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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63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9권

by Kay/케이 2024.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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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9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제9권

담무참 한역
김월운 번역

3) 정심품(淨心品)보살이 모든 중생에게 일곱 가지 연민심(憐愍心)을 지니면 이를 제1의 진실이라 하나니, 첫째는 무외(無畏)요, 둘째는 교편(巧便)이요, 셋째는 불염(不厭)이요, 넷째는 불구(不求)요, 다섯째는 불탐(不貪)이요, 여섯째는 광대(廣大)요, 일곱째는 평등(平等)이다. 보살은 두렵기 때문에 모든 중생들에게 연민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신ㆍ구ㆍ의의 업을 닦아 중생을 안락하게 하기 위함이니 이를 무외라 한다.보살은 교편의 지혜로써 모든 중생에게 연민심을 일으키되 그릇된 법ㆍ그릇된 계율ㆍ그릇된 진리로는 가르치지 않나니 옳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교편(敎更)이라 하며, 보살은 모든 중생에게 모든 방편을 쓰되 피로해 하거나 싫어하지 않나니 이를 불염(不厭)이라 하며, 보살은 모든 중생에게 연민심을 일으킬 뿐 희망해 구하는 바가 없나니 이를 불구(不求)라 하며, 보살은 모든 중생에게 연민심을 일으키되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었나니 이를 불탐(不貪)이라 한다.보살은 모든 중생에게 연민심을 일으키되 중생을 제한하지 않으며, 중생들에게 얻은 이익이건 불이익이건 모두를 버리지 않나니 이를 광대(廣大)라 하고, 보살은 모든 중생에게 연민심을 일으키되 중생계와 똑같아서 한정이 없나니 이를 평등이라 한다. 보살이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연민심을 성취하면 이를 제일의 진실이라 한다.보살이 불법승에 대하여 방편으로 관찰하면 결정된 견해를 얻나니 이를 정심(淨心)이라 하는데 간략히 말하면 열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무상심(無上心)이요, 둘째는 계심(戒心)이요, 셋째는 바라밀심(波羅蜜心)이요, 넷째는 진실의심(眞實義心)이요, 다섯째는 신력심(神力心)이요, 여섯째는 안심(安心)이요, 일곱째는 낙심(樂心)이요, 여덟째는 해탈심(解脫心)이요, 아홉째는 견고심(堅固心)이요, 열째는 불허심(不虛心)이요, 열한째는 부정심(不淨心)이요, 열두째는 정심(淨心)이요, 열셋째는 쾌정심(快淨心)이요, 열넷째는 조복심(調伏心)이요, 열다섯째는 구생심(俱生心)이다.전일하게 불법승보를 즐기는 정심(淨心)이 무상이요, 보살의 계율을 지키는 정심이계요, 보시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행하는 정심이 바라밀이요, 인무아(人無我)ㆍ법무아(法無我)에서 인법이 무아한 제일의법에 깊이 믿는 정심을 진실의라 하고, 제불과 보살의 부사의한 신통력(神通力)과 구생력(俱生力)과의 정심을 신력이라 한다.모든 중생에게 선법(善法)으로 이익되게 하고자 하면 이를 안(安)이라 하고, 중생들에게 섭취로써 이익되게 하려 하면 이를 낙(樂)이라 하고, 모든 중생에 대하여 탐심과 그리고 보답을 받으려는 생각을 여의면 이를 해탈이라 하고, 무상보리에 대하여 그 마음이 견고하면 이를 견고라 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방편과 깨우쳐 주는 방편과 뒤바뀌지 않는 지혜에 해탈을 함께 하면 이를 불허(不虛)라 한다.해행지(解行地) 보살의 마음을 부정(不淨)이라 하고, 정심지(淨心地)에서 결정행지(決定行地)까지의 보살의 마음을 정(淨)이라 하고, 구경지(究竟地)보살의 마음을 쾌정(快淨)이라 하고, 그 부정심을 조복(調伏)이라 하고, 정심과 쾌정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구생(俱生)이라 하나니 성품이 본래 진실하여 몸과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구생이라 한다. 이것을 열다섯 가지 정심이라 한다.이 열다섯 가지 정심을 모든 지위에 따라 간략히 열 가지 일로 말할 수 있으니 무상심으로 삼보를 맑게 닦고 온갖 종류의 행을 베풀고 모든 보리의 부류[具]인 제일의 진실을 닦으며, 계심으로 보살계를 받아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하지 않고 설사 범함이 있더라도 곧 제거하고 멸하며, 바라밀심으로 모든 선근의 법을 닦되 항상 부지런히 쌓아 익혀 방일치 않으며, 진실의심으로는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중생을 위하여 생사를 받되 열반 해탈 정심을 버리지 않으며, 신력심으로 순후(淳厚)하고 깨끗한 믿음을 깨우치고 생사의 생각을 닦아 듣고 생각하는 지식의 분량이 풍족함을 안다.안심ㆍ낙심ㆍ해탈심으로는 온갖 종류로 중생을 이롭게 하되 피로해 하거나 싫증 내지 않으며, 견고심으로 치연정진(燃然精進)과 광대정진(廣大精進)과 평등방편(平等方便)과 불완방편(不緩方便)과 부단방편(不斷方便)을 닦으며 불허심으로 빨리 신통을 얻되 그러그러한 선법에 대하여 적은 마음 낮은 마음으로써 만족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조복심으로 구생심이 나게 하며, 구생심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어 하늘과 인간의 무리를 이롭고 안락하게 한다. 조복심은 부정심을 포섭하고 구생심은 정심과 쾌정심을 포섭하나니, 세존께서 보살의 정심을 설하여 온갖 것을 시설한 것은 모두가 열다섯 가지 정심에 속한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보살이 무상보리를 얻되 이미 얻고 장차 얻고 지금 얻나니 모두가 열다섯 가지 정심일 뿐 견줄 이도 없고 높을 이도 없다.
이러한 열다섯 가지 정심지에는 큰 복리의 과위가 있나니 이에 의하면 무상보리를 얻는다.
4) 주품(住品)이미 보살의 종성과 나아가 보살의 배울 바로서 보살을 배우는 상과 보살의 익(翼)과 보살의 정심(淨心)을 설하였다. 이제는 보살의 열두 가지 주(住)를 설하리니 이것이 일체주(一切住)와 일체 보살행을 포섭하고 열세 번째 여래주(如來住)는 무상주(無上住)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열두 가지 주인가? 첫째는 종성주(種性住)요, 둘째는 해행주(解行住)요, 넷째는 환희주(歡喜住)요, 넷째는 증상계주(增上戒住)요, 다섯째는 증상의주(增上意住)요, 여섯째는 증상혜주(增上慧住)이다.증상혜주에 다시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리분법상응(菩提分法相應)이요, 둘째는 제상응(諦相應)이요, 셋째는 연기생멸상응(緣起生滅相應)이다.
보살이 진실되게 진실한 지혜, 즉 중생들의 생고(生苦)와 멸고(滅苦)를 아는 지혜를 관찰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세 문에서 세 가지 지혜로 세 곳에 머무른다.
아홉째는 유행유개발무상주(有行有開發無相住)요, 열째는 무행무개발무상주(無行無開發無相住)요, 열한째는 무애주(無礙住)요, 열두째는 최상보살주(最上善讓住)이다. 이와 같이 열두 가지 주가 일체주와 일체 보살행을 포섭한다.
여래주(如來住)라 함은 모든 보살의 행을 넘어서는 아유삼불주(阿維三佛住)이니, 여래주는 뒤의 안립품(安立品)에서 자세히 말하려니와 십이주의 보살들이 건립하는 바를 이제 설하리라.어떤 것이 종성주(種性住)인가? 이 보살의 성품이 원래 어질고 착해 성품이 본래 능히 공덕이 선법을 행하나니 성품이 어질고 착한 까닭에 반짝하는 방편으로 모든 선법을 내되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런 뒤에 종성보살의 경지를 얻나니, 이는 모든 불법의 종자이다. 모든 불법의 종자가 몸 안에 있으므로 번뇌의 거칠고 무거움을 여의었나니 종성에 머무른 보살은 비록 상품의 번뇌와 전박을 일으키나 끝내 오무간업이나 선근을 끊는 종성은 행하지 않나니 이는 종성품(種性品)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를 종성주(種性住)라 한다.어떤 것이 해행주(解行住)인가? 이 보살이 처음 발심하여 아직 정심지(淨心地)를 얻기 전까지이니, 정심지를 아직 얻지 못한 보살의 모든 행을 해행주라고 한다.종성주의 보살을 다른 보살의 주나 여래의 주에 견주면 생인(生因)이나 섭인(攝因)일 뿐 방편도 아니요 얻음[得]도 아니요 청정도 아니거늘 하물며 여래주이겠는가?
해행주의 보살을 다른 보살의 주와 여래의 주에 견주면 이는 방편일 뿐 얻음도 아니며 청정도 아니다. 오직 해행주와 청정향(淸淨向:청정으로 향함)을 얻었을 뿐이다.해행주보살이 환희주(歡喜住)를 맑게 닦으면 전방편(前方便:진입단계의 방편)과 청정향을 얻었다 하고, 환희주보살이 증상계주(增上戒住)를 맑게 닦으면 전방편과 청정향을 얻었다 한다. 이와 같이 널리 말하건대 최상보살주에 이르기까지 이러하다.
최상보살주에서 차츰 맑게 닦으면 여래주의 전방편이요, 여래주는 활짝 얻음[頓得]과 청정이다. 이것이 보살주와 여래주의 차별이다.어떤 것이 환희주(歡喜性)인가? 보살의 정심주(淨心住)를 환희주라 한다.어떤 것이 증상계주(增上戒住)인가? 보살이 마음이 맑아지는 정심주를 인하여 성계(性戒:본성의 계)가 구족해진 것이다.어떤 것이 증상의주(增上意住)인가? 보살이 증상계가 맑아짐으로 인하여 세속의 선과 삼매를 바르게 누리는 것이다.어떤 것이 보리분법상응혜주(菩提分法相應慧住)인가? 보살이 세속의 맑은 지혜를 인하여 진실한 삼매로 진제(眞諦)를 깨닫기 위하여 정념처(正念處) 등 37보리분법을 관찰하는 것이다.어떤 것이 제상응혜주(諦相應慧住)인가? 보살이 보리분법을 인하여 진제를 관찰하는 지혜에 머무는 것이다.어떤 것이 연기생멸상응혜주(緣起生滅相應慧住인가? 보살이 진제를 깨달은 것으로 증상(增上:최상)을 삼은 뒤에, ‘무엇인가 인연이 있어 괴로움이 생기고, 무엇인가 인연이 있어 괴로움이 멸한다’고 법성을 관찰하는 것이다.어떤 것이 유행유개발무상주(有行有開發無相住)인가? 보살이 세 가지 증상한 지혜로 증상을 삼은 뒤에 행(行:加行)이 있고 개발(關發:功用)이 있고 끊이지 않고[不斷] 사이가 없이[無聞] 모든 법의 진여에 대하여 모든 망상을 여읜 수혜(修慧)로 함께하는 것이다.어떤 것이 무행무개발무상주(無行無開發無相住)인가? 이 무상주에 의하여 순박함[淳]을 많이 닦아 끊이지 않고 사이가 없는 증장도(增長道)에 이르러 수순하는 것이다.어떤 것이 무애주(無礙住)인가? 보살이 쾌정(快淨)한 부동지혜의 삼매에 의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위없는 방광장구(方廣章句)에 대하여 말과 뜻을 분별하고 관찰하는 것이다.어떤 것이 최상보살주(最上菩薩住)인가? 보살이 구경보살도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는 큰 법으로 정수리에 부어[灌頂] 일생의 일을 상속받는다. 만일 마지막 몸이라면 이 주 다음에 무상보리를 얻어 모든 불사를 짓는 것이다.해행주의 보살은 행함이 적고 행함에 끊임이 있고 행함이 일정치 않고 행해서 얻음에 물러남이 있지만 환희주에서 내지 세 가지 지혜에 머무른 보살은 널리 행하고 끊이지 않게 행하고 결정되게 행하고 얻은 바에서 물러서지 않는다.유행유개발무상주로부터 최상보살주에 이르기까지의 보살은 무량한 행을 닦고 끊이지 않게 행하고 결정되게 행하고 얻은 바에서 물러서지 않는다.해행주보살은 무상위(無相位)의 방편을 닦고 환희주에서 증상혜주보살까지는 무상위를 닦아 얻고 제일무상주와 제이무상주보살을 무상위의 정(淨)을 닦고 무애주와 최상보살주보살은 무상위의 과를 닦는다.
해행주보살이 해행을 행할 때 어떤 행상(行相)이 있는가? 해행주보살이 해행을 행할 때 사유의 힘으로 보살이 지을 방편에 대하여 사유하고 닦아 익히나 본성 그대로인 진실하고 견고한 불퇴(不退)를 이루지 못하며 보살의 불퇴전수(不退轉修)와 여수(如修)를 얻지 못하며, 이와 같이 과를 닦는 일이나 갖가지 무애한 신통ㆍ해탈ㆍ삼매 등을 모두 얻지 못하며 또 다섯 가지 두려움 즉 불활외(不活畏)ㆍ악명외(惡名畏)ㆍ사외(死畏)ㆍ악도외(惡道畏)ㆍ대중외(大衆畏)도 여의지 못한다.사유로써 닦아 익혀 중생을 이익되게 하나 천성에서 우러나는 애민[自性哀愍)을 얻지 못하며 때로는 신ㆍ구ㆍ의의 삿된 업을 일으키며 때로는 오욕의 경계에 탐착하며, 때로는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에 대하여 아끼는 마음을 내며 불ㆍ보살을 인하여 깨끗한 믿음을 내나 스스로가 진실한 지혜 즉 삼보 공덕의 진실한 이치나 제불보살의 신통한 힘을 이해하는 지혜를 일으키지 못한다.
인 또는 과에 대하여 뜻을 얻거나 방편을 얻거나 경계를 얻어도 조금 듣고 조금 생각하는 지혜를 성취할 뿐 무량이 되지 못하며 혹은 잊어서 보살의 지고(遲苦)의 도를 이루거나 큰 보리를 전일하게 행하지 못하며 치성한 방편으로 깊이 좋아하거나 맑게 믿지 못하며 좋아할 만하거나 좋아할 만하지 않은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등에 대하여 혹은 뒤바뀌게 두 음 사이에 몸을 받아 태어나며 혹은 받아 외우고 법을 지녀 오래 짓고 오래 닦으나 이 세 가지 일에서 바른 기억[正念]을 잊으며 혹은 똑똑한 지혜로 정법을 받아 지니어 그 이치를 해석하나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혹은 수순 조복시키는 법을 잘 알지 못하며, 혹은 스스로가 불법 안에 살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경솔한 뜻으로 법을 설하여 교수하고 교계하나 경솔한 뜻 때문에 여실히 알지 못하고 때로는 헛되게 말하더라도 마치 어둠 속에서 활을 쏘는 것 같아서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하며, 때로는 큰 보리심에서 물러나고 버리기도 하며 때로는 보살계를 받더라도 이내 헐고 범하며 때로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방편을 지으나 이미 싫어하고 피곤해한다. 그러므로 방편에서 물러나 자신의 즐거움을 즐긴다.때로는 사유 끝에 중생들이 환락에 빠진 것을 알았으나 줄여 주기만 하고 끊지 못하기도 하며 혹은 끊어 주기는 하나 줄여 주지 못하기도 하며, 때로는 보살의 법장(法藏)을 설하고 때로는 깊고 묘한 법을 들으나 두려워하고 동요하며 의심을 내어 모든 중생에 대하여 대비심을 멀리 여읜다.
안락을 주는 것이 적어 광대하지 못하며 위에서 말한 보살의 배울 바와 같이 하여서 보살의 상과 보살의 익(翼)과 보살의 정심을 만족하지 못하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멀어지며 맑은 마음으로 열반을 깊이 즐기어 생사를 여의지 못하며 요동치 않는 선근과 보리분법을 모두 성취하지 못한다.
이러한 것들을 해행주보살의 행상이라 한다.해행주보살이 하품의 지혜[忍]를 행할 때엔 위에서 말한 행상이 늘어나고, 중품의 지혜를 행할 때엔 중품이 되고, 상품의 지혜를 행할 때에는 하품이 되니, 이렇게 상품의 지혜를 행할 때에 이들 행상이 끊어지고 다음은 환희주(歡喜住)의 방편에 든다.
환희주를 얻으면 저 모든 법은 전부 머물지 않고 해행주에서 설한 것과 어긋나는 물들지 않은 모든 법이 성취되나니 이를 정심주(淨心住)라 한다.해행주보살에게 하ㆍ중ㆍ상의 방편이 있어 점점 맑게 해탈하나 죄 없는 청정함은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해탈은 갖가지 번뇌의 얽매임에 있는 삶이기 때문이나 환희주보살의 해탈은 번뇌의 얽매임이 끊어져서 번뇌를 여읜 청정한 해탈의 삶이다.어떤 것이 환희주보살의 행상인가? 이 보살이 해행주에서 환희주에 들어가서는 먼저 무상보리원에 잘 들어가고 보리방편에 잘 들어가서 결정되게 닦아 익힌다. 결정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능히 스스로 닦아 익혀 일으킨 보리원(菩提願)이니 다른 모든 정원(淨願)을 초월하고, 둘째는 견줄 이 없는 불공과(不共果:누구와도 함께하지 않는 과위)이니 세간의 모든 경계를 초월하고, 셋째는 인연 따라 모든 중생이 고통을 제도함이니 모든 성문 연각을 초월하고, 넷째는 일념원(一念願)을 일으킴이니 무량한 정법과 싫어함이 없는 행을 원래 자연스럽게 즐기고, 다섯째는 다함이 없는 서원을 얻음이니, 항상 물러나지 않고 여섯째는 수승한 부분의 구경 대보리를 증장시킴이니 이를 진원(眞願)이라 한다.진원보살에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어면 사람이 발심했는가 함이요, 둘째는 무엇이 연이 되어 발심했는가 함이요, 셋째는 발심하면 어떤 모습이 있게 되는가 함이요, 넷째는 발심하면 어떤 복과 이익이 있는가 함이다.해행주보살이 온갖 종류의 선근을 닦아 익혀 보리의 바른 행을 낳게 하고자 발심하면 이를 간략히 말해 인발심(人發心)이라 한다. 미래 세상에 온갖 종류의 보리 부치[菩提具]를 빨리 만족하게 하기 위하여, 보살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만족하게 하기 위하여, 무상보리의 모든 행을 만족하게 하기 위하여, 모든 불사를 만족하게 하기 위하여 발심하면 이를 간략히 말해 연발심(緣發心)이라 한다.보살이 발심하면 온갖 종류의 보리 부치와 보살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과 무상보리의 모든 행과 모든 불사를 속히 만족케 하며 범부의 지위를 지나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고 여래의 집에 들어가 불자(佛子)라는 명호를 얻나니, 결정적으로 무상보리를 구경케 하고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환희심을 낸다.계율에 어긋난 탐욕이나 성냄 등의 마음을 여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온갖 종류와 온갖 종류의 보리 부처와 불법과 불사(佛事)와 신력(神力)을 만족하고 맑은 마음으로 반연하여 뜻으로 이해하고 다음에는 스스로가 저 법의 운행에 빨리 수순함을 보고 환희심을 낸다.
선근을 간직하고 출가하여 이익되게 하며 평등하게 욕망을 떠나 몸과 마음으로 기쁨을 받아들임에 매우 왕성하며 선법을 성취하고는 무상보리의 청정한 정심(淨心)에 가까워져서 대보리에 대하여 환희심을 낸다.보살은 결정된 마음으로 다섯 가지 두려움[恐畏]을 여의나니, 무아지(無我智)를 닦아 아상(我想)도 생기지 않거늘 어찌 다시 아애(我愛)와 중구애(衆具愛)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불활외(不活畏)를 여읜다. 다른 이가 구하지 않더라도 항상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자 하므로 악명외(惡名畏)를 여읜다. 아견(我見)을 여의어 아상(我想)이 나지 않나니, 그러므로 사외(死畏)를 여읜다. 이 몸을 마친 뒤 미래 세상에서는 반드시 제불보살과 함께 모이나니, 그러므로 악도외(惡道畏)를 여읜다. 세간을 관찰하건대 같을 이도 없거늘 하물며 위로 넘어서는 이이겠는가? 그러므로 대중외(大衆畏)를 여읜다.이와 같이 다섯 가지 두려움을 여의고는 깊은 법 듣기를 두려워함도 여의고, 교만과 높은 체함과 남에게 이롭지 못하게 함과 성내고 한탄하고 탐내기를 좋아함을 모두 멀리 여의고 물들지 않고 잡되지 않은 행 등 모든 선법과 온갖 종류의 정진과 방편으로 맑게 믿어 현재에 수행하며 미래에 대하여 열 가지 큰 서원을 세우나니 열 가지 서원이란 앞의 보리분품(菩提分品)에서 설한 바와 같다.이 환희주를 맑게 닦음으로써 생기니 다음과 같다.
첫째는 청정한 마음으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항상 원함이요, 둘째는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받아 지니고 수호하기를 원함이요, 셋째는 모든 부처님께 미증유법을 설해주시기를 청함이요, 넷째는 보살의 정행(正行)을 수순하여 행함이요, 다섯째는 온갖 기세간(器世間)의 유정을 구족히 성숙시켜 주기를 원함이요, 여섯째는 온갖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함이요, 일곱째는 스스로가 불국토를 밝히기를 원함이요, 여덟째는 모든 보살과 동일한 방편, 즉 대승으로 교화하기를 원함이요, 아홉째는 중생을 이익되게 하되 하나도 헛되이 돌아가지 않기를 원함이요, 열째는 모든 세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모든 불사를 일으키기를 원함이다.이 열 가지 대원은 다시 무량 백 천 가지 대원을 내나니 중생계를 여의지 않고 세간에 수순하는 법을 여의지 않으며 이 모든 대원을 태어날 적마다 항상 행하여 끝내 잊지 않고 현재에도 방편과 정진으로 맑음을 닦는다.열 가지 법에 머무른 환희주보살이 맑음, 즉 정심을 닦으려면 또 열 가지 원이 있으니 첫째는 모든 불법에 대하여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음이요, 둘째는 방편으로써 연기(緣起)와 고음(苦陰)의 중생에게 대비심을 냄이요, 셋째는 괴로워하는 중생을 관하여 해탈케 하려고 대자심(太慈心)을 냄이요, 넷째는 대자비로써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을 제도키 위하여 스스로 자기의 몸을 버릴지언정 중생은 버리지 않으며 안팎의 물건을 버려 보시를 행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까닭에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부지런히 구하되 피로해하는 마음을 내지 않음이요, 여섯째는 마음에 피로함이 없으므로 모든 논(論)을 알게 됨이요, 일곱째는 모든 논을 알기 때문에 하ㆍ중ㆍ상품의 중생을 알고 그 알맞은 바에 따라 세간을 아는 것이요, 여덟째는 알맞은 것에 따른 뒤에는 때를 알고 양을 알아 부끄러운 마음[慚愧心]을 냄이요, 아홉째는 이러한 방편으로 용맹스러운 힘을 얻음이요, 열째는 세간의 재물을 얻어 여래께 공양함이다.
이와 같은 열 가지 법이 환희주(歡喜住)의 정심이니 이른바 신(信)ㆍ비(悲)ㆍ자(慈)ㆍ시(施)ㆍ불염(不厭)ㆍ지론(知論)ㆍ지세간(知世間)ㆍ참괴(慚愧)ㆍ용건(勇健)ㆍ공양여래이다.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닦으면 나머지 아홉 주(住)인 증상계주(增上戒住) 등에서도 온갖 종류의 도의 공덕과 허물을 관찰하며 불보살의 신통을 구하고 무너지지 않는 도를 좋아하며, 행(行)을 잘 거두어서 의지할 만함이 일체 주를 넘어서게 되며, 대보리를 얻어 대도사(大導師)가 되며, 생사의 험한 들판에 있는 중생을 건져 행(行)에 들어오게 하고 들어온 뒤에는 얻게 하고 얻은 뒤에는 과위로서 복과 이익을 얻으면 이를 의지할 곳[依住]이라 한다. 이 주(住)에 의지하는 이에게는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무량한 부처님을 뵈옵고 보살장(菩薩藏)의 말씀을 듣고는 바로 이해하며 시방 무량세계의 갖가지 불명(佛名)을 알면 이를 추정신견(麤淨信見)이라 하고 나아가 진실견(眞實見)을 얻나니, 이것이 첫째 인연이요, 다시 원을 세우되 ‘그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시면 나도 그를 따라 왕생하리라’ 하면 이는 둘째 인연이다.이와 같은 추정신견과 원력 때문에 여래를 뵈옵고 갖가지로 공양하며, 낙구(樂具)와 요익으로 그들의 능력에 따라 법과 승에게도 공양하며, 여래에게 정법을 듣되 들은 뒤에 법차(法次)와 법향(法向)을 받아 지닌다.사섭사(四攝事)로 중생을 성취시키고는 모든 선근을 보리에 회향하고, 세 가지가 청정한 까닭에 저 모든 선근이 더욱 청정해져서 여래와 법과 승을 공양으로 섭수하고, 사섭사로 중생을 성숙시킨 뒤에 모든 선근을 보리에 회향한다. 무량 억 백천 겁에 몸과 마음을 밝히니 마치 진금(眞金)을 불에 넣었다가 공사(工師)가 다루면 더욱 밝아지듯이 보살의 선근이 더욱 청정해지는 것도 이와 같다. 만일 다시 태어나면 전륜왕이되거나 염부제의 왕이 되어 마음대로 자재하며 간탐심을 멀리 여의고는 다시 중생을 교화하여 간탐의 때를 여의며, 사섭사로써 중생을 섭취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제일의를 얻게 한다.만일 정진코자 하여 집과 재물을 버리고 부처님의 정법에 출가하여 도를 배우면 잠깐 사이에 능히 보살의 온갖 삼매를 갖추며, 능히 삼매의 힘으로 백 불세계를 보고 신통과 지혜의 힘으로 온갖 불세계를 움직이며, 몸으로는 이를 지나는 광명을 놓으며, 두루 교화하되 한 몸을 변화시켜 백 몸이 되게 하여 중생을 성숙시킨다.수명은 능히 백겁을 머무르며, 과거 백겁의 일을 능히 알며, 음과 계와 입의 각각 백 가지 법문을 능히 알며, 백 보살을 변화시켜 권속으로 삼거나 혹은 원력과 신력으로 가피하면 무량 억이 있으리니 백천 겁을 세어도 알 수 없으리니 이것이 환희주를 간략히 말한 것이다.이른바 결정과 사사(四事)와 대원과 출생과 방편과 정진과 출생으로 정주(淨注)를 닦는 법과 그들이 정수(淨修)의 경지에서 부처님의 선근의 힘으로 몸을 받아 태어나는 신력을 보는 내용이니 수다라에서 말씀하신 십지(十地)가 여기의 보살장(菩薩藏)이요, 마득륵가에서 말한 십주(十住)는 중생을 거두어 주므로 지(地)라 하고 스스로가 누리는 행이 머무르므로 주(住)라 한다.어떤 것이 증상계주(增上戒住) 보살의 행상인가? 이 보살이 환희주에서 열 가지 정심(淨心)을 얻나니, 첫째는 존중스러운 복전에 갖가지로 공양하고 먼저 말을 건네 문안드리는 마음이요, 둘째는 같은 또래의 보살들과 가까이 하고 즐겁게 살려는 마음이요, 셋째는 모든 번뇌와 모든 마업(魔業)을 이기는 마음이요, 넷째는 모든 행의 허물이 되는가 안 되는가를 아는 마음이요, 다섯째는 열반이 복되고 이롭다고 아는 마음이요, 여섯째는 보리분법의 선근을 항상 닦으려는 마음이요, 일곱째는 보리에 수순하여 비고 한가한 곳에서 닦으려는 마음이요, 여덟째는 세간의 탐애와 교만과 이익을 생각지 않는 마음이요, 아홉째는 성문승을 여의고 대승으로 향하려는 마음이요, 열째는 갖가지 로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다.이러한 열 가지 마음이 생기면 그것을 일러 정심을 얻었다 하고, 이러한 정심이 만족해지면 차례대로 증상계주에 들어가고, 증상계주에 들어간 뒤에는 성계(性戒)가 구족하여 삿된 업의 자취를 바꾸니 거두고 있던 나쁜 계가 전혀 행해지지 않거늘 하물며 중품ㆍ상품의 계이겠는가?
이러한 성계에는 염오(染汚)와 불염오의 업과 선취(善越)와 악취(惡趣)의 업의 자취와 인처(因處)와 과처(果處)가 구족함을 여실히 알며, 보과(報果:異熟果)와 의과(依果:等流果)와 그리고 그 업을 여실히 알고는 스스로가 십악을 끊고 십선업을 행한다.다시 이 법으로 중생들을 교수하되 독업(毒業)이나 허물이나 근심이나 악한 중생계에 대하여 균등히 여기면서 선업과 악업에서 제일가는 괴로움과 갖가지 모든 어려움에 처하고 거기서 광대한 애민을 얻어 부처님의 선근이 청정함을 보나니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비유하건대 진금이 가사약(加私藥)을 얻어 불 속에 넣어지면 더욱 밝고 맑은 것 같이 보살이 선근의 청정함도 이와 같다.이 주에서 청정심이 성취되어 마음대로 생을 받는 것을 성취하면 전륜왕이 되어 사천하를 다스리되 자재한 힘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악계(惡戒)를 버리고 선한 업적을 행하게 한다. 신력의 열 가지 일은 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 이것이 증상계주를 간략히 설한 것이다.이른바 정심(淨心)과 성계가 구족함과 모든 악계를 여읨과 모든 업의 자취를 여읨과 모든 인과를 여실히 앎과 네 가지 업을 분별하여 중생을 교수함과 중생계의 선악업으로 고통과 뭇 어려움에 태어남과 광대한 애민을 얻어 부처님 선근의 청정함을 보고 몸을 받아 태어나는 신력 등이니, 더 자세한 것은 수다라의 십지(十地)인 이구지(離垢地)에서 설한 바와 같다. 나쁜 계행의 때[垢]를 여의기 때문에 이구(離垢)라 하니, 저쪽의 이구지(離垢地)가 여기의 종상계주이다.어떤 것이 증상의주(增上意住) 보살의 행상인가? 이 보살이 증상계주에서 열 가지 사유를 얻어 열 가지 사유가 원만하고 구족해진 뒤에는 증상계주를 지나 증상의주에 들어가나니, 첫째는 열 가지를 밝히는 정심(淨心)이요, 둘째는 열 가지 부정한 마음을 여읨이요, 셋째는 모든 유루법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냄이요, 넷째는 대치해서 닦는 법을 앎이요, 다섯째는 대치해서 닦는 법에서 물러나지 않음이요, 여섯째는 견고히 대치함이 온갖 유루와 온갖 마업(魔業)보다 뛰어남이요, 일곱째는 모든 불법에서 물러나지 않음이요, 여덟째는 모든 고행을 어렵게 여기지 않음이요, 아홉째는 대승을 좋아해 믿고 소승을 좋아하지 않음이요, 열째는 갖가지로 중생을 이롭게 함이다.증상의주보살은 모든 행(行)에서 무량한 허물[過惡]이 생긴다고 관하고는 싫어하는 생각을 내며, 부처님의 지혜와 공덕이 복리가 된다고 관하고는 정념과 순정(淳淨)한 신심을 내며, 중생계의 갖가지 괴로운 행을 관하고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어 정의[義]에 의하여 어떤 행업을 함에는 방일치 않으며, 대보리에 치연히 정진하며 모든 중생에게 대비심을 내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끝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일체 번뇌의 장애에서 벗어난 정지(正智)를 관찰하며, 법계의 온갖 망상은 번뇌에서 일어난 바임을 관찰하여, 대치할 지혜로 지혜ㆍ삼매ㆍ등관(等觀)을 성취하였기에 보살장(菩薩藏)을 듣고는 방편으로 여긴다.방편을 들은 까닭에 부지런히 닦아 정진하고 바른 법을 들은 까닭에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안좌의 어떤 물건도 베풀지 않는 것이 없고 어떤 어른께도 공경치 않음이 없으며, 어떠한 정교(正敎)도 봉행치 않는 것이 없고, 몸이 괴롭다 하여 법을 구하지 않는 일이 없어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 네 구의 게송만 들어도 삼천대천세계의 큰 보배무더기를 좋아하기보다 더 뛰어나다.만일 한 게송만 들어도 바로 불도에 향하여 맑게 보살행을 닦나니 모든 전륜성왕과 호세(護世)와 제석(帝釋)과 마범(摩梵)과 제왕(諸王)의 지위를 얻은 것보다 더 뛰어나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내가 가진 이 법은 곧바로 불도를 향하여 맑게 보살행을 닦게 한다. 누군가가 큰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큰 고통을 이겨낸다면 그에게 설해 주리라” 하면 보살이 듣고 기뻐하면서 생각하되 ‘만일 정법을 듣는 순간 곧바로 불도를 향하여 맑게 보살행을 닦게 된다면 설사 삼천대천세계에 큰 불이 치성하여 심지어 범천에까지 이르더라도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거늘 하물며 작은 불이겠는가? 지옥의 고통을 겪더라도 불법을 구할 것인데 하물며 작은 고통이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부지런한 방편으로 법 구하기를 사유하되 ‘법차법향(法次法向)과 같이 불법에 수순할지언정 문자나 음성만으로 청정히 여기지는 않으리라’ 한다.이렇게 생각하고는 바른 반연의 법상을 들음으로 인하여 탐욕스럽고 악하여 착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 세속의 사선과 사무색과 사무량과 오신통을 얻으며 다시 그러한 모든 선과 삼매와 정수(正受)를 버리고는 원력 때문에 욕계에 와서 태어난다. 그곳의 중생들이 보리분(菩提分)을 채울만 한 자가 있음을 보면 거기에 태어나게 하나니, 애욕을 여의었기 때문에 애욕의 속박이 끊어지고 모든 선의 정수를 버렸기 때문에 유박단(有縛斷:색계의 번뇌를 끊음)이라 한다.
해행주(解行住)에서 이미 이런 법과 해탈에 대하여 견박(見縛)이 끊어졌으므로 삿된 탐진치가 끝내 움직이지 않아 부처님 선근의 청정함을 본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비유하건대 진금을 자주 단련하면 때를 여의고 광채가 더하는 것 같이 보살의 선근이 청정함을 더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만일 다시 몸을 받아 제석으로 태어나더라도 욕심을 여읜 선법으로 중생을 조복시키는 신통력은 앞의 여러 주(住)보다 백천만 배나 더하리니 이것이 증상의주를 간략히 설한 것이다.이른바 열 가지 사유를 정취(正取)함과 모든 행(行)과 중생계와 대보리에 들어가서 진실한 고통을 바르게 분별함과, 해탈과 방편과 정구(正求)와 대공경과 법차법향(法次法向)으로 법을 구함과, 교편(巧便)으로 모든 선한 삼매를 냄과, 정수(正受)와 신통으로 모든 선을 버림과, 원력 때문에 원하는 대로 태어남과, 부처님 선근의 청정함을 보고 가서 몸을 받는 신력(神力)이니 널리 말하건대 수다라 십지(十地)의 명지(明地:發光地)에서 말하기를 “듣고서 법을 행하라. 법을 행하면 밝게 비추니, 삼매가 밝게 비추기 때문에 명지요 속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증상의주라 한다” 하였으니 저쪽의 명지가 곧 여기의 증상의주이다.어떤 것이 보살이 보리분법상응증상혜주(菩提分法相應增上慧住)인가? 이 보살이 증상의주(增上意住)에서 열 가지 법의 밝음을 얻고는 증상이 만족한 뒤에 처음으로 증상혜주(增上慧住)에 들어가나니 십법명(法明:밝음의 법)은 수다라에 설한 바와 같다.
이른바 평등제일의와 혹은 번뇌가 괴롭힘과 혹은 청정이 밝힘과 무장번뇌에 번뇌가 묶여짐과 혹은 무상청정에 의해 밝아진 것 등이니 이를 간략히 법명을 설했다 한다.이 주에 머무는 이는 열 가지 지혜가 성숙하여 무너지지 않은 맑음[淨:淨心)으로 으뜸을 삼나니, 수다라에 말씀하신 바와 같다. 열 가지 지혜가 성숙되고 여래의 집에 태어나서 자재하게 열 가지 지혜로 관찰하는 것으로 중상(增上)을 삼은 뒤에 사념처 등 삼십칠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나니 수다라에 말씀하신 바와 같다.그러한 법들을 닦아 모으기 때문에 신견(身見) 등이 음(陰)ㆍ계(界)ㆍ입(入)을 떠나서 미세한 애착이 끝내 생기지 않는다. 여래께서 칭찬하시지 않는 업은 일체 행하지 않고 칭찬하신 것은 모두 수순하여 여여하고 진실한 마음이 더욱 부드럽고 화평해지며 갖가지 행을 닦으니 그 마음이 쾌정(快淨)해진다.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함으로써 공덕에 수순하며 갖가지 밝히는 법을 모두 성취하여 윗 지위에 오를 업을 닦아 대정진을 이룬다. 그 정진으로 인하여 정심(淨心)과 심심(深心)과 신해(信解)가 만족해지며, 그러한 정법으로 인하여 외도나 마원(魔怨)이 조금도 동요시키지 못하여 부처님 선근의 청정함을 보리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비유컨대 진금으로 세상의 장엄구를 만들면 다른 금은 미치지 못하듯, 보살의 선근도 그러하여서 다른 낮은 지위의 보살의 공덕보다 뛰어나다. 마치 육다마니(育多摩尼)의 광명이 청정함은 다른 구슬이 미치지 못할 바이고, 그 어떤 비바람도 궤멸시키지 못하듯이 이 보살은 낮은 지위의 보살이나 성문이나 연각의 지혜나 광명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마원과 번뇌 모두가 무너뜨리지도 못할 것이다.만일 다시 몸을 받으면 염마(焰摩)천왕이 되어 온갖 착한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되 신견(身見) 등을 깨뜨려 주는 일이나 신통력이 앞의 주보다 수승함이 백천만 배나 된다.
이것이 보리분법증상혜주를 간략히 설한 것이니, 이른바 열 가지 법의 밝음을 성취하고 열 가지 성숙으로 들어가고, 보리분법을 닦고, 신견 등 모든 집착을 끊고 업을 절제하거나 업을 들어 여의거나 닦고, 그로 인해 마음이 더욱 부드럽고 화평해지며 수순하는 공덕을 모두 성취하고는 윗 지위의 업을 닦아 대정진을 이루고 그 정진을 인하여 정심(淨心)과 심심(深心)과 신해(信解)가 청정해지고 그러한 정법을 인하여 마원(魔怨)이 요동시키지 못하고, 부처님 선근의 청정함을 보고 몸을 받아 태어나는 신력 등이니 널리는 수다라 십지(十地) 가운데 염지(焰地)에서 설한 것과 같다.그 지위는 보리분법의 지혜불길종자[智焰種]요, 바르게 말하면 법지명조세간(法智明照世間)이다. 그러므로 그 지위를 염(焰)이라 하나니, 그 염지는 곧 여기의 보리분법상응증상혜주(菩提分法相應增上慧住)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제상응증상혜주(諦相應增上慧住)라 하는가? 이 보살이 처음의 증상혜주(增上慧住)에서 열 가지 평등한 정심(淨心)을 얻고 증상이 만족한 뒤엔 두 번째의 증상혜주에 드나니 열 가지 평등한 정심을 수다라에서 말한 것과 같다.이른바 무등등각(無等等覺)으로 다른 모든 중생을 뛰어넘고 그러한 법으로 평등히 같게 하나니 이것이 평등정심(平等淨心)의 이치를 간략히 설한 것이다.
이 주(住)에 머무른 이는 지혜가 늘어나고 사성제에 대하여 열 가지로 여실히 아나니 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 남을 반연하거나 흑은 스스로 알거나 혹은 함께해서 아나니 수다라와 비니마득륵가(毘尼摩得勒伽)에서 설한 것과 같다.현재의 고(苦)와 고인(苦因)과 고인멸(苦因滅)과 고인멸방편도(苦因減方便道)이니, 이를 간략히 말한 열 가지 사성제(四聖諦)라 한다.
이러한 제(諦:진리)의 방편을 알면 온갖 유위의 행을 파괴하고 모든 중생에 대하여 대비가 증장하며, 앞 세상과 뒷세상에서 사성제에 대하여 어리석고 미혹하고 삿된 쪽으로 향하거든 그들로 하여금 해탈의 공덕과 지혜의 부치[智慧衆具]에 들게 하며, 정원(正願)과 정념(正念)과 정지(正智)와 정설(正說) 등 갖가지 진실한 공덕을 성숙시키며 수행하고, 증장하여 다른 사유가 없다.
온갖 종류의 성숙방편으로 중생을 성숙시키며 모든 중생을 거두기 위하여 세속의 논서(論書)를 닦나니 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공교한 모든 업으로 비심(悲心)을 내어 보리에 안립(安立)하도록 권유하며, 세간의 방편에 수순하여 보시하매 지ㆍ수ㆍ화ㆍ풍 등 사대가 어지러워지는 비인(非人)의 흘림을 모두 쉬게 하며, 무죄희락(無罪戱樂:법다운 굿)으로 못 살림이 풍족케 하며 이러한 이익으로 인하여 그들로 하여금 법을 즐기도록 인도하며, 머물고 사는 뭇 도구도 이익되게 하며, 왕이나 도적에게 시달린 이를 편안하게 제도하며 처비처방편(處非處方便)으로 허락해 주거나 막아주면서 길한 일, 길하지 않은 일에 보시해 주며 현재의 법을 성취하여 더욱더 칭정한 이로움으로써 모든 전도된 이에게 정도를 설해 주나니, 이것이 중생과 세속을 섭수하는 공교함이 평등한 이치이다.부처님 선근의 청정함을 보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나니, 비유컨대 진금과 모든 보배가 뒤섞여 있으면 광명과 청정함이 다른 금보다 뛰어나듯 보살의 지혜 방편도 다른 보살이나 성문 연각보다 뛰어나다. 비유하건대 일월궁전(日月宮殿)은 그 어떤 바람이라도 무너뜨리지 못하듯 보살의 지혜와 방편은 세상의 법으로는 무너뜨리지 못한다.만일 몸을 바꾸어 태어나면 도솔천왕이 되어 모든 선법으로 온갖 외도의 삿된 법을 파괴하나니 그 신통력은 앞의 주(住)보다 억 백 천 배나 된다. 이것이 제상응증상혜주를 간략히 설했다 한다.이른바 평등한 정심(淨心)을 성취하여 제관(諦觀)에 들며 모든 행(行)을 증장시키고 파괴하며, 모든 중생에게 대비심을 증장하여, 공덕과 지혜와 뭇 살림으로 성숙시키며 정원(正願)ㆍ정념(正念)ㆍ정지(正智)ㆍ정설(正說) 등의 공덕이 남음없이 증장하며, 온갖 종류의 성숙시킨 방편을 생각하며, 중생을 성취시키며 공교하며 출생(出生)하며, 부처님 선근의 청정함을 보고 몸을 받는 신력이니, 더 널리 말한 것은 십지(十地)의 난승지(難勝地)와 같다.
그러므로 그 지위를 난승지라 하고 그 난승지는 곧 여기의 제상응증상혜주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연기상응증상혜주(緣起相應增上慧住)인가? 이 보살이 제상응증상혜주(諦相應增上慧住)에서 열 가지 평등법을 얻어 뛰어나고 만족함을 얻은 뒤에 제 육주(六住)에 들어가나니, 첫째는 일체법이 제일의인 자성평등이요, 둘째는 언설(言說) 없음으로 무상(無相)을 행하는 평등이요, 셋째는 생겨남이 없는[無生] 평등이요, 넷째는 인연이 일어나지 않는 평등이요, 다섯째는 필경에 적멸한 평등이요, 여섯째는 모든 거짓을 여의는 평등이요, 일곱째는 모든 행이 취함도 버림도 없는 행동이요, 여덟째는 모든 법이 여의는 평등이요, 아홉째는 망상의 경계가 요술[幻] 같고 허깨비[化] 같은 평등이요, 열째는 망상의 경계에는 유와 무가 둘이 아닌 평등이니 이것이 열 가지 평등의 법을 간략히 말한 것이다.이 주(住)에 머무른 이는 모든 중생에 대하여 대비심이 증장하여 보리를 전일하게 좋아하며, 세간의 모든 모이거나 흩어지거나 생하거나 멸하는 연기(緣起)를 알며, 바르게 행하고는 만연에 의하면 지혜와 세 가지 해탈문, 즉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이 생긴다는 도리를 분명히 알며, 세 가지 삼매에 의하여 아(我)와 아소(我所)를 여의며, 지자(知者)와 작자(作者)와 유성(有性)과 무성(無性)의 상에 대하여 이와 같이 제일의의 방편으로 사유하기를 ‘중생은 번뇌에 결박되었으며 인연으로 화합되어 유위이고 위태로우며, 아와 아소에 집착되어 모든 번뇌를 낸다’ 하고는 번뇌의 매듭을 여의나니 인연으로 화합되었음을 스스로 보호하기 때문이요 모든 유위의 법을 멸하지 않나니 중생을 거두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지혜와 자비로 수순하여 무장애해탈인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며, 무애지해탈(無礙智解脫)에 머문 뒤에는 모든 세간에서 행함에 걸림이 없게 된다. 이렇게 머무른 이를 제칠지(第七地) 보살이라 하나니, 방편행인(方便行忍)과 수순인(隨順忍)에 속하며 무장애해탈반야바라밀에 머무른다.
보리를 닦는 인연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세속의 유위법에도 전혀 머무르지 않으며 저 휴식적멸(休息寂滅)에도 머물지 않는다.이와 같은 방편과 지혜로 수순하여 공삼매(空三昧)문에 들어가면 백 만 가지 공삼매 문이 앞에 나타나며, 공삼매가 그렇듯이 무상ㆍ무원삼매도 그러하다. 이 모든 삼매문이 앞에 나타난 뒤에 불괴심(不壞心)을 얻으면 온갖 종류의 불법이 수승해지고 외도와 마군이 무너뜨리지 못하나니, 나머지는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비유하건대 진금이 뭇 보배와 뒤섞였을 때에 다른 금보다 뛰어나듯 보살의 선근이 청정함은 다른 모든 것들보다 뛰어나다. 비유하건대 달빛이 중생들의 고뇌를 제거해 주는데 온갖 바람결이 능히 방해하지 못하듯, 보살의 지혜 광명이 모든 중생 번뇌의 불길을 꺼 주는데 온갖 마군이 끊어 방해하지 못한다.만일 몸을 바꾸어 태어나면 잘 교화하는 자재천왕(自在天王)이 되어 항상 선법으로 중생들의 온갖 교만을 제거해 주나니 그 신통력이 앞의 주(住)보다 백 천배나 수승하다.
이것을 일러 간략히 연기상응증상혜주를 말한 것이라 하나니, 이른바 평등한 법을 성취함과 깨달음과 모든 연기에 듬과 해탈문을 법과 모든 삿된 생각을 여의고 방편으로 거두어 줌과 무장애해탈인 반야바라밀에 머무름과 무량한 삼매를 얻음과 무너지지 않는 마음을 얻음과 불법의 수승함과 부처님 선근의 청정함을 보고 몸을 받는 신력 등이니 널리는 수다라 「십지품」의 현전지(現前地)에서 설하기를 ‘무애한 지혜가 앞에 나타난다’고 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 지위를 현전지(現前地)라 하고 이 지위에 바탕하여 연기상응증상혜주(緣起相應增上慧住)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유행유개발무상주(有行有開發無相住)인가? 이 보살이 연기상응증상혜주에서 열 가지 방편 지혜를 구족하고는 차례로 세간과 함께하는 승진도(勝眞道)와 세간과 함께하지 않는 승진도를 내고 증상하여 만족한 뒤에는 제칠주(第七住)의 열 가지 방편ㆍ지혜에 드나니, 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이른바 세간의 선법을 출생시키고 복덕을 거두어 모아 중생을 안락하게 하며, 복덕과 살림살이와 보리분법이 모두 증장함을 얻고 온갖 성문ㆍ연각과 함께하지 않으며 중생계ㆍ법계ㆍ세계와 여래의 신ㆍ구ㆍ의를 안다. 이것이 방편ㆍ지혜가 출생하는 도를 간략히 말한 것이라 한다.이러한 공덕이 차츰 승진(勝眞)하여 무량 무수한 여래의 경계가 일어난 곳인 무개발(無開發:無功用)과 무상상(無相想:無分別無異分別)에 들어가서 무량한 부처님 경계가 일어난 곳을 보고는 간격있고 끊임없이 모든 위의를 닦아 익히며, 다니거나 멈추거나 일체처도(一切處道)를 여의지 않을 것을 생각하며, 생각생각에 십바라밀의 법과 모든 보리분법을 구족하나니, 다른 주, 즉 제일 환희주의 정원(正願)을 닦아 익힘이나 제이주의 악계구(惡戒垢)를 여읨이나 제삼의 원이 더욱 증장해서 법의 광명을 얻음이나 제사주의 도에 들이나 제오주의 세간에서 지을 바에 들이나 제육주의 매우 깊은 법문에 들이나 제칠주의 모든 불법을 만족케 하는 조보리법(助菩提法)과는 같지 않다.이 보살이 방편행이 만족하면 주(住)와 지(智)와 신통(神通)과 청정행(淸淨行)을 거두어 받아들이나니, 이 보살은 이 주에서 차례로 청정한 제팔주에 든다.
제팔주에 머무른 이는 한결같이 청정하고 제칠주는 잡정방편(雜淨方便)으로 불염오(不染汚)에 들어가므로 불염오행(不染汚行)이라 한다. 이 제칠주에서는 탐욕 등의 번뇌가 끊어지므로 번뇌가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불지혜의 여실한 마음과 청정함을 얻지 못했으므로 번뇌를 여의었다고 하지는 않는다.이 제칠주는 무량한 신ㆍ구ㆍ의의 업을 성취하니 부처님께서 찬탄하신 업과 같다. 앞에서 설한 다섯 주에서 얻은바 세간의 공업지(工業智:재주 많은 지혜)가 자연스러이 만족해져서 삼천대천세계의 대사가 된다. 오직 윗 지위의 보살과 여래를 제외하고 그 밖에는 아무도 미칠 이가 없다.모든 선정과 보리분법을 모두 현전에 닦되 보답을 받지도 않는다. 보살은 이 주에서 방편으로 잘 조복시키는 삼매에 들기를 생각하고는 백만 삼매를 내어 일체 성문 연각 삼매의 경계를 초월하여 넘어서며 번뇌의 모든 망상행을 밀리 여의고 매우 깊은 신구 의의 업에 수순하여 방편으로 훌륭하게 전진하는 도를 버리지 않는다.중생들로 하여금 보리를 만족히 하려던 생각을 되돌아보고 온갖 형태[相]의 무량한 신ㆍ구ㆍ의의 업을 여의고는 무생법인을 깨끗이 닦으려는 마음을 낸다. 이 주는 자각(自覺)의 경계인 나머지 여섯 주에서의 불법을 만연하는 경계를 뛰어넘나니 제육주보살이 능히 적멸에 드나 이제 이 지(地)에 머무르면 생각생각 적멸이나 적멸을 증득하지 않으며, 미증유한 신ㆍ구ㆍ의의 업이 부사의한 실제를 얻으나 실제를 증득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방편과 지혜가 생기는 것으로 증상을 삼은 뒤에 행이 모든 중생의 행과 같이하여 세간을 밝게 비추나니, 나머지는 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요약하여 말하면 공덕이 되기 위하여 친속을 섬긴다는 생각으로 거두어 주고 승진(勝進)의 법을 닦아 익히어 세 가지 해탈에 머무르니 하승(下承)을 구하는 이는 방편으로 조복시키고 오욕을 구하는 자는 뛰어난 욕망을 구하게 하매 온갖 삿된 소견을 부리는 자는 정념(正念)을 따르게 하여 모든 대회(大會)에 모두 수순케 하니, 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비유하건대 진금에 온갖 마니보배들을 섞으면 염부단금(閣淨檀金)보다 뛰어나듯 보살의 청정한 선근은 온갖 성문 연각과 그 밖의 이구(離垢)보살보다 뛰어나다.비유하건대 햇빛이 염부제에 비추면 온갖 더럽게 젖은 것을 모두 말린 것이 다른 광명보다 뛰어나듯이 이 보살의 지혜 광명은 중생들로 하여금 능히 번뇌를 말라붙게 함이 온갖 성문 연각과 그 밖에 다른 보살의 지혜 광명보다 뛰어나다.만일 다시 몸을 바꾸어 태어나면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이 되어 지혜로써 일체를 이롭게 하는 신력이 앞의 지위보다 백 천 배 뛰어나니 이것이 유행유개발무상주(有行有開發無相住)를 간략히 말한 것이라 한다.이른바 방편 지혜로 승진하는 도를 성취하고 여래의 경계가 일어난 곳인 무간방편(無間方便)에 들며, 생각생각에 보리분법을 구족하고 염오(染汚)와 불염오(不染汚)의 방편행을 건림하며 만족히 거두어 잡아 신ㆍ구 의의 업을 밝히고 세간의 온갖 공교한 업이 만족하며, 무량 삼매를 얻고 모든 성문ㆍ연각과 함께하지 않으며, 생각생각에 적멸한 행으로 일체에 대하여 세간과 함께 행하며 부처님 선근의 청정함을 보고 음을 받아 태어나는 신력이 자재함이니, 보리는 수다라 십지품의 원행지(願行池)에서 설한 것과 같다. 방편행이 만족하기 때문에 그 지위를 원형지라 하고 이 지위에 즉하여 유행유재발무상주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무행무개발무상주(無行無開發無相住)인가? 이 보살이 첫 무상주[初無相住]에서 모든 법의 제일의에 드는 열 가지 지혜를 얻었나니, 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른바 삼세의 법이 응하는 바와 같음과 생도 없고 일어남도 없고 상도 없고 이룸도 없음과 제일의는 언설을 여의었음과 자성은 언설을 알지 못함과 행의 자성과 상으로 생긴 무지(無知)와 삿된 견해와 계착은 언설을 여읜 일임을 아는 것과 처음ㆍ중간ㆍ나중 등 모든 시각에 번뇌가 평등해져서 망상을 여읜 평등에 들어감과 모든 번뇌를 여읨이니 이것이 제일의에 들어가는 지혜를 간략히 말한 것이다.
이 열 가지 지혜가 증상하고 만족한 뒤에는 제팔 청정주(淸淨住)에 들어가나니, 이를 일러 쾌정(快淨)을 얻은 첫 번째 무생법인의 보살이라 한다.다시 네 가지 구함[求]이 있으니, 모든 법의 네 가지 여실지(如實智)를 구하여 모든 법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다. 알기를 구하기 때문에 온갖 망상 계착을 여의고 현재의 법에서 일체의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며 내세의 일체가 구경하여 망상계착을 내지 않는 것이다.
네 가지로 네 가지 여실지를 구하는 일은 앞의 「진실품(眞寶品)」에서 설한 것과 같다.해행주(解行住)로부터 유행유개발무상주(有行有開發無相住)까지는 쾌정을 얻지 못했으나 이 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쾌정을 얻는다. 그러므로 제일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한다.
무생법인을 얻은 뒤에 매우 깊은 행을 얻고 첫 무상주의 네 가지 근심을 여의나니, 첫째는 행(行:加行)과 개발(開發:功用)이 있음이요, 둘째는 정지(淨池:앞의 지위)에서의 정근하던 방편이요, 셋째는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감당키 위한 부지런한 방편이요, 넷째는 미세한 생각의 움직임[微細想行]이다. 그러므로 이 주를 쾌정이라 한다.매우 깊은 법문의 법류수(法流水)에서 여래께서 무량문의 지혜와 신통 등 모든 업의 요익을 내도록 권발(勸發)한다. 권발하는 까닭에 무량한 존신(尊身:分身)과 지혜가 생겨 열 가지 자재를 얻나니, 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자재함을 얻었기 때문에 오랜 동안 가까이 머무르고자 하면 마음대로 곧 이루어지며, 모든 선정과 해탈도 마음에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며, 살아가는 도구와 세상의 공교한 업도 모두 뜻대로 이루어지며, 모든 태어날 곳과 모든 몸 받을 곳에 마음대로 가서 태어나며, 온갖 신력과 온갖 서원을 마음대로 얻으며, 모든 물건을 변화시켜 황금보배로 만드는 일도 마음대로 이루며 법계의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미신(味身)을 모든 법에 건립하는 교편(巧便)을 문득 안다. 이와 같이 자재한 힘과 과보와 복리는 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생각생각에 항상 균등하게 부처님 선근의 청정을 보고 몸을 받아 태어나는 신통력을 보는 것과 금광명(金光明)의 비유는 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이것이 무행무개발무상주(無行無開發無相住)를 간략히 말한 것이라 하나니, 이른바 제일의지(第一義智)를 성취하여 들어가며, 불기법인을 얻으며, 뇌란을 모두 여의며, 쾌정을 얻고 심심한 법문에 머무른 까닭에 부처님들께서 무량한 지혜와 신통과 모든 업으로 이롭게 하기를 권고하시며 무량한 존신(尊身:化身)의 지혜가 생기며 큰 세력과 큰 자재력을 얻으며 복리와 과보와 선근과 청정함과 몸을 받음과 신통력 등이니 널리는 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 「십지품」의 부동지(不動地)에서 설하기를 “행(行)이 있고 개발(開發)이 있는 법을 여의고 부동승진도(不動勝進道:흔들림 없이 수승하게 전진하는 도)를 탄다” 하였다. 그러므로 그 지위를 부동지(不動地)라 하고 이 지위에 터 잡아 무형무개발무상주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무애주(無礙住)인가? 이 보살이 깊은 해탈을 좋아하고 위로 지혜를 향해 수승하게 전진하여 부처님의 법장을 지니는 보살이 해야 할 갖가지 정을 알고는 남을 위하여 널리 설해 주되 설해야 할 법과 설해 주어야 할 곳을 여실히 알며, 설해야 할 법으로 번뇌가 청정해지나니 누가 번뇌이고 누가 청정한가를 여실히 안다.이와 같이 법을 잘 설하는 이를 일러서 대법사(大法師)라 하나니 무량한 다라니를 얻으며, 모든 음성과 변재와 다함이 없는 법다라니(法陀羅尼)에 능숙하여 거두어 주고 감당해 내고 성취시키며 나아가서는 보살의 무애지(無礙智)를 출생케 하며, 법좌(法座)에 앉아 설하는 법을 중생들이 좋아하여 성숙됨을 감당해 내나니, 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선근이 청정하고 몸을 받아 태어남과 신력(神力)도 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를 보살의 무애주를 간략히 설했다 하니, 이른바 깊은 해탈을 깊이 좋아함과 설법하고 지혜를 움직임이 부사의한 대법사와 선근이 청정하여 몸을 받는 신력이니 널리는 수다라 「십지품」의 선혜지(善慧地)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 모든 중생을 안락케 하기 위하여 보살의 무애함을 맑게 닦고 대법을 널리 설한다. 그러므로 그 지위를 선혜(善慧)라 하고 이 지위를 무애주(無礙住)라 한다.어떤 것이 최상보살주(最上菩薩住)인가? 이 보살이 무애주에서 법왕에게 관정(濯頂)시켜야 할 온갖 증류의 법을 맑게 닦고는 이구(離垢) 등 무량삼매를 얻고, 해야 할 일을 하다가 최후에 익일체지관정삼매(益一切智灌頂三昧)가 나타나면 모든 부처님과 함께 앉는 몸을 얻어 연화권속광명(蓮花眷屬光明)으로 두루 비추고 온갖 종류의 온갖 지혜로 관정하면 온갖 드세고 강한 무리가 모두 조복되어 해탈의 방편이 부처님이 머무시는 지혜를 얻으며 무량해탈총지신통(無量解脫總持神通)으로 크게 기억하는 지혜와 말재주의 부치와 대신통과 선근을 얻어 청정하게 몸을 받는 신력을 얻나니 이것이 최상보살주를 간략히 설했다 한다. 널리 말한 것은 수다라 「십지품」의 법운지(法雲地)에서 설한 것과 같다.법운지보살은 보살도를 만족케 하고 보리의 뭇 부치[衆具]를 만족케 하며, 보살의 수승한 지혜를 얻어 대법(大法)의 구름을 일으키고, 정각(正覺)으로써 스스로 깨달아 모든 중생에게 뿌려 주어 번뇌의 더러움이 모두 쉬게 하며 갖가지 선근이 증장하고 성숙케 한다. 그러므로 이 지위를 법운지라 하고 이 지위를 최상보살주(最上菩薩住)라고 한다.위에서 말한 차츰차츰 깊어진 법은 앞의 지위에는 없는 것이니 그 낱낱 주(住)에 대하여 중ㆍ상근(中上根)이면 낱낱 주를 억 백 천 대겁을 지나면 거의 성취하거니와 하근[下根]이면 숫자에 끼지 못한다.
저 낱낱 주는 반드시 세 아승기(阿僧祗) 대겁(大劫)은 지나야 하나니, 첫 아승기 대겁은 해행주(解行住)에서 환희주를 지나 다섯 행상을 뛰어넘고 제이 아승기대겁은 환회주와 내지 유개발무상주(有開發無相住)에서 무개발무상주(無開發無相住)로 뛰어넘을 수 있나니 이는 결정적인 정심(淨心)과 보살의 결정적인 승진(勝進) 때문이요, 제삼 아승기 대겁은 무개발무상주나 무애주에서 최상보살주로 뛰어넘는다.겁(劫)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일월ㆍ주야ㆍ시절ㆍ세수(歲首)가 무량하기 때문에 아승기라 하고, 둘째는 대겁(大劫)이 무량하기 때문에 아승기라 한다. 저 세수로 따지는 아승기겁은 앞의 아승기 보살이 뛰어넘는 바이지만 뒤의 세 아승기대겁은 뛰어넘는 이가 없다. 만일 보살이 증상의 정진을 하면 중겁(中劫)은 바꿀 수 있지만 대겁은 바꾸지 못한다.이와 같이 십 이 주보살은 삼 아승기대겁의 번뇌장분염오(煩惱障分染汚)와 지장분염오(智障分汚染)에서 세 주의 번뇌장분염오를 끊되 환희주에서 악취번뇌분(惡趣煩惱分)을 끊고 증상한 중번뇌분(中傾惱分)을 끊어서 일체가 행하지 않으면 무개발무상주이니 무생법인(無生法忍)이 청정하게 상속하고 번뇌염오분이 전혀 움직이지 않으면 최상보살주이니 모든 번뇌의 습사장(習使障)이 끊어져서 여래주(如來住)에 들어간다.지장염오분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깨는 가죽[皮]이요, 둘째는 살[膚]이요, 셋째는 뼈[骨]이다. 환희주에서는 피장(皮障)을 끊고 무개발무상주에서는 부장(膚障)을 끊고 여래주(如來住)에서는 골장(骨障)을 끓어 모든 장애가 청정해진다. 이 세 주에서 지장(智障)이 끊어지고 나머지 주에서는 차례에 따라 진실되게 장엄한다.이러한 십삼주에 열한 가지 정(淨:맑음)이 있으니, 첫째는 종성정(種性淨)이요 둘째는 해행정(解行淨)이요, 셋째는 정심정(淨心淨)이요, 넷째는 계정(戒淨)이요, 다섯째는 의정(意淨)이요, 여섯째와 일곱째와 여덟째는 견정(見淨)이요, 아홉째는 방편행만족정(方便行滿足淨)이요, 열째는 진실지신통출생정(眞實智神通出生淨)이요, 열한째는 정의무진설무애정(正義無盡說無礙淨)이요, 열두째는 수순일체종일체소지지정(隨順一切種一切所知智淨)이요, 열셋째 여래주는 일체번뇌장습사지장습사정(一切煩惱障習使智障習使淨)이다.앞의 「보살공덕품(菩薩功德品)」에서 말하기를 “여덟 가지 법이 모든 마하연(摩訶衍)을 거두나니 보살장(菩薩藏)에 속한다” 하였는데 이 십삼주로써 제일주와 제이주를 포섭하니 신심생해행주(信心生解行住)로서 보살장에 대하여 듣는 지혜와 생각하는 지혜를 얻는 것이요, 제삼주는 처음으로 정심과 처음으로 지혜로운 행을 닦는 것이요, 제사주에서 제구의 유형유개발무상주까지는 보시를 닦음이 넓고 제십주ㆍ제십일주 제십이주는 지혜와 행을 맑게 닦음으로써 생기는 수혜의 과로 여래주를 성취하여 끝내 벗어 나는 것이다.성문주의 법에도 열두 가지가 있으나, 보살의 차례와 같으니 그렇게 알라. 첫째는 성문자종성주(聲聞自種性住)요, 둘째는 바른 법에 들었으나 차례를 뛰어넘지 않고 깨달음을 얻는 주요, 셋째는 차례를 뛰어넘어 깨달음을 얻는 주요, 넷째는 무너지지 않는 밝음은 얻었으나 아직은 성계(聖戒)가 더욱 높아지지 않은 누진주(漏盡住)요, 다섯째는 증상계(增上戒)와 증상의학(增上意學)에 의하여 출생한 주요, 여섯째와 일곱째와 여덟째는 진제지(眞諦智)를 얻는 증상혜학주(增上慧學住)요, 아홉째는 생사를 관찰하는 무상삼매방편주(無相三昧方便住)요, 열째는 구경무상주(究竟無相住)요, 열한째는 해탈각처주(解說覺處住)요, 열두째는 일체종아라한주(一切種阿羅漢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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