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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78 보운경(寶雲經) 2권

by Kay/케이 202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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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보운경(寶雲經) 2

 

보운경 제2권

양 삼장 만다라선 한역
최윤옥 번역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선바라밀(禪波羅蜜)을 갖췄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복덕(福德)을 많이 쌓는 것, 모든 악을 매우 싫어하는 것, 열심히 정진하는 것, 다문(多聞)을 갖추는 것, 올바로 아는 것, 법을 깨달아 법으로 향하는 것, 근기가 날카롭고 총명한 것, 순수하고 착한 마음이 있는 것, 정(定)과 지(智)를 잘 이해하는 것, 선상(禪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무엇을 복덕을 많이 쌓는 것이라 하는가?
오랫동안 대승법(大乘法)에서 선근(善根)을 쌓는 것이니,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선계(善戒)를 지켜 보호하고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며, 세세(世世)로 항상 찰리종족(刹利種族)이나 바라문대성(婆羅門大姓)이나 거사대가(居士大家)로 태어나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정견(正見)을 가진 집을 이루어 선법(善法)을 증장시킨다. 닦아야 할 훌륭한 방편을 늘 생각하여 버리지 않고 항상 선지식과 보살과 모든 부처를 떠나지 않으며 점점 더하여 키운다.그리고 모든 법을 이렇게 관찰한다.
‘세간은 큰 괴로움이어서 항상 재난의 고통이 핍박해 잠시도 쉴 틈이 없이 영원히 수많은 고통을 받으나 무명(無明)으로 눈이 멀었다. 이 모든 것이 애욕(愛欲) 때문이니, 욕심이 근본이 된다. 나는 이제부터 범부들처럼 욕심을 가까이하지 않으리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욕심이란 망상(妄想)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연(因緣)으로 그 허물을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욕심은 마치 나무로 사람의 심장과 콩팥을 뚫는 것과 같고, 욕심은 날카로운 창과 같으며, 욕심은 칼날과 같고, 욕심은 독사(毒蛇)와 같으며, 욕심은 날카로운 불꽃과 같고, 욕심은 가까이해선 안 될 문드러진 고름 같으며, 욕심은 거품 덩어리 같고, 욕심은 뜨거운 불꽃 같으며, 욕심은 요술로 만들어진 것과 같고, 욕심은 꿈과 같으며, 욕심은 더러워 사람을 냄새나고 더럽게 만들며, 욕심은 농익은 종기 같고, 욕심은 썩어 문드러진 고기 같다고 하셨다.’이와 같이 욕심을 혐오하는 생각을 하고는 수염과 머리털을 깎고 하던 일을 놓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자 법의를 입고, 사문이 되어 정법(正法) 속으로 출가한다. 이렇게 집으로부터 집 아닌 곳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대정진(大精進)을 일으켜, 선법(善法)을 얻지 못한 이는 얻을 수 있게 하고, 지혜를 얻지 못한 이는 지혜를 얻게 하며, 증득하지 못한 이는 증득하게 한다.이와 같은 인(因)과 이와 같은 연(緣)으로 이와 같은 일로 인해 곧 다문(多聞)을 얻어,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모두 잘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세제가 곧 제일의제임을 잘 알고, 전도(顚倒)되지 않는 법은 법의 체상(體相)과 같은 줄을 잘 안다.무엇이 법의 모습을 잘 아는 것인가? 바른 견해와 바른 뜻과 바른 말과 바른 업(業)과 바른 생활과 바른 방편과 바른 의식과 바른 정(定)으로 정도(正道)를 아는 것이다. 이리하여 근기가 점점 더 총명해지고 마음이 항상 도(道)에 있게 된다. 근기가 총명하므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내어 대중이 모인 시끄럽고 번잡한 곳을 멀리 떠나고, 욕망에 의한 감각[欲覺]인 탐욕과 노여움과 사견(邪見)과 해치려는 마음을 멀리하고, 권속들도 멀리 떠나고, 명예와 이익도 멀리 떠나 모든 몸과 마음을 멀리 여읜다.항상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관찰하여 선(善)과 불선(不善)과 무기(無記)를 생각한다. 선을 생각할 때는 마땅히 뛰어난 선을 생각해야 하니, 뛰어난 선을 생각하는 이는 환희하는 마음을 내고 믿음의 즐거움을 일으킨다.무엇이 뛰어난 선을 생각하는 마음인가? 37품(品)이 그것이다.
무엇이 37품인가? 4념처(念處)와 4정근(正勤)과 4여의족(如意足)과 5근(根)과 5력(力)과 7각분(覺分)과 8정도(正道)이다. 이를 뛰어난 선이라고 하며, 이것이 진실한 도를 이루는 모든 부분이다. 마음이 아직 선하지 못하다면, 혐오하는 마음을 최대한 일으켜 많이 관찰하고 열심히 방편을 행하여 불선(不善)을 끊어야 한다. 어떤 것들이 선하지 못한 것인가?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다.탐욕에는 심한 것과 보통 것과 약한 것의 세 종류가 있다.
무엇이 심한 탐욕인가?
욕심이 몸을 핍박하여 정견(正見)이 쇠하여 줄어들고 탐욕을 여의려는 마음이 적어지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지는가?
임야(林野)에 혼자 있으면서 몸을 거두고 고요히 생각할 때, 욕각(欲覺)을 사유하면 점점 더 성하게 되어 욕각을 귀중하게 여기고 욕각을 찬탄하게 된다. 욕각으로 인해 이렇게 사유하게 될 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진다.어떻게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가?
욕업(欲業)과 욕작(欲作)과 욕인연(欲因緣)으로 부모 계신 곳에서 원망하는 말을 하고, 존경해야 할 어른이 계신 곳에서도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으며, 또한 부끄러움이 없이 스스로 덕이 있다고 나타내는 것이니, 이러한 욕심으로 인해 목숨이 끊어질 때 악취(惡趣)에 떨어진다. 이를 심한 탐욕이라 한다.무엇이 보통 탐욕인가?
만약 탐욕[欲]을 받고 나서 싫어하고 버리려는 마음을 일으키거나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를 보통 탐욕이라고 한다.
무엇이 약한 탐욕인가?접촉하였을 때에 탐내는 생각이 곧 없어지거나 혹은 비록 함께 얘기를 나누며 더러운 생각이 일어나긴 했지만 곧 없어지거나 혹은 욕심나는 것을 보았을 때 탐욕스런 생각이 바로 없어지면, 이를 약한 탐욕이라 한다. 탐욕[欲]이란, 모든 의복과 음식과 몸을 치장하는 갖가지 장신구를 모두 탐욕이라고 한다.노여움에도 역시 심한 것과 보통 것과 약한 것의 세 종류가 있다.
무엇이 심한 노여움인가?
만약 저것을 괴롭힐 때 깊이 분노가 생겨 5역죄(逆罪)를 짓거나 혹은 5역죄 중의 몇 가지 역죄를 짓거나 혹은 정법을 비방하는 등의 죄를 짓는 것이니, 이런 죄의 심한 정도는 숫자로 셈하여 비유할 수 없는 것이다.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끊기면 대지옥에 떨어져 죄를 받을 것이며, 후에 사람으로 태어나도 남은 과보로 피부와 몸체가 검고 수척하며 두 눈이 항상 붉을 것이며 성격이 제멋대로이고 항상 성내고 남에게 해를 많이 끼칠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심한 노여움이라고 한다.무엇이 보통의 노여움인가?
온갖 악을 지었더라도 속히 후회해 즉시 대치(對治)하는 법을 닦는 것이니, 이를 보통의 노여움이라 한다.무엇이 약한 노여움인가?
악한 말을 하거나 꾸짖고 비난하거나 혹은 작은 악업이 모이거나 때때로 노여움을 일으키지만 곧바로 다스리는 것이니, 이를 약한 노여움이라고 한다.어리석음에도 역시 심한 것과 보통 것과 약한 것의 세 종류가 있다.
무엇이 심한 어리석음인가?
악을 짓고도 후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싫어하는 마음이 없을 때, 이와 같은 것을 심한 어리석음이라고 한다.무엇이 보통의 어리석음인가?
몸으로 악한 일을 저질렀을 때, 곧 후회하는 마음을 내어 함께 범행을 닦는 사람들에게 드러내어 참회하고 자기의 덕(德)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니, 이를 보통의 어리석음이라 한다.무엇이 약한 어리석음인가?
여래께서 제정한 계율 중 성중죄(性重罪)가 아닌 소소한 계율을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한 어리석음이라 한다.
보살마하살은 선한 마음이 일어날 때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돌이켜 애욕(愛欲)을 제거하고, 욕락(欲樂)을 제거하며, 욕심내어 집착하는 것을 제거할 수 있으니, 선한 마음으로 인해 욕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무엇이 무기심(無記心)인가?
이 마음이 일어날 때는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고 안에 머물지도 않으며, 선(善)에 머물지도 않고 불선(不善)에 머물지도 않으며, 정(定)에 있지도 않고 지(智)에 있지도 않아, 마치 잠에서 막 깨어 일어나 눈에 흐릿하게 보이는 것처럼 선악에 머물지 않으니, 이를 무기(無記)라고 한다.무기심이 일어날 때 보살은 방편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환희심이 생기게 하여 선에 안주하니, 이를 보살이 선한 마음을 얻는 것이라 한다. 그 선한 마음으로 일체 모든 법이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고 뜨거운 불꽃과 같고 메아리와 같으며, 이것은 선법(善法)이고 저것은 선법이 아니며, 이 법은 생사를 벗어나는 것이고 저 법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관찰한다.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선한 마음을 일으켜야 하니, 법을 생각하는 것을 마음이 선도(先導)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그 마음을 잘 지니면 그 마음을 잘 조복시키게 되고, 모든 법을 잘 지니게 되면 모든 법을 잘 조복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정법을 보고 나면 이로 인해 곧 적정(寂定)을 얻게 된다.마음이 경계(境界)가 되므로 마음으로써 마음을 묶으면 마음이 점차 적정으로 들어가고, 그리하여 마음으로써 마음에 머물러 바르게 삼매(三昧)에 머문다. 마음이 적정한 까닭에 곧 능히 전일(專一)하게 되며, 마음이 전일한 까닭에 점차 틈이 없게 된다. 정심(定心)을 얻은 까닭에 마음이 항상 적정(寂靜)하고, 마음이 적정한 까닭에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 곧 애욕과 선하지 못한 모든 악을 없애게 된다.유각유관정(有覺有觀定)이 생겨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초선(初禪)을 성취하고, 무각소관정(無覺少觀定)이 생겨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제2선(禪)을 성취하며, 기쁨을 없애고 얻은 즐거움마저 버리려고 생각하면 제3선을 얻고, 기쁨과 즐거움을 버려 평등한 마음[捨心]을 행하면 제4선을 얻는다. 아견(我見)을 없애고 근심과 기쁨을 떠나며, 고통과 즐거움을 버리고 정념(淨念)으로 버리는 마음을 행하면 4선 일체를 해탈한다.그리하면 색상(色相)을 여의어서 허공과 같이 되고 중생의 심상(心相)이 허공상(虛空相)과 동일하다는 해탈관(解脫觀)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색상이 없어지고 공상(空相)이 생긴다. 뇌괴상(惱壞相)이 멸하고 나면 허공상(虛空相)이 이루어지고, 끝없는 허공상으로부터 차례로 식(識)을 관하면 식이 끝없는 까닭에 허공상이 없어진다. 식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관해 식이 거의 없게 되면 불용처(不用處)라 하고, 다시 이 식(識)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을 관하면 이를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고 하며, 모든 생각과 느낌을 없애면 이를 멸정(滅定)이라고 한다.보살은 비록 멸정에 들었다 하여도 중생 교화하는 일을 버리지 않으며, 또한 영원히 즐거운 멸정을 적정(寂靜)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멸정을 버리지 않고도 능히 자비로써 두루 중생을 덮는다. 멸정 속에 있으면서 비심(悲心)과 희심(喜心)과 사심(捨心)을 일으키게 되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보살은 이때 곧 다섯 가지 신통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12문선(門禪)과 5신통(神通) 등에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바야흐로 높은 법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해 장엄함을 갖추고 공덕을 가득 채운다.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선바라밀(禪波羅蜜)을 갖춘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지혜를 만족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무아선(無我善)을 갖추는 것, 업보를 잘 아는 것, 유위법을 잘 아는 것, 생사가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줄 아는 것, 생사를 벗어나는 법을 잘 아는 것, 성문과 벽지불의 2승법을 잘 아는 것, 마하연(摩訶衍)을 잘 아는 것, 마업(魔業)을 막는 지혜를 잘 아는 것, 전도되지 않은 지혜를 잘 아는 것, 견줄 데 없는 지혜를 잘 아는 것이다.선남자야, 무아선(無我善)을 갖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지혜로써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을 이렇게 관찰한다.
‘색은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나는 원인을 볼 수도 없으며, 수도 역시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나는 원인을 볼 수도 없으며, 상도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아 일어나는 원인을 볼 수도 없으며, 행도 역시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나는 원인을 볼 수도 없으며, 식도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나는 원인을 볼 수도 없으며, 멸(滅)도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나는 원인을 볼 수도 없으며, 제일의제(第一義諦) 역시 볼 수도 없고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으니, 세제와 제일의제는 단지 가명(假名)이 있을 뿐 실체(實體)가 없다.’그러나 비록 모든 법이 허적(虛寂)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진하기를 쉬지 않으며 깊이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옷에 붙은 불을 끄듯 열심히 방편 닦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니 모든 중생을 위하는 까닭이다. 이렇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구하며 장엄을 모두 갖춘다. 이를 보살의 무아선근(無我善根)이라고 한다.보살이 업보(業報)를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선택하여 이렇게 관찰한다.
‘모든 중생은 다 환상과 같고 건달바성(乾闥婆城)과 같으며 물속에 비친 달과 같아 체성(體性)이 공적하다. 그러나 모든 중생이 아견(我見)과 아소견(我所見)에 물들어 집착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정도(正道)를 보지 못하고 중생들은 ≺만약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壽命)도 없고 장부(丈夫)도 없어 모든 것이 다 없다면 누가 선하고 악한 6취(趣)의 차별된 과보를 받는가?≻라고 생각한다.’
보살마하살은 업보가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음을 알면서도 버리지 않고 받아들이니, 이를 보살이 업보를 잘 아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유위(有爲)를 잘 알면서도 유위상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여실하게 바르게 보아 이렇게 안다.
‘유위법은 신속히 멈추지 않고 생각생각에 유동(流動)하는 것이 마치 꽃잎에 맺힌 이슬과 같고, 계곡의 물이 아래로 빠르게 흘러 잠시도 쉼이 없는 것과 같으며, 모래땅이 견고하지 않은 것과 같다. 어찌 지혜로운 이가 즐겨 집착하고 그리워하고 친애하겠는가? 유위법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어찌 지혜로운 이가 근심스러워하겠는가?’
이러한 인연으로 깊이 열반을 좋아하고 생사를 싫어하게 된다. 이를 보살이 유위법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생사가 유전(流轉)하는 것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이렇게 관찰한다.
‘모든 중생이 무명(無明)으로 눈이 멀어 생사에 표류하면서 항상 애착하여 모든 번뇌에 얽매인다. 이러한 인연으로 수(受)가 있고, 수로 인해서 선업과 악업을 지으며, 이런 업의 인연으로 유(有)가 있게 되고, 유의 인연으로 태어남[生]이 있으며, 태어남의 인연으로 죽음[死]과 근심[憂]과 슬픔[悲]과 고뇌(苦惱)와 같은 여러 가지 고통이 모이고, 태어나고 죽으며 아래위로 유전하는 것이 마치 불 바퀴와 같다.’
이렇게 보살은 생사를 바르게 관찰해 여실하게 안다. 이를 보살이 생사가 유전하는 것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생사(生死)를 벗어나는 법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명(無明)이 없으면 행(行)이 없고, 행이 없으면 식(識)이 없고, 식이 없으면 명색(名色)이 없고, 명색이 없으면 6입(入)이 없고, 6입이 없으면 촉(觸)이 없고, 촉이 없으면 수(受)가 없고, 수가 없으면 애(愛)가 없고, 애가 없으면 취(取)가 없고, 취가 없으면 유(有)가 없고, 유가 없으면 태어남이 없고, 태어남이 없으면 늙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고뇌하는 여러 고통의 모임이 없다. 보살이 이렇게 여실(如實)히 12인연을 알면, 이를 보살이 생사를 벗어나는 법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성문(聲聞)ㆍ벽지불(辟支佛)의 2승법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이와 같은 법을 관찰할 때, 수다원(須陀洹)을 이루고 사다함(斯陀含)을 이루고 아나함(阿那含)을 이루고 아라한(阿羅漢)을 이룬다. 또 모든 번뇌를 끊고 벽지불을 이루며 벽지불을 이루고 나서는 무소의 외뿔처럼 된다. 이렇게 성문법과 벽지불법을 잘 알지만 증득했다고 여기진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나는 모든 중생을 섭수(攝受)하기 위해 사자후(獅子吼)를 하여, 내 마땅히 모든 중생을 광야와 같은 생사의 고통에서 구제하겠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나는 지금 혼자 생사를 벗어나진 않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살이 성문법과 벽지불법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마하연법(摩訶衍法)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일체의 모든 법을 잘 배우고도 모든 법상(法相)을 취하지 않으며, 도를 잘 닦아 익히고도 이 도상(道相)을 취하지 않으며, 행하는 자도 보지 않고 행하여야 할 법도 보지 않으며, 역시 이르러야 할 곳도 보지 않는다. 또 이러한 모습[相貌]을 인연으로 하여 단견(斷見)에 떨어지지도 않는다. 이를 보살이 마하연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마업(魔業)을 막는 지혜를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악지식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나쁜 나라엔 가지 말고 항상 세속의 담화를 멀리해야 한다는 것, 모든 나머지 비법(非法)도 가까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익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또한 이 법에서 즐거움을 내서도 안 된다는 것, 보리를 막아 가릴 수 있는 모든 번뇌를 모두 다 멀리 여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이에 대치하는 법을 잘 안다. 이를 보살이 마업을 막는 지혜를 잘 아는 것이라 한다.보살의 전도되지 않는 지혜란 무엇인가?
보살이 세제와 제일의제와 모든 경론을 잘 배우고 세간의 잡론(雜論)도 잘 배우는 것은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다. 비록 널리 듣고 많이 배우지만 자기의 공덕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함이다. 비록 세상의 법을 밝게 알더라도 항상 불법을 높여 가장 훌륭한 것으로 생각하며 끝내 외도의 사견(邪見)에 물들지 않는다. 이를 보살의 전도되지 않는 지혜라고 한다.보살의 비할 데 없는 지혜란 무엇인가?
하늘이나 사람이나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모든 외도들 중에는 보살과 지혜가 같은 자를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여래 세존 등정각(如來世尊等正覺)을 제외하고는 어떤 하늘ㆍ사람ㆍ아수라도 보살의 지혜에 미칠 수 있는 자가 없다. 이를 보살의 비할 데 없는 지혜라고 한다.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지혜를 만족한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방편을 만족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회향(廻向)하는 방편을 잘 아는 것, 외도의 모든 견해를 잘 돌이키는 것, 5진(塵)을 잘 돌이키는 것, 의심과 후회를 잘 없애는 것, 중생을 잘 구호(救護)하는 것, 중생의 생계수단을 잘 아는 것, 공양을 잘 받는 것, 성문과 벽지불의 2승 학자를 잘 이끌어 대승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 보여 주고 가르쳐서 이익을 얻게 하여 기쁨을 줄 줄을 잘 아는 것, 공양하고 공경할 줄을 아는 것이다.보살이 회향하는 방편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체 모든 것, 즉 꽃이나 과일이나 향이나 향나무나 보배나 보배 나무나 첩(疊)이나 첩수(疊樹)나 모든 주인 없는 연못이나 광야(曠野)와 같은, 주인이 없고 나의 소유가 아닌 모든 물건을 모두 다 낮의 세 때[三時]와 밤의 세 때에 마음을 돌려 부처님께 보시하고, 이러한 선근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 수다라경(修多羅經) 중에서 삼보가 계신 곳에 공양하는 것을 찬탄한 것을 듣고 깊이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내고, 시방세계의 모든 보살과 모든 중생이 만약 한 생각이라도 선근을 일으키면 몸과 마음으로 따라 기뻐하여 이것을 모두 다 회향한다.향과 꽃을 모든 부처님의 형상(形像)과 탑묘(塔廟)에 공양할 때는, 이러한 선근으로 모든 중생이 모두 계를 깨뜨리거나 비법(非法)으로 더러워지지 않게 되기를 원하고, 모든 중생이 다 부처님의 계율의 향기를 얻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또 탑을 청소하고 마당을 청소할 때는 모든 중생이 다 단정하고 장엄한 기구를 얻게 되기를 원하며, 화개(花蓋)를 불탑에 공양할 때는 이로써 모든 중생이 번뇌열(煩惱熱)을 제거하게 되기를 원하고, 승방이나 탑사에 들어갈 때는 모든 중생이 열반의 성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탑사를 나올 때는 모든 중생이 영원히 생사를 여의기를 원한다.문을 열 때에는 모든 중생이 좋은 세계의 문을 열기를 원하고, 문을 닫을 때에는 모든 중생이 나쁜 세계의 문을 닫기를 원하며, 앉으려 할 때는 모든 중생이 도량에 앉게 되기를 원하고, 일어나려 할 때는 모든 중생을 번뇌의 진흙탕에서 모두 벗어나게 하기를 원하고, 오른쪽 옆구리로 누울 때는 일체 중생이 옆구리를 대고 열반하게 되기를 원한다.옷을 입을 때는 모든 중생이 부끄러움의 옷을 입기를 원하고, 발우를 들 때는 모든 중생이 불법에 만족하기를 원하고, 먹으려고 할 때는 모든 중생이 다 법의 음식 얻기를 원하고, 대소변을 볼 때에는 모든 중생이 더러운 때를 제거하여 음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 없게 되기를 원하고, 손을 씻을 때는 중생이 모든 더러움 여의기를 원한다.발을 씻을 때는 모든 중생이 번뇌의 때를 없애기를 원하고, 버드나무 가지를 씹을 때에는 모든 중생이 온갖 더러운 때를 모두 다 없애게 되기를 원하고, 몸이 가거나 멈추거나 거동할 때에는 모든 중생이 모두 다 안락하기를 원하며, 탑사에 예배할 때는 모든 중생 역시 다 경례하기를 원한다. 이를 보살이 회향하는 방편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외도의 모든 견해를 잘 돌이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흔여섯 가지의 이학(異學)을 조복시켜 출가시키는 것이니, 조복시키려 할 때에는 교만하지 않아야 한다.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반드시 공손히 섬겨야 할 것이니, 현재 제자가 된 후에 조복시키는 것이다. 모든 외도의 모든 위의와 법칙을 따라서 모두 다 배우고 연구하여 그들보다 뛰어나 그들이 조복하도록 한 다음에, 돌이켜 그들을 제압해 그들로 하여금 제자가 되어 그의 말을 믿고 받아들이게 한다.이때 문득 그들에게 ‘그대들이 이전에 배운 법은 욕심을 여의는 것이 아니며, 또 역시 벗어나는 것도 없다.’고 말하면서 정도(正道)로써 그 마음을 이끌어 교화시키고 불법에 서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보살이 외도의 모든 견해를 조복시키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5진(塵)을 잘 돌이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모든 중생의 탐욕이 치성한 것을 보고는 그들을 위해 방편으로 어떤 여자보다 뛰어난 단정하고 매우 아름다운 여자의 몸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그들로 하여금 염착(染着)하게 하고는 곧 다시 몸을 변화시켜 죽은 시체로 나타난다. 그러면 중생들은 창자가 썩고 냄새가 나는 모습을 보고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며 곧 ‘내가 지금 어떻게 하면 냄새나고 더러운 몸을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혐오할 것이다. 이때 보살이 곧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법의 요점을 말해 주어 모두 견고한 무상도심(無上道心)을 갖게 한다. 이를 보살이 5진을 잘 돌이키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의심과 후회를 잘 없앤다는 것은 무엇인가?
5역죄나 그 밖의 온갖 악을 저지른 중생을 보면 보살은 곧 그 중생에게 ‘너는 지금 왜 이같이 근심하고 고통스러워하느냐?’고 묻는다. 그 사람은 ‘제가 5역죄를 지었으니 이 몸을 버리고 나면 분명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것이며, 긴 세월 쇠하고 줄어들기만 할 뿐 아무 이익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근심하고 후회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보살은 그를 위해 그의 마음에 맞도록 신통스런 변화를 나타내어 그가 믿고 복종하게 하고, 곧 존경하고 믿는 마음을 내어 즐거워하게 한다.또 보살은 다시 신통력으로 부모를 만들고선 그 부모를 해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 그 사람이 ‘신통력이 충분하고 위력이 무량한 보살도 부모를 해치는 짓을 저지른다. 하물며 나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어떻게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때 보살은 ‘나는 진정 너의 동반자이므로 함께 역죄(逆罪)를 지었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서 보살은 곧 그를 위해 가지가지 법을 설하여, 그가 저지른 역죄가 경미(輕微)해져 마치 모기 날개와 같이 되게 한다. 이를 보살이 의심과 후회를 잘 없애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중생을 잘 구해낸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저 중생이 법기(法器)가 될 만한데도 여러 가지 악을 짓는 것을 보면, 보살은 곧 그를 위해 가지가지로 모습을 나타내어 설법한다. 왕의 몸을 나타내어야 제도할 수 있는 이에게는 왕과 같은 몸을 나타내고, 찰리의 몸을 나타내어야 제도할 수 있는 이에게는 곧 찰리의 몸을 나타내고, 바라문의 몸을 나타내어야 제도할 수 있는 이에게는 곧 바라문의 몸을 나타내고, 하늘의 몸을 나타내어야 제도할 수 있는 이에게는 곧 하늘의 몸을 나타낸다.금강역사(金剛力士)의 몸을 나타내어야 제도할 수 있는 이에게는 곧 금강역사의 몸을 나타낸다. 무서운 모습을 나타내어야 제도할 수 있는 이에게는 곧 무서운 모습을 나타내고, 묶어 가두고 채찍질하고 때리는 놀랍고 무서운 모습을 나타내어야 제도할 수 있는 이에게는 묶어 가두고 채찍질하여 때리는 놀랍고 무서운 모습을 나타내고, 좋아하는 친구의 모습을 나타내어야 제도할 수 있는 이에게는 좋아하는 친구의 모습을 나타내는 등 응당 나타내어야 할 모습을 모두 다 그를 위해 나타낸다. 이를 보살이 중생을 잘 구해내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중생의 생계수단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마하살은 중생이 생활을 감당하지 못해 정법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음식과 의복만 탐할 뿐 다시 더 구하는 것이 없는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 셈하는 법과 의술과 가지가지 기술을 가르쳐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배우게 하여 의복과 음식이 부족하지 않게 한다. 이를 보살이 중생의 생계수단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공양 받을 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수미산과 같은 보배더미도 모두 받을 수 있고, 미세한 털실 같은 작은 보시 역시 모두 받는다. 보살은 어떤 이유로 크고 작은 것을 모두 받는가?중생이 욕심내고 아끼고 질투하여 베풀려는 마음이 없는 것을 보거나 또는 중생이 마치 물속의 고기처럼 생사에 출몰(出沒)하는 것을 보고는 큰 바다에 떠돌다가 가라앉는 중생에게 깊은 연민을 느껴 그들에게 이익을 주어 쾌락을 얻게 하려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재물이나 보배를 받아서 그들을 위해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게 공양하고 궁핍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보시를 받는 곳마다 설법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한다. 이를 보살이 공양 받을 줄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2승을 잘 이끌어 대승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중생이 대기(大器)를 감당할 수 있는데도 성문이나 벽지불의 2승이 되어 정진하며 열심히 고행을 닦는 것을 보면, 이때 보살은 불종(佛種)을 잇고 삼보를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을 대승에 머물게 하고, 그 무리 모두 다 작은 마음을 버리게 한다. 이를 보살이 2승을 이끌어 대승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잘 보여 주고 가르쳐서 이익을 얻게 하여 기쁨을 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리심을 아직 내지 못한 사람은 발심하게 하고,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은 열심히 정진하게 하며, 작은 선(善)에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은 방편을 일으켜 모든 선을 다 갖추도록 한다. 또 작은 계를 어김으로써 큰 장애를 일으켜 마음이 일체 모든 선에서 멀리 떠난 사람은 보살이 곧 그를 위해 설법해 그를 환희하게 해서 계행을 갖추어 닦도록 한다. 이를 보살이 능히 잘 보여 주고 가르쳐서 이익을 얻게 해 기쁨을 주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3보를 잘 공경하고 공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출가한 보살은 욕심을 적게 하여 만족할 줄을 알고 재보를 모으지 않으며, 오직 법시(法施)만을 받아 이익으로 삼는다. 이때 고요한 곳에 혼자 앉아 ‘나는 지금 왜 부처님께 공양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고는, 곧 스스로 생각해 가지가지로 마음을 움직여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곧 6도(度)를 다 갖출 수 있다.어떻게 6도를 다 갖추는가? 가지가지로 공양함으로써 단(檀)바라밀을 갖추고, 항상 모든 중생과 선(善)을 함께하는 것을 시(尸)바라밀이라고 하고, 즐겁게 참아 안락하게 머무는 것을 찬제(羼提)바라밀이라 하고, 마음과 몸이 게으르지 않은 것을 비리야(毗梨耶)바라밀이라 하고, 마음을 오로지하여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을 선(禪)바라밀이라 하고, 온갖 행을 장엄하여 모두 다 구축하면 이를 반야(般若)바라밀이라고 한다. 보살이 이와 같이 고요한 곳에서 생각할 때 6바라밀을 갖추게 된다. 이를 보살이 삼보를 공경하고 공양할 줄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방편을 다 갖춘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방편발원(方便發願)이라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낮은 데 머물지 않는 발원,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발원, 모든 중생을 뛰어넘는 발원, 일체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는 발원, 악마를 꺾어 굴복시키는 발원, 남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발원, 끝없는 발원, 두려워하지 않는 발원, 걱정 없는 발원, 구족한 발원이다.보살의 낮은 데 머물지 않는 발원이란 무엇인가?
보살마하살은 3유(有)의 즐거움에 머물지 않으려고 원을 세우는 것이다. 이를 보살의 낮은 데 머물지 않는 발원이라 한다.보살의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발원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2승을 구하지 않으므로 생사를 싫어하지 않고, 생사를 없애지 않으려고 원을 세운다. 이를 보살의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발원이라고 한다.보살의 모든 중생을 뛰어넘는 발원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모든 4생(生)의 중생이 다 보리를 이루어 열반에 들게 하고 난 다음에 나는 열반에 들거나 열반에 들지 않거나 하겠다’고 발원한다. 이를 보살의 모든 중생을 뛰어넘는 발원이라고 한다.보살의 일체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는 발원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이렇게 발원한다.
‘나는 모든 중생을 교화시켜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게 하고 보살도를 행하게 하여 나아가 도량에 앉게 하리라. 내 마땅히 권청하여 법륜을 굴리게 하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고 하면 내가 권청하여 오래도록 세상에 계시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시도록 하리라.’
이를 보살의 일체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는 발원이라 한다.보살의 일체 모든 악마를 꺾어 굴복시키는 발원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모든 중생을 성불하게 하여 그때 국토에서 악마의 이름자도 들을 수 없기를 원한다. 이를 보살의 일체 모든 악마를 꺾어 굴복시키는 발원이라고 한다.보살의 남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발원이란 무엇인가?
끝내 남의 지시에 따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지혜로 세계 중생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받는 것을 관찰하고서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다. 이를 보살의 남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발원이라고 한다.보살의 끝없는 발원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때와 장소에 따른 조그만 인연에 의하지 않고 원을 세운다. 보살은 그 의복을 단정히 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손을 마주잡아 합장하고서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 그리고 시방 모든 세계에 있는 보살들이 도량에 앉아 고행을 열심히 닦고, 비로소 성불하고, 법륜을 굴리는 모습을 모두 관찰하고는 다시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본다. 그리고 권청하며 따라 기뻐하고 법륜 굴리기를 발원한다.‘모든 시방의 보살이 처음 뜻을 낸 때부터 6바라밀을 행하여 모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려운 행과 고행을 하고, 나아가 도량에 앉아 악마를 항복시켜 성불하고 법륜을 굴리기까지, 이 하나하나의 선심(善心)을 내가 모두 따라 기뻐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리라.’
이를 보살의 끝없는 발원이라고 한다.보살의 두려워하지 않는 발원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처음 발심하고서 깊고 묘한 법을 듣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부처님의 본행(本行)과 무량한 공덕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보살이 깊고 넓게 신통력을 부린다는 사실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보살이 깊고 넓게 방편을 권하는 것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부처님의 보리는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고, 이 세계도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으며, 부처님께서 성숙하게 하신 중생도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어 나의 지력(智力)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그 끝을 알 수 있다.’
이를 보살의 두려워하지 않는 발원이라고 한다.보살의 걱정 없는 발원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모든 중생이 어리석어 지혜의 눈이 없고, 억세서 길들이기 어렵고 항복시킬 수 없으며, 계를 깨뜨리고 게을러 온갖 악을 빠짐없이 갖추는 것을 본다. 이로 인해 보살은 깊이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 정토(淨土)에 나기를 구하고 ‘우리가 이와 같은 모든 악한 중생의 이름조차 듣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원한다.그러나 자비를 행하고 지혜를 온전히 갖춘 보살은 발심하고서 곧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세계의 지혜가 적은 중생들, 어리석은 자들과 벙어리, 열반할 분수가 없고 믿음을 일으키지 않는 자들, 그래서 모든 불보살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 이런 중생을 내가 다 조복시켜 도량에 앉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리라.’
이런 마음을 낼 때 모든 악마의 궁전은 모두 다 진동하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소리 내어 찬탄하시며, 정토를 아름답게 꾸미고 속히 정각을 이루게 된다. 이를 보살의 걱정 없는 발원이라고 한다.보살의 구족(具足)한 발원이란 무엇인가?
보살이 발심하고 서원을 세워 악마를 항복시키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를 보살의 구족한 발원이라 한다. 비유하면 마치 기름 그릇이 이미 가득 찼으면 다시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하여도 끝내 다시 받지 않는 것과 같다. 보살이 성불하여 여러 가지 원(願)을 만족한 것도 역시 그러하여 다시 한 티끌만큼의 소원도 모자람이 없다.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다 갖추면, 이를 보살의 방편이 다 갖추어진 발원이라고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힘[力]을 다 갖췄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남보다 약하지 않은 힘, 다른 사람에게 굴복당하지 않는 힘, 복업(福業)을 갖추는 힘, 지혜를 갖추는 힘, 무리를 갖추는 힘, 신통을 얻는 힘, 자재한 힘, 다라니의 힘, 보살의 확고하여 요동하지 않는 힘,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 힘이다.보살의 남보다 약하지 않은 힘이란 무엇인가?
어떤 외도와 성문의 2승도 그보다 뛰어난 자가 없고, 어떤 중생도 보살과 그 힘이 같은 자가 없으니, 이를 보살의 남보다 약하지 않은 힘이라고 한다.보살의 복업을 갖추는 힘이란 무엇인가?
세간과 출세간에서 닦는 복과 공덕과 장엄 중에 보살의 힘만한 것이 없으니, 이를 보살의 복업을 갖추는 힘이라고 한다.보살의 지혜를 갖추는 힘이란 무엇인가?
보살의 지력(智力)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거동함에 있어 착오가 없으니, 이를 보살의 지혜를 갖추는 힘이라고 한다.보살의 무리를 갖추는 힘이란 무엇인가?
보살의 무리는 정견(正見)을 허물지 않고 위의를 손상함이 없이 항상 청정한 생활을 하므로 보살이 거느리는 대중 역시 모두 보살과 같이 정직한 행을 한다. 이를 보살의 무리를 갖추는 힘이라고 한다.보살이 갖추는 신통한 힘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세속에서 다섯 가지 신통력이 성문 2승의 다섯 가지 신통력보다 뛰어나 능히 티끌 속에 염부제와 사천하 혹은 1천세계나 2천세계나 삼천대천세계와 나아가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삼천대천세계를 넣기도 한다. 그래도 티끌은 늘어나지 않고 세계도 줄어들지 않으며, 그 안에 있는 중생 역시 좁은 줄을 모르고 느껴 알지도 못하며 서로 방해하지도 않는다. 이를 보살이 갖추는 신통한 힘이라고 한다.보살이 얻는 자재(自在)한 힘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자재한 힘이 있어 삼천대천세계의 가지가지 진기한 보배를 삼천대천세계 안에 두루 가득 채우려고 하면 곧 그의 뜻과 같이 된다. 이를 보살이 얻는 자재한 힘이라고 한다.보살이 얻는 다라니(陀羅尼)의 힘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모든 부처님께서 달리 설법하고 다른 문자로 설법하셔도 한 생각에 가지가지 음성을 모두 받아들여 사유하고 수행한다. 이를 보살의 다라니의 힘이라 한다.보살의 확고하여 동요하지 않는 힘이란 무엇인가?
어떤 중생도 보살의 마음을 흔들거나 무너뜨려 그 마음을 어지럽힐 수 없으니, 이를 보살의 확고하여 동요하지 않는 힘이라고 한다.보살의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 힘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마음으로 생각한 후에 말하므로 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방편으로 이익을 주려고 하는 말만은 제외한다. 이를 보살의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 힘이라고 한다.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기별의 말씀은 끝내 착오가 없으니, 어떤 중생의 지혜도 보살을 뛰어넘는 자가 없다.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힘을 다 갖춘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지(智)를 다 갖췄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실체로서의 나[我]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지혜를 다 갖추는 것, 모든 법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지혜를 다 갖추는 것, 모든 곳을 두루 아는 지혜를 다 갖추는 것, 선정과 경계의 처소를 잘 아는 지혜를 다 갖추는 것, 지지(智持)를 다 갖추는 것, 무등지(無等智)를 다 갖추는 것, 중생의 근(根)과 행(行)을 잘 아는 지혜를 다 갖추는 것, 무작지(無作智)를 다 갖추는 것, 모든 법상(法相)을 잘 아는 지혜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 것, 세간을 벗어날 줄을 아는 지혜를 다 갖추는 것이다.보살이 실체로서의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5음(陰)은 단단하지 않아 견고함이 없고 허망하여 진실함이 없으며, 멸해 사라질 때 역시 그 허물어지는 것을 볼 수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다.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5음에는 나[我]도 없고 중생(衆生)도 없으며 수명(壽命)도 없고 양육(養育)도 없고 남[人]도 없다. 그러나 범부나 어리석은 이들은 실제로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해 망령되이 참다운 나가 있다는 생각에 집착한다. 마치 도깨비나 귀신에게 붙들린 것처럼 중생의 잘못된 생각 역시 그러하여 혹은 음이 곧 나이고 내가 곧 이 음이라고 하고, 혹은 음이 곧 나의 것이고 나의 것이 이 음이라고 한다. 허망한 나에게 집착해 진실을 보지 못하고 생사 중에 유전하니, 마치 불을 돌려 바퀴모양이 되는 것처럼 허망해 실재가 없다.’
보살이 이렇게 여실하게 아는 것을, 보살이 실체로서의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지혜를 갖춘 것이라 한다.보살이 모든 법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실상(實相)대로 아는 것이다. 생기는 것을 보고 멸하는 것을 보아 모든 물체가 마치 빌려 온 것처럼 단지 이름뿐이고, 거짓으로 시설해서 생긴 것이므로 실체가 없고 거짓으로 시설된 법이며, 또 아주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영원한 것도 아니고, 단지 연(緣)을 좇아 생기고 연을 좇아 없어질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법의 진실을 여실하게 알면, 이를 모든 법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찰하는 것을 갖췄다고 한다.보살이 모든 곳을 두루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곳을 두루 안다는 것은 한 찰나 중에만 아는 것도 아니고, 한 찰나 중에만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이곳은 알면서 저곳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능히 시방에 두루하여 무애지(無碍智)를 얻는 것이다. 이를 보살이 모든 곳을 두루 아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선정(禪定)과 경계(境界)의 처소를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문의 선정을 알고 벽지불의 선정을 알며 보살의 선정을 알고 모든 부처님의 선정을 알며, 이와 같이 모든 선정을 모두 다 깨달아 아는 것이다. 성문 2승은 단지 자신의 경계만 알 뿐 나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보살의 선정이란 자기의 경계를 알고 겸해 2승과 여래의 선정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힘으로 인해 구경(究竟)의 선정의 모습도 모두 알 수 있다. 이를 보살이 선정과 경계의 처소를 잘 아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지지(智持)를 다 갖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성문이 지키는 것과 벽지불이 지키는 것과 보살이 지키는 것을 잘 아는데, 하물며 나머지 중생이 지키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 이를 보살이 지지를 다 갖추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무등지(無等智)를 다 갖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외도나 2승이건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건 간에, 오직 여래의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제외하고 보살의 지혜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를 보살이 무등지를 다 갖추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중생의 근(根)과 행(行)을 잘 아는 지혜를 갖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깨끗하고 장애가 없는 지혜로 세계를 두루 관찰하여, 어떤 중생이 보리를 일으키고 어떤 중생이 보리를 일으키지 못하며, 어떤 중생이 보리를 만족하고 어떤 중생이 보리를 만족하지 못하며, 어떤 중생이 초지(初地)에 머물고 나아가 10지에 머물기까지 하며, 어떤 중생이 도량에 앉아 정각을 이뤄 법륜을 굴리고 나아가 반열반(般涅槃)에 들어가며, 어떤 중생이 성문승 열반에 들며, 어떤 중생이 벽지불승 열반에 들며, 어떤 중생이 선취(善趣)에 태어나며, 어떤 중생이 악취(惡趣)에 태어날 것인지 안다. 이를 보살이 중생의 근과 행을 잘 아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무작지(無作智)를 다 갖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네 가지 위의에 있어서 생각생각마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항상 성취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거나 잠자거나 할 때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생각함이 없고 또 조작(造作)함이 없이 무애지(無碍智)로써 자연히 성취한다. 이를 보살이 무작지를 다 갖추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모든 법상(法相)을 잘 아는 지혜를 다 갖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법이 다 같아 한 모습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다.
무엇이 한 모습인가? 모두가 다 공(空)한 모습이고 환(幻)과 같은 모습이며 허망한 모습이다. 이를 보살이 모든 법상을 잘 아는 지혜를 다 갖추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세간을 뛰어넘는 지혜를 잘 아는 지혜를 다 갖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무루지(無漏智)를 아는 까닭에 모든 세상의 모든 지혜를 뛰어넘는다. 이를 보살이 세간을 뛰어넘는 지혜를 다 갖추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일체지를 만족한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지삼매(地三昧)를 얻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땅과 같이 광대무변한 것, 모든 중생이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 땅과 같이 모든 중생에게 다 길러 주는 은혜를 입혀 주면서도 끝내 은혜를 생각하지 않는 것, 땅과 같이 어떤 큰 비도 다 받아들이는 것, 모든 중생이 의지하여 사는 곳이 되어 주는 것, 선(善)한 종자와 그리고 모든 종자를 자라게 하는 것, 보배를 담은 큰 그릇과 같은 것, 온갖 좋은 약을 산출하는 것, 경동(傾動)시킬 수 없는 것, 놀라게도 할 수 없고 두려워하게도 할 수 없는 것이다.보살이 땅과 같이 광대무변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지가 시방에 두루 펼쳐져 끝이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덕(德)과 지혜(智慧)와 장엄(莊嚴)과 원행(願行)이 끝이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이를 보살이 땅과 같이 광대무변한 것이라 한다.보살이 땅과 같이 모든 중생이 의지하여 살아가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땅이 중생에게 각기 원하는 대로 뜻에 따라 풍성하게 베풀어 주어 두루 살아가게 하며 걸림이 없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계(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과 선정(禪定)과 지혜와 그리고 여러 가지를 중생에게 모두 다 베풀어 주되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마음이 없다. 이를 보살이 땅과 같이 모든 중생이 의지하여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길러 준 은혜가 있으나 그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마치 대지가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어 보답하여도 즐거워하지 않고 보답이 없어도 역시 원망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를 보살이 길러 준 은혜가 있으나 그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땅처럼 널리 큰 법의 운우(雲雨)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대지가 하늘에서 비를 내리면 모두 다 받아들여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크고 비밀스런 구름을 일으켜 널리 법의 비를 내리면 말씀하신 대로 모두 수지한다. 이를 보살이 땅과 같이 큰 법의 운우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모든 중생이 의지하여 사는 곳이 되어 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지의 돌과 나무와 숲과 또 모든 중생이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것이 모두 땅에 의지하는 것과 같다. 보살 역시 그러하여 모든 중생이 수행해 좋은 세계에 태어나고 2승의 법을 잘 배우며 이로써 열반에 이르는 것 등이 모두 다 보살로 인해 있는 것이다. 이를 보살이 모든 중생에게 의지하여 사는 곳이 되어 주는 것이라 한다.보살은 선(善)한 종자가 의지하는 곳이란 무엇인가?
비유하면 마치 대지의 모든 종자가 땅을 의지해 자라나는 것과 같이, 보살 역시 그러하여 모든 선업과 하늘과 사람으로 태어날 종자가 모두 보살을 의지해 자라난다. 이를 보살이 선한 종자가 의지하는 곳이라고 한다.보살이 보배를 담은 큰 그릇과 같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마치 대지가 많은 보배들을 산출해 이 모든 보물이 다 땅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공덕의 훌륭한 보배와 모든 즐거운 과보가 모두 보살에게서 나온다. 이를 보살이 보배를 담은 큰 그릇과 같은 것이라 한다.보살이 모든 좋은 약을 산출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마치 대지가 많은 묘약을 내놓아 온갖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능히 일체 모든 묘법의 약을 내놓아 능히 일체 모든 번뇌의 병을 고친다. 이를 보살이 모든 대법의 약을 산출하는 그릇과 같은 것이라 한다.보살은 경동(傾動)시킬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마치 대지를 바람이 움직일 수 없고 파리나 파리매나 벼룩이나 전갈이 허물어뜨릴 수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일체 안팎의 모든 연(緣)이 압박하고 괴롭혀도 요동시킬 수 없다. 이를 보살은 경동시킬 수 없는 것이라 한다.보살은 놀라게도 할 수 없고 두려워하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마치 대지는 사자나 호랑이나 용이나 코끼리나 천둥이나 번개가 포효하여도 놀라고 두려워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96종의 어떤 외도도 동요시킬 수 없다. 이를 보살은 놀라게도 할 수 없고 두려워하게도 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지삼매(地三昧)를 얻은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큰물[大水]과 같다고 비유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물과 같이 흘러들어 적시면서 아래로 흐르는 것, 능히 중생의 선한 싹의 종자를 자라게 하는 것, 환희하여 믿고 공경하는 것, 모든 번뇌의 뿌리와 싹에 스며들어 문드러지게 하는 것, 물처럼 청정해 탁하지 않은 것, 뜨겁게 불타는 온갖 고통을 없애는 것, 욕심내어 집착하는 마음의 갈증을 없애 주는 것, 깊고 넓어 건널 수 없는 것, 물과 같이 흘러들어 높고 낮은 곳을 다 채우는 것, 능히 모든 번뇌의 티끌을 다 없애는 것이다.보살이 물같이 아래로 흘러들어 적신다는 것은 무엇인가?
초목을 자라게 해 각기 무성하게 하듯이 보살 역시 그러하여 모든 공덕이 물과 같이 아래로 흘러들어 작은 선(善)도 적셔 주어 크게 자라게 한다. 이를 보살이 물과 같이 아래로 흘러들어 적시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중생의 선한 싹의 씨앗을 자라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이 초목과 숲을 적시어 모두 자라게 하는 것처럼 보살도 선정(禪定)의 물로써 각의(覺意)를 적셔 정직도(正直道)의 가지를 자라게 하고, 점점 더 크게 자라 일체지(一切智)의 나무가 되게 한다. 이를 보살이 중생의 선한 싹의 씨앗을 자라게 하는 것이라 한다. 여러 종류 모든 불법의 열매로써 중생에게 이익을 주듯이,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청정한 법을 흘러들게 하여 적시고 자라게 한다. 이를 보살이 선한 싹의 씨앗을 자라게 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환희하여 믿고 공경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이 스스로 적실 뿐 아니라 또한 다른 것도 적실 수 있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자신만 공경하고 환희하여 믿을 뿐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도 공경하고 환희하여 믿게 한다. 이를 보살이 환희하여 믿고 공경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모든 번뇌의 뿌리와 싹에 스며들어 문드러지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마치 큰물이 초목의 뿌리에 스며들어 문드러져 없어지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선정의 물로 번뇌의 뿌리에 스며들어 모두 문드러져 없어지게 하고, 나아가 번뇌와 습기의 때를 모두 다 남김없이 없앤다. 이를 보살이 모든 번뇌의 뿌리와 싹에 스며들어 문드러지게 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물처럼 청정해 탁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의 체성이 항상 탁하지 않은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체성이 탁하지 않다. 왜 보살의 체성은 탁하지 않은가? 번뇌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모두 다 남김없이 끊어 모든 근(根)을 잘 보호하므로 청정하기가 물과 같다. 이를 보살이 물처럼 청정해 탁하지 않은 것이라 한다.보살이 뜨겁게 불타는 온갖 고통을 없앤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마치 여름에 물로 목욕하면 몸이 시원한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능히 법의 물로써 번뇌의 뜨거움을 없앤다. 이를 보살이 뜨겁게 불타는 온갖 고통을 없애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욕심내어 집착하는 마음의 갈증을 없애 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모든 샘물이 사람의 갈증을 없애 주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법의 물로써 중생의 오욕의 갈증을 모두 없애 준다. 이를 보살이 욕심내어 집착하는 마음의 갈등을 없애 주는 것이라 한다.보살은 깊고 넓어 건널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마귀도 어떤 외도도 선정지(禪定智)의 물을 건널 자가 없으니, 이를 보살이 깊고 넓어 건널 수 없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물과 같이 흘러들어 높고 낮은 곳을 다 채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 또한 그러하여 선한 중생이나 악한 중생이나 모두 법의 물로 적셔 고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 이를 보살이 물과 같이 흘러들어 높고 낮은 곳을 다 채우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모든 번뇌의 티끌을 다 없앤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선정의 물로 6진(塵)을 적셔 씻었으므로 모든 근(根)이 청정해 빛깔과 소리에 물들지 않는다. 이를 보살이 모든 번뇌의 티끌을 다 없앤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큰물에 비유되는 보살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큰불과 같다고 비유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결사(結使)의 섶을 태우는 것, 모든 불법을 성숙시키는 것, 번뇌의 진흙탕을 말리는 것, 횃불이 모인 것 같은 것, 불처럼 밝게 비추는 것, 놀라고 두려워하게 하는 것, 편안하게 하는 것, 이익이 있으면 여럿이 함께 나누어 갖는 것, 사람들의 공양을 받는 것, 사람들이 감히 가벼이 여기지 못하는 것이다.보살이 모든 결사(結使)의 섶을 태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불이 초목과 모든 숲을 태울 수 있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지혜의 불로써 번뇌결사(煩惱結使)의 숲을 태운다. 이를 보살이 모든 결사의 섶을 태우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불과 같이 만물을 성숙시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 또한 그러하여 지혜의 불로써 모든 불법을 성숙시켜 견고해 무너지지 않게 한다. 이를 보살이 모든 불법을 성숙시키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번뇌의 진흙탕을 말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불이 습기 있는 물체를 말리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지혜의 불로 유루(有漏)의 진흙탕을 말린다. 이를 보살이 번뇌의 진흙탕을 말리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횃불이 모인 것 같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추위에 떨다가 불을 얻으면 추위가 없어진다. 보살 또한 그러하여 모든 중생이 번뇌의 추운 고통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보살이 지혜의 불로써 모두 따뜻하게 할 수 있다. 이를 보살은 횃불이 모인 것 같다고 한다.보살이 불처럼 밝게 비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설산(雪山) 꼭대기에 커다란 횃불을 피워 주위 백 리나 2백 리를 모두 밝게 비추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무명산(無明山) 꼭대기에 지혜의 불무더기를 피워 백천 세계를 다 밝게 비춘다. 이를 보살이 불처럼 밝게 비추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놀라고 두려워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노루와 사슴과 호랑이와 표범이 불을 보면 놀라고 두려워하며 모두 다 멀리 도망가는 것처럼, 하늘이나 악마나 악마의 권속들이 보살의 지혜의 불을 보면 그 위덕에 모두 멀리 달아난다. 이를 보살이 놀라고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안심시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깜깜한 광야에서 길을 잃었을 때 횃불을 보고 곧 그곳으로 가면 마을이나 방목하는 사람이 사는 곳을 만나게 되고, 그곳에 도착하고 나면 공포가 모두 없어져 안심하게 되는 것과 같다.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중생은 깜깜한 생사의 광야에서 길을 잃었을 때 멀리서 보살의 횃불을 보고 그곳으로 가며, 도착하고 나면 번뇌와 두려움이 모두 없어지게 된다. 이를 보살이 안심시키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이익을 여럿이 함께 나눈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불이 왕이건 왕에 버금가는 자건 전다라의 남자나 여자건 모두를 따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왕이건 왕에 버금가는 자건 전다라의 남자 여자건 간에 지혜의 불로 번뇌를 태워 모든 중생을 영원히 따뜻하게 한다. 이를 보살이 이익을 여럿이 함께 나누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사람들의 공양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찰리건 바라문이건 도시나 시골 사람들이건 다들 큰불[大火]에 공양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하늘이건 사람이건 아수라건 악마의 권속들이건 모두 다 공경하고 공양하기를 세존의 모습과 같이 한다. 이를 보살이 사람들의 공양을 받는 것이라 한다.사람들이 감히 보살을 가벼이 여기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작은 불씨 하나를 얻으면 그것으로도 능히 태울 수 있으므로 감히 가벼이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과 같다.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처음 한 생각의 선한 마음을 일으켜 아직 큰 힘이 없을지라도, 하늘이나 사람이나 아수라나 악마의 권속들이 감히 가벼이 여기는 자가 없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사람들이 감히 보살을 가벼이 여기지 못하는 것이라 한다.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큰불에 비유되는 보살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허공(虛空)과 같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크고 넓어 걸림이 없는 것, 적멸하여 모양이 없는 것, 끝없는 공지(空智), 끝없는 공혜(空慧),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은 것, 모든 법을 아는 것, 모습이 허공과 같은 것, 모든 법에 머물지 않는 것, 모든 형상을 뛰어넘는 것,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모든 수량을 뛰어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허공과 같은 보살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마음이 허공과 같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마음으로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마음에 좋지 않고 즐겁지 않은 것에도 역시 성내지 않는 것, 모습이나 소리나 향기나 맛이나 촉각에 집착하거나 성내지 않고 나아가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 역시 집착하거나 성내지 않는 것, 이익과 손해,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 칭찬과 비난, 고통과 즐거움, 이와 같은 네 가지 법에도 역시 집착하거나 성내지 않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마음이 허공과 같은 보살이라 한다.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보름달과 같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중생에게 청량한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 보는 이를 즐겁게 하는 것, 선법을 나날이 늘어나게 하는 것, 악법을 나날이 줄어들게 하는 것, 달처럼 가득 차는 것, 체상(體相)이 매우 묘하고 체성(體性)이 청정한 것, 무상승(無上乘)을 얻는 것, 항상 스스로 장엄하는 것, 법을 얻어 즐거워하는 것, 제일승(第一乘)을 타고 큰 신통력을 지녀 위덕이 자재한 것이다.보살이 모든 중생에게 청량한 즐거움을 얻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월천자(月天子)가 처음 뜰 때 모든 중생에게 청정한 쾌락을 주므로 중생이 보고 매우 즐거워하며 피로하고 싫증나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다. 보살의 달 역시 그러하여 그 번뇌의 무더운 열기를 제거하고 중생에게 시원한 즐거움을 얻게 하며 환희하고 좋아하게 한다. 이를 보살이 모든 중생에게 청량한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달이 처음 뜰 때 중생이 보고 기뻐하며 유쾌하고 즐거워하는 것과 같다. 보살의 달 역시 그러하여 처음 뜰 때 중생이 보고 기뻐하며 유쾌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이가 없으며, 맑고 푸른 물처럼 모든 근(根)이 고요해지고 모든 위의를 다 갖추게 한다. 이를 보살이 보는 이를 즐겁게 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선법(善法)을 나날이 늘어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달이 초하루부터 시작해 나날이 둥글어지듯이, 보살의 달 역시 그러하여 처음 발심하였을 때부터 점점 늘어나 보리에 이르게 되고 도수(道樹) 아래 앉아 공덕을 만족한다. 이를 보살이 선법을 나날이 늘어나게 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악법(惡法)을 나날이 줄어들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그믐달이 둥글게 꽉 찼다가 다시 광명이 점차 줄어들어 달이 다 이지러지면 빛이 모두 없어져 숨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다. 보살도 모든 갖가지 악을 차례로 점차 없애며 보리에 이르게 되면 모두 다 남김없이 제거한다. 이를 보살이 악법을 나날이 줄어들게 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달과 같이 가득 찬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치 달이 초하루부터 차오르기 시작해 가득 차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찰리건 바라문이건 도시나 시골의 남녀건 모두 칭찬하지 않은 이가 없다. 보살의 달도 그러하여 항상 하늘과 사람과 모든 중생이 모두 다 칭찬한다. 이를 보살이 달과 같이 가득 찬 것이라 한다.보살의 체상(體相)이 청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월천자의 신상(身相)이 청정한 것은 곧 본업(本業)의 과보인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때가 없이 청정해 홀연히 생겨나니, 부모의 정기(精氣)로부터 태어나지 않고 법에서 태어난다. 이를 보살의 체상이 청정한 것이라 한다.보살이 무상승(無上乘)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월천자가 깨끗한 수레를 타고 사천하를 비추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대승을 타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천만억 세계의 중생을 모두 다 밝게 비춘다. 이를 보살이 무상승을 얻은 것이라 한다.보살이 항상 스스로 장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월천자가 화만(花鬘)으로 장식하고 나타나듯이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항상 공덕의 구슬로 스스로를 장엄한다. 이를 보살이 항상 스스로 장엄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이 법을 얻어 기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월천자가 오욕을 유희(遊戱)하면서 마음으로 항상 즐겨 집착하듯이, 보살 또한 그러하여 모든 법을 유희하면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되 오욕에 물들지는 않는다. 이를 보살이 법을 얻어 기뻐하는 것이라 한다.보살은 큰 신통이 있어 위덕이 자재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월천자가 큰 위덕이 있듯이, 보살 또한 그러하여 모든 공덕을 갖추고 지혜가 자재하며 신통력으로 변화하는 것이 뜻에 따라 거침이 없다. 이를 보살이 가진 큰 신통이라 한다.
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월천자와 같은 보살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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