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45권
불본행집경 제45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46. 보시죽원품 ②
그 당시 왕사성에는 가란타(迦蘭陀)라는 장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그 나라에서 소문난 큰 부자로서 재물이 많고 살림살이가 넉넉하였으며 부리는 이들도 많았으니, 마치 그 집은 북방의 비사문천(毘沙門天)의 궁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저 가란타의 죽림(竹林)은 이 장자의 소유였다. 성에서 멀지 않았으며 착한 사람이 거처하기에 알맞았다. 그 동산에는 도를 구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 오가며 지내고 있었는데, 그 중에 아기비가(阿耆毘伽)수나라 말로는 사명(邪命)이라 함라는 이름의 도인이 있었다.가섭유사(迦葉遺師)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때 4진(鎭)의 사대천왕들은 파란빛 몸의 야차들에게 일렀다.
“너희들은 빨리 가란타 죽림원에 가서 온갖 모래와 자갈, 가시덤불, 쓰레기, 흙무더기 등을 깨끗이 소제하고 움푹 패인 곳을 메워 평탄하게 만들고 정결하게 하라. 지금 부처님께서 그 동산에서 여름 안거를 하고자 하신다.”
파란빛 몸의 야차들은 사대천왕의 위엄이 깃든 가르침을 받들고 곧 아뢰었다.
“천왕의 교칙대로 서둘러 그 동산에 가서 깨끗이 소제하고 내지 모두 다 반듯하게 단장하겠습니다.”이때 아기비가의 도를 닦는 사람 하나가 새벽에 일어났다가 샛별이 돋으려 하는데, 파란빛 야차들 네 명이 와서 죽림원을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물었다.
“장로들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며 그대들은 누구십니까?”
그들은 대답하였다.
“우리들은 파란빛 야차들입니다. 사천왕께서 우리들을 여기 보내어 이 동산을 소제하고 내지 평평하고 바르게 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여래께서 여기서 여름 한철 동안 안거를 하실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들은 지금 이곳을 수리하는 것입니다.”이런 일을 본 아기비가 도인은 해가 뜨자 가란타 장자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일러 주었다.
“그대 큰 장자여, 당신은 아십니까? 지난밤에 샛별이 막 돋으려 할 때 나는 파란빛 야차들 네 명이 죽림원을 청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물었더니, 그들은 저에게 ‘우리들은 바로 파란빛 야차들인데 사천왕이 우리들을 여기 보내어 대나무 동산을 청소하라 하셨습니다. 세존께서 이제 여기서 안거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짐짓 여기 와서 이 동산을 수리하는 것입니다’고 답하였습니다.”그리고 또 아기비가 도인은 장자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먼저 죽림동산을 사문 구담에게 베풀어서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어쩌면 조금 있다가 마가다 빈두사라왕이 그 동산을 빼앗아 사문 구담에게 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그대 장자는 동산을 보시하는 공덕을 자신이 얻지 못하고 한갓 헛되게 손해만 볼 것입니다.”
가란타 큰 장자는 아기비가 도인에게서 이 말을 듣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는 반 유순쯤 길을 가다가 세존과 마주쳤다. 가란타 장자는 세존께서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단정하고 훌륭하여 모든 사람이 보면 누구나 기뻐하고, 나아가 모든 상호(相好)로 그 몸을 장엄하였는데 마치 뭇 별이 허공을 장엄한 것 같았다.
그는 이런 모습을 보자 곧 세존을 향해 깨끗한 마음을 일으키고 기쁨이 솟아나서 부처님께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금으로 된 물병을 들고 깨끗한 물을 부처님 손에 부었다.그때 장자는 이런 말을 하였다.
“어지십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왕사성에 살고 있는 가란타라는 사람입니다. 저에게는 죽림(竹林)이라고 불리는 동산이 하나 있습니다. 성에서 멀지도 않고 나아가 착한 사람이 편안히 거처할 만한 곳입니다. 제가 지금 그 동산을 세존께 받들어 올리오니, 세존께서는 저를 위하여 그 동산을 받아 주십시오. 저를 가엾게 여기시고 사랑하시어 그 동산을 받아 주십시오.”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 장자에게 이르셨다.
“만약 누군가가 부처에게 동산 숲이나 집, 혹은 의복이나 그 밖의 재물들을 조건 없이 보시한다면[空施] 그 물건은 천상과 인간 세상에서 곧 탑을 이루는 것이요, 다른 데 쓰이지는 않을 것이다.”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장자에게 이르셨다.
“그대가 만약 지금 저 죽림원을 사방의 승가에게 보시하면 현재나 미래의 일체 대중들이 모두 다 쓸 것이다. 그러니 그대에게 이렇게 은근하게 보시하기를 권하노라.”
가란타 장자는 부처님의 이런 말씀을 듣고 나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과 같이 하여 저는 감히 어기지 않겠습니다.”그리고 장자는 거듭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죽림원을 미래 3세의 일체 모든 승가에게 보시합니다. 그들이 모두 마음껏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제발 저를 위하여 그 동산을 받아 주십시오. 저를 가엾게 여기고 사랑하시어 그 동산을 받아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가란타 장자를 가엾게 여기신 까닭에 그에게서 죽림원을 받으시고서 곧 게송을 읊으시며 축원하셨다.
그 게송의 첫머리는 “온갖 나무가 섞인”이며……(중략)…… “하늘에 나리라”라고 읊은 내용이니, 이것은 바로 세존께서 가장 먼저 죽림원의 보시를 받은 인연이었다.
이때 세존께서는 왕사성 가란타 죽림원에서 큰 비구들 천 명과 함께 계셨으니, 이른바 모두가 옛날에는 소라 상투[螺髻]를 한 선인 범지들이었다가 출가한 장로들이었다.
47. 대가섭인연품(大迦葉因緣品) ①
이때 왕사성에서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곳에 신수립(新豎立)이란 마을이 하나 있었다.다른 논사들은 이렇게 말하였으나 마하승기사(摩訶僧祇師)는 또한 이렇게 말하였다. 마가다국 왕사성에 마하사타라(摩訶娑陀羅)수나라 말로는 대택전(大澤田)이라 함라는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바라문 마을이 하나 있었으니, 그 마을의 이름 역시 마하사타라였다.그 마을에 아주 큰 부자인 바라문이 살고 있었는데 니구로타갈파(尼拘盧陀羯波)수나라 말로는 감용수(堪用樹)라고 함라는 이름이었다. 이 장자는 큰 부자로서 재산이 넉넉하고 부리는 하인이 많았으며, 그 집은 북방 비사문천의 궁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 장자 바라문은 5백 의 마을을 거느리고 마음대로 처분하고 부렸으며 통제를 하였다.당시 마가다국의 빈두사라왕은 천 마리의 소가 보습을 매고 경작할 수 있는 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바라문은 그보다 단 하나의 숫자가 부족하였다. 왜냐 하면 빈두사라왕이 질투를 할 것이 두려웠던 까닭에 왕보다 일부러 하나 줄여서 소유하여 그 숫자를 천을 채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 바라문이 얼마나 많은 가축을 지니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그저 오직 연기와 불의 수로 그 양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며, 모두 25개의 창고에 돈을 쌓아 두고 있었다.
그 장자 바라문의 부인은 당시에 마침 임신을 하여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어느 날 부인은 그 동산에 들어가서 바람을 쐬며 노닐다가 필발라(畢鉢羅)나무 아래에 앉았다.그러다가 그 나무 아래에서 갑자기 산기를 느끼고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다. 아이는 생김새가 이 세상에 비길 데가 없을 정도로 매우 단정하고 어여뻐 누구든 아이를 보는 사람은 마음이 즐거워졌으니, 마치 황금으로 만든 상[金像]과도 같았다.
그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 그 나무 위에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하늘 옷 한 벌이 저절로 나타났다. 그러자 이것을 본 부모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하늘 옷은 아이의 복덕으로 생겨난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이 상서로운 조짐을 인연하여 아이의 이름을 필발라야나(畢鉢羅耶那)수나라 말로는 수하생(樹下生)이라 함라고 지었다. 아이는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나무를 인연하여 이름이 지어졌고, 사람들은 이 아이를 필발라야나라고 불렀다.
부모는 아이를 위하여 안아 주는 유모, 젖먹이는 유모, 놀아 주는 유모, 기르고 보살피는 유모를 네 사람 두어서 목욕하고 기르며 안아서 달래고 젖을 먹이며 키우게 하였다.
그 부모에게는 필발라야나가 오직 하나뿐인 아들이었기 때문에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았고 잠시라도 곁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어쩌다 아이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언짢아질 정도였다.이렇게 복덕의 인연으로 잘 자라난 필발라야나는 무럭무럭 자라서 오래지 않아 지혜를 성취하였고, 점점 커 가면서 걷거나 달리기도 잘하게 되었다. 부모는 아이가 여덟 살이 되자 그에게 바라문계를 받게 하고, 곧 부모의 가업(家業)을 맡기고서 여러 가지 기술과 예능과 제사 법식을 남김없이 가르쳤다. 즉 글씨ㆍ그림ㆍ산수ㆍ도장 새기는 것을 비롯하여 4위타론(韋陀論:베다론)ㆍ모든 수기법(授記法)ㆍ웅변술ㆍ무기 쓰는 법ㆍ대주술법(大呪術法)ㆍ운율학ㆍ여러 가지 문장ㆍ5행의 별자리ㆍ음양(陰陽)의 도수(度數)ㆍ흐르는 물로 하루 낮 하룻밤이 몇 시간인지 아는 법과 길흉(吉凶)을 아는 법 등이었다.
또한 필발라야나는 땅이 흔들리는 현상을 알았고, 우레와 천둥 소리, 새들의 지저귐이나 날고 뛰는 동물들의 동향으로 어떤 변고가 일어날지 점을 칠 줄 알았다. 또한 점성술에 밝았고 모든 기술과 예능을 알았으며, 남자와 여자의 관상을 알았고 가축들에 대해서도 점을 쳤으며, 사람들이 깨끗하게 물로 씻는 청정한 행을 알았고, 물을 받는 법과 씻는 법, 재[灰]를 받는 법 등을 알았으며, 노랫소리를 듣고 길상한 조짐이나 성쇠(盛衰)의 조짐을 알았고, 재앙을 피하여 불의 신과 대인(大人)과 하늘에게 제사하는 법을 완전히 다 통달하였다.
이미 스스로 배우고 나서 또 남에게 가르칠 줄 알았으며, 남에게서 물건을 받을 때와 다른 이에게 물건을 줄 때를 모두 다 배웠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그가 모르는 것이 없었고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으니, 지혜가 빠르고 민첩하여 영리하고 총명하며 말솜씨가 능란하였고, 능숙하고 뛰어난 재주가 많았다.
필발라야나 동자는 성품이 소탈하고 검소하며 정직하여 항상 세간을 싫어하며 욕망에 물든 즐거움이 부정한 줄 알고 버리고 떠나려는 마음을 내었다. 옛날에 일찍이 모든 불 세존을 뵙고 그 곁에서 모든 선근(善根)을 심고 모든 공덕을 닦아 이미 성취하였으며, 모든 식상(食相)을 알고 마음으로 열반문을 향하고자 하여 항상 출가를 구하고, 온갖 번뇌를 버리고 일체 세간의 유위(有爲)를 받지 않고, 일체의 생ㆍ노ㆍ병ㆍ사를 받지 않았었다. 그는 과거 세상에서부터 수행하여 모든 업에 번뇌가 엷었고 이러한 지혜의 힘으로 인연하여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지위가 무르익기에 이르렀다.한편 필발라야나 동자의 부모는 아들이 점차 나이 들어 장성해 가자 세상의 욕망을 즐길 나이가 되었음을 알고서 아들에게 말하였다.
“필발라야나야, 나는 너를 위하여 며느리를 들여서 너를 섬기게 하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부모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장가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범행을 닦고 싶습니다.”그러자 부모가 말하였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그렇다면 너는 먼저 자식을 낳아서 대를 이은 뒤에 마음대로 범행을 닦아라. 왜냐 하면 세상에 전해 내려오는 말에 ‘만약 사람이 자식이 없어 대를 잇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천상에 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은 대답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 저에게는 대를 이어 전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또 뒤를 이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꼭 범행을 닦겠습니다.”
부모는 다시 거듭 아들에게 말하였다.
“사랑하는 아들아, 반드시 아내를 맞아서 대를 이어야 한다. 우리 집안이 후손이 끊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필발라야나 동자는 부모들이 이렇게 거듭거듭 번거롭게 채근하자 염부단금(閻浮檀金)을 기술자에게 가져가 여자의 상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황금 여자상이 다 만들어지자 그는 부모에게로 그것을 가져가 보이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5욕락을 누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직 범행을 닦기만을 원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부모님께서 저로 하여금 아내를 맞아들여 대를 잇게 해야겠다면 염부단 황금 여인상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찾아주십시오.”필발라야나 동자의 부모는 아들로부터 이런 조건을 받고 나자 근심걱정이 일고 불안에 사로잡혀 이렇게 생각하였다.
‘대체 어디 가서 염부단 황금 여인상과 똑같은 처녀를 찾는단 말인가?’
구로타 대바라문은 누각 위에 앉아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묵묵히 앉아 있었다.마침 이때 그 집안의 스승으로서 항상 내왕하는 바라문이 그를 찾아왔다. 스승 바라문은 그 집에 들어오자 곧 부유한 구로타 바라문을 위하여 축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큰 시주(施主)시여, 모쪼록 그대의 모든 재산이 더욱 불어나며 상서로운 과보가 더욱 커져 조금도 부족함이 없기를 기원합니다. 부인과 자식들도 부디 더욱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내 집안 사람에게 물었다.
“너희 집 주인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집안 사람은 대답하였다.
“대바라문이여, 우리 주인께서는 지금 누각 위에 계시는데 걱정이 너무나 커서 수심에 싸여 조금도 즐거워하지 않고 말씀도 없이 앉아 계십니다.”스승 바라문은 구로타 바라문에게 가서 말하였다.
“원하건대 대시주여, 집안의 살림살이가 이전보다 더욱 불어나길 기원합니다. 밤에 누울 때에는 먹은 것이 소화가 잘 되십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밤에 즐기실 때 매우 즐겁고 흡족하십니까?”
그러나 주인인 바라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스승인 바라문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지금 어찌하여 묵묵히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하여 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슨 까닭에 그대는 지금 나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그러자 구로타 바라문은 그 스승 바라문에게 아들과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면서 이렇게 하소연하였다.
“내 지금 어디를 가서 이런 염부단 황금빛을 띤 여인상과 똑같은 처녀를 찾아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스승 바라문은 대답하였다.
“그대 큰 시주 바라문이여, 걱정하지 말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지금까지 나의 시주자가 되어 내게 필요한 옷이며 음식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내 이제 그대를 위하여 이런 염부단 황금상과 똑같은 처녀를 찾아보겠습니다. 내가 반드시 찾아낼 터이니 그대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저 길을 다닐 때 필요한 양식과 길동무를 나에게 제공해 주기만 하면 나는 그들과 함께 사방을 두루 다니며 찾아내겠습니다.”
구로타 바라문은 이 말을 듣고 그의 말대로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었다.
그리하여 스승 바라문은 여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준비물을 받아 들고서 곧 출발하였다. 그는 네 가지 빛깔의 신명 일산[神明繖蓋]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로 화려하게 장식을 하였다. 신명을 세우고 그 앞에는 온갖 음악을 울리면서 앞뒤로 에워싸게 하였다. 그는 하나의 일산 아래에 금을 두드려 신명(神明)의 얼굴을 만들고, 어떤 것은 은으로 만들고, 또 어떤 것은 파리 보석으로 신명의 얼굴을 만들고, 혹은 또 유리 보석으로 신명의 얼굴을 만들어서 세 개의 일산은 각기 다른 곳으로 가게 하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들고 가기로 하고 각자 다른 길로 가는 사람에게 일렀다.
“그대들은 어느 마을이나 읍에 이르거든 그 마을의 모든 여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널리 고하여라.
‘이 신명에게 어느 여자가 공양을 베풀 것인가? 만약 공양을 하게 되면 그 여자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서 그대들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그 여자들 가운데 금빛을 띤 여자가 있거든 그대들은 그 여자의 성명과 주소를 묻고 급히 서둘러 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곧 길을 나누어 떠나갔다.그 스승 바라문은 곧 자신도 하나의 신명 일산을 자루에 넣고 식량거리를 함께 챙긴 뒤에 다른 지방으로 떠나갔다. 그리하여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다녔는데, 성ㆍ읍ㆍ왕궁ㆍ여염ㆍ거리 등 그는 자기가 들어가는 곳이면 어디서든 음악 소리를 흘려서 신명을 즐겁게 하였고, 음악 소리를 들은 여자들은 모두 모여들었으며, 여자들이 모이면 그는 자세하게 살펴보았다.그리고 그는 자루에서 신명을 꺼내어 여자들에게 보여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 모든 처녀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신명에게 공양하라. 만일 어떤 여자든 이 신명에게 공양을 올린다면 그 여자는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처녀들은 곧 그 신명에게 공양하려고 온갖 바르는 향ㆍ가루향ㆍ꽃다발ㆍ뿌리는 꽃들을 자기 집에서 들고 나왔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점차 비야리성에 이르게 되었다.그 비야리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라비가(迦羅毘迦)수나라 말로는 적황색(赤黃色)이라 함라는 이름의 큰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에는 또 매우 부유한 부자 바라문이 한 사람 살고 있었으니, 이름이 가비라(迦毘羅)수나라 말로는 황적(黃赤)이라 함였다. 그 바라문은 큰 부자여서 재물이 많고 부리는 사람도 많았는데, 그의 집은 북방의 비사문천 궁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 바라문에게는 발타라가비리야(跋陀羅迦卑梨耶)수나라 말로는 현색황녀(賢色黃女)라고 함라는 이름의 딸이 하나 있었다. 이 여자는 아름답고 단정하기 그지없어서 그녀를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였고, 그의 미모는 세상에 비할 곳이 없었다. 키가 작지도 크지도 않았으며 뚱뚱하지도 야위지도 않았고, 피부가 너무 희거나 검지도 않았고 붉거나 푸르지도 않았다. 성년의 나이가 되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 여인[玉女寶]이 되기에 아주 적당한 여인이었다.마침 그때 비야리성은 연화(燃火)라는 명절이어서 5백 명의 처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처녀 발타라도 그 축제에 참여하고 있었다. 일산과 신명을 가진 스승 바라문은 그 처녀들에게로 다가가서 자루 속에서 신명을 꺼내 모든 처녀들에게 보이고 말하였다.
“너희 처녀들은 보아라. 이것은 가장 훌륭하고 미묘한 천신(天神)이다. 그대들은 모두 이 천신에게 공양하고 제사하라. 어떤 여자든지 이 신명에게 공양하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이다.”그러자 모든 처녀들은 제각각 온갖 가루향ㆍ바르는 향ㆍ꽃다발ㆍ흩뿌리는 꽃들을 가지고 급히 그 신명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처녀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이 하늘 신명에게 공양하겠다며 다투었지만 저 발타라가비리야만은 그 신명 근처에도 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친구들이 억지로 그녀를 신명 근처로 끌고 갔다. 발타라가비리야가 신명 곁에 오자 그 처녀의 위엄 있는 빛의 힘으로 그 염부단 황금으로 만든 여인상은 이내 빛을 잃고 흐려졌다.이때 그곳에 있던 발타라가비리야는 그 모든 처녀들 틈에서 온 힘을 다해 몸을 뿌리쳐 나와 자기 집으로 달려가서 부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제발 저를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마세요. 왜냐 하면 저는 지금 다른 이를 남편으로 삼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범행을 닦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러자 그 여자의 형제들이 서로 그녀를 부르며 말하였다.
“우리도 너와는 잠시도 이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너를 시집 보내지 않는다면 그건 도리가 아니다. 혹시라도 세상 사람들에게 ‘이 여자의 형제들은 그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품고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출가시키기를 원하지 않은 것이다’고 의심받을까 두렵구나.”그리고 다시 형제들은 말하였다.
“너는 걱정하지 말아라. 만약 너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너를 위하여 그에게 엄청난 돈을 요구할 것이다. 만일 그 사람이 그토록 엄청난 돈과 물건들을 지불하지 못한다면 너는 저절로 집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형제들은 누구든 이 여자를 원하는 이가 있으면 곧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 우리 자매를 원한다면 아주 질 좋은 금덩어리를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서 오라. 그러면 우리 자매는 그에게 시집가겠다.”한편 그곳에서 처녀를 찾아 염부단 황금으로 만든 여인상을 들고 다니던 스승 바라문은 그 발타라가비리야를 보고 나서 다른 여자에게 물었다.
“이 여자는 누구며 어느 집 딸인가?”
여자들은 대답하였다.
“여기 가장 유명한 부자 바라문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가비라입니다. 그 여자는 그 바라문의 딸입니다.”그 스승 바라문은 이 이야기를 듣고 나자 날이 저물어 황혼이 찾아올 때에 부자 바라문인 가비라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하여 하룻밤 묵고 가기를 청하였고, 그 집의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여 숙소를 빌려 주었다.
스승 바라문은 그날 밤 그 바라문의 집에서 묵고 난 뒤에 밤이 지나 아침이 되자 아침 일찍 가비라 바라문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 그 앞에서 축원하였다.
“원하옵건대 그대 바라문의 집은 언제나 번창하소서.”
이렇게 축원하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자 가비라 바라문이 스승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난밤에 편안히 쉬셨습니까? 잠자리는 괜찮았습니까?”
그러자 그 손님으로 온 스승 바라문은 대답하였다.
“저는 지난밤 매우 편안하고 쾌적하였고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이때 그 집 딸 발타라가비리야가 새벽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부친 에게 와서 그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섰다.
처녀를 찾아다니던 바라문은 가비라에게 물었다.
“훌륭하신 그대여, 이 처녀는 누구입니까?”
가비라는 대답하였다.
“저의 딸입니다.”
스승 바라문은 다시 물었다.
“이 처녀는 혼처를 정하였습니까?”
가비라는 또 대답하였다.
“아직 아무 곳에도 혼처로 약속한 곳이 없습니다.”그러자 스승 바라문은 곧 주인인 가비라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그대 바라문이여, 마가다국에 마하사타라라고 하는 큰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 역시 마하사타라라 이름하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 마을에는 니구로타갈파라고 하는 아주 부유하기 그지없는 바라문이 한 사람 살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름을 필발라야나 동자라고 합니다. 이 동자는 모든 이치를 스스로 알며 또 남에게도 가르칠 수 있을 정도입니다. 3위타에 환히 통달하였고, 또 『일사십명론(一事十名論)』ㆍ『니건론(尼乾論)』ㆍ『주서론(輈書論)』ㆍ『왕사론(往事論)』ㆍ『오명론(五明論)』 등은 한 구절이나 반 구절 심지어는 하나의 게송이나 반 게송에 이르기까지 환히 분별하고 있으며, 수기(授記)ㆍ세변(世變) 등의 64가지 논서와 대장부의 모든 특징도 잘 알고 있으며, 어떤 기술과 예능에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스승 바라문은 다시 주인에게 말하였다.
“이제 이 따님을 그 동자에게 보내어 혼인시키시기를 그대에게 권합니다.”
그러자 가비라 바라문과 그 자녀들은 스승 바라문에게 대답하였다.
“대바라문이여, 이 아이를 혼인시키려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내야 하는데 누가 그 돈을 내고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스승 바라문이 다시 물었다.
“얼마나 많은 재물을 요구하십니까?”
그들은 대답하였다.
“이 아이 몸만큼의 금(金)을 요구합니다.”그러자 스승 바라문은 자루에서 염부단 황금으로 만든 여인상을 꺼내어 그 처녀의 부모와 형제들에게 보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염부단 황금 여인상이라면 이 처녀와 딱 맞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들은 이 여인상을 받고 저 처녀를 주시오.”
그러자 그 처녀의 부모와 형제들은 생각하였다.
‘아마 그곳 사람들이 우리 딸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염부단금을 모아서 이 아이의 모습만한 크기로 만들었을 것이다.’그리고 그들은 함께 이런 생각을 하였다.
‘우리들이 이제 만약 이 염부단금으로 만든 여인상만 받고 그 집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직접 보지도 않고 또 그 나라의 예의범절이 어떤지도 모른 채 우리 딸을 그 집으로 시집보내었다가 나중에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 모른다. 이제 밀사(密使)를 보내어 그 집을 살펴보게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 스승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착한 사명(使命)의 바라문이여, 나는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 집 법도가 어떤지 보고 난 뒤에 딸을 출가시킬 것을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스승 바라문은 대답하였다.
“원하시는 대로 그렇게 하십시오.”그리고 스승 바라문은 주인과 작별인사를 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왔다. 그는 니구로타갈파 바라문에게로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착하고 훌륭하신 대바라문이여, 크게 기뻐하십시오. 내가 그 염부단 황금의 모습과 똑같은 여인을 찾아내었습니다. 그 여인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단정하기가 비길 데 없으며, 어떤 사람이든 그녀를 보면 누구나 좋아합니다.”그러자 대부호 바라문은 스승 바라문에게 물었다.
“대바라문이여, 그대는 어느 곳에서 그런 처녀를 찾아내었습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비야리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비라라는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 역시 가비라라고 하는 이름의 장자 바라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발타라가비리야라고 하는 딸이 있었는데 바로 그 처녀입니다.”필발라야나의 부모는 이 말을 듣고 온몸과 마음에 기쁨이 넘쳐흘러 주체할 수가 없었다. 곧이어 니구로타갈파 바라문은 곧 자기 마을에서 비야리성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반 유순 되는 지점마다 소떼 한 무리와 아울러 객사를 지어 놓았다. 이렇게 곳곳에 객사를 배치한 뒤에 니구로타 바라문은 소먹이는 사람에게 이렇게 일렀다.
“너희들은 각각 이렇게 준비하라. 만약 누구든지 비야리성에서 이곳으로 오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들은 그들이 필요한 모든 물건을 제공하여 그들을 영접하고 공양해 받들되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게 하여라.”한편 발타라비리야의 형제들은 집을 나와 마가다국 왕사성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들은 제일 먼저 첫 번째 소치는 목장에 당도하였는데 그곳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맞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당신들은 어느 먼 곳에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그리고 나서 곧 객사로 인도하고 온갖 향을 넣은 더운 물로 목욕하게 한 뒤 또 갖가지 향을 몸에 바르게 하고 온갖 귀한 옷을 입힌 뒤에 다시 여러 가지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워 주었다. 그리고 나서 이내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내어서 그들에게 먹게 하였으니, 그 음식이란 씹어 먹는 것, 깨물어 먹는 것, 핥아먹는 것 등의 갖가지 맛난 음식들을 모두 갖추었다.
그들이 마음껏 흡족하게 먹고 나자 소치는 이들은 말하였다.
“이곳은 바로 우리들의 소치는 목장입니다. 하룻밤 머무시고 내일 아침에 좋은 시간에 가셔도 좋습니다.”
그러자 그 나그네들은 물었다.
“이것은 누구의 목장입니까?”
소치는 이가 대답하였다.
“이곳은 대부호인 니구로타갈파 바라문의 목장으로 일부러 당신들의 여행을 위하여 세운 것입니다. 당신들이 먼길을 오느라 피곤하고 목마르거나 굶주릴까 염려해서, 그리고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할까 걱정하여서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나그네들은 하룻밤을 편히 자고 다음날 떠났다. 이런 차례로 두 번째 목장을 만났고, 다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목장에서도 앞서와 똑같이 사람들이 나와 그들을 맞아들이며 또 같은 말을 하였다.
“당신들은 어느 먼 곳에서 오셨습니까? 하룻밤 편안히 주무시고 다음날 좋은 시간에 떠나십시오.”그때 그 나그네들은 목장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와 같은 목장이 얼마나 있습니까?”
목장 사람은 대답하였다.
“저 마하사타라 마을에서 비야리성에 이르기까지 평균 반 유순 사이에 목장이 하나씩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발타라가비리야의 형제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 사람은 목장만 해도 이렇게 많은데 그 밖의 재물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우리의 누이를 그 집으로 시집보내어서 아내로 삼게 해야겠다.”그 형제들은 곧 사람을 보내어 대부호인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와서 우리 누이를 데려다 당신의 신부로 삼으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때 필발라야나 동자는 심부름꾼에게서 뜻에 맞는 여자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제 내가 직접 가서 그 여자를 만나 보아야겠다. 정말 그렇게 덕행과 지혜가 있는지를 확인해야겠다.’
그리고 곧 부모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제 마음은 정말 5욕락이 필요하지 않고 범행을 닦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른들께서 이제 굳이 저의 배필을 찾으셨다 하니 제가 직접 그곳까지 차례로 걸식하며 가서 그 여자가 심부름꾼의 말과 정말 다르지 않는지를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부모는 곧 아들에게 답하였다.
“너가 원한다면 직접 가서 보고 오너라.”
그리하여 그 동자는 곧 집을 떠나 차례로 걸식하면서 나아가 점점 가라비가촌으로 다가갔다. 당시 그 나라에서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걸식하러 오면 여자가 손수 음식을 가지고 나와서 그 사람에게 주는 법이 있었다.
그 발타라 여인도 곧 자기 집에서 손수 음식을 들고 나와서 그 나그네인 필발라야나 동자에게 건네주었다.그때 필발라야나는 그 처녀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여자가 바로 그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때 그 여자는 손수 그 동자에게 음식을 주고 나서 그 발에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섰다. 그러자 동자는 그 여자에게 물었다.
“그대 착한 아가씨여, 시집갈 곳이 정해졌습니까?”그 여자는 대답하였다.
“동자시여, 마가다국에 마하갈파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어떤 바라문촌이 있습니다. 그 마을에 부유한 바라문이 한 사람 살고 있는데 이름은 니구로타갈파라고 합니다. 그분에게 아들이 한 명 있는데 필발라야라고 한답니다. 저의 부모님은 저를 그이의 아내로 시집보내기로 정하셨습니다.”그러자 필발라야나는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착한 아가씨여, 내 듣건대 그 동자는 내심 다섯 가지 욕망을 행하기를 싫어하고 범행을 닦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곧 대답하였다.
“대바라문이여, 이제 그런 말을 들으니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저 역시도 다섯 가지 욕망이 싫고 범행을 닦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남의 아내로 정해진 것도 부모님의 뜻일 뿐, 나는 정말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이 억지로 저를 그의 아내로 만들려는 것일 뿐입니다.”그러자 이 말을 들은 필발라야 동자는 그 여자에게 물었다.
“그대 착한 아가씨여, 그대는 필발라야 동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 여자는 대답하였다.
“착한 동자시여, 나는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동자는 거듭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그대 착한 아가씨여, 내가 바로 그 필발라야나 동자입니다. 나도 실은 다섯 가지 욕망을 누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의 속마음은 범행을 닦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사정들은 모두가 나의 부모님과 권속들의 뜻일 뿐입니다. 실로 부모님들이 억지로 나에게 당신을 아내로 삼게 강요하시는 것입니다.”
발타라 여인은 이 말을 듣고 그 동자에게 말하였다.
“착하신 대바라문이여, 당신 말씀을 들으니 나는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당신이 정말 세상의 다섯 가지 욕망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제 오래 기다리지 말고 어서 나를 데려가십시오. 그래서 저 범행을 닦지 않는 세간 사람이 나를 찾아내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필발라야나는 이 말을 듣고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부모에게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진정으로 세상의 다섯 가지 욕망을 누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범행을 닦기를 원합니다. 두 분께서 저를 위하여 아내를 맞아들이게 하고 싶으시면 어서 서둘러 그 신부를 데려와 주십시오.”이때 필발라야나의 부모는 곧 가비라가 대바라문과 함께 언약을 맺고 재물을 건네고 그들이 요구하는 만큼 온갖 음식과 값진 영락과 묘한 보배옷들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길상하고 복된 날을 가려서 수많은 재물을 가지고 그곳에 가서 발타라가비라의 딸을 맞이하여 아들과 혼인시켜 아내로 맞아들이게 하였다. 신부를 맞아들인 뒤에는 한 방에 두 개의 침상을 놓았다. 이렇게 침상을 마련하자 두 사람은 한 방에 머물면서도 각각 몸과 마음을 단속하여 서로 애정에 물들거나 몸을 닿게 하지 않았다.그때 필발라야나의 부모는 이 사실을 알고 생각하였다.
‘저 두 사람이 같은 방안에 있으면서 서로 애정을 품지도 않고 몸을 닿게 하지도 않으니, 이 일이 어찌 된 노릇인가. 곧 다시 방편으로 침상 하나를 들어내고 침상 하나만을 남겨 두면 두 부부가 함께 잠들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자연히 서로 합할 것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오히려 서로 몸을 부딪치지 않았다. 필발라야나가 잠을 자면 발타라 여인은 곧 일어나 거닐었고, 발타라 여인이 누워서 잠이 들면 필발라야나가 곧 다시 거닐었던 것이다. 이렇게 서로 번갈아 침상을 쓰면서 몇 년이 지나도록 끝내 함께 침상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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