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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563 변중변론송(辯中邊論頌)

by Kay/케이 2024.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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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변중변론송(辯中邊論頌)

 

 


변중변론송론(辯中邊論頌)


미륵보살(彌勒菩薩) 지음
현장(玄奘) 한역
송성수 번역


1. 변상품(辯相品)

다만 모양[相]과 장애[障]와 진실함[眞實]과
모든 다스림을 닦음[修對治]이다
곧 이 닦음의 나누어진 위치[修分位]와
과위를 얻음[得果]과 무상승(無上乘)만이 있다

허망한 분별은 있고
이것에 두 가지는 도무지 없으며
이 안에는 ≺공≻이 있을 뿐이요
그것에도 역시 이것만이 있다

그러므로 온갖 법은
≺공≻이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라고 말하나니
있음[有]과 없음[無]과 및 있음[有] 때문에
이는 곧 중도(中道)에 꼭 들어맞는다

의식[識]이 나서 변하여
뜻[義]ㆍ유정(有情)ㆍ≺나≻[我]와 알음[了]과 비슷하되
이 대경[境]은 실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대경이 없는지라 의식도 없다

허망한 분별의 성품은
이 뜻으로 말미암아 서로 있음[實有]도
전혀 없음[全無]도 아님을 이룩하게 되나니
사라져서 해탈(解脫)한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오직 제나름 분별[遍計所執性]과 새로 의지성[依他起性]과
두루 진실성[圓成實性]만은
대경[境]이기 때문이요 분별(分別)이기 때문이니
두 가지가 ≺공≻하기 때문에 말한다

의식[識]은 얻는 바[所得]가 있는 데에 의지하고
대경은 얻는 바가 없으면서 생기며
대경은 얻는 바가 없는 데에 의지하고
의식은 얻는 바가 없으면서 생긴다

의식의 얻음이 있는 성품[有得性]도
얻는 바가 없음[無所得]을 이루므로 말미암아
그러므로 두 가지의 얻음이 있음[有得]은
얻음이 없는 성품[無得性]과 평등한 줄 알아라

세 가지 세계[三界]의 임자 마음과 딸린 마음[心心所]은
이야말로 허망한 분별인 것이니
대경을 아는 것만을 임자 마음이라고 하고
또한 차별하는 것을 딸린 마음이라 한다

첫째를 곧 연식(緣識)이라고 하고
둘째를 받는 이[受者]라고 하나니
이 가운데서 능히 수용(受用)하고
분별하여 추리함[推]은 딸린 마음이다

가려 막음[覆障]과 편히 세움[安立]과
거느려 인도함[將導]과 포섭함[攝]과 원만함[圓滿]이며
세 가지 분별[三分別]과 받아 씀[受用]과
끌어 일으킴[引起]과 연달아 맴[連縛]이며

앞에 나타남[現前]과 괴로움의 결과[苦果] 때문에
이것만이 세간을 괴롭히나니
세[三]과 둘[二]과 일곱[七]의 섞여 더러움[雜染]은
허망한 분별로 말미암아서이다

모든 모양[相諸] 및 다른 문[異門]과
뜻[義]과 차별(差別)과 성립(成立)은
두 가지가 ≺공≻한 성품인 줄 알지니
간략히 말하면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가 없고[無二]없음이 있기[有無]때문이요
있음[有]도 아니고 없음[無]도 아니며
다름[異]도 아니고 또한 동일함[一]도 아니니
이것을 말하여 ≺공≻한 모양이라고 한다

≺공≻의 다른 문을 간략히 말하자면 진여(眞如)와 실제(實際)와
모양 없음[無相]과 뛰어난 이치의 성품[勝義性]과
법계(法界) 따위인 줄 알아야 하리라

변함이 없음[無邊]과 뒤바뀜이 없음[無倒]과
모양의 사라짐[相滅]과 거룩한 지혜의 경계[聖智境]와
모든 거룩한 법의 원인[聖法因]으로 말미암아서이니
다른 문의 뜻은 다음과 같으니라

이것은 섞여 더러움[雜染]과 맑고 깨끗하여[淸淨]
때 있음[有垢]과 때 없음[無垢]으로 말미암아서이니
마치 물 경계[水界]와 온전한 허공[空]처럼
깨끗하므로 인정하여 깨끗함[淨]이라고 한다

능히 먹음[能食]과 먹을 바[所食]와
능히 이것을 봄[能見此]과 그대로의 이치[如理]는
구하는 바 두 가지 깨끗함의 ≺공≻[二淨空]이며

언제나 유정들을 이롭게 하기를 위하고
나고 죽음[生死]을 버리지 않기를 위하고
착함[善]의 다함이 없기를 위하여
그 때문에 이를 살피어 ≺공≻으로 삼는다

종성(種性)의 맑고 깨끗함을 위하고
모든 좋은 모습[相好]를 얻기 위하고
모든 부처님 법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그 때문에 보살은 ≺공≻임을 살핀다

보특가라[補特伽羅]와 법(法)의
실제 성품[實性]은 다 같이 있음[有]이 아니며
이 없는 성품[無性]이 있는 성품[有性]이므로
두 가지의 ≺공≻[二空]을 세운다

이것이 만약 섞여 더러움이 없다면
온갖 것은 저절로 해탈되어야 하고
이것이 만약 맑고 깨끗함이 없다면
하욤[功用]은 결과가 없어야 하리

더러움[染]도 아니고 더럽지 않음[不染]도 아니며
깨끗함[淨]도 아니고 깨끗하지 않음[不淨]도 아니니
마음의 성품[心性]은 본래 깨끗하지마는
손티[客塵]로 말미암아 더럽게 된다


2. 변장품(變障品)

전체 부분[具分]과 한 부분[一分]과
더욱 왕성함[增盛]과
나고 죽음에 있어서 가지거나 버림[取捨]은
두 가지 종성(種性)을 장애한다고 말한다

아홉 가지 번뇌의 모양[煩惱相]이라 함은
사랑함[愛] 따위의 아홉 가지 번뇌[九結]이니
첫째와 둘째는 싫어함[厭]과 버림[捨]을 장애하고
나머지의 일곱은 참된 소견[眞見]을 장애한다

말하자면 몸에 대한 소견[身見]과 그의 일[事]과
사라짐[滅]과 도(道)와 보배[寶]와
이끗 공경함[利養恭敬] 따위와 멀리 여읨[遠離]과의
두루 앎[徧智]을 장애하기 때문이니라

행을 더함이 없음[無加行]과 그릇된 곳[非處]과
이치답지 않음[不如理]과 내지 않음[不生]과
바른 생각[正思惟]을 일으키지 아니함과
양식[資糧]이 아직 원만하지 못함이며

종성(種性)과 착한 벗[善友]과를 궐(闕)함과
마음이 극히 고달프고 싫증나는 성품과
바른 행[正行]을 궐함과
비루하고 나쁜 이와 함께 사는 것이며

뒤바뀐 거칠고 무거움[倒麤重]과 셋의 나머지와
반야(般若)가 아직 성숙되지 못함과
본래 성품[本性]의 거칠고 무거움과
게으름[怠惰]과 방일(放逸)과의 성품이며

존재[有]에 집착함과 재물[資材]에 집착함과
마음 성품의 낮고 열등함과
믿지 않음[不信]과 훌륭한 알음[勝解]이며

법을 가벼이 하고 명리[名利]를 중히 여김과
유정에게 가엾이 여김이 없음과
들음이 모자람[匱聞]과 들음이 적음[少聞]과
미묘한 선정[妙定]을 닦고 다스리지 않음이다

착함[善]과 보리(菩提)와 섭수함[攝愛]과
지혜 있음[有慧]과 어지러움[亂]도 장애도 없음과
회향함[廻向]과 두려움[怖]도 아낌[慳]도 아님과
자재함[自在]을 착함 따위라고 이름한다

이와 같은 착함 따위의 열 가지 것은
각각 앞의 세 가지씩 장애를 보유하며
깨달음 장래[覺分]와 건넘[度]과 자리[他]에선
따로[別]의 장애가 있는 줄 알지니라

일에 있어 잘하고 교묘하지 않음과
게으름과 선정에 둘을 줄게 함[定滅二]과
심지 아니함과 파괴하고 열등한 성품[嬴劣性]과
소견[見]과 거칠고 무거움[麤重]과의 허물이다

부귀(富貴)와 착한 갈래[善趣]와
모든 유정들을 버리지 아니함과
허물[失]과 덕(德)에 있어 줄어짐과 불음[減增]과
나아가 들게 함[趣入]과 해탈을 장애함과

보시[施] 따위의 모든 선행과
그지없음[無盡]과 끊임없음[無間]과
할 일을 잘 결정함[所作善決定]과
법을 수용하여 성숙케 함을 장애함이다

두루한 행[徧行]과 가장 훌륭함[最勝]과
훌륭한 종류[勝流]와 포섭함이 없음[無攝]과
서로 잇달아서 차별이 없음[相續無差別]과
섞여 더러움도 맑고 깨끗함도 없음이며

가지가지 법의 차별이 없음[種種法無別]과
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아니함[不增不滅]과
아울러 분별함이 없는 따위의
네 가지 자재함의 의지[四自在依]의 이치니라

이 열 가지 법계[十法界]에서는
물들지 아니하는 무명[不染無明]이것이
10지의 공덕을 장애함이 있는지라
그러므로 열 가지 장애[十障]라고 하느니라

이미 모든 번뇌장(煩惱障)과
모든 소지장(所知障)을 설명하였나니
이 두 가지가 다하였기 때문에
온갖 장애[一切障]는 해탈되었다 하리라


3. 변진실품(辯眞實品)

진실함[眞實]은 열 가지가 있을 뿐이니
근본(根本)과 모양[相]과
뒤바뀜이 없음[無顚倒]과 인과(因果)와
굵고 가늘음[麤細]의 진실함이며

지극하게 이루짐[極成]과 깨끗함으로 행하는 바[淨所行]와
받아들임[攝受]과 차별(差別)과
열 가지 교묘함[十善巧]의 진실함이니
다 ≺나≻라는 소견[我見]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세 가지의 제 성품[三自性]에 있어서
하나만은 언제나 있음이 아님[非有]이고
하나는 있음[有]이면서 진실함이 아니며
하나는 있음[有]ㆍ없음[無]이면서 진실함이다

법(法)과 보특가라[數取趣]와
취할 바[所取]와 능히 취하는 것[能取]과
있음과 있음이 아닌 성품[有非有性] 중에는
더 늘음[增益]과 줄어짐[損滅]의 소견이 있다

이를 알기 때문에 바꾸지 아니하면
이것을 진실한 모양[眞實相]이라고 하며
성품 없음[無性]과 나고 없어짐[生滅]과
때 끼고 깨끗함[垢淨]이 셋의 무상함이다

취할 바[所取]와 일 모양[事相]과
어울려 합함[和合]이 괴로움의 세 가지[苦三種]며
≺공≻함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나니
없음[無]과 다름[異]과 각자[自]의 성품이다

모양이 없음[無相]과 모양이 다름[異相]과
제만의 모양[自相]이 셋의 ≺나≻ 없음이며
다음과 같이 네 번의 세 가지는
근본의 진실함에 의지함인 것이다

괴로움의 세 모양[苦三相]은 이미 설명하였고
쌓임[集]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나니
습기(習氣)와 등기(等起)와
모양의ㅏ 매임을 여의지 못함[未離繫]이다

제 성품[自性]과 두 가지의 나지 않음[不生]과
때와 고요함[垢寂]의 둘은 셋의 사라짐[滅]이며
두루 앎[遍知]과 영원히 끊음[永斷]과
증득함[證得]은 세 가지 도의 진리[道諦]이다

알아야 하리니 세속의 진리[世俗諦]는
차별하자면 세 가지가 있어서
거짓[假]과 행함[行]과 나타나 앎[顯了]이니
차례대로 세 가지의 근본(根本)에 의한다

으뜸가는 진리[勝義諦]에도 세 가지가 있어서
뜻[義]과 얻음[得]과 바른 행[正行]이니
근본의 하나에 의한 변함이 없음[無變]과
뒤바뀜이 없음[無倒]의 둘은 두루 진실[圓實]이다

세간이 지극하게 이뤄짐[世極成]은 첫째에 의하고
도리가 지극하게 이뤄짐[理極成]은 셋째에 의하여
깨끗함으로 행하는 바[淨所行]에 두 가지 있나니
하나의 두루 진실성[圓成實]에 의하느니라

이름[名]은 제나름 분별성[遍計所執]이고
모양[相]과 분별(分別)은 서로 의지성[依他起]이며
진여(眞如) 및 바른 지혜[正智]는
두루 진실성의 소속이니라

헤맴[流轉]과 편히 세움[安立]과
삿된 행[邪行]은 처음과 둘째에 의하고
실제 모양[實相]과 오직 의식[唯識]과 깨끗함[淨]과
바른 행[正行]은 뒤의 하나에 의한다

쌓임[蘊] 등에 있어서 ≺나≻라는 소견[我見]은
하나[一]와 원인[因]과 받는 것[受者]과
짓는 것[作者]과 자재로이 바꿈[自在轉]과
더 위가는 이치[增上義]와 항상 함[常]이며

섞여 더러우며 맑고 깨끗함의 의지[雜染淸淨依]와
관(觀)과 묶고 푸는 것의 성품[縛解者性]을 집착하며
이 집착할 바[所執]와 분별(分別)과
법의 성품[法性]의 이치가 거기에 있다

하나가 아님[非一]과 묶어 간략히 함[總略]과
나눈 대문[分段]의 이치를 쌓임이라 하며
능히 취함[能取]과 취할 바[所取]와
저 취함[取]의 종자(種子)의 이치를 경계[界]라 한다

능히 받음[能受]과 알 바 대경[所了境]과의
받아 쓰는 문[受用門]의 이치를 처소라 하며
연기(緣起)의 이치는 원인[因]과
결과[果]와 작용[用]에서 더하고 덜함이 없음이다

사랑스럽지 않음[非愛]과 사랑스러움[愛]과 깨끗함[淨]과
함께 남[俱生]과 훌륭한 임금[勝主]과
얻음[得]과 행함[行]에 자재(自在)하지 아니함이
도리에 계합하고 못함[處非處]의 이치이다

뿌리는 취함[取]과 머무름[住]과 이어짐[續]과
씀[用]과 두 가지 깨끗함[二淨]에서 더함[增上]이며
원인[因]ㆍ결과[果]와 이미[已]ㆍ아직[未]의 수용은
바로 세상[世]의 이치인 줄 알라

느낌[受]과 느낌의 양식[受資糧]과
저 원인하는 바의 모든 행[所因諸行]과
두 가지 고요히 사라짐[二寂滅]과 다스림[對治]은
이는 진리[諦]의 이치인 줄 알라

공덕(公德)과 허물[過失]과
분별이 없는 지혜[無分別智]로 말미암아
다른 이에 의하거나 스스로가 벗어남[出離]은
이는 승[乘]의 이치인 줄 알아야 한다

함이 있고 함이 없는[有爲無爲]이치라 함은
거짓[假]이거나 원인[因]이거나
모양[相]이거나 고요함[寂靜]이거나
또는 저 살필 바[所觀]의 이치이니라


4. 변수대치품(辯修對治品)

거칠고 무거움[麤重]과 사랑의 원인[愛因]과
≺나≻라는 일[我事]과 헷갈림 없음[無迷] 때문에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들기 위하여
염주(念住)를 닦는 줄 알아야 한다

장애[障]와 다스림[治]의 온갖 차별을
이미 두루하게 알았다고 하면
멀리 여읨[遠離]과 닦아 쌓음[修集]을 위하여
네 가지 정단[四正斷]을 부지런히 닦는다

감당하는 성품[堪能性]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온갖 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다섯 가지 허물[五過失]을 없애버려서
여덟 가지 끊는 행[斷行]을 부지런히 닦는다

게으름[懈怠]과 성인 말씀[聖言]을 잊음과
흐리멍텅[惛沈]하고 들뜸[悼擧]과
행을 짓지 않음[不作行]과 행을 지음[作行]
바로 다섯 가지의 허물[五失]인 줄 알아라

게으름을 끊어서 없애기 위하여
하고자 함[欲], 부지런함[勤], 믿음[信], 편안함[安]을 닦음이니
곧 의지할 바[所依]와 능히 의지함[能依]과
원인한 바[所因]와 능한 결과[能果]이며

그 밖의 네 허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기억[念]ㆍ지혜[智]ㆍ생각[思]ㆍ버림[捨]을 닦음이니
말씀 기억함과 흐리멍덩하고 들뜸을 깨달음과
조복의 행[伏行]과 없애서 평등하게 흐름[滅等流]이다

이미 순해탈(順解脫)을 심었지마는
다시 다섯 가지 더함[五增上]을 닦나니
하고자 함[欲]과 행함[行]과 잊지 않음[不忘]과
산란하지 않음[不敬亂]과 생각하여 가림[思擇]이다

곧 장애 줄이는 것을 힘[力]이라고 하나니
원인과 결과로 차례를 세우며
순결택분(順決擇分)의 두 가지와 두 가지는
5근(根)에 있고 5력(力)에 있다

깨달음 갈래[覺支]를 요약하면 다섯 가지 있나니
의지할 바[所依]아 제 성품[自性]과
벗어남[出離]과 아울러 이익(利益)이며
그리고 세 가지의 물듦 없는 갈래[三無染支]이다

인연(因緣)과 의지할 바와
제 성품으로 말미암아 뜻이 차별되나니
그러므로 가뿐함[輕安]과 선정[定]과 버림[捨]을
말하여 물듦 없는 갈래라고 한다

분별(分別)과 가르쳐 보임[誨示]과
다른 이를 믿게 함에 세 가지가 있음과
장애 다스림[對治障]에도 세 가지가 있으므로
도의 갈래[道支]는 여덟 가지가 된다

소견[見]과 계율[戒]과 멀리 여읨[遠離]을 나타내어
다른 이로 하여금 깊이 믿어 받게 하며
근본과 따름의 미혹[本隨惑] 및
자재의 장애[自在障]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뒤바뀜 있음[有倒]에서 뒤바뀜 없음[無倒]에 따름과
뒤바뀜 없음에서 뒤바뀜 있음에 따름과
뒤바뀜 없음에서 뒤바뀜 없음에 따름의
이것이 다스림을 닦는 것의 차별이다

보살로서 닦아 익히는 바는
반연할 바[所緣]와 뜻 지음[作意]과
증득함[證得]의 자못 뛰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때문에 2승과는 차별이 있다


5. 변수분위품(辯修分位品)

통틀어서 세 가지 위 없음[三無上]으로 말미암아
무상승(無上乘)이라고 말하나니
바른 행[正行]과 반연할 바[所緣]와
닦아 증득함[修證]의 위 없음이다

바른 행에는 여섯 가지 있나니
가장 훌륭함[最勝]과 뜻 지음[作意]과
법을 따름[隨法]과 두 편을 여읨[離二邊]과
차별(差別)과 차별 없음[無差別]이 그것이니라

가장 훌륭함에는 열두 가지 있나니
넓고 큼[廣大]과 오랜 동안[長時]과
의지할 곳[依處]과 그지없음[無盡]과
끊임없음[無間]과 어려움 없는 성품[無離性]이며

자재(自在)와 섭수(攝受)와 일으킴[發起]과
얻음[得]과 같은 종류[等流]와 마지막[究竟]이니
이로 말미암아 열 가지 건넘[十度]을 말하여
바라밀다(波羅蜜多)라고 이름하게 된다

열 가지의 바라밀다라고 함은
보시[施]와 계율[戒]과 편안히 참음[安忍]과
힘써 나아감[精進]과 선정[定]과 반야(般若)와
방편(方便)과 소원[願]과 힘[力]과 지혜[智]이다

이롭게 함과 해치지 않음과 받음[受]과
공덕을 더함과 들임[入]과 벗어남과
그지없음과 항상 일으킴과 결정함과
수용하여 다른 이를 성숙시킴이다

보살은 세 가지의 지혜[三慧]로ㅆ
한결같이 대승(大乘)을 생각하면서
베풀어 설치하는 법[施設法] 그대로를
뜻 지음의 바른 행이라고 한다

이는 착한 경계[善界]를 더욱 자라게 함과
뜻에 들어감과 일을 이룩함이며
이 돕는 짝[助伴]은 바로
열 가지 법의 행[法行]인 줄 알아야 한다

쓰고 베낌과 공양함과
남에게 베풂과 들음과 펼쳐 읽음과
받아 지님과 바르게 열어 폄과
읊고 욈과 그리고 생각함과 닦음이다

열 가지 법의 행[十法行]을 행하게 되면
복 더미[福聚]를 얻음이 한량없나니
훌륭하기 때문이고 그지없기 때문이며
남을 거둬 주되 쉬지 않기 때문이다

법을 따른 행[隨法行]은 두 가지여서
모든 산란함이 없음[無散亂]과
뒤바뀜이 없음[無顚倒]이 변하여 바뀜[轉變]이니
모든 보살은 알아야 한다

선정에서 나옴[出定]과 대경에서 흐름[於境流]과
맛ㆍ흐림ㆍ들뜸[味ㆍ沈ㆍ掉]과 속여 보임[矯示]과
≺나≻라는 고집[我執]과 마음의 열등[心下劣]이니
지혜로운 이들은 알아야 한다

알고 봄[知見]의 글[文]과 뜻[義]과
뜻 지음[作意] 및 움직이지 않음[不動]과
두 모양[二相]과 더럽거나 깨끗함[染淨]과 손[客]과
두려움도 뽐냄도 없음[無怖高]에 대한 뒤바뀜 없음이다

서로 응함[相應]과 많이 익힘[串習]과
혹은 이것을 뒤집음으로 말미암아
뜻이 있고 있지 않는 줄을 아나니
이것이 글에 있어 뒤바뀜 없음이다

두 가지 성품[二性]에 비슷하게 나타남과
현실 같이는 실제 있음이 아님과
있음과 있음 아닌 것을 여읜 줄 앎이
이것이 뜻에 있어 뒤바뀜 없음이다

뜻 지음에 있어서 뒤바뀜이 없다 함은
저 말의 훈습(熏習)함이
말의 뜻 지음이며 그의 의지[依]라고 알지니
나타나서 두 원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음에 있어 뒤바뀜이 없다 함은
뜻[義]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눈흘림[幻] 따위인 줄 알지니
있음[有]ㆍ없음[無]에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모양[自相]에 있어 뒤바뀜이 없다 함은
온갖 것은 이름뿐인 줄을 알아서
온갖 분별을 여의는 것이니
으뜸가는 뜻의 자기만의 모양[勝義自相]에 의한다

참된 법계[眞法界]를 여읨으로써
따로 하나의 법도 없는지라
그러므로 이것을 통달한다면
공통의 모양[共相]에서 뒤바뀜이 없다

뒤바뀜의 뜻 지음이 아직 사라지지 못함과
이미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면
법계의 섞여 더러움[雜染]과
맑고 깨끗함[淸淨]에 있어 뒤바뀜이 없음이다

법계의 본래 성품은
맑고 깨끗함이 허공과 같은지라
더럽거나 깨끗함[染淨]이 주인이 아님을 안다면
이것이 손[客]에 대한 뒤바뀜 없음이다

유정(有情)과 법(法)은 없기 때문에
더럽거나 깨끗함의 성품조차 없나니
이 두렵거나 뽐냄 없음[無怖高]을 안다면
이것이 두 가지에 있어 뒤바뀜 없음이다

다른 성품[異性]과 동일한 성품[一性]이고
외도(外道)와 그리고 성문(聲聞)의 치우침은
유정(有情)과 법(法)에 두 가지씩이다

다스릴 바[所治]와 능히 다스림[能治]이고
항상 머무름[常住]과 아주 없음[斷滅]이며
취할 바[所取]과 깨끗함[淨]의 둘에는 세 가지 있다

두 치우침[二邊]의 성품을 분별한다면
다시 일곱 가지가 있는 줄 알지니
있음과[有] 있지 않음[非有]의 치우침이며
능소(能所)의 고요함[寂]ㆍ두려움[怖]ㆍ무서움[畏]이다

취할 바와 능히 취함과 바름[正]과 삿됨[邪]이고
쓸데 있음[有用]과 쓸데없음[無用]이며
일으키지 않음[不起]과 시간[時] 따위이니
이것이 두 치우침을 분별함이다

차별과 차별이 없음이라고 함은
알아야 한다 10지(地)에 있어
열 가지의 바라밀다[十波羅密多]의
더함[增上]과 평등한 것[等]의 닦아 모음이다

반연할 바[所然]라 함은 벌려 세움[安]과 법계[法界]와
세울 바[所立]와 능히 세움[能立]과 지녀 있음[任持]과
새겨 지님[引持]과 안에 지님[內持]과 통달함[通達]과
더함[增]과 분증(分證)과 등운(等運)과 가장 훌륭함[最勝]이다

닦아 증득함[修證]이란 모자람이 없음[無闕]과
헐뜯지 않음[不毁]과 요동 않음[不動]과 원만함[圓滿]과
일으킴[起]과 견고함[堅固]과 고르고 부드러움[調柔]과
머무르지 않음[不住], 장애 없음[無障], 쉼이 없음[無息]이다.

이 논(論)의 변중변(辯中邊)은
길고 은밀함[深密]과 굳고 착실함[堅實]의 뜻과
넓고 큼[廣大]과 온갖 것[一空]의 뜻을 말하여
모든 상서롭지 않은 것[不吉祥]을 없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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