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결정장론(決定藏論) 하권 13편
진제 한역
김철수 번역
이는 증상연인데, 무슨 뜻이 있기에 중음 가운데서 생한다는 것이며,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이후로부터는 심법(心法) 및 심수법(心數法)에 의지하지 않으면 다시는 다른 처소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메아리와 같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근(根)에 어지러움이 있으면 마치 달이 두 개로 보이는 것과 같다. 만일 중음이 없다고 생각하여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와 같다고 비유한다면 이 또한 이치에 맞지 않다. 왜냐하면 거울의 면(面)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림자의 비유는 옳지 않다. 만일 다시 마음이 경계를 취함과 같다고 생각한다면 중간식(中間識)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대의 비유는 옳지 않다. 마음은 나아감[去]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비유들이라면 파괴되나니 중음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믿을 만하며 이를 색음(色陰)이라 한다.
생분(生分)의 사유는 이미 색음을 생하였다. 그런데 무엇이 먼저 나아가 생처(生處)를 취하여 다른 색의 처소가 생기는 것인가?
【답】사대가 먼저 존재하여 생처(生處)를 향수(向受)하니, 사대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처소[處]에서 조색과 대가 함께 생하며 사대의 처소가 생하는 처소를 장애하기 때문에 생한다. 또한 조색(造色)의 자상(自相)이 두루하기 때문에, 그리고 대(大)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능히 생처를 장애할 수 있다.
땅[地] 등 사대(四大)는 그것의 거칠거나 세밀함을 알 수 있으니 차례대로 말하자면 먼저 지계(地界)는 간직하는 성품이 있기 때문에 사업(事業)을 지을 수 있으니, 그 결과가 있게 된다고 말할 수 있으며, 물, 불, 바람의 계(界)는 흐르고, 태우고 부는 것이 이 세 가지 대(大)의 업(業)이다.
모든 소리는 생멸(生滅)함이 있으니, 색이 화합한 상태에서 오래 이어지지[相續] 않는다. 이 소리는 내외(內外) 두 곳을 의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시에 생처에서 들을 수 있으며
모두 가득 차게 되니, 다치 불꽃의 광명이 이름[至]에는 전후(前後)가 따로 없고 느리거나 빠름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바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움직임[動]과 움직이지 않음[不動]이다. 바퀴는 움직이지 않음이고 공중에서 나아가는 것은 움직임이다.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항상 수순하거나 허깨비[幻化]를 간직하는 것인데 허깨비를 간직하는 것은 움직이지 않음이다. 이와 다른 것은 다 움직임이다.
허공계란 명암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모두 조색이니, 이를 공계(空界)라 한다. 명암 등을 떠나면 공계의 별도의 양상[別相]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움직임이 없다. 중생의 처소에는 항상 광명이 있기도 하고 항상 어둠이 있기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는 움직임이 없다. 만약에 이러한 처소와 다르다면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색이 화합함에 의지하여 청정하고 허랑(虛朗)하면 광명에 소속되고 청정하거나 허랑하지 않은 것 역시 색에 포함된다.
【문】형색(形色)이란 길고 짧음 등을 말하는데 이것은 실유(實有)하는 법입니까, 아니면 가명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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