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경률이상(經律異相) 11권 12편
양 사문 승민ㆍ보창 등 편집
‘이 사람이 전에 물 속에 빠져 있기에 저는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직접 물 속에 들어가 이 사람을 업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일러 주지 않기로 서로 약속하였사옵니다. 은혜를 입고 보답을 못 한다면 이는 물 속에 떠 있는 나무토막보다 못할 것입니다.’
왕은 부끄러워하는 빛을 띠면서 세 번이나 그 백성에게 말하였다.
‘네가 그런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어떻게 도리어 사슴을 죽이려고 하였느냐?’
왕은 이내 나라 안에 하명하였다.
‘만약 이 사슴을 몰아 쫓는 자가 있으면, 5족(族)을 멸하리라.’
뭇 사슴 수천 마리가 모두 와 이 사슴의 뒤를 따르면서 물과 풀만을 먹고 곡식 밭에 침입하지 않았다. 또 바람과 비가 시절을 맞추어 내려 주었기에 오곡이 고루 잘 익었고, 사람들에게는 질병이 없어서 세상은 태평하여졌느니라.
이 때의 아홉 가지 색깔을 지닌 사슴은 바로 지금의 내 몸이요, 까마귀는 바로 아난이니라. 국왕은 바로 지금의 부왕이신 열두단(閱頭檀)이며, 그 때의 왕부인은 바로 지금의 손타리(孫陀利)이다. 그 때 물에 빠졌던 사람은 바로 지금의 조달인데, 내가 비록 착한 마음을 지녀 그에게 향하는데도 짐짓 나를 해치려 하였었느니라. 아난은 지극한 뜻을 지녔었느니라.”『구색록경(九色鹿經)』에 나온다.
(12)기러기 왕이 되어 사냥꾼에게 잡혔다가 풀려나서는 국왕에게 청하여
은혜를 갚다
“과거 세상 때에 바라내성(波羅奈城)이 있었는데 성 옆에 우성(雨成)이라는 못이 있었다. 이 못 안에는 고기와 거북, 거위나 기러기, 오리 등이 많았다.
그 가운데 치국(治國)이라고 하는 기러기 왕이 있어서 5백 마리 기러기의 임금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 때에 어떤 사냥꾼이 먼저 털로 만든 덫을 놓아두었는데, 기러기 왕이 앞으로 나아가다가 오른 다리가 덫에 걸리고 말았다. 그는 생각하였다.
‘만약 내가 이 덫에 걸린 다리를 내 보이면 다른 기러기들이 감히 모이를 먹지도 않으리라.’
기러기 왕은 다른 기러기들이 곡식을 다 먹은 뒤에서야 다리를 내어 보였다. 여러 기러기들은 다 날아가 버리고 소마(蘇摩)라는 한 기러기만이 남았는데, 왕을 버리고 떠나가지 않으므로 왕은 대신인 그에게 말하였다.
‘나와 그대는 직책이 왕인지라, 여러 기러기들의 앞에서 날아가야 하오.’
대답하였다.
‘그럴 수 없나이다.’
왕이 물었다.
‘무슨 까닭에 그렇다는 것인가?’
그 때 대신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저는 원하건대 왕을 따르리라.
죽어서나 살아서나 변치 않으리.
차라리 왕과 함께 죽게 되어서
훌륭한 모습으로 삶을 떠나오리다.
대왕이여, 아셔야 하옵니다.
덫을 놓은 사냥꾼이 오고 있으니
다만 방편을 부지런히 쓰시어
이 덫을 벗어나기 바라옵니다.
그 때 기러기 왕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내가 부지런히 방편을 써온지라
힘이 이미 다하고 없도다.
털 덫은 더욱더 죄어드는데
벗어날 방도는 도무지 없구나.
소마 대신은 덫을 놓은 사냥꾼이 오는 것을 보고 그를 향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대왕의 털과 기름과 살은
저와 똑같아서 다름이 없소.
당신은 그 칼로 나를 죽이고
왕은 풀어 주어 다치지 마소서.
그 때 덫을 놓은 사냥꾼은 대신에게 말하였다.
‘나는 둘 다 죽이지 않겠다. 너와 왕을 놓아줄 터이니 좋아하는 곳으로 떠나가거라.’
사냥꾼은 즉시 기러기 왕을 풀어 주는지라 두 기러기는 함께 떠나가려 하면서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이 사냥꾼이야말로 참으로 드문 일을 하시어 우리들의 생명을 살리셨다. 우리들은 살림 밑천을 후하게 보답해야겠습니다.’
사냥꾼은 물었다.
‘너희들이야 그저 축생일 뿐인데, 무슨 살림 거리가 있다고 나에게 보답하겠다는 것이냐?’
두 기러기는 대답하였다.
‘바라내의 왕의 이름은 범덕(梵德)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데리고 함께 가십시다.’
사냥꾼은 기러기를 두 어깨 위에다 메고 성안의 거리에 이르렀다. 이 기러기의 모습이 아주
단정하였는지라 뭇 사람들이 보기를 즐겨 하며, 어떤 사람은 5전(錢)이며 10전이며 20전을 주겠다고 나서면서 모두들 이 기러기를 죽이지 말라고 말하였다. 그 사람이 기러기를 메고 왕궁에 이르렀을 때에는 벌써 크게 재물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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