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148 불설매의경(佛說罵意經)

by Kay/케이 2024. 11. 21.
728x90
반응형

 

 

불설매의경(佛說罵意經)

 

불설매의경(佛說罵意經)


후한(後漢) 안식국(安息國) 안세고(安世高) 한역
김성구 번역



부처님께서 뜻을 꾸짖음[罵意]을 말씀하셨다.
“시방(十方)의 벌레들을 모두 다 먹어버리면 시방의 벌레들도 모두 나를 먹거늘, 어찌하여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시방의 벌레들이 모두 나를 부인으로 삼는다면 나도 시방의 모든 벌레들을 취하여 부인으로 삼거늘, 어찌하여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나고 죽는 큰일에 있은 지 너무 오래되어 헤아릴 수 없으니, 마땅히 도를 심고 익힐지언정 축생의 업을 익히거나 심지 말지니라.
음행[婬妷]을 범하면 다섯 가지 죄가 있으니, 첫째는 재물이 없어지고, 둘째는 두려움에 떨어지고, 셋째는 고을의 관리를 두려워하고, 넷째는 원망과 화(禍)를 얻고, 다섯째는 목숨이 다하면 지옥에 떨어지느니라.
사람은 물질[色]인 음식을 좇아 몸을 얻는데, 사람이 되면 두려울 것이 없지만 다만 축생이 되는 것은 두려우니, 좇아서 지옥ㆍ아귀(餓鬼)에 들어갈 뿐이니라.
도인(道人)이 수염을 깎고 걸식(乞食)을 행하여 주리고 목마름을 참으며, 집을 떠나 재산을 버리고, 눈으로는 허망한 것을 보지 않으며, 여섯 감관[六根]을 수호하여 나쁜 인연을 피하는 것은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함이니라.
또 한 가지 뜻을 일으키면 백 겁(劫) 동안 재앙이 있으니, 비유하면 마치 곡식을 심으면 백 배로 만 배로 불어나는 것과 같아서, 곡식은 아는 것이 없어도 항상 만 배를 얻거니와 사람의 뜻은 알고 있으니 두려울 뿐만이 아니니라.
사람들이 앉아서 도를 닦을 때 바닷물의 벌레나 그 안에 있는 생물[物]들을 보면, 모두 지난 세상에서 물속의 벌레나 생물이었고, 금수(禽獸) 같은 것은 여러 생에 금수가 되었다가 금생에 인연을 얻은 것이니, 그러므로 죄는 반드시 시행되며, 소견이 많으면 모두 죄가 되느니라. 마땅히 이 뜻을 깨달아야 하니, 전생에 함께 지옥에 있었기 때문이니라.
과거의 죄는 쇠퇴[衰]하고, 현재는 죄(罪)가 되며, 미래에는 재앙[殃]이 되리니, 악(惡)은
부모가 있어서 어리석음은 악의 아비요 애욕은 악의 어미이며, 선(善)도 부모가 있어서 37품 경(經)이 선의 아비요 6바라밀이 선의 어미니라. 다시 부모가 있으니, 부처님은 아버지요 법은 어머니이니라. 부처님의 말을 따르고 법을 생각[案]하여 행하는 것이 바로 부모를 위한 행이니라.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면 귀신들이 붙들어다가 때리려고 하니, 그 사람이 뜻으로 문득 생각하길 ‘귀신을 만나는 것도 마땅히 다시 소멸되어 오래가지 않으리라’고 하면, 이러한 생각 때문에 곧 해탈하여 하늘에 태어나리라.
여섯 가지 일이 있으면 법이 없어지니, 첫째는 부처님을 섬기지 않고, 둘째는 법을 섬기지 않고, 셋째는 계행(戒行) 있는 비구승을 섬기지 않고, 넷째는 밝은 사람[黠人]을 섬기지 않고, 다섯째는 사람들에게 정진(精進)하여 도를 닦으라고 많이 가르치지 않고, 여섯째는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니라. 어진 사람은 이러한 여섯 가지를 물리쳐 법을 늘리[增]느니라.
복(福) 가운데서 죄를 짓지 말고 차라리 죄 가운데서 복을 지으라. 사람이 배우는 곳에 있으면서 도를 행하지 않거나 경을 외우지 않으면, 이것이 복 가운데서 죄를 짓는 것이요, 사람이 병에 걸리거나 관청에 걸리거나 불과 물 때문에 재산이 없어져도 근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죄 가운데서 복을 짓는 것이니라. 복 가운데서 죄를 짓지 말지니,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는데 수레를 타고 큰소리로 꾸짖어서 이것을 짓거나 이것을 취하거나 이것을 엿보면, 이것은 복 가운데서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살생에는 아홉 가지 부류[九輩]가 있어서 죄에도 가볍고 무거움이 있으니, 차라리 천 마리의 개미를 죽일지언정 한 마리의 파리를 죽이지 말지니라. 이렇게 위로 사람에 이르면서 큰 것을 죽이면 얻는 죄도 더욱 크니라. 백 곳의 절을 짓는 것이 한 사람을 살리는 것만 못하고, 시방 천하(天下)의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하루 동안 뜻을 지키는 것만 못하니, 사람이 좋은 뜻을 얻으면 그 복덕(福德)은 헤아리기 어려우니라.
나쁜 사람에게 물건을 베풀어 주면 뒤에는 반드시 나쁜 사람과 인연이 되리니, 이것이
번뇌(煩惱)를 받음이요, 착한 사람에게 물건을 베풀어 주면 이것은 복과 서로 따르는 것이니라.
또한 나쁜 사람의 물건을 받지도 말아라. 뒤에 서로 만나면 그것은 번뇌로 번뇌를 얻는 것이니, 차라리 착한 사람의 물건을 받아 착한 사람에게 물건을 베풀지언정 악한 사람의 물건을 받아서 악한 사람에게 주지 말며, 차라리 악한 사람에게 물건을 줄지언정 착한 사람의 물건을 받지 말며, 차라리 착한 사람의 물건을 받을지언정 악한 사람의 물건을 받지 말지니라.
사람이 나쁜 뜻을 얻으면 마땅히 끊어야 하고, 착한 뜻을 얻어도 마땅히 끊어야 하니, 나쁜 뜻이란 지옥(地獄)ㆍ축생(畜生)ㆍ아귀(餓鬼)요, 착한 뜻이란 하늘[天上]과 인간(人間)이니, 일체를 끊어야만 하느니라.
다섯 가지 마군[五魔]이 있어서 사람의 뜻을 어지럽히고 사람으로 하여금 도를 얻지 못하게 하니, 첫째는 하늘의 마군[天魔]이요, 둘째는 죄의 마군[罪魔]이요, 셋째는 행의 마군[行魔]이요, 넷째는 번뇌의 마군[惱魔]이요, 다섯째는 죽음의 마군[死魔]이니라. 도인이 도를 행하되 반드시 이들 다섯 마군을 깨달을지니라.
다섯 가지 일이 있으면 시방의 부처님도 막을 수 없으니, 첫째는 지난 세상 일이 잊어짐이요, 둘째는 생명이 반드시 태어나는 것이요, 셋째는 목숨이 반드시 다하여 무너짐이요, 넷째는 목숨이 반드시 늙음이요, 다섯째는 목숨이 반드시 죽음이니, 이 일은 막을 수 있는 이가 없느니라.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착한 계교에는 착함이 따르고, 둘째는 악한 계교에는 악이 따르고, 셋째는 착한 계교에 악이 따르고, 넷째는 악한 계교에 착함이 따르는 것이니라.
사람이 생각하는 바가 있으면, 뜻도 사라지고, 몸도 사라지고, 보이는 인연도 사라지느니라. 후세(後世)에 가서 복과 재앙을 받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종자와 열매의 관계와 같으니, 금년에 이미 익어서 땅에 떨어지면 내년에 다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아서, 죄는 비유컨대 나무와 같고, 뜻과 인연은 열매와 같으니라.
사람이 선이나 악을 지으면 네 신(神)이 알게 되니, 첫째는 땅의 신[地神]이 알고, 둘째는 하늘의 신[天神]이 알고, 셋째는 옆 사람[傍人]이 알고, 넷째는 자기의 뜻이 아느니라.

세 가지 인연이 있어서 도(道)가 굳어지니, 첫째는 행함[行]이요, 둘째는 받음[受]이요, 셋째는 재앙[殃]이니라. 나쁜 짓을 하는 것이 행함이요, 이미 생긴 것이 받음이요, 이미 받은 것이 재앙이니라.
다섯 명의 백정[屠家]이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문득 도를 생각하였으나 뒤에 목숨을 마치고는 나쁜 갈래에 떨어졌으니, 밤에는 다섯 가지 쾌락으로 즐기다가 새벽에 이르러 다시 다섯 가지 독(毒)으로 다스렸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받는 데 두 가지 무리가 있으니, 이른바 자기가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과 또한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라. 이 두 무리는 세 가지 일을 볼 수 없으니, 비유하면 마치 계행을 지키는 이가 모든 악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도인(道人)이 경을 전하고 도를 행하면 네 가지 복을 받으니, 첫째는 도를 행하여 일심(一心)이 되어서 음식을 먹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예배를 받고, 둘째는 원래 빈궁하여 가진 것이 없으므로 사람들의 예배를 받고, 셋째는 스스로 만족한 데 있어서 남의 예배를 받지 못하고, 넷째는 사람의 몸으로 도를 행하되 차라리 음식이 족함을 취할지언정 많이 받지 않느니라.
사람의 말이 경법(經法)에 응하면 받아들이고, 응하지 않으면 받지 말지니, 경을 듣는 것도 또한 그러하니라.
남을 위하여 경을 말하되 비록 남의 뜻을 어지럽혀도 죄가 없으니, 왜 그런가 하면, 본래 경을 말할 때 남의 뜻을 어지럽히려고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니라. 경을 말하여 비록 남의 뜻을 어지럽혔더라도, 비유하면 마치 독약을 먹고 죽게 된 사람에게 독을 멈추는 약[止毒藥]을 먹게 한 것과 같아서, 문득 다시 죽지 않으니, 불경(佛經)은 독을 멈추는 약과 같으니라.
도인은 네 가지 일이 있어서 불이 태울 수 없고, 무기[兵]가 가해질 수 없으니, 첫째는 부처님이 부리는 것을 받지 않았고, 둘째는 멸진(滅盡)을 얻었고, 셋째는 4선(禪)을 얻고, 넷째는 도에 뜻을 두어 생사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 어떤 집에 이르셨는데, 주인이 곧 문을 닫아 다른 사람들이 부처님을 보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는 후세에 두 눈을 보지 못하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부처님은 경(經)에서 등불을 켜면 하늘 눈[天眼]을 얻고 또한 멀리 볼 수 있으며, 또한 광명을 얻으며, 등잔의 심지를 만들면 예쁜 눈두덩[眼昛]을 얻고, 기름을 부으면 예쁜 동자(瞳子)를 얻고, 불을 주면 진리를 알며 이 인연을 좇아서 좋은 눈을 얻고, 등불을 주면 후세에 금과 은과 진귀한 보배 그릇을 얻음을 드러내고자 하셨느니라.
사람들이 와서 나쁜 일을 말하여 사람의 뜻을 어지럽게 하면 이는 마군의 짓임을 마땅히 깨달아야 할 것이요, 이것을 좋은 사람이 나쁜 부모를 얻었다 할 것이니, 이것이 죄의 마군[罪魔]이니라.
사람이 와서 꾸짖으면 다만 바람이 있을 뿐이니, 귀는 마땅히 피해야 하느니라. 이것은 악의 바람이니, 피하지 않으면 도리어 나쁜 사람의 바람을 맞게 되고, 이를 좇아 다섯 가지에 연루되며, 이 다섯 가지 행으로 나쁜 길에 떨어지느니라.
뭇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들어가서, 네 가지 무리[四輩]의 일이 있거든 응당 끌어내야 할 것이니, 첫째는 그릇된 법[非法]을 말하여 사람의 뜻을 어지럽히는 이가 있으면 곧 끌어내고, 둘째는 말하는 것이 그릇된 줄 알면서도 그치지 않으면 끌어내고, 셋째는 하는 짓이 옳지 않음을 보거든 가르치지 말고 끌어내며, 넷째는 묻는 것이 법답지 않거든 다시 더불어 말하지 말고 끌어낼지니라. 모인다는 것은 비슷비슷한 도인들이 모이는 것이니라.
벼룩과 이와 벌레와 개미가 사람을 무는 것은 네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지난 세상의 일로 마땅히 죄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마군이 와서 사람을 무너뜨려 도를 이루지 못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청정한 곳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요, 넷째는 평등한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여덟 가지 무리[八輩]의 사람은 믿을 수 없으니, 첫째는 탐내는 사람이요, 둘째는 질투하는 사람이요, 셋째는 성내는 사람이요, 넷째는 경박(輕薄)한 사람이요, 다섯째는 아전[吏人]들이요, 여섯째는 마음이 다른 사람이요, 일곱째는 원수진 사람이요, 여덟째는 여인이니라. 고을의 관리와 물ㆍ불ㆍ뱀ㆍ독사ㆍ날카로운 칼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하니, 가까이하면 곧 사람을 죽이느니라.
경(經)을 탐내고 사랑함에 다섯 가지 무리가 있는데, 첫째는 사람들이 나에게 경이 많은 줄 알게 하려는 것이니,
높은 체하고 좋은 이름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자기만 지니어 행하고 남들은 모르게 하려는 것이요, 셋째는 경에 의지하여 남의 예배를 받으려는 것이요, 넷째는 온갖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나에게 경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니, 자기는 스승이 되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경을 구하여 생사를 벗어나고 세상길을 벗어나서 경의 도[經道]에 맞게 하려는 것이니라.
경을 배우는 데도 다섯 가지 무리가 있으니, 첫째는 많은 경(經)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요, 둘째 복(福)을 많이 지으려고 하는 것이요, 셋째는 경을 알려고 하는 것이요, 넷째는 남에게 경을 말하기 위한 것이요, 다섯째는 생사를 끊으려고 하는 것이니라.
다섯 가지 질투라는 것은, 첫째는 다른 사람과 함께 스승을 섬기되 나 하나만 사랑하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는 차지함의 질투[居嫉]요, 둘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 혼자만 초라한 집안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은 태어남의 질투[生嫉]요,
셋째는 다른 사람이 부귀한 것을 보면 같아지기를 소원하는 것이니, 이것은 재물의 질투[財嫉]요, 넷째는 부처님의 깊은 경전을 혼자만 알려 하고 다른 사람은 얻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은 경의 질투[經嫉]요, 다섯째는 남이 단정한 것을 보고 스스로 생각하길 ‘나 혼자만 그렇지 못하다’ 하니, 이것은 색의 질투[色嫉]이니라. 이 다섯 가지 질투를 범하면, 도를 얻지 못하느니라.
도인(道人)은 다섯 가지 다툼[諍]에 떨어지지 말아야 하니, 첫째는 부처를 다툼이요, 둘째는 법을 다툼이요, 셋째는 계를 다툼이요, 넷째는 경을 다툼이요, 다섯째는 어짊을 다투는 것이니라. 도인은 이것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다투지 말아야 하느니라.
다섯 가지 잘못되어 굳셈[誤堅]이 있으니, 첫째는 몸이 잘못되어 굳센 것이요, 둘째는 요점(要點)이 잘못되어 굳센 것이요, 셋째는 삿됨이 잘못되어 굳센 것이요, 넷째는 탐심이 잘못되어 굳센 것이요, 다섯째는 경계[誡]함이 잘못되어 굳센 것이니라.
일곱 가지 음행(婬行)이 있는데, 첫째는 의복의 빛깔을 보는 것이요, 둘째는 구슬과 패물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요, 셋째는 부인들의 말소리를 듣는 것이요, 넷째는 마음과 뜻으로 여자를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눈으로 보는 것이요, 여섯째는 부부의 예(禮)를 생각하는 것이요, 일곱째는 뜻으로 생각으로 범하는 것이니, 이 일곱 가지 음행은 도를 얻지 못하느니라.
사람이 잊기를 좋아하는 데는 다섯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몸을 잊고, 둘째는 많은 생각을 잊고, 셋째는 애착을 잊고, 넷째는 본 것에 집착함을 잊고, 다섯째는 전생의 일을 잊느니라. 이른바 과거 세상에서 사람을 괴롭히고 말을 끊으며 사람을 놀라게 한 번뇌를 잊으며, 뜻과 생각의 번뇌와 술을 마시고 얻은 독을 잊느니라.
사분(四分)에서 물을 마시면 하늘의 기분을 얻고, 사분에서 누우면 죽음에서 벗어나고, 사분에서 좋은 말을 하면 하늘을 얻고, 사분에서 나쁜 일을 말하면 지옥을 얻을 것이니, 사분이란 지옥을 말하느니라.
왕의 부인에게 동생이 있었는데,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게 되었으므로 부인이 왕에게 말하기를 ‘제 동생이 이 지옥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그대가 나를 대신하여 말리시오’라고 하였느니라. 그 동생이 들어가려고 하자 부인이 말하기를 ‘이것은 지옥의 문이니 들어가지 말아라’라고 하니, 아우가 말하기를 ‘이 안에는 많은 것이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곧바로 지옥으로 달려 들어가니, 사람이 죄에 끌리는 것이 이와 같으니라.
어떤 사람이 남의 보습과 수레를 가져다 쓰면서 그 주인에게는 말하지 않고 나중에 돌려주려고 했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럴 수 없느니라. 이미 남의 것을 훔치고서 ‘나는 금수레를 만들어서 갚으려고 하였다’라고 말하는 것이니, 도둑질한 허물을 풀지 못하리라”고 하셨느니라.
사람이 계율(戒律)을 지니면 효순(孝順)해서 부모의 은혜를 갚을 뿐이니, 왜 그런가 하면, 만물을 죽이지 않으면 오래 살고, 물건을 훔치지 않으면 모두 부귀하고, 음행하지 않고 어지럽지 않고 속이지 않으면 모두가 믿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모두 청정해서, 부모가 이러한 곳에 태어나면 편안하리라.
절에서 재계(齋戒)하여 머물 때 사문의 승상(繩床)ㆍ걸상[榻]ㆍ책상[橙机] 위나 이불 속에 눕지 말지니, 모두가 계(戒)를 범하는 것이니라.
사람이 도인(道人)을 청하되 도인이 아직 다 잡숫지 않았거든 경을 묻지 말 것이니, 도인이 말씀하시면 죄가 되느니라. 도인이 잡수신 뒤에 경과 도를 물을지니라.

계율을 지키지 않고 도를 행하지 않으면서 절에서 산다면, 스스로 가마[釜] 속에 뛰어드는 것만 같지 않으니, 가마 속에서는 한 몸만 태우거니와, 계율을 지키지 않고 도를 행하지 않으면서 절에 살면, 헤아릴 수 없는 몸을 태우느니라.
도인은 또한 경(經)을 말해야만 하니, 어떤 사람이 경을 물으면 어기지 말지니라. 사람이 물건을 가지고 가서 도인에게 바쳤으면 경을 묻지 말아야 하며, 뒤에 비로소 경을 물을 수 있느니라. 물건을 받았으면 또한 경을 말하지 않아야 하니, 죄가 있느니라.
도인이 다섯 가지 인연이 있으면 청하여도 갈 수 없느니라. 첫째는 갑(甲)을 청하는 것이 을(乙)만 같지 않으면 갈 수 없고, 둘째는 을을 청하는 것이 갑만 같지 않으면 갈 수 없고, 셋째는 만일 갑을 청하였는데 갑이 말하였기 때문에 을을 청하였다면 을은 갈 수 없으며, 넷째는 내가 먼 곳에서 왔으므로 곧바로 청하지 않고 나중에서야 청한다면 갈 수 없으며, 다섯째는 만약 원수를 맺어서 서로 편하지 않은데 더불어 같은 마을에서 서로 가깝게 앉아 있다면 갈 수 없으니, 왜냐하면 잠을 자서 뜻을 그치게 하기 때문이니라.
그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나고 죽는 움직임[行]이 그치고, 둘째는 도행(道行)의 뜻이 지극하지 않아서 나고 죽는 인연의 뜻 안에서 그치기 때문이니라.
또 잠자는 사람이 잠자기를 좋아하는 데 세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많이 먹고, 둘째는 많이 마시고, 셋째는 근심하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몸이 휴식하는 것이요, 둘째는 남은 뜻이 지극하면 누웠다가 나와서 다시 뜻을 받으며, 셋째는 느낌[受]을 멈추기 때문이니라.
사람이 누웠다가 나오면 뜻이 있고, 알음알이[識]가 있고, 수명이 있고, 목숨이 있고, 가쁜 숨[喘]이 있고, 편한 숨[息]이 있으니, 하루 낮에 3만 6천 5백 번의 호흡이 어린아이에게 있느니라.
여덟 가지 행(行)으로 수면을 제거하니, 첫째는 적게 먹고, 둘째는 앉아 있고, 셋째는 서 있고, 넷째는 거닐고, 다섯째는 경을 외우고, 여섯째는 별을 바라보고, 일곱째는 낯을 씻고, 여덟째는 백골(白骨)을 관하느니라.
알 수 없거든 마땅히 모든 좋은 일들을 생각하라.
뜻이 이미 움직였거든 마땅히 스스로 중생에게로 돌리라. 복된 도와 선정(禪定)의 뜻을 얻고자 하여 생각을 얻으면 나머지 일은 이미 저절로 풀리느니라.
몸으로 얻는 복이 있고, 입과 뜻으로 얻는 복이 있고, 공(空)으로 얻는 복이 있으며, 또한 몸으로 얻는 죄가 있고, 입과 뜻으로 얻는 죄가 있고, 공으로 얻는 죄가 있느니라. 공으로 복을 얻는다 함은 이른바 꿈에 금ㆍ은 같은 진귀한 보배와 호귀(豪貴)함과 부(富)와 즐거움을 얻는 것이니, 이것이 공으로 복을 얻는 것이니라.
공으로 죄를 얻는다 함은 꿈에 사람이 와서 죽이거나 침해(侵害)하는 것이니, 이것이 공으로 죄를 얻는 것이니라. 입으로 남에게 나쁜 짓을 짓도록 하거나 사람을 죽이라고 권하면 뒤에 그 인연으로 남에게 채찍질을 당하리니, 이것이 입에 연루되어 죄를 짓는 것이니라. 뜻으로 자신이 인(因)을 짓고 연(緣)을 삼아서 남에게 상(傷)하거나 죽는 것은 뜻의 죄이니라.
사람에게 좋거나 나쁜 꿈이 있는 까닭은, 먹고 마시고 싶지만 물건은 없고 단지 뜻만 있다면 이 때문에 꿈에서 잘 먹고 마시며, 마음속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어하면 이 때문에 꿈에서 사람이 와서 죽이니, 모두 인연이 있느니라. 혹은 전생(前生)과 후생(後生)과 현세(現世)의 일이 밤에 꿈에 나타난 것이 아침이나 저녁에 일에서 나타나느니라.
꿈속의 좋고 나쁜 일은 모두 뜻으로 짓는 것이며, 상대하는 것도 모두 뜻이니, 비유컨대 마치 어떤 사람이 한 물건을 취하여 자세히 보고 나서 곧바로 갈무리하여 두면 비록 보지 않더라도 뜻으로 생각하면 곧 나타나서 보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지난 세상에서 지은 것이 문득 저절로 지금 세상의 뜻과 상대하기 때문이니라.
사람이 죽은 뒤에 다시 일어나 앉는 것은 살았을 때 즐겨 귀신 놀이로 사람을 놀라게 하였기 때문이며, 혹 세간에서 병이 났을 때 곁의 사람에게 ‘나를 불러 깨우라’고 하였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이미 죽었는데 다시 일어나 앉는 것이니라.
용의 무리에 떨어지는 데 네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보시(布施)를 많이 하고, 둘째는 많이 성내며, 셋째는 사람을 가벼이 여기고, 넷째는 잘난 체하여 높은 데 앉기 때문이니라.
이 네 가지 일로 용이 되니, 첫머리의 하나로 복을 얻고, 뒤의 셋으로 용의 몸을 얻느니라.
율경(律經)에서 말하기를 ‘모든 뿔이 있는 축생들은 전생에 즐겨 뿔을 차거나 비녀를 꽂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뿔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죄로 축생의 몸이 되었고, 혹 다른 빛깔이 있는 것은 채색 옷을 입기 위하여 나쁜 뜻을 가지고 탐내어 좋아하였기 때문에 이런 죄를 받느니라.
앵무새에 붉은 부리[嘴]와 붉은 발이 있는 것은 지난 세상에서 채색 옷과 입술 붉은 여인을 좋아하였기 때문이며, 긴 치마를 즐겨 입었기 때문에 다음 세상에서 꼬리가 긴 꿩의 무리에 떨어지니, 모두가 지난 세상에서 좋아하던 것을 지금 얻느니라.
사람이나 축생이나 몸에 종기[瘡]가 많은 것은, 지난 세상에서 나무나 대나무로 살아 있는 물고기나 축생의 입을 찔렀기 때문에 지금 세상에서 이러한 죄를 받느니라.
사람이나 축생이나 보고서 기뻐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것은, 전생에 서로 더불어 좋았으므로 금생[今世]에 서로 보면 기뻐하고, 전생에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 서로 보면 기뻐하지 않는 것이니라.
축생이 되어서 나쁜 복을 짓고도 밥을 얻으면 문득 기뻐하는데, 이것은 나쁜 짓을 하고도 기뻐하는 것이니, 그 사람은 전생에 악을 짓고서도 문득 기뻐하였기 때문에 이 복을 얻었느니라.
축생이 좋은 음식을 얻지 못하는 것은 세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익히지[習] 않았고, 둘째는 좋은 복이 다하였고, 셋째는 죄 때문에 그렇게 되느니라.
축생도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보드라운 감촉을 바라며, 또한 서로 더불어 말하지만, 다만 사람과 같이 말하지 못할 뿐이니라.
여인이 수염이 있는 이는 전생에 염소와 닭과 따오기의 무리에 있다가 왔기 때문에 수염이 있느니라.
물고기와 자라가 소리를 못 내는 것은 전생에 남의 말머리를 끊었기 때문이니라. 물고기가 태어날 때 바로 태어나지 않고 7일을 있다가 태어나는 까닭과, 풀이나 나무에 붙어 마른 곳에서
사오십 년을 있다가 물을 만나면 태어나되 새끼가 많은 까닭은, 악을 지은 이가 많아서 죄가 같은 이가 함께 태어나기 때문이니라.
성냄과 질투와 어리석음과 음행을 좋아하여 이 네 가지를 행하면 원숭이로 떨어지며, 일을 하되 안전하게 살피지 않으면 또한 원숭이로 떨어지며, 사람이 한량의 풍류를 짓기 좋아하면 후생에 새의 무리나 원숭이의 무리에 떨어지느니라.
살생하여 사당(祠堂)에 제사하는 일을 배우기 좋아하면 후생에 염소의 무리에 떨어지리니, 왜 그런가 하면, 남의 머리를 끊거나 껍질을 벗겼기 때문이니라.
혹 지난 세상에서 사람을 겁주고 남의 입은 옷을 벗겨서 갖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재앙을 끼치는 벌레가 되며, 또한 지난 세상에서 사람을 겁주고 남의 옷을 벗겨 가져서 그로 하여금 추위에 얼어 불을 쬐게 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먼저 이러한 재앙을 받아서 실을 토하고 스스로 얼어서 끓는 물에 들어가 죽느니라.
어리석어 살생을 좋아하면 후세(後世)에 돼지가 되고, 사람을 놀라게 하면 후세에 사슴이 되고, 맛있는 것을 많이 탐내면 후세에 파리가 되리라.
사람 때리기를 좋아하면 후세에 당나귀가 되리니, 귀가 긴 이유는 남의 귀를 잡아당기기 좋아하였거나 축생이 사람의 귀를 때리기 좋아하였기 때문이며, 혹은 지난 세상에서 수자리[征戌] 살던 병졸이니, 왜냐하면 한 병졸이 다른 병졸에게 전하면 모두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이 한 당나귀가 울면 나머지 당나귀들도 울기 때문이니라.
빚을 지고 갚지 않으면 소가 되는데, 소의 발굽이 갈라진 이유는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빚을 짓고, 둘째는 나막신[木履]을 신기 좋아해서 잘 만들었기 때문이니라. 말의 발굽이 완전한 까닭도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빚을 짓고, 둘째는 나무 신[木舃]을 신고서 좋다고 여겼기 때문이니라.”
여섯 사람이 짝이 되어 함께 지옥에 떨어져서 한 가마에 삶아졌다. 모두 본래의 죄를 말하려고 하였는데 한 사람은 ‘사(沙)’라 말하고, 두 번째 사람은 ‘나(那)’라 말하고, 세 번째 사람은 ‘지(持)’라 말하고, 네 번째 사람은 ‘섭(涉)’이라 말하고, 다섯 번째 사람은 ‘고(姑)’라 말하고, 여섯 번째 사람은 ‘다라(陀羅)’라 말하니, 부처님이 보시고 문득 웃으셨다.
목건련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웃으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섯 사람이 짝이 되어 함께 지옥의 가마솥 안에 있으면서
각자 말하려고 하나 물이 끓어서 솟구치므로 다시 말하지 못하고 각각 한 마디씩만 하고는 다시 빠지니, 첫 번째 사람이 ‘사’라 말한 것은 ‘세간의 6천억만 년이 지옥의 하루이니 언제나 끝나겠느냐’는 것이요. 두 번째 사람이 ‘나’라 말한 것은 ‘기한도 없고 또한 언제 벗어날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요,
세 번째 사람이 ‘지’라 말한 것은 ‘쯧쯧 마땅히 살았을 때 삶을 다스렸어야 하는데 이와 같이 스스로 뜻을 제어하지 못하였으며 지난 세상에서 내가 만족할 줄을 몰랐다’고 하는 것이요, 네 번째 사람이 ‘섭’이라 말한 것은 ‘나는 삶을 다스리되 지성(至誠)으로 하였고 또한 나의 재산을 남에게 맡겼거늘 나는 고통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요, 다섯 번째 사람이 ‘고’라 말한 것은 ‘뉘라서 내가 지옥에서 벗어나서 다시는 도와 금계(禁戒)를 범하지 않고 하늘에 태어나서 천하의 즐거움을 받으리라고 보증하리오’라고 하는 것이요.
여섯 번째 사람이 ‘다라’라고 말한 것은 ‘이 일이 애초에는 마음으로 헤아린 것이 아니니, 비유컨대 수레를 모는 이가 큰 길을 잃고 삿된 길[邪道]에 들어가서 바퀴살[車輻]이 부러져서야 뉘우쳐도 되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같도다’라고 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네 개의 관문(關門)을 말씀하셨다.
“세간으로부터 위로 여섯 번째 하늘까지는 죽음의 관문[死關]이요, 일곱 번째 하늘로부터 위로 열여덟 번째 하늘까지는 허공의 관문[空關]이요, 열아홉 번째 하늘로부터 스물세 번째 하늘까지는 덧없는 관문[非常關]이요, 스물네 번째1) 하늘로부터 스물여덟 번째 하늘까지는 벗어나는 관문[出關]이니라. 이 네 개의 관문을 벗어나는 것이 벗어남의 요체(要體)이니라.
지극한 복도 스물여덟 하늘에 불과하고, 지극한 악(惡)도 아비(阿鼻)지옥에 지나지 않으니, 그 밖의 재앙과 죄는 모두 많고 적음이 있느니라. 한 가지 일에서 세 가지 독(毒)이 생기고, 거기에서 다시 세 가지 나쁜 갈래가 생기니, 이 세 가지 나쁜 갈래만 없으면 사람들도 모두 도를 얻으리라.
아비의 큰 지옥으로부터 위로 여섯째 하늘까지가 함께 하나의 세계요, 일곱째 하늘에서부터 열아홉째 하늘까지는 함께 네 가지 평등한 마음[四等心]을 행하므로 다시 하나의 세계가 되고,
스물다섯째 하늘부터는 덧없음[非常]ㆍ괴로움[苦]ㆍ공함[空]ㆍ몸 아님[非身]을 행하며 위로 스물여덟째 하늘까지가 다시 하나의 세계가 되느니라. 스물여덟 하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3독(毒)이 다하지 않으면 다시 내려와서 사람이 되어 삼계(三界)를 가고 오리니, 벗어나기를 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생각[思想]을 멸할지니라.
아비의 큰 지옥으로부터 위로 여섯째 하늘까지는 욕계(欲界)가 되고, 일곱째 하늘에서부터 위로 열아홉째 하늘까지는 색계(色界)가 되고, 스물다섯째 하늘에서부터 위로 스물여덟째 하늘까지는 무유색계(無有色界)가 되니 생각이 없기도 하며 생각이 있기도 하느니라.
아비지옥으로부터 위로 스물여덟째 하늘까지는 생사계(生死界)가 되고, 스물여덟째 하늘을 지나면 무위계(無爲界)가 되느니라.
탐심과 음심을 끊으면 비로소 색계에 이르고, 성냄을 끊으면 무사상계(無思想界)에 떨어지고, 어리석음을 끊어야 마침내 벗어남에 이르느니라.
삼계에는 세 곳이 있으니, 첫째로 아비지옥으로부터 위로 여섯째 하늘까지는 탐심ㆍ음심의 곳이요. 둘째로 일곱째 하늘로부터 위로 열아홉째 하늘까지는 색(色)에 집착하여 행하는 곳이요, 셋째는 위로 아나함(阿那含)까지 네 하늘을 제외하고 스물다섯째 하늘에서부터 위로 스물여덟째 하늘까지는 생각이 없기도 하며 생각이 있기도 한 곳이니, 색(色)이 없음을 행하는 곳이라고 하느니라.
이것이 세 곳이니, 생사에 떨어져서 색에 집착하여 행하는 것은 비유컨대 마치 불빛처럼 볼 수는 있어도 잡지는 못하는 것과 같으며, 탐욕을 내는 곳에 있으며, 색을 기뻐하는 곳에 있음을 합하여 세 곳이 되느니라.
지옥ㆍ축생ㆍ아귀가 음욕과 색을 탐내는 곳에서 벗어나 세 곳에서 살려면 어떤 도를 원해야 하는가? 반드시 세 가지 근본이 있으니, 악의 근본과 선의 근본과 도의 근본이 있느니라. 지옥ㆍ축생ㆍ아귀는 악의 근본이요, 인간으로부터 위로 여섯째 하늘은 선의 근본이요, 일곱째 하늘에서부터 위로 열두 개의 문을 벗어나면
이것이 도의 근본이 되느니라.
이미 스물여덟째 하늘까지 이르렀으나 벗어나지 못하는 데는 세 가지 인연이 있느니라. 첫째는 탐심이요, 둘째는 어리석음이요, 셋째는 뜻[意]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이미 열두 겹의 문을 벗어났으면 마땅히 뜻 없기를 소원할 것이니, 세 가지 독(毒)을 끊지 못하여 해탈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뜻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스물여덟 하늘은 무엇 때문인가? 먼저 본래 세간에서 몸을 받았을 때 몸을 탐내거나 뜻을 흩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니, 밖의 일곱 가지 일을 끊으면 여섯째 하늘에 올라가 복을 받고, 안의 세 가지 일을 끊으면 위로 열여덟째 하늘에 오르며, 스물한 번째 하늘로부터 네 곳은 아나함(阿那含)에 속하느니라.
10선(善)을 행하되 첫 번째 하늘에 태어나는 이도 있고, 여섯 번째 하늘에 태어나는 이도 있으니, 이는 착한 일을 지음에 많고 적음이 있기 때문에 처함이 같지 않느니라.
10악(惡)을 행하되 지옥에 들어가는 이도 있고, 축생ㆍ아귀에 태어나는 이도 있으니, 악을 지음에 가볍고 무거움이 있기 때문에 처함이 같지 않느니라.
착한 일을 행하고도 다시 나쁜 행을 얻기도 하고 악을 행하고도 다시 선을 얻기도 하니, 선 가운데 작은 악이 있고 악 가운데 작은 선이 있는 것은 작아서 볼 수 없느니라. 선 가운데 작은 악도 없으면 또한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고, 악 가운데 작은 선도 없으면 또한 극악(極惡)함을 벗어나지 못하니, 지극히 악한 것은 아비지옥에 지나지 않고 지극히 착한 것은 스물여덟 하늘에 지나지 않는데, 미세한 뜻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일체가 10선(善)을 행함을 좇아 하늘과 인간에 태어나는데, 하늘과 인간으로 변화하여 태어나는 까닭은 본래 세간에 있을 때에 색(色)을 향하여 깨닫지 않고 오로(惡露)가 부정하여 이로부터 변화로 태어나게 되니, 뜻만 있으면 곧 여자를 바꾸어 태(胎)에 드느니라.
모든 하늘이 변화로 태어나는 데는 다섯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고, 둘째는 뜻을 일으키지 않고, 셋째는 어린아이를 원하지 않고, 넷째는 홀로 앉았기를 기뻐하고, 다섯째는 세간을 의지하지 않고 몸을 탐내지 않기 때문에 변화하여
태어나느니라.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려 할 때는 반드시 뜻과 생각을 잡아야만 하니, 뜻을 이미 쉰 사람은 호흡에 집중하면 첫 번째 하늘로부터 위로 올라갈 때가 있느니라. 이것이 뜻을 쉬어 몸에 서른두 가지 물건이 있음을 관찰하는 것이니, 머리카락ㆍ터럭ㆍ이빨ㆍ뼈ㆍ가죽ㆍ살과 5장(臟) 등 열한 가지는 땅[地]에 속하고, 눈물ㆍ콧물ㆍ침ㆍ고름ㆍ피ㆍ기름ㆍ소변 등 일곱 가지는 물[水]에 속하고, 체온[溫熱]과 밥을 소화하는 두 가지는 불[火]에 속하고, 바람[風]에는 열두 가지가 있음을 헤아리느니라.
이 서른두 가지 물건은 모두가 땅ㆍ물ㆍ불ㆍ바람에서 나오니, 어떤 것이 땅인가?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곡식의 정기(精氣)를 좇아서이니, 곡식은 땅이 되고 뜻은 종자가 되며 정기는 물이 되어서 두 가지가 문득 합하여 몸을 낳기 때문이니라.
한 벌의 옷과 한 그릇 밥을 구하는 것이 기운을 보양(保養)하여 주인의 몸을 보호하는 것이나 본래 없던 것이므로 사라져 다하여 덧없으며, 도를 얻으면 문득 몸이 몸 아닌 줄을 알 것이니, 몸은 오래 가지 못하고 반드시 죽어 썩어짐을 기억할지니라.
뜻이 사람의 씨앗[種]이 되니 일심(一心)으로 뜻을 지켜야 하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혼백과 정신을 수호하지 못하고 다만 네 개의 기둥[四柯]만을 길러서 빛깔과 맛에 속임을 당하느니라.
이른바 몸을 ‘나’라고 계교하면 모든 악이 몸을 좇아 일어남을 알지 못하고 음식의 맛만을 탐내어 문득 괴로움에 떨어지니, 생사(生死)를 오고 가면서 근본을 벗어나지 못하면 나쁜 상대를 만나서 혼백만이 공연히 떠나가 좋거나 나쁜 길에 나아가리라.
몸이 죽어서 땅에 들어가면 밤낮으로 썩어지고 또한 본래 없던 것이거니와, 다만 뜻으로 행하였기 때문에 변화하여 태어났으니, 몸이 죽으면 모두 땅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만물(萬物)도 또한 그러하니라.
모두 지나 가버려서 덧없음을 사람들이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여 만 가지 실마리를 생각하는 까닭에 하나를 이루지 못하니, 이것이 괴로운 몸[苦身]이며, 죽음의 올가미로 만 가지 실마리를 버리는 것도 또한 그러하니라. 멸하였다가 다시 태어나고 태어나서는 다시 괴로워하여 문득 착하거나 나쁜 행을 지어 심고 가꾸어서 벗어날 곳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그릇된 몸[非身]이니라.
도인(道人)은 도를 행하되 반드시 사람[人]이란 생각을 끊어야만 하고, 네 가지 덧없음을 알지 못하면
끝내 도를 얻지 못하리니, 이미 스스로 몸을 헤아려서 모든 죽음의 형태를 관찰하고, 사람과 물건이 모두 공하며 공하여 없는 것임을 안다면, 뜻이 곧 안정되어서 행함에 기쁨을 얻으리라. 이미 행과 마음이 편안함을 얻어서 여의지 않고, 다섯 가지가 그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도(道)이니라.
이미 스스로 몸을 헤아려서 없는 것임을 알면 곧 몸과 뜻이 멈추고, 뜻과 법을 느끼면 또한 몸과 뜻이 멈추느니라. 멈춘다는 것은 이른바 세 가지를 말하는 것이니, 아픔을 멈추고 가려움을 멈추고 아프고 가렵다는 생각을 멈추는 것이니라. 이른바 네 가지 일의 탐욕(貪欲)을 멈추면 뜻이 멈추고, 안의 세 가지 생각이 멈추면 뜻을 지음[作意]이 멈추느니라. 이른바 식(識)이 멸하면 밖의 법이 멈추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 뜻이 멈추는 것이니라. 멈추면 곧 지키게 되고, 멈춤을 지키면 곧 관찰하게 되니, 그러므로 경(經)에서 말하기를 ‘멈춤[止]과 관찰[觀]을 함께 행해야 네 가지 진리[四諦]를 얻는다’고 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홀로 앉아서 자기의 뜻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른바 생각함으로써 색(色)과 느낌[痛痒]과 생각[思想]과 생사식(生死識)을 멸하는 것이니라.
자기의 뜻을 멈춘다는 것은, 밖으로는 뜻을 멸하여 멈추었으나 항상 움직이며 있는 것 같고, 도(道)를 보되 있는 것같이 하는 것이니, 앉거나 다니거나 문득 스스로 보기 때문이니라.
경에서 말하기를 ‘비구가 능히 이와 같이 안으로 뜻을 멈추어야 비로소 멈춤을 지킬 수 있으니, 이 뜻을 마땅히 먼저 관찰하고 생각하여 망념을 멸할지니라. 망념이 자기의 뜻을 상대함에 문득 뜻을 지켜서, 뜻이 몸을 벗어나지 않아야 도인(道人)이 되느니라. 밖을 상대하여 만물(萬物)이라 이르고, 생각이 안에 있는 것을 사식(思識)이라고 하니, 망념이 상대하는 것을 멸하고자 하면 항상 물건은 덧없이 썩어져서 모두 ‘나의 것’이 아님을 생각할지니라. ‘나’는 또한 물건이 아니니, 급한 생각을 내어서 죽을 때를 생각하되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착한 행을 가지고 가며, 일심(一心)을 가지고 가며, 경을 외운 많은 즐거움을 가지고 가느니라’라고 하였으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의 물건만 가지고 가리니, 그 나머지 일체는 모두 ‘나의 것’이 아니니라. 뜻으로 마땅히 기억하여 알지니, 어떠한 은애(恩愛)도 모이면 반드시 이별하며 각각 소멸하여 썩느니라. 생각하여 다만 사람의 뜻을 어지럽히면, 사람의 죄를 따라서 반드시 도로 몸을 받고, 청정함을 지키면 열반에 나아가느니라’라고 하셨느니라.

부처님은 한마음을 좇아 아홉 갈래[九道]에 이르시니, 네 가지 색이 모두 소멸함을 생각하시느니라. 이른바 사람이 죽은 지 4,5일이면 냄새가 나고 썩으려고 해서 색(色)이 바뀌어 정말로 푸르고 5,6일에는 피와 고름이 입ㆍ코ㆍ귀ㆍ눈에서 나오되 정말로 붉으며, 뒤에는 살과 가죽이 무너지고 썩으며 내장[腸胃]에는 벌레가 생겨 도리어 자기 살을 먹느니라. 가죽이 녹고 뼈가 썩어서 정말로 하얗게 되었다가 오래오래 지나면 검게 변하여 재(灰)와 흙이 되니, 땅ㆍ물ㆍ불ㆍ바람이 공하여 모두 ‘나의 것’이 아니니라.
생각하건대 너희들은 헤아릴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사람이 되어 처자와 종이 되었고, 또한 축생과 소ㆍ말ㆍ벌레가 되어서 수고롭게 무거운 짐을 졌으며, 또한 사람들에게 도살되어 벗겨져 날고기[膾]나 구운 고기[炙]가 되었으므로 지금 사람이 되어 다시 사람들을 취하여 처자와 종으로 삼으며, 또한 축생과 소ㆍ말ㆍ벌레를 취하여 도살하고 가죽을 벗겨서 날고기와 구운 고기로 찌르고 깎기를 마음대로 하다가, 몸이 죽으면 모두 다시 받아 행하느니라.
도인(道人)은 ‘그대가 어찌 사람이 죽어서 기절(氣絶)하면 문득 아는 것이 없고 몸이 곧게 뻣뻣하며 냄새나고 무너져 흉측한 것을 보겠는가’라고 하여, 자세히 생각하고 문득 두려워하여 보지 않았으면 하니, 왜 그런가 하면 두려워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위로 하늘에 태어나 열반을 얻게 하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아홉 갈래가 모두 공하여 있는 바가 없음을 아시니, 그러므로 도리어 한마음에 나아가 행하시느니라.
도인이 시급히 망념을 멸하여 없애면 다른 모실 것이 없으니, 만약 곧 물건이 깊고 굳음에 이르면 행에 구속됨이 깊어서, 모두 보는 바에 있고 작용은 있지 않기 때문에, 뜻과 욕심과 탐내는 생각과 덧없어 썩어짐과 음욕을 보지 않고, 마땅히 성내는 마음과 평등한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대치(對置)하여 생각할지니라.
본래의 행이 항상 무위(無爲)하여 안은(安隱)하지 않으나 사람이 덧없음을 알지 못하여 끝내 탐심을 버리지 못하며, 또한 쑥과 여지가 우거진 길을 여의지 못하느니라. 세간에 있는 것은 꿈과 같을 뿐이니, 꿈에서 밥이 좋은 것을 보았으나 깨어나면 곧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이 세간에 있는 것들도 이와 같아서, 태어나면 곧 죽고 이루어지면 곧 무너지니, 반드시 모두 공(空)으로 돌아가거늘 무엇을 탐하겠는가.
사람들이 가진 처자와 재산도
또한 그러하니,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이 생업(生業)을 다스려 돈과 재물의 이로움을 얻었을 때 집안이 모이면 기쁘고 즐겁지만 비유컨대 마치 나는 새가 모인 것 같아서 또한 모두 덧없으며, 하루아침에 헤어지면 또한 문득 보지 못하느니라. 만약 항상함이 있게 하더라도 근심과 두려움이 만 가지나 되리니, 뜻이 나고 죽는 가운데 있으면서 날마다 죄를 쌓았기 때문이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검약하여 욕심이 적어서 한 벌의 옷과 한 그릇의 밥을 구하되 선정(禪定)의 뜻을 좇아 행하여, 구함이 없는 경지에 머물고, 항상 몸을 돌이켜 청정함을 지켜서, 구함을 끊고 공(空)을 생각하느니라.”
대중들이 여쭈었다.
“도를 행하고 뜻을 지키는 것은 본래 무엇을 좇아 일어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하늘과 땅의 성품으로 사람을 이루니, 열다섯째 하늘 위에서 내려와서는 수명이 짧은 이가 없었고 나고 죽는 다섯 갈래를 뽑아 버렸거니와, 여섯 가지 쇠퇴함[六衰]을 좇아 일어나느니라.
사람이 태어남에 마음과 뜻이 본래부터 착해서 탐애(貪愛)와 느낌[痛痒]과 생각함과 생사식(生死識)이 없었으나 눈ㆍ귀ㆍ코ㆍ입에게 속임을 당하느니라. 눈으로 먼저 빛깔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을 보며, 마음으로 생각해서 열 가지 일을 지으니, 다섯 가지 쌓임[五陰]을 이루고, 뜻은 의식[識]이 되니, 합하여 여섯 가지 쇠퇴함이 되느니라.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의 씨앗을 지었기 때문에 ‘나’를 이루니, 이로부터 문득 늙고 병들고 죽고 태어남이 있느니라. 다섯 갈래에서 도(道)를 구하여 생사를 끊으려 하기 때문에 스스로 지켜서 뜻을 멈추고, 눈에는 빛깔을 멈추고, 귀에는 소리를 멈추고, 코에는 냄새를 멈추고, 입에는 맛을 멈추고, 몸에는 여섯 가지 쇠퇴를 끊음을 좋아하고, 행은 무너지는 마음을 관찰하고, 좌선하여 의식(意識)을 멸하니, 도를 얻으면 다섯 가지 쌓임이 모두 소멸하느니라.
본래 없는 것임을 알면 문득 기억[念]이 공해지고 생각[想]이 공해져서, 빨리 열반의 문에 나아가리니, 자기를 지킨다는 것은 뜻[意]이 식(識)이 되어 행을 주장하기 때문이니라. 요약하면 여섯 가지 쇠퇴함은 재앙이 되고, 행은 다섯 갈래의 근본을 심으니, 도인은 정밀하게 생각하여 스스로 네 가지 뜻을 지켜서, 멈추어 사특함이 없게 하고자 하느니라.
기억과 의식과 생각이 어디로 달아나리오. 도인이 기억과 의식과 생각을 멸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일체를 행해야 하며, 몸의 열 가지 일을 끊어서는 안 되니, 몸ㆍ입ㆍ뜻의 세 가지가 정해지면 다섯 가지 쌓임과 여섯 가지 쇠퇴함이 마침내 바르게 되리라.
세 가지가 정해진다는 것은, 입에 아는 것이 없음이 입이 정해짐[口定]이요, 몸에 아는 것이 없음이 몸이 정해짐[身定]이요, 뜻에 생각하는 것이 없음이 뜻이 정해짐[意定]이니라.
뜻에는 네 가지 병이 있으니, 어리석음이 많다는 것은 다섯 가지 쌓임이 많다는 것이니라. 다섯 가지 쌓임이 많으면, 뜻으로는 곧 달리려고 해도 행할 수 없으니, 행할 수 없으면 문득 스스로 성을 내고, 음란한 마음이 일어나도 제어하지 못하니, 어리석음에 떨어졌기 때문이니라. 도(道)를 행함에 반드시 다섯 가지 쌓임을 끊어야만 하니, 다섯 가지 쌓임과 느낌과 불안(不安)과 욕심이 많음을 끊음이 옳으니라.”
스승이 말하였다.
“몸으로 행하려 하지 않음은 피로함이 많기 때문이요, 뜻으로 행하려 하지 않거나 생각하려고 하지 않음은 죽고 썩어서 괴롭고 공하기 때문이니라.”
제자가 물었다.
“어떤 것이 본생(本生)입니까?”
스승이 말하였다.
“이른바 의심하지 않음이 근본의 생(生)이 되느니라.”
“어떤 것이 향(向)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상대(相對)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행(行)하는 것입니까?”
스승이 말하였다.
“뜻을 옮기지 않음이 향함이 되고, 생각을 옮기지 않음이 상대함이 되며, 뜻에 맞게 함이 행이 되느니라.”
제자가 물었다.
“이것은 어떤 밭[田]이며, 누가 밭이라고 한 것입니까?”
“내가 생각하건대, 그대는 뜻이 있다고 여기고 밭[田家]은 알지 못하므로 뜻이 없다고 여기는가? 밭은 깨달을 수 없지만 그대는 뜻이 있어서 깨달을 수 있다고 여기고, 밭은 뜻이 없어서 깨달을 수 없다고 여기는가? 뜻으로 깨닫는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음행(婬行)을 맛봄도 또한 뜻인데, 무슨 까닭에 깨닫지 못하는가? 가까이 집을 벗어나면 밭이 없으니, 이와 같음이 옳음이 되느니라.”
제자가 물었다.
“뜻이 있을진대 부처님의 마을은 뜻이 없습니까?”
“그러하니라. 본래 몸과 뜻이 없거늘 다만 스스로가 이것을 지어서 이것을 얻었을 뿐이니, 비유컨대 다섯 가지 씨앗[種]은 본래 또한 씨앗이 있지 않지만 문득 생긴 것처럼, 사람이 태어남도 또한 본래 씨앗이 있지 않지만 문득 있느니라. 마치 불을 태우면 불꽃이 나와서 활활 타오르지만 섶을 제거하면 문득 그치는 것처럼, 사람도 스스로의 몸이 몸이 아닌 줄 헤아리면 만물도 따라서 그치리라.”
제자가 따져 물었다.
“본래 뜻이 없다면 무엇을 지킵니까?”
스승이 말하였다.
“작용이 본래 없는 까닭에 지킬 수 있고, 적멸이 본래 있는 까닭에 지킬 수 없느니라.”

스승이 말하였다.
“도에는 네 가지 요체[四要]가 있으니, 첫째는 여러 가지가 집을 지탱하는 것이요, 둘째는 몸이 몸 아님을 알면 문득 몸이 무너져서 다시 사랑하지 않으니 이것이 사람으로부터 여섯 번째 하늘 위의 문을 벗어남이요, 셋째는 덧없음을 알면 뜻으로 다시 향하지 않으니 이것이 열여덟 번째 하늘의 문을 벗어남이요, 넷째는 허공처럼 사라져 공(空)하니 이것이 스물여덟 번째 하늘의 문을 벗어남이니라.
허공처럼 사라지면 마침내 도에 들어가니,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도를 행하여 깨달으면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른바 괴롭고[苦] 공하고[空] 몸이 아니고[非身] 덧없음[非常]을 깨닫는 것이요, 벗어난다는 것은 네 가지 중요한 세계[四要界]를 벗어나는 것이니라. 첫 번째 선정을 얻으면 위로 일곱째 하늘에서 몸을 받되 다만 그림자만 있으리니, 왜 그런가 하면 도를 행하여 몸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니라.
몸을 생각하고 머리털과 뇌(腦)를 관찰하면, 터럭은 본래 온 곳이 없고 변화하여 만들어진 것이니 모두 썩어 떨어질 것이요, 뇌는 마치 쌀죽이 엉긴 것 같으니 모두 냄새나게 썩을 것이며, 눈은 다만 구멍에 물이 있으니 모두 흘러가 공(空)할 것이요, 귀는 다만 구멍만 있으니 모두 더러운 물이 새어나올 것이요, 코와 입에서는 콧물과 가래가 모두 흘러 나와서 버리고 흩어지며 사라지고 무너지리라. 혀와 목구멍과 허파는 간(肝)과 심장[心]을 거두고, 심장에는 나쁜 피가 있으며, 쓸개와 명치[膈]와 지라[脾]는 위(胃)에 붙어있고, 콩팥[腎]은 등뼈[脊骨]에 붙어 있느니라.
위 안에서는 음식이 소화되고, 큰 배[大腹]에는 똥이 있으며, 작은 배[小腹]에 있는 구멍에는 오줌이 있으니, 똥과 오줌이 나오리라. 아랫배[少腹]는 모두 부풀어 올라 무너지고 문드러지며, 내장[腹胃]에서 오줌과 똥이 서로 섞이면 냄새가 지독하리라. 아래에 있는 볼기의 살과 피와 두 종아리와 두 발의 가죽과 살은 녹아 없어지고, 심줄과 맥은 무너지며, 뼈 사슬은 마디마디 풀어져 떨어지리라.
종아리는 벗겨져서 정말로 하얗고, 볼기의 뼈는 수레바퀴 같으며, 궁둥이의 뼈는 등뼈와 잇닿아 있으며, 어깨뼈와 팔꿈치와 팔뚝과 손은 서로 이어져 살가죽이 또한 사라지고 썩어서 마디마디가 풀어져 떨어지며, 목뼈[頸骨]와 해골이 잇닿아 있으나 피와 살이 또한 다 녹아버려서 도리어 재와 흙이 되느니라.
온갖 고물고물 움직이는 것들은 기운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문득 세상을 지나가 몸이 굳어 뻣뻣하여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느니라.
불이 떠나가면 몸이 차가워지고, 바람이 떠나가면 기운이 끊어지고, 진물이 아홉 구멍에서 흘러나오니 물이 떠나가는 것이요, 다시는 먹지 못하니 땅이 떠나가는 것이니라.
3,4일에는 빛이 더욱 푸르딩딩하다가, 피고름이 입과 코와 귀와 눈 등의 아홉 구멍으로부터 흘러나오면 정말로 붉으며, 가죽과 뼈와 살은 무너지고, 배[腹]에 있는 위(胃) 등 오장(五臟)과 마디마디가 모두 재와 흙으로 돌아가느니라.
만물을 보되 이와 같이 하며, 자기 몸도 그렇게 할지니, 모두 다 사라져서 허공이 되느니라.
날숨과 들숨을 자세히 살펴서 공(空)함을 알면 문득 도에 가까워지리라.”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