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974 불교(고승전 13권 9편/ 高僧傳)

by Kay/케이 2023. 2. 25.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고승전(高僧傳) 139

 

14) 석법열(釋法悅)

법열은 계율을 지키는 깨끗한 사문이다. 북제(北齊)의 말엽에 칙명으로 승주(僧主)가 되었다. 서울의 정각사(正覺寺)에 머물렀다. 돈독히 복된 일을 닦아 사부대중이 귀의하였다.

어느 날 법열은 팽성(彭城)의 송왕사(宋王寺)18척의 금불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곧 전송의 거기(車騎)장군인 서주(徐州) 자사 왕중덕(王仲德)이 조성한 것이다. 빛나는 광배의 모습이 빼어나, 강남에서는 가장 뛰어나다고 일컬었다.

고을 경내에 혹 재난과 이변이 있거나, 승려나 비구니에게 허물이나 뒤틀린 일이 있을 경우, 불상에서는 곧 땀이 흘러내렸다. 그 땀의 많고 적은 것이, 곧 재앙이나 근심의 심하고 옅은 정도를 표시하였다.

전송의 태시(泰始) 연간(465471) 초기에 괭성의 북쪽 부족인 뭇 오랑캐들이 함께 불상을 옮겨가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만 명이 끌어당겼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였다.

북제의 초기에 연주(兗州)의 몇몇 고을에서 의거를 일으켜, 남방에 붙고자 하였다. 대중 승려들을 핍박하고 몰아세워, 그들을 도와 군영과 참호를 지키게 하였다. 당시 오랑캐의 장수 난릉공(蘭陵公)이 이 군영을 공격 함락시켜, 여러 승려들을 노획하였다. 이에 두 고을의 도인을 모두 잡아 포위망 속에 가두어두었다. ()를 위대(僞臺北魏朝延)에 보내어, 난을 도운 사람들이라 무고하였다. 이때 불상에서 땀이 흘러내려 온 불전이 모두 젖었다.

당시 위양왕(僞梁王北魏梁王) 원량(元諒)이 팽성에 주둔하였다. 다소 불교를 믿었기에, 친히 불상이 있는 곳에 가서 사람을 시켜 땀을 닦아냈다. 그러나 닦아내면 또 따라 나와서, 끝내 그칠 수가 없었다. 이에 왕은 곧 향을 사르고 예배하며,

 

지심으로 서약하였다.

대중 승려들은 무죄입니다. 제자가 스스로 그들을 보호하는 일을 맡아, 화를 입지 않게 하겠습니다. 만약 나의 보이지 않는 정성에 감응이 있다면, 땀을 닦거든 곧 멈춰 주십시오.”

이에 손수 땀을 닦아내니 곧 건조해졌다. 이에 왕이 표를 갖추어 그 일을 나라에 알리니, 모든 승려들이 다 사면되어 풀려났다.

법열은 이와 같은 불상의 신령하고 기이함에 기뻐서, 우러러 예배드리기를 서원하였다. 그러나 관문의 금지로 길이 막히고 격리되어, 소원을 이룰 길이 없었다.

또한 예전에 전송의 명제(明帝)18척의 금불상 조성을 경영하였다. 네 번 주조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계획을 바꾸어 14척의 금불상으로 조성하였다. 법열은 마침내 백마사(白馬寺)의 사문인 지정(智靖)과 더불어, 인연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힘을 모았다. 이를 18척의 아미타불로 개조하고자, 그 뜻을 알리고 비로소 금동을 모았다.

당시 시대가 북제의 말기에 속하여, 세상의 도의가 짓밟히고 쇠약해졌다. 또다시 밀려 배척당하였다. ()나라 초기에 이르러 비로소 이 일을 나라에 상계하였다. 그러자 칙명이 내려 이를 허가하였다. 아울러 빛나는 받침대의 조성을 돕게 하였다. 관에서 보내는 재료와 솜씨 있는 장인에게 필요한 대로 비용을 자급하여서, ()의 천감(天監) 8(509) 53일에 소장엄사(小莊嚴寺)에서 주조에 착수하였다.

장인(匠人)이 본래 헤아리기는, 부처의 몸에 4만 근의 구리가 필요하다고 계산하였다. 녹여서 쏟아 부은 것이 이미 다하였다. 그러나 아직 가슴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백성들이 보내오는 구리도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모든 구리를 용광로 안에 던져도, 모형 안을 채우지 못하는 것이 저절로 앞서의 상태와 같았다. 이에 다시 말을 달려 나라에 알렸다. 칙명으로 공덕으로 쓸 구리 3천 근을 공급하였다.

이때 조정안에서 비로소 양을 헤아려 보내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불상을 주조하는 곳에 이미 양이 모는 수레로 조서가 전달되었다. 또한 구리를 실은 수레가 용광로 옆에 이르렀다. 이에 풀무를 날려 구리를 녹이니, 한 번 주조함에 곧 불상 안이 가득해졌다.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사람과 수레가 함께 없어졌다. 조정안에서 구리를 내온 시간과 비교해보니, 비로소 방금 보내온 구리는 참으로 신령한 감응의 소치임을 알았다. 장인들은 이에 뛸 듯이 기뻐하고, 도인과 속인들은 이를 칭찬하였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