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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478 법원주림(法苑珠林) 35권

by Kay/케이 2024.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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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35

 

 

법원주림 제35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30. 법복편(法服篇)[여기에는 6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공능부(功能部) 회명부(會名部)
제난부(濟難部) 감보부(感報部) 위손부(違損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가사는 복밭의 옷이라 하여 불탑(佛塔)과 같이 공경하고 니원승(泥洹僧)은 속에 입는 옷이라 하여 법의(法衣)처럼 존중한다. 옷을 소수(銷瘦)라고 하나니 그것은 번뇌를 녹이기 때문이고, 갑옷을 인욕(忍辱)이라 하나니 그것으로써 온갖 악마를 항복받기 때문이다. 이것을 또한 연꽃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더러운 진흙에 물들지 않기 때문이요, 또 당상(幢相)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삿된 무리에 기울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또 전문(田文)의 상(相)이라 말하기도 하니 보는 사람이 미움을 내지 않기 때문이요, 또 구룡(救龍)의 옷이라고도 하니 금시조(金翅鳥)에 먹히지 않기 때문이며, 또 항사(降邪)의 옷이라고도 하니 외도들에게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요, 또 부정(不正)의 색(色)이라고도 하니 속인의 탐함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가르침에는 안팎의 구별이 있고 사람에는 도인과 속인의 다름이 있다. 가정에 있으면 외교(外敎)에 의하여 선왕(先王)의 법복을 입고 선왕의 법언(法言)을 따르면서 위로는 부모를 공경하고 임금을 섬기는 예(禮)가 있고 아래로는 처자와 관영(官營)의 변화가 있으니, 이것은 공경과 효도의 공적으로 그 이치는 유교의 법에 맞는다. 집을 떠나면 내교(內敎)에 의해 모두가 부처님의 법복을 입고 모두가 부처님의 법행을 행하면서, 위로는 임금과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중한 예를 버리고통합뷰어
아래로는 처자와 관영의 좋은 일을 끊는다. 그리하여 예배와 송경의 선행으로 스스로 부모를 돕고 도를 행하는 복으로 나라 은혜의 중함을 갚는다. 이미 허락했으니 몸을 헐고 옷을 바꿈이 허물이 되지 않거늘 어찌 부모를 공경하고 임금을 섬기는 예로써 꾸짖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머리를 깎는 날에는 천마(天魔)가 듣고 멀리서 두려워하고, 옷을 물들이는 날에는 제석이 보고 멀리서 기뻐한다. 희녀(戱女)는 조금 입고도 무루(無漏)가 끝내 원만해지고, 취한 사람은 잠깐 머리를 깎고도 악한 인연을 곧 버린다. 용 새끼가 그를 힘입어 두려움을 쉬고 코끼리왕이 그를 보고 겁내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세 벌의 법의는 몸의 검소한 쓰임새를 충당하고 세 가지 괴색(壞色)은 내 애정을 항복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미 논밭과 같은지라 스스로 응공(應供)의 덕을 이루었고, 멀리 과거의 부처님과 같은지라 실로 화경(和敬)의 도를 따르며, 티끌 세상을 벗어나고 세속을 등졌으니 그 귀함이 이러한 것이다.

(2) 공능부(功能部)
『화엄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가사를 입은 사람은 3독(毒)을 버려야 한다.”
또 『대비경(大悲經)』에서 말하였다.
“다만 마음만의 사문으로서 사문의 행을 더럽히면서 자칭 사문이라고 하거나 외형만 비슷한 사문이라도 가사를 입게 하면 그는 미륵불(彌勒佛)이나 내지 누지불(樓至佛) 때에는 틀림없이 열반에 들게 될 것이다.”
또 『비화경(悲華經)』에서 말하였다.
“석가모니불은 과거에 보장불(寶藏佛) 처소에서 보리심(菩提心)을 내고 발원하였다.
‘내가 성불할 때에는 내 가사로 하여금 다섯 가지 공덕이 있게 하여지이다.
첫째, 내가 성불했을 때는 어떤 중생이 내 법 안에 들어와 출가하여 가사를 입으면 그가 혹 중한 계율을 범하거나 혹 사견(邪見)을 범하거나 혹 삼보를 업신여기고 헐면서 믿지 않고 온갖 중죄를 지은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라 하더라도 한 생각 동안통합뷰어
불ㆍ법ㆍ승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존중하면, 이런 중생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라도 반드시 기별(記莂)을 주어 3승(乘) 가운데서 퇴전(退轉)하지 않게 하여지이다.
둘째, 내가 성불했을 때에는 하늘ㆍ용ㆍ귀신ㆍ사람ㆍ비인(非人)으로서 이 가사를 입으면 그를 공경 공양하고 존중 찬탄할 것이요, 그 사람이 만약 이 가사를 조금이라도 보게 되면 3승 가운데서 퇴전하지 않게 하여지이다.
셋째, 어떤 중생이 배고프고 목마름에 핍박을 받거나 혹은 빈궁하거나 귀신이나 하천한 모든 사람들 나아가 아귀ㆍ축생에 이르기까지도 이 가사의 일부분 내지는 네 치만큼이라도 얻으면 그 사람은 음식이 충분하고 그 소원대로 빨리 성취하여지이다.
넷째, 만약 어떤 중생이 서로 거스르고 배반하여 도적이 될 생각을 가지고 계속해서 투쟁하며 혹은 천룡팔부(天龍八部)와 사람ㆍ비인들이 서로 싸울 때도 이 가사를 생각하면 그들은 곧 자비스런 마음ㆍ유연한 마음ㆍ적이 없다는 마음ㆍ적멸한 마음ㆍ조복된 선한 마음 등을 내어지이다.
다섯째, 어떤 사람이 만약 전쟁이나 송사하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이 가사를 조금이라도 가지고 이들 속에 가면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 가사를 공양 공경하고 존중함으로써 이 모든 사람들을 침해하거나 업신여기거나 놀리지 못하며 그는 항상 남보다 뛰어나 이 모든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여지이다.
만일 내 가사가 이런 다섯 가지 성스런 공덕을 성취하지 못하면 시방세계의 현재 모든 부처님을 속이는 것이 될 것이며 미래 세상에는 보리와 부처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중생이 계를 지니고 신심이 청정하며 스님이 복밭인 줄 알고 법의를 만들기 위해 한 과일 값어치를 주어 법의를 짓는 값으로 하며 마음으로 항상 사랑하고 따라 기뻐하면 목숨을 마친 뒤에는 임희천(林戱天)에 나서 자재로이 유희하며통합뷰어
어디로든지 마음대로 갈 것이며, 만일 인간에 나면 신덕(神德)이 자재할 것이다. 또 어떤 중생이 마음이 깨끗하고 신심이 있어 비구승을 위해 가사 법복을 물들여 지으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채지천(彩地天)에 나서 여러 천녀들과 5욕(欲)을 즐기고 음식과 감로(甘露)로 취하거나 어지러움이 없으며,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나면 사람들의 사랑과 공경을 받을 것이다.”

(3) 회명부(會名部)
『대방등다라니경(大方等陀羅尼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도량으로 향해 나아가려면 마땅히 비구의 법을 따라 여러 깨끗한 행을 닦아야 한다. 즉 3의(衣)와 양지(楊枝)와 손 씻는 물과 음식 그릇과 앉을 방석 등을 갖추어야 한다. 행자는 이런 것을 갖추고 도량에 가되 비구의 법대로 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옷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출가의(出家衣)는 삼세 부처님의 법식대로 지은 것이다. 둘째, 속복(俗服)은 내 제자들로 하여금 도량에 나아갈 때 한 가지 옷을 입되, 항상 몸에 붙여 한 치 한 자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한다. 만일 이 옷을 떠나면 그는 곧 도를 장애하는 죄를 얻는다. 제3의란, 속복을 갖추고 장차 도량에 가려 할 때는 항상 그것을 입고 앉고 일어나는 것이다. 이상이 3의(衣)의 이름이니 너는 받들어 지녀야 하느니라.’”
또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하였다.
“【문】 부처님께서는 항상 머리를 깎습니까?
【답】 그렇지 않다. 부처님 머리는 항상 깎은 것과 같다.
이레를 지낸 뒤에 다시 물었다.
【문】 부처님께서 처음 도를 얻었을 때 가사를 입으셨습니까?
【답】 입지 않았다. 흰 옷으로 부처가 되는 사람은 반드시 32상(相)이 있어야 한다. 출가해서는 법의를 입고 위의를 갖추며 번뇌를 떨쳐버려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일체종지(一切種智)가 그 몸 안에 들어간다. 가사란 진(秦)나라 말로는 물들인 옷이란 뜻이니 결애(結愛) 등도 물듦이라 말한다. 이 옷을 입는 자는 짐승 속에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통합뷰어
그러므로 사냥꾼은 거짓으로 이 옷을 입고 짐승으로 하여금 멀리서 보게 하는 것이다.”
또 『사리불문경(舍利弗問經)』에서 말하였다.
“마하승기부(摩訶僧祈部)는 여러 경전을 부지런히 배워 그 참 뜻을 강설하고 본처(本處)에 있을 때는 누런 옷을 입는다. 담무굴다가부(曇無屈多迦部)는 이치를 통달하여 이익으로 열어 인도하고 그 뛰어남을 표출하여 나타내며 붉은 색 옷을 입어야 한다. 살바다부는 널리 통달하고 영민하여 법으로 이끌어 교화하며 꼭 검은 옷을 입어야 한다. 가섭유부(迦葉維部)는 정근하고 용맹하여 중생을 거두어 보호하며 마땅히 목란(木蘭)옷을 입어야 한다. 미사새부(彌沙塞部)는 선정으로 미묘함에 들어가 깊은 뜻을 나타내며 마땅히 푸른 옷을 입어야 한다.
그러므로 라순유(羅旬踰) 비구는 걸식[分衛]할 때에 음식을 얻지 못하다가 뒤에 이 다섯 가지의 율의(律衣)를 번갈아 입고는 곧 크게 음식을 얻어 먹었다. 왜냐 하면 이는 전생에 고집하는 성질로 질투가 많아 사문이 오는 것을 보고는 급히 문을 닫으면서 말하였다.
‘대인(大人)은 계시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남이 보시하는 것을 보면 기뻐하면서 생각을 거두고 발심하여 사문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의 몸으로 비록 출가할 수 있었으나 이처럼 궁핍하게 된 것이다. 내 법에 출가한 사람은 순전히 해어진 비단이나 죽은 사람의 옷을 입지만 라순유로 인해 갖가지 옷을 입게 된 것이다.”
또 『삼천위의(三千威儀)』에서 말하였다.
“네 가지 일이 있어 다른 나라에 가면 가사를 입지 않아도 죄가 없다. 첫째는 절[塔寺]이 없고, 둘째는 비구승이 없으며, 셋째는 도적이 있고, 넷째는 그 나라 임금이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4) 제난부(濟難部)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존자 달니가(達尼迦)는 관청의 재목을 가만히 훔쳐 썼다가 벌을 받아 풀려나지 못했다. 그 때 병사왕(甁沙王)은 삼보를 믿고 공경하여 달니가가 가사를 입은 것을 보고는, 그가 비록 관청의 재목을 훔쳤으나 죄를 묻지 않고 놓아 주었다.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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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니가는 전생에 어떤 업(業)을 지었기에 병사왕의 용서를 받았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어느 때 금시조(金翅鳥)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새는 몸이 매우 커서 두 날개를 펴면 그 거리가 16천여 리며, 항상 바다에 들어가 용을 잡아먹었다. 모든 용들의 평범한 법은 항상 금시조를 두려워했으므로 늘 가사를 구해 그 궁문 위에 두었다. 금시조는 그 가사를 보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곧 앞으로 나아가 용을 잡아먹지 않았다.
금시조가 용을 잡아먹을 때는 날개로 바닷물을 쳐서 용이 드러나면 그것을 잡아먹었다.
어느 때 어떤 용이 금시조에게 쫓겼다. 용은 곧 가사를 정수리 위에 얹고 언덕을 찾아 달아났다. 그 때 금시조는 바라문으로 변화해 용을 쫓아가면서 온갖 욕설로 꾸짖었다.
‘너는 왜 지금 그 가사를 버리지 않느냐?’
용은 죽을까 두려워 가사를 더욱 굳게 잡고 놓지 않았다.
그 때 바닷가에 어떤 선인(仙人)이 있었다. 용은 황급히 그 선인에게 몸을 던졌다. 금시조는 그 선인을 보자 감히 더 나아가지 못했다. 선인은 곧 나와 금시조를 위해 설법하여 금시조로 하여금 용에게 참회하게 한 뒤에 그들은 각각 거기서 떠났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의 그 선인은 바로 지금의 나요, 그 금시조는 저 병사왕이며 그 용은 지금의 달니가이다. 달니가는 옛날에 가사의 덕택으로 금시조에게 잡아먹히지 않았는데, 지금 또 나의 가사 덕택으로 왕의 화를 벗어났고 출가하여 도를 닦아서 아라한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사의 위력은 불가사의하니라.’”
또 『해용왕경(海龍王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어떤 용왕이 세존께 아뢰었다.
‘이 바다 속에는 무수한 종류의 용이 있는데, 네 종류의 금시조가 항상 이 용과 그 처자들을 잡아먹습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을 보호하여 늘 편히 지내게 해주소서.’
이에 세존께서는 자기가 입고 있던 검은 옷을 벗어 용왕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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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 옷을 가지고 가서 여러 용들에게 두루 나누어 주어라. 이 옷의 한 오라기라도 가지면 금시조왕은 감히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계율을 지니는 자는 반드시 소원을 이룰 것이다.’
그 때 여러 용들은 놀라면서 각기 생각했다.
‘이 부처님의 검은 옷은 아주 작고 적은데 어떻게 이 큰 바다 용들에게 두루 나누어 줄 수 있을까?’
그 때 부처님께서는 용들이 의심하는 것을 아시고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각각 여래의 검은 옷을 나누어 가지더라도 그 옷은 끝내 줄거나 다하지 않을 것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허공은 사람들의 욕망을 따라 저절로 생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때 용왕은 곧 부처님의 옷을 가져다가 무앙수 백천만 조각으로 쪼개어 각각 나누어 주었는데 필요에 따라 넓고 좁거나 크고 작게 저절로 나누어져 모두에게 주었으나 그 옷은 그대로여서 끝내 다할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존을 공경하는 것처럼 이 옷을 공경하고, 또 탑을 공경하는 것처럼 이 옷을 공경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래의 옷을 보는 자는 다 용의 몸을 벗고, 그리하여 현겁(賢劫) 동안에 모두 집착이 없어져 반니원(般泥洹)에 들 것이다.’
그 때 네 금시조왕은 각각 1천 권속들을 데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늘 우리들은 삼보께 귀의하여 이전의 죄를 참회하고 금계(禁戒)를 받들어 지녀, 오늘부터는 항상 무외(無畏)로써 일체의 용들에게 보시하고 정법을 옹호하여 멸진(滅盡)에 이르러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네 금시조왕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전생에 금인불(金仁佛) 때에 네 비구였는데 그 이름을 흔락(欣樂)ㆍ대흔락(大欣樂)ㆍ상승(上勝)ㆍ상우(上友)라 하였었다. 이 네 비구가 계법을 어기어 공양을 탐하고 몸과 입과 뜻을 단속하지 않아 온갖 악을 많이 지었다. 그러면서도 금인불께 공양한 것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고 이 축생에 떨어져 전후의 살생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신통을 나타내시어통합뷰어
그들로 하여금 전생 일을 다 알아 그 지은 죄와 복을 모두 생각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들은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감히 악은 짓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부처님께서 그들에게 설법하고 기별(記別)을 주셨다.
‘너희들은 미륵불의 제1회(會) 때에 모두 제도될 것이다.’”

(5) 감보부(感報部)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비라위성(迦毘羅衛城)에 구사(瞿沙)라는 한 장자가 있었다. 그 아내가 딸을 낳았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절묘하였다. 흰 모포에 몸을 싼 채로 태어났으므로 그 이름을 백정(白淨)이라고 했다. 몸이 점점 자라자 그녀가 입는 옷도 따라서 커지면서 곱고 깨끗하여 씻거나 물들일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모두 다투어 와서 청혼했다. 그녀는 부모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세속의 영화를 탐하지 않고 부디 출가하기를 원합니다.’
부모는 그녀를 못내 사랑하였으므로 그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 그녀는 부처님을 찾아가 도에 들어가기를 청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구나, 비구니여.’
그렇게 말하자 그녀의 머리카락은 저절로 떨어지고 몸에 입었던 흰 옷은 가사로 변화하여 그녀는 비구니가 되었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닦고 익혀서 아라한이 되었다. 아난은 이것을 보고 그 인연을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현겁(賢劫) 중에 가섭이라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여 모든 비구들을 데리고 촌락으로 다니면서 중생들을 교화하셨다. 그 때 어떤 여자가 부처님과 스님들을 보고 마음 속으로 매우 기뻐하여 모포 한 장을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하고 발원한 다음 거기서 떠나갔다. 이 공덕의 인연으로 그녀는 천상과 인간에서 항상 깨끗한 옷으로 몸을 싼 채로 태어났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느니라.’
비구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바라내국(波羅柰國)에 범마달(梵摩達)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 아내가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은 나면서부터 가사를 입고 있었으며통합뷰어
얼굴이 단정하고 뛰어나게 묘해 세상에 드문 존재였으므로 그로 인해 그 이름을 가시손타리(伽尸孫陀利)라고 했다. 나이가 들자 몸도 점점 장대해지고 옷도 그에 따라 커졌으며, 성품은 현명하고 착하며 자비하고 어질고 효성스럽고 순했다. 여러 시위(侍衛)를 데리고 성을 나가 유희하면서 점점 가다가 녹야원(鹿野苑)에 이르렀다. 거기서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보고 마음 속에 기쁨이 생겨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시니, 그녀의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고 다시 출가하기를 청했다.
‘잘 왔구나, 비구니여.’
그러자 그녀의 머리카락은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져 비구니가 되었다. 그녀는 부지런히 닦고 배워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고 하늘과 세간 사람들의 공경과 숭앙을 받았다. 그 때 비구들은 이 일을 보고 부처님께 그 인연을 물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 무량한 세상 어느 때에 가나모니(加那牟尼)라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비구를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교화하셨다. 그 때 어느 왕녀가 부처님을 보고 마음에 기쁨이 생겨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과 비구들을 청해 3개월 동안 4사(事)로 공양하고, 다시 좋은 옷 한 벌씩을 각각 보시했다. 이 공덕의 인연으로 천상과 인간에서 부귀 영화를 누리고, 태어날 때는 항상 가사가 몸을 따라 나왔다.’
부처님께서 이어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알고 싶은가? 그 때의 왕녀가 바로 지금의 저 손타리 비구니이라.’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봉행했다.”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바사닉왕(波斯匿王)의 부인은 아들을 낳았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절묘하여 세상에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가사를 입었고 나면서 바로 말을 잘 하여 그 아이는 부왕(父王)에게 물었다.
‘여래 세존님은 지금 계십니까? 그리고 대덕(大德) 가섭ㆍ사리불ㆍ대목건련도 지금 계십니까?’
이렇게 모두 있느냐고 두루 물었다.통합뷰어
부왕은 모두가 있다고 대답했다. 태자는 또 말하였다.
‘대왕님, 저를 위해 공양을 차리고 부처님과 비구들을 초청해 주십시오.’
왕은 곧 부처님을 초청했다. 부처님께서 궁중에 들어가 태자를 보고 물었다.
‘태자는 기억하십니까? 가섭불 때에 태자는 삼장(三藏) 비구였습니다.’
태자가 대답하였다.
‘실로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어머니 태 안에서는 편히 지내셨습니까?’
‘부처님의 은혜를 입어 생명을 보전하면서 날을 보냈습니다.’
그 때 왕의 부인은 태자가 부처님과 문답하는 것을 보고 못내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이 태자는 전생에 어떤 복을 심었기에 나자마자 곧바로 말을 하여 부처님과 문답할 수 있습니까? 세존께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을 위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전생에 지은 온갖 좋은 인연은
백 겁을 지내도 없어지지 않네.
그 좋은 업의 인연 때문에
지금 이와 같은 과보 얻었네.

이 현겁(賢劫)에 어떤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니 그 명호는 가섭(迦葉)이라 하였다. 그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교화하시다가 가시왕(迦翅王)의 나라에 이르렀다. 그 나라의 왕 태자 선생(善生)은 부처님을 보고 깊이 믿고 공경하여, 왕에게 돌아와 도에 들어가겠노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왕은 허락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오직 하나뿐인 내 아들이다. 너는 마땅히 왕위를 이어받아 백성들을 보살펴야 한다. 나는 네가 출가하여 도에 들어가는 것을 끝끝내 허락할 수 없다.’
태자는 이 말을 듣고 시름에 잠겨 음식을 먹지 않고 6일을 지냈다. 왕은 아들이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까 겁을 내어 태자와 서로 약속하였다.
‘네가 지금부터 3장(藏)의 경전을 다 독송하여 통달하면 너의 출가를 허락하겠다. 그런 연후에 나를 만나라.’
태자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곧 출가하여 3장을 외워 모두 통달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곧 비구(태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통합뷰어
내 창고의 재물을 모두 아끼지 않고 너에게 주어 마음대로 쓰게 하리라.’
이 왕자 비구는 이 말을 듣고는, 그 재물을 가져다가 온갖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가섭불과 2만 비구를 청해 공양했다. 그리고 여러 비구들에게 각각 3의(衣)와 6물(物)을 보시하였다.
그는 이 공덕의 인연으로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에서 항상 가사에 쌓인 채 태어났으며, 결국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사가 있고 출가하여 도를 얻게 된 것이니라.’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6) 위손부(違損部)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무량 아승기겁 전에 이 염부제에 어떤 대왕이 있었다. 그 국왕의 이름은 제비(提毘)였는데 8만 4천의 소국(小國)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 때 이 세상에 부처는 없었고 어떤 벽지불이 산림(山林)에서 복으로 중생을 제도하였는데 짐승들도 그를 따랐다.
그 때 견서(堅誓)라고 하는 사자가 있었는데 그 사자는 온몸이 금빛이요 과일과 풀만을 먹으면서 중생은 해치지 않았다. 어떤 사냥꾼이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고는 옷 안에 활과 화살을 차고 가서 그 사자를 보고 생각했다.
‘저것을 잡아 그 가죽을 왕께 바치면 넉넉히 이 가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사자가 잠든 것을 보고 그 사냥꾼은 독화살로 그 사자를 쏘았다. 사자는 놀라 깨어나 곧 달려가 그를 해치려 했다. 그러더니 그가 가사를 입은 것을 보고는 생각했다.
‘가사 입은 사람은 오래지 않아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해탈을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가사는 삼세 부처님의 표상(標相)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저 사람을 해친다면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삼세 성현을 대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자 해칠 마음이 사라졌다. 그러나 독화살이 몸에 들어갔으므로 그 목숨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사자는 곧 게송을 읊었다.

야라라 바사사 사바하
耶囉囉 婆奢沙 莎 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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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송을 외울 때 천지가 크게 진동하고 구름도 없는데 비가 내렸다. 모든 천신들이 이것을 보고 꽃을 내려 공양했다. 사자가 죽자 그는 그 가죽을 벗겨서 왕에게 바치고 상금을 요구했다. 왕은 그를 보고 생각하였다.
‘경전에 금색 짐승은 보살이라 했으니 이는 필시 보살일 것이다. 내가 지금 어떻게 저 사냥꾼에게 상을 줄 수 있겠는가. 만일 상을 준다면 난들 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왕이 곧 그에게 물었다.
‘사자가 죽을 때 어떤 상서로운 징조가 없었느냐?’
사냥꾼이 대답했다.
‘사자가 죽을 때 여덟 자(字)를 외웠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꽃이 내리고 땅이 진동하며 구름도 없는데 비가 내렸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곧 신하들을 불러 그 뜻을 풀이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도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
그 때 숲 속에 한 선인이 있었는데 그 선인의 이름을 사마(奢摩)라고 하였다. 그 선인(仙人)이 글자 뜻을 잘 해석했다. 왕은 그를 청해 오게 하여 해설해 달라고 했다. 그가 왕을 위해 해설해 주었다.
‘야라라라는 말은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것은 생사를 당해 빨리 해탈을 얻는다는 뜻이고, 바사사라는 말은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것은 다 삼세 성현의 모습으로서 열반에 가깝다는 뜻이며, 사바하라는 말은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사람은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선인이 해설을 마치자 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곧 8만 4천의 소왕(小王)들을 불러모아, 모두 함께 7보의 수레를 만들고 거기에 사자 가죽을 싣고는 향을 사르고 꽃을 흩으며 마음을 기울여 공양을 올렸다. 그리고 금으로 관(棺)을 만들고 사자 가죽을 거기 넣어 그것으로 탑을 세웠다. 그 때의 사람들은 이 선심으로 인해 목숨을 마친 뒤에 다 천상에 태어났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사자는 선심으로 가사 입은 사람을 대하였기 때문에 10억만 겁 동안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중생들에게 충분히 보시하여 복업을 널리 짓고 부처가 되었다.
그 때의 그 사자는 지금의 나이다. 그 때의 제비왕은 사자 가죽에 공양하였기 때문에통합뷰어
10만억 겁 동안 천상 인간에서 제일 존귀하고, 온갖 선의 근본을 닦은 지금의 저 미륵(彌勒)이다. 그 때의 그 선인은 지금의 사리불(舍利佛)이고 그 때의 그 사냥꾼은 지금의 저 제바달다(提婆達多)이다. 이런 이치가 있기 때문에 만일 어떤 중생이 악한 마음을 가지고 가사를 입은 사문을 대하면 그는 곧 악한 마음을 일으켜 삼세의 모든 부처와 성현을 대하나니 그 악한 마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무량한 죄를 받고, 또 만일 어떤 중생이 선심을 내어 가사를 입은 출가한 사람을 대하면 그는 무량한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 『대집월장경(大集月藏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 일체 중생을 위해 온갖 고행을 다 닦을 때 대비심(大悲心)을 일으켜 몸과 머리ㆍ눈ㆍ귀ㆍ코ㆍ혀 등을 보시해 그것이 각각 쌓여 비복라산(毘福羅山)과 같았고, 또 코끼리ㆍ말ㆍ나라ㆍ성(城)ㆍ처자 등을 버리되 3천 아승기겁을 지내면서 일체의 고뇌하는 중생과 또 정법을 비방하고 성현을 헐뜯는 부끄러움이 없는 악한 중생과 또 일체 깨끗한 불토에서 버림 받은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었다. 이와 같은 모든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발원하고 5탁(濁) 악세(惡世)에 있으면서 위없는 도를 이루었으니 그것은 3도(途)에서 고뇌하는 중생을 구제해 선도(善道) 및 열반의 즐거움에 편안히 있게 함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 내 법 안에서 나를 위해 출가하여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었으면, 비록 그가 계율을 받지 않았거나 받은 계율을 범하더라도, 만일 어떤 이가 이 사람을 호지하고 공양하면 큰 과보를 얻겠거늘, 하물며 계를 갖추어 지닌 사람을 공양함이겠는가.
만일 미래 세상의 국왕이나 대신 및 일을 판단하는 사람이 내 제자나 가사를 입은 사람을 욕하고 때리거나 혹은 몰아 부리거나 그의 재물과 살림 도구를 뺏으면,통합뷰어
이 사람은 삼세 모든 부처님의 진실한 보신(報身)을 파괴하는 것이요 일체 하늘과 사람의 눈을 뽑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숨기는 것이요 모든 하늘과 사람을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 때 교진녀(憍陳如)와 범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누가 부처님을 위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도 금계를 받지 않았거나 계를 받고도 그것을 범할 때, 만일 국왕과 대신 및 일을 판단하는 사람이 그를 욕하고 때리면 얼마만한 죄를 받습니까?’
부처님께서 범왕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를 위해 우선 간략히 설명하리라. 만일 누가 만억 부처님의 몸에서 피를 내었다면 그 죄가 많겠는가?’
범왕이 답하였다.
‘만일 누가 단 한 부처님의 몸에서 피를 내더라도 그 죄가 많아 한량없고 끝이 없겠거늘 하물며 만억 부처님의 몸에서 피를 낸 사람이겠습니까. 그 사람의 죄업으로 인한 과보는 끝내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범왕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나를 위해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금계를 받지 않았거나 받고도 그것을 범하는 이를 괴롭히거나 꾸짖거나 때리는 자가 있으면, 그 죄는 만억 부처님의 몸에서 피를 낸 죄보다 더 많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은 나를 위해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으니 비록 금계를 받지 않았거나 받고도 범하는 이라 하더라도, 이 사람은 오히려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위하여 열반의 도를 보였으며, 이 사람은 곧 삼보 가운데에서 공경하였고 믿음을 얻어 일체의 95도(道)보다 훌륭하며, 또 이 사람은 반드시 열반에 빨리 들어가 일체의 속인들보다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사람들은 다 공양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떤 국왕이, 출가한 사람이 큰 죄를 짓는 것을 볼 때는, 다만 법에 따라 나라에서 쫓아내거나 절 밖에 있게 할 것이요, 매를 때리거나 꾸짖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일체가 그의 죄와 상응하지 않아 만일 고의로 때리거나 꾸짖으면 이 사람은 해탈을 잃거나 모든 인간과 천상의통합뷰어
선한 길을 떠나, 반드시 아비지옥(阿鼻地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부처를 위하여 출가하여 계를 완전히 지닌 이를 때리는 것이겠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밖이 깨끗하고 안이 밝은 이는
똑같이 정토(淨土)의 자격이 있다.
계율에 결함이 없고
법복은 그 차례가 있다.

이미 밭무늬[田文]를 모방했는데
또한 용의 고통을 구해 준다.
그 위의는 볼 만하구나.
은혜가 법우(法雨)처럼 적신다.”
감응연(感應緣)[대략 다섯 가지 증험만을 인용하였다.]

『서역지(西域志)』에서 말한 부처 가사의 증험
위(魏)나라 명제(明帝) 때에 있던 화완포(火浣布) 가사의 증험
송(宋)나라 사문 석승묘(釋僧妙) 가사의 증험
당(唐)나라 사문 석혜광(釋慧光) 가사의 증험
당나라 사문 도선(道宣) 가사의 증험

① 『서역지(西域志)』에서 말한 부처 가사의 증험
『서역지(西域志)』에서 말하였다.
“사라쌍수(娑羅雙樹) 곁에 평상이 하나 있고 석가의 소상(塑像)이 그 위에 있는데 오른쪽으로 누워 있다. 그 몸의 길이는 2장 2척 4촌이요 금색 가사에 덮여 있다. 지금도 현존해 있는데 자주 신광(神光)을 뿜어낸다고 한다.
또 왕사성(王舍城) 동북쪽은 기사굴산(耆闍崛山)이다. 여기에는 부처님의 ‘가사돌[袈裟石]’이 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목욕을 하기 위해 여기에 옷을 벗어 두던 곳이다. 소리개가 이 가사를 물고 날아갔다가, 조금 뒤에 다시 땅에 떨어뜨려 그것이 이 돌로 변화한 것이다. 종횡으로 엇갈린 나뭇잎 같은 무늬가 지금도 분명하다. 그 남쪽에는 부처님께서 들에 나가셨다가 제자 난타(難陀)에게 명하여 가사를 짓던 곳인데, 이 모두에 자주 서광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상은 당나라 사신 왕현책(王玄策)이 전후 세 번 거기 가서 본 것들로서 하나뿐만이 아니다.”

② 위(魏)나라 명제(明帝) 때에 있던 화완포(火浣布) 가사의 증험
위(魏)나라 문제(文帝)는 남방에 있는 화완포(火浣布:불로 씻는 베)를 믿지 않았다. 문제가 말하였다.
통합뷰어
“불의 힘은 오히려 돌이나 쇠도 녹일 수 있는데 어찌 베를 태우지 못하겠는가.”
문제가 이미 죽고 그 태자 명제(明帝) 때에 이르러서는 서방(西方)의 어떤 나라에서 화완포로 지은 가사를 바쳤다. 명제도 처음에는 그 아버지의 말을 따라 그것을 믿지 않았는데, 불로 오랫동안 시험해 타지 않았으므로 비로소 그 징험이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전에 이미 많은 사서(史書)를 지었는데 거기에도 화완포를 믿지 못한다는 글이 있었으므로, 명제는 그것을 모두 사사로이 고쳤다.

③ 송(宋)나라 사문 석승묘(釋僧妙) 가사의 증험
송(宋)나라 사문 승묘(僧妙)는 상당(上黨) 사람이고 성은 풍(馮)씨이며, 강릉(江陵)의 상명촌(上明村)에 살았다. 승묘는 대명(大明) 초년에 영릉(零陵)에서 행걸(行乞)하다가 그 군(郡)의 경내에 있는 용화정사(龍華精舍)에 있으면서 장사를 하여 재물을 모아 쌀이 수천 섬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대명 8년(464)에 용화사에서 죽었다.
용화사는 불에 다 타버려 승묘는 임종 때에 그 재물을 그의 제자 법종(法宗)에게 맡기면서 강당과 승방을 짓게 했다. 법종이 강당을 지어 마치자 파타연(頗陀延)이 말하였다.
“미시(未時)에 승방을 지어라.”
태시(泰始) 3년(467) 정월에 법종이 병에 걸려 매우 위독했다. 그 때 도맹(道猛)이라는 비구가 전릉령(泉陵令)인 고양(高陽)과 허정혜(許靜慧)를 따라 그 고을에 있었는데, 그 고을은 곧 그 군 경내의 읍(邑)이었다. 그래서 도맹이 법종의 문병을 가서 절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문이 도화포(桃華布)의 중의와 흩으로 된 누런 소피(小被)를 입고 다니면서 또 꾸짖었다.
“내 소자(小子) 법종은 내 처분을 어기고 승방을 짓지 않고 재물만 다 써버렸다…….”
그러다가 도맹을 돌아보고는 놀라고 부끄러워하는 것 같더니, 머리를 싸매고 법종의 방으로 들어갔다.
도맹이 늘 이 절에 왕래했으나 일찍이 이 사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충돌하고 싶지 않아 먼저 법초(法超) 도인에게 가서 보고 들은 대로 다 이야기했다. 법초는 혹 도맹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 형상과 말소리를 따져 물었다. 도맹은 그것을 자세히 갖추어 이야기했다. 법초가 말하였다.
“그는 법종의 스승이다.”
그가 죽은 지 여러 해라통합뷰어
둘이서 같이 슬퍼했다. 그 날 저녁에 그 넋이 사람을 시켜 급히 법종을 불렀다. 법종이 가자 그가 몹시 나무라는 것이 마치 승방 때문에 말하는 것 같았고, 그 말소리와 기운이 생시와 다르지 않았다. 법종은 머리를 조아려 사죄한 뒤에 물었다.
“스님은 지금 어디 계시며 그 형편은 어떻습니까?”
승묘가 대답하였다.
“내가 난 곳은 조금 나은 편이다. 다만 조금 견책을 받아야 하나 2년 뒤에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조금 억울한 일이 있어서 관청에 호소하고자 하지만 가사가 없기 때문에 가지 못한다. 빨리 가사를 지어라.”
법종이 말하였다.
“가사는 지을 수 있지만 스님이 어떻게 그것을 받으시겠습니까?”
승묘가 대답하였다.
“너는 스님들을 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가사를 보시해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얻을 수 있다.”
법종이 그 말대로 스님을 초청하여 공양하고 가사를 보시했다. 그 때 도맹은 그 모임에 있다가 또 승묘가 문 밖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설법을 듣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공양을 마치자 도맹은 가사가 승묘의 몸에 덮인 것을 보고 곧 방에 들어가 승차(僧次)에 의해 앉으려고 했다. 승묘가 도맹에게 그 법랍(法臘)을 물었다. 도맹이 대답하였다.
“나는 그의 나이를 잊었습니다. 그것은 색용로(索勇虜)가 강으로 나오던 해 2월이었습니다.”
승묘가 말하였다.
“나와 동갑인데 내가 한 달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도맹이 아랫자리에 앉으려 했다. 도맹이 곧 한 자리를 비워 주었다. 승묘는 단정히 앉아 잠자코 설법을 듣고 있다가 모임을 마치자 곧 흩어졌다.
그 때 그 방에 모인 도속(道俗) 1백여 명 중에는 영릉태수(零陵太守)인 태산(泰山)의 양천(羊闡)도 그 법회에 참예해 있었다. 도맹이 승묘와 강론으로 문답하였으나 대중들은 다만 도맹의 말만 들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모두 이 영험을 알게 되었다. 또 사실인즉 도맹과 승묘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였는데 그 형색과 거동과 나이가 적은 것 등을 말하는 것이 모두 꼭 들어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법종이 처음에 병으로 고생하면서 거의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렀다. 승묘의 넋이 와서 말하였다.
“너의 병이 곧 나을 것이다.”
그 넋의 말이 붙은 것은 대개 어린아이였는데, 그 기운과 말소리를 듣는 사람은통합뷰어
그 다름을 분간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모두가 믿고 이상하게 여겼다.
처음에 양천은 불법을 전연 받들지 않았으나 이로 인해 크게 공경하는 마음이 생겼고 깨달아서 이어 복집(福集)을 세우고 그 해에 곧 이 절에 강(講)을 열어 재를 올리고 보시했다.

④ 당(唐)나라 사문 석혜광(釋慧光) 가사의 증험
대당(大唐) 정관(貞觀) 5년(631)에, 양주(梁州) 안양사(安養寺) 혜광(慧光) 법사 제자의 어머니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옷이 없었다. 그리하여 아들 방에 가서 헌 가사를 가지고 옷을 만들어 입고는 이웃 부인네들과 모여 담소(談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리가 뜨거워지더니 그것이 점점 허리까지 올라왔다. 조금 있다가 천둥이 울리고 벼락이 치자 이웃 부인들이 1백 리 밖에 내던져지니 두 귀에 흙이 들어가 까무라쳤다가 여러 날 만에 비로소 깨어났으나 그 어머니는 벼락을 맞고 불에 타 죽었다. 그 등에 “법의(法衣)를 사용하는 것이 법답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 아들은 그 시체를 거두어 관에 넣어 두었다. 그러자 또 벼락이 치더니 시체를 관 밖으로 꺼내 나무 밑에서 끝내 태워 버렸다. 이로써 ‘법의를 가지면 3귀(歸)의 용(龍)을 복되게 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근래에 어떤 스님이 깊은 바위 틈에서 잘 때 가사로 그 앞을 막았다가, 이상한 신(神)이 온 것을 감지하였는데 그 형상이 매우 무서웠다. 그 신은 팔을 뻗어 바위 안을 더듬어 그를 잡아먹으려 했다. 그러다가 가사에 닿을까 두려워해 감히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그 스님은 화를 면했다.[이상 두 가지 증험은 『당고승전(唐高僧傳)』에 나온다.]

⑤ 당나라 사문 도선(道宣) 가사의 증험
서명사(西明寺)의 도선(道宣) 율사는 건봉(乾封) 2년(667) 중춘 2월에 주지로 있었다. 그 감응(感應)의 인연은 앞의 제10권 처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때 사천왕(四天王)의 신하가 도선에게 아뢰었다.
“여래께서는 열반에 드실 때는 3월이 채 못되어서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명령하셨다.
‘너는 계단(戒壇)에 가서 종을 울려 사방의 보살 및 비구ㆍ천룡팔부(天龍八部) 등을 불러 기환(祈桓)에 모이게 하라.’
문수는 명령에 의해 그들을 다 불러모았다. 세존께서 문수 등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처음에 성(城)을 넘어 산에 들어가통합뷰어
도를 배울 때 값으로 말할 수 없는 보의(寶衣)를 주고 사슴 갖옷과 바꾸어 입었다. 수신(樹神)이 나타나 손에 승가리(僧伽梨)를 들고 내게 말하였다.
≺실달 태자님, 당신은 지금 수도하시는데 반드시 정각(正覺)을 얻을 것입니다. 과거 가섭부처께서 열반에 드실 때 이 승가리 대의(大衣)를 내게 맡기시면서, 이것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당신이 세상에 나오시기를 기다려 당신에게 전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내가 그 대의(大衣)를 받으려 하자 대지가 크게 진동했다. 수신은 내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위해 가사를 펴서 복전(福田)의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수신이 그 가사를 펼쳤는데 나는 거기서 복전의 모습을 보고 곧 금강삼매(金剛三昧)에 들었다. 그러자 대지는 또 진동하고 수신은 또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 아직 속인이니 이 가사를 입을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정수리 위에 이고 공경 공양하십시오. 당신이 불도를 구할 때 악마가 침노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나는 수신의 말대로 그 옷을 정수리에 이었다. 내가 처음 그 옷을 머리에 이자 대지는 또 크게 진동하면서 내 몸을 이기지 못했다. 저 지신(地神)은 금강제(金剛際)로부터 금강산을 솟구어 내가 가는 곳을 따라 곳곳에서 나를 받들어 나는 비로소 안주하게 되었다.
그 때 나는 6년 동안 고행하여 몸이 몹시 쇠약했으므로 머리에 가사가 그대로 있었지만 감히 그 피로를 사양하지 못했다. 오직 범천왕만이 자주 와서 나를 보고 큰 자비를 깊이 일으켜 내 고통을 가엾이 여기고 내 승가리를 가지고 범천으로 올라갔다. 대지는 또 크게 진동하고 해와 달도 빛이 없었다. 지신은 범천왕에게 말했다.
≺너는 그 승가리를 도로 가지고 가서 저 정수리 위에 두어라.≻
범천왕은 분부대로 했다. 대지는 곧 안정되고 해와 달도 도로 밝아졌다. 태자는 또 범천왕에게 말했다.
≺너는 승가리가 내 정수리 위에 있는 뜻을 아는가?≻
범천왕이 대답하였다.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하였다.
≺이것은 미래의 모든 악비구와 악비구니 등이 내 해탈한 법복을 공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옷을 정수리에 두어통합뷰어
천마(天魔)와 외도들을 항복받기 위해서이다.≻
내가 강에 들어가 목욕하고 나와 소치는 여자의 유미(乳糜)죽을 받았을 때 이 승가리[大衣]를 입고 곧 제3선(禪)의 즐거움을 얻어 모든 고통이 다 없어졌다. 또 내가 보리수 밑에 앉아 처음으로 법륜을 굴렸는데 그 때 수신이 탑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치면서 나로 하여금 이 승가리를 벗어 그 탑 속에 안치하라 했다.
나는 성불한 지 지금 50년이다. 그 옷을 공경하고 존중하여 수호하며 손수 빨고, 항상 금강신(金剛神)을 시켜 이 탑을 들고 있게 하고 땅에 내려 놓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는 법륜을 굴릴 때마다 이 옷을 입었다. 내가 성도한 뒤로 50번 입었는데 내가 열반하려 할 때는 반드시 누구에겐가 부촉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또 문수사리와 모든 비구ㆍ천룡팔부 등에게 말씀하셨다.
‘이 가섭불의 거친 삼베로 만든 승가리는 큰 위덕이 있다. 나는 부처의 눈으로 저 모든 하늘ㆍ용ㆍ귀신 및 10지(地) 보살 등을 관찰할 때 이 승가리를 털 끝만큼이라도 움직일 자는 아무도 없다. 오직 여래만이 이 승가리의 탑을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그 옷을 들고 계단을 세 바퀴 도셨다. 남면의 서쪽 층계에서 계단에 올라가고 서면에서 북쪽으로 돌아 북면 위에 서서 세존께서는 그 의탑(衣塔)을 공중에 던지셨다. 의탑이 광명을 발사하여 백억 국토를 두루 비추었다. 일체 고취(苦趣)는 그 광명을 입어 모두 없어져 마치 천수묘락(天樹妙樂) 국토와 같이 되었다.
여래께서 소리를 내어 널리 모든 부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 여기에 이 옛 가섭불의 거친 삼베로 만든 승가리가 있는데 내가 머물러 살던 곳의 말법(末法) 중생들에게 부촉합니다. 여기 오신 시방 부처님들도 각각 옷 한 벌씩 보시하여 우리 다 함께 이 말법을 맡읍시다.’
시방의 부처님께서는 이 말을 듣고 각기 승가리를 벗어 석가모니불께 보시했다. 세존께서 그것을 받으시자 마왕(魔王)이 또 부처님께 이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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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옵건대 가엾이 여겨 허락하소서. 저는 황금의 구슬을 내어 이 옷을 넣을 탑을 만들겠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허락하시자 그는 곧 신통력으로 한 생각 사이에 여러 탑을 다 만들었다. 부처님께서 손수 그 승가리를 가지고 하나하나 탑 안에 넣으셨다. 악마 무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탑을 누구에게 부촉하여 어디에 두시려고 합니까?’
이에 여래께서는 열반에 들고자 하시면서 라운(羅雲)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아난을 오라고 하라.’
아난이 오자 세존께서 광명을 놓아 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시니 백억의 석가가 모두 기원에 모였다. 모든 석가불이 다 모이자 세존께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戒壇)에 오르시어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진단국(震旦國) 청량산(淸凉山)의 굴에 가서 문수사리를 오라 하라. 나는 이 가섭불의 승가리를 그에게 부촉하고자 한다.’
모든 석가불은 곧 문수사리와 더불어 손가락을 한 번 튀기는 사이에 모두 계단에 왔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와 거기에 온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열반에 들리라. 그 가섭불의 의탑을 너에게 남겨주려고 한다. 내가 남겨준 법을 잘 호지하도록 하라. 내가 열반에 든 뒤에 가섭불의 의탑을 내 계단(戒壇)에 두면 12년은 지낼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 사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천상의 음악으로 항상 이 의탑에 공양하라.’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악비구들이 서로 싸우면서 내 바른 법을 멸하고 있다. 북천축국(北天竺國)에 악왕이 세상을 다스리면서 소승을 믿고 대승을 비방하며 소승 학자들은 다시 서로 미혹을 선동하고 악마에 붙잡혔다. 그런 까닭으로 대승의 3장(藏) 학자들을 살해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또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 계단을 12년 동안 북천축국에 두어라. 악왕이 세상을 다스리고 바른 법이 멸할 때에 너는 마땅히 신력(神力)으로 내통합뷰어
의탑(衣塔)을 받들고 저 나라에 다니면서 모든 대승의 가르침을 이 탑 안에 거두어 넣어라. 또 계를 지키는 비구로서 왕에게 죽임을 당한 자들과 각기 승가리를 법대로 가진 자도 너는 거두어 내 의탑에 넣어라. 또 계를 지키는 비구로서 목숨이 붙어 있는 이가 있거든 너는 마땅히 신력으로 그 돌을 섭수하여 수미산 꼭대기에 편히 살게 하라.’
그 때 마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는 오는 세상에 정법을 수호하겠습니다. 저 악한 왕이 대승을 멸할 때에는 나는 수미산 꼭대기에서 큰 돌산을 굴려 저 악한 왕과 악한 비구들을 먼지처럼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내 천 명의 아들들은 다 큰 위력이 있습니다. 저들이 모두 염부제에 내려가 저 나라들을 위해 각각 만 개의 승가람(僧伽藍)을 지어 염부제와 3천하에 채우고 그 멸하는 것을 우려하게 하여 정법을 호지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의발(衣鉢)의 탑을 가지고 염부제와 3천하 그리고 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두루 안치하여 내가 끼친 법을 안정시켜라. 또 아육왕(阿育王)의 탑도 짓기를 권하여 3천 국토에 두루 두어라.’
또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신력으로 저 기원정사의 중당(中堂) 서쪽 보루(寶樓)에 가서 내 주옥함(珠玉函)을 가져다가 대중에게 보여 주어라. 나는 처음에 궁성을 넘어 왕궁에서 40리를 떠나 저 총림(叢林)까지 갔을 때 몸이 조금 피곤하여 잠시 조금 쉬었다. 그 때 수신(樹神)이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 내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수도하면 반드시 금색의 몸을 얻고 삼계(三界)의 큰 스승이 될 것입니다. 가섭불이 열반하실 때 그 주옥함과 또 비단 승가리를 내게 부촉하면서 나를 거쳐 다시 당신에게 전하라 하였습니다.≻
나는 그 수신에게 말했다.
≺그대의 비단 승가리는 내게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듣건대통합뷰어
선로(先老)들의 말에, 모든 부처님은 세상에 나와 누에옷을 입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는 지금 수도하는 사람이거늘 어떻게 생물을 죽여 만든 옷을 입으라고 내게 주는가. 너는 지금 악마로서 일부러 내게 와서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수신이 말하였다.
≺당신은 큰 지혜가 있는 사람인데 어찌 함부로 그런 거친 말씀을 하십니까? 모든 부처님은 자비하시어 진실로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로 만든 옷을 입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실은 변화로 나온 것이요 생물을 해쳐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 주옥함을 받아 그것을 열어 보십시오. 거기 글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곧 함을 열고 온갖 기특한 일을 보았다. 거기에는 큰 비니(毘尼:율장)와 수다라장(修多羅藏:經藏)과 가섭불의 유교(遺敎)가 함께 들어 있었다. 그리고 승가리(僧伽梨)에는 저 부처님이 손수 쓰신 유서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수신(樹神)에게 부촉하여 내게 주라고 한 것이었다. 그 가섭불의 유서에 말하였다.
≺내가 처음 성도(成道)했을 때 대범천왕이 저 실을 나에게 주었다. 이것은 변화로 생긴 것이요 누에고치에서 뽑은 것이 아니다. 범천왕은 날실을 보시하고 견뇌지신왕(堅牢地神王)은 씨실을 보시했다. 이 두 시주에 의해 이 법의(法衣)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인연이 있어 지금 나에게 준 것이다.
나는 성도한 뒤로 늘 이 옷을 입었으나 조금도 손실이 없다. 지금 실달(悉達)에게 부촉하노니, 만일 네가 성불하거든 나의 승가리를 가져다가 기원정사에 안치해 놓고 비니를 설법할 때마다 이 옷을 입어라. 지금 이 옷을 여기 남겨 둔다.
네가 열반한 뒤로 1백 년 후에는 처음으로 무지(無智)한 비구들이 비니장(毘尼藏)을 나누어 결국 5부(部)로 만들 것이요, 그 다음 11백 년 뒤에는 너의 수다라를 나누어 무량한 부(部)로 만들 것이다. 그 일 때문에 논쟁이 일어나 너의 법을 빨리 멸하게 할 것이다.
저 어리석은 스님들이 3장(藏)에 익숙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비단옷을 입는다는 말을 듣고 곧 누에를 죽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만약 성도하고 나면 모든 나라에서 저 실이 저절로 생산될 것이니 그것은 누에를 죽여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수신에게 부촉하고 그를 거쳐 다시 너에게 전하는 것이다. 또 이 주옥함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내가 남기는 가르침이니 아울러 너에게 부촉한다. 너는 이것을 잘 보호하고 간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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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다 읽자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주함(珠函)이 저절로 열려 큰 광명을 놓았다. 수신이 또 나에게 말하였다.
≺이 옷함을 가져다가 당신 왼쪽 어깨 위에 얹고 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다른 곳에 두지 마십시오. 이 주함(珠函)이 어깨에 있으면 모든 악마와 외도들을 항복받아 당신으로 하여금 빨리 성불하게 할 것입니다.≻
나는 그 함을 받아 가지고 와서는 항상 어깨 위에 두었는데, 마침내는 젖죽[乳糜]까지 받았다. 내가 보리수 밑에 앉아 있을 때 제석천이 내게 와서 내 어깨 위의 함을 열고 승가리를 내어 나에게 입게 하였고, 또 가섭불의 거친 삼베 승가리를 비단옷 위에 걸치게 하였다. 범천왕은 제석천이 보시한 삼베 승가리를 가지고 와서 다시 내게 주었다. 나는 먼저와 같이 그것을 받으니 세 겹의 옷을 입게 되었다. 그 두 벌은 가섭불의 옷이었고 하나는 내가 허락한 것이었다. 대범천왕이 와서 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보았습니다. 과거 모든 부처님께서도 세 가지 승가리를 입었을 때 대지가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두 가지 승가리는 본래 있던 곳에 돌려보내고 내가 드리는 것만 입으시면 대지는 비로소 안주(安住)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범천왕의 말대로 했더니 그제서야 대지는 안주했다.
또 석가불이 처음 성도한 뒤로부터 열반할 때까지 오직 거친 삼베 승가리와 흰 모포로 된 3의(衣)만을 입었고 일찍이 누에실로 만든 비단옷은 입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째서 저 악한 비구들은 내가 비니(毘尼)를 가르칠 적에 비단옷을 입어도 좋다고 했다는 말로 나를 비방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처음 성도했을 때 애도(愛道) 비구니가 금실로 된 가사를 가지고 와서 내게 주었다. 나는 감히 받지 못하고 그것을 스님들에게 보시하라 했다. 그런데 하물며 삼계의 큰 스승인 내가 누에 실로 만든 옷을 입을 수 있겠는가. 나는 3장(藏)의 가르침에서 불ㆍ법ㆍ승에 비록 비단 공양하는 것을 허락했지만 그것은 본래 누에 입에서 나온 실옷이 아니다. 내통합뷰어
이 염부주 및 대주(大洲) 밖에 있는 1,800의 대국에는 다 비단솜과 실을 쓰지만 그것은 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지 누에의 입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해치려 하지 않기 때문이요 복업의 감응으로 여자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줄 아십니까?’
‘만일 실을 써서 옷을 지으려 할 때는 향을 피워 가지고 뽕나무 밑으로 가면 곧 변화로 된 두 여자가 그 나무 밑에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다 여덟 살쯤 된 여자아이로서 입에서 실을 토해낸다. 저 나라 사람들은 다만 물레만을 차려 놓고 여자 입에서 나오는 실을 물레에 감다가, 만족하리만큼 취하고는 그친다. 그러면 화녀(化女)들은 곧 사라진다. 내가 입어도 좋다고 허락한 그 비단옷은 이 여자들의 실과 하늘의 비단이지 본래 생물을 해쳐 실을 뽑아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생물을 죽여 그 실을 쓴다고 나를 비방하는가.’
그 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조그만 의심이 있습니다. 해결해 주십시오. 허락하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대로 하라. 내가 대중의 마음을 관찰해 보니 다 의심하고 있구나.’
문수가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가섭불의 조그만 주함(珠函)은 그 길이가 겨우 3촌 3푼으로서 저 승가리 한 벌도 넣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섭불의 3장(藏)의 교적(敎迹)과 일체 경전을 다 수용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 등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부처님의 신력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여 부처와 부처만이 알 수 있는 것이요, 너희들 경계로는 헤아려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니라.’
세존께서 또 문수사리를 시켜 그 함을 받들게 하고 세존께서 곧 일어나 거기에 예배하셨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함을 찌르자 함은 마치 큰 성문처럼 열렸다. 대중들은 일체의 많은 일들을 다 보았다. 즉 구슬탑과 비단옷과 금은의 누각 등 그 수가 10만이요 모든통합뷰어
3장도 다 들어 있었으며 또 천상 음악이 항상 공양하고 있었다. 누각의 높이는 40리이고 탑의 높이는 10유순이었다. 그러나 그 함에는 아무 증감(增感)이 없이 여전히 3촌 3푼이었다.
시방에서 온 모든 부처님께서는 각각 석가모니를 찬탄하면서 능히 이 악한 세계의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리라 하고 각기 승가리와 하나의 주함을 보시하여 모니(牟尼) 존자가 물려 주신 법을 보존하는 일을 도왔다. 부처님께서 문수를 시켜 저들의 불함을 열게 했다. 그 안에는 각각 승가리와 누각과 3장의 교적이 들어 있었는데 마치 가섭불의 탑과 똑같아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탑을 가지고 기환(衹桓)에 돌아가 계단의 북대(北臺) 안에 안치하고 내가 열반할 때를 기다리면 저절로 부촉할 곳이 있을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문수사리가 여쭈었다.
‘세존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이 함과 탑을 어느 누구에게 부촉하리이까?’
세존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이것을 문수에게 부촉하여 계단 위에 두게 한다. 3년이 지난 뒤에는 동남쪽에 옮겨 두어라. 30년이 지난 뒤에는 서인도의 빈가라(頻伽羅) 산꼭대기에 있는 광명지(光明池) 남쪽에 옮겨 두어라.
여래가 멸도(滅度)한 뒤 45년이 지나면 어떤 악한 왕이 세상에 나와 불법을 파괴하고 승니(僧尼)들을 핍박하리니 그것은 이루 다 기술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마왕의 군사들과 사천왕 등은 큰 돌을 굴려 그 악한 왕을 눌러 죽일 것이며, 사갈(娑竭)용왕은 그 궁전을 큰 못물로 이루어 함몰시킬 것이다. 악한 왕의 종족은 하나도 남지 않고 오직 가람과 인민들만이 남을 것이다. 서인도 사람들은 매우 번성할 것이요 절은 13만이고, 스님은 60만이며 보살들도 무량할 것이다. 13만 창고에 경전이 간직되어 있고 금으로 수놓은 경전만도 8만 창고가 있으며 금과 은 등 7보(寶)로 된 불상은 큰 것의 높이는 1백 척이고 작은 것은 1장 6척으로서통합뷰어
모두 합해 130만 구(軀)이며, 그 이외의 작은 것들은 이루 다 셀 수 없을 것이다. 이 경상(經像)들은 다 도리천왕(忉利天王)의 공장(工匠)이 만든 것이니 이런 인연으로 그 의탑(衣塔) 등을 저 산에 두는 것이다.
상법(像法) 말에 이르러 1,700년이 지나면 내 이 염부제와 사천하에는 많은 악한 비구들이 가람을 세우기는 하겠지만 선정과 지혜를 닦지 않고 또한 경전도 읽지 않을 것이며 문자도 알지 못하고 비록 아는 자가 있더라도 천에 한두 명일 것이다.
저 악한 세상이 되면 문수사리를 시켜 이 옷함과 탑(塔) 등을 가지고 여러 나라로 돌아다니면서 인민을 교화하게 하고, 또 옷탑을 만들어 신통의 힘으로 대천세계에 두루 퍼지게 하여 저 악한 비구 등으로 하여금 악을 고치고 선을 닦으며 3장을 익히고 외워 정법을 오래 머무르게 할 것이다. 할 일을 다 마치고는 옷탑을 본래 있던 곳에 도로 갖다 두었다가, 미륵이 내려올 때에 이르러서는 문수사리를 시켜 탑을 가지고 미륵불에게 부촉하게 할 것이니, 이것을 안치처(安置處)라 하며 또 서로 부촉하는 까닭이니라.’
또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지 21년 만에 대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기환의 계단(戒壇) 북쪽에 가서 종을 울려 시방의 스님들을 불러라. 저 보현(普賢)보살ㆍ관음(觀音)보살 등과 또 내 분신(分身)인 백억 석가불을 모아 각각 누각을 타고 계단(戒壇)의 처소로 오게 하라.’
그들은 분부에 의해 다 모였다. 부처님께서 보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미후지(獼猴池)로 가라. 내가 항상 경행(經行)하던 곳에 해어진 승가리가 있고 그 모퉁이에 조그만 주탑(珠塔)이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오라.’
보현은 분부대로 그것을 가지고 기원으로 갔다.
세존께서 이 탑을 받으시고 나서 곧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 성(城)을 넘어 성루(城樓) 위에 이르렀을 때 성신(城神)이 나를 찬탄하며 말하였다.
≺나는 이 성의 신이 된 지통합뷰어
지금 13겁을 지냈습니다. 나는 보았습니다. 과거 모든 부처님께서도 다 성을 넘어 도를 배울 때 은애(恩愛)의 그물을 찢고 번뇌의 적을 죽여 위없는 도를 이루고 일체를 구제하셨습니다. 당신도 지금 그러합니다. 물러서지 마십시오. 가섭불 때에 이 작은 주탑을 내게 부촉하면서 실달(悉達)께서 성 넘기를 기다려 당신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구류손불(拘留孫佛)의 4아인(牙印)의 탑입니다. 이것을 내리 부촉하여 누지불(婁至佛)에게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태자(나)는 그 탑을 받아 예배했다. 탑은 큰 광명을 발하면서 탑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 안에는 네 개의 어금니와 가섭불이 남겨준 가르침이 있었고 금은으로 된 누각이 8만이며 경율도 들어 있었다. 또 마니(摩尼)로 된 누각이 있었고 그 위에는 언제나 등과 향의 공양이 있었다. 그 옆에는 은으로 석가문불(釋迦文佛:나)에게 고하는 글이 있었다.
≺네가 처음 성도했을 때 한 아인(牙印)을 너의 다리에 찍으면 발바닥에 천폭(千幅)의 윤상(輪相)이 나타날 것이요, 다음에 또 한 아인을 너의 손바닥에 찍으면 곧 만(萬) 글자가 나타날 것이며, 또 한 인을 너의 가슴에 찍으면 덕상(德相)이 나타날 것이요, 또 한 인을 너의 정수리 위에 찍으면 곧 큰 원광(圓光)이 나타날 것이다.≻
나는 성도한 뒤에 이 네 개의 도장에 의해 상(相)이 나타났으니 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도장을 다 찍고 나서 탑 안에 넣으니 탑 문이 저절로 닫혔다. 탑 밑부분에 명문(銘文)이 있었는데 그 글에는 가사를 그 모퉁이에 두라고 했다. 나는 성도한 뒤에 그것을 내 왼쪽 어깨 위에 두었었다.’
부처님께서 또 거기 온 모든 부처님과 사람과 하늘들에게 말씀하셨다.
‘각각 주탑(珠塔) 하나씩을 보시하고 미래를 기다려라.’
모든 부처는 이 말대로 각각 보시하고 또 보현에게 부촉해 수호하게 했다가 여래께서 열반하시기를 기다려 기환으로 보내 계단 북쪽에 안치하게 했다. 사유(闍維)를 마치고 그 사리는 보현을 시켜 수호하게 하고 20년 뒤에 문수에게 부촉하여 탑을 열고 이 네 개의 어금니를 가지게 하였다. 정법시대 말년에 문수는 이것을통합뷰어
염부제의 모든 나라에 전하여 불법이 계속 머무르게 하고, 천백 년 뒤에 이르러서는 이 네 개의 도장을 백억 세계의 형상에 찍자 모두 광명이 있었으므로 다 보기 드문 일이라고 했다. 이 뒤에는 4주(洲)와 욕계(欲界) 6천 등에까지 널리 퍼져 교화해서 유익하게 하였다. 문수는 그 뒤에 이것을 미륵불에게 부촉했다.
그 때 세존께서 또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처음 성도했을 때에 강에 들어가 목욕하려고 하였다. 그 때 하신(河神)이 나타났다. 그 손에 이 보탑(寶塔)을 들고 있었다. 그 안에 황금의 함이 있었고 그 함 안에는 안타회(安陀會) 하나와 니사단 하나가 들어 있었으며, 또 발우 부대와 가섭불의 네 개 어금니가 들어 있었다. 하신은 내게 말했다.
≺이것은 가섭불이 내게 부촉해 세존께 드리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 세존께서 목욕을 마치셨으니 이 안타회를 입으십시오.≻
나는 그것을 받아 입었다. 땅은 6종으로 진동하고 안타회의 네 모퉁이는 광명을 놓아 천백억 국토를 비추었다. 시방의 범천왕들은 그 광경을 따라 내게 와서 아뢰었다.
≺이 모직으로 된 5조(條:안타회)는 구류손불의 옷과 같습니다. 그 구류손불이 열반하신 뒤에는 내리 부촉하여 누지불에까지 이르렀고, 석가불이 열반하신 뒤에는 사갈용왕에게 부촉하여 이 법복에 의해 8만 벌을 짓고 인해 탑을 만들고 공양하며 뒤에 끼칠 법을 안정시키십시오. 그런데 이 안타회의 네 모퉁이와 그 조절(條節) 꼭대기에는 다 만(萬)자를 두었습니다. 이 옷(안타회)은 현겁(賢劫) 중에서는 최초의 것이며 이 보탑의 형상은 5촌과 같습니다.≻
세존께서 보탑을 열고 살펴보니 거기에는 진주의 누각이 8만이요, 또 구류손불이 물려준 법이 들어 있었다. 또 구류손불과 좌선하는 세 비구도 있었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법라(法螺)를 가지고 오너라. 그 비구가 법과를 가져다가 부니 그것은 부처가 세상에 나옴을 알리는 가락으로 비구들이 부는 것이다.≻
문수는 명령에 의해 법라를 불었다. 선정에 들어 있던 비구들은 곧 일어나통합뷰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지금 어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습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이 현겁 중의 넷째 부처님이신 석가불께서 세상에 나오셨습니다.≻
저 세 비구는 모두 부처님께 와서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류손불이 반열반하실 때 우리에게 안타회와 니사단 및 발우 부대를 부촉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이 탑 안에 있다가 누지불 때에 이르러 비로소 열반에 들라고 했습니다. 또 가섭불은 우리에게 네 개의 어금니를 부촉하였고 구나함모니불은 우리에게 그 손발톱과 머리털을 조금 주었으므로 모두 탑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세존께서 열반하신 뒤에 이 탑에서 나와 이 염부제 내지 대천세계의 곳곳에 이 옷탑을 유포하여 뒷세상에 끼친 법을 안정시키라고 하셨습니다.≻
또 물었다.
≺여래께서 성도하신 뒤에 부처님께서는 가섭의 형제를 제도하시어 제자들이 차츰 많아졌습니다. 가란타 죽원(竹園)에서는 2부(部)의 스님들을 모으시고 못가에서 2부 대중들로 하여금 모두 승가리를 벗게 하시고서 니사단을 보내 펴라고 하셨습니다. 비구들이 상좌에 있을 때 겹승가리를 비구들의 머리 위에 두도록 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내 뜻을 아느냐?≻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한 지 천백 년 뒤에는 법답지 않은 비구들이 많이 있어 내 정법을 훼방할 것이며, 악한 왕은 비구를 죽이고 경과 불상을 불에 태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승가리를 벗고 비구들 머리 위에 겹으로 두게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이 승가리는 과거ㆍ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 다 이 옷을 입고 해탈하셨고 또 해탈하실 것이다. 말세의 악한 비구들은 다 3의(衣)를 가지지 않고 또 계율도 가지지 않으며 법복을 경멸하여 법을 빨리 멸망하게 할 것이다.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3천의 승가리를 주노니통합뷰어
너희들은 잘 수지하여 손실하게 하지 말라. 또 삼베로 이 옷을 짓고 비단이나 곱고 부드러운 것으로 만들지 말며 모두 거친 삼베로 지어 말세 비구들로 하여금 좋은 옷을 즐기게 하지 말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땅은 6종으로 진동하고 천인(天人)들은 찬탄하며 크게 기뻐하였다.
‘지금 이 모든 승가리를 세존께서 명령하여 사천왕과 8사자(使者)에게 부촉하여 8부(部) 귀신들로 하여금 이 옷을 잘 수호하여 손실이 없게 하고 나아가서는 미륵이 하생(下生)하면 그 부처님께 부촉하라 하셨다. 또 범천왕과 제석천왕에게 부촉하여 6재일(齋日)과 1년의 3장재월(長齋月)이 오면 천상의 궁전을 청소하고 이 승가리를 가지고 저 천궁에 가서 공양하게 하셨다. 이 7보로 된 함 안에 간직하고 우두전단향과 침수(沈水) 가루향을 끓인 향수를 취해 승가리를 빨고 볕에 말린 뒤에 그 향가루를 함 안에 넣어 승가리를 쪼여 그 승가리를 오래도록 보존하게 하라고 하셨다. 6재는 7일이요, 장재는 한 달이니, 이 날과 달을 지낸 뒤에는 다시 사천왕에게 돌려 주나니, 이것을 안치처(安置處)라 한다.’
세존께서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수미산 꼭대기에서 종을 울려 사방의 모든 비구들을 다 계단이 있는 곳에 모이게 하라.’
그들은 각각 스스로 말하였다.
‘4과(果)를 얻은 자는 모두 8백만 명이다.’
그들을 모두 7조(條)의 승가리를 벗게 하여 우다라(憂多羅)에게 가져가 세존께 보내었다. 여래께서는 손수 그것을 받아 엎은 가마 솥 위에 놓고, 세존께서도 입었던 7조 승가리를 벗어 저들의 옷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여래께서는 하늘과 사람ㆍ용ㆍ귀신 등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무량한 겁 동안 내 머리ㆍ눈ㆍ뇌수 및 안팎의 재물을 다 버리고서야통합뷰어
비로소 해탈의(解脫衣:승가리)를 얻었다. 그리고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고 중생을 교화했다. 그러나 내가 열반한 뒤에는 저 악한 비구들이 내 가르침을 믿지 않고 금계를 지키지 않으며 해탈의를 보호하지 않고 위덕이 없어 내 정법을 헐뜯을 것이다. 그리고 저 악한 비구니들은 내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금강도량 안에서 더러운 행을 행하여 마치 음사(淫舍)와 같이 될 것이며, 8경법(敬法)을 행하지 않고 비구들을 업신여기며 내 정법을 빨리 멸망시켜 천인들로 하여금 줄어들게 하고 온갖 악이 충만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너희들과 함께 네 가지 큰 서원(誓願)을 세우고 오는 세상의 모든 악한 승니(僧尼)들을 가엾이 여겨 이 옷을 수호하여 손실이 없게 하고 탑 안에 넣어 두어 불법을 보호하여 지키리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 땅은 6종으로 진동하고 천인과 용ㆍ귀신들의 슬퍼하고 탄식하며 기뻐하는 소리는 대천세계를 진동하였다.[세존의 안타회 5조의(條衣) 및 니사단에 대해 문답을 많이 한 것이 승가리와 거의 같다. 세존께서는 범천ㆍ제석ㆍ마왕 등에게 모든 보옥(寶玉)을 찾아다가 탑을 만들 때에는 7일도 채 못되어 그 탑이 다 이루어졌으며 그것을 내리 부촉해 마침내는 미륵이 하생할 때에 그에게 부촉해져 유통하게 하였다.]
또 세존께서 처음 성도하여 다섯 비구 균린(均憐) 등을 제도하셨고 뒤이어 7년 동안 모든 성문(聲聞)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 많아졌다. 진타라(眞陀羅)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염부주의 북구타라국(北瞿陀羅國) 사람으로서 장사를 하기 위해 중천축(中天竺)으로 갔다. 그는 거기서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잘 왔구나’라고 한 말씀을 듣고 구제되었다. 그 나라에는 면직물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얼룩송아지 가죽옷을 최상으로 여겼다. 이 진타라 비구는 왕사성(王舍城)에서 얼룩송아지의 가죽을 보고 저 속인에게서 그것을 사서 가사를 만들어 입었다. 저 속인들은 그것을 비방했다. 어떤 비구는 부처님께 아뢰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그를 불러 꾸짖으셨다.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이 염부제 및 다른 대천세계에도 이 구타라국처럼 가죽으로통합뷰어
가사를 만드는 나라가 모두 20만이나 된다. 내가 열반한 뒤에 많은 악한 비구들이 손수 생명을 해쳐 그 가죽으로 가사를 만들까 두렵다.’
부처님께서 목련(木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부왕(父王)에게 가서 아뢰어라. 내가 어렸을 적에 내 앞니 네 개를 빼어 부왕에게 맡기면서 가지고 계시다가 뒤에 돌려 달라고 한 일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 가서 그것을 가지고 오너라. 그리하여 이 말세에 내가 편 법을 계속 보존하게 하리라.’
목련은 명령을 받고 그것을 가지고 와서 세존께 드렸다. 부처님께서 거기에 온 모든 부처와 또 그 분신불(分身佛)에게 말씀하셨다.
‘이빨 하나와 금강탑(金剛塔) 하나씩을 각각 보시하라.’
그리고 모든 귀신과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손가락을 한 번 튀기는 사이에 각각 금강탑을 만들고 앞의 네 개의 이와 시방세계에서 여기에 온 모든 부처와 내 분신불이 다 내게 보시한 치탑(齒塔)을 거기 넣어 사갈용왕으로 하여금 그것을 거두어 가지고 큰 바다 속에 가서 공양하게 하라.’
또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와 관음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한 뒤에 너희들은 신력으로 몸을 나누어 내 치탑을 받들고 저 나라의 승가람(僧伽藍)에 가서 탑으로 하여금 빛을 놓아 그 광명 속에서 면직물이 나오게 하고, 너희들은 상인이 되어 그것을 가지고 저 나라에 가서 무역하되, 혹은 그것을 주어 법복을 만들게 하라. 또 너희들은 3장(藏) 비구로 변해 저 나라 비구들을 교화시켜 가죽옷을 입지 말게 하라. 만일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부지런히 정진하면 저 하늘 사람들은 의복과 음식을 너희들에게 줄 것이다.
또 내가 열반한 지 1,400년 뒤에는 내 이 염부제 및 대천 세계에는 악한 비구들이 많이 있어 선정과 계율은 닦지 않고 탑과 절만 많이 지어 천하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비록 가죽만 나는 나라가 아니어서 면직물과 비단이 많이 있더라도 그것으로 옷을 짓지 않고, 손수 살생을 좋아하여 얼룩무늬가 있는 가죽을 취하여 최상의 옷을 만들 것이다. 너희들은 그런 악한 세계에서통합뷰어
신력으로 대천세계를 진동시키고, 탑으로 하여금 빛을 발하게 하여 저 악한 사람들을 비추어 참회하고 악법을 익히지 못하게 하라.’”


31. 연등편(然燈篇)[여기에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해가 펴지면 밤이 감기고 달이 생기면 음(陰)이 멸하며, 등불이 어둠을 부수는 것은 마치 지혜가 업장(業障)을 녹이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등왕(燈王)에게 정성을 들이면 능히 미타의 높음을 이룩할 수 있고, 힘을 다해 밝음을 이으면 마침내 정광(定光)의 호(號)를 받는 것이다. 띠풀을 비추는 가벼운 인연으로 신색(身色)의 빛남을 얻고, 촛불을 보시한 조그만 인연으로 안근(眼根)의 깨끗함을 이루거늘, 하물며 이 큰 지혜를 떨쳐 저 훌륭한 광명을 여는 것이겠는가.
그런 까닭에 아육왕은 임종하는 날에 모두 8만 4천의 등을 만들어 8만 4천의 탑을 두루 비추었으며 제도는 기교(機巧)를 다하고 몸은 수묘(殊妙)의 극치였으니, 이름은 법구(法區)에 상응하고 일은 진경(眞境)을 움직이지 않음이 없었다. 환하게 빛나면서 번개가 번쩍이고 향기를 피우면서 꽃이 벌려 있어서, 그림자는 퍼런 물에 거꾸러졌고 빛은 푸른 나무를 감싼다. 휘황하게 뒤섞인 불꽃은 아침 놀이 흰 해를 새기는 것과 같고 환하게 잇닿은 빛남은 항상 별이 은하수를 수놓는 것과 같다. 금빛을 파는 찬란한 가게를 흘깃 보면서 밤을 잊어버리고 옥의 뜰에 다달아 새벽인가 의심하나니, 실로 무진(無盡)한 복이 항상 비추고 성명(盛明)한 징조가 항상 환하다 할 만하다.

(2) 인증부(引證部)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 무수한 겁을 지내오면서 신명(身命)을 버리고 염부제(閻浮提)에서 큰 나라의 왕이 되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칼을 측근[左右]에게 주면서 칙령(勅令)을 내려 내 몸을 깎아 천 개의 등불을 켤 자리를 만들라고 하였다. 이 몸의 살이 패인 자리는 큰 동전이 들어갈 만큼 깊숙했다. 거기에 기름을 부어 천 개의 등을 만들고 심지를 박고는 바라문(婆羅門)에게 말했다.
≺먼저 경법(經法)을 설한 뒤에통합뷰어
등에 불을 붙이시오.≻
바라문은 왕을 위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항상하다고 하는 것 언젠가는 다 없어지고
높다고 하는 것 또한 언젠가는 다 떨어지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음이 있다오.

왕이 이 게송을 듣고 나서 기뻐 펄쩍펄쩍 뛰며 발원하였다.
≺지금 나는 법을 위하기 때문에 내 몸으로 등불을 만들었습니다. 세상의 영화를 구하는 것도 아니요, 또한 2승(乘)의 깨달음을 구해서도 아닙니다. 이 공덕을 가지고 최상인 정진(正眞)의 도(道) 구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이렇게 발원하고 나니 즉시에 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했다. 몸에 천 개의 등불을 켜자 모든 하늘ㆍ제석(帝釋)ㆍ범왕(梵王), 그리고 윤왕(輪王) 등이 다 와서 위로하며 물었다.
≺몸에 천 개의 등을 켰는데도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또한 후회하지는 않습니까?≻
왕이 천제에게 대답하였다.
≺고통스럽지도 않고 또한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설령 후회가 없다고 말하지만 무엇으로 그것을 증명하겠습니까?≻
왕은 곧 맹세했다.
≺나는 이 천 개의 등불로 최상의 도를 구합니다. 진실로 성불할 수 있다면 모든 상처가 다 아물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자 몸이 전처럼 회복되어 상처가 하나도 없었다. 제석 등 여러 천왕들과 그의 신하와 권속, 그리고 한량없이 많은 서민들이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찬탄하고 기뻐하였다. 그리고는 모두 열 가지 선행을 실천하였다.’”
『아사세왕수결경(阿闍世王受決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때 아사세왕이 부처님께 공양하실 것을 청했다. 식사를 마치시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기원(祇洹)으로 돌아가셨다. 왕이 기바(耆婆)와 의논하였다.
‘부처님께서 식사를 이미 마치셨으니, 이제는 또 무엇을 하면 좋겠는가?’
기바가 말하였다.
‘오직 등불을 많이 켜는 일뿐입니다.’
그러자 왕이 명령하여 백 섬의 참깨 기름을 준비하고 궁문(宮門)에서 시작하여 기원정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등불을 켜게 했다.
그 때 어떤 빈궁한 늙은 어미가 왕이 이런 공덕 짓는 것을 보고 곧 매우 감격하였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빌어서 돈 두 푼을 얻어 가지고 기름 파는 집에 가서 기름을 사려고 했다.
주인이 말하였다.
‘할머니는 무척 가난하신 모양인데 애써 얻은 돈 두 푼을 가지고 왜 양식을 사서 스스로의 목숨을 부지하지 않고 기름을 사려고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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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말하였다.
‘내가 듣자 하니 부처님은 백 겁에도 한 번 만나뵙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다행히도 부처님을 만났으나 공양할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오늘 왕이 큰 공덕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비록 가난하지만 등불 하나를 켜서 후세의 근본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 기름집 주인은 그 지극한 뜻을 가상하게 여겨 돈 두 푼에 기름 두 홉 하는 것을 세 홉을 더 보태 도합 다섯 홉을 특별히 주었다. 노모는 이 기름을 가지고 부처님 앞에 가서 등불을 켜 놓았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이 기름으로는 밤중도 넘기지 못하겠구나.≻
그리고는 스스로 맹세하여 말하였다.
‘만일 내가 뒷세상에 부처님처럼 도를 증득할 수 있다면 이 기름으로 밤 내내 이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여지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왕이 켜놓은 등불은 더러는 꺼지기도 하고 더러는 기름이 다하기도 하였으나 노모가 켜 놓은 등불은 불빛이 유난히도 밝아 다른 등불보다 더욱 뛰어난 채 그 밤이 다하도록 꺼지지 않았고 기름도 또한 다하지 않아 이튿날 아침까지 이르렀다.
부처님께서 목련(目連)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이미 날이 밝았으니 저 등불들을 모두 꺼버려라.’
목련이 분부를 받고 가서 차례차례 등불을 껐다. 그런데 다른 등불은 모두 꺼졌으나 오직 노모가 켜놓은 등불만은 세 번이나 꺼도 꺼지지 않았다. 그래서 곧 가사 자락으로 부채질했더니 등불 빛이 더욱 밝아졌다. 이에 위신(威神)의 힘으로 돌개바람을 끌어다가 등불을 불어서 끄려고 했다. 그런데도 등불은 다시 더욱 치성하여 위로는 범천(梵天)을 비추고 옆으로는 삼천세계를 모조리 비추어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빛을 보았다.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부처님의 광명공덕(光明功德)이니, 너의 위신력으로는 끌 수 없을 것이니라. 이것은 그 노모가 전생[宿命]에 180억 부처님께 공양하고 이미 과거 부처님으로부터 기별(記莂)을 받았는데, 그 뒤로 경법(經法)에만 힘썼기 때문에 보시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빈궁하여 비록 재물은 없지만 이후 30겁이 지난 뒤에는 반드시 부처가 되어 그 명호(名號)를 수미등광(須彌燈光)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이라고 하리라. 그리고 그 세계에는 해도 달도 없겠지만 사람들의 몸마다 모두 광명이 있어 그 광명이 서로 비추어 도리천(忉利天)과 같으리라.’
노모는 이 말씀을 듣고 환희하여 예배드리고 돌아갔다.
왕은 기바(耆婆)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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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덕을 지어 우뚝하기 이와 같은데도 부처님께서 나에게는 기별을 주지 않으시고 이 노모는 한 등밖에 켜지 않았는데도 왜 기별을 주셨는가?’
기바가 대답하였다.
‘왕은 비록 공덕을 많이 지었으나 마음의 전일(專一)하기가 이 노모가 부처님께 마음을 쏟는 것보다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 어느 때에 사왕(闍王:아사세왕)이 지성스런 마음으로 기름과 꽃을 받들어 부처님께 공양했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곧 왕에게도 기별을 주셨다.
‘이 뒤 8만 겁이 지나 그 겁의 이름을 희관(喜觀)이라 할 때 왕은 틀림없이 부처가 되리니, 그 이름을 정기(淨其)라고 할 것입니다.’
아사세왕에게 태자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전타화리(旃陀和利)라고 하였다. 그 때 그의 나이 여덟 살이었는데 부왕이 기별 받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여 곧 몸을 장식했던 온갖 보배를 벗어 부처님 위에 흩으면서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정기부처님 처소에서 제가 금륜왕(金輪王)이 되어 그 부처님께 공양하게 하여지이다. 또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제가 마땅히 그 뒤를 이어 받아 부처가 되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틀림없이 네 소원대로 되어 불호(佛號)를 전단(栴檀)이라 하리라.’”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아난(阿難)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르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과거 세상에서 어떤 선근(善根)을 지으셨기에 이렇게 끝없는 등불 공양의 과보를 받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2아승기 91겁 전에 이 염부제(閻浮提)에 어떤 큰 나라의 왕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파색기(波塞奇)였다. 그의 부인이 한 태자를 낳았는데 그 몸은 자금(紫金)빛이었고 상호까지 원만하게 갖추었다. 뒤에 점점 자라나서는 출가하여 부처가 되어 교화한 인민(人民)들이 매우 많았다.
그 때 부왕(父王)은 그 부처님과 승가 대중을 초청하여 석 달 동안 공양하였다. 어떤 한 비구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아리밀라(阿梨蜜羅)였다. [진(晉)나라 말로는 성급(聖及)이다.] 그는 석 달 동안 그 등불의 시주[檀越]가 되어 날마다 성 안에 들어가서 들기름과 등불 심지로 쓸 물건들을 구했다.
그 때 왕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모니(牟尼)였다. 그녀는 높은 누각에 올라가서 이 비구가 경영(經營)에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 날마다 성 안에 들어가서 구걸하는 것을 보고는 공경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겨 사람을 보내 물어보았다.
‘영리(營理)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내가 지금통합뷰어
석 달 동안 부처님과 승가를 위해 등을 만들고 있는데, 그것을 담당한 시주가 되어 들깨 기름과 등심지 따위의 등을 만들 물건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심부름 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사실대로 알리니, 왕의 딸은 기뻐하며 말하였다.
‘지금부터 다시는 구걸하러 다니지 마십시오. 앞으로는 내가 당신에게 등심지 따위의 물건을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비구는 좋다고 허락했다. 그 뒤로 왕의 딸은 늘 들기름과 등심지 따위를 보내 주었고 성급 비구는 성심으로 그것들을 받았다.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기별(記莂)을 주셨다.
‘너는 오는 세상 아승기겁이 지나면 틀림없이 부처가 되어 그 명호를 정광(定光)이라 하리라.[다른 경전에서는 명호를 연등불(然燈佛)이라고 하였다.]
왕의 딸 모니는 성급 비구가 부처가 되리라는 기별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부처님께 공양한 등불에 관련된 물건들은 모두가 내가 소유했던 것이다. 저 비구는 이미 기별을 받았는데 나만 유독 기별을 받지 못했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모두 털어놓았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기별을 주시면서 모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오는 세상 2아승기 91겁이 지난 뒤에 꼭 부처가 되어 명호를 석가모니(釋迦牟尼)라 하고 열 가지 명호를 구족(具足)할 것이다.’
왕의 딸은 기별을 듣고 기뻐하면서 발심하고 남자로 변화하여 부처님의 발에 거듭 예배하고 사문(沙門)이 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곧 허락하시자 그녀는 쉬지 않고 정진하였다.
옛날에 등불을 보시한 까닭에 그 이후로 수없이 많은 겁(劫) 동안 천상과 인간 세계에서 자연히 복을 받았고, 그의 신체는 특별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러다가 지금은 부처가 되어 이 등불의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또 『시등공덕경(施燈功德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혹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탑묘(塔廟)에서 여러 형상 앞에 공양을 베풀거나 또는 등불 내지는 조그만 등심지를 보시하되 혹 들기름을 바르고 불을 켜서 보시하면 그 밝음은 오직 한 길과 한 계단만을 비출 뿐이니라.
사리불아. 그러나 이와 같은 복덕은 일체 성문이나 연각으로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불(佛)ㆍ여래(如來)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니라. 세간의 과보를 구하는통합뷰어
자의 복덕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더구나 청정하고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끊임없이 계속해서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는 것이겠느냐?
또 한 계단 길만을 비추어 준 공덕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일체의 계단과 일체의 길을 전부 비추어 준 것이겠느냐? 혹 둘ㆍ셋ㆍ넷의 계단과 혹 탑신(塔身) 1층ㆍ2층, 나아가 여러 층의 한 면ㆍ두 면 내지는 네 면 모두와 또는 부처님의 형상을 비추어 준 것이겠느냐?
사리불아, 저렇게 켠 등불은 혹 때로는 금방 꺼지기도 하고 혹 바람이 불어 꺼지기도 하며, 혹 기름이 떨어져 꺼지기도 하고, 혹 심지가 다하여 꺼지기도 하며, 혹 그 모두가 다하여 꺼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부처님의 탑묘에 등불을 받들어 보시해야 한다. 그러면 불ㆍ법ㆍ승을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조그만 등불을 받들어 보시한 복전(福田)으로 그 얻는 과보의 복덕 덩어리는 오직 부처님께서만 아시는 것이니라. 조그만 등불에도 오히려 복덕이 많아 이루 계산할 수 없거늘, 더구나 내가 멸도한 뒤에 부처님의 탑사(塔寺)를 스스로 짓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서 짓거나 혹은 한 등ㆍ두 등 내지는 여러 개의 등을 켜거나 향ㆍ꽃ㆍ영락(瓔珞)ㆍ보배 당기ㆍ번기ㆍ일산 및 그 밖에 갖가지 수승하고 오묘한 공양을 하는 것이겠느냐?
또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탑묘에 등불을 보시하면 그는 임종할 때에 세 가지 광명을 얻게 될 것이다. 무엇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임종할 때에 과거에 지은 복이 다 앞에 나타나므로 선한 법을 기억하여 잊지 않고 이렇게 기억함으로 인하여 마음에 기쁨이 생겨나는 것이다. 둘째는 이로 인하여 곧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보시를 잘 행하여 기쁜 마음을 얻으므로 죽음의 괴로움이 없는 것이다. 셋째는 이로 인하여 곧 법을 생각하는 마음을 얻는 것이다.
또 사리불아, 그 사람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다시 네 가지 광명을 얻을 것이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임종할 때에 둥글고 원만한 해[日輪]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는 것이요, 둘째는 둥글고 원만한 달[月輪]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는 것이며, 셋째는 여러 하늘 대중들이 한 곳에 태어나는 것을 보는 것이요,통합뷰어
넷째는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 보리수(菩提樹) 밑에 앉아서 보리를 증득하는 것을 보고는 자기 자신이 여래를 존중하여 합장하고 공경하면서 서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또 사리불아, 부처님의 탑묘에 등불을 보시하면 임종할 때에 이와 같은 네 가지 광명을 보고, 죽은 뒤에는 곧 삼십삼천에 태어날 것이다. 그 하늘에 태어나서는 다섯 가지 일에 대하여 청정함을 얻을 것이다.
첫째는 청정한 힘을 얻는 것이요, 둘째는 여러 하늘 가운데 뛰어난 위엄과 덕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청정한 염혜(念慧)를 얻는 것이요, 넷째는 항상 뜻을 포섭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며, 다섯째는 권속을 얻어 그들의 뜻을 항상 수호하여 마음에 기쁨을 얻는 것이다.
그 하늘의 수명을 마치고 나면 악한 갈래의 세계에도 떨어지지 않고, 인간 세계에 태어날 때엔 최상의 종성(種姓)으로서 부처님 법을 믿는 집안에 태어날 것이다. 그 때 만약 세간에 부처님이 없더라도 또한 길흉(吉凶)을 점치는 사견(邪見)을 가진 경박하고 미천한 집안에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등불을 보시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네 가지 즐길 만한 법을 얻을 수 있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색력(色力)이요, 둘째는 자재(資財)이며, 셋째는 대희(大喜)요, 넷째는 지혜(智慧)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대승(大乘)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처님의 탑묘에 등불을 보시하면 여덟 가지 즐길 만한 훌륭한 법을 얻을 수 있다. 무엇이 그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뛰어난 육안(肉眼)을 얻는 것이요, 둘째는 측량(測量)할 수 없는 훌륭한 생각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뛰어나게 통달한 천안(天眼)을 얻는 것이요, 넷째는 도를 충분히 닦고 쌓아 계율을 잃지 않음을 얻는 것이며, 다섯째는 지혜가 만족함을 얻어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과거에 지은 선으로 재난이 없는 곳을 얻는 것이며, 일곱째는 지은 선업(善業)으로 모든 부처님을 만나 일체 중생의 눈이 되는 것이요, 여덟째는 그 선근 때문에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얻은 윤보(輪寶)는 남의 장애를 받지 않으며 그 몸이 단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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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제석(帝釋)이 되어서는 큰 위력을 얻고 열 가지 눈을 구족(具足)하며, 혹 범왕(梵王)이 되어서는 범천의 일을 잘 넓히고 큰 선정을 얻을 것이다.
사리불(舍利弗)아, 보리의 선근을 회향함으로써 여덟 가지 즐길 만한 훌륭한 법을 얻느니라.
또 사리불아,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의 앞에서, 남이 등불 보시하는 것을 보고 믿는 마음이 청정해져 합장하고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 선근 때문에 여덟 가지 증상법(增上法)을 얻는다. 무엇이 그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증상한 색(色)을 얻는 것이요, 둘째는 증상한 권속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증상한 계율을 얻는 것이요, 넷째는 인간 세계와 천상에서 증상한 생(生)을 얻는 것이며, 다섯째는 증상한 믿음을 얻는 것이요, 여섯째는 증상한 말재주를 얻는 것이며, 일곱째는 증상한 성도(聖道)를 증득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얻는 것이니라.’
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가장 얻기 어려운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려운 것이요, 둘째는 부처님의 바른 법에 대하여 믿고 즐거워하기 어려운 것이며, 셋째는 부처님 법을 좋아해도 출가하기 어려운 것이요, 넷째는 청정한 계율을 갖추기 어려운 것이며, 다섯째는 누진(漏盡)을 얻기 어려운 것이니라. 일체 중생들이 다 이 다섯 가지 법을 얻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너희들은 이미 얻었느니라.”[이 경 한 권은 간략히 그 요지만 따서 말한 것이다.]
또 『등지경(燈指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왕사성(王舍城)은 다섯 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중에서도 오마가타(五摩伽陀)가 제일 좋았다. 그 속에서 지혜가 뛰어난 사람으로서 범행을 닦는 이들은 다 이 땅이 장엄하고 뛰어나다 하여 모두 좋아하고 기뻐했다. 그리하여 멀리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 때 그 성 안에 어떤 장자가 있었다. 그 집은 큰 부자로서 창고에 보물이 가득 넘쳐 마치 비사문천(毘沙門天)과 같았다. 그러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그는 천지신명에게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오래지 않아 그 아내는 임신한 기미를 깨달았고 열 달이 차서 한 아들을 낳았다.통합뷰어
이 아이는 전생에 복인(福因)을 심었기 때문에 처음 태어나는 날 그 한 손가락에서 큰 광명이 나와 10리를 환히 비추었다. 부모는 매우 기뻐하여 친족들과 관상 보는 이[相師]를 불러모으고 큰 모임을 열어 아이의 이름을 짓게 하였는데 그 아이의 손가락에서 나온 광명으로 인해 이름을 등지(燈指)라고 지었다. 그 모임에 모인 사람들도 그 아이의 이상한 모습을 보고 모두 예전엔 없었던 일이라고 찬탄했다. 그 때 그 모임에 바수(婆修)라는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널리 듣고 많이 알아 모르는 일이 없었다. 이 아이의 기이한 모습이 비상함을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 아이는 혹 나라연천(那羅延天)이나 석제환인(釋提桓因)이나 일천자(日天子)나 모든 대덕(大德)의 하늘 등이 내려와 현생(現生)한 것이 아닌가?’
그 때 그 아이의 부모는 이 말을 듣고는 더욱 기뻐하면서 7일 동안 큰 보시 대회를 열었다. 온 나라가 다 알았으므로 이 소문이 왕에게까지 들렸다. 사왕(闍王)은 이 소문을 듣고 곧 칙명을 내려 아이를 데려 오라 했다. 장자는 명령을 받고 곧 아이를 안고 왕의 궁문으로 갔다. 마침 왕은 연회가 있었으므로 이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다. 이 아이의 손가락 광명만이 궁정(宮庭)을 비추어 환히 밝았고, 왕의 몸과 궁전까지 비추어 일체의 잡물이 다 금색이 되었으며 또 그 광명은 왕의 궁내를 두루 비추었다. 왕이 곧 괴상히 여겨 물었다.
‘이 빛은 갑자기 어디서 와서 내 궁전 안을 비추는가? 장차 세존께서 중생을 교화하시려고 내 문에 오신 것이 아닌가? 또는 큰 덕망이 있는 모든 하늘의 석제환인과 일천자(日天子) 등이 내려온 것이 아닌가?’
왕은 곧 사람을 보내어 문 밖에 나가 보라 했다. 사람이 나가 보고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아까 대왕님께서 부르신 그 아이가 지금 문 밖에 와 있습니다. 그 아이의 손이 유모의 어깨 위에 있는데 그 손가락에서 광명이 나와 두루 비추기 때문에 이 빛이 있었나이다.’
왕이 사자(使者)에게 명했다.
‘어서 빨리 그 아이를 데리고 오너라.’
왕은 아이를 보고 매우 이상하게 여겨 아이의 손을 직접 잡고통합뷰어
그 상을 자세히 살펴 보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외도 6사(師)들은 인과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정말로 세상을 속이고 미혹시키는 말이다. 만일 인과가 없다면 어떻게 이 아이에게 이런 광명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로써 본다면 저 외도들은 모든 중생들을 악한 세계에 떨어지도록 모함하는 것이다. 이 아이는 자재천(自在天)들처럼 자연히 생긴 것이 아니요, 반드시 전생의 복으로 인해 이런 좋은 과보를 받은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제 비로소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이요, 거짓이 아님을 알겠거늘 그들이 복을 닦지 않으니 어찌 이리도 괴이한가?’
왕이 말하였다.
‘이 손가락의 광명이 혹은 해로 인해 있는 것인지 혹은 달로 인해 있는 것인지를 아직은 알 수 없다. 이것을 시험해 보려면 밤중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해가 이미 저물자 이 아이를 코끼리 등에 태워 앞에서 가게 하고 왕은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그 뒤를 따라 동산으로 함께 들어갔다. 그런데 이 어린 아이의 손가락의 광명이 비치는 곳마다 어둠은 다 환하게 밝아지고 동산의 새ㆍ짐승과 꽃ㆍ과일들을 볼 때 낮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왕은 이것을 보고 크게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말씀은 어쩌면 그리도 참되고 미묘한가? 나는 오늘부터 인과에 대해 크게 굳은 신심을 내고 6사(師)의 심한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매우 천시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에 대해서는 갑절이나 더 숭앙하는 마음을 낸다.’
그 때 기역이 곧 왕에게 아뢰었다.
‘설사 빈궁하더라도 오히려 정성을 다해 선업(善業)을 닦아야 하겠거늘 하물며 부유하면서 복을 짓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이와 같이 말할 때 날은 벌써 밝아 새벽이 되었다. 다시 등지를 데리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보물을 많이 하사하고 등지를 돌려보냈다.
등지가 점점 자라나자 그 아버지 장자는 아들을 위해 혼처를 구하되 좋은 가문의 딸을 선택하여 며느리로 삼았다. 장자는 부자인지라 예교(禮敎)를 먼저 갖추었다. 그리하여 가정은 화목하고 살림은 더욱 풍성해졌다. 그러나 성하면 반드시 쇠하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것이다. 장자 부부가 다 세상을 떠났다.통합뷰어
비유하면 마치 해가 질 때는 그 그림자가 감추어지는 것과 같고 해가 뜰 때는 달빛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으며 불이 재가 되면 불꽃이 아주 없어지고 마는 것처럼 건강한 좋은 몸도 병에 걸리면 무너지고 젊고 씩씩하던 시절도 늙음의 침노를 받으며 아끼는 목숨도 죽음에 빼앗기는 것이다. 이 등지도 부모가 다 세상을 떠나자 생계는 날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 등지는 젊어서 부자로 편안하게 지내면서 가사에는 익숙하지 못하였다. 나쁜 벗들과 사귀고 마음대로 방탕하게 지내며 주색에 빠져 절도 없이 돈을 썼고 창고는 가득했으나 관리할 사람이 없었으니 마치 보름달이 기울어 점점 어두워져 가는 것과 같았다.
그 때 그 나라 법에는 1년에 한 번씩 반주산(般舟山)에 큰 모임이 있었다. 등지는 옷을 잘 차려 입고 종자를 데리고 그 모임에 갔다. 마침 도적들이 등지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때에 그 집이 빈 틈을 타서 그 집에 들어가 돈과 살림살이를 모두 훔쳐 가지고 달아났다. 등지가 날이 저물어 돌아와 보니 그 집은 도적에게 다 털리고 오직 나무ㆍ돌ㆍ기와ㆍ벽돌 등만 남아 있었다. 등지는 이 모습을 보고 기가 차서 그만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곁의 사람들이 물을 가져다 그의 얼굴에 뿌리고서야 비로소 깨어났으나 그는 근심하고 울면서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업을 꾸려 나가시느라 온갖 고생을 다하셨다. 창고의 재물은 다 아버지가 모으신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길러 그 재산을 다 내게 맡기셨다. 그런데 나는 왜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면서 게으름만 피우다가 남에게 사기를 당해 아버지가 남겨 주신 재산마저 하루 아침에 탕진하여 창고는 비고 축산(畜産)도 모두 흩어지게 되었단 말인가?≻
그 때 그 손가락의 광명도 사라졌다. 그 아내는 그를 비천하다 하여 싫어하더니 버리고 달아났다. 노비들은 다 흩어졌으며 친척들은 정을 끊고 아주 친한 벗들도 도리어 원수처럼 되었다. 빈궁한 사람은 마치 기시귀(起屍鬼)처럼 모두가 두려워하였으므로, 그것은 젊음을 파괴하고 좋은 얼굴과 기력과 명예ㆍ종족ㆍ가문ㆍ인의(仁義)ㆍ신행(信行) 등을 다 파괴하는 것이다.통합뷰어
그리하여 그는 생각했다.
≺나는 가난하고 괴롭기가 세상에 비할 데 없다. 참으로 목숨을 버리고자 해도 스스로 버릴 수가 없으니, 무슨 방법을 써야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또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더러워하는 것은 시체를 운반하는 일이다. 이 일이 비록 나쁘기는 하지만 후세에 괴로움을 받는 업은 아닐 것이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이 말을 듣고 그에게 곧 시체 운반 일을 시켰다. 등지는 삯을 받고 곧 그들의 말을 따라 죽은 사람을 짊어지고 무덤에 이르러 던져 버리려고 했다. 그 때 시체가 황급하게 등지를 껴안았다. 비유하면 마치 어린 아기가 껴안은 것처럼 꼭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힘을 다해 떨쳐버리려 하였으나 떨어지지 않고, 또 시체는 마치 아교로 붙인 것처럼 등에 붙어 벗어날 수가 없었으며, 시체를 밀쳐 떼려 했으나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매우 두려워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오늘 이 죽은 사람을 메고 어느 곳에 가서 살기를 바라리.’
그는 곧 전타라의 마을로 들어가서 말하였다.
‘누가 내 등 위에 있는 이 시체를 떼어 줄 수 있겠는가?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나는 곱으로 삯을 주리라.’
모든 전타라가 와서 조심스럽게 힘을 다해 떼려 했으나 그래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등지를 꾸짖었다.
‘이 미친 사람이 무슨 짓인가? 시체를 지고 사람 사는 마을에 들어오다니.’
그러면서 다투어 막대기로 때리고 돌을 던지니 몸뚱이는 상하고 깨졌으며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 왔다. 어떤 사람이 가엾이 여겨 그를 데리고 성 안으로 들어가려 하여 성문까지 이르렀으나 문지기가 그를 가로 막고 때리면서 문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꾸짖었다.
‘이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시체를 지고 성 안으로 들어오려 하는가?’
스스로 자기 몸을 보니 매를 맞아 몸뚱이가 모두 깨어지고 터지고 했다. 매우 서러워 소리를 내어 크게 울면서 말하였다.
‘나는 빈곤으로 인해 일할 곳을 가리지 않고 이런 천업을 시작했거늘, 어쩌다가 하루 아침에 이런 고통을 당하는가. 차라리 다른 일을 하다가 죽을지언정 다시는 시체를 지지 않으리라.’
그는 울다가 말하고 말하다가 우니 그 때 문지기는 매우 가엾이 여겨 그를 집으로 돌아가게 놓아주었다. 그는 자기 집 방에 이르러 전에 같이 구걸하던통합뷰어
모든 가난한 이를 찾았다. 같이 살았던 사람이 그가 시체를 지고 있는 것을 멀리서 보고 모두 그를 버리고 가버렸다.
집에 돌아왔을 적에는 시체가 저절로 땅에 떨어졌다. 등지는 그 때 더욱 두려워서 까무라쳐 땅에 쓰러졌다가 한참 만에야 다시 살아났다. 조금 있다가 시체를 보니 손가락이 모두 순전한 황금이었다. 비록 두려웠지만 이렇게 좋은 금을 보고는 곧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리고는 시험삼아 칼로 베어 보니 그것은 진짜 순금이었다. 금을 얻고 마음에 기쁜 생각을 내어 다시 가까이 가서 그 머리와 목과 손발을 베어냈다. 이렇게 베어냈으나 잠시 뒤에 다시 도로 생겨, 잠깐 사이에 금의 머리와 손발이 쌓여 사람의 키보다 더 컸다.
비유하면 왕이 나라를 잃었다가 본래의 지위를 도로 찾은 것과 같았고 장님이 눈을 얻어 모든 것을 환히 보는 것처럼 등지의 기쁨도 이와 같았다. 창고의 보배는 전보다 배나 많고 위덕과 명예도 전날보다 나았으며 친척ㆍ친우ㆍ처자ㆍ비복 등도 다 돌아오자 등지는 탄복하였다.
‘아아, 괴이하여라. 부자에 큰 힘이 있음이여! 능히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빨리 돌아오게 하는구나. 아아, 괴이하여라. 가난에 큰 힘이 있음이여! 능히 친한 사람들로 하여금 빨리 나를 버리게 하는구나. 내가 전에 가난할 때에는 본래 친하던 친구들도 벗의 도를 끊고 나와 말하는 이가 한 사람도 없더니, 오늘은 모두가 굽신거리면서 받들어 섬기며 합장하고 공경하는구나. 가령 사는 곳이 천제석과 같고 용력(勇力)은 라마(羅摩)와 같으며 지견(知見)은 천사(天師)와 같더라도 만일 돈과 재물이 없으면 전혀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다. 부자는 어리석고 지혜로움을 따지지 않고 모두 좋은 사람이라 일컬으며, 실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나 사람들은 그를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며, 또한 용맹을 얻고 온갖 착한 명예를 얻는다. 그는 아무리 추하고 늙었더라도 젊고 씩씩한 여자들이 즐겨 그 곁에 모여드는구나.’
아사세왕(阿闍世王)은 그가 다시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곧 사람을 보내어 그 보배를 가져갔는데 그들이 가져간 것은 모두가 죽은 사람이었고통합뷰어
그 집 안으로 도로 던지면 그것은 다시 순금이 되었다. 등지는 왕이 이 보배를 얻고자 하는 것을 알고 곧 금의 머리ㆍ손ㆍ발을 왕에게 올렸다. 왕은 그것을 얻어 가지고 궁중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 등지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5욕(欲)은 극히 빨리 움직여
마치 번개와 독사와 같고
영화의 즐거움은 오래 머물지 않아
곧 싫어하고 걱정하는 마음 생긴다.

그는 곧 그 보배를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불법에 출가하여 도를 구하되 부지런히 닦아 익혀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는 비록 도과(道果)를 얻었으나 이 시체 보배는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등지 비구는 무슨 인연으로 나면서부터 이러한 손가락의 광명이 있었으며, 무슨 인연으로 이러한 빈곤을 받았으며 또 무슨 인연으로 이 시체보배가 항상 그를 따라다닙니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내가 너희들을 위해 그의 전생 인연을 말해 주리라. 등지 비구는 전생에 바라내국의 큰 장자의 집에 태어났다. 어린 아이 때에 수레를 타고 밖에 나가 놀다가 늦게 돌아오니 문이 이미 잠겨 있었다. 문을 열어 달라고 크게 불렀으나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더니 한참 만에야 그 어머니가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그 아이는 어머니를 꾸짖었다.
≺온 집안이 모두 시체를 지러 갔습니까? 도적이 와서 겁탈해 갔습니까? 왜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까?≻
그는 이 업연으로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고, 그 지옥의 남은 과보로 인간에 나서 이러한 빈곤의 고통을 받았느니라.
또 손가락 광명의 인연과 시체 보배의 인연을 너를 위해 말해 주리라. 과거 91겁 전에 비바시(毘婆尸)라는 부처님께서 계셨다. 그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도 불법은 그대로 세상에 머물러 있었다.
그 때 등지는 큰 장자였는데 그 집은 큰 부자였다. 그는 절에 가서 공경 예배하다가통합뷰어
한 진흙으로 만든 불상[泥像]이 있었는데 그 불상의 손가락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을 보았다. 곧 금박(金薄)으로 그 손가락을 보수하고 나서 이내 발원하였다.
‘나는 향과 꽃과 기악(伎樂)으로 공양하고 불상을 보수한 공덕의 인연으로 천상과 인간에 태어나서 항상 부귀 영화를 누리며, 설사 그것을 잃어버리더라도 곧 도로 찾아 나로 하여금 불법에 출가하여 도를 얻게 하여지이다.’
불상의 손가락을 보수한 까닭에 이 손가락의 광명과 시체 보배를 얻은 것이요, 그 어머니를 욕했기 때문에 지옥에서 나와서 빈궁한 과보를 얻은 것이다.”
이 조그만 복업을 심은 인연으로 그 형상에서 이런 복을 얻었고, 나아가서는 열반한 형상에서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여래의 법신(法身)에 대해서이겠는가?
또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부처님의 큰 제자 대목건련(大目揵連)이 신통력으로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가 제석의 동산에 들어가 유행하면서 구경하다가 한 천녀(天女)를 보니 얼굴이 단정하고 광명이 밝게 비추는 것이 여러 천녀(天女)들보다 뛰어났었다. 목건련은 그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전생에 어떤 복을 심은 인연으로 지금 이런 과보를 받아 기묘하기가 무량한가?’
천녀가 대답하였다.
‘나는 전생에 병사왕(甁沙王) 궁중의 하인이었습니다. 그 때 그 왕궁 안에 절이 있었는데 나는 그 날 밤에 절에 들어갔다가 불당(佛堂)이 깜깜한 것을 보고 곧 거기에 등불을 켜 두었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지금 이런 몸을 받아 광명이 뛰어나며 이 천당(天堂)에서 복을 받아 쾌락이 그지없습니다.’”
또 『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여러 제자들의 덕이 각각 같지 않았다. 사리불은 지혜가 제일이고, 목건련은 신통이 제일이며, 아나율(阿那律)은 천안(天眼)이 제일이어서,통합뷰어
삼천대천세계를 다 보되 나아가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보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아난이 이것을 보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아나율은 전생에 어떤 업을 지었기에 천안이 이러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91겁 전에 비바시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이 사람은 도적이 되어 불당(佛堂)에 들어가 불당의 물건을 훔치려고 하였다. 그 때 그 불탑 속에서 부처님 앞에 켜 놓은 등불이 꺼지려 하는 것을 보았다. 그 도적은 곧 화살로 등불심지를 바로잡아 불을 밝게 하다가, 부처님의 위엄스런 광명이 빛나는 것을 보고는 털이 곤두서서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다른 사람은 오히려 물건을 보시하고 복을 구하는데, 나는 어찌하여 도적질을 하는가?≻
그리고는 도적질을 그만두고 거기에서 떠나갔다.
그는 이 등불 심지를 바로잡은 복덕의 인연 때문에 그 뒤로 91겁 동안 항상 좋은 곳에 태어나서 차츰 여러 가지 악을 버리고 복이 날마다 늘어갔느니라. 지금은 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닦고 아라한을 증득하여 대중들 가운데 천안으로 꿰뚫어 보는 것이 제일이 되었거늘 하물며 어떤 사람이 마음으로 살을 베어 부처님 앞에 등불을 켜는 것이겠느냐? 그가 얻는 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리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불탑 속에서 구슬을 훔치거나 또는 등불을 도적질하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고 설령 인간 세상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세상마다 눈 먼 봉사가 될 것이다.”
또 『관정경(灌頂經)』에서 말하였다.
“구탈(救脫)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족성(族姓) 남녀로서 몹시 쇠약해져서 평상에 누워 아파하고 괴로워하는데도 아무도 구호하는 사람이 없으면, 나는 지금 마땅히 여러 스님들을 초청하여 이레 낮ㆍ밤 동안 재계한 뒤에 열심으로 여덟 가지 금계(禁戒)를 받아 지니고 온 종일[六時] 도를 행하며 이 경전을 마흔아홉 번 독송하겠습니다.
그리고 7층의 등불을 켜고 다섯 가지 색깔의 속명신번(續命神幡:목숨을 연장시키게 하는 신비한 번기)을 달도록 권유하겠습니다.’
아난이 여쭈었다.
‘속명번기와 등을 다는 법은 어떠합니까?’
‘신번은 다섯 가지 색으로 49자[尺]입니다. 등불도 또한 그렇습니다.통합뷰어
7층의 등불은 한 층에 일곱 개의 등불을 다는데 등은 수레바퀴와 같습니다. 만약 액난(厄難)을 만나 감옥에 갇히고 몸에 칼과 족쇄를 찼더라도 또한 번기와 등을 만들어 달고 여러 잡류(雜類)의 중생들을 놓아 주어 49일을 지내면 위급한 액난을 잘 넘길 수 있고 또 모든 횡액이나 악귀에 붙잡히는 일들도 없을 것입니다.’”
또 『초일명삼매경(超日明三昧經)』에서 말하였다.
“일천왕(日天王)은 수없이 많은 천인(天人)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아뢰었다.
‘어떤 행(行)으로 일천왕이 되어 4천하(天下)를 비추며, 또한 무슨 인연으로 월천왕(月天王)이 되어 깜깜한 밤의 어둠을 비추어 밝혀 줍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첫째는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는 것이요, 둘째는 몸을 닦고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며, 셋째는 계율을 받들어 범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불사(佛寺)에 등불을 밝히는 것이니라. 그렇게 하면 혹은 부모나 사문이나 도인(道人)에게 모두 광명이 드리울 것이다. 또 몸과 입과 뜻으로 살생하지 않는 등의 열 가지 선을 행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또 네 가지 일이 있어 월왕(月王)이 되었다.
첫째는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다섯 가지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이며, 셋째는 3존(尊)을 공경하여 섬기는 것이요, 넷째는 임금과 아버지와 스승 등에게 등불을 올리는 것이니라.’”
또 『승기율(僧祈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등불 켜는 것을 허락한다. 마땅히 때때로 불을 한쪽에 두었다가 점차 불을 켜되 꼭 먼저 불을 켜서 금찰(金刹)과 부처님의 형상을 비추게 하고 먼저 예배한 뒤에 차례로 다른 곳의 등불을 켜라. 등불을 끄려고 할 때에는 갑작스레 끄지 말고 꼭 여러 대덕들에게 불을 끄겠다고 말할 것이며, 입으로 불어서 끄는 것은 허락하지 않느니라.’”[그 뜻은 불을 먹는 벌레가 사람의 입기운으로 인해 그 벌레들이 죽을까 염려되어 입으로 불어 끄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손으로 부쳐서 끄거나 옷이나 부채로 부쳐서 끄는 것을 허락한다. 마땅히 나그네가 머리를 숙이고 불을 켜가지고 들어가려고 할 때에는 갑자기 들어가지 말고 반드시 큰소리로 ≺대덕 스님이시여, 등불을 가지고 들어가려고 합니다≻라고 외치고 나서 비로소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의법(威儀法)을 어기는 것이 된다.’”
또 『삼천위의경(三千威儀經)』에 말하였다.
“등불을 켜는 데에 다섯 가지 일이 있다.
통합뷰어
첫째는 마땅히 깨끗한 수건을 가지고 안과 밖을 닦아 깨끗이 해야 하고, 둘째는 마땅히 깨끗한 심지를 써야 하며, 셋째는 마땅히 스스로 참깨 기름을 장만해야 하고, 넷째는 기름을 부을 때 넘치지도 말고 너무 적지도 않아야 하며, 다섯째는 마땅히 보호하여 견고하게 하되 사람이 다니는 길에 방해가 되도록 달지 않아야 한다.”
또 『오백문사(五百問事)』에 말하였다.
“‘부처님의 광명을 이어지게 하여 낮에도 끄지 말라. 부처님께서는 밝음과 어둠이 없으며 본래 말과 생각의 제한(齊限)도 없기 때문에 죄를 소멸시킬 수 있다.’
또 대당삼장(大唐三藏) 파파사(波頗師)가 말하였다.
‘부처님 앞에 켤 등을 가져올 데가 없으면 다른 데서 가져오는 한이 있더라도 광명을 없애서는 안 된다.’
게송을 읊는다.

연꽃과 나무들은 끝없이 섞였는데
꽃구름의 옷은 여러 겹이다.
대나무를 엮어 능숙하게 코끼리를 만들고
갈대를 묶어 솜씨 있게 용을 만든다.

재를 떨어뜨려 많은 꽃술 태우고
기름을 부어 그림 봉우리 적신다.
만일 천궁(天宮)을 잘 비추면
등왕(燈王)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

감응연(感應緣)[대략 세 가지 증험만을 인용하였다.]

송(宋)나라 사문 석도경(釋道冏)
수(隋)나라 사문 석법순(釋法純)
당(唐)나라 간주(簡州) 삼학산사(三學山寺)의 신등(神燈)

① 송(宋)나라 사문 석도경(釋道冏)
송(宋)나라 경사(京師)에 있는 남간사(南澗寺) 석도경(釋道冏)의 성은 마(馬)씨이고 부풍(扶風) 사람이다. 처음 출가하여 도의(道懿)의 제자가 되었다. 도의는 병이 있어 항상 도경 등 네 사람을 보내어 하남(河南)의 곽산(霍山)에 가서 종유(種乳)를 캐어 오라 했다. 그들은 굴에 들어가 몇 리쯤 가서 나무를 타고 물을 건너다가 세 사람이 모두 물에 빠져 죽었고 또 횃불마저 꺼졌으므로 도경은 건널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도경은 본래 『법화경』을 외웠으므로 오직 이 업만을 의지했고 또 관음보살을 염했다. 한참 있다가 반딧불 같은 어떤 빛을 보았다. 그는 그것을 쫓아가다가 마침내 굴을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선정을 더욱 닦고통합뷰어
절행(節行)이 더욱 새로워져 자주 보현보살의 재(齋)를 지냈는데 모두 이상한 징조가 있었다. 혹은 호승(胡僧)이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말을 탄 사람이 오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로 문안 인사도 하기 전에 그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그 뒤에 그는 여러 동학(同學)과 함께 서울에 가서 돌아다니면서 풍속과 문화를 관찰했다. 밤에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다가 중간에서 얼음이 깨어져 세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 도경은 또 정성껏 관음에 귀의했다. 이에 발 밑에 어떤 물건이 받치는 것 같고 또 빨간 빛이 앞에 있는 것을 보고는 그 빛을 타고 언덕에 이르렀다.
서울에 도착하여 남간사(南澗寺)에 있을 때는 항상 반주(般舟)로 업을 삼았다. 한 번은 밤중에 참선하고 있을 때 갑자기 네 사람이 나타나 수레를 타고 방 앞에 와서 그를 불러 수레에 오르라 했다. 도경은 어느새 자신이 그 군(郡)의 뒤에 침교(沈橋) 사이에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길 위의 호상(胡床)에 앉아 있고 그 곁에 시자(侍者) 수백 명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도경을 보고 놀라 일어나면서 말하였다.
‘참선하는 사람이구나.’
그리고는 그 시자들에게 말하였다.
‘아까 여기 올 때는 저 사람에게 있는 곳만을 알려 주라 했는데, 왜 갑자기 법사를 괴롭혔는가?’
그리고 도경에게 예배하고 헤어질 때는 사람을 시켜 보내 주었다.
도경은 절에 돌아와 문을 두드렸다. 한참 만에야 문이 열려 절에 들어가 보았으나 방문은 그대로 닫혀 있었다. 대중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송나라 원가(元嘉) 20년에 그는 임천강왕(臨川康王)의 의경(義慶)을 따라 광릉(廣陵)으로 갔다가 거기서 죽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② 수(隋)나라 사문 석법순(釋法純)
수(隋)나라 서경(西京)에 있는 정주사(淨住寺) 석법순(釋法純)의 성은 축(祝)씨요, 부풍(扶風)의 시평(始平) 사람이다. 그의 성질은 고요한 숲을 좋아하고 정(情)은 가난한 이를 구제하기 좋아했다. 그는 일찍이 도량에 등불을 켜 마침내 큰 감응을 얻었다. 즉 그 등불은 계속 불이 붙어 7일 동안 계속 밝았으나 기름이나 심지를 갈지 않아도 불빛은 전보다 배나 밝았다. 그는 혼자 이상하게 여기면서 번뇌를 멸할 아름다운 현상이라 생각했다. 또 불당 안에 있던 호롱이 갑자기 보이지 않다가 이틀 밤을 지내고서야 비로소 제자리에 돌아왔다.통합뷰어
그러나 기름은 그대로 가득 차 있었다.
또 밤이 고요할 때마다 설법하는 교수(敎授)의 소리가 났고 이상한 향기가 문틈을 새어 나와 밖에까지 뻗쳤다. 대중들이 가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식자(識者)들은 신령이 모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수(仁壽) 3년(603)에 그는 병이 들어 낫지 않자 문을 닫고 고요히 앉았으나 아픈 데가 없었으며, 흰 옷 입은 동자가 손에 광명을 받들고 오른쪽에 서 있었다. 제자 혜진(慧進)이 들어와 물었다.
“이 아이는 누굽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이 아이는 6욕천(欲天)인데 자주 와서 내게 명을 전하기를, ‘모든 하늘들이 음악에 집착하지만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도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항상 불법이 없는 곳에 태어나서 중생을 교화하기를 서원하라. 그리고 부디 이런 말을 내지 말라고 하였다.”
그가 죽은 뒤에 제자들이 재를 올리고 복을 닦을 때는 도인과 속인들이 모두 다 모여 법순의 앞에 있었다. 그의 임종 때 비둘기 두 마리가 법순의 방에 날아 들어 옷걸이 위에 앉아 그를 응시하면서 사람이 붙들어도 겁을 내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법순이 말하였다.
“붙들지 말고 그대로 두라. 저녁 때가 되면 갈 것이다.”
대중에게 하직하면서 다른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정주사에서 죽으니 나이는 85세요, 그 해는 즉 인수 3년 5월 12일이었다.
③ 당(唐)나라 간주(簡州) 삼학산사(三學山寺)의 신등(神燈)
(唐)나라 촉천(蜀川) 간주(簡州)에 있는 삼학산사(三學山寺)는 수(隋)나라 개황(開皇) 12년(592)에 이르러 그 절 동쪽 벽에 부처님 발자국이 나타났다. 길이는 1척 8촌이요 너비는 7촌이었다. 또 신등(神燈)이 공중에 나타났는데 매일 밤 그러했으며 재일(齋日)에는 특히 더 많았다.
간주의 주재(州宰)는 마음 속으로 그것을 찾아보려고 말을 타고 절에 갔다. 10리 밖에서는 공중에 달린 등이 죽 벌려 보이다가 점점 가까이 올수록 차츰 어두워지더니 마지막에는 모두 없어졌다. 다시 10리를 도로 가서 돌아보면 여전하였는데 지금도 끊이지 않고 그대로 있다. 처음에 큰 등 하나가 나타나고 이 큰 등이 사방 허공에 흩어져 천여 개로 나타나면, 큰 바람이 일어나 이 작은 등불을 불어 도로 다 끈다.통합뷰어
꺼지고 나면 큰 등이 다시 나타나 작은 등으로 사방 공중에 흩어져 있다가 날이 밝으면 비로소 꺼진다. 달마다 6재일에는 항상 이러했다.
정관(貞觀) 말년에 법장(法藏)이라는 스님은 행걸(行乞)에만 마음이 있고 사소한 행은 지키지 않았다. 그가 밤에 절에서 잠을 자는데 어떤 큰 신(神)이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와서, 그를 문으로 끌어내어 절 밖으로 7리쯤 던져버렸다. 그는 발만 조금 다치고 다른 데는 아무 손상도 없었다. 그는 밤에 곧 절에 돌아왔으나 겹문이 다 닫혀 있었다. 그 뒤에 그는 참회하고 부지런히 도를 닦았다.[이 한 가지 증험은 『당고승전(唐高僧傳)』에 나온다.]

『도선율사감통기(道宣律師感通記)』에 율사가 천인(天人)에게 물었다.
“촉나라 간주(簡州) 삼학산(三學山)에 있는 절에 허공에서 등불이 항상 비친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엇으로 인해 있는 것인가?”
천인이 대답하였다.
“그 산에 보살사(菩薩寺)가 있는데 그것은 가섭불이 정법(正法) 때에 처음 세운 것인데 환희왕(懽喜王)보살이 그 절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 절의 이름을 법등(法燈)이라고 합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늘 공중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산에는 항상 작은 보살 3백 명이 곡식을 먹지 않으나 오래 살고 늘 그 산에 머물고 있습니다. 또 그 산의 등(燈)에는 산신인 이특(李特)[특은 옛날의 촉나라 임금]이 계속 공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월이 되면 곳곳에 등을 켜 이 절에 공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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