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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64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10권

by Kay/케이 2024.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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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10권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제10권

담무참 한역
김월운 번역

3. 필경방편처(畢竟方便處)
1) 생품(生品)보살의 생(生:태어남)을 간략히 말하면 다섯 가지가 있어 일체주(一切住:지위)와 일체행(一切行:수행)의 보살이 죄 없는 행[無罪行]으로써 모든 중생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나니, 첫째는 식고생(息苦生)이요, 둘째는 수류생(隨流生)이요, 셋째는 승생(勝生)이요, 넷째는 증상생(增上生)이요, 다섯째는 최후생(最後生)이다.보살은 원력이 자재한 힘으로 흉년드는 세상에 큰 물고기와 같은 몸을 받아 살로써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질병 드는 세상에는 큰 의원으로 태어나서 뭇 병을 치료하여 구제하고, 전쟁이 벌어진 세상에는 힘센 왕이 되어 좋은 방편의 성실한 말과 균등한 마음으로 구제하여 전쟁을 쉬게 하며, 속박되거나 매를 맞거나 핍박당하는 곳에서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왕가에 태어나서 바른 법으로 바르게 교화시키며, 삿된 견해에 사로잡힌 중생이 천신(天神)을 받들어 섬기면서 온갖 악한 짓을 하거든 원력이 자재한 힘 때문에 그 하늘에 태어나서 그들의 삿된 견해와 나쁜 짓을 멈추게 한다. 이와 같이 무량한 태어날 곳[生處]에 모두 가서 태어나나니, 이를 식고생(息苦生)이라 한다.보살은 원력이 자재한 힘으로 갖가지 중생, 즉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라 등이 서로 괴롭히거나 또는 모든 외도들이 온갖 삿된 견해나 나쁜 행을 일으키거든, 모두 거기에 태어나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바른 길로 들어가도록 인도하되 그들이 잘 따라하면 보살은 하지 않고 그들이 하지 않으면 보살은 한다. 또 착한 법으로 널리 설명해 준다. 이와 같이 종류에 따라 몸을 받되 무량(無量)에까지 이르나니 이를 수류생(隨類生)이라 한다.보살이 본성으로 수생(受生)하되 세간의 수명이나 색 등의 보(報)보다 뛰어난 것이 마치 「자타리품(自他利品)」에서 설한 것과 같이 하나니 이와 같이 수행하기를 다시 한량없이 하면 이를 승생(勝生)이라 한다.보살이 정심주(淨心住)로부터 최상보살주(最上菩薩住)에 이르기까지 곳곳마다에서 몸을 받아 수생했던 일은 앞의 「주품(住品)」에서 설한 것과 같거니와 염부제에서 자재하게 수생하거나 내지는 대자재하거나 또는 아직 구경지(究竟地)에 이르기 전의 수생하는 온갖 그 곳에서 기특하게 수생하면 이를 증상생(增上生)이라 한다.최상보살주(最上菩薩住)에서 수생하여 업을 조복시키고 보리의 못 살림을 증상하게 만족함으로써 찰제리나 바라문의 집에 태어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온갖 불사를 지으면 이를 최후생(最後生)이라 한다.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보살이 한결같이 이 다섯 가지로 수생함이 견줄 이도 없고 높을 이도 없다. 보살은 이 다섯 가지 수생을 인하여 빨리 아뇩다삼막삼보리를 얻는다.
2) 섭품(攝品)보살이 일체 주(住)와 일체 행(行)으로 중생을 균등하게 섭(攝:거둠)하는데 간략히 여섯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돈섭(頓攝)이요, 둘째는 증상섭(增上攝)이요, 셋째는 취섭(取攝)이요, 넷째는 구섭(久攝)이요, 다섯째는 불구섭(不久攝)이요, 여섯째는 후섭(後攝)이다.보살이 처음 발심하고 모든 중생에 대하여 부모라는 생각을 하고 힘에 따라 온갖 방편으로 안락하고 이익되게 하면 이를 돈섭(頓攝)이라 한다. 보살이 집안의 주인이 되거든 부모를 존중히 여기고 갖가지 방편으로 착한 법을 부지런히 닦으며, 때에 따라 공양하며, 은혜를 알아 은혜에 보답하며, 처자 권속을 살리고 가르치며, 그들이 범한 것에는 관대히 참아주며, 병이 나거든 돌보고 치료해 주며, 선법을 닦도록 권하고, 권한 뒤에는 더욱 늘어나게 하며, 노비와 일꾼들에게 균등한 마음으로 대하여 천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또 보살이 왕이 되거든 인민들을 거두어 법답게 바르게 교화하고 그릇된 벌을 가하지 않으며, 재물이나 법 모두로 이롭게 하며, 스스로의 경계만을 지킬 뿐 남의 땅을 침탈하지 않으며, 자기 능력에 따라 중생들로 하여금 선법을 닦게 한다.보살이 아버지가 되거든 다른 중생에 대하여도 편당(偏黨)함이 없거늘 하물며 자기 권속에 대하여 평등치 않겠는가? 말은 항상 부드러워 진실되고 거짓이 없으며, 온갖 죽임이나 결박이나 핍박 등의 고통이 절박한 곳엔 모두 가서 멀리 여의게 하나니, 이들을 증상섭(增上攝)이라 한다.두 가지 인연이 있어 무리들을 균등하게 거두나니, 첫째는 탐심(貪心)을 버리고 재물로써 이롭게 해 주어 빈궁을 여의게 함이요, 둘째는 정의(正義)로써 가르쳐 주고 법으로써 이익되게 하여 악하고 삿된 소견을 뽑아 주는 것이니, 평등한 마음으로 거두어 편당을 따르지 않으며, 법간(法慳)이 되지 않고 사권(師倦)에 빠지지 않으며, 저들[徒衆]게 공양을 구하지도 않고 닦기를 좋아하는 이를 막지도 않나니, 그의 복덕과 복덕 부치를 늘어나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아직 이치를 모르는 이는 일어나게 하고 이미 이치를 이해한 이는 늘어나게 하며 의심하는 이에게는 풀어주고 후회하는 이에게는 깨닫게 해 주며, 수시로 그에게 심심한 요의(要義)를 설해 주며, 그와 고락을 함께하되 마음에 증감이 없다.죄를 범하는 이가 있으며 평등한 마음으로 가르치고 깨우쳐 주되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찬탄해 준다. 병이 나면 구제하여 치료해 주어 걱정을 덜어준다. 낮은 생각과 낮은 정진과 낮은 지혜에 대하여 가벼이 여기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마땅함에 따라 마음 매어 둘 경계를 설해 주며, 때때로 참으면 번뇌가 없음을 가르쳐 주며, 자기와 동등한 이나 자기보다 수승한 이에게 수승한 공양을 닦으며, 비심(悲心)을 닦아 익히되 들뜨거나 요동치 않으며, 계견(戒見)을 성취하여 위의를 갖추어 정명(正命)을 지키며, 화평한 얼굴로 마주 보면서 먼저 말을 걸어 문안하며, 항상 선업을 닦아 방일하지 않는다.이러한 법으로 무리를 가르치고 또 스스로도 수행한다. 보살은 항상 무리를 거두는 것도 아니며, 또는 거두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 딴 길로 거두지도 않나니 이를 취섭(取攝)이라 한다. 하품[軌]으로 성숙한 중생이 아주 오랜 후에 맑아지면 이를 구섭(久攝)이라 하고, 중품으로 성숙한 중생이 오래지 않아 맑아지면 이를 불구섭(不久攝)이라 하고, 상품으로 성숙한 중생이 이 생에 족히 정정케 할 수 있으면 이를 후섭(後攝)이랴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로 중생을 균등하게 거두는 것이라 하니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보살이 이미 거두었고 장차 거두어 줄 것이고 이제 거두는 것이 모두 이 여섯 가지이어서 견줄 이도 없고 높을 이도 없다.보살이 이와 같이 균등하게 중생을 거두는 데에는 열두 가지 어려움[難]이 있으니, 첫째는 계를 범한 중생을 가르칠 것인가 버릴 것인가를 잘 관찰하는 일이요, 둘째는 중생들을 조복시키기 위한 고통스러운 방편행으로 스스로의 번뇌를 막는 일이요, 셋째는 재물은 적은데 구하는 이는 많을 때요, 넷째는 몸은 하나인데 여러 곳에서 동사(同事)하기를 원하는 때요, 다섯째는 청정한 업으로 인간과 하늘에 방일한 듯 몸을 받아나지만 그 속마음에는 조금도 방일함이 없는 일이요, 여섯째는 중생을 가없이 생각해주어 이익으로써 동사해 주는 일이요, 일곱째는 어리석고 첨곡(諂曲)한 이가 자기 몸에 해를 가하거든 그를 가르칠 것인가 버릴 것인가를 판단함이요, 여덟째는 생사의 허물을 보면서도 생사를 버리지 않는 일이요, 아홉째는 아직 정심(淨心)을 얻지 못한 이가 목숨이 마치려 할 때에 정념(正念)을 잃지 않는 일이요, 열째는 아직 정심을 얻지 못한 이가 몹시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어떤 이가 달라고 해서 주는 일이요, 열한째는 갖가지 다른 마음과 갖가지 다른 견해를 가진 이가 와서 제각기 구하거든 응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를 살피는 일이요, 열두째는 끝내 방일치 않으면서도 번뇌를 끓지 않음이다.보살이 모든 중생에 대하여 경중(輕重)을 가리지 않고 방편을 지으며, 혹은 사람을 살피어 자비를 행하며, 혹은 용맹한 방편으로 인연이 되어 주며 혹은 다른 서원을 닦으며 혹은 신심을 밝히며, 혹은 전일한 마음으로 사유하여 관찰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혹은 부드러우며, 혹은 평등함[捨]을 행하며 혹은 정진하며 혹은 교방편(巧方便)을 짓나니, 보살은 이와 같이 바르게 대치하는 교방편으로써 열두 가지 어려움을 스스로 헤치고 열어 마을에 후퇴함이 없다.
3) 지품(地品)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열세 가지 주(住)를 차례대로 일곱 가지 지(地)로 만드니, 여섯째 까지는 보살의 경지요, 나머지 하나는 보살과 여래가 함께 하는 경지로서 첫째는 종성지(種性地)요, 둘째는 해행지(解行地)요, 셋째는 정심지(淨心地)요, 넷째는 행적지(行迹地)요, 다섯째는 결정지(決定地)요, 여섯째는 결정행지(決定行地)요, 일곱째는 필경지(畢竟地)이다.종성주(種性住)를 종성지라 하고, 해행주(解行住)를 해행지라 하고, 정심주(淨心住)를 정심지라 하고, 증상계주(增上戒住)와 증상의주(增上意住)와 세 가지 증상혜주(增士慧住) 가운데 유개발무상주(有開發無相住)를 행적지라 하고, 무개발무상주(無開發無相住)를 결정지라 하고, 세 가지 결정됨 중의 첫째 결정인 무애지주(無礙智住)를 결정행지라 하고, 최상보살주(最上菩薩住)와 여래주(如來住)를 필경지라 한다. 여래주와 여래지에 관하여는 뒤의 건립품(建立品)에서 널리 설하리라.보살이 해행지(解行地)에서 환희지(歡喜地)에 들어갈 때 어떻게 악취(惡趣)의 과보를 여의는가? 이 보살이 해행지에서 세속의 정선(淨禪)에 의하여 보리의 부치[菩提具]를 모으고 백열 가지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위하여 비민심(悲愍心)을 닦으며, 나쁜 갈래의 중생을 위하여 오랜 동안 악도에 머물러 있기를 자기의 집같이 여기며, 여기에서 무상보리를 배웠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위하여 괴로움을 제거하는 원인이 되어 주는 일을 감당해내며, 모든 중생의 삼악도의 업을 청정한 마음으로 전부 대신 받아 주기를 원하며, 결국은 모든 선업을 수행하고 바른 원을 밖아 익히며, 세속의 정선과 바른 원의 힘으로 악도의 번뇌에 더럽힘으로 받은 몸을 오래지 않아 끊는다. 보살이 악도외 몸을 바꾸고는 모든 악도의 업을 전혀 행하지 않나니, 이를 보살이 모든 악취(惡趣)를 여의고 해행지를 지나서 정심지에 들어가는 것이라 한다.
앞의 주품(住品)에서 말한 정환희주(淨歡喜住)의 신(信) 등 열 가지 법이 이 지(地)에서 정대치(淨對治)와 정소치(淨所治)와 그 차제(次第)를 건립한다.어떻게 대치하는가? 첫째는 방일하여 보살계를 받지 않음으로써 믿음의 보리를 어기나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대치한다. 둘째는 모든 중생을 살해할 마음이 있음으로써 대비에 어긋나니 그러므로 비심(悲心)으로 대치한다.
셋째는 모든 중생에게 성내는 마음이 있음으로써 대자(大慈)에 어긋나나니, 그러므로 자심(慈心)으로 대치한다.
넷째는 명과 재물을 아껴 생각함으로써 보시에 어긋나나니 그러므로 혜시(慧施)로써 대치한다.
다섯째는 모든 중생에게 살림 도구[衆具]를 많이 구함으로써 불권(不倦:게으르지 않음)에 어긋나나니, 그러므로 불권으로 대치한다. 여섯째는 방편ㆍ지혜가 없으므로 지론(知論)에 어긋나나니 그러므로 지존으로 대치한다.
일곱째는 남을 잘 수순하지 않으므로 남에게 수순하는 일을 어기나니, 그러므로 세간을 앎으로써 대치한다.
여덟째는 선법을 닦는 일에 방일하고 태만하므로 참괴(慚愧)에 어긋나나니, 그러므로 참괴로 대치한다. 아홉째는 오랫동안 나고 죽으면서 끓임없는 고통을 받음으로써 용맹에 어긋나나니, 그러므로 용맹으로 대치한다. 열째는 부처님에 대하여 의혹을 일으킴으로써 공양에 어긋나나니 그러므로 공양으로 대치한다.이와 같이 열 가지 대치하는 법과 대치할 바에는 간략히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심정(心淨)이요, 둘째는 방편정(方便淨)이다. 앞의 세 가지는 심정이요 나머지는 방편정이다.
어떤 것이 차제(次第)인가? 보살이 보리를 받으면 괴로운 중생에 대하여 비심(悲心)을 일으키고, 비심을 일으켰기 때문에 중생을 제도하고자 자심(慈心)을 일으키고, 자심을 일으킨 까닭에 보시[惠施]를 하고, 닦기에 게으름이나 싫어함이 없고, 싫어함이나 게으름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경론을 알고, 경론을 알기 때문에 세간을 알아 세간에 수순하고, 세간에 수순하기 때문에 번뇌가 일어나면 부끄러운 생각을 내고,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번뇌를 따르지 않는 일에 용맹한 힘을 얻고, 용맹한 힘을 얻기 때문에 바른 방편을 닦아 선법이 늘어나고 뛰어난 이익을 얻어 여래께 공양한다.
이와 같은 열 가지 법으로 모든 지(地)를 깨끗이 한다.
4) 행품(行品)보살이 해행주(解行住)로부터 최상보살주(最上菩薩住)에 이르기까지 간략히 말하면 네 가지 행이 있으니, 첫째는 바라밀(波羅蜜)이요, 둘째는 보리분법(菩提分法)이요, 셋째는 신력(神力)이요, 넷째는 성숙중생(成熟衆生)이다.위에서 말한 여섯 가지 바라밀과 교방편(巧方便)바라밀과 원(願)바라밀과 역(力)바라밀과 지(智)바라밀은 바라밀행(波羅蜜行)이라 한다.앞에서 말한 열두 가지 교방편은 교방편바라밀이라 하고,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서원은 원바라밀이라 하고, 십력의 방편이 청정함을 역바라밀이라 하고, 모든 법의 부분(部分)을 아는 것은 지바라밀이라 한다.
제일의제를 알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 하고, 세속제를 알기 때문에 지바라밀이라 한다. 또 무량한 지혜를 교방편바라밀이라 하고, 증진하는 지혜를 구하기 때문에 원바라밀이라 하고, 온갖 삿된 마군과 외도가 파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역바라밀이라 하고, 지혜로 깨우치기 때문에 지바라밀이라 한다.앞에서 말한 염처[四念處] 등 삼십칠 보리분법(菩提分法)과 네 가지 구(求)함과 네 가지 여실히 앎[知]을 보리분법이라 하고, 앞에서 말한 여섯 가지 신통은 신력이라 하고,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무량 즉 조복계무량(調伏界無量)과 조복방편무량(調伏方便無量)은 성숙중생이라 하나니, 이와 같은 네 가지 행이 모든 보살행을 포섭한다.
세 아승기겁 동안 오래도록 수행하면 자성의 청정함이 세간의 다른 성문이나 연각보다 뛰어나며 대보리의 과를 거두나니, 보시 등 열 가지 법은 시도(時度)와 자성청정도(自性淸淨度)와 과도(果度)이다. 그러므로 바라밀이라 한다.모든 바라밀이 차례로 건립되는 데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대치(對治)요, 둘째는 인기(因起)요, 셋째는 보과(報果)이다.간탐ㆍ악업ㆍ진에ㆍ해태ㆍ난의(亂意)ㆍ우치의 여섯 가지 법은 보리를 장애하나니, 그 알맞은 바에 따라 육도(六度)로 대치하고, 나머지 바라밀은 모두 이 육바라밀에 섭속시키나니 이를 대치건립(對治建立)이라 한다.이 보살은 처음에 재물을 돌아보지 않고 그것을 버리고 출가한다. 출가한 뒤에는 보살계를 받고, 계를 지키기 위한 까닭에 인욕을 닦아 익히고 중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인력(忍力)이 청정해진다. 중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선법과 방편을 끊임없이 닦아 익히고 정진을 닦아 방일함이 없는 까닭에 능히 그 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마음이 이미 전일하게 되면 여실한 지혜를 얻는다. 이것이 인기건립(因起建立)이다.이 보살이 현재에 보시[惠施] 등의 선법을 닦아 익히면 미래 세상에 밖으로는 큰 재물을 얻고 안으로는 수명ㆍ용모ㆍ힘ㆍ안락함ㆍ변재 등 다섯 가지 좋은 과보를 얻나니, 계바라밀 등 다섯 가지를 구족히 닦으면 좋은 갈래에 태어나서 모든 중생들 가운데서 수명 등이 남달리 뛰어나리니 이를 첫째 구족이라 한다. 그들의 타고난[俱生] 선방편(善方便)을 싫어하지 않고 남의 침범을 잘 참고 중생을 괴롭히지 않으면 이를 제이의 구족이라 한다. 또 그들이 타고난 모든 방편을 견고하게 감당해내면 이를 제삼의 구족이라 하고, 그들이 타고난 티[塵穢]가 적은 자심(自心)으로 모든 이치를 알고는 모든 신동을 통달하면 이를 제사의 구족이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타고난 지혜가 늘어나고 넓어지던 이를 제오의 구족이라 하니, 이들을 보과건립(報果建立)이라 한다.저 네 가지 바라밀의 부류와 자성과 권속이 무진하면 이를 증상계학(增上戒學)이라 하고, 선바라밀은 증상의학(增上意學)이라 하고, 반야바라밀은 증상혜학(增上慧學)이라 한다. 이 삼학(三學)은 보살이 높이 증진하는 학문의 길이다. 이 삼학은 육바라밀을 거두되 견줄 이도 없고 높을 이도 없다.보살에게 네 가지 행이 있어 모든 일을 거두는 법을 간략히 설하리니, 첫째는 먼저부터 보리 선근을 익힘이요, 둘째는 중생을 이익되게 함이요, 셋째는 착한 법을 늘어나게 함이요, 넷째는 중생을 성숙시킴이다. 이와 같이 네 가지 행이 차례로 건립되는 것, 이것을 최상의 건립이라 한다.
5) 건립품(建立品)열셋째의 여래주(如來住)를 구경지(究竟地)라 한다. 제불과 세존에게 백사십 가지 함께하지 않는 법[不共法]이 있으니 이른바 서른두 가지 대인상(大人相)과 여든 가지 수형호(隨形好)와 네 가지 일체종청정(一切種淸淨)과 여래의 십력(十力)과 네 가지 무소외와 세 가지 염처와 세 가지 불호(不護:삼업을 조심하지 않음)와 대비(大悲)와 불망법(不妄法)과 단제제습(斷際諸習)과 일체종묘지(一切種妙智)이다.어떤 것이 서른두 가지 대인상인가? 첫째는 발바닥이 평평함이요, 둘째는 발바닥에 천 개의 고리무늬가 있음이요, 셋째는 가늘고 긴 손가락이요, 넷째는 통통한 발꿈치요, 다섯째는 손가락 발가락 사이의 그물 모양의 막이요, 여섯째는 손발이 부드러움이요, 일곱째는 통통한 장딴지가 이니연녹왕(伊尼延鹿王)과 같음이요, 여덟째는 복사뼈가 나타나지 않음이요, 아홉째는 반듯하게 서면 손이 무릎에 이름이요, 열째는 남근(男根)이 마음(馬陰)과 같이 감추어진 것과 같음이요, 열한째는 몸이 원만함이 니구루나무 같음이요,열두째는 몸의 터럭이 위로 누었음이요, 열셋째는 몸의 터럭이 오른쪽으로 돌았음이요, 열넷째는 몸이 금빛이요, 열다섯째는 둥근 빛이 한 길이요, 열여섯째는 피부가 보드랍고 때가 묻지 않음이요, 열일곱째는 두 손ㆍ두 발ㆍ두 어깨ㆍ목 등 일곱 곳이 풍만함이요, 열여덟째는 몸의 윗부분이 사자와 같음이요, 열아홉째는 팔과 팔뚝이 통통하고 원만함이요, 스물째는 뼈 사이가 풍만함이요, 스물한째는 몸이 통통하고 곧음이요, 스물두째는 치아가 사십 개요, 스물셋째는 치아가 가지런하고 조밀함이요, 스물넷째는 치아가 희고 맑음이요, 스물다섯째는 턱이 사자 같이 모남이요, 스물여섯째는 차츰차츰 좋은 맛을 얻음이요, 스물일곱째는 육계(肉髻)요, 스물여덟째는 넓고 긴 혀요, 스물아홉째는 범음(梵音)같은 음성이요, 서른째는 눈이 검푸름이요, 서른한째는 눈을 아래위로 껌벅임이 마치 소 같음이요, 서른두째는 미간백호(眉間白毫)이다.여든 가지 수형호(隨形好)라 함은 양쪽 손발의 스무 개 손가락 발가락의 손톱과 발톱, 양쪽 손발의 등과 바닥이 평평하고 풍만함, 두 복사뼈ㆍ두 무릎ㆍ두 넓적다리ㆍ두 어깨ㆍ두 팔뚝ㆍ두 팔ㆍ두 다리ㆍ두 볼기ㆍ장상(藏相:남근)ㆍ두 장딴지ㆍ두 옆구리ㆍ두 겨드랑ㆍ두 젖ㆍ허리ㆍ등ㆍ배꼽ㆍ목구멍 등이 모두가 묘하게 잘 생겼으니 이를 목 밑의 육십 가지 잘생김[好]이라 하고, 위아래의 치아ㆍ두 입술ㆍ두 잇몸ㆍ두 뺨ㆍ두 귀밑머리ㆍ두 눈ㆍ두 귀ㆍ두 눈썹ㆍ코의 두 구멍ㆍ이마의 양쪽 귀 등 이들은 목 위의 이십 가지 잘생김이라 한다.이러한 상(相:삽십이상)과 호(好:팔십종호)는 정심지보살이 비로소 얻은 뒤에 일체 지위에서 차츰 수승하고 청정해지다가 보리좌(菩提座)에 이르러서야 쾌정(快淨)을 얻으며, 나머지 네 가지 일체종청정(一切種淸淨) 등 불공법(不共法)은 쾌청이 만족해길 때에 얻는다.
근기가 낮은 이는 앞의 보살의 지위에서 성취했다가 정십지로부터 모든 수승한 정진을 일으킴으로부터 모든 수승한 정진을 일으킴으로부터 보살의 온갖 상호가 생긴다.또 갖가지 보리의 부치[菩提衆具]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나니 먼이란 아직 상호(相好)를 얻지 못한 이요, 가까운 이란 이미 얻은 이이다. 갖가지 업을 지어 갖가지 보(報)를 받는다는 것은 세존의 교화의 힘에 의해 말씀하신 바이니 무슨 까닭인가? 중생은 갖가지 나쁜 업을 행하기 때문에 갖가지 나쁜 보를 받나니, 진실하게 대치케 하기 위한 까닭에 갖가지 상호의 업을 설하며 갖가지 상호의 과보를 얻게 하니, 중생들이 듣고는 선한 법 닦기를 좋아하여 모든 나쁜 업을 여읜다. 상호는 수다라에서 설하신 것과 같다.
보살이 계를 지키고 인욕하고 보시하는 까닭에 발바닥이 평탄한 상호를 얻고, 부모에게 공양하고 괴로운 중생에게 구호자가 된 까닭에 발바닥에 고리무늬의 상호를 얻는다.중생을 해치지 않고 빼앗거나 훔칠 생각이 없으며 존중해야 할 곳에 먼저 묻고 문안하고 합장 공경하며, 아끼고 사랑하는 재물로써 공양하여 모든 교만을 깨뜨린 까닭에 손가락이 가늘고 긴 상호를 얻고, 위 세 가지 상호를 얻는 입을 묶어서 발꿈치가 통통하고 둥근 상을 얻으며, 사섭사(四攝事)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기 때문에 손발가락 사이에 망만(網縵)이 있는 상을 얻고, 존중해야 할 분을 위하여 몸을 씻겨 주고 발라 준 까닭에 손발이 보드라운 상을 얻는다.모든 선법을 닦아 더욱 전진하여 물러남이 없기 때문에 장딴지가 통통한 상을 얻고, 스스로가 바른 법을 받고는 널리 남에게 설해 주거나 법을 펴기 위해 분주히 달리기 때문에 복사뼈가 두드러지지 않는 상을 얻고, 차례차례 삼업을 청정하게 닦아 익히고 병든 이를 보살펴 약을 주어 모든 아만을 여의고 지족(知足)의 행을 닦아 익혔으므로 손이 무릎에 이르는 상을 얻는다.헤어진 이를 보면 법답게 화합시키고 부끄러워하는 법을 닦아 익히고 남에게 의복을 보시한 까닭에 마음장(馬陰藏)의 상을 얻고, 삼업을 깨끗이 닦고 남들도 닦게 하며 음식을 양에 맞추고 병자에게 약을 주며 어려운 업을 거두어 처리하고 어려운 재물을 거두어 모으며 사대가 늘건 줄건 바른 도리에 수순케 한 까닭에 몸매가 원만한 상을 얻는다.위의 장딴지가 통통한 업에 의하여 몸의 터럭이 위로 뻗는 상을 얻고 스스로가 선법을 닦아 지혜가 밝게 통달하여 모든 법의 미세한 이치를 깊이 생각하고는 존중해야 할 분에게 공양하기를 좋아하며, 같이 사는 이에게 선우(善友)로서 거두어 주어 진리에 들어오게 한 까닭에 낱낱 터럭이 오른쪽으로 도는 상을 얻는다.값지고 묘한 의복이나 음식이나 탈 것 등과 영락(瓔珞) 등 몸을 장엄하는 기구를 모든 이에게 보시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은 까닭에 몸 전체가 금빛인 상과 둥근 빛이 한 길인 상 등 두 가지를 얻고, 위에서 말한 낱낱 터럭이 오른 쪽으로 도는 상의 업에 의하여 피부가 보드라운 상을 얻고, 중생에게 균등히 베푸는 큰 모임을 열었기 때문에 일곱 곳이 풍만한 상을 얻는다.이미 일으켰거나 아직 일으키지 않은 중생에게 인도자[導首]가 되어 주되 아만을 여의고 그 성품이 부드러우며, 불선을 제거키 위차여 선법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몸의 윗부분이 사자와 같은 상을 얻고, 위의 손가락이 길고 가는 상의 업에 의하여 팔과 팔뚝이 원만한 상과 뼈마디가 원만한 상과 몸이 통통하고 곧은 상 등 세 가지를 얻는다.이간질을 하지 않고 헤어진 이를 화합시킨 까닭에 치아가 사십 개인 상과 치아가 가지런하고 조밀한 상 등 두 가지 상을 얻고, 욕계의 자비를 닦고 법의(法義)를 생각한 까닭에 치아가 희고 맑은 상을 얻고, 중생들이 구함에 따라 기꺼이 베풀어 주었기 때문에 뺨이 모난 상을 얻고, 수승한 법미(法味)를 베풀어 모든 맛을 파괴한 이를 위하여 맛을 밝혀 주었기 때문에 차례로 최상의 맛을 얻는 상을 얻고, 오계를 받아 지니고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어 항상 비심(悲心)으로 대법에 회향하기 때문에 육계와 넓고 긴 혀 등의 두 상을 얻나니, 이 육계상과 정수리가 보이지 않는 상[無見頂相]은 곧 한 상이다.항상 진실한 말과 사랑스러운 말과 때에 맞는 말과 법다운 말을 닦아 방편으로 설법하기 때문에 범음 같은 음성의 상을 얻고, 중생에게 두루 균등히 자심(慈心)의 행을 하는 것이 마치 부모에게 하는 것과 같은 까닭에 눈빛이 검푸른 상과 눈을 아래위로 껌벅이는 상 등 두 상을 얻고 진실한 덕이 있는 이를 보면 우러르며 찬탄한 까닭에 미간백호의 상을 얻나니 서른두 가지 거룩한 상이 별다른 인(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계를 지니기 때문이다.무슨 까닭인가? 만일 계를 범한 이는 하천한 사람의 몸도 받을 수 없는데 하물며 거룩한 모습[大人相]이겠는가? 이와 같이 널리 말하건대 낱낱 얻은 바는 모두가 제각기의 업에 따라 제각기 건립된 것이다.다시 또 재가와 출가보살이 네 가지 선(善)으로 업을 닦음에 힘입어[翼] 모든 대인상(大人相:거룩한 모습)을 얻나니, 결정되게 닦는 이는 발바닥이 평평한 상을 얻고, 전일한 마음으로 닦는 이는 발바닥에 천겁의 고리무늬와 장딴지가 통통한 상과 손ㆍ발가락 사이에 가는 망막의 상과 손발이 보드라움과 일곱 곳의 풍만함과 뼈 사이가 풍만함과 팔과 팔뚝이 통통하고 원만함과 몸이 통통하고 곧음과 혀가 길고 넓음 등 아홉 가지 상을 얻고, 항상 닦는 이는 가늘고 긴 손가락과 발꿈치의 통통함과 반듯이 서면 손이 무릎을 지남과 몸이 원만함과 치아가 고르고 조밀함 등 다섯 가지 상을 얻고, 죄 없이 닦는 이는 나머지 상을 모두 얻는다.모든 중생에게 분한 마음이나 성내는 마음이 없으면 손발이 보드라운 상과 피부가 곱고 보드라운 상 등 두 가지를 얻고, 차례로 닦을 때에는 장딴지가 통통한 상을 얻고, 환희한 광명과 음성으로 선심을 행하면 둥근 빛이 한 길인 상과 몸이 황금빛인 상과 치아가 희고 맑은 상과 미간백호 등 네 가지 상을 얻고, 칭찬을 듣고도 기뻐 들뜨지 않고 덮어 감춘 공덕으로는 마음장상을 얻고 닦은 선근을 보리에 회향하면 털이 위로 눕는 상과 치아가 사십 개인 상과 차례로 최상의 맛을 얻는 상과 육계상 등 네 가지를 얻고, 부지런히 정진하면 사자가 윗도리 모습[上身]과 뺨이 방정한 모습 등 두상을 얻고, 중생들의 마음을 편안케 하기를 마치 외아들 보살피듯 하면 치아가 고르고 조밀한 상과 머리칼이 검푸른 상과 굽어봄이 소 같은 상 등 세 가지를 얻고, 선한 법 닦기를 싫어함이 없으면 나머지 상을 얻나니, 이것이 네 가지 선으로 업을 닦아 서른두 가지 대인상을 얻는 것이라 한다.종성지(種性地)보살의 상호는 종자의 경지[種子處]이고 해행지(解行地)보살은 방편을 닦아 모으고 정심지(淨心地) 보살은 얻고 나머지 지위의 보살은 점점 청정하고 여래필경지(如來畢竟地)의 보살은 쾌정(快淨)하여 위가 없다.
이는 모든 상호를 하품ㆍ중품ㆍ상품의 중생을 위하여 설한 것이니, 나머지 모든 불법이 전부 거룩한 모습[大人相]을 얻게 하고 이것과 나머지 백사십 가지 상이 몸의 여러 부분에서 묘하게 잘 생겼으므로 잘생긴 모습[隨形好]이라 한다.간략히 말하면 모든 중생의 복덕의 모음이 한 모상(毛相)이 되고 모든 모상의 복덕의 모음이 하나의 잘 생긴 모습인 수형호가 되고, 모든 수형호의 복덕 모음이 늘어서 백배에 이르러야 한 상호가 되고, 백호상과 육계상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상의 공덕이 늘어서 천 배에 이르러야 백호상을 얻고, 백호상의 공덕이 늘어서 백천 배에 이르러야 육계상의 무견정상(無見頂相)이 되고, 백호상의 공덕이 늘어서 억 백천 배에 이르러야 비로소 여래의 법나음성상(法螺音聲相)을 얻나니, 여래께서 생각나는 대로 소리를 내시면 처한 범음(梵音)이 시방 무량세계에 이른다. 이와 같이 여래의 무량한 공덕무더기는 불가사의하다.다시 또, 상호를 얻는 선업에는 세 가지 무량함이 있나니 세 아승기겁에 닦아 익히는 것은 겁무량(劫無量)이라 하고, 모든 중생을 안락하게 하는 것은 심무량(心無量)이라 하며, 갖가지 선업을 닦는 것은 행무량(行無量)이라고 한다. 이렇게 무량한 복덕 부치를 닦아 익힘으로써 여래의 상호가 생긴다.네 가지 일체종청정이란 첫째는 신정(身淨)이요, 둘째는 경계정(境界淨)이요, 셋째는 심정(心淨)이요, 넷째는 지정(智淨)이다.
번뇌의 습기 자체를 여의어 남음이 없고 최상의 몸을 얻어 생멸에 자재하면 이를 신정이라 하고, 갖가지로 나타난 허깨비와 그리고 모든 경계에 자재하고 무애하면 이를 경계정이라 한다. 번뇌를 모두 여의어 선근이 성숙해지면 이를 심정이라 하고, 온갖 무명의 더러움을 버리고, 알아야 할 모든 경지에 대하여 걸림이 없고 자재하면 이를 지정(智淨)이라 한다.여래의 열 가지 힘[十力]이라 함은, 첫째는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이요, 둘째는 자업지력(自業智力)이요, 셋째는 선해탈삼매정수지력(禪解說三昧正受智力)이요, 넷째는 제근이둔지력(諸根利鈍智力)이요, 넷째는 종종해지력(種種解智力)이요, 여섯째는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이요, 일곱째는 지처도지력(至處道智力)이요, 여덟째는 숙명지력(宿命智力)이요, 아홉째는 생사지력(生死智力)이요, 열째는 누진지력(漏盡智力)이다.말씀으로 이야기한 것이 여(如)와 어기지 않으므로 다타아가타(多陀阿伽馱)라 하고, 맑거나 맑지 못한 과(果)가 차별된 인(因)에 의하는 것을 시처(是處:이치에 맞음)라 하고, 밝거나 맑지 못한 과가 차별된 인과 어기는 것을 비처(非處:이치에 맞지 않음)라 한다.증상만을 여읜 지혜를 여실지라 하나니, 앞의 「무상보리품(無上菩提品)」에서 설한 것과 같고, 일체지(一切智)와 무애지(無礙智)와 청정지(淸淨智)를 묶어서 이중상만지(離增上慢智)라 하고, 온갖 종류로 중생을 이롭게 하고 온갖 마원(魔怨)을 멀리 여의거나 승리를 얻는 힘을 감당하는 것을 힘[力]이라 하고,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 일을 닦아 익히되 욕구하는 대로 자재하는 것을 성취(成就)라 하고, 위없는 열반을 승묘(勝妙)라 하고, 팔성도를 얻어 온갖 뇌란(惱亂)과 공포를 여의면 안온(安隱)이라 한다.얻은 바를 스스로 아는 것을 스스로 안다[自知] 하고, 스스로가 얻은 법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의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연설하면 이를 범륜을 굴린다[轉梵輪]고 하니,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이 갖가지 번뇌와 어지러움에서 청정하고 적멸하고 청량하고 진실되게 처음으로 굴했기 때문이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전부 청정함을 얻게 하기 때문에 범륜(梵輪)이라 한다.최상의 교법을 얻어 위없는 대사의 말씀을 거두어 지니고, 스스로 얻은 바로써 외도를 파괴하며 온갖 외도의 이론에 겁을 내지 않으며, 온갖 이론에 뛰어나고 묘하고 가장 높으면서 사중(四衆)에게 설법하면 이것을 사자후(師子吼)라 하고, 스스로도 편안하고 남도 편안케 하며 나와 남이 함께 편안한 도리를 간략히 말하여 깨우쳐 주고 드러내어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설명해 주며, 또는 진리를 얻는 방편을 간략히 말해주어 하늘이나 인간 무리들의 구함이 모두 나에게서 얻어지게 하면 이는 방편을 얻음[得方便]이라 한다. 병에서 쾌차함을 얻듯이 번뇌를 제거하고 편안함을 얻게 하고는 다시 다른 이들을 위하여 다스리면 이는 전법륜(轉法輪)이라 하고, 모든 허망하고 삿된 스승으로 하여금 모든 물리치는 법을 얻어 모든 병에서 쾌차함을 얻게 하면 이를 사자후라 한다.만일 지은 업에 의해 성취된 것이 이미 멸했으면 이를 과거라고 하고, 만일 아직 짓지도 않았고 멸하지도 않아서 장차 지을 것이면 이를 미래라 하고, 만일 짓는 업이 지었으나 아직 멸한 것이 아니고 지금 짓는 바이면 이를 현재라 한다.행(行)으로 분별하건대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신ㆍ구 의의 업이요, 법을 받아들이는 동기로써 분별하건대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어떤 이는 법을 받아 현세의 즐거움과 타세(他世)의 괴로운 과보를 얻기도 하나니, 널리는 앞의 「자타리품(自池利品)」에서 설한 것과 같다.현세와 후세의 편안함과 편안치 못함에 대하여 그 알맞은 바에 따라 설법해서 이익되게 하면 이를 처방편(處方便)이라 하고, 중생수(衆生數:생명체)가 비중생수(非衆生數:무생명체)로써 경계를 삼아 무엇인가 하는 바가 있으면 이를 중생(衆生)이라 하고, 선근(善根)으로 지어진 것은 이를 인(因)이라 하고,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재앙이나 복의 과보가 생기면 이를 보(報)라 한다.일체시(一切時)ㆍ일체행(一切行)ㆍ일체처방편(一切處方便)ㆍ일체중생(一切衆生)ㆍ일체경계(一切境界)ㆍ일체인(一切因)ㆍ일체화(一切禍)ㆍ일체복(一切福) 등 이런 것을 일체 여래께서 다 아시어 견줄 이도 없고 높을 이도 없다.사선(四禪) 팔해탈(八解脫)이라 함은 선과 해탈에서 마음이 자재해진 뒤에 그러그러한 색상(色像)에서 뜻대로 모두가 이루어지나니, 이것이 선과 해탈의 삼매정수[禪解脫三昧正受]이다. 이르는 말에 세존은 삼매정수에서 그 정수(正受)와 같이 빛으로 범천(梵天)에 비추고 묘한 음성으로 설법하시면 다만 그 소리만 들리고 그 형상은 보지 못한다 한다.
이런 이치 때문에 여래께서는 세간과 함께하거나 세간과 함께하지 않는 형상종류[像類]의 삼매에 드는 일을 속히 끝내시고 선과 해탈에 마음이 자재해져서 뜻에 따라 모두 성취한다. 그러므로 선과 해탈의 삼매정수라 한다.다시 또, 모든 선(禪) 등에는 두 가지 번뇌가 있으니, 첫째는 아직은 바른 방편의 수행이 없을 때 번뇌가 장애가 되어 닦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이미 얻은 자신의 지위가 번뇌와 모든 얽매임에 끄달려서 승진도(勝進道)에 어기게 하는 것이다.여래께서 세속의 갖가지 가르침[言敎]으로 그 겉모양에 따르고 그 마땅함에 따라선 등을 닦는 지혜가 만족하고 번뇌를 여의어 청정케 하시고는,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열등하거나 수승함을 모두 아신다. 그러므로 모든 선과 해탈의 삼매정수라 한다.
지난날에 성숙한 신(信) 등 5근(根)에 하ㆍ중ㆍ상품이 있음을 여실히 아나니, 이를 모든 근기의 날카롭고 둔함[利鈍]이라 하고, 남에 의해 믿음을 내었거나 스스로 생각함으로써 방편을 삼아 하ㆍ중ㆍ상품의 의욕을 내나니, 이를 갖가지 견해[種種解]라 하고, 갖가지 성품, 즉 삼승의 종성이나 중생의 탐욕의 성품이나 내지 팔만 사천 가지 행을 건립하면 이를 갖가지 경계[種種界]라 한다.모든 도문(度門)으로 수순하고 대치하는 법을 아나니, 탐욕은 부정(不淨)을 관하는 등이다. 널리는 성문지(聲聞地)에서 설한 바와 같나니, 이것을 일체지도처(一切至道處:도에 이르는 온갖 길)라 한다. 또 갖가지 당파의 무리가 각기 서로 등지고 어겨 다른 견해를 일으키고 항상 서로가 쟁론하는 것이 마치 외도나 사문이나 바라문 같거든 그들 모든 종성으로 하여금 이 세상과 저 세상으로 향하게 하면 이것 또한 지처도지력(至處道智力)이라 하나니, 시수다라(時修多羅)에서 널리 설한 것과 같다.사방의 중생세계에서 세속의 수효[俗數]로 건립된 갖가지 명자(名字)를 아나니 이른바 과거의 여덟 가지 일과 여섯 가지 동행(同行) 등의 이와 같은 갖가지를 모두 다 능히 안다. 여덟 가지라 함은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생(生)과 이러한 종성(種性)과 이러한 음식과 이러한 고락(苦樂)과 이러한 장수(長壽)와 이러한 오래 머무름[久住]과 이러한 수명의 한계[壽限]이다.여섯 가지 동행이라 함은 세속의 수효로 따진 이름인 찰리(刹利) 등의 색신과 부모ㆍ음식ㆍ선악ㆍ수명이요, 여덟 가지 일이라 함은 여섯 가지 동행과 남과 내 몸이다. 생각하기를 ‘이는 나의 이름이다. 나는 찰리ㆍ바라문ㆍ비사ㆍ수다라이다. 이는 나의 부모다. 나는 이런 음식을 먹는다. 나는 이러이러한 선과 악을 짓는다. 나는 소년ㆍ중년ㆍ장년이다’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동행을 숙명지(宿命智)로써 모두 여실히 안다.모든 선(禪)을 천주(天住:하늘에 머무름)라 하니 이러한 선에 의하여 눈이 뜨이기 때문에 천안정(天眼淨:천안이 맑음)이라 하고 과(果)가 만족하기 때문에 쾌정(快淨)이라 한다. 인간 가운데는 이런 이가 있기 때문에 과인(過人:사람에 지난다)이라 하나니 욕계의 하늘에는 천안의 보가 있으나 인간에는 여전히 없다.중생이 죽을 때에 가까워진 것을 죽을 때[死時]라 하는데 어두움에 두 가지가 있으니 이러한 형상의 무리가 중음(中陰)에 의하여 태어날 때에 마치 그믐밤의 어두움과 같거나 캄캄하여 어두움 속에 양모광(羊毛光:헛꽃)과 같은 까닭에 악색(惡色)이라 하며, 밝고 맑음[白淨]에 두 가지가 있으니, 이러한 형상의 무리가 중음신에 의하여 밝은 달의 빛과 같거나 바라내의(波羅㮈衣)의 빛과 같은 까닭에 좋은 빛[好色]이라 한다.나쁜 계를 일으키기 때문에 악계(惡戒)라 하고, 신ㆍ구ㆍ의의 악행과 갖가지 삿된 견해로 악행을 성취한 뒤에 성현을 비방하면 이를 나쁜 소견으로 비방함(惡見誹謗)이라 하고, 삿된 견해와 삿된 인(因)과 삿된 과(果)를 헤아려 집착하고 이를 말미암아 온갖 삿된 업을 지으며, 삿된 업을 지은 뒤에는 현세에는 즐거우나 미래에는 괴로운 보를 받거나 현세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보를 받나니, 이를 일러 사법의 인을 받는다[受邪法因]고 하고, 갖가지 나쁜 법을 성취하여 나쁜 길에 태어나니 이를 인(因)이라 하고, 그 명(名)과 색(色)이 나뉘어 헤어지는 것을 신괴(身壞:몸이 무너짐)라 하고 생명의 기분[生分]이 모두 다하는 것을 명종(命終:목숨이 다함이라 한다.그릇된 법으로 나쁘게 행하는 것을 악(惡)이라 하고, 지극히 해로운 고통을 받아 오랜 동안 끊임이 없는 것을 악취(惡趣)라 하며, 지극히 낮은 곳에 떨어져서 대비(大悲) 등에 등지는 것을 떨어짐[墮]이라 하고 매우 심하게 싫어해야 할 것을 지옥[泥黎]이라 한다.위의 것에 반대되는 것을 정분(淨分:청정한 구분)이라 하고, 선한 업에 의해 태어나는 것을 선취(善趣:좋은 갈래)라 하고, 모든 느낌이 자연스러운 곳을 하늘[天]이라 하며, 온갖 누(漏)가 남음 없이 끊어지고 온갖 사(使)를 대치하여 무루의 마음과 무루의 지혜가 제일이 되고 증상(增上:가장 높은)의 뜻과 증상의 지혜로 유루법이 다하면 이를 심해탈혜해탈(心解脫慧解脫)이라 하고,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에 의하여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는 것을 후유(後有)라고 하나니, 여섯 가지 신통을 얻고, 스스로가 여실히 알고는 남을 위해 말해 준다. 그리하여 스스로 알아서 깨달음[證]을 이루고는 외치되 ‘나의 삶은 이미 다했다, 범행은 이미 싫다’고 한다.여래의 열 가지 화에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自性)이요, 둘째는 분별(分別)이요, 셋째는 불공(不共)이요, 넷째는 등(等)이요, 다섯째는 조업(造業)이요, 여섯째는 차제(次第)요, 일곱째는 차별(差別)이다.자성(自性)이라 함은 어떤 이는 5근(根)의 자성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지혜의 자성이라고도 하는데 지혜의 자성이라 함은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이라고만 말하고 처비처신(處非處信) 등이라고는 말하지 않는 경우와 같다. 처비처지력이 그렇듯이 다른 힘[力]도 그렇다.분별(分別)이라 함은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시분별(時分別)이니,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일체 지혜에 들어가는 것이요, 둘째는 종분별(種分別)이니, 모든 유위법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이 모든 종성에 들어가는 것이요, 셋째는 중생분별(衆生分別)이니, 모든 중생계가 온갖 이익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분별을 널리 말하면 무량하다.불공(不共)이라 함은 여래의 십력이 성문이나 벽지불 등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요, 등(等)이라 함은 모든 여래의 십력은 평등하여 하품ㆍ중품ㆍ상품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조업(造業)이라 함은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으로 진실한 인과를 여실히 알고, 인과를 굴복시키는 쟁론에서 사문이나 바라문이 자기 업의 지혜의 힘과 스스로가 지은 업과 이 업에 의해 받는 과를 여실히 아는 것이다. 또 보시의 복을 굴복시키는 쟁론에서 사문이나 바라문의 선해탈삼매정수의 지혜의 힘으로 세 가지로 시현하여 조복시키고 교수하는 것과 조복시키고 대치하는 일이 서로 어긋나는 쟁론에서 사문이나 반라문의 근기의 모든 날카롭고 둔한 지혜의 힘과 모든 중생의 하ㆍ중ㆍ상품의 근기를 여실히 알며, 응할 바와 같이 방편과 같이 설법해 주는 갖가지 견해와 지혜의 힘으로써 모든 중생의 하ㆍ중ㆍ상품의 견해로 깨끗함과 깨끗하지 못함을 이해했는가를 여실히 알며, 청정한 견해를 닦아 깨끗지 못한 견해를 여의게 하는 갖가지 경계에 맞는 지혜의 힘으로 모든 중생의 하 중 상품의 경계를 여실히 안다.
그 마음과 같이, 그 근기와 같이, 그 사(使:번뇌)와 같이, 그러그러한 도문(度門:법도의 부문)으로 가르쳐서 이익되게 한다.지처도지력(至處道智力)으로써 여래는 중생들을 위하여 갖가지 도문으로 갖가지로 교수하나니, 마치 성문의 경지에서 차례로 개발하고 드러내어 보이고, 교수하고 말해주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이 여래께서 초업(初業:초심)보살을 교수하는 삼매의 부치로써 거두어 주어 마음을 머무르게 하는 것인가? 여래께서 첨곡(諂曲)이 없는 이를 위하여 닦아 배우게 하기 위하여 말하기를 “선남자야, 그대는 고요한 곳에서 적정(寂靜)을 깊이 즐기면서 부모나 스승이 지어주신 이름[名字]에 대해, ‘이 이름이란 것은 안과 밖과 육입(六入)과 그리고 그 중간의 어디에도 전혀 없고 자성도 없다. 다만 말과 생각으로 시설한 것일 뿐이다’라고 사유하라. 이렇게 생각하면 법(法)을 얻을 수도 없나니 미래에 대하여 장차 오리라는 생각도 하지 말라.선남자야, 현재의 눈[眼]에 대하여 눈이라는 이름과 눈이라는 생각과 눈이라는 시설을 붙였거니와 스스로 잘 관찰해 보라. 나의 눈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말과 생각으로 시설한 것을 ‘이것이 눈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말과 생각으로 시설한 것은 모두 없는 것이니, 말과 생각으로 시설한 것이 도무지 진실함이 없다면 그 눈이라는 것의 자성 또한 없도다”라고 하라.무슨 까닭인가? 저 눈이란 이름이나 눈이란 생각이나 눈이란 시설에서 눈의 감각[眼覺]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름과 말[言說]에서 눈의 감각이 생기고, 저 눈의 성품[眼性] 때문에 듣고 아는 것이 아니라 이름[名]과 사물[事]에서 눈의 감각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래의 눈의 이름과 눈의 생각과 눈의 시설을 생각하면 미래의 모든 법을 모두 얻을 수 있다. 눈이 이러하듯 귀ㆍ코ㆍ혀ㆍ몸과 나아가 견ㆍ문ㆍ각ㆍ지(見聞覺知)의 구함[求]과 얻음[得]과 느낌[覺]과 관함[觀]도 이와 같으며, 모든 법상(法想)과 나아가서는 장차 오리라는 생각도 이와 같으며, 아상(我想)을 무너뜨리는 방편도(方便道)를 받아들이는[攝受] 행이나 내지는 온갖 법상을 무너뜨리는 방편도를 받아들이는 행도 이와 같다.알아야 할 모든 경계를 잘 관찰하므로 모든 법상과 미래라는 생각과 헛되고 거짓되어 없다는 모든 생각과 생각 없음[無畏]과 형상 없음[無相] 등의 온갖 이치를 받아들임이 없어서 반드시 여래의 청정한 지혜와 삼매의 종성을 얻으리라.그 모든 보살이 부정관(不淨觀)을 얻고는 자심(慈心)을 행하여 연기를 관찰하고 모든 세계의 들고 나는 호흡의 생각을 분별하다가 마침내는 초선(初禪), 내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선정이나 보살의 무량한 삼매와 정수(正受)의 생각을 얻게 되고, 점차 전진하여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 이것을 보살의 지처도(至處道)라 한다. 과거의 여래가 초업보살을 위하여 이와 같이 가르치셨고 미래의 부처님들도 이와 같이 가르치실 것이고 현재의 부처님들도 이와 같이 가르치실 것이다.성문승(聲聞乘)이 이와 같이 생각하면 신통과 걸림없는 지혜와 일체지처도지력(一切至處道智力)을 빨리 얻으리라.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여실히 알며, 벗어나지 못하는 도는 여의고 벗어나는 도로써 이롭게 해 주며, 숙명지(宿命智)의 힘으로 숙명(宿命)의 일을 관찰하며, 선이나 악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이나 밝은 마음으로 조복시키는 설법을 하여 상론(常論)에 집착된 사문이나 바라문을 굴복시키며, 생사지력(生死智力)으로 중생들이 나고 죽어 태어나는 곳을 말해 주어, 단멸론(斷滅論)의 사문 바라문을 굴복시키고, 누진지력(漏盡智力)으로써 해탈을 의혹하는 사문 바라문을 굴복시킨다.차제(次第)라 함은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는 십력을 왈칵[頓] 얻은 뒤에 차츰차츰 아유삼불법(阿惟三佛法:現等覺佛法)의 부분인 인과가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첫째는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으로 인과의 부분인 욕계의 차별을 관찰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자업지력(自業智力)으로 자업(自業)을 관찰하여 설법해서 악업을 여의고 선업을 수행케 하니, 세속도(世俗道)에서 욕심을 여의게 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선해탈삼매정수지력(禪解脫三昧正受智力)으로 중생들을 가르쳐서 다시 출세간의 욕심을 여의게 하기 때문이니, 선해탈삼매정수지력은 먼저 중생을 가르쳐서 세속도로써 욕심을 여의게 하고 다음에 출세간도를 얻어 욕심을 여의게 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출세간의 욕심 여읨[離俗]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넷째는 제근이둔지력(諸根利鈍智力)으로 모든 근기를 관찰하고, 모든 근기를 안 뒤에는 희망하는 바를 알고자 하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종종해지력(種種解智力)으로 그들이 희망하는 바를 관찰하고, 여섯째는 희망을 관찰한 뒤에는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으로 근과 사[根使]를 관찰하여 그 방편과 경계의 도문에 따라 해탈케 하고, 일곱째는 모든 지처도지력(至處道智力)으로 경계와 도문에서 방편심에 머무르고 섭수심(攝受心)에 머물러서 행이 청정해진 뒤에 신견(身見)과 단견ㆍ상견 등을 여읜다.
여덟째와 아홉째는 그들에게 중도의 법을 설해 주어 모든 번뇌를 여의는 까닭에 숙명지력(宿命智力)과 생사지력(生死智力)에 들어가고, 속박되어서 번뇌를 일삼는 짓을 멈추게 하고 증상만을 일으키는 일을 여의게 하기 위하여 누진지력(漏盡智力)에 든다.또 하나의 차제(次第)는 아유삼불법에 의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뒤에, 먼저 처비처지력으로 연기제일의법주(緣起第一義法住)를 관찰하고 제일의법주지(第一義法住智)에 의지하고는 자업지력으로 재가분(在家分)의 갖가지 업을 관찰하고 재가분의 갖가지 업을 관찰한 뒤에는 선해탈삼매정수지력으로 출가분(出家分)을 관찰한다.
어찌하여 이 출가분으로 하여금 괴로움에서 해탈케 하는가? 마땅히 도(道)를 설해주고 대비심을 일으켜 불안(佛眼)으로 관찰하나니, 제근이둔지력으로 하ㆍ중ㆍ상근을 관찰하여 설법해 준다. 나머지 종종해지력(種種解智力) 등은 차례대로 위와 같다.또 차제가 있으나 아유삼불법에 의하여 처비처지력으로 연기법계(緣起法界)를 관찰하고, 자업지력으로 중생계를 관찰하되, ‘이 중생을 이러이러한 업으로 이러이러한 과를 받는다’고 관찰한다.
법계와 중생계를 관찰한 뒤에는 선해탈삼매정수지력으로 고통 받는 중생을 위하여 세 가지로 시현하여 교수한다. 나머지 근이둔지력 등은 도로써 모든 중생을 해탈케 하여 못 고통을 여의게 한다.차별(差別)이라 함은, 선하거나 선하지 못한 업으로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립지 못한 과보를 얻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 처비처지력이요, 선하거나 선하지 않은 업으로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못한 과보, 즉 부작(不作)ㆍ불수(不受) 내지 선해탈(禪解說) 등을 얻는데, 이 업은 저 업이 아닌 줄 아는 것이 자업지력이다.
선해탈 등 세 가지로 시현하여 교수할 줄 알고 나아가서는 정(淨) 등의 구생심(俱生心)을 아는 것이 선해탈삼매정수지력이요, 하ㆍ중ㆍ상근을 아는 것이 제근이두지력이요, 또 모든 근기에 맞는 방편과 거기서 생기는 희망을 아는 것도 제근이둔지력이라 하고 갖가지 희망을 아는 것이 종종해지력이다.해(解:견해)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불출해(不出解:벗어나지 못하는 견해)이니 이른바 마혜수라(摩醯首羅)ㆍ나라연(那羅延)ㆍ범세(梵世) 등을 희망하는 견해요, 둘째는 출해(出解:벗어나는 견해)니, 이른바 삼승을 희망하는 견해요, 셋째는 원정해(遠淨解)이니, 이른바 하ㆍ중품의 성숙을 희망하는 견해요, 셋째는 근정해(返淨解)이니, 이른바 상품의 성숙을 희망하는 견해요, 다섯째는 현법득열반해(現法得涅槃解)니, 이른바 성문승의 열반을 얻기를 희망하는 견해요, 여섯째는 장래득열반해(將來得涅槃解)니, 이른바 대승의 열반을 얻기를 희망하는 견해와 나아가서는 지해(知解)로 일으킨 종자(種子)와 같은 것이니 종종해지력(種種解智力)이라고도 한다.계분별(界分別)에 네 가지가 있으니, 성종자(性種子)는 이를 종종해지력(種種解智力)이라 하고, 갖가지 차별된 종자를 아는 것은 이를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이라 하고 내지 열반법과 법계에 순응하는 도(道)의 자취를 아는 것은 역시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이라 하며, 온갖 종류의 도의 자취와 갖가지 번뇌와 갖가지 청정을 아는 것은 이를 지처도지력(至處道智力)이라 하며, 내지는 숙명의 일체 취인(趣因:인행)을 아는 것도 역시 지처도지력이라 하고, 과거의 여섯 가지 언설을 아는 것을 숙명지력(宿命智力)이라 하고, 내지는 과거 중생의 생사를 아는 것도 숙명지력이라 하며, 미래의 생사를 아는 것은 생사지력(生死智力)이라 하며, 내지는 아직 구경자의(究竟自義)에 이르지 못한 중생의 미래의 생사를 아는 것도 생사지력이라 하고, 구경자의에 이르러 현전에 열반을 얻은 줄 아는 것을 누진지력(漏盡智力)이라 한다.
이와 같이 열 가지 지력(智力:지혜의 힘)이 각각 차별된다.네 가지 무소외[四無所畏]라 함은 수다라에서 말하신 것과 같이, 여래가 이 네 가지 일로써 대중에서 스스로 증득하여 두려움이 없나니, 지장(智障)에서 해탈하여 모든 법을 평등하게 깨달음이니 성문과 함께하지 않는 첫째 무외(無畏:두려움 없음)요, 번뇌장(煩惱障)에서 해탈함이니 성문과 함께하는 둘째 무외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도를 설함이니 셋째 무외요, 도를 장애하는 법이니 넷째 무외이다.여래는 이 네 가지 이치를 여실히 알아 만일 비방하는 이가 있어 말하기를 “모르신다” 하면 옳지 않다. 옮지 않은 까닭에 두려움도 없고 겁냄도 없으며 의혹도 없으며 결정되게 스스로 알아 대사(大使)가 되어 자신도 편안케 하고 남도 편안케 하나니 앞의 두 가지가 원만하면 스스로가 편안한 길이요 뒤의 두 가지가 원만하면 남을 편안케 하는 길이다.모든 법을 평등하게 깨달음[一切平等覺]은 대승의 모든 보살에 향하기 때문이요, 번뇌장해탈(煩惱障解脫)은 성문연각승에 향하기 때문이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도[出苦道]와 도에 장애되는 법[障道法]은 두 가지를 다 위하기 때문이다.여래께서 모든 보살과 성문이나 연각을 위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도를 행하시고 수다라를 설하셨는데 경장(經藏)을 결집한 이가 보살의 행을 설하신 곳에 보살장(菩薩藏)을 세웠고, 성문과 연각의 행을 설하신 곳에 성문장(聲聞藏)을 세웠다.세 가지 염처[三念處]라 함은 수다라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여래께서 오랫동안 생각하시기를 ‘나의 좋은 법률은 큰 법주(法主)가 되어, 받아들이는 이나 받아들이지 않는 이에게나 아무런 번뇌의 마음도 일으키게 하지 않는다’ 하셨다.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 무리가 있으니, 첫째는 정취(正趣)요, 둘째는 사취(邪越)요, 셋째는 비정비사취(非定非邪趣)이니, 이 세 가지 무리에 대하여 바른 생각으로 보살피어 증감(增減)이 없다.세 가지 불호[三不護]라 함은 수다라에 말한 바와 같으니, 간략히 말하건대, 모든 동작에 가리고 덮임이 모두 끊어진 경지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세 가지 불호[三不護:삼업을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것]를 드러내어 보인다. 아라한에게는 아직 무기(無記)의 돌길라(突吉羅)가 있고, 때로는 황망한 가운데 저지르는 잘못함이 있거니와 오직 여래만을 일체가 모두 없고, 일체가 모두 진실하다.아라한은 때로는 논의할 때 패배할까 두려워하거나 혹은 불쾌하거나 혹은 지혜로워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보호해서 습기를 일으켜서 신ㆍ구ㆍ의의 업을 더럽히지 않게 해야 되거니와 이런 것이 여래에게는 모두 없다.대비(大悲)는 앞의 「공양습근무량품(供養習近無量品)」에서 설한 것과 같다.불망법(不忘法)이라 함은 이른바 여래가 해야 할 일에 관하여 항상 따라 기억하는 것이니, 모든 동작과 모든 말씀과 모든 교방편(巧方便)과 모든 때 등 이런 일들을 항상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이다.단제제습(斷除諸習)이라 함은, 이른바 여래의 움직임과 멈춤ㆍ첨시(瞻視)ㆍ언설ㆍ행하시거나 머무르심[行住] 등에는 번뇌에서 일어난 비슷한 여습[相似餘習:作業)을 여의었는데 모든 아라한의 번뇌에서 일어난 비슷한 여습이 있다. 여래는 이를 영원히 끊었으므로 단제제습이라 한다.일체종묘지(一切種妙智)라 함은 여래는 세 가지 법을 아시나니, 의요익(義饒益)과 비의요익(非義饒益)과 비의비비의요익(非義非非義饒益)이다. 비의요익과 비의비비의요익을 아는 일체법지(一切法智)를 일체종지(一切種智)라 하고, 의요익을 아는 일체법지를 묘지(妙智)라 하는데 일체종지와 묘지를 묶어서 일체종묘지라 한다. 이것이 백사십가지 불공법[百四十不共法]을 간략히 말한 것이다.일체 상호(相好)는 보살의 최후신(最後身:마지막 몸)에서 쾌정(快淨:極善淸淨)함을 얻고, 보리분법은 보리수 밑에서 비로소 만족함을 얻나니, 보살의 최후신에서 삼십칠 보리분법을 닦아 뭇 행상(衆相)을 얻으니, 이는 이장삼매(離障三昧)와 금강삼매(金剛三昧)에 속하는 경지요, 다음 제이심(心)에서 십력을 단박에 얻어, 일체종묘지가 쾌정하여 무상하기에 이른다. 알아야 할 모든 것에 걸림이 없이 쾌정하게 때[垢]를 여의며, 평등하게 깨우치니 모든 보살의 행을 넘어서며 여래의 행을 행하여 무상신(無上身)의 구경지(究竟地)를 얻는다.보살지(菩薩智)와 여래지(如來智)에 어떤 차별이 있는가? 구경지(究竟地)의 보살지는 나각(羅殼:얇은 비단과 잠자리 날개) 속에서 보는 것 같고 여래지는 나각을 버리고 보는 것 같으며, 보살지는 멀리서 물건을 보는 것 같고 여래지는 가까이서 물건을 보는 것 같으며, 보살지는 약간 가리운 눈으로 보는 것 같고 여래지는 밝은 눈으로 보는 것 같으며, 보살지는 태(胎) 속에서 보는 것 같고 여래지는 태어난 뒤에 보는 것 같으며, 보살지는 꿈 속에 보는 것 같고 여래지는 깬 때에 보는 것 같으니, 이것이 여래와 구경지 보살의 지혜의 차별이다.모든 부처님들이 시방세계에서 불사를 일으켜 중생을 이익되게 하시는데 간략히 말해 아홉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아홉인가, 첫째는 중생들로 하여금 신심이 청정케 하고자 하여 장부(丈夫:남자)의 몸을 받아 모든 상호를 일으키시고, 둘째는 모든 중생의 온갖 의심을 끓어 주시고자 하여 여래의 십력을 일으키시고, 셋째는 부처님의 십력으로 모든 이치를 일으켜 여래의 일체지견을 발표하고 온갖 질문에 답하여 삿된 주장을 꺾고 바른 주장을 세우기 위한 까닭에 여래의 사무소외(四無所畏)를 일으키시고, 넷째는 여래의 지혜에 머무른 이나 머무르지 않은 이나 그들의 정도에 따라 조복시켜 모든 번뇌를 여의게 하기 위한 까닭에 삼염처(三念處)를 일으키시고, 다섯째는 앞의 말과 같이 작용하시므로 삼불호(三不護)를 세우시고, 여섯째는 불안(佛眼)으로 모든 세계를 관찰하시기 위한 까닭에 대비심을 일으키시고, 일곱째는 모든 중생에게 해야 할 모든 일을 이미 끝냈기 때문에 불망법(不忘法)을 일으키시고, 여덟째는 여래께서 행하신 바에 수순하여 진여의 법에 더함이 없게 하기 위한 까닭에 단제제습(斷除諸習)을 일으키고, 아홉깨는 비의 요익법과 비의비비의요익법 등을 모두 멀리 여의고 의요익법을 분별하여 드러내 보이시기 위한 까닭에 일체중묘지를 일으킨다.여래께서 이백사십 가지 불공법으로 아홉 가지 불사를 일으키시는 일은 널리 말하면 한량이 없으리니, 이를 여래주(如來住)라 하며, 이를 건립(建立)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보살의 배울 바에 의하여 바르게 배워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모든 불사를 건립하나니, 그러므로 건립(建立)이라 하고, 자리와 이타가 다른 성문이나 연각과는 같지 않기 때문에 불공(不共)이라 하니, 모든 불법인 대비와 불망(不忘)과 단제제습과 일체종묘지를 성문이나 연각은 모두 얻지 못했고, 그 밖의 일체 종류를 만족시키지도 못했기 때문에 불공이라 한다.여기에서 보살의 배울 도법과 그리고 도를 배우는 과위가 만족함을 드러내어 보이나니, 모든 보살의 배우는 도와 그러고 도를 배우는 과위에 관한 온갖 진실한 말씀의 경지이므로 보살지(菩薩地)라 하고, 또 보살장의 마득륵가(摩得勒伽)라 하고, 마하연에 속한다 하고, 또 무너뜨리지 않고 드러내어 보인다 하고, 또 무장애청정지근본(無障礙淸淨智根本)이라고도 한다.만일 하늘ㆍ사람ㆍ아수라ㆍ인비인(人非人)ㆍ사문 바라문이 이 보살지에 대하여 견고한 믿음을 일으키어 자세히 듣고 닦아 익혀 널리 남에게 이야기해 주거나 경권(經卷)을 써서 갖가지로 공양하면 그가 얻는 공덕은 세존께서 보살장에서 초업보살들을 위하여 발표하시고 드러내어 보이시고 교수하시고 선설하신 공덕과 똑같아서 차이가 없다.무슨 까닭인가? 이 보살지의 보살장은 보살이 법률을 드러내 보여 많은 중생으로 하여금 받아 지니고 생각하게 하며, 법차법향(法次法向)을 건립하고 점점 늘리고 넓혀서 상법(像法)이나 법이 멸해 다하는 모습[法滅盡相]을 일으키지 않고 능히 상법의 진실한 이치로 하여금 치연히 성하게 하며, 정법(正法)으로 하여금 영원히 멸하지 않게 한다.
그러므로 보살지에 대하여 견고한 믿음을 일으켜 듣고 받아들이고 닦아 익히며 널리 남에게 설해 주며, 써서 공양하고 얻는 공덕은 무량하고 무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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