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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85 불교(개원석교록 4권 16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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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416

 

지승 지음

 

후에 사륵국(沙勒國)에 이르렀는데, 그 당시 태자는 달마불다(達摩弗多)중국말로는 법자(法子)라고 부른다.였다. 그는 불타야사의 용모가 단아한 것을 보고 지내온 내력을 물었다. 불타야사의 응답이 맑고 그윽한 멋[淸雅]이 있었다. 태자는 기뻐하면서 그를 궁궐로 청하여 공양하고 융숭하게 접대하였다. 구마라집이 뒤에 사륵국에 이르러 불타야사에게 수학(受學)하였는데, 그를 대단히 존경하였다. 구마라집은 어머니를 따라 동쪽으로 돌아갔으나, 불타야사는 그대로 사륵국에 머물렀다. 얼마 후 사륵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였다.

당시 부견(符堅)은 여광(呂光)을 파견하여 구자국을 공격하게 하였다. 구자왕은 급히 사륵국에 구원병을 요청하였으므로, 사륵왕은 몸소 군대를 거느리고 그들을 구하러 갔다. 불타야사로 하여금 남아서 태자를 보필하도록 하고 뒷일을 맡겼다. 그러나 구원병이 아직 도착하기도 전에 구자국이 함락되었으므로, 사륵왕은 돌아와서 구마라집이 여광에게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자세히 알렸다. 이에 불타야사는 한탄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구마라집과 서로 만난 지는 오래이지만, 아직 회포를 다 풀지 못했는데, 그가 갑자기 타향의 포로가 되었으니, 어찌 서로 만날 것을 기약하겠느냐?”

불타야사는 10여 년을 머무른 뒤에 왕이 죽고 나자, 구자국으로 가서 법화(法化)16)를 매우 성대하게 하였다. 그때 구마라집은 고장(姑臧)에 있었는데, 편지를 보내 불타야사를 청하였다. 양식을 싸 가지고 떠나려고 하였으나, 나라 사람들이 만류하였으므로 다시 1년여 더 머물렀다. 뒤에 제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구마라집을 찾아가겠다. 비밀리에 행장을 꾸려 밤중에 출발하여 사람들이 모르게 해야 된다.”

제자가 말하였다.

내일 아침 추격해 와서 다시 송환되는 것을 면치 못할까 두렵습니다.”

불타야사는 곧 맑은 물 한 사발을 가져다 약을 타서 수십 언()의 주문을 외운 뒤에, 제자에게 그 물로 발을 씻게 하고는 곧바로 야밤에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까지 수백 리를 갔다. 그리고는 제자에게 물었다.

무엇을 느꼈느냐?”

제자가 대답하였다.

오직 몹시 세찬 바람 소리만 들리고 눈에서 눈물이 나올 뿐이었습니다.”

불타야사는 또 주문을 외운 물로 발을 씻게 하고는 머물러 쉬었다. 다음날 아침 나라 사람들이 그들을 뒤쫓았으나, 거리가 이미 수백 리나 떨어져 미치지 못하였다. 고장에 도착하였으나 구마라집은 이미 상안(常安)으로 들어간 뒤였다.

구마라집은 그가 고장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요흥(姚興)에게 권하여 그를 맞이하게 하였으나, 요흥은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얼마 후에 구마라집에게 명하여 경장(經藏)을 번역하게 하였다. 구마라집이 말하였다.

교법을 널리 선양하려면 글 뜻을 두루 통달하게 되어야 합니다. 빈도(貧道 : 자신을 낮춘 말)는 비록 경전의 글을 외울 수는 있지만, 아직 그 이치를 잘 알지 못합니다. 오직 불타야사만이 경을 깊이 통달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고장에 있으니, 원컨대 조칙을 내리시어 그를 불러서, 한 마디 말을 세 번 상세하게 살피고 나서, 붓을 들어 미묘한 말씀을 빠뜨리지 말게 하시고, 천 년의 세월 뒤에도 신뢰를 받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요흥은 구마라집의 말을 따라 즉시 사신을 파견하여 불타야사에게 후한 선물을 주며 초빙하였다. 그러나 모두 받지 않고 오지 않았으므로, 거듭 편지를 보내 돈독히 회유하였다. 그제야 상안에 도착하니, 요흥이 몸소 나가 영접하고 문안하였다. 그리고는 따로 소요원에 신성(新省)을 세우고 4(四事)를 공양하였으나, 모두 받지 않고 때가 되면 걸식하여 하루에 한 끼니를 들 뿐이었다.

당시 구마라집은 십주경(十住經)을 번역하고 있었는데, 한 달 남짓 동안 의문이 나서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며 붓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타야사가 이르고 나서는 함께 검증하여 결정을 하게 되자, 문장의 이치가 바로 잡혀져서 도인과 속인 3천여 인이 모두 다 그 대요(大要)에 알맞음을 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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