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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69 불교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7권

by Kay/케이 2024.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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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7

 

마하반야바라밀경 제7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최봉수 번역
김형준 개역


24. 회종품(會宗品)

그때에 혜명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陀羅尼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수보리로 하여금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설명하게 하셨으니, 그렇다면 이제 마하연을 말한 것이 됩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말씀드린 마하연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는 않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그대가 말한 마하연은 반야바라밀을 따른 것이요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았느니라. 왜냐하면 온갖 있는 바의 착한 법과 도를 돕는 법[助道法]으로써의 성문의 법과 벽지불의 법과 보살의 법과 부처님의 법이라는 이 온갖 법이 모두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섭입(攝入)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착한 법과 도를 돕는 법으로서의 성문의 법과 벽지불의 법과 보살의 법과 부처님의 법이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섭입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단나(檀那)바라밀ㆍ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과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과 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성도분(聖道分)과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해탈문(解脫門)과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지(無礙智)와 대자대비(大慈大悲)와 18불공법(不共法)과 잘못된 모양이 없이 항상 버리는 행[捨行]을 하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그 밖의 이 모든 착한 법과 도를 돕는 법으로서의
성문의 법과 벽지불의 법과 보살의 법과 부처님의 법도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섭입되어 있느니라.
수보리야, 마하연과 반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단나바라밀과 물질[色]ㆍ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과 눈의 빛깔[眼色]ㆍ안식(眼識)ㆍ눈의 접촉[眼觸]ㆍ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모든 느낌[眼觸因緣生諸受]과 뜻의 법[意法]ㆍ의식(意識)ㆍ뜻의 접촉[意觸]ㆍ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모든 느낌[意觸因緣生諸受]과 땅의 요소[地種]에서 의식의 요소[識種]까지와 4념처에서 8성도분까지와 공ㆍ무상ㆍ무작의 해탈문과 그리고 모든 착한 법으로서의 유루(有漏)ㆍ무루(無漏)와 유위(有爲)ㆍ무위(無爲)와 괴로움의 진리[苦諦]ㆍ쌓임의 진리[集諦]ㆍ사라짐의 진리[滅諦]ㆍ도의 진리[道諦]와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와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와 모든 삼매문(三昧門)과 모든 다라니문(陀羅尼門)과 부처님의 10력에서 18불공법까지와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과 법성(法性)ㆍ여(如)ㆍ실제(實際)ㆍ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 및 열반(涅槃) 등의 이 온갖 법들은 모두가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고 대(對)할 수도 없는 한 모양[一相]이니, 이른바 무상[無相]이니라.
수보리야, 이런 인연 때문에 그대가 말한 마하연은 반야바라밀을 따른 것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마하연은 반야바라밀과 다르지 않고 반야바라밀도 마하연과 다르지 않으니, 반야바라밀과 마하연은 둘이 없고 구별도 없기 때문이니라.
단나바라밀은 마하연과 다르지 않고 마하연도 단나바라밀과 다르지 않으니, 단나바라밀과 마하연은 둘이 없고
구별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아가 선나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4념처는 마하연과 다르지 않고 마하연도 4념처와 다르지 않으니, 4념처와 마하연은 둘이 없고 구별도 없기 때문이니라. 또한 18불공법은 마하연과 다르지 않고 마하연도 18불공법과 다르지 않으니, 18불공법과 마하연은 둘이 없고 구별도 없기 때문이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그대가 말한 마하연은 곧 반야바라밀을 말한 것이니라.”

25. 십무품(十無品)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의 전제(前際)는 얻을 수 없고 후제(後際)도 얻을 수 없으며 중제(中際)도 얻을 수 없습니다.
물질[色]은 끝이 없기[無邊] 때문에 보살마하살도 또한 끝이 없다고 알아야 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도 끝이 없기 때문에 보살마하살도 또한 끝이 없다고 알아야 합니다. 물질이 바로 보살마하살이라도 이것 또한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바로 보살마하살이라도 이것 또한 얻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온갖 종류와 온갖 처소에서 보살을 구한다 해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세존이시여, 제가 어떠한 보살마하살에게 반야바라밀을 가르치겠는지요?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입니다. 마치 나라는 이름을 말할 때에 나는 마침내 나지 않는[畢竟不生] 것과 같습니다. 마치 나와 같이 모든 법도 또한 그와 같아서 자기 성품[自性]이 없으니, 어떠한 물질도 마침내 나지 않으며, 어떠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마침내 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마침내 나지 않으므로 물질이라 하지 못하며, 이것이 마침내 나지 않으므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라 하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침내 나지 않는 법이라면 그 누구에게 이 반야바라밀을 가르치겠습니까?
마침내 나지 않는 것을 여의고서 또한 보살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행하는 이도 없습니다.
만일 보살이 이런 말을 듣고 마음이 위축되거나 후회하지 않으며,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이 보살마하살이야말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보살마하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고 후제도 얻을 수 없으며, 중제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지요?
수보리여, 무슨 인연으로 ‘물질은 끝이 없기 때문에 보살도 또한 끝이 없는 줄 알아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끝이 없기 때문에 보살도 또한 끝이 없다고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지요?
수보리여, 무슨 인연으로 ‘물질이 바로 보살이라도 이것 또한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바로 보살이라도 이것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지요?
수보리여, 무슨 인연으로 ‘온갖 종류와 온갖 처소에서도 보살은 얻을 수 없거늘 어떠한 보살에게 반야바라밀을 가르쳐야 하는가’라고 말하는지요?
수보리여, 무슨 인연으로 ‘보살마하살은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고 말하는지요?
수보리여, 무슨 인연으로 ‘마치 나의 이름을 말할 때에 나는 마침내 나지 않는 것처럼 나와 같이 모든 법도 또한 그러하여 자기 성품이 없으니, 어떠한 물질도 마침내 나지 않으며, 어떠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마침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지요?
수보리여, 무슨 인연으로 ‘마침내 나지 않으므로 물질이라 하지 못하고 마침내 나지 않으므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라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지요?
수보리여, 무슨 인연으로 ‘만일 마침내 나지 않는 법이라면 그 누구에게 이 반야바라밀을 가르쳐야 하는지요’라고 말하는지요?
수보리여, 무슨 인연으로 ‘마침내 나지 않는 것을 여의고는 또한 보살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행하는 이도 없다’고 말하는지요?
수보리여, 무슨 인연으로 ‘
만일 보살이 이런 말을 듣고도 마음이 위축되거나 후회하지 않으며,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행할 수 있는 이야말로 바로 보살마하살로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이라 한다’고 말하는지요?”
그때에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대답했다.
“중생은 있는 바가 없기[無所有] 때문에 보살의 전제(前際)는 얻을 수 없고, 중생은 공(空)하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으며, 중생은 여의기[離]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물질은 여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으며, 물질은 공하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공하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으며, 물질은 여의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여의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물질의 성품[性]은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성품도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단나바라밀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고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공한 가운데에서는 전제를 얻을 수 없고 후제도 얻을 수 없고 중제도 얻을 수 없으며, 공은 보살과 다르지 않고 보살은 전제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공과 보살과 전제의 이 모든 법은 둘이 없고 구별도 없으니,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단나바라밀은 공하기 때문에, 단나바라밀은 여의기 때문에,
단나바라밀은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은 공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여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공한 가운데에서는 전제를 얻을 수 없고 후제도 얻을 수 없고 중제도 얻을 수 없으며, 공은 보살과 다르지 않고 보살도 전제와 다르지 않고 보살도 전제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공과 보살과 전제라는 이 모든 법은 둘이 없고 구별도 없으니,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내공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고 또한 무법유법공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내공은 공하기 때문에, 내공은 여의기 때문에, 내공은 성품이 없기 때문에, 또한 무법유법공은 공하기 때문에, 여의기 때문에,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나니, 그 밖의 다른 것도 위에서의 설명과 같습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4념처는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으며, 4념처는 공하기 때문에, 여의기 때문에,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18불공법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으며, 18불공법은 공하기 때문에, 여의기 때문에,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밖의 다른 것도 위에서의 설명과 같으니,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모든 삼매문과 모든 다라니문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삼매문과 다라니문은
공하기 때문에, 여의기 때문에,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나니, 그 밖의 다른 것도 위에서의 설명과 같습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법성(法性)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법성은 공하기 때문에, 여의기 때문에,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나니, 그 밖의 다른 것도 위에서의 설명과 같습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여(如)는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공하기 때문에, 여의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실제(實際)는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공하기 때문에, 여의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은 있는 바가 없고 공하고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밖의 다른 것도 위에서의 설명과 같습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성문(聲聞)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성문은 공하기 때문에, 여의기 때문에,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벽지불(辟支佛)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공하기 때문에 여의기 때문에,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공하기 때문에, 여의기 때문에,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나아가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다시 일체종지(一切種智)는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또한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공에서는 전제를 얻을 수 없고 후제도 얻을 수 없고 중제도 얻을 수 없으며, 보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공은 보살과 다르지 않고 또한 전제와 다르지도 않으니, 공과 보살과 전제라는 이 모든 법은 둘이 없고 구별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보살의 전제는 얻을 수 없으니, 후제와 중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사리불의 말씀과 같아서 물질은 끝이 없기 때문에 보살도 또한 끝이 없다고 알아야 하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끝이 없기
때문에 보살도 또한 끝이 없다고 알아야 합니다.
사리불이여, 물질은 마치 허공과 같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허공의 끝[邊]은 얻을 수 없고, 중간[中]도 얻을 수 없으며, 끝도 없고 중간도 없기 때문에 단지 허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물질의 끝은 얻을 수 없고 중간도 얻을 수 없나니, 이 물질은 공하기 때문이며, 그 공에는 또한 끝도 없고 중간도 없습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끝을 얻을 수 없고 중간도 얻을 수 없나니, 의식은 공하기 때문이며 그 공에는 또한 끝도 없고 중간도 없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사리불이여, 물질은 끝이 없기 때문에 보살도 또한 끝이 없다고 알아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끝이 없기 때문에 보살도 또한 끝이 없다고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18불공법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마치 사리불께서 말씀하셨듯이 물질이 바로 보살이라도 이것 또한 얻을 수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바로 보살이라도 이것 또한 얻을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물질은 물질의 모양이 공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양이 공합니다.
단나바라밀은 단나바라밀의 모양이 공하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내공(內空)은 내공의 모양이 공하고 또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은 무법유법공의 모양이 공하며, 4념처(念處)는 4념처의 모양이 공하고 18불공법(不共法)은 18불공법의 모양이 공하며,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ㆍ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은 여ㆍ법성ㆍ실제ㆍ불가사의성의 모양이 공합니다.
삼매문(三昧門)은 삼매문의 모양이 공하고 다라니문(陀羅尼門)은 다라니문의 모양이 공하며, 일체지(一切智)는 일체지의 모양이 공하고 도종지(道種智)1)는 도종지의 모양이 공하며, 일체종지(一切種智)는 일체종지의 모양이 공합니다.
성문승(聲聞乘)은 성문승의 모양이 공하고 벽지불승(辟支佛乘)은 벽지불승의 모양이 공하며,
불승(佛乘)은 불승의 모양이 공하고 성문의 사람은 성문의 사람의 모양이 공하며, 벽지불은 벽지불의 모양이 공하고 부처님은 부처님의 모양이 공합니다.
공한 가운데에서는 물질을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물질이 바로 보살이라도 이것 또한 얻을 수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바로 보살이라도 이것 또한 얻을 수 없습니다.
마치 사리불께서 말씀한대로 무슨 인연으로 온갖 처소와 온갖 종류에서도 보살은 얻을 수 없거늘 어떠한 보살에게 반야바라밀을 가르치겠습니까. 사리불이여, 물질[色]은 물질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물질은 느낌[受]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느낌은 느낌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느낌은 물질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느낌은 생각[想]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생각은 생각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생각은 물질과 느낌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생각은 지어감[行]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지어감은 지어감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지어감은 물질과 느낌과 생각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지어감은 분별[識]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의식은 의식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의식은 물질과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눈[眼]은 눈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눈은 귀[耳]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귀는 귀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귀는 눈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귀는 코[鼻]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코는 코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코는 눈과 귀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코는 혀[舌]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혀는 혀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혀는 눈과 귀와 코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혀는 몸[身]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몸은 몸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몸은 눈과 귀와 코와 혀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몸은 뜻[意]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뜻은 뜻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뜻은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6입(入)과 6식(識)과 6촉(觸)과 6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受]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단나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와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와 4념처에서 18불공법까지와 4념처에서 18불공법까지와 온갖 삼매문ㆍ온갖 다라니문ㆍ법성(法性)에서 벽지불의 법까지와 초지(初地)에서 10지(地)까지와 일체지ㆍ도종지ㆍ일체종지도 또한 그와 같으며, 수다원(須陀洹)에서 아라한까지와 벽지불이나 보살ㆍ부처님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보살은 보살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보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으며,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반야바라밀은 보살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교화(敎化)는 있는 바가 없으므로 얻을 수 없고 교화하는 가운데에서도 교화는 있는 바가 없으므로 얻을 수 없으며, 교화하는 가운데에서도 보살과 반야바라밀은 있는 바가 없으므로 얻을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모든 법은 있는 바가 없으므로 얻을 수 없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온갖 처소와 온갖 종류에서도 보살은 얻을 수 없거늘 어떠한 보살에게 반야바라밀을 가르치겠습니까.
마치 사리불께서 말씀한 대로 무슨 인연으로 보살마하살은 단지 임시의 이름[假名]만이 있을 뿐이냐 하면, 사리불이여, 물질 이것은 임시의 이름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이것도 임시의 이름입니다. 물질이라는 이름은 물질이 아니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라는 이름도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름은 이름의 모양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공하다면 보살이 아니니,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보살은 단지 임시의 이름만이 있을 뿐입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단나바라밀은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이름 가운데에 반야바라밀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단나바라밀 가운데에도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은 단지 임시의 이름만이 있을 뿐입니다.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도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이름 가운데에는 반야바라밀이 있지 않으며, 반야바라밀 가운데에도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은 다만 임시의 이름만이 있을 뿐입니다.
사리불이여, 내공은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며,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름 가운데에는 내공이 없고 내공 가운데에도 이름이 없나니, 왜냐하면 이름과 내공은 다 같이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보살은 단지 임시의 이름만이 있을 뿐입니다.
사리불이여, 4념처는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며, 18불공법까지도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온갖 삼매의 문과 온갖 다라니의 문과 일체종지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나는 말하기를 “보살은 단지 임시의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고 했던 것입니다.
마치 사리불께서 말씀한 대로 무슨 인연으로 나라는 이름은 마침내 나지 않느냐 하면, 사리불이여, 나는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나는 것[生]이 있다 하겠으며 또한 아는 이[知者]ㆍ보는 이[見者]도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나는 것이 있다 하겠습니까.
사리불이여, 물질은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나는 것이 있다 하겠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나는 것이 있다 하겠습니까. 눈은 마침내 없고 또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도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나는 것이 있다 하겠습니다.
단나바라밀은 마침내 얻을 수 없고 나아가 반야바라밀까지도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나는 것이 있다 하겠습니까. 내공은 마침내 얻을 수 없고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나는 것이 있다 하겠습니까. 4념처는 마침내 얻을 수 없고 나아가 18불공법까지도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나는 것이 있다 하겠습니까. 모든 삼매의 문과 모든 다라니의 문은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나는 것이 있다 하겠으며, 성문에서 부처님까지도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나는 것이 있다 하겠습니까.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나는 말하기를 “마치 나라는 이름과 같아서 나도 또한 마침내 나지 않는다”고 했던 것입니다.
사리불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같아서 모든 법도 또한 그와 같이 자기 성품[自性]이 없다”고 하셨듯이, 사리불이여, 모든 법은 화합하여 생기는 까닭에 자기 성품이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무엇이 화합하여 생기는 까닭에 자기 성품이 없느냐 하면, 사리불이여, 물질[色]은 화합하여 생기는 까닭에 자기 성품이 없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은 화합하여 생기는 까닭에 자기 성품이 없습니다. 눈[眼]은 화합하여 생기는 까닭에 자기 성품이 없고, 나아가 뜻[意]은 화합하여 생기는 까닭에 자기 성품이 없습니다.
빛깔[色] 내지 법(法), 눈의 경계[眼界] 내지 법의 경계[法界], 땅의 요소[地種] 내지 의식의 요소[識種], 눈의 접촉[眼觸] 내지 뜻의 접촉[意觸],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受] 내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은 화합하여 생기는 까닭에 자기 성품이 없습니다.
단나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은 화합하여 생기는 까닭에 자기 성품이 없으며, 4념처 내지 18불공법은 화합하여 생기는 까닭에 자기 성품이 없습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모든 법은 무상하되 또한 잃어버리지도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떠한 법이 무상하되 또한 잃어버리지도 않는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물질은 무상하되 또한 잃어버리지 않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또한 무상하되 또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법이 무상하면 곧 그것은 움직이는 모양[動相]이며, 그것은 곧 공한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온갖 유위(有爲)의 법은 무상하되 또한 잃어버리지도 않습니다.

유루(有漏)의 법과 무루(無漏)의 법과 유기(有記)의 법과 무기(無記)의 법도 무상하되 또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법이 무상하다면 곧 그것이 움직이는 모양이요 그것이 곧 공한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온갖 조작되는 법[作法]은 무상하되 또한 잃어버리지도 않습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모든 법은 항상한 것[常]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滅]도 아닙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어떠한 법이 항상한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닌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물질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항상한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도 항상한 것이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모든 법은 화합하여 생기는 까닭에 자기 성품이 없습니다.
마치 사리불께서 말씀한 대로, 무슨 인연으로 물질은 마침내 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마침내 나지 않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물질은 조작되는 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짓는 이[作者]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눈은 조작되는 법이 아니니, 왜냐하면 짓는 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뜻도 또한 그와 같으며 눈의 경계에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모든 느낌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온갖 법들은 일으키는[起] 것도 아니고 짓는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짓는 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물질은 마침내 나지 않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마침내 나지 않습니다.
마치 사리불께서 말씀한 대로, 무슨 인연으로 ‘마침내 나지 않는다면, 이것을 물질이라 하지 못하고 마침내 나지 않는다면, 이것을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라고 하지 못한다’고 하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물질의 성품은 공하며, 이 공에는 나는 것[生]이 없고 없어지는 것[滅]도 없으며, 머무르는 것[住]도 없고 달라지는 것[異]도 없기 때문입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성품도 공하며, 이공에는 나는 것이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머무르는 것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눈에서 온갖 유위의 법에 이르기까지의 성품은 공하며, 이공에는 나는 것이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머무르는 것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마침내 나지 않는다면 이것을 물질이라 하지 못하며, 마침내 나지 않는다면 이것을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라 하지 못합니다.
마치 사리불께서 말씀한 대로, 무슨 인연으로 마침내 나지 않는 법이거늘 이 반야바라밀을 가르쳐야 하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마침내 나지 않는 것이 곧 반야바라밀이요 반야바라밀이 곧 마침내 나지 않은 것이니, 반야바라밀과 마침내 나지 않은 것은 둘이 아니고 구별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저는 ‘마침내 나지 않거늘 이 반야바라밀을 가르쳐야 합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치 사리불께서 말씀하셨듯이, 무슨 인연 때문에 ‘마침내 나지 않는 것을 여의고는 보살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행하는 이도 없다’고 하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마침내 나지 않는 것[畢竟不生]이 반야바라밀과 다르다고 보지 않으며 또한 마침내 나지 않은 것이 보살과 다르다고 보지 않나니, 마침내 나지 않는 것과 보살은 둘이 없고 구별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나지 않는 것이 물질과 다르다고 보지 않나니, 왜냐하면 이 마침내 나지 않는 것과 물질은 둘이 없고 구별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나지 않는 것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과 다르다고 보지 않나니, 왜냐하면 마침내 나지 않는 것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둘이 없고 구별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마침내 나지 않는 것을 여의고는 보살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행하는 이가 없습니다.
마치 사리불께서 말씀한 대로, 무슨 인연으로 보살이 이런 말을 듣고도 마음이 위축되거나 후회하지 않으며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보살로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이라 하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반야바라밀은 모든 법에는 깨달아 아는 모양[覺知相]이 있다고 보지 않으며, 온갖 법들은 마치 꿈과 같고 환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메아리와 같으며 변화한 것과 같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은 이런 말을 듣고도 마음이 위축되거나 후회하지 않으며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와 같이 모든 법을 관찰합니다. 이때에 보살마하살은 물질을 받아들이지 않고 물질을 보지도 않고 물질에 머무르지도 않고 물질에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이것이 물질’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역시 받아들이거나 보거나 머무르거나 집착하지 않으면서, 또한 ‘이것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다’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눈을 받아들이지 않고 보지 않고 머물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서 역시 ‘이것이 눈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역시 받아들이거나 보거나 머무르거나 집착하지 않으면서, 또한 ‘이것은 뜻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나바라밀을 받아들이지 않고 보지 않고 머무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이것이 단나바라밀이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도 역시 받아들이거나 보거나 머무르거나 집착하지 않으면서, 또한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공을 받아들이지 않고 보지 않고 머무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이것이 내공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4념처를 받아들이지 않고 보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이것이 4념처이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18불공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보지 않고 머무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이것이 18불공법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온갖 삼매의 문과
온갖 다라니의 문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도 받아들이지 않고 보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이것이 일체종지이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물질을 보지 않으며, 나아가 일체종지를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나지 않는 것[不生]이어서 그것은 물질이 아니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아니며, 눈은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눈이 아니요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아니며, 단나바라밀은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단나바라밀이 아니며, 또한 반야바라밀은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물질과 나지 않은 것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이며, 나아가 반야바라밀과 나지 않는 것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내공은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내공이 아닙니다.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무법유법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는 나지 않는 것으로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4념처는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4념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4념처와 나지 않는 것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나지 않는 법[不生法]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며, 셋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4념처와 나지 않는 것과는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또한 18불공법은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18불공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18불공법과 나지 않은 것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나지 않는 법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며, 셋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18불공법은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18불공법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如)는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여가 아니며, 또한 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은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불가사의성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나지 않는 것이요 일체지(一切智)와 일체종지(一切種智)도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일체종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일체종지까지와 나지 않는 것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나지 않는 법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또한 일체종지는 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은 일체종지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은 없어지지 않는 모양[不滅相]이어서 그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물질과 없어지지 않는 모양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없어지지 않는 법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며, 셋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은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어서 그것도 물질이 아닙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어서 그것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의식과 없어지지 않는 것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없어지지 않는 법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며, 셋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식은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어서 그것은 의식이 아닙니다.
단나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와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와 4념처에서 18불공법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때문에 물질은 둘이 없는 법의 범주[無二法數]에 들어가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둘이 없는 법의 범주에 들어가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둘이 없는 법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26. 무생품(無生品)

그때 혜명 사리불(舍利弗)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모든 법을 관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보살이고, 무엇이 반야바라밀이며, 무엇이 관(觀)인지요?”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그대가 묻는 바와 같아서, 무엇이
보살이냐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이 사람은 큰 마음[大心]을 일으키니, 이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또한 온갖 법과 온갖 종류의 모양을 알면서도 이 가운데에서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물질의 모양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않으며, 나아가 18불공법을 알면서도 또한 집착하지 않는 이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이 온갖 법의 모양[法相]인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만일 이름은 인연(因緣)으로 화합한다는 등으로 모든 법을 알며, ‘이것은 빛깔[色]이다, 이것은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이다, 이것은 안[內]이다, 이것은 바깥[外]이다, 이것은 유위의 법[有爲法]이다, 이것은 무위의 법[無爲法]이다’고 하면서 이런 이름의 모양과 언어로써 모든 법을 안다면 이것을 모든 법의 모양을 안다고 합니다.
마치 사리불께서 묻듯이 무엇이 반야바라밀이냐 하면, 멀리 여의기[遠離]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 합니다. 어떤 법을 멀리 여의느냐 하면, 중(衆)ㆍ계(界)ㆍ입(入)을 멀리 여의고, 단나바라밀에서 선나바라밀까지를 멀리 여의며,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를 멀리 여의나니, 이 때문에 멀리 여의는 것을 반야바라밀이라 합니다.
또한 4념처를 멀리 여의며, 나아가 18불공법을 멀리 여의고 일체지를 멀리 여의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멀리 여의는 것을 반야바라밀이라 합니다.
마치 사리불께서 묻듯이 무엇이 관(觀)이냐 하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물질은 항상한[常] 것도 아니고 무상(無常)한 것도 아니며, 즐거운[樂] 것도 아니고 괴로운[苦] 것도 아니며, 나[我]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없는[無我] 것도 아니며, 공(空)한 것도 아니고 공하지 않은[不空] 것도 아니며, 모양[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양이 없는[無相] 것도 아니며, 지음[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음이 없는[無作] 것도 아니며, 고요히 사라진[寂滅] 것도 아니고 고요히 사라지지 않은[不寂滅] 것도 아니며, 여읜[離] 것도 아니고 여의지 않은[不離]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나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단나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와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와
4념처에서 18불공법까지와 온갖 삼매문과 온갖 다라니문에서 일체종지까지도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며, 즐거운 것도 아니고 괴로운 것도 아니며, 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없는 것도 아니며, 공한 것도 아니고 공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며, 지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음이 없는 것도 아니며, 고요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고요히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며, 여읜 것도 아니고 여의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관찰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법을 관찰한다고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물질은 나지 않는 것이어서 곧 물질이 아니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나지 않는 것이어서 곧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아니며, 나아가 일체종지는 나지 않는 것이어서 곧 일체종지가 아닌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물질은 물질로서의 모양이 공하며, 물질의 공함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나는 것도 없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물질은 나지 않는 것이어서 곧 물질이 아닙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로서의 모양이 공하며, 나아가 의식의 공함 가운데에는 의식도 없고 나는 것도 없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나는 것이 아니어서 곧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아닙니다.
사리불이여, 단나바라밀은 단나바라밀로서의 모양이 공하며, 단나바라밀의 공함 가운데에는 단나바라밀도 없고 나는 것도 없습니다.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로서의 모양이 공하며, 반야바라밀의 공함 가운데에는 반야바라밀도 없고 나는 것도 없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반야바라밀은 나는 것도 아니어서 곧 반야바라밀이 아닙니다.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와 4념처에서 18불공법ㆍ일체종지까지도 또한 그와 같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내공은 나지 않는 것이어서 곧
내공이 아니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나는 것이 아니어서 곧 일체종지가 아닙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인연으로 ‘물질은 둘이 아니어서[不二] 곧 물질이 아니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둘이 아니어서 곧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아니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둘이 아니어서 곧 일체종지가 아니다’고 하시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있는 바 물질[所有色]은 그 있는 바[所有]가 둘이 아니요 온갖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모두가 둘이 아닙니다. 이 온갖 법은 모두가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대할 수도 없는 한 모양이어서 이른바 모양이 없나니, 눈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물질은 둘이 아니므로 곧 물질이 아니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아니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둘이 아니므로 곧 일체종지가 아닙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이 물질은 둘이 없는 법의 범주[無一法數]에 들어가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둘이 없는 법의 범주에 들어가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둘이 없는 법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하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물질은 남이 없는[無生] 것과 다르지 않고 남이 없는 것은 물질과 다르지 않나니, 물질이 곧 남이 없는 것이요 남이 없는 것이 곧 물질입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남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고 남이 없는 것도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과 다르지 않으니, 의식이 곧 남이 없는 것이요 남이 없는 것이 곧 의식입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물질은 둘이 없는 법의 범주에 들어가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둘이 없는 법의 범주에 들어가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이와 같이 모든 법을 관찰합니다. 이때에 ‘물질은 남이 없으니[無生],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보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남이 없으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보며, ‘나는 남이 없고, 나아가
아는 이[知者]ㆍ보는 이[見者]도 남이 없으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봅니다.
‘단나바라밀은 남이 없으며 나아가 반야바라밀까지도 남이 없으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다’라도 보며, ‘내공은 남이 없으며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남이 없으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보며, ‘4념처는 남이 없으며 나아가 18불공법까지도 남이 없으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보며, ‘온갖 삼매와 온갖 다라니도 남이 없으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보며, ‘온갖 삼매와 온갖 다라니도 남이 없으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보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남이 없으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봅니다.
‘범부와 범부의 법은 남이 없으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보며, ‘수다원과 수다원의 법ㆍ사다함과 사다함의 법ㆍ아나함과 아나함의 법ㆍ아라한과 아라한의 법ㆍ벽지불과 벽지불의 법ㆍ보살과 보살의 법ㆍ부처님과 부처님의 법도 남이 없으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내가 수보리께서 하신 말씀의 이치를 들어보건대, ‘물질 이것은 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이것도 나지 않으며 나아가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도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군요.
만일 그렇다면 수다원과 수다원의 과위[果]ㆍ사다함과 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과 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과 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과 벽지불의 도(道)는 얻지 못해야 하고, 보살마하살도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지 못해야 하며, 또한 6도(道)의 다름도 없어야 하고 또한 보살마하살의 다섯 가지 보리[五種菩提]도 얻지 못해야 합니다.
수보리여, 만일 모든 법이 나지 않는 모양이라면 무엇 때문에 수다원은 3결(結)을 끊기 위하여 도를 행하고, 사다함은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얇게 하기 위하여 도를 닦는지요? 무엇 때문에 아나함은 5하분결(下分結)을 끊기 위하여 도를 닦고, 아라한은 5상분별(上分結)을 끊기 위하여
도를 닦으며, 벽지불은 벽지불의 법을 위하여 도를 닦는지요?
무엇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하기 어려운 행[難行]을 행하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갖가지의 고통을 받는지요? 무엇 때문에 부처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시는지요? 무엇 때문에 부처님은 법륜(法輪)을 굴리시는지요?”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나는 남이 없는 법[無生法]으로 하여금 얻는 바[所得]가 있게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또한 남이 없는 법 가운데에서 수다원과 수다원의 과위를 얻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나아가 남이 없는 법 가운데에서 아라한과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과 벽지불의 도를 얻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나는 또한 남이 없는 법 가운데에서 보살로 하여금 하기 어려운 행을 지어서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 고통을 받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니, 보살도 또한 행하기 어렵다는 마음으로 도를 행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어렵다는 마음과 괴롭다는 마음을 내면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지금 보살은 중생을 가엾이 여겨 중생을 마치 부모와 형제와 같이 생각하고 아들과 내 몸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와 같아야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있나니, 이는 얻을 바 없기[無所得] 때문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나를 온갖 처소와 온갖 종류에서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안팎의 법도 그와 같다’고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러한 생각을 내면 어렵다는 마음이나 괴롭다는 마음은 없어지게 되나니, 왜냐하면 이 보살은 온갖 종류와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나는 또한 남이 없는 또한 남이 없는 법 가운데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기를 바라지 않고, 또한 남이 없는 법 가운데에서 법륜을 굴리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또한 남이 없는 법으로써 도를 얻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지금은 나는 법[生法]으로써 도(道)를 얻게 하시려는지요? 아니면 남이 없는 법[無生法]으로써
도를 얻게 하시려는지요?”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나는 나는 법[生法]으로써 도를 얻게 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지금 수보리께서는 남이 없는 법으로써 도를 얻게 하려고 하시려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나는 또한 남이 없는 법으로써도 도를 얻게 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수보리께서 하신 말씀과 같아서는 아는 것[知]도 없고 얻는 것[得]도 없겠습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아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는 것은 그 두 가지 법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세간의 이름 때문에 아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며 세간의 이름 때문에 수다원에서 아라한과 벽지불까지 모든 부처님까지도 있는 것이지 첫째가는 진실한 이치[第一實義] 가운데에서는 아는 것도 없고 얻는 것이 없으며, 수다원도 없고 나아가 모든 부처님까지도 없습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수보리여, 만일 세간의 이름 때문에 아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다면 6도(道)의 다른 것도 또한 세간의 이름 때문에 있을 뿐, 첫째가는 진실한 이치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마치 세간의 이름 때문에 아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는 것처럼, 6도(道)의 다른 것도 또한 세간의 이름 때문에 있을 뿐, 첫째가는 진실한 이치 때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첫째가는 진실한 이치 가운데에는 업(業)도 없고 보(報)도 없으며, 나는 것[生]도 없고 없어지는 것[滅]도 없으며, 깨끗한 것[淨]도 없고 더러운 것[垢]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나지 않는 법[不生法]에서 나는지요? 아니면 난 법[生法]에서 나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나는 나지 않는 법에서 나게 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난 법에서 나게 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어떠한 나지 않는 법에서 나게 하려고 하지도 않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물질 이것은 나지 않는 법[不生法]이어서 자상이 공하므로 나게 하려고 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나지 않는 법이어서 자기 성품이 공하므로 나게 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나지 않는 법이어서 자기 성품이 공하므로 나게 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난 것[生]에서 나는지요?
아니면 나지 않는 것[不生]에서 나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난 것에서 나는 것도 아니요, 나지 않는 것에서 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나고 나지 않는 이 두 가지 법은 합하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대할 수도 없는 한 모양이라서 이른바 모양이 없기[無相]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런 인연 때문에 난 것에서 나는 것도 아니요 나지 않은 것에서 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때에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수보리께서는 남이 없는 법[無生法]을 즐겨 말씀하시고, 남이 없는 모양[無生相]을 즐겨 말씀하시는군요.”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나는 남이 없는 법을 즐겨 설명하고 또한 남이 없는 모양을 즐겨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남이 없는 법과 남이 없는 모양의 요설(樂說)과 그 언어(言語)의 온갖 법은 모두가 합하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대할 수도 없는 한 모양이라서 이른바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당신이 좋아하면서 설명하는 나지 않는 법[不生法]과 또한 좋아하면서 설명하는 나지 않는 모양[不生相]의 이 요설과 언어도 또한 나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참으로 그와 같습니다, 사리불이여.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물질은 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나지 않으며, 눈[眼]도 나지 않고 나아가 뜻[意]까지도 나지 않으며, 땅의 요소[地種]도 나지 않고 나아가 의식까지의 요소[識種]도 나지 않으며, 몸의 행[身行]도 나지 않고 입의 행[口行]도 나지 않고 뜻의 행[意行]도 나지 않으며, 단나(檀那)바라밀도 나지 않고 나아가 일체종지(一切種智)까지도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제가 좋아하면서 설명하는 나지 않는 법과 또한 좋아하면서 설명하는 나지 않는 모양의 이 요설과 언어도 또한 나지 않습니다.”
그때에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수보리께서는 설법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으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당신은 묻는 바대로 모두 잘 대답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모든 법은 의지하는 바[所依]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모든 법은 의지하는 바가 없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물질의 성품은 항상 공하여서 안[內]에 의지하지 않고 바깥[外]에 의지하지 않고 두 중간(中間)에도 의지 하지 않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성품도 항상 공하여서 안에 의지하지 않고 바깥에 의지하지 않고 두 중간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성품도 항상 공하여서 안에 의지하지 않고 바깥에 의지하지 않고 두 중간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빛깔[色]의 성품도 항상 공하고, 나아가 법에 이르기까지도 그 성품이 공하여서 안에 의지하지 않고 바깥에 의지하지 않고 두 중간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단나바라밀의 성품도 항상 공하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의 성품도 항상 공하여서 안에 의지하지 않고 바깥에 의지하지 않고 두 중간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내공(內空)의 성품도 항상 공하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의 성품도 항상 공하여서 안에 의지하지 않고 바깥에 의지하지 않고 두 중간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4념처(念處)의 성품도 항상 공하고, 나아가 일체종지(一切種智)의 성품도 항상 공하여서 안에 의지하지 않고 바깥에 의지하지 않고 두 중간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모든 법은 의지하는 바가 없나니, 성품이 항상 공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청정하게 하여야 하고, 나아가 일체종지를 청정하게 하여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보살의 도[菩薩道]를 청정하게 하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세간(世間)의 단나(檀那)바라밀이 있고 출세간(出世間)의 단나바라밀이 있으며, 시라(尸羅)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에도 세간이 있고 출세간이 있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이 세간의 단나바라밀이며, 무엇이 출세간의 단나바라밀인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시주(施主)가 되면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이나 빈궁한 걸인에게 보시하면서 그들이 먹을 것을 구하면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구하면 마실 것을 주며, 옷을 구하면 옷을 주고 침구와 평상ㆍ방사(房舍)ㆍ향ㆍ꽃ㆍ영락 및 의약품 등의 갖가지 살림살이와 처자와 국토와 머리ㆍ눈ㆍ손ㆍ발과 뼈마디 등 안팎의 물건들을 남김없이 다 베풀어 줍니다.
이렇게 보시할 때에 생각하기를 ‘나는 주고 그는 가지며, 나는 간탐하지 않고 나는 시주가 되며, 나는 온갖 것을 능히 버리고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보시하며, 나는 단나바라밀을 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시를 한 뒤에는 그 얻은 법으로써 온갖 중생들과 함께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廻向)하면서 생각하기를 ‘이 보시한 인연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즐거움을 얻게 하고 뒤에는 반드시 열반에 들 수 있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보시에 세 가지의 장애[礙]가 있나니, 나라는 모양[我相]과 다른 이라는 모양[他相]과 베푸는 모양[施相]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모양에 집착하면서 보시하면 이것을 세간의 단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무슨 인연으로 세간이라 하느냐 하면, 세간 가운데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벗어나지도 못하므로 이것을 세간의 단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무엇을 출세간의 단나바라밀이라 하느냐 하면, 이른바 세 갈래가 청정한[三分淸淨] 것입니다. 무엇이 세 갈래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보시를 할 때에 나 자신을 얻을 수 없고 받는 이도 보지 않으며 보시하는 물건도 얻을 수 없으면서 또한 그 과보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세 갈래가 청정한 단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보시할 때에 모든 중생에게 베풀어 주면서도 이 중생 또한 얻을 수 없나니, 이런 보시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면서 이에 아주 미세(微細)한 법의 모양까지도 보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출세간의 단나바라밀이라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출세간이라 하느냐 하면, 세간 가운데에서 움직일 수도 있고 벗어날 수도 있으므로 이 때문에 출세간의 단나바라밀이라 합니다.
시라바라밀에도 의지하는 바[所依]가 있으면 이것은 세간의 시라바라밀이요 의지한 바가 없으면 이것은 출세간의 시라바라밀이라 하나니, 그 밖의 것은 단나바라밀에서의 설명과 같습니다.
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에도 의지하는 바가 있으면 이것은 세간이라 하며, 의지하는 바가 없으면 이것은 출세간이라 하나니, 그 밖의 것은 역시 단나바라밀 안에서의 설명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6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의 도를 청정하게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도(道)인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4념처(念處)가 바로 보살마하살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이며 나아가 8성도분(聖道分)ㆍ공해탈문(空解脫門)ㆍ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ㆍ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과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와 온갖 삼매문(一切三昧門)ㆍ온갖 다라니문[一切陀羅尼門]ㆍ부처님의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4무애지(無礙智)ㆍ18불공법(不共法)ㆍ대자(大慈)ㆍ대비(大悲)이니,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라 합니다.”
그때에 사리불이 수보리를 칭찬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그것은 어떠한 바라밀의 힘인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이것은 반야(般若)바라밀의 힘입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모든 착한 법인 성문의 법과 벽지불의 법과 보살의 법과 부처님의 법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반야바라밀은 모든 착한 법인 성문의 법과 벽지불의 법과 보살의 법과 부처님의 법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역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장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실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지금 현재 시방의 모든 국토 안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서도 역시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계십니다.
사리불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들었을 때에 의심하지 않고 어려워하지도 않는다면, 이 보살마하살이야말로 보리의 도를 행하는 이라고 알아야만 합니다.
보살의 도란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까닭에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버리지 않는 마음이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보살은 항상 이런 생각을 여의지 않아야 하나니, 이것을 대비(大悲)의 생각[念]이라 합니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항상 이런 생각 즉 대비의 생각을 여의지 않게 해야 하나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항상 대비의 생각을 여의지 않는다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보살이 되게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모든 중생도 또한 모든 생각[念]을 여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사리불이여, 당신은 나에게 어려운 질문을 해서 나의 말하려는 뜻[義]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중생은 없기[無] 때문에 생각[念]도 또한 없고, 중생은 성품[性]이 없기 때문에 생각도 또한 성품이 없으며, 중생은 법이 없기 때문에 생각도 또한 법이 없고 중생은 여의기[離] 때문에 생각도 또한 여의며, 중생은 공(空)하기 때문에 생각도 또한 공하고 중생은 알 수 없기[不可知] 때문에 생각도 또한 알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물질은 없기 때문에 생각도 또한 없고 물질은 성품이 없기 때문에 생각도 또한 성품이
없으며, 물질은 법이 없기 때문에 생각도 또한 법이 없고 물질은 여의기 때문에 생각도 또한 여의며, 물질은 공하기 때문에 생각도 또한 공하고 물질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생각도 또한 알 수 없나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눈에서 뜻까지와 빛깔에서 법까지와 땅의 요소에서 의식의 요소까지와 단나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와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와 4념처에서 18불공법까지와 온갖 삼매문ㆍ온갖 다라니문과 일체지ㆍ일체종지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없기 때문에 생각도 또한 없습니다.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생각도 또한 알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이런 도를 행하므로 나는 이런 생각 즉 대비의 생각을 여의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수보리를 칭찬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이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을 그 어떤 이가 설하게 된다면 역시 그대가 설했듯이 해야 하나니, 이 반야바라밀은 모두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설하는 까닭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우되 그대가 설한 바와 같이 배워야만 하느니라.”
수보리가 이 반야바라밀품(般若波羅密品)을 설할 때에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했으니, 곧 동쪽이 불룩 솟아오르면 서쪽이 우묵하게 들어가고 서쪽이 불룩 솟아오르면 동쪽이 우묵하게 들어가며 남쪽이 불룩 솟아오르면 북쪽이 우묵하게 들어가고 북쪽이 불룩 솟아오르면 남쪽이 우묵하게 들어가며 중간이 불룩 솟아오르면 변두리가 우묵하게 들어가며 변두리가 불룩 솟아오르면 중간이 우묵하게 들어갔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因)과 무슨 연(緣) 때문에 빙그레 웃으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내가 이 세계에서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처럼, 동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또한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하고 계시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위ㆍ아래에서도 역시 이 반야바라밀을 설하고 계시니라.”
이 반야바라밀품을 설하실 때에 12나유타(那由他)의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으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 반야바라밀을 설하실 때에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들이 역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27. 문주품(問住品)거란본에는 천주품(天主品)으로 되어 있음

그때에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의 모든 사천왕천(四天王天) 등에서는 각각 수없는 백천억의 하늘[天]들이 함께 와서 이 모임 안에 있었다. 또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석제환인(釋提桓因) 등의 모든 도리천(忉利天)과 수야마천왕(須夜摩天王) 등의 모든 야마천(夜摩天)과 산도솔타천왕(刪兜率陀天王) 등의 모든 도솔타천(兜率陀天)과 수열밀타천왕(須涅蜜陀天王) 등의 모든 묘화천(妙花天)과 바사발제천왕(婆舍跋提天王) 등의 모든 자재행천(自在行天)에서도 각각 수 없는 백천억의 하늘들이 함께 와서 이 모임 안에 있었으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범천왕(梵天王)에서 수타바(首陀婆)에 이르기까지 모든 하늘에서도 각각 수없는 백천억의 신들이 함께 와서 이 모임 안에 있었다.
이 모든 사천왕에서 수타바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들은 업보로 난 몸[業報生身]이라 그 광명은 부처님의 상광(常光)에 비해서 백분ㆍ천분ㆍ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이에 산수(算數)와 비유(譬喩)로써도 견줄 수가 없었다.
세존의 광명이야말로 가장 뛰어나고 가장 묘하며 맨 위이고 으뜸이시다. 모든 하늘들의 업보로 받은 광명이 부처님의 상광 곁에 있게 되자 비치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못했으니, 비유하건대 마치 등잔불의 심지를 염부단금(閻浮檀金)에 견주는 것 같았다.
그때에 석제환인이
대덕(大德) 수보리에게 물었다.
“이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사천왕천에서 수타바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들이 모두 다 한 데에 모여서 수보리께서 말씀하신 반야바라밀의 이치를 듣고자 합니다.
수보리시여,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머물러야 하는지요?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며,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는지요?”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대답했다.
“교시가(憍尸迦)여, 나는 이제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 받아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해설하겠습니다. 마치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머물러야 하듯이, 모든 천자(天子)들로서 아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 이는 마음을 일으켜야만 합니다. 모든 천자로서 만일 성문(聲聞)의 정위(正位)에 들어갔다면, 이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사(生死)에 대한 막이[障隔]를 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다면 나도 또한 따라 기뻐하겠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상인(上人)은 다시 더 높은 법[上法]을 구해야 하며, 나 역시 끝까지 그의 공덕을 끊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시가여, 무엇이 반야바라밀이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살바야(薩婆若)에 상응한 마음으로 물질[色]의 무상(無常)을 염(念)하고 물질의 괴로움[苦]을 염하며, 물질의 공(空)을 염하고 물질의 나 없음을 염합니다. 물질은 마치 질병[病]과 같고 황달병과 같고 등창병과 같고 부스럼과 같으며, 화살이 몸에 박힌 것 같아서 아프고 괴롭고 쇠약해지고 무너지고 근심되고 두렵고 편안하지 않다고 염하나니, 얻을 바가 없기[無所得] 때문입니다.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눈[眼]ㆍ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뜻[意]과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ㆍ허공[空]ㆍ분별[識]의 요소[種]의 무상함 내지 근심과 두려움과 불안(不安)을 관하나니, 이 또한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적멸(寂滅)을 관하며, 나지도 않고[不生] 없어지지도 않고[不滅] 더럽지도 않고[不垢] 깨끗하지도 않음을 여의나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땅의 요소 내지 의식의 요소의 적멸을 관하며,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음을 여의나니, 역시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무명(無明)이 연(緣)이 되는 모든 지어감[行] 내지 늙어 죽음[老死]의 인연(因緣)은 큰 고통더미가 쌓인 것이라고 관하나니, 역시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명이 사라지기[滅] 때문에 모든 지어감도 사라지고 나아가 나는 일[生]이 사라지기 때문에 늙어 죽음도 사라지며, 늙어 죽음이 사라지기 때문에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큰 고통더미도 사라진다고 관하나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4념처(念處)를 닦나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부처님의 10력(力)과 18불공법(不共法)을 닦나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단나바라밀을 행하나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요, 나아가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을 행하나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다음과 같이 관(觀)합니다.
‘단지 모든 법과 다른 모든 법이 서로 인(因)과 연(緣)을 같이하면서 윤택하여지고 더욱 자라서 분별하고 헤아릴 뿐이니, 이 가운데에는 나도 없고 내 것[我所]도 없다.
보살의 회향(廻向)하는 마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 가운데에 있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도 회향하는 마음 가운데에 있지 않으며 회향하는 마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도 회향하는 마음 가운데 또한 얻을 수 없다.’
보살은
비록 온갖 법을 관한다 하더라도 또한 법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라 합니다.”
석제환인이 대덕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살의 회향하는 마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 가운데에 있지 않고,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도 회향하는 마음 가운데에 있지 않는지요? 어떻게 회향하는 마음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고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도 회향하는 마음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는지요?”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대답했다.
“교시가여, 회향하는 마음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은 마음이 아니고 마음의 모양[心相]이 아니니, 마음의 모양이 아닌 가운데에서는 회향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모양이 아니고 늘 한마음의 모양이 아니며, 불가사의한 모양이고 항상 불가사의한 모양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라 합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수보리를 칭찬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수보리야. 그대는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마음을 편안하게 위로하였도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당연히 은혜를 갚아야 하오니, 은혜를 갚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제자들은 모든 보살을 위하여 6바라밀을 설하여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해주셨습니다.
세존께서도 그때에 그 안에 계시면서 배우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으며, 저도 지금 역시 모든 보살을 위하여 6바라밀을 설하여서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했다.
“교시가여, 그대는 이제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머물러야 할 바를 들어야 합니다.
교시가여, 물질은 물질이 공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공하며 보살은 보살이 공하나니, 이 물질의 공함과 보살의 공함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공함과 보살의 공함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이와 같이 머물러야만 합니다.
다시 눈은 눈이 공하고 나아가 뜻은 뜻이 공하며 보살은 보살이 공하나니, 눈의 공함과 보살의 공함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며 6진(塵)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땅의 요소[地種]는 땅의 요소가 공하고 나아가 의식의 요소[識種]는 의식의 요소가 공하며, 보살은 보살이 공하나니, 교시가여, 땅의 요소의 공함 내지 의식의 요소의 공함과 보살의 공함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합니다.
무명(無明)은 무명이 공하고 나아가 늙어 죽음[老死]은 늙어 죽음이 공하며, 무명의 사라짐[滅]은 무명의 사라짐이 공하고 나아가 늙어 죽음의 사라짐은 늙어 죽음의 사라짐이 공하며, 보살은 보살이 공하나니, 교시가여, 무명의 공함 내지 늙어 죽음의 공함과 무명이 사라짐의 공함 내지 늙어 죽음의 사라짐의 공함과 보살의 공함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합니다.”
단나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와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와 4념처에서 18불공법까지와 일체의 삼매문ㆍ일체의 다라니문과 성문승ㆍ벽지불승ㆍ보살승과 성문ㆍ벽지불ㆍ보살 및 부처님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일체지는 일체종지로서 공하고, 보살은 보살로서 공하니, 일체종지의 공함과
보살의 공함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이와 같이 머물러야만 합니다.”
그때에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머무르지 않아야 하는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물질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눈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나아가 뜻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빛깔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나아가 법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안식(眼識)에서 의식(意識)까지와 눈의 접촉[眼觸]에서 뜻의 접촉[意觸]까지와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受]에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까지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이며, 땅의 요소에서 의식의 요소까지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나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와 4념처에서 18불공법까지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다원(須陀洹)의 과위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보살의 도와 부처님의 도와 일체종지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물질이 항상하다[常]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물질이 무상(無常)하다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물질이 즐겁다[樂]는 데와 괴롭다[苦]는 데와 깨끗하다[淨]는 데와 깨끗하지 않다[不淨]는 데와 나[我]라는 데와 나 없다[無我]는 데와 공하다[空]는 데와 공하지 않다[不空]는 데와 고요히 사라진다[寂滅]는 데와 고요히 사라지지 않는다[不寂滅]는 데와 여읜다[離]는 데와 여의지 않는다[不離]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다시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수다원과의 무위의 모양[無爲相]ㆍ사다함과의
무위의 모양ㆍ아나함과의 무위의 모양ㆍ아라한과의 무위의 모양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벽지불도의 무위의 모양과 부처님 도의 무위의 모양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수다원의 복전(福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과 부처님의 복전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초지(初地)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제10지(地)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보살마하살은 처음 발심한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나는 단나바라밀을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나아가 ‘나는 반야바라밀을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6바라밀을 완전히 갖추어서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야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보살의 지위에 들어간 뒤에는 아비발치의 지위[阿毘跋致地]에 머물러야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보살은 5신통(神通)을 완전히 갖추어야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5신통에 머무른 뒤에는 ‘나는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에서 노닐면서 모든 부처님을 예배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며 법을 듣고 법을 들은 뒤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설해야 한다’고 하는 이러한 데에 보살은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은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치 모든 부처님께서 세계를 장엄하고 청정하게 하시듯이 나도 또한 세계를 장엄해야 한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생을 성취시켜 부처님의 도에 들게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에 계신 모든 부처님에게로 가서 존중하고 예경하고 공양하며 향ㆍ꽃ㆍ영락ㆍ택향(澤香)ㆍ도향(搗香)ㆍ당기ㆍ번기 및 화려한 일산과 백천억 가지의 보배옷을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해야 한다’고 하는 이러한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나는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의 이 다섯 가지 눈을 내야만 한다고 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온갖 삼매의 문에 머무르지도 않고 바라는 바대로 모든 삼매에 유희하리라’고 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나는 온갖 다라니의 문을 내야 한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나는 부처님의 10력(力)을 얻어야 한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나는 4무소외(無所畏)ㆍ4무애지(無礙智)ㆍ18불공법(不共法)을 얻어야 한다’고 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만 합니다.
‘나는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나는 32상(相)을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고 하는 데에 머루르지 않아야 하며, ‘나는 80수형호(隨形好)를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고 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8인(人)으로서 ‘그는 신행의 사람[信行人]이다. 그는 법행의 사람[法行人]이다’고 하는 이러한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수다원은 아무리 많더라도 일곱 번의 세상에서만 생을 받는다[極七世生]’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냐 하며, 가가(家家)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수다원은 목숨을 마치면서 더러움[垢]이 다한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수다원으로서 중간에 열반에 드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사다함의 증과(證果)를 향하여 닦는 이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이 사람은 사다함으로서 한번만 갔다가 와서는 열반에 드는 이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이 사람은 아나함의 증과를 향하여 닦는 이이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아나함은 일종(一種)이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이 사람은 아나함으로서 저 세간에서 열반에 드는 이다’고 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아라한의 증과를 향하여 닦는 이이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이 사람은 아라한으로서 이 세상에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는 이이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이 사람은 벽지불이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성문과 벽지불을 지나서 나는 보살의 지위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도종지(道種智) 가운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온갖 종류와 온갖 법을 알고 나서 모든 번뇌와 습기를 끊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부처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는 당연히 법륜(法輪)을 굴리신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불사(佛事)를 짓고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제도하고서 열반에 드신다’고 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4여의족(如意足)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이 삼매(三昧)에 들어가 머무르면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겁 동안 오래 산다’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나는 무앙수2)의 겁[無殃數劫] 동안 수명을 누리리라’고 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32상(相)의 낱낱 몸매의 백복(百福)으로 장엄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나의 한 세계는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수의 세계이다’라고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나의 삼천대천세계는 순전히 금강(金剛)으로 되리라’고 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보리수(菩提樹)는 이러한 향기를 내어서 중생들이 맡으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어지고, 또한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도 없어지며, 이 온갖 사람들은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야 한다. 그리고 중생으로서 이 향기를 맡은 이는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이 모두 다 없어져야 한다’고 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세계 안에서는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라는 이름조차도 없게 되어야 한다’고 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나의 세계 안에서는 단나바라밀이라는 이름이 없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이라는 이름조차도 없게 되어야 한다’고 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세계 안에서는 4념처라는 이름도 없고 나아가 18불공법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또한 수다원이라는 이름도 없고 나아가 부처님이라는 이름조차도 없게 되어야 한다’고 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에는 모든 법에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교시가여, 보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사리불은 “보살은 이제 어떻게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머물러야 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수보리는 사리불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고는 사리불에게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모든 부처님은 어딘가에 머무시는지요?”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모든 부처님은 머무시는 곳이 없습니다. 모든 부처님은 물질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가운데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유위의 성품[有爲性] 가운데에도 머무르지 않고 무위의 성품[無爲性] 가운데에도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18불공법 가운데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일체종지 가운데에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그와 같이 머물러야 합니다. 마치 모든 부처님께서 모든 법 가운데에 머무르되 머무른 것도 아니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닌 것처럼,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그와 같이 머물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또한 머무르지 않는 법[不住法]에 머물러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모임 안에 있던 모든 천자(天子)들이 생각하기를 “모든 야차(夜叉)들이 언어(言語)와 자구(字句)로 말하는 것도 오히려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수보리께서 말씀하신 언어나 논의(論議)나 해석하는 반야바라밀은 환히 알 수가 없구나”고 하였다.
수보리는 천자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모든 천자들에게 물었다.
“이해할 수도 없고 모르겠는지요?”
모든 천자들이 대답했다.
“대덕이시여, 이해할 수도 없고 모르겠습니다.”
수보리가 모든 천자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당연히 몰라야 합니다. 나는 논설한 바도 없고 한 글자도 말하지 않았으며 또한 듣는 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글자는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니,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듣는 이가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는 글자도 없고 말하는 이도 없습니다.
천자들이여, 마치 부처님께서 변화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변화로 된 사람이 다시 변화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사부중(四部衆)을 만들어 놓고 그 변화로 된 사람이 그 사부중
가운데에서 설법하고 있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 가운데에는 말하는 이가 있고 듣는 이도 있으며 아는 이도 있겠는지요?”
모든 천자들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수보리가 물었다.
“온갖 법은 모두가 변화한 것[化] 같아서, 이 가운데에는 말하는 이도 없고 듣는 이도 없고 아는 이도 없습니다.
천자들이여,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이 꿈속에서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것을 본 것과 같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가운데에는 말하는 이가 있고 듣는 이도 있으며 아는 이도 있는지요?”
모든 천자들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수보리가 천자들에게 물었다.
“온갖 법은 모두가 꿈과 같아서, 말하는 이도 없고 듣는 이도 없고 아는 이도 없습니다.
천자들이여, 비유하건대 마치 두 사람이 아주 깊은 산의 산골 물이 흐르는 곁에 있으면서 저마다 한쪽에 서서 불(佛)ㆍ법(法)ㆍ승(僧)을 찬탄하면 두 개의 메아리가 울리는 것과 같나니, 모든 천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두 개의 울리는 메아리는 서로가 점차로 이해할 수 있겠는지요?”
모든 천자들이 대답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수보리가 천자들에게 물었다.
“온갖 법은 또한 그와 같아서, 말하는 이도 없고 듣는 이도 없으며, 아는 이도 없습니다.
천자들이여, 비유하건대 마치 솜씨 좋은 환술사가 네거리 가운데다 변화로 부처님과 사부중을 만들어 놓고 그 가운데에서 설법을 하는 것과 같나니, 모든 천자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가운데에는 말하는 이도 있고 듣는 이도 있으며 아는 이도 있는지요?”
모든 천자들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수보리가 천자들에게 말했다.
“온갖 법들은 환(幻)과 같나니, 말하는 이도 없고 듣는 이도 없으며, 아는 이도 없습니다.”
그때에 모든 천자들은 생각했다.
“수보리께서 하신 말씀은 쉽게 이해시키려는 것이지만, 갈수록 더 깊고 갈수록 더 묘하구나.”
수보리는 천자들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모든 천자들에게 말했다.
“물질은 깊은 것이 아니고 묘한 것도 아니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깊은 것도 아니고 묘한 것도 아니며, 물질의 성품[性]은 깊은 것이 아니고 묘한 것도 아니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성품도 깊은 것이 아니고 묘한 것도 아닙니다.
눈의 성품[眼性]에서 뜻의 성품[意性]까지와 빛깔의 성품[性色]에서 법의 성품[法性]까지와
눈의 경계의 성품[眼界性]에서 뜻의 경계의 성품[意界性]까지와 안식(眼識)에서 의식(意識)까지와 눈의 접촉[眼觸]에서 뜻의 접촉[意觸]까지와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受]에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까지와 단나(檀那)바라밀에서 반야(般若)바라밀까지와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와 4념처(念處)에서 18불공법(不共法)까지와 온갖 모든 삼매문(三昧門)과 온갖 모든 다라니문(陀羅尼門)과 일체종지(一切種智)와 일체종지의 성품은 깊은 것도 아니고 묘한 것도 아닙니다.”
모든 천자들은 다시 생각했다.
“이 말씀하신 법 가운데에서는 물질을 말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말하지 않으며, 눈 나아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도 말하지 않고 단나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도 말하지 않으며,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도 말하지 않고 4념처에서 18불공법까지도 말하지 않으며, 다라니문과 삼매문에서 일체종지까지도 말하지 않으며, 수다원의 과위에서 아라한의 과위까지도 말하지 않으며, 벽지불의 도도 말하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道)도 말하지 않고 있다. 곧 이 법 안에서는 이름이나 언어를 말하지 않는구나.”
그러자 수보리는 천자들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모든 천자들에게 말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천자들이여, 이 법 안에서는 모든 부처님께서 얻으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모양이고 이 가운데에는 역시 말하는 이도 없고 듣는 이도 없으며, 아는 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천자들이여, 선남자ㆍ선여인이 수다원의 과위에 머무르려 하거나 수다원의 과위를 증득하려 하면 이 사람은 이 인(忍)을 여의지 않으며 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부처님의 도에 머무르려 하고 증득하려 하면 이 인(忍)을 여의지 않습니다.

이와 같아서 천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처음 발심해서부터 반야바라밀의 가운데에서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하나니, 설하는 이도 없고 듣는 이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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