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견정론(甄正論) 상권 1편
현의(玄嶷) 지음
이한정 번역
체속공자(滯俗公子)가 견정(甄正)선생에게 이같이 말했다.
“저는 속세에 오랫동안 묻혀 살아 왔기에 생각이 대방(大方)을 알지 못하고, 말세에 태어났기에 마음이 통리(通理)에 어둡습니다. 보고 듣는 것을 게을리 하다가 갈림길에 부딪치면 머뭇거리면서 끝내 말에 체하고 현혹되어 평탄한 길에서도 자빠지는지라, 스스로 현혹된 것을 가슴에 품고 세월만 보냈습니다. 바라건대 손가락으로 남쪽을 알리고 소매로는 북쪽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선생이 책상을 치우고서 이같이 대답했다.
“내 어려서 『시경(詩經)』과 『예경(禮經)』만을 익히다가, 장성하여서는 옛 전적(典籍)을 즐겼는데, 이에 탐닉하여 해를 거듭하며 살펴보아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책에 실린 것이나 글자로 쓰인 것은 제왕(帝王)의 치도(治道)일 뿐이다. 무릇 거룩한 가르침의 문호는 시비를 환히 밝히지 못하면 비류(紕謬)를 상세히 가리지 못하기에, 오래도록 영대(靈臺)에 두고 살피면서도, 나를 벗하는 이 없는 것이 한스러웠는데, 그대가 지금 묻는 것도 말만 헛되게 하지 않겠는가?”
그러자 공자가 무릎을 꿇고서 이같이 말씀드렸다.
“모름지기 일을 기록하는 서책이나 조(朝)ㆍ대(代)1)를 편력하는 사(史)는 옛사람의 찌꺼기를 전한 것인데, 참으로 선왕의 거려(蘧廬)2)를 이 같은 말세의 속인과 논한다고 하여 어찌 의논이 되겠습니까?
석가(釋迦)께서 자취를 남긴 법왕(法王)의 교화는 9류(流)를 뛰어넘어 독보하는 것인지라, 만 겁토록 우러러보아도 언사로는 그 경계를 새기지 못하고 어리석은 지혜로는 그 조짐조차 들여다보지 못하며, 휘황하기가 10경(景)이 청천에 빛나듯 하고, 도도하기가 9영(瀛)이 벽해에 파도치듯 합니다. 이는 대체로 세간을 벗어나는 성지(聖旨)인지라, 저의 짧은 혀로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도가(道家)를 가르침으로 베푼 것은 유래가 깊습니다. 그러니 황제(黃帝)의 서(書)에서 백양(伯陽)의 전(典)에 이르도록, 모두 수신(修身)하여 치국(治國)하는 요체이면서도, 연명하여 장수를 누리는 공로가 있고, 가만히 은둔하여 마음을 맑게 비우는 규약이 있고, 부드러우면서 태평스러운 덕망이 있고, 너그러우면서 강하게 하는 작용이 있고, 예봉(銳鋒)을 꺾어 분란을 풀어내는 공능이 있으니, 진실로 범부를 이롭게 하되 시정(時政)에 흐트러짐이 없으니, 우리나라가 세워진 것도 이에 비롯합니다. 근자에 오(吳)나라와 촉(蜀)나라가 강역(疆域)을 나누었고, 송(宋)나라와 제(齊)나라가 대통(大統)을 이었으나, 각기 천존(天尊)을 세워 교화의 주체(主體)로 삼았습니다. 경론의 말씀에 따르면, 천존이란 도법(道法)의 종가(宗家)이고 현문(玄門)의 극위(極位)인지라, 하늘과 사람이 모두 받들기에 천존이라 부릅니다. 조화(造化)가 이루어지는 원천인데다 음양(陰陽)이 시작되는 근본으로 천지를 낳고 건곤(乾坤)을 잉태하기에, 만물이 이를 바탕으로 형태를 세우면 삼광(三光)이 그것을 받아 모양을 이룬다 하는데, 그 말에 따르면 천존은 천지보다 앞선다고 합니다.
선생께서는 학문이 산봉우리처럼 넉넉한 데다 석실(石室)3)마저 겸하셨으며, 도는 유가와 역사를 갖추신 데다 식견과 변재가 세밀하십니다. 맑은 거울이 높이 매달려 오는 물건을 비추듯이, 큰 종을 두드리기를 기다려 바람 타고 흐르듯이, 이 깊은 의심을 터놓아 미혹한 이들을 돌이켜 주십시오.”
마침내 선생이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처럼 어리석고 고집 센 중생이 어찌 그대뿐이겠는가? 들어와 앉으라. 내 그대에게 이를 한번 논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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