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보운경(寶雲經) 4권
보운경 제4권
양 삼장 만다라선 한역
최윤옥 번역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보리심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마음에 아첨과 거짓이 없고 또 환혹(幻惑)이 없는 것, 마음이 항상 길하고 진실하며 맑고 깨끗한 것, 부처님과 법과 승가를 끝내 의심하지 않고 불법을 받아 지니는 사람 역시 의심하지 않는 것, 스승이라는 생각으로 법에 인색하지 않고 법을 아끼는 생각을 없애버리는 것, 끝내 불법 인연을 없애는 짓은 하지 않는 것, 말과 행동이 상응하여 끝내 허망하지 않은 것, 대승을 받아 지니는 것, 받아 지니는 사람을 보면 항상 공경하는 것, 마하연에 점차 깊이 들어가는 것, 설법하는 사람을 부처님이나 선지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항상 보리심을 잊지 않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과거의 운명을 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일찍이 모든 부처님을 많이 공경한 것, 모든 불법을 받아 지니는 것, 청정하게 계를 지키는 것, 모든 의심과 후회를 없애는 것, 모든 장애를 없애는 것, 환희하는 마음이 많은 것, 선정을 즐거워하는 것, 항상 화생(化生)하는 것, 불망식(不妄識)을 얻는 것이다.부처님께 공양하는 사람은 항상 정법에 대해서 공경하는 마음을 내고 정법을 받아 지니는 사람 역시 항상 공경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능히 법을 받아 지녀, 독송하고 사경하며, 널리 사람들을 위해 설한다. 신명을 아끼지 않고 오로지 정법을 위해 청정하게 계행을 닦으므로 몸과 입과 뜻의 업이 모두 다 청정하다. 계를 지켜 청정한 까닭에 마음에 의심과 후회가 없으며, 청정하게 계를 지키는 까닭에 어떤 장애도 없으며, 장애가 없는 까닭에 환희하는 마음이 생긴다.환희하는 마음이 생기는 까닭에 선정을 닦게 되고, 선정을 닦는 까닭에 청정한 곳에 태어나게 되며, 청정한 곳에 태어나는 까닭에 곧 화생하게 된다. 화생하므로 불망식을 얻게 되고, 불망식을 얻는 까닭에 곧 과거의 운명을 알게 되며, 과거의 운명을 아는 까닭에 능히 한 번의 생애와 두 번의 생애를 알게 되고 나아가 백천의 생애를 알게 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숙명지(宿命智)를 얻은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선지식을 여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부처님과의 만남을 여의지 않아 부처님에 대해 듣거나 부처님을 기억하는 것, 항상 법을 듣는 일을 여의지 않는 것, 항상 스님 공양하는 일을 여의지 않는 것, 모든 부처님과 보살에게 예배하고 안부를 묻고 공경하고 합장하고 공양하는 등의 일을 여의지 않는 것, 많이 들어 아는 사람을 여의지 않고 설법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모든 바라밀 듣는 일을 여의지 않는 것, 뜻을 깨닫게 하는 모든 도품(道品)의 법 듣는 일을 여의지 않는 것, 3해탈문(解脫門) 듣는 일을 여의지 않는 것, 4무량심(無量心) 듣는 일을 여의지 않는 것, 일체종지(一切種智) 듣는 일을 여의지 않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선지식을 여의지 않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악지식을 멀리한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파계한 악지식을 멀리하는 것, 정견을 깨뜨리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 위의를 허물어뜨리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 삿된 방법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 세속의 말들을 좋아해 마음이 어지럽고 흐트러진 사람을 멀리하는 것, 게으른 사람을 멀리하는 것, 생사를 좋아하고 애착하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 보리를 등지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 재가 사람들을 멀리하는 것, 모든 번뇌를 멀리하는 것이다.보살은 비록 이와 같은 일들을 멀리하기 좋아하나, 끝내 괴롭히고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고 또한 업신여기고 헐뜯는 마음도 내지 않는다. 보살은 ‘내가 일찍이 부처님께 듣기로는 악지식을 친숙히 가까이함으로 인해 허물어지는 일이 많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모든 것을 멀리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악지식을 멀리하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여래의 법신(法身)을 얻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평등한 몸, 둘이 아닌 몸, 청정하여 다함이 없는 몸, 오랫동안 선을 닦은 몸, 법의 몸, 수량으로 셀 수 없이 깊고 깊은 몸, 부사의한 몸, 적멸한 몸, 허공과 같은 몸, 지혜의 몸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여래의 법신을 얻은 것이라 한다.”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느 때 여래의 법신을 모두 얻게 됩니까?”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선남자야, 초지 보살은 평등한 몸을 얻는다. 왜냐하면 초지 보살은 모든 악한 몸을 없애고 모든 보살과 같게 되므로, 이를 평등한 몸이라 한다. 2지 보살은 청정한 몸을 얻으니, 청정하게 계를 지키기 때문이다. 3지 보살은 다함이 없는 몸을 얻으니, 성내고 괴롭히고 해치려는 마음을 없애기 때문이다. 4지 보살은 오랫동안 모든 선을 쌓은 몸을 얻으니, 모든 불법을 수집하기 때문이다. 5지 보살은 법의 몸을 얻으니, 선정의 힘으로 모든 불법을 알기 때문이다.6지 보살은 세간에서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몸을 얻으니, 깊고 멀기 때문이다. 7지 보살은 불가사의한 몸을 얻으니, 훌륭한 방편이 있기 때문이다. 8지 보살은 적멸한 몸을 얻으니, 쓸모없는 이론을 잘 없애 모든 번뇌를 다하기 때문이다. 9지 보살은 허공과 같은 몸을 얻으니, 걸림이 없는 몸을 얻어 허공에 두루하기 때문이다. 10지 보살은 묘한 지혜의 몸을 얻으니, 왜냐하면 모든 보살의 모든 지위의 법을 두루 알기 때문이다.”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의 법신은 여래의 법신과 차이가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차이가 없다. 단지 공덕이 다를 뿐이다.”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몸에는 차별이 없는데 공덕이 다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몸의 명칭은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몸과 입이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덕의 모습에는 각기 차이가 있다.”제개장보살이 여쭈었다.
“몸이 같은데 어찌하여 따로 공덕의 모습을 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지금 너를 위해 비유로 설명하여 이 뜻을 풀이하겠다. 비유하면 마니주(摩尼珠)를 모두들 다 같이 ‘마니’라 부르는 것과 같다. 이 구슬의 이름은 비록 하나이나 갈고 닦아 꾸며야 빛이 밝게 드러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여래의 몸을 아직 갈고 닦지 않은 것이 보살의 몸이다. 여래의 몸도 마니보배이고 보살의 몸도 마니보배여서 보배인 것은 다름이 없으나 여래의 마니보배와 보살의 마니보배는 그 광명과 색상이 각각 다르다.왜냐하면 여래의 몸인 마니보배는 한량없이 중생계에 가득 차고 허공계에 가득 차며 청정해 어떤 티끌과 때도 없으나 보살의 몸인 마니보배는 한계가 있어 허공계에 가득 찰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더러움의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선남자야, 비유하면 달은 초승달에서 15일의 보름달에 이르고 그 후 15일간도 역시 달이라고 하며, 내지 달이 다 이지러져도 모두 달이라고 한다. 그러나 달이라는 명칭은 같지만 밝기는 15일의 보름달만 못하다. 법도 그러하여 여래의 몸과 보살의 몸을 모두 달이라 한다면, 달이라는 명칭도 같고 실제 역시 같지만 광명이 비추는 것은 보살과 여래가 각각 다르다. 보살 몸의 광명이 비추는 것은 여래의 그 빛이 치성한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비유하면 마치 월말의 달과 월초의 달을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다.선남자야, 이런 까닭으로 여래의 몸과 보살의 몸은 두 몸이 같긴 하지만 공덕은 서로 다르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금강(金剛)처럼 파괴할 수 없는 몸이라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파괴할 수 없는 것, 고뇌와 교만과 나에 대한 집착과 잘난 체하는 것과 전도된 견해가 파괴할 수 없는 것, 세간의 8법이 파괴할 수 없는 것, 악도가 파괴할 수 없는 것, 어떤 괴로움도 파괴할 수 없는 것,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이 파괴할 수 없는 것, 어떤 외도의 삿된 견해도 파괴할 수 없는 것, 어떤 악마와 악마의 권속들도 파괴할 수 없는 것, 어떤 성문과 벽지불도 파괴할 수 없는 것, 어떤 욕계도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금강처럼 파괴할 수 없는 몸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대상주(大商主)라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상인들로 하여금 가르침을 순순히 따르도록 하는 것, 상인들로 하여금 공양하고 공경하도록 하는 것, 인도하여 모든 재난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 여러 사람들의 믿고 의지할 곳이 되어 사람들이 의지하게 하는 것, 항상 목숨을 건져주는 것, 자량(資糧)이 풍족한 것, 온갖 보배가 많은 것, 마음에 만족할 줄 모르는 것, 항상 길잡이가 되는 것, 일체종지의 큰 성(城)에 이르는 것이다.보살은 상인들이 가르침에 순순히 따르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마치 상주(商主)가 여러 상인들을 잘 인도하여 모두가 다 말하는 대로 따르게 하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중생을 잘 교화시켜 능히 모두가 다 따르게 한다.비유하면 마치 상주를 모든 상인들이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처럼, 보살상주 또한 그러하여 학인(學人)ㆍ무학인(無學人)ㆍ천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인비인(人非人) 등이 역시 모두 다 찾아와 공경하고 공양한다.비유하면 마치 상주가 광야에서 도적들이 출몰하는 곳을 잘 알아 많은 동반자들을 탈 없이 지나갈 수 있게 하는 것처럼, 보살상주 또한 그러하여 번뇌의 도적이 들끓는 생사의 광야에서 여러 사람을 거닐고 탈 없이 지나간다.비유하면 마치 상주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광야를 벗어나 목숨을 건지게 하는 것처럼, 보살 또한 그러하여 모든 외도(外道)와 발라바식(鉢羅婆殖)과 니건타(尼乾陀) 등을 인도하여 생사의 광야를 벗어나 목숨을 건지게 한다. 왕자나 대신이나 관속(官屬)이나 생사를 좋아하는 모든 중생들 역시 보살 대상주에게 의지하는 까닭에 모두 다 구제받게 된다.마치 대상주가 필요한 보배와 자량을 잘 비축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험한 길을 지난 뒤 안온을 얻고 큰 성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보살상주 또한 그러하여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고자 많은 사람과 함께 생사의 험하고 먼 광야를 거쳐 피안의 성에 이르려 한다면 공덕을 닦아 스스로 장엄하고 선정과 해탈을 모두 다 구족해야 한다. 보살상주는 일체종지의 큰 성에 이르고자 모든 불법 공덕의 진귀한 보배를 갖춘다.비유하면 마치 상주가 온갖 보배를 모으는 데 만족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법의 재보를 모으는 데 만족해 그치는 일이 없다. 비유하면 상주가 많은 상인들을 잘 이끌고 총명한 지혜가 가장 뛰어나며 재산이 많으므로 그의 말이라면 모든 사람이 다 받들고 따르는 것처럼, 보살상주 또한 그러하여 많은 사람들을 앞에서 인도하니 공덕이 한량없고 법이 자재하며 하는 말이 틀림없기 때문이다.상주가 상인들을 잘 인도하여 험난한 길을 지나 저 큰 성에 이르는 것처럼, 보살상주 또한 그러하여 모든 중생을 인도해 생사의 험난한 길을 벗어나 열반종지(涅槃種智)의 큰 성에 이른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대상주인 보살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길[道]을 잘 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평탄한 길을 아는 것, 험악한 곳을 아는 것, 안온한 길을 아는 것, 안온하지 않은 곳을 아는 것, 모든 기이한 길을 아는 것, 모든 길이 있는 곳을 아는 것, 머물러야 할 곳을 아는 것, 길의 모습을 아는 것, 길의 굽고 곧은 것을 아는 것, 벗어나는 길을 아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길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전도되지 않은 길을 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대승의 길을 보여 제도해야 할 사람에게는 곧 대승의 길을 보이고 성문의 길은 보여 주지 않는 것, 성문의 길을 보여 제도해야 할 사람에게는 곧 성문의 길을 보이고 대승의 길은 보여 주지 않는 것, 일체종지의 길을 보여 제도해야 할 사람에게는 곧 일체종지의 길을 보이고 성문의 길은 보여 주지 않는 것, 연각의 길을 보여 제도해야 할 사람에게는 곧 연각의 길을 보이고 일체종지의 길은 보여 주지 않는 것,아견(我見)에 집착하는 중생에게는 공(空)이나 무아(無我)를 말하지 않는 것, 아견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괴로움이나 무상(無常)과 무아를 말하지 않는 것, 두 가지 극단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중도(中道)를 말하지 않는 것, 중도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극단을 말하지 않는 것, 마음을 잃어 미친 사람에게는 사마타(奢摩他)나 비바사나(毘婆奢那)를 말해 주지 않는 것, 사도(邪道)에 빠진 사람에게는 정도(正道)를 말해 번뇌의 가시밭길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전도되지 않은 길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항상 선정(禪定)에 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몸과 몸의 염처(念處)를 관하는 것, 느낌과 느낌의 염처를 관하는 것, 마음과 마음의 염처를 관하는 것, 법과 법의 염처를 관하는 것, 아련야에서 마음을 거두어 행하는 것, 오욕을 관해 마음을 거두어 행하는 것, 시골과 도시의 마을과 국토에서 마음을 거두어 행하는 것, 명예와 이익에서 마음을 거두어 행하는 것, 여래가 제정한 금계에서 마음을 거두어 행하는 것, 온갖 번뇌로 노여움을 일으키는 곳과 아첨하고 왜곡된 마음에서 마음을 거두어 행하는 것이다.몸의 염처를 관해 마음을 거두어 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른 지혜로 모든 악을 가려내어 선하지 않은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발에서 정수리, 나아가 뇌막(腦膜)에 이르기까지 어떤 부분에도 나와 나의 것이 없음을 관찰하고, 이런 생각 생각도 머물지 않으니 이는 파괴되는 법이다. 근육과 심줄이 얽힌 것이고, 냄새나고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이며, 순전히 악한 물질만 모인 것이라고 관찰한다. 이렇게 관찰하고도 내 몸이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인연과 이러한 모양으로써 몸의 모양을 자세히 관하면 마음이 자재하게 된다.느낌의 염처를 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이와 같이 생각하고 관찰한다.
‘일체 모든 느낌은 모두 다 괴로움인데 범부나 어리석은 이들은 거꾸로 즐겁다는 생각을 한다.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이들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알지 못한지만 현성들은 다들 이것이 괴로움임을 안다. 그들은 열심히 방편을 닦아 이 괴로움을 끊어 없애고 또한 다른 중생들도 가르친다.’
이와 같이 느낌을 관찰하고는 미워하지도 않고 애착하지도 않아 모든 느낌을 끊는다.마음과 뜻이 사라지는 것을 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마음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괴로움을 즐거움이라 생각하고, 나[我]가 없는데 나라는 생각을 하고, 깨끗하지 못한데 깨끗하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은 매우 변화무쌍해 마치 바람처럼 흔들리니, 생각 생각이 머물지 않고 빠르게 변화한다. 이는 번뇌의 근본이고 악도의 근원이며, 항상 아첨하여 번뇌의 주인이 되며, 또한 이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인연이 된다. 마음은 모든 법의 주인이며 기술자이니, 모든 법에 있어서 마음이 길잡이가 되며, 마음은 연을 따라 일어나 모든 법을 다 안다. 마음은 화가와 같이 모든 상(像)을 그리나 마음이 이를 알지 못하며, 마음은 선과 악의 모든 업을 모으며 마음을 순환하니 마치 불을 돌려 생기는 불 바퀴와 같으며, 마음은 불씨와 같아 3유(有)의 섶나무를 태운다. 마음은 만물을 낳으니 마치 큰 바다와 같다.’이렇게 관찰하는 이는 당연히 마음의 모습이 곧 큰 근심의 근본인 줄을 알므로 이 마음으로 하여금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한다. 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법에 대해서도 역시 자재하게 된다.법의 염처를 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선하지 않은 법을 사실대로 알아서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과 그것에 의지해 일어나는 모든 악법을 다스리고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 선하지 않은 법들을 끊어 없앤다. 모든 선법을 관하여 마음으로 기쁘게 따르고, 마음을 집중하고 전념해 모든 선을 따라 행한다. 또한 자기가 관한 것을 남들에게도 가르치는 것이다.오욕을 관해 마음을 거두어 수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오욕에 대해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또 미워하거나 싫어하지도 않으며,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에 대해서도 역시 애착하지 않고 증오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렇게 관찰하라. 이 체상이 없는 법에 대해 미워하거나 애착하는 마음을 낸다면 곧 어리석은 범부나 어린아이나 선하지 못한 사람과 같다.또 세존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법에 대해 애착하거나 즐거워하면 역시 염착하게 되고, 염착하므로 곧 어리석게 되며, 어리석은 마음을 내므로 곧 선악을 알지 못하게 되니, 이런 인연으로 악도에 떨어진다.’고 하셨다. 따라서 이 공한 법을 증오해선 안 된다. 증오를 곧 참고 견디지 못하는 것이라 하니, 참고 견디지 못하면 성내는 마음이 점점 커져 아사리의 꾸짖음을 받게 되고 또한 함께 범행을 닦는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게 된다.’
이와 같이 오욕을 관찰하고 정념(正念)을 수행해 염착하는 마음도 없고 또 증오하는 마음도 없게 되며,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관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무엇을 아련야처(阿練若處)라고 하는가?
마음을 거두고 어지러움을 떠나 법대로 수행하는 곳을 아련야처라 하고, 다툼 없이 머무는 곳이라고 하고, 또 조용히 머무는 곳이라고도 한다. ‘이 아련야처에는 모든 천ㆍ용이나 귀신 같은 남의 마음을 아는 자들이 있어 내 마음을 잘 아니, 나는 지금 선하지 않은 생각을 일으키면 안 된다. 선하지 않은 생각을 없애고 부지런히 선한 생각을 닦아 선한 생각이 항상 늘어나도록 해야겠다’고 하는 것이다.보살은 시골과 도시의 마을과 국토에서 어떻게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하는가? 보살은 좋지 않은 곳과 출가한 곳과 가서는 안 될 곳을 모두 다 멀리 피해야 한다.
어떤 곳이 가면 안 될 곳인가? 술파는 집과 음녀의 집과 왕의 집과 노름하는 곳과 술 취한 손님이 있는 곳과 노래하고 춤추는 곳이다. 이와 같은 장소들은 곧 출가한 사람이 가면 안 되는 곳이므로 모두 다 가지 않는다. 이와 같이 시골과 도시의 마을에서 마음을 거두어 행한다.명예와 이익에서 마음을 거두어 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이익을 얻게 되면 단월에게 복업을 더해 주고자 할 뿐 탐착하지 않으며, 얻은 재물을 자기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모든 고통 받는 중생과 모두 다 함께 나누니, 이렇게 베푼 인연으로 명예와 찬탄을 얻는다. 그러나 비록 명예와 찬탄을 얻더라도 스스로 자기를 높이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제멋대로 하지 않는다.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와 같은 명예와 찬탄은 오래지 않아 없어지는 것이다. 신속하게 변하여 머물지 않는 법이어서 믿을 수 없는데, 지혜로운 이라면 누가 그 속에서 애착과 증오하는 마음을 내겠는가? 또 어떤 지혜로운 이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해 제멋대로 하려는 마음을 내겠는가?’
이를 보살이 명예와 이익에서 마음을 거두어 행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여래가 제정하신 금계를 항상 생각하고 수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금계를 이행해 성불하고 나아가 열반에 이르셨으며,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 역시 금계를 이행해 성불하고 나아가 열반에 이르실 것이다.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 역시 금계를 이행해 성불하고 나아가 열반에 이르신다.’고 관찰하여, 하지 말라는 금계를 지키며 끝내 범하지 않으니, 이를 잘 닦는 것이라 하고, 이를 잘 지키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모든 번뇌와 먼지와 때와 장애를 잘 수습하고 마음을 거두어 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번뇌와 결사(結使)와 먼지와 때와 모든 장애를 잘 알고 그 원인을 잘 알고, 원인이 일어난 곳과 이 원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잘 안다. 보살은 결사와 모든 장애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마음을 거두어, 이와 같이 수행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항상 선정에 있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분소의(糞掃衣)라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받아 지니며 끝내 헐거나 무너뜨리지 않는 것, 마음을 항상 낮추는 것, 싫증내지 않는 것, 이 일로 해탈을 얻지 않는 것, 허물을 보지 않는 것, 공덕의 이익을 보는 것, 스스로 자기를 높이지 않는 것, 많이 쌓지 않는 것, 금계를 잘 지키는 것, 모든 하늘이 가까이하는 것이다.받아서 지니면 헐거나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믿고 공경하는 마음이 있고 체성을 다 갖추므로 여래에게 깊이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내니, 목숨을 버릴지언정 받은 계율을 버리지 않아 받은 계율이 동요하지 않는다.
받은 계율이 견고하므로 마음을 능히 낮출 수 있으며, 낮추므로 아만이 생기지 않는다. 뜻이 낮으므로 곧 더럽고 천한 버려진 물건을 가져다 깨끗이 씻고 꿰매어 물들이면서도 싫증내는 마음이 없다. 싫증내지 않으므로 항상 분소의를 취한다.또 작은 행으로 자족하지 않고 바야흐로 나아가 높은 법을 구해 반드시 앞에 있는 이익을 얻는다.
또 ‘나는 항상 분소의를 입었으며 지금 이렇게 늙을 때까지 이 옷을 추하거나 해졌다고 여긴 적이 없다’고 하며 분소의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 또한 ‘이 옷은 추하고 해졌으며 이와 벼룩이 많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항상 분소의를 입는 것은 몸이 때 묻고 더럽다는 것을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니, 분소의를 입으면 많은 공덕이 있다. 이는 현성들이 입는 옷이며 욕심을 멀리하려는 사람들이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성종(聖種)이라 하니, 모든 부처님이 찬탄하는 것이고 여래가 칭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스스로를 높이지 않으며, 또한 남을 낮추지 않으니, 이를 계율을 다 갖추는 것이라 한다.계율을 다 갖추었으므로 모든 하늘이 가까이하고, 모든 부처님이 찬탄하며, 보살들이 수호하고, 잘 관찰하는 인비인(人非人) 등과 찰리ㆍ바라문과 마을의 읍주(邑主)들이 공경 예배하며, 함께 범행을 닦는 사람들의 찬탄을 받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분소의(糞掃衣)라고 한다.”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뜻이 클 텐데 어떤 까닭으로 이같이 하열하고 추하고 해진 것을 좋아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선남자야, 보살이 중생을 보호하기 위해 덕력(德力)으로 할 수 있는 일이지 모든 범부와 어리석고 열등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번뇌를 일으켜 장애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부처님께서 제개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가 생각하기에 여래가 뜻이 크겠느냐, 작겠느냐?”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여래의 양(量)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여래께서 모든 법을 아는 분이면서도 분소의를 받는 것은 번뇌를 없애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이 사천하의 하늘ㆍ사람ㆍ용ㆍ귀신이 가지고 있는 낮은 뜻, 여래께서 막고 금하신 그런 하열함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여래께서 하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직 저 중생들을 성숙시키기 위해 모든 중생 앞에서 두타(頭陀)를 찬탄하는 것입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이와 같은 인연을 알아야 한다.”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과 처음 배우는 사람과 보살을 성숙시켜 번뇌를 막아 끊게 하시기 위해 이러한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이 위덕의 힘으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지금 분소의를 입는 것이지 뜻이 비루해서가 아니다. 이러한 뜻에서 보살은 분소의를 입는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세 가지 옷을 받아 입는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욕심이 적은 것, 만족할 줄 아는 것, 탐하여 구하는 것이 많지 않은 것, 많이 모아 두지 않는 것, 모아 두지 않으므로 모든 잘못을 여의는 것, 잃어버려 없어지는 일이 없는 것, 그러므로 근심과 걱정을 여의는 것, 근심과 걱정을 여의므로 여러 가지 괴로움이 모이지 않는 것, 여러 가지 괴로움이 모이지 않으므로 애욕이 없는 것, 애욕이 없으므로 능히 모든 번뇌를 없앨 수 있는 것이다.욕심이 적은 보살은 얻으면 만족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적게 얻어도 만족한다. 욕심이 적으므로 구하는 것이 많지 않고, 구하는 것을 떠나므로 많이 모아 두는 일이 없으며, 모아 두지 않으므로 잃어버릴까 근심하는 고통이 없고, 잃어버릴까 근심하는 고통이 없으므로 걱정과 근심이 없으며, 걱정과 근심이 없으므로 고뇌가 없고, 고뇌가 없으므로 받아들이는 것이 없고, 받아들이는 것이 없으므로 곧 번뇌를 다하게 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세 가지 옷을 받아 지니는 것이라 한다.”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4682 보운경(寶雲經) 6권 (0) | 2024.08.20 |
---|---|
[적어보자] #4681 보운경(寶雲經) 5권 (0) | 2024.08.20 |
[적어보자] #4679 보운경(寶雲經) 3권 (0) | 2024.08.19 |
[적어보자] #4678 보운경(寶雲經) 2권 (0) | 2024.08.19 |
[적어보자] #4677 보운경(寶雲經) 1권 (0) | 2024.08.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