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경률이상(經律異相) 7권 13편
양 사문 승민ㆍ보창 등 편집
“너희들 이 화살을 보고 있느냐?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이더냐? 그들이 만약 나를 해치려는 마음만 먹는다면 내가 반드시 죽고 말겠구나. 어서 사위국으로 돌아가자.”
고행을 좋아하는 범지가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 석씨들은 계율을 지키는지라 벌레조차도 해치지 않거든, 하물며 사람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야말로 전진하셔야 할 때입니다.”
왕이 이 말에 따르자 여러 석씨들은 과연 퇴각하여 성안으로 들어가는지라, 유리왕은 말하였다.
“너희들은 빨리 성문을 열어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 다 죽이리라.”
성안에 나이 겨우 열다섯 살인 사마(奢摩)라는 동자가 있었다. 동자가 성에 올라가 혼자서 싸웠는데도 다치는 적들이 많았다. 적군들은 흩어지며 흙구덩이 안으로 숨었다. 이때 여러 석씨 종족들은 동자에게 말하였다.
“네가 우리 문중을 욕되게 하는구나. 누가 싸울 줄을 모르겠느냐? 우리 여러 석씨들은 선행을 닦는 사람들이라,
벌레나 개미조차도 죽이지 않는다. 하물며 사람 생명을 어찌 죽일 수 있겠느냐? 우리들은 한 사람이 만 명을 대적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적군을 잘 쳐부술 수는 있다. 그러나 사람 생명을 살해하게 되면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고,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수명이 짧게 되느니라. 너는 이제 빨리 떠나가거라. 여기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사마는 이내 나라를 떠나고 유리왕 군사는 다시 와서 성문 앞에 이르렀다. 못된 악마 파순(波旬)이 한 석씨의 형상을 하고서 고함을 쳤다.
“빨리 문을 열라.”
여러 석씨들이 문을 여는지라 유리왕은 말하였다.
“석씨들이 많기도 하구나. 모두 다 발만 땅 속에 파묻고, 사나운 코끼리로 밟아 죽이도록 하라.”
그리고 5백 명의 석씨 여인들을 뽑아 왕의 처소로 데리고 갔다.
이 때에 마하남이 왕을 따라오며 애걸을 하므로 왕이 말을 들어주었다. 마하남은 말하였다.
“내가 지금 물에 들어갈테니 내가 물 속에 있는 동안만 모든 석씨들이 마음대로 도망가게 해 주십시오. 만약 내가 물에서 나오거든 뜻대로 그들을 죽이소서.”
왕이 말하였다.
“좋다.”
마하남은 이내 물 밑으로 들어가더니 머리카락을 나무 뿌리에다 매고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안에 있던 석씨들은 네 문[四門]으로 다투어 도망갔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마하남 아버님께서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는구나.”
즉시 물 속에 들어가 끌어내 보니 이미 죽어 있는지라 왕은 마음에 뉘우치는 마음이 생겼다.
“나의 외조부께서 이제 이미 돌아가셨다. 모두가 친족을 사랑한 까닭이로구나. 내가 만약 일찍 알았던들 끝내 공격하여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리왕이 죽인 이가 9,990만 명이었으니, 피가 흘러 강을 이루어 가비라월성을 돌아 흘렀다.
군인들이 떠난 뒤에 목련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서 그래도 4, 5천 명은 보호할 수 있었사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디 가서 보아라.”
목련이 발우를 내려서 보았더니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왕이 니구류원(尼拘留園)에 가서 5백 명의 석씨 여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근심하지 말라. 내가 바로 너희들의 지아비로다.”
한 석씨 여인을 붙잡자 여인은 말하였다.
“내가 이제 무엇 때문에 종의 자식놈과 통정하겠느냐?”
왕은 이내 여인의 손발을 자르고서 깊은 구덩이 속에 처넣었다. 5백 명의 석씨 여인들이 모두가 왕을 꾸짖었다.
“누가 제 몸을 가져다 종의 자식놈과 통정하겠느냐?”
왕은 칙명으로 5백 명의 석씨 여인들을 앞에서의 법대로 죄 주고서 사위국으로 돌아왔다. 이때 기타(祇陀) 태자는 깊은 궁중에서 여러 가지 기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왕이 그 소리를 듣고 수레를 돌려 나아갔는데, 기타도 문을 나오다가 서로 만나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대왕이시여. 잠깐 수레를 멈추시옵소서.”
유리왕은 말하였다.
“어찌하여 너는 내가 여러 석씨 종족들과 싸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느냐? 기생들과 재미있게 놀면서도 나를 돕지 않았더냐?”
기타는 대답하였다.
“듣기는 하였습니다만 저는 중생을 멋대로 살해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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