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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505 법원주림(法苑珠林) 62권

by Kay/케이 2024.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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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62

 

법원주림 제62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69. 제사편(祭祠篇)[여기 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헌불부(獻佛部) 제사부(祭祠部)

(1) 술의부(述意部)
금과 옥 이외의 다른 보배도 사람에게 있어서는 다 같은 보배요, 불교와 유교의 다른 이치도 멀고 가까운 사람이 다 같이 준수하나니, 어찌 공자(孔子)가 자기 나라에서 났다 하여 반드시 스승으로 섬기고자 하며, 부처는 먼 나라에 있다 하여 버릴 마음을 가지겠는가? 일의 간절함을 이기지 못해 어리석고 밝음을 하소연하거늘, 옳고 그른 이치는 감히 혼자 차지할 것이 아니다. 옛날 공구(孔丘)가 다니던 사당은 천 년의 규범이요, 석가가 다니던 절은 만고(萬古)의 영탑(靈塔)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형상을 보고 생각을 간절히 하고, 형상을 마주하여 마음을 돌아가게 함으로써 스승을 공경하고 임금에게 충성하게 하는 그 이치는 하나인 것이다. 심지어 정란(丁闌) 띠를 띠고 목모(木母)의 상(像)을 효도로써 섬기고, 무진의(無盡意)는 영락(瓔珞)을 풀어 다보불(多寶佛)의 탑에 받들어 올린 것과 같은 것이다. 아득히 광고(曠古)를 찾고 멀리 청진(淸塵)을 생각하면서 종자를 심어 숲을 이룬 것도 이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또 『예경(禮經)』을 상고하면, 천자(天子)는 7묘(廟)요 제후(諸侯)는 5묘(廟)이며 대부(大夫), 경사(卿士)들에 각각 등급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을 신(神)이라 하여 하늘을 원구(圓丘)에서 제사지내고, 땅을 기(祇)라 하여 땅을 방택(方澤)에서 제사지내며, 사람을 귀(鬼)라 하여 사람을 종묘(宗廟)에서 제사지내는 것이다. 용이 비를 내리는 노고와 소가 보습을 당기는 효용에 대해서는 혹은 마을 끝에 그 얼굴을 세우고 성문 밖에 그 형상을 세우거늘, 하물며 천상과 천하의 삼계(三界)의 대사(大師)요, 여기와 저기의
4생(生)의 자부(慈父)로서 그 위덕(威德)은 만억 중생이 다 따르고, 그 풍화(風化)는 만령(萬靈)의 모범이 됨이겠는가?
그러므로 선인(善人)의 회향은 모든 물이 바다로 돌아가는 것과 같고, 큰 광명의 껴잡음은 해와 달이 모든 별을 이끄는 것과 같은 것이다. 월지(月氏)가 나갈(那竭)에서 그림자를 남기고, 몸을 불사른 사리가 기원(祇園)에 두루 퍼짐으로부터 드디어 저 성인과 현인의 상을 지으니, 여기서 큰 복을 바라고 혹은 높이고 혹은 귀하다 하나니, 이것이 곧 편안함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다.

(2) 헌불부(獻佛部)
【문】 부처님 말씀에 7월 15일에는 부처님의 분(盆)을 만들어 올리라고 했다. 이날에는 많은 손님이 오는데 이 물건을 어떤 손님에게 대접해야 하는가?
【답】 만일 시주(施主)의 통용물(通用物)이 있으면 이것으로 손님을 대접하고, 만일 시주의 통용물이 없으면 절을 구경시키되, 대소(大小)와 관사(官私)가 일정하지 않다. 만일 조그만 절이라면 이것은 나라에서 지은 것이 아니니 따로 공양드릴 것이 없고, 더구나 귀승(貴勝)이 없으면 임시로 짐작하여 스님들의 많고 적음에 따라 상주승(常住僧)의 물품을 내어 놓아야 한다. 음식을 지어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것도 무방하나니, 부처님은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수(數)에 두루 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 절에서 크고 작은 음식이 있을 때는 항상 부처님과 스님들의 두 음식상을 내기 때문에 다 쓸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포살계(布薩戒)를 설할 때에는 부처님은 갈마승(羯磨僧)의 수에 들지 않는다. 왜냐 하면 3보(寶)의 지위가 따르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이 국가의 큰 절, 즉 장안(長安)의 서명사(西明寺)나 자은사(慈恩寺) 등과 같은 경우에는 구분지(口分地) 이외에 바로 나라에서 내리는 전장(田莊)이 있어 모든 공급은 다 국가의 공양이다. 그러므로 해마다 분(盆)을 보내어 공양과 갖가지 잡물(雜物) 및 가마[輿]ㆍ분ㆍ음악인 등을 보내고, 또 분과 관리를 보내기 때문에 어떤
물품을 내어 그들을 대접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문】 또 관리와 분이 오기 전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잡물을 공양할 때는 어떤 물품을 내어 대접하는가?
【답】 만일 통용물이 있으면 먼저 이것을 쓰고 없으면 따로 할 것이 없다. 다만 상주승물을 내어 손님을 대접하고 또 분을 만들어 공양을 올린다.
【문】 율문(律文)에 의하면 “악비구는 오더라도 공양하지 말고, 선비구에게는 공양해야 한다” 하였다. 이것은 상주승물인데 어떻게 속인에게 줌을 허용하겠는가?
【답】『승기(僧祇)』ㆍ『십송률(十誦律)』 등에는 “국왕ㆍ대신ㆍ공장(工匠)ㆍ도적 등 스님들에게 손해나 이익이 있는 이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지사(知事)가 승물을 내어 대접하는 것을 허락하시고, 또 죄가 없다” 하셨으니, 그들은 속인이 아니므로 먹어도 좋다는 것이다. 다만 지사에게만 허락하고 대접하지 않는 것은 부처님과 스님들을 섞으면 손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접해도 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줄 알았다면, 지금 국가에서 분을 만들어 공양을 올리고 백관과 음악인들을 보내고 부처님의 분을 보내는데 어찌 그들을 대접하지 않겠는가? 만일 대접하지 않는다면 책망을 받을 것이요, 또 “출가한 사람들은 다만 남의 물건을 요구만 하고 자기 것에는 인색해 보시하지 않는다”고 하나니, 그렇다면 외부의 비웃음을 받을 것이다. 또 속인들은 가까이만 보고 멀리는 보지 못해 “마땅히 얻고 마땅히 먹어야 한다. 어찌 미래의 과보를 알겠는가?”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손해와 이익을 아셨기 때문에 사정에 따라 허용하고 제지하신 것이다.
【문】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때 상주승물을 써서 분을 만든다면 그 일을 치른 뒤에는 그것들이 반드시 상주승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지만, 바깥의 시주가 분을 드리고 공양을 갖가지 잡물을 올린다면 이것은 어디에 속할 것인가?
【답】 만일 시주의 정을 헤아려 본다면 거기에는 통국(通局)이 있다. 만일 시주가 경전에 의해 불공을 드렸다면 그것은 원래 살았거나 죽은 권속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요, 그 일은 시방의 범성(凡聖)과 하좌(夏坐)한 자자승(自恣僧)의 힘을 빌어야 비로소 죽은 영혼을 구제해
3도(塗)를 떠나 인천(人天)에 오를 것이다. 그러므로 불공한 뒤에 남은 모든 음식과 쌀ㆍ밀가루 등은 다 상주승에게 돌아가 다시 스님들의 공양에 쓰이며, 그 이외의 돈ㆍ의복 등 잡물은 다 하좌승(夏坐僧)에 돌아가나니, 손과 나그네가 같이 나누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사분율(四分律)』의 하문(下文)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름 음식은 나누어 먹지 말고 여름 옷과 자자의(自恣衣) 등은 나누어도 좋다.”
만일 시주가 치우친 마음으로 오직 부처님에게만 공양한다면 그것은 스님들에게 돌아가고, 그 이외의 돈ㆍ잡물 등은 부처님께 돌아가고, 혹은 법에 돌아가며, 혹은 현재의 스님들에게 돌아간다. 그것은 시주의 뜻을 거스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 보시한 것은 조발탑(爪髮塔)에 넣어 두고 법신불(法身佛)께 공양하라. 법신은 항상 계시기 때문이다.”
또 『바사론(婆沙論)』에서 말하였다.
“【문】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3보께 공양한 모든 물품 가운데서 항상 1인분(人分)만 받으셨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도 1분(分)만을 가지시는가?
【답】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색신(色身)이 수용(受用)하기 때문에 1인분을 취하셨고, 멸도하신 뒤에도 법신의 공덕은 스님보다 훌륭하기 때문에 1분(分)을 취하시는 것이다. 법에 보시한 것이면 그것을 2분으로 나누어 1분은 경전에 보시하고, 1분은 경을 외우고 설법한 사람에게 보시한다. 법보(法寶)에 보시한 것은 그것을 탑 안에 둔다. 그것은 이법(理法)의 보배에 공양하기 위해서이다. 승보(僧寶)에 보시한 것도 탑 안에 둔다. 그것은 제일의 제(第一義帝)의 승(僧)에게 공양하기 위해서이다. 대중에게 보시한 것은 모두가 취해도 좋나니 해당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알았다면 보시를 받을 때에는 그 통하는 것과 금하는 것을 잘 알아 서로 뒤섞임이 없이 위배되지 않도록 하라.[이 7월 15일에 의거하여 모든 속인들 집에서 각각 음식을 만들어 불공할 때는 경전에 의해 그 부모를 구제하고, 재를 마친 뒤에는 그 음식을 다 절에 보내고 스스로 먹어서는 안 된다. 원래 만든 것이 오직 부처님께만 드리는 것이요, 스님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면 자기가 먹어도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그 어머니를 구제하신 본뜻에는 위배되는 것이다.]
또 『승기율』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 공양한 꽃이 많을 때는 전매(轉賣)하고
향과 등이 많으면 그것을 전매하여 무진재(無盡財)에 넣는다.”
또 『오백문사(五百問事)』에서 말하였다.
“불탑에 물품이 많으면 그것으로 다른 불사를 지을 수 있으나 시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렇게 못 한다.”
또 『사분율』에서 말하였다.
“불탑에 공양한 음식을 탑을 만든 사람은 먹을 수 있다.”
또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 공양한 음식은 부처님을 모시는 사람은 먹을 수 있으며, 만일 그 비구가 없으면 부처님을 모시는 속인도 먹을 수 있다.”
생각하면 국집(局執)한 사람에 의지하면 앞에서 말한 결정과 같다. 그러나 널리 말하면 도인이나 속인이 재를 베풀어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올린 음식은 시주가 사정을 알려 남은 음식이 있다고 외치고 시식(施食)한 뒤에는 다시 시주에게로 돌아가며, 시주가 따로 거두지 않으면 오로지 시인(侍人)에게로 돌아간다. 법과 승(僧)에 대한 2물(物)도 앞에 의거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문】 7월 15일에는 도인과 속인이 분을 만들어 공양을 담아 올릴 수 있지만, 보배분을 만들고 갖가지 맛난 음식을 담아 부처님께 올릴 수 있는가?
【답】 다 될 수 있다. 『소분보은경(小盆報恩經)』에 의하면 보물이 거의 없지만, 『대분정토경(大盆淨土經)』에 의하면 그런 것이 있기 때문이다. 즉 16국의 왕은 부처님께서 목건련에게 말씀하시어 그로 하여금 그 어머니를 구제해 3겁 동안의 아귀의 고통을 벗고 인간에 나서 서로 만나 보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하여 병사왕(甁沙王)은 그 장신(藏臣)에게 명령했다.
“나를 위해 분(盆)을 만들라.”
장신은 명령을 받고 곧 5백의 금분(金盆)과 5백의 은분, 5백의 유리분, 5백의 차거분(硨𤦲盆), 5백의 마노분, 5백의 산호분, 5백의 호박분 등을 만들고, 거기에 각각 101미(味)의 음식을 가득 담아 모두가 법다웠다. 그래서 왕은 그것을 가지고 가서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했다.
이 경에 의하면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문】 『소분경(小盆經)』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는 목건련과 시방 중승에게 말씀하셨다.
“7월 15일 자자(自恣) 때에는 7세(世)의
부모와 현세의 부모님으로서 액난 속에 있는 이를 위해 온갖 맛난 음식과 다섯 종류의 물병ㆍ밥그릇ㆍ향유(香油)ㆍ등촉ㆍ평상ㆍ침구 등 모든 도구를 갖추어 다 보시하라. 맛난 과일은 분에 담아 시방의 대덕스님께 공양하라. 처음에 분을 받거든 먼저 불탑 앞에 놓고 스님들이 축원한 뒤에 자신이 먹으라.”
그러나 온갖 꽃공양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지금 여러 절의 세력 있는 부자들은, 온갖 꽃을 두루 만들고 온갖 보물을 쓰며, 혹은 온갖 비단을 쓰고 혹은 쌀과 밀가루를 쓰며, 혹은 온갖 납을 쓰고 혹은 아연과 주석을 쓰며, 혹은 온갖 빛깔을 쓴다. 존귀한 도인이나 속인들도 이런 일을 비방한다.
목건련의 어머니가 아귀 세계에 나 있을 때 부처님께서는 스님들에게 공양하게 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온갖 보배꽃과 잡물을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하는가? 이 보배꽃과 잡색(雜色) 등을 먹을 수 있는가?
【답】 자기의 좁은 소견으로 남의 큰 복을 방해하지 말라. 그러므로 『대분경(大盆經)』에서 말하였다.
“병사왕은 5백의 금발우를 만들어 천 가지 색의 꽃을 가득 담고, 5백의 은발우에는 천 가지 색의 백목향(白木香)을 가득 담고, 5백의 유리발우에는 천 가지 색의 자금향(紫金香)을 가득 담고, 5백의 차거(硨𤦲)발우에는 천 가지 색의 황련화(黃蓮華)를 가득 담고, 5백의 마노발우에는 천 가지 색의 적련화(赤蓮華)를 가득 담고, 5백의 산호발우에는 천 가지 색의 청목향(靑木香)을 가득 담고, 5백의 호박발우에는 천 가지 색의 백련화를 가득 담은 뒤에, 왕은 그것이 법다이 된 것을 보았다.
그리고 곧 수레를 장엄하고 14만 대중과 함께 기원정사로 가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이 7보의 발우를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받들어 올렸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받으시자 왕은 다시 수레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 때 왕의 7세(世)의 부모님은 72겁 동안의 생사의 죄를 뛰어넘었다.”
그 다음에는 수달 거사(居士)와
비사가모(毘舍佉母)와 2백억의 우바이와 바사닉왕과 말리 부인 등이 국내에 선포했다.
“목건련의 우란분법(盂蘭盆法)에 의하여 우리를 위해 각각 5백의 자금분(紫金盆)과 황금분에 101미(味)의 음식을 가득 담고, 다음에는 5백의 금수레와 5백의 황금 수레에 101물(物)을 가득 담아 모든 것을 다 준비하라.”
그리고 왕과 그 부인은 가서 법답게 된 것을 보았다. 그 때 왕은 곧 수레를 장엄하고, 18만 대중과 함께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천의 금분과 천의 금수레 등을 바친 뒤에 예배하고 돌아왔다. 그 때 그들의 7세의 부모님은 다 72겁의 생사의 죄를 뛰어넘었다.
【문】 앞에서 단정한 것과 같이 경전에 의해 시주가 보배분과 온갖 꽃을 부처님께 올린다고 하자. 그러나 만일 시주가 없으면 상주승물로 꽃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할 수 있는가?
【답】 이것도 또한 때를 헤아리고 앞의 손해와 이익을 관찰해야 한다. 조그만 절이라 존귀한 시주가 없거나 또 외부의 비방이 없더라도 상주승물로 꽃을 만들어 불전에 공양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승지(僧地)의 나무에서 난 꽃으로는 불전에 공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십송률』에서 말하였다.
“승원(僧園)에 난 나무의 꽃으로는 불탑에 공양할 수 있으며, 만일 과일이 있으면 사람을 시켜 따다가 스님들에게 공양한다.”
또 『비니모론(毘尼母論)』에서 말하였다.
“제 땅에 심은 나무가 자란 뒤에 그것으로 방을 고칠 수 있으나 스님에게 알릴 것은 없으며, 스님의 나무로 방을 고칠 때는 스님과 의논해야 쓸 수 있다.”
그러므로 『보인경(寶印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스님 물건으로 불탑을 수리할 때는 법에 의해 스님들과 화합해야 쓸 수 있고, 화합하지 않으면 속인에게 권해 수리해야 한다.”
또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하였다.
“사방승(四方僧)의 땅에 서로 화합하지 않으면 거기에 불탑을 짓거나 꽃이나 과수를 심을 수 없고, 만일 나누어 얻은 것이라면 뜻을 따라 공양할 수 있으며, 꽃이 무한히 많을 때는 마음대로
공양한다.”
또 『보인경(寶印經)』에서 말하였다.
“절을 세워 공양하려는 자는 보시받은 물품을 다 스님에게 맡기고 다시는 간여하지 말며, 만일 본 주인이 그 재물을 돌려받으려 할 때는 그 일곱 배로 갚아야 한다. 절을 새로 세우려는 비구는 스님들에게 다 알리고, 그 절 안에 심어서 얻은 꽃과 과일은 부처님께 올리며, 그 가지와 잎과 잔잔한 열매는 스님들에게 주고 또 일체 중생에게 보시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승속을 불문하고 다 죄를 범함이 된다.”
생각하면 3보가 각각 달라 호용(互用)할 수 없음을 이미 알았다면, 불원(佛院)과 승원(僧院)을 각기 구별해야 한다. 큰 사찰과 같이 불탑을 따로 지을 때는 사방의 빈 행랑 안에 있는 꽃과 과일은 다 불탑의 쓰임에 속하고, 행랑 밖의 것은 다 스님들의 쓰임에 속한다.
그러므로 『십송률』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승방(僧坊)과 불도(佛圖)에서 하인과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 등을 기르는 것을 허락하시되, 그것들은 각각 소속이 다르므로 뒤섞여 쓰지는 못하게 하셨다.”
또 『보인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과 법에 속한 두 물품은 뒤섞어 쓰지 못하나니, 그것은 부처와 법의 물건에 대해서는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므로 물어볼 것이 없다. 그러므로 승물(僧物)과 같지 않은 것이다. 절에 상주하는 스님들은 서로 필요한 것이 있으므로 일을 맡은 비구는 스님들의 요구에 따라 제비를 뽑아서 화합하면 쓸 수 있다.”
또 『살바다론』에서 말하였다.
“절에 흉년이 들어 3보의 논밭에서 나는 수확을 나눌 수도 없고 물어볼 곳도 없을 때는 스님들이 화합하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 탑에 속한 물건이나 탑에 쓸 공력을 스님에게 쓰면 중죄를 짓는 것이다. 만일 그 공력이 스님에게 있으면 그 다소를 잘 헤아려 스님이 쓰되, 그 한계를 넘으면 중죄를 짓는다.”
이상에 열거한 것과 같이 절이 작고 외부의 비방이나 손해가 없으면, 앞의 결정에 의해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과 같이 어떤 큰 사찰로서 국가에서 짓고 공급이 따로 있으며, 또 내린 논밭이 있고 또 귀한 관리들이 많이 내왕한다면, 통용할 물품이 없다고 해서 어찌 그들에 대한 대접이 없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7월 15일 같은 때에 불전의 공양이 어찌 빈약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음식이나 꽃과 과일을 많이 차리지 않고 조금 더 차린다면, 그래도 항상 불공 음식을 먹을 수 있겠는가? 혹 위의 찰방(察訪)으로 있으면서 “도승이 인색하여 속인보다 못하다”는 비난을 받는다면, 이것은 부처에 대한 불경(不敬)일 뿐 아니라 또 나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꾸중을 들을 것이니, 어찌 승물(僧物)을 거둘 수 있겠는가? 그것으로 부처님께 드리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이미 이런 줄 알았으니, 만일 통용할 물품이 없으면 다만 상주승의 물품만으로라도 꽃과 과일과 온갖 맛난 음식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하고, 속인들로 하여금 선을 짓고 악을 멸하게 하는 것도 손해는 없는 것이다. 비록 승물을 씀으로써 남의 살았거나 죽은 권속을 구제하지 못하더라도 우선은 저 속인들의 비방하는 허물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속인이 절에 가서 스님의 밥 먹는 때를 만났어도 스님이 그에게 밥을 주지 않으면 그의 비방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주라고 허락하셨으니, 주기는 주되 나쁜 그릇에 주면 그래도 속인의 불평을 산다. 부처님께서는 좋은 그릇에 주라 하셨으니, 이것은 다 지사(知事)ㆍ마마제(摩摩帝) 등이 임시로 짐작하여 부처님께 올린 것이 법에 맞았으므로 부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디 뇌동(雷同)하거나 고집부리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오분율』에서 말하였다.
“비록 이것이 내 말이지만 남에게 청정하지 않으면 행하지 않아도 허물이 없고, 비록 내 말이 아니더라도 남에게 청정하면 행해야 하느니라.”[이 말은 잘 생각해 결정한 것이니 무슨 일엔들 통하지 않겠는가?]
또 『불설제재환경(佛說除災患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유야리국(維耶離國)에는 역병이 유행하여 죽는 사람이 무수하고 돌아갈 곳이 없었다. 국왕과
대신들은 모두 모여 의논했다.
‘나라가 재앙을 만났으니 사(邪)로 물리칠 것이 아니다. 역병 때문에 불에 타 죽는 사람이 무수하니 어떻게 해야 이 재환을 제거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모든 성문에 제단을 차려 제사를 지내자 하고, 어떤 이는 성안 네거리에 큰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면 재앙의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 했다.
그 때 그 회중에 재명(才明)이라는 장자가 있었다. 그는 부처님의 5계를 받들고 10선을 수행했었다. 그는 말했다.
‘내 말을 들으십시오. 지금 나라는 재화를 만나 죽는 사람이 무수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말과 같이 생물을 죽여 목숨을 구하는 것이 어찌 될 법이나 한 일입니까?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금 이런 재액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방편을 써서 선으로 악을 물리쳐 고통을 여원히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도리어 살생하여 편안하기를 구함으로써 긴 밤 동안 고통을 받으면서 나을 기약을 바라겠습니까?’
그러자 대중(大衆)은 재명에게 물었다.
‘무슨 방편을 써야 하겠습니까?’
재명은 말하였다.
‘지금 세상에는 대천세계의 천상(天上)과 인간의 큰 스승이 계십니다. 그분은 일체를 보호하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니 이름을 부처라 하며 삼계(三界)에 뛰어나십니다. 만일 그분만 우리 나라에 왕림해 주신다면 이 재해를 제거할 수 있어 사람과 축생들이 다 편안할 것입니다.’
대중은 이 말을 듣고 모두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당신 말과 같다면 매우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부처는 왕사성의 아사세왕의 나라에 계십니다. 저 나라는 우리를 꺼리는데 어떻게 여기 오는 것을 허락하겠습니까?’
재명은 말하였다.
‘저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신 뜻은 중생을 구제하는 데에 있습니다. 저분은 마치 허공과 같아 아무 데에도 걸림이 없고, 또 마치 햇빛과 같아 그 은혜를 입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저 부처님께서는 우리 나라의 재액을 걱정하실 것이니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다만 저 아사세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중한 선물을 바치면서 사과하고 화해하면 될 것입니다.’
국왕과 대신은 다 이 말에 동의하고 말하였다.
‘오직 청신사 장자 재명만은 바로 불제자이니 그 사신이 될 만하다.’
그리하여 재명이 왕명을 받고 떠나려 할 때 대중은 모두
일어나 부처님 계시는 곳을 향해 합장하고 오체(五體)를 땅에 던져 부처님께 정례(頂禮)했다.
이에 재명은 사신으로서 왕사성에 가서 글을 통하고 예물을 바친 뒤에 찾아온 뜻을 자세히 설명했다. 아사세왕은 재명에게 말했다.
‘부처님께 가서 그 나라의 소식을 전하라.’
재명은 왕을 하직하고 나와 죽림정사로 부처님께 나아가 정성을 다해 예배하고 청하는 뜻을 자세히 설명했다.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허락하셨다. 재명은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무한히 기뻐했다. 그러나 그 때 왕사성의 모든 신기(神祇)와 하늘ㆍ용ㆍ귀신 등은 부처님께서 청을 받아 다른 나라로 가실 것을 알고 모두 소동하면서 기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사세왕은 모든 신하와 일체 대중 수천억 사람과 함께 오체를 땅에 던져 자귀(自歸)하고 허물을 뉘우친 뒤에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을 전송했다.
부처님께서는 신통변화를 부리면서 유야리국으로 가셨다. 온 나라 인민들은 오체로 예배하고 부처님 발 아래 엎드려 3보께 귀명한 뒤에 향과 꽃ㆍ음악ㆍ비단 일산ㆍ당기ㆍ번기 등으로 부처님을 맞이했다. 향과 꽃이 땅을 덮었으며 찾아와서 공양하는 사람이 날마다 끊이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그 나라에 이르러 여러 성중(聖衆)과 하늘ㆍ용ㆍ귀신 등을 데리고 성문에 서서 금색의 팔과 덕상(德相)의 손으로 성문의 문지방을 누르셨다. 그리고 여덟 종류의 청정한 범음(梵音)으로 다음 게송을 외우셨다.

지하에 사는 모든 중생들
지상에 사는 모든 중생들
또 허공에 사는 모든 중생들
이러한 모든 중생 무리들

이 중생들 다 사랑하여
제각기 편히 쉬게 하리니
부디 밤낮으로 부지런히
온갖 선한 법 받들어 행하라.

이 게송을 다 외우시자 대지는 여섯 번 진동했다. 부처님께서 성내로 들어가시자 공중의 귀신들은 허공으로 올라가 흩어지고 지상의 귀신들은 다투어
성문으로 나왔다. 성문이 그들을 다 용납하지 못하므로 그들은 각각 부딪치며 달려나와 성을 다 부수었다. 그리고 성내의 모든 측간의 더러운 것들은 다 땅 속으로 들어가고 높고 낮은 개울들은 다 편편해지며 장님은 빛을 보고 귀머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벙어리는 말을 하고 앉은뱅이는 다니며 미친 이는 정신이 바로 되고 병자는 다 나았다.
코끼리ㆍ말ㆍ소 등 축생들은 슬퍼 울어 화답하고 공후 등 악기는 치지 않아도 스스로 울어 가락이 다 알맞았다. 여자들의 패물 등은 서로 부딪쳐 묘하게 울리고 독과 항아리 등 그릇은 스스로 소리를 내어 부드럽게 묘한 법음(法音)을 펴며 땅 속에 묻힌 보배는 스스로 나왔다. 일체 중생은 갈증을 만났을 때 시원한 물을 얻어 그것을 마시고 거기에 목욕하여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온갖 병이 다 나아 해탈을 얻는 것도 이와 같았다.”


自述
모든 부처님의 신력(神力)은 불가사의하고 중생의 업력(業力)도 불가사의하다. 그러므로 『장엄론(莊嚴論)』에서 말하였다.
“만일 선업이 있으면 자연의 힘 때문에 좋은 과보를 받는다. 비록 국왕이 지원하는 힘이라도 업력이 얻는 과보보다는 못하다.”
나는 옛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즉 어떤 가난한 사람이 생각하였다.
‘나는 천사(天祀)에 가서 기도하여 현세의 이익과 재보(財寶)를 얻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그 아우에게 말했다.
“너는 부지런히 농사짓고 살림을 잘해 우리 집을 부유하게 하라.”
그리고 그 아우를 데리고 밭에 나가 말하였다.
“여기는 깨를 심고 여기는 보리를 심고 여기는 벼와 콩ㆍ팥 등을 심으라.”
이렇게 낱낱이 지시하고 그는 천사로 가서 말하였다.
“지금 제자는 천신(天神)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 뒤 향과 꽃을 공양하고 진흙향을 땅에 바르고 밤낮으로 예배하면서 은혜를 구하고 복을 청하여 현세의 이익과 재산을 기원했다. 그 때 천신은 생각했다.
‘저 가난한
사람은 전생에 과연 보시의 공덕과 인연이 있는가? 만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으면 방편을 써서 저를 이롭게 하리라.’
그리고 그 사람을 관찰해 보았으나 보시에 조그만 인연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저 사람은 아무 인연도 없으면서 지금 내게 부지런히 청하지만, 한갓 수고만 하고 아무 이익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는 나를 원망하리라.’
천신은 곧 그의 아우로 화해 천사로 갔다. 형은 아우를 보자 물었다.
“너는 씨앗을 다 심었느냐? 여기는 무엇하러 왔느냐?”
아우(천신)는 말했다.
“나도 천신님께 기도하러 왔습니다. 천신님을 기쁘게 하여 내 의식(衣食)을 구하렵니다. 내가 종자를 심지 않더라도 천신님의 힘으로 밭에는 곡식이 저절로 풍족해질 것입니다.”
형은 아우를 나무라면서 말하였다.
“밭에 종자를 뿌리지 않고 어찌 수확을 바랄 수 있느냐?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곧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사해(四海)와 대지 안의
그 어느 곳이거나
씨앗을 뿌리지 않고
어찌 그 열매 얻겠느냐?

그 때 아우(천신)는 형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종자를 뿌리지 않고는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까?”
형은 아우에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천신은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와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너는 지금 말하였다.
종자 뿌리지 않으면 열매 없다고.
전생에 보시 종자 뿌리지 않았거니
어떻게 지금 그 열매 얻으리.

너는 지금에 그 고생 생각하고
음식 안 먹고 내게 공양하지만
그것은 한갓 수고만 할 뿐
그리고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너로 하여금
현세의 이익을 얻게 하겠는가?

만일 재산을 얻고자 하거든
처자 및 그 권속을 모두
몸과 입과 뜻을 깨끗이 하고
언제나 보시의 업을 지으라.


씨를 뿌리지 않고 복을 얻는다면
해와 달과 또 별들이
이 세상을 비추지 않으리니
그것들이 세상을 비추기 때문이다.

알아야 한다. 그 업력 때문에
저 천상과 이 인간에
제각기 다 차별이 있느니라.

복의 힘으로 위덕이 성하고
복이 적으면 위덕이 적다.
그러므로 알아라. 이 세간의
모두는 다 업의 힘 때문이다.

보시 행하면 재산을 얻고
계율 지키면 천상에 난다.

만일 보시의 인연 없으면
위덕(威德)과 겁(劫)이 줄고 멸하며
선정과 슬기로 해탈 얻는다.
이 세 가지로 과보 얻나니
이것은 10력(力)의 말씀이시다.

이 종자는 모두가 곧 인(因)이다.
나를 시끄러이 어지럽히지 말라.
그러므로 부디 좋은 업 닦아
그로써 장래의 과보 구하라.

또 『장아함경』에서 말하였다.
“모든 사람이 사는 집에는 다 귀신이 있어 빈자리가 없다. 거리ㆍ길ㆍ골목ㆍ푸줏간ㆍ가게 및 무덤 등에 다 귀신이 있어 빈 곳이 없다. 모든 귀신은 다 의지하는 곳에 따라 그 이름이 있다. 사람이 처음 날 때부터 귀신이 따라 다니면서 그를 보호하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에는 귀신이 그 정기(精氣)를 거둔다. 10악을 행하는 사람은 천이건 만이건 다 한 귀신이 옹호하고, 10선을 행하는 사람은 마치 백천 사람의 국왕을 호위하는 것처럼 모든 귀신이 그를 호위한다.”
또 『시방비유경(十方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천상 천하의 귀신들은 다 사람의 수명과 죄와 복과 미래의 일을 안다. 그러나 사람을 살릴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으며 또 사람을 부귀하거나 빈천하게 할 수도 없다. 다만 사람을 시켜 악을 짓고 살생하게 할 뿐이다. 사람이 쇠약하면 그로 인해 사람을 어지럽히고 사람에게 화복을 이야기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게 와서 제사지내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귀신에게 제사지냄으로써 현세의 복을 구하더라도 그 힘을 얻기 어려운 것을 알 수 있다.]
또 『보요경(普曜經)』에서 가섭은 다음 게송으로 부처님께 답하였다.

생각하면 나는 제사지낸 지
이미 80년이 지났구나.
바람ㆍ물ㆍ불의 신들과
해ㆍ달ㆍ산ㆍ바다의 신을 받들다가

밤이나 낮이나 게으르지 않고
마음속에는 다른 생각 없었지만
끝끝내 아무 얻은 것 없고
부처님 만나 편안해졌네.

또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바라문은 사랑의 천신(天神)을 섬겨 밤낮으로 받들었다. 천신은 그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구하느냐?’
바라문은 대답하였다.
‘나는 천사(天祠)의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천신은 말하였다.
‘너는 저 소 떼들에게 가서 그 중 제일 앞에 가는 놈에게 물어보라.’
바라문은 곧 가서 물었다.
‘너는 어떠냐? 괴로우냐, 즐거우냐?’
소는 답하였다.
‘나는 지금 매우 괴롭다. 가시는 내 양쪽 갈빗대를 찌르고 나뭇가지는 튀어 내 등이 다 헤어졌다. 무거운 수레 끌기와 또 짐을 지기에 조금도 쉬지 못한다.’
바라문은 또 물었다.
‘너는 무슨 인연으로 이 소의 몸을 받았느냐?’
소는 답하였다.
‘나는 천사(天祠)의 주인으로 있으면서 그 천사의 물건을 마음대로 쓰다가, 목숨을 마치고는 소가 되어 지금 이런 고뇌를 받는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천신에게로 갔다. 천신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도 천사의 주인이 되고 싶은가?’
바라문은 답하였다.
‘나는 사실을 알았으니 천사의 주인이 되지 않으렵니다.’
천신은 말하였다.
‘사람은 선악을 행하여 스스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다.’
바라문은 곧 참회하고 온갖 선을 닦고 과거의 악을 고쳤다.”
또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부자 노인이 있었다. 그는 고기가 먹고 싶어 거짓 방편으로 밭머리의 나무를 가리키면서 그 아들들에게 말했다.
‘우리 집이 부자가 된 것은 이 나무신의 은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염소를 잡아 이 나무신에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
아들들은 아버지 분부를 받고 곧 염소를 잡아 제사를 지내기 위해 그 나무 밑에 천사(天祠)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
뒤에 목숨을 마친 그 아버지는 그 업에 쫓기어 그 집의 염소 떼 속에 태어났다. 그 아들들은 또 나무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염소를 고르다가 마침 그 아버지(염소)를 골라 그것을 잡으려 했다.
그 염소는 얼른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 나무에 무슨 신령이 있겠는가? 내가 지난날 고기 생각이 나서 거짓으로 너희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하여 너희들과 함께 그 고기를 먹었다. 지금 그 죄의 갚음을 내가 혼자 먼저 당하는구나.’
그 때 마침 어떤 아라한이 그 집에 걸식하러 왔다가 그들의 죽은 아버지가 지금 그 염소가 된 것을 보고 곧 그 아들들에게 도안(道眼)을 빌려 주어 그들 스스로 보게 했다. 그들은 비로소 그것이 아버지임을 알고 몹시 괴로워했다. 그리고 곧 나무를 베어 버리고 참회하고 복을 닦으면서 다시는 살생하지 않았다.”

(3) 제사부(祭祠部)
『우바새계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아들이 선법을 닦으면 아버지가 악을 짓더라도 아들의 그 선에 의해 아버지가 3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몸과 입과 뜻의 업이 부자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 아귀에 떨어졌을 때,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명복을 빌면 아버지는 천상에 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일은 전연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는 천상에서 아주 훌륭하고 묘한 보배를 성취했기 때문이다. 또 지옥에 떨어져서도 온갖 고뇌를 받기 때문에 인간의 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으니, 그러므로 명복을 얻을 수 없으며, 축생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에서도 또한 그렇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아귀만은 빌어 주는 명복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탐애(貪愛)와 인색 때문에 아귀에 떨어진 것이요, 아귀가 되어서는 항상 본래의 허물을 뉘우치고 명복 얻기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업으로 다른 세계에 나고 그의 남은 권속이 아귀에 떨어졌으면 그들도 다 명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귀를 위해 복덕을 지어야 하느니라.
또 제사가 있을 때 누가 그것을 받는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따라 그것을 받는 자가 된다. 그것이 나무 가까이 있으면 나무신이 그것을 받고, 집ㆍ강ㆍ우물ㆍ숲ㆍ언덕 등도 다 그러하니라. 이 사람은 제사를 지낸 뒤에 복덕을 받는다. 왜냐 하면 그것을 받는 자로 하여금 기쁜 마음을 내게 하기 때문이니, 이 제사의 복덕은 그의 몸과 재산을 보호해 준다. 그러나 살생하는 제사는 복덕을 받지 못한다. 왜냐 하면 세상에서 이란자(伊蘭子)를 심은 사람은 전단향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생의 목숨을 끊고 어찌 복덕을 얻겠는가? 제사를 지내고자 하는 사람은 향과 꽃ㆍ우유ㆍ타락ㆍ연유ㆍ과일 등을 써야 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해 명복을 빌어 주려면 3시(時)가 있으니, 봄에는 정월이요, 여름에는 5월이며, 가을에는 9월이니라.
또 집이나 방ㆍ침구ㆍ의약ㆍ동산ㆍ우물과 소ㆍ염소ㆍ코끼리ㆍ말 등 갖가지 생활용품을 남에게 보시하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그 보시한 물건에 따라 오랜 뒤거나 가까운 시일에 복덕이 항상 생긴다. 그 복덕이 그를 따르는 것은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으니라.
어떤 사람은 ‘목숨을 마치면 그것이 다 없어진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물건이 부서져 쓰지 못하는 것은 2시(時) 중에 없어지고, 목숨이 다할 때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출가인이 재가인을 본받아 그 해의 절일(節日)에 음식을 버리는 것은 세상 법을 따르는 것이므로 진실이 아니니, 세법(世法)과 출세법(出世法)을 다 믿기 때문이다. 만일 집에 있는 좋고 나쁜 것을 다 항상 즐겨 보시하면 이것을 일체의 보시라 하고, 만일 자기 몸이나 처자 등
소중한 물건을 남에게 보시하면 이것을 불가사의 보시라 하느니라.”
또 『정법념처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망인(亡人)을 위해 보시를 수행하면 귀도(鬼道)에 난 자의 귀신도 복을 얻을 수 있으니, 그것은 그 귀신이 전생에 간탐했던 것을 알고 그를 위해 보시할 때에 그는 곧 기뻐하기 때문이다. 만일 다른 길에 나면 별로 힘을 얻지 못하나니, 마치 천상에 나서 순수히 즐거움의 과보를 받을 때와 같아서 본래의 업을 뉘우치지 않고 복을 생각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만일 천상에 나면 인간의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천상에서 이미 훌륭하고 묘한 보배를 성취했기 때문이다. 지옥에 들어가면 온갖 고뇌를 받기 때문에 생각할 겨를이 없고 축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아귀를 위해 복을 지으면 아귀는 그 음식을 먹고 몸이 건강해지며 냄새를 맡는 것은 향냄새를 얻고 빛깔이 나쁜 것은 좋은 빛깔로 만든다.”
또 경전에서 말하였다.
“모든 귀신은 그 먹는 것이 같지 않다. 어떤 것은 고름을 먹고 어떤 것은 똥을 먹는다. 그들은 보시를 얻으면 모두를 아주 묘한 빛깔과 맛으로 변화시킨다. 혹 귀신이 다른 곳에 나더라도 친히 보시를 받을 때에는 그 귀신은 업의 힘으로 멀리서 그것을 알고 기뻐한다. 만일 속가로 돌아와 고통을 받을 때라도 친히 보시를 받으면 귀신도 그것을 직접 보고 매우 기뻐한다.”
또 『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법답지 않게 재물을 구하거나 얻었을 때는 그것을 아끼기 때문에 자기 권속에게도 줄 마음이 없겠거늘, 하물며 남이겠는가? 그는 보시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목숨을 마친 뒤에는 아귀에 떨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만일 그 집 부근의 더러운 변소 같은 곳에 있으면 그 친족들은 가엾이 여겨 ‘저 사람은 재물을 그처럼 모아 제대로 쓰지 않고 남에게 보시하지도 않았다’ 하고,
너무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그에게 음식을 주려고 모든 권속과 친우ㆍ사문ㆍ바라문 등을 청해 음식을 보시하면, 그 귀신은 그것을 직접 보고 권속의 재물에 대해 자기의 소유라 생각하고, ‘이 재물은 내가 전에 모은 것인데 지금 사람들에게 보시한다’ 하고는 매우 기뻐하여 복밭에 대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낸다. 그러나 다른 세계에 나면 많은 힘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이 복을 얻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그를 위해 선을 닦으면 스스로 큰 이익을 얻나니, 마치 자비심을 일으켜 항상 스스로 복을 얻는 것과 같으니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만일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생각하여 즐거움을 얻게 하면 비록 중생이 그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 자신은 큰 복을 얻는다. 만일 즐겨 보시하지 않으면 비록 천상에 나고 성인이 되더라도 도리어 의식에 궁핍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생각하여 즐거움을 얻게 하면 비록 중생이 그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 자신은 큰 복을 얻는다. 만일 즐겨 보시하지 않으면 비록 천상에 나고 성인이 되더라도 도리어 의식에 궁핍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계를 지니면 아라한은 되더라도 주리는 고통은 면하지 못하며 천상에 나더라도 영락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즐겨 보시하면 비록 아귀나 축생에 떨어지더라도 궁핍이 없이 언제나 배 부르느니라.”
또 『미증유경(未曾有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우리 아버지인 선왕(先王)은 외도를 섬기고 항상 보시를 행하면서 범천의 복을 구했습니다. 이런 공덕으로 지금 어느 하늘에 나셨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선왕은 그 과보로 지금 지옥에 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좋은 때를 만나지 못했고 좋은 벗을 만나지 못했으며 좋은 방편이 없었기 때문에 비록 공덕을 닦았으나 죄를 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시의 공덕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죄가 끝날 때를 기다려야 비로소 복을 받을 것입니다. 아셔야 합니다. 복을 닦는다는 것은 죄와 맞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 선왕에게는 다섯 종류의 악업이 있어서 지옥에 간 것입니다. 즉 첫째는 오만과 포악함입니다. 일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곧 성을 내어 매를 때리고 벌을 주면서 인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보화(寶貨)를 탐해 받은 것이니, 일의 판결이 공평하지 않아 천하로 하여금 다 원한을 품게 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사냥을 즐긴 것이니, 백성을 괴롭히고 중생이 사랑하는 생명을 해쳤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여색(女色)에 빠진 것이니, 새 것을 얻으면 옛 것을 싫어하면서 사랑이 공평하지 않아 많은 원한을 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섯째는 계를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이 글로써 외도를 섬겨 복을 닦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과 악은 항상 다른 것이요, 괴로움과 즐거움의 두 과보는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어늘, 하물며 예리한 근거와 많이 들음으로써 3보를 바로 믿으면 어찌 괴로움의 과보를 불러오겠는가?”
또 『유무삼매경(惟無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도를 구하고 선정에 안주(安住)하려는 사람은 먼저 잡념을 끊어야 하느니라. 사람이 세상에 나서 도를 얻지 못하는 까닭은 다만 앉아서 생각하되 더러운 잡념이 많기 때문이니라. 한 생각이 오고 한 생각이 있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쉬지 않는 것이다. 한 번 선을 생각하면 선의 과보를 받고, 한 번 악을 생각하면 악의 과보를 받는다. 그것은 마치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는 것과 같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선과 악, 죄와 복은 각기 다른 것이니라.’”
또 『중아함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를 지내 보시하면 아귀에 난 자는 그것을 얻어 먹을 수 있으나 다른 세계에 난 자는 얻어 먹지 못하나니, 그것은 각기 살아가는 음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일 아귀에 나지 못한 친족이 있을 때, 다만 보시하면 그것은 보시한 사람만이 그 복을 얻고, 또 시주가 6취(趣) 가운데 났을 때에도 보시한 그 복은 항상 그를 따른다. 계를 지님으로써 사람의 몸을 얻을 수는 있으나 거기에는 반드시 다른 복의 과보가 있어야 하느니라.”
『왕생경(往生經)』에서 말하였다.
“죽은 뒤에 그를 위해 복을 지으면 죽은 자는 그 복의 7분의 1을 얻고, 나머지는 다 현재 짓는 그에게 속한다.”
또 『관정경(灌頂經)』에서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사람이 죽으면 산이나 들에 무덤을 만들고 거기 묻는데, 그 사람의 영혼이 거기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거기 있기도 하고 있지 않기도 하느니라.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선근을 짓지 않고 3보를 알지도 못하였으나, 그래도 악을 짓지 않았다면 선으로 받을 복도 없고 악으로 받을 재앙도 없으며, 그를 위해 복을 닦을 선지식도 없으면, 그 때문에 그 영혼은 갈 곳이 없어 그 무덤 속에 있나니, 그러므로 있다는 것이다.
또 그가 살아 세상에 있을 때, 큰 복과 선을 닦고 부지런히 도를 수행했으면 천상의 삼십삼천에 나서 거기서 복을 받으며, 혹은 인간의 부귀한 집에 태어나 어디로 가나 무엇이고 마음대로 이룬다면, 또 세상에 살아 있을 때, 살생하여 기도하고 정진(正眞)을 믿지 않으며 나쁜 직업으로 생활하면서 아첨과 거짓으로 남을 속이다가 아귀나 축생 속에 떨어져 온갖 고통을 받거나 지옥으로 돌아다니면 그들은 무덤 속에 있지 않느니라.
또 있지 않는 경우는 이러하다. 오곡(五穀)의 경우, 뼈가 아직 썩지 않았을 때에는 미세한 영혼이 있다가 뼈가 다 썩어 버리면 영혼은 곧 없어져 아무 기세도 없거니와 또한 사람을 위해 화도 복도 짓지 못한다. 영혼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을 때에도, 혹 고향의 친한 사람이라도 목숨을 마친 사람이면 세상에 복이 없는 것이다. 또 간사함과 아첨으로 지옥에 떨어졌거나 혹은 아무나 잡물의 정(精)이 되어 받을 만한 하늘의 복도 없고 지옥도 거두어 주지 않으면 비록 세간을 버렸더라도 사람의 마을로 떠돌아다닌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위협하거나 온갖 변괴를 부려 인심을 선동한다.
혹은 요망한 도깨비나 삿된 스승을 의지함으로써 그것을 복이라 하고, 온갖 복을 구하여 오래 살고자 하여 어리석고 삿된 소견으로 생물을 죽여 제사를 지내다가 죽어서는 지옥이나 아귀ㆍ축생 세계에 떨어져 벗어날 기약이 없거늘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또 사람이 임종하는 날에는 향을 피우고 등불을 늘 켜두며 절 안의 찰간(刹竿)에
명과번(命過幡)을 달고 경전을 읽으면서 37일을 마친다. 왜냐 하면 죽은 사람은 중음(中陰)으로 있으면서 몸은 어린애 같고 죄와 복이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그를 위해 복을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은 이의 영혼이 시방의 무량한 부처세계에 나기를 원하면 이 공덕으로 반드시 왕생할 것이다.
죽은 이가 세상에 있을 때 죄를 지어 8난(難)에 떨어질 것이라도 번기와 등(燈)의 공덕으로 반드시 빨리 나되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나게 될 때는 복덕이 많은 사람의 아들이 되어 요사한 귀신에게 시달리지 않고 그 종족이 호강(豪强)할 것이니, 그러므로 복과 선인 번기와 등의 공덕을 닦아야 하느니라.
또 4배(輩)의 남녀로서 임종 때나 혹은 죽은 뒤에 그 죽은 날에 황색 번기를 찰간(刹竿)에 달아 복덕을 얻고, 8난(難)의 고통을 떠나게 하면 그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정토에 날 것이다. 번기와 일산의 공덕은 마음의 소원에 따르고 또 보리(菩提)를 이루게 한다. 번기가 바람에 따라 모두 부서져 티끌이 되고 바람이 그 티끌을 불어 버리면 그 복은 무량하다. 번기가 한 번 펄럭일 때 전륜왕의 자리와 티끌 같은 작은 왕의 자리를 이루어 그 과보는 무량하니라. 49일 동안의 등불은 저승을 비추고 고통받는 중생들은 이 광명에 의해 다 서로 보게 되며, 이 복덕의 인연은 저 중생들을 구제하여 다 휴식을 얻게 하느니라.’”
또 『정도삼매경(淨度三昧經)』에서 말하였다.
“팔왕일(八王日)에는 모든 제석천의 진신(鎭臣) 32인과 사진(四鎭)대왕과 목숨과 기록을 맡은 관리와 오라(伍羅)대왕과 팔왕의 사자가 다 나와 감추어진 행업을 찾고자 사방에 포고한다.
다시 사왕이 15일과 30일에 아뢰기 위해 백성들의 선악을 조사하며, 지옥의 왕도 대신과 작은 왕을 보내고 그들은 동시에 나와 죄가 있으면 곧 기록한다. 먼저 팔왕일의 재일에는 죄를 범해도 복의 힘이 강하므로 구제되어 다른 복의 힘을 빌지 않아도 용서를 받는다. 뒤의 재일이 되어 중한 죄를 범한 수가 많으면 수명을 감하거나 이름을 나누어 꼭 죽인다.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 어느 때라고 적어 지옥에 내리면 지옥에서는 그 문서를 받아 곧 지옥 귀신에게 보내고, 귀신은 그 이름을 적어 가진다. 지옥 귀신은 자비가 없어 죽을 날이 오기도 전에 강제로 그를 죽이고, 복이 많은 자는 그 수명을 더욱 늘려 준다. 하늘은 선신(善神)을 보내어 그 몸을 보호하여 비록 지옥에 내려진 자라도 그 죄명을 없애어 죽지 않고 꼭 살게 하며 그는 그 뒤에 천상에 난다.”
또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광야의 귀신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는 항상 사람을 잡아먹는데 지금 살생하지 말라 하시니, 그러면 나는 무엇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다만 살생만 하지 말아라. 나는 내 제자들에게 시켜서 항상 네게 먹을 것을 주고, 내지 법이 멸하더라도 내 힘으로 너를 늘 배부르게 하리라.’
귀신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부처님의 5계를 받았다.”
『열반경』에서도 말하였다.
“여러 성문 제자들을 시켜 항상 중생들의 먹이를 내어 광야의 귀신들을 구제하게 하셨다.”
또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귀신은 사람에게서 음식을 조금 얻으면 곧 그것을 많게 변화시켜 배를 불린다.”
또 『비유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아난과 함께 강가에 나가셨다가 5백 아귀들이 노래를 부르며 가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또 수백 명의 좋은 사람이 울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셨다. 아난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 때문에 아귀들은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은 울고 갑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귀 집 아이와 친족들은 복을 지어 해탈을 얻었기 때문에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이요, 좋은 사람의
아이와 친족들은 오직 살생만 하고 복덕을 짓지 않다가 큰 화재를 만났기 때문에 우는 것이니라.’”
또 『숙원과보경(宿願果報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바라문의 부부는 자식은 없었으나 재물은 무한히 많았다. 그들은 임종 때에 서로 의논하였다.
‘우리는 각각 돈을 삼켜 저승 가는 노자로 쓰자.’
그 나라 풍속에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지 않고 나무 밑에 그대로 버려 두었다. 그들은 각각 50전을 삼켰는데 그 몸이 썩어 문드러지자 돈이 배 안에서 나왔다.
그 때 그 나라에 어떤 현인(賢人)이 있었다. 그는 지내다가 이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간탐을 몹시 슬퍼했다. 그들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 앞에 공양을 받들고 염불하며 축원했다. 그 때 이 인색한 부부는 아귀의 고통을 받다가 곧 천상에 나게 되어 4배(輩)를 청했다. 그래서 천상에 난 이들은 곧 천안을 얻어 이 사실을 알고 복을 짓고 모두 천상에서 내려와 소년들이 되어 저 단월(檀越)을 도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부엌의 소년들이야말로 참 단월이니라.’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그들은 다 도의 자취를 얻었고 그 현자도 도의 자취를 얻었으며, 대중은 기뻐하면서 다 천상에 났다.”
또 『백유경(百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여러 상인(商人)들이 항해(航海)하고자 하였다. 그 때 길잡이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곧 어떤 길잡이를 구해 길을 떠났는데 광야에 이르렀을 때 어떤 천사(天祠)를 만났다. 이 천사는 사람을 죽여 제사를 지낸 후에야 통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에 상인들은 모두가 생각했다.
‘우리는 다 친한 사이인데 어떻게 죽일 수 있겠는가? 오직 이 길잡이를 죽여 제사를 지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제사를 마쳤다. 그러나 길을 잃어버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고생하다가 거의 죽게 되었다. 세상 사람도 이와 같아서 법의 바다에 들어가 보배를 캐려면 먼저
선행을 닦고 그것을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선행은 파괴하고 생사의 광야에서 길이 나올 기약이 없이 3도(塗)를 돌아다니면서 언제고 고통을 받는다. 이것은 저 상인들이 바다에 들어가려 할 때 그 길잡이를 죽임으로써 길을 잃고 끝내 죽는 것과 같으니라.”
게송을 읊는다.

귀신은 헤아리기 어려워
가만히 왔다 가만히 가지만
복의 바탕을 주고
제사 음식을 맡는다.

저승을 위해 제사를 지내어
주림 면하기를 다 바라면서
범부와 성인이 모두 제사하나니
그 복은 어김이 없다.

감응연(感應緣)[대략 열세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익주(益州)의 서남쪽에 있는 석실묘신(石室廟神)
옛 노릉(盧陵) 태수 방기(龐企)의 누고신(螻蛄神)
괴산(槐山)의 약을 캐는 악전(偓佺)의 신통
은(殷)의 대부 팽조(彭祖)의 선실(仙室)에 호신(虎神)이 있음
한(漢)의 장자문(蔣子文)이 죽어 종산(鍾山) 밑의 신(神)이 됨
한(漢)의 회계(會稽) 영현(郢縣)의 여자 오망자(吳望子)가 신(神)을 느낌
진(晋)의 파구현(巴丘縣)의 무당이 신을 느낌
진(晋)의 하후현(夏侯玄)이 사마경왕(司馬景王)에게 죽어 증험이 있 음
진(晋)의 거사 장응(張應)이 속사(俗祠)를 버리고 부처를 섬긴 증험 이 있음
송(宋)의 진안거(陳安居)가 사신(祀神)을 폐하고 부처를 섬긴 증험이 있음
송(宋)의 제승흠(齊僧欽)이 부지런히 부처를 받는 증험이 있음
양(梁)의 사문 석승융(釋僧融)이 속인의 사당에 보시해 증험이 있음
당(唐)의 예(倪)씨가 아내 황보씨(皇甫氏)를 얻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죽어 증험이 있음
익주(益州)의 서남쪽에 있는 신사(神祠)
익주(益州)의 서남쪽에 있는 신사(神祠)는 산의 돌을 파서
방을 만들었는데, 그 밑에 어떤 사람이 거기 제사지내면서 황석공(黃石公)이라 자칭했다. 그 나라에서는 이 신(神)을 장량(張良)이 병서를 받은 황석공의 신령이라 한다. 이것은 청정하여 희생을 쓰지 않고, 거기 기도하는 사람은 백지 백 장과 붓 한 자루, 먹 하나를 그 석실에 두고 기도한다. 먼저 석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다가 조금 뒤에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소원을 다 말하면 그 길흉(吉凶)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면서도 그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그와 같다.

옛 노릉(盧陵) 태수 방기(龐企)의 누고신(螻蛄神)
옛 노릉(盧陵)의 태수인 태원 방기(太原龐企)는 자(字)가 자급(子及)이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몇 대인지는 모르나 그의 먼 할아버지가 무슨 일에 연루가 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사실은 죄가 없고 고문에 못 견뎌 자백했었다. 장차 죽게 되었을 때 땅강아지(벌레)가 그의 곁을 돌아다니므로 그 할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너에게 신령이 있으면 나를 살려 주는 것도 좋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고 밥을 주었다. 땅강아지는 밥을 다 먹고 갔다. 조금 있다가 다시 왔는데 몸이 좀 커졌다. 그는 이상히 여기면서 또 밥을 주었다. 이렇게 수십 일을 되풀이하는 동안 그것은 돼지만큼 커졌다. 사형을 집행하려 할 때 그것이 밤에 벽을 뚫고 큰 구멍을 내어 주어 그는 형틀을 부수고 그 구멍으로 나와 달아났다가 오랜 뒤에 사면을 받아 살게 되었다. 이리하여 방기는 대대로 사철마다 서울의 거리에서 땅강아지의 제사를 지내 주었다. 그러다가 뒤에는 차츰 게을러져서 특별히 제물을 만들지 않고 다른 제사를 지낸 나머지로 제사를 지내 주는데 지금도 그렇다.

괴산(槐山)의 약을 캐는 악전(偓佺)의 신통
악전(偓佺)은 괴산(槐山)에 사는 약 캐는 사람으로서 솔방울을 즐겨 먹으면서 몸털의 길이는 7치[寸]요, 두 눈은 모가 났으며 잘 날아다녀 달리는 말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는 솔방울을 요(堯)임금에게 보냈으나 요임금은 그것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 그것을 먹은 사람은 다 3백 년을 살았다.

은(殷)의 대부 팽조(彭祖)의 선실(仙室)에 호신(虎神)이 있음

팽조(彭祖)는 은(殷)나라 때의 대부(大夫)이다. 하(夏)나라를 지나 상(商)나라 말년에 이르러 칠백(七百)이라 불리면서 항상 계지(桂芝)를 먹었다. 역양(歷陽)에 팽조의 선실(仙室)이 있었다. 옛날 세상에서는 말하였다.
“바람이나 구름을 빌면 반드시 감응이 있고, 항상 두 마리 호랑이가 그 사당의 좌우에 있다.”
지금도 제사가 끝나면 땅에 두 마리 호랑이 발자국이 있다 한다.[이상 네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한(漢)의 장자문(蔣子文)이 죽어 종산(鍾山) 밑의 신(神)이 됨
한(漢)나라 장자문(蔣子文)은 광릉(廣陵) 사람으로서 주색(酒色)을 좋아하고 함부로 날뛰면서 항상 스스로 말하였다.
“내 정골(精骨)은 죽어 신(神)이 될 것이다.”
한나라 말년에 말릉위(秣陵尉)가 되어 도적을 쫓아가다가 종산(鍾山) 밑에 이르러 도적이 그의 이마를 때렸다. 그는 말하였다.
“내 인수(印綬)를 풀어 버리고 나를 결박하라.”
조금 있다가 그는 죽었다.
오(吳)나라 선왕(先王) 초년에 옛 관리가 길에서 자문을 보았다. 그는 흰색의 말을 타고 흰 새의 깃을 들었는데, 그의 시종은 평시와 같았다. 그를 보는 사람이 놀라 달아나면 그는 쫓아와서 말하였다.
“나는 이 땅의 토지신(土地神)으로서 백성들에게 복을 주려 할 뿐이다. 백성들에게 두루 알려 나를 위해 사당을 세우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장차 큰 기변이 있을 것이다.”
그 해 여름에 과연 큰 병이 유행하여 백성들은 두려워하여 가만히 가서 엿보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자문은 또 손(孫)씨에게 말하였다.
“관청에서 나를 위해 사당을 세움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장차 벌레를 시켜 사람 귀에 들어가는 재앙을 일으키리라.”
얼마 뒤에 큰 등에 만한 벌레가 사람들 귀에 들어가 죽었다. 그러나 의사도 고치지 못하여 백성들은 두려워했으나 손씨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는 또 주문(呪文)을 내렸다.
“만일 내게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큰 화재를 내리라.”
과연 이 해에 큰 화재가 일어나 하루에 수십 곳을 태우고 불은 관청에까지 미쳤다. 현주(縣主)는 매우 걱정하여 여러 사람과 의논하였다.
‘귀신은 돌아갈 곳이 있으면 재앙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방편이 있어야 한다.’
이에 사자를 시켜 자문을 중도후(中都侯)로 봉하고, 다음에는 그 조카 서(緖)를 장수교위(長水校尉)로 삼아 인수(印綬)를 내리고 그를 위해 사당을 세워 그 이름을
종산(鍾山)이라 하고 그 신령을 표하니, 바로 지금 건강(建康)의 동북쪽에 있는 장산(蔣山)이 그것이다. 그 뒤로는 재앙이 그치고 백성들은 그를 크게 섬겼다.[이 한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한(漢)의 회계(會稽) 영현(郢縣)의 여자 오망자(吳望子)가 신(神)을 느낌
한(漢)나라 회계(會稽) 영현(郢縣)의 동야(東野)에 사는 어떤 여자는 성은 오(吳)씨요 이름은 망자(望子)이다. 나이는 16세요 얼굴은 사랑스러웠다. 그 고향에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일을 잘 아는 사람이 있어 그녀는 그를 찾아갔다. 어떤 못가를 지나가다가 길에서 한 귀인(貴人)을 만났는데, 단정하기 비상하고 배를 타고 있었으며 하인이 10여 명이었다. 그는 사람을 시켜 망자에게 물었다.
“지금 어디 가는 길인가?”
망자가 사실대로 다 이야기하자, 귀인은 말하였다.
“나도 지금 바로 거기 가는 길이다. 이 배를 타고 같이 가자.”
망자가 감히 그럴 수 없다고 사양하였더니, 그는 갑자기 사라졌다. 망자가 목적지에 도달하여 그 신령에게 절하고 앉았다가, 아까 배 안에서 본 그 귀인이 단정히 앉아 있음을 보았다. 그는 바로 장후(蔣侯)의 상(像)이었다. 그 귀인은 망자를 보자 물었다.
“왜 그리 더디 왔는가?”
그는 곧 두 개의 귤을 던져 주었다. 그리고 자주 형상을 나타내었는데 드디어는 정이 통해 좋아하게 되었다. 망자가욕심이 생겨 허공으로 그것을 던지면서 생선회를 생각하였더니 두 마리 산 잉어가 나왔다. 망자의 꽃다운 이름은 멀리까지 퍼지고 자못 영험이 있었으므로 온 고을이 다 받들어 섬겼다. 3년을 지나 망자가 갑자기 딴 생각을 내자 그는 곧 왕래를 끊었다.[ 이 한 가지 증험은 『속신수기(續神搜記)』에 나온다.]

진(晋)의 파구현(巴丘縣)의 무당이 신을 느낌
진(晋)나라 파구현(巴丘縣)의 무당 서례(舒禮)는 영창(永昌) 원년(322)에 병으로 죽었다. 토지신(土地神)은 그를 데리고 가서 태산(太山)으로 갔다. 속인들은 그 무당을 도인(道人)이라 생각했다. 토지신은 그를 데리고 어떤 복사(福舍)의 문 앞을 지나다가 그 문지기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집인가?”
문지기는 대답하였다.
“이것은 도인의 집입니다.”
토지신은 말하였다.
“이 사람도 도인이다.”
토지신은 곧 서례를 데리고 그
문으로 들어갔다. 수천 간의 기와집이 있는데 다 대발을 쳤으며 평상에 남녀들이 각기 따로 있었다. 경을 외우는 이도 있었고 게송을 노래하는 이도 있었으며, 음식은 저절로 생기는 등, 그 즐거움은 말할 수 없었다. 그 때 서례의 문서와 이름은 이미 태산에 도달했으나 몸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태산에서는 토지신을 추궁했다. 토지신은 대답하였다.
“길에서 수천 간의 기와집을 보고 문지기에게 물었더니 문지기가 그것은 도인의 집이라 하여 곧 서례를 거기에 부탁해 두었다.”
이리하여 토지신을 보내어 다시 서례를 붙들어 오게 했다. 서례는 아직 두루 다 구경하지 못했는데, 어떤 사람이 손은 여덟이요 눈은 넷이며 금방망이를 들고 쫓아와 때리려 했다. 서례는 황급히 문으로 나왔으나 토지신은 이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서례를 붙들어 태산으로 보냈다. 태산의 부군(府君)은 서례에게 물었다.
“너는 세상에 있을 때 무슨 일을 했는가?”
서례는 대답하였다.
“3만 6천의 신(神)을 섬기면서 사람들을 위해 제사를 지낼 때에는 소나 돼지ㆍ염소ㆍ닭 등을 죽였습니다.”
부군은 말하였다.
“네 죄는 번철에 올려놓아야 하겠다.”
부군은 곧 사람을 시켜 그를 잡아 번철에 놓으라 했다. 소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자가 쇠작살을 들고 서례를 찍어 번철 위에 놓았다. 서례는 불에 타는 몸을 뒤척거리면서 차라리 죽으려 했으나 죽어지지도 않고 한 밤을 지냈다. 이튿날 부군은 주부(主簿)에게 물었다.
“서례가 아직 죽지 않았느냐?”
“아주 그 목숨을 빼앗기 위해 장부를 조사해 보았더니 남은 수명이 아직 8년입니다.”
부군은 말하였다.
“적어 오너라.”
소머리 사람은 다시 쇠작살로 서례를 찍어 번철 밖에 내다 놓았다. 부군은 말하였다.
“이제 그대를 돌려보낼 것이니, 남은 목숨을 다 마치고 다시는 살생하여 제사지내지 말라.”
서례는 갑자기 다시 살아나 끝내 다시는 부당한 짓은 하지 않았다.[이 한 가지 증험은 『유명기(幽冥記)』에 나온다.]

진(晋)의 하후현(夏侯玄)이 사마경왕(司馬景王)에게 죽어 증험이 있음
당(唐)의 예(倪)씨가 아내 황보씨(皇甫氏)를 얻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죽어 증험이 있다.
진(晋)나라 하후현(夏侯玄)은 자는 태초(太初)요, 당시의 재망(才望)으로서 사마경왕(司馬景王)의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그 친족들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낼 때, 그는 영좌(靈座)에 와서 그 머리는 떼어 곁에 두고 과일과
밥ㆍ술ㆍ고기 등을 집어 모두 목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편안히 앉아 말하였다.
“나는 상제(上帝)에게 소송해 이겼다. 저 사마경왕은 뒤가 없으리라.”
그 뒤에 경왕이 죽고 아들이 없으므로 그 아우 문왕(文王)의 둘째 아들 위제(爲齊)를 세워 경왕의 뒤를 이었다가 그도 죽어 조카 고(固)를 세웠으나 또 피살되었다.
영가(永嘉)의 난리 때 어떤 무당은 그 아우에게 말하였다.
“저 집이 다 망하게 된 것은 바로 조상(曹爽)과 하후현 두 사람이 소송에 이겨 원한을 풀었기 때문이다.”[이것은 『원혼지(冤魂志)』에 나온다.]

진(晋)의 거사 장응(張應)이 속사(俗祠)를 버리고 부처를 섬긴 증험이 있음
진(晋)나라 장응(張應)은 역양(歷陽) 사람으로서 본래 속신(俗神)을 섬겨 북을 치고 춤을 추어 음사(淫祀)를 지냈다. 함화(咸和) 8년(333)에 무호(蕪湖)로 이사해서 살 때 그 아내가 병에 걸렸다. 장응은 갖가지로 기도하기에 가산이 거의 없어졌다. 그 아내는 불가(佛家)의 제자로서 장응에게 말하였다.
“지금 내 병은 날로 위중해 가는데 귀신에게 기도하나 아무 보람이 없습니다. 불사(佛事)를 지어 보십시다.”
장응은 승낙하고 곧 절에 가서 축담개(竺曇盖) 스님을 뵈었다. 담개는 말하였다.
“부처는 병을 고치는 약과 같은데 약을 보고도 먹지 않으면 보는 것만으로는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
장응이 불사를 지으려 하자 담개는 그 이튿날로 날을 잡아 주었다. 장응은 집에 돌아와 밤에 꿈을 꾸었다. 키가 1길[丈] 남짓한 어떤 사람이 남쪽문으로 들어오면서 말하였다.
“그대 집은 이처럼 더러운 것이 낭자하다.”
담개는 그 뒤를 따르면서 말하였다.
“이제 막 마음을 내었는데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장응이 푹 자고 깨어나니 그 꿈이 환했다. 그리하여 높은 자리와 귀자모(鬼子母) 자리를 만들었다. 이튿날 담개가 그 집에 갔을 때 장응은 담개에게 꿈 이야기를 자세히 하고 5계를 받았다. 그리고 귀신의 상(像)을 모두 없애고 복의 공양을 크게 베풀자, 아내의 병이 조금 쉬더니 이내 완전히 나았다.
함강(咸康) 2년(336)에 장응은 마구(馬溝)에 가서 소금을 사 가지고 돌아와 무호의 갯가에서 자다가 꿈을 꾸었다. 즉 어떤 세 사람이 강철 갈고리로 장응을 끌어당겼다. 장응은 말하였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다.”
그러나 그들은 놓지 않고 끌어당기면서 말하였다.
“종이 주인을 배반하고 달아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장응은 몹시 당황해 말하였다.
“나를 놓아주면
너희들에게 술 한 되를 주리라.”
비로소 놓아주면서 말하였다.
“다만 뒷사람이 다시 너를 잡아갈까 두려울 뿐이다.”
장응은 잠을 깨자 배가 아프면서 설사가 심해 온 집안이 다 큰 어려움을 겪었다. 장응은 담개와 함께 오랫동안 걱정을 하였으나 병은 더욱 심했다. 사람을 보내 담개를 청했으나 마침 담개는 없었다. 장응은 기절했다가 며칠만에 깨어나 그 동안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즉 몇 사람이 강철 갈고리로 그를 끌어당겨 북쪽으로 가서 어떤 언덕에 내려놓았다. 그 언덕 밑에는 물이 끓는 솥과 칼 등 무서운 기구들이 있었다. 장응은 곧 거기가 지옥임을 알고 스님의 이름을 부르려 했으나 담개라는 이름을 잊어버리고 다만 말하였다.
“스승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그리고 또 부처님도 불렀다. 조금 있다가 어떤 사람이 서쪽에서 왔다. 키는 1길이 넘는데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저들을 치려 하면서 물었다.
“이 분은 부처님 제자인데 왜 여기까지 들어오게 했느냐?”
저들은 다 황급히 흩어지고 이 사람은 장응을 데리고 가면서 말하였다.
“너는 목숨이 이미 다했다.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잠깐 집에 돌아가 3비(備)를 외우고 또 화상(和尙)의 이름을 불러라. 3일 뒤에는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날 것이다.”
장응은 깨어나자 마음이 슬퍼졌다. 3일 동안 재를 베풀고 게송을 외우며 사람을 보내어 담개의 이름을 적어 왔다. 그날이 되어 점심을 마치고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게송으로 찬탄한 뒤에 집 사람들에게 하직을 고했다. 그리고 목욕하고 새 옷을 갈아입은 뒤에 자는 듯이 갔다.

송(宋)의 진안거(陳安居)가 사신(祀神)을 폐하고 부처를 섬긴 증험이 있음
송(宋)나라 진안거(陳安居)는 양양현(襄陽縣) 사람이다. 그 백부는 젊어서부터 무속(巫俗)을 섬기고 북을 치고 춤을 추어 제사를 지냈는데 신상(神像)과 사당이 그 집에 가득했다. 그러나 그 아버지만은 불법을 공경하고 믿어 아침과 저녁으로 재계했다. 뒤에 백부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이 없었으므로 아버지는 안거를 그 양자로 보냈다. 안거는 비록 백부의 집으로 갔으나 이치대로 행하고 부지런히 불법을 구하면서 살생하여 제사지내는 일은 아주 철폐했다. 이에 드디어 병을 얻었는데 소리를 내면 귀신을 노래하는 곡조요 까무라치거나 정신이 혼미하였다. 이렇게 1년이 되었으나 그의 집념은 더욱 견고하여 항상
맹세하였다.
‘누구라도 살생하지 않으려는 내 뜻을 빼앗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먼저 사지가 토막날 것이다.’
이 일에 대해 집 사람들이 모두 충고했으나 안거는 듣지 않고 2년을 지냈다.
영초(永初) 원년(420)에 안거는 병이 더해 드디어 숨이 끊어졌다. 다만 심장 밑만이 조금 따뜻했으므로 집 사람들은 염하지 않고 7일 되는 밤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시체 발 사이에서 바람 같은 무엇이 와서 옷과 이불을 조금 흔들더니 이에 깨어나 무슨 소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시체가 움츠러들자 두려워하여 모두 피해 달아났다. 조금 있다가 차츰 움직이더니 오래지 않아 물을 마셨다. 사람들은 기뻐하면서 물었다.
“그 동안 어디 갔다 왔느냐?”
안거는 이에 그 동안 겪고 본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처음에 사자 같은 어떤 사람이 수십 개의 칼을 가지고 와서 나를 불러내어 데리고 갔다. 그 시종이 나를 결박하려 하자 사자는 말리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은 복이 있으니 결박하지 못한다.’
3백 리쯤 가자 어떤 성부(城府)에 이르렀다. 누각과 집들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사자는 나를 데리고 여러 곳으로 갔는데, 그것은 국사(局司)들이 사는 곳과 같았다. 마지막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종이와 붓을 주면서 죽을 사람의 이름을 24통(通) 쓰라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몇 통을 썼다. 그 때 어떤 시자(侍者)가 안에서 나오면서 소리를 높여 크게 외쳤다.
‘안거는 들어오너라.’
내가 들어가자 교부(敎付)와 자간(刺姦)이라는 두 옥리(獄吏)가 있다가 한 사람은 큰 형틀을 씌우자 하고, 한 사람은 3자[尺]의 형틀이면 족하다고 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오랫동안 장부를 읽어 보고는 드디어 3자의 형틀을 씌웠다. 한참 있다가 어떤 귀인이 수십 명의 시종을 데리고 나왔다. 그는 얼굴이 단아하고 조용하였다. 그는 나를 보자 물었다.
‘그대는 왜 이런 곳에 왔는가?’
나는 그 동안의 내력을 다 이야기했다.
귀인은 말하였다.
‘그대 백부는 죄가 있으니 다스려야 마땅하지만 전생에 조그만 복을 심었기 때문에 우선 놓아 두어 고소하게 한 것이다. 나는 그대 아버지와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는데 지금 보니 너는
여전하구나. 나를 따라 함께 구경이나 하자.’
그러나 옥리는 그의 형틀을 풀어 주지 않으면서 말하였다.
‘아직 부군(府君)의 분부가 없습니다. 감히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러자 귀인은 말하였다.
‘그대들은 내게 맡겨 두게. 내가 이 사람을 달아나게 하지는 않을 터이니.’
그들은 곧 풀어 주었다.
귀인은 나를 데리고 여러 지옥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고통받는 상황을 다 보게 했다. 이것은 대략 경전에 있는 것과 같았다. 구경을 아직 다 마치기 전에 전교(傳敎)가 와서 말하였다.
‘부군(府君)께서 안거를 부르십니다.’
나는 당황하여 귀인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귀인은 말하였다.
‘그대는 죄가 없으니 그저 사실대로만 대답하고 아무 걱정 말게.’
나는 부군에게 갔다. 칼을 쓰고 수갑을 찬 죄수들 수백 인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나는 그 세 번째에 있었다. 뜰 앞에 갔을 때 면류관(冕旒冠)을 쓴 어떤 사람이 죄수들 앞에 서서 죄수들의 장부를 읽었다. 첫 번째는 이러했다.
‘옛날 처음 결혼할 때 부부는 서로 맹세하기를 자식이 있거나 없거나 끝내 서로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본래 제주(祭酒)요, 그 아내도 도를 받들었는데, 함께 교화하고 인도해서 얻은 무리들 중 심부름하는 여제자(女弟子)와 남편이 간통하고, 드디어는 본처를 버렸으므로 본처가 항상 그 원한을 호소한다.’
부군은 이에 대해 말하였다.
‘너희들은 부부로서 맹세를 어겼으니 대의(大義)로서는 죄가 둘이 아니요 하나이다. 스승과 제자의 의리는 제3인데 그런데도 간통했으니 이것은 부자(父子)가 서로 간음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법국(法局)에 붙여 벌을 주어야 한다.’
다음에 읽은 것은 두 번째 여자의 호소인데 그 성명은 알 수 없고 사연은 이러했다.
‘집은 남양(南陽)의 관군현(冠軍縣) 황수리(黃水里)에 있다. 집에서 밥그릇을 부엌 아궁이 위에 두고 여자가 깊이 잠이 들었을 때, 어린애가 부엌 위를 기어다니다가 밥그릇에 똥을 쌌다. 여자는 잠에서 깨어나 곧 신(神)에게 사죄한 뒤에 그 그릇을 깨끗이 씻었다. 그런데도 그 시아버지는 늘 그 며느리를 욕하면서 말하였다.
<천도(天道)와 귀신이 없어 저런 더러운 짓을 하는 여자를 그대로 두는가?>
사명(司命)이 그것을 알고
기록해 보낸 것이었다.’
부군은 말하였다.
‘부엌에서 자는 것은 허물이 아니요 어린애는 지각이 없다. 또 이미 신명에게 사죄했으니 여자는 죄가 없다. 그러나 그 시아버지가 꾸짖으면서 천도가 없다 한 것은 유령(幽靈)을 비방한 것이다. 그를 잡아 오라.’
이리하여 그 시아버지가 잡혀 왔다.
다음에 적관(赤官)이 나를 붙들어 오자 뜰 아래 있는 사람이 나의 이름을 읽었다. 이것은 그 백부의 고소를 입은 것이었다…….
부군은 말하였다.
‘이 사람은 부처를 섬기는 대덕인(大德人)이다. 그 백부는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고 백성들을 나무라고 속였으니 그 죄를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옛날의 조그만 복이 있기 때문에 그 죄를 몰랐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무고한 사람(안거)을 비방해 고소했으니 빨리 잡아 오라.’
그가 아직 오기 전에 부군은 나를 돌려보내면서 말하였다.
‘지금 돌아가거든 그 좋은 업을 잘 성취하라. 93세까지 살 것이니 부디 노력하고 다시는 여기 오지 말라.’
내가 밖으로 나오자 국사(局司)는 말하였다.
‘그대 이름을 죽을 사람의 명부에서 삭제해야 하겠소.’
이리하여 나는 그 이름을 삭제한 뒤에 저 귀인에게로 가려 했는데 귀인이 먼저 와서 말했다.
‘그대가 죄가 없어 돌아온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부디 힘써 공덕을 닦아라. 나는 복이 미약해 천상에 나서 과보 받을 준비를 하지 못하고 지금 여기서 부군을 보좌하면서도 별일이 없고 신도(神道)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다. 내 집은 완릉(宛陵)에 있는데 성은 아무요, 이름은 아무이다. 그대는 돌아가거든 나를 위해 마음을 다하여 지성으로 법을 받들고 부처님 계율을 범하지 말라. 그리고 여기서 본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자세히 알려 주어라.’
이리하여 역사(力士) 세 사람을 시켜 나를 보내 주었다. 내가 몇 걸음 걸어갔을 때 전교(傳敎)가 와서 부적을 나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당신은 가다가 수라(戍邏)를 만나거든 이 부적을 보이고 지나가시오. 함부로 몰래 가려 하다가는 공연히 귀양가게 될 것이오. 또 물에 막힐 때는 이 부적을 물에 던지면 건너갈 수 있을 것이오.’
나는 부적을 받아 가지고 돌아가다가 한참 만에 큰 강을 만나 건너갈 수 없었다. 나는 그 말대로 부적을 던졌다.
아득하게 눈이 아찔해지더니, 거기는 바로 내 집 앞의 중방(中方) 땅으로서 집 안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바로 들렸다. 함께 온 역사 세 사람은 나에게 제 몸으로 들어가기를 권했다. 그러나 나의 몸은 이미 다 썩어 버렸으므로 나는 말하였다.
‘나는 다시 이 몸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나를 강제로 밀어 그 시체 다리 뒤에 넘어뜨렸다.
이렇게 해서 나는 병이 다 나았다.”
그래서 그 동안의 일을 시험해 보기 위해 관군현 황수리의 그 부인을 찾아갔다. 과연 그 부인은 그대로 있어 서로 만나 보고는 마치 옛 친구 같았다. 그리고 부인은 그가 죽었다 깨어난 것과 그 시아버지가 그 날로 죽었다는 것과 저승에서 듣고 본 것을 다 이야기했는데, 그 모두가 안거가 겪은 것과 같았다. 그리고 안거에게 5계를 준 스승의 이름은 승민(僧旻)으로서 양양 사람이며 말년에는 장사(長沙)에 살았었고, 본래는 안거와 한 마을에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안거가 죽을 때 그도 직접 보았으며 안거의 나이는 과연 93세였다 한다.

송(宋)의 제승흠(齊僧欽)이 부지런히 부처를 받는 증험이 있음
송(宋)나라 제승흠(齊僧欽)은 강릉(江陵) 사람인데 그 집에서 불법을 받들었다. 승흠의 나이 10세쯤 되었을 때 점쟁이가 그를 보고 18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 하여 부모 형제들은 매우 걱정하였으며, 승흠 자신도 더욱 정진하면서 불법을 공경하고 재계했다.
나이 17세가 되는 송(宋)의 경평(景平) 말년(424)에 그는 병을 얻어 매우 위독했다. 그 집에서는 재계와 기도에 더욱 힘쓰고 또 음사(淫祀)에 복을 빌었으나 병은 낫지 않았다. 그 때 어떤 무녀(巫女)가 말하였다.
“이 남자는 복의 힘이 왕성하여 어떤 마귀도 감히 붙지 못하고 선신이 스스로 보호할 것입니다. 그러나 병이 오래도록 낫지 않으니 혹 운명이 한정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는 수명을 가름하는 술(術)이 있습니다. 천신(天神)을 조금 섬기면 자못 그 수명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이제 당신을 위해 시험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들에 술ㆍ안주 및 음식을 차리고 향을 피우며 등불을 켜고는 누워 자는 듯하다가 곧 일어나는 등 하루 저녁에 이렇게 몇 번 되풀이했다. 7일을 지낸 저녁에 무녀는 말했다.
“비로소 감응이 있어 선신(善神)을 보았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 기도의 힘을 입어 양산(兩算)을 더 살 것입니다. 그리고 병도 꼭 나을 것이니
전혀 염려 마십시오.”
승흠은 이리하여 병이 나은 뒤로는 더욱 정진하다가, 그 뒤 24년 만에 죽었으니 그 무녀의 말과 같았다. 즉 1산(算)이 12년이니 양산이면 24년이다.[이상 세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양(梁)의 사문 석승융(釋僧融)이 속인의 사당에 보시해 증험이 있음
양(梁)나라 구강(九江)의 여산(廬山)에 있는 동림사(東林寺)의 석승융(釋僧融)은 뜻이 독실하고 널리 알며 교화하는 것을 자기 소임으로 삼았다. 일찍이 강릉(江陵)에 있을 때는 한 집을 권해 계를 받게 하고, 부처님 받드는 것을 업으로 삼게 했다. 그들은 전에부터 있던 신묘(神廟)를 섬기지 않고 거기 드는 것을 모두 보시에 썼다. 승융은 그 신묘에 있는 것을 모두 절에 보내고 이내 거기 있으면서 그를 위해 복을 빌었다. 7일 뒤에 그 주인 어머니는, 어떤 귀신이 빨간 밧줄로 자신을 묶으려 하는 것을 보고 매우 두려워해서 다시 스님을 청해 경을 읽고 도를 행하게 하니, 그 귀신의 장난은 그쳤다.
승융은 만년(晩年)에 여산으로 돌아가 혼자 여관에서 자고 있었다. 마침 눈이 내리는 밤중인데 그는 막 잠이 들려다가 귀신의 군사들을 보았다. 그 무리는 매우 많은데 그 중의 장수는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얼굴은 기괴하며 험상스러웠다. 어떤 자가 평상을 가져와 승융을 마주하고 걸터앉아 무서운 얼굴을 하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대는 왜 귀신에게 신령이 없다고 하는가? 빨리 저자를 끌어내라.”
그러자 여러 귀신들이 곧 손을 대려 했다. 승융은 잠자코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며 불렀다. 부르는 소리가 끊어지기 전에 그가 있는 평상 뒤에 한 천장(天將)이 나타났다. 키는 1길[丈]이 넘고 누른 가죽 기마복(騎馬服)을 입었는데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저들을 겨누자, 귀신들은 놀라 다 흩어지고 갑옷과 투구 등은 다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승융은 일찍이 강릉에 있을 때 어떤 부부를 권해 5계를 받게 했다. 그녀는 뒤에 도적에 끌려가고 남편은 달아났다. 아내는 도적에서 붙들려 감옥으로 갈 때 길에서 승융을 만나 구해 주기를 청했다. 승융은 말하였다.
“오직 지심으로 관세음을 생각할 뿐이요 달리 믿을 것은 없습니다.”
부인은 옥에 갇힌 뒤에 그치지 않고 관세음만 부르며 생각했다. 꿈에 한 스님이 그 앞에 서서 발로 차면서 가라고 했다. 갑자기 놀라 깨니 목과 손과 다리에 씌워져 있던 가쇄(柯鎖)가 저절로
풀렸다. 그러나 문은 여전히 닫겨 있고 문지기가 겹으로 지키고 있어 나갈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아까 그 스님이 말하였다.
“왜 빨리 나가지 않느냐? 문은 저절로 열려 있다.”
이 말을 듣고 그녀가 곧 일어났을 때 겹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곧 일어나 동남쪽으로 몇 리쯤 가다가 한 마을에 이르게 되었다. 밤은 깜깜했다. 그의 남편은 먼저 도망가면서 밤에는 걷고 낮에는 숨었었다. 그들은 서로 맞부딪쳐 매우 다 놀랐는데 풀덤불 속에서 자세히 물어 부부임을 알고, 드디어 상인으로 변장해 아주 멀리 달아났다.[이 한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당(唐)의 예(倪)씨가 아내 황보씨(皇甫氏)를 얻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죽어 증험이 있음
당(唐)나라 연주(兗州) 곡부(曲阜) 사람 예매(倪買)는 아내 황보씨(皇甫氏)를 맞이했다. 그는 그녀의 병을 위해 태산에 기도하여 아내의 병이 조금 나았다. 그러나 이내 그 아내는 저승의 사자에게 붙들려 사명(伺命)이 되어 쉬지 않고 일을 하다가 이내 죽었다. 그리고 하루나 이틀을 지내면 다시 일을 하고 일을 마치고는 다시 깨어나 전처럼 멀쩡했다. 이 같은 일이 거듭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붙들려 갔다.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말하였다.
“일찍이 고향 사람 방령군(龐領軍)의 작은 딸을 붙들어 갔었는데, 그 뜰 앞에 재단(齋壇)이 있고 경을 독송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들어갈 수 없었다. 조금 있다가 경 읽는 소리가 조금 그치고 또 촛불 든 사람이 앓는 여자의 방으로 가는 뒤를 따라 그 방에 들어가 그 여자를 붙들어 가지고 떠났다.”
그 붙들어 가는 이유를 물었을 때 부군(府君) 사랑(四郞)의 명령이라 했으나 부군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옥을 이야기할 때는 모두 조리가 정연했다.
그녀는 또 말하였다.
“지하(地下)에 호소하여 사람을 살린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만 복의 과보가 미약한 사람은 저승에까지 미쳐 갈 수 없으나 죄가 있으면 포섭하기 쉬운 것이다.”
황보씨가 사역(使役)당한 곳은 지금도 그대로 있다. 남자로서 살아서 사명(伺命)이 된 사람은 연주에 3, 4인이 있다고 하나, 다만 그 성명을 모를 뿐이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보습유(冥報拾遺)』에 나온다.]

70. 점상편(占相篇)[여기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큰 가르침은 사(私)가 없고 지극한 덕은 감응이 같다. 그러나 범정(凡情)은 인연이 멀고 조화(造化)는 형상을 다르게 하며, 마음과 경계는 서로 돕고 괴로움과 즐거움은 그 과보가 다르다. 마치 납인(蠟印)으로 진흙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아서 도장의 글이 나타날 때는 그 상(相)을 점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과 축생에 있음으로써 메아리를 달리하게 하고, 호(胡)와 한(漢)에 있음으로써 얼굴을 달리하게 한다. 그러므로 귀(貴)와 천(賤)에는 어두움과 밝음의 구별이 있고, 범부와 성인에는 맑음과 탁함의 다름이 있다.

(2) 인증부(引證部)
『정견경(正見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부처님의 회중에 정견(正見)이라는 비구가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법복을 입고 다음과 같은 의심이 생겼다.
‘부처님 말씀에 사람은 후세에 난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도 모두에게 후세의 일을 알려 주지 않는다 하셨으니, 어떻게 그런 줄을 아시는가?’
이 의심을 말하기 전에 부처님께서는 미리 그 생각을 아시고 여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나무와 같다. 나무는 본래 하나의 씨알인데 그것을 심으면 4대(大)가 고루 그것을 길러 그것은 커진다. 즉 싹과 잎ㆍ줄기ㆍ마디 등으로 자꾸 변해 드디어 큰 나무가 된다. 나무는 다시 열매를 맺고 열매는 다시 나무가 된다. 이리하여 세월이 갈수록 무수한 나무가 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그 꽃과 열매ㆍ줄기ㆍ마디 등을 삼가 모으면 다시 본래의 씨가 되겠는가?’
제자들은 아뢰었다.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변해 날로 썩어져 씨는 다시 생깁니다. 이렇게 끝없이 변해 자꾸 바꿔 나가면 끝내는 썩고 말 것이므로 그 본래의 씨가 다시는 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생사도 이와 같다. 그것은 본래 우치(무명)에서 생겨 자꾸 변하고 모여 12인연이 된다. 식신(識神)이 변해 행(行)을 따라가다가 다시 부모를 만나 또 몸을 받으면 옛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돌아가 알리지 못하느니라.
또 비유하면 대장장이[冶家]와 같다. 그는 돌을 녹여 쇠를 만들고 쇠를 불러 그릇을 만드는데, 그렇다면 그 이루어진 그릇이 도로 돌이 될 수 있겠는가?’
정견은 답하였다.
‘참으로 쇠가 된 것은 다시 돌이 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식신이 옮겨 가서 중음(中陰)에 머물러 있는 것은 마치 돌이 쇠로 변한 것처럼 다른 몸으로 바꿔 받는 것이요, 또 마치 쇠가 그릇이 되어 형상이 사라지고 몸이 바뀌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식신이 사람의 몸을 받으면 다시 부모가 있게 되고, 이미 부모가 있으면 곧 6폐(閉)가 있게 되느니라. 즉 첫째는 중음에 머물러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고, 둘째는 받는 바 몸을 따라 태 안에 있는 것이며, 셋째는 처음 날 때 너무 고통스러워 과거의 식상(識想)을 잊어버리는 것이고, 넷째는 처음 나서 땅에 떨어지기 때문에 분별하던 생각이 없어지고 새로 본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며, 다섯째는 이미 나서는 먹는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에 분별하는 생각이 끊어지는 것이고, 여섯째는 처음 나서 날로 자랄 때 새 것을 익혀 옛 분별이 없어지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식신은 선악의 업을 지음에 따라 임종 때에는 행을 따라가되 그 보는 것이 옛 몸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식신으로 돌아오지 못하므로 서로 알리지 못하느니라. 도의 뜻이 없고 깨끗한 눈이 없이 몸이 죽으면 식신이 떠나고 행을 따라 변화하여 자꾸 다른 몸을 받거늘 어떻게 알릴 수 있겠는가? 비유하면 그믐밤과 같다. 오색 물건을 어두움 속에 두면 천만의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지만 만일 누가 횃불로 비추면 그 오색을 다 분별할 수 있느니라.
또 마치 어리석은 사람은 악도(惡道)의 어두움에 가려 오며 가며 서로 알리는 혜안(慧眼)을 얻지 못한 것과 같고, 또 마치 그믐밤에는 오색을 보려 해도 끝내 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나 만일 계를 닦아 그 뜻을 잘 껴잡으면, 마치 횃불을 든 사람이 오색을 분별하는 것과 같으니라. 또 마치 손이 없이 글을 쓰고자 하고 눈이 없이 물건을 보고자 하며 어두운 밤에 바늘을 꿰려 하고 물 속에서 불을 구해도 마침내 될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너희 제자들은 부지런히 계를 닦고 그 생사에 본래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돌아가는가를 깊이 생각하여 깨끗함을 얻고 번뇌를 없애면 그 의심은 저절로 풀릴 것이다.’
정견 비구는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봉행했다.”
『아육왕태자법익괴목인연경(阿育王太子法益壞目因緣經)』에서 말하였다.

6도(道)에 각각 그 상(相)이 있다.

제1. 지옥상(地獄相)

사람의 근원이
생사에 유랑(流浪)할 때
떠돌고 달리면서
5취(趣)에 떨어진다.

저기서 죽어 여기 나는 것
그 모두가 인연 있나니
사람들의 갖가지 모양
나는 지금 너희에게 말하리.

걸음걸이가 비틀거리면서도
스스로는 그것 알지 못하고
눈이 부신 듯 바라보면서
늘 좋아하고 잊음 많으며

그 거동이 못내 경솔하고
넓은 들판으로 떠돌아다니면
이런 사람은 바로 저
활(活)지옥에서 온 사람이다.

사지 뼈마디가 아프고
잠자다 놀라 깨며
자나 깨나 흉악하면
흑승(黑縄)지옥에서 온 사람이다.

머리털이 거칠고 눈길 사납고
이빨이 길고 성을 잘 내며
소리가 탁하고 사나우면
합회(合會)지옥에서 온 사람이다.

그 말소리가 높고도 크며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부름을 듣기 좋아하면서
참과 거짓을 알지 못하며

누워 자면서 신음하고
꿈 꾸다 자주 놀라 부르면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제곡(啼哭)지옥에서 온 것이다.

슬피 울기 늘 좋아하고
높은 데 올라 멀리 바라며
집 사람과 싸우기 좋아하고
친한 이도 성긴 이도 없으며

말을 하면 곧 성을 내어
하룻밤 동안 먹지 않으면
이 사람은 본래 저
대제곡(大啼哭)지옥에서 온 것이다.

몸은 크고 다리는 가늘며
근력은 몹시 약하며
말은 목이 메인 듯하고
소리는 깨어진 독과 같으며

정신이 안정되지 않고
효순하는 마음이 없으면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아비(阿鼻)지옥에서 온 것이다.
온몸이 누추하고
추위에 떨어 늘 괴로워하며
뜨겁거나 마른 것 좋아하고
인색하고 탐하고 또 질투하며

남이 보시하는 것 보고
스스로 번뇌를 일으키면
이런 사람은 바로 저
열(熱)지옥에서 온 것이다.

불을 보고는 몹시 놀라면서
따뜻하고 뜨거움 좋아하며
걸음걸이가 아주 가볍고
시의(時宜)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보시하고는 곧 후회하면서
그래도 또 보시하려 하면
이런 사람은 바로 저
대열(大熱)지옥에서 온 것이다.

눈이 작고 성내기 좋아하며
받은 일들을 잘 잊으며

그 소견이 짧고 좁으며
넓고 큰 마음 없으며

큰 것을 보고는 두려워하고
작은 것을 보고는 기뻐하면
이런 사람은 바로 저
우발(優鉢)지옥에서 온 것이다.
붉은 눈에 얼굴은 추하고
언제나 싸우기 좋아하며
선인과 현인 그리고 또
도를 얻은 사람 비방하며

밤낮으로 모든 사람의
비법의 행을 엿보면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발두(鉢頭)지옥에서 온 것이다.

눈을 삼각(三角)으로 뜨고
양친에게 효도하지 않으며
나서는 일찍 죽으면
구모(拘牟)지옥에서 온 사람이다.

칼을 차기 좋아하면
억지로 싸움을 걸다가
반드시 남에게 죽으리니
빈지(邠持)지옥에서 온 사람이다.

몸에는 부스럼이 생기고
입에서는 악취가 나며
사람과 더불어 친하지 않으면
광(曠)지옥에서 온 사람이다.

그 몸은 장대한데
걸음걸이는 허약하며
머리털이 적고 피부는 얇으며
항상 병이 많아 앓으며
사람을 보면 성을 내고
탐식하고도 염증 없으면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염(焰)지옥에서 온 것이다.

몸은 희고 눈은 푸르며
말할 때 거품 흘리며
말에는 끝도 처음도 없고
흙장난하기를 좋아하며

깊은 진흙탕을 보고는
그 위에 가서 번듯 누우면
이런 사람은 바로 저
회(灰)지옥에서 온 것이다.

굽은 머리에 노란 눈이어서
사람들에게 밉게 보이며
일에 다다라 두려워하면
검수(劍樹)지옥에서 온 사람이다.

손에는 언제나 칼 들고 있으면서
싸움이란 말 들으면 기뻐하며
끝내 칼에 맞아 죽으면
칼[刀]지옥에서 온 사람이다.

몸은 검고 목은 메이고
어두운 방에 있기를 좋아하며
언제고 욕설을 일삼으면
뜨거운 재[熱灰]지옥에서 온 사람이다.
힘은 약하고 기운이 적어
몸이 항상 자유롭지 못하고
얻고 잃음의 그 마땅함이
하나도 자기 때문이 아니며

비록 짐승을 죽이는 것 보더라도
그 곁을 끝내 떠나지 않으면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박(剝)지옥에서 온 것이다.

성내고 기뻐함이 항상하지 않아
이내 곧 후회할 줄도 알고
때로는 잘 사과하고도
그 마음 하루도 넘기지 못하며

그 마음을 몹시 꾸짖기를
마치 큰 벌을 받는 듯하면
이런 사람은 바로 저

국(麴)지옥에서 온 것이다.

불쾌한 냄새나는 곳 좋아하고
더러운 음식 먹기를 좋아하며
그 입은 옷이 추하고 더러우면
시(屎)지옥에서 온 사람이다.

얼굴빛이 추악하고
입에 더러운 냄새나며
모함 좋아하고 남과 싸우면
선향(善香)지옥에서 온 사람이다.
부디 이런 모양들이
온 곳을 잘 관찰하여
그것을 알고 멀리 버리되
마치 겁화(劫火)를 피하듯 하라.

지옥의 상은
대충 말해 이상과 같다.

제2. 축생상(畜生相)

다음에는 축생들의
특이한 상 말하리니
부디 잘 생각하여
그런 인연 짓지 말라.

그 말이 조용하고
성을 내지 않으며
어른에게 공경하면
그는 코끼리에서 왔다.

몸이 크고 냄새나며
추위 더위 잘 견디고
까닭 없이 성 잘 내면
그는 낙타에서 왔다.

멀리 가고 잘 먹으며
험난한 곳 안 피하고
기억력 있고 진실을 알면
그는 말에서 왔다.

은혜롭고 관인(寬仁)하며
추위 더위 잘 견디며
행한 일 기억 않으면
그는 소에서 왔다.

큰 소리로 부끄럼 없고
애정이 과다하며
시비 분별 아니 하면
그는 나귀에서 왔다.

어른도 아이도 겁을 안 내고
항상 살코기 탐해 먹으며
어떤 일도 어려워 않으면
그는 사자에서 왔다.

키는 크고 눈은 둥글고
넓은 들을 쏘다니며
처자를 미워하면
그는 호랑이에서 왔다.

긴 털에 눈은 작고
성내는 마음 적고
한 곳만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는 새에서 왔다.

되풀이하는 성질 없고
해충을 잘 죽이며
무덤터를 혼자 즐기면
그는 여우에서 왔다.

소리 적고 사나우며
음탕한 욕심 없고
처자 사랑 아니하면
그는 이리에서 왔다.

고운 옷 좋아 않고
간사한 것 잘 잡으며
잠이 적고 성 많으면
그는 개에서 왔다.

작은 키에 털이 길며
많이 먹고 잠 잘 자고
깨끗한 곳 싫어하면

그는 돼지에서 왔다.

털이 누르고 성질이 급하며
혼자 산을 즐거워하고
과일과 꽃을 즐겨 먹으면
그는 원숭이에서 왔다.

잊음이 많고 뻔뻔스럽고
아무 어려워하는 것 없고
한 일을 되풀이하면
그는 까마귀에서 왔다.

마음에 색욕이 많고
적당한 의리가 적으며
마음에 기억하는 일 없으면
그는 비둘기에서 왔다.

그 행동이 매우 사납고
억지 주장하고 참고 견디며
부모에게 효도 않으면
그는 바다 가마우지에서 왔다.

법도 알지 못하면서
또 그른 것도 모르며
언제나 미련하면
그는 염소에서 왔다.

망령스런 말하기 좋아하고
세도가들과 자주 친하며
여러 사람의 사랑 받으면
그는 앵무새에서 왔다.

그 행동이 갑작스럽고
대중 속에 있기를 좋아하며
그 말이 수다스러우면
그는 구욕새에서 왔다.

걸음걸이가 조용하고
마음에 정한 법이 있으며
생물을 많이 해치면
그는 두루미에서 왔다.

몸이 작고 음욕을 좋아하고
그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며
색(色)을 보고는 거기 빠지면
그는 참새에서 왔다.

눈은 붉고 이빨 짧으며
말하면 곧 거품 토하고
누우면서 곧 몸을 감으면
그는 살무사에서 왔다.

말해 주면 성을 내고
찾아온 뜻을 안 살피며
입에서 화독(火毒) 내면
그는 짐새에서 왔다.

혼자 있으면서 먹이 탐하고
그 소리는 속삭이듯 낮으며
밤에 잠이 적으면
그는 고양이에서 왔다.

담을 뚫어 몰래 훔치고
재물 탐하나 겁이 많으며
친한 이도 성긴 이도 없으면
그는 쥐에서 왔다.

그 상모를 보아
축생에서 왔는가 잘 살피라.

제3. 아귀상(餓鬼相)
키가 크고 겁이 많고
털로 몸을 싸며
그 옷이 더러우면
그는 아귀에서 왔다.

음탕하고 질투 많아
남의 소득 미워하며
보시하기 싫어하면
그는 아귀에서 왔다.

부모에게 효도 않고

집 안의 노소 간에
뻔질나게 잘 싸우면
그는 아귀에서 왔다.

지성스런 행동이나
지향하는 곳 믿지 않고
약하고 무지하면
그는 아귀에서 왔다.

그 음성이 껄끄럽고
갑자기 성을 내며
뜨거운 음식 좋아하면
그는 아귀에서 왔다.

재물이 항상 모자라서
가난하고 궁핍하여
지자(智者)의 비웃음 받으면
그는 아귀에서 왔다.
가문이 부처 안 믿고
법 듣기 좋아하지 않아
하늘 길을 아주 끊으면
그는 아귀에서 왔다.

아내와 자식들과
형제 자매 사랑 않고
남의 미움을 받으면
그는 아귀에서 왔다.

나자 곧 고단하여
돌볼 사람 아무 없어
왔던 데로 되돌아가
과거 인연 안 떠나며

그 마음이 편협하고
좋은 꾸밈 싫어하여
행동이 추루하면
그는 아귀에서 왔다.

하는 일에 얻음 없고
하는 일만 번잡하며
남에게 쫓아냄 당하면
그는 아귀에서 왔다.

어떤 일엔 즐겨 지면서
그 까닭 캐지 않고
남의 충고 안 받으면
그는 아귀에서 왔다.
고요한 곳 좋아하지 않고
더러운 데 즐겨 살며
그 얼굴 추루하면
그는 풍신(風神)에서 왔다.

몸 큰 것 좋아하고
탐하여 고기 먹고
혼자 제사 좋아하면
그는 열차(閱叉:夜叉)에서 왔다.

성 잘 내고 잘 싸우며
보는 물건 탐착하며
두려워함 없으면
그는 열차에서 왔다.

누구 보면 털 세우고
바로 가서 응시하되
무엇 잃은 듯이 하면
그는 나찰(羅刹)에서 왔다.

몸은 좁고 피부 얇고
얼굴빛 온화하며
음악 듣고 기뻐하면
그는 건달바에서 왔다.

간편함을 좋아하고
그 몸에 향 바르고
온갖 기술 다 부리면
그는 건달바에서 왔다.
노래ㆍ춤 좋아하고
남녀의 모심[侍] 받고
말하고 나서 웃으면
그는 긴나라에서 왔다.

성정이 부드럽고
시절을 환히 알며

번뇌를 잘 끊으면
그는 긴나라에서 왔다.

이상이 아귀상과
열차ㆍ나찰ㆍ긴나라 상이다.

제4. 아수라상(阿修羅相)

둥근 눈, 모난 얼굴
금빛 몸과 머리털
온갖 기술 갖췄으면
그는 아수라에서 왔다.

바로 앞의 땅을 보고
어려워함이 없고
원수 만나 곧 때리면
그는 아수라에서 왔다.

이상이 아수라의
그 대강 모양이다.

제5. 인상(人相)

가서 날 곳을 알고
굳게 가져 잊지 않고
할 일을 밝게 알면
그는 인도(人道)에서 왔다.

온갖 거짓 모두 알아
스스로 그 일 하지 않고
하는 일이 평등하면
그는 인도에서 왔다.

좋거나 나쁜 말을
조금도 잊지 않고
온갖 거짓 안 믿으면
그는 인도에서 왔다.

탐심ㆍ음욕ㆍ인색ㆍ질투
집착 끝내 못 버리고
지방 풍속 모두 알면
그는 인도에서 왔다.

믿음으로 보시하고
법과 비법 모두 알며
마음이 편협하지 않으면
그는 인도에서 왔다.

때를 놓치지도 않고
게으름도 안 피우며
성현을 공경하면
그는 인도에서 왔다.

계 지키고 많이 들은
사문을 볼 때에는
겸허하여 잘 섬기면
그는 인도에서 왔다.

부처님과 바른 법과
여러 스님 잘 섬기며
때를 따라 법 들으면
그는 인도에서 왔다.

법 들으면 잘 알고
악 들으면 하지 않고
열반 빨리 증득하면
그는 인도에서 왔다.

이상이 인도의 상,
대략 말해 이러하다.

제6. 천상(天相)

수미산을 의지하여
다섯 종류의 하늘 있고
본래 지은 인연 따라

그들 상이 같지 않다.

가는 허리, 굵은 다리
늘 기쁘게 잘 웃으면
지자(智者)는 관찰하라.
그는 곡천(曲天)에서 왔다.

미묘함을 좋아하고
재물은 항상 적고
싸움 보고 겁을 내면
그는 시천(尸天)에서 왔다.

키가 크고 몸이 희며
얼굴빛이 아름답고
불빛 보기 싫어하면
그는 바천(婆天)에서 왔다.

마음 항상 즐거우며
남에게서 욕 들어도
수치로 안 느끼면
그는 낙천(樂天)에서 왔다.

생각하고 고통 참고
이치를 잘 분별하며
부모에게 효도하면
그는 비사천(毘沙天)에서 왔다.

전생에도 집을 안 좋아하고
숲 속에서 기꺼이 노닐면서도
언제나 여색(女色)을 생각하면
그는 저 삼천(三天)에서 왔다.
비록 재산도 적거니와
비천한 집에 났더라도
청정함을 좋아하면
그는 삼천에서 왔다.

제게 맞게 행동하고
하는 일이 안 급하며
희망 소원 다 없으면
그는 염천(炎天)에서 왔다.

남과 간음 좋아하고
제 아내를 안 지키며
귀신 부림 다 받으면
그는 타화천(他化天)에서 왔다.

부모님을 잘 섬기고
항상 이치 본받으며
남의 잘못 모두 맡으면
그는 도솔천(兜率天)에서 왔다.

도 구함도 아니면서
아끼는 마음 없고
가정살이[在家] 싫어하면
그는 범천(梵天)에서 왔다.

소원과 그 성질이
항상 잠자기 좋아하고
또한 법도 잘 모르면
그는 무상천(無想天)에서 왔다.
이런 6취(趣) 중생들은
모두 다 그 근본 없어
성질과 행이 같지 않고
지조(志操) 또한 각기 다르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선과 악은 서로 맞서나
범부와 성인은 도에는 합하며
5음(陰)은 비록 같으나
6도(道)는 법에 어긋난다.

자세히 알고 잘 관찰하여
각각 그 과거의 업을 알고는
악은 끊고 선을 닦아야
비로소 그것을 막을 수 있다.

감응연(感應緣)[대략 여섯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한(漢)의 황두랑(黃頭郞)
한(漢)의 주아부(周亞夫)
송(宋)의 유령(劉齡)
양(梁)의 사문 석염(釋琰)
양(梁)의 사문 석지장(釋智藏)
주(周)의 거사(居士) 장원(張元)

한(漢)의 황두랑(黃頭郞)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꿈에 하늘에 오르려 했으나 되지 않았다. 그 때 어떤 황두랑(黃頭郞)이 그를 밀어 주어 올라가 돌아보았더니 그의 옷 뒤에 구멍이 나 있었다. 문제는 꿈을 깬 뒤에 누대에 가서 황두랑 등통(鄧通)의 옷의 뒤가 뚫린 것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꿈에서 본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문제는 그를 매우 사랑하고 존경했다. 그런데 허부(許負)가 등통의 상을 보고 장차 굶어 죽으리라 하므로 문제는 곧 촉(蜀)의 동산(銅山)을 그에게 주어 그것으로 주전(鑄錢)하여 살아가게 했다. 그래서 그의 부(富)는 경사(京師)의 반을 차지했다.
문제가 종기를 앓았을 때 등통은 항상 그것을 빨아 주었다. 문제는 등통에게 물었다.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가?”
등통은 대답하였다.
“태자만큼 대왕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태자를 시켜 종기를 빨라 했으나 태자는 난색(難色)을 보였으므로 문제는 원한을 품었다.
그 뒤에 문제가 죽고 경제(景帝:태자)가 즉위했다. 경제는 사람을 시켜 등통이 제 마음대로 주전하는 것을 죄로 하여 그 재산을 전부 몰수했다. 그래서 등통은 끝내 굶어 죽었다.

한(漢)의 주아부(周亞夫)
한(漢)나라 주아부(周亞夫)는 강후(絳侯) 발(勃)의 둘째 아들이다. 처음에 허부(許負)가 그의 상을 보고 말하였다.
“당신은 3년 만에 제후가 되고 5년 만에 정승이 될 것이니 그 귀함은 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굶어 죽을 것입니다.”
아부는 한숨지으며 말하였다.
“아아, 나는 무슨 인연으로 그렇게 되는가? 이렇게 귀하게 되었는데 또 왜 굶어 죽는가?”
허부는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종리(從理)가 입으로 들어가면 굶어 죽는 법입니다.”
그 뒤 3년 만에 강후의 세자(世子)는 죄가 있어 쫓겨나고 아부가 그 후(侯)를 이어받았다. 그 뒤에 오(吳)ㆍ초(楚)를 쳐부수고 큰 공이 있었다 하여 정승이 되었다가, 충간(忠諫)이 너무 강직(强直)하다 하여 자주
경제(景帝)의 뜻을 거스렸다. 그리하여 옥에 갇혀 드디어 굶어 죽었다.[이상의 그 두 사람은 『한서(漢書)』에 나온다.]

송(宋)의 유령(劉齡)
송(宋)나라 유령(劉齡)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진릉(晋陵) 동로성(東路城) 마을에 살면서 불법을 깊이 받들어 그 집 안에 절 한 칸을 세우고는 때때로 재를 올렸다. 원가(元嘉) 9년(432) 3월 27일에 그 아버지가 병으로 갑자기 죽었다. 무축(巫祝)들은 모두 말하였다.
“장차 이 집에 세 사람이 또 죽을 것이다.”
그 이웃집에 도교를 믿는 위파(魏叵)라는 제주(祭酒)가 있어 항상 장부(章符)로 마을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 그는 유령에게 말하였다.
“당신 집에 화가 끊이지 않는 것은 오랑캐의 신(神:부처)을 받들기 때문이오. 그러나 만일 대도(大道)를 섬기면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요,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장차 일문(一門)이 다 망할 것이오.”
그래서 유령은 급히 제주(위파)를 맞이하고 불법을 받들지 않기로 했다.
위파는 말하였다.
“불상(佛像)을 태워 버려야 재앙이 제거될 것이오.”
드디어 절 문을 닫고 불을 지르니 치성한 불꽃이 여러 날을 끌었다. 그러나 탄 것은 오직 집뿐이요, 불상과 번기는 엄연히 그대로 있었으며, 또 불상이 밤중에 광명을 놓아 사방이 환했다. 그래서 20여 인의 제주들도 다 그 영험을 두려워해 가만히 그곳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러나 위파 등 스승과 제자들은 더더욱 의욕을 내어 그치지 않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황소 걸음으로 칼과 밧줄을 들고 말하였다.
“백성들을 해치는 부처는 중국에 있지 말고 오랑캐 나라로 돌아가라.”
유령은 그날 밤에 어떤 사람이 그를 때려 땅에 쓰러뜨리는 것 같았다. 집 사람들이 붙들어 일으켰으나 겨우 남은 숨결만 보일 뿐, 드디어 손발이 펴지지 않아 행동할 수 없었다. 그 때 위파 도사는 몸 안에 악창이 생겨 하루 두 되의 고름을 쏟아내다가 한 달 만에 죽고, 그 이외의 도사들도 다 나병에 걸렸다.
이 사실은 그 이웃에 살던 동안(東安) 태수(太守) 수구화(水丘和)가 동양(東陽) 무의(無疑)에게 전한 것으로서 그 때도 이것을 본 사람이 많았다.[이 한 사람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양(梁)의 사문 석염(釋琰)

양주(梁州) 초제사(招提寺)의 스님 염(琰)은 어려서 출가했다. 처음 사미로 있을 때 상을 잘 보는 어떤 관상쟁이가 염을 보고 말하였다.
“스님은 비록 크게 총명하고 지혜가 예리하나 수명이 짧아 열흘을 지내지 못하겠소.”
염은 이 말을 듣고 여러 대덕 스님들을 청해 의논했다.
“어떤 복을 지으면 수명을 늘릴 수 있겠습니까?”
대덕 스님은 말하였다.
“부처님 말씀에 『금강반야경』을 수지하면 공덕이 가장 크다 하셨으니, 만일 그 경을 잘 수지하면 반드시 수명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염이 결심하고 산에 들어가 몸과 마음으로 반야경을 수지하는 동안 어느새 5년이나 더 살았다. 뒤에 산을 나와 관상쟁이를 만났다. 관상쟁이는 놀라고 괴상히 여겨 물었다.
“그 동안 어떤 공덕을 닦아 이처럼 수명이 연장되었는가?”
염은 그 동안의 사정을 다 이야기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관상쟁이는 감탄하면서 기뻐했다. 염은 그 뒤에 학문이 더욱 깊어지고 경론을 널리 펴면서 불법을 바로 잡고 연구하여 대덕 주지가 되었다. 그리고 나이 90이 넘어 본사에서 죽었다.

양(梁)의 사문 석지장(釋智藏)
양(梁)나라 종산(鍾山) 개선사(開仙寺)의 스님 지장(智藏)은 성은 고(顧)씨이며 오군(吳郡)의 오인(吳人)이다.
그 때 상을 잘 보는 어떤 노파는 사람의 길흉을 예언하여 백에 하나도 실수가 없었다. 이 노파는 지장의 상을 보고 말하였다.
“법사님은 총명과 변재가 세상에 뛰어나 이름이 천하에 퍼지겠지만 다만 한스럽게도 것은 수명이 짧아 31세를 넘기지 못하겠습니다.”
그 때 지장은 이미 29세였다. 지장은 이 말을 듣고 이에 강설을 쉬고 정성을 다해 수도하려고 큰 서원을 내어 절 밖을 나가지 않았다. 드디어 장경 중에서 『금강반야경』을 수지 독송하면서 일생 그것을 받들었다. 그 액년(厄年)인 31세 때, 그 해도 저물어 향물에 목욕하고 깨끗한 방에서 경을 외우면서 재액이 오기를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방
안에서 어떤 소리가 있었다.
“선남자야, 그대 나이 31세라, 그 과보는 기한이 다 되었다. 그러나 반야경의 힘으로 이미 갑절의 수명을 얻었다.”
그 뒤에 지장은 산에서 나와 시험삼아 관상쟁이를 찾았다. 관상쟁이는 깜짝 놀라 일어나면서 말하였다.
“어떻게 지금까지 세상에 살아 계십니까? 전에는 수명이 짧은 상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참으로 스님의 상을 볼 수 없습니다.”
지장은 물었다.
“그러면 지금 앞으로는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색상(色相)은 귀중한 법이니, 60여 년입니다.”
지장은 말하였다.
“50에 천명(天命)을 안다 했는데, 그 때까지 죽지 않겠거늘 하물며 그 이상이겠는가?”
그리고 그 동안의 사정을 다 이야기했다. 관상쟁이도 따라 기뻐하고 공경하면서 수명을 마칠 때를 확인했다.
이에 강동(江東)의 도인과 속인들은 다투어 이 경을 외워 많은 영험이 있었으며, 이 경으로 인해 감응이 통했던 것이다.
지장은 보통(普通) 3년(522) 9월 15일에 본사에서 죽었고, 나이는 65세였다.[이상 두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주(周)의 거사(居士) 장원(張元)
후주(後周) 때의 장원(張元)은 자는 효시(孝始)이며 하북(河北)의 만성(萬城) 사람이다. 나이 겨우 16세 때에 그 조부가 장님이 되었다. 그는 3년 동안 울고 지내면서 밤낮으로 조부의 복을 빌었다. 또 『약사경(藥師經)』의 “장님이 볼 수 있다”는 말을 읽고는, 드디어 일곱 명의 스님을 청하고 일곱 개의 등불을 켜고 7일 7야 동안 『약사경』을 읽으며 날마다 도를 행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사람의 스승을 괴롭히십니다. 장원은 사람의 손자로서 불효하여 조부를 장님이 되게 했습니다. 지금 이 등불을 법계에 두루 보시함으로써 조부는 눈이 밝아지고 장원이 대신하여 눈이 어두워지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한 지 7일 만인 그날 밤에 그는 꿈을 꾸었다. 즉 어떤 노인이 금빗치개로 조부의 눈을 치료하고는 장원에게 말하였다.
“걱정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라. 3일 뒤에는 조부의 눈이 반드시 나을 것이다.”
장원은 꿈속에서 못내 기뻐 날뛰다가 드디어 놀라 깨서 온 집 사람들에게 다 이야기했다. 3일 뒤에 조부의 눈은 과연 나았다.[이 사실은 『주사(周史)』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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