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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84 불교(개원석교록 4권 15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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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415

 

지승 지음

 

담마류지는 상안의 대사(大寺)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혜관(慧觀)이 양도(揚都)로 오도록 요청하였다. 담마류지가 말하였다.

그 땅에는 사람도 있고 법도 있으니, 충분히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마땅히 율의 가르침이 없는 곳으로 가야 됩니다.”

이에 다른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교화하였는데, 그 뒤에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한다.

 

(4) 불타야사(佛陁耶舍)

허공장보살경(虛空藏菩薩經) 1권제일 먼저 번역되어 나왔다. 혹은 보살(菩薩)이란 글자가 없기도 하다. 허공잉경(虛空孕經)과 같은 동본이다. 이 경은 대집경(大集經)의 별분(別分)이다. 삼장(三藏)은 뒤에 외국으로 돌아갔는데, 계빈국에서 이 경을 얻어 상인(商人)에게 맡기어 양주(涼州)로 보냈다. 석도혜의 송제록(宋齊錄)승우록에 보인다.

장아함경(長阿含經) 22권홍시 14(412)에 번역을 시작하여 15(413)에 마쳤다. 양주(涼州) 사문 축불념(竺佛念)이 전역(傳譯)하였고, ()나라 사문 도함(道含)이 받아썼다. 승예(僧叡)이진록승우록고승전등에 보인다.

사분율(四分律) 60권또한 담무덕률(曇無德律)이라고도 한다. 본래 번역한 권수는 45, 또는 40, 또는 44권으로 되어 있다. 지금 또한 70권으로 되어 있는 것은, 홍시 10(408)에 중사(中寺)에서 번역되어 나왔는데, 혜변(慧辯)이 전역(傳譯)하였다. 진세잡록(晋世雜錄)승우록고승전에 보인다.

사분승계본(四分僧戒本) 1권혹은 승()자가 없기도 한다. 또한 담무덕계본(曇無德戒本)이라고도 한다. 진세잡록승우록에 보인다.

이상은 484권이며, 그 경본은 모두 있다.

 

사문 불타야사는 중국에서는 각명(覺名)이라고 하며, 또는 각칭(覺稱)야사(耶舍)는 곧 명칭(名稱)을 뜻한다. 고승전에서는 각명(覺明)이라고 번역하였는데, 뜻이 조금 어긋난다.이라고도 한다. 계빈국 사람이다. 바라문(婆羅門) 종족으로서 세속에 있을 때는 외도(外道)를 섬겼다. 한 사문이 그의 집으로 가서 걸식을 하자, 불타야사의 아버지는 성을 내며 사람을 시켜 사문을 구타하게 하였는데, 갑자기 그 아버지의 손과 다리가 마비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에 무당에게 물었더니 대답하였다.

현인(賢人)을 범한 죄로 귀신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즉시 이 사문을 청하여 정성을 다하며 참회하였더니, 며칠 후에 문득 병이 나았다. 이로 인하여 불타야사를 출가시켜 그 사문의 제자가 되게 하였다.

당시 불타야사의 나이는 13세였는데, 한번은 스승을 따라 멀리 행각을 하다가 광야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스승은 빨리 달아나 피하려 하였으나, 불타야사가 말하였다.

이 호랑이는 이미 배가 불러 필시 사람을 습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잠시 후 호랑이는 사라졌다. 그리고 앞으로 가다 보니 과연 호랑이가 먹다 남긴 고기가 보였다. 스승은 속으로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

나이 15세가 되어 경을 외웠는데, 하루에 5, 6만 언()을 암송하였다. 그러나 거주하는 사찰에서 항상 밖으로 분위(分衛 : 걸식)를 나갔기 때문에, 읽고 외우는 일을 중지하게 되었다. 그러자 한 나한(羅漢)이 그의 총명하고 영민한 것을 소중히 여겨, 항상 밥을 빌어다 그를 공양하였다.

19세가 되자 대승과 소승의 경전 수백만 언을 암송하게 되었다. 그러나 타고난 성품이 대쪽같고 오만하여 꽤나 지견(知見)이 있는 것으로 자처하여 자기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많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여러 승려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였다. 다만 행동거지가 아름답고 담소(談笑)를 잘하여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에 대한 깊은 원한을 잊어버렸다.

나이가 구족계(具足戒)를 받을 때가 되어서도 계단(戒壇)14)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3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사미(沙彌)로 있었다. 외삼촌에게 오명(五明)15)의 여러 논()을 배우고, 세간의 법술(法術)을 많이 익혔으며, 27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구족계를 받았다. 항상 독송에 힘써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언제나 단정히 앉아서 뜻을 사유하였고,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깨닫지 못했으니, 그가 오로지 정진함은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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