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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31 불교(개원석교록 18권 9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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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189

 

지승 지음

 

화엄영락경(華嚴瓔珞經) 1

천감 원년에 송출하였으며, 그 때의 나이는 13세였다.지원(智遠)이 그의 뜻을 받았다.

출승사자후경(出乘師子吼經) 1

천감 3(504)에 송출하였으며, 그 때의 나이는 15세였다.

유타위경(踰陀衛經) 1

천감 4(505)에 대내(臺內)의 화광전(華光殿)에서 송출하였으며, 그 때의 나이는 16세였다.

아나함경(阿那含經) 2

천감 4년에 송출하였으며, 그 때의 나이는 16세였다.

묘음사자후경(妙音師子吼經) 3

천감 4년에 송출하였으며, 그 때의 나이는 16세였다.

우담경(優曇經) 1

묘장엄경(妙莊嚴經) 4

유마경(維摩經) 1

서칠세경(序七世經) 1

이상 21종의 경은 앞에 열거한 바와 같이 무릇 35권이며, 아울러 34권을 얻었다. ()나라 승우록(僧祐錄)에는 제말(齊末)에 태학박사(太學博士) 강필(江泌)의 결혼하지 않은 딸[處女] 니자(尼子)가 입으로 송출한 것이다. 처음에 니자의 나이는 7~8세 되는 어린아이였다. 어떤 때는 눈을 감고 고요히 앉아서 이런 경을 송출(誦出)하였는데, 혹은 하느님[上天]이 말한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신()이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그 말을 환히 알고 명민한 것이 마치 전생에 배워 익힌 것과 같았으며, 사람을 시켜 베껴 쓰게 하고는 갑자기 그만두었다. 그리고 열흘과 초하루를 지나면 다시 또 계속하여 앞에서와 같이 하였으므로, 경도(京都)의 도인과 속인들이 모두 그녀의 신이(神異)함을 전하였다. 임금이 듣고 칙명으로 불러 대면하고 그렇게 된 까닭을 물었으나, 그는 보통의 일에 의거하여 대답하였고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정법(正法)을 독실하게 믿으면서 어릴 적부터 범행(犯行)을 닦았으며, 부모가 시집을 보내려 하는데도 한사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뒤에는 마침내 출가(出家)하여 이름을 승법(僧法)이라 하였고, 청원사(靑園寺)에서 머물렀다. 승우는 이미 정전(正典)을 수집하고 그와 다른 견문을 조사하여 모으다가 이런 일을 듣고 나서 그녀에게 가서 자세히 살펴보려 하였으나, 그녀는 집에 숨어서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직 묘음사자후경(妙音師子吼經)3권만을 얻어 와서 의경록(疑經錄)의 목록을 갖추게 되었다. 이 승법니는 천감년(天監年) 3월에 죽었다. 그러자 일을 만들기 좋아한 이가, 그의 문소(文疏)를 얻어서 전후 낸 것이 꼭 20여 권이나 되었다. 또 그의 외삼촌 손질(孫質)이 그것을 진경(眞經)으로 여기어 소()를 지어서 권화(權化)하려고 거둬 모아 베껴 전하였는데, 이미 사람들이 그 글에 물들었는지라 세상에 남게 된 것이다. 옛날에 한()나라 건안(建安) 말엽에도 제음(濟陰) 정씨(丁氏)의 처()가 홀연히 병들면서부터 범어(梵語)를 아주 잘하였는데, 또 종이와 붓을 구하여 스스로 범서(梵書)를 썼다. 어떤 서역 사람이 그가 쓴 글을 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경의 기별[經莂]이다라고 한 일이 있었다. 옛 일을 미루어 찾아보면, 이런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이치가 부처님 말씀[金口]이 아닐 뿐이다. 또 스승 없이 번역하면서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며, 겸하여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므로 의례(疑例)에 넣어둔다고 하였다.장방록(長房錄)에는 훈습(薰習)에도 이유가 있다고 여겨 정목록(正目錄)에 두었으며, 인수록(仁壽錄)내전록(內典錄)등에는 범본(梵本)의 번역이 아니므로, 위록(僞錄)에 편입시켰다. 지금은 인수록등의 결정에 의거하여, 역시 위록가운데 편입시킨다.

 

(6) 원위(元魏) 시대 손경덕(孫敬德)의 몽수경(夢授經)

고왕관세음경(高王觀世音經) 1권또한 소관세음경(小觀世音經)이라고도 한다. 반장(半紙) 남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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