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33권
법원주림 제33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27. 흥복편(興福篇)[여기에 8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흥복부(興福部) 생신부(生信部)
교량부(校量部) 수조부(修造部) 친시부(嚫施部)
잡복부(雜福部) 세승부(洗僧部)
(1) 술의부(述意部)
옛날 우전왕(優塡王)은 처음으로 전단(栴檀) 나무에 새겼고, 바사닉왕은 처음으로 금으로 주조(鑄造)했으니, 이것은 다 현재에 참다운 얼굴을 나타내고 묘한 모습[相]을 그린 것이다. 그러므로 빛을 전해 상서로움을 움직였고 자리를 피해 정성을 다하여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머리털과 손톱의 두 탑과 옷과 진영의 두 대(臺)에 이르러서는, 모두 다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이미 그 법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사유림(闍維林) 밖에 있는 강가에서 자취를 거두면서부터, 여덟 왕(王)이 나누어 가지고 그 나라로 돌아가, 탑과 병탄(甁炭)의 두 곳을 일으켰으니, 이리하여 열 군데 사찰[刹]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과 도를 증득하고 설법하며 열반하신 곳에 머리털과 상투와 정수리뼈와 네 개의 어금니와 두 발자국과 발우와 지팡이와 침받이와 니원승(泥洹僧) 등으로, 다 탑을 세우고 명(銘)을 새기며 비석을 세워서 그 신이(神異)함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 후 1백여 년이 지난 뒤에 아육왕(阿育王)이 바다 건너로 사신을 보내 모든 탑을 부수어 철거하고 사리를 나누어 가지고 돌아오게 했는데 오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거의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지금 바닷가에 사는 종족 중에서 혹 그런 것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뒤에 8만 4천이 그 때문에 생겼고, 아육왕의 여러 딸들도 차례로 깨끗한 마음을 내고는 분명하게 신상(神狀)을 돌에 새기고 금을 녹여 만들고 그림까지 그렸다. 그리하여 그 진영은 강과 바다를 건너 동천(東川)에 이르러 교화하였다. 그러나 비록 신령스런 자취가 가만히 통하기는 했으나 아울러 보고 듣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채음(蔡愔)과 진경(秦景)이 서역(西域)에서 돌아와서야통합뷰어
비로소 모포에 그린 석가의 상을 전했다. 양대(凉臺)와 수릉(壽陵)에 그 상을 모두 그렸다. 그 뒤는 형상과 탑이 다투어 일어났고, 양대(梁代)에 이르러서는 끼친 광명이 더욱 성하였다. 다만 법신(法身)은 형상이 없건만 감응으로 인하여 형상이 있게 되고 그 감응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형상에도 각기 차별이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 마음의 길이 창망(蒼茫)하면 참다운 위의로도 감화를 막고, 마음과 뜻에 성의가 간절하면 목석(木石)까지도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은(劉殷)은 지극한 효성으로 그 정성이 감동을 일으켜 가마솥 밑에 명문(銘文)이 생겨나게 하였고, 정란(丁蘭)은 조석으로 정성을 다해 따뜻하고 서늘함을 살피자 어머니의 목상(木像)은 그 때문에 색깔이 변했으며, 노양(魯陽)은 창을 들고 해를 뒤로 옮겼고, 기부(杞婦)는 눈물을 흘려 성(城)을 무너뜨렸으니, 이것은 다 가엾이 여기는 마음의 성정(性情)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징조의 상서로움으로 하여금 귀와 눈에 환히 드러나게 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도는 사람의 힘을 입어 널리 퍼지고 신(神)은 물질로 말미암아 감동하는 것임을 알 수 있으니 어찌 그것을 헛된 것이라고 하겠는가?
그런 까닭에 신(神)에 제사를 지낼 때에는 마치 신이 있는 것처럼 하면 신비한 도(道)와 서로 교감하게 되고, 불상을 공경할 때에는 마치 부처님을 공경하듯 하면 법신(法身)이 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지혜로써 근본을 삼아야 하고, 지혜는 반드시 복덕으로써 터전을 삼아야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새가 두 날개를 갖추어야 만리 길을 빨리 날아갈 수 있고, 수레는 두 바퀴를 갖추어야 단번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어찌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어찌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흥복부(興福部)
『불설복전경(佛說福田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천제(天帝)에게 말씀하셨다.
‘또 일곱 가지 법의 광시(廣施)가 있으니, 그것을 복전(福田)이라고 하며, 수행하는 사람이 복을 얻으면 범천(梵天)에 태어난다. 무엇을 그 일곱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불도(佛圖)와 승방(僧房)과 당각(堂閣)을 세우는 것이요, 둘째는 과수원과 목욕하는 못과 나무 그늘을 시원하게 함이며, 셋째는 항상 의약품을 보시하여 온갖 병을 치료해 주는 것이요, 넷째는 견고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을 건네 주는 것이며, 다섯째는 다리를 안전하게 놓아 병들고 허약한 사람을 건너게 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길가에 우물을 파서 목마른 사람들이 마시게 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뒷간을 만들어통합뷰어
대소변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곱 가지 일로서 범천(梵天)에 태어나는 복을 얻는 것이다.’
그 때 그 법회에 앉아 있던 청총(聽聰)이라는 비구가 이 설법을 듣고 기뻐하면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저의 전생 일을 기억해 보니 저는 전생에 바라내국(婆羅柰國)에 어떤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었습니다. 큰 길가에 절을 짓고 침구와 음료수와 양식을 스님들에게 공급해 주었고 길을 가다가 지친 사람도 거기서 쉬어가게 했습니다.
이 공덕으로 인하여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 천제석(天帝釋)이 되었으며,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는 전륜왕(轉輪王)이 되었습니다. 각각 서른여섯 번을 오르내리면서 천상과 인간을 맡아 통솔했었습니다. 아흔한 겁 동안 발바닥에 털이 나서 허공을 밟고 다녔으며, 식복(食福)이 있어서 음식이 저절로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세존(世尊)을 만나 중생들을 돌아보며, 저의 어리석음을 덜어 없앴고 고요한 지혜로 편안하며 나고 죽음의 나무가 말라 죽었으므로 진인(眞人)이라고 이름하니, 공덕의 과보로 진리를 깨달은 것은 다 그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또 어떤 비구가 있었는데, 그 비구의 이름은 파구로(波拘盧)였다. 그가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의 과거세를 기억해 보니, 저는 전생에 구나갈국(拘那竭國)에 어떤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었습니다. 그 때 세상에는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스님들이 중생을 교화하는 큰 법회에서 법을 설하였는데, 저도 거기에 가서 법을 듣고 기쁨이 생겨 하리륵(呵梨勒)이라고 하는 한 약과(藥果)를 가져다가 여러 승려들에게 받쳤었습니다.
이런 과보(果報)로 인하여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태어났으며, 인간 세계에 내려와서는 항상 존귀(尊貴)한 위치에 있게 되어 대중들보다 뛰어났었습니다. 아흔한 겁 동안은 아예 질병이라곤 걸린 적이 없었고, 그 남은 복으로 지금은 부처님을 만나 응진(應眞:阿羅漢)을 증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 어떤 비구가 있었는데, 그 비구의 이름은 수타야(須陀耶)였다. 그도 곧 세존께 아뢰었다.
‘제가 전생[宿命]을 기억해 보니 저는 전생에 유야리국(維耶離國)의 어떤 보잘것없는 백성의 아들로 태어났었습니다. 그 때 그 세상에는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았고, 여러 스님들이 교화(敎化)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 때 낙(酪)을 가지고 시장에 팔러 갔다가 많은 승려들이 큰 법회에서 법을 강론하는 것을 보고 지나가다가 서서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법을 듣고서는 기쁨이 생겨 곧 병에 들어 있는 낙을 여러 스님들에게 보시하자, 스님들은 저를 위해통합뷰어
축원해 주었으므로 저는 너무도 기뻐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이러한 복덕의 인연으로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태어났으며, 인간 세계에 내려와서는 항상 존귀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흔한 겁을 지낸 뒤에는 남은 죄가 있어 인간 세계에 태어났으나 어머니가 임신을 한 지 몇 달 만에 질병에 걸려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무덤 속에서 달이 차자 저를 낳았습니다. 저는 무덤 속에서 일곱 해 동안이나 죽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살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미미(微微)한 복으로 부처님을 만나 응진(應眞)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 어떤 비구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아난(阿難)이었다. 그가 곧 세존께 아뢰었다.
‘제가 과거 세상을 기억해 보니 저는 전생에 라열기국(羅閱祈國)의 어떤 서민의 아들로 태어났었습니다. 그런데 몸에 몹쓸 부스럼이 생겨 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 때 어떤 친한 도인이 와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승려들이 목욕한 뒤에 그 물로 부스럼을 씻으면 나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복도 얻을 수 있다.≻
저는 곧 기뻐하면서 절로 달려가서 지극한 마음으로 더욱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새로 우물을 파고 향유(香油)와 목욕 도구를 갖추어 여러 스님들을 목욕시켜 주고, 그 목욕물을 가져다가 부스럼을 씻었더니 얼마 안 가서 곧 나았습니다.
이러한 공덕으로 인하여 태어날 적마다 단정하고 금빛 찬란하여 더러운 티끌을 받지 않았었습니다. 아흔한 겁 동안이나 항상 깨끗한 복을 얻고 덕이 불어나서[增德] 넓고 멀리 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부처님을 만나 마음의 번뇌[垢]를 없애고 응진(應眞)을 증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그 법회에 앉아 있던 어떤 비구니가 있었는데, 그 비구니의 이름은 내녀(柰女)였다. 그녀도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전생을 기억해 보니 저는 과거 세상에 바라내국(波羅柰國)의 가난한 집안에 딸로 태어났었습니다. 그 때 그 세상에는 부처님께서 계셨는데, 그 부처님의 명호는 가섭(迦葉)이었습니다.
그 때 그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법을 설하고 계셨습니다. 저도 그 때 그 자리에 있다가 경을 듣고는 기쁨이 생겨 마음 속으로 보시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돌아보아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저는 자신이 빈천(貧賤)함을 스스로 생각하고 마음 속으로 슬퍼하다가 남의 동산에 가서 과일과 오이를 빌어다가 그것을 부처님께 보시하려고 하였습니다. 마침 향기가 좋은 사과[柰] 한 개를 얻어서 한 발우의 물과 함께 가지고 가서통합뷰어
가섭부처님과 여러 대중 스님들께 바쳤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저의 지극한 마음을 아시고 저를 위해 축원해 주시고는 그것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물과 사과를 두루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복조(福祚)로 인하여 목숨을 마치고는 하늘에 태어나서 천후(天后)가 되었으며, 인간 세계에 내려올 때에는 포태(胞胎)를 말미암지 않고 태어났습니다. 아흔한 겁 동안이나 사과꽃 속에 태어나 단정하고 깨끗하였고 항상 전생의 일을 알았었습니다. 그러다 이제는 세존을 만나 도안(道眼)까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 때 천제(天帝)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스스로 기억해 보니 저는 과거 어느 시절에 구류대국(拘留大國)에 어떤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었습니다. 그리고 하인[靑衣]들에게 안겨 성 안에 들어가서 유람하다가 여러 스님들이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걸식[分衛]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백성들이 보시하는 이가 많은 것을 보고 곧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나도 많은 재물을 얻어 여러 승려들에게 보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는 곧 구슬과 영락을 풀어 여러 스님들에게 보시하자 스님들은 똑같은 마음으로 축원해 주었고 기뻐하면서 떠났습니다. 이런 인연이 있은 뒤로부터 목숨을 마치고는 천상에 태어나 천제(天帝)가 되었고 아흔한 겁 동안이나 여덟 가지 액난[八難]을 영원히 여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천제와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잘 들어라. 내 스스로 나의 전생에 행했던 일들을 말하겠노라. 나는 전세(前世)에 바라내국에 태어났었다. 나는 큰 길 가까이에 변소를 지었으니, 그 나라 사람들로서 조금이나마 편안함을 얻었던 자들이라면 모두 그 은혜를 느끼지 않은 이가 없었느니라.
이 공덕의 인연으로 태어나는 세상마다 깨끗하였으며, 여러 겁 동안 도를 행하여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고 금빛이 찬란하게 빛나 티끌이나 때가 묻지 않았으며 음식은 저절로 소화되어 변리(便利 : 大小便)의 걱정도 없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천제에게 말씀하셨다.
‘아흔여섯 가지 도 가운데 부처님의 도가 가장 존귀하고, 아흔여섯 가지 법 가운데 부처님의 법이 가장 참다우며, 아흔여섯 가지 승려들 가운데 부처님을 따르는 승려가 가장 올바르니라.
왜냐 하면 여래께서는 아승기겁 이전부터 발원한 것이 정성스럽고 진실하여 목숨을 다해 덕을 쌓았으며,통합뷰어
중생 위하기를 맹세하였고 6바라밀[度]과 4무량심[等] 등 온갖 선을 두루 갖추었으며, 지혜를 원만하게 성취하였으니, 삼계(三界)의 어떤 천존(天尊)도 거기에 미칠 이가 없기 때문이니라.
어떤 중생이든지 여래를 향하여 단 한 번이라도 공경하는 마음을 내면 대천세계의 진귀한 보배를 다 얻은 것보다 낫다. 서른일곱 가지 도품(道品)과 십이부경(十二部經)은 죄와 복을 분별하여 그 내용이 다 지극하고 정성스럽다.
3승(乘)의 가르침을 열어 모두 다 받들어 행하며, 이를 들은 자는 기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사문이 되어 부처를 믿고 법을 행하며, 뜻은 맑고 고상함을 숭상하여 세간의 탐욕과 다툼을 버리고 세간 중생들을 복으로 인도하고 천인의 길을 열어서 뭇 스님들을 그 길로 가게 하니, 이것을 가장 높고 위없는 도라고 하느니라.’”
(3) 생신부(生信部)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의 말과 같다.
“옛날 사위성(舍衛城) 밖에 어떤 여자가 있었다. 그는 깨끗한 믿음과 계행을 완전히 갖추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그 문 앞에 가서 걸식할 때 그녀는 부처님 발우에 밥을 담아 드리고 물러나 예를 올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를 심어 열이 생겨나고, 열을 심어 백이 생겨나며, 백을 심어 천이 생겨나고, 천을 심어 만이 생겨나며, 만을 심어 억이 생겨나서 진실한 도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니라.’
그 남편은 믿지 않는 사람이라, 잠자코 뒤에서 부처님의 이 축원을 듣고 있다가 말하였다.
‘구담(瞿曇) 사문께서 하신 말씀이 어찌 그리도 잘못이 심하십니까? 한 발우의 밥을 보시하고 그런 복을 얻고 또 진실한 도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그는 답하였다.
‘성 안에서 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니구타(尼拘陀)나무를 보았느냐? 얼마나 크더냐?’
그는 대답하였다.
‘키는 4, 5리쯤 되었으며, 해마다 수만 섬의 열매를 따고 그 씨는 겨자만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 말은 너무 과장이 심하다. 어떻게 겨자만한 씨를 심어 그렇게 키가 4, 5리나 되는 나무가 나며, 해마다 수십만 개의 열매를 딸 수 있단 말이냐?’
그가 답하였다.
‘그 열매가 그와 같은 것을 세상 사람이 다 함께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땅은 무지한 것인데도 그 과보의 힘이 그러하거늘 하물며 정이 있는 사람이겠는가. 기꺼이 부처에게 한 발우의 밥을 올린 그 복은 매우 커서통합뷰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들 부부는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곧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일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을 데리고 사바제성(舍婆提城)에서 바라문성(婆羅門城)으로 가셨다. 그 때 바라문성의 왕은 외도에 속해 있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제한(制限)을 세워, ‘만약 부처님께 음식을 주거나 부처님과 함께 말하는 이가 있으면 마땅히 돈 5백 문(文)의 벌금을 물리겠다’라고 하였다. 뒤에 부처님께서 와서 그 성에 들어가 걸식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문을 닫았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아난과 함께 빈 발우를 들고 성을 나오다가, 어떤 늙은 여종이 깨진 질그릇에 뜨물을 담아 가지고 밖에 나와 버리는 것을 보셨다. 그녀는 부처님의 상호(相好)와 빈 발우를 들고 나오시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보시하고 싶었다. 부처님께서 그 뜻을 아시고 빈 발우를 내어 버리려는 뜨물을 청했다. 그녀는 깨끗한 마음으로 뜨물을 가지고 와서 보시했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자는 이 보시로 인해 15겁 동안 천상과 인간에서 복을 받아 쾌락하게 될 것이요,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뒷세상에는 남자의 몸을 얻어 출가하여 도를 배워 벽지불(辟支佛)이 될 것이다.’
그 때 부처님 곁에 어떤 바라문이 있다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곧 부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정반왕(淨飯王)의 태자로서 어찌 음식 때문에 거짓말을 하십니까?’
이때 부처님께서 곧 혀를 내어 얼굴 위를 덮고 발제(髮際)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그대는 과연 이런 혀를 가진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았느냐?’
바라문이 말하였다.
‘만약 혀가 코만 덮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거늘 하물며 얼굴을 다 덮고 발제에까지 이르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리고는 곧 신심을 내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지금까지 적은 보시가 그렇게 많은 과보를 받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일찍이 어떤 희유(希有)한 일을 보았느냐?’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저는 일찍이 길을 가다가 니구타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그늘은 5백 채 수레를 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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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곧 물으셨다.
‘그 나무의 종자는 크더냐, 작더냐?’
그는 답하였다.
‘그 크기는 겨자의 3분의 1만한 것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누가 그대 말을 믿겠느냐?’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정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 여자가 깨끗한 마음으로 내게 보시하는 것을 알고 있다. 큰 과보를 얻을 것도 이 나무와 같아서, 종자는 작지만 과보는 클 것이다.’
그 때 바라문은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부처님께 참회했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시자 그는 수다원의 도를 얻고, 곧 손을 들고 크게 외쳤다.
‘사람들아, 감로문(甘露門)이 열렸다. 왜 나오지 않느냐?’
모든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곧 5백 금을 왕에게 보내어 부처님을 초청해 공양하게 했다. 왕은 곧 제한을 풀고 왕과 신하들도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자 그들은 다 도과(道果)를 얻었다.
이 인연으로 여래의 말씀에는 거짓이 없고, 선악의 과보는 어김없이 반드시 받는 것이니, 일체 중생들은 마땅히 믿고 받들어야 할 것이다.”
또 『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두 비구는 다 수다원의 과(果)를 얻었다. 한 사람은 항상 교화를 행하고 걸식하여 그것으로 복을 짓기 위해 많은 스님들에게 보시하였고, 한 사람은 다만 꼿꼿이 앉아 참선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면서 복 짓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에 참선하던 사람이 걸식하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왜 좌선은 하지 않고 부질없이 고생만 하는가?’
복을 닦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도 비구들에게 항상 보시를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뒤에 그들은 다 목숨을 마치고 장자(長者)의 집에 태어났다. 걸식하여 복을 짓던 사람은 장자의 아들이 되어 노비들의 시중을 받고 의식이 저절로 생겼으며 쾌락이 무궁하였다. 그러나 좌선하던 사람은 여종의 아들이 되어 맨 땅에 혼자 앉아 굶주리고 목마름에 울며 지냈다. 그들은 다 전생[宿命]의 일을 알았다. 그 때 장자의 아들은 여종의 아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전에 너에게 항상 보시를 행하라고 말하였었다.통합뷰어
그런데도 너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것은 네 잘못이다. 왜 우는가?’
그 장자의 아들은 장성하여 큰 수레를 타고 유람하러 나갔다. 모든 노비와 또 여종의 아들들도 다 모시고 따랐다. 그 뒤에 그 두 사람은 다 출가하여 아라한의 과를 얻었다. 그 장자의 아들은 단정히 앉아 있었으나 사람들이 다투어 의식을 가지고 와서 그에게 주었고, 그 여종의 아들은 밖에 나가 걸식했으나 주는 사람이 없어 항상 주리고 목말라했다.
이런 인연 때문에 도를 행하는 사람은 다만 계를 지키고 참선하고 경전만 외울 것이 아니라 마땅히 보시함으로써 온갖 복덕도 지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애도경(大愛道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낮에도 밤에도 배우지 않아
날마다 아무 마친 것 없네.
자칫하면 죄 속에 빠져
굴러서 더욱 깊이 들어간다.
스스로 그 몸을 빠뜨려
그 또한 갖은 고생하면서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목숨을 던지는
태산(太山) 지옥의 죄
그 고통은 견디기 어렵다.
살아서 배우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들 것이요
늙어서 음욕을 그치지 않으면
티끌같이 많은 세간을 멸하리.
한 호흡에 매인 목숨이거니
무엇을 그리 귀중하다 하리.
스스로 뉘우치고 잘 고치면
목숨을 지키고 진실로 참다우리.
이 세상에서 죄를 멸하면
뒷세상에는 펼 수 있으리.
재물이 있으면서 보시하지 않으면
세상마다 빈궁을 못 면하리.”
(4) 교량부(校量部)
『수달경(須達經)』에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수달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거사(居士)가 보시를 행할 때 믿지 않고 보시하고 때를 맞추지 않고 주며 제 손으로 직접 주지 않고 가서 주지 않으며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으며, 또 인연과 과보가 있음을 알지도 못하고, 보시를 행하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는 과보를 받는다는 뜻이 묘하지 못하리라.[이와 반대인 것은 묘한 것이다.]
지난 과거 세상에통합뷰어
비람(鞞藍)이라는 큰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큰 부자로서 재물이 많아 큰 보시를 행하였는데, 8만 4천의 금발우에 은가루를 가득 채우고, 8만 4천의 은발우에 금가루를 가득 채우고, 8만 4천의 금발우에 금가루를 가득 채우고, 8만 4천의 은발우에 은가루를 가득 채우고, 눈처럼 하얀 8만 4천의 코끼리와 금으로 장식한 8만 4천의 교로(交露)와 8만 4천의 소 젖을 가득 채운 그릇과 단정하고 뛰어나게 묘하며 온갖 영락으로 장식한 8만 4천의 미녀 등 이런 것을 보시하고 그 이외의 것은 다 셀 수 없었다.
큰 부자인 저 비람 거사가 행하는 이런 보시보다는 염부제(閻浮提)의 범부가 저 한 선인(仙人)에게 보시하는 복이 더 많다. 비록 저 선인에게 보시한다 해도 한 수다원(須陁洹)에게 보시하여 얻는 복이 훨씬 많고, 비록 수다원에게 보시한다 해도 한 사다함(斯陀含)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못하며, 비록 사다함에게 보시한다 해도 한 아나함(阿那含)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못하고, 비록 아나함에게 보시한다 해도 한 아라한(阿羅漢)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못하느니라.
비록 1백 수다원에게 보시한다 해도 한 사다함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고, 비록 1백 사다함에게 보시한다 해도 한 아나함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며, 비록 1백 아나함에게 보시한다 해도 한 아라한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고, 비록 1백 아라한에게 보시한다 해도 한 벽지불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며, 비록 1백 벽지불에게 보시한다 해도 여래ㆍ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니 이것으로 얻는 복이 더 많으니라.
저 거사가 이렇게 보시하더라도 염부제의 범부, 내지 백 벽지불이 집을 지어 초제승(招提僧)에게 보시하여 얻는 복이 더 많고, 비록 초제승에게 보시한다 해도 청정한 뜻으로 불ㆍ법ㆍ승 삼보에 귀의하고 그 계를 받는 것보다 못해 이것으로 복이 더 많으며, 비록 삼보에 귀의하고 계를 받더라도통합뷰어
한 중생이 소 젖을 짜는 동안 자비를 행하는 것만 못해 이 복이 더 많다. 비록 소 젖을 짜는 동안 일체 중생이 분별해 자비를 행하더라도, 내지 손가락을 한 번 튀기는 동안, 일체의 행은 덧없고 공(空)하며 나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못해 이 복이 더 많으니라.’”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범복(梵福)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만약 어떤 믿음 있는 사람이 일찍이 탑이 없었던 곳에 탑을 세우면 그 탑을 세운 사람은 첫 번째로 범천(梵天)의 복을 받는 사람일 것이요, 만약 어떤 믿음 있는 사람이 오래된 사찰을 보수하면, 그는 두 번째로 범천의 복을 받는 사람일 것이니라. 만약 어떤 믿음 있는 이가 성중(聖衆)을 화합시키면 그는 세 번째로 범천의 복을 받는 사람일 것이고, 만약 부처님께서 처음 법륜(法輪)을 굴리시려고 할 때에 여러 하늘과 사람들이 법륜 굴리기를 청하면, 그는 네 번째로 범천의 복을 받는 사람일 것이니라.’
그 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아뢰었다.
‘범천의 복은 얼마나 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염부리(閻浮里) 땅에 살고 있는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공덕과 이와 같이 더 나아가서 사천하에서부터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복을 다 합해도 한 범천왕의 복만 못하느니라. 만약 그 복을 구하려고 하면 이것이 바로 그 양(量)이니라.’”
또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하였다.
“어떤 단월이 천나(闡那) 비구를 위해 30만 전(錢)으로 큰 방을 만들었는데, 만든 그 날 그 방은 무너졌다. 공력이 매우 많이 들었으므로 그 단월은 절망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그 단월을 위해 설법하였다.
‘비록 방은 무너졌으나 공덕은 성취되었습니다.’
그 방이 무너지기 전에 부처님께서 이 방에 오셔서 그 방을 쓰고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위없는 복전(福田)으로서 그 방을 이미 쓰고 계셨으니, 그 공덕은 깊고 넓어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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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방이 처음 이루어졌을 때 새로 계를 받은 계덕(戒德)이 청정한 어떤 젊은 비구가 그 방에 들어갔으니, 그것은 그 단월이 신시(信施)한 공덕이었다. 수억의 갖가지 방을 짓고 장엄하되 아래로 금강지(金剛地) 끝에 이르기까지 높고 넓게 장식하여 마치 수미산과 같다. 비록 계가 깨끗한 한 비구가 잠깐 썼다 하더라도, 계로써 은혜를 베풀었다면 그것은 세간이 아니요 열반의 문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방과 침구와 음식과 의약 따위와는 같지 않은 것이니, 이것들은 세간의 법이요 세간을 떠나 얻기 어려운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5) 수조부(修造部)
만일 수리하거나 새로 지으려고 할 때에 법대로만 수리하면 아무리 작게 짓더라도 한량없이 많은 복을 얻으리라. 그러나 만일 법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짓더라도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불재금관경복경(佛在金棺敬福經)』에서 말하였다.
“‘경전이나 불상의 주인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경전과 불상을 만든 장인(匠人)을 고용하였다고 해서 남이 만든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불상을 만들어서 보시하면 두 사람이 얻는 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 그 복을 설명하려면 겁(劫)이 다하도록 해도 다 말할 수 없다. 나의 명령을 받은 이가 곧 부처님의 참다운 제자로서 이와 같이 정성스럽게 하면 지은 것은 적으나 복은 많을 것이니라.’
부처님께 여쭈었다.
‘공장(工匠)의 법으로서 경전이나 불상을 만들어 물건을 이루었을 때 그 값을 받는 것이 합당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값을 받아서는 안 되느니라. 그것은 마치 부모를 팔아서 재물을 취하는 것과 같아서 그것을 거역한 잘못이 삼천을 넘으리라. 이런 사람은 진실로 곧 천마(天魔)일 것이다. 그는 빨리 나의 불법(佛法)에서 떠나야 한다. 이 사람은 내 권속이 아니니라.’
술을 마시고 고기와 오신채(五辛菜)를 먹는 무리로서 성인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리 만든 경전과 불상의 수효가 티끌이나 모래알처럼 많다고 하더라도 그 복은 매우 적어 족히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겁소(劫燒)의 때에도 바다에 있는 용왕궁(龍王宮)에 들어가지 못하며 수고만 많고 공은 적을 것이다. 불경(不敬)한 죄를 지으면 죽어서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주장(主匠:불상 만드는 일을 주관하는 사람)은 아무런 이익도 없어 모든 하늘이 돕지 않을 것이니 만들지 않느니만도 못할 것이다. 정직한 마음으로 예배하면통합뷰어
얻는 복이 한량없이 많을 것이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면 아무리 지은 것이 많아도 그 복은 적을 것이다.
만약 상사(像師:불상을 그리거나 만드는 사람)가 불상을 만들 때 그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그는 5백만 생 동안 모든 감관[根]을 제대로 갖추지 못할 것이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는 것이 최상이 되나니, 묘한 과보가 먼저 올라갈 것이다.”
또 『죄복결의경(罪福決疑經)』에서 말하였다.
“승니(僧尼)와 속인들은 혹 스스로 재물을 희사하거나 또 남에게 권유하여 부처님을 위해 받아 사용해야 한다고 빙자하여 재물을 얻기도 하는데, 경영하는 사람이 이 재물을 가지고 새나 짐승의 형상을 만들어 불반(佛槃:佛盤) 위에 안치하였을 때 그 손해를 계산해 보면 5전의 가치에 불과하다. 역죄(逆罪)를 범하여 끝내 환생하지 못하고 한 겁 동안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향유(香油)의 등불을 공양하여 속죄(贖罪)하면 범함이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익을 구하지 않으나 어느 누구도 감내하여 소화시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 부처님께 바칠 때에는 상ㆍ중ㆍ하의 자리에 앉아 반드시 꼭 속인들을 시켜 부처님과 스님들께 바치게 하라. 부처님께 바치고 난 뒤에는 스님들과 나누어 먹으면 계율을 범하는 것이 아니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처님의 물건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천억 년 동안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단월(檀越)로서 전생에 가르침을 받지 않은 이도 또한 예전의 과보를 초래하기 때문에 만일 인간에 태어나면 9백만 년 동안 하천(下賤)한 데에 태어날 것이다. 왜냐 하면 부처의 물건은 아무도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自述 : 이것은 이른바 시주(施主)는 결정코 부처님을 위해 받아 쓰는 데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반드시 속죄해야 한다. 만약 요즘처럼 재(齋)를 올릴 때마다 늘 불반(佛槃)에 음식을 내면, 그 정이 두루 통하여 피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 다시 시주에게 되돌려 주는 것은 거두어 간다고 해도 속죄할 필요가 없다. 만일 7월 보름날에 부처님과 스님께 바칠 때 부처님과 스님이 받아 사용할 만한 것이 없으면 곧바로 꼭 속죄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우전왕(優塡王)이 세존을 연모(戀慕)하여 금을 녹여 불상을 만들었다. 부처님께서 장차 보계(寶階)를 내려오실 것이라는 말을 듣고 코끼리에 금불상을 싣고 와서 세존을 맞이하였다.
그 때 금불상이 코끼리에 오르고 내리는 것이 마치 살아 계신 부처님의 발이 허공을 밟는 것과 같았다. 그 금불상의 발 밑에는 꽃비가 내렸고 또한 광명까지 놓으면서 와서 세존을 맞이하여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그 때 세존께서도 또한 꿇어앉아 합장하고 금불상을 향하였다. 그러자 공중의 백천 화신불(化身佛)도 모두 합장하고 꿇어앉아 금불상을 향하였다. 그 때통합뷰어
세존께서 금불상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오는 세상에 크게 불사(佛事)를 하라. 내가 멸도(滅度)한 뒤에 내 제자들을 너에게 부촉(付囑)하리라.’
공중에 화신불들은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다 함께 이런 말을 하였다.
‘만약 어떤 중생이든지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불상을 만들어 세우고 거기에 음식을 가져다가 공양하면 이 사람은 미래 세상에 틀림없이 염불청정삼매(念佛淸淨三昧)를 증득할 것이다.’”
또 『외국기(外國記)』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가 어머님을 위해 설법하시면서 90 일을 지냈다. 바사닉왕(波斯匿王)이 부처님을 뵙고 싶어하여 우두전단향(牛頭栴檀香)나무에 여래의 형상을 새겨 부처님께서 평소에 앉아 계시던 자리에 모셔두었다. 부처님께서 뒤에 정사에 돌아오실 때 그 불상이 마중 나가서 부처님을 맞이했다. 부처님께서는 그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말씀하셨다.
‘도로 앉으시오. 내가 반열반(般涅槃)한 뒤에 그대는 사부대중을 위해 갖가지 법식(法式)을 만드시오.’
그 불상은 곧 도로 자리에 앉았으니, 이 불상이 바로 모든 불상의 시작이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양쪽 작은 정사에 옮겨가 계셨는데, 그 형상과의 거리는 스무 걸음쯤 되었다.
기환정사(祈桓精舍:기원정사)는 본래 7층이었는데 여러 나라에서 다투어 일어나서 드리는 공양이 끊이지 않았다. 법당 안 장명등(長明燈)의 심지를 쥐가 쏠아 모든 번기와 일산을 다 태우고 마침내는 7층이나 되는 절[精舍]까지 다 태워 국왕과 모든 백성들이 다 슬퍼하고 괴로워했다. 전단향나무로 만든 불상까지 다 탄 뒤 4ㆍ5일 만에 동쪽 작은 정사의 문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홀연히 본래의 불상이 다른 방에 옮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대중들은 모두 기뻐하여 다 함께 정사를 수리하여 2층으로 만들고 그 불상을 본래 있던 것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또 『우전왕작불형상경(優塡王作佛形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발기국왕(跋耆國王) 우전(優塡)이 부처님께 와서 머리와 얼굴과 이마로 예를 올리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어떤 중생이 불상을 만들면 장차 어떤 복을 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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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 부처님의 형상을 만든다면 그 공덕은 한량없이 많아서 이루 다 계산할 수 없습니다. 어느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에서 복을 받아 쾌락을 누릴 것이며, 몸은 항상 자마금색(紫磨金色)으로 될 것이요, 안목(眼目)은 청결하고 얼굴 모습은 단정하며 몸과 손발은 신기하고 절묘하게 좋아 늘 모든 중생들로부터 사랑과 공경을 받을 것이며,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항상 제왕(帝王)이나 대신(大臣), 장자(長者)나 현선(賢善)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요, 태어나는 곳마다 호족으로서 부하고 귀하여 재산과 진귀한 보물을 지니되 이루 다 계산할 수 없을 것이며, 늘 부모ㆍ형제ㆍ종친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제왕이 되면 제왕들 중에서도 특별히 높아 모든 국왕들이 귀의하고 우러를 것이요, 나아가서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사천하(四天下)를 다스리며, 일곱 가지 보배가 저절로 생기고 천 아들을 구족(具足)하며 천상으로 날아 올라가지 못하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천상(天上)에 태어나면 하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며, 나아가서는 욕계 여섯 하늘의 왕이 되어 여섯 하늘 중에서도 존귀하기가 제일이 될 것입니다.
만약 범천(梵天)에 태어나면 대범왕(大梵王)이 되어 단정하기 비할 데 없어서 모든 범천 중에 가장 뛰어나며 항상 모든 범천들의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무량수국(無量壽國)에 태어나게 되고 큰 보살이 되어 가장 존귀하고 제일인 자가 될 것이며, 무수히 많은 겁이 지나고 나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 니원도(泥洹道:涅槃道)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만약 앞으로 어떤 사람이든 불상을 만든다면 이와 같은 복을 얻을 것입니다.’”
또 『법화경(法華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만약 누구든지 부처님을 위하여
갖가지 형상을 건립(建立)하거나
나아가 동자(童子)들이 장난으로
풀ㆍ나무ㆍ붓 따위를 가지고 그리거나
혹 손가락이나 손톱을 가지고
부처님 형상을 그리면
이와 같은 모든 사람들은
이미 부처님의 도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또 『조립형상복보경(造立形像福報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구라구국(拘羅瞿國)에 이르셨을 때통합뷰어
그 나라 주인이었던 우전왕(優塡王)의 나이는 겨우 열네 살이었다. 부처님께서 장차 그 나라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주변의 신하와 측근들에게 곧 칙명을 내려 모두 다 부처님을 맞이하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이르시자 머리와 얼굴을 땅에 대어 부처님께 예배하고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상과 인간 세계에서 부처님과 같은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광명(光明)이 높고 높기가 이와 같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떠나가신 뒤에 다시는 부처님을 뵙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이제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어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고자 합니다. 어떤 복의 과보를 얻겠습니까?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 저희들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말씀해 주십시오.’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대왕이여, 내가 하는 말을 자세히 들으시오.
복의 그 땅은 회상(灰上)의 땅이니
부처님의 형상을 만드는 과보보다
더 뛰어난 복덕이 없다네.
언제나 큰 부잣집에 태어나고
존귀(尊貴)하여 보배가 다함이 없으며
권속들이 항상 공경하나니
부처님의 형상을 만든 과보일세.
언제나 천안(天眼)의 과보를 얻어
그 검푸른 빛깔 비할 데가 없다네.
부처님의 형상(形像)을 만든 과보 때문이니
부모들도 그를 보고 기뻐하리라.
단정하고 또한 위엄과 덕망이 중하므로
사랑하고 즐거워하여 끝내 싫어하지 않네.
부처님의 형상을 만든 과보 때문에
금빛 몸에서 불꽃 같은 광명 생기네.
마치 절묘한 사자의 형상과 같아
중생들 그를 보고 기뻐한다네.
부처님의 형상을 만든 과보(果報) 때문에
염부제(閻浮提)에서 큰 족성으로 태어나리라.
저 찰제리(刹帝利)와 바라문(婆羅門)의 족속이니
복을 지은 사람은 그 가운데 태어나리라.
부처님의 형상을 만든 과보 때문에
변두리 지역이나 변두리 나라에는 태어나지 않으리.
눈먼 장님도 되지 않고 추하고 더러운 모습도 아니며
여섯 가지 감정을 언제나 완전하게 갖추네.
부처님의 형상을 만든 과보 때문에
죽음에 이르면 전생[宿命]을 알 수 있으리.
부처께서 그의 앞에 있는 것을 보고
죽을 때에도 괴로움을 느끼지 않네.
통합뷰어
부처님의 형상을 만든 과보 때문에
큰 이름 떨치는 임금이 되리라.
금륜(金輪)으로 날아다니는 제왕이 되어
사천하를 맡아 다스리는 주인 된다네.
부처님의 형상을 만든 과보 때문에
환인(桓因)이라는 제석천이 되리라.
신족(神足)으로 두 번째 하늘을 맡아 다스리니
삼십삼천(三十三天)이 모두 받드네.
부처님의 형상을 만든 과보 때문에
욕계(欲界)를 멀리 벗어났네.
미묘한 범천(梵天)의 왕이 되어
가이(迦夷:迦毗羅婆蘇都)의 범천 대중들이 모두 공경하네.
부처님의 형상을 만든 과보 때문에
받는 복이 이와 같다네.
만일 부처님의 형상을 새기거나 그리면
천지도 오히려 칭찬할 것이요
그 복은 한량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부처님께 공양해야 한다네.
꽃과 향과 향수를 바르는 등
저 대사(大士)께 공양하는 사람은
번뇌[漏]가 다해 무위(無爲)를 증득하리.
또 『부법장경(付法藏經)』에서 말하였다.
“과거 91겁 전에 비바시불(毘婆尸佛)이 열반에 드신 뒤에 사부 제자들이 칠보탑(七寶塔)을 세웠다. 그 때 그 탑 안에 부처님의 형상이 있었는데 금색 면상에 조그만 흠이 있었다. 어떤 가난한 여자가 행걸(行乞)하여 한 개의 금구슬을 얻었다. 그녀는 그 불상에 흠집이 난 것을 보고 그것을 보수하려고 했다.
그 때 가섭은 금을 세공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금구슬을 가지고 가서 가섭에게 그 금상의 흠을 보수하게 했다. 금을 세공하는 사람들은 보수하는 복이 있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보수한 뒤에 다 같이 발원했다.
‘부디 우리 두 사람은 늘 부부가 되어 몸은 순금색으로서 항상 최상의 즐거움을 받아지이다.’
그 뒤로 91겁 동안 그들의 몸은 항상 순금색이었고 천인(天人)으로 태어나서 쾌락이 그지없었으며, 최후에는 제7의 범천(梵天)에 태어났다.
그 때 마갈타국에 니구율타(尼俱律陀)라는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과거에 복을 닦아 총명하고 지혜가 많았으며 큰 부자로서 한량없이 많은 금ㆍ은 등통합뷰어
7보(寶)와 소ㆍ염소ㆍ밭ㆍ집ㆍ노비ㆍ수레 등이 병사왕(甁沙王)에 비해 천 배나 더 많았다. 병사왕에게는 금쟁기가 천 개가 있었다. 저 바라문은 병사왕과 같음으로써 죄벌을 초래하게 될까 두려워했다. 그 집에는 다만 999개의 금쟁기만을 만들었는데 한 개만을 적게 만들었다. 그 집에는 모포가 있었는데 최하의 것도 그 값이 백천 냥 금이었다. 또 60상자의 금속(金栗)이 있었는데 한 상자의 금속은 340섬이었다.
그 집은 비록 이처럼 부자였지만 아들이 없었다. 그 집 옆에 수신(樹神)이 있었다. 그 집 부부는 항상 거기 가서 기도하고 제사를 지내면서 아들 낳기를 빌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아무 감응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화를 내어 말하였다.
‘지금부터 다시 7일 동안 마음을 다해 받들어 섬길 것이다. 만약 그래도 아무 영험이 없으면 반드시 이 나무를 태워 버릴 것이다.’
수신은 근심스럽고 두려워 사천왕에게 알리고 사천왕은 다시 제석천왕에게 알렸다. 제석천왕은 염부제를 두루 관찰해 보았으나 그의 아들이 될 만한 사람이 없어서 곧 범천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범천왕은 천안(天眼)으로써 두루 관찰하다가 한 범천이 곧 목숨을 마치게 된 것을 보고 그에게 가서 이 사실을 말하고 거기 가서 나기를 권했다. 이 범천은 분부를 받고 곧 거기 가서 탁생(託生)하였다. 열 달이 차서 그녀는 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얼굴은 단정하고 몸은 순금색으로서 광명이 밝게 빛나서 40리를 비추었다. 관상쟁이는 이 아이의 상을 보고 말하였다.
‘이 아이는 전생에 지은 복 때문에 반드시 출가할 것입니다.’
그 부모들은 그 말을 듣고 근심하고 고뇌하면서 서로 의논했다.
‘무슨 방편으로 저 생각을 끊을 수 있을까?’
그릭 다시 스스로 생각하였다.
‘이 세상에서 탐착할 만한 것은 오직 아름다운 색(色)뿐이다. 얼굴이 아주 단정한 여자에게 장가들여 그 생각을 끊게 하리라.’
아들 나이가 15세가 되자 결혼시키려 했다. 아들은 부모에게 말했다.
‘내 뜻은 청정하여 여자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은 면하기 어려울 줄을 알고 방편을 써서 부모에게 말했다.
‘몸은 자금색이고통합뷰어
단정하기가 세상 사람들보다 뛰어난 여자가 있으면 제가 결혼하겠습니다.’
부모는 곧 여러 바라문들을 불러 두루 다니면서 그런 여자를 구하게 했다. 모든 바라문들은 금으로 한 여자를 만들었는데 단정하고 기특하였다. 바라문들은 이 금녀를 가마에 태우고 촌락으로 다니면서 높은 소리로 외쳐댔다.
‘어떤 여자든지 나와서 이 금신(金神)에게 예배하면 그녀는 이 뒤에 출가할 때, 틀림없이 몸은 순금색으로서 단정하고 수묘(殊妙)한 좋은 남편을 얻을 것이다.’
여자들은 이 말을 듣고 다 나왔는데, 오직 한 여자만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몸이 금색이고 단정하며 특별히 아름다웠으니, 즉 전날 금을 보시한 그 여자였다. 전생에 훌륭한 인연으로 이런 묘한 몸을 가졌으며, 뜻은 청결한 것을 좋아하여 그녀 혼자만 나가려 하지 않았다. 다른 여자들이 억지로 이 여자를 끌고 나가는 바람에 이 금신(金神)을 모두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나가자 이 여자의 금색 광명이 저 금신의 광명을 압도했다. 바라문은 이것을 보고 곧 이 여자를 신부로 맞이하려고 남자의 집으로 갔다. 그들은 부부로서 만났으나 다 청결하여 애욕이 조금도 없었다. 서로 약속하고 각각 딴 방에 거주하였다. 부모는 이것을 알고는 한 방을 헐어 버리고 같은 방에 있으면서 한 침대를 쓰게 했다. 가섭이 그 부인에게 말했다.
‘내가 만약 자거든 당신은 걸어다니시오. 당신이 만약 자면 내가 걸어다닐 것입니다.’
그 뒤에 아내가 자면서 한 손에 침대 밑으로 늘어뜨렸다. 마침 그 방에 독사가 들어와 그 손을 물려고 했다. 가섭은 그것을 보고 옷으로 그 손을 싸서 들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아내는 놀라 깨어 일어나 가섭을 꾸짖었다.
‘우리는 서로 가까이하지 않기로 맹세했는데, 왜 지금 가만히 내 손을 드십니까?’
가섭이 대답하였다.
‘뱀이 들어와 당신 손을 물려 하기에 당신 손을 들었을 뿐이오.’
그리고 그 뱀을 가리켜 보이자, 아내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 부부는 절조가 있고 세간을 매우 싫어하여 부모에게 아뢰어 출가하려 했으므로 부모는 마침내 허락했다. 이리하여 그들 부부는 함께 출가하여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갔다. 부처님께서는 자리를 나누어주고 설법하시자 그 자리에서 아라한이 되었고통합뷰어
부인도 뒤이어 아라한이 되었다.
가섭은 세상에 있을 때는 항상 여래와 마주 앉아 설법을 들었고, 부처님께서 멸도하실 때에는 그 법장(法藏)을 다 가섭에게 부탁하셨다. 뒤에 가섭은 3장(藏)의 결집(結集)을 마치고 계족산(鷄足山)에 들어가 반열반에 들어가 온몸이 흩어지지 않은 채, 미륵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기를 기다려 그 산에서 나와 대중 가운데서 열여덟 가지 변화를 부려 한량없는 중생을 구제한 뒤에 몸이 멸하고 미래 세상에 부처가 되어 명호를 광명이라 할 것이다.”[60상자의 금속은 『살바다전(薩婆多傳)』에 있고, 미래의 성불은 『법화경』에 나온다.]
또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비라위성(迦毘羅衛城) 안에 살고 있는 정반왕(淨飯王)의 아들이며 부처님의 아우인 난타(難陀)는 몸이 단정하고 서른 가지 상호가 있었다. 왕은 그를 위해 손타리(孫陀利)라는 며느리를 맞이하였는데 단정한 그 얼굴은 세상에 보기 드물었다. 난타는 밤낮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공경하였기 때문에 출가하려 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그를 출가시켰는데, 그는 출가한 뒤에 아라한이 되었다. 이것을 본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난타 비구는 과거에 어떤 복을 심었기에 부처님의 아우로서 서른 가지 상호를 갖추고 몸은 단정하여 세상에 비할 데 없으며 또 부귀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91겁 전에 비바시불이 열반하신 뒤에 난타는 그 때 큰 장자로서 벽지불의 탑 안 벽에 푸른 물감을 바르고 벽지불의 형상을 그리고는 곧 발원하기를, ≺원컨대 나는 대대로[世世] 부귀한 집에 태어나 항상 단정하고 몸은 금빛이며 부처를 만나 도를 얻게 하여지이다≻라고 했다.
이 선근의 발원 공덕의 인연으로, 그 뒤로는 91겁 동안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에 나서, 몸은 단정하고 서른 가지 상호를 갖추고 부귀하여 쾌락이 무궁하였으며,통합뷰어
오늘에 이르러서는 나와 같은 형제로 태어나서 출가해 도를 얻었느니라.’”
(6) 친시부(嚫施部)
『전륜오도경(轉輪五道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개 공덕을 지어 몸을 따르게 하는 행(行) 중에 향을 피우고 등불을 켜서 얻는 복이 제일 많을 것이다. 향을 피워 복을 짓는 일이거나 경전을 읽는 일에 대하여 남을 청할 수가 없다고 하여 보시하기를 원하지 않든지, 남을 부려 먹게 한다면 어찌 자신의 배가 부를 수 있겠는가?
향을 피우고 깨끗하게 청소하며, 등불을 켜서 밝음을 이어가며, 향을 피우고 재(齋)의 모임을 갖고 경을 읽고 보시를 하는 것으로써 상법(常法)을 삼아야 한다.
보시하여 얻은 복은 여러 하늘들도 대접하고 온갖 악이 다 물러가며 숱한 마군이 항복한다. 게으른 사람이 정진(精進)하지 못해서 하루 아침에 질병에 걸리거나 또는 길하거나 이롭지 못할 때 곧 향을 피워 비로소 복을 지으려고 하면 모든 하늘이 내려오지 않고 모든 마군이 그의 앞에 있다가 다투어 와서 요사스럽게 접촉하여 온갖 괴변을 지을 것이니, 그런 까닭에 늘 정진해야 한다.
죄와 복이 사람을 따르는 것은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라다니는 것과 같으므로 복밭에 선을 심어 늘리는 것은 마치 니구류(尼俱類)나무를 심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 씨 하나를 심어 그것이 차츰 자라나면 거두는 열매가 한정없이 많은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를 보시하여 만 배를 얻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 게송을 설하셨다.
현명한 사람은 보시하기 좋아하여
하늘의 신들이 저절로 보호하네.
하나를 보시하여 만 배를 얻어
안락(安樂)하고 또한 수명도 길 것이다.
오늘날 착한 사람에게 보시하면
그 복덕 한량없이 많으리니
그들은 모두 부처님도를 얻어
시방 중생들을 다 제도하리라.”
(7) 잡복부(雜福部)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스님이 기거할 방사(房舍)와 탑과 불상을 만들거나 넓은 길에 우물을 파거나 다리를 놓거나 배를 만들면, 이 사람의 공덕은 태어나는 어느 때에나 항상 시주(施主)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세 가지 인연은 제외된다.
첫째는 과거에 훼손하고 무너뜨린 일이 있었을 것이요,통합뷰어
둘째는 이 사람이 죽었을 경우이며, 셋째는 악한 마음을 일으켰을 경우이다. 이 세 가지 인연이 없으면 복덕이 항상 생기느니라.”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보시는 그 복을 얻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칼을 남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독(毒)을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셋째는 들소[野生]를 남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넷째는 음란한 여인을 남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신사(神祠)를 짓는 것이니, 이런 것들이 복을 얻지 못하는 다섯 가지 보시이니라.
또 다섯 가지 인간과 천상의 복을 얻을 수 있는 보시가 있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공원을 만드는 것이요, 둘째는 수풀을 만드는 것이며, 셋째는 다리를 놓는 것이요, 넷째는 큰 배를 만드는 것이며, 다섯째는 현재ㆍ미래ㆍ과거를 위해 거처하는 방사(房舍)를 만드는 것이니, 이 다섯 가지 일이 있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복을 얻게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곧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동산을 만들어서 시원함을 베풀어 주고
또는 좋은 다리를 놓아
사람들로 하여금 강을 건너게 하고
아울러 좋은 방사(房舍)를 지으면
그 사람은 밤이나 낮이나 간에
항상 마땅히 그 복을 받을 것이요
계율과 선정을 성취함으로써
이 사람은 틀림없이 천상에 태어나리라.”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어떤 천자가 게송으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세계로 나아가고
어떤 사람이 천상에 태어나며
어떤 사람이 낮이나 밤이나 간에
선(善)한 공덕을 장양(長養)합니까?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먼 길에 좋은 우물을 파고
과일 나무를 심어 과일을 보시해 주며
나무 숲을 만들어 청량(淸凉)함을 보시하고
다리를 놓아 사람들을 건너게 해주며
보시하고 깨끗한 계율 지키고
지혜 있어서 간탐(慳貪)을 버리면
그 공덕 밤낮 없이 자라나서
언제나 하늘과 인간 세계에 태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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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중생이 사람들에게 좋은 물을 보시하거나 혹 독사가 빠진 우물물을 행인(行人)들이 마시고 고뇌(苦惱)할까 두려워하여 그 우물에 뚜껑을 덮으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삼공후천(三空候天)에 태어나서 5욕락(欲樂)을 받을 것이다. 또 거기로부터 목숨을 마치고 만약 사람의 몸을 얻으면 왕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병이 들어 고달파하면서 목구멍에서 소리를 내며 아직 수명이 남아 다하지 않은 사람을 보고 그에게 미음이나 음료수를 마시게 해주거나 혹은 재물을 보시하여 그의 목숨을 잇게 해주면, 그는 목숨을 마치고 심수천(深水天)에 태어나서 제석천처럼 쾌락을 누릴 것이다. 그러다가 그 하늘로부터 목숨을 마치고 업을 따라 유전(流轉)할 때 세 갈래의 악한 세계[三塗]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의 몸을 받게 되면 그 생으로부터 다른 생에 이르기까지 질병의 고통을 만나지 않으며 어떤 고뇌나 혼란함이 없으리라.
만약 어떤 중생이 계율을 지키면서 비구스님을 보고 부채를 보시하여 그로 하여금 시원한 속에서 경법(經法)을 독송하게 하면 그는 목숨을 마친 다음 풍행천(風行天)에 태어나게 되는데 향기가 불어와서 기쁨과 즐거움이 비할 데 없을 것이다.
만약 어떤 중생이 강가 나루터에서 다리나 배를 만들고 좋은 마음으로써 계율을 지키는 사람을 건너게 해주고 아울러 다른 사람도 건너게 해주며 온갖 악을 짓지 않으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지만천(持鬘天)에 태어나서 5욕락을 누리고 거기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 세계에 태어나면 왕의 창고를 맡게 될 것이다.”
또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모자(母子)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항상 세 가지 일을 하곤 하였다.
첫째는 큰 배를 만들어 강 위에 띄우고 사람들을 건네 주는 일이었고, 둘째는 도시(都市)에 좋은 우물을 파서 온갖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일이었으며, 셋째는 네 문(門)에 각각 변소를 지어 놓고 사람들에게 대소변을 보게 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공덕을 닦았으므로 그들은 목숨을 마치고 난 다음에 모두 천상(天上)에 태어나서 자연히 복을 받았으며, 인간 세계에 태어나서는 부귀하고 오래 살았다. 또 그들은 태어나는 곳마다 세 갈래 세계[三塗]를 거치지 않았다.
이렇게 조그만한 복을 지은 것으로도 오히려 크고 무량한 과보(果報)를 얻었거늘 더욱이 어떤 사람이 공덕을 널리 닦은 것이겠느냐. 탑을 세우고 절을 지어서 단월들로 하여금 보시하게 하여 지은 모든 복업은 앞의 복에 비하면통합뷰어
백천만 배나 더 뛰어나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성실론(成實論)』 인경게(引經偈)에 말하였다.
만약 누가 나무를 심어 공원에 숲을 만들거나
우물을 파고 다리를 놓거나 하면
이 사람이 지은 복은
밤낮 없이 항상 증장(增長)하리라.
또 『화수경(華手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끝끝내 무상보리(無上菩提)에서 물러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만약 탑이나 절이 훼손되고 무너진 것을 보면 마땅히 그것을 수리하고 고치되 흙덩어리나 진흙, 나아가 벽돌 한 개라도 보태는 것이요, 둘째는 만일 네거리의 도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다 탑을 세우거나 불상을 만들어 염불하는 좋은 복의 인연을 만들기 위해 탑 속에 법륜을 굴리는 모습과 출가하는 모습과 나아가 쌍수(雙樹:娑羅雙樹)에서 열반에 드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셋째는 만약 어떤 비구승이 두 패로 갈라져서 쟁송(諍訟)하는 것을 보면 애써 방편을 구해 그들을 화합시켜 주는 것이요, 넷째는 만약 부처님의 법이 무너지려는 것을 보면 경전을 독송해 주거나 나아가 한 게송이라도 외워 그 법이 끊어지지 않게 하며, 법을 보호하기 위하여 법사(法師)를 공경하고 공양하며 마음을 다 기울여 법을 보호하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보살이 만약 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그는 세상마다 마땅히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나라연(那羅延)처럼 큰 몸과 힘을 지니고 사천하(四天下)를 버리고 출가를 결행하여 마음대로 네 가지 범행(梵行)을 닦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하늘에 태어나 대범왕(大梵王)이 되고, 나아가 마침내는 무상도(無上道)를 성취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지혜로운 사람이 부처님의 도를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이런 것을 배워야 하느니라.’”
또 『방우경(放牛經)』에서 말하였다.[이 경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별품(別品)」에 나오는 것과 같은 번역본이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한 가지 법이 있는데 그것은 소치는 아이가 소 기르는 편의(便宜:方便)를 알지 못하고 소를 보살피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그 열한 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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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소치는 아이가 그 색깔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그 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만지거나 씻어줄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부스럼을 치료해줄 줄 모르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연기를 낼 줄 모르는 것이요, 여섯 번째는 길을 가려서 다닐 줄 모르는 것이며, 일곱 번째는 소가 있는 곳을 모르는 것이요, 여덟 번째는 어느 길이 물을 건널 수 있는 곳인지 모르는 것이며, 아홉 번째는 좋은 물풀을 찾을 줄 모르는 것이요, 열 번째는 소 젖을 남김없이 짤 줄 모르는 것이며, 열한 번째는 그 소를 길러 그것을 쓸 수 있을까 쓸 수 없을까를 분별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그 열한 가지 일이다. 소 치는 아이가 소를 기르고 보호할 줄 모르면 그 소는 끝내 불어나지 못하고 날마다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비구에게도 또한 열한 가지 법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니, 그 손해와 이익에 대해서는 이루 다 갖추어 기록할 수조차 없느니라.
이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소치는 아이가 진리를 알면
그 소 주인은 복덕이 있어
여섯 마리 소가 여섯 해 동안에
예순 마리로 불어나서 줄어들지 않으리.
소치는 아이가 총명하여
소의 모든 모습 분별해 안다면
이와 같은 소치는 아이를
과거 세상부터 부처님께서는 칭찬하셨네.”
(8) 세승부(洗僧部)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납월(臘月:十二月) 초여드렛날 신통(神通)으로 육사(六師:外道)를 항복받으셨다. 육사들은 차라리 물에 몸을 던져 죽느니만 못하다고 하였으므로, 부처님께서 자세히 설법하여 모든 외도들을 제도하셨다. 외도들은 교화받아 항복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법의 물로 저희들의 마음의 때를 씻어 주셨으니, 저희들도 지금 스님을 초청하여 목욕시켜 그 몸의 때를 씻어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항상 변하지 않는 연(緣)이 되었다.”[지금 12월 8일 스님을 목욕시킨다는 말은 오직 이 경전의 글에서만 나온다.]
또 『마하찰두경(摩訶刹頭經)』에서 말하였다. 이 경은 또한 『관불형상경(灌佛形像經)』이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천하 인민들에게 말씀하셨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다 4월 8일 밤중에 태어나셨고, 모두 4월 8일 밤중에 집을 떠나 부처님의 도를 증득하셨으며, 다 4월 8일 밤중에통합뷰어
불도(佛道)를 증득하셨고, 모두 4월 8일 밤중에 반니원(般泥洹)에 드셨느니라.’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4월 8일을 사용한 것은 봄과 여름이 바뀌는 시기이고 죄의 재앙이 다 끝나며, 만물이 널리 생(生)하고 독기(毒氣)가 유행하지 못하며,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 당시 기후가 온화하고 알맞았기 때문에 지금 이 부처가 태어나신 날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하 인민들이 다 함께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형상을 목욕시키되, 마치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처럼 하여 천하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보살이 되었을 때에 서른여섯 번 되풀이하여 제석천왕이 되었고, 서른여섯 번 되풀이하여 금륜왕(金輪王)이 되었으며, 서른여섯 번 되풀이하여 날아다니는 황제가 되었었다. 오늘 여러 현인(賢人)들 중에 누가 좋은 마음이 있어 석가부처님의 은덕을 생각하거든 향과 꽃으로 부처님의 형상을 목욕시켜 제일의 복을 구하라. 여러 하늘과 귀신이 증명하여 알 것이니라.
4월 8일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법이 있으니, 그 때에는 세 가지 향을 써야 하느니라.
첫째는 도량향(都梁香)이요, 둘째는 곽향(藿香)이며, 셋째는 얘납향(艾納香)이다. 이 세 가지 풀향[草香]을 모아 손으로 비벼 물에 담그면 이것은 푸른 색의 물이 된다. 만약 향이 적으면 검푸른 진피(秦皮)를 방편상 대신 써도 된다.
또 울금향(鬱金香)을 손으로 비벼 물 속에 담그면 그것은 빨간 물이 된다. 이 깨끗한 물로 부처님 상을 목욕시키고 목욕이 끝나면 흰 비단 수건이나 흰 솜으로 닦는다. 끝난 뒤에 스스로 날을 잡아 다시 목욕시키는 것을 청정(淸淨)이라고 말하나니, 그 복이 으뜸이 되느니라.’”
또 『온실경(溫室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기역(祇域)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시키는 법은 마땅히 일곱 가지 물건을 써야 하나니, 그렇게 하면 일곱 가지 병을 제거하고 일곱 가지 복의 과보를 얻느니라. 어떤 것을 일곱 가지 물건이라고 말하는가?
첫째는 연화(然火)요, 둘째는 깨끗한 물이며, 셋째는 조두(澡豆:가루비누)요, 넷째는 소고(蘇膏)며, 다섯째는 순수한 재[淳灰]요, 여섯째는 버드나무 가지[楊枝]이며, 일곱째는 내의(內衣)이니 이것이 바로 목욕시키는 법이니라.
어떤 것을 일곱 가지 병을 제거한다고 말하는가?
통합뷰어
첫째는 4대(大)가 편안함이요, 둘째는 풍(風)을 제거함이며, 셋째는 습비(濕痺)를 제거함이요, 넷째는 한빙(寒氷)을 제거함이며, 다섯째는 열기(熱氣)를 제거함이요, 여섯째는 더러운 때를 제거함이며, 일곱째는 몸이 가볍고 눈[眼目]이 청명(淸明)함이니, 이것이 일곱 가지 병을 제거하는 것이니라.
일곱 가지 복을 얻는다는 것은 첫째는 4대에 병이 없고 태어나는 곳마다 늘 편안함이요, 둘째는 태어나는 곳이 청정하고 얼굴과 머리가 단정함이며, 셋째는 신체가 항상 향기롭고 의복이 청결(淸潔)함이요, 넷째는 피부가 부드럽고 윤택하며 위엄과 광명과 덕이 큰 것이며, 다섯째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니며 먼지와 때를 털어주고 씻어주는 것이요, 여섯째는 입 안과 치아가 향기롭고 말하는 것이 엄숙함이며, 일곱째는 태어나는 곳마다 저절로 의복이 생기는 것이니라.’”
또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목욕을 시키면 다섯 가지 이익을 얻는다.
첫째는 먼지와 때를 제거하는 것이요, 둘째는 피부를 다스려 한 빛으로 만드는 것이며, 셋째는 추위와 더위를 없애는 것이요, 넷째는 풍(風)을 내리고 기운을 고르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병의 고통이 적은 것이니라.
사리불아, 어느 여름 매우 열기가 심한 더운 날이었다. 어떤 농사꾼이 동산에서 물을 길어다 나무에 주다가 사리불을 보고 조그만 신심을 내어 사리불을 불러 옷을 벗기고 나무 아래에서 그 물로 목욕을 시켜 몸을 깨끗하고 시원하게 해주었다. 그 뒤에 농사꾼은 목숨을 마치고 곧 도리천상에 태어났는데 큰 위력을 가지게 되었다.
지은 공덕은 비록 적었으나 좋은 복밭을 만났기 때문에 얻은 과보가 매우 많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즉시 인간 세계로 내려와서 사리불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꽃을 뿌려 공양하였다. 사리불이 그의 신심(信心)으로 인하여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는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게 되었느니라.”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수타회천(首陀會天)이 염부제(閻浮提)에 내려와 세존께 가서 부처님과 스님께 목욕을 시켜 주고 공양하겠노라고 간청하였다. 세존(世尊)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허락하셨다.
그는 곧 음식과 목욕 도구와 따뜻한 방을 마련하였다. 따뜻한 물은 목욕하기에 알맞았고 소유(蘇油)와 완초(浣草)까지 모두 다 갖추어져 있었다.통합뷰어
그리하여 부처님과 모든 비구들은 그의 공양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목욕을 하고 난 뒤에 풍성하게 차린 음식을 먹었는데, 그 음식들은 모두 감미로워서 세간에서는 보기 드문[希有] 것들이었다.
공양을 마치고 양치질을 한 뒤에 각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 아난(阿難)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하늘은 과거에 무슨 공덕을 지었기에 형체가 저리도 뛰어나고 미묘하며, 위상(威相)이 빼어나고 광명이 밝게 빛나 마치 큰 보배산과 같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하늘은 지나간 과거 세상 비바시(毘婆尸)부처님 때에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 항상 남의 집 머슴살이로 살아가다가 부처님께서 스님을 목욕시키는 공덕에 대하여 설법하시는 말씀을 듣고 마음 속으로 기뻐하였었다.
그 뒤로 그는 곧 열심히 노력하여 조금의 돈과 곡식을 얻어서 목욕 도구를 장만하고 아울러 음식까지 만들어서 부처님과 많은 스님들을 초청하여 극진하게 받들었느니라. 이러한 복행(福行)으로 말미암아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수타회천(首陀會天)에 태어나서 이런 광명의 모습이 있게 되었다.
일곱 부처님 이래로 더 나아가 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실 때까지도 역시 이와 같이 부처님과 스님들을 목욕시킬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그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미래 세상에 두 아승기 백 겁이 지나면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니, 그 이름을 정신(淨身)이라고 할 것이요, 또한 열 가지 명호도 다 갖추게 될 것이다.’”
또 『잡비유경(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의 아우 난타(難陀)는 지나간 과거 유위(維衛)부처님 때의 사람으로서 여러 스님들을 한 번 목욕시켜 준 복과 공덕으로 그 후에 석가(釋迦) 종족으로 태어나 몸은 서른 가지 모습을 갖추었고, 그 신비한 용모 또한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이었으며, 과거의 복을 타고 부처님과 같은 세상에 태어나서 도량에서 정진하여 곧 여섯 가지 신통을 증득하였다.
옛 사람은 하나를 보시하고도 오히려 그러한 큰 과보가 있었거늘 더구나 지금의 단월(檀越)로서 그 행(行)이 많은 것이겠느냐. 그들의 넓고도 평등한 행은 틀림없이 존귀한 이름을 얻게 되고 더더욱 기뻐하면서 일체 중생들을 널리 제도할 것이니라.”
또 『복전경(福田經)』에서 말하였다.
“아난 비구가 세존께 아뢰었다.
‘제가 숙명(宿命:前生)을 기억해 보니 저는 전생에 라열기국(羅閱祇國) 어떤 서민의 아들로 태어나서통합뷰어
몸에 몹쓸 부스럼이 생겨 아무리 치료해도 잘 낫지 않았습니다. 친구로 지내던 도인이 찾아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러 스님들을 목욕시키고 그 목욕물을 가져다가 부스럼을 씻으면 곧 나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복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곧 기뻐하면서 절에 가서 더욱 공경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다시 새 우물을 파고 향유(香油)와 목욕 도구로 많은 스님들을 목욕시켜 주고 그 물로 부스럼을 씻었더니 얼마 안 지나 다 나았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태어날 적마다 얼굴이 단정하고 금빛이 찬란하게 빛났으며 티끌과 때를 받지 않았습니다.
아흔한 겁 동안이나 항상 깨끗한 복을 얻어 경사와 복이 많고 또 오래 누렸으며, 지금 다시 부처님을 만나 마음의 때가 소멸하고 응진(應眞:阿羅漢)이 되었습니다.’”
또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외국의 욕실(浴室) 모양은 마치 둥근 창고와 같은데 문을 열어 연기를 통하게 하고 밑에는 도랑을 파서 물이 나와 안으로 이르게 하며, 3경(擎:里)의 각제(閣齊)는 사람들이 이르는 곳인데 병으로 물을 떠서 3중각(重閣)을 채우면 불 기운이 위로 올라간다.
그리하여 맨 윗층 집의 물은 뜨겁고 중간층 집의 물은 따뜻하며 맨 아래층 집의 물은 차가워 제 마음대로 취해 쓰면서 따로 물을 끓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깨끗한 물이라고 말할 뿐이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욕실(浴室)을 만들면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풍(風)을 제거하는 것이요, 둘째는 병에 차도가 있는 것이며, 셋째는 티끌과 때를 제거하는 것이요, 넷째는 신체(身體)가 가볍고 편안한 것이며, 다섯째는 살결이 하얀 것이다.
만약 사부대중으로 이 다섯 가지 공덕을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욕실을 지어야 하느니라.’”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만약 목욕을 하려고 할 때에는 동산 백성들을 시켜 소제케 해 깨끗하게 하고 나무와 숯을 마련하여 물을 적당히 따뜻하게 한 뒤에 비로소 건추(揵椎)를 쳐서 지금 당장 들어와 목욕하라고 알려야 한다.
각각 허리띠로 옷을 묶어 표시하여 시렁 위에 얹어 두고, 목욕탕에 들어갈 때에는 두 팔을 흔들며 들어가서는 안 되며, 한 손으로통합뷰어
앞을 가리고 들어가야 한다. 만약 스승의 때를 밀어드리려고 하거든 마땅히 먼저 자신의 죄가 없음을 고백한 뒤에 한꺼번에 그의 두 팔을 쳐들게 하지 말고 우선 한 팔을 문지르고서 한 손으로 앞을 가리게 해야 한다. 다음에 다른 한 팔과 한 손과 나머지 안팎을 다 문지른다.
그리고는 문을 닫고 앉아서 몸에 땀이 흐르게 한다. 물을 쓸 때에는 그 분량을 헤아려 함부로 많이 쓰지 말아야 한다. 만약 못물로 몸을 씻을 때에는 스스로 죄가 없음을 고백하되, 물 밖에서 알몸으로 목욕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만약 물이 허리와 가지런하거든 사용해도 아무런 죄가 없고, 만약 물 속에 앉아 물이 배꼽쯤에 이르러도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서 아무런 죄가 없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 제 옷을 입고 도리에 맞추어 떠난다.”
스님들을 목욕시킴으로 인해 드디어 그 공덕을 펴 찬탄하였으나 변방의 도속(道俗)들이 그 법에 익숙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간략히 그 의식을 밝혀 그 이치를 나타낼 뿐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니련하(尼連河)에서는 때가 있지 않아도 그 때를 씻음을 보이었고, 람비원(嵐毘園) 안에서는 실로 먼지가 없었는데도 소제함을 보이셨다. 그러므로 쓸고 목욕함은 맑음의 근본이요 관조(灌澡)는 맑고 깨끗함의 근본임을 알아야 한다. 이른바 먼저 닦은 향기로운 모범을 드리우고 뒤에 힘쓸 꽃다운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동국(東國)에서는 7화(華)를 띄운 물로 일승(一乘)의 나그네를 씻어 주었고, 서방에는 8덕(德)이 빛나는 못물로 9품(品)의 무리를 씻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의왕(醫王)으로 하여금 밤에 온실(溫室)을 만들 마음을 내게 하였고, 장자(長者)로 하여금 새벽에 스님을 씻어 주는 서원을 세우게 하였던 것이다. 마침내는 여래의 훌륭한 방편을 힘입어 근래에는 7물(物)의 의식을 설명하고, 대각(大覺)은 자비를 드리워 멀리 5천(天)의 과보를 기별(記別)하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 큰 시주(施主) 아무 관리는 큰 마음을 널리 운행하고 위없는 업(業)을 행하여 나는 곳마다 항상 불사(佛事)를 닦고, 세상마다 항상 법륜을 굴린다. 그러므로 온갖 사견(邪見) 속에서도 바른 법을 믿을 수 있고통합뷰어
상법(像法)과 계법(季法) 시대에서도 치도(緇徒)를 공경하게 되었다. 4구(句)를 강설하여 펴니 그 값은 수주(隋珠)보다 소중하고, 한 스님을 공양하고 목욕시킨 그 복밭은 외도들보다 높다는 사실을 깊이 알았다. 드디어 그들로 하여금 그 벗들을 서로 격려하고 권하여 각각 깨끗한 재물을 희사하여 다 함께 이 복을 숭상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때에 7물(物)을 마련하고 이 날에 3존(尊)을 목욕시키며, 또 덕망이 높은 아무 법사를 청하여 『온실세욕중승경(溫室洗浴衆僧經)』 1부를 강설하게 하였다.
그 때 사람들이 법사를 학해(學海)라고 불렀고 세상에서는 사종(詞宗)이라고 불렀다. 현묘한 이치를 파헤칠 때는 구름이 모이는 듯하였고 온갖 어려움을 해결할 때는 샘물이 솟아나듯 하였다. 그리하여 세속 사람들로 하여금 다 깨치게 하였는데 마치 밝은 해가 두꺼운 어둠을 여는 듯하였고, 법려(法侶)들의 의혹을 없애게 하였는데 마치 찬 서리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았다.
이제 이미 현묘한 경전을 다 읽었으니 그 자리에는 범천(梵天)을 울리는 8음(音)이 멎었고, 목욕시킬 때가 되면 또 스님들을 씻어 줄 일곱 가지 물건을 찬탄하였으니, 첫째는 큰 화로에는 불이 성하고 큰 가마솥에는 향기가 피어 오르며 아늑한 방은 이미 한기(寒氣)가 없고 용천(龍泉)은 저절로 열기를 떠오르게 하고, 둘째는 가볍고 맑은 덕수(德水)가 금지(金池)에 흘러 가득함은 때를 깨끗이 씻어 마치 붉은 연꽃이 핀 것 같고 머리와 몸은 흙이 촉촉하게 젖은 것 같다. 셋째 은빛 콩가루는 매끄럽고 부드럽기가 도라솜과 같은데 때를 씻으니 본래 구름을 헤치듯 하여 깨끗한 몸이 비로소 해를 드러내듯 하며, 넷째는 8미(味)의 연유 기름이 5향(香)의 향기 같아 풍(風:中風)과 비(痺:麻痺)를 없애되 문지름을 사양하지 않는다. 빛나는 체질과 빛나는 얼굴이 어찌 묘한 약을 부끄러워하겠는가. 다섯째 옥 대롱의 신기한 재는 눈처럼 빛나고 서리처럼 깨끗해 삿된 바람도 만나면 곧 불기를 그치고 어지러운 생각도 그 때문에 이미 편안해진다. 여섯째 푸르고 가는 버들의 녹색 줄기와 가벼운 가지로 열기를 제거하면 입에서는 그윽한 난초향이 나고 이를 닦으면 그 기운이 우발꽃과 어울린다. 일곱째 제(齊)나라와 위(魏)나라의 비단으로 속옷을 지으면 병을 고쳐 몸이 편안하고 과보를 씻어 저절로 빛나는 장식이 된다.
이상 7물을 모두 갖추어 일심으로 받들어 올리면서 온갖 자비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찬탄하고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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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정토(淨土)에 살려면 반드시 10력(力)의 몸을 미리 씻고, 멀리 천궁(天宮)에 나려면 먼저 6화(和)의 무리를 목욕시켜야 한다. 비유컨대 소리가 고르면 메아리가 순하고 몸이 곧으면 그림자도 단정한 것과 같아서, 인과(因果)의 이치는 필연적인 것이요 귀신이 주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서 지금 시주(施主) 등은 의왕(醫王)을 우러러 이 온실을 만들고 7물을 마련하여 3존(尊)을 목욕시키며 인연 있는 이를 격려하고 묘한 경전을 크게 드날린 이 수승하고 막대한 선근으로 먼저 장엄하는 것이다.
오늘 아무 법사 등은 큰 세력이 있어서 생(生)마다 항상 법륜을 굴리고, 큰 신통을 얻었다. 세상마다 불사(佛事)를 닦아 어른도 아이들도 다 무궁한 지혜를 받았고 그 권속들은 일찍 죽지 않고 수명을 다했다. 업장은 아침 안개와 함께 사라지고 아름다운 경사는 모두 많은 별처럼 벌려져 있다.
‘모든 시주 등은 원하옵건대 8정도(正道)에 높이 다달아 보리의 대도(大道)로 나아가고 7진(珍)을 넉넉히 소유하여 무궁한 중생을 구제하여지이다.
또 원하나니 잠깐 동안이라도 경영한 사람은 일곱 가지 병(病)을 모조리 제거하고, 털끝만큼이라도 찬탄한 사람은 무궁한 일곱 가지 복(福)을 얻으며, 보거나 듣고 기뻐하면서 다 함께 법성(法城)으로 나아가고 머리를 두드리고 손가락을 튀기면서 함께 불과(佛果)에 오르며, 현묘한 가르침을 펼치고 드날려 스스로 두루 원만하고 엄숙한 위의와 목욕 도구를 모두 갖추어지이다.
이 대중은 오직 일심으로 삼보(三寶)를 받들어 청하나이다.
위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삼세(三世) 자존(慈尊)의 5분(分) 법신(法身)과 진응(眞應) 양체(兩體)께 머리를 조아려 귀의하나이다. 98사(使)의 의혹에 얽매임을 이미 다하고, 32상(相)의 미묘한 장엄은, 진실로 4구(求)가 없고 거짓으로 4사(事)를 같이 하옵는데, 중생들을 위하여 감응하여 모두 오시옵소서. 원하옵나니, 각각 마니보전(摩尼寶殿)을 타고 마노의 구름 속에 앉아 백억의 광명을 놓아통합뷰어
3천 세계를 비추시며, 범왕(梵王)은 일산을 들고 제석은 꽃을 뿌릴 때, 이 도량에 강림하시어 온실에 들어가 목욕하소서.
또 발심(發心) 이상과 보처(補處) 이하의 환희(歡喜)ㆍ이구(離垢)의 사람들과 선혜(善慧)ㆍ법운(法雲)의 보살들과 3현(賢) 10성(聖)의 일체 보살님께 청하옵나니, 오직 바라옵건대 천인(天人)을 손바닥 안에서 부리며 법계를 털 끝에 두시며, 4족(足)의 영붕(靈鵬)을 똑같이 다스리고 6통(通)의 신기(神驥)를 함께 타고 보이는 상(相)이 아니면서 보이고 상으로 오는 상이 아니면서 오시옵소서. 이 도량에 강림하시어 온실에 들어가 목욕하소서.
또 산중에 편안히 앉으신 독각(獨覺) 대인(大人)과 말이 떨어지자마자 진(眞)을 깨달은 4과(果)의 고사(高士)와 또 향해 나아가는 성승(聖僧) 빈두로(賓頭盧) 상좌(上座) 등을 청하나이다. 원하나니, 공중에서 지팡이를 흔들어 6신통을 부리고 구름 속에서 병을 가지고 18변(變)을 갖추었으며, 파사(波斯)의 신앙을 내고 노도(勞度)의 삿된 마음을 항복 받으시며 또 이 현재의 화합 대중으로서 백랍(百臘) 이하는 물론 무랍(無臘)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온실에 들어가 목욕하소서.
또 청하옵나니, 공중에서 지팡이를 흔들어 6신통을 부리고 구름 속에서 병을 가지고 18변(變)을 갖추었으며, 파사(波斯)의 신앙을 내고 노도(勞度)의 삿된 마음을 항복받으시며 또 이 현재의 화합 대중으로서 백랍(百臘) 이하는 물론 무랍(無臘)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온실에 들어가 목욕하소서.
또 청하옵나니, 큰 자비로 본래 서원하셨던 그 서원으로 4생(生)을 제도하고, 좋은 방편으로 6도(道)에 몸을 나타내되,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 소리를 따라 곧 이르며, 생각하지 않는데 곧 나타나는 청하지 않은 벗들도 다 이 온실에 들어가 목욕하소서.
또 청하나니, 삼계(三界)의 하늘 대중과 4해(海)의 용왕과 8부(部) 귀신과 일체 중생으로서 형상이 있는 무리와 곤충들까지도 다 이 온실에 들어가 목욕하라.’
이렇게 두루 청하고 화합 대중은 노래로 찬탄하며 향을 가지고 차례를 따라 도를 행한다.
게송을 읊는다.
삼보(三寶)는 가만히 일어나고
4생(生)은 법을 나타내네.
자비는 시방을 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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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만덕(萬德)을 흘린다.
지혜는 8장(藏)을 끌어안고
교화는 백억에 두루하네.
은혜 갚는 이치가 중하나니
이것은 다 복의 힘 때문이다.
물감으로 그리고 형상 새기며
경전 전하여 복을 세우네.
배와 다리로 건네 주고
재를 올리고 목욕시킨다.
신명을 돌아보지 않거니
그 정성을 어찌 누르리.
장하다. 훌륭한 업이여,
그 공덕은 헤아리기 어렵다.
감응연(感應緣)[대략 열한 가지 증험을 인용하였다.]
진(晋)나라 대사마(大司馬) 환온(桓溫)
진나라 왕응지(王凝之)의 부인 사(謝)씨
수(隋)나라 사문 석혜달(釋慧達)
당(唐)나라 사문 석주력(釋住力)
당나라 사문 석지초(釋志超)
당나라 사문 석혜진(釋慧震)
당나라 사문 석혜운(釋慧雲)
당나라 사문 석도영(釋道英)
당나라 사문 석차덕(釋叉德)
당나라 사문 석통달(釋通達)
당나라 상주국(上柱國) 왕회지(王懷智)
① 진(晋)나라 대사마(大司馬) 환온(桓溫)
진(晋)나라 대사마(大司馬) 환온(桓溫)은 말년에 자못 불법을 받들어 비구니들을 공양했다. 이름 모를 어떤 비구니가 멀리서 찾아와 환온에게 몸을 의탁하여 살면서 단월로 삼았다. 비구니의 재주와 행이 평범하지 않아서 환온은 매우 공경히 대접하면서 안채에 머물게 하였다. 비구니는 목욕할 때 마다 늘 때를 넘기곤 하였다. 환온은 이상하게 여겨 가만히 엿보았다. 그 비구니는 옷을 다 벗고는 칼로 배를 째어 창자를 내놓고 몸과 머리를 끊고 4지를 잘랐다. 환온은 놀라서 돌아왔다. 한참 있다가 그 비구니는 욕실에서 나왔는데 그 몸은 여전하였다. 환온은 그 까닭을 비구니에게 물으니, 비구니가 대답하였다.
“만일 끝내 임금을 업신여기면 당신 몸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 때 환온은 한창 문정(問鼎)을 꾀했는데, 그 말을 듣고 슬퍼하면서 그 일로 인해 경계하여 마침내 신하의 절개를 지켰다. 그 비구니는 하직하고 떠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② 진(晋)나라 왕응지(王凝之)의 부인 사(謝)씨
진(晋)나라 낭야(琅邪) 왕응지(王凝之)의 아내는 진나라 좌장군(左將軍)의 부인 사(謝)씨통합뷰어
혁(弈)의 딸이다. 그녀는 일찍이 두 아들을 잇달아 잃고는 매우 슬퍼 여러 해를 울면서 지냈다. 젊어서부터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뒤에 갑자기 두 아들이 한꺼번에 돌아왔는데 모두 사슬과 차꼬를 차고 그 어머니를 위로하면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라고 했다. 아이들은 다 죄가 있었는데 그들은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만일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신다면 복을 지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어머니는 차츰 슬픔이 사라지고 부지런히 공덕을 지었다.[위 두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③ 수(隋)나라 사문 석혜달(釋慧達)
수(隋)나라 천태산(天台山) 폭포사(瀑布寺)의 석혜달(釋慧達)은 성은 왕(王)씨이고 양양(襄陽)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부지런히 공부하여 성공하기를 힘썼다. 혹은 산에 오르기도 하고 물가에 이르기도 하며 혹은 촌락을 돌아다니면서, 경치가 좋은 곳이 있으면 거기에 절을 짓고자 했다. 그리고 그 절에 있으면서 대중 스님들을 위하고 도를 닦았다.
인수(仁壽) 연중에는 양주 백탑사(白塔寺)에 7층의 나무 부도를 세우기로 하고, 목재와 돌이 다 마련되자 절 짓는 일은 뒷사람에게 부탁했다. 그리고는 강을 건너 서쪽으로 올라가 파양(鄱陽)ㆍ예장(豫章) 등 여러 군(郡)으로 가서 온갖 공덕을 차례로 관찰하고, 중생들과 복의 인연을 같이 하기를 서원했었다. 그런 까닭에 촌이나 읍으로 가서 방사(坊寺)ㆍ선우(禪宇)의 영탑(靈塔)과 신의(神儀)를 보면, 쇠붙이ㆍ나무ㆍ흙ㆍ돌을 불문하고 모두 모아 함께 절을 지으니 그 수는 한둘이 아니었다.
만년에는 사문 혜운(惠雲)의 청을 받아 여악(廬岳)으로 가서 서림사(西林寺) 중각(重閣) 7칸을 지으니 난로(欒櫨)는 중첩하고 광휘는 번쩍였다. 짓기 시작하던 날에 누런 남(楠)나무를 쓰리라고 맹세하고 온 경내를 두루 찾아보았으나 한 나무도 없었다. 그래서 모두들 다른 나무로 대신하자고 하였다. 그러자 혜달이 말하였다.
“성심이 여기에 있는데 어찌 다른 것을 쓰겠는가. 반드시 그 징험이 있다면 소나무가 변해 남나무로 될 것이요, 만일 감응이 없다면 중각은 언제 지어질지 모를 것이다.”
대중은 이 말에 겁이 나서 사방으로 나가 구해 보았다. 과연 그 경내의 하소산(下巢山) 한 골짜기에 있는 나무가 모두 누런 남나무였다. 그러나 그 골짜기가 원래 너무 깊고 늪지대여서 그 나무를 베어 낼 수가 없었다. 혜달은 어느 절벽을 더듬어 가다가, 홀연히 어떤 곳에서통합뷰어
광명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안을 엿보았더니 사람이 다닐 만한 길이 있었다. 그 길은 오직 5척 남짓한데 모두 천애 절벽이었다. 마침내 나무와 돌을 끌어내어 강머리에 이르렀다. 중도에서 여울을 만나 배가 모두 부서졌으나 여악에 이르러서는 잃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하여 중각을 지으니 먼저의 것보다 더욱 웅장하고 화려했다. 그 뒤에 그 중각이 갑자기 남쪽으로 3척 남짓 기울었으니, 공장(工匠)이 설계할 때 방위를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중각 남쪽에 석문(石門)을 통하는 냇물이 있었는데 갑자기 사나운 바람이 북으로 불더니 그것을 바로잡았다. 지금도 그것이 남아 있다.
혜달의 옷은 너무 누추하였다. 혜달은 그것을 아랑곳하지 아니하였으나, 옷이 누추한 그것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곧 사람을 시켜 옷을 만들어 주게 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도 혜달의 본래의 사람됨을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대업(大業) 6년(610) 7월 그믐날, 혜달은 묵은 병이 갑자기 도져 7일 동안 누워 있었다. 이상한 향기가 방에 들어와 구름처럼 돌고, 중각 안의 불상들은 모두 땀을 흘려 땅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 징조를 보고 모두 혜달이 죽을 줄을 알았고, 관리도 와서 이것을 직접 보고 왕에게 아뢰었다. 혜달의 그 신지(神志)는 평상시와 같았으나 남은 업에 얽매어 갑자기 아주 떠나니 나이는 87세였다.
④ 당(唐)나라 사문 석주력(釋住力)
당(唐)나라 양주(楊州) 장락사(長樂寺)의 석주력(釋住力)은 성은 저(褚)씨이고 하남(河南) 양적현(陽翟縣) 사람이다. 기품은 준수하고 텅 빈 마음은 넓고 커서 그 높은 이름은 스님과 속인 사이에 두루 퍼졌다. 그 본사(本寺)에서 사부대중과 왕공(王公)들과 함께 높은 누각과 두 개의 협루(挾樓)를 지을 때 묘하고 기특한 솜씨로 그 해에 다 마치니, 3백 명 대중이 모두 기뻐하였다.
또 대업(大業) 10년(614)에는 혼자의 힘으로 전단향나무에 불상과 두 보살을 새겼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완성하고 불전 안에 모셨다. 14년(618)에는 수나라에 난리가 일어나 도인과 속인들이 모두 흩어지고 죽으니, 그 해골이 마른 나뭇잎처럼 거리와 시장을 다 메웠다. 그는 신명(身命)을 걸고 전각을 수호하기를 맹세하였다.통합뷰어
그 절에는 여우와 토끼뿐이었다. 그는 자기 그림자와 짝하면서 콩을 먹고 물을 마시며 다시 추위와 더위를 물리쳤다. 비록 나이는 늙었으나 기력은 더욱 왕성하여 퇴락한 곳을 모두 흙으로 발랐다. 사방이 불에 탔으나 쉬지 않고 경전을 외우면서 손수 지붕을 이었다. 도적들이 그의 눈물을 닦아 줄 때는 보는 사람들마다 모두 슬퍼하고 탄식했으며, 이따금씩 마음을 고친 도적들은 그를 도와 수리했다.
당나라가 천명을 받고는 큰 법을 널리 펴니 옛 스님들이 모두 와서 그에게 의탁했다. 고을 집들은 모두 탔으나 이 절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무덕(武德) 6년(623)에 강 넘어 도적의 장수 보공우(輔公祐)는 험한 곳을 등지고 군사의 권리를 쥐고는 가만히 반란을 도모하여 모든 사찰을 강남으로 철거하라 했다. 주력은 그에게 두 번 글을 보내어, 불전 앞에서 불에 타 죽는 한이 있어도 절에 남아 있겠다고 청원(請願)했다. 그러나 보공우는 거짓으로 주력을 높이 치하하면서 절을 모두 없애려 하였으므로 비록 그 글을 받았지만 전연 돌아보지 않았다. 주력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무량한 겁 동안 탐애(貪愛)를 익혀 내 몸을 버림으로써 법의 은혜를 갚지 못했었다. 이제 부처님 앞에서 죽으려 한다. 그러나 저 불상을 차마 볼 수 없으니 강 건너로 모셔라. 그리고 마른 나무를 쌓아 스스로 몸을 태워 공양하리라. 내가 죽은 뒤에는 저 불상은 반드시 강남으로 옮겨갈 것이니, 옷과 도구들은 모두 불상에 넣어라. 울면서 영(靈)에 전하는 것은 이치로 보아 고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곧 향탕(香湯)에 목욕하고 가부(跏趺)하고 서쪽을 향해 앉아 불을 피워 스스로 태워 불 속에서 죽었다. 그 때 나이는 80세였으니 즉 무덕 6년 10월 8일의 일이었다. 목숨을 마치고 불은 꺼졌으나 합장한 채로 엉겨 있었으므로 다시 충분히 다비하니, 한꺼번에 모두 다 타버렸다.
처음에 주력이 부처님 앞에서 불에 탈 때에 까마귀떼가 애달프게 울었는데 그 소리가 매우 애절하였으며, 오른쪽으로 일곱 바퀴 돌고서야 비로소 날아갔다. 그 몸이 죽은 뒤에는 불상이 과연 남쪽으로 옮겨갔으며 전각과 승방들은 다 화재를 면하고 법보(法寶)와 대중들도 모두 여전하였다.
그 문인(門人) 혜안(慧安)과 지색(智賾)이 스승과 제자의 의리가 소중하고 구생(舅甥) 간의 은혜가 깊어,통합뷰어
그 절 안에 높은 비석을 세웠는데 비문은 동궁(東宮)의 서자(庶子) 우세남(虞世南)이 지었다.
지금의 불상은 본전으로 옮긴 것인데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⑤ 당(唐)나라 사문 석지초(釋志超)
당(唐)나라 분주(汾州) 광엄사(光嚴寺)의 석지초(釋志超)는, 성은 전(田)이고 분주 풍익(馮翊) 사람이다. 정진할 적에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도량은 넓고 높았다. 무덕(武德) 7년(624)에 분주의 포복산(抱腹山)에 있을 때 스님들은 겨우 1백여 명이었으며, 오로지 큰 재(齋)에 의지하였으나 보리는 6석(石)뿐으로서 한 창고에 두고 하루에 5승(升)을 갈아 그것으로 공양하였다. 봄에서 여름까지 그 쓰임새가 매우 많았으므로 스님들은 이상하게 여겨 조사해 보았더니 겨우 두 섬밖에 쓰지 않았다. 이것으로 헤아려 보아도 이 일이 신비한 일임을 생각할 수 있다.
또 그들은 여러 번 이상한 스님이 허공을 날아 오가는 것을 느꼈으니, 비록 말로 묻는 일은 없었으나 그 형체로써 징험할 수 있어서 거기 같이 사는 스님들은 다 신령스런 교훈을 들었다. 나아가서는 대중을 모으는 종을 칠 때는 그 종소리를 따라 나타내고 돌에서 샘물을 솟게 해 사람들로 하여금 넉넉히 쓰게 했다. 이런 신령스런 많은 감응은 실로 그의 뛰어난 복 때문이었다.
정관(貞觀) 15년(641) 3월 11일에 갑자기 병으로 인해 그 성(城)의 절에서 세상을 떠나니 나이는 71세였다.
⑥ 당(唐)나라 사문 석혜진(釋慧震)
당(唐)나라 재주(梓州) 통천사(通泉寺)의 석혜진(釋慧震)은, 성은 방(龐)씨이고 키는 8척이었다. 스승에게서 『삼론(三論)』 강설을 듣고 현묘한 깨침이 더욱 독실하였다. 매년 정월에 전경(轉經)할 때는 천 명의 스님에게 가사를 두루 보시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였다. 항상 『삼론』을 강설할 때는 그것을 듣는 스님이 1백여 명이었다. 하루는 법상에 올라가 갑자기 까무라칠 것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보고 말하였다.
“저 서쪽 산꼭대기에 큰 불상을 만들면 좋겠다.”
조금 있다가 깨어나 자리에서 내려와서는 대중을 데리고 나가 돌아다니면서 “중감(中龕)에 불상을 만들고 양쪽에는 샘물이 흐르게 하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곧 석공(石工)을 시켜 좌상(坐像)을 깎아 만드니 그 높이는 130척이나 되었다. 정관(貞觀) 8년(634)에 완성하니, 사방에서 모인 도인과 속인 3만 명이 모두 이 불상을 보고 경하하였다. 그 불상은 입에서 크게 밝은 광명을 놓아 모든 사람들이 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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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하루 5백 리를 달리는 말 한 마리가 있었다. 일찍이 전장에 나갔다가 다른 말은 다 죽었는데 이 말만은 살아 돌아왔다. 14년(640) 7월에 갑자기 이 말이 울기만 하면서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혜진은 그 우는 소리를 듣고 매우 두려워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십력(十力)이라는 이상한 스님이 와서 혜진에게 말했다.
“말이 주인과 이별하는 것인데 주인이 마땅히 먼저 갈 것이니 내년 정월 15일 정오에 당신이 열반에 들 것입니다. 법사님은 그 재물을 뒤에 남기지 마십시오. 당신 몸에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이내 사라졌다. 혜진은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먼저 장경을 만들고 스님을 청해다가 항상 독송하게 하고 다시 큰 보시의 문을 열어 사방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고 공경하여 청하는 사람이 오면 다 주었다. 이듬해 초에 또 여러 스님을 청해다가 14일 동안 경을 읽게 하고, 도를 행할 때는 속세 인연인 형제와 남녀들이 다 모였다. 8일 동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향기가 그치지 않았고, 아침부터 낮까지 절 안의 나무와 땅에서 다 연꽃이 피었다. 사람들은 이 기특하고 상서로운 조짐을 보고 다 그가 세상을 떠날 줄을 알았다. 혜진이 말하였다.
“아름다운 징조가 이미 나타났으니 기한이 차기를 기다릴 수 없다.”
그리고 곧 보시를 행해 밥을 일찍 먹게 하고는, 손으로 향로를 들고 노사나불(盧舍那佛)을 세 번 돌았다. 다시 불상 앞에 돌아와서는 꿇어앉아 선정에 들었다. 대중이 방에 가득했으나 그가 떠난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 나이는 66세였다. 장례를 멈추고 만기를 기다릴 때도 향기는 그대로 있었다.
형제 세 사람은 각각 50만 전(錢)씩을 내어 묘소에서 스님들에게 보시하고 또 비전(悲田)으로 보시했다. 돌탑을 만드니 높이는 5장(丈)이요 감실(龕室)에 승상(繩牀)을 만들어 두고 시체를 그 위에 두었는데 1백여 일이 지나도 시체는 쓰러지지 않았다. 만여 명의 도인과 속인들은 계속해 슬피 울었다.
⑦ 당(唐)나라 사문 석혜운(釋慧雲)
당(唐)나라 서울 홍복사(弘福寺)의 석혜운(釋慧雲)은, 성은 왕(王)씨이고 태원(太原) 사람이다. 먼 조상 때에 피난하여 구강(九江)에 살았다. 나이 스무 살에 도를 좋아해 광산(匡山)의 대림사(大林寺)에 몸을 던졌으니 그 때 나이는 25세였다.
달(達)이라는 선사(禪師)는통합뷰어
강회(江淮) 안팎의 머무는 곳마다 절을 지었다. 혜운은 그 절이 헐고 무너졌기 때문에 달 선사를 청해 수리했다.
수(隋)나라 말년에 온 나라에 난리가 일어났다. 임사홍(林士弘)이라는 사람이 사람을 모아 무장(務章)에서 참위하여 초제(楚帝)라 일컬었다. 상서령(尙書令)인 파양(鄱陽)의 호수재(胡秀才)는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구강에 웅거해 있다가 어떤 감응이 있어 그로 인해 곧 발심하고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있는 문수(文殊)의 서상(瑞像)을 그리려 하였다. 혜운이 뛰어난 솜씨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시켜 노추(鑪錘)를 감독하게 하여 빛나는 형상이 다 갖추어졌다. 그런데 다만 그 목과 옆구리 두 곳에 구멍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사람들은 그런 줄을 알지 못했다.
그 해에 수재는 거짓 칙사(勅使)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혜운이 불상 빛깔의 금 20냥을 대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왔다. 혜운은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기 때문에 그것을 보관할 방법이 없어 모두 수재에게 주었다. 그리고 또 염송(念誦)하는 동주(銅珠) 한 꿰미를 선물로 수재에게 주었다. 행영정(行營亭)의 군사들이 그에게 복을 빌었다.
수재는 곧 바람을 만나 돛을 달고 앞으로 가다가 강 복판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해 재물을 다 잃어버리고 사람만 겨우 언덕에 다달았다. 그들은 아무 여한도 없었으나 다만 금빛 불상을 잃은 것만이 몹시 원통하여, 강가에서 그치지 않고 한탄하면서 서원을 이루지 못한 것을 깊이 안타까워했다. 조금 있다가 그 금통(金筒)이 물결을 따라 거슬러 올라오고 또 그 동주(銅珠)도 끊이지 않고 연이어져 보일 듯 말 듯 물에 떠 와서 언덕에 닿았다. 그 금상을 얻자 대중은 크게 기뻐하여 무한히 경하했다. 그 잃은 곳과 언덕까지 나온 곳을 계산하면 30여 리나 되었으며, 그것은 무거웠는데도 물결을 거스르고 떠왔다 하여, 군민(軍民)들은 모두 괴상히 여기고 그 영감에 감탄했다.
수재가 죽임을 당할 때 목과 옆구리를 칼에 찔렸으니 위의 문수의 상과 꼭같았다.
처음에 수재가 도적에게 잡히려 했을 때 그 금을 숙부에게 맡겼는데, 만일 그것을 가지고 피난했더라면 틀림없이 도적에게 빼앗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금을 잃어버렸으니 그것을 찾을 길이 없었는데 조금 있다가 도적 중의 한 사람이 그것을 훔쳐 가지고 왔다.통합뷰어
그러나 그 금을 가지고 온 줄을 전연 몰랐다.
효(曉)는 본래의 금을 얻어 혜운에게 맡겨 문수상을 성취하니 빛나는 상이 뛰어났다. 지금 산각(山閣)에 그대로 있다. 처음에 그 상을 만들 때 이오계(李五戒)라는 사람이 발원하기를 ‘만약 금이 녹는 날이 있으면 맹세코 한 팔을 태우겠습니다’라고 했다. 혜운은 그 모양을 본떠 다 만들어 그 앞에 내어 놓았다. 그것이 만들어지던 날 이오계는 전연 모르고 있었는데, 상을 완성하던 날, 그의 꿈에 상이 말하였다.
“그대는 전에 팔을 태우겠다고 했는데 왜 그 서원을 어기느냐?”
오계는 꿈에서 깨어나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고 곧 상 앞에 가서 칼로 팔을 잘라 베로 뼈를 싸고 팔을 태워 공양했다. 하늘은 향을 내리고 상은 광명을 놓으니, 이런 신기한 현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혜운은 정관 연초에 볼 일이 있어서 서울에 갔다가 수율사(首律師)를 만나 율업(律業)을 가슴에 새겼다. 고관들은 그의 높은 덕을 직접 보고 왕에게 주청하여 그로 하여금 홍복사(弘福寺)에 머물게 했다.
정관 20년(646)에 그는 고향을 사모하여 구강(九江)의 본사로 돌아가 지금까지 살고 있다.
⑧ 당(唐)나라 사문 석도영(釋道英)
당(唐)나라 포주(蒲州) 보제사(普濟寺)의 석도영(釋道英)은, 성이 진(陳)이고 포주의 의씨(猗氏) 사람이다. 그의 나이 18세 때에 숙휴(叔休) 율사가 교화하여 출가시키려 했으나 그 부모가 못내 사랑하여 결혼하기를 재촉했다. 그러나 도영은 애정을 끊고 부모에게 하직하기를 마치 신을 벗어 버리듯 하였다. 속가에 있을 때는 빛깔과 소리에 물들지 않고 집을 떠나서는 경론(經論)에 환히 밝았다. 그는 곧 말하였다.
“법의 상(相)은 알아야 하고 마음의 의혹은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개황(開皇) 19년(599)에 해현(解縣) 태항산(太行山)에 있는 백제사(栢梯寺)에 돌아가 지관(止觀)을 닦고 배워, 갑자기 지해[解]가 열려 나와 법이 두 가지가 다 공(空)한 것임을 깊이 깨달았다. 나무 밑에 앉아 있을 때는 그 광명이 사방을 비추었으며 또 승역(僧役)을 맡아서는 일로써 마음을 고찰하곤 하였다.
뒤에는 서울의 승광사(勝光寺)에 있으면서 담천(曇遷) 선사에게서 『섭대승론(攝大乘論)』을 들었는데 그 때 학도가 5백 명이었으나 도영이 유독 뛰어났었다.
선사는 찬탄하면서 말하였다.
“많은 학도들이 비록 글 뜻은 잘 알지만통합뷰어
그 참 뜻을 얻은 이는 오직 도영 뿐이구나.”
항상 『화엄경』에 의해 발원하여 스님들에게 공양하였으며, 일을 인해 이치를 드러내고 그 심행(心行)을 조복받았다. 그 뒤로는 의복과 음식을 돌보지 않고 장편(章篇)에 대해서는 그 틀린 곳을 지목하곤 하였다. 사무 보는 여가에는 경을 읽고 참선하기를 폐한 적이 없었고, 이성(理性)을 참구하여 마음 눈이 환히 열리었다.
대업(大業) 9년(613)에는 지사(知事)로 있으면서 속세의 소송이 있을 때였다. 스승이 손해 보고 속인이 이롭게 되어 속인에게 간곡히 충고해도 따르지 않으면, 곧 저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들 때문에 죽는다.”
그리고는 갑자기 쓰러져 시체처럼 보였다. 속인들은 고집스럽게 말하였다.
“이 도인은 거짓이 많다. 바늘로 찔러 보면 그 진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늘로 아무리 깊이 찔러도 자꾸 더 죽은 빛이 나타나면서,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거의 문드러지려 했다. 곁의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저들에게 부디 참회하고 다투지 말라고 했다. 그는 그 소리를 따라 일어나 앉아 담소(談笑)하는 것이 보통 때와 같았다.
또 늪으로 가다가 물고기가 노는 것을 보고 도영이 말하였다.
“나는 너희들과 더불어 인아(人我)를 다투리라. 어떤 것이 이기는가 보자.”
곧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 여섯 밤을 지냈다. 제자들은 그의 옷을 가지고 지키고 있었다. 그 뒤에 물에서 나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물 속에 있었으나 흙만 뒤집어 썼을 뿐, 물 기운은 느끼지 못했다.”
또 매섭게 추운 겨울에 얼음이 두껍게 얼고 눈까지 내렸을 때, 그는 말하였다.
“이처럼 맑은 날에 어찌 잠을 자지 않을 수 있겠는가?”
드디어 맨몸으로 반듯이 누워 사흘 밤을 지내고 일어나 웃으면서 말하였다.
“왜 불로 나를 지져 죽이지 않았는가?”
이처럼 일을 따라 법으로 상대하고 자유 자재로 방종하면서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진실로 유식(唯識)의 뜻으로 마음을 환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깥 일의 물질이 어찌 장애할 수 있겠는가.
만년(晩年)에는 포주(蒲州)로 돌아가 보제사(普濟寺)에 있으면서 세 곳에 별장을 두었으니, 그것들은 다 하현(夏縣)의 동산(東山) 깊은 곳에 있는 것으로서 세속 일과 서로 다투지 않았다. 그러므로 8방의 사부대중이 모두 거기에 모였었다. 그는 낮에는통합뷰어
절의 일을 경영하고 밤에는 그들을 위해 선관(禪觀)을 설명했는데, 혹 그를 괴롭히는 이가 있었으나 그는 조금도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항상 『섭대승론』에 의해 신심을 일으켜 그로써 마음을 도왔다.
어느 날은 『기신론(起信論)』을 강설하다가 심진여문(心眞如門)에 이르러 갑자기 말하지 않았다. 대중들은 괴상하게 여겨 그를 살펴보았을 때 그는 기운이 끊어지고 몸이 싸늘하게 식었다. 대중은 그가 멸상정(滅想定)에 든 것을 알고 그대로 두고 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여러 날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선정에서 일어났는데, 신색이 편안하고 태연하여 초선(初禪)을 증득한 것 같았다.
하동(河東)의 사문 도손(道遜)은 덕이 높은 명승이었는데 본래 도영과 동학(同學)으로서 마음의 도를 숭상해 익힌 금란(金蘭)의 벗과 같은 사이였다. 처음에 하현에 있을 때 그 제자들이 매우 많아 강론이 성행했었다. 도손이 목숨을 마쳤으나 도영과의 거리가 150리나 되어 미처 알리지 못했다. 저녁이 되어 도영은 그것을 알고 그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도손은 이미 갔다. 내가 전송하고 오리라.”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도영이 말하였다.
“이것은 세속 일로서 마음이 바뀌는 것이니 괴이하게 여길 것 없다.”
가다가 도중에 그것을 알리러 오는 사람을 만났다. 가만히 그 미래의 일을 알았으니 모두가 이와 같았다.
도영은 목숨을 마치기 전에 대중을 모아 놓고 말했다.
“오늘 빨리 곡식을 거두어 쌓아 놓아야겠다. 내일에는 사람과 짐승들이 모여와서 곡식을 먹을런지 모르겠다.”
그리고 도영 자신도 스스로 나르면서 못내 서둘렀다. 대중은 다만 그 일을 도울 줄만 알았지 그 뜻은 알지 못하였다. 밤이 되어 모두 마쳤는데, 물을 찾아 목욕하고 본래 자리에 돌아가 가사를 입고 대중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나를 영(英) 선사라 불러라. 선사의 상(相)은 속인과 틀려서는 안 되느니라.”
또 그 문인 지부(志裒)에게 말하였다.
“선사는 내가 얼마나 살지 아는가?”
지부가 사실대로 대답하자, 도영이 말하였다.
“그렇다.”
그리고는 법요를 설명했다. 또 말하였다.
“무상(無常)인가, 상(常)인가? 자기 자신을 속여서도 안 되며 헛되이 죽어서도 안 되느니라.”
그리고는 『화엄경』의 현수게(賢首偈)를 외우게 하였다. 임종권념선(臨終勸念善)이라는 대목에 이르러 광명이 나타났다. 그리고 또 입으로 말하기를 “헌 몸을 버리리라” 하고통합뷰어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사람들이 그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손으로 만질 때, 밑으로 내려갈수록 차가워짐으로써 죽은 것을 알았다. 비록 범부라도 반드시 좋은 곳에 올라갈 것이거늘 하물며 아름다운 징조가 이러한데 어찌 범승(凡僧)과 같겠는가. 그 때는 정관 9월이요 춘추는 77세였다.
처음 죽음에 다달았을 때 대중들이 물었다.
“우리는 이 뒤에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부처님의 분명한 가르침이 있으니 다만 그것에 의해 행하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이다.”
임종하는 날에는 수천 마리 새들이 방에 모여들어 서로 슬피 울어 대어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혜부(慧裒)는 그 곁에 모시고 있다가 푸른 옷을 입은 어떤 두 아이가 꽃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광채가 나는 자색 기운이 도영의 몸에서 나와 불꽃을 날리며 들보를 돌고 있었다. 이튿날에는 20리 주위에까지 이슬이 맺히고 사람과 물건이 서로 빛을 내다가 사흘 만에야 비로소 사라졌다.
포진(蒲晋)과 일천(一川) 등 그가 교화하던 곳에서 이 비보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몰려와서 마치 존중하는 어버이를 잃은 것같이 하였다. 또 스님들과 함께 슬퍼하는 소들의 울부짖는 소리는 몇 리(里)에 사무쳤고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물도 풀도 먹지 않았다. 이레가 지나 시체를 염(殮)하려 할 때엔 도인과 속인들이 서로 다투어 모여들었다.
도영이 일생 동안 시끄러움을 싫어하고 다만 도만을 힘썼기 때문에 별장 남쪽 하우성(夏禹城) 동쪽인 연년릉(延年陵) 남쪽에 토감(土龕)을 파고 묻을 때는 처음 한 번 삽질하자 대지가 크게 진동하여 사람들은 모두 풀을 잡았으니 그 몸이 떨어질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며, 주위 15리가 모두 진동해 크게 두려워했다. 또 두 줄기 흰 무지개가 빈소에까지 뻗쳤으며 흰 새 두 마리가 감실(龕室) 위를 날아 돌면서 슬피 울다가 날아갔다.
도영이 교화한 사람과 물건은 그가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다 유익했으니 그 지위가 종성(種姓)과 같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아름다운 징조를 느꼈겠는가. 모두가 빛나 그 몸을 저버리지 않았으니 세상에 실로 이 사람이 있었구나.
⑨ 당나라 사문 석차덕(釋叉德)
당나라 옹주(雍州) 양산(梁山)의 석차덕(釋叉德)은 예천현(醴泉縣) 사람이다. 생김새가 크고 위대하며 뛰어난 눈썹에 뼈대 있는 얼굴이며 행실은 깨끗하고 의복은 순수하고 깨끗했다.통합뷰어
세속을 교화하기 좋아하고 복업을 널리 지었다. 그러므로 미래의 일을 예언하여 널리 권장하는 일이 많았다. 그 해에 흉년이나 독기나 악병이 있으면 미리 4민(民)을 권해 삼보를 받들게 했다. 혹은 부처님께 예배하고 재를 올리며 혹은 염불하고 독경하라 할 때, 그 말대로 하는 사람은 다 화를 면했고 그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은 갖가지 화가 번갈아 닥쳤다.
그 징조를 미리 말하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 같았다. 그 철에 큰 가뭄이 들면 두려워해 모두 가서 물었는데, 아무 날에 비가 올 것이나 단 아무 곳에 재를 올리면 그 때를 맞추어 비가 올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 반드시 그 말과 같이 되었다. 혹은 메뚜기의 재앙이 어디까지 미칠 것이라 예언하기도 하고 혹은 비가 얼마만큼 올 것이라 예언하면, 그 일이 거울을 보는 것과 같아 털 끝만큼도 틀리지 않았다. 또 마음은 맑고 신중하여 함부로 벌을 주지 않았으며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 법을 받지 않았다.
장년 시절에 도를 닦을 때는 오직 10계(戒)만을 따랐으며, 여러 편(篇)과 취(聚)의 잡상(雜相)에 있어서도 많이 받들어 닦았었다. 말년에는 구준산(九峻山) 남쪽에 아뇩달지(阿耨達池)를 파고 또 석발(石鉢)을 만들고는 거기서 그것으로 중생을 제도했다.
정관 12년(638)에 절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백성들이 모두 그를 사모하여 흰 탑을 세우니, 산 밖에 우뚝 서 있다.
⑩ 당나라 사문 석통달(釋通達)
당나라 서울 율장사(律藏寺)의 석통달(釋通達)은 옹주(雍州)의 경양(涇陽) 사람이다. 서른 살에 출가하여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았다. 이에 태백산(太白山)에 들어갈 때도 양식을 가져 가지 않아 배고프면 풀을 먹고 목마르면 샘물을 마시며 쉴 때는 나무를 의지하고 앉으면 참선했다. 5년이 지났으나 서두르는 마음이 쉬지 않았다. 그래서 나무로 흙덩이를 두드리자 흙덩이는 깨어져 형체가 없어졌다. 이런 변화를 보고 확연히 크게 깨달았다. 마음을 깨친 뒤에 만년에는 율장사에 머물면서 대승법을 듣고 마음이 텅 비게 되었다. 한 벌 옷으로, 누더기는 겹으로 기워 입었고, 미투리는 30년을 신었으며 비단이나 온갖 장식은 몸에 붙인 적이 없었다.통합뷰어
겨울이나 여름이나 한 벌 옷으로 추위와 더위를 피하지 않았다. 강석(講席)에 나아가서는 현묘한 이치를 강설했고 궁상(宮商:노래)을 일삼지 않았으니 초상을 그리는 사람이 없었으며 처음 내는 말의 모순(矛盾)으로 미끼를 주어 꾀듯 하는 이런 일은 행하기 어려웠으므로 사람들이 다 굴복했다.
좌복야(左僕射) 방현령(方玄齡)이 이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겼다. 그를 자기 집에 맞아들여 아버지처럼 공경하고 존중하였다. 그는 도를 체득(體得)하여 몸에 구애 받지 않았으며 말을 하면 간편하지 않아 마음 속을 마구 쏟아 놓았다. 현령은 그를 풍표(風表)로 처우하면서 그 말로써 간격을 두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귀인의 대우를 받았으므로 조야(朝野)가 다 그를 따랐다. 그는 4곡(穀)을 먹지 않고 오직 소채만 먹었으므로 비록 쑥이나 미역을 얻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먹으면서 맛만 음식과 같이 생각했다. 혹 복숭아나 살구 등 과일을 얻으면 씨채로 먹으면서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괴상히 여겨 물으면 그는 대답하였다.
“신도의 보시라, 버리기 어려워서 그런다.”
정관 이후부터는 그의 신이(神異)함이 더욱 드러났다. 그는 자주 남의 집으로 갔다. 그가 기뻐 웃으면 그 집은 길(吉)하고 슬퍼 시름하면 그 집이 반드시 흉하였다. 혹 그가 재물이나 공력을 청하면 그 청의 다소를 따라 들어 주어야 했는데, 만일 그 청을 어기면 그 뒤에 화를 당했다. 어떤 사람이 나귀를 타고 와서 절을 구경할 때, 그는 그에게 보시를 청했는데 그가 인색해 보시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나귀가 곧 죽었으니 이런 예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서울의 귀천들이 모두 그를 받들어 섬겼으니, 화와 복이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렸기 때문이었다. 비록 미미한 것이라도 재물을 얻으면 그 시주를 위해 절을 경영하는 데에 썼다.
대장군 설만균(薛萬均)이 처음에 그의 신이를 듣고 집으로 맞이해 공양했다. 1백여 일이 지나도록 그는 승궤(僧軌)를 어기지 않았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그는 음식을 청하면서 먹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주지 않다가 하도 간절히 청해 마지 않으므로 시험삼아 주자, 그는 결국 먹었다. 그 뒤로는 전의 버릇을 차츰 고쳐 오로지 기적만을 나타내었다. 그 행은 치우침이 많고 내실(內室)로 들어가려 했다. 이에 성질이 사나운 장군의 형제는 그의 밀행(密行)을 알지 못하고 크게 성을 내어 그를 때리니, 그는 거의 죽게 되었다. 그가 반듯이 누워 말하였다.
“당신들이 나를 때려통합뷰어
내 살은 허물어지고 피가 흘러 더러워졌소. 끓는 물에 목욕해야겠소.”
그리고는 물이 끓기를 기다려 옷을 벗고 가마솥에 들어갔다. 그러나 몸은 데이지 않고 마치 찬 못물에 들어간 것 같았다. 곁의 사람들은 두려워했으나 그는 그래도 불을 더 때라고 재촉하면서 말하였다.
“아직 내 몸이 더워지지 않았다.”
온 집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 받들면서 마음대로 먹고 자라고 했다. 이 때문에 그 뒤로는 누가 병을 앓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을 시켜 물을 끓이고는 먼저 들어가 목욕한 뒤에 병자를 시켜 들어가 목욕하게 하면 낫지 않는 병이 없었다.
그는 일찍이 돈 백여 관(貫)의 빚을 졌었는데 나중에 돈을 마련하였으나 보낼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 돈을 가지고 절 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아 짐을 적게 진 사람에게 부탁하여, 절 서쪽의 시장에 가서 주인을 찾아 주라고 부탁했다. 뒤에 계산해 보았을 때 한 푼도 틀리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덕행이 마음을 비웠기 때문이니, 사람들도 그에게 신용을 잃지 않았다.
또 마침 쌀이 귀한 때를 만나 큰 재를 지내려고 절의 스님들을 시켜 많은 사람을 청하게 했다. 그 날이 되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였으므로 공양거리가 다 떨어져 지탱할 수가 없었다. 대중들은 손님들에게 매우 부끄러워했다. 그 때 통달이 말하였다.
“누가 공양을 보낸다 했는데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그 때가 되어 비구ㆍ비구니들은 사정이 딱해 모두 흩어지려 했다. 갑자기 맛난 공양을 실은 수레와 가마가 잇따라 길을 메우며 달려와, 모자라는 음식을 보충하고도 남아 공양 창고는 많은 사람들을 다시 구제했다. 공양이 끝나고 조금 있다가 그 사람과 수레는 모두 흩어져 갔는데,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이것은 실로 현우(賢愚)를 분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니, 그윽한 감응의 신공(神供)은 조야(朝野)가 다 본 것으로서, 이런 일을 다 말하려면 무궁 무진하다.[이상 여덟 가지 증험은 『당고승전(唐高僧傳)』에 나온다.]
⑪ 당나라 상주국(上柱國) 왕회지(王懷智)
당나라 방주(坊州) 사람으로서 상주국(上柱國) 왕회지(王懷智)는 현경(顯慶) 초에 죽고 그 어머니 손(孫)씨와 그 아우 회선(懷善)ㆍ회표(懷表)는 모두 살아 있었다.
옹주(雍州) 고릉(高陵)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 성명은 모른다. 그는 죽은 지 7일이 지나 등은 다 썩었으나 다시 살아났다.통합뷰어
이 사람이 땅 밑에서 회지를 만났는데 회지가 말하였다.
“나는 태산록사(泰山錄事)를 맡았다.”
그리고는 이 사람을 시켜 붓을 들라 하고 입으로 글을 불러댔다.
“너는 비록 죽어 마땅하지만 지금 방편으로 놓아 주어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 너는 마땅히 나를 위해 이 편지를 가지고 방주에 있는 우리 집을 찾고 또 사람을 시켜 내 어머니께 아뢰어라. 즉 회지는 지금 태산록사참군(泰山錄事參軍)으로 다행히 몸은 편안하다. 단 우리집에서 전에 절 집에 있는 나무를 빌어 문을 만들었다. 이 공덕의 물건은 빨리 갚아야 한다. 회선은 오래 살지 못하고 곧 죽을 것이니, 빨리 경상(經像)을 만들어 구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제할 길이 없을까 두렵다.”
이 사람은 깨어난 뒤에 곧 그 편지를 싸가지고 그 집으로 보냈다. 그 집의 일을 논한 것이 그 편지에 말한 것과 같아서 사흘 뒤에 희선이 갑자기 죽었다. 온 고을의 도인과 속인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 더욱 열심히 공덕을 닦았다.
이 사실은 부주(鄜州) 사람 훈위후(勳衛候) 지순(智純)이 이야기한 것이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보습유(冥報拾遺)』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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