하지도 않아서 마음에 두려움을 품지 않게 되면, 마땅히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않는다고 알아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이른바 물질을 여의었다는 것은 물질 그 자체는 자연이기 때문이요,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을 여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것이 자연 그대로이기 때문이며, 이른바 단바라밀을 여의었다는 것은 단바라밀이 자연이기 때문이요 시바라밀ㆍ찬바라밀ㆍ유체바라밀ㆍ선바라밀ㆍ반야바라밀을 여의었다는 말은 여섯 가지 바라밀이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의지(意止)ㆍ의단(意斷)ㆍ신족(神足)ㆍ근(根)ㆍ력(力)ㆍ각의(覺意)ㆍ여덟 가지 유행(由行)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을 여의었다는 것도 그 모두가 자연이기 때문이며, 이른바 열 가지 요소의 힘ㆍ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ㆍ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을 여의었다는 것은 이 모든 부처님의 법이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총지문(總持門)과 삼매문(三昧門)을 여의었다는 말과 본제(本際)를 여의었다는 것은 본제 그 자체가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물질이 자연이라고 말하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이 자연이라고 말합니까? 어찌하여 열두 가지 인연과 서른일곱 가지 조도품,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이 자연이라고 말합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이미 존재함이 없기 때문에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질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질은 자연이라고 말하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은 존재하는 것이 없으므로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의식은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나아가 본제(本際)에 이르기까지도 존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런 까닭에 이와 같이 관찰하는 이는 물질이 자연임을 깨달아서 물질을 여의게 되는데, 그들은 곧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까지도 자연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오음(五陰)ㆍ육쇠(六衰:六根)ㆍ열여덟 가지 요소ㆍ열두 가지 인연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ㆍ열 가지 요소의 힘ㆍ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ㆍ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도 모두 본성품이 청정하여 존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본성품이 깨끗한 그것이 곧 자연입니다.
물질을 여의었다고 말하는 것은 물질의 본모습을 여읜 것이요,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을 여의었다는 말도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의 본모습을 여읜 것이며, 일체의 법과 모든 부처님의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제(本際)를 여의었다는 것은 본제의 모습을 여의었기 때문이니, 물질은 자연의 모습이고 자연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 모습은 자연이라고 생각하여 멀리 여읠 수 있습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 법을 배우는 이가 있으면 모두 마땅히 살운야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어진 분이시여, 이러한 것은 배우는 이는 모두 살운야를 성취하게 됩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은 생겨나는 것도 없고 소멸되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수보리여, 무슨 까닭에 모든 법은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소멸하는 것도 아닙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사리불이여, 이른바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물질 자체가 곧 공한 것이니 이러한 까닭에 생겨나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얻을 수도 없는 것이요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공한 것이니, 그런 까닭에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소멸하는 것도 아닙니다.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미세하고 매끄러운 촉감ㆍ법ㆍ열여덟 가지 요소〔種:界〕ㆍ열두 가지 인연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助道品)ㆍ열 가지 요소의 힘ㆍ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ㆍ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ㆍ모든 총지문ㆍ일체의 삼매에서부터 본제(本際)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 것이며 얻을 수도 없습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와 같이만 한다면 살운야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가령 살운야에 가까워질 수만 있다면 그의 몸과 입과 뜻은 저절로 깨끗해질 것이요, 모든 모습이 깨끗하게 되면 저절로 살운야를 갖추어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또 그 몸과 입과 뜻을 능히 청정하게 하였기 때문에 모든 모습을 청정하게 갖추어 만족할 수 있으며, 이렇게 청정함을 성취하게 되면 그때 보살은 곧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요,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은 마음이 이미 깨끗해지면 문득 교만과 성냄ㆍ탐욕이 없어져서 다시는 예순 두 가지 삿된 소견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삿되고 의심하고 탐내고 성내는 마음이 이미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모든 의혹을 일으키는 예순두 가지 삿된 소견이 없어져서 그가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보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요, 또 그가 태어날 때마다 여러 부처님이 계시는 곳에 태어나게 되며, 한 부처님의 국토에서 또 다른 한 부처님의 국토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그곳에 있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부처님의 국토를 엄숙하고 깨끗하게 하고, 항상 전일한 마음을 가져서 모든 부처님 세존을 떠나지 않으며, 마침내 아뇩다라삼야삼불(阿耨多羅三耶三佛)의 경지에 이르고 아유삼불(阿惟三佛)을 성취하리니, 이와 같은 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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