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제공재환경(佛說除恐災患經)
불설제공재환경(佛說除恐災患經)
성견(聖堅) 한역
김성구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거니실 때에 네 가지 무리의 제자[四部弟子]와 함께 계시면서 높고 묘한 법을 말씀하셨다.
그때에 유야리(維耶離) 나라에 나쁜 염병이 퍼져서 위맹(威猛)이 무시무시하여 마치 사나운 불길과 같았는데 죽는 이가 헤아릴 수조차 없었지만 돌아갈 곳도 없고 치료할 방법도 없었다. 국왕과 대신과 장자(長者)와 거사와 바라문(婆羅門)들이 모여서 두루두루 의논하기를 ‘나라가 재환(災患)을 만나서 그릇되고 사악한 것에 꺾이고, 염병의 불길에 태워져서 죽는 이가 헤아릴 수 없으니, 어떠한 의리에 의지하고 어떠한 방편을 베풀어야 이 재해를 없앨 수 있겠는가?’ 하였다. 바라문이 의논하기를 ‘마땅히 성문(城門)에다 제사하는 단(壇)을 베풀라’ 하고, 어떤 이는 의논하기를 ‘마땅히 성안의 네거리에다 큰 사당을 세워 해롭게 하는 요기(妖氣)를 물리쳐야 한다’고 하며, 어떤 이는 의논하기를 ‘응당 흰 말과 흰 낙타와 흰 소와 흰 염소와 흰 닭과 흰 개를 종류마다 백 마리씩 잡아서 제사하여 재앙을 물리치리라’고 하였다.
그때에 모임 가운데 한 장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탄니(彈尼)1)였다. 부처님의 5계를 받들고, 10선(善)을 행하는 청신사(淸信士)로서 도의 자취를 밝게 증득하였는데, 그때 의견을 내어 말하였다.
“말씀하는 것을 들으니 나라에 재앙을 만나 죽는 사람이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하는데, 여러분의 대책을 들어보면 생명을 해쳐 목숨을 건지겠다는 것이니, 어찌 성사가 되겠는가. 옛날에 착하지 못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오늘 이런 액운을 만난 것이니, 마땅히 방편(方便)을 베풀어 선행으로써 악을 물리쳐야 영원히 괴로운 환난이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도리어 뒤바꾸어 해로운 행동으로써 편안함을 구하려는가. 오래도록 괴로움을 받아 벗어날 기약이 없으리라.”
그때에 무리들이 제명에게 물었다.
“어떠한 의식을 베풀어야 합니까?”
재명이
대답하였다.
“세상에는 큰 의지할 곳이 있으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사람과 하늘의 스승이니라. 온갖 것을 덮고 보호하시며, 자비롭게 중생을 어여쁘게 여기시니, 이름은 부처님이요, 삼계를 홀로 걸어가시느니라. 만일에 뜻을 낮추어서 이 나라에 빛나게 강림하시면 재앙을 분명히 없애실 것이니라.”
대중들이 듣고 모두 그의 말이 옳다고 여겨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재명(才明)이 또 말하였다.
“부처님은 헤아릴 수 없는 겁에 6도(度)를 닦으셔서 나라와 재물과 코끼리ㆍ말ㆍ수레ㆍ탈것ㆍ머리ㆍ눈ㆍ골수[髓]ㆍ뇌ㆍ가죽ㆍ몸ㆍ처자들에게 한량없이 보시하시고, 계(戒)와 인욕과 정진과 일심(一心)과 지혜로써 태어날 때마다 스스로 극복하시기를 헤아릴 수 없이 하여 불도를 구하셨지만 자신의 몸만 위한 것이 아니었고, 다만 중생을 위하여 위태로운 액난을 구제하고, 모든 재앙과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과 지옥ㆍ귀신ㆍ축생의 고통을 소멸하기 위해서였으니, 이제 불도를 이루신 뒤에도 본래의 맹세에 따라 두루 다니면서 구제하시는데 감로(甘露)의 약을 주어 중생들이 겪는 이 세상과 뒷세상의 괴로운 근심을 제거하고 영원히 편안함을 얻게 하시느니라.”
사람들이 모두 말하였다.
“그대의 말과 같다면 참으로 대단히 즐거운 일이지만, 부처님은 왕사성에 계시고, 아사세왕(阿闍世王)은 우리나라와 언짢은 관계에 놓여 있으니, 어찌 부처님께서 이곳에 오시는 것을 허락하겠습니까?”
다시 어떤 이가 말하였다.
“혹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허락할지도 모를 일이지.”
그때 재명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시되 허공과 같아서 걸리는 바가 없으니 누가 능히 막겠는가. 마치 햇빛에 만물의 싹이 나고 자라나지 않는 것이 없는 것과 같으니, 부처님은 이 나라의 액운을 불쌍히 여기셔서 반드시 오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느니라. 다만 정중하게 사신을 보내 진기한 보물을 바치되 온순한 말씨와 공손한 말로써 아사세왕에게 보내고, 또 한편으로는 부처님께 가서 생명이 고통스럽고 절박한 사실을 아뢰면, 마음으로는 비록 언짢은 감정을 품었어도, 사신이 어질고 정중하며 묘한 보물을 조공(朝貢)으로 바치고, 논리(論理)가 부드러운 까닭에 일이 형통치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니라. 옛날부터 이웃 나라와 화합치 못하여 서로서로 침노했던 경우에도 모두 밝은 사신과 이름난 보물과 중요한 조공과 부드러운 말씨와 겸손한 태도로써 화해를 이루었느니라.”
서로 말하기를 ‘누가 사신으로 적당한가’ 하였다.
그때에 국왕과 장자ㆍ거사들이 모두 같은 뜻으로 말하였다.
“오직 청신사 재명 거사라야 부처님의 제자로서 사신이 되어 부처님을 모시러 갈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대중보다 먼저 부처님을 모시자는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바로 재명에게 말하였다.
“오직 어지신 이만이 갈 수 있으리니, 나열기국에 가서 그 왕과 상의하여 부처님을 오시도록 부탁하소서.”
그때에 재명이 사신의 임무를 맡고 가려 하자 대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꿇어앉아 다섯 활개[五體]를 땅에 대고 머리 숙여 부처님께 예배한 뒤에 다시 꿇어앉아 재명에게 말하였다.
“부처님은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어서 자ㆍ비ㆍ희ㆍ호로써 중생을 도우시니, 바라옵건대 우리나라가 큰 환난을 만난 것을 불쌍히 여기소서. 병 들어 죽는 이가 사나운 들불에 초목이 타들어가는 것같이 널리 곤액(困厄)에 부딪쳤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부처님은 마치 어두운 곳에서 광명을 구하는 것 같으며, 추울 때 태양을 원하고, 덥고 목이 마를 때 그늘과 마실 것을 바라며, 병자(病者)가 좋은 의원을 구하고, 길 잃은 이가 자신을 이끌 사람을 구하는 것과 같사옵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강림하시어 저희들을 구제하시고 감로법(甘露法)을 주시어 다시 깨어나도록 하옵소서.”
그때에 재명이 왕명을 받들고 사신이 되어 나열기(羅閱祗)에 닿아 지름길로 빠르게 나열기성에 이르렀다. 문 앞에서 국서(國書)와 공물(貢物)을 바치면서 만나 뵙기를 청하니, 그때 왕이 면회를 허락하였다. 재명은 여쭈었다.
“사명을 받들고 귀국에 왔사옵니다. 전에는 비록 화목치 못하였지만, 특별히 중대한 틈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먼저 정성을 바치오니, 지난날의 화목치 못하였던 일은 잊으시고 만백성 모두를 안락하게 하옵소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어 큰 자비로 널리 덮어 주시니, 저의 나라에 큰 환난이 있어서 왕명에 의하여 부처님을 모시러 왔나이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부처님이 왕림하시도록 권유하시어서 저의 나라에 왕림하셔서 모든 재난을 없애고, 신령스러운 도움을 입도록 해 주시옵소서.”
왕은 잠자코 생각하기를 ‘꼭 부처님을 만류하여 나라 밖으로 나아가시지 못하게 하고자 하지만 이치상 그럴 수 없고, 힘으로 제지할 일도 아니로구나. 부처님은 큰 자비로써 시방을 두루 허락하시고, 밉고 고운 이를 평등하게 보셔서 구제한 일로 소임[務]을 삼으시니, 이런
까닭에 만류할 수 없도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재명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 가서 귀국의 사정을 말씀 드리는 것이 좋겠구려.”
이때 재명이 죽림(竹林)으로 향하여 어느덧 정사(精舍)의 문 앞에 이르렀다. 부처님을 뵈옵고, 정성을 다하여 예경하되 다섯 활개[五體]를 땅에 던지며,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여쭈었다.
“유야리국의 왕과 대신과 장자ㆍ거사들이 멀리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옵니다. 하늘 가운데 하늘이신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널리 사랑하시니, 모두가 구제해 주시는 은혜를 입습니다. 저의 나라가 액난을 만났사오니,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은혜를 드리우시어서 광림하셔서 괴로운 액난을 가엾게 여기시고, 다시 소생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그때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계시는 것으로 그의 부탁을 받아들이셨다. 재명은 부처님께서 가시자는 청원을 허락하신 것을 보고 한량없이 기뻤다.
그때 나열기의 경계 안의 신령들과 하늘ㆍ용ㆍ귀신들이 부처님께서 청을 받으시고, 장차 다른 나라로 가실 줄 알았다. 모두가 요동하면서 슬픈 얼굴을 하며 기뻐하지 않았다. 이에 감응하여 그 나라의 왕 아사세에게 말하였다.
“대왕은 어찌하여 편안하셔서 근심이 없습니까? 지금부터 멀지 않아서 반드시 부처님께서 떠나시게 되리니, 마치 어린아이가 두 어버이를 잃은 것과 같고, 넓고 먼 길을 가다가 물과 양식이 끊기는 것 같으며, 사나운 추위에 따뜻한 옷을 잃은 것과 같을 일이옵니다. 이제 부처님께서 떠나신다면 나라는 의지할 곳을 잃을 것이오니 그 비유가 이러합니다.”
왕은 신령들이 나타나서 말하는 소리를 듣고, 감정이 처연해져서 몹시 근심하고 걱정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었다.
‘중생들이 완악하고 어리석으며, 성품이 둔하고 혼탁하거늘 지금 세존께서 떠나가시면 어떻게 다시 지혜의 숫돌을 얻어서 둔한 마음을 갈고, 누가 번뇌의 무거운 허물을 구제하며, 여러 세상의 무거운 빚은 누가 가르치어서 제거하고, 온갖 중생의 무거운 죄는 누가 가볍게 하며, 우리들이 오래도록 생사의 감옥에 갇혔어도 무거운 관문이 굳게 닫혔으니 누가 다시 바른 법의 열쇠로써 생사의 감옥의 무거운 관문과 굳은 울타리를 열며, 우리 모두가 번뇌에 물들고 뜨거운 뙤약볕에 굳어졌는데
어떻게 다시 부처님의 가르치신 시원한 월정(月精)과 명주(明珠)를 만나 더위를 없애겠는가.’
왕은 곧 어가(御駕)를 꾸미게 하여 부처님께로 갔다.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평상시의 자리에 앉았다. 그때 부처님은 왕을 위하여 바른 법을 말씀하시니, 처음과 중간이 모두 선하고, 몸과 입과 뜻이 맑아져서 청정하고 미묘하였다. 왕은 마음이 기뻐져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며칠 전에 유야리(維耶離)에서 사신이 와서 부처님을 청하였사온데 듣자오니 ‘이미 가시기를 허락하셨다’ 하오니 마음이 대단히 슬픕니다. 세존께서 떠나시는 것을 만류할 도리가 없사오나 오직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특별히 저의 청을 들으셔서 궁에 석 달만 머물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들이 참으로 불쌍하거늘 석 달이나 머무르면 언제 모든 괴로운 무리들을 두루 구제하겠는가?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겁에 몸을 괴롭히면서 도를 구한 것은, 중생을 위하여 부처를 이루고 감로의 약으로써 중생에게 베풀려는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제 그 소원을 이루었느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신기한 약을 조제하여 온갖 질병을 고치려 하였으면서 병자를 만나고도 본래의 서원(誓願)을 어기며 주지 않는다면 좋은 의원이 아니고, 강가에서 사람이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건지러 가지 않으면 어진 이가 아니며, 넓은 들에서 길 잃은 이를 보고 바른 길을 가리켜 주지 않으면 인자한 사람이 아닌 것과 같으니라. 나는 큰 자비로써 널리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모든 나라와 성과 읍과 마을을 다니면서 모든 괴로움을 구제하는데, 감로의 약을 주어 의지할 곳이 없는 이는 의지하게 하고 돌아갈 곳이 없는 이는 돌아가게 하느니라.”
왕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바라옵건대 자비하신 은혜를 베푸셔서 두 달만이라도 허락하옵소서.”
부처님은 짐짓 허락하지 않으셨다. 왕은 은근한 마음으로 꿇어앉아 합장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여쭈었다.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운 것이 마치 등불을 켜서 밖에 놓은 것 같사오니 덧없는 바람을 만나면 홀연히 꺼질 것이옵니다. 이제 부처님과 헤어지면 어느 때 다시 거룩하신 모습을 뵈오리까. 바라옵건대 두 달만 허락하옵소서.”
부처님께서 거듭 허락하지 않으시니, 왕은 갑자기 제 몸을 부처님의 발 아래로 던지면서 여쭈었다.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특별히 큰 자비를 드리우셔서 제자들과 함께
한 달만 더 머무시옵소서.”
세존께서는 참을 수 없어 허락하셨다.
왕은 곧 일어나서 기쁜 마음과 공경스러운 생각으로 부처님을 세 번 돌고 예배한 뒤에 하직하여 궁으로 돌아왔다. 부엌에 명령하여 백 가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되 지극히 깔끔하고 아름다우며 곱고 달고 향기롭고 맑게 하여 궁 안에 가득히 베풀었다. 채색 비단으로 만든 번기와 일산을 달고, 갖가지 보배로 만든 상과 평상, 좌구(坐具)를 즐비하게 장만하고, 쓸고 닦고 고치며 향수를 뿌려 모든 일의 준비를 끝마쳤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왕은 멀리 세존을 향하여 향을 피우고 꿇어앉아 여쭈었다.
“부처님은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옵니다. 성스럽게 때를 아셔서 뭇 성인들과 함께 신비로운 광명을 돌이켜 저의 궁전의 나물 밥[蔬食]에 이르시옵소서.”
그때 세존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법복(法服)과 발우를 가지고 왕의 부탁에 나아가게 하셨다. 부처님과 뭇 성인들이 왕궁에 이르니, 왕은 곧 정성을 다하여 꽃과 향과 음악으로 문 앞에서 맞이하였다. 들어가서 제각기 자리에 앉으시니, 왕은 몸소 물을 돌리고 뭇 성인들에게 두루두루 백 가지 맛있는 음식을 권하니 맑고 곱고 향기롭고 단맛이 모두 똑같았다. 날마다 밥과 와구와 병에 필요한 것을 공양하였고, 궁 밖에는 명령을 내려 길을 닦고 길가에 나무를 심고 일곱 갈래의 길을 닦아 강물에까지 이르게 하고, 휘장과 평상과 앉을 기구를 놓고 번기와 당기를 장엄하게 꾸미니 마치 하늘의 거리와 같았는데, 다시 5백 개의 7보(寶) 일산을 만들었다.
유야리국에서도 부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또한 일곱 갈래의 길을 다듬었으며, 길가에 나무를 심고 휘장과 평상과 자리를 준비하였다. 국왕과 대신과 장자와 거사가 제각기 대중을 거느리고 나라 밖으로 나와서 부처님을 맞이하려 하였다. 한 달의 기한이 차자 부처님과 뭇 성인들이 궁에서 나와 길을 떠나시니, 왕을 따르던 대중은 부처님께 꽃을 뿌려 온 땅에 가득하였다. 대중이 모여드는데 가을날의 긴 강이 큰 바다로 모이는 것과 같았으며, 백월명주(白月明珠)와 7보로 꾸민 일산을 왕은 공경히 받들어서
부처님께 바치었다. 부처님과 대중들이 길을 따라가시다가 강가에 이르렀다.
왕은 5백 개의 7보 일산을 부처님께 바치었고, 큰 바다의 용왕도 5백 개의 7보 일산을 바쳤으며, 항하(恒河)의 용왕도 5백 개의 7보 일산을 부처님께 바치었다.
그때에 유야리(維耶離) 나라에서 마중 나온 무리들의 옷차림이 장엄하고 고왔으니, 푸른 말, 푸른 수레, 푸른 일산, 푸른 번기[幡]를 하고 옷과 치장이 모두 푸른 사람과 붉은 말, 붉은 수레를 타고 옷과 치장이 모두 누런 사람, 흰 말, 흰 수레를 타고 옷과 치장이 모두 흰 사람, 검은 말, 검은 수레를 타고 옷과 치장이 모두 검은 사람들이 색색(色色)으로 무리를 나누고 따르는 이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부처님께서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천제(天帝)가 놀러 나아가는 때의 위의를 알고자 하면 이러하니라.”
유야리국에서도 부처님께 5백 개의 7보 일산을 받들어 올리며 제각기 여쭈었다.
“부처님은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어서 넓은 세상을 다 덮으시니, 바라옵건대 일산 시주를 받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그 보시(布施)를 받으시고 일산 하나만 남기셨다.
그때 모든 대중들이 각각 의심을 품었다.
‘모를 일이구나. 지난 세상에 덕을 쌓고 선을 실천한 과보로 바다의 용왕과 항하(恒河)와 도리천의 임금과 유야리국과 나열기국의 왕이 각각 7보의 묘한 일산을 받들어 올리려고 한꺼번에 모인 것일까?’
그러면서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무슨 까닭으로 일산 하나만은 받지 않으시는 것일까?’
그때 아난이 무리들이 의심하는 것을 알고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여, 대중이 모두 의심하기를 ‘오늘 무슨 까닭으로 2천5백 개의 7보 일산이 한꺼번에 이르러 부처님께 바쳐진 것일까. 이는 지난 세상에서 착하게 산 과보일까. 아니면 현재의 복일까’ 하오니,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모두의 의혹을 풀어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한
마음을 모아 잘 들어라. 이제 너희들이 가진 의혹을 없애 주리라. 아주 오랜 옛날, 헤아릴 수 없는 옛날에 전륜성왕이 있었으니, 이름이 마조(摩調)2)로, 사방을 잘 다스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천 명의 아들이 있고, 7보가 앞뒤로 따랐다. 왕의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7보 일산을 보고, 그 어머니에게 물었다. ‘나는 언제나 저런 일산을 받고, 치장하게 되겠습니까?’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너는 천 명의 왕자 가운데 가장 마지막인 막내아들이니, 만일 국왕이 없으면 태자(太子)가 계승하고, 태자가 별세하면 그 다음 왕자가 계승하며, 이렇듯이 다음다음 천 명의 아들에 이르러야 하리니, 그때가 되면 네 뼈는 썩어서 일산을 얻는 데 이르지 못하겠구나.’ 거듭 어머니에게 묻기를 ‘일산을 얻을 희망이 전혀 없나이까?’ 하고는, 죽어서 형체와 뼈가 썩으리라는 말씀을 듣고 옛날에 쌓은 복의 힘으로 송연(悚然)히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다. ‘사람이 세간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는 것을 알겠구나’ 하고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집을 떠나서 도를 배우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어머니는 몹시 슬퍼했지만 그 소원을 막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말하였다. ‘너의 출가를 허락하마. 만일 네가 도를 이루거든 꼭 돌아와서 나를 제도하여야 한다. 그래야 허락할 것이다.’ ‘그러겠습니다. 도를 이루면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하였느니라.
즉시 숲 속으로 들어가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법복을 입고 고요한 곳에서 정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번뇌를 다하여 연각(緣覺)의 법을 성취하였다. 모든 나라의 고을과 마을을 다니면서 복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면서 착한 뿌리[善根]를 심었더니, 문득 어머니께서 하셨던 부탁이 기억났다. 바로 허공으로 날아올라 본국의 왕궁에 이르러 어머니를 뵈오니, 온 궁 안의 아래위가 모두 도사의 신통을 보고 기뻐하였다. 왕의 채녀(婇女) 8만 4천 명 모두가 함께 머무시기를 부탁하니, 도사는 인자하여서 온갖 부탁을 거스르지 않고, 그 부탁을 다 받아들였다. 모든 채녀들은 궁의 뒷마당에 굴과 초막을 마련하고 그곳에 살면서 온 궁중이 의복ㆍ음식ㆍ평상ㆍ와구ㆍ병든 이에게 필요한 것을 공양하고, 아침저녁으로
예배하며 섬기었다.
모든 세간의 장대한 이는 모두 늙고, 건강한 이도 반드시 병이 들며 나는 이는 모두 죽는 것이니, 그때 연각 도인(緣覺道人)도 그 궁전 안에서 문득 수명을 버리었다. 궁중의 채녀들은 섶나무와 기름과 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예배하였으며, 뼈를 거두어 탑을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예배하며 향을 사루고 등을 밝혔느니라.
그때 마조왕이 사역(四域)을 돌아보고 와서 후원(後園)으로 행차하였다가 이 탑을 보았다. 모시는 신하를 돌아보고 물었느니라.
‘무슨 까닭에 이것이 있는가?’
채녀가 대답하였다.
‘이는 대왕의 가장 어리신 왕자였사오나 집을 떠나 도를 배우시다가 여기서 수명이 다하였으므로 이 탑을 세웠나이다.’
이어서 물었다.
‘누구의 아들이며, 무슨 까닭에 집을 떠났는가?’
다시 그 어머니를 불러서 물었다.
‘이 무덤이 그대의 소생(所生)인가?’
‘그러하옵니다.’
‘무슨 까닭에 도를 배웠는가?’
‘이 속에 든 애기는 옛날에 왕이 납시는 것을 보고 곧 돌아와서 물었나이다.
≺왕의 7보 일산은 언제쯤에나 저의 머리 위에서 펼쳐지겠나이까?≻
신첩(臣妾)이 대답하였나이다.
≺태자가 응당 성왕을 계승하고, 차례차례 천 명의 왕자가 지나야 하지만, 그때면 너의 뼈는 썩은 뒤이어서 영원히 일산의 희망은 없느니라≻ 하였나이다. 애기는 신첩의 말을 듣고 참연(慘然)히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집을 떠나 도를 배우려고 하기에 신첩이 허락하였나이다. 부지런히 배워서 도를 이루었기에 신첩 등이 머무르기를 부탁하고 공양하다가 수명이 다하였기에 이 탑을 세웠나이다.’
왕은 다시 물었다.
‘이 왕자는 일산 때문에 도를 배우러 떠났는가?’
‘그러하옵니다.’
왕은 그 아들이 일산을 얻지 못해 도를 배우다가 수명이 다한 것을 불쌍하게 여기고, 살아서 얻지 못한 일산을 지금이라도 그의 탑 주변을 일산으로 덮어 주겠다고 하였느니라. 그리고 왕은 발원하였느니라.
‘이제 이 일산을 도인의 탑에 바치니, 이러한 복보(福報)로써 불도를 이루어 중생의 생ㆍ노ㆍ병ㆍ사를 제도하여지이다.’
왕은 송구한 마음이 들어서 세상이 덧없으며 죽음을 면할 수가 없음을 알았다. 태자를 세워 왕위를 물려주고 왕은 사역(四域)과 7보와 천 명의 아들과 8만 4천의
후궁ㆍ채녀를 버리고 머리를 깎고 사문이 되었느니라. 아주 남다른 곳에서 도를 배워, 네 가지 맑은 행인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를 닦아 수명이 마친 뒤에는 하늘에 태어났느니라.”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말씀을 계속하셨다.
“그대들의 뜻에 어떠한가. 마조 대왕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이런 생각을 말아라. 바로 내 몸이니라. 그때 한 개의 일산을 연각의 탑에 바친 까닭에 그 복으로 땅 위에서는 전륜성왕이 된 것이 헤아릴 수 없고, 위로 올라가서는 천왕이 되어 하늘 세간의 복을 한없이 받았느니라. 한 일산의 복으로도 내가 2천5백 번을 전륜성왕이 되어서 사천하를 주관하였느니라.”
아난이 다시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에 한 일산은 받지 않으시나이까?”
“그것은 내가 한 세상에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복이거니와 버리고서 받지 않는 까닭은 이 복으로써 뒷세상에 내 법을 받고 제자가 되는 이에게 베풀어서 그들이 의복과 음식과 평상과 와구(臥具)와 약이 궁핍하지 않게 하려는 때문이니라. 과거 모든 부처님의 법이 없어질 때에 도를 배우는 이가 있지만 혹은 두렵거나 혹은 빈궁하기 때문에 도를 배우지 못한 이가 있거니와 나의 바른 법[正法]이 다하고 말세가 되었을 때에도 나의 법에서 집을 떠나 도를 배우고 법복(法服)을 입고, 부처를 일러 스승이라 하면서 처자를 기를지라도 모두 사람들의 공양을 받거늘 하물며 부지런히 계행을 받들어 닦고 맑고 깨끗한 수행을 지키는 이가 나의 법이 다한들 공양을 받지 못하겠느냐?”
나열기국의 왕이 나라 안에 명령하여 강에다 다리를 놓게 하고, 부처님과 성중(聖衆)들이 건널 수 있도록 하였다. 유야리국의 왕도 다리를 놓아 부처님을 건너시게 하려고 하였고, 항하(恒河)의 용들도 서로가 얽히어 다리를 이루고 부처님이 건너시기를 청하였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생각하셨다.
‘나열기에서
세운 다리를 건너면 유야리와 용왕들이 속으로 한을 품을 것이요, 유야리에서 세운 다리로 건너면 아사세왕(阿闍世王)과 용이 한을 품을 것이며, 용이 만든 다리로 건너려 하면 두 임금이 한을 품으리라.’
부처님께서 또 생각하셨다.
‘내가 몸을 나누어 세 다리를 모두 지나도록 하리라.’
부처님께서 다리에 도착하시니, 아사세왕은 그 무리 수억 중생과 함께 향과 꽃과 갖가지 보배와 풍류로써 불ㆍ법ㆍ성중에게 공양하였다. 왕과 신하들과 온갖 대중 수억천 명이 다섯 활개[五體]를 땅에 던지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스스로의 허물을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을 전송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신통을 나타내시어 두 왕의 다리와 용왕들의 다리 위에 모두 부처님과 성중들과 하늘ㆍ용ㆍ귀신들이 있도록 하였다. 나열기왕과 유야리왕과 항하의 모든 용들이 제각기 자기가 놓은 다리 위에 부처님이 대중을 이끌고 건너시는 것을 보는데, 다른 다리 위에도 부처님이 계신 것은 서로가 알지 못하고 자신들이 세운 다리만 보았다.
부처님께서 겨우 강을 건너시니, 8만 4천 아귀가 몸에서 연기와 불을 뿜고 있었다. 그를 본 사람 가운데 도를 얻지 못한 이들은 놀라서 외쳤다.
“이것이 무슨 불인가. 마치 큰 산이 타는 것 같구나. 저 불이 물 가까이 오는 것도 같고, 물에서 멀어지는 것도 같네.”
아난은 그들의 뜻을 알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고 부처님은 지극히 높고 지극히 거룩하시옵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가장 거룩하신 님이시여, 온갖 중생이 이 불길을 보고 모두 두려워하옵니다. 이것은 어떠한 불길이옵니까? 바라옵건대 온갖 중생을 위하여 이것이 어떠한 불인지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지금의 이 아귀는 지난 세상에 부처를 만나지 못하여 법을 듣지 못하고 비구승(比丘僧)을 보지 못하고, 세간에
죄와 복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아귀로 태어났느니라. 지금에야 부처를 보고 달려와서 모두가 예배하는데 머리를 땅에 대고,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여래에게 말하기를 ‘부처님은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며 지극히 높고 지극히 거룩하시옵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의 온갖 중생과 곰실거리는 벌레와 기는 벌레들,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불쌍히 여기시니 부처님은 온갖 중생의 부모님이십니다. 저희들이 아귀에 떨어졌사오니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을 건져 주옵소서. 저희들도 온갖 중생의 무리이옵니다’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아귀가 지난 세상에서 지은 일을 아시지만 모든 중생을 위하시는 까닭에 아귀에게 물으셨다.
“지난 세상에 무엇을 하였기에 아귀가 되었느냐?”
아귀가 여쭈었다.
“전생에 비록 부처님을 뵈었으나 부처님을 알지 못했고, 비록 법을 보았으나 법을 몰랐고, 비록 비구승을 보았으나 비구승을 몰랐나이다. ‘저도 복을 짓지 않고 다른 사람도 복을 짓지 못하게 하였사오며, 복을 지은들 무슨 복이 있으며, 복을 짓지 않은들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하였사오며, 사람들이 복 짓는 것을 보면 항상 비웃는 말을 하였고, 사람들이 죄 짓는 것을 보면 항상 기쁜 뜻을 품었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아귀에게 물으셨다.
“이 아귀에 태어난 지 몇 백 년이나 되었느냐?”
아귀가 대답하였다.
“제가 태어난 지 7만 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아귀에게 물으셨다.
“태어난 지 7만 세에 어떤 것을 먹으며, 어떤 음식을 얻었느냐?”
아귀가 대답하였다.
“저희들의 전생에 심은 행실이 지극히 악했습니다. 때문에 작은 물을 만나도 곧 변하여 보이지 않고, 큰물에 이르더라도 문득 귀신이나 용, 나찰(羅刹)들에게 쫓기며, 또 ‘너는 전생에 악을 심었거늘 이제 무슨 까닭에 이 강과 바다에 가까이하느냐’ 하며, 비록 큰 용이 하늘땅에 가득한 비를 뿌리는 일을 만나 빗물에 몸을 적시려고 해도 문득 자갈돌과 뜨거운 모래가 뿌려지거나 또는 숯불로 몸이 떨어지게 되옵니다.”
부처님께서 아귀에게 물으셨다.
“태어난 지 7만 세에 여태까지 무엇을 먹었느냐?”
아귀가 대답하였다.
“세간에 계신 부모나 친척이 이름을 부르면서 복을 지어 주면 문득 조그마한 음식을 얻거니와 짓지 않는 이는 음식을 얻지 못하나이다.”
그때에 모든 아귀가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태까지 주리고 목마르옵니다. 부처님, 하늘 가운데 하늘께서는 온갖 중생을 불쌍히 여기시니 지금의 아귀에게 조금이라도 마실 물을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발우에다 물을 떠다가 아귀에게 보시하여라.”
아난이 곧 발우를 들고 물을 떠다가 아귀에게 주니, 아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한 발우의 물로는 한 사람도 배불리 하지 못할 것이겠는데, 하물며 8만 4천이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모든 아귀에게 말씀하셨다.
“8만 4천이 모두 이 발우의 물을 들고 지극한 마음으로 여래와 모든 제자에게 보시하여라.”
8만 4천의 아귀가 발우를 잡고 꿇어앉아 보시하면서 말하였다.
“저희들은 전생에 보시를 하지 않아 금생에 아귀로 태어나서 지금과 같이 아무 것도 없사옵니다. 이 발우의 물을 가지고 부처님과 모든 제자에게 보시하오니, 모든 아귀로 하여금 이 공덕에 의하여 세 갈래 나쁜 길을 멀리하고, 후생에 태어나는 곳에서는 부처님과 꼭 같으신 스승을 만나지이다.”
아귀가 아난에게 물을 드리니, 아난은 그것을 받아서 부처님께 드리어 한 모금 맛보시게 하고, 다시 1,250명 제자에게 넘겨 각각 한 모금씩 맛보게 하였다.
부처님께서 모든 아귀에게 분부하시어 강에 들어가 물을 마시거나 목욕을 하게 하시니, 강과 바다의 용과 귀신이 막아서 아귀들이 목욕하고 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바다의 용왕과 모든 귀신에게 말씀하셨다.
“다함이 없는 물을 어찌하여 아끼는가.”
모든 용과 귀신이 여쭈었다.
“물을 아끼는 것이 아니오라 아귀가 부정한 까닭이옵니다.”
부처님께서 용왕과 귀신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도 헤아릴 수 없는 겁에서는 이러한 몸이 되었느니라. 다함이 없는 물을 아끼면 그대들도 뒤에는 이러한 몸이 되리니, 아끼고 탐내는 까닭에 아귀에 나는 것이니라.”
모든 용왕과 귀신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가 바다로 들어가서 모든 아귀들이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도록 허락하였다. 목욕을 마치고 다시 나와서 부처님을 세 번 돌고 예배하며 합장하고 여쭈었다.
“부처님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여, 어느 때에나 이 아귀의 몸을 벗어나오리까?”
“한 발우의 물 때문에 뒷세상의 미륵불이 세상에 나오시고, 사람의 수명이 8만 4천 세일 때에 지금 나타났던 모든 아귀는 사람의 몸을 받아 아라한의 도를 얻을 것이니라.”
그때에 모인 무리가 이 보시의 공덕을 듣고, 모두가 바른 길과 참된 뜻을 얻었으며, 모든 아귀는 부처님을 세 번 돌아 부처님께 예배하고서 물러갔다.
유야리국의 왕과 대신과 장자와 거사와 헤아릴 수 없는 나라 사람이 다섯 활개로 예배하고, 스스로 부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삼보(三寶)에 귀의하며, 향기로운 꽃과 풍류와 비단 일산과 번기와 당기로 부처님을 맞이하니, 땅 위에는 꽃이 수북하였고, 길을 이어서 공양하니, 날마다 끊이지 않고 성 앞에까지 이르렀다. 부처님이 성인들과 하늘과 용과 귀신을 거느리고 성문에 이르시어 황금빛 팔과 덕스러운 손으로 성 문턱을 만지시고, 범음(梵音)의 맑고 깨끗한 여덟 가지 소리로 게송을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의 무리가
땅 속에 살고 있거나
땅 위를 걷거나
허공을 다니면서 살거나
자비로써 중생을 사랑하여
제각기 편안히 쉬게 하고
밤낮으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모든 착한 법을 받들어 실천하여라.
이 게송을 말씀하시니, 온 누리가 여섯 가지로 크게 진동하였다. 부처님께서 성안으로 들어가시니, 공중의 귀신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땅으로 다니는 귀신은 다투어 문으로 나아가려 하는데 성문이 좁아 제각기 밀고 달리는 바람에 성을 무너뜨리면서 나아갔다. 그때에 성안에 있던 모든 부정과 뒷간의 냄새나는 것들은 밑으로 가라앉아 땅 속으로 숨어버리고, 높고 낮은 곳이 서로 좇아서 개울과 구덩이가 모두 평평해졌으며, 맹인이 보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하고 앉은뱅이가 다니며, 미친 사람이 정신이 돌아오게 되고, 병든 사람이 고쳐지고, 코끼리ㆍ소ㆍ말이 슬피 울면서 서로 어울리며, 공후(箜篌)나 악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울어 높고 낮은 곡조가 조화를 이루며, 부녀들의 노리개가 서로 부딪쳐서 묘하게 울리고, 그릇과 그릇들이 저절로 소리가 나니, 부드럽고 화창하게 묘한 법을 연설하였다.
땅 속에 묻힌 갈무리[伏藏]는 저절로 드러나고, 온갖 중생은 뜨거움과 목마름에서 서늘한 물을 얻어 마시거나 목욕을 하여 태연히 소생하는 것같이 온 성안의 병자들이 쾌차하여 해탈하는 것도 그러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대중과 함께 곧 성을 나오시어 큰 자비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베푸시었다. 중생을 위하여 큰 보호를 드리워 주시려고 성을 두루두루 돌면서 문마다 축원(祝願)을 하시고 묘한 법을 펴시니, 흉한 것이 제거되고 상서로움이 이루어졌으며, 온 나라의 질병과 재앙이 모두 제거되어 나라 안이 온통 편안하여졌다.
그때에 재명(才明)이 부처님의 발 앞에 예배하고,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여쭈었다.
“먼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드리우셔서 내일은 모든 대중과 함께 온갖 중생을 위하여 저의 집에 강림하시어서 나물 진지를 받으시옵소서.”
부처님이 잠자코 계심으로써 허락하시니, 뛸 듯이 기뻐하며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부처님께 예배한 뒤에 물러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백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니, 청정하고 향기롭고 맑으며, 빛이 곱고 맛이 좋았다. 집 안을 엄숙하게 치장하는데, 비단으로 만든 번기와 일산을 달고, 평상과 좌구를 늘어놓고 향수를 땅에 뿌리고, 꽃과 향을 뿌리고 태웠다. 공양하는 시설을 갖추어 마치고는 멀리 문 안에서 길게 꿇어앉아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때가 되었사오니, 바라옵건대 강림하옵소서.”
그때 세존께서 모든 제자에게 분부하시되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재명 장자의 집에 가서 청을 받으라 하시었다. 곧 그의 문 앞에 이르니, 재명은 엄숙하고 공손하게 꽃과 향과 풍류로써 부처님을 집 안으로 드시도록 청하였다. 부처님과 성인들이 차례차례 자리에 앉으시니, 그때 재명 장자는 금병(金甁)을 들고 몸소 세숫물을 돌리었다. 음식도 손수 돌리어 위아래가 평등케 하고,
진지 잡수시기가 끝나니 다시 세숫물을 돌렸으며, 길게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드리우셔서 지금과 같이 사흘만 더 머무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잠자코 계심으로써 허락하시었다. 이에 재명은 부처님과 성인들에게 공양하는데 갖가지가 향기롭고 맑은 것이 처음 날과 같았다. 나흘이 지난 뒤에 금빛 수건이 10만 냥이나 되는 것을 부처님께 바치었다. 다음 자리에는 9만 냥짜리 수건을 바치고, 차례차례 내려와서 끝자리에 앉은 이에게는 만 냥짜리 수건을 드리어 달친(噠嚫)3)을 삼았다.
그의 아내가 또 일어나서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바라옵건대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여, 자비를 인간에 더하셔서 신비로운 광명을 머물러 있게 해 주옵소서. 천첩(賤妾)의 청을 물리치지 마시옵고 나흘만 더 머무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잠자코 계심으로써 허락하시었다. 그녀는 공양을 드리되 처음 날과 뒷날과 나흘에 이르도록 음식이 향기롭게 맑아서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나흘이 지나서는 또 10만 냥짜리 금빛 수건을, 최하의 자리에는 만 냥짜리를 바치었다.
그때 재명의 아들이 일어나서 부처님 앞으로 나와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여, 이미 저의 부모의 공양을 각각 나흘씩 받으셨으니, 자비와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드리우셔서 저의 청을 허락하시어 나흘만 더 머물러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부처님께서 잠자코 계심으로써 허락하시었다. 그는 공손하고 부지런히 나흘 동안 공양하는데, 음식의 달고 아름다운 것은 부모들의 것과 같았다. 곧 10만 냥짜리 금빛 수건을 세존께 바치고, 다음 자리에는 9만 냥, 가장 끝자리에는 만 냥짜리 수건을 드렸다.
며느리도 일어나서 길게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 자비가 넓으셔서 이미 시부모와 남편의 공양을 받으셨거니와 바라옵건대 전례(前例)와 같이 다시 나흘 동안 저의 공양을 받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잠자코 계심으로써 허락하시었다. 준비한 음식은 앞의 것과 다름이 없으며 나흘이 지나서는 또 10만 냥짜리 금빛 수건을 세존께 받들어 올리었다. 다음 자리에는 9만 냥, 끝자리에는 만 냥을 드리어 달친을 삼았다.
집안의 위아래가 모두 부처님 앞에 모여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진리[四諦]의 고(苦)ㆍ집(集)ㆍ진(盡)ㆍ도(道)를 연설하시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를 말씀하시어 번거로운 뜻의 스물두 가지 매듭을 끊고, 구렁텅이[溝港]를 깨닫게 하시었다.
유야리국의 왕과 대신과 장자와 거사와 온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생각하기를 ‘부처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신 것은 다만 재명 장자 한 사람만 위하려는 것인가?’ 하였다. 모두가 혐의하는 뜻을 품고, 코끼리ㆍ말ㆍ수레를 타거나 걸어서 재명 장자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 집을 무너뜨리면 부처님을 뵈올 수 있으리라 하여 대중이 벼락을 치듯이 움직이니, 떠드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실을 미리 아시면서도 짐짓 아난에게 물으시었다.
“밖에 무슨 소리이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유야리국의 왕과 대신과 장자와 백성의 높고 낮은 이가 모두 원한의 마음을 품었나이다. 세존께서 나라에 드시었지만 재명이 모시고 돌아와서 혼자서만 자기 집에 16일이나 계시게 하니, 다른 이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아가서 모든 사람을 위로하여 한을 품지 않도록 하여라. 여래를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곧 들어오도록 허락하여라.”
아난이 모든 무리들이 들어오도록 허락하니, 국왕과 대신과 온갖 사람이 부처님의 분부를 전하여 듣자, 성내는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져서 조그마한 원한도 남지 않아, 마치 빗물에 티끌이 젖은 것과 같았다. 곧 들어가서 부처님을 뵈옵고 다섯 활개[五體]를 땅에 던져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였지만, 대중이 바다와 같이 많아 그 집에 모두 수용하지 못해 밖에 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부처님께서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어 재명의 집을 유리로 변화하게 하시니, 안팎이 환하게 비치어서 모두 서로를 볼 수 있었다.
이때 재명이 평상과 자리를 마련하여 주단과 담요를 깔았으며, 갖가지 음식을 마련하되 수정(水晶)과 유리와 금과 은과 갖가지 보배로써 그릇을 만들었다. 대중이 공양을 마치니, 재명은 부처님과 모든 귀빈(貴賓)의 앞에서 여쭈었다.
“검소한 거처와 나물 진지로 왕림하시옵기를 청하여 송구하옵니다. 바라옵건대 식기(食器)와 평상과 좌구를 가져 주옵소서.”
그때에 모였던 대중이 모두가 놀라 찬탄하였다.
“장자 재명은 명성을 세운 것이 허망하지 않아 공덕과 서로 부응(副應)하는구나. 큰 보시를 하고, 보배 기구까지 베풀어 고루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집의 재산이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또 네 가지 무리의 제자들과 대중들은 의혹을 품었다.
‘재명 장자는 무슨 공덕이 있기에 부처님과 대중을 청하여 16일에 이르고, 왕과 만백성에게까지 공양하며, 보배 그릇까지 보시하니, 온 나라가 감로를 먹는구나. 전생의 복일까. 아니면 금생의 공덕일까.’
아난은 곧 대중이 의심하는 마음을 알고,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중이 의혹을 품기를 ‘장자 재명은 어떠한 복밭[福田]에 공덕의 씨를 심었으며, 어떠한 스승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았기에 이제 빛나는 과보를 받아서 재물이 한량없고, 마음이 밝고 실천이 밝아서 남보다 먼저 감로를 마시었을까’ 하오니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본래의 실천을 분명하게 말씀하셔서 무리의 의심을 끊어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과 모든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한 마음으로 잘 들으라. 이제 의심하는 것을 풀어 주리라.
옛날에 바라내(波羅奈)라는 성이 있었고, 성 가까운 곳에 선거(仙居)라는 산이 있었느니라. 산의 못물[池水]과 숲과 꽃과 과일이 모두 쾌락하여 견줄 곳이 없었느니라.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면 부처님과 제자들이 그 안에 살고, 부처님이 안 계시면 연각(緣覺)이 살며, 연각도 없는 세상에는 외도(外道)의 신선들이 그 안에 살아서 한 번도 끊이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선거라 부르느니라.
그때 연각이 살고 있었는데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마치고 법복을 입고 발우[鉢]를 들고 산을 벗어나서 걸식(乞食)을 하였느니라. 마을에 이르기 전에 폭풍과 비를 만났는데,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과일 밭이 있고, 그 안에 지키는 집이 있어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도사는 찾아가서 주인에게 말하였느니라.
‘길을 가다가 비바람을 만났으니, 바라옵건대 집에 들어가서 불을 쬐고 옷을 말리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곧
불러들여 나무를 가져다가 불을 피워 옷을 말리게 하니, 옷이 마르고 몸이 따뜻해지고 비바람도 조금 멎었느니라. 옷을 입고 떠나려 할 때에 과수원지기[園監]가 물었느니라.
‘도사께서는 어디를 가시려 하옵니까?’
‘온갖 생명이 의식으로써 사니, 나도 집을 버리고 법을 배우면서 걸식함으로써 살아갑니다. 만일에 밥을 얻지 못하면 몸과 목숨을 건지지 못하고, 모든 감관이 안정되지 않아서 도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과수원지기는 말하였느니라.
‘저의 집에 나물밥이 있는데 빛이 거칠고 맛이 없으나마 달게 받으실 수 있으면 다른 곳으로 가지 마옵소서.’
연각이 말하였느니라.
‘도를 배우는 이가 밥을 구하는 것은 빛과 맛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고 배를 채울 뿐입니다. 만일에 먹을 것을 주신다면 딴 곳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에 과수원지기는 밥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서 부인에게 물었느니라.
‘밥이 다 되었소?’
‘다 되었습니다.’
그 나라의 밥 먹는 법은 밥을 나누어서 따로 먹게 되었으므로 남편이 부인에게 말하였느니라.
‘나의 몫을 가져오시오. 우연히 귀한 손님이 오시었으니, 밥을 대접하려 하오.’
아내가 생각하였다.
‘남편은 남자로서 수고로운 일을 하여야 하고, 추위와 더위를 겪어야 하거늘 만일 먹지 않으면 노동을 못하리라. 나는 여자이어서 집에 한가로이 있으니, 의당 나의 몫으로 그 손님을 대접하리라.’
그 아들이 또 말하였다.
‘부모는 늙으시었으니, 다 잡수시는 것이 옳습니다. 나의 몫으로 드리옵소서.’
며느리가 또 말하였다.
‘시부모와 남편께서 손을 먹이려 하시거니와 저는 젊어서, 기갈을 견딜 만 하옵니다. 바라옵건대 저의 몫으로 손님을 대접하옵소서.’
도사가 말하였다.
‘그대들은 모두가 착한 마음으로 베풀고자 하니, 마땅히 여러 사람의 몫에서 똑같이 덜어서 흡족히 손님을 대접하시오.’
곧 제각기의 밥에서 한 술씩을 덜었느니라.
과수원지기는 또 생각하기를 ‘도사의 옷이 찢어져서 속살이 드러날 지경이구나’ 하고 아내에게 옷이 있느냐고 물으니 그의 처가 말하였느니라.
‘오직 한 벌의 옷이 있어서 손을 맞이할 때나 바꾸어 입을 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남편이 다시 말하였다.
‘지난 세상에 보시한 것이 없어 지금 빈천에 빠져 남을 따르지 못하거늘 지금도 베풀지 않으면 어느 때 빈궁하고 하천(下賤)한 처지를 면하겠는가. 부귀하고 호화로운 이는 모두가 지난 세상에 보시한 복을 받은 것이거늘 지금도 보시를 계속하여 싫어하지 않으니, 나도 앞으로는 손님을 맞이할 때에 옷치장을 바꾸지 아니하리라.’
옷과 밥을 가지고 가족이 모두 도사의 처소에 이르렀느니라. 손을 씻고 밥을 받들어 올리었으며, 도사가 공양을 마치고 양치질하고 발우를 씻으니, 네 사람은 옷을 바치었느니라.
연각은 설법으로써 교화하지 않고, 신통을 나타내어 중생을 기쁘게 하고, 도의 뜻을 일으키게 하려고 하면서, 주인에게 말하였느니라.
‘은혜로운 마음으로 도사에게 공양하였으니, 그대의 뜻을 굳게 하여 큰 서원(誓願)을 일으키라.’
말을 마치고는 허공으로 올라가서 가부좌(跏趺坐)를 맺거나 멈추거나 다니거나 하며, 연각을 변화하여 나타내니, 허공에 가득하여 각기 변화를 보이는데 몸에서 물과 불이 나오고, 물은 불을 끄지 않고, 불은 물을 침범하지 않았느니라. 얼마 동안 변화하다가 허공을 따라 날아가서 선거산(仙居山)으로 돌아가니, 과수원지기의 권속은 뛸 듯이 기뻐하여 합장하고 예배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슬픈 듯이 서원을 세우는데 ‘오늘 성스럽고 밝고 신성한 도사에게 공양하였사오니, 이 복덕의 과보로 세 나쁜 갈래인 지옥ㆍ아귀ㆍ축생을 여의고,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만나며, 하늘과 세간에서 풍부하고 안락하며, 깨달음과 지혜와 오력으로 감로의 맛을 마시어서 성스러운 스승과 같아지고자 하며, 밝은 스승을 만나면 신비로운 덕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과수원지기가 재명 장자고, 처와 아들과 며느리도 각각 본인이니라. 그때 한마음으로 거룩한 연각에게 보시한 까닭에 그때부터 91겁을 다시는 세 갈래에 들지 않고, 큰 복을 받았으며, 하늘과
세간에서 집안이 모이어 헤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때에 발원하되 감로를 마시고 도를 깨달아 견해를 얻으며 뛰어난 스승을 만나려 한 까닭에 지금 나를 만나서 뛰어난 깨달음을 만나니, 한량없고 비유할 수 없으며 이제 감로를 마시고 먼저 세상의 스승과 같이 되었느니라.”
그때에 대중이 부처님께서 설명하시는 공덕과 보응을 듣고, 모두가 기뻐하여 마음이 기껍고 뜻이 맑고 깨끗하여 제각기 삼보인 불ㆍ법ㆍ성중(聖衆)에 귀의하였다. 험준한 의혹이 풀리니, 혹은 5계를 받고, 혹은 집을 떠나서 배웠다. 그때에 모인 가운데 4천 명이 모두 도를 얻으니, 왕래(往來)와 불환(不還)과 무착(無着)의 과위를 얻었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대승의 뜻을 일으켜 물러나지 않았다. 그때에 세존께서 자리를 일어나서 그 집을 나오시니 대중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려 물러났다.
부처님과 대중은 내녀(奈女)의 숲에 있는 절로 향하시었다. 내녀는 부처님께서 대중을 거느리고 그의 숲과 동산에 이르신다는 말을 듣고 기쁜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곧 수레를 치장하고, 무리들과 함께 숲에 가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았다. 곧 보배 수레에서 내리어 구름에서 번개가 내리는 듯, 날개를 치면서 동산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길리(吉利) 하늘과 같이 옷맵시와 자태가 아주 남달라서 하늘의 옥녀(玉女)보다 뛰어나니, 동산 안의 모든 하늘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부처님께서 그러한 사실을 아시고, 이는 마군(魔軍)의 졸개들이 와서 청정한 계ㆍ정ㆍ혜ㆍ해탈ㆍ도(度)ㆍ지견(知見)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라 생각하시었다. 곧 범음(梵音)으로써 모든 사문에게 말씀하셨다.
“내녀가 오니 각각 너희들의 뜻을 단속하라. 각각 정진의 칼과 활을 가지고, 모두가 지혜의 화살을 엄중히 마련하고 선정의 투구를 쓰고 계행의 수레를 타고, 번뇌의 군사와 싸울지니라. 너희들은 여인이 행하는 속임과 거짓을 잘 헤아리되 모두가 금으로 돈의 겉만을 바른 것 같으며, 파리의 날개로 더러운 것을 덮은 것처럼 생각하여라. 힘줄과 뼈가 연접하였고, 피와 살이 모였으며, 눈곱과 눈물과 몸에 있는 땀과 때를 씻지 않은 것같이 생각하여라. 이러한
생각을 하여 여인의 몸을 관찰하고 미혹한 색욕(色慾)을 제지하도록 하여라. 뼈의 무리를 자세히 살피건대 힘줄로써 속박하고, 피와 살로써 바르며, 의복으로 덮고 호화로운 채색으로 꾸미고 다니니, 마치 그림쟁이가 담 위에다 진흙으로 그리고 채색으로써 그림을 칠한 것과 같으니라. 여인의 몸도 그러하니, 마땅히 자세히 헤아려서 알고 음란한 마음을 없애도록 하여라.
대저 도를 배우려 하면 먼저 마음을 잘 다스려야 그 뒤에 편안함을 얻으리라. 먼저 마음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고, 사악한 행실에서 쳇바퀴 돌 듯 하나니, 마치 말뚝의 말과 같아서 수명이 마치려 할 때에 원과 뜻이 어기어 마침내 해탈치 못하리라. 만일에 색을 보고 마음도 따라서 미혹하는 이는 덧없는 것이 영원하다고 여기고, 괴로운 것을 즐겁다고 생각하며, ‘나’가 없는 것을 ‘나’가 있다고 헤아리고, 부정한 것을 맑다고 생각하거니와, 지혜로운 사람은 덧없고 괴롭고 공하고 청정치 못함을 깨닫느니라. 이렇게 깨달은 사람은 곧 긴 길에서 죽고 사는 근심을 여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러한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니, 모두가 받아 지니고 한마음으로 받들어 실천하였다.
내녀(奈女)가 부처님을 뵈오니, 해가 구름에서 나온 것같이 금빛으로 빛나시므로 맑고 깨끗한 뜻을 일으켜 다섯 활개[五體]를 땅에 던지고 부처님의 발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가 한 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내녀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은 생각이 방일하여 다섯 가지 욕망에 집착하거늘 너는 능히 마음을 제어하여 여래에게로 와서 묘한 법을 즐기니, 이는 네가 가장 영리한 탓이니라. 남자들이 번뇌의 속박에 머물러 있으면서 즐겨 법화(法化)를 받는 것은 기특하다 할 것이 없느니라. 여인들은 번뇌의 그물에 얽히어 두루두루 막히었으면서도 벗어날 요점을 알지 못하느니라. 온갖 세간은 괴롭고 공하고 덧없어서 믿을 수 없으니, 모진 질병이 건강을 침노하고, 늙음으로써 얼굴빛을 잃으며, 죽음은 수명을 겁탈하고, 위태로움은 안정을 침노하느니라. 이러한 고통에서 떠나고자 하면 부지런히 법을 받아 부지런히 실천하여야 비로소 이 고통을 면하리라. 여인은 원망하고 미워하는데, 서로 만나면 몹시 미워하고,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면 몹시 그리워하니, 무릇 여인들은 매양
이 두 가지에서 멀리 떠나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여인은 마땅히 부지런히 법을 받들어서 원수와 만나거나 사랑하는 이와 헤어졌다는 마음을 여의면 다시는 생ㆍ노ㆍ병ㆍ사를 만나지 않고, 온갖 고통이 두루 없어지리라.”
내녀가 부처님께서 여인의 더러움을 오묘하게 가르치시는 말씀을 듣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곧 일어나서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바라옵건대 자비하신 마음을 베푸시어 성인들과 함께 저의 집에 왕림하셔서 공양을 받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잠자코 계심으로써 허락하시었다.
내녀는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서 집에 돌아와 백 가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니, 달고 맛있고 깨끗하였다. 번기와 일산을 펼치고, 평상과 자리를 벌여 놓고, 향수를 땅에 뿌리고, 꽃과 향을 뿌리고 태웠다. 길게 꿇어앉아 부처님을 청하기를 ‘때가 되었사오니 바라옵건대 성인들과 함께 왕림하여 주옵소서’ 하였다.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내녀의 집에 이르니 꽃과 향과 풍류로 부처님을 맞이하여 집으로 드시기를 청하였다. 각각 자리에 앉으신 뒤에 손수 물을 돌리고 음식을 받들었다. 공양을 마치시고, 양치질을 하신 뒤에 부처님께서는 널리 보시의 복보(福報)와 계행을 지키는 과보를 말씀하셨다.
“하늘과 인간의 쾌락은 장구하지 못하여서 위태롭고 헤어지는 것이어서 믿을 수 없으니, 네 가지 진리[四聖諦]와 8현성의 길[八賢聖路]이라야 큰 안락을 얻고 영원히 근심이 없으리라.”
모두가 마음이 기뻐져서 의심을 없애고 매듭이 풀리어 수다원(須陀洹)을 얻었다.
그때에 대중이 의혹을 품었다.
‘내녀는 전생에 어떠한 공덕이 있기에 나무의 꽃에서 나서 단정하고 예쁠까?’
어진이[賢者] 아난은 무리들이 품은 의심을 알고 길게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중이 모두 의심하되 내녀는 전생에 어떠한 복밭에 어떠한 공덕을 심었기에 지금 세존을 만나서 감로의 법을 받는가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가섭부처님 때에 사람의 수명은 2만 세이었는데 부처님이 하실 일을 마치었으므로 수명을 버리시었느니라. 그때 선경(善頸)이라는 왕이 있었으니, 사리(舍利)에 공양하고, 7보의 탑을 세워 높이가 한 유순(由旬)이었느니라.
모든 중생이 등을 밝히고, 향을 피워 꽃ㆍ일산ㆍ비단을 올리면서 공양하였는데 그때에 한 무리의 여인들이 있었느니라. 탑에 공양하고자 하여 서로 이끌고 와서 탑의 주위를 청소하는데 개가 똥을 누어서 탑의 도량을 더럽히었느니라. 그때에 한 여인이 손으로 긁어다 버리니, 다른 여인이 그가 손으로 땅 위의 개똥을 치우는 것을 보고, 침을 뱉고 비웃으며 말하기를 ‘너는 손이 더러우니 가까이 오지 말라’ 하였느니라. 그 여인은 거슬러 꾸짖되 ‘너는 음탕한 물건을 가리고 있는 인간이지만 나는 물로써 씻으면 내 손은 곧 맑고 깨끗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인간과 하늘의 스승이시라 공경하는 뜻에 끝이 없으므로 손으로 더러운 것을 제거하였거니와 이미 손을 씻고 탑을 돌면서 발원하기를 ‘이제 탑의 도량을 쓸어서 더러운 것이 없어졌사오니, 바라옵건대 저의 오는 세상에 번뇌가 소멸하고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였느니라. 그때에 땅을 쓸던 모든 여인은 지금 이 모임에 있는 모든 여인이니, 그때에 땅을 쓸면서 번뇌를 멸하고 감로를 마시기를 소원하였느니라. 그때에 손으로 개똥을 치운 여인은 지금의 내녀이니, 그때에 발원(發願)하기를 ‘더러움을 만나지 말고, 태어나는 곳마다 맑고 깨끗해지이다’ 하였나니, 그러한 복으로 포태의 냄새나는 곳을 의지하지 않고, 항상 꽃에 의지하여 태어나느니라. 그때 한 마디 나쁜 소리를 내어 음탕한 여자라 꾸짖은 까닭에 지금도 이러한 음녀(婬女)라는 이름을 받느니라.”
부처님께서 널리 선과 악의 업보를 말씀하셨다.
“천상과 세간은 즐겁고 기쁘거니와 세 나쁜 갈래는 괴로우며, 서로 잡아먹으니 근심과 고통으로 부르짖는다.”
그때에 모인 무리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불ㆍ법ㆍ성중 삼보께 귀의하여 몸과 입과 뜻의 악을 제거하여 10선(善)을 받들어 실천하였으며,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각각 3승(乘)에서 도의 뜻을 내어 모두 기뻐하면서 부처님을 세 번 돌고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다시 절로 돌아오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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