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81 보운경(寶雲經) 5권

by Kay/케이 2024. 8. 20.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보운경(寶雲經) 5

 

보운경 제5권

양 삼장 만다라선 한역
최윤옥 번역

“선남자야,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보살이 전의(旃衣)를 갖췄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욕심을 따르지 않으므로 전의라 하고, 성냄을 따르지 않으므로 전의라 하고, 어리석음을 따르지 않으므로 전의라 하고, 괴롭히고 해치는 것을 따르지 않으므로 전의라 하고, 탐하고 질투하는 것을 따르지 않으므로 전의라 하고, 나에 대한 집착과 교만을 따르지 않으므로 전의라 하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으므로 전의라 하고, 명예와 이익을 위하지 않으므로 전의라 하고, 악마가 제멋대로 하도록 놔두지 않으므로 전의라 하고, 마음으로 자기를 높이거나 남을 경멸하지 않으므로 전의라 한다.
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전의라고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걸식(乞食)이라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중생을 이롭게 하고 복을 얻게 하려는 까닭에 걸식하는 것, 차례대로 걸식하면 좋을 때건 나쁠 때건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것, 욕심을 적게 하여 만족할 줄 아는 것, 걸식해 얻고 나면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 음식이 좋고 나쁜 데 따라 늘이거나 줄이지 않는 것, 탐착하지 않는 것, 먹는 양을 아는 것, 선을 향해 가는 것, 선근을 닦아 모으는 것, 모든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중생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걸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이 걸식하는 것은 모든 중생이 선근이 적은 것을 보고 걸식법(乞食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도시나 시골의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는 생각을 다잡아야지 놓아서는 안 되며 위의를 다 갖추어야 한다. 돌아볼 때에도 끝까지 경망스럽지 말아야 하며, 찬찬히 거동하며 모든 근을 고요히 가라앉혀야 한다. 눈앞을 자세히 바라보되 거리가 1심(尋)을 넘지 않게 하며,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대해 깊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낸 후에 걸식을 한다.차례로 걸식해야 한다. 찰리나 바라문 같은 부귀한 집을 선택하려는 마음 없이 한결같이 차례대로 하여 음식이 족하면 곧 그친다. 그러나 사나운 개나 새로 송아지를 낳은 어미 소가 있는 곳은 제외하니, 이 금계를 깨뜨리면 축생 중에 떨어진다. 남자건 여자건 소년이건 소녀건 마음을 흔들고 괴롭힐 수 있는 사람에게는 모두 다가가지 않으며, 비난하거나 혐오할 만한 곳 역시 다가가지 않는다. 차례로 걸식하되 집착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모든 중생에게 미워하거나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좋거나 나쁘거나 그 마음을 평등하게 한다. 욕심을 적게 하여 만족할 줄 알아 많건 적건 얻는 데 따르고, 승방으로 돌아와 옷과 발우를 제자리에 놓고 발 씻는 곳으로 간다.만약 불상이나 탑사(塔寺)나 여러 스님의 거처에 이르면 삼가 우러러 공양한다. 걸식한 음식은 네 몫으로 나누어 첫 번째 몫은 함께 범행을 닦는 사람에게 주고, 두 번째 몫은 걸식을 조금밖에 못한 궁핍한 사람에게 주고, 세 번째 몫은 모든 귀신에게 주고, 네 번째 몫은 자기가 먹는다.‘내가 지금 음식을 먹는 것은 단지 도를 닦으려는 생각 때문입니다’라고 하며, 음식에 대해 염착하는 마음을 일으켜선 안 된다. 또 제멋대로 맛에 탐착해 싫증낼 줄 몰라서도 안 된다. 이와 같이 음식을 먹는 것은 이 몸을 존속시켜 그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음식으로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있어야 하니, 수척하게 해서는 안 되며 살찌게 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몸이 수척하면 도를 행하는 데 방해가 되어 수행을 그만두게 되고, 많이 먹으면 몸이 무겁고 또 잠이 많아지기 때문이다.도를 행하기 위해선 먹는 데 있어 절도를 알아 많이도 적게도 먹지 말아야 한다. 또 열심히 닦고 정진해 게으름을 없애야 하니, 보리각지(菩提覺支)를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보리각지가 충만하면 아견이 없어지고, 아견이 없어지면 육신을 중생에게 베풀 수 있게 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걸식법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한 곳에 앉는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보리수에서 도량에 한 번 앉아 악마를 항복시켜 모두 다 놀라고 두려워하게 하는 것,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세간을 벗어나는 정(定)을 얻는 것,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세간의 지혜를 얻는 것,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공삼매를 얻는 것,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모든 법을 깨닫게 되는 것,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8정도를 얻는 것,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진실을 얻는 것,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여실함을 얻는 것,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일체종지를 얻는 것이다.선남자야, 한 번 앉는다는 것은 곧 법에 앉는 것이다. 보살은 동요하지 않으므로 한 번 앉는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한 번 앉는 법[一坐法]이라고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한 번 음식을 받는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음식을 탐하지 않는 것, 음식에 집착하지 않는 것, 충분히 먹었다고 말한 후에는 일체 어떤 것도 받지 않는 것, 소(蘇)나 기름이나 흑석밀(黑石蜜)이나 아마륵(阿摩勒)즙이나 감자즙이나 모든 과일즙을 때건 때가 아니건 일체 마시거나 먹지 않는 것, 남이 먹거나 마시는 것을 보아도 성내지 않는 것, 항상 한 번만 음식을 받는 것, 보살이 병이 들어 고통스러울 때와 생명이 위태로울 때와 선법(善法)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에는 의심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약이라 생각하고 먹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한 번 음식을 받는 법이라고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아련야에 머문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오랫동안 범행(梵行)을 익히는 것, 비니(毘尼)를 잘 아는 것, 모든 근이 다 갖추어진 것, 다문(多聞)을 충분히 갖추는 것, 학문이 넓고 지혜가 많은 것, 아견을 제거하는 것, 노루나 사슴처럼 살찌지도 마르지도 않은 것, 항상 싫어하는 마음을 내는 것, 고요한 곳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것, 아련야에 머무는 것이다.오랫동안 범행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불법 가운데 출가해 도를 배우고 3업(業)을 청정히 하고 금계를 깨끗이 지키며, 모든 법을 잘 알고 위의와 가고 머무는 곳을 잘 알아 오고 가고 앉고 누움에 모두 법률에 의거한다. 그리하여 여래법의 상ㆍ중ㆍ하를 통달해 위의를 가르치고 훈계하며 능히 선법(禪法)을 가르치니, 이와 같은 법을 이미 스스로 알기에 남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뜻을 알고 벗어나는 것을 알고 자리를 알고 죄에서 벗어나는 것을 알아 범하는 것을 모두 피하며, 열심히 계를 닦아 조금이라도 범한 것이 있으면 꾸짖고 참회하며, 범한 경우와 범한 것이 아닌 경우를 모두 깨달아 알며, 중하거나 중간 정도이거나 사소한 죄를 범하면 그 받는 과보의 가볍고 무겁고 멀고 가까운 것을 모두 다 분별할 수 있다.모든 근(根)을 다 갖추고 아련야에 의지해 머무른다. 의지해 머무는 곳은 남의 괴롭힘을 받지 않는 곳, 항상 즐겁게 걸식할 수 있는 곳, 가고 돌아오기에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곳, 부근에 더럽지도 않고 탁하지도 않은 깨끗한 물이 있는 곳, 숲과 나무가 많은 곳, 무서운 곳이 없는 곳, 꽃과 과일이 충분한 곳, 악한 짐승을 멀리 벗어난 곳, 왕래하기가 어렵지 않은 석실이 많은 곳, 고요하기 제일인 곳이다.보살은 이와 같은 곳에서 낮에 세 번 독송하고 밤에도 역시 세 번 독송하되 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게 하며, 모든 근을 잘 지켜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깊이 믿고 환희하며, 능히 게송의 구절을 기억하고 인상(因相)을 잘 취해 잠을 없앤다.왕이나 왕에 버금가는 사람이나 여러 왕자나 바라문이나 찰리 및 그 외의 사람들이 찾아와 보살이 머무는 아련야에 이르면, 비구는 큰 소리로 ‘잘 오셨습니다. 대왕이여, 이곳에 앉으십시오.’라고 한다. 그 사람이 앉을 때에는 보살도 함께 앉고, 그 사람이 앉지 않을 때에는 보살도 앉지 않는다. 그 왕의 근(根)이 안정되지 못했을 때에는 ‘대왕이여, 큰 이익을 얻으십시오. 왕의 국토인 이곳에는 계를 지키는 사문과 바라문이 많고, 왕의 국토인 이곳에는 악한 신하나 도적에게 침해를 받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찬탄한다.만약 왕이 근기가 날카롭고 부드럽게 잘 따라서 법기가 될 만하면 그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한다. 그러나 온갖 설법을 좋아하지 않으면 오욕의 무상함을 말해 염오를 알게 한다. 만약 염오도 좋아하지 않으면 다시 그를 위해 모든 부처님이 대자비를 가지고 자재한 위의로 행한 공덕을 말해 준다. 찰리나 바라문이나 읍주(邑主)나 장자나 나라 사람들이 오면 마땅한 대로 그들을 위해 이와 같이 말하며, 들어 아는 것이 많고 법기가 될 만한 사람에게는 곧 그를 위해 온갖 법을 말해 주어 듣고 나서 믿고 받아들여 마음에 즐거움이 일어나게 하고 모두 환희케 한다.많이 들어 널리 아는 까닭에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상대해 다스리는 법을 잘 닦으며, 아견을 없앨 수 있으므로 두려워하지 않고, 지혜로운 말솜씨를 충분히 갖추었으므로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용맹하게 어려움이 없이 이러한 일을 다 갖추면 아련야에서 편안히 머물 수 있다.염오하는 마음을 늘 가져 홀로 고요한 곳에서 지내기를 좋아하며 야생의 사슴처럼 항상 숲 속에서 지낸다. 그러나 아련야의 비구는 야생사슴처럼 항상 놀라움과 두려움을 품지는 않는다. 비유하면 마치 야생사슴이 사람을 보고 피해 도망가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런 이유로 시끄러운 곳과 모든 남녀들을 모두 다 멀리한다. 왜냐하면 ‘내 마음을 어지럽혀 선정에서 멀어지게 하므로 염오하는 마음을 얻을 수 없다’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공덕을 닦고 또 적정을 좋아해 ‘나는 지금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것을 가까이함으로써 선정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아련야에 머문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아련야에 머무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나무 아래 의지해 머문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마을에서 가깝지 않은 곳에서 나무에 의지해 머무는 것, 가시나무 숲에서 가깝지 않은 곳에 의지해 머무는 것, 마루타(摩樓陀)나 난초(蘭草)가 가까이 있지 않은 곳에 의지해 머무는 것, 마른 나뭇잎이 있는 곳에 의지해 머물지 않는 것, 원숭이가 사는 곳에 의지해 머물지 않는 것, 새의 둥지에 의지해 머물지 않는 것, 사나운 짐승이 있는 곳에 의지해 머물지 않는 것, 도적의 위험이 있는 곳에 의지해 머물지 않는 것, 보살이 의지하는 곳은 모든 공포가 없는 곳과 마음을 기쁘게 하는 곳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나무 아래 의지해 머무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맨땅에 앉는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내내 담이나 벽에 의지해 머물지 않는 것, 또 나무 아래 의지해 머물지 않는 것, 양초(蘘草)나 잔가지 더미에 의지해 머물지 않는 것, 산이 가린 곳에 의지해 머물지 않는 것, 강기슭에 의지해 머물지 않는 것, 추위를 막는 설비를 하지 않는 것, 바람을 막는 설비를 하지 않는 것, 비를 막는 설비를 하지 않는 것, 열기를 막는 설비를 하지 않는 것, 이슬을 막는 설비를 하지 않는 것이다.보살이 맨땅에서 지내다 몸에 병이 들고 몸이 허약해져 승방(僧坊)으로 가게 되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여래께서는 모든 번뇌를 막으시려고 두타(頭陀)를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비록 승방에서 지내기는 하나 마땅히 번뇌를 끊어 없애야 한다. 내가 지금 승방에서 지내기는 하나 탐내어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내 한 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승방을 베푼 단월이 온갖 공덕을 성취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항상 맨땅에서 지낸다는 생각을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맨땅에 앉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무덤 사이에 앉는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머무는 곳마다 염오심(厭惡心)을 많이 일으킨다. 항상 죽은 모습을 생각하고, 벌레가 뜯어 먹는 모습을 생각하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생각하고, 시체가 바람에 불리고 햇볕에 쪼여 푸르죽죽하게 색이 바랜 모습을 생각하고, 배가 부풀어 오른 모습을 생각하고, 불에 타는 모습을 생각하고, 흩어지는 모습을 생각하고, 해골만 남은 모습을 생각하는 수행을 한다. 무덤 사이에 앉아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닦고,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을 하며, 중생을 불쌍히 여긴다. 청정하게 금계를 지키고, 위의를 빠뜨리지 않는다. 끝까지 고기를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온갖 비인(非人)과 악한 귀신이 있어 고기를 먹는 까닭에 성미가 모두 급하고 천하며 기쁨이 없으니, 승려가 고기 먹는 것을 보면 항상 괴롭히고 방해하기 때문이다.무덤 사이에서 지내는 비구는 승방에 가게 되면 먼저 불탑에 예배하고 물러난 다음에 상좌에게 예배한다. 그리고 모든 하좌들과 담론하며 이야기하되, 선 채로 있다가 가야지 여러 승려들의 털로 짠 방석에 앉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승려의 물건을 보호하고 아끼기 위해서이며,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이면 무덤을 비천하게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상을 펴고 앉으라고 권하면 먼저 ‘이건 당신의 자리입니까, 아니면 승가의 자리입니까?’라고 묻고 나서, 그 사람에게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본 후에야 비로소 앉는다. 또한 마음으로 자신을 전다라처럼 낮고 천하다고 생각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무덤 사이에 앉는 법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항상 앉아 있고 눕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몸을 괴롭히기 위해 항상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괴롭히기 위해 항상 앉아 있는 것이 아니며, 잠을 자지 않기 위해 항상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극도로 피곤하기 위해 항상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보리를 만족하기 위해 항상 앉아 있고, 마음을 오로지하기 위해 항상 앉아 있으며, 정도로 향하기 위해 항상 앉아 있고, 도량에 앉아 보리를 얻고자 항상 앉아 있으며, 중생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항상 앉아 있고, 모든 번뇌를 끊기 위해 항상 앉아 있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항상 앉아 있고 눕지 않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펴는 대로 앉는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펴는 자리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펴는 데 따라 앉는 것, 자기가 스스로 펴지 않는 것, 또 남을 시켜 펴지도 않는 것, 어떤 시늉을 해서 남이 펴도록 하지 않는 것, 풀이나 마른 나뭇가지나 잎을 펴고 그 위에 앉는 것, 개미나 모기나 독충이나 파리나 벼룩이나 전갈 같은 것이 있는 곳은 즉시 떠나 그곳에 머물지 않는 것, 눕고 싶을 때는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눕는 것, 발과 발을 서로 겹치는 것, 옷을 잘 여며 풀어지지 않게 하는 것, 잠잘 때에는 마음으로 다음 날 동이 틀 때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명심하는 것, 잠을 집착해 그것을 기쁘고 즐겁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웠을 때 만약 매우 피곤하고 끝내 불편하면 왼쪽 옆구리로 바꾸어 누워야 하니, 몸을 잘 조절해 항상 선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이다.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펴는 대로 앉는 법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선(禪)을 성취한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부정관(不淨觀)을 많이 닦는 것, 자비관(慈悲觀)을 많이 닦는 것, 12인연관(因緣觀)을 많이 닦는 것, 허물 여의는 법을 많이 닦는 것, 공(空)을 많이 닦는 것, 무상(無相)을 많이 닦는 것, 선(禪)을 익히는 법을 많이 닦는 것, 많이 닦으며 뉘우치거나 한탄하지 않는 것, 계율을 완전히 지키는 것이다.선남자야, 부정관을 많이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홀로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조용히 마음을 거두어 현재를 염오하고 몸을 바르게 하여 단정히 앉아 자세를 완전히 갖추고는, 깊이 마음으로 기뻐하며 결가부좌하고 다음과 같이 사유한다.‘사람이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음료나 거친 음식을 먹으면, 맛있는 음식이나 맛없는 음식들은 모두 이 몸에 의해 변해서 깨끗하지 못한 것이 되고 피고름이 되어 더러운 냄새를 풍긴다. 이처럼 모두 다 싫어해야 할 것인데도 모든 중생들은 좋은 맛을 탐하고 집착해 마음으로 항상 애착한다. 나는 이제 부처님의 정법에 의지해 여실한 모습으로 이 몸 관찰하기를 원하리라. 물들어 집착해서도 안 되고 또 싫어해 떠나서도 안 되니, 속히 열반을 구하리라.’
이를 보살이 부정한 모습을 많이 관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자비스러운 마음을 많이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몸을 단정히 하고 홀로 앉아 위에서 말한 염처(染處)를 고요히 사유한다. ‘중생은 노여움이 많아 문득 남을 괴롭히고 방해하려는 마음을 내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다. 만약 중생이 나와 같다면 어찌 내세(來世)의 나에게 원한을 일으키겠는가? 이런 중생은 내가 방편을 써서 그 노여움을 끊게 하리라.’
이런 생각을 가지고 깊은 마음으로 사유하여 비단 입으로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보살이 12인연을 많이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중생이 탐욕과 노여움을 많이 일으키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인연으로 생기고 나머지 법도 모두 다 인연으로 일어난다. 어찌 지혜로운 이가 이런 사실을 알면서 한 찰나나마 인연법을 따르겠는가? 모두 다 곧 공한 것이니, 이러한 것을 위해 스스로를 해쳐서는 안 된다.’보살이 허물을 여의는 법을 많이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스스로 허물을 지었으면 살펴서 끊어 없애고, 남의 잘못을 보면 평등한 마음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살펴서 스스로의 허물을 없애버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이란 모든 부처님에게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법과 승가에 대해서도 역시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계에 대해서도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나이 들고 지혜로운 화상이나 아사리와 또 상좌(上坐)ㆍ중좌(中坐)ㆍ하좌(下坐)에 대해서도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얕보며, 마음은 기꺼이 오욕으로 향하고 열반을 등져버리는 것이다.아견(我見)ㆍ중생견(衆生見)ㆍ수자견(壽者見)ㆍ인자견(人者見)을 허공과 같다고 생각해 단견(斷見)을 일으키거나, 매우 깊이 있다는 생각에 집착해 상견(常見)을 일으키는 것이다. 현성을 등져버려 멀리 여의고 보통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을 매우 가까이하며, 계를 지키는 사람을 멀리하고 계를 깨뜨리는 사람은 매우 가까이하며, 악지식을 가까이하고 선지식은 멀리 떠나며, 경법(經法)을 비방하며 항상 믿지 않는 것이다.모든 깊은 뜻을 들으면 마음으로 놀라고 두려움을 일으키며, 게으르고 나태하며, 닦는 법을 가벼이 여겨 실천하지 않고, 의지가 박약하고 언변이 없으며, 의심하지 않아야 할 곳에 대해서는 의혹을 품고 의심해야 할 곳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5개(蓋)에 덮이고, 환혹(幻惑)과 아첨과 속임과 잠에 덮이며, 이익과 세상의 명예에 탐착하고, 집안의 혈통을 사랑하고 좋아하며, 직업을 자랑하는 것이다.무리에 애착하며, 정법을 멀리하고, 세속의 이야기들을 즐기며, 선정(禪定)을 버리고 멀리하는 것이다. 선한 것을 보면 기뻐하지 않고, 악한 것을 들으면 탐내고 즐거워하며, 마음으로 출가한 사람을 가까이하려 하지 않고, 그저 젊은 여자나 소년이나 소녀만 가까이할 생각하며, 아련야에 머무를 것을 바라지 않고, 먹을 때 먹을 양을 알지 못하며, 지혜로운 스승이나 벗이나 훌륭한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다.경전을 외우고 경행(經行)할 때를 알지 못하고 또 마땅히 가야 할 곳과 돌아와야 할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사소한 계율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작은 악을 가벼이 여기며, 쳐다보는 것이 단정하지 않고, 거동이 경솔하며, 항상 좌법(左法)을 하고, 말이 거칠고 사나우며, 좋거나 나쁜 물질에 대해 마음이 모두 탐착해 기뻐하거나 성내고, 자비심을 닦지 않아 고통 받는 중생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도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으며, 항상 불타는 곳에 있으면서도 벗어나기를 구하지 않고, 몸을 관찰하지 않으며, 금계(禁戒)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자기의 몸을 관찰하지 않아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다 하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며,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도가 아닌 것을 도라 하며, 도를 도가 아니라 하고,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복(福)을 조금 짓고는 곧 많다고 결론짓고 마음이 착란(錯亂)되어 큰 공덕을 끝내 수행하지 않는 것이다.마하연을 헐뜯고 성문을 비방하며, 대승을 좋아하는 사람을 비방하고 소승을 좋아하는 사람을 비방하며, 또 비방을 일으켜 계(戒)를 비난하고 계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사람됨이 억세고 말은 항상 추악하며, 스스로 자기를 높이면서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고, 염치가 없으며, 조악(躁惡)하고 거칠며, 말씨가 불손하고, 교묘하게 꾸미는 말을 좋아하며, 항상 남에게 악한 말을 하고, 온갖 거짓말을 많이 하며, 어조가 실없고 절도가 없는 것이다.이와 같은 허물이 있으므로 이런 허물을 여의기 위해 모든 희롱을 떠나 공정(空定)을 익히고 닦는다. 공을 많이 닦으므로 곳곳에서 체성이 다 공한 것임을 관찰하고, 공한 것을 능히 관찰하는 지혜 역시 공함을 관찰한다. 이렇게 관찰한 다음에 마음을 무상(無相)에 집중해 안팎의 법을 관찰하면, 몸의 모양도 얻을 수 없고 마음을 집중한 모양 또한 얻을 수 없다.이때 마음을 집중하는 것을 볼 수 없고, 몸에 있어서 몸의 모양을 얻을 수 없으며, 또 바깥의 모양도 얻을 수 없고, 바깥을 생각하는 모양도 얻을 수 없어 바깥의 모양을 제거하고 몸의 모양 역시 제거한다. 안으로 눈을 제거해 끊고 마음으로 선법(善法)을 좋아해 끊임없이 차례로 도를 닦아 넓히며, 항상 선정과 지혜를 생각하고 공덕의 근본을 닦는다.모든 법의 여실한 깊은 뜻을 바르게 관찰하는 것을 지혜라 하고, 어지러운 생각을 잘 거두어 환희하며 후회가 없는 것을 선정이라 한다. 왜냐하면 청정하게 계를 지키기 때문이다. 보살은 청정하게 계를 지키므로 반드시 선(禪)을 성취한다. 계는 선도(禪道)를 충분히 갖추고 있으므로 지계를 다 갖추는 것을 곧 선을 닦는 것이라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선법(禪法)을 잘 닦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수다라(修多羅)를 지닌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법을 수호하기 위해 듣고는 능히 지니는 것이지 재물이나 음식을 위해 지님이 아닌 것, 삼보의 종자를 이어 불법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지 이익을 위해 지님이 아닌 것, 마하연을 널리 유포시키기 위해 지니는 것이지 공경과 이익을 위해 지님이 아닌 것, 구제받을 길이 없는 중생을 구호하기 위해 지니는 것이지 명예나 찬탄을 얻기 위해 지님이 아닌 것이다.고통 받는 중생이 즐거움을 얻게 하기 위해 지니는 것, 중생이 지혜의 눈을 얻게 하기 위해 지니는 것, 성문을 구하는 이에게 성문의 도를 얻게 하기 위해 지니는 것, 마하연을 닦아 마하연을 성취하기 위해 지니는 것, 일체종지를 이루기 위해 지니는 것, 하승(下乘)을 구하지 않으므로 지니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수다라를 지니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율사(律師)라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비니(毘尼)가 일어나게 된 인연을 잘 아는 것, 비니의 깊고 깊은 곳을 잘 아는 것, 비니의 미세한 일을 잘 아는 것, 비니에서 이 일은 범하는 것이고 저 일은 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것, 비니의 성중계(性重戒)를 잘 아는 것, 비니의 제중계(制重戒)를 잘 아는 것, 비니를 제정한 인연을 잘 아는 것, 성문의 비니를 잘 아는 것, 벽지불의 비니를 잘 아는 것, 보살의 비니를 잘 아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계를 잘 지니는 율사(律師)인 보살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위의(威儀)를 잘 알고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잘 알며 행법(行法)을 잘 알고 위의로 일어나고 머물 것을 잘 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성문의 계를 잘 배우고, 벽지불의 계를 잘 배워 잘 배움으로써 위의를 다 갖추는 것이다. 위의를 다 갖춤으로써 가지 말아야 할 곳에는 끝내 가지 않고, 가기 마땅치 않은 곳 역시 가지 않으며, 때가 아니면 가지 않고, 사문이 가야 할 곳으로 가고, 사문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은 가지 않아 이런 까닭에 위의를 다 갖추는 것이다. 사문과 바라문이 비난하고 꾸짖는 곳 역시 끝내 머물지 않고, 그러므로 해서 사문과 바라문이 비난하고 꾸짖는 일이 없으며, 또 다른 사람에게 이와 같은 위의와 금계를 수행하도록 가르쳐 이런 뜻으로 인해 위의를 다 갖추는 것이니, 적멸한 위의와 아첨하거나 속이지 않는 위의이다.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위의와 나아가고 멈추며 해야 할 바를 모두 갖춘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질투(嫉妬)를 없앴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스스로 보시하는 것, 또 남들도 보시하도록 가르치는 것, 보시하는 법을 찬탄하는 것, 남이 보시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따라 기뻐하는 것, 법요(法要)를 찬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환희케 하는 것, ‘나에게만 베풀고 저 사람에게는 베풀지 말라’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 것, 모든 중생이 다 베풀어준 이익을 얻고 원하는 것을 다 갖추어 모두 쾌락하기를 원하는 것, 세간의 이익과 즐거움을 얻고 출세간의 이익과 즐거움도 얻기를 원하는 것, ‘내가 지금 열심히 중생을 위해 무상도(無上道)를 닦는 것은 이익을 주기 위함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질투하는 마음을 내서야 되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질투를 없앤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중생을 위해 평등한 마음을 일으킨 것이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모든 중생을 위해 복을 닦는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것,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지도록 하는 것, 모든 중생이 노여움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 모든 중생을 위해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참고 정진하고 선정을 이루고 지혜를 갖추는 것, 모든 중생을 위해 일체종지(一切種智)의 마음을 내는 것, 모든 중생을 위해 스스로 일체종지의 마음을 만족하는 것, 모든 것에 대해 두 가지 극단의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지은 공덕을 모든 중생과 함께하는 것, 모든 중생을 인연해 경계(境界)로 삼는 것, 이렇게 생각할 때 속히 보살법(菩薩法)을 성취하는 것이다.속히 보살법을 성취하는 까닭에 생사가 불타오르는 것 같다는 사실을 관찰해 스스로 이 법을 타고서 능히 생사를 벗어나고,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고해(苦海)를 건널 수 있게 하되, 모두에게 평등한 마음을 내어 더하거나 덜하지 않는다.선남자야, 비유하면 여섯 명의 아들을 둔 장자가 아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모두에게 똑같으므로 그들을 위해 방편을 쓰는 것도 평등한 것과 같다. 여러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무지해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선악도 알지 못하는데 그 집에 불이 일어났다. 이때 어린아이들이 각각 다른 곳에 있으면 선남자야, 장자가 이 아이는 구해야 하고 저 아이는 구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이 아이는 먼저 구하고 저 아이는 나중에 구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장자의 아들에 대한 마음은 평등해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 또한 그러하여 모든 중생을 아들처럼 여긴다.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생사의 마갈(摩竭)이 치성한 세계에서 이 모든 아들들이 각기 6도(道)에 처해 있으니, 보살은 그들의 근기에 따라 응하여 성취시키며 모두 다 건져 구제하고 벗어나게 해 적멸한 곳에 둔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모든 중생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갖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부처님을 잘 공양한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법으로써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 중생을 건져 구제함으로써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 중생을 교화해 모든 선(善)을 행하도록 함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 항상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줌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 원행(願行)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 보살이 행해야 할 일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 말과 행동이 상응함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 피곤해 하거나 싫증내는 마음이 없음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 보리를 버리지 않음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 재물을 보시하는 것으로 부처님께 공양했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무엇 때문인가? 선남자야, 여래의 법신은 재물을 보시하는 공양을 바라지 않고, 오직 법을 베푸는 공양만을 가장 높이 여긴다. 따라서 이로써 공양을 구족하고, 중생에게 이익을 주며 안락하게 하고 항상 좋은 이익을 얻게 한다.선남자야, 만약 중생에게 이익을 줄 수 없으면 선법(善法)을 놓아버리거나 해야 할 일에 싫증을 내거나, 거짓말을 하기 좋아하거나, 뜻이 낮고 천해지거나, 피곤해 하고 싫증내는 마음을 내거나, 보리심을 떠날 것이다. 이런 일들이 있으면 모든 중생에게 어떤 이익도 줄 수 없다. 왜냐하면 보살은 반드시 중생을 의지해 모든 공덕을 닦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기 때문이다.만약 중생이 없다면 끝내 무상정각(無上正覺)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불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법으로 공양하는 것이 가장 첫째가 되며, 재물을 보시하는 것은 진실한 공양이 아니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잘 공양하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교만을 꺾어 굴복시켰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보살이 출가할 때 ‘부모와 권속을 버리고 출가하였으니 버려져 썩고 문드러진 시체와 같다. 어찌 이 가운데서 교만을 일으키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 ‘나는 이제 수염과 머리카락을 잘라 모습을 허물고 진리로 향하였다. 몸을 검소하게 하고 만족한 줄 알며, 색 바랜 웃을 입고 전에 좋아하던 것을 고치며, 출가의 법도를 닦고 세속의 위의를 버려야 한다. 어찌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겠는가.’라고 하는 것이다.머리 깎고 발우를 들고 걸식을 하면서 스스로 걸인이라 생각해 교만하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를 낮추어 전다라(旃陀羅)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 ‘나는 지금 걸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연명하고 있다. 어찌 교만으로 나 자신을 상하게 하겠는가.’라고 생각하고 교만을 꺾어 굴복시키는 것, ‘내가 지금 음식을 구걸하는 이 법식은 남들이 천하게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밥을 줄 때 버리듯이 준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어찌 교만하겠는가.’라고 하는 것이다.‘나는 이제 모든 중생을 항상 화상이나 아사리처럼 여기며 겸손하고 공경해 교만을 꺾어 굴복시키리라’고 하는 것, ‘나는 함께 공부하고 함께 범행을 닦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위의를 잘 지켜 보호하리라’고 하며 항상 따라 행할 생각을 하는 것, ‘계율에 맞지 않는 곳엔 가지 않음으로써 함께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환희하게 하리라’고 이와 같이 생각해 교만을 꺾어 굴복시키는 것, ‘나는 불법을 행하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수행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성내고 괴롭히는 중생에게 마땅히 인욕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 교만을 꺾어 굴복시키게 된다.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교만을 꺾어 굴복시킨 것이라 한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