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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876 불설견정경(佛說見正經)

by Kay/케이 2024.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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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불설견정경(佛說見正經)

 

불설견정경(佛說見正經)일명 생사변식경(生死變識經)


동진(東晋) 축담무란(竺曇無蘭) 한역
송성수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 기국정사(祇國精舍)에 계셨다. 걸식할 시간이 되자 5백의 비구와 천 명의 보살과 우바새를 거느리고서 모두 공양 도구를 가지고 라열기성(羅閱祇城:왕사성) 밖으로 나가셨다.
큰 나무가 있었는데 이름은 감향(甘香)이며, 뿌리는 깊었고 줄기는 컸으며, 가지와 잎은 무성하고 꽃과 열매가 모두 붉으며 그 맛은 달고 맛있었다. 나무 아래는 너르고 평평하였으며 돌을 모아 만든 자리가 있었다. 부처님께서 그곳에 머물고자 하시자 여러 우바새들이 곧 자리를 펴서 깔았고, 부처님께서 곧 앉으시자 제자와 보살들도 모두 자리 잡고 앉았다.
이때 견정(見正)이라는 한 비구가 있었는데 새로이 법복을 입고 들어온 자였다. 그는 마음에 의심을 품고 혼자 이렇게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후세에 태어남이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사람이 죽고 나서는 돌아와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어떻게 알 수 있나? 이것을 부처님께 여쭈어 보아야겠다.’
그러나 말을 하기도 전에 부처님께서 미리 아시고 먼저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이 나무는 본래 하나의 씨로부터 4대로 길러져 이렇게 크고 무성하게 자라 여기 있는 사람을 덮고 있다. 본래 씨로 있을 때는 뿌리ㆍ줄기ㆍ잎ㆍ열매는 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았지만 4대를 얻게 되면서 인연이 서로 연결되어 곧 싹ㆍ잎ㆍ줄기ㆍ마디ㆍ꽃ㆍ열매가 생겼고, 뿌리가 더욱 자라 스스로 나무를 이루게 되어 넓고 멀리 가지를 드리우게 된 것이다. 처음 이름은 씨였고, 씨는 다시 싹을 내었으며, 싹은 다시 줄기를 내었다. 줄기는 다시 잎을 내었고, 잎은 다시 꽃을 내었으며, 꽃은 다시 열매를 내었다. 점차로 변화되고 바뀌어 옛것이 아니면서 옛것에서 벗어나지도 않고, 이름도 일정한 이름이 아니면서 마침내 큰 나무를 이루었다. 나무에서 다시 과실이 생기고 과실이 다시 나무를 이루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와 같이 수 없이 많아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여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꽃과 열매와 줄기와 마디와 뿌리를 한데 모으면 다시 본래의 씨로 환원시킬 수 있는가?”
제자들이 모두 말하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은 벌써 변화되어 환원할 수 없습니다. 나날이 썩고 무너져 씨가 변화해 다시 생기는 것이며, 이렇게 끝없이 나고 바뀌어 마침내는 모두 썩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환원해 본래의 씨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태어나고 죽는 것도 그와 같다. 식신(識神)은 연기법(緣起法)을 만들고, 연기법은 치(癡)를 만들며, 치는 탐애(貪愛)로 나아가게 하니 치는 저 나무의 씨와 같다. 씨는 작지만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하나의 치가 숱한 인연을 만드니, 숱한 인연은 본래 치로부터 나온다. 치(癡:無明)는 행(行)을 내고, 행은 식(識)을 내며, 식은 자색(字色:名色)을 내고, 자색은 6입(入)을 내며, 6입은 갱락(更樂:觸)을 내고, 갱락은 통(痛:受)을 내며, 통은 애(愛)를 내고, 애는 수(受:取)를 내며, 수는 유(有)를 내고, 유는 생(生)에 이르며, 생은 노사(老死)에 이르니, 이 12인연을 합하여 몸을 이루는 것이다.
몸이 있으면 당연히 늙음과 죽음으로 나아가야 하며, 식신이 변하고 바뀌어 행을 따라 가게 되면 다른 부모가 있게 되고, 다른 형제를 받게 되며, 다른 6정(情), 다른 습관, 다른 고락, 다른 풍속이어서 모두 옛것이 아니기 때문에 곧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다시는 옛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 보는 것을 향하여 유(有)라고 생각하고 영원하다고 생각하며, 의지하는 것에 집착해 참다운 것이라고 부르며 전세 후세가 없다고 말하나, 식신이 바뀌고 옮겨 행을 따라 유가 된 것이다.
식신이 이미 옮기고 나면 다시 부모가 있게 되고, 다시 새로운 몸을 받게 되며, 다른 6정(情), 다른 습관, 다른 고락, 다른 풍속이어서 곧 다시는 옛것을 알지 못하게 되고, 또한 옛 몸과 옛 습관과 옛 장소에 돌아올 수 없게 되니, 나무가 다시 씨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보라.”
이에 견정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마음에서 아직 의심을 없애지 못했으며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바로 지금 어리석은 질문을 올리고자 하니, 원하건대 저희들을 가엾이 여겨 부처님께서 그것을 분명히 이해시켜 주십시오. 저는 태어나서부터 이후로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부자ㆍ형제ㆍ부부 내외나 혹은 서로 사랑하던 벗, 혹은 서로 미워하던 원수도 있었는데 죽은 뒤에 돌아와 얼굴을 마주하고 좋은지 나쁜지를 대답해 주는 식신은 끝내 없었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식신이 무언가에 막혀서 면전에 돌아와 사람에게 알려줄 수 없는 것입니까? 원컨대 저희들을 위해 분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로 하여금 맺힌 것이 풀어져 진실을 빨리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야, 그 식신은 형상이 없으며 변화하고 옮겨 행을 따라서 있게 된다. 만일 몸이 복을 지으면 복된 식신으로 변화되어 태어나게 되지만, 또한 면전에 돌아와 사람에게 알려줄 수는 없다. 무엇 때문인가? 마치 대장간에서 돌을 녹여 철을 만들고 철이 되고 나면 곧 달구어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릇이 되고 난 뒤 다시 도로 돌이 되게 할 수 있겠느냐?”
견정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돌은 이미 철이 되었으므로 끝내 다시 도로 돌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식신(識神)이 변화하고 옮겨 중음(中陰)에 머무는 것은 돌이 녹아 철이 되는 것과 같으며, 중음에서 변화하여 다른 몸을 받는 것은 철이 달구어져 그릇이 되는 것과 같다. 형상이 소멸되고 몸이 바뀌면 옛 식신으로 돌아올 수 없다. 무엇 때문인가? 행의 선과 악으로 식신이 가서 받으며 변화하여 바뀌는 것이 마치 돌이 철이 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5선(善)을 닦고 행하여 사람 몸을 받으면 다시 부모가 있게 된다. 이미 부모가 있으면 곧 여섯 가지 얽매임과 막힘이 있게 되니, 첫째는 중음에 머물러 있으면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며, 둘째는 간 곳을 따라 몸을 받아 태 안에 있는 것이며, 셋째는 처음 태어날 때 겪는 고통으로 옛 식의 모습을 잊어버리는 것이며, 넷째는 땅에 떨어지자마자 옛 식의 기억은 소멸되고 다시 새로 보는 것에 관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며, 다섯째는 태어난 뒤에 곧 먹는 것에 집착하여 탐하는 생각으로 옛 식의 기억이 끓어지는 것이며, 여섯째는 태어나면서부터 나날이 커가며
새로 보는 것에 익숙해지므로 식이 멸하여 다시는 옛 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제자들아, 마치 상인이 사방의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온갖 괴로움과 즐거움을 겪은 것과 같다. 곧 마음으로 동쪽 한 지방이나 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이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서쪽ㆍ남쪽ㆍ북쪽에서 겪은 기억은 곧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이과 같이 생사 또한 그와 같아서 이 세상에서 지은 행이 후세로 옮겨가 몸을 받고 나면 받는 즉시 곧 새로운 생각과 기억을 일으키게 되고 옛 식의 생각은 곧 소멸하게 된다. 마치 상인이 오직 한 방위에서 있었던 일만을 기억할 때 나머지 세 방위에 대한 생각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이런 여섯 가지 일 때문에 얽매이고 덮이고 막히고 걸려 다시는 옛 식신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씨가 나무가 되고 돌이 철이 되는 것처럼 본래 것이 변화하고 이름이 바뀌므로 다시는 돌아와 면전에서 대답해줄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다시 비유하자면 마치 옹기장이가 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어 불로 구우면 변화하여 질그릇이 되는 것과 같다. 과연 질그릇을 도로 흙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제자들은 모두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흙이 이미 구워지고 달구어져 형상이 변해 질그릇이 되었으니, 다시 도로 흙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식신이 변화하고 옮겨져 행을 따라 몸을 받는 것이 마치 흙으로 질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사람이 도의 행이 없으면 다시는 옛것을 알 수 없으므로 다시 돌아와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비구들아, 다시 비유하자면 나무가 자라 수십 아름이나 된 것을 솜씨 좋은 장인이 곧 규격에 맞추어 잘라서 기묘하고 공교롭게 온갖 것을 새기는 것과 같다. 만일 사람이 쪼갠 나무와 새긴 것들을 다시 합친다면 좋은 솜씨로 도로 나무가 될 수 있겠는가?”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무는 이미 잘려져 쪼개지고 조각조각 깎였으며 가지와 잎이 말라 죽었으므로 다시 모은다고 나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식신(識神)은 이 세상에서 선과 악을 짓고 행하다가 죽음에 이르면 그 식신은 옮겨가 행을 따라 몸을 받게 되어 보는 것과 익히는 것이 다시는 옛 몸이 아니므로 돌아올 수도 없으며, 다시는 옛것을 알 수 없으므로 면전에서 서로 대답해 줄 수 없다. 이는 나무가 쪼개지고 나면 다시 모아 살아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다시 비유하자면 마치 장인이 모래를 구워 붉은 색을 만들고, 다시 흰 모양으로 바꾸며 물처럼 변화시키는 것과 같다. 제자들아, 붉게 된 것을 도로 다시 모래로 만들려고 하면 그럴 수 있겠는가?”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모래를 구워 한번 변하고 나면 도로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태어나고 죽는 것도 그와 같다. 사람이 도의 마음이 없거나 깨끗한 눈이 없으면 몸이 죽을 때 식신이 떠나 행을 따라 변화하고 바뀌어 다른 몸을 받게 되며, 다른 세상에서 지내다가 다시 포태(胞胎)를 받아 보고 익히는 것이 보두 달라지므로 다시는 옛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 이는 마치 모래가 붉게 된 것을 다시 환원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비유하자면 마치 물을 둥근 병에 담으면 그 형체도 따라 동그래지고 모난 그릇에 옮겨 담으면 형체도 따라 다시 각이 지며, 크고 작고 굽고 곧은 것이 비우는 곳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 같다. 제자들아, 태어나고 죽는 것도 그와 같아서 식신은 본래 없고 일정한 형상이 없어서 행의 선악을 따라 곧 가서 몸을 받되 희고 검고 길고 짧음과 고와 낙과 선과 악을 행에 따라 바뀌어 받는 것이 마치 물이 그릇을 따르는 것과 같다. 혹 사람일 때 지은 일이 법답지 않았다면 죽어서 축생에 떨어져 나쁜 몸을 받았을 것이므로 다시는 옛것을 알아 면전에서 서로 대답하지 못하게 된다.
제자들아, 마치 굼벵이가 흙 속에 있을 때는 소리도 없고 날개도 없던 것이 시절의 기운을 얻으면 변화하여 매미가 되어 날아다니고 나무에 붙어 쉬지 않고 소리 내어 우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과연 매미가 도로 땅에 들어가 굼벵이가 될 수 있느냐?”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굼벵이는 이미 변해 음을 버리고 양에 있습니다. 몸의 형체가 변화하여 날이 지나면 죽고 혹은 뭇 새의 먹이가 될지언정 도로 굼벵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태어나고 죽는 것도 이와 같다. 목숨이 끓어지고 몸이 죽어 식신이 변화화고 옮겨 다시 새 몸을 받으면 5음이 막고 가리며 보고 익히는 것이 각각 달라 그곳에서 또한 늙어 죽어야 하니,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며
다시 옛것을 알아 면전에서 서로 대답해 줄 수도 없다. 이는 나무에 있는 매미가 다시 도로 굼벵이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비유하자면 날고기를 잘라서 때가 지나면 먹지 못하며 곧 썩어서 구더기가 나오는 것과 같으니, 도로 싱싱한 고기가 되게 할 수 있는가?”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고기가 썩었으면 다시 싱싱하고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태어나고 죽는 것도 이와 같다. 사람이 세간에 있으면서 마음으로 악을 생각하고, 입으로 악을 말하며, 몸으로 악을 행하다가 죽었다면 곧 식신이 변화하고 옮겨져 지옥의 몸이나 혹은 축생의 몸이나 혹은 고기나 벌레의 몸에 떨어진다. 그곳에서 보는 것이 다르고 전과 같지 않으며 죄의 그물에 가려 다시는 옛것을 알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면전에서 대답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저 썩은 고기를 다시 싱싱하고 깨끗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바유하자면 마치 달이 없는 어두운 밤에 오색의 물건을 어둠 속에 가져다 놓고 천 명 만 명에게 밤에 그 오색의 물건을 관찰하게 하는 것과 같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 청ㆍ황ㆍ적ㆍ백을 구별할 자가 있겠느냐?”
여러 제자들은 모두 말하였다.
“설령 몇 억 만 명 아니 헤아릴 수 없는 사람에게 밤에 그것을 관찰하게 한다고 해도 끝내 볼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어떻게 그 오색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횃불을 가지고 비추면서 사람에게 관찰하게 한다면 볼 수가 있겠느냐?”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사람이 든 횃불의 광명을 의지해 그것을 관찰한다면 모두 오색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횃불을 등지고 캄캄한 곳으로 아주 깊숙이 들어가 오색을 보려고 한다면 볼 수 있겠는가?”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이 광명을 등지고 어둠을 향한다면 나아갈수록 더욱 어두울 것이니 색을 보는 날은 끝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음도 그와 같다.
일체의 인민이나 기어 다니는 것, 날아다니는 것, 꿈틀거리는 곤충들은 이미 몸의 형상을 받아 어리석음과 어둠에 가려 도의 행이 없다. 몸으로 하는 일, 마음으로 하는 일을 배우지 않아 지혜의 눈을 얻지 못하고서 생사가 나아가는 곳과 식신이 오가며 면전에서 알려주는 것을 알고자 하나 마치 달 없는 어두운 밤에 오색을 보려고 하는 것과 같아 끝내 볼 수가 없다. 만일 경전과 계율의 37품(品)을 수행하여 그 마음을 지키고 거두어 청정한 행으로 나아간다면, 마치 횃불을 든 사람을 따라 오색을 구별해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사람이 불법의 가르침을 따르면 곧 죽고 남을 분명히 구별하여 알 수 있고 다섯 세계에 식신이 오가며 선하고 악한 곳에 떨어지는 것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 마치 횃불이 색을 비추어 죄다 분명히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사람이 처음에 몸으로 하는 일 마음으로 하는 일을 배우지 않으며, 경전과 계율을 어겨 세속의 3류(流:漏)를 따라 마음에 드는 뜻만 쫓고 참된 법을 끓어버리며, 믿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고 즐거이 받들어 행하지도 않는다면, 마치 횃불을 등지고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의심의 결박이 나날이 심해지고, 보고 알아 분명히 깨닫는 날은 끝내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어리석고 꽉 막힌 마음을 따르지 말라. 청정하고 바르고 참된 도를 믿지 않으면 스스로 지옥에 떨어져 몸이 고통을 받을 것이니, 나는 그 때문에 비유를 이끌어 너희들이 분명히 알게 하는 것이다. 항상 부지런히 힘써 경전과 계율을 받들어 행하고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몸의 형상을 받고 육안으로 보는 현재의 일과, 부모 친척은 환히 보아 잘 알고 있지만 전생에 어디서 왔는지는 보거나 알 수가 없다. 여기에서 늙어 죽어 후세에 태어나 다시 몸을 받으면 지금 세상의 일은 알 수가 없다. 무슨 까닭인가? 한번 태어났다가 한번 죽으면 식신이 변화하고 바뀌어 12인연의 치(痴)가 그 주인이 되어 정신이 어지럽고 어두워 다시는 옛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자들아, 마치 흰 실을 삶고 두드려 청ㆍ황ㆍ적ㆍ흑의 다른 색으로 물들이면 바탕이 변화하고 바뀌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것과 같다. 태어나고 죽으며 변화하는 것도 실이 색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식은 일정한 형체가 없어서 행을 따라 물들기 때문에 깨끗한 눈이 없으면 그 옛것을 알지 못하며, 마음과 뜻이 법이 되어 곧 생각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마음과 생각은 만 갈래나 되니, 선과 악의 과보를 받아 새 몸을 받으면 옛 몸은 소멸하지만 생사의 법에서 어리석음과 어두움은 항상 그렇다. 그 생사의 오고감을 알고 또 보고 싶다면 널리 몸과 마음으로 하는 일을 배우고 행해야 한다. 깊이 청정에 들어가 근본과 끝을 사유해 비로소 깨치면 마치 잠자다가 깬 것과 같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식신은 어리석고 어두운 법이므로 살아서 선과 악의 행을 짓다가 죽으면 변화하여 가서 받으니, 선과 악의 행을 따라 형상과 징조가 있게 된다. 마치 불이 섶나무를 얻게 되면 그 모습이 나타나다가 섶나무가 다하면 소멸하는 것처럼 의식이 선과 악을 짓지 않으면 행도 소멸되어 나타나는 것이 없다. 도를 얻지 못한 이가 생사에 빠지고 변화되어 옛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더러운 거울이 때가 묻어 흐려지고 오물에 가려 얼굴을 비추어도 조금도 보이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의식이 흐리고 가려져 생사에 굴러다니면서 흥망(興亡)에 슬퍼하고 근심하며 화복(禍福)을 붙잡고 집착하여 다시는 옛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마치 더러운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다시 비유하자면 마치 깊고 흐린 물에는 비록 고기와 벌레가 있다 하더라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생사에 어지럽게 뒤섞여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가리고 막혀 변화해 태어나면서 옛것을 잊어버리는 것 또한 흐린 물과 같다. 또 비유하자면 어두운 밤에 눈을 감고 가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생사의 어둠속에서 화복을 따라 흘러가며 혹은 기뻐하고 혹은 고민하며 받은 몸에 얽매여 다시는 옛것을 알지 못하는 것도 밤에 눈을 감고 길을 가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부처가 되어 지혜의 눈이 청정해졌으니 일체의 생사와 삼계에 왕래하는 일을 부처는 모두 알고 본다.
마치 수정 유리의 보배 구슬을 고운 색실에 꿰면 푸르고 노란 것이 다 나타나는 것처럼, 부처가 생사를 보는 것도 꿰어 있는 구슬을 보는 것과 같다. 또 비유하자면 깨끗한 물이 맑고 잠잠하면 밑이 보이고 그 속의 고기와 벌레가 모두 환히 보이는 것과 같다. 부처가 생사를 보는 것도 맑은 물의 고기를 보는 것과 같다.
또 비유하자면 다리로 일체 행인이 끊임없이 왕래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부처가 태어나고 죽으며 다섯 세계를 왕래하는 것을 보는 것도 다리의 행인을 보는 것과 같다. 또 비유하자면 높은 산에서 멀리 바라보면 빠짐없이 보이는 것처럼, 부처는 뜻이 높고 원대하여 생사를 빠짐없이 알고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나의 가르침을 따라서 천억 겁에 걸쳐 태어나고 죽는 일을 빠짐없이 알아야 한다. 37품의 중요한 행인 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정도(正道)를 행하여 마음의 때를 없애고 3독(毒)을 없애 의심의 결박이 풀리면, 곧 청정을 보고 부처의 지혜로운 마음을 얻어서 곧 가고 오는 일을 마치 밝은 거울을 보듯 모두 다 볼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이 지은 선악과 죽은 뒤의 세상 또한 모두 대답해 줄 수 있다. 다만 사람들은 세 가지 깨끗한 눈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다시는 그 근본을 모르기 때문에 여섯 가지 얽매임과 가림에 집착해 육안으로 행하기 때문에 보지도 못하고 대답해주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자들은 모두 흐리고 더러운 행을 지어 어리석음에 빠지며, 태어나고 죽으며 바뀌고 변해 다시 새로운 몸을 받으면 육안에 현혹되어 옛것을 떠나고 새 것에 얽매여 4통(痛)에 동요한다. 그리하여 끝내 식신이 행을 따라 과보를 받는 것을 알지 못하다.
현세의 사람으로 하여금 혹은 복을 받고 혹은 재앙을 받고 혹은 서로 어여삐 여기며 혹은 서로 미워하게 하는 것이 곧 옛날의 행에 대한 과보를 받는 징조이다. 세 가지의 깨끗한 눈이 없기 때문에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곧 의심에 묶여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
본래부터 어리석음과 함께하며 도의 마음도 청정한 행도 없으면서 전세의 일을 알기 바라고, 식신이 돌아와 알려주는 효험을 바란다. 이는 마치 손이 없으면서 글을 쓰려고 하며 눈이 없으면서 보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므로 부처가 세상에 출현하여 경전의 도를 펴고 나타내 사람의 마음을 해탈시키는 것이다.
그 식신의 왕래와 태어나고 죽으며 받는 것을 알고자 하는 이는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37품과 지도무극(智度無極:지혜바라밀)을 행하여 마음을 단속하고 마음을 경계하며, 마음을 고르고 마음을 바루어 선정삼매의 묘한 경지에 들어야 이에 식신이 떨어지는 곳과 가고 오는 일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너희 제자들아, 몸으로 하는 일 마음으로 하는 일을 배우고 알아 모든 대상을 빠짐없이 깨달아야 하며, 닥치면 곧 그것을 없애 어지럽거나 그르치지 말고 바른 법에 견고해야 한다. 이와 같이 쉬지 않으면 너희들의 의문점은 곧 해결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식신은 이름은 있지만 형상이 없으며 선과 악의 행을 따라 4대에 의지하여 몸이 된다. 처음 태어났을 때는 몸도 작고 모든 감관도 원만하지 못하며 식견도 적고 아는 것도 완비되지 못하다가, 자라면서 6정(情)이 구족하고 식견도 몸을 따르며 애욕과 모든 습기가 나날이 왕성하게 생겨 갖춰지게 된다. 또 쇠하고 늙으면 4대가 파리해지고 식견도 어두워지며 6정도 감소된다. 이처럼 현재 한 세상을 살면서도 변화가 무상하여 옛날과 같지 않으며 태어나 익히고 본 것을 늙어서는 잊어버리게 되는데, 하물며 다시 다른 세상에서 음태(陰胎)에 얽매이고 덮일 때이겠는가? 도의 마음을 얻지 못해 어리석은 행으로 미혹하고 더럽다면 의식이 왕래하는 것을 보고 면전에서 알려주기를 바라도 그렇게 될 수 없다.
사람이 도행이 없으면서 숙명(宿命)의 일을 보고 알길 바라는 것은 마치 어두운 밤에 바늘을 꿰고 물속에서 불을 구하려는 것과 같아 끝내 볼 수 없다.
너희 제자들아, 부지런히 경전과 계율을 행하며 생사가 본래 어디에서 왔고, 결국 어디로 돌아가며,
무슨 인연으로 왕래하고, 인연한 바가 어떤 것들인가를 깊이 사유해야 한다. 참되게 공하여 없는 법임을 사유하면 깨끗함을 얻고 결박이 제거되어 의심이 저절로 풀릴 것이다.”
부처님께서 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견정 등 5백 명과 모든 우바새가 모두 수다원(須陀洹)을 얻었으며, 모든 보살은 다 불경회삼매(不傾迴三昧)를 얻었다. 그들은 각기 일어나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땅에 엎드려 예배한 뒤 모두 부처님을 따라 함께 정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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