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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53 불교 등목보살소문삼매경(等目菩薩所問三昧經) 하권

by Kay/케이 202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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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등목보살소문삼매경(等目菩薩所問三昧經) 하권

 

등목보살소문삼매경 하권

서진 월지국삼장 축법호 한역

11. 분별신행대혜공품(分別身行大慧空品)

“또 족성자들이여, 보살 대사는 제 몸에서 그 몸을 다하여 환술과 같은 눈으로 보는 것은 법계를 따르고 보살의 선정이 일어나는 것도 또한 그 몸과 같으며 모든 털구멍의 그 낱낱의 털에서 법계를 나타내지만 보살이 들어 있는 정수도 환술의 법에 머무를 뿐이며, 또 그가 아는 모든 국토도 또한 저 법의 풍속과 같아서 모든 법을 앎으로써 곧 억 나유술의 무수한 국토를 알고 다시 얻음이 없는 얻음을 알며 불찰의 티끌 수 같은 모든 국토에서 부처님과 보살들에게 둘러싸여 청정하고 청정함이 다 갖추어졌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모두 다 용맹함과 현명한 행과 변재로서 크게 장엄하고 무량한 깨달음의 장식은 햇빛처럼 빛나며 온갖 보배는 매우 훌륭합니다.
그는 거기서 혹은 10겁ㆍ백 겁ㆍ천ㆍ백천 혹은 억 혹은 억천 나유술 혹은 무수ㆍ무한ㆍ무변ㆍ무제ㆍ극진(極盡)ㆍ무진의 수와 나아가 불찰의 티끌 수 같은 겁 수에 보살의 모든 행을 행하여 의지하는 자는 다함이 없습니다.
보살은 저기서 정수에 들어 여기서 깨어나고 여기서 정수에 들어 저기서 깨어납니다. 그는 모든 국토에 두루 들어가 거기서 중생을 교화시키고 중생 세계를 교화시켜 다 법계에 들어가 과거의 슬기를 밝게 깨닫게 하며 다시 처(處)를 나타내어 경법을 설명하여 갖춤이 없고 걸림이 없이 환히 알게 합니다.
법을 눈으로 분별해 자재하여 우뚝 뛰어나고 귀로 분별하여 무극으로 건너 이르며 코로 분별하는 것은 방편으로 쓰고 입으로 분별하여 다 밝게 깨달으며 몸으로 분별하여서 밝게 앎을 갖추고 마음으로 분별하여 슬기의 생각을 원만히 갖춥니다.
그는 이 슬기로 밝게 깨달으면 10억천의 총지(摠持)를 얻습니다. 어떤 것이 10억천인가? 법으로 모든 국토에 수순하여 10억천의 청정한 행을 이루고 10억천의 모든 신(神)에 수순함을 알아서 넓은 지혜의 행에 들어가며 10억천의 신통을 원만히 갖추고 10억천의 정의행(定意行)에 들어가며 10억천의 신족을 얻어 원만히 이루고 10억천의 힘을 이루어 더욱 늘리며 10억천의 진실한 성품을 원만히 갖추고 10억천의 의지하는 곳을 나타내며 10억천의 감동을 이루나니, 이것이 바로 그 10억천입니다.
또 보살은 10체(體)로 억천을 이루고 보살은 10행처(行處)로 억천을 원만히 갖추며 보살은 10장(藏)으로 평등한 억천을 초월하고 보살은 10행(行)으로 억천의 광명을 나타내며 보살은 10주(住)로 억천의 법을 연설하고 보살은 10원(願)으로 억천의 덕의 선행이 뛰어나며 보살은 10회과(悔過)로 억천의 덕을 닦는 행을 실답게 세우고 보살은 10명현(明顯)으로 억천의 청정한 행을 이루고 보살은 10향승(向勝)으로 억천을 이루어 스스로 밝게 나타나며 보살은 10설(說)로 억천의 밝게 비치는 덕을 얻고 보살은 열 가지 청정한 과(果)가 있어서 그것으로 억천의 청정함을 이루니, 이것을 보살 대사의 무수한 몸이 갖춘 행이라 하고 무수한 덕을 성취한다 하는데, 즉 나[我]가 없는 덕을 이루고 무수한 행을 이루며
생각함이 없는 덕을 닦고 한정이 없는 덕을 행하며 나가 없는 행을 이루고 덕이 없는 얻음과 다함이 없는 생각과 나가 없는 덕을 이룹니다.
보살은 이 행으로 모든 덕을 구족하고 평등한 행을 이루어 스스로 장엄하며 현예(顯豫)와 조화와 부드러움을 이루고 받들어 지니며 공양하여 덕이 더욱 증장되어 견줄 자가 없으며 용맹하고 씩씩해집니다. 그리하여 보살은 법에 자재함을 얻습니다.
보살은 이 선정에 의하여 동방, 나아가 10불찰의 무수(無數) 천 티끌 수 같은 여래 처소에 낱낱의 명자(名子)를 건립하되 그 낱낱 명자는 10불찰의 티끌 수와 같아서 그 한계를 생각할 자가 없으며 그 한 티끌을 나누어 무수 천 티끌 수 같은 불찰을 만들어 그 속에 두루 채우나 채웠음을 알지 못하고 또한 증감(增減)도 없습니다. 그 한 티끌을 알지 못하고 증감이 없는 것처럼, 티끌 수 같은 모든 불찰에서도 또한 그와 같으며, 동방에서 한 것과 같이 남방ㆍ서방ㆍ북방과 간방과 상ㆍ하방에 있어서도 그와 같으며 그 한 티끌을 쪼갠 것을 둘 수 있는 그 수도 또한 위와 같습니다. 보살은 이것을 세울 수도 있고 그 몸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그 보살은 모든 불찰의 청정한 곳에 그것을 두루 세워 두는데 그것은 여래의 몸이 무한하기 때문에 광명에서 자재함을 얻는 것이고 또한 생각함이 없기 때문에 감동을 얻어 두루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래의 귀가 연설함이 무량하고 여래의 코가 분별함이 무량하며 여래의 입으로 분별하여 평등을 나타내고 여래의 몸으로 매끄러움에 순행하며 여래의 마음이 나타내는 바는 한정할 수 없고 여래 정각의 앎과 생각함 또한 한량이 없습니다.
여래의 청정한 음성으로 설명하여
여래의 법륜을 두루 나타내되 되돌아옴이 없고 일체로 하여금 여래의 거룩한 대중의 무한한 수를 알게 하며 무한한 여래법의 깨달음으로 두루 인도하고 여래 공덕의 근본을 두루 일으켜 나타내며 여래의 선정에 들어가고 여래의 덕을 삼세에 무수히 닦고 여래가 일으키신 모든 법과 여래의 세우심과 음성의 설교를 나타내나니, 이것이 바로 그 열 가지입니다.
여래 국토를 세우심을 나타내고 부처님의 음성으로 모든 법의 비를 두루 내 그 음성을 모든 국토에 두루 들리게 하고 부처님의 정수를 널리 펴고 또 부처님의 거룩한 대중을 두루 선양하며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을 건립하고 모든 법이 다 요술과 같음을 연설하며 모든 법에 집착할 것이 없음을 설명하고 일체 법의 도량을 다 밝게 드러내며 여래의 온갖 덕행을 모두 나타내나니, 이것이 그 열 가지입니다.
모든 선정이 환술과 같다고 수순해 인도하고 마음이 환술과 같음을 세우며 걸림이 없음을 아는 보살은 법계에서 모두 자재하여 곧 보살이라고 세울 뿐입니다.
저 모든 부처 세존께서는 갖가지 심의(心意)에서 낱낱 이름으로 무수한 불국토와 무수 천 티끌 수 같은 여래를 나타내고 그 낱낱 이름은 티끌 수와 같으며 낱낱 티끌로 10불찰을 세우되 9수까지의 티끌 수 같은 불찰에는 증감도 없고 취착(取着)함도 알 수도 없으니 이것이 보살이 건립하는 것입니다.
보살이 끝없는 수에 응하여 행을 닦는 것도 마음이 건립한 것이요, 집착함이 없는 행의(行意)로 건립하는 것이니 모든 법에 미혹이 없기 때문이요, 생각으로 건립함이니 모든 법을 슬기로 분별하기 때문이며 행으로 건립함이니
모든 법을 받는 곳이기 때문이요, 행으로 건립함이니 모든 법을 수순해 받들기 때문이며 깨달은 도로 건립함이니 법을 닦아 행하고 널리 전하기 때문이요, 또한 무수한 모든 정(情)을 건립하나니 신통을 건립하여 법의 작용과 방편의 슬기를 분별하기 때문이며 일어남이 없는 행을 하여 건립된 명료(明了)한 법계는 집착이 없기 때문이요, 슬기에 들어가는 행에 머물러 닦나니 무한한 슬기가 청정하기 때문이며 또한 등정각에 머무르나니 온 국토에 감동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이로써 모든 선정에 머무르기 때문에 10해(海)의 문을 채울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10해인가? 첫째는 부처의 바다를 채우나니 모든 바다를 즐겨 인도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법의 바다를 뛰어넘나니 슬기의 바다를 행하여 마쳤기 때문이며, 셋째는 모든 광명에 머무나니 정(情)에 집착이 없기 때문이요, 넷째는 슬기로 감동하나니 음성을 내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모든 유정의 바다를 생각하나니 방편의 슬기를 따르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마음의 바다를 환히 아나니 갖가지 관찰이 없이 무수한 마음을 알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행의 바다를 채우나니 원을 구족하기 때문이요, 여덟째는 일체 행과 원의 바다를 원만히 갖추기 때문이며[아홉째는 빠져 있음], 열째는 일체의 깨달음의 도[覺道]를 성취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보살은 일체 도덕의 바다를 성취하여 채우는 열 가지입니다.
보살은 10사(事)로써 가장 존귀함을 이루는데 어떤 것이 10사인가? 첫째는 가장 존귀함으로 일체를 즐겨 인도하고, 둘째는 최상을 구하여 중생을 교화시켜 인도하며, 셋째는 가장 존귀함을 구하여 모든 범행(梵行)에 바로 이르고 넷째는 최상의 힘을 이루어 완전히 얻기를 구하며, 다섯째는 일체 세상이 다하도록 짝이 없기를 구하고, 여섯째는 뛰어나는 자가 없기를 구하나니 악마에게 이기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밝게 통달하기를 구하나니 일체 악도를 제도하기 때문이요, 여덟째는 모든 생(生)에 의지함이 없기를 구하며,
아홉째는 모든 불법에 가장 으뜸이 되고, 열째는 자재하기를 구하여 모든 중생들을 용감하고 건실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최상의 열 가지 존법(尊法)입니다.
보살은 또 10사(事)로 중생 세계를 일으킵니다. 어떤 것이 10사인가? 첫째는 항상 출가하기를 뜻하나니 중생들을 제도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그 돌이킴이 없나니 가장 용감한 힘을 더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모든 부처님께 의지하기를 구하나니 행을 받아 행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무한한 힘이 있나니 모든 법에 나아가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고요한 선정의 힘이니 모든 법에 자재하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마음을 돌이킴이 없나니 인도하는 힘을 따르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이치에 자재하나니 본래 법의 힘이 없기 때문이요, 여덟째는 큰 슬기이니 법을 전함에 있어서 장애가 없는 힘 때문이며, 아홉째는 용맹스러운 힘이니 법이 세워졌기 때문이요, 열째는 분별하는 힘이니 무량한 슬기를 선포하기 때문으로서 이것이 그 열 가지 힘입니다.
또 열 가지 큰 용력(勇力)을 이루는데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가장 굳센 힘이요, 둘째는 그보다 뛰어남이 없는 힘이며, 셋째는 한량이 없는 힘이요, 넷째는 잘 닦는 힘이며 다섯째는 동요함이 없는 힘이요, 여섯째는 일으킬 수 없는 힘이며, 일곱째는 성냄이 없는 힘이요, 여덟째는 슬기가 항상하는 힘이며, 아홉째는 부지런히 세우는 힘이요, 열째는 큰 자비의 힘이니, 이것이 그 10력(力)입니다.
또 10력이 있는데 어떤 것인가? 첫째는 행을 고르고 닦는 힘이요, 둘째는 슬기가 청정한 힘이며, 셋째는 청정한 법을 초월하는 힘이요, 넷째는 법신의 힘이며, 다섯째는 모든 법토(法土)의 힘이요, 여섯째는 법이 밝게 빛나는 힘이며, 일곱째는 법정(法情)의 힘이요, 여덟째는 허물어짐이 없는 힘이며, 아홉째는 선행을 닦는 힘이요, 열째는 부지런히 닦아 들어가는 힘이니, 이것이 열 가지의 큰 힘입니다.

또 열 가지 힘이 있는데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대장부의 힘이요, 둘째는 바르고 용감한 힘이며, 셋째는 등정각이 세운 힘이요, 넷째는 전생에 닦은 근본되는 덕의 힘이며, 다섯째는 근본되는 무량한 덕에 상응하는 힘이요, 여섯째는 여래의 힘이며, 일곱째는 두루 응해 들어가는 힘이요, 여덟째는 삼세에 평등한 힘이며, 아홉째는 보살의 여여한 자리[地] 행을 얻는 힘이요, 열째는 보살의 믿음이 향하는 청정한 행을 얻는 힘이니, 이것이 그 10력입니다.
또 열 가지 힘이 있는데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윤회를 떠나는 힘이요, 둘째는 보살이 인연을 따르는 힘이며, 셋째는 보살이 성품에서 자재함을 얻는 힘이요, 넷째는 보살이 한 성품을 닦는 청정한 힘이며, 다섯째는 보살이 모든 덕의 근본을 닦아 모든 행을 따르는 힘이요, 여섯째는 보살이 법을 행하는 최상의 힘이며, 일곱째는 몸에 집착이 없는 힘이요, 여덟째는 보살이 이로써 이루는 힘이며, 아홉째는 보살이 방편의 슬기에 들어가는 힘이요, 열째는 보살이 모든 법이 본래 청정함을 믿고 향하는 힘이니, 이것이 그 10력입니다.
또 10력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10력인가? 첫째는 온 세상에 머무르되 깨끗하고 한가하여 있을 곳이 없는 힘 때문이요, 둘째는 모든 대중에서 짝이 없는 힘 때문이며, 셋째는 일체에 같음이 없는 힘 때문이요, 넷째는 모든 덕행으로 중생을 교화시킬 힘 때문이며, 다섯째는 생사에 있으면서도 흔들림이 없는 힘 때문이요, 여섯째는 모든 생사를 건너 청정함이 연꽃 같은 힘 때문이며, 일곱째는 모든 도(道)에 두루 나타나 모든 악마를 항복 받는 힘 때문이요, 여덟째는 악마의 무리를 길들여 대승을 이루는 힘 때문이며, 아홉째는 삼계를 교화시켜 처할 곳이 없는 힘 때문이요, 열째는 나아가기를 시방에 두루 권청하나 걸림이 없는 힘이기 때문이니, 이것이 그 10력인데 보살은 이 무수한 법으로
그 덕화(德化)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또 보살은 여러 가지 원을 충족시키는 행을 일으켜 밝게 빛내고 밝게 비추어 두루 응현(應現)하기를 다 성취하며 크게 증진한 슬기로 이로움을 이루고 그것을 널리 청정하게 합니다.
이것을 청정을 따르는 10정(定)이라 하여 그 온갖 덕이 한계가 없고 그 슬기도 걸림이 없습니다. 그 보살의 행도 한량이 없고 저 보살의 덕승(德乘) 또한 한량을 뛰어넘어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또 그 보살의 행하는 곳은 단정해 헤아리기 어렵고 그 보살의 들어간 곳 역시 측량할 수 없으며 저 보살이 일으키는 교화도 한계가 없습니다. 이 보살의 청정함도 불가사의하고 그 보살의 닦음도 다하기 어렵습니다. 또 그 보살의 어질고 거룩한 법도 다할 수 없어 얻기도 어렵고 그 한계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보살은 얻을 수 있고 그 보살로 인해서 일어날 수 있으며 모든 보살이 응현(應現)하는 행은 모든 보살이 다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보살이 밝게 깨달아 다다르는 곳과 또 보살이 환히 볼 것과 또 보살의 슬기의 밝음이 뛰어난 것과 또 알고 볼 수 있는 보살의 법이 행함과 또 보살행이 얻어야 할 것과 또 보살의 일체 법행(法行)과 슬기를 다 통달합니다. 이것을 10정이라 하여 이 큰 선정에 머무르는 자는 그 수가 없고 한계가 없으며 한량이 없고 끝이 없으며 다함이 없고 잴 수도 없으며 생각할 수도 없고 나[我]가 없음으로 얻는 것을 다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열 가지입니다.
보살은 이 선정의 정수로써 낱낱의 모든 행에 들어가 혹은 선정에 들고 혹은 깨어나면서 모든 선정의 행을 다 환히 알고 무수한 모든 선정을 환히 통달하며 또한 모든 선정을 원만히 갖춤을 압니다. 또한 선정의 증감을 알며 또 선정의 모든 환화(幻化)를 알고
선정이 보는 행을 환히 깨달으며 또한 선정으로 말미암는 행을 알고 또한 선정이 끝난 곳을 알며 선정의 고요함을 환히 알고 선정의 적막함을 알며 선정의 행을 압니다.
비유하면 무열용왕(無熱龍王) 못의 궁전에서 4대하(大河)가 흘러 나오는데, 거기 가득 차서 넘치는 물은 맑아서 아무런 흐림이나 더러움도 없고 청정하여 티가 없으며 그 맛은 달고 향기로우며 사방을 돌아 네 곳에서 흘러 나옵니다. 거기엔 네 개의 목구(目口)가 있어서 거기서 흘러 나오는데 첫째 목구의 물을 화수(和水)라 하고, 둘째 목구의 물을 발차수(拔叉水)라 하며, 셋째 목구의 물을 사미수(蛇未水)라 하고, 넷째 목구의 물을 항수(恒水)라 합니다. 화수는 북으로 흐르고 발차수는 남으로 흐르며 사미수는 동으로 흐르고 항수는 서로 흐르는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사방을 돌아서 그렇게 큰 바다를 채웁니다.
또 그 큰 강[大河]은 일곱 겹으로 도는데 이 강 사이에는 푸른 연꽃ㆍ붉은 연꽃ㆍ흰 연꽃ㆍ노란 연꽃 등이 있어 모든 천상의 정묘하고 밝고 깨끗한 온갖 보배의 빛으로 전전(轉展)해 비추면 선명하고 깨끗하여 전혀 더러움이 없습니다. 또한 사이사이가 분명하고 환하여 빛이 사무치고 잎은 각각 다르게 드러나 분명하여서 그림쟁이도 부드럽게 움직이는 빛을 그려낼 수 없습니다. 반짝거리며 내는 소리는 미묘하고 혜선(慧善)의 빛깔은 다하기 어려우며 무수한 색력(色力)은 천상의 문구로 음악을 두루 연주하고 잎들은 들쑥날쑥 어울리며 그 색 또한 뛰어나게 미묘하고 향기는 아름답고 이채로우며 고운 색은 아름답게 빛납니다. 갖가지 무수한 보배로 장식한 듯 무수한 여러 빛깔은 마치 해가 궁전을 나오면 그 빛이 사무치게 반짝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꽃들의 무성한 빛들이 서로 비추어 번쩍거림은 햇빛을 무색케 합니다. 그 모든 여러 가지 꽃들은 물 속에 피어 있어서, 하늘 사람들이 그 물에서 돌고 자맥질하기에 알맞으므로 그들은 그 꽃들 사이에서 노닙니다. 이 모든 꽃들은 위로 치솟고 밑으로 내리 숙여
묘한 빛깔이 휘황찬란하게 반짝거리고 온갖 보배 빛깔이 밝게 빛남은 햇빛이 천지[玄黃]를 굽어 비추는 그 빛의 정기를 막을 수 있으며 저 여러 꽃들의 움직임과 흐르는 물소리 같은 것들은 천상의 음악보다도 뛰어납니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네 가지 변재가 흘러 나와 넓은 슬기의 바다를 채웁니다. 마치 향대하(香大河)의 묘한 은빛이 말 입구[馬口]에서 나오면 그 밑에 다 은빛 모래가 있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청정한 슬기가 중생의 행을 수순하여 입에서 나오는 의순(依順)의 이치와 일체 여래의 행과 일체 이치의 행과 좋은 보시의 법과 모든 법에 대한 슬기의 밝음과 분별하여 다 깨닫는 걸림없는 슬기 등이 다 슬기의 바다로 돌아갑니다.
또 화수(和水)라는 큰 강의 금강 같은 빛깔이 사자 입구에서 흘러 나오면 그 밑의 모래도 다 금강빛인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법에서 나오는 광명이 부처 금강의 빛깔이어서 스스로 그것을 즐겨 쓰면서 온 세상을 비추면 금강의 슬기로 스스로 즐기면서 다함이 없는 바다를 다 채웁니다.
또 저 두 큰 강의 자마금색(紫磨金色)이 밝고 빛나면 그 모래도 자마금색인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그가 뱉어내는 변설이 입에서 나오면 모든 중생들이 그 슬기의 몸을 연모하면서 기뻐하고 일체 온 세상을 금강의 슬기로 두루 제도하며 그들이 항상 수순하게 인도함을 생각하는 인연으로 모두 슬기의 바다로 돌아갑니다.
또 발차(拔叉)라는 큰 강이 푸른 유리빛으로 소 입구에서 나와 정묘하고 밝은 깨끗한 빛깔로 흐르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다함 없이 명료한 변재로 걸림이 없는 법을 흘려내리면, 억 나유술 백천의 사나운 위세가 한 생각에서 비처럼 내려 법의 바다로 쏟아져 들어가
슬기의 바다를 채워 모든 불법 창고의 바다를 이룹니다.
또 저 하수의 눈이 사방을 둘러싸고 돌아서 큰 바다로 돌아가 그것을 채우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몸의 행을 따라 돌고 뜻의 행을 따라 돌며 몸과 입과 뜻을 따라 돌아 모두 갖춥니다.
또 저 4대하의 물이 다 바다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네 가지 장엄으로 넓은 슬기의 바다로 돌아갑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부처님을 봄으로써 장엄하는 것이고, 둘째는 부처님의 분별하는 지혜를 보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불법의 광명으로 장엄하는 것이고, 넷째는 모든 총지(摠持)를 받아 의혹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 장엄입니다.
또 다시 네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모든 도무극으로 장엄하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보살행으로 장엄하는 것이며, 셋째는 대비의 행으로 장엄하는 것이고, 넷째는 법륜의 행으로 모든 중생을 원만히 함으로써 장엄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입니다.
또 저 4대하가 일곱 겹으로 돌면서 파랑ㆍ빨강ㆍ노랑ㆍ하얀 꽃으로 장엄하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대승의 마음으로 그 동안에 제도하지 못한 자를 위해 설법하여 억 나유술 백천의 모든 선정 정수를 일으키어 널리 펴므로 부처님의 덕을 두루 보게 하며 삼세의 모든 불찰에서 그 청정한 행에 더러움이 없게 합니다.
마치 저 일어남이 없는 고요한 선정이 온갖 보배 나무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모든 국토의 장엄에 둘러싸여 정각을 이루고는 기쁨과 즐거움을 나타냅니다.
또 저 못물이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고 맑디 맑아 사무치게 밝은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나니, 저 보살은 도덕으로 마음을 제어하여 고요하고 맑아 밝게 사무쳐
무수한 덕의 근본을 원만히 갖춥니다.
또 저 무열지(無熱池)의 기슭이 온갖 보배로 되어 있어 안팎을 환히 비추고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나니 그 보살의 마음은 열 가지 보배 슬기로 억 나유술 백천의 행에 이르러 최상 원의 슬기를 이루어 두루 청정한 모든 덕의 근본을 환히 깨닫습니다.
또 저 무회(無廻)가 안팎이 맑게 트이고 그 밑에는 자마금빛의 모래가 있으며 온갖 보배로 장식한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사무치는 슬기를 이루고 생각이 없음으로 보살의 경계를 밝히며 보살의 모든 덕행으로 스스로를 장엄하고 모든 법에 걸림이 없으며 일체 부처 행에 처소가 없으며 일체의 행을 알고 시절을 밝게 압니다.
또 거기에 모든 용이 살고 있어도, 보살은 이와 같아서 일체 두려운 세상을 즐겨 다스리고 또한 다 밝게 드러내어 세상이 다하도록 그들을 모두 보호합니다.
또 저 흐르는 물이 4목(目)에서 나와 흘러흘러 모든 부처의 덕으로 돌아가서는 배를 나루에서 띄워 바다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네 가지 큰 슬기 강물로 모든 천(天)ㆍ범(梵)ㆍ악마의 세계와 온 세상의 사문ㆍ범지와 온 세상의 인류들을 두루 적셔 윤택하게 하고 배를 띄워 부처님의 최상의 슬기 바다로 돌아가서는 네 가지 힘으로 스스로를 장엄합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본원의 슬기로 일체의 온 세상을 두루 제도하고, 둘째는 끊임없는 슬기를 향하고 일체의 온 세상을 교화시켜 제도하며, 셋째는 모든 도무극의 슬기를 원만히 갖추고는 보살의 행에 의지해 청정함을 수순케 하고, 넷째는 일체 중생의 근본을 분명히 지니고 모든 생각을 환히 통달하고는 끊임이 없는 흐름에 돌아가 삼세 바다의 슬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그 네 가지로서 막히는 곳을 제거하나니,
이른바 보살의 선정과 슬기의 행입니다.
그리하여 다함이 없는 수의 모든 선정을 뭇 보배로 삼아 장엄하고 모든 부처님을 뵈옵고는 봄[見]이 없는 슬기의 흐름으로 모든 부처님의 바다로 돌아갑니다. 대비(大悲)의 지혜 행과 그 행에 또한 대자(大慈)가 있어서 일체를 수순하게 인도하되 돌아옴이 없이 그 극(極)을 일으키며 무수한 방편과 슬기로 10력(力)의 바다로 돌아갑니다.
또 저 4대하(大河)가 무열의 못에서 나와 다함이 없는 큰 바다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최상의 큰 원을 행하고 보살의 모든 행을 갖추며 일체 다함이 없는 큰 슬기의 온갖 행을 이루고 또한 다함 없이 항상 부처님을 뵈옵는 것으로써 즐거움을 삼습니다.
또 저 4대하가 돌아옴 없이 큰 바다로 돌아가되 훼손되거나 끊어짐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걸림없는 보살의 큰 원이 보현보살의 행원(行願)의 광명을 닦아 원만히 갖추고 넓은 슬기의 행과 모든 법을 깨닫는 도의 행에 들어가며 생각이 없음과 집착이 없음으로 여래의 행을 닦습니다.
또 저 4대하가 게으름이 없고 그치는 곳이 없이 겁수(劫數) 동안 흘러 바다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보현보살의 행을 닦고 무수한 겁 동안 보살행을 닦으면서도 게으름이 없어 모든 여래의 바다로 돌아감으로써 생각[想]이 없는 행으로 돌아갑니다.
저 돌아옴이 없는 대하는 온갖 보배로 밝음을 삼고 자마금의 모래로 비침을 삼으며 은모래로 환함을 삼아 햇빛이 내리 비치면 그 해의 광명을 다 빼앗고 광명이 이를 때에는 그 번쩍임이 햇빛보다 더하며 모든 지음이 아무 번거로움도 없습니다. 그 광명은 헤아려도 비유할 데가 없고 여러 가지 보배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보살도 이와 같아서 법신에서 자유를 얻고 선정을 건립했으며 그 몸의 낱낱 털구멍에서 한량이 없는 모든 부처 광명을 두루 내어 모든 국토를 다 보며 대중의 모인 장소를 알고 들어가서는 법을 듣고 다 받들어 지니며 여래의 무수한 몸의 행을 환히 깨닫고 저 모든 불국토를 밝게 통달하여 여래의 회장을 다 보고 그 설법을 듣되 얻음이 없는 얻음으로써 억 나유술 겁 동안의 긴 생각을 다 제거하고 또 짧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 몸의 터럭 수도 줄지 않으며 모든 국토에 있는 여래의 대중 모임 장소와 갖가지 인간 세계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인가? 법계에 들었기 때문이며 나[我]가 없는 미묘한 이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훼손함에 들지 않고 무수한 선정을 행하며 무수한 행을 닦고 모든 부처님 계시는 곳에 두루 나타나 무수한 부처님의 세우심을 받고 무수한 부처님의 감동을 받으며 보현보살의 행과 원에 널리 귀의하고 청정한 보살행과 여래의 10력(力)으로 걸림이 없으며 보현 보살의 행을 닦아 건립하고 원만히 갖추어 모든 감동을 통달하여 한계의 걸림이 없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한순간 마음이 정수에 들었다가 깨어나서는 극히 긴 시간을 지났음을 나타내되 들어간 행에 떨어지지 않고 일체 행에 집착하지 않나니, 그것은 있고 없음의 사이를 떠났기 때문이고 일체를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를 드러내어 일으킬 뿐입니다. 그러나 법계에서 국토가 있는 장소를 보지 않고 또한 그 한계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두 세계의 사이에도 머무르지 않으면서 넓은 지혜의 슬기를 닦아 들어갑니다. 그리하여 슬기에 살기를 즐기고 교만함이 없으며 중생들 속에 들어갈 줄 알고 모든 국토에서 청정하여 그 모든 국토의 행을 원만히 갖춥니다. 그들의 갖가지
생각을 모두 통달해 알고 생각이 있는 곳에 남을 멈추지 않고 갖가지 색상(色像)을 모두 초월해 다 알되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원만히 갖추어진 보살의 방편과 슬기는 영원히 청정하여 아무 생각이 없이 모든 행지(行地)를 두루 건립합니다.
비유하면 허공에 이르러서는 모든 취(趣)를 떠나기 때문에 모든 취에서 나아갈 취가 영원히 없는 것처럼, 보살의 국토의 행도 이와 같아서 모든 국토를 환히 알아 수행하여 중생을 제도하고 일체 중생이라는 생각을 아주 떠납니다. 일체의 법계를 환히 알아 일체의 법이라는 생각을 없앰으로써 모든 부처님을 싫증 없이 뵈옵고 모든 부처님을 의지해 우러러뵈옵고자 하며 모든 선정을 통달하고 방편의 행을 분별하며 모든 법이 본래 청정하므로 거기에 집착함이 없으며 다함이 없는 법구(法句)를 슬기와 무량한 변재로 글귀와 글자가 없음을 환히 알며 모든 음성의 행을 얻어 음성의 청정함을 알고 얻음이 없는 법의 세계에 이르러 갖가지 빛깔을 나타냅니다.
그는 경계를 수순하게 이끌어서 일체의 법이 본래 청정함을 궁구하여 알고 큰 자비로 일체 중생의 세계를 제도하며 인(因)도 없고 소인(所因)도 없어서 일체 세계가 본래 청정하여 머무르는 법계의 일어남이 없음을 압니다. 모든 취(趣)에 머무를 3장(場)이 없음을 알아서 청정하고 여래의 행을 통달하여 갖가지 법에 생각이 없으며 방편의 행과 갖가지 변설로 청정하게 설법하여 법의 행을 이루나니, 족성자들이여, 이것이 보살 대사가 법계에서 장엄을 얻어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12. 대권혜품(大權慧品)

“족성자들이여, 어떤 것이 모든 보살 대사의 열 번째 최상의 덕과 큰 선정과 권혜(權慧)의 행입니까? 족성자들이여, 보살에게 무진장(無盡藏)이라는 큰 선정이 있습니다. 이 선정의 정수에 드는 자는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머묾이 무진(無盡)하고 모든 불찰에 평등하게 머묾도 무진하며 중생을 제도하는 행도 무진하고 머물면서 중생을 인도함도 무진하며 광명을 놓음도 무진하고 광명의 그물을 놓음도 무진하며 모든 변화를 나타냄도 무진하고 뛰어난 법륜을 굴림도 무진하며 그 몸이 모든 국토에서 보살을 나타내고 부처님을 나타냄도 또한 무진합니다.
그 몸은 모든 부처님의 힘을 통달하고 그 몸은 모든 부처님의 슬기를 원하며 부처님이 일으키는 것처럼 행을 나타내고 모든 불찰에 부처님의 감동과 부처님의 소리와 두루 깨달음과 부처님의 거룩한 행과 부처님의 행을 초월함과 그 몸이 부처님의 한량(限量)을 뛰어넘음으로써 불사를 닦고 부처님의 행을 자재케 하나니 이것이 열 가지 최상 덕의 선정입니다.
또 이 선정에 머무르는 그 보살은 두루한 지혜[普智]를 관찰하고 두루한 지혜를 밝게 깨치며 두루한 지혜를 환히 압니다. 두루한 지혜를 통달함으로써 두루한 지혜를 분별하고 두루한 지혜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두루한 지혜를 판별함으로 두루한 지혜를 보고 두루한 지혜에 들어감으로써 두루한 지혜를 널리 밝히나니 이것이 바로 그 열 가지입니다.
또 그 보살은 보현보살의 행과 그 큰 보살의 마음과 큰 보살의 행과 그의 나타내는 행과 들어가고 나타내는 큰 세상과 그 나아감과 그 건립함과 그 큰 보살의 은택도 원하지 않고 또 그 큰 보살은 끊음도 없나니, 이것이 그 열 가지입니다.
또 열 가지 행이 있는데 즉 돌아옴이 없고 키움[長養]도 없으며 돌려줌도 없고 피로함도 없으며 생각함이 없어 나를 생각하지도 않으며 버리지도 않고 흔들림도 없으며 끊지도 않고 음성으로써 보살이라 하지 않나니, 이것이 그 열 가지 행입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저 보살은 모든 법에서 이루는 큰 원을 구족하고
모든 행에서 대도를 일으키며 불법의 큰 바다 가운데 가장 으뜸인 평등한 원을 잘 수학하고 보살행을 드러내며 권혜(權慧)와 방편의 밝음을 배웁니다. 또 보살의 환화(幻化)를 잘 배우고 일체의 음성을 잘 통달하여서 건립하고 과거 미래 현재와 모든 부처님의 일체 세상을 잘 건립함으로써 대비의 행을 얻으며 모든 행으로 불법의 업을 이루고 불법을 일으키되 걸림이 없으니, 이것이 열 가지 행입니다.
어째서인가?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여의보(如意寶)를 얻으면, 무엇이나 마음대로 건립하여 그 형상 그대로 광명이 나지마는, 그 여의보는 본래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여의보를 얻어 건립하면 슬기에 싫증이 없고 반복해서 두루한 지혜의 슬기를 밝게 깨치며 보현보살의 행에 게으름이 없습니다.
마치 저 여의보가 스스로 그 색상을 다 나타내지마는 여의보의 본체는 훼손되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두루한 지혜의 상을 이루지마는 그러나 그 행의 본체는 훼손되지 않습니다. 어째서인가? 그 보살이 뜻을 내어 일체를 위하기 때문이요, 일체를 제도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원을 내고는 모든 부처님의 행을 닦아 돌아옴이 없고 모든 부처를 깨끗이 하고자 하여 나태함이 없으며 일체를 맡았기 때문에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고 일체 무수한 법에 나라는 생각이 없으며 물러남도 없고 게으름도 없어서 일체 감동을 두루 나타냅니다. 중생을 청정하게 하기에 권태가 없고 온 세상을 이롭게 하기에 게으름이 없으며 세상을 두루 밝게 비추되 피로해서 물러남이 없고 무수한 모든 법의 환화(幻化) 속에 들어가 돌아옴이 없으며 마음은 물러남이 없나니, 이것이 그 열 가지입니다.
비유하면 홍황(紅黃)이 허공에 있되 머무는 곳이 없고 지니는 자 또한
권태로움을 일으키지 않으며 손상됨도 없고 일체의 뜻을 얻을 수도 없으며 처하지도 않고 또한 결박도 없으며 또한 보는 것도 없습니다. 중간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안을 보아도 있는 곳이 없고 본래의 깨끗함을 무너뜨릴 수 없는 것과 같나니, 어째서인가? 허공의 법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광대하고 다함이 없는 원을 닦아 행하기 때문에 피로함을 일으키지 않나니 큰 원을 내어서 중생을 두루 제도하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멸도(滅度)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누구이기에 멸도하여 삼세에 다함이 없고 지치는 법도 없으며 또한 두려워하지도 않고 돌아옴도 없는 것입니까? 어째서인가? 모든 법은 둘이 아닌데 별도로 돌아가는 자가 무엇 때문에 피로하겠습니까? 보살도 이와 같아서 온 세상의 중생들을 위해 세상에 나왔을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돌아왔습니까? 그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이고 비유하면 두루한 지혜[普知] 때문인 것처럼, 보살의 행도 이와 같아서 도에는 피로함이 없기 때문에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 있는 자는 부처의 갖가지 미래의 취(趣)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어째서인가? 저기에 두 가지 법이 없는데 무슨 피로함이 있겠으며, 모든 법은 요술과 같아서 들어감이 없기 때문에 위태로움도 없습니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그 몸을 닦아 두루한 지혜에 들어가나니 거기에 무슨 게으름이 있겠습니까?
그 보살은 그 광명으로 모든 방위에 두루 이르러 밝게 빛내고 모든 국토에 이르되 걸림이 없으며, 모든 빛깔의 무수한 갖가지 창고와 얻기 어려운 업과 다함이 없는 보배와 얻을 수 없는 향과 무량한 청정함으로 진동시키고 장엄하며 큰 우레와 같이 두루하게 하고, 또 교로(交露)로 그 빛깔을 장식하니 매우 아름답습니다. 묘한 보배로 창고를 꾸미고 온갖 보배로 장엄을 나타내며
또 각처에 비단 난간을 세워 그 사이에 있는 온갖 빛깔은 여래의 청정함으로 빛나게 꾸미고 모든 덕의 근본으로 그 밖의 광명을 이루나니, 이것은 여래의 길상(吉祥)의 접촉이요 모든 여래께서 나타내신 건립이니 이것이 그 열 가지입니다.
한 연꽃에 평등하게 머물러 얻음도 없고 한계도 없어서 시방이 다하도록 10덕(德)에 싫증 냄이 없나니 천의 청정함은 보살의 행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요, 두루한 지혜의 광명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입니다. 모든 불법의 광명으로 온 세상의 불을 다 끄며 세상의 경례를 받고 두루 나타나는 요술과 같은 법을 환히 알며 온 세상의 행에 대해 비유가 있기도 하고 비유가 없기도 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열 가지입니다.
또 그 보살이 앉은 곳에서 발로 가부를 틀면 그 가운데 가득한 연꽃은 빈 틈 없이 그 보살의 앉은 곳을 두루 다 채우는데, 이것은 다 그 위신의 소치로서, 모든 부처님을 위해 억 나유술 백천 티끌 수 같은 10무득(無得)의 불찰을 세우고 낱낱 털구멍에서 온갖 광명을 놓으며 낱낱 털구멍과 같이 눈도 또한 다 그러하면, 낱낱 광명의 눈에서 억 나유술 백천 티끌 수 같은 10무득의 불찰이 나타납니다. 또 명현장(明顯藏)이라는 마니보배가 있는데 그것은 무수한 다른 빛깔과 갖가지 장엄과 무수한 공덕이 모여서 된 것으로 보배 그물에 덮여 있습니다. 그것에 온갖 꽃을 섞어 장식하여 빛나게 하면 가장 존귀한 이가 머무르는 자리가 됩니다.
그런데 오직 이 선정으로만 행을 삼아 다른 행이 없으므로 행하여 만족함이 없고 마음에 방일하고 산란함이 없으며 오직 일념으로 이것을 지으려 생각하고 이렇게 행하되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으며 이를 짓되 걸림이 없고 이것을 지어서 수립(修立)하며 이 행을 지어 구경의 행을 짓습니다. 어째서인가? 보살은 끝내 다른[異] 행이 없고
보살은 또한 다른[他]행이 없으며 보살은 말과 행이 상응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인가? 비유하면 저 금강이 그 금강의 본체를 파괴할 수 없어 부서짐이 없고 마침내 그 본성을 잃지 않음을 찬탄하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이 모든 법으로 광명을 삼으므로 이 법이 머무르는 바를 넘거나 끊지 않습니다.
또 비유하면 저 자마금은 그 불꽃의 광명이 활활 타면서도 그 본체의 정명(精明)을 부수지 않는 것을 찬탄하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그 정명한 법으로 스스로 밝게 나타나되 선을 닦는 행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또 비유하면 저 해가 나타나 온 천하를 밝힌다고 해서 그 광명을 헐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온 세상을 두루 밝히지만 보살의 빛나는 덕은 헐지 않습니다.
또 비유하면 저 수미산이 4보(寶)에 싸여 아름답지만 그 가장 높은 것이 바다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그가 세상에 두루 나타남을 찬탄하지만 그 보살 덕의 근본은 세상에 나타나 멀리 떠나지 않습니다.
또 비유하면 대지의 미덕은 세상을 유지하되 그 유지하는 바의 근본을 잃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나타나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대비를 떠나지 않습니다.
또 비유하면 저 큰 바다의 미덕은 온갖 보배를 갖고 있으면서도 바닷물을 훼손치 않는 것에 있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모든 덕의 근본을 자랑함은 중생을 위한 무거운 짐을 버리지 않고 일체를 제도하는 데 있습니다.
또 비유하면 훈련하는 군사가 칼의 높고 낮음과 칼의 무겁고 가벼움을 익혀 다 알고는 그 형세를 따라 익힌 그대로 전장에 들어가면 그 익힘에 어려움이 없고 또한 실수도 없나니, 싸움의 슬기를 환히 알기 때문입니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모든 이러한 듯한 상[如此像]에서 모든 정문(定門)의 곳을 닦아 이것을 일으켜 나타내고 두루한 지혜의 슬기로 그 광명을 삼습니다.
또 비유하면 차가월(遮迦越)왕이 목숨을 마칠 때 쯤에서야 모든 인류가 다 구경(究竟)을 이루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이 상(像)의 큰 선정을 정수(正受)하여야 중생 세계를 성취하여 구경의 청정을 얻는 것입니다.
또 비유하면 5신통으로 자기와 남의 숙명을 보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보현보살의 행을 닦고 일으켜야 그 덕의 근본으로 중생 세계를 성취시키고 또한 청정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비유하면 큰 구름이 비를 내려 대지를 적시고 때를 맞추어 중생을 두루 이롭게 하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법의 구름을 일으켜 보살의 덕행을 두루 적시고 이 상(像)의 큰 선정을 정수(正受)함으로써 일체 중생을 끝까지 청정하게 합니다. 그리고 대중의 공경을 받으면서 길이 편안하고 길이 무극을 건너며 길이 온 세상을 제도하고 길이 온 세상을 기쁘게 하며 길이 일체의 의심을 잘라 끊고 길이 보시를 행하며 항상 와서 분명하게 성스러움을 받기를 구하며, 길이 보살들과 함께 두루 화동(和同)하고 수를 평등하게 나누어 물러나지 않는 법 바퀴를 세우며 길이 슬기로운 말을 이루어 잘 받아들이며 삼세의 중생들을 두루 위하여 그의 의지가 되고 길이 법을 위해 견고한 뜻과 넓은 지혜를 이루어 중생들과 다툼이 없습니다.
어째서인가? 보살이 이런 모든 법을 닦아 갖추어 부처님이 세우신 바를 위해 법문의 세계를 열고 생각도 없고 헤아림도 없어서, 보살의 모든 언행이 슬기의 선을 닦나니 두루한 지혜를 위하기 때문이요, 중생을 위해 선을 닦아 일체를 제도하기 때문이며, 서원으로 국토의 선을 닦기 때문이요, 법의 선을 닦아 건립하기 때문이며, 그 두려움이 없음을 닦아 겁냄이 없기 때문이요, 그 변재를 닦아서 선포하기 때문이며, 법을 닦아서 널리 연설하기 때문이요, 그 총지를 닦아서 법에 자재하기 때문이며, 모든 부처 자리를 닦아서 모든 부처님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큰 선정에 머무르면 이런 여러 가지 덕과 또 많은 것에 대해 얻음이 없고 다시 얻음이 없어서, 억 나유술 백천의 온갖 덕이 다 청정해집니다. 그리하여 이 큰 선정의 장(場)으로 위업의 빛을 나타내고 모든 위신을 받들어 자기 덕의 근본을 일으켜서 그 힘으로 슬기의 자리를 수순해 들어가며 모든 착한 벗을 힘으로 일으키어 나타내고 일체 악마의 일을 힘으로 굴리며 모든 평등한 행과 모든 덕의 근본의 힘으로 그 한 힘으로 모든 서원을 견고히 하며 갑옷을 입은 힘으로 그 심은 덕의 근본 그대로를 일으키고 다함이 없는 세상이 지나도록 온갖 복과 항복함이 없는 몸의 힘과 이 선정의 정수로 그 행에 열 가지 등상(等像)이 있게 되나니 그것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상입니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이른바 색상의 온갖 좋음[好]과 장엄한 몸으로 저 보살이 얻는 등상이요, 둘째는 저 보살이 광명 그물의 청정으로 얻는 등상이며, 셋째는 그 보살이 신족의 감동으로 온갖 곳에 화응(化應)하여 그 중생에 따라 제도할 자에게 나타내 보이는 등상이요, 넷째는 이 보살은 한량이 없는 몸과 한량이 없는 색상과 일체의 음성과 행에 상응하는 청정함이 다 등상이며, 다섯째는 이 보살은 모든 청정한 불토를 건립하는 덕과 저 중생들의 죄와 복을 따르는 행과 그것을 따라 두루 나타나는 등상이요, 여섯째는 이 보살은 일체 중생들의 하는 모든 일을 따라 덕의 힘으로 포섭하고 의혹이 없는 뜻으로 덕의 갑옷을 나타내는 등상이며, 일곱째는 이 보살은 무진한 변재로 중생을 따라 음성을 말하고
그가 아는 색(色)과 행을 따라 법륜을 굴리면서 나타나는 등상이요, 여덟째는 또 저 보살은 끊임없는 무외(無畏)로 사자후를 다해 일체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범(梵)의 음성으로 두루하는 등상이며, 아홉째는 또 저 보살은 들어가는 구절과 삼세의 쌓음과 명료한 신통도 다 등상이요, 열째는 또 저 보살은 부처님의 청정한 힘과 여래의 경계로 중생들을 위하여 모든 여래의 등상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것이 그 열 가지 등상입니다.”
그때 등목보살이 보현보살에게 말하였다.
“족성자여, 만일 그 보살이 이러한 상법(像法)으로 함께하는 자를 얻어 등상을 이룬다면 모든 여래에 있어서 어찌 부처가 아니겠으며, 어찌 10력(力)이 아니겠으며 어찌 두루한 지혜[普智]가 아니겠으며, 어찌 모든 법에 대한 등각(等覺)이 아니겠으며, 어찌 두루한 눈[普眼]이 아니겠으며, 어찌 모든 법에 대한 뛰어난 슬기가 아니겠으며, 어찌 감히 보현보살 서원의 행을 믿지 않겠으며, 어찌 온 법계가 보살이 일으킨 심제(審諦)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이 때에 보현보살이 등목보살에게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족성자여, 그렇습니다. 당신 말과 같습니다. 그 보살이 모든 여래의 등상을 나타낸다면 어찌 부처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족성자여, 모든 보살의 경우에 있어서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서 서원을 하였는데 다른 것을 위해 일으킨 일이 있었습니까? 그 슬기란 있지 않는 것인데 거기서 부처를 일으킴이 있을 수 있습니까? 모든 여래에게서 보살이 끊임없이 수행하여 일으킨 그 힘이 모든 여래께로 들어가기 위함이었습니까? 그 10력(力)이 피차(彼此)를 만듭니까? 또 그 힘이 모든 여래를 생각하는 것입니까?
또한 보현보살의 행에 머무르면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여 일으킨 것은 없습니다. 보살이 저 법계에서 연설한 바로 변제(邊際)에 들어가는 것을 두루한 지혜라 하고 저 모든 법의 설명과 갖가지 들어가는 것은 바깥의 권혜(權慧)일 뿐이며 또한 돌아옴이 없습니다.
또한 보살이라 함이 그 보살의 모든 법인은 평등한 행을 아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법이 깨달음이 있는 깨달음이라 한다면 저 보살은 둘에 두 행이 없고 모든 법의 권혜를 알아 모든 법의 도무극의 권혜에 들어가 돌아옴이 없습니다. 그를 일러 보살이라 합니다.
저 보살이 두루한 눈[普眼]의 경계를 위하여 두루한 문[普門]의 슬기를 안다면 그것이 색(色)에서 생겼다 하겠습니까, 보안의 언설이라 하겠습니까? 저 보살이 보안의 경계에서 슬기의 문을 안다면 그것이 색에서 생겼다 하겠습니까, 보안이라 하겠습니까? 저 보살이 보안의 경계의 행을 위하여 뜻이 행하는 바가 없이 마음이 일어나는 것처럼 일어나 증장하여 멀리 여의지 않는다면 그를 일러 보살이라 합니다.
저 보살과 같이 모든 법이 빛남으로써 밝게 나타날 때 만일 평등한 자리로 나타나고 걸림이 없는 슬기로 생각하여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면 그를 보살이라 합니다. 저 보살과 같이 모든 여래의 슬기 눈을 이루면 모든 법에서 정각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 보살과 같이 여래의 바른 깨달음의 슬기 눈을 이루어 생각하고 관찰하기 한량이 없으면 그를 보살이라 합니다.
그 보살과 같이 여래의 행을 행하여 일체의 여래가 둘이 아니라 하기 때문에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도 둘이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 그 보살과 같이 여래의 신통을 닦아 제가 스스로 세운 행에서 행하는 바가 없으면 그를 보살이라 합니다.
그 보살과 같이
온 세상에 머무르면서 쌓은 것을 슬기의 쌓음이라 합니다. 그 보살과 같이 본래의 쌓음에 머무르되 분별을 없애고 또한 본래의 쌓음도 구하지 않으며 허망한 있음[妄有]과 망령된 생각[妄想]이 없이 모든 법을 분별해 행하면 그를 보살이라 합니다. 그 보살과 같이 움직임도 움직이지 않음도 없고 생각함도 생각하지 않음도 없으면 이것을 곧 덕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라 합니다.
저 보살과 같이 일으킴을 원만히 갖추고 지음이 광대하여 청정하게 되며 또한 돌아옴이 없고 이리하여 끊임이 없으면 이것을 보현보살의 서원이라 합니다.
저 보살과 같이 보살은 법계에 대한 앎이 한량없는데 법에 본래 작용이 없어서 그 행이 한 모양인 줄 알고 모든 법에 상이 없으므로 저 보살이 법계에 머문다는 것은 망령된 생각 속의 보살이 유전하는 것임을 압니다. 저 보살과 같이 한량없이 법계를 환히 알아서 법계에 들어가고 모든 법의 각각 다른 상을 환히 알아서 그것이 상이 없음을 알아 권태를 일으키지 않고 무수 억겁에 이르러도 또한 물러나거나 게으르지 않으며, 대비의 마음으로 온 세상을 모두 구제하고 중생을 수순해 교화한다면 이 보살 대사를 보현보살이라 합니다.”

13. 열락용왕품(悅樂龍王品)

“족성자여, 비유하면 열락(悅樂)용왕이 사는 금산(金山) 앞의 7보장(寶藏)은 7보로 되어 있고 그 주위도 또한 7보로 되어 있으며 눈에 덮여 있습니다. 그 용왕은 온몸이 모두 하얗고 깨끗하여 눈빛과 같으며 금색으로 빛나는 것은 마치 금색의 그림으로 오묘한 흰빛을 장식해 덮은 것 같고 교로(交露)를 드리우고 온갖 보배로 된 청정한 그물로 그 위를 덮었습니다. 온갖 보배를 드리워 유소(旒蘇)를 만들고
7체(體)로 멈추어 서 있으니, 이것을 부드러움이 즐기는 것이라 하고 이 더러움이 없는 색상을 보는 이마다 싫증 내지 않으며 청정하여 흠집이 없나니, 이것을 조화로운 부드러움의 성품이라 합니다.
도리천에서 자재(自在)한 저 제석천왕이 조금만 생각을 내면, 저 금산 앞의 7보장은 거기서 곧 사라져 도리천의 제석천왕의 앞에 머무는데 그러면 제석천왕은 곧 열락용왕을 타고 그 용왕을 따라 하늘로 올라갑니다. 열락용왕은 그때에 여러 가지 변화를 나타내는데, 곧 33개의 머리를 나타내면 그 낱낱 머리에 각각 일곱 개의 어금니가 있고, 낱낱 어금니에는 일곱 개의 목욕 못이 있으며, 낱낱 목욕 못에는 7백 송이의 연꽃이 있고, 낱낱 연꽃에는 7백의 옥녀(玉女)가 있습니다. 모두 그 한 옥녀를 따라 모두 노래로 찬탄하는데 하늘의 예의처럼 정악[雅]과 같은 상음[商]으로 음악을 연주합니다.
제석천왕은 그 천당에서 이 코끼리를 타고 묘수원(妙樹園)으로 가서 마음껏 즐기고 뜻대로 노닙니다. 그때 제석천은 한 코끼리를 타고 동산에서 유희하다가 열락용왕을 따라 내려와서는 온갖 보배로 장식한 집으로 가서 여러 옥녀들과 함께 노래를 하고 음악을 울리면서 마음껏 좋아하고 서로 즐깁니다.
그때 열락용왕은 도리천에서 위신을 나투어 그 동산을 모두 한 코끼리의 몸으로 만들고 그 모든 옥녀로 하여금 둘러싸게 하여 서로 즐기며 기뻐하였다.
그때 열락용왕은 환락이 극에 이르자 여러 천인(天人)들과 어울려 다 함께 즐기니, 용왕의 위신으로 그 입는 옷이 천인들과 다름이 없고
모든 몸매와 색상의 신령한 빛남도 또한 다름이 없으며 또 장식과 입은 옷과 구부리고 펴며 앉고 일어남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열락용왕의 모든 것이 저 천인들과 다름이 없고 저 천인들 또한 모든 것이 열락용왕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열락용왕의 모든 것이 모든 천인들과 다 같고 천인들의 모든 것도 열락용왕과 다 같으며 도리천인들의 식기(食器)조차 열락 용왕의 것과 다 같았습니다.
열락용왕은 환화(幻化)를 나타내지 않고도 자금색 모습으로 7보장에 있는데, 천인이 이 무리로 변화해 모두 도리천에 이르러 제석천왕에게 기꺼이 공양한 까닭에 열락용왕도 공양한 것으로 천상의 음악은 스스로 울리고 도리천 대중의 가진 모든 것으로 대중을 교화하는 덕이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족성자여, 이와 같이 보살 대사는 보현보살의 행으로 서원을 닦아 세워, 보살의 선정이라는 온갖 보배로 장식하고 보살의 7체장(體藏)을 발로 삼아 서서는 온몸으로 온갖 불꽃 그물 광명을 놓고 법령(法玲)을 치며 법의 번기를 드러내어서 나라연의 몸을 화현(化現)하고 최상의 서원을 이루며 사자 걸음으로 모든 슬기를 굴리며 법의 비단을 정돈하고서 모든 창고에 머무릅니다. 모든 보살행에서 최상이 되는 행을 원만히 갖추어 서원을 이루고 불수(佛樹)에 나아가 서원을 수행하여 끊이지 않는 것은 두루한 지혜의 슬기를 이루기 위해서며 보현보살의 행원(行願)을 이루어 더욱 광대하게 닦는 것은 깨달음으로 깨닫기 위해서이며, 보살의 행원에서 돌아옴이 없고 나태함도 없으며 또 끊임도 없고
퇴전도 없이 무량한 대비를 더합니다. 대승의 서원으로 일체에 몸이 없음을 행하고 최상의 보현 교법으로 행하여 정진을 버리지 않는 것은 미래의 일체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입니다.
보현보살의 덕행을 끊지 않고 도를 이룰 때를 보지 않으며, 도는 얻고 얻지 않음이 없는 문이요, 얻음이 없는 얻음으로 법을 굴리는 문이며, 얻음이 없는 얻음으로 갖가지 성품을 행하는 문이요, 얻음이 없는 얻음으로 갖가지 중생이 모든 국토에 이르러 감동하게 하는 문입니다.
또 그는 얻음이 없는 얻음으로 모든 국토에 들어가 그 생(生)을 나타내고, 또한 보현의 행을 다 나타내며, 얻음이 없는 얻음으로 여래의 도수(道樹)에서 정각을 이루고, 얻음이 없는 얻음으로 모든 보살들에게 둘러싸여 다니며 얻음이 없는 얻음으로 여러 처소에 이르러 모든 국토에서 갖가지 신상을 나타냅니다. 그리하여 거기서 곧 정각을 이루고 잠깐 사이에 정각을 이루며 한 시간에 정각을 이루고 하루 동안에 정각을 이루며 한 달 동안에 정각을 이루고 여러 해나 무한이나 나아가 1겁에 이르는 때에도 얻음이 없는 얻음으로 정각을 이룹니다. 그리하여 여래의 발 아래 나아가 친견합니다.
이와 같이 여러 국토의 여래께 다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공경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면서 온갖 불사를 묻습니다. 그 모든 환술의 세계에 이익을 더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모든 보살의 무량한 청정한 행을 닦습니다. 또 얻음이 없는 얻음으로 보살행을 닦되 보살의 갖가지 감동과 갖가지 보살의 처소와 보살의 갖가지 슬기와 방등(方等)과 보살의 갖가지 미묘함과 보살의 갖가지 신족과 무량한 뜻과 보살이 가는 갖가지
처소와 보살의 갖가지 유희 감동과 보살의 갖가지 법을 닦아 그 밝게 나타냄과 보살의 갖가지 교화 등으로 보살의 원행을 두루 나타내 보이면서도 그 본래의 세계를 허물지 않습니다.
그 보현보살은 일체 중생들과 모든 유정들을 교화하고 얻음이 없는 얻음으로 수행이 청정하며 생사의 바퀴를 끊고 소리로 말을 듣되 청정하고, 여래의 귀로 모든 부처님이 불법을 일으킨 음성을 들으며 받아 행하되 모두 삼세를 뛰어넘어 둘이 없습니다. 모든 부처 종자를 다 생각하고 두루한 지혜 음성인 불법으로 모든 곳을 분별하되 곳이 없습니다. 그는 법신을 생각하고 일체 보살의 모든 행을 음성으로 받아 그 행을 원만히 갖추나니, 보현의 음성은 등각의 두루한 지혜입니다.
족성자여, 보현의 행을 보시오. 보살의 행에 나태함과 끊음이 없고 끊임이 없이 지혜의 슬기로 모든 부처를 보며, 또한 보현보살의 행은 쉼이 없이 두루한 지혜의 경계를 이룹니다. 저 열락용왕과 같은 건드릴 수 없는 자가 도리천상에 올라가 거기서 행을 일으켜 그것을 타고 매우 즐거워하며 천상의 쾌락을 먹으면서 온갖 극진하고 유쾌한 공양을 잃지 않고 모든 미녀들과 더불어 서로 즐거워하며 온갖 변화를 다 나타냄은 도리천의 모든 천인들과 다 같은 한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족성자여, 이와 같이 보살은 보현의 행으로 대승의 도량을 허물어뜨리지 않고 서원을 버리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받고 두루한 지혜로 스스로 즐거워하며, 모든 부처님의 행을 밝게 알고 무수(無數)를 다 알되 그 무수도 얻음이 없으며,
모든 국토를 다 청정히 하고 불법에 집착이 없으며, 나도 없고 생각도 없으며 모든 불법에 평등하여 둘을 일으키지 않고 모든 불국토를 밝힙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과 함께함을 나타내고 그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보살행과 음성이 끊임없으며 그 열락용왕이 이곳의 용 경계를 다시 천상에 나타내어 저 지극한 즐거움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족성자여, 이와 같은 상(像)은 큰 덕의 법에 뜻을 세워 보현대사의 행과 보살의 위없는 서원을 받들고 부지런히 닦아 큰 내성(內性)을 깨끗히 하는 것이니 족성자여, 이것을 제10의 대정장(大定場)으로 무량한 보살행을 넓고 밝게 나타내어 그 깨끗한 성품을 얻고 그 대승을 넓히는 것이라 합니다. 족성자여, 이것이 보현보살의 10정(定)의 장(場)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보현 보살의 10덕(德) 대도(大道)의 선정과 열 가지 위없는 슬기의 요지를 다 말씀하시자 시방의 모든 불국토가 다 트이어 밝아지고 모든 국토가 스스로 감동하며 스스로 장엄한 온 국토의 모든 보살과 천인들이 다 천상의 무량한 음악을 울려 보현보살의 무량한 덕을 노래로 찬탄하고 모든 국토를 밝게 비추어 모든 어둠이 다 사라졌다. 그때에 시방 모든 지옥의 고통은 모두 멈추고 시방 모든 국토의 티끌 수와 같은 중생들은 모두 각각 그 자리에서 다 위없는 정진도(正眞道)의 뜻을 내었으며, 나유술 백천 대중은 생멸이 없는 즐거운 법인(法印)을 얻었다.
부처님이 이 설법을 마치시자 보현대사와 등목보살 등 일체 보살과 일체 대중 및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라ㆍ인(人)ㆍ
비인(非人) 등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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