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경률이상(經律異相) 8권 8편
양 사문 승민ㆍ보창 등 편집
속으로 부끄러움과 송구스런 생각이 들어 옷을 놓고 멀리 피하기는 하였으나, 스승의 아내는 음욕이 왕성하였기에 눈물을 흘리면서 생각하였다.
“갑자기 거절을 당하다니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구나. 네가 꼭 내 뜻을 따르지 않겠다면 너의 목숨을 끊어 버릴 것이다.”
곧 손톱으로 자신의 몸을 할퀴고서 여성스럽게 보이는 온갖 것으로 제 몸을 꾸미고는, 새끼줄로 손수 매어 놓고 발을 땅에 꼼짝 못하게 붙이고 있었다. 남편이 돌아와 아내를 보자마자 칼로 새끼를 끊어 놓고 크게 고함을 지르며 어찌 된 일인지를 물었다.
아내가 대답하였다.
“세간현이란 놈이 나를 강제로 능욕을 하며 이 꼴을 만들었습니다.”
그 남편은 생각하였다.
“세간현이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나던 날에 모든 찰리(刹利)들이 지니고 있던 칼이 다 저절로 뽑혀 나와 칼날이 말리면서 땅으로 떨어졌었기에 찰리들이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었다. 그가 태어난 날에 이러한 조짐이 있었으니, 이 사람이야말로 큰 덕의 힘이 있는 줄 알겠다.”
세간현에게 말하였다.
“너는 정말 나쁜 놈이구나. 윗사람을 이렇게 욕보이다니. 너는 이제 다시는 참된 바라문이 아니다. 장차 천 사람을 죽여서 죄를 씻도록 하여라.”
세간현은 원래 성품이 공경하고 따르며 스승의 가르침을 존중하는 사람이라, 이내 스승에게 아뢰었다.
“슬픕니다, 화상(和尙)이시여. 천 인을 살해하라 하시니, 저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스승은 이내 말하였다.
“너는 참으로 나쁜 놈이로다. 하늘에 가 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바라문을 하겠다는 것이더냐?”
세간현이 대답하였다.
“화상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명령을 받들어 곧 천 명의 사람을 살해하고 돌아와 스승의 발에 예배하겠나이다.”
듣고 난 스승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하였다.
“네가 대단한 악인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 것이냐?”
다시 또 생각하였다.
‘이제는 죽여야만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서 다시 말하였다.
“한 사람씩 죽여서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손가락 하나씩을 떼어 오너라. 천 사람을 죽인 뒤에는 그 손가락으로 머리 꾸미개를 만들어 머리에 쓰고 돌아오도록 하여라. 그렇게 하여야만 네가 바라문이 될 수 있으리라.”
그는 이런 인연 때문에 앙굴마라(央掘魔羅)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이때 곧 스승에게 아뢰었다.
“좋습니다, 화상이시여.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세간현은 바로 사람들을 죽였으나 아직은 천에서 하나가 모자랐다.
이때 앙굴마라의 어머니는 생각하였다.
“내 아들이 배가 고프겠구나.”
그리고는 몸소 맛있는 네 가지 음식을 가지고 가서 그에게 주었다. 아들은 어머니를 보고는 생각하였다.
“나의 어머님을 천상에 가서 태어나시게 해드려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자 이내 칼을 잡고 나와 어머니의 목숨을 끊으려 하였다.
사위국에서 10유순에서 한 길[丈] 모자라는 거리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으니, 이름은 아수가(阿輸迦)이었다. 이때 부처님께서 일체지(一切智)로써 마치 코끼리 왕처럼 다가오고 계셨다. 앙굴마라가 세존을 발견하고서는 칼을 잡고 빨리 달려가면서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이 사문을 죽여야겠다.”
세존께서 나투어 보이면서 피하여 가시는지라 앙굴마라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일어서시오, 일어서시오. 대사문이신
백정왕(白淨王)의 태자시여,
나는 바로 앙굴마라이니
이제 손가락 하나를 내주셔야 하겠습니다.
세존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멈추어라, 앙굴마라야.
너는 청정한 계율에 머무르라.
나는 바로 등정각(等正覺)이니
너에게 지혜의 칼을 부릴 힘을 주겠노라.
이때 부처님과 앙굴마라 사이에 오가는 간절한 논쟁으로 아들의 마음이 조복되는 것을 보고, 그 어머니는 몸을 풀고 나와 게송으로 말하였다.
오래 잃은 보배 광을 이제 도로 찾았으며
먼지 끼어 못 쓰게 된 눈 이제 밝아졌도다.
슬프도다, 내 아들이 마음이 헷갈리어
언제나 사람 피를 제 몸에 발랐었구나.
날 선 칼을 늘 손에 쥐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많이 죽여 시체 더미를 만들었네.
이 아들로 하여금 나를 따르게 하라.
이제야 등정각께 공경하며 조아린다.
많은 사람이 욕설해도 들은 척도 않다가
아들아, 너는 이리 간절히 나를 책망하는구나.『앙굴마라경(央掘魔羅經)』 제1권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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