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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61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7권

by Kay/케이 2024.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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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7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제7권

담무참 한역
김월운 번역

15) 사섭품(四攝品)어떤 것이 보살의 애어(愛語)인가? 간략히 말하면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自性)애어요, 둘째는 일체(一切)애어요, 셋째는 난(難)애어요, 넷째는 일체문(一切門)애어요, 다섯째는 선인(善人)애어요, 여섯째는 일체행(一切行)애어요, 일곱째는 제뇌(除惱)애어요, 여덟째는 차세타세락(此世他世樂)애어요, 아홉째는 청정(淸淨)애어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자성애어(自性愛語)인가? 이 보살이 기쁘고 진실하고 여법하고 이로운 말로써 중생에게 이야기하면 이를 일러 간략히 말한 것을 보살의 자성애어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애어인가? 간략히 말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보살이 남을 위로하여 문안할 때엔 얼굴을 펴고 말하기 전에 화평한 빛으로 바르게 바라보고 바른 생각을 앞세워 묻기를 “먼길 오시느라 평안하시며, 사대가 쾌적하시며, 앉고 누우심이 안락하십니까?” 하고, 찬탄할 때에는 “어서 오십시오” 하나니, 이러한 마음으로 안부하기를 세간에 수순하거나 공교한 방편과 말로 위로하거나 문안하며 혹은 축원을 해주어 처자 권속들로 하여금 돈ㆍ재보 곡식ㆍ쌀 등이 빠짐없이 갖추어지되 더욱 불어나게 하고, 공덕이 구족한 것을 보면 그의 믿음ㆍ지계ㆍ보시ㆍ다문ㆍ지혜 등을 찬탄하여 그로 하여금 기쁘게 한다.보살은 모든 종류의 공덕과 상응하는 법을 설하여 중생을 안락케 하며 으뜸가며 수승하고 묘하게 이로운 말을 항상 설하고 균등하게 설하면 이를 보살의 일체애어라 한다.
보살의 애어(愛語)를 두 가지로 분별하건대 세간을 따르는 말과 바르게 법을 설하는 말이다. 위문하고 찬탄하는 것은 세간을 따르는 말이요, 으뜸가며 수승하고 묘하게 이로운 말씀은 바른 법을 설하는 말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난애어(難愛語)인가?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보살은 원수진 이에게 청정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위로하며, 기쁜 마음으로 이롭게 하면서 함께 말하면 이를 첫째의 난애어라 한다.
보살이 유난히 어리석고 근기가 무딘 중생에게 싫증내지 않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헤아려 그에게 법을 설해 주되 모든 피로를 참고 법으로 거두어 주고 구족히 설해 주면 둘째의 난애어라 한다.
보살이 아첨하고 굽고 미혹하고 거짓된 중생들이 화상과 아사리와 존귀하신 복전을 속이거나 혹은 바른 길을 등지고 삿된 쪽으로 향하더라도 해침이 없는 마음의 방편으로 위로하고 기쁨을 내어 이롭게 해주면서 설법을 해주면 이를 셋째의 난애어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문애어(一切門愛語)인가? 간략히 말하면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모든 번뇌를 끊고, 좋은 갈래로 향하는 이에게 처음에 닦아야 하는 법을 설해주고, 둘째는 모든 번뇌를 끊고 진실한 마음을 늘어나게 하려는 이에게 네 가지 진리를 말해주고, 셋째는 방일하는 중생을 보거든 재가인이거나 출가인이거나 균등한 마음으로 꾸짖어 주어 방일을 떠나 방일치 않음에 머무르게 함이요, 넷째는 이미 일어난 의혹을 잘 풀어 주기 위하여 설법을 하거나 결정된 토론을 함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선인애어(善人愛語)인가? 간략히 말하면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이 보살이 부처님들과 보살들의 정인(正因)으로 조복시키는 법을 말함이요, 둘째는 정출(正出)이요, 셋째는 정의(正依)요, 넷째는 정도(正度)요, 다섯째는 정시현(正示現)이다.
장소가 인연이 되어 계를 제정하니 그러므로 이 법을 정인이라 하고, 받은 계를 범하여 훼손함이 있으면 다시 깨끗하게 하나니 그러므로 이 법을 정출이라 하고, 네 가지 의지함에 속하는 뒤바뀌지 않는 법률로서 그곳에 이르는 도를 설하면 이 법을 정의라 하고, 온갖 고통을 벗어나서 다시는 물러나지 않는 도를 설하면 이 법을 정도라 하고, 세 가지로 시현하여 모든 사물에 말이 막히지 않으면 이 법을 정시현이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행애어(一切行愛語)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와 일곱 가지를 간략히 말하여 열세 가지가 있나니, 들어야 할 법을 들려주는 애어와 제재해야 할 법을 제재해주는 애어와 모든 경의 법을 나타내는 애어와 모든 법의 상을 나타내는 애어와 모든 법의 이름과 별명을 나타내되 뒤바뀌지 않는 애어와 법구(法句)로써 갖가지로 분별하는 애어와 그리고 위로해주는 애어와 기쁨을 일으키는 애어와 마음대로 뭇 도구를 나누어 준 뒤에 그들을 대신하여 빈 마음으로 두루 받아들이는 애어와 갖가지 두려운 일에서 편안함을 베풀어주는 애어와 두루 갖추어 설법해서 거두어주는 애어와 착하지 못한 법을 깨우치고 착한 법을 세워 보았거나 들었거나 의심되거나 들추어낸 죄를 꺾어 굴복시키는 애어와 힘있는 설법자를 권하는 애어이니 이러한 열세 가지를 일체행애어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제뇌애어(除惱愛語)인가? 간략히 말하면 여덟 가지가 있다. 이 보살이 입의 네 가지 깨끗함에 의하여 여덟 가지 거룩한 말을 하나니 이것이 제뇌애어이다. 입의 네 가지 깨끗함이라 함은 망어ㆍ양설ㆍ악구ㆍ기어를 여의는 것이요, 여덟 가지 거룩한 말이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그대로 하는 말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그대로 하는 말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차세타세락애어(此世他世樂雲語)인가? 간략히 말하면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친속난(親屬難:친척간의 재난)의 근심과 고통을 끊어주기 위하여 애어로 설법하는 것이요, 둘째는 재물난(財物難)의 근심과 고통을 끊기 위하여 애어로 설법하는 것이요, 셋째는 질병난(疾病難)의 근심과 고통을 끊기 위하여 애어로 설법하는 것이요, 넷째는 계난(戒難)의 근심과 고통을 끊어주기 위하여 애어로 설법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견난(見難)의 근심과 고통을 끊어주기 위하여 애어로 설법하는 것이요, 계구족(戒具足)ㆍ견구족(見具足)ㆍ위의구족(威儀具足)ㆍ정명구족(正命具足)을 위하여 애어로 설법하는 것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청정애어(淸淨愛語)인가? 마땅히 알라. 스무 가지 설법이 있으니 앞의 역종성품(力種性品)에서 설한 것과 같다.어떤 것이 보살의 행리(行利)인가? 그 행리라는 것은 애어(愛語)에서 널리 말한 것처럼 차이가 있다. 행리에 대하여 지금 설하리니 이른바 보살의 온갖 종류의 애어는 그 설하는 이치에 따라 중생을 이롭고 편안케 하는 것을 이른다. 어떤 것이 보살의 자성행리(自性行利)인가? 애어로써 구족히 중생에게 보여주고, 배운 바와 같이 이익될 행을 따라 법차법향(法次法向)을 행하며 비심(悲心)에 머물러서 마음에 탐착함이 없이 권하려 이끌고 가르침을 베풀며 조복하고 안립하면 이를 일컬어 자성행리를 간략히 말했다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행리(一切行利)인가? 간략히 말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모든 중생들이 아직 방편이 익지 않은 이는 익게 하고 이미 익은 이는 해탈에 이르게 한다.
또 세 가지를 말하니, 첫째는 현세의 이익을 주는 행리요, 둘째는 후세의 이익을 주는 행리요, 셋째는 현세와 후세의 이익을 주는 행리이다. 중생에게 권하여 여법한 덕업(德業)으로 많은 재부를 얻고, 잘 지키어 늘어나게 하면 현세의 즐거움을 줌이요, 이 현세에게 큰 명칭과 온갖 살림의 즐거움을 얻어, 거두어들이고 제자리에 세운 뒤에 재물을 버리고 집을 그르다 하고 집을 떠나서 걸식으로 살아가라고 권하면 후세의 이익을 주는 것이요, 반드시 결정코 얻을 것이므로 현재에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재가와 출가에게 차례대로 애욕을 여의도록 권하는 것이 현세와 후세의 이익을 주는 행리이다.
이 현세의 음과 마음으로 안온낙주(安隱樂住)에 머무르면 후세에는 정묘천(淨妙天)에 태어나거나 무여열반의 세계에서 열반에 든다.어떤 것이 보살의 난행리(難行利)인가?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본래 선인(善因)을 닦지 않은 중생으로 하여금 남을 이롭게 하는 행을 하게 하는 것이 첫째의 난행리이니, 선을 행하도록 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래 선근을 닦는 까닭에 많은 재보를 얻고서 깊은 탐착심을 일으키는 이로 하여금 행리(行利)를 하게 하는 것이 둘째의 난행리이니, 그는 크게 방일하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외도나 이학(異學)으로서 본래 삿된 견해에 집착하고 있던 이로 하여금 행리를 하게 하는 것이 셋째의 난행리이니, 그는 어리석어서 극도로 바른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문행리(一切門行利)인가? 간략히 말하면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이 보살은 믿지 않는 이를 권해서 믿음을 내게 하고 나아가서는 건립(建立:自立)하게 하는 일이요, 둘째는 악한 계를 지키는 자로 하여금 맑은 계를 지키게 하는 일이요, 셋째는 나쁜 지혜를 지닌 이로 하여금 바른 지혜를 닦도록 권하는 일이요, 넷째는 인색한 이로 하여금 보시를 닦게 하거나 나아가 건립하도록 권하는 일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선인행리(善人行利)인가? 간략히 말하면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이 보살이 중생에게 진실된 이익으로 주는 것이요, 둘째는 때로 주는 것이요, 셋째는 법다운 이익으로 주는 것이요, 넷째는 부드러움으로 주는 것이요, 다섯째는 인자한 마음으로 주는 것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행행리(一切行行利)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와 일곱 가지로서 간략히 말해 열세 가지가 있나니, 이 보살이 거두어 줄 이는 평등하게 거두어 주고 조복시킬 이는 평등하게 조복시켜 주고, 불법을 어긴 이에게는 그 장애를 제거해 주고 중간에 머물러 있는 이는 법률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이미 들어온 이는 삼승의 법으로 익어지게 해주고, 이미 익어진 이는 해탈을 얻게 하는 것과, 뭇 도구를 잘 지키고 기르며 권하고 인도하여 성숙시키는 일곱 가지 법이니 이른바 소승을 버리고 대승 지키기를 마치 뭇 도구를 지키는 것 같이 한다.
이렇듯이 한 마음을 홀로 고요히 하여 모든 장애를 밝히고 기억해 생각하며 닦고 권하여 성취시킴이다.
성문 연각의 종성이 있는 이는 성문 연각승으로 성취시키고 여래의 종성이 있는 이는 무상보리로 성숙시킨다.어떤 것이 보살의 제뇌행리(除惱行利)인가? 간략히 말하면 여덟 가지가 있으니, 만일 어떤 중생이 부끄러워해야 할 곳에서는 무참전(無慚纏:부끄러운 줄 모르는 번뇌)을 버리게 하여 깨우쳐 주고, 무참전을 그렇게 했듯이 무괴전(無愧纏)ㆍ수전(睡纏)ㆍ면전(眠纏)ㆍ도전(掉纏)ㆍ회전(悔纏)ㆍ간전(慳纏)ㆍ질전(嫉纏)을 모두 깨닫게 함도 이와 같다.어떤 것이 보살의 차세타세락행리(此世他世樂行利)인가? 간략히 말하면 아홉 가지가 있으니, 중생들의 몸으로 짓는 업을 두루 깨끗하게 하는 법으로서 이른바 온갖 불살생(不殺生)과 온갖 부도(不盜)와 온갖 불사음(不邪婬)과 온갖 불음주(不飮酒)의 계를 주고, 중생들의 입으로 짓는 업을 두루 깨끗하게 하는 법으로서 온갖 불망어(不妄語)와 온갖 불양설(不兩舌)과 온갖 불악구(不惡口)와 온갖 불기어(不綺語)의 계를 주고, 중생들의 뜻으로 짓는 의업을 두루 깨끗하게 하는 법으로서 무탐(無貪)ㆍ무애(無愛)ㆍ정견(正見)의 계를 준다.어떤 것이 보살의 청정행리(淸淨行利)인가? 간략히 말하면 열 가지가 있으니 다섯 가지는 외적인 청정함이요, 다섯 가지는 내적인 청정함이다. 외적인 다섯 가지 청정함이란, 첫째는 무죄(無罪)요, 둘째는 불수전(不隨轉)이요, 셋째는 차제(次第)요, 넷째는 일체(一切)요, 다섯째는 여기소응(如其所應:응할 바에 알맞음)이다.잡되게 악을 행하던 이나 이전부터 악을 행하던 이나 한결같이 악을 행하던 이들을 선한 법으로 성취시키면 이것을 무죄의 이익으로 중생을 편안케 한다는 것을 이름이니, 락해탈(樂解脫)여래불은, 권해서 해탈케 하면 이것을 불수전의 이익으로 중생을 편안케 한다고 한다.
어리석은 중생에게는 먼저 거친 법과 거칠고 가까운 훈계를 설하여 수순하고, 중간 지혜로 확인된 이에게는 중간 법과 중간 교훈을 설하여 수순하고, 뛰어난 지혜를 지닌 이에게는 깊은 법과 미세한 교훈을 설해 주면서 수순하여 그 정도에 따라 차츰 착한 법을 얻게 하면 이를 차제의 이익으로 중생을 편안케 한다고 한다.
네 성품과 하늘이나 인간무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생에게 자기의 능력과 힘에 따라 이익과 안락을 주면 이를 일체의 이익으로 중생을 편안케 한다고 한다.하품의 선ㆍ중품의 선ㆍ상품의 선 등에 따라 그에게 알맞은 방편으로 이롭고 편안케 하면 이를 응할 바에 알맞은 행리라 한다. 이상이 외적인 다섯 가지 청정한 행리이다.
내적인 다섯 가지 청정이라 함은 이 보살이 널리 비심(悲心)에 머물러 중생을 이롭고 편안케 하거나, 이 보살이 모든 고통을 참되 게을리 하지 않고 마음에 항상 기뻐함으로써 중생을 이롭고 편안케 하거나, 이 보살이 자재한 몸으로 자기를 낮추기를 하인이나 효자, 전타라의 아들처럼 하여 모든 아만을 여읨으로써 중생을 이롭고 편안케 하거나, 이 보살이 이양을 탐내는 마음을 여의고 마음이 거짓되지 않아 마음을 뛰어나게 묘한 곳에 두고 중생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거나, 이 보살이 구경처에서 끝내 물러서지 않고 항상 인자한 마음으로 중생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면, 이를 보살의 내적인 청정이라 한다.이와 같은 안팎의 다섯 가지 청정을 열 가지 청정으로 중생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보살의 동리(同利:同事)인가? 이 보살이 이 이치와 이 선(善)과 같게 또는 그보다 뛰어나게 중생에게 전해 주어 모두가 자기와 같게 하면 이를 보살이 중생과 함께 동리한다고 한다.
보살이 이 동리를 얻은 뒤에는 중생을 조복시키되 견고하고 결정되어서 선한 법을 권하고 전하는 일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가 생각하기를 ‘이 보살이 나와 동리행을 하니 반드시 나로 하여금 편안하고 쾌락하게 할 것이다. 그 까닭은 보살이 나에게 준 법을 스스로 수행하기 때문이요, 즐겁지 않은 인을 스스로 수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만일 동리로써 중생을 가르친다면 그는 끝내 말하기를 “그대 스스로도 행하지 않거늘 어찌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전해주고 가르치고 경계하려는가? 그대는 마땅히 다른 이에게 가르침과 경계를 물어 받아야 한다”라고 하지 않는다.어떤 보살은 다른 이와 동리하면서도 이러한 동리를 남에게 보이지 않고, 어떤 보살은 동리하지 않으면서도 그대로 동리하는 것으로 보이고, 어떤 보살은 동리를 행하고는 남에게로 동리하는 것으로 보이고 어떤 보살은 동리를 행하지도 않고 남에게 동리하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첫 구절의 뜻은 모든 보살들이 평등한 공덕에서 보살도의 평등한 공덕에 머물렀으되 그 보살이 진실한 공덕을 숨기고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구절은 뜻은 낮고 열등한 중생이 깊은 법을 겁내고 두려워하면 보살이 방편으로 조복시키리라 생각하고 그의 법과 같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니, 예를 들자면 전타라도 빨리 이익을 얻고 번뇌를 끊고 조복시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짐짓 그와 똑같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셋째 구절은 그들이 받아들인 선근이 요동하는 중생들을 조복시키기 위하여 이 보살이 주선근(住善根)이나 상선근(上善根)으로 동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넷째 구절은 마음이 스스로 방일하여 남과 동리하는 일을 버리는 것이다.
앞에서 갖가지 보시를 말하고 계를 널리 말한 것으로부터 동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바라밀은 스스로의 불법을 성숙시키고 섭사(攝事:四攝)를 성취시키나니 이를 보살의 착한 법을 짓는 과업이라고 간략히 말한다.또 갖가지 보시를 말한 것으로부터 동리에 이르기까지의 갖가지 무량한 선법과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세 종류에 의해 행해지고 두 종류에 의해 수승하고 세 종류에 의해 청정하나니, 신ㆍ구ㆍ의의 행(行)이다.
마땅히 알라. 이 행은 상묘(上妙)이며, 무염(無染)이니, 그러기에 승(勝)이며, 무상(無上)이며, 불공(不共)이라 하는 줄 알라.
중생등(衆生等)ㆍ사등(事等)ㆍ시등(時等)이기 때문에 상묘라 하나니, 중생등이라 함은 이 보살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보시 등의 선근을 행할 뿐 자기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것이요, 사등이라 함은 이 보살이 보시 등 온갖 종류의 선근을 행하는 것이요, 시등이라 함은 이 보살이 방편의 계절과 밤낮을 여의지 않고 금세와 후세에 항상 보시 등 선근을 닦되 마음에 쉼이 없는 것이다.무염(無染)이라 함은 네 가지가 있으니, 이 보살이 환희로운 마음으로 선법을 닦아 익히되 이 일로 인하여 근심하거나 고통 받거나 뉘우치거나 한탄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또 이 보살이 다른 사람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모든 소견에 집착하지 않으며 잡되고 사악한 행을 행하지 않고 보시 등 선근을 행하는 것이다. 또 이 보살이 자기의 모든 공덕을 전일하게 드러내고 견고하게 드러내며 적멸이 결정되나니 이는 다른 일을 말미암지 않고서 보시ㆍ지계 등의 모든 선법을 행하는 것이다. 또 이 보살이 보시 등 선법에서 과보, 즉 전륜성왕이나 제석이나 마범(魔梵)을 구하지 않으며, 다른 과보도구하고 않으며 이런 것들에 의하여 명리나 신명(身命)을 구하지도 않으며, 이러한 행과 청정함과 환희를 함께하여 남을 괴롭히지 않고 전일하고 의지함이 없는 보시 등으로부터 동리 등의 모든 선법을 행하는 것을 무염(無染)이라 한다.치연하고 흔들림이 없으며 쾌정(快淨)한 것을 청정이라 하나니, 보살이 정심지(淨心地)에 들어가되 온갖 선법이 치연하여도 요동치 않으면 이를 치연정심지(熾然淨心地)라 하고, 보살이 모든 선법을 사유하지 않고도 일으키면 이를 부동정심지(不動淨心地)라 한다.보살이 이미 얻었거나 닦았던 선법(善法)에서 물러나지 않아서 미래 세상에 이르기까지 결정코 물러나지 않으며 낮과 밤으로 더욱 늘어나는 것이 초승달의 밝음처럼 밤낮으로 자라나서 물러나지 않는 것도 이와 같다. 그 보살이 구경의 보살지(菩薩地),즉 한 생만 남은 경지나 혹은 마지막 몸으로 얻어진 선근을 쾌정(快淨)이라 하니 다시 그 위에 이보다 더 높은 보살의 정지(淨地)가 없기 때문이다.이것을 세 가지 선행ㆍ세 가지 수승함ㆍ세 가지 청정함이라 하나니, 마땅히 알라. 단바라밀다로부터 동리(同利)에 이르는 일체시(一切施)와 내지 일체동리(一切同利)를 청정하게 닦아 익히면 여래가 무상보리 금강견고신(金剛堅固身)을 두루 갖추어 충만하여 바른 법이 오래 머무르게 하는 과보가 생긴다.
또 난시(難施)와 내지 난동리(難同利)를 청정하게 닦아 익히면 여래가 평등하고 기특하고 미증유한 법을 성취하는 과보가 생긴다.일체문시(一切門施)와 내지 일체문동리(一切門同利)를 청정하게 수습하면 여래가 가장 뛰어난 온갖 중생이나 인간ㆍ하늘 무리의 공양을 받는 과보가 생긴다.
선인시(善人施)와 내지 선인동리(善人同利)를 청정하게 수승하면 여래가 저 무족(無J足)ㆍ이족(二足)ㆍ사족(四足)ㆍ다족(多足)ㆍ유색(有色)ㆍ무색(無色)ㆍ유상(有想)ㆍ무상(無想)ㆍ비상(非想)ㆍ비비상(非非想) 등 모든 중생에서 가장 높은 과보가 생긴다.또 일체행시(一切行施)와 내지 일체행동리(一切行同利)를 청정하게 수습하면 여래가 갖가지 무량공덕인 삼십이 대인상(大人相)과 팔십 수형호신(隨形好身)을 받는 과보가 생긴다.
제뇌시(除惱施)와 내지 제뇌동리(除惱同利)를 청정하게 수습하면 여래가 보리수 밑에 계실 때 온갖 악마와 원수가 침노하지 못하는 과보가 생긴다.차세타세락시(此世他世樂施)와 내지 차세타세락동리(此世他世樂同利)를 청정하게 수습하면 여래가 가장 뛰어난 선정으로 해탈과 삼매정수에서 안락한 과보가 생긴다.
청정시(淸淨施)와 내지 청정동리(淸淨同利)를 청정하게 수습하면 여래의 일체종지(一切種智)가 청정해지나니, 이른바 네 가지 청정한 몸, 즉 청정한 연(緣), 청정한 마음, 청정한 지혜, 청정한 과보가 생긴다.
또 삼불호(三不護), 즉 십력(十力) 사무외(四無畏)ㆍ삼염처(三念處) 등 모든 불공불법(不共佛法)이 청정해지는 과보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보살의 보시 등 모든 선법으로 위없는 과보를 내는 것이라 하나니, 무량한 보살의 무죄행(無罪行)에서 나오는 것이다.
16) 공양습근무량품(供養習返無量品)어떤 것이 보살이 여래께 공양하는 것인가? 간략히 말하면 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신공양(身供養)이요, 둘째는 지제공양(支提供養:塔供養)이요, 셋째는 현전공양(現前供養)이요, 넷째는 블현전공양(不現前供養)이요, 다섯째는 자작공양(自作供養)이요, 여섯째는 타작공양(他作供養)이요, 일곱째는 재물공양(財物供養)이요, 여덟째는 승공양(僧供養)이요, 아홉째는 불염오공양(不染汚供養)이요, 열째는 지처도공양(至處道供養:지극한 경지에 이르는 수도의 공양)이다.만일 보살이 부처님의 색신이 공양을 베풀면 이를 신공양이라 하고, 보살이 여래를 위하여 탑이나 굴이나 집에 대하여 헌 것이나 새것을 공양하면 이를 지제공양이라 한다.
보살이 부처님의 색신이나 지제를 마주 보면서 공양을 올리면 이를 현전공양이라 하는데, 보살이 여래와 지제에 희망하는 마음과 환희하는 마음을 갖추어 현전공양을 올리기를 한 여래의 법에 한 것처럼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여래의 법에 똑같이 하고, 한 여래의 지제의 법에 한 것처럼 모든 여래의 지제의 법에 똑같이 한다. 그리고는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여래에게 현전공양을 올렸으니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여래께도 공양하고, 내가 이제 여래의 지제에 공양하였으니 시방의 무량한 일사세계의 지제, 혹은 탑이나 굴이나 집을 헌 것 또는 새것으로 공양하였다’ 한다. 이를 가리켜 보살이 현전과 불현전을 함께하는 공양이라 한다.보살이 앞에 나타나지 않은[不現前] 여래나 지제에 마음으로 공양할 것을 생각하되 ‘일체 부처님을 위해서’라거나 ‘여래의 일체 지제를 위해서다’라고 하면 이를 불현전공양(不現前供養)이라 하고 보살이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의 사리로써 탑이나 굴이나 집을 하나 둘 혹은 많이 공양하기를 힘이 미치는 대로 백ㆍ천ㆍ만에 이르면 이를 보살의 광불현전공양(廣不現前供養)이라 하나니, 이 인연으로 무량한 대과를 얻어서 항상 범복(梵福)을 누길 것이니 이 보살은 항상 무량한 대겁(大劫)에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고 무상보리의 모든 공덕이 만족하게 된다.만일 보살이 여래와 지제에 현전공양을 하면 대공덕(大功德)을 얻고, 불현전공양(不現前供養)을 하면 대대공덕(大大功德)을 얻고 공현전(共現前)공양과 불현전공양을 하면 최대대공덕(最大大功德)을 얻는다.만일 보살이 여래에게나 지제에 손수 공양하되 게을러서 남에게 보시하도록 시키지 않는 것을 보살의 자작공양(自作供養)이라 한다.만일 보살이 여래와 지제에 혼자만 공양하지 않고 부모ㆍ스승ㆍ벗ㆍ친속ㆍ국왕ㆍ대신 장자ㆍ거사ㆍ재가ㆍ출가 등 모두로 하여금 함께 공양케 하면 이를 자타공공양(自他共供養)이라 한다.만일 보살이 조그만한 물건이라도 자비한 마음으로 저 빈곤하고 박복한 중생에게 주어 그로 하여금 여래와 지제에 공양케 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고 자신을 위해서 하지 않으면 이를 보살의 타작공양(他作供養)이라 한다.
자작공양을 올린 이는 대과보(大果報)를 얻고 타작공양을 올린 이는 대대과보(大大果報)를 얻고 자작과 타작을 겸하여 공양한 이는 최대대과(最大大果)를 얻는다.만일 보살이 여래와 지제에 옷이나 음식을 비롯하여 자리와 침구 그리고 탕약 등 뭇 도구와 문안하고 예배하며 받들어 맞아들이고 합장하는 일들과 훈향(薰香)ㆍ말향(未香)ㆍ도향(塗香) 등과 갖가지 꽃다발이나 기악이나 당번(幢幡)이나 증개(繒蓋)나 밝은 등불 등의 갖가지로 오륜(五輪)을 찬탄하고 절하고 공경하며 돌연서 오른쪽으로 늘어놓아 공양하거나 다함이 없고 뛰어난 재보, 즉 마니ㆍ진주ㆍ가패(珂珼)ㆍ옥석(玉石)ㆍ산호ㆍ호박ㆍ자거ㆍ마노ㆍ금ㆍ은ㆍ적보(赤寶) 등은 왼쪽으로 늘어놓되 훌륭한 보배인 마니보배 고리에 보배 방울을 달고는 금전(金錢)을 흩고 금실로 둘러놓는 등 이러한 보물들을 보시하나니, 이를 재물공양이라 한다.만일 보살이 오랫동안 여래와 지제에 재물로 공양하되 많거나 수승하거나 현전이거나 불현전이거나 자작이거나 타작이거나 순수하고 맑은 신심을 놓치지 않고 전일하게 이해하는 마음으로 공양하고 다시 이러한 선근으로 무상보리에 회향하면 이들 일곱 가지를 보살의 승공양(勝供養)이라 한다.만일 보살이 손수 여래와 지제에 공양하되 타인을 경멸해 여기지 않고 방일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며, 아직 발심치 않은 이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으로 공양하며 신심 있는 국왕이나 모든 수승한 사람 앞에서 아첨하고 그릇된 위의를 나타내어 재물을 구해다가 공양하지 않으며, 자황(雌黃)을 부처님의 형상에 바르지 않으며, 즙(汁:우유)으로 불상을 씻지 않으며, 또 구구라향(求求羅香:局屈羅香)을 태워 공양하지 않으며 아가화(阿迦花:遏迦花) 등 부정한 물건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 이를 보살의 여섯 가지 무염오공양(無染汚供養)이라 한다.만일 보살이 뛰어난 불염재물(不染財物)로 여래와 지제에 공양하되 자기의 힘으로 얻었거나 남에게서 구했거나 여의하게 얻었거나 혹은 저 여러 가지 자재한 도구를 여의하게 얻은 재물로써 그 보살이 변화해 나툰 몸이거나 혹은 둘 셋, 내지 백천만 억의 몸으로 변화해 나투고, 그 낱낱 몸이 모두 여래에게 예배하며, 그 낱낱 몸에서 다시 백천의 손을 변화해 내고, 그 낱낱 손으로 갖가지 꽃과 향을 받들어 여래와 지제에 공양하며, 그 온갖 몸으로 모두 여래께서 진실한 공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심을 찬탄하며, 그 낱낱 몸이 모두가 최상으로 묘한 의복과 뭇 보배와 영락과 당번과 화개(花蓋)로 여래께 공양하면 이를 여의자재력(如意自在力)으로 얻은 재물을 얻어 마음을 모아 공양한다 하나니, 여래께서 세상에 태어나심을 기다리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불퇴전의 지위에 머무른 보살은 일체 불찰(佛刹)이 전혀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만일 보살이 자기의 힘으로 재물을 얻지 못했거나 남에게 구하지 못했거나 자재한 힘으로도 공양할 것을 얻지 못했더라도 다른 중생, 즉 염부제, 혹은 사천하, 혹은 천세계(千世界) 혹은 이천세계, 혹은 삼천대천세계, 내지 시방 무량세계에서 상중하의 마음으로 공양하거든 보살은 그들 모든 공양에 대하여 정신심(淨信心)과 승묘해심(勝妙解心)으로 두루 수희(隨喜)한다.이 보살이 적은 방편으로 큰 공양을 일으켜 대보리의 구분을 거두어 모으나니, 이 보살이 항상 진실한 마음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균등케 하는 것을 닦아 배워야 한다. 그 보살이 잠시 동안, 내지 우유를 한 번 짜는 동안에 일체 중생을 위하여 자비희사의 마음을 닦아 익히되 온갖 유위행에 대하여 무상하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무상하므로 괴롭다는 생각, 괴로우므로 무아(無我)라는 생각, 열반이므로 안락하다는 생각이나 불ㆍ법ㆍ승 및 바라밀을 생각하리라는 마음을 일으키거나 잠시만이라도 일체법에 대하여 조그마한 지혜[忍]를 일으키더라도 언설을 여읜 법의 자성은 해탈과 같음을 알고 모든 망상을 떠나 무상심(無相心)에 머무르거늘 하물며 그보다 뛰어난 경우이겠는가?그 보살은 금계(禁戒)와 지관(止觀)과 보리분(菩提分)의 방편과 모든 바라밀과 모든 선에 속하는 방편을 보호해 지니나니, 이를 보살의 지처도공양여래(至處道供養如來)라 하며 으뜸가고 가장 미묘하며 가장 뛰어나고 위없는 것이다. 이러한 공양은 앞의 재물공양에 견주건대 백 배 천 배, 내지 극산수(極算數)의 비유로도 견줄 수 없으리니, 이러한 열 가지를 보살의 일체종공양여래(一切種供養如來)라 한다.부처님께 공양하듯 법에도 그렇고 승에도 그렇게 알맞음에 따르나니, 마땅히 알라.
이 삼보에 열 가지 공양을 올려야 한다. 보살이 여래에게 여섯 가지 청정한 마음을 일으키나니, 이른바 복전이 위없다는 마음, 은덕이 위없다는 마음, 일체중생에게 위없다는 마음, 우담발화(優曇鉢花) 같이 만나기 어렵다는 마음, 삼천대천세계에서 오직 하나라는 마음, 세간과 출세간법에서 일체가 구족하게 의지할 진리라는 마음이니, 이 여섯 가지 마음으로 여래와 법과 승에게 공양할 것을 조금만 생각하여도 무량한 공덕을 얻거늘 하물며 많은 경우이겠는가?보살이 몇 가지 행을 성취하여야 선지식이 되며, 몇 가지 행이 있어야 선지식이 가르쳐 이끄는데 걸림이 없으며, 또 몇 가지 행이 있어야 선지식의 맑은 믿음으로 머무는 곳이 되며, 또 몇 가지 행이 있어야 선지식이 중생을 조복하여, 선지식의 일을 하며, 보살이 몇 가지 행이 있어야 선지식을 가까이 하며, 또 몇 가지 행상(行想)이 있어야 선지식에게 바른 법을 들을 수 있으며, 보살이 선지식에게 바른 법을 들을 때에 또 몇 곳[處]이 있어야 딴 생각[想念]이 없는가?보살은 여덟 가지 일을 성취하여야 모든 선지식의 행을 성취하나니, 첫째는 율의계(律依戒)에 잘 머물러서 범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다문(多聞)이 각오(覺悟)로 나타남이요, 셋째는 선정을 닦아 생기는 지혜와 그리고 그 밖의 지관(止觀)의 선근을 얻음이요, 넷째는 비심(悲心)으로 중생을 가없이 여김으로써 현전의 법에 집착하는 낙착(樂着)을 버리고 널리 중생을 교화함이요, 다섯째는 무외법(無畏法)을 성취하여 대중을 위해 설법하니 정념을 잃지 않고 무리를 즐거이 설함이요, 여섯째는 가벼이 여김ㆍ속임ㆍ꾸짖음ㆍ욕설 등 모든 궂은 말을 잘 참고 또 모든 나쁜 행을 잘 참음이요, 일곱째는 게으름이 없이 많이 생각한 힘으로 사부대중을 위하여 설법하되 피로해하거나 게으르지 않음이요, 여덟째는 변재가 능숙하여 무릇 설법하는데 말씨가 통달함이다.보살이 다섯 가지 일이 있으면 이러한 온갖 종류의 공덕을 구족하고, 선지식으로서 해야 할 개도(開導)에 장애가 없으리니, 첫째는 우선 중생을 안락하게 해 주고자 함이요, 둘째는 그들이 안락한가에 대하여 여실이 알아 뒤바뀌게 느끼지 않음이요, 셋째는 방편을 쓰건 수순하여 설법할 땐 잘 수순하여 중생을 조복시키되 능력이 있음이요, 넷째는 마음이 피로하지 않음이요, 다섯째는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되 상중하에 대하여 치우침이 없는 것이다.보살에게 다섯 가지가 있으면 선지식의 맑은 믿음으로 머무는 자리를 얻어 다른 이가 듣기만하여도 기뻐하거늘 하물며 현전에 뵙는 일이겠는가? 첫째는 위의를 성취함이니 적정한 위의가 구족한 위의로 온몸이 정돈되고, 둘째는 마음이 항상 편안히 머무름이니 신ㆍ구ㆍ의의 업이 들뜨지 않고, 셋째는 속이지 않음이니 이른바 남을 속이지 않음으로써 위의를 거두어 유지하고, 넷째는 질투하지 않음이니, 이른바 남이 설법하여 재물이나 이익을 얻을 때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항상 몸소 권하고 청하여 그로 하여금 설법케 하며 만일 재물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거든 다른 이에게 주라고 권하며, 아침이나 거짓이 없는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며, 다른 이가 설법하거나 이익을 얻는 것을 보면 수희하는 마음을 일으켜 자기가 얻은 것 같이 여기며, 다섯째는 만족을 아는 마음으로 살림을 조금만 얻어도 얻은 것을 모두 버린다.보살이 다섯 가지 일이 있으면 참 선지식이 되어 중생을 조복시키고는 선지식의 일을 하나니, 첫째는 말재주요, 둘째는 생각을 일으킴이요, 셋째는 가르침을 줌이요, 넷째는 가르쳐 경계함이요, 다섯째는 설법이니, 이 다섯 가지 일로 널리 중생을 교화하되 마치 성문의 경지에서 교수하고 교계(敎誡)하듯 하나니, 널리 역성품(力性品)에서 설한 것과 같다.보살이 네 가지 일이 있으면 선지식을 가까이 섬기는 일에 만족하나니, 첫째는 병이 들었거나 병이 들지 않았거나 때에 따라 공양하고 사랑하는 생각으로 공경하며 청정한 믿음으로 이익케 한다. 둘째는 때때로 예경하고 문안하고 받들어 맞이하여 합장하고 공양한다. 셋째는 여법한 의식과 탕약 등 뭇 도구로 공양한다. 넷째는 만일 의지하는 이가 있으면 여법하게 상황에 따라 작용하되 치우치게 움직이지 않고 여실하게 설해주고 때에 맞춰 찾아가서 해야 할 일을 청한다.보살이 선지식에게 다섯 가지 생각을 성취하여야 법을 들을 수 있나니, 보배라는 생각을 할지니, 얻기 어렵기 때문이요, 눈이라는 생각을 할지니, 구생지혜(俱生智慧)를 인(因)으로 삼는 것보다 수승하기 때문이요, 광명[明]이라는 생각을 할지니, 구생지혜의 눈을 얻어 온갖 종류의 여실 경계를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요, 대과복리(大果福利)라는 생각을 할지니, 열반도의 위없는 인을 얻기 때문이요, 즐거워서 죄가 없다는 생각을 할지니 현재에 열반도(涅槃道)를 얻지 못하였더라도 지관(止觀)은 크게 즐거워 죄가 없는 인(因)임을 여실하게 관찰하기 때문이다.보살이 선지식에게 경법(經法)을 들을 때에는 설법하는 사람을 향해 다섯 가지를 생각지 말아야 깨끗한 마음으로 전일하게 들을 수 있다. 첫째는 파계했음을 생각하지 말지니, 이른바 ‘이는 율의(律儀)를 범한 자이니 그에게 경법을 듣지 않으리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는 낮은 성바지임을 생각하지 말지니, 이른바 ‘나는 저 낮은 성바지의 사람에게 경법을 듣지 않으리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셋째는 누추함을 생각하지 말지니, ‘나는 저렇게 누추한 사람에게 경법을 듣지 않으리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넷째는 아름다운 문미(文味)를 무너뜨리겠다고 생각하지 말지니, 이른바 ‘나는 저렇게 말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경법을 듣지 않으리라’ 하고 생각하지 않고 다만 뜻에 의지할 뿐 맛[味]에는 의지하지 않는다. 다섯째는 아름다운 말씨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하지 말지니, 이른바 ‘나는 저렇게 거칠게 말하는 사람에겐 경법을 듣지 않으리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 일을 생각치 않은 뒤엔 이 보살이 바른 법을 부지런히 거두어 설법하는 사람에게 혐오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만일 하근(下根)의 보살이라면 허물 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물러나서 법을 즐겨 듣지 않나니, 마땅히 알라. 이 보살은 스스로도 제도하지 못하고 지혜에서 물러난다.
어떻게 보살이 사무량 즉 자ㆍ비ㆍ희ㆍ사를 닦는가? 간략히 말하면 보살은 사무량을 세 가지로 닦나니, 첫째는 중생연(衆生緣)이요, 둘째는 법연(法緣)이요, 셋째는 무연(無緣)이다.보살이 모든 삼취중생(三趣衆生) 틈에 자리 잡고서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중생을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즐거움으로 이익되게 하리라는 생각으로 자심(慈心)을 닦되 시방의 모든 중생의 뜻과 견해에 두루하리라는 생각에 머무르면 이를 보살의 중생연자(衆生緣慈)라 한다.
만일 보살이 법수상(法數想:唯法想)을 일으켜 법수인 중생을 위해 관(觀)을 하면서 자심을 닦으면 이를 법연자(法緣慈)라 한다.
만일 다시 그 법에서 모든 망상을 여의고 자심을 닦으면 이를 무연자(無緣慈)라 한다.중생연자ㆍ법연자ㆍ무연자와 같이 비ㆍ희ㆍ사도 그와 같나니, 만일 보살이 괴로운 중생에게 괴로움을 제거해 주려는 생각을 일으켜 시방에 두루하면서 비심(悲心)을 닦으면 이를 비(悲)라 하고, 즐거운 중생에게 즐거움으로 수희하려는 생각을 일으켜 시방에 두루하면서 희심(喜心)을 닦으면 이를 회(喜)라 하고, 이러한 세 가지로써 중생에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사심(捨心)을 닦으면 이를 사(捨)라 한다.또 보살의 자무량(慈無量) 등에서 중생연은 외도와 함께 하고 법연은 성문 연각과 함께할 뿐 외도와는 함께하지 않지만 보발의 무연무량(無綠無量)은 모든 성문 연각이나 외도와는 함께하지 않는다.또 보살의 세 가지 무량은 즐거운 생각에 속하니 이른바 자ㆍ비ㆍ희요, 한 가지 무량은 편안한 생각에 속하니 이른바 사이며, 일체 무량을 애민(哀愍)이라고도 하며 이법을 성취한 이는 애민보살이라 한다.보살은 중생세계에 백열 가지의 괴로움이 있음을 보고 비심(悲心)을 닦나니, 어떤 것이 백열 가지 괴로움인가? 첫 번째 괴로움은 이른바 모든 중생이 집고(集苦)에 빠진 것이니 집고가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또 두 번째 괴로움이 있으니, 이른바 애욕의 근본으로 애착하여 생각하는 일인 변역생사(變易生死)의 괴로움과 어리석음의 과보로 받는 괴로움이니, 혹독한 괴로움에 시달려서 “나는 괴롭다”라고 말하면서 어리석게 근심 걱정하는 것이다. 이를 이전(二箭)이라고도 하니 몸의 느낌[身受]과 마음의 느낌(心受)이다.또 세 번째 괴로움이 있으니, 이른바 고고(苦苦)와 행고(行苦)와 변역고(變易苦)이다. 또 네 번째 괴로움이 있으니, 이른바 첫째는 모였다가 헤어지는 괴로움과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괴로움이요, 둘째는 단고(斷苦)니 같은 종류가 갑자기 죽는데서 생기는 것이요, 셋째는 상속고(想續苦)니 무량한 생사의 길이 계속하는데서 생기는 것이요, 넷째는 종경고(終竟苦)니 열반을 얻지 못한 이의 오음(五陰)에 담겨져서 생기는 것이다.또 다섯 번째 괴로움이 있으니, 욕전(欲纏)에 반연된 괴로움과 에치(恚痴)ㆍ수면(睡眼)ㆍ회(悔)ㆍ도전(掉纏) 등에 반연된 괴로움이다.또 여섯 번째 괴로움이 있으니, 이른바 인고(因苦)이니 악도의 인에 의지하기 때문이요 과고(果苦)이니 악도에 태어나기 때문이요, 구재고(求財苦) ㆍ수호고(守護苦)ㆍ부족고(不足苦)ㆍ괴패고(壞敗苦) 등이다.또 일곱 번째 괴로움이 있으니, 이른바 생고(生苦)ㆍ노고(老苦)ㆍ병고(病苦)ㆍ사고(死苦)ㆍ원증회고(怨憎會苦)ㆍ애별리고(愛別離苦)ㆍ구부득고(求不得苦)이다.또 여덟 번째 괴로움이 있으니, 이른바 한고(寒苦)ㆍ열고(熱苦)ㆍ기고(飢苦)ㆍ갈고(渴苦)ㆍ부자재고(不自在苦)ㆍ자작고(自作苦)이니 니건자(尼揵子) 등의 주장이요, 타작고(他作苦)니 저 손에 들린 돌ㆍ칼ㆍ막대기ㆍ모기ㆍ벌레 등이요, 마지막은 구주위의고(久住威儀苦)이다.또 아홉 번째 괴로움이 있으니, 이른바 스스로가 갖추지 못한 괴로움과, 남이 갖추지 못한 괴로움과, 친속을 갖추지 못한 괴로움과, 재물을 갖추지 못한 괴로움과, 건강을 갖추지 못한 괴로움과, 계를 갖추지 못한 괴로움과, 소견을 갖추지 못한 괴로움과 현재의 괴로움과 딴 세상의 괴로움이다.또 열 번째 괴로움이 있으니, 밥을 갖추지 못한 괴로움과, 마실 것을 갖추지 못한 괴로움과, 탈 수레를 갖추지 못한 괴로움과, 의복을 갖추지 못한 괴로움과, 영락(璘珞)이 부족한 괴로움과, 기물이나 살림이 부족한 괴로움과, 화수(華鬚)ㆍ도향(塗香) 등의 살림이 부족한 괴로움과, 풍악[伎樂] 등 살림이 부족한 괴로움과, 밝은 등과 같은 살림이 부족한 괴로움과 남녀 급사가 부족한 괴로움과 초시고(初始苦)이다.다시 다른 아홉 번째 괴로움이 있으니, 이른바 일체고(一切苦)와 대고(大苦)와 일체문고(一切門苦)와 악행고(惡行苦)와 전생고(轉生苦)와 불수욕고(不隨欲苦)와 위해고(違害苦)와 상속고(相續苦)와 일체종고(一切種苦)이다.일체고라 함은 전생의 인(因)에서 생긴 것과 현재[時]의 연(緣)이 바뀌어서 생기는 괴로움이요, 대고라 함은 장야(長夜:長久)와 종종(種種)과 무간(無間)과 광대[大] 등의 괴로움이다.일체문고라 함은 지옥ㆍ축생ㆍ아귀ㆍ선취(善趣) 등에 윤회하는 괴로움이요, 악행고라 함은 현세에 남에게 범한 죄를 남이 다시 나에게 보복하는 것과 나쁜 음식을 먹어 몸이 불안해지는 것과 이렇듯 갖가지를 스스로가 현재에 지은 행위에 온갖 바르지 못한 생각에 머무른 탓으로 온갖 번뇌가 생기는 고통과 몸과 입과 마음으로 갖가지 악행을 지어 오는 세상에 나쁜 길에 태어나는 괴로움 등이다.전생고(殿生苦)라 함은 여섯 가지 결정되지 못함이 있어 생사에 유전하게 되나니 이른바 자신부정(自身不定)이니 이른바 전에는 왕이었으나 나중에 도리어 빈궁해지는 것이요, 처자부정(妻子不定)과 노비급사부정(奴婢給使不定)과 붕우대신 친속부정(朋友大臣親屬不定)이니 이른바 지금에는 처자나 혹은 대신과 친속이던 이가 나중에 생사의 길에서는 도리어 원수나 악지식(惡知識)이 되는 것이요, 재물불결정(財物不決定)은 이른바 생사의 길에서는 재물이 한량없었으나 나중에는 지극히 빈궁하게 되는 것이다.불수욕고(不隨欲苦)라 함은 오래 살기는 희망하고 단명은 좋아하지 않는 걱정에서 생기는 고통과 단정(端正)은 얻고자 하고 추루(醜陋)는 좋아하지 않는 걱정에서 생기는 고통과, 상족(上蔟)은 되고 싶고 비천(卑賤)은 좋아하지 않는 걱정에서 생기는 괴로움과, 자재(自在)는 얻고자 하고 빈궁함은 좋아하지 않는 걱정에서 생기는 괴로움과 대력(大力)은 좋아하고 소력(小力)은 좋아하지 않는 걱정에서 생기는 괴로움과, 다지혜(多智慧)는 얻고 싶고 우치(愚痴)는 좋아하지 않는 걱정에서 생기는 괴로움과, 그를 항복시키고자 하고 그에게 지기는 좋아하지 않는 걱정에서 생기는 괴로움 등이다.위해고(違害苦)라 함은 이른바 재가인에게는 처자가 주는 고통과 출가인에게는 번뇌가 늘어나는 고통과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고통과 전쟁이 두려워 떠는 고통과 넓은 들이나 험한 길에서 두려워하는 고통과 몸의 사지를 구족치 못한 고통과 죽임이나 결박이나 매질을 당하는 고통과 밖으로 쫓겨나는 고통 등이다.상속고(相續苦)라 함은 아홉 가지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낱낱이 들지 않는다.
일체종고(一切種苦)라 함은 다섯 가지가 있으니, 앞에 말한 다섯 가지 즐거움과 어기는 고통이니, 이른바 인고(因苦)와 수고(受苦)와 낙대치고(樂對治苦)와 부단수고(不斷受苦)와, 출가한 이가 적멸한 보리의 낙을 멀리 여의었을 때 집이 아니라 여기는 욕계의 화합된 각상(覺想)으로 대치하는 범부의 고통 등이니 이를 다섯 가지 고통이라 한다.또 다섯 가지 고통이 있으니, 이른바 핍박을 당하는 고통과 못 살림이 부족한 고통과 사대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고통과 욕망하던 일을 잃어버린 고통과 삼계의 번뇌에 더럽혀진 고통 등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괴로움이다.이 다섯 가지와 앞의 다섯 가지를 간략히 말하면 열 가지 일체종고(一切種苦)라 하고, 앞의 쉰다섯 가지와 지금의 쉰다섯 가지를 간략히 말해 백열 가지의 괴로움이라하나니 이는 보살의 가엾이 여길 경계이다. 그를 말미암는 까닭에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니 그를 닦아 익히어 증장시키면 만족함을 성취한다.그러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에서 열여덟 가지 괴로움을 반연하여야 대비심(大悲心)을 낼 수 있나니, 어떤 것이 열여덟 가지 괴로움인가? 이른바 우치보고(愚痴報苦)와 행고(行苦)에 속하는 구경고(究竟苦)와 인고(因苦)와 타핍박고(他逼迫苦)와 타작고(他作苦)와 악계고(惡戒苦)와 악견고(惡見苦)와 본인고(本因苦)와 대고(大苦)와 지옥고(地獄苦)와 선취섭고(善趣攝苦)와 일체성고(一切性苦)와 무지고(無智苦)와 증장고(增長苦)와 수고(受苦)와 비예고(鄙穢苦) 등이다.다시 다음에 네 가지로 비(悲)를 행함으로써 대비(大悲)라 하나니, 첫째는 저 중생들의 심심하고 미세하고 알기 어려운 고통을 반연하여 비심(悲心)을 일으키는 것이요, 둘째는 오랫동안 기르고 백 천겁에 정성껏 닦아 익혀 깨달음을 일으킨 인연으로 생긴 것이요, 셋째는 보살이 그 깨달음에 따라 비심에 들어가서 중생들로 하여금 영원히 뭇 고통을 여의게 하기 위하여 백 천의 신명(身命)도 버리는 것이다. 그러하거늘 하물며 한 몸이나 재물들이겠는가? 넷째는 일체 종류의 고통을 모두 대신 받음으로써 벗어남이 쾌정(快淨)해지나니, 이른바 구경지(究竟地) 보살은 보살의 경지가 청정하고 여래는 여래의 경지가 청정하다.다시 다음에 보살이 이 백열 가지 괴로움에 대하여 비심을 닦다 익히면 보살의 모든 비심을 닦아 익히는 것이 되며, 청정한 비심을 빨리 얻어 정심지(淨心地)에 들어간다.보살은 모든 중생에게 극히 친후한 생각과 사랑하는 생각과 그들이 하는 바를 도와주려는 생각과 피로하거나 싫어함이 없는 생각과 대신 고통을 받으려는 생각과 하는 일이 자재한 생각을 내나니, 끊임없이 고제(苦諦)를 닦는 성제자(聖弟子)들이 끝내는 싫어하고 여의려는 마음을 깊이 일으킨 뒤에 계속해서 생기는 것과는 같지 같다.
이른바 보살은 먼저 백열 가지 큰 괴로움의 무더기를 관하는 행을 하나니, 보살이 이와 같이 비심을 닦아 익히면 안팎의 일에서 아무리 적은 물건도 버리지 않는 것이 없고 어떤 율의(律儀)도 지키지 않는 것이 없고, 남이 괴롭히는 어떠한 일도 참지 않는 것이 없고 어떤 정진도 용맹치 않는 것이 없고 어떤 선정도 삼매를 이루지 않는 것이 없고 어떤 지혜에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어떤 곳에 머물러야 보살이라 합니까?” 하고 여쭈니 부처님朧凌]께서 “대비에 머무른 자니라”라 답하셨으니, 그 한 가지 무량[一無量:大悲]은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
모든 무량에서 으뜸가는 우량이니, 무량애과(無量愛果)와 무량행(無量行)을 쌓아 모으고 거두어 거느리니, 한결같이 순일하고 선하여 죄과(罪過)가 없다.
이와 같이 무량을 닦아 익히는 이는 네 가지 공덕의 이로움이 있으니 이 무량을 닦는 이는 먼저 으뜸가는 현법낙주(現法樂住)를 얻고, 무량한 공덕을 구족히 섭수하고 증장하며, 무상보리에 대하여 청정한 마음이 견고해짐이요, 중생을 위하여 끝없는 생사 중에 모든 중생을 대신하여 온갖 고통을 받는다.
17) 보리품(菩提品) ①어떤 것이 보살의 참괴(慚愧)인가? 간략히 말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自性)이요, 둘째는 의처(依處)이다.
보살이 죄 없는 행을 행하고 스스로가 그릇된 법이었음을 깨달아 속으로 부끄러워하면 이를 참(慚)이라 하고, 이러한 그릇된 법 때문에 남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어 공경하고 부끄러워하면 이를 괴(愧)라 한다.
또 부끄러워할 줄 아는 보살은 성품이 본래 전정(專精:전일한 정진)이거늘 하물며 닦아 익히는 일이겠는가? 이것이 보살의 자성참괴(自性慚愧)라 한다.의처(依處)라 함은 간략히 말하면 네 가지가 있으니, 만일 해야 할 일에 순응하여 건립하지 않고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면 이것이 처음의 의처요, 하지 말아야 할 일에 순응하여 건립하고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면 이것이 두 번째 의처요, 악한 짓을 덮어 숨기고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면 이것이 세 번째 의처요, 의혹이 생겼을 때 스스로 제거해 멸하고서 계속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면 이것이 네 번째 의처이다. 이것이 의처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부동력(不動力)인가? 간략히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自性)이요, 둘째는 의처(依處)이니, 능히 염오심을 끊어 온갖 번뇌로 하여금 자재치 못하게 뭇 고통을 감당해내며, 갖가지 재물이나 이익과 공포에도 바른 방편을 닦아 뒤뚱거리지 않으며, 성품이 본래 너그러워 참고, 성품이 본래 깊이 사유한다. 그러므로 부동이라 하고 이를 자성부동력(自性不動力)이라 한다.또 보살의 부동력은 간략히 말해 다섯 가지 부동(不動)이 있으니, 첫째는 갖가지로 윤회전생하는 고통을 능히 제거해 멸하는 것이요, 둘째는 교화한 갖가지 중생들이 온갖 악행을 하면 그들을 위하는 까닭에 영원토록 고통을 받는 것이요, 셋째는 외도의 주장을 조복시키는 것이요, 넷째는 대중을 위하여 수순해서 설법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승묘하고 심심한 법을 연설하여 보살들로 하여금 모든 계율[禁戒]을 빠짐없이 수지케 하는 것이다.어떤 것이 보살이 마음으로 피로해 하거나 싫증내지 않는 것인가? 다섯 가지 인연이 있어 바른 방편을 닦되 피로해 하거나 싫증내지 않나니, 첫째는 보살이 본성이 본래 힘이 있어서 피로해 하거나 싫증내지 않음이요, 둘째는 피로해 하거나 싫증내지 않는 경지에서 자주자주 닦아 익히되 피로해 하거나 싫증내지 않음이요, 셋째는 방편에 속하는 일에 용맹정진하되 스스로가 앞뒤를 관찰하여 닦은 것이 더욱 수승해지더라도 피로해 하거나 싫증내지 않음이요, 넷째는 깊고 날카로운 지혜의 사유를 성취했으나 피로해 하거나 싫증내지 않음이요, 다섯째는 모든 중생에게 깊이 비심(悲心)을 일으키되 항상 균등하게 가엾이 여기어 피로해 하거나 싫증내지 않음이다.어떤 것이 보살이 모든 이론을 잘 아는 것인가? 이 보살이 5명처(明處)의 명신(名身:명사) 구신(句身:문장)ㆍ미신(味身:뜻)에 대하여 남에게 들은 것을 구족히 받아들이고 외위 익혀 막힘없이 통하며, 남에게 들은 이치를 잘 생각하나니, 이 보살들은 법을 알고 의(義)를 안다. 법이건 의이건 이미 받은 것은 잊지 않고, 아직 닦지 않은 것은 차츰차츰 늘려나가 들음과 생각이 완벽하게 하며, 차례차례 성숙시켜 희정심(喜淨心)을 얻는다.
보살이 이렇게 행하면 지혜가 무량하게 만족하며 선지식들의 모든 이론을 잘 알아 뒤바뀌지 않는다.어떤 것이 보살이 세간을 잘 아는 것인가? 이 보살이 중생세간에 대하여 여실하게 아는 것이니 이른바 생ㆍ노ㆍ사로서 여기서 죽어서 저기에 내어나는 것이요, 이 중생들이 생사에서 벗어날 것도 여실히 아는 것이다.또한 중생세간의 탁세(濁世)가 늘어나는 때를 여실히 알고 탁세가 늘어나는 것을 여의는 때를 여실히 아나니, 이른바 오탁(五濁)이란 첫째는 명탁(命濁)이요, 둘째는 중생탁(衆生濁)이요, 셋째는 번뇌탁(煩惱濁)이요, 넷째는 견탁(見濁)이요, 다섯째는 겁탁(劫濁)이다.이른바 금세에 수명이 짧아서 수명이 백세를 넘지 못하니 이를 명탁이라 하고, 중생들이 부모를 알지 못하고 사문ㆍ바라문ㆍ종족ㆍ존장을 알지 못하고 의리(義理)를 닦지 않고 할 일을 하지 않고 금세와 후세의 악업과 과보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혜와 보시를 닦지 않고 공덕을 짓지 않고 재법(齋法)을 닦지 않고 금계(禁戒)를 지키지 않으니 이를 중생탁(衆生濁)이라 한다.만일 이 중생이 법답지 않은 탐욕을 늘리어 칼을 써서 보시를 요구하거나 무기나 막대기를 써서 보시를 요구하거나 쟁송(譯訟)하고 서로 싸움질하거나 속이거나 거짓말하여 삿된 범을 받아들이거나 그 밖의 착하지 못한 법을 내니 이를 번뇌탁(煩惱濁)이라한다.만일 금세에 법이 무너지고 법이 사라져서 상법(像法)이 차츰 일어나고 사법(邪法)이 점점 생기면 이를 견탁(見濁)이라 하고, 기근겁(飢饉劫), 질병겁(疾病劫), 도병겁(刀兵劫)이 차례로 일어나면 이를 겁탁(却濁)이라 하나니 이들을 보살이 중생의 세간을 아는 것이라 한다.
다시 다음에 보살은 기세간(器世間)의 이루어짐과 무너짐을 여실히 안다.
다시 또 보살은 세간에서 세간의 집(集)과 세간의 멸(滅)과 세간의 집이 멸하는 도[集滅道]와 세간의 맛[味]과 세간의 근심[患]과 세간의 여읨[離]을 여실히 안다.다시 또 보살은 ‘눈과 색과 구생사대(俱生四大)를 사부(士夫)라 하고, 몸을 ≺나≻라 할 뿐 제3의 것이 없고 나를 중생이라 생각하면 제3의 생각이 없다. 내가 눈으로 색을 보고 내지 내가 뜻으로 법을 안다 하여도 모두가 말장난일 뿐이며 이러이러한 장로(長老)가 이렇게 태어나고 어떤 성바지이고 어떻게 먹고 어떻게 괴로워하고 즐거워했고 어떻게 장수했고 어떻게 오래 있었다는 등 이러한 것이 말들의 영역이다’라고 모두 여실히 알며, 보살이 이 중생세간과 기세간에서 여덟 가지로 관찰하여 세간의 이치와 출세간의 이치를 여실히 아니, 이를 일러 세간을 안다고 한다.다시 또 보살은 상좌(上座)나 혹은 공덕이 뛰어난 이를 보면 존중히 맞아 자리를 마련하여 앉기를 청한 뒤에 합장하고 공경히 예배하고 문안하며, 나이와 덕이 동등한 이에게는 반듯한 말로 문답하고 부드러운 말로 위로할지언정 등만(等慢:같은데 훌륭하다는 교만)이나 피차(彼此)를 비교할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이나 덕이 낮은 이에게는 힘에 따라 전하고 깨우쳐 주고 그의 진실한 덕을 칭찬하며, 그의 허물을 덮어주어 부끄럽거나 두려운 생각을 내어 물러가게 하지 않으며, 그를 경멸하지도 않는다.어떤 중생이 법이나 재물을 구하러 가거든 얼굴을 돌리거나 이마를 찡그리지 않고 기꺼이 얼굴을 펴며, 그의 단점을 비웃지 않으며, 그가 실수하는 것을 보아도 경멸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만일 상ㆍ중ㆍ하의 모든 사람을 보면 먼저 말을 건네어 안부하고, 반갑다[善哉]고 찬탄하며 마땅함에 따라 잘 처리하고 힘에 따라 재물이나 법으로 거두어 주되 첨곡(諂曲)치 않고 자중(自重)치 않으며, 자고(自高)하지도 않고 자대(自大)하지도 않으며, 자기가 많거나 높다 하여 뽐내지 않으며, 모든 친지[親厚]들에게 모두를 주어 끝내 저버리지 않으며, 병들거나 병들지 않은 이에게 신ㆍ구 의업으로 수순하여 가까이 하여 준다.
선지식이 되어 주어 모든 원망과 대결을 여의게 하고 고독하거나 빈궁하여 의탁할 곳이 없는 이에게 그 힘에 따라 의지할 곳이 되어 주며, 근심이나 괴로움을 중생에게 보태주지 않으며, 인연되는 일이 있어 터놓고 웃어야 되겠거든 법답게 웃을지언정 여법치 않게 하지 않으며, 회롱하는 말로 남을 평론[形名]하지 않으며, 나아가 친하고 가까운 이에게도 말하지 않으며, 남을 오래도록 미워하고 한탄하지 않으며 비록 그를 미워하더라도 그의 허물을 퍼뜨리지 않는다.만일 남에게 몸이나 입으로 피해를 입었거든 잘 생각하여 법으로써 스스로 풀고 스스로 자기의 허물을 살리어 마음이 들뜨지 않게 하며, 몸ㆍ입 뜻의 업은 생각한 뒤에 움직여서 열네 가지 구업(垢業)을 여의나니, 이른바 숨기는 여섯 가지 방법과 네 가지 나쁜 벗을 빨리 여읨과 네 가지 착한 벗을 가까이함이니 수다라에 말씀하신 바와 같다.현전의 법에 즐거움이 있거든 전재(錢財)가 구족하고 근력(勤力)이 구족하고 수호(守護)가 구족하게 하여 정명(正命)으로써 마음씨를 삼으며, 세간의 모든 공교한 업에는 굽지 않고 미혹하지도 않고 속이지도 않으며, 항상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품고 행동에도 죄스러운 행이 없으며 위의가 구족하고 정중함과 삼가는 것으로 위의를 삼는다.다른 친지들이 재물을 맡겨왔거든 빼앗지 않으며, 남의 빛을 졌거든 끝내 거역치 않으며, 부모의 유산을 나눌 때에는 평등하여 치우침이 없으며, 부모의 유산을 나눌 때에는 평등하여 치우침이 없으며, 참 보배를 파는 상주(商主)가 되었을 때 거짓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가지고 온 이에게도 진실한 보배의 값을 쳐 주며, 세상일을 판단할 때엔 바르게 변론하고 빨리하며, 그들 끼리끼리가 하는 일이 있어 도움을 청하러 온 이가 있거든 모두 동사(同事)해 주어 끝내 물리치지 않고 물음에 따라 능히 문답해 준다.바른 사업만 하고 바르지 못한 일은 하지 않으며, 국왕이 되면 법으로 세상을 다스릴 뿐, 그릇된 법으로 하지 않으며 벌주고 꾸짖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나쁜 무리는 계법으로써 바로 세워 주며 여덟 가지 현성의 말씀을 성취하여 본 것은 보았다고 말하고, 듣고 느끼고 안 것은 알았다고 말하고,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보살은 이와 같은 법들을 성취하고는 세간과 같이 알고 세간과 같이 움직일 줄을 여실히 아나니, 이것을 일러 세간을 안다고 한다.어떤 것이 보살이 네 가지 의지함[四依]을 닦아 익히는 것인가? 이 보살의 의(義)를 위하는 까닭에 남에게 법문을 들을지언정 맛[味]을 위해서가 아니다. 의를 위하여 법을 들을지언정 맛을 위하지 않는다 함은 만일 세간의 선교방편이 아닌 말일지라도 의에 의지하는 보살은 역시 전일한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다시 또 보살은 숨은 말[闇說]이나 드러난 말[明說]에 대하여 여실히 알고, 마땅히 의지해야 할 것을 안 뒤에는 상좌(上座)거나 아는 것이 많다거나 부처님이나 승이라 하여 이러한 모든 설법인(說法人)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의지할 곳에서 사람에게는 의지하지 않고, 진실한 이치에 대하여 마음이 동요되지 않아 스스로 능히 분명히 알되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다시 또 보살은 여래에 대하여 깊은 믿음이 청정하여 한결같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어 받들되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不了義)에는 의지하지 않는다.
요의경에 의지한다 함은 이 법률(法律)로는 파괴할 수 없는 것이요, 불요의경이라 함은 갖가지 법문 말씀이 결정되지 않아서 의문이 있는 것이니, 보살이 요의경에 대하여 결정되지 못하였거든 이 법률도 파괴할 수 있다.다시 또 보살이 견고한 수혜(修慧)를 얻는 것은 문사혜(聞思慧)로 모든 법의 의(義)를 알아서가 아니니 수혜로써 알지언정 문사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여래께서 설하신 제일가고 심심한 법의를 듣더라도 비방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를 보살이 닦아 익히는 네 가지 의지함[四依]을 닦아 익힌다고 한다.
이렇게 성취한 이는 간략히 말하면 네 가지 무량이라 하나니, 그 이치[義]를 드러내 보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사(大師)께서 수혜를 닦아 아신 모든 사의(四依)는 평등한 방편이니, 보살은 그 출요도(出要道)에 대하여 모두 분명하게 통달하여 미혹하지 않는다.어떤 것이 보살의 네 가지 무애혜(無礙慧)인가? 온갖 법과 온갖 장구(章句)에 대하여 그 본체의 실상과 같이, 수혜(修慧)로 알아, 걸림없고 틀리지 않으면 이를 법무애(法無礙)라 하고, 온갖 법과 온갖 상(相)에 대하여 그 본체의 실상과 같이 수혜로 알아 걸림없고 틀리지 않으면 이를 의무애(義無礙)라 하고, 온갖 법과 온갖 명처(名處)에 대하여 그 본체의 실상과 같이 수혜로 알아 걸림없고 틀리지 않으면 이를 사무애(辭無礙)라 하고, 온갖 법과 온갖 종분별(種分別)에 대하여 그 본체의 실상과 같이 수혜로 알아 걸림없고 틀리지 않으면 이를 요설무애(樂說無礙)라 한다.보살이 이러한 네 가지에 걸림이 없으면 다섯 가지 무량한 선교방편[巧方便]을 얻나니, 이른바 음교편(陰巧便)과 계교편(界巧便)과 입교편(入巧便)과 연기교편(緣起巧便)과 처비처교편(處非處巧便)이다. 이 네 가지를 행하는 보살은 모든 법에 대하여 능히 스스로가 깨닫고 남을 위해서도 드러내 보이거니와 이것을 제하고는 달리 스스로 깨달은 길도 있거늘 하물며 남에게 드러내 보이셨는가?어떤 것이 보살의 보리구(菩提具:보리와 함께 함)인가? 마땅히 알라. 두 가지가있으니, 첫째는 공덕구(功德具)요, 둘째는 지혜구(智慧具)이다. 이 두 가지 구(具)는 자타리품(自他利品)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또 공덕구와 지혜구의 보살이 첫 아승기겁에는 하품이요, 제이에는 중품이요, 제삼에는 상품이 된다.어떤 것이 보살의 마하연(摩訶衍)에 속하는 삼십칠 도분(道分)을 닦아 익히는 것인가? 이 보살이 사무애혜(四無礙慧)의 지혜에 의하여 삼십칠 도품을 여실히 알고는 깨달음을 취하지 않으며, 갖가지 승(乘)의 방편도 그들은 여실히 아나니, 이른바 성문승의 방편과 대승의 방편이다. 성문승의 방편을 여실히 안다 함은 성문지(聲聞地)에서 설한 것과 같다.어떤 것이 보살이 대승의 방편인 삼십칠도품에 대하여 여실하게 아는 것인가? 이보살이 신신관(身身觀)에 머물러서는 신신(身身)에 대하여 망상을 일으키지 않고, 모두가 비성(非性情:無性)이라고 여기지도 않고 그 몸에는 언설(言說) 그 자체를 여의었음을 여실히 알면 이를 제일의 신신관염처(身身觀念處)라 한다.만일 보살이 세제(世諦)를 관하면 무량한 방편에 따라 신신관념처(身身觀念處)를 알고 신신관념처와 같이 나머지 염처(念處)와 나머지 도품(道品)도 역시 이와 같이 하여 몸 등의 법에 대하여 망상으로 고(苦)를 관하거나 망상으로 집(集)을 관하지는 않으며, 끊음[斷]에 대하여 멸했다는 망상을 일으키지도 않고 또 인(因)을 얻고서 도(道)라는 망상을 일으키지 않고 언설(言說)을 여읜 본 성품인 고법(苦法)ㆍ집법(集法)ㆍ멸법(減法)ㆍ도법(道法)을 여실히 아나니, 이는 제일의(第一義)의 수도분(修道分)에 의한 것이니 이를 수제(修諦)라 하고, 만일 보살이 세제(世諦)의 무량한 방편에 따르면 이를 연제수(緣諦修:사성제를 연하여 닦음)라 한다.만일 그 보살이 이런 법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를 지(止)라 하고, 그리고 그들이 제일의와 무량한 방편을 알아야 할 법을 여실하게 알면 이를 관(觀)이라 한다.
보살의 지(地)를 간략히 말하면 네 가지 행이 있으니 첫째는 제일의요, 둘째는 세속적인 지혜를 먼저 행함[俗數智前行]이요, 셋째는 온갖 허위망상을 행하지 않음이요, 넷째는 이렇게 말도 형상도 없는 법에 대하여 망상을 일으키지 않고 그 마음이 고요하여 모든 법이 동일한 맛인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행을 보살의 지(止)와 기(起)와 내지 구경(究竟)인 것을 여래는 아시고 보신다.
간략히 보살의 관(觀)을 말하건대 네 가지 행이 있으니, 이른바 이 네 가지 행으로 일어난 지혜를 관이라 하는데, 모든 법에 대해 있다 없다 하는 지혜를 여의고 무량한 법의 차별된 곳에서 관한다. 이러한 네 가지 행에 대하여 보살이 일으킴과 내지 구경임을 여래는 아시고 보시나니, 이것이 보살의 지관(止觀)을 간략히 말한 것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교방편(巧方便)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열두 가지가 있으니, 안으로 불법을 일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 여섯 가지요, 밖으로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 여섯 가지이다.
어떤 것이 안으로 불법을 일으키기 위한 여섯 가지 교방편인가? 첫째는 보살의 비심이니 모든 중생을 돌아보아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현실[諸行]을 여실히 아는 것이요, 셋째는 무상보리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요, 넷째는 돌아보고 생각함에 의하여 중생들이 생사를 여의기를 바라는 것이요, 다섯째는 모든 현실을 여실히 알았으므로 물들음 있는 마음으로 생사 속에 윤전(輪轉)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므로 치연하게 정진하는 것이니 이를 안으로 불법을 일으키기 위한 여섯 가지 교방편(巧方便)이라 한다.어떤 것이 밖으로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한 여섯 가지 교방편인가? 첫째는 보살의 교방편 때문에 적은 선근으로 무량한 과(果)를 일으키는 것이요, 둘째는 적은 방편으로 무량한 선근을 일으키는 것이요, 셋째는 불법을 헐뜯어 파괴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그 포악함을 제거케 하는 것이요, 넷째는 중도에 처해 있는 중생으로 하여금 불법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불법에 들어온 중생들로 하여금 성숙케 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이미 성숙한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다.어떤 것이 보살이 적은 선근으로 무량한 과를 얻게 하는 것인가? 이 보살은 하열한 중생으로 하여금 적은 재물로 낮은 복전에 보시케 하거나 내지는 밀기울로 축생에게 보시케 하고, 보시한 뒤에는 무상보리에 회향케 하면 회향한 힘 때문에 무량한 과를 얻는 것이다.어떤 것이 보살이 적은 방편으로 무량한 선근을 얻는 것인가? 이 보살은 어떤 중생이 삿된 재법(齋法)으로 해탈을 구하는 것을 보면 현성의 팔재계(八齋戒)를 설해 주어 괴롭히는 방편은 구경법(究竟法)이 아니므로 끊게 함으로써 적은 방편으로 큰 과를 얻는 재법을 주는 것이다.다시 또 삿된 중생이 몸을 괴롭혀서 해탈을 구하면 그에게 중도(中道)를 설해 주어 이변(二邊)을 여의고 해탈을 얻게 하며, 또 어떤 중생이 하늘에 태어나기 위하여 삿된 견해의 방편으로 몸을 바위에 던지거나 불에 뛰어들거나 먹지 않거나 하는 등의 고통을 일삼거든 그에게 정법의 선정을 말해 주어 현재에도 즐거움에 머무르게 하고 후생에는 하늘에 태어나 여법하게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다시 또 어떤 중생이 외도의 경전을 외우고 익히어 청정을 구하거든 부처님의 정법을 주어 그로 하여금 외워 익히고 그 이치를 생각하게 하며, 또 여래의 심심한 경전은 공(空)에 상응하는 법을 구족히 현시(顯示)하였음을 설해 주면 그가 이 말씀을 듣고는 싫어하여 여의려는 마음을 내어 전일하고 순정한 믿음을 내기를 잠깐만 하더라도 광대무량한 선근을 거두어 얻거늘 하물며 계속해서 생각하여 버리지 않는 이이겠는가?다시 또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여 깨끗하고 미묘한 생각을 내고는 세간의 향이나 꽃이나 진기한 물건 등으로 삼보께 공양하고 또 남으로 하여금 공양케 하며, 다시 또 이와 같이 밝은 마음이 시방 일체 세계에 두루 가득하게 하여 삼보께 공양한 뒤에는 수회하는 마음을 내고 또 다시 사람들로 하여금 수회하는 마음을 내게 한다.
다시 또 염불(念佛)과 내지 염천(念天)을 항상 닦고 또 남으로 하여금 여섯 가지를 생각케 하며, 또 다시 바른 생각으로 합장 공경하여 때에 따라 일체 삼보께 공양하고 또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공양을 닦게 한다.다시 또 모든 중생의 모든 공덕을 모두 수희하고 또 사람들로 하여금 수희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다시 또 모든 중생에게 광대한 비심(悲心)을 일으켜 온갖 고통을 모두 대신 받고자 하고 또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대비심을 일으키게 한다.
다시 또 과거 현재에 범한 온갖 허물에 대하여 진실하고 수순하게 정계(淨戒)를 구하는 마음으로써 시방의 부처님을 향하여 지성으로 참회하고 또 사람들로 하여금 이와 같이 허물을 뉘우치게 하나니, 그들은 항상 이와 같이 그가 범한 바를 뉘우침으로써 적은 방편으로 온갖 업장에서 모두 해탈하게 된다.다시 또 갖가지 많은 변화를 일으켜 시방의 불ㆍ법ㆍ승과 중생에게서 무량한 신통과 타심통이 자재한 보살로 나타나서 공덕을 거두어 모으고 다시 또 보살은 자ㆍ비ㆍ희ㆍ사를 닦고 또 남으로 하여금 닦게 하나니, 이를 보살이 적은 방편으로 광대하고 무량한 선근의 과보를 내는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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