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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601 불교(견정론 하권 1편 / 甄正論)

by Kay/케이 2021.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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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견정론(甄正論) 하권 1

 

현의 지음

이한정 번역

 

공자가 말했다.

선생께서 언변이 하늘을 찌르듯 하시고 말씀이 땅을 울리듯 하시니, 은혜로운 말씀으로 새겨주시는 것이 마치 얼어붙은 계곡에 봄 이슬 내리듯 합니다. 훈도하는 말씀에 가피입어도 연못이 겨우내 얼어 있었기에 미천한 제가 불을 켠다 해도 밝지가 못합니다. 햇볓이 내리 쬐는 것을 대하자 그만 할 말이 없어 꿇어앉은 채로 숨을 삼키고 어깨가 처지나 아직도 의심을 떨구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바라건대 묘하게 풀어주십시오. 영보(靈寶)의 말이 모두 허망한 것이라 하여도 노자의 사적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상공(河上公)은 신선이 된 사람으로, 예전에 한나라 효문제(孝文帝) 때에 초옥을 짓고 강가에 살았습니다. 효문제가 도덕경을 좋아하여 왕공이나 경상(卿相) 2천 석() 녹봉(祿俸)의 신료(臣僚)에게 모두 읽혔으나, 도덕경의 몇 구절을 풀이하지 못하여 황제가 그 뜻을 통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누가 하상공(河上公)이 늘 도덕경을 외우니, 아마도 알 수 있으리라고 말하자, 황제가 뜻을 모르는 구절을 사람을 시켜 하상공에게 묻게 하였으나, 하상공이 도를 기리고 덕을 귀히 여긴다면 멀리서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황제가 친히 강가로 가서 의문나는 것을 물었으나, 하상공은 황제를 보고서도 머리를 쳐들고 높은 데 의지하여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내 황제가 괴이쩍게 여겨, ‘천하에 왕의 땅 아닌 곳이 없으며, 강기슭에 사는 선비라도 모두 왕의 신하 아님이 없다. 짐이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기도 하고 부귀하게도 하는데, 그대가 덕이 무겁다 하더라도 어찌 이리 거만한가하고 묻자, 하상공이 손바닥을 치며 크게 웃으며 허공으로 수 장()이나 솟아올라 5색의 구름 위에 앉아서 황제를 내려다보며, ‘내가 위로는 하늘에 닿지 않았고 아래로는 땅을 밟지 않았으며, 가운데 있으면서 남에게 신세질 일이 없는데, 폐하가 어떻게 나를 귀하게도 하고 가난하게도 하겠소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황제가 신인(神人)임을 깨닫고 가마에서 내려 재배하고 사과하면서, ‘짐이 부덕한지라, 비록 선대의 대업(大業)을 이었으나, 언제나 조심하면서 늘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였는데, 성품이 우매하여 성인을 알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머리 조아려 허물을 돌이키자, 공이 황제에게 소서(素書) 2권을 주면서, ‘이 책을 잘 읽으면 스스로 의문이 풀리리라. 내가 이 책을 주석한 이래로 천 7백여 년이 지났으나. 대체로 세 사람에게만 전했는데 이제 그대까지 네 사람이 되었으니, 기인(其人:자격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고는 전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그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이 같은 신령한 자취에 의하면, 성인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효문제의 믿음이 지극하였기에 그 정성이 명철(冥徹)을 감동시키자, 태상노군(太上老君)이 이 신인을 시켜 효문제에게 도덕장구(道德章句)를 전수한 것입니다. 효문제가 이를 받고 나자 하상공이 회영반진(晦影返眞)하여 상방(上方)으로 돌아갔는데, 이같이 신령함이 완연하여 분명한데도 어떻게 거짓이라 하겠습니까?”

선생이 말했다.

그대의 이 같은 말도 더욱 허망한 것으로, 길거리에서 흘려들은 말을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는가? 그대가 말한 것도 갈현(葛玄)도덕경의 서문을 지으면서 이 같은 말을 꾸며 넣어 강좌를 현혹시킨 것이나, 둘러댄 것을 깨닫지 못하고서 그대까지 이에 의혹하게 되었구나. 한서제기(帝紀)를 잠깐 보더라도 대체로 행행(行幸)은 기록되지 않은 것이 없는데, 감천궁(甘泉宮)에서 경사(京師)까지 백여 리에 불과하더라도 황제의 행차는 모두 기록해 두었다. 또 경제(景帝) 때에 오()ㆍ초()의 일곱 나라가 반란을 일으켜 태후가 동궁(東宮)에 있을 때에 황제가 찾아가 자문을 구하였는데, 이것도 상서(尙書)에는 황제가 동궁을 내왕하였다고 이르고 있다. 또 무제가 5조궁(祚宮)을 순행하면서 하동(河東)에 이르러 후토(后土)에게 제사지낸 것까지 역사에 쓰여 있다. 도사 성현영(成玄英)도덕경의 소()를 지으면서 하상공은 섬주(陝州) 성남(城南) 3리에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5조궁이나 감천궁에 비해 몇 배나 먼데도, 한서는 어째서 이를 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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