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설결정비니경(佛說決定毗尼經)
결정비니경(決定毘尼經)
돈황삼장(燉煌三藏) 한역
변각성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언젠가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타림(祇陀林)에 있는 급고독(給孤獨) 정사(精舍)에서 큰 비구(比丘)의 무리 1,250명과 보살 1만 명과 함께 계시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마치 용왕(龍王)이 보는 것처럼 대중을 관찰하셨다. 대중을 관찰하시고 나서 여러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진 이여, 누가 능히 뒷날 악한 세상에서 참고 견디어 정법(正法)을 보호하고 지녀서 모든 방편으로써 중생을 성취시킬 것인가?”
그때에 미륵보살이 곧 자리로부터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잘 참고 견디어 뒷날 악세(惡世) 때에 여래께서 백천 만억 나유타(那由他) 아승기(阿僧祇) 겁 동안 모으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받아 지녀서 한량없는 중생들을 많이 이익되게 하겠나이다.”
사자(師子)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잘 참고 견디어 중생을 성취하게 하오리다.”
금강(金剛)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잘 참고 견디어 모든 악한 중생들을 어여삐 여기고 수호(守護)하겠나이다.”
문수사리 법왕자(法王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世尊)이시여, 제가 잘 참고 견디어 중생들이 희망하는 모든 것을 충족하게 하겠나이다.”
지승(智勝)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잘 참고 견디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무명(無明)을 제거하게 하겠나이다.”
법승(法勝)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잘 참고 견디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비법(非法)을 떠나게 하겠나이다.”
월승(月勝)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잘 참고 견디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공덕이 아닌 법을 항상 멀리 떠나게 하겠나이다.”
일승(日勝)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잘 참고 견디어 안락한 승(乘)으로 모든 중생들이 다 해탈을 얻도록 하겠나이다.”
무외(無畏)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잘 참고 견디어 가없는 중생을 성취하고 이익되게 하겠나이다.”
발타파라(魃陀婆羅)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잘 참고 견디어 어리석음이 없는 법을 말해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듣고 앎을 얻어서 지혜를 성취하게 하겠나이다.”
무진의(無盡意)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잘 참고 견디어 큰 원을 세워서 다함이 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성취를 얻도록 하겠나이다.”
월광(月光)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항상 보시하는 일을 행하게 하겠나이다.”
묘목(妙目)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 모든 중생들에게 안락(安樂)의 근본을 주겠나이다.”
관세음(觀世音)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 억센 나쁜 갈래[惡趣]의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님께 귀의(歸依)함을 짓도록 하겠나이다.”
득대세(得大勢)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 제도하지 못한 나쁜 갈래의 중생들이 모두 제도되도록 하겠나이다.”
선수(善數)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조복하지 못한 자는 조복함을 얻도록 하겠나이다.”
묘음(妙音)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작은 법을 좋아하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도록 하겠나이다.”
희락(喜樂)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비열하고 못되고 추잡하고 더러운 중생들을 모두 성취하도록 하겠나이다.”
광적(光積)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축생(畜生)인 중생들을 성취하고 해탈하도록 하겠나이다.”
입무쟁(入無諍)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바른 도(道)를 나타내 보여 중생을 성취하도록 하겠나이다.”
애견(愛見)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중생에게 안락과 이익을 베풀어 주어 진실한 지혜를 구하도록 하겠나이다.”
부사의(不思議)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아귀(餓鬼) 중생들을 불쌍히 생각하여 모두 성취하도록 하겠나이다.”
일광(日光)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성숙하지 못한 중생으로 하여금 능히
성숙하게 하겠나이다.”
비마라길(毘摩羅鞊)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중생들의 일체 소원을 충족하게 하겠나이다.”
대기력(大氣力)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악도(惡道)의 문을 닫겠나이다.”
단의(斷疑)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작은 법을 좋아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겠나이다.”
주무외(住無畏)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항상 중생을 찬탄하며 이익되게 하겠나이다.”
길승지(吉勝智)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 좋아하는 바를 따라 해탈하도록 하겠나이다.”
주무량(住無量)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일삼음이 없는[無爲] 도를 말하겠나이다.”
주일체법무외(住一切法無畏)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갖가지 승(乘)을 좋아하는 모든 중생들에게 그 좋아하는 바에 따라 능히 나타나 보이겠나이다.”
묘의(妙意)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항상 중생들이 좋아하는 바 일을 보여 성취하게 하겠나이다.”
무구염(無垢炎)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중생들을 사랑스럽게 생각하고 지키고 보호하여 성취를 얻도록 하겠나이다.”
마니광(摩尼光)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전생(前生)을 알도록 하겠나이다.”
광덕(光德)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정근(正勤)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겠나이다.”
현덕(賢德)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구경에는 중생들의 고뇌를 끊어 없애겠나이다.”
보수(寶手)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값진 보물들을 중생들에게 주어 그들로 하여금 안락을 얻도록 하겠나이다.”
최승의(最勝意)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빈궁한 중생으로 하여금 가난한 고통을 여의도록 하겠나이다.”
단제전(斷諸纏)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항상 번뇌와 두려움을 멀리 여읠 수 있도록 하겠나이다.”
금강광(金剛光)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바른 도(道)를 나타내 보이겠나이다.”
현공덕색상(現功德色像)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구하는 것이 많은 중생에게 그 구하는 바에 따라서 모두 충족하게 하겠나이다.”
법출요(法出曜)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항상 청정한 모든 법의 행(行)을 연설하겠나이다.”
금강체(金剛體)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들의 일체의 장애를 없애겠나이다.”
법익(法益)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항상 정법(正法)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겠나이다.”
무소유(無少有)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모든 해독을 제거하겠나이다.”
월상(月上)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나투어 보이고 설법하겠나이다.”
사자의(使子意)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항상 법으로써 보시하여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겠나이다.”
동자광(童子光)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낮은 곳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겠나이다.”
불공덕(佛功德)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정도(正道)를 나타내 보이고 모든 나쁜 갈래[惡趣]를 끊어 없애겠나이다.”
금강광(金剛光)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몸의 색상을 나투어 중생들을 제도하겠나이다.”
덕길승(德吉勝)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손실이 있는 중생으로 하여금 더욱 이익되도록 하겠나이다.”
지세(持勢)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지옥문을 닫겠나이다.”
지감로(持甘露)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生死)를 건널 수 있도록 하겠나이다.”
망명(網明)보살이 말하였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항상 광명을 나타내어 일체의 묶임[結]을 없애겠나이다.”
그때에 사리불(舍利弗)은 여러 보살들이 이와 같은 등으로 중생을 성취하게 하여 스스로 장엄함을 듣고, 일찍이 있지 않았던 것을 얻고는, 부처님 앞에서 아뢰었다.
“일찍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여러 보살들은 불가사의한 큰 자비심이 있고, 갖가지 방편(方便)과 견고한 정진(精進)으로 스스로 장엄하였으므로, 나아가 일체 중생들이 저해할 수도 파괴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미칠 수도 없고, 꺾어 굴복시킬 수도 없으며, 가지고 있는 광명은 장애할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항상 이 여러 보살들의 일찍이 없었던 일을 찬탄하오니, 이른바 어떤 사람이 일부러 쫓아와서 머리와 눈과 귀와 코와 몸과 손발과 일체의 모든 물건을 요구한다면, 요구할 때 아끼고 인색함이 없으며 후회하는 마음도 내지 않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항상 사유하되 늘 이렇게 생각하오니, 혹 어떤 이가 이 여러 보살들을 핍박하여 쫓아와서 안팎의 있는바 모든 물건을 요구하더라도 마땅히 모두 이 부사의(不思意) 해탈에 머무르는 보살로 알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네가 말한 것과 같으니, 이 모든 보살들이 가지고 있는 선정(禪定)과 방편과 지혜 경계의 일은 모든 범부와 일체 성문(聲聞)과 벽지불(辟支佛)들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또한 사리불이여, 이 여러 보살들은 비록 모든 부처님의 신통 변화를 보아서 모든 법에 대하여 마음이 움직이고 구르지 않지만, 항상 중생의 모든 욕구와 원하는 바를 만족시키느니라.
또한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중생이 거사(居士) 법을 좋아하거든, 거사의 모습을 나타내어 성취하게 하며, 만일 어떤 중생이 큰 위세(威勢)를 좋아하거든, 왕이 되어 큰 위력이 있음을 나타내서 조복하며, 만일 어떤 중생이 열반을 구하거든, 성문승(聲聞乘)으로 벗어나게 하며, 벽지불을 구하는 자에겐 벽지불의 형상을 나타내서 벗어나게 하며, 대승(大乘)의 길을 구하는 자에겐 부처님 몸을 나타내니, 부처님 법을 세우기 위해서이니라.
이와 같으니, 사리불이여, 이 여러 보살들은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성취하여 모두 다 불법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사리불이여, 만일 여래의 지혜를 제외하고는 다시 다른 승(乘)으로 벗어남을 얻어 열반에 이를 수 없나니, 이러한 의미 때문에
여래라 이름하느니라.
왜 그런가 하면, 여래께서 여여(如如)한 법을 설하신 것과 같이 이 법을 여여하게 깨달아 알기에 여래라 하며,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 욕락(欲樂)을 알아 모두 나타내 보이기에 여래라 하며, 일체 모든 선(善)의 근본을 성취하고 일체 불선(不善)의 근본을 끊기에 여래라 이름하느니라.
능히 중생에게 해탈(解脫)의 길을 보이기에 여래라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사도(邪道)에서 멀리 떠나도록 하고 성도(聖道)를 나타내 보이기에 여래라 하며, 모든 공법(空法)을 연설하여 공(空)의 이치를 나타내 보이기에 여래라 하며, 일체 중생에겐 갖가지 식(識)과 갖가지 욕락(欲樂)이 있는데 그들이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해탈의 길을 보여 주기에 여래라 이름하느니라.
모든 범부들에게 망상(妄想)과 의혹은 진실한 법이 아님을 능히 깨닫게 하므로, 여러 보살들은 모든 법계(法界)에 태어나지도 윤회하지도 않으며, 허깨비 같은 중생을 모두 해탈하게 하여 차례대로 도량(道場)에 나아가게 하느니라.
또한 사리불이여, 집에 있는 보살은 마땅히 두 가지 보시를 닦아야 하나니, 무엇이 둘인가 하면, 첫째는 재물을 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법을 보시하는 것이니라.
또한 사리불이여, 출가한 보살은 온순하여 성냄이 없으며 마땅히 네 가지 보시를 닦아야 하나니, 무엇이 넷인가 하면, 첫째는 종이[紙]요, 둘째 먹이요, 셋째는 붓이요, 넷째는 법이니, 이와 같은 네 가지 보시를 출가한 사람은 마땅히 닦을 것이니라.
무생법인(無生法忍)1)을 얻은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세 가지 보시를 닦아야 하나니, 무엇이 셋인가 하면, 왕위(王位)를 보시하고, 처자를 보시하고, 머리와 눈을 보시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세 가지를 큰 보시라 이름하며, 지극히 미묘한 보시라 이름하나니, 무생법인을 얻은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은 세 가지 보시를 닦아야 할 것이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마땅히 애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두려워하지 않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두 가지 크게 범함[大犯]이 있나니, 무엇이 둘인가 하면,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계(戒)를 범하는 것을 크게 범함이라 하고, 애욕으로 인하여 범하는 것은 작게 범함이라 하지만 없애기가 어려우니라.
성냄으로 인하여 범한 것은 크게 범함이 된다고는 하지만 쉽게 제거할 수 있으며,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범한 것도 또한 크게 범함이라 하지만 또한 없애기가 어려우니라.
무엇 때문에 애욕은 작게 범함이 되는데도 없애기가 어려운가 하면, 애욕은 능히 생사(生死)를 자라나게 하는 가지[枝條]이며, 또한 씨앗이 되나니, 이러한 뜻 때문에 작지만 없애기 어렵다는 것이다.
성냄으로 인하여 범한 것은 지옥과 축생의 악도(惡道)에 떨어져 빠르게 마음의 장애가 될 수 있지만, 쉽게 없앨 수 있느니라.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범한 것은 여덟 가지 큰 지옥의 크게 괴로운 곳에 떨어지나니, 해탈하기 어려우니라.
또한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보살이 첫 번째 계(戒)를 범했다면 열 대중(大衆) 앞에서 정직한 마음으로 은근하고 진중하게 참회(懺悔)할 것이며, 일부러 계를 범한 자는 다섯 대중 앞에서 정직한 마음으로 은근하고 진중하게 참회할 것이며, 손으로 여인을 잡았거나 눈으로 보았거나 나쁜 마음을 품었다면, 혹 한 사람이나 혹 두 사람 앞에서 정직한 마음으로 은근하고 진중하게 참회할 것이다.
만일 어떤 보살이 5무간죄(無間罪)2)를 저지르고, 여인을 범했거나, 혹은 남자를 범했거나, 혹은 일부러 범했거나, 혹 탑(塔)을 범하고 승(僧)을 범하는 이와 같은 등의 죄를 범했다면, 보살은 마땅히 서른다섯 분의 부처님 곁에서 범한 바의 중한 죄를 밤낮으로 홀로 있으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할 것이니, 참회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귀의불(歸依佛)
귀의법(歸依法)
귀의승(歸依僧)
나무 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 금강불괴불(南無金剛不壞佛)
나무 보광불(南無寶光佛)
나무 용존왕불(南無龍尊王佛)
나무 정진군불(南無精進軍佛)
나무 정진희불(南無精進喜佛)
나무 보화불(南無寶火佛)
나무 보월광불(南無寶月光佛)
나무 현무우불(南無現無愚佛)
나무 보월불(南無寶月佛)
나무 무구불(南無無垢佛)
나무 이구불(南無離垢佛)
나무 용시불(南無勇施佛)
나무 청정불(南無淸淨佛)
나무 청정시불(南無淸淨施佛)
나무 바류나불(南無婆留那佛)
나무 수천불(南無水天佛)
나무 견덕불(南無堅德佛)
나무 전단공덕불(南無旃檀公德佛)
나무 무량국광불(南無無量掬光佛)
나무 광덕불(南無光德佛)
나무 무우덕불(南無無憂德佛)
나무 나라연불(南無那羅延佛)
나무 공덕화불(南無功德華佛)
나무 연화광유희신통불(南無蓮花光遊戱神通佛)
나무 재공덕불(南無財功德佛)
나무 덕념불(南無德念佛)
나무 선명칭공덕여래(南無善名稱功如來)
나무 홍염당왕여래(南無紅炎幢王如來)
나무 선유보공덕여래(南無善遊步功德如來)
나무 투전승여래(南無鬪戰勝如來)
나무 선유보여래(南無善遊步如來)
나무 주잡장엄공덕여래(南無周匝莊嚴功德如來)
나무 보화유보여래(南無寶華遊步如來)
나무 보련화선주사라수왕여래(南無寶蓮華善住娑羅樹王如來).
이와 같이 일체 세계에 여러 부처님과 세존께서 항상 세상에 계시니, 원컨대 여러 세존께서는 자애(慈哀)로 나를 생각해 주시옵소서.
만일 나의 이번 생(生)이건 만일 나의 전생이건 끝없이 나고 죽음을 거쳐 옴으로부터 지은바 모든 죄를 만일 스스로 짓거나 남을 시켜 짓거나 짓는 것을 보고 좋아하거나, 탑의 것이나 스님의 것이나 사방(四方) 승물(僧物)을 만약 스스로 취했거나 남을 시켜 취했거나 취하는 것을 보고 좋아했거나,
5무간죄를 스스로 짓거나 남을 시켜 짓거나 짓는 것을 보고 좋아하거나,
10불선도(不善道)를 만일 스스로 짓거나 남을 시켜서 짓거나 짓는 것을 보고 좋아했거나, 지은바 죄를 혹 덮어 숨겼거나 혹 숨기지 아니했거나 간에 마땅히 지옥ㆍ아귀ㆍ축생의 모든 악도(惡道)와 변방 지역과 낮고 천한 곳과 미려차(彌戾車)3)와 같은 곳에 떨어질 죄 지은 것을 지금 모두 참회하오니,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는 마땅히 나를 증명하여 아시고 마땅히 나를 생각해 주시옵소서.
또다시 여러 세존 앞에서 이와 같은 말을 올리옵니다. 만일 제가 이번 생에서나 전생에서 일찍이 보시를 행하였거나 혹은 청정한 계(戒)를 지켰거나 나아가 축생에게 한 덩어리의 밥을 주었거나 혹은 청정한 행을 닦아 얻은 선근(善根)이거나 중생을 성취하여 얻은 선근이거나 보리를 수행하여 얻은 선근이거나 또한 위없는 지혜로써 얻은 선근 일체를 모두 합치고 모아 계산하여 모두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회향(廻向)하오니,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여러 부처님께서 지으신 바를 회향하심과 같이 나도 또한 이와 같이 회향하옵나이다.
뭇 죄를 모두 참회하고
모든 복을 다 따라 좋아하여
부처님께 청하는 공덕으로
위없는 지혜 이루어지이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께서는
중생에겐 가장 뛰어나시니
한량없는 공덕의 바다에
귀의(歸依) 합장하나이다.’
이와 같으니라, 사리불이여.
보살은 이와 같이 이 서른다섯 분의 부처님께서 눈앞에 계시는 것처럼 관(觀)하며, 여래께서 갖고 계신 공덕을 사유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청정한 참회를 지어야 할 것이다.
보살이 만약 능히 이 죄를 깨끗이 하고 나면, 그 때엔 여러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몸을 나투시고,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또한 갖가지 모든 행을 연설하시리니, 어리석고 미혹된 중생들을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보살은
모든 법계에서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모든 중생들에게 있는 갖가지 욕락(欲樂)을 따라서 모두 능히 건너가 벗어나며 그 소원을 만족하게 하느니라.
보살이 만일 대비삼매(大悲三昧)에 들면, 능히 지옥 축생의 모든 악도(惡道)에 들어감을 나타내 보이느니라.
보살이 만일 대장엄(大莊嚴)삼매에 들면, 거사(居士)의 몸을 나타내서 중생을 성취하느니라.
보살이 만일 묘승(妙勝)삼매에 들면, 능히 전륜왕(轉輪王)의 몸을 나타내서 중생을 성취하느니라.
보살이 만일 황요(晃曜)삼매에 들면, 능히 제석과 범천왕의 가장 좋고 미묘한 색신(色身)을 나타내서 중생을 성취하느니라.
보살이 만일 일심(一心)삼매에 들면, 성문의 형상을 나타내서 중생을 성취하느니라.
보살이 만일 청정불이(淸淨不二)삼매에 들면, 벽지불의 형상을 나타내서 중생을 성취하느니라.
보살이 만일 적정(寂靜)삼매에 들면, 능히 부처님 몸을 보여서 중생을 성취하느니라.
보살이 만일 제법자재(諸法自在)삼매에 들면,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 욕락에 따라 갖가지 형상을 나타내서 성취하게 하느니라.
또 저 보살은 혹 제석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범천왕의 몸을 나타내며, 혹 때로는 전륜왕의 몸을 나타내기도 하나니, 모두 여러 중생들을 성취하기 위함이니라.
그러나 이 보살들은 모든 법계에서 움직이며 전전하지 않으니, 왜 그런가 하면, 비록 중생의 갖가지 욕락에 따라 갖가지 형상을 나타내지만, 이 보살들은 자기의 몸도 중생 몸도 얻지 않고서 중생을 따라 갖가지 몸을 시현하느니라.
또한 사리불이여, 사자가 크게 소리칠 때에 그 나머지 작은 짐승들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겠느냐?”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또한 향상(香象)4)이 지는 무거운 짐을 나귀나 노새 등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겠느냐?”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또한 제석(帝釋)과 범왕(梵王)이 가지고 있는 위덕(威德)ㆍ광명(光明)ㆍ색상(色像)을
빈궁한 사람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겠느냐?”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또한 사리불이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저 금시조(金翅鳥)가 가지고 있는 세력을 독수리와 비둘기 등의 새들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겠느냐?”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으니라, 사리불이여. 보살이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은 용맹스럽고 건실하여 선근(善根)의 세력으로 있는바 죄를 해탈하는 지혜에 의지하여 여러 부처님을 보게 되며, 또한 삼매를 얻나니, 일체 중생과 성문과 연각들의 있는바 죄를 범하여 근심하고 뉘우치는 일을 능히 없애는 것만이 아니다.
보살이 만일 능히 저 여러 부처님께서 가지신 명호(名號)를 일컬으며, 항상 밤낮으로 3사(事)5)를 행한다면, 죄를 범한 것과 모든 근심하고 뉘우치는 것을 여의게 될 것이요, 아울러 삼매까지 얻으리라.”
그때에 우바리(優波離)가 선정(禪定)으로부터 일어나서 세존의 처소로 왔다. 와서는 머리를 조아려 세존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아까 고요한 곳에 홀로 앉아서 사유하다가 이러한 생각을 내었나이다.
‘여래께서 이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6)의 청정한 계(戒)를 말씀해 주신다면 마땅히 잘 배울 것이니, 성문과 연각과 보살승(菩薩乘)을 위한 까닭에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므로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계를 버리지는 않으리라.’
세존이시여, 만일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시거나 열반하신 후에는 어떤 것을 성문승(聲聞乘)인 사람의 바라제목차라 이름하며, 어떤 것을 보살승인 사람의 바라제목차라 이름하오리까?
세존께선 저를 말씀하시어 계율을 지니는 사람 가운데 가장 제일이라고 하셨으나, 제가 마땅히 어떻게 다른 이를 위하여 널리 연설하겠나이까?
지금은 세존께 직접 듣고 받아 지니어서 두려울 바가 없는 데에 미치었으므로, 이런 연후에야 능히 딴 사람을 위하여 널리 연설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고요한 곳에 홀로 앉아서 사유하다가 이런 생각을 내었나이다.
‘나는 이제 마땅히 세존의 처소로 가서 비니(毘尼) 가운데 결정된 뜻을 물으리라.’
지금 이 대중의 여러 보살들 및 비구 스님들이 모두 다 모였으니,
어지신 세존께서는 바라건대 말씀하여 주옵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마땅히 알라. 성문승인 사람은 다른 방편이 있고 다른 깊은 마음이 있어서 청정한 계(戒)를 지니며, 보살승인 사람은 다른 방편이 있고 다른 깊은 마음이 있어서 청정한 계를 지니느니라.
왜 그런가 하면, 성문승인 사람은 다른 방편이 있고 다른 깊은 마음이 있으며, 보살승인 사람은 다른 방편이 있고 다른 깊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라.
우바리야, 성문승인 사람이 비록 깨끗하게 계를 지니더라도 보살승에 대하면 깨끗한 계라 이름하지 못하며, 보살승인 사람이 비록 깨끗하게 계를 지니더라도 성문승에 대하면 깨끗한 계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우바리야, 어떤 것을 성문승인 사람이 비록 깨끗하게 계를 지니더라도 보살승에 대하면 깨끗한 계라 이름하지 못한다고 하느냐 하면, 우바리야, 성문승인 사람은 마땅히 나아가 한 생각으로라도 다시 몸을 받고자 아니하나니, 이것을 곧 성문승인 사람이 청정하게 계를 지니는 것이라 이름하지만, 보살승에서는 가장 크게 계를 깨뜨리는 것이므로 청정하다고 이름하지 않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보살승인 사람이 비록 깨끗하게 계를 지니더라도 성문승에 대하면 청정한 계라 이름하지 못한다고 하느냐 하면, 우바리야, 보살승인 사람은 한량없는 겁(劫)에 몸 받는 것을 참고 견디어서 싫어하고 걱정하지 않나니, 이것을 곧 보살승인 사람이 청정하게 계를 지니는 것이라 이름하지만, 성문승에서는 가장 크게 계를 깨뜨리는 것이므로 청정하다고 이름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한 우바리야, 보살승인 사람은 다 두호(斗護)하지 못하는 계[不盡護戒]를 지니고, 성문승인 사람은 다 두호 하는 계[盡護戒]를 지니며, 보살승인 사람은 개통계(開通戒)를 지니고, 성문승인 사람은 개통이 아닌 계[不開通戒]를 지니며, 보살승인 사람은 깊이 들어가는 계[深入戒]를 지니고, 성문승인 사람은 차제계(次第戒)를 지니느니라.
우바리야, 어떤 것을 보살승인 사람은 다 두호하지 못하는 계를 지니고, 성문승인 사람은
다 두호하는 계를 지닌다고 하느냐 하면, 보살승인 사람은 계를 지닐 때에 모든 중생 및 타인에게 마땅히 수순하고, 성문승인 사람은 마땅히 수순(隨順)하지 않는 것이니라. 우바리야, 이러한 뜻 때문에 보살승인 사람은 다 두호하지 못하는 계를 지니고, 성문승인 사람은 다 두호하는 계를 지니는 것이니라.
우바리야, 어떤 것을 보살승인 사람은 개통계를 지니고, 성문승인 사람은 개통이 아닌 계를 지닌다고 하는가?
우바리야, 보살승인 사람은 낮의 초분(初分)7)에 계를 범한 것이 있으면 낮의 중분(中分)에 사유하되, ‘마땅히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으리라’ 하여 보살이 그때에 계의 몸[戒身]을 깨뜨리지 않으며,
낮의 중분에 계를 범한 것이 있으면 낮의 후분(後分)에 사유하되, ‘마땅히 일체 종지를 얻으리라’ 하여 보살이 그때에 계의 몸을 깨뜨리지 않으며,
낮의 후분에 계를 범한 것이 있으면 밤의 초분(初分)에 사유하되, ‘마땅히 일체 종지를 얻으리라’ 하여 보살이 그때에 계의 몸을 깨뜨리지 않으며,
밤의 초분에 계를 범한 것이 있으면 밤의 중분에 사유하되, ‘마땅히 일체 종지를 얻으리라’ 하여 보살이 그때에 계의 몸을 깨뜨리지 않으며,
밤의 중분에 계를 범한 것이 있으면 밤의 후분에 사유하되, ‘마땅히 일체 종지를 얻으리라’ 하여 보살이 그때에 계의 몸을 깨뜨리지 않으며,
밤의 후분에 계를 범한 것이 있으면 낮의 초분에 사유하되, ‘마땅히 일체 종지를 얻으리라’ 하여 보살이 그때에 계의 몸을 깨뜨리지 않느니라.
이러한 뜻 때문에 보살승인 사람은 개통계(開通戒)를 지니고, 성문승인 사람은 개통이 아닌 계[不開通戒]를 지니니, 보살은 마땅히 큰 참괴(慚愧)를 내지 않으며, 또한 다시 큰 회전(悔纏:뉘우침에 묶인 것)을 내지 않느니라.
우바리야, 성문승인 사람은 자주자주 죄를 범하여 즉시 성문(聲聞)의 계의 몸[戒身]을 깨뜨리고 잃어버리니, 무슨 까닭이냐. 성문승인 사람은
마땅히 계를 지니되, 일체의 번뇌[結]를 끊기를 마치 머리에 불이 타는 것을 끄듯이 하여 가지고 있는 깊은 마음이 열반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우바리야, 이러한 뜻 때문에 성문승인 사람은 개통이 아닌 계를 지닌다고 이름하느니라.
우바리야, 어떤 것을 보살승인 사람은 깊이 들어가는 계[深入戒]를 지니고, 성문승인 사람은 차제계(次第戒)를 지닌다고 하는 것이냐? 보살승인 사람은 항하(恒河)의 모래같이 많은 겁(劫) 동안 5욕락(欲樂)을 받아 유희하고 자재하지만, 모든 낙(樂)을 받고서도 일찍이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기를 버리지 않으니, 보살이 그 때엔 계를 잃었다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왜 그런가 하면, 보살승인 사람은 후일(後日)에 보리의 마음을 잘 호지(護持)할 수 있으며, 나아가 꿈속에서도 일체의 번뇌[結使]가 근심거리가 되지 않느니라.
보살승인 사람은 마땅히 일시(一時)에 한 몸 가운데서 일체의 번뇌[結]를 다 없애지 않고 마땅히 차츰차츰 일체의 번뇌를 없애며, 선근(善根)이 성취되어 성숙(成熟)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성문승인 사람은 머리에 불이 타는 것을 끄듯이 하여 나아가 한 생각이라도 몸 받는 것을 마땅히 기뻐하지 않느니라.
이러한 뜻 때문에 대승(大乘)의 사람은 깊이 들어가는 계[深入戒]를 지니고, 성문승인 사람은 차제계(次第戒)를 지니며, 보살승인 사람은 개통계(開通戒)를 지니고, 성문승인 사람은 개통이 아닌 계[不開通戒]와 다 두호하는 계[盡護戒]를 지니느니라.
왜 그런가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매우 얻기가 어렵기 때문에 큰 장엄을 갖추어야 이에 가히 얻어 이룰 수 있으므로, 대승인 사람은 한량없는 겁 동안 생사(生死)에 오고 가나 마땅히 싫어하고 여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우바리야, 여래는 관찰하고 헤아려서 대승의 사람을 위하여 마땅히 싫증내 여의는 법[厭離法]만을 오로지 말하지 않으며, 마땅히 욕심을 여의는 법[離欲法]만을 오로지 말하지 않으며, 마땅히 빠른 법[速疾法]만을 오로지 말하지 않고, 항상 마땅히 환희하는 마음으로 서로 응하는 모든 법을 연설하며, 항상 마땅히 매우 깊어 섞임이 없고 후회하여 얽매임[悔纏]이 없는 법을 연설하며,
항상 마땅히 모임[聚]이 없고 걸림이 없는 공무(空無)의 법을 말하나니, 이 법을 듣고 나서 항상 생사(生死)를 좋아하고 근심하거나 후회함을 내지 않으며, 또한 능히 보리의 행을 만족하느니라.”
우바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혹은 애욕과 상응하는 마음이 있어 계(戒)를 범하며, 혹은 성냄과 상응하는 마음이 있어 계를 범하며, 혹은 어리석음과 상응하는 마음이 있어 계를 범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계를 범하매 ‘애욕과 상응하는 마음’과 ‘성냄과 상응하는 마음’과 ‘어리석음과 상응하는 마음’ 가운데 어느 것이 중한 것입니까?”
그때에 세존께서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항하(恒河)의 모래알 수와 같은 애욕과 상응하는 마음으로 계를 범하며, 혹 어떤 보살은 한낱 성내는 마음으로 인하여 계를 범했다면, 보살의 대승도(大乘道)에는 평등히 머무르나, 성냄으로 인하여 범한 것은 가장 중함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왜 그런가 하면, 성냄으로 인하여 능히 중생을 버리며, 탐욕으로 인한 까닭에 모든 중생에 대하여 친애(親愛)함을 내느니라.
우바리야, 가지고 있는 모든 번뇌[結]가 능히 친애함을 내는 것은, 보살은 이에 대해 마땅히 두려워함을 내지 않으나, 가지고 있는 모든 번뇌가 능히 중생을 버리는 것은, 보살은 이에 대해 마땅히 큰 두려움을 내느니라.
우바리야, 여래가 먼저 ‘탐욕은 버리기가 어려우나 작게 범함[小犯]이 되고, 성냄은 여의기 쉬우나 크게 범함[大犯]이 된다’고 말하였으니, 우바리야, 갖고 있는 모든 번뇌가 범함은 적으나 여의기 어려운 것을 대승의 사람은 마땅히 참고 받지만, 갖고 있는 모든 번뇌가 범함은 크나 여의기 쉬운 것을 대승의 사람은 나아가 꿈속에서라도 마땅히 참고 받지 않느니라.
이러한 뜻 때문에 대승인 사람이 탐욕으로 인하여 범한 것을, 나는 말하되, ‘이 사람은 범함이 되지 않는다’고 하며, 성냄으로 인하여 범한 것을, 나는 말하되, ‘이 사람은 크게 범함이 된다’고 할 것이니, 크게 잘못된 병통[過患]이라 이름하며, 크게 타락함이라 이름하며,
불법 가운데에 이 크게 머무르기 어려움[留難]이라 할 것이니라.
우바리야, 만일 보살로서 방편(方便)이 없을진댄 탐욕과 상응(相應)하는 마음으로 계를 범하면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지만 성냄에서 계를 범하면 두려워하지 않거니와, 만일 보살로서 방편이 있을진댄 성냄과 상응하는 마음으로 계를 범하면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지만 탐욕과 상응하는 마음으로 계를 범하면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그때에 문수사리(文殊師利)가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부처님 앞으로 와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구경(究竟)의 비니(毘尼)이니, 누가 비니를 받으오리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모든 범부가 다 능히 일체의 모든 법이 구경의 비니임을 알았을진댄 여래는 끝내 비니를 연설하지 않았겠지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여래는 그때에 일체의 모든 법이 구경의 비니임을 알게 하기 위하여 점차로 모든 비니법을 연설하였느니라.”
그때에 우바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문수사리는 이 비니의 결정된 뜻을 해설한 것에 대해서는 말한 바가 없나이다.”
그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제 마땅히 구경의 비니법(比尼法)을 해설할지어다. 이 우바리가 비니의 뜻을 얻어 듣고 싶어하느니라.”
그때에 문수사리가 우바리에게 말하였다.
“일체의 모든 법은 구경에 때[垢]가 없나니, 능히 스스로 마음을 조복하면 이에 능히 구경의 비니를 얻어 볼 것이다.
일체의 모든 법은 모든 묶임[纏]이 없나니, 그 본성을 깨끗이 하면 이에 능히 구경의 비니를 얻어 보리라.
일체의 모든 법은 더러움에 물듦[染汚]이 없나니, 나[我]를 얻을 수 없으면 이에 능히 후회함이 없는 비니를 얻어 보리라.
여여(如如)하고 진실한 억만(億萬) 법문을 좋아하고 닦아 배우면, 이에 능히 청정학계(淸淨學戒)를 얻어 보리라.
일체의
모든 법은 분별이 있지 않나니, 묶임도 풂도 없고 사유를 짓지 않으면 이에 능히 속박과 집착이 없음을 얻어 보리라.
일체의 모든 법은 머무름도 물듦도 없나니, 한 곳에 머무름[留住]을 짓지 않으면 이에 능히 모든 법의 청정함을 얻어 보리라.
일체의 모든 법은 허공제(虛空際)에 머무르나니, 모든 처소를 여의면 이에 능히 짓는 바가 청정함을 얻어 보리라.
일체의 모든 법은 투쟁 없는 데에 이르나니, 전제(前際)와 후제(後際)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 이에 능히 3세(世)가 평등함을 얻어 보리라.
일체의 모든 법은 모든 베풀어 설비함[施設]을 여의었나니, 마음에 행하는 바가 없으면 이에 능히 의심 뭉치[疑結]를 끊음을 얻어 보리라.
우바리여, 이것을 곧 구경의 비니 법계(法界)라 이름하나니,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 이것을 쫓아 도(道)를 얻으셨느니라.
만일 능히 이 법을 헤아리고 관찰한다면, 이를 ‘잘 배워서 가장 뛰어난 계에 이르렀다’고 이름할 것이요, 만일 이 법을 관찰하지 못한다면, 이를 ‘여래께서 배우신 바의 계에 깊이 들어감’이라 이름하지 못하리라.”
그때에 우바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문수사리가 말한 법은 모두가 불가사의(不可思議)입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가 말한 법은 해탈에 의지한 것이니, 의지한 바의 해탈이란 마음에 오고 감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수사리가 ‘일체 법에 마음은 오고 감이 없다’고 말한 것이니, 마음의 해탈에서 증상만(增上慢)을 내는 그 사람의 증상만을 없애기 위함 때문이니라.”
그때에 우바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비구가 어떤 법을 행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다음과 같은 사유(思惟)를 짓되 ‘탐욕을 끊고 싶다’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思惟)를 짓되 ‘성냄을 끊고 싶다’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어리석음[愚癡]을 끊고 싶다’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탐욕법(貪欲法)은 다르다,
모든 불법(佛法)은 다르다’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어리석음의 법은 다르다, 모든 불법은 다르다’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얻은 바가 있음을 보았다’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증득한 바가 있음을 보았다’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해탈함이 있음을 보았다’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모든 법이 공(空)함을 보았다’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모양 없음[無相]을 보았노라’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지음이 없음[無作]을 보았노라’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모든 행(行)이 있음을 보았노라’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모든 법이 있음을 보았노라’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일체의 모든 법은 사의(思議)할 수 없으나,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마땅히 사유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모든 법은 공(空)하여 없으니, 어찌 정진(精進)할 필요가 있으리오’라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이를 성문이 증상만에 머무르는 것이라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의 증상만(增上慢)이라 이름하는가? 불승(佛乘)은 가장 뛰어나므로, 다음과 같은 사유를 짓되 ‘나는 마땅히 그 가운데서 보리(菩提)의 마음을 발할 것이다’라고 하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6바라밀(波羅蜜)을 행하면 마땅히 부처됨을 얻으리라’라고 하여 이러한 사유를 지으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반야바라밀은 능히 해탈함을 얻을 수 있고, 다시 딴 법으로는 해탈함을 얻을 수 없다’라고 하여 이러한 사유를 지으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매우 깊은 법에서 마땅히 방편을 지어야 하지 세속 법을 인하여는 아니다’라고 하여 이러한 사유를 지으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이 법은 매우 깊고, 이것은 매우 깊지 않다’라고 하여 이러한 사유를 지으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이 법은 청정한 법이요, 이 법은 청정한 법이 아니다’라고 하여 이러한 사유를 지으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이것은 불법이며, 이것은 벽지불법(辟支佛法)이며, 이것은 성문법(聲聞法)이다’라고 하여
이러한 사유를 지으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이 법은 마땅히 지을 것이며, 이 법은 마땅히 지을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이러한 사유를 지으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이것은 가까운 법이며, 이것은 가까운 법이 아니다’라고 하여 이러한 사유를 지으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이것은 바른 길이며, 이것은 삿된 길이다’라고 하여 이러한 사유를 지으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빨리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어야 한다’거나, ‘빨리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말아야 한다’고 하여 이러한 사유를 지으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일체의 불법은 가히 사의(思議)할 수 없기에 일찍이 어떤 사람도 능히 깨달은 자가 없다’고 하여 이러한 사유를 지으면, 증상만이라 이름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사의(思議)할 수 없지만, 그가 마땅히 사의하지 않는다면, 이는 옳은 견(見)이 아니요 바로 허물[過患]이니, 이를 이름하여 보살이 증상만에 머무른다고 하느니라.”
그때에 우바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비구가 증상만을 떠난 것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모든 마음을 사유(思惟)하되, 마음을 사유할 때에 사유에 집착하지 아니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가장 뛰어나게 증상만을 떠난 것이라고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사유하는 법을 널리 분별하시고자 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땅히 법과 비법(非法)을 분별하지 않으며
희론과 모든 마음에 머무르지도 않아서
부사의법을 능히 알 수 있다면
모든 때에 낙(樂)을 받는 사람이라 하리라.
만일 유무법(有無法)을 알고자 하되
이런 사유 지으면 진실 아니리니
삿된 마음의 범부를 따라서
백천억 동안 모든 고통 받으리라.
만일 비구가 항상 염불한다 해도
이것이 곧 참되고 바른 생각은 아니니,
부처님께서 분별로부터 일어나셨기에
실로 취할 수도 또한 날[生]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하네.
만일 모든 공법(空法) 사유한다면
곧 사도(邪道)에 머무르는 범부일세.
비록 명자(名字)로 공법을 설한들
실로 명자를 설함이 없다네.
고요한 곳에 한가하게 머무르며 법을 사유하면
세상에선 고요한 사람이라 칭찬하지만,
마음이 각관(覺觀)에 머무름은 희론(戱論)이니
그러므로 생각 없으면 능히 법을 알리라.
마음과 마음의 모든 법을 생각이라 이름하니
생각한 바가 있다면 반드시 집착이 있을 것이며,
만일 이 집착한 법을 멀리 여읜다면
모든 생각한 바에서 다시 생각함 없으리라.
법은 초목(草木)과 같아 아는 바가 없지만
모든 연(緣)으로 인해서 일어나니[生起]
어떤 중생도 얻을 수 없고
공(空)하여 없는[無] 모든 인연법 능히 일으키네.
해의 광명으로 인하여 눈이 볼 수 있거니와
밤이면 보지 못해 뭇 인연을 여의니,
만일 눈이 스스로 색상을 볼 수 있다면
어찌하여 인연이 없으면 보지 못할까?
눈은 항상 모든 광명으로 인하여
갖가지 볼 수 있는 색상을 보나니
봄[見]의 성품이 뭇 인연으로 생겼음을 마땅히 알라.
그러므로 눈은 볼 수 없음을 알겠네.
만일 모든 좋은 소리를 들음이 있다 해도
생겼다 곧 사라져서 들을 것이 없나니
그 간 곳을 추궁해도 얻을 수 없건만
분별로 인함 때문에 소리라는 생각 일으키네.
일체 모든 법은 같은 음성(音聲)이니
시설해 말하여서 모든 수(數)의 상(相)이 있으나
일찍이 법과 비법(非法)이 생긴 것이 아니요
범부를 위한 까닭에 나타내 보였네.
나는 세간 위해 보시하길 찬탄하므로
사실 간탐(慳貪)하는 법은 얻을 수 없다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생각[思議]하기 어렵나니
비록 얻을 수 없다 해도 연설해 주네.
나는 항상 청정한 계율 지님을 찬탄하나
계율을 깨뜨린 상(相)도 허공을 잡은 것과 같다네.
계율을 깨뜨린 모든 상은 허공과 같으며
청정하게 계율을 지니는 것도 또 그와 같다네.
나는 인욕(忍辱)을 미묘하고 뛰어나다 말하나
성냄의 본성도 사실은 생긴 것이 아니라네.
모든 법 가운데는 촉뇌(觸惱)함이 없건만
부처님께서 인욕하는 것을 열어 보여 주셨네.
항상 밤낮으로 게으름 없으며
깨닫고 알아 정진함이 최상이라 말하고
비록 다시 백 겁 동안 부지런히 수행하였으나
그 지은 바에는 늘거나 줄어듦이 없네.
선정(禪定) 해탈이 가장 뛰어나다 하여
여래께서 모든 법문 열어 보이셨으니,
사실 모든 법에는 산란함이 없으므로
세존께서 모든 선정 나타내 설하셨네.
지혜의 성품을 능히 깨달아서
모든 법을 잘 알면 슬기로운 사람이 되니,
그러나 그 자성(自性)은 생김이 있지 않거늘
부처님께선 해설하시기 위하여 능히 나타내 보이셨네.
나는 항상 모든 고(苦)의 법을 찬탄하고 설하며
두타(頭陀)를 기뻐하고 즐겨 행하므로
탐법(貪法)은 추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최상으로 탐하지 않는 자라 이름하리라.
항상 중생인 백천 대중 위하여
지옥의 무서운 일을 나타내 말한다 해도
일찍이 악도(惡道)에 떨어져 가며
무간지옥에 들어간 이는 있지 않았네.
능히 지옥을 만들 수 있는 이 있지 않고
또한 창[矛] 따위를 만들 수도 없건만
분별 때문에 있다고 보아서
칼 따위들로 자기 몸 해치네.
여러 빛깔로 장엄된 꽃과 과일나무며
금빛 궁전이 눈부시게 빛나지만
저것 또한 일찍이 만든 자 없고
모두 망상 분별을 쫓아 일어난 것이네.
허위(虛僞)의 법으로 세간을 속여서
집착된 생각으로 돌고 도는 범부여.
취하건[取] 취하지 않건 자성이 없나니
허깨비와 아지랑이를 분별함과 같다네.
모든 행(行)에서 가장 뛰어난 것을 말함은
능히 중생에게 도심(道心)을 발하게 하기 위함이나
보리의 도(道)는 얻을 수 없나니
구함도 실상이 아님을 마땅히 알라.
그 마음의 본성은 항상 청정하여
모든 고뇌에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건만
범부는 분별하는 모든 악심(惡心)으로
스스로 탐애(貪愛)하여 모든 물듦과 집착을 내네.
모든 법은 미묘하고 뛰어나고 항상 적정(寂靜)하므로
실제로는 탐(貪)ㆍ진(嗔)ㆍ치(癡)가 있지 않으니
법성(法性)을 해탈하여 탐애(貪愛)에 물듦을 여의면
안온(安穩)하여 처소(處所)가 없는 곳에 이른다네.
나는 모든 법이 허공과 같음을 알았기에
모든 세간에 노닐어도 두려움이 없으며
그 뜻엔 일찍이 물들고 집착함이 있지 않았으니
그러므로 삿된 길에 머무르지 않네.
나는 많은 겁(劫) 동안 모든 행 닦아서
가없는 모든 중생 건네 해탈시켰으나
모든 중생들은 생겨나고 생겨나 다하지 않으며
또한 늘거나 줄어들 때도 있지 않았네.
비유컨대 세상에 큰 요술쟁이가 있어
가없는 백천 중생을 능히 화작(化作)하고
즉시 조화로 만든 사람[化人]을 모두 해(害)하였으나
조화를 부림엔 늘거나 줄어듦이 없는 것과 같네.
일체 중생도 환술(幻術)로 만든 모양 같아서
그 변제(邊際)를 일찍이 얻을 수 없었나니
만일 능히 부사의(不思議)를 관찰할 수 있다면
마땅히 알라. 그 사람은 태어남을 싫증내지 않으리라.
세간의 적정함을 관함을 용맹이라 이름하며
법의 실상(實相)을 아는 것도 또한 그러하니
5욕(欲)의 이로움을 받아 항상 수행하여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고 중생 제도하리라.
중생과 수명(壽命)이 있지 않건만
세존께서 가엽게 여겨 자비심 일으키시고
부지런히 정진과 큰 고행 닦으셔서
비록 중생 없으나 이익(利益)을 지어 주시니
빈주먹으로 어린아이 달래어
그 마음 속여서 물들고 집착하게 하고는
손을 펴 빈주먹 보여 주면
어린아이 곧 우는 것과 같네.
이와 같이 생각하기 어려운 부처님 세존께서는
모든 법상에 대해 청정하게 깨달으신 뜻으로
이미 공(空)하여 없는 법을 알아 멀리 여의셨으나
능히 세간에 나타내 보이신다네.
나[我]는 법 가운데서 매우 즐거우므로
세속의 옷을 벗어 버리고 능히 출가한다면
그 후엔 마땅히 가장 뛰어난 과보(果報)를 얻으리라고
크게 자비(慈悲)하신 분께서 말씀하신 바이네.
이미 출가하여 세속 일 버렸기에
다시 모든 과보를 얻을 것이라 들었고
모든 법의 진실한 상(相)을 관찰하였으나
어떠한 모든 과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네.
이미 모든 법에서 과위를 얻지 못했기에
전전하여 다시 일찍이 있지 않았던 곳에 태어나리니
통쾌하다, 대비(大悲)하신 인천(人天)의 스승이시여.
모든 법상(法相)에 잘 들어가서 상응하시네.
일체의 모든 법은 허공과 같지만
백천만의 명자(名字)를 능히 세웠나니
이것을 근선해탈(根禪解脫)이라 이르며
또한 역(力)의 7각지(七覺技)라 이름하네.
모든 근(根)은 나고 죽는 상(相)이 없고
각력(覺力) 등의 법도 또한 다시 그러하니
이는 색성(色性)이 아니어서 취할 수 없지만
지혜의 힘으로 세간에 나타내 보이셨네.
내가 ‘중생이 얻은 바가 있다’고 말한 것은
다 모든 성(性)과 상(相)을 멀리 여읜 것이니
만일 나[我]를 계교하여 얻은 바가 있다면
사문의 과위(果位)를 얻었다고 하지 못하리라.
만일 법이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다면
누가 그 가운데서 얻는 것이 있겠는가?
중생의 얻음은 곧 얻은 것이 없다고 말하리니
이 법을 능히 깨달으면 얻음이라 이름하리라.
중생이 과위를 얻음을 가장 뛰어나다 이름하나
나는 중생을 중생이 아니라고 말하나니
일찍이 중생을 얻은 자는 있지 않았기에
그러므로 마땅히 과위 얻음 있지 않았네.
비유컨대 좋은 밭에 씨앗이 없으면
그 가운데서는 마땅히 싹이 날 수 없듯이
이와 같이 중생도 얻을 수 없으니
어찌 마땅히 고요함에 이를 수 있겠는가.
일체 중생의 자성은 고요하나
일찍이 그 근본을 얻음이 없었나니
만일 이 법을 관찰할 수 있다면
나는 ‘길이 고요하여 남김이 없다’고 말하리라.
과거의 모든 백천만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들을 다함없이 제도하셨으니
이 중생들은 참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구경엔 고요하여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네.
일체의 모든 법은 모두 사라지는 모양[相]이요,
일찍이 생함을 얻을 수 없었으니
만일 이와 같은 법을 관찰할 수 있다면
저 사람은 삼계(三界)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나는 모든 도(道)를 말하는 데 장애가 없으며
능히 모든 집착을 여의어서 매우 즐거워할 만하니
백천만 겁에도 매우 얻기 어려운 것이기에
이에 옛적 연등불(然燈佛) 때부터
가장 뛰어난 무생인(無生忍)을 능히 일으켜서
장애를 영원히 끊어 남겨둠이 없었네.
청정한 생각 얻어 생명으로 삼았고
일체의 모든 그릇된 소견을 영원히 떠나서
저 악취(惡趣) 없는 곳에서 항상 안락하여
용맹스레 걸림이 없는 법을 알 수 있었네.
모든 행(行)에 집착 않고 해탈 얻어
백천 겁(劫)이 지나도 두려움 내지 않고
모든 변재(辯才)를 능히 얻어 또한 어렵지 않으며
가없는 백천 다라니(陀羅尼)를 얻어
다라니의 모든 의취(義趣)를 이해하였으므로
빠르게 걸림이 없는 법을 깨달을 수 있었네.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나니, 2백 비구 증상만(增上慢)인 자들은 모든 법을 받지 않고도
마음이 해탈을 얻었으며, 6천 보살들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그때에 우바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하며, 어떻게 받들고 지니오리까?”
부처님께서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결정비니(決定毘尼)』이며, 또한 『파괴일체심식(破壞一切心識)』이라 이름할 것이니, 마땅히 받들어 지녀야 하느니라.”
그때에 우바리와 문수사리와 일체의 대회(大會)에 있는 모든 하늘과 세간의 사람들과 아수라 등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는 모두 크게 기뻐하며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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