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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보자] #5082 불설대승선견변화문수사리문법경(佛說大乘善見變化文殊師利問法經)

by Kay/케이 2024.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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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대승선견변화문수사리문법경(佛說大乘善見變化文殊師利問法經)

 

불설대승선견변화문수사리문법경(佛說大乘善見變化文殊師利問法經)


서천(西天) 중인도(中印度) 야란타라국(惹爛馱囉國) 천식재(天息災) 한역
최민자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왕사성(王舍城) 취봉산(鷲峯山:靈鷲山)에서 큰 비구 대중들과 큰 보살(菩薩) 문수사리(文殊師利) 등의 대중에 둘러싸여 계셨다.
이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불자여, 내가 이제 4성제(聖諦)에 대하여 마음에 전도(顚倒)를 일으키고 항상 윤회(輪廻)를 맴돌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이 진실한 4성제법(聖諦法)을 설하리라.”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등각(正等覺)이시여, 어떤 인연(因緣)으로 모든 중생들이 이와 같이 허망(虛妄)한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아견(我見)1)으로 중생들이 이와 같이 허망한 윤회를 받고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 선남자(善男子)여, 모든 원인(原因)은 시작도 없는 옛적부터 허망하게 헤아림[計]과 집착(執着)을 일으켜 남과 나를 분별(分別)하기 때문이니라. 문수사리여, 이러한 인연으로 어리석음에 대한 업보(業報)로써 허망한 윤회를 받고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 이들 모든 어리석은 중생들은 최상의 모든 적정법(寂靜法)을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스스로 사유(思惟)하여 3업(業)을 깨닫지도 못하여 함부로 몸[身]ㆍ입[口]ㆍ마음[意]으로 숱한 번뇌(煩惱)와 아견에 의한 탐냄[我貪]과 아견에 의한 성냄[我瞋]과 아견에 의한 어리석음[我癡] 등을 짓기 때문이니라.
내가 이제 저 여래의 법 중에서 이러한 것을 증득하고 출가(出家)하여 청정(淸淨)한 계율을 받고 청정한 계행을 닦고 지켜 윤회를 멀리 여의고 열반의 도리(道理)를 증득하여 고륜(苦輪)2)에서 해탈했느니라.
다시 스스로 생각해 보니, 이 번뇌의 자성(自性)이 곧 선법(善法)이기 때문이며, 유루법(有漏法)이기 때문이며, 무루법(無漏法)이기 때문이며, 윤회법(輪廻法)이기 때문이며, 세간법(世間法)이기 때문이며, 출세간법(出世間法)이기 때문이며, 지혜(智慧)이기 때문이며, 견제법(蠲除法)이기 때문이며, 결정법(決定法)이기 때문이며, 법을 관(觀)하는 원만(圓滿)한 지혜이기 때문이며,
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멸제(滅諦)를 관하여 도제(道諦)를 결정(決定)하고, 나아가 법계(法界)까지도 결정하기 때문이니라.
다시 생각해 보니, 모든 행(行)이 헛되고 거짓이기 때문이며, 모든 행이 괴로움과 번뇌이기 때문이며, 모든 행이 곧 모습[相]이 없기 때문이니라. 나[我]가 이러하다는 것을 증득하면 모든 헛되고 거짓된 것에서 벗어나 뜻하는 대로 태어날 수 있으며, 만약 아견이 도제에서 벗어나 있지 않음을 관하면 곧 저 여래의 법을 증득하여 하는 일마다 뜻하는 대로 되며, 또 저 여래의 법을 잊지 않고 기억하되 의혹이 없을 것이니라. 모든 법에 대하여 마음에 차별이 없이 이와 같이 알면 곧 불신(不信)과 의혹과 비방과 찬탄을 멀리 여읠 것이며, 이러한 것을 증득하면 모든 아견에 의한 괴로움[我苦]에서 벗어날 것이니, 이때에는 나[我]가 조금도 환난(患難)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니라.
만약 아라한(阿羅漢)이 이러한 나를 알면 그가 임종(臨終)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견해[自見]로 지어낸 것을 버리고 본심(本心)3)으로 불보리(佛菩提)를 증득하여 뜻하는 대로 좋아하는 곳에 자재(自在)하게 왕생(往生)할 것이니, 즉 무위계(無爲界)4)에 이른 까닭이며, 그가 이러한 고지(苦智)5)와 법지(法智)6)를 증득한 까닭이니라. 만약 나[我]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분명히 알아 모든 법에도 자성(自性)이 있다고 집착하면 믿지 못하는 마음과 의혹과 비방과 갖가지 두려움이 생겨날 것이며, 만약 이 법에 자성이 있음을 믿지 않으면 이것은 아견에 의한 집착이 다하여 없어진 까닭일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이 사유하여 멸제(滅諦)를 결정하며, 다시 그는 이 법이 마땅히 이와 같이 아견에 의하여 지어졌다고 사유하나니, 멸제를 증득한 까닭일 것이니라. 이 법이 만약 생겨난 것이라고 결정하고, 없어짐[滅]도 이러하다고 결정하면 그의 생각과 마음에 의혹이 생겨나 목숨이 다한 후에 대지옥(大地獄) 속에 떨어질 것이니, 어찌 여실(如實)하게 사유한다고 하겠는가? 모든 법을 지어낸 까닭이니라.”
이 때 문수사리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4성제의 핵심[心]을 볼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모든 법이 생겨나는 것이 아님[不生]을 보면 곧 고제(苦諦)를 보는 것이니라. 만약 생겨난 모든 법이 소멸하여 없어지는 것을 보면 이것이 곧 집제(集諦)이니라. 만약 가장 훌륭한 열반과 모든 적정한 법의 모습[法相]을 보면 이것이 곧 멸제(滅諦)이니라.
만약 구경(究竟)의 모든 법성(法性)을 보면 이것이 곧 도제(道諦)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그가 이 4성제가 진실된 것도 아니고 헛된 것도 아니며, 선법(善法)이기도 하고 불선법(不善法)이기도 하며, 유루법(有漏法)이기도 하고 무루법이기도 하며, 세간법이기도 하고 출세간법이기도 하며, 유위지(有爲智)이기도 하고 무위지(無爲智)이기도 하며, 변함이 없는 법[無變異法]이고, 고제와 집제를 관하여 지혜와 법을 판단[了別]하는 것임을 보면 곧 멸제를 결정하고, 나아가 법계와 도제까지 결정하여 바뀌거나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모든 어리석고 미혹한 중생들은 욕망과 즐거움에 탐착(耽着)하여 이러한 실상법(實相法)에 대하여 미혹(迷惑)을 일으키는가? 저 모든 중생들은 적멸법(寂滅法:열반)을 자세히 사유하지 않아 나아가 모든 법의 적정한 자성(自性)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지[現前] 않는 것이니, 이 법이 취할 것도 아니고 버릴 것도 아니며, 취하고 버림을 벗어나 있는 것도 아니며, 저 탐욕(貪慾)의 경계(境界)에 열반이 나타나기도 하고, 노여움의 경계ㆍ어리석음의 경계, 나아가 윤회의 경계에도 모두 저 열반적정의 경계가 나타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이와 같이 자성이 평등(平等)함을 보면 반드시 모든 법에 대하여 걸림 없이 자재함을 얻을 텐데 어찌하여 저 참되고 여실한 법을 알지 못하는가?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不生不滅] 법에 대하여 마음이 허공과 같이 평등하게 되면 곧 부처님과 평등해져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법이 평등하여 얻을 만한 것이 아니며, 승가(僧伽)와 평등하여 얻을 만한 것이 아니며, 나아가 열반적정까지도 평등하여 또한 얻을 만한 것이 아니니라. 이와 같이 이제껏 알지 못한[未曾有] 모든 법에 대하여 의혹을 일으키지 않으면 곧 의심이 없어져서 생겨나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으며 모든 것 중에 가장 훌륭한 열반적정의 경계에 이를 것이니라.
문수사리여, 이와 같이 진제(眞諦)의 모든 법은 볼 수 없나니, 이런 까닭에 수보리(須菩提)가 여래께서 계신 곳에 가지 않고도 여래의 발에 정례(頂禮)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니라. 수보리도 실재하는 나가 없음[無我]을 증득하였거늘 하물며 여래이겠느냐? ‘어떻게 보는가?’ 하고 이렇게 이해하려 하지 말아라. 문수사리여, 이와 같이 모든 생겨나지 않는
법에 대하여 보려 하는 견해(見解)가 있기 때문에 4성제를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 때 문수사리 법왕자(法王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4념처(念處)를 봅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저 수보리는 몸이 청정하지 않음[不淨]을 관하여 신념처(身念處)를 보았고, 받아들인 것[受]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관하여 수념처(受念處)를 보았고, 마음이 항상하지 않음[無常]을 관하여 심념처(心念處)를 보았고, 법에 나[我]가 없음을 관하여 법념처(法念處)을 보았느니라.”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실상(實相)7)을 어떻게 말하며, 또 참되고 여실한 4념처를 어떻게 봅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참되고 여실한 진리[眞實諦]에 머물러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오직 바라오니 저 참되고 여실한 4념처의 연고(緣故)를 자세히 분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그대가 만약 허공과 같은 몸을 보면 이 몸에서 신념처(身念處)를 본 것이니라. 또 문수사리여, 만약 받아들인 것[受]에 대하여 안과 밖, 중간(中間)에서 얻을 것이 있으면 곧 수념처(受念處)를 본 것이니라. 또 문수사리여, 만약 이 심지(心智)8)에 모난 것과 둥근 것, 크고 작은 것이 있음을 보면 곧 이 마음 가운데에서 심념처(心念處)를 본 것이니라. 또 문수사리여, 만약 선법과 불선법, 유루법과 무루법, 나아가 번뇌에 이르기까지 이들 세간법과 출세간법 중에서 얻을 것이 있으면 곧 이들 법에서 법념처(法念處)를 보지 못한 것이니라. 문수사리여, 이러한 참되고 여실한 4념처를 마땅히 이와 같이 이해해야 하느니라.”
문수사리가 세존께 아뢰었다.
“어떻게 4정근(正勤)을 봅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12연생(緣生:十二因緣)을 관하면 마침내 공적(空寂)9)하고, 나아가 자성이 없어 모든 법이 얻을 만한 것이 아님에 이를 것이니, 반드시 정진(精進)하려는 마음을 내어 법에 걸맞도록 이미 생겨난 좋지 않은 모든 업[不善業]을 소멸시켜 없애며,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좋지 않은 법[不善法]을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며,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법에 대하여 정진하려는 마음을 내어
생겨나도록 하며, 이미 생겨난 선법은 오래 머물러 있도록 없애거나 잊지 않아야 하느니라. 반드시 원만(圓滿)하게 정진하려는 마음을 일으켜 마치 모든 법이 취함도 벗어나 있고 버림도 벗어나 있고, 취하고 버림이 아님도 벗어나 있는 것과 같이 바로 이와 같이 기억하여 잊지 않으면 그러한 마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곧 이 삼마지행(三摩地行)을 증득한 것이니라. 그가 어떻게 사유하여야 신족(神足)을 얻으며, 어떻게 모든 법에 평등하게 머무를 수 있는가? 문수사리여, 반드시 이와 같이 4정근을 보아야만 하느니라.”
문수사리가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5근(根)을 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만약 마침내 모든 법이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보면 곧 신근(信根)을 아는 것이니, 어째서인가? 문수사리여, 이 구경(究竟)의 생겨남이 없는 것을 아는 신근은 모든 법 중에서 마음으로 얻을 만한 것이 아니므로 본래부터 이러한 이름을 여의었느니라. 또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한 기억[憶念]을 여읜 까닭에 취구(趣求)10)도 없고 머무는 처소도 없으면 이것이 정진근(精進根)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눈앞에 분명하게 보이는 것을 여의고 차별(差別)을 멀리 여의어 차별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것이 염근(念根)이니라. 또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생겨나고 없어짐[生滅], 깨닫는 사람[能覺]과 깨달을 대상[所覺], 자성이 공성(空性)이라거나 공성이 아니라거나[非空性] 하는 생각을 여의면 이것이 정근(定根)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자성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다고 하는 것을 모든 법 중에서 얻을 수 없음을 깨달으면 이것이 혜근(慧根)이니라. 문수사리여, 반드시 5근을 이와 같이 이해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하느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5력(力)을 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만약 이렇게 자성도 여의고 모양도 여읜[離性離相] 모든 넓고 큰 심법(心法)을 본다면 이것이 신력(信力)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보리(菩提)에 나아가 공덕(功德)을 구하되 취하고 버림도 벗어나고, 취하고 버림도 아닌 것도 벗어난다면 이것이 진력(進力)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모든 기억을 여의고 헤아림이나 집착이 없다면 이것이 염력(念力)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이 모양이 없음[無相]에 이른다면 이것이 정력(定力)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견해를 멀리 여의어 나아가 열반에 이른다면 이것이 혜력(慧力)이니라. 문수사리여, 반드시 5력을 이와 같이 이해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하느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7각분(覺分)을 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자성이 없는 법을 보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염각분(念覺分)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마음으로 헤아려 알 수 없는 모든 법에 대하여 ‘선법이다, 불선법이다’라고 말하고 수기(受記)를 받는다면 이것이 택법각분(擇法覺分)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취하고 버리는 것을 여의거나, 취하고 버리는 것을 여의는 것이 아니거나, 또는 모든 법에 대하여 사려(思慮)를 여의는 것조차도 또 버린다면 이것이 정진각분(精進覺分)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애착(愛著)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모든 법이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한다면 이것이 희각분(喜覺分)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마음으로 신락(信樂)11)하고 모든 법이 얻을 만한 것이 아님을 이해한다면 이것이 경안각분(輕安覺分)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마음에 도거(掉擧)12)가 없다면 이것이 정각분(定覺分)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머무름도 없고 집착도 없으며 깨달아 알려고 하지 않으면 모든 법에 대하여 탐욕도 집착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니, 이러한 사(捨)13)를 증득한다면 이것이 사각분(捨覺分)이니라. 문수사리여, 7보리분(菩提分)을 마땅히 이와 같이 이해하고 분명히 알아야 하느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8정도(正道)를 봅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바른 것[正]을 보지 못한다면 나아가 모든 것에 자성이 없음도 보지 못하고, 법에 두 모습[二相]이 없는 것도 보지 못하며,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것까지도 보지 못하게 되나니, 이것이 정견(正見)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이 장애[罣礙]에서 벗어나 있고, 장애에서 벗어나 있는 것도 아님을 발견하고서 마음에 집착할 것이 없어진다면 이것이 정사유(正思惟)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변제(邊際)14)가 없음을 보고서 변제가 없는 법을 찬탄(讚嘆)하고 평등하고 올바른 말을 한다면 이것이 정어(正語)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움직임도 지음도 없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悲慜心]15)도 여의었으며, 본래부터 생겨나지 않는 것임을 본다면 이것이 정업(正業)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기쁨도 없고 성냄도 없고 이러한 법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이것이 정명(正命)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생겨남과 소멸함이 없고, 작용함[力用]도 없음을 본다면 이것이 정정진(正精進)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念念不生] 지각(知覺)도 없고 모든 사유를 여읜다면 이것이 정념(正念)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자성이다, 자성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멀리 여의어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이 정정(正定)이니라. 문수사리여, 이 8정도를 반드시 이와 같이 이해하여 분명하게 알아야 하느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이와 같이 4성제의 핵심을 본다면 곧 4념처ㆍ4정근ㆍ4신족ㆍ5근ㆍ5력ㆍ7보리분(菩提分)ㆍ8성도(聖道)의 참되고 여실한 핵심을 보게 될 것이니, 이것이 피안(彼岸)을 구한 것이요, 실제(實際)16)의 경지에 이른 것이며, 큰 안락(安樂)을 얻은 것이요, 중담(重擔)17)을 모두 버리고 번뇌를 멀리 여읜 것이며, 몸에 모습이 없음[無相]을 관하여 무생인(無生忍)18)에 이른 것이니라.
아라한(阿羅漢)ㆍ사문(沙門)ㆍ바라문(婆羅門)이 청정한 피안에 이르는 길은
가르침을 많이 듣고 들은 대로 받아 지니는 것[多聞]이니 이것이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이고, 이것이 능인(能仁:부처님)의 제자로서, 원수를 물리치고 번뇌를 버리며 크게 굳건함을 증득하여 늙음도 없고 두려움도 없으며, 의혹도 없고 희론(戱論)도 없고, 저것[彼]도 없고 이것[此]도 없게 된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성스러운 법의 당기[幢旗]를 걸었다19)고 이름하느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이와 같은 법인(法忍)20)을 증득한다면 크나큰 선리(善利)21)를 얻고, 마땅히 모든 세간의 하늘[天]ㆍ사람ㆍ아수라(阿修羅)에게서 공양(供養)을 받을 것이니라. 문수사리여, 이런 까닭에 모든 국토(國土)에서 그냥 모르고 지나치는 이가 없으며, 모두에게서 청정한 음식을 공양 받으며, 윤회를 벗어나 열반의 언덕에 이르러 모든 고통의 수레바퀴에서 탈피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모든 정변지(正徧知)ㆍ정등보리(正等菩提:정등각)에까지 이를 것이니, 이러한 마음[心法]을 내면 구하는 것을 모두 얻게 될 것이니라.”
이때 세존께서 이 법을 말씀하셨을 때에 3만 2천의 천자(天子)가 모두 이 법을 증득했다. 그러자 그 모든 하늘들이 여래ㆍ세존ㆍ응공ㆍ정등각과 문수사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께 만다라꽃[曼陁羅花]과 마하만다라꽃[摩訶曼陁羅花]을 뿌려 공양하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들은 여래 부처님의 법에 반드시 출가하여 청정한 계율을 받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법을 한마음으로 듣고 받아 지녀 보리도(菩提道)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자 8천 1백의 비구 대중들이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무생해탈(無生解脫)을 증득하였고, 또 4만 2천의 보살들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였다. 이때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와 모든 마왕(魔王)의 궁전(宮殿)과 산림(山林)ㆍ광야(曠野)ㆍ대지(大地)가 여섯 가지로 진동(振動)하였고, 허공에선 많은 하늘 꽃이 비 오듯 내리면서 찬탄(讚歎)하는 소리가 들렸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이 법을 훌륭하게 말씀하셨으니, 이러한 일은 이제껏 없었던 일입니다.”
이러한 음성이 퍼져 나와 시방에까지 널리 들렸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문수사리 법왕자와 큰 보살과 모든 비구 대중과 일체 세간의 모든 하늘ㆍ사람ㆍ아수라ㆍ건달바(乾達婆) 등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모두 기뻐하며 부처님께 예(禮)를 올리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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