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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872 불설개각자성반야바라밀다경(佛說開覺自性般若波羅蜜多經) 3권

by Kay/케이 202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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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불설개각자성반야바라밀다경(佛說開覺自性般若波羅蜜多經) 3

 

개각자성반야바라밀다경 제3권


유정 등 한역
장순용 번역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色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 견법(見法)을 분명히 알아서 버리고 여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자성이 뒤바뀌는 견해[自性顚倒見]이고, 둘째는 유견(有見)이고, 셋째는 속이고 비방하는 견해[誣謗見]이고, 넷째는 견해[見]이고 , 다섯째는 큰 견해[大見]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識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 견법(見法)을 분명히 알아서 버리고 여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자성이 뒤바뀌는 견해이고, 둘째는 유견(有見)이고, 셋째는 속이고 비방하는 견해이고, 넷째는 견해이고, 다섯째는 큰 견해이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만약 이 다섯 가지 견해를 능히 버리고 여읠 수 있다면, 곧 모든 색의 자성에 대해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색 중의 색도 얻을 바가 없는 것이며, 만약 색의 색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색의 색으로서 얻을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색의 색이 얻을 바가 있는 것이라면 곧 저 색의 색으로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모든 색에 대해서 얻을 바가 있든 얻을 바가 없든 모든 종류의 색을 다 초월한다면, 곧 능히 출리할 수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성취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만약 이 다섯 가지 견해를 능히 버리고 여읠 수 있다면, 곧 모든 식의 자성에 대해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식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식도 얻을 바가 없는 것이며, 만약 식의 식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식으로서 얻을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식의 식이
얻을 바가 있는 것이라면 곧 저 식의 식으로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모든 식에 대해서 얻을 바가 있든 얻을 바가 없든 모든 종류의 식을 다 초월한다면, 곧 능히 출리할 수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성취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色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 의법(疑法)을 분명히 알아서 버리고 여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법에 대한 의심[法疑]이고, 둘째는 모든 취(趣)의 고통에 대한 의심이고, 셋째는 불보살법(佛菩薩法)의 적정(寂靜)에 대한 의심이고, 넷째는 의심이고, 다섯째는 큰 의심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 의법(疑法)을 분명히 알아서 버리고 여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법에 대한 의심이고, 둘째는 모든 취(趣)의 고통에 대한 의심이고, 셋째는 불보살법의 적정에 대한 의심이고, 넷째는 의심이고, 다섯째는 큰 의심이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만약 이 다섯 가지 의심을 능히 버리고 여읠 수 있다면, 곧 모든 색의 자성에 대해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색의 색도 얻을 바가 없는 것이며, 만약 색의 색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색의 색으로서 얻을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색의 색이 얻을 바가 있는 것이라면 곧 저 색의 색으로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모든 색에 대해서 얻을 바가 있든 얻을 바가 없든 모든 종류의 색을 다 초월한다면, 곧 능히 출리할 수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성취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만약 이 다섯 가지 의심을 능히 버리고 여읠 수 있다면, 곧 모든 식의 자성에 대해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식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식도 얻을 바가 없는 것이며, 만약 식의 식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식으로서 얻을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식의 식이 얻을 바가 있는 것이라면 곧 저 식의 식으로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모든 식에 대해서 얻을 바가 있든 얻을 바가 없든 모든 종류의 식을 다 초월한다면, 곧 능히 출리할 수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성취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색법에 대해서 만약 구하는 바가 있거나, 혹은 색에 대해서 법을 설하는 바가 있거나, 혹은 색에 대해서 몸ㆍ말ㆍ뜻의 업을 청정히 하는데, 바로 저 색에 대해서 언설한 바와 같고 칭찬한 바와 같다면, 이처럼 구하기 때문이고, 이처럼 법을 설하기 때문이며, 이처럼 몸ㆍ말ㆍ뜻의 업을 청정히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보살마하살이 저 색에 대해서 도리어 고통을 구한다면, 이런 보살마하살은 법을 올바로 설하지 못해서 몸ㆍ말ㆍ뜻의 업을 청정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비록 색에서 구하더라도, 색에 대해서 법을 설하더라도, 색에 대해서 몸ㆍ말ㆍ뜻의 업을 청정히 하더라도, 색에 대해서 언설한 바와 같지 않고 칭찬한 바와 같지 않다면, 이처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처럼 법을 설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처럼 몸ㆍ말ㆍ뜻의 업을 청정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색에 대해서 능히 이처럼 구할 수 있다면, 이런 보살마하살은 능히 법을 올바로 설해서 색에 대해서 몸ㆍ말ㆍ뜻의 업을 청정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이 식법에 대해서 만약 구하는 바가 있거나, 혹은
식에 대해서 법을 설하는 바가 있거나, 혹은 식에 대해서 몸ㆍ말ㆍ뜻의 업을 청정히 하는데, 바로 저 식에 대해서 언설한 바와 같고 칭찬한 바와 같다면, 이처럼 구하기 때문이고, 이처럼 법을 설하기 때문이며, 이처럼 몸ㆍ말ㆍ뜻의 업을 청정히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보살마하살이 저 식에 대해서 도리어 고통을 구한다면, 이런 보살마하살은 법을 올바로 설하지 못해서 몸ㆍ말ㆍ뜻의 업을 청정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비록 식에 대해서 구하더라도, 식에 대해서 법을 설하더라도, 식에 대해서 몸ㆍ말ㆍ뜻의 업을 청정히 하더라도, 식에 대해서 언설한 바와 같지 않고 칭찬한 바와 같지 않다면, 이처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처럼 법을 설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처럼 몸ㆍ말ㆍ뜻의 업을 청정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만약 식에 대해서 능히 이처럼 구할 수 있다면, 이런 보살마하살은 능히 법을 올바로 설해서 식에 대해서 몸ㆍ말ㆍ뜻의 업을 청정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평등계(平等界) 속에 머물고 싶어서 마음을 일으키는데, 저 색법에 대해서 신해(信解)를 일으킬 때라면, 곧 두 가지 안에서 두 가지로서 얻는 바가 있으니, 이른바 소신해(所信解)의 색과 능신해(能信解)의 색이다. 이 보살마하살은 바로 색에 대해서 소신해(所信解)를 따라 능신해(能信解)를 설하고, 능신해를 따라 소신해를 설하는데, 이런 보살마하살은 모든 색에 대해서 법을 올바로 설하지 못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소신해의 색과 능신해의 색은 다른 모습[異相]이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만약 색에 대해서 능신해와 소신해에 다른 상(相)이 있다면, 일체 중생의 갖가지 신해(信解)는 평등법 속에서 차별상(差別相)을 가히 보고
가히 얻는 것이니, 꿈 등의 반연할 바 없는 신해(信解)가 아니라서 얻을 수 있다. 이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범부나 이생(異生)은 모든 색에 대해서 실답다는 견해를 일으키기 때문에 분별없는 신해와는 이치대로 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만약 색에 대해서 소신해의 전변이 없다면, 이 때문에 일체 중생의 갖가지 신해도 다 평등하여 소신해 속에서 차별상을 볼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으니, 꿈 등의 반연할 바가 없는 신해와 같아서 얻는 바가 있다. 이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범부나 이생은 모든 색에 대해서 실답다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분별이 없는 신해와는 이치대로 상응한다. 그러므로 능신해의 색과 소신해의 색은 다른 모습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하고, 이렇게 보는 자는 다른 상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색에 대해서 능신해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 바로 소신해이니, 이 가운데서 설한 것은 뜻이 분명히 드러난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관찰한다면, 모든 설해진 것은 정설(正說)이 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색에 대해서 능신해와 소신해의 두 가지 법이 화합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니, 능(能)을 여의고 소(所)가 없어지면 연고[故] 아닌 것이 없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먼저 능신해의 색상(色想)에서 실답게 관찰하고, 다음에 다시 둘의 색상에서도 실답게 관찰하니, 이렇게 관찰하고 나면 일체의 색에서 모두 얻는 바가 없다. 만약 일체의 색에서 얻는 바가 없을 때는 곧 색 안의 동란(動亂)으로서 얻는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색 안의 동란으로 얻는 바가 있을 때는 곧 색의 동란상(動亂相)으로서 얻는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색의 동란상으로서 얻는 바가 있을 때는 곧 색의 동란법(動亂法)으로 모으는 바가 있는 것이며, 색의 동란법으로 모으는 바가 있기 때문에 곧 저
색에 대해서 동란이 없는 평등한 법으로서 모으는 바가 있는 것이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만약 이처럼 앞서 설한 대로 색에 대해서 모든 동란과 동란이 없는 법을 모으지 못한다면, 곧 색에 대해서 저 동란법과 동란이 없는 평등한 법으로서 의지함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일체의 불법을 닦아 모아서 유정(有情)을 성숙시켜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해야 하니, 그래야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신속히 성취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모든 색에 대해서 만약 이처럼 훌륭하게 깨달음을 열 수 있다면, 그때 모든 설해진 것은 바로 정설(正說)이 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평등계(平等界) 속에 머물고 싶어서 마음을 일으키는데, 저 식법에 대해서 신해를 일으킬 때면 두 가지 가운데 두 가지로서 얻는 바가 있으니, 이른바 소신해의 식과 능신해의 식이다. 이 보살마하살은 바로 식에 대해서 소신해를 따라 능신해를 설하고 능신해를 따라 소신해를 설하니, 이런 보살마하살은 모든 식에 대해서 법을 올바로 설하지 못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소신해의 식과 능신해의 식은 다른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만약 식 안에서 능신해와 소신해에 다른 상이 있다면, 일체 중생의 갖가지 신해는 평등법 속에서 차별상을 볼 수도 있고 얻을 수도 있으니, 바로 꿈 등의 반연할 바 없는 신해가 아니라서 얻을 수 있다. 이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범부와 이생은 모든 식에 대해서 실답다는 견해를 일으키기 때문에 분별이 없는 신해와는 이치대로 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만약 식에 대해서 소신해의 전변이 없다면, 이 때문에 일체 중생의
갖가지 신해가 다 평등하여 소신해에서 차별상을 볼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으니, 곧 꿈속의 반연할 바 없는 신해와 같아서 얻는 바가 있다. 이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범부와 이생이 모든 식에 대해서 실답다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분별없는 신해와 이치대로 상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신해의 식과 소신해의 식은 다른 모습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하고, 이렇게 보는 자는 곧 다른 모습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식에서 능신해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 바로 소신해이니, 이 가운데서 설한 것은 뜻이 분명히 드러난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관찰한다면, 모든 설해진 것은 정설(正說)이 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식에서 능신해와 소신해의 두 가지 법이 화합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니, 능(能)을 여의고 소(所)가 없어지면 연고 아닌 것이 없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먼저 능신해의 식상(識想)에서 실답게 관찰하고, 다음에 다시 둘의 식상에서도 실답게 관찰하니, 이렇게 관찰하고 나면 곧 일체의 식에서 다 얻는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일체의 식에서 얻는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동란(動亂)으로서 얻는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식의 동란으로서 얻는 바가 있을 때는 곧 식의 동란상으로서 얻는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식의 동란상으로 얻는 바가 있을 때는 곧 식의 동란법으로 모으는 바가 있는 것이며, 식의 동란법으로 모으는 바가 있기 때문에 곧 저 식 안에서 동란이 없는 평등법으로서 모으는 바가 있는 것이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만약 이처럼 앞서 설한 대로 식 안에서 모든 동란과 동란이 없는 법을 모으지 못한다면, 곧 식에 대해서 저 동란법과 동란이 없는 평등한 법으로서 의지함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일체의 불법을 닦아 모아서 유정을 성숙시켜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해야 하니, 그래야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신속히 성취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모든 식에 대해서 만약 이처럼 훌륭하게 깨달음을 열 수 있다면, 그때 모든 설해진 것은 정설(正說)이 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자법(慈法)을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올바른 법을 섭수하는 자[攝受正法慈]이며, 둘째는 세간의 온갖 즐거움을 섭수하는 자[攝受世間諸樂慈]이며, 셋째는 출세간의 뛰어난 묘락을 섭수하는 자[攝受出世勝妙樂慈]이며, 넷째는 자(慈)이며, 다섯째는 대자(大慈)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자법을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올바른 법을 섭수하는 자(慈)이며, 둘째는 세간의 온갖 즐거움을 섭수하는 자이며, 셋째는 출세간의 뛰어난 묘락(妙樂)을 섭수하는 자이며, 넷째는 자(慈)이며, 다섯째는 대자(大慈)이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비법(悲法)을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집착이 없는 비(悲)이며, 둘째는 화합의 비이며, 셋째는 여의고 흩어지는 비이며, 넷째는 비(悲)이며, 다섯째는 대비(大悲)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비법을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집착이 없는 비이며, 둘째는 화합의 비이며, 셋째는 여의고 흩어지는 비이며, 넷째는 비(悲)이고, 다섯째는 대비(大悲)이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희법(喜法)을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올바른 법의 청정함을 무너뜨리지 않고 수희(隨喜)해서 섭수하는 희이고, 둘째는 세간의 모든 즐거움을 무너뜨리지 않고 수희해서 섭수하는 희이고, 셋째는 출세간의 묘락을 무너뜨리지 않고 수희해서 섭수하는 희이고, 넷째는 희이고, 다섯째는 대희(大喜)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희법(喜法)을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올바른 법의 청정함을 무너뜨리지 않고 수희해서 섭수하는 희이고, 둘째는 세간의 모든 즐거움을 무너뜨리지 않고 수희해서 섭수하는 희이고, 셋째는 출세간의 묘락을 무너뜨리지 않고 수희해서 섭수하는 희이고, 넷째는 희이고, 다섯째는 대희(大喜)이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사법(捨法)을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올바르지 못한 견해와 온갖 잡염(雜染)을 없애는 사(捨)이며, 둘째는 일체의 과실(過失)을 멀리 여의어서 온갖 잡염을 없애는 사(捨)이며, 셋째는 일체의 공덕을 섭취(攝聚)해서 온갖 잡염을 없애는 사(捨)이며, 넷째는 사(捨)이며, 다섯째는 대사(大捨)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사법(捨法)을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올바르지 못한 견해와 온갖 잡염을 없애는 사(捨)이며, 둘째는 일체의 과실을 멀리 여의어서 온갖 잡염을 없애는 사(捨)이며, 셋째는 일체의 공덕을 섭취해서 온갖 잡염을 없애는 사(捨)이며, 넷째는 사(捨)이며, 다섯째는 대사(大捨)이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보시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서원(誓願)의 보시이고, 둘째는 재물과 무외(無畏)의 보시이고, 셋째는 법의 보시이고, 넷째는 보시이고, 다섯째는 큰 보시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보시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서원의 보시이고, 둘째는 재물과 무외의 보시이고, 셋째는 법의 보시이고, 넷째는 보시이고, 다섯째는 큰 보시이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지계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유정을 요익케 하는 계율[饒益有情戒]이며, 둘째는 정법의 계율[定法戒]이며, 셋째는 무루법의 계율[無漏法戒]이며, 넷째는 계율[戒]이며, 다섯째는 큰 계율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지계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유정을 요익케 하는 계율이며, 둘째는 정법의 계율이며, 셋째는 무루법의 계율이며, 넷째는 계율이며, 다섯째는 큰 계율이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인욕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원한과 해침을 견디는 인욕[耐怨害忍]이며, 둘째는 안온하게 고통을 받아들이는 인욕[安受苦忍]이며, 셋째는 제(諦)로 법을 관찰하는 인욕[諦察法忍]이며, 넷째는 인욕[忍]이며, 다섯째는 큰 인욕[大忍]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인욕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원한과 해침을 견디는 인욕이며, 둘째는 안온하게 고통을 받아들이는 인욕이며, 셋째는 제(諦)로 법을 관찰하는 인욕이며, 넷째는 인욕이며, 다섯째는 큰 인욕이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정진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해설하고 독송하고 사유하는 정진이며, 둘째는 일체의 과실을 멀리 여의는 정진이며, 셋째는 일체의 공덕을 섭취하는 정진이며, 넷째는 정진이며, 다섯째는 큰 정진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정진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해설하고 독송하고 사유하는 정진[解說讀誦思惟精進]이며, 둘째는 일체의 과실을 멀리 여의는 정진[遠離一切過失精進]이며, 셋째는 일체의 공덕을 섭취하는 정진[攝聚一切功德精進]이며, 넷째는 정진(精進)이며, 다섯째는 큰 정진[大精進]이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선정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잘 이해하나 문자를 여의지 않는 선정[善解不離文字定]이며, 둘째는 문자를 잘 여의어서 최초로 청정한 세간의 선정[善離文字最初淸淨世間定]이며, 셋째는 출세간의 선정[出世間定]이며, 넷째는 선정[定]이며, 다섯째는 큰 선정[大定]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선정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잘 이해하나 문자를 여의지 않는 선정이며, 둘째는 문자를 잘 여의어서 최초로 청정한 세간의 선정이며, 셋째는 출세간의 선정이며, 넷째는 선정이며, 다섯째는 큰 선정이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은 색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잘 이해하나 문자를 여의지 않는 선정이
의지하는 지혜[善解不離文字定所依止慧]이며, 둘째는 문자를 잘 여의어서 최초로 청정한 세간의 선정이 의지하는 지혜[善離文字最初淸淨世間定所依止慧]이며, 셋째는 출세간의 선정이 의지하는 지혜[出世間定所依止慧]이며, 넷째는 지혜[慧]이며, 다섯째는 큰 지혜[大慧]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식법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로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잘 이해하나 문자를 여의지 않는 선정이 의지하는 지혜이며, 둘째는 문자를 잘 여의어서 최초로 청정한 세간의 선정이 의지하는 지혜이며, 셋째는 출세간의 선정이 의지하는 지혜이며, 넷째는 지혜이며, 다섯째는 큰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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