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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67 불교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5권

by Kay/케이 2024.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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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5

 

마하반야바라밀경 제5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최봉수 번역
김형준 개역


17. 장엄품(莊嚴品)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의 대장엄(大莊嚴)이란 무엇이 큰 장엄이며, 어떤 보살이 크게 장엄하게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의 큰 장엄이니, 이른바 단나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의 장엄이요, 4념처의 장엄 내지 8성도분ㆍ내공의 장엄이며, 무법유법공과 10력(力) 내지 18불공법, 그리고 일체종지(一切種智)의 장엄이니라.
몸을 변화하여 마치 부처님의 장엄과 같이 하고서 광명을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비추되 또한 동방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비추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도 그와 같으니라. 삼천대천세계를 6종으로 진동시키고, 또한 동방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진동시키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단나바라밀의 마하연의 큰 장엄에 머무르면서 이 삼천대천세계를 변화하여 유리(琉璃)로 만들고 변화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서 중생들의 바라는 바에 따라 먹을 것을 구하면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구하면 마실 것을 주며 의복ㆍ침구ㆍ꽃ㆍ향ㆍ영락ㆍ바르는 향ㆍ뿌리는 향[澤香]ㆍ방사(房舍)ㆍ등촉(燈燭) 및 의약품 등 갖가지를 구하는 대로 모두 다 주느니라.
이렇게 주고 나서는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나니, 이른바 6바라밀과 상응한 법이니라. 중생으로서 이 법을 들은 이는 끝내
6바라밀을 여지의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게 되느니라.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의 큰 장엄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사나 환술사의 제자가 네거리 가운데에 변화로 대중을 만들어 놓고 그들의 앞에서 먹을 것을 구하면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구하면 마실 것을 주면서 나아가 갖가지 구하는 것을 남김없이 다 주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환술사는 실제로 중생이 있어서 주는 것이더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변화로 전륜성왕이 되어 갖가지를 완전히 갖추고서 먹을 것을 구하면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구하면 마실 것을 주며, 나아가 갖가지의 구한 바를 남김없이 다 줄 적에 비록 베푸는 바가 있더라도 실로 주는 것이 없나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모든 법의 모양은 마치 환과 같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에 머물러 실제로 전륜성왕의 집에 태어나서 10선도(善道)로써 중생을 교화하고, 또한 4선(善)ㆍ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ㆍ4념처(念處) 내지 18불공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나니, 이 법을 듣는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이 법을 여의지 않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사나 환술사의 제자가 네거리 가운데에 변화로 대중을 만들어 놓고 10선도로 교화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행하게 하고 또한 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ㆍ4념처 내지 18불공법으로써 교화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행하게 하는 것과 같나니,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환술사는 실제로 중생이 있으면서 교화하고 10선도 내지 18불공법을 행하게 하는 것이더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10선도 내지 18불공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행하게 하되 실제로 없는 중생에게 10선도 내지 18불공법을 행하게 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법의 모양은 마치 환과 같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큰 장엄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찬제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교화하여 인욕하게 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찬제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교화하여 인욕의 완성[忍辱波羅蜜] 가운데에 머물도록 하느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처음에 뜻을 내어서부터 이와 같이 크게 장엄하나니, 설령 온갖 중생이 와서 욕설을 퍼붓고 칼과 몽둥이로 상해한다 해도 보살마하살은 그 가운데에서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또한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이 인욕을 행하게 하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사나 환술사의 제자가 네거리 가운데에 변화로 대중을 만들어 놓고 인욕을 행하게 하는 것과 같나니, 그 밖의 일은 위에서의 설명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큰 장엄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비리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온갖 중생들을 교화하며 비리야바라밀을 행하게 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온갖 중생을 교화하고 비리야바라밀을 행하게 하느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정진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사나 환술사의 제자가 네거리 가운데에 변화로 대중을 만들어 놓고 몸과 마음을 정진하면서 교화하고 행하게 하는 것과 같나니,
그 나머지는 위에서의 설명과 같으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큰 장엄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선나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온갖 중생을 교화하며 선나바라밀을 행하게 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온갖 중생을 교화하며 선나바라밀을 행하게 하느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법의 산란함과 안정됨을 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선나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온갖 중생을 교화하며 선나바라밀을 행하게 하나니,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선나바라밀을 여의지 않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사나 환술사의 제자가 네거리 가운데에 변화로 대중을 만들어 놓고 교화하면서 선나바라밀을 행하게 하는 것과 같나니, 그 나머지는 위에서의 설명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큰 장엄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온갖 중생을 교화하며 반야바라밀을 행하게 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온갖 중생을 교화하며 반야바라밀을 행하게 하느냐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어떤 법으로도 이 언덕[比岸]과 저 언덕[彼岸]을 얻는 일이 없나니,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온갖 중생을 교화하며 반야바라밀을 행하게 하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사나 환술사의 제자가 네거리 가운데에 변화로 대중을 만들어 놓고 교화하며 반야바라밀을 행하게 하는 것과 같나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큰 장엄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큰 장엄은 시방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 가운데에서 그의 알맞은 바에 따라 스스로 그의 몸을 변화하면서 단나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까지에 머무르고 또한 중생을 교화하면서 단나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까지를 행하게 하나니, 이 중생이 이 법을 행하면서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이 법을 여의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사나 환술사의 제자가 네거리 가운데에 변화로 중생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교화하면서 6바라밀을 행하게 하는 것과 같나니, 그 나머지는 위에서의 설명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큰 장엄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큰 장엄은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나는 얼마쯤의 사람만을 교화하면서 단나바라밀에 머무르게 하고 얼마쯤의 사람은 단나바라밀에 머무르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나니, 나아가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또한 ‘나는 얼마쯤의 사람만을 교화하여 4념처에 머무르게 하고 얼마쯤의 사람은 4념처에 머무르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나니, 나아가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또한 ‘나는 얼마쯤의 사람을 교화하여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게 하고 또한 얼마쯤의 사람은 수다원의 과위 내지 일체종지를 얻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그리고 ‘나는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으로 하여금 단나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에 머무르게 하며 중생들을 4념처 내지 18불공법에 세워서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의 중생으로 하여금 수다원의 과위 내지 일체종지를 얻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사나 환술사의 제자가 네거리 가운데에 변화로 대중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교화하면서 6바라밀 내지 일체종지에 머무르게 한 것과 같나니, 그 나머지는 위에서의 설명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큰 장엄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바 이치대로라면 보살마하살은 큰 장엄이 없는 것이 큰 장엄이 되나니, 모든 법의 자상(自相)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물질[色]은 물질의 모양이 공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양이 공하며, 눈[眼]은 눈의 모양이 공하고 나아가 뜻[意]은 뜻의 모양이 공하며, 빛깔[色]은 빛깔의 모양이 공하고 나아가 법(法)은 법의 모양이 공합니다.
안식(眼識)은 안식의 모양이 공하고 나아가 의식(意識)은 의식의 모양이 공하며, 눈의 접촉[眼觸]은 눈의 접촉의 모양이 공하고 나아가 뜻의 접촉[意觸]은 뜻의 접촉의 모양이 공하며,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受]은 느낌의 모양이 공하고 나아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은 느낌의 모양이 공합니다.
세존이시여, 단나바라밀은 단나바라밀의 모양이 공하며, 내공(內空)은 내공의 모양이 공하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은 무법유법공의 모양이 공하며, 4념처는 4념처의 모양이 공하고 나아가 18불공법은 18불공법의 모양이 공하며, 보살은 보살의 모양이 공합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큰 장엄이 없는 것이 큰 장엄이 된다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그대의 말한 바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살바야(薩婆若)는 짓는 법[作法]이 아니요 중생도 또한 짓는 법이 아니니, 보살은 이 중생을 위하여 크게 장엄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 때문에 살바야는 짓는 법이 아니고 이 중생도 또한 짓는 법이 아닌데 보살은 이 중생을 위하여 크게 장엄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짓는 것[作者]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살바야는 짓는 것이 아니고 일어나는 법[起法]도 아니며, 이 모든 중생도 또한 짓는 것이 아니고 일어나는 법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물질은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며, 눈도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 뜻까지도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며, 빛깔에서 법까지와 안식에서 의식까지와 눈의 접촉에서 뜻의 접촉까지와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까지도 짓는 것이 아니요 짓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나는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도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법은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꿈은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환과 메아리와 그림자와 아지랑이와 변화는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내공은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4념처는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18불공법도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이 법은 모두가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모든 법의 여(如)ㆍ법상(法相)ㆍ법성(法性)ㆍ법위(法位)ㆍ실제(實際)는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보리(菩提)는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살바야와 일체종지도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살바야는 짓는 것이 아니고 일어나는 법도 아니며, 이 중생도 또한 짓는 것이 아니고 일어나는 법도 아니라서 보살은 이 중생을 위하여 크게 장엄하느니라.”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관찰하건대, 세존이시여, 물질은 속박[縛]도 없고 해탈[脫]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그때에 부루나미다라니자가 수보리에게 말했다.
“물질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물질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부루나미다라니자가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떠한 물질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어떠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마치 꿈과 같은 물질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마치 꿈과 같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마치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환(幻)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변화해서 된 것과 같은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부루나미다라니자여, 과거의 물질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과거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미래의 물질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미래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현재의 물질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현재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느냐 하면, 이 물질이 있는 바가 없기[無所有]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여의기[離] 때문에 고요히 사라지기[寂滅] 때문에 나지 않기[不生]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부루나여, 착한[善]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착하지 못한[不善]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무기(無記)의 물질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무기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세간(世間)ㆍ출세간(出世間)ㆍ유루(有漏)ㆍ무루(無漏)ㆍ의 물질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요 여의기 때문이요 고요히 사라지기 때문이요 나지 않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부루나여, 온갖 법도 또한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나니,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요 여의기 때문이요 고요히 사라지기 때문이요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루나여, 단나(檀那)바라밀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도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나니,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요 여의기 때문이요 고요히 사라지기 때문이요 나지 않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부루나여, 내공(內空)도 또한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도 또한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4념처(念處)도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도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나니,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요 여의기 때문이요 고요히 사라지기 때문이요 나지 않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褥多羅三藐三菩提)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일체지(一切智)와 일체종지(一切種智)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보살(菩薩)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부처님[佛]도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나니,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요 여의기 때문이요 고요히 사라지기 때문이요 나지 않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부루나여, 모든 법의 여(如)와 법상(法相)과 법성(法性)과 법주(法住)와 법위(法位)와 실제(實際)의 무위(無爲)의 법도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나니,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고 여의기 때문이며, 고요히 사라지기 때문이고 나지 않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부루나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합니다.
단나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와 4념처에서 일체종지까지도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나니, 이 보살마하살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단나바라밀 가운데에 이르기까지 머무르고, 나아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며,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4념처에 머무르고 나아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일체종지까지에 머무릅니다.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중생을 성취시키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며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해야 하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법을 들어야 하며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모든 부처님을 끝내 여의지 않습니다.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모든 신통을 끝내 여의지 않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5안(眼)을 끝내 여의지 않으며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다라니문(陀羅尼門)을 끝내 여의지 않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모든 삼매[諸三昧]를 끝내 여의지 않습니다.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도생지(道生智)를 내어야 하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일체종지를 얻어야 하며,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법륜(法輪)을 굴리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데서 중생들을 3승(乘)에 편히 세웁니다.
이와 같이 부루나여, 보살마하살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6바라밀을 행하며 온갖 법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알아야 하나니,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고 여의기 때문이며, 고요히 사라지기 때문이고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루나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큰 장엄이라 합니다.”

18. 문승품(問乘品)거란본에는 마하연품(摩訶衍品)으로 되어 있음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1)인지요?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대승(大乘)으로 나아가는지요? 또한 이 대승은 어디서 출발하고, 이 대승은 어디에 가 닿으며, 이 대승은 어느 곳에 머물러야 하고, 그 누가 이 대승에 올라 벗어나는 이라고 알아야만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냐고 물었는데,
수보리야, 6바라밀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니라. 무엇이 여섯 가지냐 하면, 단나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이니라.
무엇을 단나바라밀이라 하느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안팎의 가진 것을 모두 보시하되 온갖 중생들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여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단나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시라바라밀이라 하느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마음으로 스스로가 10선도(善道)를 행하면서 또한 다른 이에게도 열 가지의 착한 길을 행하게 하되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집착하지 않는[不著] 시라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찬제바라밀이라 하느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스스로가 인욕(忍辱)을 갖추면서 또한 다른 이에게도 인욕을 행하게 하되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찬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비리야바라밀이라 하느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다섯 가지의 바라밀을 행하되 부지런히 닦으면서 쉬지 않고 또한 온갖 중생을 다섯 가지 바라밀에 벌여 세우되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비리야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선나바라밀이라 하느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스스로가 방편으로써 모든 선(禪)에 들어가고 선에 따라 나지 않으면서 또한 다른 이들에게도 모든 선에 들어가게 하되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선나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반야바라밀이라 하느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온갖 법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온갖 법의 성품을 관찰하되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 또한 다른 이들에게도 온갖 법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온갖 법의 성품을 관찰하게 하되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마하연이 있나니, 이른바 내공(內空)과 외공(外空)과 내외공(內外空)과 공공(空空)과 대공(大空)과 제일의공(第一義空)과 유위공(有爲空)과 무위공(無爲空)과 필경공(畢竟空)과 무시공(無始空)과 산공(散空)과 성공(性空)과 자상공(自相空)과 제법공(諸法空)과 불가득공(不可得空)과 무법공(無法空)과 유법공(有法空)과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내공(內空)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안의 법[內法]이란 눈[眼]과 귀[耳]와 코[鼻]와 혀[舌]와 몸[身]과 뜻[意]을 말하느니라.
눈은 눈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 있는[常]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滅]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귀는 귀로서 공하고 코는 코로서 공하며, 혀는 혀로서 공하고 몸은 몸으로서 공하며, 뜻은 뜻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다.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내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외공(外空)이냐 하면, 바깥 법[外法]이란 빛깔[色]과 소리[聲]와 냄새[香]와 맛[味]과 닿임[觸]과 법(法)을 말하느니라.
빛깔은 빛깔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소리는 소리로서 공하고 냄새는 냄새로서 공하며, 맛은 맛으로서 공하고 닿임은 닿임으로서 공하며, 법은 법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외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내외공(內外空)이냐 하면, 안팎의 법[內外法]이란 안[內]의 6입(入)과 바깥[外]의 6입을 말하느니라.
안의 법은 안의 법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바깥의 법은
바깥의 법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내외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공공(空空)이냐 하면, 온갖 법은 공하며, 이 공하다는 것도 또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공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대공(大空)이냐 하면, 동쪽은 동쪽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는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이며 위와 아래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대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제일의공(第一義空)이냐 하면, 제일의는 열반을 말하느니라. 열반은 열반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제일의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유위공(有爲空)이냐 하면, 유위의 법이란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를 말하느니라. 욕계는 욕계로서 공하고, 색계는 색계로서 공하며, 무색계는 무색계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유위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위공(無爲空)이냐 하면, 무위의 법이란 남이 없어짐이 없는 모양[無生相]과 머무름이 없는 모양[無住相]과 없어짐이 없는 모양[無滅相]을 말하느니라. 무위의 법은 무위의 법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무위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필경공(畢竟空)이냐 하면, 필경이란 모든 법의 마지막을 말하며 얻을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필경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시공(無始空)이냐 하면, 어떤 법에서도 처음에 온 곳을 얻을 수 없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무시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산공(散空)이냐 하면, 산(散)이란 모든 법이 없고 소멸하는 것이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산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성공(性空)이냐 하면,
온갖 법의 성품으로서 유위(有爲)의 법의 성품이거나 무위(無爲)의 법의 성품이거나 간에 이 성품은 성문이나 벽지불이 만든 바도 아니고 부처님께서 만든 바도 아니며, 또한 그 밖의 사람이 만든 바도 아니어서 이 성품은 성품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성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자상공(自相空)이냐 하면, 자상(自相)이란 물질[色]의 무너지는 모양과 느낌[受]의 느끼는 모양과 생각[想]의 취하는 모양과 지어감[行]의 짓는 모양과 분별[識]의 아는 모양을 말하느니라. 이와 같은 등의 유위의 법이나 무위의 법은 저마다 자상이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자상공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제법공(諸法空)이냐 하면, 모든 법이란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과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과 눈의 경계[眼界]ㆍ빛깔의 경계[色界]ㆍ안식의 경계[眼識界] 내지 뜻의 경계[意界]ㆍ법의 경계[法界]ㆍ의식의 경계[意識界]를 말하느니라. 이 모든 법은 모든 법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제법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불가득공(不可得空)이냐 하면, 모든 법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며, 이것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불가득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법공(無法空)이냐 하면, 어떤 법이 없는 이것도 또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무법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유법공(有法空)이냐 하면, 법이 있다는 것은 모든 법이 화합한 가운데에 자기 성품과 모양[性相]이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 있는 법이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유법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냐 하면, 모든 법 가운데에 법이 없는 것과 모든 법이 화합한 가운데에 자기 성품과 모양이 있는 것과, 이 없는 법과 있는 법이 공한 것이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무법유법공이라 하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법이 법의
상[法相]을 삼는 것은 공이며, 무법(無法)이 무법의 상을 삼는 것도 공이니라. 자기 법[自法]이 자기 법의 상을 삼는 것도 공이며, 타법(他法)이 타법의 상을 삼는 것도 공이니라.
무엇을 일컬어 법이 공을 법상으로 삼는다 하는가? 곧 법이란 5중을 말하나니, 5중은 공한 것이고 이것을 법이 공을 법상으로 삼는다 하느니라.
무엇을 일컬어 무법이 공을 무법의 상으로 삼는다 하는가? 곧 무법은 무위법을 말하나니, 이것을 무위법이 공을 무법의 상으로 삼는다 하느니라.
무엇을 일컬어 자법(自法)이 공을 자법의 상으로 삼는다 하는가? 곧 모든 법은 스스로 법공[自法空]이니, 이 공은 지혜[智]가 짓는 것이 아니요 견해[見]이 짓는 것도 아니니라. 이것을 자법이 공을 자법의 상으로 삼는다 하느니라.
무엇을 타법(他法)이 공을 타법의 상으로 삼는다 하는가? 곧 부처님께서 출현하셨거나 아직 출현하지 않으셨거나 간에 법주(法住)ㆍ법상(法相)ㆍ법위(法位)ㆍ법성(法性)ㆍ여(如)와 실제(實際)의 이것에서 더 지나가는 모든 법은 공하나니, 이것을 타법이 공을 타법의 상으로 삼는다 하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이란 이른바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ㆍ보인(寶印)삼매ㆍ사자유희(師子遊戱)삼매ㆍ묘월(妙月)삼매ㆍ월당상(月幢相)삼매ㆍ출제법(出諸法)삼매ㆍ관정(觀頂)삼매ㆍ필법성(畢法性)삼매ㆍ필당상(畢幢相)삼매ㆍ금강(金剛)삼매ㆍ입법인(立法印)삼매ㆍ삼매왕안립(三昧王安立)삼매ㆍ방광(放光)삼매ㆍ역진(力進)삼매이니라.
고출(高出)삼매ㆍ필입변재(必入辯才)삼매ㆍ석명자(釋名字)삼매ㆍ관방(觀方)삼매ㆍ다라니인(陀羅尼印)삼매ㆍ무광(無誑)삼매ㆍ섭제법해(攝諸法海)삼매ㆍ변부허공(遍覆虛空)삼매ㆍ금강륜(金剛輪)삼매ㆍ단보(斷寶)삼매ㆍ능조(能照)삼매ㆍ불구(不求)삼매ㆍ무주(無住)삼매ㆍ무심(無心)삼매ㆍ정등(淨燈)삼매ㆍ무변명(無邊明)삼매이니라.
능작명(能作明)삼매ㆍ보조명(普照明)삼매ㆍ견정제삼매(堅淨諸三昧)삼매ㆍ무구명(無垢明)삼매ㆍ환희(歡喜)삼매ㆍ
전광(電光)삼매ㆍ무진(無盡)삼매ㆍ위덕(威德)삼매ㆍ이진(離盡)삼매ㆍ부동(不動)삼매ㆍ불퇴(不退)삼매ㆍ일들(日燈)삼매ㆍ월정(月淨)삼매ㆍ정명(淨明)삼매ㆍ능작명(能作明)삼매ㆍ작행(作行)삼매이니라.
지상(知相)삼매ㆍ여금강(如金剛)삼매ㆍ심주(心柱)삼매ㆍ보명(寶明)삼매ㆍ안립(安立)삼매ㆍ보취(寶聚)삼매ㆍ묘법인(妙法人)삼매ㆍ법등(法等)삼매ㆍ단희(斷喜)삼매ㆍ도법정(到法頂)삼매ㆍ능산(能散)삼매ㆍ분별제법구(分別諸法句)삼매ㆍ자등상(字等相)삼매ㆍ이자(籬字)삼매ㆍ단연(斷緣)삼매ㆍ불괴(不壞)삼매ㆍ무종상(無種相)삼매ㆍ무처행(無處行)삼매이니라.
이몽매(離曚昧)삼매ㆍ무거(無去)삼매ㆍ불변이(不變異)삼매ㆍ도연(度緣)삼매ㆍ집제공덕(集諸功德)삼매ㆍ주무심(住無心)삼매ㆍ묘정화(妙淨華)삼매ㆍ각의(覺意)삼매ㆍ무량변(無量辨)삼매ㆍ무등등(無等等)삼매ㆍ도제법(度諸法)삼매ㆍ분별제법(分別諸法)삼매ㆍ산의(散疑)삼매ㆍ무주처(無住處)삼매ㆍ일장엄(一莊嚴)삼매이니라.
성행(生行)삼매ㆍ일행(一行)삼매ㆍ불일행(不一行)삼매ㆍ묘행(妙行)삼매ㆍ달일체유저산(達一切有底散)삼매ㆍ입명어(入名語)삼매ㆍ이음성자어(離音聲子語)삼매ㆍ연거(然炬)삼매ㆍ정상(淨相)삼매ㆍ파상(破相)삼매ㆍ일체종묘족(一體種妙足)삼매ㆍ불희고락(不喜苦樂)삼매ㆍ무진상(無盡相)삼매ㆍ다라니(陀羅尼)삼매ㆍ섭제사정상(攝諸邪正相)삼매이니라.
멸증애(滅憎愛)삼매ㆍ역순(逆順)삼매ㆍ정광(淨光)삼매ㆍ견고(堅固)삼매ㆍ만월정광(滿月淨光)삼매ㆍ대장엄(大莊嚴)삼매ㆍ능조일체세간(能照一切世間)삼매ㆍ삼매등(三昧等)삼매ㆍ섭일체유쟁무쟁(攝一切有諍無諍)삼매ㆍ
불락일체주처(不樂一切住處)삼매ㆍ여주정(如住定)삼매ㆍ괴신쇠(壞身衰)삼매ㆍ괴어여허공(壞語如虛空)삼매ㆍ이착허공불염(離著虛空不染)삼매이니라.
무엇을 수릉엄(首楞嚴)삼매라 하느냐 하면, 모든 삼매의 행한 곳을 아나니, 이것을 수릉엄 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보인(寶印)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 인(印)이 되나니, 이것을 보인 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사자유희(師子遊戱)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 안에서 자유자재로 노니는 것이 마치 사자와 같나니, 이것을 사자유희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묘월(妙月)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를 비추되 마치 밝은 달과 같나니, 이것을 묘월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월당상(月幢相)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모양을 능히 지니나니, 이것을 월당상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출제법(出諸法)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를 나오게 하나니, 이것을 출제법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관정(灌頂)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꼭대기를 보게 되나니, 이것을 관정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필법성(畢法性)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기필코 법의 성품을 알게 되나니, 이것을 필법성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필당상(畢幢相)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당기[幢]를 지니게 되나니, 이것을 필당상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금강(金剛)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를 깨뜨릴 수 있나니, 이것을 금강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입법인(入法印)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법 도장[法印]에 들어가게 되나니, 이것을 입법인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삼매왕안립(三昧王安立)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온갖 모든 삼매 안에
편히 서서 머무르는 것이 마치 왕과 같나니, 이것을 삼매왕안립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방광(放光)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광명을 놓으면서 모든 삼매를 비추게 되나니, 이것을 방광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역진(力進)삼매라 하느나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 대하여 세력을 쓸 수 있나니, 이것을 역진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고출(高出)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를 더욱더 자라게 하나니, 이것을 고출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필입변재(必入辯才)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무든 삼매를 분별하며 설명할 수 있나니, 이것을 필입변재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석명자(釋名字)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이름을 해석할 수 있나니, 이것을 석명자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관방(觀方)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방소(方所)를 얻게 되나니, 이것을 관방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다라니인(陀羅尼印)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도장[印]을 지니나니, 이것을 다라니인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광(無誑)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서 속지 않나니, 이것을 무광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섭제법해(攝諸法海)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를 포섭하는 것이 마치 큰 바닷물과 같나니, 이것을 섭제법해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변부허공(遍覆虛空)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를 두루 덮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나니, 이것을 변부허공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금강륜(金剛輪)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를 능히 지니나니, 이것을 금강륜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단보(斷寶)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번뇌의 때[垢]를 끊나니, 이것을 단보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능조(能照)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광명으로써 모든 삼매를 환히 비추나니, 이것을 능조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불구(不求)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구할 만한 법이 없나니, 이것을 불구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주(無住)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온갖 삼매 가운데에서 법이 머무르는 것[住]을 보지 못하나니, 이것을 무주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심(無心)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마음[心]과 마음에 속한 법이 작용하지 않나니, 이것을 무심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정등(淨燈)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 가운데에서 광명을 짓는 것이 마치 등불과 같나니, 이것을 정등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변명(無邊明)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 끝없는 광명이 되어 주나니, 이것을 무변명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능작명(能作明)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즉시 모든 삼매에 광명이 되어주나니, 이것을 능작명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보조명(普照明)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곧 모든 삼매문(三昧門)을 비추어 주나니, 이것을 보조명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견정제삼매(堅淨諸三昧)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모양을 굳게 하고 청정하게 하나니, 이것을 견정제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구명(無垢明)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때[垢]를 제거하게 되고 또한 온갖 삼매를 비추나니, 이것을 무구명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환희(歡喜)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기쁨을 느끼게 되나니, 이것을 환희 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전광(電光)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를 비추는 것이 마치 번갯불과 같나니, 이것을 전광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진(無盡)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서 다함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무진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위덕(威德)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 대하여 위엄 있는 덕으로 환히 비추나니, 이것을 위덕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이진(離盡)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가 다하는 일을 여의나니, 이것을 이진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부동(不動)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로 하여금 동요하지도 않고 들뜨지도 않게 하나니, 이것을 부동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불퇴(不退)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물러남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불퇴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일등(日燈)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광명을 놓으면서 모든 삼매를 비추나니, 이것을 일등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월정(月淨)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어두움을 제거하나니, 이것을 월정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정명(淨明)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서 4무애지(無礙智)를 얻게 되나니, 이것을 정명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능작명(能作明)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삼매문에 대하여 광명을 지을 수 있나니, 이것을 능작명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작행(作行)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로 하여금 저마다 하는 일이 있게 하나니, 이것을 작행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지상(知相)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아는 모양을 보나니, 이것을 지상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여금강(如金剛)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법을 통달하게 되며 또한 그 통달함도 보지 않나니, 이것을 여금강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심주(心住)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마음이 동요하거나 바뀌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으며 또한 이런 마음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나니, 이것을 심주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보명(普明)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널리 모든 삼매의 광명을 보나니, 이것을 보명 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안립(安立)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 편히 존립하면서 동요하지 않나니, 이것을 안립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보취(寶聚)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를 널리 보는 것이 마치 보배 무더기를 보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보취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묘법인(妙法印)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 법인(法印)이 되고 법인이 없는 데서 도장이 되기 때문이니, 이것을 묘법인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법등(法燈)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법의 동등함을 관찰하되 법마다 동등하지 않음이 없나니, 이것을 법등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단희(斷喜)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온갖 법 안에서의 기쁨을 끊나니, 이것을 단희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도법정(到法頂)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법의 어두움을 없애고 또한 모든 삼매의 꼭대기가 되나니, 이것을 도법정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능산(能散)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법을 깨뜨려서 흩어버리나니, 이것을 능산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분별제법구(分別諸法句)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모든 법의 구절을 분별하나니, 이것을 분별제법구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자등상(字等相)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서 글자의 동등함을 얻게 되나니, 이것을 자등상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이자(離字)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 가운데에서 하나의 글자조차도 보지 않나니, 이것을 이자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단연(斷緣)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대상[緣]을 끊나니, 이것을 단연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불괴(不壞)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법의 변화나 달라짐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을 불괴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종상(無種相)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법의 갖가지 종류를 보지 않나니, 이것을 무종상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처행(無處行)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처소를 보지 않나니, 이것을 무처행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이몽매(離曚昧)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서의 아주 작은 어두움도 여의게 되나니, 이것을 이몽매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거(無去)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온갖 삼매에서의 가는 모양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무거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불변이(不變異)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변화나 달라지는 모양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불변이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도연(度緣)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온갖 삼매가 반연한 경계를 건너가게 되나니, 이것을 도연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집제공덕(集諸功德)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공덕을 쌓게 되나니, 이것을 집제공덕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주무심(住無心)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 대하여 마음이 들어가지 않나니, 이것을 주무심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정묘화(淨妙華)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로 하여금 청정하고 미묘함을 얻도록 함이 마치 꽃과 같나니, 이것을 정묘화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각의(覺意)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 가운데에서 7각분(覺分)을 얻나니, 이것을 각의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량변(無量辯)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법 가운데에서 한량없는 변재(辯才)를 얻나니, 이것을 무량변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등등(無等等)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 가운데에서 무등등한 모양을 얻게 되나니, 이것을 무등등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도제법(度諸法)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온갖 삼계(三界)를 초월하게 되나니, 이것을 도제법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분별제법(分別諸法)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와 모든 법을 분별하면서 보나니, 이것을 분별제법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산의(散疑)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법의 의심이 흩어지게 되나니, 이것을 산의 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주처(無住處)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법의 머무르는 곳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무주처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일장엄(一莊嚴)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끝내 모든 법의 두 모양[二相]을 보지 못하나니, 이것을 일장엄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생행(生行)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행[諸行]이 생기는 것을 보지 못하나니, 이것을 생행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일행(一行)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이 언덕[此岸]과 저 언덕[彼岸]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일행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불일행(不一行)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가 한 모양[一相]임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불일행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묘행(妙行)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두 모양[二相]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묘행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달일체유저산(達一切有底散)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온갖 존재[有]와 온갖 삼매에 들어가서 지혜가 통달하되 또한 통달한 바도 없나니, 이것을 달일체유저산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입명어(入名語)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온갖 삼매의 이름과 언어에 들어가나니, 이것을 입명어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이음성자어(離音聲字語)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음성과 문자와 언어를 보지 않나니, 이것을 이음성자어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연거(然炬)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위엄 있는 덕으로 광명을 비추는 것이 마치 횃불과 같나니, 이것을 연거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정상(淨相)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모양을 청정하게 하나니, 이것을 정상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파상(破相)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모양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파상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일체종묘족(一切種妙足)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온갖 모든 삼매의 종류가 모두 완전하게 갖추어지나니, 이것을 일체종묘족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불희고락(不喜苦樂)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서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불희고락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진상(無盡相)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가 다함[盡]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무진상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다라니(陀羅尼)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를 능히 지니나니, 이것을 다라니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섭제사정상(攝諸邪正相)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서 삿되거나 바른 모양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섭제사정상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멸증애(滅憎愛)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미움과 사랑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멸증애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역순(逆順)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법과 모든 삼매의 역(逆)과 순(順)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역순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정광(淨光)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광명의 때를 얻지 않나니, 이것을 정광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견고(堅固)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가 견고하지 않는 것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을 견고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만월정광(滿月淨光)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가
만족해지는 것이 마치 보름달과 같나니, 이것을 만월정광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대장엄(大莊嚴)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크게 장엄되면서 모든 삼매를 성취하게 되나니, 이것을 대장엄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능조일체세간(能照一切世間)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와 온갖 법을 능히 비추어 주나니, 이것을 능조일체세간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삼매등(三昧等)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서 안정된 모양이나 산란한 모양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을 삼매등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섭일체유쟁무쟁(攝一切有諍無諍)삼매라 하느냐 하면, 모든 삼매로 하여금 다툼이 있는 것과 다툼이 없는 것을 분별하지 않게 하나니, 이것을 섭일체유쟁무쟁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불락일체주처(不樂一切住處)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의지하는 곳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불락일체주처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여주정(如住定)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여실한 모양을 지나가지 않나니, 이것을 여주정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괴신쇠(壞身衰)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몸의 모양[身相]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을 괴신쇠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괴어여허공(壞語如虛空)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의 어업(語業)을 보지 않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나니, 이것을 괴어여허공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이착허공불염(離著虛空不染)삼매라 하느냐 하면, 이 삼매에 머무르면 모든 법을 보되 마치 허공과 같이 막힘이 없고 또한 물들지도 않나니, 이것을 이착허공불염삼매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이라 하느니라.

19. 광승품(廣乘品)거란본에는 사념처품(四念處品)으로 되어 있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이란 이른바 4념처(念處)이니라.
무엇이 4념처이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안의 몸[內身] 가운데에서 몸을 차례로 자세히 관하면서[循身觀] 또한 몸이라는 생각이 없으니,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밖의 몸[外身]에 대해서나 안팎의 몸[內外身]에 대해서 몸을 차례로 자세히 관하면서 또한 몸이라는 생각이 없으니,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한마음[一心]2)이 되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애느니라.
안의 느낌[內受]ㆍ안의 마음[內心]ㆍ안의 법[內法]과 밖의 느낌[外受]ㆍ밖의 마음[外心]ㆍ밖의 법[外法]과 안팎의 느낌[內外受]ㆍ안팎의 마음[內外心]ㆍ안팎의 법[內外法]에 대하여 법을 차례로 자세히 관하면서[循法觀] 또한 법이라는 생각이 없으니,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한마음이 되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애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안의 몸 가운데에서 몸을 차례로 자세히 관하겠느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다닐 때에는 다니는 것을 알고 머무를 때에는 머무르는 것을 알며, 앉을 때에는 앉은 것을 알고 누울 때에는 누운 것을 아나니, 몸이 행하는 그대로 아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안의 몸 가운데에서 몸을 차례로 자세히 관하되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한마음이 되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애나니,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오고 가고 볼 적에도 한마음이 되며, 굽히고 펴고 굽어보고 쳐다보거나 승가리(僧伽梨)3)를 입고 옷과 발우를 가지거나 음식을 먹고 눕고 쉬고 앉고 서고 잠자고 깨고 말하고 잠자코 있거나 선(禪)에 들어가고 선에서 나오거나 간에 역시 언제나 한마음이 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안의 몸 가운데에서 몸을 차례로 자세히 관찰하니,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안의 몸 가운데에서 몸을 차례로 자세히 관할 때에 한마음이 되어 염(念)하나니, 숨을 들이쉴[入息] 때는 들이쉼을 알고 숨을 내쉴[出息] 때는 내쉼을 알며, 들이쉬는 숨이 길 때는 들이쉬는 숨의 긴 것을 알고 내쉬는 숨이 길 때는 내쉬는 쉼의 긴 것을 알며, 들이쉬는 숨이 짧을 때는
들이쉬는 숨의 짧은 것을 알고 내쉬는 숨이 짧을 때는 내쉬는 숨의 짧은 것을 아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노끈 꼬기를 가르치는 스승이 만약 그의 제자의 노끈이 길면 긴 것을 알고 노끈이 짧으면 짧은 것을 아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한마음으로 염하되 숨을 들이쉴 때는 들이쉬는 것을 알고 숨을 내쉴 때는 내쉬는 것을 알며, 들이쉬는 숨이 길 때는 들이쉬는 숨의 긴 것을 알고 내쉬는 숨이 길 때는 내쉬는 숨의 긴 것을 알며, 들이쉬는 숨이 짧을 때는 들이쉬는 숨의 짧은 것을 알고 내쉬는 숨이 짧을 때는 내쉬는 숨의 짧은 것을 아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안의 몸 가운데에서 몸을 차례로 자세히 관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며 한마음이 되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애나니,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몸의 4대(大)를 관하면서 생각하기를 “몸속에는 지대(地大)와 수대(水大)와 화대(火大)와 풍대(風大)가 있다”고 하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백정이나 그의 제자가 칼로 소를 죽여서는 네 등분으로 만들며, 네 등분으로 만들고 나서는 서거나 앉거나 간에 이 네 쪽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몸의 4대인 지대ㆍ수대ㆍ화대ㆍ풍대를 갖가지로 자세히 관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안의 몸 가운데에서 몸을 차례로 자세히 관하나니,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안의 몸은 발에서 정수리까지 얇은 가죽에 둘러싸이고 갖가지의 깨끗하지 못한 것이 그 몸속에 가득 차 있다고 자세히 관하면서 “이 몸속에는 머리카락ㆍ터럭ㆍ손톱ㆍ발톱ㆍ이빨ㆍ얇은 가죽ㆍ두꺼운 가죽ㆍ힘줄ㆍ살ㆍ골수ㆍ지라ㆍ콩팥ㆍ심장ㆍ간ㆍ허파ㆍ소장ㆍ대장ㆍ위장ㆍ똥ㆍ오줌ㆍ때ㆍ땀ㆍ눈물ㆍ콧물ㆍ침ㆍ고름ㆍ피ㆍ가래ㆍ기름ㆍ뇌 및 막 등이 있다”고 생각하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농부가 창고 속에다 모든 곡식을 걸러 쌓되 벼ㆍ깨ㆍ기장ㆍ조ㆍ콩ㆍ보리 등을 가득히 채워 놓아도 눈 밝은
사람이면 창고 문을 열자마자 곧 알면서 “이것은 깨요, 이것은 기장이요, 이것은 벼요, 이것은 조요, 이것은 보리요, 이것은 콩이다”라고 분별하며 모두 아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이 몸은 발에서 정수리까지 얇은 가죽에 둘러싸이고 몸속에는 머리카락ㆍ터럭ㆍ손톱ㆍ발톱ㆍ치아에서 뇌와 막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관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안의 몸을 자세히 관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며 한마음이 되어 세간의 탐애와 근심을 없애나니,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만일 버려진 죽은 사람의 몸이 하루나 이틀, 닷새가 되어 띵띵 부풀고 푸르뎅뎅하면서 고름이 흘러내린 것을 보며 생각하기를 “나의 몸도 또한 이러한 모양이 되고, 이러한 법이 있을 터인데 아직 이런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안의 몸 가운데에서 몸을 차례로 자세히 관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며 한 몸이 되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애나니,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만일 버려진 죽은 사람의 몸이 엿새 혹은 이레가 되어서 올빼미ㆍ보라매ㆍ수리ㆍ승냥이ㆍ이리ㆍ여우ㆍ개 등의 이러한 갖가지 날짐승ㆍ길짐승들이 파먹고 뜯어먹는 것을 보면서 생각하기를 “나의 몸도 또한 이러한 모양으로 되고, 이러한 법이 있을 터인데 아직 이런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안의 몸 가운데에서 몸을 차례로 자세히 관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며 한마음이 되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애나니,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만일 버려진 죽은 사람의 몸이 날짐승ㆍ길짐승들이 뜯어먹은 뒤에 깨끗하지 못한 것이 문드러져서 악취가 나는 것을 보게 되면 생각하기를 “나의 몸도 또한 이러한 모양으로 되고, 이러한 법이 있을 터인데 아직 이런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세간의 탐욕과 근심까지 없애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만일 버려져 있는 죽은 사람의 몸의 뼈에 피와 살이 엉겨 붙고 힘줄과 뼈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생각하기를 “나의 몸도 이러한 모양으로 되고 이러한 법이 있을 터인데 아직 이런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세간의 탐욕과 근심까지 없애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만일 버려져 있는 죽은 사람의 몸의 뼈에 피와 살이 이미 없어졌고
힘줄과 뼈만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생각하기를 “나의 몸도 또한 이러한 모양으로 되고 이러한 법이 있을 텐데 아직 이런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세간의 탐욕과 근심까지 없애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만일 버려져 있는 죽은 사람의 몸의 뼈들이 이미 땅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생각하기를 “나의 몸도 또한 이러한 모양으로 되고 이러한 법이 있을 터인데 아직 이런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세간의 탐욕과 근심까지 없애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만일 버려져 있는 죽은 사람의 몸의 뼈들이 땅에 흩어져 있으면서 다리뼈도 다른 곳에 있고 팔뼈ㆍ넓적다리뼈ㆍ허리뼈ㆍ갈빗대ㆍ등골뼈ㆍ손뼈ㆍ목뼈ㆍ해골 등이 저마다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보며 생각하기를 “나의 몸도 또한 이러한 모양으로 되고 이러한 법이 있을 터인데 아직 이런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안의 몸을 자세히 관하면서 세간의 탐욕과 근심까지 없애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버려져 있는 죽은 사람의 뼈들이 오랜 세월 동안 땅에 있으면서 바람에 날리고 햇살에 쬐여서 빛이 조개와 같이 하얗게 바래진 것을 보며 생각하기를 “나의 몸도 이러한 모양으로 되는 것이 법인데 아직 이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안의 몸을 자세히 관하면서 세간의 탐욕과 근심까지 없애나니,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 버려진 죽은 사람의 뼈가 오랜 세월 동안 땅에 있으면서 그 빛깔이 마치 비둘기와 같고 썩어 문드러져서 흙과 함께 합쳐져 있는 것을 보고 생각하기를 “나의 몸도 이러한 법이 있고 이러한 모양으로 될 터인데 아직 이런
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안의 몸 가운데에서 몸을 차례로 자세히 관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며 한마음이 되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애나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바깥의 몸과 안팎의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수념처(受念處)와 심념처(心念處)와 법념처(法念處)도 또한 이와 같이 자세히 말해야 되나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4정근(正勤)이니라. 무엇이 4정근이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아직 생기기 전의 모든 악(惡)과 착하지 못한 법[不善法]을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도를 행하느니라. 이미 생긴 모든 악과 착하지 않은 법은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도를 행하느니라.
아직 생기기 전의 모든 착한 법[善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도를 행하느니라.
이미 생긴 모든 착한 법은 머물러서 상실되지 않고 수행이 원만하면서 더욱 광대하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도를 행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4여의분(如意分)이니라. 무엇이 4여의분이냐 하면, 욕정(欲情)으로 단연코 행하면서 수행을 성취하는 여의분과 심정(心定)으로 단연코 행하면서 수행을 성취하는 여의분과 정진정(精進定)으로 단연코 행하면서 수행을 성취하는 여의분과 사유정(思惟定)으로 단연코 행하면서 수행을 성취하는 여의분이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5근(根)이니라. 무엇이 5근이냐 하면,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이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5력(力)이니라. 무엇이 5력이냐 하면, 신력(信力)과 정진력(精進力)과 염력(念力)과 정력(定力)과 혜력(慧力)이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7각분(覺分)이니라. 무엇이 7각분이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염각분(念覺分)을 닦되 여읨(離)에 의지하고 물듦이 없음[無染]에 의지하여 열반을 향하며, 택법각분(擇法覺分)ㆍ정진각분(精進覺分)ㆍ희각분(喜覺分)ㆍ제각분(除覺分)ㆍ정각분(定覺分) 및 사각분(捨覺分)을 닦되 여읨에 의지하고 물듦이 없음에 의지하여 열반을 향하나니,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8성도분(聖道分)이니라. 무엇이 8성도분이냐 하면,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와 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이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3삼매(三昧)이니라. 무엇이 3삼매이냐 하면,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삼매이니라.
공삼매(空三昧)는 모든 법의 자상(自相)이 공하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해탈문(空解脫門)이니라.
무상삼매(無相三昧)는 모든 법의 모양을 파괴하여 기억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이니라.
무작삼매(無作三昧)는 모든 법 가운데에서 원(願)을 짓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이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고지(苦智)와 집지(集智)와 멸지(滅智)와 도지(道智)와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와 법지(法智)와 비지(比智)와 세지(世智)와 타심지(他心智)와 여실지(如實智)이니라.
무엇을 고지(苦智)라 하느냐 하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 이치를 아는 것을 고지라 하느니라.
무엇을 집지(集智)라 하느냐 하면, 쌓임[集]은 끊어야 하는 이치를 아는 것을 집지라 하느니라.
무엇을 멸지(滅智)라 하느냐 하면, 괴로움이 사라진 이치를 아는 것을 멸지라 하느니라.
무엇을 도지(道智)라 하느냐 하면, 8성도분(聖道分)의 이치를 아는 것을 도지라 하느니라.
무엇을 진지(盡智)라 하느냐 하면, 모든 음욕[婬]ㆍ성냄[怒]ㆍ어리석음[癡]이 다한 이치를 아는 것을 진지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생지(無生智)라 하느냐 하면, 모든 존재[有] 안에서는 생김이 없다는 이치를 아는 것을 무생지라 하느니라.
무엇을 법지(法智)라 하느냐 하면, 5중(衆)의 근본 되는 사실의 이치를 아는 것을 법지라 하느니라.
무엇을 비지(比智)라 하느냐 하면, 눈[眼]은 무상하며 나아가 뜻의 접촉의 인연에 이르기까지 생겨난 느낌[意觸因緣生受]도 무상하다는 이치를 아는 것을 비지라 하느니라.
무엇을 세지(世智)라 하느냐 하면, 인(因)과 연(緣)과 이름[名字]의 이치를 아는 것을 세지라 하느니라.
무엇을 타심지(他心智)라 하느냐 하면 다른 중생의 마음을 아는 것을 타심지라 하느니라.
무엇을 여실지(如實智)라 하느냐 하면, 모든 부처님의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아는 것을 여실지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3근(根)이니,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과 지근(知根)과 지자근(知者根)이니라.
무엇을 미지욕지근이라 하느냐 하면, 모든 배울 것 있는 사람[學人]이 아직 과보를 얻지 못한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 및 혜근(慧根)이니, 이것을 미지욕지근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지근이라 하느냐 하면, 모든 배울 것 있는 사람[學人]이 과보를 얻은 신근에서 혜근까지이니, 이것을 지근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지자근이라 하느냐 하면, 모든 배울 것 없는 사람[無學人]인 아라한과 벽지불과 모든 부처님의 신근 내지 혜근이니, 이것을 지자근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3삼매(三昧)이니라. 세 가지란, 곧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와 무각유관삼매(無覺有觀三昧)와 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이니라.
무엇을 유각유관삼매라 하느냐 하면, 모든 욕망을 여의고 악(惡)과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거친 생각[覺]과 세밀한 생각[觀]이 있으면서 애욕을 여읨에서 생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가나니, 이것을 유각유관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각유관삼매라 하느냐 하면, 초선과 2선(禪)의 중간의 선이니, 이것을 무각유관삼매라 하느니라.
무엇을 무각무관삼매라 하느냐 하면, 2선에서 비유상비무상정(非有想非無想定)까지이니, 이것을 무각무관삼매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10념(念)이니라. 무엇이 10념이냐 하면,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사(念捨)ㆍ염천(念天)ㆍ염멸(念滅)ㆍ염출입식(念出入息)ㆍ염신(念身)ㆍ염사(念死)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4선(禪)과 4무량심(無量心)과 4무색정(無色定)과 8배사(背捨)와 9차제정(次第定)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부처님의 10력(力)이니라. 무엇이 부처님의 10력이냐 하면, 부처님은 온갖 법이 도리에 계합하고 계합하지 않는 것을 사실대로 아시나니, 이것이 첫 번째의 힘이니라.
부처님은 사실대로 중생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업과 모든 받는 법을 아시고 업을 지은 처소를 아시며 인연을 아시고 과보를 아시나니, 이것이 두 번째의 힘이니라.
부처님은 모든 선(禪)과 해탈(解脫)과 삼매(三昧)와 정(定)의 더럽고 깨끗하고 분별되는 모양을 사실대로 아시나니, 이것이 세 번째의 힘이니라.

부처님은 다른 중생들의 모든 근기의 위와 아래 모양을 사실대로 아시나니, 이것이 네 번째의 힘이니라.
부처님은 중생들의 갖가지 욕해(欲解)를 사실대로 아시나니, 이것이 다섯 번째의 힘이니라.
부처님은 세간의 갖가지 수 없는 성품을 사실대로 아시나니, 이것이 여섯 번째의 힘이니라.
부처님은 온갖 이르는 곳과 길[道]을 사실대로 아시나니, 이것이 일곱 번째의 힘이니라.
부처님은 갖가지 숙명으로 모양이 있고 인연이 있어서 한 세상, 두 세상 나아가 백천의 세상과 겁(劫)의 처음으로부터 겁이 다하기까지 내가 저 중생 가운데 태어나 이 같은 성(姓)과 이 같은 이름과 이 같은 음식과 괴로움과 즐거움과 수명의 장단(長短)으로 그 안에서 죽어서, 그 사이에 나고 죽고 또한 다시 이 세간에 나서 이 세간의 성명(姓名)과 음식과 고락(苦樂)과 수명의 장단이 그와 같음을 보시나니, 이것이 여덟 번째의 힘이다.
부처님의 천안(天眼)은 모든 하늘의 천안보다 뛰어남으로 중생들이 죽는 때와 태어나는 때와 잘 생기고 못 생긴 것ㆍ크거나 작은 것ㆍ악도(惡道)에 떨어지거나 선도(善道)에 떨어지는 것과 그러한 업의 인연으로 과보를 받는 것과 이 모든 중생이 나쁜 신업(身業)을 성취하고 나쁜 구업(口業)을 성취하고 나쁜 의업(意業)을 성취하였으며 성인을 훼방하고 삿된 견해의 업의 인연을 받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때에는 악도에 들어가고 지옥에 가 난다는 것과 이 모든 중생이 착한 신업을 성취하고 착한 의업을 성취하였으며 성인을 훼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의 업의 인연을 받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때에는 선도에 들어가고 천상에 가 난다는 것을 보시나니, 이것이 아홉 번째의 힘이니라.
부처님은 모든 번뇌[漏]가 다하셨기 때문에 무루의 마음[無漏心]이 해탈하고 무루의 지혜[無漏慧]가 해탈하셨음을 아시며, 현재의 법 가운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아시면서 이러한 법, 즉 “나의 생(生)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을 이미 다 지었다”는 데에 들어가며, 이 세상으로부터 다시는 뒷세상을 보시지 않나니, 이것이 열 번째의 힘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4무소외(無所畏)이니라. 무엇이 4무소외이냐 하면, 부처님께서 정성스런 말[聖言]로 “나는 온갖 바른 지혜를 지닌 사람이다”고 할 때에 어떤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나 그 밖의 대중이 마치 사실인냥 힐난하면서“법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여도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으면서 성주(聖主)로서의 처소에 편안히 머물러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처럼 외치며 범륜(梵輪)을 굴리지만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나 그 밖의 대중으로서는 실로 굴릴 수 없느니라. 이것이 첫 번째의 무소외이니라.
부처님은 정성스런 말로 “나는 온갖 번뇌가 다하였다”고 할 때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과 그 밖의 대중이 사실인냥 힐난하면서 “번뇌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말하여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모양을 나타내지 않나니, 그러므로 나는 안온하면서도 두려워함이 없으면서 성주로서의 처소에 편안히 머물러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처럼 외치며 법륜을 굴리지만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나 그 밖의 대중으로서는 실로 굴릴 수 없나니, 이것이 두 번째의 무소외니라.
부처님이 정성스런 말로 “나는 장애되는 법을 말한다”고 할 때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며 그 밖의 대중이 사실처럼 힐난하면서 “이 법을 받더라도 도를 장애하지 않는다”고 말하여도 또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모양을 나타내지 않나니, 그러므로 나는 안온하면서도 두려워함이 없으면서 성주로서의 처소에 편안히 머물러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처럼 외치며 법륜을 굴리지만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나 그 밖의 대중으로서는 굴릴 수 없나니, 이것이 세 번째의 무소외이니라.
부처님이 정성스런 말로 “그대가 말한 거룩한 도[聖道]로 세간을 벗어나며 이 행에 따라 괴로움이 다하게 된다”고 할 때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며 그 밖의 대중이 사실처럼 힐난하면서 “이 도를 행하여 세간을 벗어날 수도 없고 괴로움을 다할 수도 없다”고 말하여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모양을 나타내지 않나니, 그러므로 나는 안온하면서도 두려워함이 없으면서 성주로서의 처소에 편안히 머물러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처럼 외치며 범륜을 굴리지만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나 그 밖의 대중으로서는 굴릴 수 없나니, 이것이 네 번째의 무소외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4무애지(無礙智)이니라. 무엇이 4무애지냐 하면, 의무애(義無礙)ㆍ법무애(法無礙)ㆍ사무애(辭無礙)ㆍ요설무애(樂說無礙)이니라.
의(義)무애라 함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의 이치를 아는 것이요 법(法)무애라 함은 모든 법의 이름을 아는 것이며, 사(辭)무애라 함은 말 가운데에서 막힘이 없는 것이요 요설(樂說)무애라 함은 자세하고 진실한 말이 그지없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18불공법(不共法)이니라. 무엇이 18불공법이냐 하면, 첫째는 모든 부처님은 몸에 과실(過失)이 없고, 둘째는 입에 과실이 없으며, 셋째는 기억[念]에 과실이 없고, 넷째는 다른 생각이 없으며, 다섯째는 일정하지 않은 마음이 없고, 여섯째는 버릴 줄 모르는 마음이 없느니라.
일곱째는 하고자 함[欲]에 줄어듦이 없고, 여덟째는 정진(精進)에 줄어듦이 없고, 아홉째는 기억[念]에 줄어듦이 없고, 열째는 지혜에 줄어듦이 없으며, 열한째는 해탈에 줄어듦이 없고, 열두째는 해탈지견(解脫知見)에 줄어듦이 없느니라.
열셋째는 온갖 신업(身業)이 지혜에 따라 행해지고, 열넷째는 온갖 구업(口業)이 지혜에 따라 행해지며, 열다섯째는 온갖 의업(意業)이 지혜에 따라 행해지고, 열여섯째는 지혜로 과거의 세상을 알고 보되 걸리거나 막히는 일이 없으며, 열일곱째는 지혜로 미래의 세상을 알고 보되 걸리거나 막히는 일이 없으며, 열여덟째는 지혜로 현재의 세상을 알고 보되 걸리거나 막히는 일이 없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글자의 평등[字等]과 말의 평등[語等]과 모든 글자에 들어가는 문[諸子入門]이니라.
무엇이 글자의 평등과 말의 평등과 모든 글자에 들어가는 문이냐 하면, 아자(阿字) 문(門)은 온갖 법은 처음부터 나지 않기 때문이요, 라(羅)자 문은 온갖 법은 때[垢]를 여의기 때문이며, 파(波)자 문은 온갖 법은 첫째가는 이치[第一義]이기 때문이요, 차(遮)자 문은 온갖 법은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모든 법은 마치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나(那)자 문은 모든 법이 이름을 떠나서 성품과 모양을 얻지도 잃지도 않기 때문이요, 라(邏)자 문은 모든 법이 세간을 제도하기 때문이며, 또한 애욕의 가지[愛枝]의 인연이 소멸하기 때문이며, 타(陀)자 문은 모든 법이 착한 마음을 낳기 때문이며 또한 베푸는 모양이기 때문이니라.
바(婆)자 문은 모든 법은 바(婆)자를 여의기 때문이요, 다(茶)자 문은 모든 법은 다(茶)자로 청정하기 때문이며, 사(沙)자 문은 모든 법의 여섯 가지 자재한 왕[六自在王]의 성품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화(和)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말[言語]의 길이 끊어지기 때문이며, 다(多)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진여[如]의 모양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니라.
야(夜)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사실대로 생기지 않기 때문이요, 타(咤)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제압하여 다스리기 때문이고, 가(迦)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짓는 이[作者]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바(婆)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때[時]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고 모든 법은 때가 와서 바뀌기 때문이며, 마(磨)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내 것[我所]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가(伽)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가는 것[去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타(他)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처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사(闍)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생기는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파(簸)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파(簸)자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타(馱)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성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사(賖)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일정함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거(呿)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허공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차(叉)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다함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차(哆)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존재[有]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야(若)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지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타(拖)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타(拖)자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바(婆)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파괴(破壞)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차(車)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하고자 함[欲]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고 마치 그림자와 같은 5중(衆)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마(魔)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마(魔)자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화(火)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부름[喚]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차(蹉)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차(蹉)자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가(伽)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두꺼움[厚]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타(他)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처소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나(拏)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서지도 않고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파(頗)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끝[邊]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가(歌)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무더기[聚]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차(醝)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차(醝)자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차(遮)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행함[行]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타(陀)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몸[軀]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茶)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끝나는 처소[邊竟處]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마치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다(茶)를 지나서는 얻을 수 있는 글자가 없나니, 왜냐하면 다시는 글자가 없기 때문이니라. 모든 글자는 장애도 없고 이름도 없으며, 또한 소멸하지도 않고 또한 말로써 설명할 수도 없으며, 보일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쓸 수도 없느니라.
수보리야, 그러므로 온갖 법들은 마치 허공과 같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다라니문(陀羅尼門)이라 하나니, 이른바 아(阿)자의 이치이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모든 글자 문의 도장[諸字門印]과 아자의 도장[阿字印]을 듣고는 받고 읽고 외고 지니면서 다른 이를 위하여 해설해 준다면, 이런 이는
스무 가지의 공덕을 얻는다고 아느니라.
무엇이 스무 가지의 공덕이냐 하면, 오래도록 잘 알고 기억함[强識念]을 얻고 부끄러워함[慚愧]을 얻으며, 견고한 마음[堅固心]을 얻고 경의 근본이 되는 종요로운 뜻[經旨趣]을 얻으며, 지혜(智慧)를 얻고 요설무애(樂說無礙)를 얻으며, 쉬이 모든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얻고 의심하거나 뉘우침이 없는 마음[無疑悔心]을 얻느니라.
착한 일을 들어도 기뻐하지 않고 나쁜 일을 들어도 성내지 않음[聞善不喜聞惡不怒]을 얻으며, 교만해지지도 않고 풀죽지도 않는[不高不下] 마음에 머물러 더하거나 덜함이 없음을 얻고 중생의 말[衆生語]을 교묘히 잘 앎을 얻으며, 5중(衆)ㆍ12입(入)ㆍ18계(界)ㆍ12인연(因緣)ㆍ4연(緣)ㆍ4제(諦)를 교묘히 잘 분별함을 얻고 중생의 모든 근기의 영리함과 둔함[諸根利鈍]을 교묘히 잘 분별함을 얻으며, 다른 이의 마음[他心]을 교묘히 잘 앎을 얻고 날과 달과 해와 계절[日月歲節]을 교묘히 잘 분별함을 얻느니라.
천이통(天耳通)을 교묘히 잘 분별함을 얻고 숙명통(宿命通)을 교묘히 잘 분별함을 얻으며, 생사통(生死通)을 교묘히 잘 분별함을 얻고 도리에 계합함과 계합하지 않는 것[是處不是處]을 교묘히 잘 설명함을 얻으며, 가고 오고 앉고 일어나는 등의 몸의 위의[身威儀]를 교묘히 앎을 얻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이 다라니의 문[陀羅尼門]과 글자의 문[字門]과 아자의 문[阿字門] 등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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