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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보자] #4642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13권

by Kay/케이 2024.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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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13

 

보살영락경 제13권

축불념 한역
장용서 번역

37. 문법품(聞法品)
그때에 보살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문수사리(文殊師利)였다. 그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위의(威儀)를 거두고는 앞에 나아가 부처님 계신 데 이르자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법을 듣고서[聞法]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성취한다고 이르나이까. 들음이 만약 공(空)과 같다면 공하여서 듣는 바가 없고, 또한 선악(善惡)의 여러 가지 법에 상모(相貌)가 없으면 법은 형상이 없나이다. 어떤 것을 세존이시여, 본말의 공혜[本末空慧]를 받아 지니고 외운다고 말하나이까?”그때에 세존께서는 잠자코 계시면서 답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저 ‘법을 듣는다’ 함은 언교(言敎)가 있어야 곧 법을 듣게 되는 것입니까, 언교가 없어도 법을 들을 수 있나이까?”
그때에 세존께서 잠자코 답하지 않으셨다.
문수사리가 세 번째 부처님께 아뢰었다.
“법이 나고 멸함이 있나이까, 법이 나고 멸함이 없나이까. 온갖 여러 부처님께서 굴리시는 법륜은 굴림이 있나이까, 굴림이 없나이까?”그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은 모두 법륜을 굴리지만, 또한 굴림이 있기도 하고 굴림이 없기도 하느니라. 그대의 지금 묻는 바는 굴림 있음을 묻는 것인가, 굴림 없음을 묻는 것인가?”
그때에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물은 바는 또한 굴림 있음을 묻기고 하고 굴림 없음을 묻기도 한 것입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여러 부처님의 바른 법은 또한 굴림 있음도 아니요 굴림 없음도 아니니라.”
문수사리가 다시 물어 여쭈었다.
“어떤 것이 또한 굴림 있음도 아니요 굴림 없음도 아니옵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온갖 법은 공(空)과 같다. 그런 까닭에 굴림 있음도 없고, 그런 까닭에 굴림 없음도 없느니라.”문수사리가 또 물어 여쭈었다.
“오늘 여래는 굴림 있음이 되나이까, 굴림 없음이 되나이까. 이 여러 보살의 대중은 법을 듣는 것입니까, 듣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일체 모든 법은 청정하고, 여기 모인 보살도 또한 다시 청정하다. 이런 까닭으로 또한 굴림이 있지 않기도 하고 굴림이 없지 않기도 하느니라.”문수사리가 또 물어 여쭈었다.
“어떤 것을 굴림이 있다고 하며, 굴림이 없다고 하옵나이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은 굴림이 없으며, 본말의 공혜[本末空慧]는 굴림이 있고, 온갖 모인 대중의 나의 몸과 너는 모두 굴림이 없다고 이르며, 본말의 공혜는 곧 굴림이 있다고 이르느니라.”
문수사리가 또 물어 여쭈었다.
“어떤 것을 굴림이 있다고 하며, 어떤 것을 굴림이 없다고 하나이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끊음이 있으면 굴림이 없고, 끊음이 없으면 굴림이 있다. 나고 멸함은 굴림이 없고, 나고 멸함이 없음은 굴림이 있다고 이르느니라.”
문수사리가 또 물어 여쭈었다.
“어떤 것이 굴림 있음이며, 어떤 것이 굴림 없음이옵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변제(邊際)의 속박과 집착이 있으면 굴림 없다고 이르고, 변제의 속박과 집착이 없으면 굴림 있다고 이르느니라.”문수사리가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을 굴림이 있다고 하며, 굴림이 없다고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온갖 세간에서 불타오르는 법을 보면 굴림 없다고 이르고, 온갖 세간에서 불타오르는 법을 보지 않으면 굴림 있다고 이르느니라.”
문수사리가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을 굴림이 있다고 하며, 굴림이 없다고 하시나이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깨끗하고 한량없는 복으로 중생을 복되게 하는 것을 굴림 없다고 이르고, 깨끗하고 한량없는 복을 보지 않고 중생을 복되게 하는 것을 굴림 있는 것이라 이르느니라.”
문수사리가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을 굴림이 있다고 하며, 굴림이 없다고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량없는 중생의 근본을 깨끗이 하여 일체지(一切智)를 이루는 것을 굴림 없다고 이르고, 온갖 한량없는 중생을 깨끗이 함을 보지 않는 것을 굴림 있다고 이르느니라.”문수사리가 또 여쭈었다.
“어찌하여서 굴림 있다, 굴림 없다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또한 굴림 있지 않기도 하고 굴림 없지 않기도 하니, 그런 까닭에 굴림 있다, 굴림 없다고 이르느니라.”
이렇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굴림 있음과 굴림 없음을 설하실 때에 8천 비구와 3천 비구니가 본말의 공혜(空慧)를 얻어서 마음이 불퇴전하는 지위를 이루었고, 다시 수없는 중생이 이 일찍이 없던 법문을 듣고서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의 뜻을 발하였는데, ‘장차 미래에 다 부처를 이루어서 명호가 똑같으며, 용맹하게 정진함이 나와 다름없으리라’고 말씀하셨다.
38. 정거천품(淨居天品)
그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이 법의 굴림과 굴리지 않음을 듣는 품[聞法轉不轉品]을 설하실 때에 당시 정거천자(淨居天子)가 있었다. 그는 과거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 세상으로부터 온갖 공덕을 심고, 모든 부처님 세존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했으며, 한 부처님 나라로부터 한 부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법장을 통달해 다했고 변재가 걸림 없었으며, 큰 자비를 행하여 공의 법성[空法性]을 얻었고, 권도로 하늘에 태어남을 나타내서 하늘을 제도코자 하는 까닭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바로 잡아 정돈하고는 데리고 온 시종을 거느리고 엄숙하게 서 있었다.그때에 그 천자가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 여러 하늘은 숙세(宿世)에 공덕과 복을 심었으므로 이제 하늘에 태어나 다섯 가지 즐거움[五樂]으로 스스로 즐기며, 좌우의 시종이 자연히 향응하면서 욕지에 노닐면 그 쾌락은 헤아리기 어렵나이다. 저희들은 무슨 복을 닦았기에 하늘에 태어남을 얻었나이까. 저희들이 사는 대궐은 길이가 49유순이요, 7보(寶)로 장엄된 전당(殿堂)은 세상과 더불어 기묘하며, 뒤에 있는 욕지에는 7보의 나무가 일곱 겹이나 둘러싸고 있나이다. 무슨 복을 닦았기에 이 덕을 얻었나이까?”그때에 세존께서 정거천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천자가 능히 여래 앞에서 이 뜻을 묻는구나. 이제 마땅히 너에게 낱낱이 분별하리니, 잘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과거 항하 모래 수효의 모든 부처님 세존도 또한 이 뜻을 설하셨고, 현재와 미래의 온갖 여러 부처님도 또한 마땅히 이 미묘한 법을 설하시리라. 어떠한가, 천자여. 내가 이제 너에게 묻겠으니, 너는 마땅히 낱낱이 나에게 답하여라. 네가 사는 하늘 이전의 과거를 기억하느냐, 못하느냐?”답하여 아뢰었다.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과거 온갖 하늘의 그 명호는 기억해낼 수 없나이다.”
“어떠한가, 천자야, 너의 지금 이 몸은 항상함이 있느냐, 항상함이 없느냐?”
천자가 답하여 아뢰었다.
“저의 지금 이 몸은 항상함이 있는 법이지 항상함이 없는 법은 아니옵나이다.”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설사 너의 지금의 몸이 항상함이 있는 법이라고 하지만, 과거의 여러 하늘은 지금 존재하고 있느냐?”
답하여 아뢰었다.
“마멸(磨滅)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천자야, 과거의 여러 하늘은 모조리 다 마멸했는데, 너의 지금 이 몸이 어찌 영원히 존재하겠는가?”천자가 답하여 아뢰었다.
“과거의 여러 부처님은 모두 멸도를 취하셨는데, 오늘의 세존은 어찌하여서 살아계시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의 여러 부처님과 나의 지금 몸이 같으냐, 같지 않느냐?”
천자가 답하여 아뢰었다.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과거 속에서 과거의 나타남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모조리 멸도하셨다고 말하겠나이까?”천자가 또 물어 여쭈었다.
“3세는 있는 것입니까, 3세는 없는 것이옵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답하여 말씀하셨다.
“3세의 이름은 있지만, 그러나 3세의 행은 다른 것이니라.”
천자가 또 물어 여쭈었다.
“여래께서 지금 과거의 부처님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저는 의심하지 않고, 다시 시방에 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말씀하신 것도 저는 또한 의심하지 않습니다마는,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미래의 부처님이 계시다고 말씀하시나이까?”부처님께서 답하여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나에게 묻은 3세는 과거의 3세를 말하는 것이냐, 현재의 3세를 말하는 것이냐, 미래의 3세를 두고 말하는 것이냐?”
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또한 과거의 3세, 현재의 3세, 미래의 3세를 묻지 않고, 오늘은 다만 3세의 모든 부처님만 물었나이다. 어떻게 미래에 부처님을 설하시나이까?”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미래의 부처님에게는 두 가지 인연이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혹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큰 자비를 행하고 온갖 상(相)을 갖추어서 훌륭한 권도의 방편을 행하여 5도(道) 속에 들어가 중생을 교화하는데, 법계를 헐지 않은 채 다시 속세에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범천이 되기도 하고 혹은 제석의 몸[釋身]을 나타내기도 하면서 부처의 형상을 감추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미래에 성불한다고 이르느니라.혹은 어떤 보살은 여래의 지혜를 받아 불사[佛事]를 베풀어 행하고, 삼천대천의 부처님 나라에 노닐면서 여러 부처님 세존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이미 성불은 못해서 온갖 상(相)은 갖추지 못하였어도 혹은 하늘의 몸을 짓기도 하고 혹은 귀신이 되기도 하면서 법계를 헐지 않나니, 이것을 천자가 미래에 성불한다고 이르니, 이런 두 가지 인연이 있느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여, 과거 모든 부처님 세존께 다시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둘이 되는가.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를 얻어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마음에 집착한 바가 없으며, 속으로는 스스로 열 가지 법의 한량없는 공덕을 생각한다.어떤 것이 열 가지가 되는가? 이 보살이 여러 부처님 세존의 생각하는 법을 생각함이니 이것을 일러 다함이 없는 행이라고 한다.
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마하살이 여래의 일체 모든 법을 분별함이니, 이것을 일러 다함이 없는 행이라 한다.
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여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나아가게 함이니, 이것을 일러 다함없는 행이라 한다.
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이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의 세계를 분별하여 부처님 국토를 깨끗이 하고 중생을 교화해서 지혜를 헐지 않고 염(念)하는 법대로 성취함이니, 이것을 일러 다함없는 행이라 한다.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이 부처님 세존이 행하신 바처럼 금계(禁戒)로 해탈의 법을 닦고, 이 금계로 인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발하게 함이니, 이것을 일러 다함없는 행이라 한다.
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여러 부처님의 출요(出要)를 관하고, 보리수[樹王] 아래에 있으면서 뭇 마군을 항복시키고, 마음을 대지처럼 잡아서 기울거나 동요함이 없게 한다.이때에 마군 파순(波旬)은 약간의 변화를 부려 찾아와서 부처를 무섭게 하니, 혹 사람 머리에 짐승 몸을 하기도 하고, 혹 짐승 머리에 사람 몸을 하기도 하고, 혹은 네 눈깔 내지 여덟 눈깔로 백천의 눈깔에 이르기도 하며, 혹은 원숭이나 호랑이 혹은 표범으로 변하여 와서 부처를 무섭게 하려고 하지만, 마음을 대지처럼 잡아서 기울거나 동요하지 아니하니, 이것을 일러 다함이 없는 행이라 한다.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이 억백천 겁에 이르도록 총지를 강력히 기억하여 앞에 나타나 있게 하나니, 혹은 일생에서 백천 생에 이르기까지, 혹은 한 겁을 생각하여 백천 겁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행한 선이나 악을 낱낱이 분별하여 모조리 잊지 않음이니, 이것을 다함이 없는 행이라 한다.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이 능히 3세의 모든 행을 분별해서 온갖 착한 공덕이 모두 나타나 앞에 있고, 손가락 튀기는 동안에 능히 삼천대천세계의 날아다니고 기어 다니는[蜎飛蠕動] 부류로 하여금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게 하거나 나한이나 연각이나 벽지불의 도를 이루게 하니, 이것을 일러 다함없는 행이라 한다.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마하살이 다시 과거의 수없는 여러 부처님께서 제도한 중생의 몸ㆍ입ㆍ뜻의 행을 기억하여 온갖 법을 헐지 않고 지혜를 펼쳐서 널리 일체에 미치게 하면, 이것을 다함이 없는 행이라 한다.
이와 같이 천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사자분신정의 뜻을 얻으면 능히 3세의 모든 법을 갖추느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야, 혹 어떤 때에 보살은 열 가지 무상법(無相法)을 분별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열 가지 무상법을 분별하는 것인가.여기서 선남자나 선여인이 안으로 스스로 몸을 관하고 여러 가지 행을 분별하여 온갖 근이 순숙(純熟)하면, 혹은 선한 행[善行]이 있기도 하고 혹은 선하지 않은 행이 있기도 하며, 때로는 청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청정하지 못하기도 하다.
또다시 천자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밖으로 남의 몸을 관해서 온갖 근(根)의 순숙함과 온갖 근의 순숙하지 못함을 하나하나 분별한다면, 때로는 청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청정하지 않기도 하는데, 이것을 천자의 첫째 무상행(無相行)이라 이르느니라.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저 수행하는 사람이 속으로 스스로 사유하여 뜻을 어지럽지 않게 거두고는 ‘나의 행하는 바는 성현의 경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때 모든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출입하고 경행(經行)하는 것이 몸ㆍ입ㆍ뜻과 상응하여 법보(法寶)를 품고 와 큰 법륜을 굴리면서 무생(無生)의 마음으로 3세에 제도하지 못한 중생을 교화한다. 그 가운데서 문득 스스로 그러한[自然] 법륜을 얻어서 한정 없고 한량없이 모조리 법률에 들어가니, 이것을 둘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느니라.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여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가득 채우고, 지혜와 사유가 또한 다함이 없고, 음향이 흘러나와 걸리는 바 없이 온갖 중생의 소리를 분별하고, 혹은 한 음성으로 백천만의 음성에 답하여 모두 도의 가르침을 연설해서 온갖 중생의 무리를 윤택하게 한다면, 이것을 셋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느니라.다시 다음으로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위없는 법륜을 굴려서 널리 중생을 교화해서 모두 멸도를 취하여 3세에 물들지 않고, 모든 하늘과 인간 백성이나 야마천[若魔] 혹은 타화자재천[魔天]이 일찍이 굴리지 못한 바로서 부처님만이 홀로 굴리셨다면, 이것을 넷째의 무상법이라고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일생 가운데 출가(出家)하여 도를 배우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금계(禁戒)를 받아 지니고, 몸이 이미 청정하여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즐기는 바를 즐기게 한다면, 이것을 다섯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느니라.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성품의 행(行)이 공(空)에 합하여 공으로부터 오고 감이 한량없고 한정 없어서 끝내 스스로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공을 초월해 지나서 걸리는 바 없다면, 이것을 여섯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중생 속에서 홀로 걸으면서도 걸림 없고, 온갖 법의 지혜에서 통혜의 뜻[通慧義]을 널리 펴고, 앉아서 광명을 놓아 시방 한량없는 세계에 널리 이르고, 혹은 멸도를 취하여 무상(無常)의 뜻을 나타내고, 혹은 존재하기도 하고 혹은 없어지기도 하며, 혹은 상호(相好)를 보이고 혹은 상호를 숨기며, 그 가운데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한다면, 이것을 일곱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니라.다시 다음에 천자야, 가령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시 항마(降魔)라는 이름의 통혜(通慧)가 있어, 이 정의(定意)를 얻은 이는 네 가지 마(魔)인 애착[愛], 욕심[欲], 죽음[死], 하늘[天]의 마군을 항복시켜서 보살로 하여금 이 법에 의지하여 성취하게 하는데, 법왕이 되어 가장 앞에 있고자 하는 이는 먼저 이 마군을 항복받는 정의(定意)를 반드시 익혀야 하나니, 이것을 여덟째의 무상의 법이라 이르느니라.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두루 온갖 법을 배워서 지극한 요체에 깊이 들어가 선의 근본[善本]을 갖추고, 또한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이 요체에 들어감을 얻게 하고, 보살의 힘을 보아서 지관(止觀)을 더 자라게 하고, 나고 멸함이 없는 법의 다함과 다함없음을 이미 마쳤고, 비록 모습을 보더라도 본래 모습 모양이 없고, 앉으나 누우나 보살의 온갖 행을 사유한다면, 이것을 아홉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느니라.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열 가지 선의 근본[十善本]을 갖추어야 하니, 어떤 것이 열이 되는가. 몸에 셋, 입에 넷, 뜻에 셋이니, 온갖 법에 자재하여 물들어 집착하지 않고 한량없는 무위(無爲)를 즐겨하고, 다시 능히 한량없는 백천의 정의(定意)를 즐겨하여서 낱낱의 정의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니, 이것을 열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느니라.이와 같이 천자야, 대저 법을 익히는 이는 마땅히 법이 없음[無法]을 익혀야 하고, 행 없음으로 행을 삼고 관(觀) 없음으로 관을 삼으니, 이것을 왕(王)이라 한다. 온갖 행 속의 묘함이요, 모든 부처님의 찬탄하는 바이며, 불사(佛事)를 행한다고 하고, 동등한 짝이 없다고 하느니라. ”그때에 천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떠하나이까, 세존이시여. 3세의 모든 부처님에게는 즉 3세가 없나니, 세존께서 말씀하신대로 과거의 여러 부처님은 현재에 이르렀고, 현재의 여러 부처님은 다시 미래에 이른다고 하면, 법계는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째서 세존께서는 3세가 있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이 뜻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하면 과거는 이미 멸했지만 권도로 현재에 돌아왔고, 현재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는데 다시 미래를 말하니 온갖 법과 서로 어긋나나이다. 어찌하여 과거의 여러 부처님 수효가 항하 모래와 같고, 미래의 여러 부처님 수효가 항하의 모래와 같고, 현재의 여러 부처님 수효가 항하의 모래와 같다고 말씀하시나이까?”그때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여. 너의 지금 질문은 모두 부처님의 위신을 받들어 너로 하여금 이 뜻을 묻게 함이니, 살펴 들어서 잘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나는 마땅히 너에게 낱낱이 분별하겠노라.”
천자는 가르치심을 받고 답하여 아뢰었다.
“그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과거는 어째서 과거가 되느냐?”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점점 생겨났다 멸하므로 과거라 하고, 어제의 색이 지금의 색이 아니므로 과거라 하고, 어제의 몸이 지금의 몸이 아니므로 과거라 하고, 어제의 힘이 지금의 힘이 아니므로 과거라 하나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물어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신상(身想)과 지(知)가 다르냐?”천자가 대답하였다.
“다르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또 물어 말씀하셨다.
“명색(名色)과 갱락(更樂)이 다르냐?”
천자가 부처님께 대답했다.
“다르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출요(出要)와 지도(至道)가 다름이 있느냐?”답하여 아뢰었다.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부처님의 곳간[佛藏]은 광대해서 너의 경계가 아니니라. 과거의 지혜도 한도가 있고, 현재의 지혜도 한도가 있고, 미래의 지혜도 한도가 있으니,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은 법과 법이 서로 나고 법과 법이 서로 멸하여 본래 법이란 것이 없고,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없으며, 또한 금세ㆍ후세(今歲後歲)와 선행ㆍ악행도 없으며, 또한 성현의 과증(果證)이란 것도 본래 없느니라. 이것을 일러서 족성자여, 어떻게 3세의 법이 있다고 말하겠는가.”그때에 천자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3세의 이름은 어떻게 생겨나며, 무엇을 말미암아 멸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생겨나도 본래 생겨남이 없고 멸해도 본래 멸함이 없다. 일체 모든 법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생겨나도 본래 생겨남이 없고 멸해도 본래 멸함이 없다. 왜냐하면 성품은 자연히 공하기 때문이니라.”
그때에 천자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오늘 부처님께서는 나셔서 계시옵나이까, 나지 않으시고 계시옵나이까?”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몸이란 과거ㆍ미래와 지금 현재에도 생겨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생겨남이 없으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없는 것이니라.”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다만 여래ㆍ지진ㆍ등정각만이 과거ㆍ미래ㆍ현재에서 생겨남이 없나이까. 일체 모든 법도 생겨남이 없나이까?”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모든 법은 다 생겨남이 없으니, 또한 생겨남을 보지 않고 생겨남 없음도 보지 않느니라.”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나[我], 사람[人], 목숨[壽命], 중생(衆生)의 근본에서 6바라밀에 이르기까지 생겨남이 있나이까, 생겨남이 없나이까?”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도 일어남을 보지 않고 또한 일어나지 않음도 보지 않는다. 온갖 법은 얻으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루어지니, 이 까닭에 생겨남이 없다[無生]고 한다. 3세의 모든 부처님은 욕심도 없고 더러움도 없어서 생겨남이 있지도 않고 생겨남이 없지도 않으니, 이 때문에 일어나는 바가 없다. 삼매의 정수(正受)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설해도 설한 바가 없으니, 이 때문에 언교(言敎)가 없느니라.”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네 가지 의지[四依]와 네 가지 도[四道]는 생겨남이 있나이까, 생겨남이 없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의지와 네 가지 도는 본래 생겨난 바 없거늘 하물며 이제 생겨남이 있으랴. 미래에도 또한 생겨나지 않으리라.”
그때에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정지(淨地)ㆍ성지(性地)ㆍ박지(薄地)ㆍ본래 없음의 경지[本無地]와 음행ㆍ분노ㆍ어리석음이 없는 경지[無婬怒癡地]는 생겨남이 있나이까, 생겨남이 없나이까?”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받음[受] 있고 취함[取] 있음에서 나아가 온갖 여러 법에 이르기까지,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ㆍ어리석음[癡]ㆍ애착[愛]ㆍ갱락(更樂)에서 나아가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에 이르기까지, 수다원으로부터 위없는 도에 이르기까지 또한 생겨남이 있지 않고 또한 생겨남이 없지 않느니라.”
그때에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생겨남이 있음이고 어떤 것이 생겨남이 없음이나이까?”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의(如意)의 바라밀을 얻은 자는 이 때문에 생겨남 있음을 보지 않고, 생겨남 없음도 보지 않느니라.”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여의의 바라밀로서 또한 생겨남이 있지도 않고 또한 생겨남이 없지도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차안(此岸)으로부터 피안(彼岸)에 이르기까지에 중생으로서 생겨남이 있는 자와 멸함이 있는 자를 보지 않으며, 또한 소굴(巢窟)과 처소도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또한 생겨남을 보지도 않고 또한 생겨남이 없음을 보지 않느니라.”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일체 모든 법과 여래의 몸은 생겨남이 있음에 존재하나이까, 생겨남이 없음에 존재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생겨남 있음에 존재하기도 하며, 또한 생겨남 없음에 존재하기도 하며, 생겨남이 있음을 보지 않고 또한 생겨남 없음을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삼야삼불(三耶三佛)도 또한 생겨남 있음에 존재하지 않고 또한 생겨남 없음에 존재하지 않느니라.”부처님께서 또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통혜의 정의[通慧定意]를 얻어서 온갖 법을 관하여 요달하면, 생겨남 있음에도 존재하지 않고 생겨남 없음에도 존재하지 않느니라. 여래의 경법(經法)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생겨남 있음에도 존재하지 않고 생겨남 없음에도 존재하지 않으니, 왜냐하면 온갖 법에 집착이 없고 얽맴이 없고 또한 해탈도 없기 때문이니라. 이런 까닭에 네 가지 마군을 항복시키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지혜를 성취한 이는 일체 모든 법을 능히 갖추고 다시 마땅히 열 가지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선지식을 친근히 하여 벗이 됨을 구하고, 둘째는 큰 자비를 행하여 온갖 것에게 널리 미치고, 셋째는 앞 사람을 만족시켜서 뜻이 염(念)하는 바를 따르고, 넷째는 온갖 경계를 깨끗이 하여 여러 가지 번뇌를 끊고,다섯째는 청정한 도를 닦아 남의 중요한 소임[重任]이 되고, 여섯째는 여러 가지 고통을 짊어져도 상대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며, 일곱째는 어리석은 사람을 교화하여 정요(正要)를 가르치고, 여덟째는 어리석고 미혹한 이를 가르쳐서 바른 도를 믿게 하고, 아홉째는 법과 더불어 상응하여 상대의 받음을 꾸짖지 않고, 열째는 한마음으로 법을 만들어 삿된 부류[邪部]와 함께 서로 참여치 않음이니라.이것을 족성자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바른 법을 닦아 지녀서 이 정의(定意)를 얻으면, 문득 능히 일체 모든 법을 갖춘다고 하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스승을 공경한다면, 마땅히 이 열 가지 걸림 없는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 걸림 없는 법인가.
첫째는 시방에 노닐면서 여러 부처님을 뵙고 섬기는 것이니, 이것을 족성자야, 첫째의 걸림 없음이라 이른다. 둘째는 온갖 지혜에서 얽힘도 없고 해탈도 없이 단멸법(斷滅法)을 생각함이니, 이것이 둘째의 걸림 없음이요,셋째는 온갖 괴로움과 즐거움에 대해 마음이 적멸(寂滅)함이니, 셋째의 걸림 없음이요, 넷째는 비고 한가한 곳에 있으면서 선정(禪定)을 사유하여 뜻이 어지럽지 않음이니, 넷째의 걸림 없음이요, 다섯째는 보살의 법은 본래 일곱 가지의 출요(出要)의 도로서 늘거나 주는 일이 없으니, 다섯째의 걸림 없음이요, 여섯째는 온갖 색상(色相)은 본래 있는 바 없어서 온 곳을 보지 않으니, 여섯째의 걸림 없음이요,일곱째는 본래 형상이 없고 나고 멸함이 있지 않음을 헤아려서 무상(無常)을 아는 것이니, 일곱째의 걸림 없음이요, 여덟째는 한마음으로 정에 드니 도는 본래 스스로 그러해서 온갖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한뜻[一意], 한 행[一行]이 법과 더불어 상응하여 서로 어기거나 등지지 않는 것이며, 열째는 안에도 있지 않고 또한 밖에도 있지 않아서 자연히 일어나고 멸함이니, 열째의 걸림 없음이니라.
이와 같이 족성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걸림 없음을 분별하고 사유한다면, 문득 일체 모든 법을 능히 갖추리라.”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한마음으로 염(念)하는 사이에 일체 모든 법을 능히 갖출 수 있다면, 마땅히 열 가지 법의 제일의변(第一義辯)을 닦아야 하니, 어떤 것이 열 가지 법인가.
첫째는 생겨남이 없는 지혜[無生智], 다한 지혜[盡智], 나고 멸함이 없는 지혜[無生滅智]요, 둘째는 네 가지 평등이 균일하여 나[我]라는 상념이 없음이요, 셋째는 기쁘고 편안하게 스스로 지켜서 네 가지 믿음[四信]을 잃지 않음이요,넷째는 말한 바가 뜻대로 되어 본래의 소원을 어기지 않음이요, 다섯째는 도의 마음이 굳건하여 법마다 성취되고, 행하는 바의 정견(正見)으로 본래의 모습을 어기지 않음이요, 여섯째는 여섯 가지 중한 법[六重法]을 닦고 본래 없는 모습[本無相]을 관함이요, 일곱째는 원수가 하나로 동등해서 옳고 그름이 없음이요, 여덟째는 한결같은 신심(信心)으로 본래 생겨난 바를 요달함이요, 아홉째는 온갖 법을 강의해 주면서도 법의 상념이 있지 않음이요, 열째는 금강(金剛)의 정의(定意)를 헐지 않아서 성품대로인 것이니라.
이것을 소위 족성자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열 가지 법을 갖추면 모든 법을 능히 갖춘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법의 보시를 닦으면서도 보시의 상념이 없으면, 문득 일체 모든 법을 능히 갖추리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보리수의 아래에 앉아서 마음이 동요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항상 한가히 사는 것을 즐겨하여서 시끄럽고 어지러운 데 처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세 가지 향하는 선정[三向定]을 닦아서 열반문에 나아가는 것이며, 넷째는 선적(禪寂)의 정의(定義)로 스스로 어지러운 생각을 멸하는 것이요,다섯째는 뜻을 살피고 도를 닦아서 탐내고 집착함이 영원히 없는 것이고, 여섯째는 법으로 보시하고 재물로 보시하되 상념을 내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상호(相好)를 스스로 장엄하여 세계를 비추어 밝히고, 여덟째는 방편으로 깨달음이 없는 이로 하여금 부지런히 수행하게 하며, 아홉째는 바른 법을 나타내 밝혀서 지혜의 광명을 보이고, 열째는 남을 대신하여 괴로움을 받되 과보를 구하지 않음이니라.이것을 소위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열 가지 보시를 행하여 세상의 상념을 일으키지 않으면, 일체 모든 법을 능히 갖춘다고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마음이 금강과 같아서 막거나 헐 수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이 행하는 온갖 법도 이와 같으니, 또한 나한(羅漢)이나 벽지(辟支)의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청정한 법을 닦으면 다시 일체 모든 법을 능히 갖추리라. 어떤 것이 열 가지 청정한 법인가.1)
첫째는 도는 마땅히 청정해야 함이니, 더럽고 탁함은 도가 아니고, 둘째는 도는 마땅히 한뜻이어야 하니, 생각이 많으면 도가 아니고, 셋째는 도는 마땅히 만족함을 알아야 하니, 욕심이 많음은 도가 아니고, 넷째는 도는 마땅히 겸손하여야 하니, 교만함은 도가 아니고,다섯째는 도는 마땅히 뜻을 살펴야 하니, 마음대로 방일함은 도가 아니고, 여섯째는 도는 마땅히 나타내고 밝혀야 하니, 스스로 숨는 것은 도가 아니고, 여섯째는 도는 마땅히 연속(連屬)하여야 하니, 행이 없음은 도가 아니고, 일곱째는 도는 마땅히 정진하고 부지런해야 하니, 게으름은 도가 아니고, 여덟째는 도는 마땅히 깨닫고 깨쳐야 하니, 어리석고 미혹함은 도가 아니고, 아홉째는 도는 마땅히 교화해야 하니, 아끼고 인색하면 도가 아니고, 열째는 도는 착한 벗을 가까이해야 하니, 악한 일을 익히면 도가 아니니라.이것을 일러 족성자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열 가지 법을 닦으면 온갖 법을 능히 갖춘다고 하느니라. 마치 햇빛처럼 어둠을 영원히 없애고 세상 사람을 비추어 밝혀주어서 저마다 눈을 얻게 하는 것과 같으니, 보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이 열 가지 법을 익히면 문득 일체 모든 법을 능히 갖추느니라.천자야, 마땅히 알아라. 마치 진짜 금은 안팎이 밝고 맑아서 그릇을 만들고자 하면 다 성취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안에 진구(塵垢)가 없으면 밖에 비추는 바가 있고, 또한 허공이 널리 일체를 덮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이 열 가지 법을 닦으면 내가 이룬 바가 있다는 상념이 없어서 중생을 교화하여 온갖 결박과 집착을 끊게 하느니라.다시 다음에 천자여, 마치 수미산왕(須彌山王:수미산이 가장 높은 산이라는 의미에서 ‘왕’자를 붙인 것임)이 네 가지 보배로 이루어졌지만, 수미산왕도 또한 ‘나는 네 가지 보배로 이루어져서 사해 바다의 중앙에 우뚝 서 있다’라는 상념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 네 가지 변재(辯才)를 얻음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이 변재를 상념하지 않고 응함에 따라 설하나니, 왜냐하면 본래 상념이 없는 까닭이니라.마치 대지(大地)가 나무ㆍ꽃ㆍ과실 및 여러 가지 약초(藥草) 등의 만물을 널리 실어서 모두 다 자라게 하지만, 땅도 또한 ‘나는 능히 여러 물건을 기르고 키우는 일을 이룰 수 있다’라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나는 중생을 교화하여 큰 자비를 행하고 한 부처님 나라로부터 한 부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제도 받지 못한 이를 옹호한다’는 생각을 짓지 않느니라.천자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치 네 개의 큰 바닷물[四大海]이 갖가지 보배를 산출하니 온갖 중생들이 가서 보배를 얻어 뜻에 따라 돌아오지만, 바닷물도 또한 ‘내가 온갖 보배를 내어서 중생들에게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괴로운 사람을 구제하여 7각의(覺意)에 해당하는 7보(寶)를 주어 보시하지만, 보살도 또한 ‘나는 7각의의 보배를 보시하여 선근(善根)을 갖추고 보리수를 장엄하고 온갖 상호(相好)를 스스로 장식하였다’라는 상념을 짓지 않나니, 왜냐하면 본래 상념이 없기 때문이니라.천자여, 마땅히 알아라. 마치 법계가 대자대비(大慈大悲)와 6바라밀 등 온갖 법을 내지만, 법계도 또한 ‘나는 대자대비와 6바라밀 등을 내었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여러 가지 법을 내서 중생을 교화하되 ‘또한 나도 제도한 바가 있다’고 생각해 말하지 않느니라.
천자여, 마땅히 알아라. 마치 정(定)에 들어간 비구가 온갖 상념을 끊어버려서 마음이 옮기어 움직이지 않지만, 정에 든 비구는 또한 ‘나는 이제 신력(神力)으로 정에 들어 자재하다’라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생각하는 바에 따라 법이 다 성취되고 말하는 바도 참되고 성실해서 본요(本要)를 어기지 않느니라.천자여, 마땅히 알아라. 마치 금강은 부술 수가 없는 것과 같으니, 왜냐하면 본래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법의 성품과 상응하여 본제(本際)를 잃지 않느니라. 마치 밝은 구슬이 널리 비추는 바가 있지만, 밝은 구슬은 또한 ‘나는 비추는 바가 있어서 중생으로 하여금 그 광명을 보게 한다’란 생각을 짓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마치 신선의 도[仙道]를 얻은 사람이 뜻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어, 저 5신통(神通)을 얻고서 또한 ‘나는 지금 생각하는 바를 모두 다 이루었다’라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마찬가지이니라.마치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工巧人]이 여섯 가지 재주를 잘 알아서 혹은 칼이나 혹은 창으로 대중을 파괴하지만, 저 재주꾼이 ‘나는 지금 사람들 중에서 최고라서 모든 사람을 항복시켜 나와 겨룰 자가 없다’라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한량없는 삼매[無量三昧]에 들어 정의(定意)를 바르게 받아서 삼천대천세계를 감동시키지만, 또한 ‘내게 있는 이 신력이 온갖 세계를 감동시켜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고 스스로 칭찬하지 않느니라.마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본래 10선(善)과 5계(戒)를 닦아서 삼천대천세계를 모두 통솔하고, 천 명의 용맹한 아들과 7보(寶)를 갖추고, 온갖 좁쌀처럼 흩어져 있는 작은 왕들이 모두 와서 하례를 드리지만, 이때 전륜성왕은 또한 ‘나는 지금 온갖 덕을 갖추고 상호로 몸을 꾸며서 사방의 모든 지역을 거느리고 있다’라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처럼, 왜냐하면 복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여 서로 어긋나거나 등지지 않기 때문에,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보살의 도를 닦고 부처님의 교법(敎法)을 공경히 받들어서 항상 교화를 행하여 은혜를 입은 천인(天人)과 제도 받은 중생을 측량할 수 없지만, 보살도 또한 ‘나는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고 무여열반에서 반열반하겠다’는 생각이 없고 공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해서 중생으로 하여금 능히 그렇게 하지 않게끔 함이 없느니라.마치 농부(農夫)가 때[時]에 따라 갖가지 작물을 키우되 적절한 때를 잃지 않으면, 앞의 씨는 뒤의 씨가 아니고 뒤의 씨는 앞의 씨가 아니로되 각각 자라고 크길 같은 양상으로 하지만, 저 곡식의 씨는 ‘나는 생겨났지만 저는 시들어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본성이 스스로 그러하여 사람이 없이도 그렇게 되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여러 가지 법을 두루 배우고 다시 열 가지 선의 공덕의 근본으로 중생의 근본을 깨끗이 하여 모두 무위(無爲)의 도에 나아가게 하지만, 그때 보살은 ‘나에게 지금 제도를 받은 보살마하살이 여기로부터 저기에 이른다’라는 생각을 짓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성이 스스로 그러하여서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마치 단비[甘雨]가 때에 맞게 내려서 백곡(百穀)과 나무와 풀이때에 따라 자라건만, 그러나 구름과 비는 또한 ‘나에게는 윤택(潤澤)함이 있어서 키우고 기르는 바가 있다’라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과 같으니, 왜냐하면 본래 무심이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라서 법의 구름[法雲]을 한번 내려서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윤택하게 하여 중생을 다 윤택케 해서 본래의 소원을 버리지 않고 보살도를 행하지만, 보살도 또한 ‘나는 이제 능히 법우(法雨)를 내려서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윤택하게 하여 중생들을 모두 깨달아 열게 한다’라는 생각을 짓지 않나니, 왜냐하면 본래 심의(心意)가 없고 큰 서원의 마음이 성품 그대로이기 때문이니라.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의 정의(定意)에 들어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끝까지 청정에 이르게 하되 남김없이 청정하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끝까지 안온함에 이르게 하되 남김없이 안온하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저 언덕에 도달하게 하되 남김없이 도달하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바라밀을 얻게 하되 남김없이 능히 건너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마지막 환희에 이르게 하되 남김없이 환희하게 하며,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를 끊게 하되 남김없이 능히 끊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양호한 복밭[良祐福田]에 편히 처하게 하되 남김없이 능히 편안하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믿음으로 보시하는 복[信施福]을 받아서 온갖 것을 제도하게 하되 남김없이 능히 복을 받아서 일체를 제도하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성현의 법률에 들어가게 하되 남김없이 성현의 법률에 능히 들어가게 하며,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불퇴전(不退轉)에 서게 하되 남김없이 불퇴전에 능히 서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온갖 지혜를 얻어서 삼천대천찰토에 두루함을 얻게 하되 남김없이 능히 삼천대천에 두루하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사람을 위하여 훌륭히 이끄는 자[將導]가 되게 하되 남김없이 훌륭한 지도자가 되게 하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이 정의(定意)의 한량없는 법의 행을 익힌 것은, 일체에 널리 두루하여 제도를 받게 함으로서 법성(法性)의 큰 서원 법문의 불가사의하고 무한 광대함을 열기 위함이지, 한 사람만의 청정한 보살도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일체의 제도받기 어려운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그 가운데에 건립하여 바라밀에 응하는 것이다.혹 때로 어떤 보살은 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하여 목숨을 끊어 고통을 대신 받고, 혹 어떤 보살은 한 사람을 위하여 겁(劫)으로부터 겁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놓아 버리지 않고 제도를 얻게 한 뒤에 스스로 곧 멸도하며, 혹 어떤 보살은 자기의 경계를 깨끗이 하고자 하여 온갖 속박과 집착을 끊고 중생의 근본을 깨끗이 해서 청정한 바른 법의 출요(出要)에 편안히 처하게 하느니라.다시 어떤 보살은 정중하게 고행(苦行)을 닦아서 하늘 복[天福]에 집착하지 않고, 5도(道)에 늘 있으면서 두루 돌아다니며 교화하고, 혹 어떤 보살은 4무외(無畏)를 얻어서 중생을 교화하는 데 겁내거나 약한 마음을 품지 않고, 혹 어떤 보살은 네 가지 변재를 얻어서 사람이 와서 힐문하면 이치의 통함이 걸림이 없고, 혹 어떤 보살은 법문을 설하여서 영화에 집착하지 않고 요행으로 이익을 구하지 않느니라.혹 어떤 보살은 총지문(總持門)을 얻어서 법관(法觀)을 분별하여 부정행(不淨行)을 닦고, 혹 어떤 보살은 부처님의 정의(定意)를 얻어서 일체지(一切智)를 세워 망령된 상념을 버리지 않고, 혹 어떤 보살은 부처님의 출요를 얻어서 온갖 사람으로 하여금 출가하여 도를 배우게 하고, 혹 어떤 보살은 신통의 지혜[神通慧]를 얻어서 권도의 방편을 행하여 형상을 따라 들어가며, 혹 어떤 보살은 형상 없는 관의 삼매[無形觀三昧]를 얻어서 허공계에 들어가 부사의(不思議)를 행하고,혹 어떤 보살은 멸진정(滅盡定)을 얻어서 현재에 멸도를 취할 뿐 열반에 처하지 않고, 혹 어떤 보살은 일곱 가지 관의 도[七觀道]를 얻어서 밖으로는 위의를 나타내고 안으로는 실제로 충족하며, 혹 어떤 보살은 천안통(天眼通)을 얻어서 시방의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을 두루 살펴서 듣지 못한 것을 자문을 받아 스스로 기뻐하고 즐기며, 혹 어떤 보살은 천이통(天耳通)을 얻어서 온갖 소리를 두루 듣고 선과 악을 분별하다가 문득 가서 능히 제도하여 타락하지 않게 하고,혹 어떤 보살은 심의통(心意通)을 얻어서 신족(神足)의 힘으로 가서 제도하고, 혹 어떤 보살은 숙명통(宿命通)을 얻어서 스스로의 숙명도 알고 또한 다른 이가 온 곳도 알아서 품류를 따라 조복시켜 가장 자리[邊際]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혹 어떤 보살은 누진통(漏盡通)을 얻어서 능히 온갖 중생의 맺히고 얽힘을 끊으며,혹 어떤 보살은 보리수의 아래에 앉아서 부처님 신덕(神德)의 위의와 법칙을 얻어서 위의를 성취하고 종성(種姓)을 성취하고 부모를 성취하고 집[居家]을 성취하며, 혹 어떤 중생은 부처님의 광명을 얻어서 부처님 머무는 바에 머물러서 달이 처음 뜬 것처럼 마음이 나아가고, 혹 어떤 중생은 부처님 지혜의 경지[佛慧地]에 머물러서 능히 지혜의 검으로 번뇌를 베어 끊는다.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75가지 법의 여래 심장(深藏)의 부사의행으로 성불하게 되어서 끝내 퇴전하지 않으니, 이는 또한 나한이나 벽지불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이와 같이 천자야, 보살마하살 가운데 이 온갖 행의 정의(定意)를 얻은 이는 능히 삼천대천세계를 다 황금빛으로 만들고, 온갖 중생의 품류를 이끌어서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향하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천자여, 마땅히 이 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여야 비로소 보살의 율(律)에 응하느니라.다시 어떤 보살은 열두 가지 법을 닦아서, 행하는 바에 걸림이 없이 나아가고 그치고 가고 오며 보살의 도를 닦으니, 어떤 것이 열두 가지인가.
첫째는 마군의 군사를 항복시켜 10력(力)의 행을 나타내는 것이고, 둘째는 공덕을 함께하여 나고 멸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고, 셋째는 능히 신통의 힘으로써 온갖 소원을 채우는 것이고, 넷째는 집착 없는 힘에 의하여 부처님의 변화를 보는 것이고,다섯째는 자기가 심은 선(善)의 근본 공덕으로 능히 일체에 보시하면서도 후회하거나 아까워함이 없는 것이고, 여섯째는 제일(第一)의 법을 닦아서 부처님의 경계[佛量]를 넘어서는 것이고, 일곱째는 태어남이 고통이 됨을 알아서 3유(有)에 물들지 않는 것이고, 여덟째는 다함이 없는 도의 근본으로 스스로 즐기는 것이고, 아홉째는 성문의 행을 알아도 물들어 집착하지 않는 것이고, 열째는 연각의 법을 알아도 버리고 여의어서 따르지 않는 것이고,열한째는 걸림 없는 도의 법으로 아홉 차제[九次第:차례로 이어서 닦는 9종의 선정]를 행하는 것이고, 열두째는 마땅히 부모와 권속을 교화함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이것을 천자야, 열두 가지 걸림 없는 청정한 도의 근본이라고 이르나니, 보살은 마땅히 이 법을 닦아 익혀서 그 도과(道果)를 이룰 것을 생각해야 하느니라.천자야, 마땅히 알아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일심(一心)의 정의(定意)로 상지멸(想知滅:생각과 알음알이가 멸한 경지)의 열 가지 일을 익혀서 과거ㆍ미래ㆍ현재를 알아 부처님의 행하신 바와 다름이 없게 하여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상지멸의 열 가지 일인가.
첫째 색의 형상(形像)이 본래 있는 바가 없음을 관해서 형상을 일으키는 법에 물들어 집착하지 않으면,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이 행하는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둘째) 그때에 보살이 상호(相好)의 바라밀을 닦으면 낱낱의 상(相)이 부처님이 행한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으니라. (셋째) 보살의 신령한 지혜가 자유자재하여서 중생에 응하여 교화하고 인연을 따라 가서 제도한다면, 부처님의 행한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 (넷째) 그때에 보살이 한량없는 몸을 색상(色像)의 제일로 변화시켜서 여덟 가지 소리로 중생을 권하여 인도한다면, 부처님이 행하신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 (다섯째) 또 저 보살이 부처님의 나라를 깨끗이 하고 중생이 심의(心意)로 생각하는 바를 관찰하면서 위의와 예절에서 금계(禁戒)를 잃지 않는다면, 부처님이 행하신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여섯째) 그때에 보살이 다시 정의(定意)에 들어가 삼매를 바르게 받아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음향(音響)을 분별하고 굳세게 기억하여 잊지 않게 한다면, 부처님이 행하신 것과 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 (일곱째) 또 저 보살이 열 가지 밝은 지혜[十明慧]를 행함이 한정이 없고 한량이 없어서 다할 수 없고,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이 법의 근본을 익히게 하여 적절히 때에 따라 위없는 법륜을 굴리면, 부처님이 행하신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여덟째) 또 저 보살이 4무외를 얻어서 대중 속에서 사자후를 발하여 성현인 여래의 바른 법을 끊지 않고, 다시 이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모두가 위없는 도를 성취하여 일체지(一切智)의 걸리는 바 없음에 미치면, 부처님이 행하신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 (아홉째) 또 저 보살이 입으로 가르침을 연설한 바가 일체에 두루 퍼져 3세(世)의 행에 들어가서 온갖 샘이 있음[有漏:번뇌]이 다하고 샘이 없는[無漏] 행을 이루어 신통과 지혜의 통달[智達]로 능히 일체를 교화한다면, 부처님이 행하신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 (열째) 또 저 보살이 부처님의 두려움 없음과 10력(力)을 갖추어서 부처님 국토의 중생이 본래 청정함을 본다면, 부처님이 행하신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이와 같이 천자야,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일을 행하면 성불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은 본래 있는 바가 없고, 또한 때[時]는 본래 오고 감이 없으며, 온갖 법은 상(相)이 없고, 상 또한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 온갖 법은 소리가 없고, 소리는 본래 형상이 없어서 본래 성품이 스스로 공하니, 왜냐하면 소리는 허공으로부터 나왔다가 도로 허공으로 돌아가는데, 중생이 물들어 집착하면서 식의 상념[識想]을 일으키기 때문이니라.천자여, 마땅히 알아라. 내가 옛적에 도를 구하여 무수한 겁으로부터 본말(本末)을 분별하였지만, 아직 일법의 정의[一法定意]를 능히 궁구하여 다하지 못하였다. 어떤 것이 일법(一法)인가. 이른바 무념(無念)이다. 보살이 무념의 정의(定意)를 얻으면, 온갖 법이 모두 형상이 없다고 관하느니라. 이와 같이 천자야, 내가 이제 부처를 이룸은 이 일행(一行)을 말미암아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게 되었느니라.”그때에 정거천자가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 들었듯이 보살이 행한 바는 온갖 법이 한량없어서 다하기 어렵고, 중생은 서로 근기가 같지 않사온데, 어떻게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룸을 얻고자 하나이까. 또 부처님께서 부처님이 행하신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다고 말씀하심을 듣고서 이제 여래께 여쭈오니, 어떤 것이 부처님이 행하신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음이나이까?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낱낱이 분별하여 주십시오.”그리고 나서 천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행한 그 법은 각각 다르고, 지향하는 뜻이 나아간 행적도 같지 않나이다. 어째서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행한 바와 같아서 보살이 다르지 않으면, 무슨 까닭에 부처라 이름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으로 10력(力)을 갖추지 않았는데도 마군의 궁전을 항복시키며, 무슨 까닭에 이름하여 일체지(一切智)라 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일체 모든 법을 깨달아 마쳤다고 이름하지 않으며,무슨 까닭에 두루 보살도를 관해서 행한다고 이름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부처님 도량에 앉아서 연기(緣起)를 널리 선포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최정각(最正覺)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3세의 바른 법과 여러 부처님의 행한 바를 알지 못하며, 무슨 까닭에 수명이 한 겁에 머물면서도 지혜를 선포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온갖 법을 의지하면서도 정수(正受)의 정의(定意)를 닦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법계를 분별하고 한량없는 지혜(無量慧)에 나아가서 보살을 가르쳐 권속으로 삼지 않나이까?”그때에 부처님께서 정거천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야. 너의 물음대로 이미 온갖 양(量)을 지나쳤다. 이제 마땅히 너에게 말하리니, 살펴 듣고 살펴 들어서 잘 생각하여라.
천자가 이제 물었듯이, ‘보살의 행한 바가 부처님과 다름이 없다’는 것에 답하면, 온갖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법은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없다고 깨닫고 나서, 보살의 큰 서원을 일체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형상 있는 무리에게 널리 미쳐서 전전(展轉)하여 서로 이루지만, 아직 지혜 청정의 공관[智慧淸淨空觀]을 얻지 못했으니, 가령 지혜를 응당 얻은 이라면, 그 때문에 그 이름을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라 한다.보살의 지혜에 의지하여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 하며, 스스로 얻어서 다시 다른 이에게 주는 것을 소위 보살도(菩薩道)라 이르고, 능히 3독(毒)을 끊고 10악(惡)을 일으키지 않아서 여래의 경계를 다하는 것을 소위 10력(力)이라 이름하고, 이미 범부를 초월하여 보살의 행적을 세워서 마음이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에서 옮기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고 이른다.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법계를 분별하여 함께 서로 받아들여 들어간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일체지(一切智)라고 이른다. 마치 온갖 법은 본래 모양이 없지만 중생 때문에 각각 이름이 있는 것과 같다. 나아갈 때는 나아갈 줄 알고 버릴 때는 버릴 줄 알아서 선의 근본[善本]을 여의지 않고 보살의 도를 닦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 한다. 만일 보살이 하나도 없고 둘도 없음을 분별하여 자연히 온갖 바라밀을 출생하며, 또한 스스로 깨닫고 나서 다시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그 법상(法相)과 같게 하면, 이를 이름하여 부처라 하느니라.만일 저 보살이 둘 혹은 셋의 온갖 법이 생겨나는 바를 보지 않고서 잘 살펴 잊지 않고 사유해서 통달하고 나서, 법은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법은 무엇으로부터 멸하며, 법륜을 굴리는 이는 누구이고 법을 들음은 누구인가 하면서 능히 일체 모든 법을 이해하면, 이와 같은 이를 이름하여 보살이라고 하느니라.만약 보살이 그 혜안(慧眼)으로 삼천대천세계에 애욕의 마음[愛慾心]이 있음과 애욕의 마음이 없음, 어리석은 마음[愚癡心]이 있음과 어리석은 마음이 없음, 화내는 마음[嗔心]이 있음과 화내는 마음이 없음을 두루 관찰하면, 다시 능히 사유하여 근본을 두루 끊기 때문에 이름하여 지혜의 눈[慧眼]이라 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혜안(慧眼)이 있는 보살이 온갖 부처님 경계를 두루 돌아다니고 왔다 갔다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낱낱이 알아서 제도함과 제도하지 않음에 응해서 문득 능히 교화에 들어가 품류에 따라 제도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 하느니라.만일 보살이 여러 가지 광명으로 널리 비추는 바로 온갖 경계에 두루하며, 또한 한량없는 지혜로써 모든 부처님 세존의 깊고 그윽한 법을 기억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지혜의 광명[智慧光]으로 능히 허공계를 비추어 밝히고, 여래의 신령한 지혜가 나타나 앞에 있고, 죄의 문은 막히고 열반의 길은 열려있으며, 다시 18본지(本持:界)에 물들지 않아서 얽힘도 없고 집착도 없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부처님의 위의(威儀)로써 여래가 독보(獨步)하여 짝이 없음을 스스로 닦아 익혀 분별하고, 명색(名色)ㆍ6입(入)ㆍ갱락(更樂)ㆍ수(受)ㆍ유(有)ㆍ나고 죽음[生死]ㆍ과거 3세의 중생의 본말 하나하나를 다 안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동등한 짝이 없다[無等侶]고 하느니라.만일 보살이 여래를 계승하여 불과(佛果)를 내는 종자[佛種]를 끊지 않고 불사(佛事)를 베풀어 행하고, 생겨남에 생겨남을 알지 못하고 멸함에 멸함을 알지 못하며, 본래 없고 비고 고요하여서 네 가지 평등한 마음[四等心]을 갖추고, 또한 다시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것, 본래 있다가 지금 없는 것을 분별하고, 모조리 공함을 알아서 약간의 생각도 내지 않는다면, 이런 까닭에 이름하여 부처라 이르느니라. 만일 보살이 신통지혜를 얻어서 중생의 겁(劫)이 가까이 있음과 멀리 있음을 관하고서 겁이 멀다 해서 슬퍼하지 않고 겁이 가깝다 해서 기뻐하지 않고, 이루는 겁[成劫]이든 무너지는 겁[散劫:壞劫]이든 또한 한결같아서 뜻을 거두고 마음을 지녀 어지럽지 않음이니, 이런 까닭에 이름을 보살이라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거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보살도(菩薩道)를 행하려면, 다시 마땅히 일체 모든 법을 사유해서 처음 뜻을 발한 것으로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나[吾我], 나와 남[我人], 목숨[壽命]을 헤아리지 않고 그 행이 스스로 그러해서 온갖 번뇌를 끊어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도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다시 어떤 보살이 도를 발하여 구하는 자라서 온갖 중생을 위하여 고행을 짊어지고, 또한 도를 얻음이 있는 자를 보지 않고, 또한 다시 아승기 한량없는 중생 중에 수증(受證)한 자든 수증하지 못한 자든 능히 제도하고, 그 가운데서 수기를 받아 물들어 집착한 바 없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도를 닦는다고 하느니라.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세 가지 공[三空]의 한량없는 깊은 법을 분별하여 여실히 알아야 하는데, 어떤 것이 세 가지 공인가. 첫째는 거친 생각도 있고 미세한 생각도 있음[有覺有觀]이요, 둘째는 거친 생각은 없고 미세한 생각만 있음[無覺有觀]이요, 셋째는 거친 생각도 없고 미세한 생각도 없음[無覺無觀]이니, 이것을 세 가지 공으로서 보살이 행하는 바라고 이르느니라.”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세 가지 공이 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다함의 공[盡空]이요, 둘째는 다함이 없는 공[無盡空]이요, 셋째는 다함도 아니고 다함없음도 아닌 공[非盡非無盡空]이니, 이것을 세 가지 공으로서 보살이 행한 바라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세 가지 공이 있으니, 첫째는 생겨남의 공[生空]이요, 둘째는 생겨남이 없는 공[無生空]이요, 셋째는 생겨남도 아니고 생겨남 없음도 아닌 공[非生非無生空]이니, 이것을 세 가지 공으로서 보살이 행하는 바라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세 가지 공이 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머무는 공[住空]이요, 둘째는 머묾이 없는 공[非住空]이요, 셋째는 머묾도 어니고 머묾 없음도 아닌 공[非住非無住空]이니라.”
그때에 정거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온갖 법에서 온갖 중생은 모두 나고 멸하고 집착하고 끊음이 있사온데, 이 세 가지 공이 있나이까, 없나이까?”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내 이제 너에게 말하리니, 잘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어떤 것이 머무는 공[住空]인가. 이른바 머무는 공은 함이 없어서 고요함[無爲寂靜]이 그것이니라. 천자야 마땅히 알아라. 어떤 것이 머묾이 없는 공[無住空]인가. 너의 몸과 내가 그것이니라. 어떤 것이 머묾도 아니요 머묾 없음도 아닌 공[非住非無住空]인가. 온갖 형상 있는 3세의 모든 법이 그것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세 가지 공을 알아 문득 능히 일체 모든 법을 알며, 5음의 몸[五盛陰身]도 또한 다시 마찬가지이면, 이것을 보살의 도라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법은 본래 합함도 없고 흩어짐도 없고, 또한 깨끗함을 보지도 않고 깨끗하지 않음도 보지 않는다. 또한 스스로 ‘만일 내가 부처를 이루면 마땅히 어떤 곳의 나라와 고을과 부모와 종친에, 어떤 성씨와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해 말하지 않으며,또한 ‘어떤 겁(劫) 가운데 태어나서 목숨이 길고 짧다’고 다시 생각지 않으며, 또 스스로 ‘몸은 황금빛으로 꽃나무 아래에 앉아서 마땅히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이루리라’고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니, 이것을 ‘보살도를 이미 능히 갖추어서 불퇴전(不退轉)을 얻어 남이 없는 마음[無生心]을 행하고, 본래 한 모습[一相]도 없거니 하물며 두 모습[二相]이 있으랴’라고 이르느니라.이때에 보살이 온갖 법이 모조리 공적(空寂)으로 돌아감을 분별하여서 항상 스스로 수호하여 마군에게 틈을 얻게 하지 않으며, 나아가되 나아가는 바 없고 구하되 구하는 바 없이, 이처럼 법계의 한량없는 공의 지혜(智慧)에 이미 들어가서 능히 스스로 온갖 모습의 법을 장엄하고 꾸미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눈과 빛깔이 안팎으로 주인이 없는 것과 같으니, 세 가지 일이 함께 합하여야 안식(眼識)을 이루느니라. 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안팎이 성취해야 비로소 온갖 식을 이루느니라.”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에게 비유를 끌어 대리니, 지혜 있는 이는 비유를 통해 스스로 아느니라.
가령 이라발(伊羅鉢:이라파드라)용왕은 금복산(金福山) 기슭 중간 지점에 사는데, 7보(寶)로 장엄된 전당(殿堂)과 탑 그리고 7보로 된 나무 등 사다리[梯]ㆍ층계[階]ㆍ거리가 모두 7보로 되어 있고, 이것에는 무늬가 새겨져 있고 온갖 보배로 장식되어졌다.당시 저 이라발용왕은 몸이 눈처럼 희어서 하얀색 구슬과 같았고, 금으로 된 양산[金蓋]이 뒤를 따랐으며, 몸은 향기롭고 영락은 다 7보(寶)로 만들었고, 다시 7보로 그릇을 만들었고, 순수한 자마금(紫磨金)으로 꽃다발 장식[華鬘]을 만들었고, 다시 7보로 종과 북 등의 악기(樂器)를 만들었다. 또 신체의 일곱 곳[七處]이 가지런히 평평하고, 치아도 고르며, 얼굴모습이 단정하여, 보아도 싫증나지 않고, 청정하고 향기로워서 좌우로 돌더라도 저촉하거나 걸리는 바가 없었으니, 이 온갖 덕은 헤아릴 수가 없었다.석제환인(釋提桓因)은 삼십삼천을 거느린 천왕 중의 존자인데,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가 있으면 손가락을 튀기는 동안에 이루었다. 그는 금복산 기슭의 이라발용왕으로 하여금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에 삼십삼천에 이르게 하고자 하였는데, 좌우의 시종(侍從)이 천왕에게 모시고 가는 데 막히거나 걸림이 없었다. 그때에 천왕 석제환인이 온갖 하늘에게 그의 공덕을 증험하여 밝히기 위해 즉시 7보(寶)로 용의 몸을 장엄시켰다.그리고 천제석은 이 신룡(神龍)을 타고 동쪽 서쪽으로 노닐었는데, 바로 그때 이라발용왕은 다시 신통의 힘으로 갖가지 공양을 만들어 내어서 받치고 저 천제석을 공손히 따랐다. 용은 스스로 형상을 변화하여 서른두 개의 머리를 만들었는데, 낱낱 머리의 입에는 일곱 개의 어금니가 있고, 낱낱 어금니에는 일곱 개의 욕지(浴池)가 있고, 낱낱의 욕지에는 7백의 연꽃[蓮華]이 있고, 낱낱의 꽃에는 7백 명의 옥녀(玉女)가 있고, 낱낱의 옥녀는 다시 7백 명의 하인[使人]을 거느리고 있어서 풍악을 울리며 서로 즐기고 있었다.만일 다시 천왕 석제환인이 뜻이 게을러져 쉬고자 하면 즉시 7보로 장엄된 궁전으로 나아갔다. 나중에 이름이 향결(香潔)이라 하는 한 욕지에 이르면, 몸소 욕지에 들어가 이라발용왕을 타고 자유자재로 유희하였다. 그때에 천왕 석제환인은 한 훌륭한 욕지에 들어가 이 용을 타고나서는 온갖 섞여 있는 보배로 그의 몸을 장엄하고 풍악을 울리며 5욕(欲)으로 스스로 노닐면서 즐기니 그 즐거움은 말할 수 없었다.그때에 이라발용왕은 본래의 형상을 버리고 용의 몸을 짓지 않고서는, 자기의 신력(神力)으로 삼십삼천의 모양으로 변화하여 다시 한 욕지에 들어가서 저 여러 하늘과 온갖 옥녀를 거느리며 함께 서로 즐겼는데, 그것이 또한 천제석과 다름이 없었다. 좌우에서 이 변화를 관하여 보니, 하늘의 몸과 용의 몸이 각각 다름이 없고, 몸과 하늘 몸이 더불어 같고, 색(色)과 하늘의 색이 더불어 같아서 함께 한 욕지에 있으며 다름이 없어서, 제석의 몸과 용의 몸이 하나이지 둘이 아니었다.왜냐하면 모두 숙세에 쌓은 공덕을 말미암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본래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구하였는데, 오늘날 부처를 이루는 것도 또한 오래지 않으리라. 행은 마음으로부터 얻고, 마음이 깨끗하면 도가 이루어지리니, 마치 저 하늘 궁전[天宮]이 본래 온 바를 모르고, 가도 이르는 곳이 없듯이, 일체의 모든 행은 모두 공하고 모두 고요하니라.천자여 마땅히 알라. 너의 지금 이 몸과 저 하늘 궁전의 일월(日月) 천자는 다 마멸(磨滅)로 돌아가서 오래 보전치 못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천자야, 마땅히 법성(法性)의 이루어지고 무너짐의 나아가는 바와 일어나고 멸함이 항상 나뉨을 알아야 하느니라. 오직 열반만이 가장 편안하고 가장 묘하여서 칼ㆍ검ㆍ주문ㆍ요술이 능히 꺾거나 헐거나 부수거나 무너지게 하지 못하느니라.”그때에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걸림 없는 정의(定意)를 얻고 큰 서원이 견고하며, 보살 삼매의 7보(寶)로 스스로를 영락하고, 7각의(覺意)의 꽃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걸림 없음에 훌륭히 머물러서 정의(定意)가 어지럽지 않느니라. 몸에서 광명을 놓아 비추지 않음이 없고, 법의 소리를 내는 북[法鳴鼓]을 쳐서 소리가 시방에 사무치고, 법의 높은 깃대를 세워서 위의(威儀)를 나타내 드날리고, 몸 구쇄골(鉤鎖骨)의 힘이 천인(天人)을 능가하고, 일체의 온갖 바라밀을 더 늘리며,자연의 법률에서 모두 다 성취하고, 살결은 보드랍고 유연해서 티끌의 때[塵垢]를 받지 않고, 지혜의 법륜을 연설하여 법왕 가운에 훌륭하며, 법장(法藏)에 깊이 들어가서 여러 보살로 권속을 삼고, 여덟 가지 해탈의 욕지(浴池)로써 마음의 때를 씻고, 온갖 사람의 큰 서원의 근본을 끊지 않느니라. 보리수[道樹] 밑에 앉아서 온갖 업을 버리고, 나라의 영화를 아끼지 않고 은혜로운 보시[惠施]를 하고, 그리하여 불도를 이루어서 소리내길 ‘오늘 바로 이때, 내가 성불하지 못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깨칠 바를 깨쳐야만 자리에서 일어나리라’라고 하니, 오직 대지의 나무 신(神)만이 나의 마음을 알았느니라.”그때 세존께서 이 말씀을 설하실 때에 시방의 한량없는 항하 모래의 찰토에 있는 80억해(億姟)의 신통 보살이 모두 함께 와서 이르렀고, 하늘과 땅이 크게 진동하였다. 그리고 시방의 여러 부처님이 각자의 방소(方所)에서 그 공덕을 칭찬하시면서 사부대중에서 말씀하셨다.
“오늘 보살 석가모니란 분이 사바의 찰토에서 마땅히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이룰 것이다. 너희들도 능히 저 나라에 가는 걸 감당할 수 있다면 위의를 거두어 갖고 가서 뵈어라.”이때에 시방의 온갖 신통 보살들은 부처님의 높으신 뜻[聖旨]을 받들어서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을 세 번 돌았으며, 그리고 각각 향과 꽃을 가지고 사바세계[忍世界]에 나아가서 공양을 일으켜서 보리수를 둘러쌌다. 선을 칭송함은 한량없고 참는 마음[忍心]은 대지와 같으며, (두려움에) 털을 세우지 않고 뜻을 앞에다 붙들어 매고서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자비의 마음이 마침내 치성하여 고난과 액운을 당한 이를 불쌍하게 여겼다.
“내가 이제 성불코자 하는 까닭은 일체를 불쌍하게 여기기 때문이니라.”이 말씀을 설하실 때에 하늘과 땅이 여섯 번 거듭 진동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곧장 앞을 보시면서 7일 동안 움직이지 않으셨다. 이에 여러 하늘ㆍ용ㆍ귀신 등 8부의 무리는 모두 와서 보살을 에워싸고 옹호하며 말하길 “성불하여 구경(究竟)을 얻기까지 저희들도 또한 보살의 행하신 바를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하였다.(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천자야, 보살의 신족(神足)은 여섯 가지 성스러운 법[六聖法]을 행하여 성불로 나아가 비로소 도의 가르침에 응하였다. 나는 이전에 성불했을 때 이 여섯 가지 행을 말미암아 큰 자비를 행하였으니, 어떤 것이 여섯 가지 행인가가.
첫째는 사랑하는 마음과 어진 마음으로 제도 못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고, 둘째는 보시하여 일체를 두루 만족케 하는 것이고, 셋째는 성인의 지혜를 널리 연설하여 나아가고 물러남이 없게 하는 것이고, 넷째는 세 가지 공혜[三空慧]를 행하여 국토를 깨끗이 거두는 것이고, 다섯째는 국토를 깨끗이 거두어서 나아가고 물러서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여섯째는 부처님의 인신(印信)을 받아 중생을 봉인(封印)하는 것이니, 이것을 소위 여섯 가지 일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이룬다고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다시 여섯 가지 일로 중생을 교화하겠다고 생각해서 게으름을 품지 않고 온갖 중생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니, 첫째는 정진하여 여러 가지 번뇌를 끊음이요, 둘째는 고행하여 도의 마음을 버리지 않음이요, 셋째는 스스로 생각하여 몸ㆍ입ㆍ뜻을 거두어 잡음이요, 넷째는 스승을 따라 정법을 구하여 받음이요, 다섯째는 덕을 닦음이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며, 여섯째는 정(定)에 들어가 근원을 관찰함이니, 이것을 소위 보살마하살이 여섯 가지 일을 갖추면 문득 통혜(通慧)에 응한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 이 여섯 가지 법을 닦아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이루고, 널리 중생을 교화하고 깊이 법륜을 굴려서 총지의 문에 들어가나니, 어떤 것이 총지인가. 소위 총지라는 것은 법을 즐기는 청정한 총지[樂法淸淨總持]를 말하니, 보살로서 이 총지에 들어간 이는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법락(法樂)의 기쁨을 즐기게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끝없는 총지가 있으니, 보살이 이 총지를 얻으면 끝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8해탈(解脫)에 서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끊음 없는 법을 굴리는 총지가 있으니, 보살이 이 총지를 얻으면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법 듣는 것을 끊지 않게 하느니라.
다시 깨달음의 도(道)로 중생의 근본을 요달하는 총지가 있으니, 보살이 이 총지를 얻으면 아승기 중생으로 하여금 본래의 쫓아온 바를 알게 하느니라.다시 행적이 걸림 없는 총지가 있으니, 보살이 이 총지를 얻으면 자연히 법이 일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음을 아느니라.
다시 법을 외어 잊지 않는 총지가 있으니, 보살이 이 총지를 얻으면 여러 가지 법문을 수호하여 법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천자여, 보살의 총지는 백천억 수로서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보살은 이 총지로 말미암아 문득 백천 삼매에 유희하게 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성현 여래의 변재[四賢聖如來辯才]가 있으니, 보살이 이 성현의 변재를 얻으면 열반의 문을 향하는 데 걸림이 없다. 어떤 것이 성현의 변재인가.
천자여, 여기에 혹 어떤 보살이 처음 마음을 발하여 정에 들었다가, 나중에 마음으로 도를 향해 여래의 지혜[如來智]를 행하면서도, 처음 마음을 발하여 정에 들어간 뜻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이것을 소위 보살의 성현 변재라 이르니라. 다시 천자야, 보살이 정에 들어가 앞의 생각과 뒤의 생각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고, 능히 상호를 갖추어 세상 사람에게 나타내 펼치면서도 순전히 보살로 좌우에 시위(侍衛)하면, 이것을 소위 보살의 성현 변재라고 이르느니라.다시 다음에 천자야, 혹 어떤 보살이 만약 현재 정에 들어가 마음이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 세계에 노닐면서 훌륭한 성현의 법률을 채취(採取)하지만, 온갖 중생은 깨달아 아는 자가 없으며, 다시 다음에 천자야, 어떤 보살이 멸진삼매의 형상 없는 바른 선정[滅盡三昧無形正定]에 들었다가, 다시 선정으로부터 일어나 무수한 변화를 지음에, 온갖 중생이 깨달아 아는 이가 없는데, 혹은 현재의 한 겁(劫)으로부터 백천 겁에 이르기까지, 혹은 현재의 한 달, 혹은 현재의 하루로부터 이레에 이르기까지, 혹 현재에 성불하여 열반을 취한다. 천자여, 이것을 보살의 변재 공덕이 한량이 없다고 이르느니라.”그때에 세존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삼계(三界)를 홀로 걸으면서 온갖 부처님께 공양하고자 하는 이는 먼저 마땅히 이 성현의 변재를 익혀야 한다.
만약 성문이나 벽지불을 초월하고자 하는 이,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고자 하는 이, 3세(世)의 한량없는 법을 다하고자 하는 이, 부처님의 해탈과 같은 해탈을 얻고자 하는 이, 중생으로 하여금 일시에 같이 성불하고자 하는 이라면, 천자야,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 성현의 변재를 익혀서 받아 지니고 외우고 남을 위하여 해설하여야 하느니라.비록 많이 할 수 없다면 하룻밤도 좋고, 만약 하룻밤도 못하겠다면 한 시간도 좋고, 만약 한 시간도 못 하겠다면 손가락 튀기는 동안이라도 좋으니라. 왜냐하면 3세 모든 부처님의 온갖 도가 다 여기로부터 나왔고, 세상의 광명이 되어서 온갖 곤궁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이로 인해 편안해졌기 때문이니라.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몸에 부스럼이 나서 고름과 피가 흘러넘치면, 그 사람은 이 성현의 변재를 듣는 즉시 쾌차함을 얻으며,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등성마루 뼈가 굽어서 하늘을 지고, 눈이 멀고, 귀가 먹고,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면, 선지식을 만나 네 가지 성현의 변재를 설해 주는 즉시 해탈을 입어 온갖 고통이 없어지느니라.이와 같이 천자야, 만일 내가 옛적에 네 가지 성현의 변재를 얻지 못했다면, 끝내 성현의 네 가지 변재를 이루지 못하였으리라. 왜냐하면 그 공덕과 복은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만일 한 겁으로부터 백천 겁에 이르기까지, 다시 무수한 항하 모래 수효의 겁 속에서 이 법을 찬탄한다고 하더라도 비유로 삼을 것이 없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그 요점을 간략히 말하리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부처님 처소에 가서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이것으로 으뜸을 삼고, 나아가 시방의 한량없는 찰토에 이르기까지 섬기고 공양하면서 신심(信心)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갖가지의 꽃과 향과 다른 비단[懸繪], 깃대와 일산[幡蓋]으로 부처님의 깊은 뜻을 물어서 공덕을 더 늘리고, 온갖 법이 요술 같고 허깨비 같음을 알고, 아울러 일체를 교화하여 보살의 도를 설하고, 평등의 대도를 낱낱이 분별하느니라.보살의 온갖 행도 각각 같지 아니하며, 중생의 성행(性行)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가지가지 보살의 경계, 가지가지 보살의 지혜, 가지가지 보살의 위의(威儀), 가지가지 보살의 묘한 행, 가지가지 보살의 신족(神足), 가지가지 보살의 출요(出要), 가지가지 보살의 물들어 집착하지 않음에 들어간 경계[入下染着境界], 가지가지 보살의 미혹이 없는 마음으로 스스로 즐기는 것[危惑心自娛樂], 가지가지 보살의 법요(法要)는, 한량없는 법을 분별하기 때문이며,가지가지 보살의 통혜(通慧)는 중생의 순숙(純熟)한 근기를 관하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도의 지혜[道慧]는 본말의 정(定)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깊은 관(觀)은 정의(定意)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큰 서원은 본래의 소원을 어기지 않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용맹은 여러 가지 법을 이루어 갖추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정진(精進)은 게으른 마음을 품지 않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근고(勤苦)는 겁의 멀고 가까움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큰 자비[大慈悲]는 마음이 평등하기 때문이며,가지가지 보살의 대비(大悲)는 온갖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기쁜 마음[喜心]은 일찍이 화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수호하는 마음[護心]은 온갖 것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부정관(不淨觀)은 스스로 안의 여러 가지 법을 관하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나가고 들어가는 숨[出入息]을 세는 것은 안으로 스스로 뜻을 거두어 잡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12연기(緣起)는 스스로 온갖 법을 멸하기 때문이며, 가지가지 보살의 5음(陰)을 관함은 온갖 상념을 멸함을 생각하기 때문이니라.이와 같이 천자야, 보살마하살은 여러 가지 법의 불가사의를 관찰하여 온갖 자취를 깨끗이 해서 일체지(一切智)에 응하고, 한 도[一道]의 근본을 이루어 하나의 열반에 돌아가고, 그리하여 성현의 변재에 응하여 여래가 설하신 경계[經戒]를 분별하느니라.어떤 것을 경(經)이라 하는가, 이른바 경이란 것은 계경(契經)ㆍ노래[歌]ㆍ수결[授決]ㆍ본말구원사(本末久遠事)ㆍ상응(相應)ㆍ생경(生經)ㆍ방등(方等)ㆍ미증유법(未曾有法)ㆍ인연경(因緣經)ㆍ비유(譬喩)ㆍ심장단결(深藏斷結)이다. 천자야, 이것을 소위 보살마하살이 이 법을 배우면 문득 능히 갖춘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여래의 신상(身相)을 갖추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32대인의 모습[大人相]ㆍ80종호(種好)ㆍ여덟 가지 갈비음성(羯毘音聖)ㆍ둥근 광명[圓光] 일곱 자[尺]와 같은 모습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성현의 변재를 배워야 하며, 여래의 법신을 얻어서 5분법신을 갖추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성현의 변재를 배워야 하며, 온갖 보살을 거두어 잡아서 6바라밀을 갖추어 일체지(一切智)를 이루고 불법을 갖추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변재를 배워야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 여러 가지 법을 끊지도 않고 4대(大)에 의지하지도 않고서 여래의 깊고 그윽한 묘한 법에 통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성현의 변재를 배워야 하며, 지혜의 깊은 못에 들어가 3세(世)에 통달한 지혜를 타고서 백천 삼매에 노닐고자 한다면 마땅히 변재를 배워야 하며, 본래의 성과 이름을 멸하고 여래의 이름을 이루고자 해서 속박과 집착을 떠나 가업(家業)을 즐겨하지 않고자 한다면 마땅히 성현의 변재를 배워야 하느니라.이와 같이 천자야, 보살마하살이 여러 가지 법을 두루 배워서 이미 대승의 자취[大乘迹]를 이루고, 본래의 염원을 갖추고, 부처님 나라를 성취하고, 중생을 청정히 하면, 부처님의 법장(法藏)에서 걸리는 바 없고, 온갖 법이 요술 같고, 메아리 같고, 파초나무 같고, 거울속의 형상 같고, 꿈속에서 본 바 같고, 또한 허깨비 같아서 있는 바가 없음을 이해해 요달한다.
이와 같이 천자야, 보살이 온갖 법을 이해해 요달하면, 문득 여러 부처님 세존을 능히 섬기면서 한 부처님 나라로부터 한 부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법을 듣고 받아들여서 깊고 묘한 갈무리[深妙藏]에 들어가리라.”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전륜성왕[轉輪聖]의 7보(寶)를 소유하고 4천자를 거느리고자 하거나, 범천왕(梵天王) 및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되고자 한다면, 이는 마땅히 성현의 계율을 배워야 하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설하실 때에 아라한(阿羅漢)을 얻은 98억 명이 모두 변하고 뉘우치는 마음을 품고서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허물이 무거워서 본래 익힌 바를 버리고 이렇게 변제(邊際)에 떨어졌나이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불쌍히 여기시어 가르쳐 주소서. 성현의 변재를 닦아 익히고 싶습니다.”이렇게 하기를 두 번, 세 번하자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허락하셨다.
다시 수없는 중생이 법문을 듣고 나서 온갖 티끌의 때가 다 없어지고 법안(法眼)의 청정함을 얻었다.
부처님께서 정거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현겁(賢劫) 동안에 7백 부처님이 지나가는데, 너도 반드시 부처가 되리라. 그 이름은 지적(智積)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라 하고, 불세존(佛世尊)이라 호칭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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