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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480 법원주림(法苑珠林) 37권

by Kay/케이 2024.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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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37

 

법원주림 제37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35. 경탑편(敬塔篇)①[여기에 6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흥조부(興造部)
감복부(感福部) 선요부(旋繞部) 수고부(修故部)

(1) 술의부(述意部)
삼가 생각해 보건대 여래(如來)께서는 중생의 호응에 따라 나타나시니 묘한 색신이 삼천세계에 드러나시고, 정각(正覺)께서는 광명을 감추셨지만 남기신 형상은 팔만 세까지 전해진다.
그런 까닭에 탑(塔)은 영산(靈山)에 솟아 있고 그림자[影]는 석굴(石窟)에 머무른다. 박달나무에 새기고 비단 천에 그린 위의(威儀)와 금(金)을 녹여 만들고 옥(玉)에 새긴 형상은 몸을 보전하고 몸을 부순 자취요, 탑을 모으고 탑을 흩어지게 한 기적(奇蹟)이다.
그런데 그 광명은 겹겹이 어두운 곳을 비추고 그 복덕은 중생[含識]을 돕는다. 꽃다운 명성과 멀리까지 찬미함은 삿된 무리들로 하여금 믿음을 맺게 하였으니, 맨 먼저 아육왕(阿育王)이 처음으로 열었고, 맨 마지막엔 대당(大唐) 초기까지 전해졌다. 역대에 번성하게 일어난 때로부터 신화(神化)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바른 법이 머무르기도 하고 바른 법이 멸하여 사라지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였으니, 그 뜻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2) 인증부(引證部)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석실(石室)에 그림자[影]를 남기셨으니, 그것은 나건가라국(那乾呵羅國) 독룡지(毒龍池) 옆에 있다. 부처님께서는 용지의 석실굴 속에 앉으시어 용을 위해 열여덟 가지 변화를 부려 몸을 솟구쳐 돌 속으로 들어가셨다. 비유하면 마치 맑은 거울과 같아서 돌 속에 계신데도 바깥으로 내비쳤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보이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나타나지 않는다. 백천(百千) 여러 하늘들이 부처님의 그림자에 공양하자 그 그림자가 또한 나타나 법을 설하였다[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미륵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도리천(忉利天) 성의 동쪽 조명원(照明園) 안에는
불발탑(佛髮塔)이 있고, 성 남쪽 추삽원(麁澁園) 안에는 부처님의 옷탑[佛衣塔]이 있으며, 성 서쪽 환희원(歡喜園) 안에는 부처님의 발우탑[佛鉢塔]이 있고, 성 북쪽 가어원(駕御園) 안에는 부처님의 치아탑[佛牙塔]이 있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천제석(天帝釋)이 보살의 머리털과 옷을 가지고 천상(天上)의 성 동쪽 문 밖에다가 부처님의 불발탑(佛髮塔)과 불의탑(佛衣塔)을 세웠다.”
또 『육왕전(育王傳:阿育王傳)』에서 말하였다.
“왕은 신심(信心)이 생겨 도인(道人)에게 말하였다.
‘내가 옛부터 지금까지 살해했던 것은 꼭 이유가 있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어떤 선업(善業)을 닦아야 이 재앙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도인이 대답하였다.
‘오직 탑을 세우고 많은 스님들을 공양하며,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을 방면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하는 것뿐입니다.’[그러므로 『비유경(譬喩經)』에 말하기를 “왕궁(王宮) 안에서 항상 네 가지 일로 2만이나 되는 사문(沙門)을 공양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예(禮)를 갖추었다”고 한 것이다. 그 이하의 내용은 여기에 다 갖추어 기록하지 않는다.]
왕이 말하였다.
‘어느 곳에 탑을 세워야 하겠습니까?’
도인은 곧 신통력으로써 왼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8만 4천의 길을 만들어 염부제(閻浮提)의 이곳 저곳을 비추면서 말하였다.
‘이 빛이 비추는 곳마다 모두 탑을 세우십시오.’
아직까지 여러 탑이 남아 있는 것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 때 왕은 사리탑(舍利塔)을 세우고자 하여 네 부류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왕사성(王舍城)에 이르러서 아사세왕(阿闍世王)이 세운 부처님의 탑 안에 사리를 거두고 다시 이 탑을 수리하여 전과 다름이 없게 하였다. 이와 같이 다시 일곱 개의 부처님 탑 속에 들어 있던 사리를 거두어 가지고 중마촌(衆摩村)으로 갔다.
그 때 여러 용왕들은 이 왕을 데리고 용궁으로 들어갔다. 왕은 용이 내놓은 사리를 보고는 공양을 올리니, 용은 곧 그 사리를 나누어주었다.
그러자 왕은 8만 4천의 금ㆍ은ㆍ유리ㆍ파리(頗梨)로 상자를 만들어 부처님의 사리를 담았다.
또 8만 4천 보배 병을 만들어서 이 상자를 그 병 속에 넣었다. 또 한량없는 백천 개의 번기[幡]ㆍ당기[幢]ㆍ일산[傘蓋]을 만들고, 모든 귀신들을 시켜 각각 사리와 공양 도구들을 가지게 하고는 그 귀신들에게 칙명을 내렸다.
‘염부제에 있는 바닷가 성읍(城邑)과 마을[聚落]에 이르러 1억 정도 되는 집에 세존(世尊)을 위하여 탑을 세워라.’

그 때 한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의 이름은 덕차시라(德叉尸羅)였다. 그 나라에는 36억이나 되는 집이 있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이 귀신들에게 말하였다.
‘36개의 상자에 담겨 있는 사리를 우리에게 주면 우리들이 부처님의 탑을 세우겠다.’
왕은 방편을 써서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주어 집 수효에 맞추어 탑을 세우게 하였다.
그 때 파련불(巴連弗) 고을에 어떤 상좌(上座)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야사(耶舍)라고 하였다. 왕이 그곳에 나아가 상좌에게 말하였다.
‘제가 하루 동안 8만 4천 개씩 탑을 세워 이 염부제에 골고루 가득 차게 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러자 그 상좌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훌륭하십니다. 대왕이시여, 지금 이후로는 매달 보름날 점심 식사 때마다 이 염부제로 하여금 일시에 모든 부처님의 탑을 세우게 하십시오.’
이렇게 그 수효대로 하여 마침내 하루 동안에 8만 4천 개의 탑을 세웠으니, 세간의 인민들에겐 경사를 일으킴이 한량없었다. 모두들 그 탑을 아육왕탑(阿育王塔)이라고 불렀다.”
또 『대아육왕경(大阿育王經)』에 말하였다.
“여덟 나라에서 똑같이 사리를 나누었다. 아사세왕은 그 사리의 수를 나눌 때 8만 4천 개를 얻었고, 또 따로 부처님의 수염을 얻어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도중에 재난을 만났는데 그것은 곧 두화(頭禾) 용왕이 자신에게 사리를 나누어 줄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사세왕이 주지 않자 용왕이 곧 말하였다.
‘나는 여기 사는 용왕인데 내 힘으로 그대의 나라를 부수어 버릴 수도 있다.’
아사세왕은 두렵고 무서워서 곧 부처님의 수염을 그에게 주었다. 용왕은 그것을 가지고 돌아가 수미산(須彌山) 아래 높이 8만 4천 리쯤 되는 곳에 내려와서 수정탑(水精塔)을 세웠다.
아사세왕은 본국으로 돌아와서 그 사리를 자금함(紫金函)에 담아 천년 등불[千年火燈]을 만들어 밝히고 다섯 긍가강[殑伽河] 물 속에 탑을 세워 묻어두었다.
그 뒤에 아육왕이 그 나라를 빼앗았다. 왕이 부인을 맞이했는데 신장(身長)이 여덟 자나 되었고 머리카락 길이도 또한 그러하였으며 수많은 상호를 원만하게 갖추었다. 왕은 관상가를 시켜 그의 상을 보게 하였다.
관상가가 말하였다.
‘장차 왕께서는 금색의 아드님을 낳으실 것입니다.’
왕은 곧 그녀를 두 번째 부인으로 삼았고, 그녀는 마침내 아이를 가져 열 달이 찼다. 왕이 볼 일이 있어서 밖으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왕후[太后]가 둘째 부인을 질투하여 곧 방편을 써서 다른 여인들과 공모하여 그녀를 없애버리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출산에 임박한 어미 돼지를 구해 놓고 둘째 부인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나이가 젊은 데다가 이번이 초산[始産]이니, 얼굴을 드러내놓고 하늘을 보아서는 안 된다.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한다.’
둘째 부인은 곧 금색 아들을 낳아 그 광명이 온 궁중을 비추었다. 태후는 몰래 그 아이를 훔쳐 가지고 데리고 가서 죽여버리고 새끼 돼지를 산모 곁에 놓아 두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꾸짖어 말하였다.
‘너는 마땅히 대왕을 위하여 금색 왕자를 나을 것이라고 말하더니 무슨 까닭에 돼지 새끼를 낳았느냐?’
그러면서 곧 윤두(輪頭)로 그녀를 때리고 후원(後園)에 가두어 두고는 나물만 먹게 하였다. 왕이 돌아와 그 말을 듣고 매우 불쾌해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왕이 후원으로 나가 그녀를 보고는 옛날을 생각하여 궁중으로 데리고 왔다. 둘째 부인은 점점 왕과 친근하게 되자 그 동안의 상황을 모조리 이야기했다. 왕은 그 이야기를 듣고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곧 8만 4천이나 되는 부인을 다 죽여버렸다. 그리고 아육왕은 그 후에 성 밖에다 지옥을 짓고 모든 죄인들을 다스렸다.
부처님께서는 왕이 모든 부인을 죽임으로써 장차 지옥에 떨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곧 소산(消散) 비구를 보내어 왕을 교화하게 하였다. 그러자 왕은 믿음을 내어 깨닫고 나서 그 비구에게 물었다.
‘8만 4천이나 되는 부인을 죽인 죄를 속죄할 방법이 있습니까?’
도인(道人:北丘)이 대답하였다.
‘그 부인들 각각을 위하여 탑 하나씩 세우고, 그 탑 아래에 사리 하나씩을 넣어 두면 마땅히 그 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곧 아사세왕의 사리를 찾았다. 그러자 나이 120살이 되는 어떤 나라 재상의 아버지가 5백 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본래의 사리를 가지고 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것을 귀신들에게 나누어주며 말하였다.
‘각각 이것을 가지고 소속 부서로 돌아가서 한날 한시에 똑같이 8만 4천 개의 절에 안치하라.’
귀신들이 말하였다.
‘중간에 많은 신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서로 알 수가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다만 돌아가서
절을 보호하고 방울만 달아두어라. 그러면 내가 반드시 아수륜(阿修輪:阿修羅)을 시켜 손으로 해를 어루만지게 하고 사천하를 동시에 진동하게 하리라.’”
또 『아난경(阿難經)』에서 말하였다.
“1,200개의 탑을 조성(造成)하고 천으로 번기와 갖가지 꽃을 만들었으나 미처 번기를 달기도 전에 황공하게도 왕이 죽어버렸다.
탑이 이룩된 지 6일 만에 왕은 자신의 정원으로 승려들을 초청하여 공양하였다. 그 때 우파굴다(優波崛多:優婆毱多) 아라한이 1만 8천 아라한을 거느리고 왕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존자 굴다는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신체가 유연했다. 그러나 왕의 몸은 추하고 더러웠으며 피부까지 거칠었다. 존자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내가 보시를 행할 때엔
깨끗한 마음에다 좋은 재물이었지만
그러나 대왕이 부처님께
모래를 보시한 것만 못하네.

왕이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부처님께 모래를 보시하고도 이와 같은 과보를 얻었다. 그러니 어떻게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겠는가?’
왕은 그 후에 부처님의 제자인 가섭(迦葉)과 아난(阿難) 등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의 제자들이었던 사람들의 탑이 있는 곳을 몸소 찾아가서 슬픈 감정을 표하고 자책하는 마음으로 공경을 다하였다.
또 각각의 탑마다 갖가지로 공양하고 다시 큰 탑을 세웠는데, 새로 세운 각각의 탑마다 10만 냥의 귀중한 보배로 공양하였다.
다음에는 박구라(薄拘羅)1)의 탑에 이르러 공양하고 왕이 물었다.
‘이 사람에게 무슨 공덕이 있었습니까?’
굴다 존자가 대답하였다.
‘그는 아무 병도 없는 것으로 제일가는 사람이며, 나아가 남을 위해서 한 구절의 법도 말하지 않고 항상 침묵하여 말이 없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러면 1전(錢)을 공양하겠습니다.’
모든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공덕은 이미 동등한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1전만을 공양하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내가 설하는 게송을 들으라.’

비록 무명(無明)의 어리석음을 제거했다 하더라도
지혜만이 능히 거울처럼 살필 수 있네.
아무리 저 박구라가 있다고 해도
이 세상에 무슨 이익이 있으리.


그 때 그 1전의 돈이 왕의 처소로 되돌아왔다. 그러자 대신들은 이 희유(希有)한 일을 보고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그를 찬탄하였다.
‘아아, 존자시여, 참으로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십니다. 그리하여 1전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왕은 보리수(菩提樹)에 많은 것을 공양했다. 왕에게는 부인이 있었으니, 그 이름을 저사라치다(低舍羅絺多)라고 하였다. 그는 생각하였다.
≺왕은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생각하신다. 그런데도 왕은 지금 나와 진귀한 보배를 버리시고 보리수 아래로 가시는구나. 내가 방편으로 저 나무를 죽게 하여 왕을 그곳에 가지 못하게 하고 나와 함께 서로 즐기며 살아가게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부인은 곧 사람을 보내 뜨거운 우유를 그 나무에 뿌리게 하였다. 그러자 나무는 잎이 시들더니 모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왕은 그 말을 듣고 혼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부인은 왕이 시름에 잠겨 기뻐하지 않는 것을 보고 왕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만약 저 나무가 없으면 내 목숨도 없는 것입니다. 여래께서 저 나무 밑에서 도를 증득하셨습니다. 저 나무가 이미 죽어가고 있으니 무엇으로 살려야 하겠습니까?’
그리고는 찬 우유를 나무에 주자 그 나무가 다시 살아났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나무 아래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다가 천 개의 항아리에 담긴 향나무 달인 물을 보리수에 쏟아 물을 대주자 나무는 보다 싱싱하게 우거졌다.
그 뒤에 왕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손에 향로를 들고 전상(殿上)에 올라 사방을 향해 예를 올리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곳에 계시는 여래의 어질고 거룩한 제자들이시여, 저를 가련하게 생각하여 이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이와 같이 말할 때에 30만 비구들이 모두 와서 모였다. 그렇게 모인 대중들 가운데 10만 명은 아라한(阿羅漢)이었고, 20만 명은 학인(學人)과 범부들이었다. 궁중 사람들과 태자와 뭇 신하들이 왕과 함께 지은 공덕은 한량없이 많아 이루 다 기록할 수조차 없다.”
또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아육왕(阿育王)이 비구에게 물었다.
‘누가 불법 가운데 제일 큰 보시를 행하였습니까?’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급고독(給孤獨) 장자가 가장 큰 보시를 행하였습니다.’
왕이 물었다.
‘그의 보시가 얼마나 됩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억천 금을 보시하였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하였다.
‘저 장자(長者)도 오히려 억천 금을 보시하였는데, 나는 지금 왕이 되어가지고서 어찌 억천 금만을 보시하겠는가? 나는 억백천 금을 보시하리라.’
그리하여 마침내는 개인의 창고까지 다 비우고 이 염부제의 부인ㆍ채녀(婇女)ㆍ태자ㆍ대신들까지 다 데리고 가서 거룩한 스님들께 모조리 보시하였다.
그리고는 뒤에 40억 금(金)으로써 그들을 다시 사서 취하였으니 이와 같이 계산하다면 총 96억천 금이나 되었다.
이윽고 왕은 중한 병을 얻어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이렇게 말하였다.
‘항상 억백천 금으로 공덕 짓기를 원했었다. 지금 그 원을 다 채우지 못하고 갑자기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는데 다만 4억 금이 덜 찼을 뿐이다.’
왕이 이렇게 말하고는 곧 모든 진귀한 보물들을 챙겨 계두마사(雞頭摩寺)로 보내고 나아가 아마륵(阿摩勒) 열매 반쪽을 스님들에게 주고는 그 스님들의 발에 예배하고 크고 거룩한 대중들께 문안을 올린 뒤에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 염부제를 다스렸지만 내가 소유하고 있던 것은 이제 다하여 자재롭지 못합니다. 오직 이 과일 반쪽뿐이니,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받아주시고 저로 하여금 복을 얻게 해주십시오.’
상좌(上座) 야사(耶舍)가 그것을 갈아 석류 국[石榴羹]에 넣어 모든 스님들에게 고루 돌리게 하였다.
그리고는 왕이 다시 곁에 있던 신하에게 물었다.
‘누가 이 염부제의 왕이냐?’
모든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 곧 이 염부제의 왕이십니다.’
그 때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사방을 돌아보며 합장하고 예를 올리고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지금 다시 이 염부제를 삼보께 드립니다.’
그 때 왕은 이 말을 종이에 써서 봉함한 뒤에 치인(齒印)2)을 찍었다. 이와 같은 일을 다 마치고 나서 곧 숨을 거두었다.
그 때 태자와 모든 인민들은 여러 가지로 공양을 하여 장례를 치르고 왕법(王法)에 의하여 화장[闍維]하였다.”

또 『법익경(法益經)』에서 말하였다.
“‘지금 이 대지(大地)는 삼보에 속해 있는 것인데, 어떻게 태자를 세워서 왕으로 삼겠는가?’
여러 신하들이 듣고 나서 다시 4억 금을 내어 절에 보내고 그것을 가지고 그 땅을 샀다.”
또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하였다.
“아육왕은 금전 96억으로 8만 4천 개나 되는 보배탑을 세우고 다시 갖가지 큰 보시를 하였다.”

(3) 흥조부(興造部)

自述
이상에서 인용한 경론에서 탑을 세워야 하는 이유를 이미 다 알았다. 그러나 아직 탑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는 몇 종류나 있는지는 잘 모른다. 또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범부인가 하는 것도 모른다.
범어(梵語)와 한어(漢語)가 같지 않고 번역의 전후에 따라서 이름도 다양하며 글의 잘잘못도 있다.
이른바 탑(塔)을 혹은 탑파(塔婆)라고도 하는데 이 나라 말로는 방분(方墳)이라고 한다. 혹은 지제(支提)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번역하면 ‘악을 멸해 없애고 선을 내는 곳’이라는 뜻이다. 혹은 두수파(斗藪波)라고도 하는데 이곳 말로는 보호하고 찬탄한다는 뜻이니, 어떤 사람이 찬탄하고 옹호한다고 한 말과 같다. 서역 범어(梵語)의 정음(正音)으로는 솔도파(窣堵波)라고 하는데 여기 말로는 묘(廟:사당)라고 한다. 묘라는 것은 모양[貌]이니 이것은 곧 영묘(靈廟)를 말하는 것이다.
탑을 세우는 데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사람이 훌륭함을 표현하는 것이요, 둘째는 다른 이로 하여금 믿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이다. 만일 그가 평범한 비구라 할지라도 덕망이 있으면 탑을 세울 수 있으나 나머지는 합당하지 못하다.
또한 지제를 세우는 곳으로는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태어난 곳이요, 둘째는 도를 증득한 곳이며, 셋째는 법륜(法輪)을 굴린 곳이요, 넷째는 열반(涅槃)한 곳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과 도를 증득하신 이 두 곳에는 결정코 지제가 있다. 태어나신 곳으로 말하면 틀림없이 아수가(阿輸柯)3)나무 아래에서 태어나셨다. 이 나무를 여기 말로 번역하면 무우수(無憂樹)라고 하며, 이곳이 바로 부인께서 태자를 출생하신 곳이다. 그래서 이 나무 밑을 생처지제(生處支提)라고 말한다.
여래께서 도를 증득하신 곳은 보리수 밑이니, 그래서 이 나무 밑을 득도지제(得道支提)라고 말한다.

또 여래께서 법륜을 굴리신 곳과 열반하신 곳, 이 두 곳은 결정된 것이 없다. 다섯 비구를 위해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실 때는 녹원(鹿苑)에 계셨는데, 가로와 세로가 각각 25심(尋)이다. 1심은 8자[尺]를 말하는 것인데, 옛날 사람들은 신장이 컸기 때문이다. 1심이 8자라면 도합 20장(丈)이 된다. 지금 천축 사람들은 곳곳마다 많은 법륜을 세워 굴리는데 가장 좋은 곳 한 곳만을 취하고 이 양(量)에 의하여 세 기둥을 세우고 세 바퀴를 두어 부처님께서 옛날에 법륜을 세 번 굴리신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이곳을 전법륜지제(轉法輪支提)라고 말한다.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곳에는 사리를 안치하고 곧 이곳을 열반지제(涅槃支提)라고 말한다. 현재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열반사(涅槃寺)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정해진 곳에 해당된다. 만약 사리에 의거하여 곳곳마다 탑을 세운다면 그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이 네 가지를 모두 솔도파라고 말한다.”
또 『비바사론(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태어나신 곳과 법륜을 굴리신 곳에 큰 탑을 세우고, 또 어떤 사람이 작은 돌을 가져다가 탑을 만들었다면 그 복은 앞에서 큰 탑을 만든 것과 동등하니, 모두 존중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여래를 위하여 대범(大梵)이 큰 탑을 세우거나 혹은 작은 탑을 세웠다면, 그 한 일이 같기 때문에 그 복도 다르지 않다.”
또 『아함경(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네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꼭 탑을 세워야 한다.
첫째는 여래요, 둘째는 벽지불(辟支佛)이며, 셋째는 성문(聲聞)이요, 넷째는 전륜성왕[輪王]이다.”
또 『십이인연경(十二因緣經)』에서 말하였다.
“여덟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이들에게는 탑을 세워 줄 수 있다.
첫째는 여래요, 둘째는 보살이며, 셋째는 연각(緣覺)이요, 넷째는 아라한이며, 다섯째는 아나함(阿那含)이요, 여섯째는 사다함(斯陀含)이며, 일곱째는 수다원(須陀洹)이요, 여덟째는 전륜성왕이다. 만약 전륜선왕 이하의 사람들이라면 탑을 세워 노반(露槃)4) 하나를 안치할 수 있으나 거기에 예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인의 탑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과(初果:須陀洹)를 얻은 사람은 노반이 두 개요, 나아가 여래에 이르면 노반이 여덟 개이니 이상은 모두 불탑(佛塔)이다.”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처음으로 승가람(僧伽藍)을 지을 때에는 먼저 좋은 터를 잡고 장차 탑을 세우려는 곳은 남쪽에 두지도 말고 서쪽에 두어서도 안 되며, 반드시 동쪽이나 북쪽에 두어야 한다. 불지(佛地)나 승지(僧地)를 침범하지 않아야 하며, 승방(僧房)은 서쪽이나 남쪽에 지어야 한다.
부처님의 탑은 높이 드러난 곳에 세우고 탑원(塔院) 안에서는 더러운 것을 빨거나 옷을 널어 말리거나 침을 뱉지 않아야 한다. 부처님의 탑 네 면에는 감실[龕]을 만들고 거기에다 사자와 새ㆍ짐승 등 갖가지 그림을 그릴 것이며, 그 안에는 번기와 일산을 달아야 한다. 부처님의 탑 네 면에는 갖가지 공원을 만들고 꽃과 과일 나무를 심되, 그 공원에서 피는 꽃은 꼭 탑에만 공양해야 한다.
만약 나무를 단월(檀越)이 스스로 심었으면 단월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안에서 피는 꽃은 부처님께 공양하고 과일은 스님들께서 드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단월의 말을 따라야 한다. 만약 꽃이 많으면 화만(華鬘)을 만드는 사람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하라.
≺너에게 꽃을 주노니 화만을 만들어 나에게 주되, 남는 것은 적당한 값을 쳐서 나에게 달라. 만약 돈을 벌었으면 그 돈으로 연등과 향을 사서 부처님께 공양하고 아울러 탑을 수리하는 데 쓰도록 하라. 만약 돈이 많으면 부처님의 다함이 없는 물건[無盡物] 안에 두어라.≻
만약 누가 부처님께서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다고 하여 그 꽃과 과일을 자신을 장엄하는 데 쓰면서 즐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얻는 죄의 과보가 무거울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또 지제(支提)를 만들 수도 있다. 사리(舍利)가 있는 것을 탑이라고 말하고, 사리가 없는 것을 지제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 도를 증득하신 곳, 법륜을 굴리신 곳, 부처님께서 열반[泥洹]하신 곳과 보살의 상(像), 벽지불의 상과 부처님의 발자취가 있는 곳의 모든 지제에는 부처님을 안치하고 꽃과 일산 따위를 공양하라. 공양할 때에는 상등품은 부처님의 탑에 공양하고 조금 품질이 낮은 것은 지제에 공양하라. 만약 갑자기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에는 마땅히 공양거리를 거두어 가까운 곳에 갖다 두라. ≺내가 바로 상좌(上座)다. 내가 곧 아련야(阿練若)에서 걸식하는 대덕이다≻라고 말하지 말라. 그렇게 말하면 월비니죄(越毘尼罪)5)를 얻는다.

만약 탑이나 승려의 물건을 훔쳐가려고 도둑이 와서 아무리 다급한 경우가 되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물품을 감추어 두지 말라.
부처님의 물품으로는 마땅히 불상(佛像)을 장엄해야 한다. 스님이 좌구(座具)를 펴고 갖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그 도둑으로 하여금 그 모습을 보게 하라. 만약 인자한 마음이 생겨 도둑이 그 이유를 묻더라도 비구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젊은 사람이 나가서 상대하라. 만약 도둑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물건을 감출 수 없으면 꼭 이렇게 말하라.
≺일체의 행은 무상(無常)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곳을 떠나라. 이것을 난법(難法)이라고 말한다.’”

(4) 감복부(感福部)
『소미증유경(小未曾有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4천하의 풀과 나무를 다 사람으로 만들고 그 사람들이 네 가지 도과(道果)를 얻게 하거나 벽지불(辟支佛)이 되게 하고 목숨이 다하도록 네 가지 일[四事]로 공양하여 필수품을 구족(具足)하게 하며, 멸도(滅度)한 후에는 일일이 탑을 세우고 향ㆍ꽃ㆍ당기ㆍ번기ㆍ일산을 공양하며, 다시 크게 장엄한 제석의 궁전을 짓고 8만 4천 보배 기둥과 8만 4천 보배 창문과 8만 4천 천정(天井)의 보배 창문과 8만 4천 누로(樓櫓)6)와 관각(館閣)7)을 사방에 내어 둘러싸게 하여 갖가지 보배로 장식한다고 하자.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위에서와 같은 백천억 개의 크게 장엄한 궁전을 사방 승가에 보시한다면 그 복이 비록 많겠지만, 그러나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서 반열반(般涅槃)하신 뒤에 겨자씨만한 사리를 가져다가 크기가 암마륵(菴摩勒)만한 탑을 세우며, 찰간(刹竿)은 바늘만하고 그 위에 시설한 반개(槃蓋)는 대추나무 잎만하고, 만약 부처님의 형상을 보리알만큼 크게 만든다고 해도 앞의 공덕보다 나아 앞의 공덕은 여기에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또한 이 공덕이 앞의 공덕보다 천 배ㆍ만 배ㆍ백천만 배나 우세하여 미칠 수가 없으니, 이루 다 칭량(稱量)할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만 하느니라. 여래의 한량없이 많은 공덕, 즉 계분(戒分)ㆍ정분(定分)ㆍ지혜분(智慧分)ㆍ지견해탈분(知見解脫分)의
한량없이 많은 공덕에는 큰 신통 변화와 6바라밀(波羅蜜) 등 한량없이 많은 공덕이 있느니라.’”
또 『무상의경(無上依經)』에서 말하였다.
“아난이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이와 같이 말하였다.
‘제가 오늘 왕사성(王舍城)에 들어가서 걸식하다가 어떤 큰 2층집이 있었는데, 장엄하게 새로 지어져서 안과 밖이 완연하고 은밀한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어떤 청신인(淸信人)이 사방의 스님에게 네 가지 일을 모두 갖추어서 보시하고, 또 여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에 겨자씨만한 크기의 부처님 사리를 취하여 탑 속에 안치하되 아마라(阿摩羅)씨만큼 큰 탑을 세우고 바늘만한 찰간(刹竿)을 세우며 대추나무 잎사귀만한 크기의 노반(露槃)을 얹어 놓고 보리알만한 불상을 만든다면 이 두 가지 공덕 중에 어느 것이 더 우세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네 가지 과(果)를 증득한 성인과 벽지불(辟支佛)로 4천하를 가득 채운 것이 감자(甘蔗)숲이나 대나무ㆍ물억새ㆍ삼밭 등과 같은데 어떤 사람이 목숨이 다하도록 네 가지 일을 구족하여 공양하고 또한 그들이 열반에 든 뒤에도 다 큰 탑을 세우고는 연등을 켜고 향을 사르며 의복ㆍ당기ㆍ번기 따위로 공양한다면, 아난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 사람의 공덕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아난이 아뢰었다.
‘매우 많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아난아, 그것은 차치(且致)하고, 다시 제석천(帝釋天)이 살고 있는 궁전 같은 곳에 큰 비각(飛閣)이 있는데, 그 이름은 상승전(常勝殿)이다. 그런데 이 궁전을 갖가지 보배로 장엄한 것이 8만 4천 개가 있다고 하자.
만약 어떤 청신(淸信) 남녀가 이와 같은 상승보전(常勝寶殿)을 만들어 백천 구지(拘胝)만큼 많은 사방의 스님들에게 보시하고, 또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반열반하신 뒤에 겨자씨만한 사리를 가져다가 아마라씨만큼 큰 탑을 만들고 그 위에 바늘만한 찰간을 올려놓고 대추나무 잎사귀만한 크기의 노반(露槃)을 얹고 보리알만한 크기의 부처님 형상을 만든다면 이 공덕은 앞에서 말한 것보다 우세하여 앞의 공덕은 백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만억 분,
나아가 아승기(阿僧衹)수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또한 무엇으로 비유해도 이 공덕에 미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여래는 한량없이 많은 공덕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부수어서 티끌만한 가루로 만든 것만큼 많은 네 가지 사문과(沙門果)를 얻은 이와, 벽지불에게 만약 어떤 청신 남녀가 몸이 다하도록 공양하고 그들이 멸도한 뒤에 탑을 세우고 공양한다 하더라도 역시 겨자씨만한 크기의 사리를 취한 것으로부터 마침내 보리알만한 크기의 불상을 조성하는 데 이르기까지 그런 일들을 하면 이 공덕은 앞에서 말한 것보다 뛰어나서 그 공덕이 이 공덕에 비하여 백 분, 천만억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 어떠한 산수와 비유로도 미칠 수 없다.
이와 같이 아난아, 일체의 여래는 옛날 인지(因地)에 계실 때 중생 세계의 자성은 깨끗하나 객진번뇌(客塵煩惱)8)에 더럽혀지고 혼탁해졌음을 아시고 계셨다. 그러나 중생들의 깨끗한 세계에는 들어가지 않고서 능히 일체 중생을 위해 깊고 오묘한 법을 말씀하시어 번뇌의 장애를 제거하여 하열(下劣)한 마음을 생각하는 것과 호응하지 않게 하셨으니 그것은 도량이 크셨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존중하는 마음을 내고 큰 스승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반야(般若)를 일으키고 사나(闍那)를 일으키며 큰 자비를 일으키셨다. 이에 의거하여 법을 세워 보살은 아비발치(阿毘跋致)의 지위[이곳 말로는 불퇴(不退)이다.]에 들어갈 수 있으며 여실(如實)한 지혜에 의지하여 큰 방편을 증득하고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증득하느니라.’”
또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불ㆍ법ㆍ승에 대하여 하나의 향과 등을 공양하고, 나아가 한 송이의 꽃이라도 바치면 부동국(不動國)에 태어날 것이다. 부처님과 승가의 물건을 잘 지키고 부처님과 승가의 땅을 바르거나 쓸며,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불상과 탑을 만들되, 항상 기쁜 마음을 내면 이 또한 부동국에 태어날 것이다. 여기는 곧 정토(淨土)이니 항상 장엄하여 3재(災)에도 흔들리지 않느니라.”
또 『승기율』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구살라국(拘薩羅國)에 유행하실 때 어떤 바라문이 밭을 갈다가 세존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가지고 있던 소막대기를 땅에 세우고
세존께 예배했다. 세존께서 그것을 보시고 곧 미소를 지으셨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슨 인연으로 웃으십니까? 그 까닭을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바라문이 지금 두 부처님께 예배했느니라.’
비구들이 아뢰었다.
‘어떤 두 부처님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게 예배한 그 막대기 밑에 가섭불의 탑이 있다.’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가섭불의 탑을 보기 원하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바라문에게 흙덩이와 또 땅을 구하여라.’
그들은 곧 바라문에게 땅을 구했다. 그러자 바라문은 곧 땅을 주었고 이들은 그것을 얻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 곧 가섭불의 7보탑을 나타내었다. 그 높이는 1유연(由延)이고 그 면의 너비는 반 유순이었다. 바라문은 그것을 보고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내 성이 가섭이요, 이 흙덩이는 바로 나 가섭의 땅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그곳에 가섭불의 탑을 만들었다.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에게 그 진흙덩이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줄 수 있다.’
곧 게송을 읊으셨다.

백천 짐의 순금을
가져다가 보시를 행하여도
한 덩이 진흙 갖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불탑 만드는 그것보다 못하네.

그 때 부처님께서 과거의 부처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스스로 예배했다. 모든 비구들도 그 부처님께 예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사람들 모두 백천 금을
가져다가 보시를 행하여도
한 선심으로 공경하면서
불탑에 예배하는 그것만은 못하네.

그 때 비구들이 향과 꽃을 가지고 와서 세존께 올리고 과거 부처님을 공경하여 곧 그 불탑에 공양했다.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백천 수레의 순금을 가져다가
보시를 행한다 해도
하나의 선심으로 향과 꽃을
탑에 공양하는 그것만은 못하네.


그 때 대중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여러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라.’
게송을 외우셨다.
백천의 염부제에 가득한 순금
그것을 가져다가 보시하여도
한 법이라도 보시 행하여
수행시키는 그것만은 못하네.

그 때 그 좌중에 도를 얻은 사람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백천 세계를 가득히 채운
그 순금으로 보시를 행하여도
한 법을 보시하고 수순하여
진제(眞諦) 깨닫느니만 못하네.”

또 『법구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수만(須曼)이라는 아라한을 보내 부처님의 머리털과 손발톱을 가지고 계빈국(罽賓國) 남산 절에 가서 불탑을 만들게 하였다. 그 절에 항상 있는 5백 아라한은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우고 탑을 돌면서 예배했다. 그 산에는 5백 마리 원숭이가 있었다. 그들은 스님들이 탑을 돌며 예배하고 공양하는 것을 보고는 모두 함께 돌을 지고 와서 탑을 만들고 스님들을 본받아 그것을 돌며 예배했다.
그 때 폭우가 쏟아져 산골짜기에 물이 넘쳐 흐르는 바람에 그 원숭이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다. 7보의 궁전은 한없이 우뚝하고 의식은 저절로 생겼으며 즐거움은 끝이 없었다. 천상에 태어난 그들은 각각 생각했다.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여기 와서 태어났는가?’
그들은 곧 천안(天眼)으로 전생을 관찰해 보았다. 그들은 원숭이로서 스님들을 본받고 장난삼아 탑을 만든 것과 물에 빠져 떠내려 가다가 죽어 여기 와서 태어난 것을 알았다. 곧 모두 향과 꽃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시체에 공양하고 다시 부처님께 나아가 예배하고 문안했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5백 천자(원숭이)들은 한꺼번에 모두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천상으로 돌아갔다.
원숭이도 스님들을 본받고 장난삼아 탑을 만들고도 오히려 그 얻는 복의 과보가 이처럼 대단하거늘, 하물며 사람이
신심으로 탑을 만들면 어찌 과보가 없겠는가?”
또 『비유경』에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아육왕의 나라에 어떤 가라월(迦羅越)이 있었다. 그 사람의 복덕은 세간에도 드물어 무엇이나 생각하는 대로 다 이르렀다. 그 집은 7보로 이루어졌다. 합내(閤內)의 부녀(婦女)는 단정하여 짝할 이가 드물며 밤낮 서로 즐기어 쾌락이 끝이 없었다. 그 사람은 신심이 있어서 항상 2만여 스님을 청해 공양하였다. 아육왕은 이 말을 듣고는 곧 그를 불러 보고 말하였다.
‘내 들으니, 경은 큰 부자라는데 집에는 어떤 물건이 있는가?’
그는 곧 왕에게 대답하였다.
‘저의 집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왕은 믿지 않고 사람을 보내 가보게 하였다. 사신은 가보았으나 오직 대문과 합문이 일곱 겹으로 된 사택(舍宅)의 당우(堂宇)를 7보로 장엄하여 우뚝하기 한량없었다. 사자는 방에 들어가 보았으나 다른 물건은 아무것도 없고 부녀(婦女)만 있었는데 단정하기 짝이 없었다. 사자는 돌아와 왕에게 자세히 아뢰어 왕의 의혹이 점점 풀렸다.
그 때 가라월은 왕이 다 이해한 줄을 알고 곧 왕의 앞에 나아가 손으로 동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즉시 공중에서 7보가 내렸는데 한량없었다. 다른 세 방위를 가리켜도 다 그러했다. 왕은 이것을 보고 그것이 곧 그의 큰 복덕임을 알고는 왕은 이 일을 물어보기 위해 바로 절로 갔다. 그 절의 어떤 상좌(上座)는 아라한으로서 3명(明) 6통(通)을 다 갖추고 있었다. 왕은 그 상좌에게 물었다.
‘이 가라월은 전생에 무슨 복을 심었기에 필요한 것은 생각하는 대로 다 그에게 저절로 오는 것입니까?’
상좌가 대답하였다.
‘과거 91겁 전에 비바시불이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때 그 가라월은 네 사람과 함께 지극한 마음으로 그 부처님의 탑을 만들었습니다. 탑이 다 조성되자 7보와 좋은 꽃을 가지고 탑 꼭대기에 올라가 4면에 내리 뿌려 공양했습니다. 그러면서 발원하였습니다.
≺나로 하여금 대대로 식복이 저절로 있어
언제나 끊어지지 않게 하여지이다.≻
이 공덕의 인연으로 그 뒤 91겁 동안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 인간에 나서 식복은 저절로 해결되었고 쾌락 또한 무궁한 것입니다. 그 때 다만 식복이 무진한 것만 원하고 해탈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직 훌륭한 복만 받고 도는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대비경(大悲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3유(有)의 과보를 즐겨 거기에 집착하더라도, 부처님의 복밭에 보시를 행하고 또 다른 여러 선근으로 ≺나는 대대로 열반에 들지 않기를 원합니다≻라고 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이런 선근으로 열반에 들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람은 비록 열반을 즐겨 구하지 않았지만, 부처님께 여러 선근을 심었으니 나는 ≺이 사람은 반드시 열반에 들 것≻이라고 말한다.’”
또 『백연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위성(舍衛城)에 어떤 장자가 있었다. 그 집은 큰 부자로서 재보가 무량하여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그는 한 아들을 낳았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절묘하여 세상에 보기 드문 존재였다. 이 아이는 두 손에 돈을 쥐고 있었는데 그 돈을 취해 쓰면 도로 나와 끝이 없었다. 부모는 기뻐하면서 그 일로 인해 보수(寶手)라 이름했다.
그는 장성하자 인자하고 효순하며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구걸하는 사람이오면 그 두 손을 펴 기꺼이 금전(金錢)을 내어 그에게 주곤 하였다.
그 뒤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성을 나가 구경하였다. 기원으로 가서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보고 마음이 매우 기뻐 부처님과 비구승들에게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간청하였다.
‘내 공양을 받아 주소서.’
아난이 그에게 말하였다.
‘공양을 차리려면 돈이 드는데…….’
그러자 그는 곧 보배 손을 펴 돈이 비처럼 쏟아지게 하였다. 돈은 잠깐 사이에 땅에 가득히 쌓여 사람의 키만큼 되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분부하여 그에게 공양을 차리게 했다. 공양을 마치고
부처님께서 설법하여 그는 수다원이 되었다. 그는 집에 돌아가 부모에게 하직하고 출가하기를 청하였다. 출가하고 나서는 아라한이 되었다. 아난은 이것을 보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보수 비구는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기에 큰 부잣집에 태어났고 손에서는 돈이 나와 다함이 없으며, 또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가섭불이 열반한 뒤에 가시왕(迦翅王)은 그 사리를 거두어 네 개의 보탑(寶塔)을 만들었다. 그 때 어떤 장자가 그 탑 세우는 것을 보고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 한 금전을 그 탑 밑에 놓고는 발원하고 떠났다. 그는 이 공덕의 인연으로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에서 늘 돈이 많은 복을 받아 쾌락을 누리고, 지금은 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느니라.’”
또 『백연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비라위성(迦毘羅衛城)에 어떤 장자가 있었는데 재보가 한량없이 많았다. 그 부인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용모가 단정하여 세상에 드문 존재였다. 그러데 아이는 날 때부터 정수리 위에 마니 보배 일산이 저절로 생겨 온 성 위를 두루 덮었다. 부모는 기뻐하며 그 일로 인해 그 아이의 이름을 보개(寶蓋)라고 했다. 그는 차츰 자란 뒤에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91겁 전에 비바시라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 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반두말제(槃頭末帝)라는 왕이 그 부처님의 사리를 거두어 높이 1유순이나 되는 탑을 만들어 공양했다. 그 때 어떤 상인(商人)이 바다에 들어가 보배를 캐고 무사히 돌아와, 곧 마니 보배 구슬로 그 탑 머리를 덮은 뒤에 발원하고 돌아갔다. 그는 이 공덕의 인연으로 91겁 동안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에서는
항상 보배 일산이 그를 따라 함께 났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느니라.’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봉행했다.”
또 『백연경』에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비라위성의 어떤 장자가 있었는데 재보가 한없이 많아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의 얼굴이 단정하고 절묘하여 세상에 보기 드문 존재였다. 그러나 그 머리에 마니주(摩尼珠)가 저절로 생겼으므로 부모는 그로 인해 아이 이름을 보주(寶珠)라고 했다.
아이는 차츰 장성해서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가 성 안에 들어가 걸식할 때에도 그 보배 구슬은 여전히 머리에 있었으므로, 성 안의 사람들은 괴상히 여기고 그 때문에 다투어 와서 그것을 구경했다. 그는 매우 부끄러워 절에 돌아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내 머리 위에 있는 이 보배 구슬을 떼어 버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걸식할 때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세존이시여, 이 구슬을 없애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직접 구슬을 보고 말하기를, ≺나는 이제 살 분한[生分]이 다해 네가 필요 없다≻라고 해라. 이렇게 세 번 말하면 구슬이 저절로 떨어질 것이다.’
비구가 그렇게 말하자, 구슬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러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 그의 과거의 인연을 이야기해 달라고 간청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91겁 전에 비바시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셨다. 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그 국왕 반두말제는 그 부처님의 사리를 거두어 높이 1유순이나 되는 네 개의 보탑(寶塔)을 만들고 공양했다. 그리고 그 국왕이 탑 안에 들어가 예배할 때 마니주 하나를 그 문설주에 걸어 두고는 발원하고 떠나갔다. 왕은 이 공덕의 인연으로 91겁 동안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에서는 항상 보주가 그 머리 위에 있었다.
그리고 천상의 쾌락을 누리다가 지금 나를 만나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느니라.’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봉행했다.”

(5) 선요부(旋繞部)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의 일이다. 부처님께서 아난과 함께 사위성(舍衛城)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셨다.
그 때 그 성 안에 사는 어떤 바라문(婆羅門)들이 성 밖에서 들어오다가 성을 나오시는 부처님의 드넓게 뛰어나고 빛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때 바라문은 기뻐 펄쩍펄쩍 뛰며 부처님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면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바라문은 부처님을 보고 기뻐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한 바퀴 돌았다. 그는 이 공덕 때문에 지금부터 25겁 동안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이나 인간 세계에서 무궁한 쾌락(快樂)을 누릴 것이다. 그 후 25 겁을 지내고 나면 벽지불이 되어 그 이름을 지관나기리(持觀那祇梨)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 부처님을 돌거나 부처님의 탑을 돌면 태어나는 곳이 어디든 간에 그 복이 한량없이 많으리라.’”
또 『제위경(提謂經)』에서 말하였다.
“장자 제위(提謂)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꽃을 뿌리고 향을 피우며 등불을 켜고 예배하는 것을 바로 공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탑을 돌게 되면 어떤 복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탑을 돌면 다섯 가지 복덕이 있다.
첫째는 뒷세상에 단정하고 좋은 몸을 얻고, 둘째는 좋은 음성(音聲)을 얻으며, 셋째는 하늘에 태어나고, 넷째는 왕후(王侯)의 집에 태어날 수 있으며, 다섯째는 니원(泥洹)의 도를 증득하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단정하고 좋은 몸을 얻는가?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기뻐하기 때문이니라.
무슨 인연으로 좋은 음성을 얻는가?
탑을 돌면서 경전을 외우기 때문이니라.
무슨 인연으로 하늘 세계에 태어날 수 있는가?
당시 탑을 돌 때에 마음 속으로 계율을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 때문이니라.
무슨 인연으로 왕후의 집에 태어날 수 있는가?
두면(頭面)으로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리기 때문이니라.

무슨 인연으로 니원의 도를 증득할 수 있는가?
남은 복이 있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탑을 도는 데에는 세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발을 들 때에는 반드시 발을 든다고 생각하고, 둘째는 발을 내릴 때에는 반드시 발을 내린다고 생각하며, 셋째는 좌우로 돌아보지 말고, 사찰 경내의 땅에 침을 뱉지 않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돈다는 것은 경ㆍ율 나아가 왼쪽으로 맥자탑(麥▼(艹/積)塔:麥은 물질의 단위로서 매우 작은 가운데에는 규칙이 있어서 오른쪽으로 돌게 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왼쪽으로 돌면 신(神)에게 꾸지람을 듣고 치수)을 돌면 속인들에게 꾸지람을 받나니 그러한 무리들이 많다.
요즈음 일을 시행하는 사람들은 천시(天時)에 순응하여 서북쪽을 향해 돌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부처님을 향해 공경한다. 혹은 백 바퀴ㆍ열 바퀴ㆍ일곱 바퀴를 도는 것은 각각 나타내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항상 세 바퀴를 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3존(尊:佛ㆍ法ㆍ僧)을 공양하고, 3독(毒:貪ㆍ瞋ㆍ癡)을 그치게 하며, 3업(業:身ㆍ口ㆍ意)을 맑게 하고 3악도(惡道:地獄ㆍ餓鬼ㆍ畜生)를 소멸하여 없애며, 삼보(三寶)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니라.’”
『화엄경(華嚴經)』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일 탑을 돌려고 하면
마땅히 서원해야 한다. 중생들이
복을 시행(施行)하고
도의 뜻을 끝까지 통하게 해달라고.

탑을 세 번 돌 때에는
마땅히 서원해야 한다. 중생들이
한결같은 뜻을 얻고
네 가지 기쁨이 끊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또 『현자오계경(賢者五戒經)』에서 말하였다.
“탑을 세 바퀴 도는 것은 3존에 대하여 공경을 나타내는 것이니, 첫째는 부처님이요, 둘째는 법이며, 셋째는 승가이다.
또 3독(毒)을 멸하여 없애기를 생각하는 것이니, 첫째는 탐냄이요, 둘째는 성냄이며, 셋째는 어리석음이다.”
또 『삼천위의경(三千威儀經)』에서 말하였다.
“탑을 돌 때에는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머리를 숙여 땅을 보고, 둘째는 벌레를 밟지 않아야 하며, 셋째는 좌우로 돌아보지 않아야 하고, 넷째는 탑 앞의 땅에 침을 뱉지 않아야 하며, 다섯째는 중간에 멈추어 서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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