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경률이상(經律異相) 8권 4편
양 사문 승민ㆍ보창 등 편집
(4) 찬제화산(羼提和山)이 국왕에게 베임을 당하다
옛날 보살 시절에 범지(梵志)가 되었는데 이름은 찬제화산(羼提和山)이었다. 나무 아래 살면서 열매와 샘물을 먹고 마셨으니, 속에 있던 때가 다 소멸되고 6통(通)에 널리 밝았으며, 모든 것을 다 아는[盡知] 지혜를 얻었다. 이름난 향이 8방과 상하에 자옥하고 성인과 범인이 찬탄하면서 그 나라를 보살폈다. 바람과 비도 때를 맞춰 주는지라 오곡이 풍성하게 잘 익었으며, 재앙과 독은 모두 소멸되었다.
가려(迦黎)라고 하는 왕이 산에 들어가 사냥을 하던 중에 고라니와 사슴의 발자취를 찾아 쫓아가다가 보살의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왕이 보살에게 물었으나 보살은 잠자코 있었으므로, 왕은 말하였다.
“이 죽일 놈의 거지 같으니라고. 내가 이 나라의 가장 높은 사람이다. 짐승이 이곳을 지나갔느냐고 물었는데도 속일 양으로 머리를 숙이고 있으니, 나의 세력으로 너를 죽일 수가 있다.”
보살은 말하였다.
“나도 왕이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너는 대체 누구냐?”
“나는 인욕(忍辱)하는 사람입니다.”
왕이 성이 나서 칼을 뽑아 그의 오른팔을 베었으므로 보살은 말하였다.
“나는 위없는 도에 뜻을 둔지라 언제나 다툼이 없소. 이 왕은 오히려 나에게도 인욕을 강요하니, 하물며 백성에게는 어떻겠는가? 원컨대 내가 부처가 되어 반드시 먼저 제도하리니, 중생으로 하여금 그의 나쁜 짓을 본받지 않게 하소서.”
왕은 다시 말하였다.
“네 놈이 누구이냐?”
또 대답하였다.
“나는 인욕하는 사람입니다.”
왕은 또 그의 왼손과 두 다리, 귀와 코까지 잘라 버렸다. 마치 피가 흐르는 샘물 같았고, 그 고통이야말로 한량없었으며 천지는 진동하고 해와 달은 광명을 잃었다. 사천대왕(四天大王)이 모두 함께 와서 소리를 같이하여 성을 내었다.
“이 왕이 너무 혹독하구나.”
사천왕이 또 도사(道士)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그와 그의 처자를 죽이겠으며, 아울러 한 나라를 멸망시켜 그의 악독함을 드러내겠습니다.”
도사는 대답하였다.
“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것은 모두 내가 전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지 않은 탓이거늘 그에게 혹독한 짓을 하다니요? 악행을 가하면 재화가 따르는 것은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매는 것과 같습니다.”
백성들이 이 괴변을 보고 달려와서 허물을 자백하며 소리를 같이하여 말하였다.
“도사께서는 여기에 계시면서 재앙을 물리치고 멸도하실 분이신데, 어리석은 임금이 선악도 모르고 거취(去就)조차 모르는지라 으뜸가는 성인에게 못된 패악을 부렸구나. 원하옵건대 성인께서는 저희들에게 상제(上帝)의 보복이 없게 하옵소서.”
보살은 대답하였다.
“왕이 흉악하고 포악하게 나를 해쳤지만 나의 마음은 마치 어머니가 갓난 아이 생각하듯이 그를 가엾게 여기고 있습니다. 백성에게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의심 둘 필요조차 없습니다.”
보살에게는 아우가 있어서 다른 산에 살고 있었다. 보살의 아우가 천안(天眼)으로 살펴보았더니, 이때 천인과 신, 용들이 모두 모여 왕의 포악함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는데 분을 품지 않는 이가 없었다. 아우는 혹시 형에게 덕을 손상시키는 마음이 생길까 염려하여 신족(神足)의 힘으로써 형의 처소에 와 닿았다. 아우가 형의 잘려 나간 손과 발, 귀, 코 등을 가져다 그 본래 자리에 다 붙여 놓았다. 아우가 도로 이어 맞추자 이내 본래대로 회복되었기에 형은 말하였다.
“나의 넓고 인자한 믿음이 지금에야 나타났구나.”
천신(天神)과 지기(地祇)도 슬퍼하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서로 머리 조아려 칭찬하고 다시 인도를 권하며
계(戒)를 받고서 물러갔다.
찬제화산은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요, 아우는 바로 미륵(彌勒)이며, 왕은 바로 구린(拘隣)이니라.『도무극집(度無極集)』 제5권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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