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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93 불교(견정론 중권 5편 / 甄正論)

by Kay/케이 2021.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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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견정론(甄正論) 중권 5

 

현의 지음

이한정 번역

 

삼분(三墳)오전(五典)은 당우(唐虞) 이전의 일이니, ()을 찬술하고 시()를 편수한 것도 공구(孔丘)가 희조(姬朝) 때에 찬술하였는데, 어찌 분()ㆍ전()을 모두 속서(俗書)라 이르면서 선니(宣尼)가 지은 것을 증명하겠는가? 이것을 저것으로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또 영보의 일에는 두 가지 이치가 있으니, 만약 절ㆍ월 따위의 서라 하더라도 송문명이 이전에 날조한 것이 들어 있으니, 송문명 등이 부적을 취하고서 영보라고 거짓으로 제목을 붙여 찬술한 것이다. 만약 송문명 이후에 이 같은 두 가지 서가 편수되었다면 모두 거짓이다. 망령되게 5()의 자취를 창작하여 영보의 경 제목을 증거 삼고자 하였으니, 사실로써 전후를 따지면 모두가 거짓이다. 또 오왕이 부적을 얻고서 그 나라를 잃었다면 이것은 요망한 서()이지 어찌 자비의 가르침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몸을 망치고 나라를 망친 것이 영보의 부() 때문인데도, 한갓 이를 빛내고 드러내고자 하나 어찌 그 재앙을 은폐할 수 있겠는가? 말을 꾸며 헛되게 숭상하면서 여의주를 얻은 것같이 하여도, 그 근본을 따지고 본원을 찾아보면 물고기 눈알에 불과하니3), 이처럼 말이 그릇되었다 함은 도리어 그대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영보(靈寶)의 가르침이 거짓된 것이 말씀과 같더라도 노자의 서()도 어찌 거짓이라 칭하겠습니까? 호인(胡人)으로 화현하여 부처를 이룬 것까지 그 사적이 확연하니, 윤희전(尹喜傳)에서 관문(關門)을 나갔다고 말하는 것까지 모두 적혀 있는 데다, 원시내전(元始內傳)이나 화호경(化胡經)에도 등재되어 모두 그 연유를 기술하고 있으니, 이는 무고(無故)가 아니라 실다운 것입니다.”

선생이 말했다.

이 또한 영보에서 날조한 것이다. 노자가 주나라에 봉직하며 주하사(柱下史)로 있다가 나중에 서쪽의 유사(流沙)로 가서 함곡관(函谷關)에 다다르자 관령(關令) 윤희(尹喜)에게 황제(皇帝)의 서()를 부연하였으니, 그 글을 다시 넓힌 것이 도덕경2편의 상하 양 권이다. 수신(修身)하여 치국(治國)하고 강한 것을 경계하여 부드러움을 지키고 예봉을 꺾어 분란을 풀어내고 자비를 행하고 물러서서 낮추는 도를 논하여 5천여 마디를 이루었는데, 윤희가 또다시 노자가 희에게 담론한 말의 요지를 적어서 서승기(西昇記)를 지었다. 그 가운데 후세 사람이 그 문장을 늘려 부처님의 이치와 한데 섞었으니, 대체적인 요지는 도덕경과 거의 같다. 인신(人身)의 심정(心情)과 성품(性品)이 생겨나는 일을 말하고 수양의 이치와 일찍 죽고 오래 사는 연유를 설한 것인데도, 후세 사람이 다시 개작하여 경으로 삼았다. 이 같은 경의 첫 장[首章]에는 노자가 서쪽으로 가면서, ‘도를 배우고자 하니, 축건(竺乾)에 고선생(古先生)이 있어서, 나지도 죽지도 않으며 무위(無爲)에 들어가 그대로 오래 산다고 하였다. 경전의 말단에는 노자가 윤희에게 고선생이란 내 스승이다. 무명(無名)으로 되돌아가셨으니, 내가 지금 찾아가서 한 줄기 근원이라도 반조(返照)하리라고 말했다 하니, 이 같은 말을 참작해 보면, 노자가 석가를 알았다는 것을 밝히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까닭에 관직을 버리고 서쪽으로 간 것이다. ‘무명(無名)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열반의 이치이고, ‘한 줄기 근원을 반조한다는 것은 불이(不二)를 호칭하는 것이고, ‘일중(一中)의 본()’이란 진여(眞如)의 체()이다. ‘나의 스승이란 노자가 석가를 찾아가 예배드리고 도를 배우고자 한 것인데, 이처럼 도를 배우고자 한 까닭에 멀리서도 이를 존중하여 스승이라 부른 것이다. 아울러 노자가 서승경(西昇經)의 글에서 부처님은 자기의 스승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호인으로 화현하여 부처가 되었다고 거꾸로 말하는가? 만약 노자가 천축(天竺)으로 가서 호인으로 화현하고자 하였다면 어째서 말을 둘러대어 도를 배우고자 함이니, 축건(竺乾)에 고선생이 있어 무위에 들었다고 말하였겠는가? 호인으로 화현하였다는 이치도 이리하여 허망한 것이다. 단지 그 글에서 축건이라 이른 것은 건()이란 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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