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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873 불설개각자성반야바라밀다경(佛說開覺自性般若波羅蜜多經) 4권

by Kay/케이 202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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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불설개각자성반야바라밀다경(佛說開覺自性般若波羅蜜多經) 4

 

개각자성반야바라밀다경 제4권

유정 등 한역
장순용 번역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의 친근히 해야 할 선지식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듣고 받아들이는 친근[聽受親近]이며, 둘째는 일을 받아 용(用)을 지음으로써 법을 배우는 친근[承事作用學法親近]이며, 셋째는 수행으로 진보해 나가는 친근[修行進向親近]이며, 넷째는 친근(親近)이며, 다섯째는 큰 친근[大親近]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의 친근히 해야 할 선지식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듣고 받아들이는 친근이며, 둘째는 일을 받아 용(用)을 지음으로써 법을 배우는 친근이며, 셋째는 수행으로 진보해 나가는 친근이며, 넷째는 친근이며, 다섯째는 큰 친근이다.
이처럼 선지식을 친근할 때 보살마하살은 해탈방편으로써 섭수(攝受)하게 되며, 곧 능히 많은 복을 낳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신속히 성취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色法)에 대해서 마땅히 여래를 공양하는 다섯 가지가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갖가지로 찬탄하고 공손히 믿는 공양[種種讚歎恭信供養]이며, 둘째는 청정하게 이양(利養)하고 공손히 믿는 공양[以淸淨利養恭信供養]이며, 셋째는 수행으로 진보해 나가는 공양[修行進向供養]이며, 넷째는 공양(供養)이며, 다섯째는 큰 공양[大供養]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識法)에 대해서 마땅히 여래를 공양하는 다섯 가지가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갖가지로 찬탄하고 공손히 믿는 공양이며, 둘째는 청정하게 이양(利養)하고 공손히 믿는 공양이며, 셋째는 수행으로 진보해 나가는
공양이며, 넷째는 공양이며, 다섯째는 큰 공양이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만약 이렇게 여래를 공양해서 이치대로 상응할 수 있다면, 곧 가없는 세계의 모든 불보살이 다 함께 칭찬하고 또한 세간의 천(天)ㆍ인(人)과 아수라 등에게 이양(利養)을 공급받을 것이다.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을 성숙시켜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함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신속히 성취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능히 보시바라밀다와 더불어 이치대로 상응할 수 있으니, 가령 상이 있는 보시[有相施]를 닦아도 신속히 보시바라밀다를 원만케 하고, 상이 없는 보시[無相施]를 닦아도 신속히 보시바라밀다를 원만케 한다.’
수보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보시를 닦거나 상이 없는 보시를 닦는 것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보시를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所解脫)의 보시도 얻을 수 있고 능해탈(能解脫)의 보시도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닦는 자가 색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보시를 닦는 보살마하살이란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보시를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보시도 얻을 수 없고 능해탈의 보시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이른바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본성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자가 색법에 대해서 상이 없는 보시를 닦는 보살마하살이란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이
식법(識法)에 대해서 능히 보시바라밀다(布施波羅蜜多)와 이치대로 상응할 수 있으면, 가령 상이 있는 보시를 닦아도 신속히 보시바라밀다가 원만해지고, 상이 없는 보시를 닦아도 신속히 보시바라밀다가 원만해진다.’
수보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보시를 닦거나 상이 없는 보시를 닦는 것이라고 하는가?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보시를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보시도 얻을 수 있고 능해탈의 보시도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닦는 자가 식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보시를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보시를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보시도 얻을 수 없고 능해탈의 보시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이른바 식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자가 식법에 대해서 상이 없는 보시를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능히 지계바라밀다(持戒波羅蜜多)와 이치대로 상응할 수 있다면, 가령 상이 있는 지계를 닦아도 신속히 지계바라밀다가 원만해지고, 상이 없는 지계를 닦아도 신속히 지계바라밀다가 원만해진다.’
수보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지계를 닦거나 상이 없는 지계를 닦는 것이라고 하는가?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지계를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지계도 얻을 수 있고 능해탈의 지계도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닦는 자가 색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지계를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지계를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지계도 얻을 수 없고 능해탈의 지계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이른바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본성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찰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자가 색법에 대해서 상이 없는 지계를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능히 지계바라밀다와 이치대로 상응한다면, 가령 상이 있는 지계를 닦아도 신속히 지계바라밀다가 원만해지고, 상이 없는 지계를 닦아도 신속히 지계바라밀다가 원만해진다.’
수보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지계를 닦거나 상이 없는 지계를 닦는 것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지계를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지계도 얻을 수 있고 능해탈의 지계도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닦는 자가 식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지계를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지계를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지계도 얻을 수 없고 능해탈의 지계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이른바 식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본성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찰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자가 식법에 대해서 상이 없는 지계를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능히 인욕바라밀다(忍辱波羅蜜多)와 이치대로 상응한다면, 가령 상이 있는 인욕을 닦아도 신속히 인욕바라밀다가 원만해지고, 상이 없는 인욕을 닦아도 신속히 인욕바라밀다가 원만해진다.’
수보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인욕을 닦거나 상이 없는 인욕을 닦는 것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인욕을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인욕도 얻을 수 있고 능해탈의 인욕도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닦는 자가 색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인욕을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인욕을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인욕도 얻을 수 없고 능해탈의 인욕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이른바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본성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찰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자가 색법에 대해서 상(相)이 없는 인욕을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능히 인욕바라밀다와 이치대로 상응할 수 있으니, 가령 상이 있는 인욕을 닦아도 신속히 인욕바라밀다가 원만해지고,
상이 없는 인욕을 닦아도 신속히 인욕바라밀다가 원만해진다.’
수보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인욕을 닦거나 상이 없는 인욕을 닦는 것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인욕을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인욕도 얻을 수 있고 능해탈의 인욕도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닦는 자가 식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인욕을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인욕을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인욕도 얻을 수 없고 능해탈의 인욕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이른바 식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본성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찰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자가 식법에 대해서 상이 없는 인욕을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능히 정진바라밀다(精進波羅蜜多)와 이치대로 상응할 수 있으니, 가령 상이 있는 정진을 닦아도 신속히 정진바라밀다가 원만해지고, 상이 없는 정진을 닦아도 신속히 정진바라밀다가 원만해진다’
수보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정진을 닦거나 상이 없는 정진을 닦는 것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정진을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정진도 얻을 수 있고 능해탈의 정진도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닦는 자가 색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정진을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정진을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정진도 얻을 수 없고 능해탈의 정진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이른바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본성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찰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찰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자가 색법에 대해서 상이 없는 정진을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능히 정진바라밀다와 이치대로 상응할 수 있으니, 가령 상이 있는 정진을 닦아도 신속히 정진바라밀다가 원만해지고, 상이 없는 정진을 닦아도 신속히 정진바라밀다가 원만해진다.’
수보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정진을 닦거나 상이 없는 정진을 닦는 것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정진을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정진도 얻을 수 있고 능해탈의 정진도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닦는 자가 식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정진을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정진을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정진도 얻을 수 없고 능해탈의 정진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이른바 식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본성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찰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자가 식법에 대해서 상이 없는 정진을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능히 선정바라밀다(禪定波羅蜜多)와 이치대로 상응할 수 있으니, 가령 상이 있는 선정을 닦아도 신속히 선정바라밀다가 원만해지고, 상이 없는 선정을 닦아도 신속히 선정바라밀다가 원만해진다.’
수보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선정을 닦거나 상이 없는 선정을 닦는 것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선정을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선정도 얻을 수 있고 능해탈의 선정도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닦는 자가 색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선정을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선정을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선정도 얻을 수 없고 능해탈의 선정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이른바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본성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찰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자가 색법에 대해서 상이 없는 선정을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능히 선정바라밀다와 이치대로 상응할 수 있으니, 가령 상이 있는 선정을 닦아도 신속히 선정바라밀다가 원만해지고, 상이 없는 선정을 닦아도 신속히 선정바라밀다가 원만해진다.’
수보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선정을 닦거나 상이 없는 선정을 닦는 것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선정을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所解脫)의 선정도 얻을 수 있고 능해탈(能解脫)의 선정도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닦는 자가 식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선정을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선정을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선정도 얻을 수 없고 능해탈의 선정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이른바 식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본성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찰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자가 식법에 대해서 상이 없는 선정을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능히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와 이치대로 상응할 수 있으니, 가령 상이 있는 반야를 닦아도 신속히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해지고, 상이 없는 반야를 닦아도 신속히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해진다.’
수보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반야를 닦거나 상이 없는 반야를 닦는 것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반야를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반야도 얻을 수 있고 능해탈의 반야도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닦는 자가 색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반야를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반야를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반야도 얻을 수 없고 능해탈의 반야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이른바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본성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찰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자가 색법에 대해서 상이 없는 반야를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능히 반야바라밀다와 이치대로 상응할 수 있으니, 가령 상이 있는 반야를 닦아도 신속히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해지고, 상이 없는 반야를 닦아도 신속히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해진다.’
수보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반야를 닦거나 상이 없는 반야를 닦는 것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반야를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반야도 얻을 수 있고 능해탈의 반야도 얻을 수 있으니, 이렇게 닦는 자가 식법에 대해서 상이 있는 반야를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반야를 수행해서 해탈을 구할 때는 소해탈의 반야도 얻을 수 없고 능해탈의 반야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이른바 식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본성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를 관찰해도 얻을 바가 없으니, 본성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자가 식법에 대해서 상이 없는 반야를 닦는 보살마하살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공삼마지(空三摩地)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무엇을 색의 공삼마지라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이른바 색에 대해서
성품 없는 공(空)을 관찰하고, 성품의 공도 마찬가지이고, 본성의 공도 마찬가지라서 온갖 반연된 일이 모두 심일경성(心一境性)1)에 안주하는 것이 바로 색의 공삼마지이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만약 색에 대해서 이렇게 실답게 공삼마지를 요달해 안다면,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무상삼마지(無相三摩地)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무엇을 색의 무상삼마지라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색에서 무성공(無性空)ㆍ성공(性空) 또한 그러하고, 본성공(本性空) 또한 그러함을 관하는 것이다. 만약 능히 이렇게 온갖 작의(作意)를 소멸한다면, 곧 색에 대해서 성품이 없는 상을 관찰하고, 성품이 있는 상도 마찬가지임을 관찰하고, 성품이 있고 성품이 없는 상도 역시 그러함을 관찰한다. 이처럼 성품 없는 상을 얻어서 식(識)의 따라다님을 여의고, 성품이 있는 상도 마찬가지로 식의 따라다님을 여의고, 성품이 있고 성품이 없는 상도 마찬가지로 식의 따라다님을 여의기 때문에 능히 심일경성(心一境性)에 안주한다. 이것이 바로 색의 무상삼마지이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만약 색에 대해서 이렇게 실답게 무상삼마지를 요달해 안다면,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무원삼마지(無願三摩地)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무엇을 색의 무원삼마지라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이른바 색에 대해서 공삼마지와 무상삼마지를 얻고 나면, 곧 색의 성품 없는 상을 관찰함으로써 반연된 행상(行相)을 쫓아다니지 않고, 성품 있는 상도 마찬가지로서 반연된 행상을 쫓아다니지 않으며, 성품이 있고
성품이 없는 상도 마찬가지로서 반연된 행상을 쫓아다니지 않기 때문에 능히 심일경성에 안주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색의 무원삼마지이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만약 색에 대해서 이렇게 실답게 무원삼마지를 요달해 안다면,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세 가지 뜻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실답지 않은 뜻[不實義]이며, 둘째는 파괴의 뜻[破壞義]이며, 셋째는 더러움이 있거나 더러움이 없는 뜻[有垢無垢義]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이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세 가지 뜻의 제행무상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세 가지 뜻의 ‘모든 행은 고통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집착이 없는 뜻[無取著義]이며, 둘째는 세 가지 상의 뜻[三種相義]이며, 셋째는 상속의 뜻[相續義]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이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세 가지 뜻의 ‘모든 행은 고통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세 가지 뜻의 ‘모든 법에는 나가 없다[諸法無我]’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성품이 없는 무아의 뜻[無性無我義]이고, 둘째는 성품이 있고 성품이 없는 무아의 뜻[有性無性無我義]이고, 셋째는 본성이 청정한 무아의 뜻[本性淸淨無我義]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이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세 가지 뜻의 제법무아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세 가지 뜻의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색 안에 성품이 없는 궁극적인 적정의 뜻[色中無性畢竟寂靜義]이고, 둘째는 성품이 있고 성품이 없는 적정의 뜻[有性無性寂靜義]이고, 셋째는 본성이 청정한 적정의 뜻[本性淸淨寂靜義]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이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세 가지 뜻의 열반적정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다 설하시자, 모든 보살마하살과 존자 수보리, 모든 필추(苾芻)ㆍ필추니(苾芻尼)ㆍ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와 일체 세간의 천(天)ㆍ인(人)ㆍ아수라(阿修羅)ㆍ건달바(乾闥婆) 등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믿고 받아들이고 봉행(奉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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