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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553 변정론(辯正論) 2권

by Kay/케이 2024.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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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변정론(辯正論) 2

 



변정론 제2권


법림 지음
이영무 번역


1. 삼교치도편 ②

공자(公子)가 물었다.
“가만히 보니 도문(道門)에서 재계하는 법에 대략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극도(極道)이고 또 하나는 제도(濟度)입니다.
극도라 함은 『통신경(洞神經)』에서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으로 극도에 이른다’ 하였습니다.
제도라 함은 경을 의지하여 보면 3록(錄)과 7품(品)이 있습니다. 3록이라 함은 첫째는 금록(金錄)이니 위로는 천재(天災)를 소멸하고 제왕을 보좌하여서 이치를 바르게 하고 도수를 나누어서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옥록(玉錄)이니 뭇 조민(兆民)들을 구하고 제도하여 악함을 고쳐 착함을 따르고 허물을 뉘우쳐서 죄를 사죄하여 은혜를 구하고 복을 청하게 하는 것이요, 셋째는 황록(黃錄)이니, 9현(玄)과 7조(祖)를 구하고 제도하여 5고(苦)와 8난(難)을 뛰어넘고 깊은 밤에 길이 탄식하는 혼을 구제하며 길이 슬퍼하는 지옥의 죄를 제도하는 것입니다.
7품이라 함은, 첫째는 통신재(洞神齋)니 신선됨을 구하여 나라를 안보하는 법이요, 둘째는 자연재(自然齋)니 참을 배우고 몸을 닦는 도요, 셋째는 상청재(上淸齋)니 성인에 들어가고 허공에 오르는 묘(妙)요, 넷째는 지교재(指敎齋)니 병을 구원하고 재앙의 급함을 물리치는 법이요, 다섯째는 도탄재(塗炭齋)니 허물을 뉘우치고 수명을 청하는 요긴함이요, 여섯째는 명진재(明眞齋)이니 밤의 식(識)을 빼주는 것이요, 일곱째는 삼원재(三元齋)이니 3관(官)의 죄를 사죄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든 재는 하루 낮이나 하루 밤, 혹은 사흘 낮이나 사흘 밤, 혹은 일곱 낮이나 일곱의 밤을 정성 드리는 것이 모두 의전(儀典)의 것과 같습니다. 또한 그 밖에도 6재와 10직(直)과 갑자(甲子)와 경신(庚申)과 본명(本命) 등의 재가 있으니, 자연재의 법을 통용했습니다.
좌망(坐忘) 한 도[一道]는 홀로 나고 죽고 하는 근원을 뛰어넘었고, 제도의 열 가지 재는 한가지로 슬퍼하고 근심하는 근본을 벗어났으니 처음과 끝을 연구하여 찾으면 그의 공이 매우 큽니다. 그 사이 위의(威儀)의 궤식(軌式)과 당우(堂宇)의 단장(壇場) 등은 법의 모양이 현묘하고 허무하여 모든 본보기를 갖추었으며, 의관(衣冠)과 행동거지가 엄숙하며, 조읍(朝揖)하고 경배(敬拜)함이 근엄하고 엄숙하며 칭찬을 돌려 행함에 참 기운이 자연스럽고, 향을 태우고 꽃을 흩뿌리는 데 신기한 거둥이 울연(鬱然)하게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이르면 감응이 반드시 이를 것이요, 나그네와 주인이 한가지로 화합하니 저절로 큰 복에 부합된다 하였으며, 『명진의(明眞儀)』에 ‘하나의 긴 등을 안치하여 그 위에 아홉 가지의 불을 두어 한복판에 두어서 9유(幽)의 긴 밤의 부(府)를 비춘다.
정월에는 1일과 8일과 14일ㆍ15일ㆍ18일ㆍ23일ㆍ24일ㆍ28일ㆍ29일ㆍ30일 밤에 중앙에 하나의 긴 등잔을 두는데 높이가 9척(尺)이니, 하나의 등잔 위에 9등(燈)의 불을 켜서 위로 9현(玄)을 비춘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불가(佛家)에서 사라(娑羅)와 약사(藥師)와 도성(度星)과 방광(方廣) 등의 재는 위의와 궤칙(軌則)이 본래 법상(法象)이 없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보는데 어떤 것을 표명하였습니까?”
통인이 말하였다.
“내가 머리를 틀고 스승을 따라서 일찍이 상숙(庠塾)을 지나면서 백씨(百氏)를 모두 보고 몸소 3현(玄)을 익혔소. 그런데 하늘과 땅이 개벽함으로부터 한(漢)나라 위(魏)나라에 이르기까지 임금된 자가 도교를 받들어서 국가를 위하여 3록(錄)의 재를 세워서 천재(天災)를 물리치고 7품(品)의 법을 행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 법이 일찍부터 세상에 행하여졌다고 말한다면 옛날 홍수(洪水)가 하늘에 넘쳐서 사방의 백성들이 미련하였으며 염위(炎威)가 돌을 녹여서 6합(合)이 온통 탈 적에 그 때를 당하여 도교의 재로써 가서 구하지 아니하고 눈으로 낭패(狼狽)를 봄이 이와 같았겠습니까? 만일 구제하여 얻었다면 문왕(文王) 창(昌)이 유리(羑里)에서 풀려나고 무왕(武王) 발(發)의 병이 나았음이 이 모두가 재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까? 그리고 만일 구원하여 얻지 못하였다면 어찌 다시 도교의 재법이 허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일찍이 도교의 경전을 열람하여 그 요점을 모두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현중경(玄中經)』에 ‘도사가 계와 부록(符錄)을 받아서는 다 5악(岳)에 두고 술과 포(脯)를 갖추어서 두 번 절한다’ 하였으며, 또 3장(張)의 법1)을 살펴보니 봄과 가을의 춘분과 추분에는 부엌 신에게 제사지내고 토지신[社]에 제사지내며, 겨울과 여름의 동지와 하지에는 세속과 한가지로 먼저 돌아가신 조상께 제사한다 하였으며, 치록(治錄)과 병부(兵符)와 사계(社契)를 받을 적에는 다 장군과 관리와 군사의 일을 말하였습니다.
또 『상원금록간문위의자연경(上元金錄簡文威儀自然經)』에서 ‘상원은 총진(總眞)이요, 중원은 총선(總仙)이요, 하원은 총신(總神)이다’ 하였습니다. 항상 맑은 아침에 본명(本命)을 향하여 마음을 돌리며 33천(天)을 예배하는 자는 머리를 흔들고 두 손으로 하늘의 봉황의 날개를 가리키며 각각 아홉 번 돌며 손으로 이마를 만지고 두 어깨를 만진 후 두 눈을 닦고 코의 주위와 위아래의 두 구멍을 만지고 각기 일곱 번을 돕니다. 녹(錄)을 받을 때에는 상금(上金) 다섯 냥과 흰 실 다섯 냥과 먹는 쌀 다섯 되와 땔나무 다섯 묶음을 쓰며, 혹은 금(金)으로 만든 인형과 금으로 만든 가락지와 금으로 만든 용(龍)과 금으로 만든 물고기와 은으로 만든 인형과 은으로 만든 가락지와 은으로 만든 통(筒)과 은으로 만든 합(榼)들을 써서 널리 금과 옥을 베풀며 비단과 채색을 많이 소비합니다. 이는 다만 탐내고 구하는 술법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 요긴한 데로 나오는 방법임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가만히 찾아보니 도사 육수정(陸修靜)이 함부로 천착(穿鑿)을 더하여 이 재하는 의식을 제정한 것으로서 그의 뜻은 임금된 자가 그의 법을 따라 받들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에 도교의 교화가 행해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것을 아느냐 하면 살펴보니 양나라 무제는 조상 대대로 도교를 받들었기에 잠룡(潛龍)시절에 친히 노자(老子)를 받들었습니다. 천감(天監) 3년에 이르러 도에 자유로움을 얻었기에 4월 8일에 칙령(勅令)을 내려 도교를 버리니 육수정이 분하고 한이 됨을 이기지 못하여서 드디어 배반하여 자기 문도(門徒)들을 데리고 변경으로 망명하여 고씨(高氏)의 제(齊)나라로 들어갔으며, 또 금과 옥을 기울여서 여러 귀유(貴遊)들에게 주어 금기(襟期)를 부탁하고 도교의 법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문선제(文宣帝)가 담현(曇顯) 법사로 하여금 그의 날카로운 창날을 꺾게 하니 육수정이 신기(神氣)가 다 없어져서 혀를 깨물고 말을 못하였습니다. 그의 문도들이 그날로 모두 삿된 것을 버리고 바른 데로 돌아와서 슬프게 출가하기를 구하였으며, 발심하지 못한 자들은 칙령으로 물든 옷을 입고 머리를 깎게 하였으니, 자세한 것은 별전(別傳)에 실린 것과 같습니다.”
당시에 편견을 고집하는 유생이 있었으니, 그의 성은 유씨(劉氏)로서 스스로 한나라 말기의 황건(黃巾)의 후예라고 일컬었으며, 가까이 육수정의 좌도(左道)의 나머지를 받은 이었다. 통인에게서 육수정이 양나라를 배반한 까닭과 제나라에 들어갔다가 죽임을 당한 모양을 서술함을 듣고서 이에 발연(勃然)히 얼굴빛이 변하며 팔을 저으면서 일어나서 언성을 높여 말하였다.
“부자(夫子)는 큰 사람이니 어찌 쉽게 듣지 않았겠습니까? 급한 때에도 이러하고 넘어지려는 때에도 이러하다 하였습니다. 3록(錄)과 7품(品)을 찾아보니 모두 『영보(靈寶)』와 『자연』과 『통신(洞神)』의 가르침에서 나왔으며, 홀로 생사의 근원에서 뛰어나고 한가지로 근심과 괴로움의 근본을 벗어났습니다. 그러기에 예부터 전하여 오면서 행하는 자가 신선에 올랐습니다.
그러기에 도교에 들어가는 선비는 면류관을 쓰고 장(章)을 입고 부(符)를 차고 인(印)을 띠었습니다. 그러기에 간록(簡錄)을 잡아 가지면 신선의 뜰에 접하여 받듭니다. 그러니 옛 도교를 펴고 밝은 때를 도우며 무위(無爲)를 닦고 상덕(上德)을 숭상하여서 나아가서는 풍륜(風輪)을 움직여서 금궐(金闕)에 오르고 비개(飛蓋)를 굴려서 옥경(玉京)에 놀 것이요, 물러가서는 작은 착함을 열어서 3도(塗)를 구제하고 큰 자비를 운반하여 6도(道)를 건질 것이니 이것이 그의 모양입니다.”
통인이 말하였다.
“무릇 말이 천박하고 화려함을 숭상하면 참된 기록이 아닙니다. 마치 암탉은 새벽을 맡는 데 쓰이지 못하고, 흙으로 만든 개는 밤을 지키는 공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옛 역사를 검사하여 보고 선유(先儒)들에게 들어봐도 『영보』의 이름을 듣지 못하였고 천존(天尊)의 말을 기록한 것이 없습니다. 그 근본이 일어남을 살펴보면 다 장릉(張陵)의 위경(僞經)에서 전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학(末學)의 도사와 관견(管見)의 유생들이 그 가는 곳을 헤아리지 못하고 받들어서 사실로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도사라는 칭호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대가 만일 듣고 부지런히 행한다면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겠습니다.”
통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공자가 성을 내며 답하였다.
“내가 들으니 진주는 물에서 기르고 구리는 돌에서 나기에 취하는 자는 버리고 전하는 자는 미(迷)한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세히 하지 아니하고 전하는 것은 그대를 위하여 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삼려(三閭) 대부가 말한 ‘도를 받을 수는 있으나 전할 수는 없다’고 함이 이를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그대를 위하여 큰 종(宗)을 대략 말하겠습니다. 도교의 여러 경전을 살펴보니 모두 이르기를 처음에 한 기운에 응하니 대라(大羅)라고 합니다. 삼청(三淸)의 밖에 있으며, 현도(玄都)와 옥경(玉京)과 옥성(玉城)과 금궐(金闕)을 두었으며 천존의 다스리는 곳이 그 가운데 있다 하였습니다.
『보현경(寶玄經)』에서는 ‘자연(自然)이 교화에 응하여 열 가지 호칭이 있으니, 첫째는 자연이요, 둘째는 무극(無極)이요, 셋째는 대도(大道)요, 넷째는 지진(至眞)이요, 다섯째는 태상(太上)이요, 여섯째는 노군(老君)이요, 일곱째는 고황(高皇)이요, 여덟째는 천존(天尊)이요, 아홉째는 옥제(玉帝)요, 열째는 폐하(陛下)로서 모두를 통령(統領)하여 임금과 신하의 도를 세운다’ 하였습니다.
『정일경(正一經)』에서는 ‘위로 삼청(三淸)을 교화하여 선진(仙眞)을 두었으니 성왕(聖王)과 삼공(三公)과 구경(九卿)과 27명의 대부(大夫)와 81명의 원사(元士)와 1백20명의 조국(曹局)과 1천2백 명의 선관(仙官)들이 각기 궁부(宮府)를 다스리며 천조(天曹)들이 널리 별들과 해와 달을 다스려서 문(文)을 나누고 상(象)을 드리워서 아래 세계의 천자로 하여금 본받아 모양하게 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선대의 성스러운 임금이 다 이를 본받아 다스립니다. 또 한 기운으로부터 화하여 세 가지의 기운이 나서 3군(君)에 응합니다.3군이란 세 가지 기운으로부터 도를 내는 것으로서 기운이다.
『성보구천생신장(聖寶九天生神章)』에서는 천보군(天寶君)에 대해 말했는데 이는 대통신(大洞神)이요, 영보군(靈寶君)은 통현신(洞玄神)이요, 신보군(神寶君)은 통진신(洞眞神)이니, 천보장인(天寶丈人)은 곧 천보군의 조부요, 기장인(氣丈人)은 혼동태원고상옥황(混洞太元高上玉皇)의 기(氣)입니다.
9만 9천99억만의 기가 된 뒤에 용한(龍漢) 원년에 이르러 천보군을 화생(化生)하였으니, 글을 낼 때에는 고상(高上)이라고 이릅니다. 크게 옥청궁(玉淸宮)을 소유하였습니다.
영보장인(靈寶丈人)은 곧 영보군의 조부이고, 기장인(氣丈人)은 곧 적혼태원무상옥령(赤混太元無上玉靈)의 기로서 9만 9천9백90만의 기가 된 뒤에 용한(龍漢) 연중에 이르러서 도(圖)를 열어 영보군을 화생하였으며, 1겁이 지난 뒤에 적명(赤明) 원년에 이르러서 글을 내어 사람을 제도하였으니, 그 때에 상청현도옥경칠보자미궁(上淸玄都玉京七寶紫微宮)이라고 일렀으며, 신보장인은 곧 신보군의 조부입니다. 기장인은 명적현통무상옥령(冥寂玄通無上玉靈)의 기로서 9만 9천9백90만의 기가 된 뒤에 적명 원년에 이르러서 신보군을 화생하였으며, 2겁이 지나 상황(上皇) 원년에 이르러서 글을 내니 이를 세 분의 황(皇)이라고 이르며, 통신태청태극궁(洞神太淸太極宮)이라고 이릅니다. 또 말하기를 이 세 가지 호는 비록 해가 다르고 호가 다르지만 근본은 동일하다 하였습니다. 그것을 나누어 현(玄)과 원(元)과 시(始)의 세 가지 기운으로 나누어서 삼보를 다스렸으니 곧 세 기운의 높은 신이 하였습니다.『자연참사의(自然懺謝儀)』에 ‘신(臣)들이 동쪽의 무극태상령보(無極太上靈寶)의 천존에게 귀명(歸命)하옵고 신이 이제 우러러 동쪽의 9무(無), 청천(淸天)과 태청(太淸)과 현원(玄元)과 무상(無上)의 3천(天)과 무극대도(無極大道)와 태상노군(太上老君)과 태상장인(太上丈人)과 제군(帝君)과 대제군(大帝君)과 상황(上皇)과 노군(老君)과 29명의 진인(眞人)과 72명의 높고 현묘한 진군(眞君)과 9명의 노선(老仙)과 도군(都君)과 아홉 명의 기장인과 시청천진동화옥보고신대사상상(始淸天眞東華玉寶高辰大司上相)과 청동군(靑童君)과 원로구현주선진인(元老九玄主仙眞人)과 1천2백 명의 관군태청옥폐하청제(官君太淸玉陛下靑帝)와 9기(氣)와 옥문신선(玉門神仙)과 4사(司)의 진인(眞人)과 제천(諸天)과 지극상성태신(至極上聖太神)과 아래로 동경무극세계(東卿無極世界)와 5악(岳)과 4독(瀆)과 신선정진(神仙正眞)에게 아홉 번 머리를 두드리고 아홉 번 볼을 친다’ 하였다.
『통신경(洞神經)』에서는 ‘셋에 3황(皇)이 있기에 9황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맨 처음의 3황은 허무(虛無)와 공동으로 변화한 것이요, 다음의 3황은 현ㆍ원ㆍ시로서 변화에 응한 것이요, 뒤의 3황은 3원(元)이 변화한 것으로서 3태(台)의 별이 되어 형상을 변화하여 중생들을 접하는 것입니다. 이 9황은 모두 큰 도의 미묘한 쓰임새로서 변화에 응하여 난 것입니다. 5제(帝)가 교화를 행하였으며 그 다음으로 3왕(王)이 대대로 진(眞)을 익혀서 도를 법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하였습니다.
또 ‘삼계 28천의 위에는 차례대로 4민(民)의 하늘이어서 4민의 하늘로부터 태청(太淸)의 경계에 이르고, 태청의 경계로부터 상청(上淸)의 경계에 이르고, 상청의 경계로부터 옥청(玉淸)의 경계에 이르며, 옥청의 경계로부터 바야흐로 더 위가 없는 대라(大羅)에 이르러서 이에 극과(極果)에 오른다’ 하였습니다.
응화(應化)의 궁궐과 누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니 도 가운데의 도이며 또한 천존(天尊)의 지위여서 7영(映)의 궁중에 처하고 9화(華)의 궁전에 거처합니다. 황금 상에 앉아서 성품을 즐기고 옥의 궤짝에 기대서 신을 즐겁게 합니다. 옥녀(玉女)가 비단옷을 끌며 신선 아이가 시위하여서 선과 악을 나누어 판단하고 죽고 사는 것을 결단하니, 귀신들이 높여 우러르지 않는 이가 없어 하늘 가운데의 주인이 되고 성인 가운데의 가장 높은 분입니다. 오직 귀신들이 믿고 숭상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옛날 어질고 밝은 이들이 다 함께 의지하여 행하여서 혹은 저자와 조정에 자취를 숨기고 혹은 숲속에 형체를 감추며 혹은 문인들이 따라다니고 혹은 제자들이 자문을 구하여 묻습니다.
그러기에 옥태(玉台)의 무리들이 3천 명이나 되었고 경상(庚桑)의 무리들이 하나만이 아니어서 다르게 보는 이가 없고 마음을 중현(重玄)한 데 두었습니다. 그러기에 상(想)을 씻어 공(空)을 말하는 것이 극히 묘하여서 큰 도를 선동하여 시대를 바로잡고 착함을 닦고 재를 세워서 현묘한 공을 운전하여 나라를 도왔습니다.
이 때문에 대대로 천자들이 다 따라 숭상하는 것이요, 대대로 영현(英賢)들이 다 흠앙하여 숭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후씨(夏后氏)가 종산(鍾山)에서 감득한 것과 한문제(漢文帝)가 하수(河水)에서 징험한 것이어서 묘한 감응이 서로 연하여 때로 잠시도 갈림이 없었으니, 이 뜻은 헛된 말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유래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도교를 일컬어서 이름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통인이 그를 꺾어 말하였다.
“그대가 능히 글을 외우면서 이치 구함을 알지 못하는구려. 호향(互鄕)의 유는 진실로 더불어 말하기 어렵습니다. 대저 꽁꽁 언 얼음은 참률(慘慄)하여서 겨울을 지낸 꽃을 새길 수가 없으며 붉은 바람은 돌을 녹여도 소구(簫丘)의 나무는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반딧불을 해와 달의 사이에 두는 것은 지혜가 아니요, 자배기와 사발을 큰 종(鍾)의 옆에 두는 것은 사려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대가 인용한 것의 글을 이제 마땅히 곧 징험하여 보겠습니다.
『예(禮)』에 ‘태상(太上)은 덕을 귀중하게 여긴다’2) 하였는데, 정주(鄭注)에 ‘옛날의 임금된 자’라 하였으며, 『노자(老子)』에서 ‘태상은 아래에서 안다’ 하였는데, 『집주(集注)』에서는 ‘태고의 세상에는 위에 임금이 있음을 알면서도 신하로서 섬기지 아니한다’ 하였으니, 이는 곧 3황(皇)의 때입니다.
천존(天尊)의 호칭은 불교의 경전에서 나왔으며, 폐하(陛下)라는 이름은 진시황제(秦始皇帝)에게서 비롯되었으며, 그리고 공경(公卿)과 대부(大夫)와 원사(元士)와 조국(曹局)의 말은 모두 주(周)의 관제와 진나라ㆍ한나라의 제도에서 나온 것으로서 모두 얼굴을 고치고 꼬리를 바꾸어서 거짓으로써 참됨으로 삼은 것입니다. 도교에서 말하는 3황(皇)이라 함은 모두 『제계보(帝系譜)』에서 끌어다 쓴 말이요, 삼계의 품차(品次)와 제천(諸天)의 중수(重數)들은 모두 불교의 경전에서 모방한 것으로서 억지로 이름과 글자를 세워서 더하고 덜하며 나오고 없애고 하여 다른 것 같지만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상고(上古) 이래로 실지로 이러한 법이 있었다면 포희씨(庖犧氏)가 역(易)을 만들 적에 썼을 것인데 그에 대한 서술이 없었으며 지난 시대의 임금들이 도교를 받들어 섬겼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주(周)나라와 진(秦)나라의 이후로 점점 거짓말을 꾸민 것입니다.
『장자(莊子)』의 「천운편(天運篇)」에 ‘공자(孔子)가 나이 51세가 되도록 도가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이에 남쪽으로 청(淸)과 패(沛:지명)에 가서 노담(老聃)을 보고서 말하기를 ≺도를 바칠 수 있다면 사람들이 그의 임금에게 바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그대가 한번 생각하여 보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지 마시오.
그리고 삼계의 밖에 따로 경궐(京闕)과 도성(都城)이 있다고 말하면 유식(有識)한 무리들이 다 비웃고 괴상하게 여길 것이니, 『소도론(笑道論)』 가운데 그 거짓이 모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자』에 ‘왕태(王台)는 폐질(廢疾)의 사람이요, 경상(庚桑)은 근심을 안은 선비이다’라고 하였는데, 장초(章醮)를 행하지 않았으며, 아직 부서(符書)도 내지 않았고 몸에는 당시의 사람들이 입던 옷을 입었고 입으로는 선왕(先王)의 법을 전해 주었으며 도사(道士)라고 하지 않았고 황건(黃巾)을 머리에 두르지도 않았는데도 그를 끌어서 가져 왔으니 무엇을 표현하려는 것입니까?
비록 하(夏)나라 우(禹) 임금은 종산(鍾山)에 간직되어 있는 것을 열었지만 천존(天尊)을 말하지 아니하였고, 한(漢)나라 문제(文帝)는 하수(河水)가를 유람하였지만 그 종적(蹤迹)이 없습니다.
반악(潘岳)이 지은 『관중기(關中記)』와 혜강(嵇康)과 황보밀(皇甫謐)이 지었다는 『고사전(高士傳)』과 반고(班固)가 지은 『한사(漢史)』의 「문제전(文帝傳)」과 부로(父老)를 방문한 것들에는 하수 가에서 공(公)이 풀을 엮어 암자를 만들고 신통 변화를 나타냈다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모두 헛되고 거짓인 것을 가히 징빙(徵憑)하겠습니다.
또한 도(道)를 교(敎)라고 일컫는데 무릇 교를 세우는 법은 먼저 반드시 주장하는 이가 있어야 하는데 도가(道家)에는 분명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도교라고 하겠습니까? 세 가지의 일로써 도가를 따로 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첫째는 주공과 공자가 대담하였다는 사실인데 주공과 공자는 바로 교를 전한 사람이니 스스로 교주(敎主)라고 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교는 3황(皇)과 5제(帝)의 교니 교주라면 곧 3황과 5제일 것입니다.
둘째는 전한(前漢)의 『예문지(藝文志)』를 살펴보니 지금과 옛날의 분전(墳典)을 토론하여 총괄적으로 판정하여 무릇 9류(流)라고 하였는데, 첫째는 유류(儒流)요, 둘째는 도류(道流)였습니다. 도에 따로 교라 함이 없이 모두 9류 안에 있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하여 말하면 도는 따로 교를 세운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주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노자로써 교주를 삼는다면 노자는 제왕(帝王)이 아니니, 그가 제왕이 되어야 교주라고 일컬을 수 있습니다. 만일 따로 천존이 있어서 도교의 교주가 된다 말하면 5경(經)의 정전(正典)을 살펴보니 3황으로부터 오면서 주공과 공자 등이 따로 천존이 있어서 하늘 위에 머물러 있으면서 교화를 펴고 드리워서 도교의 교주가 되었다고 이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세 명의 장씨(張氏) 이하의 거짓된 경으로서 거짓 천존이 올라가서 도교의 교주가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미 교주가 없거니 어떻게 교라고 일컫겠습니까?
셋째는 요도안(姚道安)이 『이교론(二敎論)』을 지었는데 오직 유교와 불교만을 세우고 도교는 세우지 아니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유교에서는 3황과 5제를 세워 교주를 삼았기 때문입니다.
『상서(尙書)』에 ‘3황의 글을 삼분(三墳)이라 하고, 5제의 글을 오전(五典)이라 한다’ 하여서 분과 전의 가르침을 써서 천하를 교화한다 하였으며, 『모시(毛詩)』에는 ‘바람으로써 움직이고 교로써 교화한다’ 하였는데, 분과 전은 교이고 3황과 5제는 교주가 되었으니, 유교를 교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불교는 법왕(法王)이 말씀하신 것으로 12부(部)의 경을 천하에 펴서 교화하였으니 교가 있고 교주가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세상을 뛰어넘으신 분이요, 불경은 세상을 뛰어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기에 교주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3황과 5제는 세간의 임금이요, 삼분과 오전은 세상의 가르침입니다. 먼저 세상의 가르침으로써 교화하고서 뒤에 세상을 뛰어넘는 가르침으로 교화하면 일이 이에 다하여서 법을 포섭함이 이미 두루하고 인연됨이 또한 갖추어졌으니, 어찌 따로 도교가 필요하겠습니까?
또 『모시』에 ‘한 나라의 일은 한 사람의 근본에 달렸으니 이를 바람이라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천자에게 바람이 있어서 능히 천하를 교화하므로 교라고 일컫습니다. 도는 천자가 아니니 바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바람이 없으니, 어떻게 교를 펴서 바람이 없이 교화하겠습니까? 따로 교라고 일컫지 아니합니다. 이를 근거로 하여 말하면 다만 두 가지의 교만이 있습니다. 그러니 설사 도라고 칭한다 하여도 유류(儒流)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노자는 세속 사람이어서 번뇌를 끊지 못하였으니 말한 것이 있다 하여도 다만 3황의 교화를 폈을 뿐입니다.
하상공(河上公)은 ‘큰 도의 세상은 무위(無爲)로써 신을 봉양하고, 무사(無事)로써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이니, 이른바 베풀어 함이 없고 조작(造作)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그치는 것을 큰 도라고 이르니, 따로 천존이 하늘 위에 머물 것이 없습니다. 이를 도라고 하니, 이 도리는 순화(淳和)한 기운이어서 또한 형상이 없습니다.
또 갈선공(葛仙公)은 ‘내 스승의 성은 파열종(波閱宗)이요, 자는 유나하(維那訶)이며, 서역(西域) 사람이다’ 하였고, 또한 ‘천존은 나의 스승이다’라고 이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유생(儒生)이 물었다.
“도는 자연으로써 종을 삼고 허무(虛無)로써 근본을 삼아서 그 증거가 하나만이 아닙니다. 『태상현묘경(太上玄妙經)』에 ‘도를 자연이라 한 것은 도의 참됨이요, 무위라 한 것은 도의 극치며, 허무라 한 것은 덕의 높음입니다. 보지 아니하고 듣지 아니하면서 그의 현현(玄玄)함을 안고 마음이 없고 뜻이 없어서 나무가 아직 뿌리를 내지 않은 듯하고 정기가 교화를 모아 몸을 삼는다’ 하였습니다.
또 『승현내교경(昇玄內敎經)』에는 ‘태극진인(太極眞人)이 물었다.
≺큰 도는 무엇으로써 몸을 삼으며 어디에서 난 것을 도라고 이릅니까?≻
그러자 대답하였다.
≺대저 도는 현묘(玄妙)하여 자연에서 나고 생이 없는 데서 생하며 먼저가 없는 데서 먼저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영보자연경결(靈寶自然經結)』에서는 ‘태상현일진인(太上玄一眞人)이 말했다.
≺태상(太上)은 더 끝이 없고, 대도(大道)는 더 위가 없으며, 지진(至眞)은 현묘한 데 거처하며, 허무는 형체가 없다. 자연은 허무의 위에 끝이라서 위로는 다시 하늘이라 할 것이 없고 아래로는 다시 땅이 없다. 그러기에 무상지진(無上至眞)의 큰 도라고 이른다. 도가 비록 허무하지만 능히 하나를 내서 만물의 근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통인이 물었다.
“도가 하나를 내면 누가 다시 도를 내겠습니까? 만일 도가 좇아서 나는 것이 없으면 도가 또한 하나를 내지 못할 것이요, 만일 도가 다른 것으로 부터 나지 않았으면 하나가 또한 도를 따라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도가 스스로 생겼다면 하나도 스스로 나왔을 것이니, 하나가 이미 스스로 생기지 않았으면 도도 스스로 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만일 도가 스스로 도를 내고 또한 도가 스스로 도를 본받아야 한다면 어찌해서 노자가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하였겠습니까?
이미 도가 스스로 본받지 못하면서 자연을 본받았으면 또한 도가 스스로 나지 못하고 자연을 따라 났을 것이요, 만일 도가 자연을 따라 나지 않았으면 또한 하나가 도를 따라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는 하나가 도에 미치지 못하면서 도를 따라 나왔다 하면 또한 도가 자연에 미치지 못하면서 자연을 따라 났을 것이니, 하나가 도로부터 났으면 도가 큰 것이라 하겠고, 도가 자연으로부터 났으면 또한 자연을 큰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도를 크다고 일컫지 못할 것이니, 만일 크다고 일컫지 못하면 응당 작은 도라고 하겠습니다.
만일 도가 자연을 바라보아서 곧 도가 자연을 본받으면 자연이 곧 도의 근본이 될 것이니, 이미 도가 자연을 근본으로 하였으면 곧 자연이 항상한 것이요, 도는 항상하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도를 항상하다 일컫고 자연도 또한 항상하다고 일컬으면 또한 도가 자연을 본받고 자연도 또한 응당 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만일 자연이 근본이 되고 도가 근본이 되지 못하면 자연이 항상함이 되고 도가 항상함이 되지 못한다든지, 만일 두 개가 함께 항상한다든지 또한 두 개가 함께 서로 본받는다 하면서 만일 하나는 본받고 하나는 본받지 못하며 또한 하나는 항상하고 하나는 항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두 개가 함께 항상하다면 곧 함께 자연일 것인데 이미 자연이 있고 자연하지 못함이 있으며 또한 하나는 항상하고 하나는 항상하지 못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이 근본이 되고 도는 자취가 되면서 근본과 자취가 함께 항상한 것이라 일컬으면 또한 도가 근본이 되고 하늘이 자취가 되면서 하늘과 도가 함께 항상함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이제 도로써 근본을 삼아 하늘의 자취를 대하면서 도는 항상하고 하늘은 항상함이 없다 하면 또한 가히 자연은 근본으로써 도의 자취를 대하여 도는 항상함이 없고 자연은 항상하다 할 것이요, 만일 도가 곧 자연이면 또한 하늘도 곧 도일 것입니다.
만일 하늘의 체(體)가 도의 체가 아니면 곧 하나는 항상하고 하나는 항상하지 못할 것이요, 이제 또한 도의 체가 곧 자연의 체여서 체가 한가지이고 또한 항상함이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도가 자연을 본받는다 하였으니 어떻게 같은 체이겠으며, 이미 도가 자연을 본받는다 하였으니 본받지 않는다면 다시 이것이 자연은 항상하고 도는 항상함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항상한 것이 항상함이 없는 것과 다르다면 가히 항상함이 없음은 항상함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항상함 없는 것이 항상함과 다를 것이니, 어찌하여 항상함으로 하여금 항상함 없음과 다르다 하겠습니까?
항상함 없음을 말미암아 항상함이 있고 항상함이 있기에 항상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하다는 법이 있지 않은데 어찌하여 항상함 없음이 있겠습니까?
만일 항상함을 떠나서 항상함 없음이 있다면 다른 항상함을 인하여 항상함이 있을 것이요, 또한 항상함을 떠나서는 항상함이 있지 아니할 것이니, 그러므로 항상함 없음과 항상한 법이 이미 없는 줄 아는데 어떻게 항상함이 없는 도가 있겠습니까?
만일 항상함을 여러 소견의 우두머리라고 일컬어서 그래서 크다고 일컬으면 다시 세상 가운데 얽매임이 될 것이니, 새와 쥐의 뒤 끝을 어떻게 벗어나겠습니까?
가령 도교에서는 약으로 인하여 신선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원굉(袁宏)이 지은 『후한기(後漢紀)』의 교사지(郊祀志)에 ‘도가라 함은 노자에서 흘러나왔다. 청허(淸虛)와 담박(淡泊)으로써 주장을 삼고 착함을 넉넉히 하고 악을 미워함으로써 교를 삼으며 화와 복의 보응이 일생의 안에 있다. 아내와 자식을 기르고 부서(符書)를 써서 닦아 행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면 신선에 이른다’ 하였습니다.”
통인이 말하였다.
“살펴보니 노군(老君)은 세속에 살면서 세속의 티끌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의모(儀貌)와 복장도 고쳐서 다르게 함이 없었습니다. 관우(館宇)를 세우지 아니하고 문도를 거느리지 아니하고 주하(柱下)의 작은 관직에 있으면서 용덕(龍德)을 숨겨 성품을 기르고 그의 빛과 어울려서 외부의 근심을 피하고 그의 일을 함께 하여서 안의 생을 조섭하기에 어리석은 자가 보고서는 어리석다 이르고 지혜 있는 자가 보고서는 지혜 있다 합니다. 공자[魯司冠]가 아니면 능히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의 도사들은 그의 법도를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장우(張禹)와 한가지로 하여서 부질없이 장구(章句)만 행하고 구차스럽게 집만을 장만하여 몸 기르기를 바라면서 5천 가지의 미묘한 문(門)을 버리고 세 장씨(張氏)의 더러운 기술을 행하니 모산(茅山)도사인 도은거(陶隱居)가 찬한 『중초의(衆醮儀)』가 무릇 열 권이나 됩니다.
하늘과 땅과 산과 내와 별들과 산악(山嶽)과 도랑[瀆]과 안택(安宅)과 사묘(謝墓)와 혼신(魂神)을 부르는 것들로서 경영하는 것의 초법(醮法)이 진기한 것들을 모두 벌려서 널리 비단을 구하고 많이 찐 생선과 녹포(鹿脯)와 누렇고 흰 꿀과 맑은 술과 온갖 과일과 소금과 기름과 쌀들을 벌려 놓고서 먼저 장(章)을 아뢰어서 장군과 아전과 군사를 부르며 도사들이 다 수판(手版)을 잡고 신을 향하여 신하라고 일컬으며 머리를 조아려서 두 번 절하고 은혜를 구하며 복을 빌어서 세속과 더불어 하는 일이 같습니다. 이미 출가한 이가 아니기에 삿된 업을 모두 짓습니다.
그런데 자미(紫微)와 태미(太微)와 소미(少微)들을 다 천황(天皇)의 3관(官)이라고 일컫습니다. 옛날의 선유(先儒)들을 살펴보니 이르기를 ‘천황 대제(天皇大帝)라는 분은 자미의 높은 신으로서 요혼보(曜魂寶)라고도 합니다. 곧 중앙의 하늘이니 이를 북극(北極)이라 하여 구진(鉤陳)의 안에 있는데 하늘의 주인이 되어 여러 별들이 높이 우러릅니다. 왼쪽에는 천일(天一)의 신이 있고 오른쪽에는 태일(太一)의 신이 있어서 좌우의 장수가 되니 지금의 좌우 승상과 같은 것입니다. 주로 천황을 받들어 섬기고 사람 목숨이 속해 있는 것이니 높은 이 가운데 높은 이라 하겠습니다.
『상서(尙書)』와 『주례(周禮)』에 의거하여 보면 ‘국가에서 스스로 제사지내는 법이 있었으니 다 천자가 친히 공경하여 섬긴다’ 하였습니다.
『효경(孝經)』에는 ‘주공(周公)이 지극히 효도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에 문왕(文王)을 명당(明堂)에 종사(宗祀)하여 상제(上帝)에 배향(配享)하고 후직(后稷)을 교(郊)에서 제사하여 하늘에 배향하였다’ 하였으니, 하늘이라 함은 5방(方)의 하늘이요, 상제라 함은 호천(昊天)의 상제를 말합니다. 조부로써 명당과 원구단(圓丘壇)과 남교(南郊)에 배향하여 제사지내는 것은 본래 도가의 신이 아니었으며, 또한 도사들이 행하는 법도가 아닙니다. 그러니 어떻게 오늘날 도사의 초제(醮祭)의 법을 쓰겠습니까? 크게 예교(禮敎)에 어긋나니 천신들이 예 아닌 것을 흠향(歆饗)하지 아니할까 깊이 두렵습니다.
한나라 말엽에 장릉(張陵)이 귀신의 도로써 교화를 행하였기에 드디어 도사의 초제가 있었으며, 양(梁)나라와 진(陳)나라 때에 이르러 세상에 성하게 행하여졌는데 거친 법도는 물들기 쉽고 습속(習俗)이 보통이 되었으니 천하에서 거짓되고 참람함이 이보다 지나친 것이 없었습니다.
『주례』와 『교특생(郊特牲)』 등을 의거하여 보면 국가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에 스스로 의식이 있으니, 초제라 함은 제사 가운데의 하나로서 잔을 다 붓는 것을 초(醮)라 하였고, 3사(史)와 9류(流)에는 또한 도사가 나라를 위하여 재앙을 물리치며 장(章)을 아뢰어 초를 행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옛날 주나라 무왕이 병이 위독하매 주공이 자기의 목숨을 대신할 것을 청하여 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베풀어서 상천(上天)에 기도할 적에 도교의 신에 고청(告請)하거나 도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만일 도교의 신이 하늘 위에 있어서 여러 성인들이 존숭하는 분이어서 장수하는 것과 단명하는 것과 길(吉)과 흉(凶)을 그들의 결단에 말미암는다면 주공이 제사를 행할 적에 감히 먼저 하지 않았겠습니까?『상서』의 「금등편(金縢篇)」에 ‘무왕이 병이 위독해지자 주공이 3단(壇)을 세우고 태왕(太王)과 왕계(王季)와 문왕(文王)을 인하여 자기의 목숨으로 대신할 것을 하늘에 청할 적에 말하기를 단(旦)은 재주와 기예가 많아서 능히 귀신을 섬긴다고 말하였고, 무왕은 귀신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무왕의 목숨을 구하지 아니하면 천보명(天寶命)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다. 주공이 돌아와서 책(冊)을 금등(金縢)의 궤짝에 넣었더니 다음날 무왕의 병이 나았다.’고 하였다. 만일 귀신을 반드시 높여서 사람의 목숨을 주관하는 것이라면 주공이 어찌 감히 먼저 청하지 않았겠는가? 자세하게 미루어 심문하여 보니 헛되고 그릇됨을 가히 알겠다. 그러니 만일 있었다고 말하면 어찌 서(書)에 싣지 않았겠습니까?
공자(孔子)는 하늘에 죄를 얻는다 하였고 도교에 죄를 얻는다고는 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오천문해절중경(五千文解節中經)』의 서에 ‘윤희(尹喜)로 하여금 벽곡(辟穀)을 하여 쌀을 쪼개 죽을 만들어서 3일에 한 번씩 먹으며 최상의 금전 9천 닙과 흰 말[白馬]의 피를 쓰게 한다’ 하였는데, 군자는 ‘노자가 이미 자비하고 어질면 응당 말을 죽여서 맹세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교에서 욕심 없음을 일컬으면서 어찌하여 금을 탐하여 경을 설하는가? 그 첫째에서는 니원(泥洹)의 부해(府解)니, 도를 도라 이르고 이름을 이름이라 이르며, 이름이 없음은 만물의 시초요, 이름이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라 이르며, 욕심이 있으면 요(徼)하고 욕심이 없으면 묘하다. 한가지로 나와서 다른 것을 여러 묘함의 깊은 근원이라 함이여, 그 깊음이 만물의 종(宗)과 같다 하였고, 그 여섯째에서는 사람의 부해며 곡신(谷神)과 현빈(玄牝)은 하늘과 땅의 근원이어서 면면(綿綿)하기 있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도라 한 것은 니원이니 임금을 말합니다. 이름이라 한 것은 폐[脾]를 말함이요, 어미라 한 것은 단전(丹田)을 말한 것입니다. 니원이라 함은 하늘의 덕이니, 그 신이 다스리는 곳은 사람의 머리 가운데 있으며 해마다 다섯 번씩 아래로 내려와 단전에 이른다 하였습니다.
노자가 윤(尹)에게 ‘폐라 함은 중황(中黃)의 하나이다. 누런 기운이 배회하면서 중궁(中宮)을 다스린다. 황신(黃神)의 길이는 일척(一尺)이다. 해를 이고 달을 밟으니 이름을 금등(金縢)의 주인이라 한다. 항상 감로(甘露)를 마시고 거허(駏驉)의 포(脯)를 먹는다. 그의 신은 태백(太白)이고 해와 달을 주관한다. 5광(光)이 이를 덮고 태일(太一)이 이를 봉하며 청룡(靑龍)이 이를 짊어지고 주작(朱雀)이 이에 머문다. 그 가운데 신(神) 하나가 있으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단전이라 함은 현빈(玄牝)입니다. 허리에 붙어 있고 하원(下元)을 다스립니다. 그 가운데 신의 기운이 있으니 작은 동자(童子)라 이릅니다. 한 번씩 내려와서 단전에 이르고 코에 물을 대고 올라가서 니원에 들어갑니다. 그의 묘함을 허무라고 이르고 그의 요(徼)함을 단전이라고 이릅니다. 다른 이름이라 함은 이른바 여러 정(精)을 말하는데 이름이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정(精)이요, 둘째는 요(溺)요, 셋째는 한(汗)이요, 넷째는 혈(血)이요, 다섯째는 체(涕)요, 여섯째는 타(唾)이다. 그러기에 다른 이름이라 하는 것입니다.
현(玄)하고 또 현하다 함은 좌우의 눈을 말함이요, 여러 묘함의 문이라 함은 사람이 죽으면 기운이 없어지고 기운이 입에서 끊어지면 도가 깊이 쓰이는 자니, 깊다 함은 하나를 말함입니다. 도가 한 몸에 항상 깊이 행하여 차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못[淵]이라 함은 입을 이름이니, 입에 화지(華池)가 있어서 빨고 침 뱉으며 삼키는 것이니, 진액[津約]이 입 속에 차서 한 번 행함에 1백20부(府)를 침윤(浸潤)하니, 입에 찰 수 없는 것이 못의 샘과 같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종(宗)과 같다 함은 이른바 입으로 마시고 먹는 모든 신(神)이 입인 것입니다. 곡신(谷神)이라 함은 또한 입을 이름이니, 신이 입에 들어가면 사람이 사는 것입니다.
현빈(玄牝)이라 함은 코와 입을 이름입니다. 하늘과 땅의 뿌리라 함은 입과 코가 문이 되어서 신의 기운이 그 가운데서 나가고 들어가고 하며 뿌리를 생양(生養)하는 것입니다.
코는 말하지 않지마는 그 기운이 면면(綿綿)히 이어져서 하늘의 창이 되어 쓰면서도 부지런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릇 81장(章)이나 되지만 총히 3원(元)의 갑자(甲子)로 제일이 되어서 밝히는 것의 취지가 대략 『황정(黃庭)』과 더불어 합계(合契)하는 것이어서 다 기운을 먹고 몸을 기르며 행방(行房)할 적에 정기를 모으는 비결이니, 세속에서 중하게 여기는 것이요, 도교에서 따라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궤설(詭說)로써 하고 참으로 행하는 것은 아니니 이로써 신선되기를 구하는 것은 크게 하수(河水)와 한수(漢水)와 같습니다. 어찌 좋아하고 욕망함이 있어 거꾸로 오래 삶을 얻겠습니까? 설사 해를 늘여서 산다 하여도 마침내 죄의 근본이 될 것입니다.『황정(黃庭)』에 ‘위로는 황정(黃庭)이 있고 아래로는 개원(開元)이 있으며, 앞에는 유관(幽關)이 있고 뒤에는 명문(命門)이 있으며, 여외(慮外)를 허흡(噓吸)하고 단전(丹田)에 출입하니 자세히 행하면 오래 살 수 있다. 황정 중의 사람은 붉은 옷을 입고 문을 닫으며 암소가 호위하여 두 삽작을 닫아서 열고 닫는 높음이 외외(巍巍)하고 단전의 가운데 정기가 미미(微微)하다. 옥지(玉池)의 맑은 물이 올라와 살찜을 내고 영근(靈根)이 견고해서 뜻이 쇄하지 아니한다. 중지(中池)에 선비가 있어 붉은 옷을 입고 횡격막 아래의 세 촌(寸)은 신이 사는 곳이다. 중간과 밖을 서로 막아 거듭 닫으니 현옹(玄癰)의 기관은 정부(精符)를 받으오. 급고하게 자정(子精)을 써 스스로 가지며 집 가운데 선비가 있어 항상 낙(絡)을 입으니 그대가 이를 보면 병들지 않네. 방촌(方寸)의 가운데 삼가 덮어 간직하니 정신이 돌아오면 늙어도 다시 씩씩하지. 이치로 하여금 길이 한 자되게 그 위에 두면 그대가 이를 지켜 탈이 없으리. 여문(慮門)에 호흡하여 그로써 스스로 갚으면 붉은 신의 아들이 중지(中池)에 서지. 그 아래 긴 성의 현곡(玄谷)의 고을에는 오래 살려면 요는 합방(合房)한 때 급하지. 항상 옥방(玉房)에 있어 보고 밝음을 가져서 때로 태창(太倉)을 생각하면 굶주리고 목마르지 않지. 그대의 정로(精路)를 닫으면 오래 살리니 오행(五行)이 가지런하지 아니하나 근절(根節)은 한가지지. 삼(三)과 오(五)가 기를 합하면 요는 한 뿌리니, 구슬을 안고 옥을 품어 자손과 집안이 화합하지. 신선 사람과 도사가 신이 있음이 아니라 정기를 쌓은 소치(所致)로 오로지 화인(和仁)하네. 욕심과 뜻을 서로 얻어 명문(命門)을 닫고 항상 능히 행하면 오래 살게 되지..
진사왕(陳思王)의 『변도론(辯道論)』에 ‘대저 신선의 글과 도가의 말을 곧 전설(傳說)이라 이른다. 위로는 진미수(辰尾宿)와 세성강(歲星降)이 되고, 아래로는 동방삭(東方朔)과 회남왕(淮南王)이 된다.
안(安)3)은 회남(淮南)에서 목베이는 형을 받았는데 ≺도를 얻어 가볍게 들었다≻ 하고, 구익(鉤弋)4)은 운양(雲陽)에서 죽었는데 ≺시체가 가서 상여가 비었다≻’ 하니 그들의 허망함이 심합니다.
중흥(中興)에 논을 잘하는 선비로 환군산(桓君山)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저술이 많았는데 유자준(劉子駿)과 잘 지냈습니다. 일찍이 유자준에게 ‘사람이 능히 기욕(嗜欲)을 억제하고 귀와 눈을 닫고 지내면 가히 쇠하여 마르지 않겠소’ 하였는데, 그 때 뜰 아래에 늙은 느릅나무 하나가 있었습니다. 환군산이 이를 가리키며 ‘이 나무는 정욕(情欲)을 가히 참을 것이 없고 귀와 눈을 가히 닫을 것이 없소. 그런데도 마르고 썩었소’ 하니, 유자준이 ‘쇠하여 마르지 않는다고 하면 말이 안 되오. 그러나 환군산 당신이 느릅나무를 끌어 비유한 것은 옳지 못하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내가 전에 왕망(王莽)의 전악(典樂) 대부가 되었었소. 『악기(樂記)』에 ‘문제(文帝)가 위나라 문후(文候)의 악인(樂人) 두공(竇公)을 얻었으니 그 때 두공의 나이 1백80세인데 두 눈이 멀었다. 문제가 기이하게 여겨 ≺무엇을 행하였소?≻ 하니, 두공이 ≺신의 나이 13세에 실명(失明)하자 신의 부모들이 아무 일도 못할 것을 애처롭게 여겨 신에게 거문고 타는 것을 가르쳤습니다만 신이 도인(導引)하지 못하여 무슨 힘으로 장수를 하는지 알 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환군산이 의논하기를 ≺젊어서 눈이 멀어 안으로 보는 것이 전일(專一)하게 하였기에 정기가 밖을 보지 아니한 도움 때문이오≻’ 하였습니다. 이는 먼저는 유자준이 안으로 보는 것의 무익(無益)함을 논란한 것이요, 물러가서는 두공이 문득 밖으로 보지 아니함으로써 증명된 것이니, 나는 어느 것이 정론(定論)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환군산이 또 ‘방사(方士)에 동중군(董仲君)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죄를 얻어 감옥에 메었을 적에 거짓 죽은 체하기 두어 날에 눈이 빠지고 벌레가 났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살아 난 뒤에 마침내 죽었소’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산 자가 반드시 죽는 것은 군자들이 달관하는 것이니 무엇을 깨우치겠습니까? 대저 지극한 신(神)은 하늘과 땅에 지나는 것이 없지만 꿈틀거리는 벌레가 여름에 죽고 번개와 우레가 겨울에 발하지는 못하여서 때가 변하면 물건들이 움직이고 기운을 옮기면 일이 응하는 것이니, 저 동중군이 그의 기운을 감추고 그의 몸을 시체로 하고 그의 살을 썩히고 그의 벌레를 나게 하는 것이 너무나 괴상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있는 방사(方士)들을 우리 왕이 다 불러 이르게 하였으니 감릉(甘陵)에는 감시(甘始)라는 분이 있었고, 여강(廬江)에는 좌자(左慈)라는 분이 있었으며, 양성(陽城)에는 극검(郄儉)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감시는 기를 행하고 도인(導引)하였으며, 좌자는 방중(房中)의 기술을 깨달았고, 극검은 벽곡(辟穀)을 잘하였기에 다 3백 세는 산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위나라에 모이게 한 까닭은 이 사람들의 무리가 간사함과 거짓으로 무리를 속이고 요사한 짓을 하여 백성들을 미혹하게 할까 두려웠기에 이렇게 모이게 하여서 금지시킨 것입니다.
감시라는 자는 늙었으면서도 젊은 얼굴이어서 여러 술사(術士)들이 다 함께 귀의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감시는 번거로운 것을 사절하고 진실함이 적어져 자못 괴상한 말이 있었으니, 만일 그가 진(秦) 시황이나 한(漢) 무제를 만났더라면 다시 서시(徐市)와 난 대부(欒大夫)의 무리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걸(桀)과 주(紂)는 세대는 다르지만 다 악한 사람이었으니, 간사한 사람은 시대는 다르지만 다 같이 거짓을 행한 것이 이와 같습니까?
또 세상에는 허연(虛然)하게 신선이 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신선이라는 분은 원숭이의 무리들을 당파(黨派)로 하여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도를 얻으면 변화하여 신선이 된다 하였습니다.
대저 꿩은 바다에 들어가서 비둘기가 되고 제비는 바다에 들어가서 조개가 되지만 그들이 배회(徘徊)함을 당하여서는 날개를 못에 드리운다 하였으니, 그것은 날개가 있었음을 스스로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스스로 던져서 신으로 화하고 몸이 변한다 하니 이에 다시 자라들과 무리가 되며 어찌 다시 스스로 임박(林薄)에 날개치고 원옥(垣屋)에 집을 짓는 즐거움을 알겠습니까?
그런데도 돌아보아 필부들을 속인 것이 되었으니 허망한 말을 받아들이고 현혹(眩惑)의 말을 믿어서 예를 낮추어 불신(弗臣)이라 부르고 재산을 기울이어 허구(虛求)한 데 이바지하여서 왕의 작위를 흩어 주어서 영광스럽게 하고 한관(閑館)을 맑게 하여 살게 하여도 해를 지나고 해를 거듭하여도 끝내 한가지의 징험(徵驗)도 없어서 혹은 사구(沙丘)에서 죽고 혹은 오저(五杵)에서 죽는 등 때를 임하여 비록 다시 그의 몸을 목 베이고 그의 가족을 멸망시켜서 분연(紛然)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그런데 수명의 길고 짧음과 골체(骨體)의 강하고 용렬함은 각각 사람에게 달려있어서 잘 기르는 자는 수명대로 마치고, 시끄럽고 요란한 자는 수명의 반을 살고, 헛되이 쓰는 자는 요절한다 함이 그를 이름이니 그대가 자세하게 살펴야 하오.”
그 유생(儒生)이 황연(怳然)하게 깨달아서 대답할 바를 모르고 오래 있다가 말하였다.
“어찌 이와 같습니까? 어찌 이와 같습니까? 내가 들으니 『도덕경』의 두 편은 역대의 임금들이 종앙(宗仰)하였으며 특히 한나라 문제와 위나라 무제는 친히 스스로 닦아 행하였다 합니다.
『통현경(洞玄經)』에 ‘오천의 글자는 도덕의 조종(祖宗)이어서 참 가운데의 참이다. 1만 번을 외우면 몸이 날아간다’고 합니다.
선학자(仙學者)들이 의논하기를 ‘이로(李老)5)의 무위(無爲)의 바람을 펴면 백성들이 스스로 교화되고, 공자[孔丘]의 사랑하고 공경하는 도를 행하면 천하가 효자(孝慈)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대는 학문이 우수하고 견해가 원대하며 말이 흐르는 물과 같이 유창하니 간청합니다. 들은 것을 기술하여서 감히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은 것과 같게 해 주십시오.”
통인이 말하였다.
“학문은 옛 것을 스승으로 삼지 아니하면 세상에 길이 할 수 없다 하였으니 선대의 어진이와 선비들이 누군들 스승으로 인하지 않았겠습니까?
내가 숭상하는 사람을 세상에서는 총지(總持)의 보살[開士]이라 합니다. 현재 다섯 가지의 탁한 세상에 나서 이에 네 가지 의지를 이었으니, 비록 섭복(鍱腹)의 기이한 재주가 있는 이라도 들으면 문득 혼을 잃고 뿔을 꺾어서 웅변(雄辯)하는 이라도 보면 곧 입술을 다물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다섯 대의 수레에 종합하였으며 불교에서는 여덟 가지 장(藏)에 꾸려서 작작(綽綽)하게 여유가 있고 글의 내용과 수식이 서로 알맞게 갖추어져 볼 만합니다. 그래서 뜻이 서로 맞는 화려하게 수식한 말[蘭言]은 하늘에서 받았고 기민한 정신은 자연으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높은 이름은 상경(上京)에서 발하고 아담한 격조(格調)는 하국(下國)에서 유행하였습니다. 등을 전함은 뜻에 있고 대들보와 기둥은 마음에 있소. 금(金)에 붙이는 업(業)이 이루어지고 법을 보호하는 공이 멀리 전파되기에 아름다운 소리가 만우(萬宇)에 떨쳤고 옥과 같은 여유는 6유(幽)에 뻗쳤습니다.
그러므로 노씨(老氏)의 종원(宗源)을 두루 자세히 연구하여서 그대를 위하여 스승이 되어 의논하겠습니다.”
이에 함께 기원(祇園)에 나가서 보살에게 정례(頂禮)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품은 것을 모두 진술하였다. 보살이 청하지 않은 마음을 운반하고 걸림이 없는 말을 놓아서 돌아보며 말하였다.
“찾아보니 태고(太古) 때는 무위(無爲)여서 그들의 백성이 소박하여 인의(仁義)를 숭상하지 아니하고 위엄과 용모를 숭상하지 않았으며, 의복은 6장(章)을 쓰지 않았으니, 음식인들 어찌 다섯 가지의 맛을 조절하였겠는가?
그런데 세상의 운수가 변혁으로 옮겨 가고 시절이 흘러 움직임으로부터 순수한 근원이 한 번 변함에 시끄러운 물결이 사방에서 일어났다. 이미 서술하는 것을 결승(結繩)6)에서 잃었고 인하여 세상의 풍속을 서계(書契:나무에 새기던 문자)로써 비추었으며, 『팔삭(八索:古書의 이름)』이 이를 반연하여 지어지고 『구구(九丘)』7)가 이로부터 일어났다.
헌원(軒轅)씨가 정치를 하면서부터 순수한 풍속이 문득 숨고 자못 성색을 다투게 되었으니 겸하여 사냥함을 좋아했기 때문에, 미쳐서 드디어 은자 용성(容成)을 감동하게 하여서 오천문(五千文)을 짓게 하였다. 그것은 도덕의 순수함을 밝히고 무위의 다스림을 서술하여서 근원에 돌아오게 하고 순박한 데 돌아오게 하며 하나를 안고 자(雌)를 지키게 하려 함이었다.
그러기에 말하기를 ‘다섯 가지의 색깔이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멀게 하고 다섯 가지의 음성이 사람으로 하여금 귀를 멀게 하며 다섯 가지의 맛이 사람으로 하여금 입을 어기게 하고 사냥이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미치게 한다’ 하였다.
왜냐하면 만 승(乘)의 임금이 몸으로써 천하를 가볍게 보니 가볍게 여기면 신하를 잃고 조급하게 날뛰면 임금의 도리를 잃기 때문이다. 잘 가는 자는 수레바퀴의 자취가 없고 말을 잘 하는 자는 하자(瑕疵)가 없고 계획을 잘 하는 자는 책략을 쓰지 않고 잘 닫음은 자물쇠가 없고 잘 맺음은 노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심한 것을 버리고 사치한 것을 버림이 태(泰)라고 한다.심하다 함은 소리와 색에 탐음(貪淫)하는 것이다. 사치하다 함은 복식과 음식을 말하는 것이고 태라 함은 궁실과 대사(臺榭)를 말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버리고 중화(中和)에 처해서 무위를 행하면 천하가 스스로 교화될 것이다. 결과가 있어도 자랑하지 말며 결과가 있어도 뽐내지 말며 결과가 있어도 교만하지 말며 결과가 있어도 강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의 까닭을 상고하여 보면 다만 물정(物情)을 금지하여 억누른 것이니, 가까이는 세속의 가르침은 되지만 번뇌의 근본과 죽음의 뿌리는 끊지 못하였다.
찾아보니 황제(皇帝)의 때에는 의상을 드리우고 궁실을 경영하고 소리를 숭상하고 색을 숭상하며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았으며 임금이 교만하고 사치하며 아래의 백성들이 노역(勞役)하였으니, 용성(容成)이 때를 인하여 이러한 요점을 기술한 것이다.
비록 공동산(崆峒山)에서 도를 물었다고 하나 어찌 짚신[躧]을 벗어 버리듯 하였겠는가? 정호(鼎湖)에서 가볍게 들려졌는데도 도리어 교산에서 장사지냈으며, 조용히 처하여서 초연(超然)하였다 함에 이르러선 아직 그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그 유생이 말하였다.
“대저 『오천문(五千文)』의 글은 도덕의 심오한 데를 더듬어서 옛 것을 순종하여 순박한데 돌아가는 태화(太和)를 이룸이니 허하고 고요한 것을 귀하게 여겨 참을 지키고 지극한 말을 법도로 하여 근본을 높입니다. 그의 글은 넓고 넓어서 크고 원대하며 그의 가르침은 담박하여 부드럽고 약합니다. 이름과 이익을 버리고 홀대(忽待)하여 세상에서 숨고 성인의 지혜가 마음에 남아서 공을 이룹니다.
자기 몸에 있지 아니하여 만물의 그윽함을 연구하고 뜻이 성인의 풍화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반고(班固)와 양웅(楊雄)은 자장(子長)의 여섯 가지의 경보다 먼저 하여서 유교의 우두머리에 관(冠)하였으며 숙피(叔皮)와 군산(君山)은 말이 간략하여 지키기 쉬우면서도 쓰임은 유교의 술수보다 더하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말할 기회를 알고 도의 미묘함을 알았다 하겠으며 가히 1백 임금이 간행하지 못하였던 경계라 하겠습니다. 그런데도 보살께서는 억눌러서 세속의 교훈이라 하여 세속의 전적과 같이 취급하여 되겠습니까?”
보살이 말하였다.
“지혜가 큰 자는 벼랑 끝에서도 한가로이 거닐고 그릇이 적은 자는 뜬 마음에서도 쑥같이 날아간다 하였다. 내가 들으니 가히 할 만한 것을 가히 할 만한 세상에서 하면 천하가 함께 하니 이를 가히 할 일이라 하겠다.
이제 그대에게 가히 할 것과 가히 하지 않을 것을 밝혀 보겠다. 무릇 다섯 가지의 색에 눈이 멀게 되는 것은 이른바 탐음(貪淫)하여 색을 좋아함으로써 정기를 손상하여 눈밝음을 잃은 것이니, 이는 어찌 유마 거사가 말한 보는 색이 눈먼 것과 같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다섯 가지의 소리가 귀머거리가 되게 한다 함은 이른바 음란한 소리를 들으면 기운과 마음의 조화를 손상함이니 능히 소리 없는 음악은 듣지 못할 것이니, 어찌 유마 거사가 말한 듣는 것의 소리가 메아리와 같음이 아니겠는가? 다섯 가지의 맛이 어긋남을 이룬다 함은 이른바 사람이 다섯 가지의 맛을 즐기면 혀가 손해되어 싫어함이 난다 하였으니, 이는 어찌 유마 거사가 말한 먹는 것의 맛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얻기 어려운 재화(財貨)를 귀하지 않게 여기는 것은 도적을 그치게 함이니, 이는 어찌 수(受)가 떳떳함이 없음을 관함이 아니겠는가? 가히 욕심을 쉬어 스스로 고요함을 보지 못하니, 이는 어찌 고요한 것이 아니겠으며, 어찌 몸의 부정(不淨)을 관함이 아니겠는가?
번뇌를 버리어 마음이 비게 하고 정기와 피를 사랑하여 뼈를 강하게 하면 곧 이는 마음에 가히 비움이 있는 것이요, 뼈에 가히 강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운이 흩어지고 형체가 마른 것은 마음을 비움이 아니며 신(神)이 가고 체가 썩는 것은 뼈가 강한 것이 아니다. 그의 예봉(銳鋒)을 꺾는 것은 생각을 내보냄이요, 그의 분쟁을 푸는 것은 싸우려 함이 아니어서 다만 그의 총명을 억눌러서 그의 분쟁을 그치게 하려는 것이니, 맑고 검소하게 스스로 지켜서 물건과 더불어 혐오당하지 아니함은 대개 선비로서의 뜻이지 달통한 사람의 큰 도량(度量)은 아닐 것이며, 그의 빛을 고루어서 사람을 어지럽히지 아니하고 그와 티끌을 같이 하여 스스로를 구별하지 아니함은 바로 이것이 물결을 드날리고 진흙을 파서 근심을 피하려는 것이니, 이는 능히 이익(利益)과 동사(同事)로써 중생을 교화함은 아니어서 이는 곧 유위(有爲)이고 사(事)는 유사(有事)여서 무위(無爲)와 무사(無事)는 아닌 것이다.
몸으로써 어울리고 물건들이 스스로 어울림을 알지 못하면 곧 어울림이 능히 어울리지 못함임을 알겠다.
형체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분별의 경계에서 바쁜 것은 예를 가히 알만 하겠다.”
그 유생이 말하였다.
“『안광록(顔光祿)』에 ‘도라 함은 선법(仙法)에서 흘러나왔고 부처님이라 함은 근본이 신교(神敎)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도라 함은 반드시 깊고 광활한 데 나가서 비령(飛靈)과 정단(精丹)과 석립(石粒)과 지정(芝精)을 벗합니다. 그러기에 회춘하여 늙음을 물리쳐서 기력을 늘립니다.
그런데 부처님이라 함은 반드시 부모와 처자를 사절하고 몸과 성품을 한가롭게 하며 정각(淨覺)을 스승으로 삼고 인연과 정명(正命)을 믿어서 하나의 무생(無生)으로 돌아와서 극히 성업(聖業)을 이룹니다. 지혜가 큰 밝음보다 멀고 뜻이 항하사(恒河沙)의 겁에 미치니 비록 길은 다르지만 한 가지로 돌아옵니다. 그러니 또한 무엇이 다르기에 혼자 가려 하겠습니까? 전번에 그들의 다름을 들었습니다만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 문을 보여주기를 청합니다. 이것은 한 가지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보살이 깨우쳐서 말하였다.
“안씨(顔氏)는 한 가지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하고 있다. 대저 도교의 체는 무명(無名)이고 무위(無爲)여서 하늘과 땅의 시초이고, 건(乾)과 곤(坤)은 유질(有質)이고 유위(有爲)여서 만물의 어머니였다. 그렇다면 도교는 시초에 나오지 아니한 것이어서 물건이 없다가 이제 있는 데 의뢰하는 것이니, 이것은 문득 본래 없던 것이 이제 있었고 이미 있었던 것이 도로 없어지는 것이니, 그렇다면 있고 없는 사이에 얽매이고 시초와 어머니[母]의 안에 생성된다 하겠다. 간청하건대, 내가 이를 말하겠다. 진제(眞諦)이기에 없다고 하니 무위는 하늘과 땅의 시초요, 세제(世諦)이기 때문에 있다고 하니 유위는 만물의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능히 생하기 때문에 세제가 되고 시는 근본이 되기 때문에 진제가 되는 것이다.
세제는 유라고 말하니 무가 아니고 유이며, 진제는 무라고 말하니 유가 아니어서 무인 것이오. 무가 아니면서 유이기에 유가 아니면서 유이고, 유가 아니면서 무이기에 무가 아니면서 무인 것이니, 무가 아니면서 유이기에 항상하다는 견해[常見]가 스스로 없어지고 유가 아닌 무이기에 단멸한다는 견해[斷見]가 문득 없어지는 것이다. 유가 아니면서 유일 적에 유도 아니고 유가 아님도 아니며, 무가 아니면서 무이기에 무도 아니고 무가 아님도 아니다.
그것이 유라고 말하는 자도 있고 유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미 유가 아니라 말하며 유가 아니라고 이르는 것이 아니니, 이는 곧 집착하는 사람은 잃고 무엇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패함이 있다.
그대가 다른 것이 다름이 됨을 알았지만 다름이 다른 까닭은 알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같음과 다름의 달라지는 까닭을 알겠으며, 다르고 같음의 달라짐을 알지 못하거니 어떻게 다름과 달라짐의 다른 까닭을 알겠으며, 다르고 다름의 달라지는 까닭을 알지 못하거니 어떻게 같고 같음의 달라짐을 알겠으며, 같고 같음의 달라지는 까닭을 알지 못하거니 어떻게 같지도 아니하고 다르지도 아니 한데서 달라짐을 알겠으며, 같지도 아니하고 다르지도 아니한 데서 달라지는 까닭을 알지 못하거니 어떻게 같지 아니함도 아니고 다르지 아니함도 아닌 데서 달라지는 까닭을 알겠으며, 같지 아니함도 아니고 다르지 아니함도 아닌 데서 달라지는 까닭을 알지 못하거니 어떻게 같지 아니함이 아니고 다르지 아니함이 아닌 데서 달라지는 까닭을 알겠으며, 같지 아니함의 아님이 아니고 다르지 아니함의 다름이 아닌 데서 다른 까닭을 알겠으며, 같지 아니함의 아니함이 아니고 다르지 아니함의 다름이 아닌 다름을 알지 못하거니 어떻게 다르고 같으며 같고 달라서 다름이 없으면서 다르지 아니함의 다른 까닭을 알겠는가?
그러기에 여래의 설법은 항상 2제를 의지하여 자비를 일으키어 중생을 구제하고 희사(喜捨)를 행하여 사람을 제도하여서 중생을 성취하겠다는 생각이 없으면서 중생을 성취하고 부처의 국토를 깨끗이 하겠다는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하면서 부처의 국토를 깨끗이 하는 것이다. 비록 짓는 것이 있어도 실제로는 하는 것이 없나니, 그대가 이를 자세히 하여서 스스로 그릇됨이 없게 하여라.”
그 유생이 물었다.
“처음에는 세 가지의 가르침을 나열하며 각기 그의 미덕(美德)을 말하더니 뒤에는 도교를 가져다가 유류(儒流)에 판단하여 들입니까? 태사공(太史公)의 바른 말을 버리고 반생(班生)의 바르지 못한 말을 따랐으니 군자는 당파(黨派)를 짓지 아니하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합니까?”
보살이 깨우쳐 말하였다.
“소인(小人)들은 친한 이를 당(黨)으로 하고 군자는 이치를 당으로 한다. 그러니 이치도 맞고 일에 따르면 또한 당을 짓는다 하여 어찌 푸른 하늘에 부끄럽겠는가? 내가 들으니 세간의 법은 글자는 있으나 뜻이 없고 출세간의 법은 글자도 있고 뜻도 있다 한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세간의 법은 거짓이어서 마치 노새의 젖과 같고, 출세간의 법은 진실하여서 마치 소젖과 같다 한다. 그런데 노새의 젖은 낙(酪)은 내지마는 소(酥)는 낼 수 없어서 설사 억지로 내더라도 도리어 오줌이 되니 그러한 까닭은 형세와 분(分)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소젖은 소락(酥酪)을 내고 나아가 제호(醍醐)까지 내어서 만들수록 점점 정밀하여져서 오직 향기롭고 오직 아름다워서 다섯 가지가 구족하고 여덟 가지의 맛이 달고 무르녹는다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을 인용하여 비유한 것이다. 『사기(史記)』를 상고하여 보니 먼저 황로(黃老)를 들고 뒤에 6경(經)을 들었으며 『한서(漢書)』에는 먼저 6경을 들고 뒤에 황로를 들었다. 그들의 견해는 다른 듯하지만 이치에 나가서는 다르지 아니하여 각기 애호(愛好)함을 따랐으니 말을 다한 의론이라 할 수 없다.
또 반고(班固)가 이르기를 ‘역(易)에는 예순네 가지의 괘(卦)가 있는데 도교는 겸괘(謙卦)만 들었다’ 하였으며 『예문지(藝文志)』에는 9류(流)를 판정하면서 도교는 한 유(流)에만 들어가 있었다.
공안국(孔安國)이 말하기를 ‘3황(皇)이 행한 것을 큰 도라고 이르고, 5제(帝)가 행한 것을 상도(常道)라고 하여서 따로 다시 도교가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받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이제 그대에게 권하나니 가히 그 억단(臆斷)을 따르지 말고 스스로 그의 진실됨을 구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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