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도간경(佛說稻芉經)
불설도간경(佛說稻竿經)
실역인명(失譯人名)동진록(東晋錄)에 붙어 있음
김성구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시면서 대 비구(大比丘) 무리 1,250인과 대보살마하살((大菩薩摩訶薩) 무리와 함께 하셨다.
그때 존자 사리불(舍利弗)이 미륵(彌勒)이 경행(經行)하는 곳에 이르렀다. 미륵과 사리불은 함께 돌 위에 앉았다.
그때 존자 사리불이 미륵에게 물었다.
“오늘 세존께서 볏짚을 보시고 말씀하시되, ‘너희들 비구여, 12인연(因緣)을 보면 곧 법을 보는 것이며, 곧 부처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는 잠자코 계셨습니다. 미륵이여,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에 이 수다라(修多羅)를 말씀하셨습니까? 모두 어떠한 뜻으로 ‘이 12인연을 보면 곧 이것은 법을 보는 것이며, 법을 보면 곧 이것은 부처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까?”
그때 미륵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부처님 세존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12인연을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부처를 본다’고 하셨습니다. 12인연이란, 무명(無明)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6입(入)이 있고, 6입을 연하여 촉(觸)이 있고,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고, 수를 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고,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고, 생을 연하여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가 있습니다. 뭇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여 큰 괴로움의 음[苦陰:苦蘊]의 작인(作因)1)이 됩니다. 어떤 것이 법인가? 8정도분(正道分)과 열반과(涅槃果)입니다. 여래께서는 간략히 이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인가? 능히 일체 법을 깨달은 까닭에 부처라 합니다. 만일 지혜의 눈[慧眼]으로써 참된 법신(法身)을 보면 능히 보리의 배울 법2)을 성취합니다. 어떤 것이 12인연을 보면 곧 법을 보며, 곧 부처님을 보는 것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12인연은 항상 상속하여 일어나되 남이 없고[無生], 여실하여 소견이 뒤바뀜이 없고, 남도 없고[無生], 지음도 없으며[無作], 유위(有爲)가 아니고 무위(無爲)여서 마음의 경계가 아니며, 고요[寂滅]하여 모습이 없다. 그러므로 12인연을 보면 곧 법을 본다. 항상 상속하여 일어나되 남이 없고, 여실하여 소견이 뒤바뀜이 없고, 남이 없고, 지음도 없으며, 유위가 아니고, 머무름이 없으며, 무위여서 마음의 경계가 아니며, 고요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12인연을 보면 곧 위없는 도가 구족한 법신을 본다’라고 하였습니다.
존자 사리불이 물었다.
“어찌하여 12인연이라 부릅니까?”
미륵이 대답하였다.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으면 이를 인연법(因緣法)이라 합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간략하게 인연의 모습을 말씀하신 것이니, 이 인으로써 이 과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시지 않아도 또한 인연으로 생기는 법이 있습니다. 성품과 모습은 항상 머물러서 모든 번뇌가 없고 궁극적으로[究竟] 여실(如實)하여, 여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 이는 진실한 법으로서 뒤바뀜[顚倒]을 여읜 것입니다.
또 12인연의 법은 두 가지에서 생기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인(因)이며, 둘째는 과(果)입니다. 인연으로 생기는 법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안의 인연[內因緣]이 있고, 밖의 인연[外因緣]이 있습니다. 밖의 인연법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종자는 능히 싹을 내고, 싹에서 잎이 나고, 잎에서 마디가 나고, 마디에서 줄기가 나고, 줄기에서 이삭이 나고, 이삭에서 꽃이 나고, 꽃에서 열매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종자가 없는 까닭에 싹이 없고, 내지 꽃과 열매에 이르기까지 있지 않거니와, 종자가 있는 까닭에 싹이 나고, 내지 꽃이 있는 까닭에 열매를 냅니다. 그러나 종자는 자기가 능히 싹을 낸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싹도 또한 자기가 종자에서 나왔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내지 꽃도 또한 내가 능히 열매를 낸다는 생각을 짓지 않고, 열매도 또한 내가 꽃에서 나왔다는 생각을 짓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종자는 능히 싹을 냅니다. 이와 같은 것을 밖의 인으로 나는 법[外因生法]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밖의 연으로 생기는 법[外緣生法]인가? 이른바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ㆍ허공[空]ㆍ때[時]입니다. 땅의 종[地種]은 굳게 지니며, 물의 종[水種]은 적시고 윤택하며, 불의 종[火種]은 성숙하게 하며, 바람의 종[風種]은 일어나게 하며, 허공의 종[空種]은 장애를 짓지 않으며, 또 시절(時節)을 빌려서 기운이 화합하고 변하니, 이와 같은 여섯 연이 구족하면 곧 생기는 것입니다. 만일 여섯 연을 갖추지 못하면 물건은 곧 나지 못하거니와, 땅과 물과 불과 바람과 허공과 때와 이 여섯 연이 고루 화합하여 더하거나 덜하지 않은 까닭에 물건은 곧 생길 수 있습니다. 땅도 또한 자기가 능히 지닌다고 말하지 않고, 물도 또한 자기가 능히 윤택하게 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불도 또한 자기가 능히 성숙하게 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바람도 또한 자가기 능히 일어나게 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허공도 또한 자기가 능히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으며, 때도 또한 자기가 능히 종자를 나게 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종자도 또한 자기가 여섯 연에서 싹을 얻었다고 말하지 않으며, 싹도 또한 자기가 몇 가지 연에서 나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비록 생각을 짓지 않으나 이러한 몇 가지 연에서 납니다. 그리하여 실제에는 연의 화합에서 싹이 나옵니다. 또한 스스로에서 나지 않으며, 또한 남에게서 나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와 남이 합하여서 나지 않으며, 또한 자재천(自在天)에서 나지 않으며, 또한 때와 방위에서 나지 않으며, 또한 본성(本性)에서 나지 않으며, 또한 원인 없음에서 나지 않으니, 이를 생기는 법의 차례라고 합니다. 이와 같아서 밖의 연으로 생기는 법은 다섯 가지 일을 말미암으니, 마땅히 아십시오. 단절되지 않는 것, 또한 항상하지 않는 것, 또한 이에서 저에 이르지 않는 것, 싹과 종자는 적으나 열매는 많음과 같은 것, 비슷한 것이 상속하여 다른 물건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단절되지 않는 것인가? 종자와 싹에서 뿌리와 줄기가 순서대로 상속하는 까닭에 단절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항상하지 않는 것인가? 싹과 줄기와 꽃과 열매가 각각 스스로가 다른 까닭에 항상하지 않습니다. 또 종자가 멸한 뒤에 싹이 나는 것이 아니며, 또 멸하지 않고 싹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인연법은 싹이 일어나면 종자는 물러납니다. 순서대로 나는 까닭에 항상하지 않습니다. 종자와 싹의 이름과 모습이 각각 다른 까닭에 이에서 저에 이르지 않습니다. 종자는 적으나 열매는 많은 까닭이니, 마땅히 같지 않음을 아십시오. 이를 종자는 적고 열매는 많다 합니다. 종자와 다른 열매를 내지 않는 까닭에 같은 것이 상속한다 합니다. 이 다섯 가지 바깥 연으로써 모든 법은 생길 수 있습니다.
안의 인연법이란 두 가지에서 생깁니다. 어떤 것을 인(因)이라 하는가? 무명에서 내지 노사(老死)에 이르고, 무명이 멸하면 곧 행(行)이 멸하고, 내지 생(生)이 멸하는 까닭에 노사가 멸합니다. 무명을 인(因)하는 까닭에 행이 있고, 내지 생이 있음을 인(因)하는 까닭에 노사가 있습니다. 무명은 자기가 능히 행을 낸다고 말하지 않으며, 행은 또한 내가 무명에서 나왔다고 말하지 않으며, 내지 노ㆍ병ㆍ사는 또한 자기가 생에서 나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에는 무명이 있으면 행이 있고, 생이 있으면 노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안의 인이 순서대로 생기는 법[內因次第生法]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안의 연이 생기는 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6계이니, 땅의 계[地界]와 물의 계[水界]와 불의 계[火界]와 바람의 계[風界]와 허공의 계[空界]와 식의 계[識界]3)입니다. 어떤 것을 땅이라 하는가? 능히 굳게 지니는 것은 땅의 계라 합니다. 어떤 것을 물이라 하는가? 능히 윤택하게 잠기는 것을 물의 계라 합니다. 어떤 것을 불이라 하는가? 능히 성숙하게 하는 것을 불의 계라 합니다. 어떤 것을 바람이라 하는가? 능히 호흡이 드나들게 하는 것을 바람의 계라 합니다. 어떤 것을 허공이라 하는가? 능히 장애가 없게 하는 것을 허공의 계라 합니다. 어떤 것을 식이라 하는가? 네 가지 음(陰)과 다섯 가지 식을 혹은 명(名)이라 말하고, 또는 식이라 합니다. 이와 같은 법이 화합한 것을 몸이라 하고, 유루(有漏)의 마음을 식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음을 다섯 감정의 뿌리[情根]에 견주어 색이라 하며, 이와 같은 여섯 연을 불러서 몸이라 합니다. 만일 여섯 연이 구족하여 이지러짐이 없으면 곧 몸을 이루고, 이 연이 만일 줄면 몸은 곧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땅도 또한 내가 능히 굳게 지닌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물도 또한 내가 능히 적셔서 윤택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불도 또한 자기가 능히 익어지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바람도 또한 자기가 능히 호흡을 출입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허공도 또한 내가 능히 장애 없이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식도 또한 자기가 능히 자라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몸도 또한 몇 가지 연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이 여섯 연이 없으면 몸은 또한 내지 못합니다. 땅도 또한 나[我]가 없고, 남[人]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壽命)도 없고, 남자도 아니며, 여자도 아니며, 또한 남자 아님도 아니며, 여자 아님도 아니며,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니며, 물ㆍ불ㆍ바람 내지 식 따위도 모두 내가 없고, 중생이 없고, 수명이 없고, 내지 이것이 아니며, 저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을 무명이라 하는가? 무명이란, 6계(界) 가운데서 하나라는 생각[一想]과 모은다는 생각[聚想]과 항상하다는 생각[常想]과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不動想]과 무너지지 않는다는 생각[不壞想]과 안에서 즐거움이 생긴다는 생각[內生樂想]과 중생이라는 생각[眾生想]과 수명이라는 생각[壽命想]과 남이라는 생각[人想]과 나라는 생각[我想]과 내 것이라는 생각[我所想]을 냅니다. 이와 같이 가지가지로 많은 생각을 내는 것을 무명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하여 다섯 가지 감정 가운데서 탐욕과 성내는 생각을 냅니다. 행도 또한 그러합니다. 일체 거짓 이름인 법에 집착함을 식이라 하며, 네 가지 음(陰)을 명(名)이라 하며, 색음(色陰)을 색이라 하니, 이것이 명색입니다. 명색이 자라나서 6입(入)을 내며, 6입이 자라나서 촉(觸)을 내며, 촉이 자라나서 수(受)를 내며, 수가 자라나서 애(愛)를 내며, 애가 자라나서 취(取)를 내며, 취가 자라나서 유(有)를 내며, 유가 자라나는 까닭에 능히 뒤의 음[後陰]을 내는 것을 생(生)이라 하며, 생이 자라나서 변하는 것을 노(老)라 하고, 받은 음이 부서지는 까닭에 사(死)라 하고, 능히 질투와 번열을 내는 까닭에 우비고뇌(憂悲苦惱)라 하고, 다섯 가지 감정이 어긋나는 것을 몸의 괴로움[身苦]이라 하고,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마음의 괴로움[心苦]이라 합니다.
이와 같은 따위의 괴로움이 모이고 쌓여서 항상 어둠에 있는 것을 무명이라 하며, 모든 업을 짓는 것을 행이라 하며, 모든 법을 분별하는 것을 식이라 하며, 건립한 바가 있는 것을 명색이라 하며, 6근이 열리고 벌어짐을 6입이라 하며, 인연에 대하여 티끌을 취하는 것을 촉이라 하며,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아들여 깨닫는 까닭에 수라 하고, 목마른 이가 마실 것을 구함과 같이 하는 까닭에 애라 하며, 능히 취하는 바가 있는 까닭에 취라 하며, 모든 업을 일으켜 짓는 까닭에 유라 하며, 뒤의 음이 비로소 일어나는 까닭에 생이라 하며, 세상에 머무름이 쇠퇴하고 변하는 까닭에 노라 하며, 최후에 부서지는 까닭에 사라 하며, 지난 일을 추억하여 느끼며, 말소리가 슬픈 것을 근심의 괴로움[憂苦]이라 하며, 일이 와서 몸에 핍박하는 것을 고뇌(苦惱)라 하며, 추억하여 생각하되 상속하는 까닭에 슬픔[悲]이라 하며, 번뇌에 얽매인 까닭에 뇌(惱)라 합니다.
삿된 소견과 허망한 견해를 무명이라 하며, 이 삿된 견해로써 세 가지 업을 일으키는 까닭에 행이라 하며, 착하거나 악한 따위의 업이 능히 과보를 받게 하는 까닭에 식이라 하니, 더러운 무기에서 더러운 무기의 식을 내며, 움직이지 않는 업은 움직이지 않는 식을 냅니다. 식에서 명색이 나고, 명색에서 6입이 나며, 6입에서 촉이 나며, 촉에서 수가 나며, 수에서 애가 나며, 애에서 취가 나며, 취에서 유가 나며, 유에서 생이 나며, 생에서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가 납니다.”
미륵은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12인연에 각각 과가 있으니 항상하지도 않고 단멸(斷滅)하지도 않으며, 유위도 아니고, 유위를 여의지도 않으며, 다한 법도 아니고, 욕심을 여읜 법도 아니며, 멸하는 법이 아니어서, 부처님께서 계시거나 부처님이 안 계시거나 상속하면서 끊임없음이 강물의 빠른 흐름에 사이와 끊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 미륵은 거듭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12인연에 각각 인(因)이 있고, 각각 연(緣)이 있으니, 항상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으며, 유위도 아니고, 유위를 여의지도 않으며, 다한 법도 아니고, 욕심을 여읜 법도 아니며, 멸하는 법도 아니어서, 부처님이 계시거나 부처님이 안 계시거나 상속하여 끊임없음이 강물의 빠른 흐름에 간격과 끊일 때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능히 네 가지 연으로써 12인연을 자라나게 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무명(無明)ㆍ애(愛)ㆍ업(業)ㆍ식(識)입니다. 식은 종자의 체(體)가 되고, 업은 밭의 체가 되고, 무명과 애는 번뇌의 체이라서 능히 식을 자라나게 합니다. 업은 식의 밭이 되고, 애는 부드럽게 적시며, 무명은 식의 종자를 덮습니다.
업은 자기가 능히 식의 종자를 덮어서 심는다고 생각을 짓지 않으며, 애는 또한 내가 능히 부드럽게 적신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무명도 자기가 능히 식의 종자를 덮어서 심는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식도 자기가 그러한 인연에서 좇았다는 생각을 짓지 않습니다. 또 업을 식의 밭으로 삼고, 무명을 거름으로 삼고, 사랑의 물로 윤택함을 삼아서 곧 명색 따위의 싹을 냅니다. 그러나 명색의 싹은 스스로에서 나지 않으며, 남에게서도 나지 않으며, 스스로와 남이 합하여 나지도 않으며, 자재천에서 나지도 않으며, 때와 방위에서 나지 않으며, 체에서 나지도 않으며, 인연 없이 나지도 않습니다. 또 애욕의 즐거움[欲樂]과 부모의 정기와 인연이 화합하는 까닭에 명색의 싹이 나니, 주장 없고, 나 없고, 조작 없고, 수[壽]가 없고, 마치 허공과 같고, 허깨비와 같아서 인연이 화합함으로부터 나옵니다.
또 존자 사리불이여, 안식(眼識)은 다섯 가지 인연에서 생깁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眼]과 색(色)과 밝음[明]과 허공[空]과 뜻 지음[作意]이니, 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안식은 안근(眼根)에 의하여 색으로써 경계를 삼고, 밝음을 연하여 비춤[照明]을 삼고, 허공은 장애를 짓지 않고, 뜻 지음을 일으키는 까닭에 안식이 생깁니다. 이와 같아서 만일 인연이 화합하지 않으면 안식은 생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안식은 또한 내가 능히 주체의 모습이 된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니, 색도 또한 내가 능히 경계가 된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밝음도 내가 능히 걸림이 없게 한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뜻 지음도 내가 능히 안식을 일으킨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안식도 내가 몇 가지 연에서 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안식은 실로 거짓이어서 연이 화합하여 생깁니다. 이와 같은 차례로 모든 근(根)이 식(識)을 냄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또 사리불이여, 이 세상으로부터 다른 세상에 이를 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업과(業果)가 장엄하고 인연이 화합하면 곧 생깁니다. 또 사리불이여,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능히 얼굴의 그림자를 나타냄과 같으니, 거울과 얼굴은 각각 다른 곳에 있으나, 오고 감이 없이 물건은 같은 곳에 나타납니다. 하늘의 밝은 달은 땅과 4만 2천 유순(由旬) 거리에 있지만, 물이 아래에서 흐르고 달이 위에서 빛이 나면, 밝은 모양[玄象]은 비록 하나이지만 그림자는 여러 물에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달의 체(體)는 내려오지도 않았고, 물의 본질[質]은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이와 같아서 중생은 이 세상에서 뒷세상에 이르지 않으며, 뒷세상에서 다시 이에 이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업과(業果)의 인연은 알맞게 갚음이 있으며, 줄지 않습니다. 또 사리불이여, 불길이 나무를 얻으면 곧 타고 나무가 다하면 곧 그치는 것과 같이, 이렇듯 업을 맺어서 식이 나고, 모든 갈래에 두루하여 능히 명색의 과를 일으킵니다. 나가 없고[無我] 주체가 없고[無主], 또한 받을 이가 없으며[無受者], 허공과 같고, 더운 때의 아지랑이와 같으며,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아 실다운 법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착하거나 악한 인연의 과보는 업을 따르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12인연은 또한 다섯 가지 인연에서 생기니, 항상하지 않는 것ㆍ단절되지 않는 것ㆍ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것ㆍ인은 적고 과는 많은 것ㆍ비슷한 것이 상속하여 순서대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항상하지 않는 것인가? 하나의 음(陰)이 멸하고 하나의 음이 나니, 멸은 곧 생(生)이 아니며, 생은 곧 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항상하지 않다고 합니다. 어떤 것이 단절되지 않는 것인가? 천칭[秤:저울}의 높고 낮음과 같이 이에서 멸하여 저기에 나니, 그러므로 단절되지 않는 것이라고 여실하게 알고 보아야 합니다. 어떤 것이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것인가. 종자가 가서 싹에 이르는 것이 아니며, 또한 싹이 와서 종자의 처소로 나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여기에서 저기로 이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적은 종자로써 많은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비슷한 것이 나는 것인가? 착하지 못한 인은 착하지 못한 과를 내며, 착한 인은 착한 과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비슷한 것이 상속하여 난다고 합니다.
또 사리불이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능히 12인연을 관찰하면 이를 바른 소견[正見]이라 합니다. 만일 12인연을 바르게 관찰하면 과거의 몸에 대하여 있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미래의 몸에 대하여도 또한 없다는 생각을 짓지 않습니다. 중생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만일 사문이거나 바라문이거나 세간 사람이 모든 소견인 아견(我見)과 중생견[衆生見]과 수명의 소견[命見]과 장부의 소견[丈夫見]과 길하거나 길하지 못한 소견[吉不吉見]을 성취합니다. 이와 같은 12인연은 패다라(貝多羅)나무의 순을 끊으면 다시 날 수 없는 것과 같이 나의 소견[我見]이 즉시에 제거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12인연을 바르게 보면 곧 이와 같이 생각하는 마음[思心]을 얻습니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중생이 능히 이 법을 인지(認知)하면 이는 다타가도(多陀伽度)ㆍ아라가(阿羅伽)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께서 반드시 그를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수기를 주실 것입니다.”
존자 사리불은 미륵의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물러갔다. 천(天)ㆍ용(龍)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와 모든 대중은 미륵에게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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