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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64 불교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2권

by Kay/케이 2024.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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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2

 

마하반야바라밀경 제2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최봉수 번역
김형준 개역


4. 왕생품(往生品)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로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와 같이 익히고 상응한 이는 어디서 목숨을 마치고 이 세간에 태어났으며 이 세간에서 목숨을 마치면 장차 어디에 태어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마하살로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와 같이 익히고 상응한 이는 혹은 다른 지방에 있는 부처님의 나라에서 이 세간에 태어나는 이도 있고 혹은 도솔천상(兜率天上)으로부터 이 세간에 태어나는 이도 있으며, 혹은 사람으로 살다가 다시 이 세간에 태어나는 이도 있느니라.
사리불아, 다른 방향의 부처님 국토에서 온 이는 신속히 반야바라밀과 상응했으며, 반야바라밀과 상응했기 때문에 몸을 버리고 이 세간에 태어났느니라. 모든 깊은 법이 반드시 모두 그의 앞에 나타나면서 뒤에도 다시 반야바라밀과 상응하게 되나니,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모든 부처님을 만나게 되느니라.
사리불아, 일생보처(一生補處)1) 보살은 도솔천 위에서 목숨을 마치고 이 세간에 태어나는데, 이 보살은 6바라밀을 잃지 않으며, 태어나는 곳마다 온갖 다라니의 문[陀羅尼門]과 모든 삼매의 문[三昧門]이 신속히 그의 앞에 나타나게 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은 인간 안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이 인간 안에 태어나나니, 아유월치(阿惟越致)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보살들은 근기가 둔한지라 신속히 반야바라밀과 상응하지 못하고 모든 다라니의 문과 삼매의 문도 신속히 그의 앞에 나타나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아, 그대는 묻기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면 이 세상에서 죽어 장차 어디에 가 나느냐”고 했는데, 사리불아, 이 보살마하살은 한 부처님의 나라에서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러서 언제나 모든 부처님을 만나니, 끝내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방편을 쓰지 않고서도 초선(初禪) 내지는 제4선(禪)에 들며 또한 6바라밀도 행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선(禪)을 얻기 때문에 장수천(長壽天)에 태어나고, 거기에서 수명을 마치면 이 세간에 태어나 사람의 몸은 받으며 모든 부처님을 만나게 되나니, 이런 보살의 모든 근기는 영리하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초선 내지는 제4선에 들고 역시 반야바라밀도 행하지만 방편을 쓰지 않기 때문에 모든 선(禪)을 버리고 욕계(欲界)2)에 태어나나니, 이런 보살의 모든 근기도 역시 둔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초선 내지는 제4선에 들고 자심(慈心) 내지는 사심(捨心)에 들어가며, 허공처(虛空處) 내지는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들고 4념처(念處) 내지는 8성도분(聖道分)을 닦으며, 10력(力) 내지는 대자대비(大慈大悲)를 행하느니라. 이러한 보살은 방편의 힘에 의해 선(禪)을 따라 나지 않고, 무량심(無量心)을 따라 나지 않으며, 4무색정(無色定)을 따라 나지 않느니라. 오로지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나면서 항상 반야바라밀의 실천을 여의지 않나니, 이러한 보살은 현겁(賢劫)3) 동안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초선 내지는 제4선에 들어가고, 자심(慈心) 내지는 사심(捨心)에 들어가며, 공처(空處) 내지는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들어가되 방편의 힘 때문에 선(禪)을 따라 나지 않고 도리어 욕계(欲界)의 찰제리(刹帝利)의 큰 성바지나 바라문(婆羅門)의 큰 성바지나 거사(居士)의 대가집에
태어나나니, 중생을 성취시키기 위해서이니라.
사리불아, 다시 어떤 보살마하살은 초선(初禪) 내지 제4선에 들어가고, 자심 내지 사심에 들어가며, 공처 내지는 비유상비무상처에 들어가되 방편의 힘 때문에 선정을 따라 나지 않느니라.
혹은 사천왕천처(天王天處)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은 삼십삼천(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태어나기도 하나니, 이 안에서 중생을 성취시키고 또한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며 항상 모든 부처님을 만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으로써 초선에 들어가며, 이 세간에서 목숨을 마치면 범천처(梵天處)에 태어나 대범천왕(大梵天王)이 되어서는 그 범천처에서 한 부처님의 나라로 유행하는데, 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러서는 그 곳에 계신 모든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서도 아직 법륜(法輪)을 굴리지 않고 계시면 굴리도록 권하고 청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일생보처(一生補處)로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의 힘으로써 초선 내지는 제4선에 들어가고 자심(慈心) 내지는 사심(捨心)에 들어가며, 공처 내지는 비유상비무상처에 들어가고 4념처(念處) 내지는 8성도분(聖道分)에 들어가며, 공삼매(空三昧)ㆍ무상(無相)ㆍ무작삼매(無作三昧)에 들어가 선정에 따라 나지 않으면서 부처님 계신 곳에 태어나 범행(梵行)을 닦느니라.
만일 도솔천에 태어나면 그 수명을 마치고는 선근(善根)을 구족하고 바른 기억[正念]을 잃지 않으면서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억의 모든 하늘들에 둘러싸여 공경 받으면서 이 세간에 태어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여섯 가지 신통을 얻고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4)에 태어나지 않으며,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면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유희신통(遊戱神通)으로써 한 부처님 국토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는데, 그가 도달한 곳에는 성문승이나 벽지불승이 없고 나아가 2승(乘)이라는 이름도 없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유희신통으로써 한 부처님 나라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는데, 그가 도달한 곳에는 그 수명이 한량없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유희신통으로써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는데, 그가 도달한 곳에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佛法僧]가 없으면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의 공덕을 찬양하니, 모든 중생들은 부처님의 명호와 가르침의 이름과 승가의 이름을 듣기 때문에 여기서 목숨을 마치면 모든 부처님 앞에 가서 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일으킬 때에 초선(初禪) 내지는 제4선(禪)을 얻고 4무량심(無量心)을 얻고 4무색정(無色定)을 얻으며, 4념처(念處) 내지는 18불공법(不共法)을 닦나니, 이 보살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 안에 나지 않으며, 항상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곳에 태어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일으켰을 때 6바라밀을 행하면서 보살의 지위에 올라 아비발치(阿毘跋致)의 지위를 얻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처음 발심할 때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서 법륜(法輪)을 굴리며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는 중생을 위하여 이익을 두터이 지은 뒤에는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나니, 이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드신 뒤에 남은 법은 1겁이나 또는 1겁이 못되게 머무르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일으켰을 때 반야바라밀과 상응하여 헤아릴 수 없는 백천억의 보살들과 함께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나니,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기 위함이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4선(禪)과 4무량심(無量心)과 4무색정(無色定)을 얻고 그 가운데에서 유희(遊戱)하면서 초선(初禪)에 드느니라. 초선에서 일어나 멸진정(滅盡定)으로 들어가고, 멸진정에서 일어나 이내[乃至]5) 4선에 들어가며, 4선에서 일어나 멸진정으로 들어가고, 멸진정에서 일어나 허공처(虛空處)에 들어가며, 허공처에서 일어나 멸진정으로 들어가고, 멸진정에서 일어나 이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들어가며, 비유상비무상처에서 일어나 멸진정으로 들어가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의 힘으로써 초월정(超越定)에 들어가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4념처(念處) 내지는 18불공법(不共法)을 닦으면서도 스스로는 수다원(須陀洹)의 과위[果]ㆍ사다함(斯陀含)의 과위ㆍ아나함(阿那含)의 과위ㆍ아라한(阿羅漢)의 과위와 벽지불(辟支佛)의 도를 취하지 않으며,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8성도분(聖道分)을 일으켜 이 8성도로써 수다원의 과위 내지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아라한의 과위 벽지불의 과위 및 지혜는 바로 보살마하살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니, 사리불아,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아비발치의 지위 안에 머물러 있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6바라밀에 머물러 도솔천(兜率天)의 길을 청정하게 하나니, 이는 현겁(賢劫) 중의 보살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이 4선 내지 18불공법을 닦으면서도 아직
4제[諦]를 증득하지 않는다면, 이 보살은 일생보처(一生補處)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수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6바라밀에 머물러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이롭지 못한 일은 말하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6바라밀을 행하면서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한 부처님의 나라에서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면서 중생들의 3악도(惡道)6)를 끊어 주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6바라밀에 머물러 보시[檀]로써 우두머리를 삼아 온갖 중생을 안락하게 하나니, 음식을 구하면 음식을 주고 의복ㆍ침구ㆍ영락ㆍ꽃ㆍ향ㆍ방사ㆍ등촉 등 그 구하는 바에 따라 모두 베풀어 주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마치 몸을 부처님처럼 변화하여 지옥 안의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축생과 아귀 안의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6바라밀을 행할 때 몸을 변화하여 부처님같이 되어 두루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국토에 이르러서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느니라. 또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며 나아가 부처님의 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며 시방의 청정하고 묘한 국토의 모양을 관찰하고 나서 스스로 수승한 세계를 일으키나니, 그 안의 보살마하살은 모두가 일생보처(一生補處)이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6바라밀을 행할 때 32상(相)을 성취하고 모든 근(根)이 청정하고 예리하니라. 모든 근이 청정하고 예리하기 때문에 뭇 사람들이 사랑하고 공경하나니, 사랑하고 공경하기 때문에 점점 3승(乘)의 법으로써 그들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몸[身]의 청정과 입[口]의 청정을 배워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6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근(根)이 청정함을 얻나니, 이 청정한 근으로써 스스로 높은 체도 하지 않고 또한 다른 이를 얕보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처음 발심해서부터 단나(檀那)바라밀과 시라(尸羅)바라밀 내지 아유월치(阿惟越致)의 지위에 머물러 끝내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처음 발심해서부터 아비발치 지위에 이르기까지 항상 열 가지의 선행[十善行]을 버리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단나(檀那)바라밀과 시라(尸羅)바라밀 가운데 머무르고 전륜성왕7)이 되어 중생을 10선도(善道)에 확고히 세우며 또한 재물로써 중생에게 보시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항상 중생을 위하여 법으로써 밝게 비추고 또한 자신도 비추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밝게 비춤을 여의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이 보살마하살은 부처님 법 안에서 이미 존중(尊重)을 얻었나니, 사리불아,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몸과 입과 뜻의 부정함이 망령되이 일어나게 하지 않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은 신업(身業)이 부정하고 구업(口業)이 부정하며 의업(意業)이 부정한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이것이 몸이고, 이것이 입이며, 이것이 뜻이다’고 하면서 이렇게 모양을 취하고 반연하게 되면, 사리불아, 이것을 보살의 몸과 입과 뜻의 죄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몸을 얻지 못하고 입을 얻지 못하며 뜻을 얻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만일 몸을 얻고 입을 얻고 뜻을 얻는다면 이로써 몸과 입과 뜻을 얻기 때문에 능히 인색한 마음ㆍ계(戒)를 범하는 마음ㆍ성 내는 마음ㆍ게으른 마음ㆍ어지러운 마음ㆍ어리석은 마음을 내게 되나니, 그러므로 이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할 때 몸과 입과 뜻의 거친 업[麤業]을 제거할 수 없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몸과 입과 뜻의 거친 업을 제거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몸을 얻지 못하고 입을 얻지 못하며 뜻을 얻지 못한다면, 이 같은 보살마하살은 능히 몸과 입과 뜻의 거친 업을 제거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처음에 뜻을 내어서부터 열 가지의 착한 길을 행하면서 성문의 마음도 내지 않고 벽지불의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이 같은 보살마하살은 능히 몸과 입과 뜻의 거친 업을 제거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부처님 도[佛道]를 청정하게 할 때 단나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나바라밀을 행하나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마하살이 몸과 입과 뜻의 거친 업[麤業]을 제거한다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부처님 도인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 도라 함은 만일 보살마하살이 몸을 얻지 못하고 입을 얻지 못하고 뜻을 얻지 못하며, 단나바라밀을 얻지 못하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을 얻지 못하며, 성문과 벽지불을 얻지 못하고 보살을 얻지 못하고 부처님을 얻지 못한다면, 사리불아, 이것을 일컬어 보살마하살의 불도(佛道)라 하나니, 이른바 온갖 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자가 없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자가 없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물질[色] 내지는 의식[識]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눈[眼] 내지는 뜻[意]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빛깔[色] 내지는 법(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눈의 경계[眼界] 내지는 법의 경계[法界]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4념처(念處) 내지는 8성도분(聖道分)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단나바라밀 내지는 반야바라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10력(力) 내지는 18불공법(不共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수다원의 과위[須陀洹果] 내지는 아라한의 과위[阿羅漢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벽지불(辟支佛) 내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행하면서 6바라밀을 더욱 늘린다면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자가 없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의 안에 머물러서 지혜를 구족하나니, 이 지혜로써 언제나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폐악(弊惡)한 인간 안에도 태어나지 않으며, 빈궁한 자가 되지도 않으며, 받은 바의 몸은 사람이나 하늘이나 아수라에게 미움 받지도 않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지혜인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이 지혜를 성취함으로써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을 뵈옵고 법을 듣고 승가[僧]를 보며, 또한 장엄하고 청정한 불국토를 보게 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 지혜로써 부처님이라는 생각[佛想]을 짓지 않고 보살이라는 생각[菩薩想]도 짓지 않으며, 성문이나 벽지불이라는 생각[聲聞辟支佛想]도 짓지 않고 나라는 생각[我想]도 짓지 않으며 불국토라는 생각[佛國想]도 짓지 않느니라.
이 지혜로써 단나바라밀을 행하면서도 또한 단나바라밀을 얻지 못하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또한 반야바라밀을 얻지 못하며, 4념처를 행하면서도 또한 4념처를 얻지 못하고 나아가 18불공법을 행하면서도 또한 18불공법을 얻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지혜라 하나니, 이 지혜로써 온갖 법을 능히 두루 갖추면서도 또한 온갖 법을 얻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다섯 가지의 눈[五眼], 즉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을 청정하게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의 육안이 청정한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보살은 육안으로 백 유순(由旬)8)을 보고 어떤 보살은 육안으로 2백 유순을 보며, 어떤 보살은 육안으로 하나의 염부제(閻浮提)를 보고 어떤 보살은 육안으로 2천하(天下)ㆍ3천하ㆍ4천하를 보며, 어떤 보살은 육안으로 소천(小千)세계를 보고 어떤 보살은 육안으로 중천(中千)세계를 보며, 어떤 보살은 육안으로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를 보나니, 사리불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육안이 청정하다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보살마하살의 천안이 청정한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의 천안은 온갖 사천왕천(四天王天)이 보는 바를 보고 삼십삼천(三十三天)과 야마천(夜摩天)과 도솔타천(兜率陀天)과 화락천(化樂天)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과 화락천(化樂天)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보는 바를 보며, 범천왕(梵天王)이 보는 바 내지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이 보는 바를 보느니라. 보살이 천안으로 보는 것은 사천왕천 내지는 아가니타천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느니라.
사리불아, 이 보살마하살은 천안으로 시방의 항하 모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 안의 중생들이 여기에서 죽어서 저기에서 나는 것을 보나니, 사리불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천안의 청정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보살마하살의 혜안(慧眼)이 청정한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혜안을 지닌 보살은 ‘어떤 법이 유위(有爲)이다, 무위(無爲)이다, 세간(世間)이다, 출세간(出世間)이다, 유루(有漏)이다, 무루(無漏)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나니, 이 혜안을 지닌 보살은 법마다 보지 못함이 없고 법마다 듣지 못함이 없으며 법마다 알지 못함이 없고 법마다 식별(識別)하지 못함이 없느니라. 사리불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혜안이 청정하다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여 보살마하살의 법안(法眼)이 청정한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법안으로써 다음과 같이 아느니라.
‘이 사람은 수신행(隨信行)이요 이 사람은 수법행(隨法行)이며 이 사람은 무상행(無相行)이요 이 사람은 공해탈문(空解脫門)을 행하며 이 사람은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을 행한다.
이 사람은 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을 행하여 5근(根)을 얻고 5근을 얻기 때문에 무간삼매(無間三昧)를 얻으며, 무간삼매를 얻기 때문에 해탈지(解脫智)를 얻고 해탈지를 얻기 때문에 유중견(有衆見)ㆍ의(疑)ㆍ재계취(齋戒取)의 3결(結)9)을 끊나니, 이런 사람을 수다원이라 한다.

사람은 사유도(惟思道)를 얻어서 음(婬)ㆍ에(恚)ㆍ치(癡)가 얇아져 사다함이 될 것이요 사유도에 한층 더 나아가서 음ㆍ에ㆍ치를 끊고는 아나함이 될 것이며, 사유도에 한층 더 나아가서 색염(色染)ㆍ무색염(無色染)ㆍ무명(無明)ㆍ만(慢)ㆍ도(掉)를 끊어 아라한이 될 것이다.
이 사람은 공ㆍ무상ㆍ무작의 해탈문을 행하여 5근을 얻고 5근을 얻기 때문에 무간삼매를 얻으며, 무간삼매를 얻기 때문에 해탈지를 얻고 해탈지를 얻기 때문에 있는 바 쌓임의 법[集法]은 모두가 사라짐의 법[滅法]임을 알고는 벽지불이 되리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법안이 청정하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다음과 같이 아느니라.
‘이 보살이 처음 뜻을 내어서 단나(檀那)바라밀을 행하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을 성취하고 선근(善根)이 순수하고 두터우면서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들을 위하여 몸을 받되 혹은 찰리(刹利)의 큰 성바지에 나기도 하고 혹은 바라문(婆羅門)의 큰 성바지에 나기도 하며 혹은 거사(居士)의 큰 집안에 나기도 하고 혹은 사천왕천(四天王天)의 거처 내지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거처에 태어난다.
이 보살은 그 안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성취시키고 그들의 좋아하는 바에 따라 모두 베풀어 주며, 또한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모든 부처님을 만나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까지 이르며 또한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법안이 청정하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마찬가지로 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났다고 알고, 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고 알며, 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授記)를 받았다고 알고, 이 보살이 아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받지 못했다고 아느니라.
이 보살이 아유월치(阿惟越致)의 지위에 이른 것도 알고, 이 보살이 아직 아비발치의 지위에 이르지 못한다고 알며, 이 보살이 신통을 두루 갖춘 것도 알고, 이 보살이 아직 신통을 두루 갖추지 못한 것도 알며, 이 보살이 이미 신통을 두루 갖추어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로 날아가서 모든 부처님을 뵙고는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는 것도 알고, 이 보살이 아직 신통을 얻지는 못했으나 장차 신통을 얻게 될 것도 아느니라.
이 보살이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했다거나 혹은 아직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지 못한 것도 알고, 이 보살이 중생을 성취시켰다거나 혹은 아직 중생을 성취시키지 못한 것도 알며, 이 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칭찬을 받고 있다거나 혹은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알고, 이 보살이 모든 부처님을 친근(親近)한다거나 혹은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지 않는 것도 알며, 이 보살의 수명이 한량이 있다거나 혹은 수명이 한량없는 것도 알고, 이 보살이 부처님이 될 때의 비구 대중은 한량이 있다거나 혹은 비구 대중이 한량없는 것도 아느니라.
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때 보살로써 승가[僧]를 삼는다거나 혹은 보살로써 승가를 삼지 않는 것도 알고, 이 보살이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닦았다거나 혹은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닦지 않은 것도 알며, 이 보살이 일생보처(一生補處)라거나 혹은 아직 일생보처가 아니라 함도 알고, 이 보살이 맨 마지막 몸을 받았다거나 혹은 아직 맨 마지막 몸을 받지 못한 것도 알며, 이 보살은 도량(道場)에 앉을 수 있다거나 혹은 도량에 앉을 수 없는 것도 알고, 이 보살에게 마(魔)가 있다거나 혹은 마가 없는 것도 아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법안이 청정하다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여 보살마하살의 불안(佛眼)이 청정한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보살마하살은 부처님 도를 구하면서 마음이 차례로 여금강삼매(如金剛三昧)에 들어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으며 그때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지(無礙智)와 18불공법(不共法)과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성취하나니, 이 보살마하살은 일체종지로써 온갖 법 안에서 법마다 보지 못함이 없고, 법마다 듣지 못함이 없으며, 법마다 알지 못함이 없고, 법마다 식별하지 못함이 없느니라.
사리불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불안이 청정하다 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다섯 가지의 눈[五眼]을 얻고자 한다면 6바라밀(波羅蜜)을 배워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사리불아, 이 6바라밀 안에는 온갖 착한 법으로서 성문의 법과 벽지불의 법과 보살의 법과 부처님의 법을 다 포섭하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만일 어떤 진실한 말이 있어 온갖 착한 법을 포섭한다 한다면 반야바라밀이란 바로 그것이니라. 사리불아, 반야바라밀은 능히 다섯 가지의 눈을 내나니, 보살로서 다섯 가지의 눈을 배우는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신통바라밀(神通波羅蜜)을 닦고 이 신통바라밀로써 갖가지 뜻대로 되는 일[如意事]을 받게 되느니라. 곧 능히 대지(大地)를 움직이고, 하나의 몸이 변화하여 헤아릴 수 없는 몸이 되며, 헤아릴 수 없는 몸이 도로 하나의 몸이 되며, 자유자재로 숨고 나타나며, 산과 벽과 나무를 모두 통과하면서도 걸림이 없음이 마치 공중을 다니는 것과 같으며, 물을 걷는 것이 마치 땅과 같으며, 허공을 날아다님이 마치 새와 같으며, 땅 속을 들락날락함이 마치 물속을 드나드는 것 같으며, 몸에서 연기를 뿜음이 마치 큰 불더미와 같으며, 몸 안에서 물이 나옴이 마치 설산(雪山)에 물이 흐르는 것 같으며, 해와 달은 큰 덕과 위력이 있어서 감당하기 어렵거늘 붙잡거나 어루만지며, 나아가 범천(梵天)에 이르기까지 몸이 자유자재 하느니라.
그러면서도 이 여의신통(如意神通)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신통 부리는 일과 자기의 몸을 모두 얻을 수가 없음은 자성(自性)이 공하기 때문이고 자성을 여의기 때문이며 자성은 남[生]이 없기 때문이니라.
따라서 “나는 여의신통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오직 살바야(薩婆若)를 위한 마음만은 제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여의신통지증(如意神通智證)을 얻느니라.
이 보살은 천이(天耳)가 청정하여 사람들의 귀보다 뛰어나니, 하늘의 소리나 사람의 소리 두 가지의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역시 이 천이신통(天耳神通)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천이와 소리와 자기의 몸을 모두 얻을 수가 없음은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고 자성을 여의기 때문이며 자성은 남이 없기 때문이니라, 따라서 “나는 이 천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오직 살바야를 위한 마음만은 제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천이신통지증(天耳神通智證)을 얻느니라.
이 보살은 여실히 다른 중생들의 마음을 아나니, 만일 욕망이면 여실히 욕망인 줄 알고, 욕망을 여읜 마음이면 여실히 욕망을 여읜 마음인 줄 알며, 성내는 마음이면 여실히 성을 낸 마음인 줄 알고, 성냄을 여읜 마음이면 여실히 성을 여읜 마음인 줄 알며, 어리석은 마음이면 여실히 어리석은 마음인 줄 알고,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이면 여실히 어리석지 않은 마음인 줄 아느니라.
갈애(渴愛)의 마음이면 여실히 갈애의 마음인 줄 알고, 갈애를 여읜 마음이면 여실히 갈애를 여읜 마음인 줄 알며, 느낌[受]이 있는 마음이면 여실히 느낌이 있는 마음인 줄 알고, 느낌이 없는 마음이면 여실히 느낌이 없는 마음인 줄 알며, 거두어진 마음[攝心]이면 여실히 거두어진 마음인 줄 알고, 흩어진 마음[散心]이면 여실히 흩어진 마음인 줄 아느니라.
작은 마음이면 여실히 작은 마음인 줄 알고, 큰 마음이면 여실히 큰 마음인 줄 알며, 선정의 마음[定心]이면 여실히 선정의 마음인 줄 알고, 어지러운 마음이면 여실히 어지러운 마음인 줄 알며, 해탈한 마음이면 여실히 해탈한 마음인 줄 알고,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면 여실히 해탈하지 못한 마음인 줄 알며, 위 있는[有上] 마음이면 여실히 위 있는 마음인 줄 알고, 위없는[無上] 마음이면 여실히 위없는 마음인 줄 아느니라.
그러면서도 이 마음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마음은 마음의 모양이 아니고 불가사의하기 때문이고,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고, 자성을 여의기 때문이며, 자성은 남이 없기 때문이니라. 따라서 “나는 타심지증(他心智證)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오직 살바야를 위한 마음만은 제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타심신통지증(他心神通智證)을 얻느니라.
이 보살은 숙명지증통(宿命智證通)으로써 한마음 내지 백 마음을 기억하고 1일 내지 백일을 기억하며 한 달 내지 백 달을 기억하고 1년 내지 백년을 기억하며 1겁 내지 백겁, 헤아릴 수 없는 백겁, 헤아릴 수 없는 천겁, 헤아릴 수 없는 백천겁 내지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억 겁의 세상을 기억하면서 “나는 그 곳에서는 이러한 성씨와 이러한 이름으로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음식을 먹고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그러한 수명으로 그렇게 오래 살면서 그 같은 고통과 쾌락을 받았었다. 나는 그 안에서 죽어서 저 곳에 태어났고 저 곳에서 죽어서는 이곳에 태어났다”고 하느니라.
모양이 있고 인연이 있음을 알면서도 역시 이 숙명신통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숙명신통의 일과 자기의 몸을 모두 얻을 수 없음은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고, 자성을 여의기 때문이며, 자성은 남이 없기 때문이니라. 따라서 “나는 이 숙명신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오직 살바야를 위한 마음만은 제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숙명신통지증(宿命神通智證)을 얻느니라.
이 보살은 천안(天眼)으로써 중생들의 죽는 때와 태어나는 때ㆍ단정함과 누추함ㆍ나쁜 곳과 좋은 곳 또는 크고 작은 것을 보며 중생들이 업의 인연을 따름을 아느니라.
이 모든 중생은 몸의 나쁜 업을 성취하고 입의 나쁜 업을 성취하며 뜻의 나쁜 업을 성취한 까닭에 성인을 헐뜯고, 삿된 소견의 인연을 받는 까닭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지옥 가운데 태어남을 보느니라. 혹은 이 모든 중생들이 몸의 착한 업을
성취하고 입의 착한 업을 성취하며 뜻의 착한 업을 성취한 까닭에 성인을 헐뜯지 않고, 바른 소견의 인연을 받는 까닭에 목숨을 마치면 선도(善道)에 들어가고 천상에 태어난다고 아느니라.
그러면서도 이 천안신통에 집착하지 않으니, 천안신통의 일과 자기의 몸을 모두 얻을 수 없음은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고, 자성을 여의기 때문이며, 자성은 남이 없기 때문이니라. 따라서 “나는 이 천안신통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오직 살바야를 위한 마음만은 제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천안신통지증(天眼神通智證)을 얻으며 또한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 안의 중생들이 나고 죽고 나아가 천상에 나는 것도 보나니, 네 가지의 신통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누(漏)가 다하는 신통으로 비록 누진신통을 얻는다 하더라도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으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또한 다른 법에 의지하지도 않느니라.
그러면서도 이 누진신통에 집착하지 않으니, 누진신통의 일과 자기의 몸을 모두 얻을 수 없음은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고, 자성을 여의기 때문이며, 자성은 남이 없기 때문이니라. 따라서 “나는 누진신통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오직 살바야를 위한 마음만은 제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누진신통지증(漏盡神通智證)을 얻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신통바라밀을 구족하며 신통바라밀을 구족한 뒤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더욱 증익(增益)시키느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단나(檀那)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살바야의 도[薩婆若道]를 청정하게 하나니, 필경공(畢竟空)이어서 인색한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시라(尸羅)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살바야의 도를 청정하게 하나니, 필경공이어서 죄라거나 죄가 되지 않음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찬제(羼提)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살바야의 도를 청정하게 하나니, 필경공이어서 성을 내지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비리야(毘利耶)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살바야의 도를 청정하게 하나니, 필경공이어서 몸과 마음이 정진하고 게으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선나(禪那)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살바야의 도를 청정하게 하나니, 필경공이어서 어지럽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반야(般若)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살바야의 도를 청정하게 하나니, 필경공이어서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6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살바야의 도를 청정하게 하나니, 필경공이기 때문이요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기 때문이며, 보시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기 때문이요 계율도 아니고 범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며, 참는 것도 아니고 성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요 정진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기 때문이며, 안정하지도 않고 어지럽지도 않기 때문이요 지혜롭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이때 보살마하살은 보시하거나 보시하지 않는 일ㆍ계율을 지니거나 범하는 일ㆍ인욕하거나 성 내는 일ㆍ정진과 게으름ㆍ마음이 안정하거나 어지러운 일ㆍ지혜롭거나 어리석은 일을 분별하지 않으며, 헐뜯음과 해함과 손해와 경만함 그리고 공경도 분별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사리불아, 생함이 없는 법[無生法] 안에서는 헐뜯음을 받는 이도 없고, 해함을 받는 이도 없으며, 경만과 공경을 받는 이도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이와 같은 모든 공덕을 얻나니,
성문이나 벽지불로서는 얻을 수 없는 이러한 공덕이 두루 갖추어져서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며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온갖 중생 가운데에 평등한 마음[等心]을 내고 온갖 중생 가운데서 평등한 마음을 낸 뒤에는 온갖 모든 법의 평등함을 얻으며, 온갖 모든 법의 평등함을 얻은 뒤에는 온갖 중생들을 모든 법의 평등한 가운데에 세우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현세에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호념(護念)을 받고 또한 온갖 보살과 온갖 성문과 벽지불의 호념도 받나니, 이 보살은 태어나는 곳마다 눈으로는 끝내 좋지 못한 모양을 보지 않으며, 나아가 뜻으로는 좋지 못한 법을 깨닫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줄지 않게 하느니라.”
이 반야바라밀을 설하실 때, 3백 명의 비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옷을 부처님께 올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그때 부처님께서 미소 지으시자 갖가지 빛의 광명이 입안에서 나왔다.
그때 혜명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매만지고 합장한 채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어떤 인연으로 웃으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3백의 비구들은 이로부터 61겁을 지나면 부처님이 되리니, 그 명호는 모두 대상불(大相佛)이라 하리라. 그리고 이 3백의 비구는 이 몸을 버린 뒤에는 아촉불(阿閦佛)의 나라에 가 날 것이며, 나아가 이 6만의 욕계 천자(天子)들은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 미륵불(彌勒佛)의 법 안에서 출가하여 부처님 도를 행하게 되리라.”
이때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에 이 세간의 4부(部) 대중들은 시방의 방편에서 각각 천 분의 부처님을 뵈었으니, 이 시방의 세계는 장엄하고 청정하여서 이 사바(裟婆)세계로서는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그때 1만의 사람들은 원을 세우며 말하기를 “저희들은 청정한 원(願)과 행(行)을 닦겠사오니 이 청정한 원과 행 때문에 장차 저 부처님 세계에 태어나게 해 주옵소서”라고 하였다.
그때 부처님은 이 선남자들의 깊은 마음을 아시고 다시 빙그레 미소 지으시자 갖가지 빛의 광명이 입 속에서 나왔다. 그러자 아난이 의복을 매만지고 합장하며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무슨 인연으로 미소 지으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1만의 사람들을 보았느냐?”
아난이 말씀드렸다.
“예, 보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1만의 사람들은 여기서 목숨을 마치면 저 세계에 태어나서 끝내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을 것이며 뒤에는 부처님이 되리니, 모두 명호를 장엄왕불(莊嚴王佛)이라 하리라.”

5. 탄도품(歎道品)


【經】그때 혜명(慧命) 사리불과 혜명 목건련(目犍連)과 혜명 수보리(須菩提)와 혜명 마하가섭(摩訶迦葉) 등의 이러한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多知多識] 비구 및 모든 보살마하살과 모든 우바새ㆍ우바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마하반야바라밀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며, 높은[尊] 바라밀ㆍ으뜸가는[第一] 바라밀ㆍ수승한[勝] 바라밀ㆍ묘한[妙] 바라밀ㆍ위없는[無上] 바라밀ㆍ견줄 데 없는[無等] 바라밀ㆍ무등등(無等等)의 바라밀ㆍ허공과 같은[如虛空] 바라밀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입니다.
세존이시여, 자기 모양이 공한[自相空] 바라밀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고, 모든 법이 공한[法空] 바라밀ㆍ
무법 유법이 공한[無法有法空] 바라밀ㆍ온갖 공덕을 여는[開一切功德] 바라밀ㆍ온갖 공덕을 성취하는[成就一切功德] 바라밀ㆍ파괴할 수 없는[不可壞] 바라밀이 바로 모든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입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 반야바라밀의 무등등(無等等)한 보시를 행하여 무등등한 단나(檀那)바라밀은 구족하고 무등등한 몸을 얻으며 무등등한 법을 얻으니,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입니다. 그리고 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세존께서도 본래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시어 무등등한 6바라밀을 구족하시고 무등등한 법을 얻으셨으며, 무등등한 물질[色]과 무등등한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의식[識]을 얻으셨고 부처님으로서 무등등한 법륜(法輪)을 굴리셨습니다.
과거의 부처님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시어 무등등한 보시를 두루 갖추셨고 나아가 무등등한 법륜을 굴리셨으며, 미래 세상의 부처님도 또한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시어 장차 무등등한 보시를 얻으실 것이며 나아가 무등등한 법륜을 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온갖 법의 저 언덕[彼岸]을 건너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마하살을 온갖 세간의 하늘 및 사람과 아수라들은 예배하고 공경하고 공양해야만 합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제자들과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모든 선남자들아,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이를 온갖 세간의 하늘 및 사람과 아수라들은 응당 예배하고 공경하고 공양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이 옴으로 인하여 인도(人道)ㆍ천도(天道)ㆍ찰리(刹利)의 큰 성바지ㆍ바라문(婆羅門)의 큰 성바지ㆍ거사(居士)의 큰 집안ㆍ전륜성왕ㆍ사천왕천 내지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이 출생하게 되며, 수다원(須陀洹) 내지 아라한ㆍ벽지불과 모든 부처님이 출생하게 되기 때문이니라.
보살이 옴으로 인하여 세간에는 곧 음식ㆍ의복ㆍ침구ㆍ방사ㆍ등촉ㆍ마니(摩尼)ㆍ진주(眞珠)ㆍ비유리(毘琉璃)ㆍ산호(珊瑚)ㆍ금ㆍ은 등의 모든 보물이 생기게 되느니라.
사리불아, 세간에 있는 모든 쾌락의 도구로서 인간 가운데나 천상의 욕락(欲樂)을 여의는 온갖 쾌락의 도구들은 모두가 보살로 말미암아 있게 되느니라.
왜냐하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도(道)를 행할 때 여섯 가지 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스스로 보시를 행하고 또한 보시로써 중생을 성취시키며 나아가 스스로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또한 반야바라밀로써 중생을 성취시키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온갖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세간에 출현하는 것이니라.”

6. 설상품(舌相品)

여기에서 세존께서는 설상(舌相)을 내시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시고, 그 혀로부터 헤아릴 수 없고 한량없는 빛의 광명을 내시어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두루 비추셨다.
이때 동방(東方)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 안의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보살들은 이 큰 광명을 보고 저마다의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누구의 신력(神力)이기에 이런 큰 광명이 있으면서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두루 비추는지요?”
모든 부처님들께서 그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서방(西方)으로 사바(裟婆)라는 세계가 있고 그 안에 부처님이 계시니
석가모니라 하느니라. 이것은 바로 그분의 설상으로부터 대광명을 내어 동방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를 두루 비추시는 것이니라.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위ㆍ아래로도 또한 그러하나니, 모든 보살마하살에게 반야바라밀을 설하기 위해서이니라.”
이때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저마다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희들은 가서 석가모니부처님과 모든 보살마하살에게 공양드리고자 하오며 아울러 반야바라밀을 듣고 싶사옵니다.”
모든 부처님은 그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그대들은 스스로 때를 알지니라.”
이때 모든 보살마하살은 모든 공양거리와 한량없는 꽃 일산ㆍ당기ㆍ번기ㆍ영락과 많은 향이며 금ㆍ은ㆍ보배 꽃 등을 가지고 사바세계를 향하여 석가모니부처님께로 나아갔다.
그때 사천왕천(四天王天) 등의 모든 하늘 내지는 아가니타(阿迦尼吒)의 모든 하늘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천상에 있는 하늘의 향ㆍ가루향ㆍ못향[澤香]ㆍ하늘 나무향[樹香]ㆍ잎향[葉香]이며, 하늘의 갖가지 청색ㆍ적색ㆍ홍색ㆍ백색의 연꽃 등을 가지고 석가모니부처님께로 나아갔다.
이 모든 보살마하살과 모든 하늘들이 뿌린 모든 꽃들은 삼천대천세계의 허공 가운데서 변화해 네 개의 기둥으로 받친 큰 보대(寶臺)가 되면서 갖가지 기이한 빛깔로 장엄되고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때 석가모니부처님의 대중 가운데에 있던 10만억의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도 미래세상 안에서 역시 이와 같은 법을 얻을 것이오며 마치 지금의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제자와 시종과 대중에게 설법하시는 것처럼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이때 부처님은 선남자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온갖 모든 법의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나오지도 않고 짓지도 않은 데서 이 법인(法忍)을 얻었음을 아셨다. 부처님은 곧 빙그레 웃으시니, 갖가지 빛깔의 광명이 입 속에서 나왔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 때문에
웃으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대중 가운데의 10만억의 사람들이 모든 법 가운데서 무생인(無生忍)을 얻었나니, 이 모든 사람들은 장차 오는 세상에서 68억 겁을 지나 부처가 될 것이니라.10) 그 겁(劫)의 이름은 화적(華積)이라 부르고, 부처님의 명호는 모두가 각화(覺華)라 하리라.”

7. 삼가품(三假品)

이때 부처님께서 혜명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모든 보살마하살에게 반야바라밀을 가르치되 마치 보살마하살들이 성취해야할 반야바라밀이듯이 해야만 하느니라.”
그러자 곧 모든 보살마하살과 성문의 큰 제자들과 모든 하늘들은 생각하기를 ‘혜명 수보리는 스스로 지혜의 힘으로써 모든 보살마하살들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할까, 아니면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일까?”라고 했다.
여기에서 혜명 수보리는 모든 보살마하살과 큰 제자들과 하늘들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아채고는 혜명 사리불에게 말했다.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이 법을 설하고 가르치는 것은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力]이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의 모양과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 선남자는 이 법을 배워서 이 법을 증득하게 되니, 부처님의 말씀은 마치 등불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사리불이여,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은 실로 이 같은 힘이 없으면서도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시는 보살과 보살이란 이름은 어떠한 법들이기에 보살이라 일컫는지요?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보살이라고 불리는 그런 법을 보지 못합니다. 그리니 어떻게 보살에게 반야바라밀을 가르치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도 또한 이름이 있을 뿐으로 일컬어 반야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보살이나 보살이라는
이름 역시 다만 이름이 있을 뿐이니, 이 이름은 안에 있지도 않고 겉에 있지도 않으며, 가운데에 있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나[我]라는 이름은 화합한 까닭에 있게 되고, 이 나라는 이름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건만 단지 세간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과 같으며, 중생(衆生)과 영혼[壽者]과 목숨[命者]과 나는 이[生者]와 양육(養育)과 중수(衆數)와 사람[人]과 짓는 이[作者]와 짓게 하는 이[使作者]와 일어나는 이[起者]와 일어나게 하는 이[使起者]와 받는 이[受者]와 받게 하는 이[使受者]와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 등도 역시 화합한 법인 까닭에 있느니라.
따라서 이 모든 이름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건만 단지 세간의 이름으로서 말하여지듯이 반야바라밀과 보살과 보살이라는 이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두가 화합한 까닭에 있는 것이니라. 이것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건만 단지 세간의 이름으로 그렇게 말할 뿐이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몸이란 화합한 까닭에 있는 것으로, 이것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건만 단지 세간의 이름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역시 화합한 까닭에 있는 것과 같으니, 이것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건만 단지 세간의 이름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반야바라밀과
보살과 보살이란 이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두가 이것은 화합한 까닭에 있는 것으로, 이것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건만 단지 세간의 이름으로 그렇게 말할 뿐이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눈[眼]은 화합한 까닭에 있는 것으로 이것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건만 단지 세간의 이름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 눈은 안에 있지도 않고 겉에 있지도 않으며 가운데에 있지도 않느니라. 귀ㆍ코ㆍ혀ㆍ몸ㆍ뜻 역시 화합한 까닭에 있는 것으로 이것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건만 단지 세간의 이름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으며, 빛깔에서 법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눈의 경계[眼界] 역시 화합한 까닭에 있는 것으로, 이것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건만 단지 세간의 이름으로 그렇게 말할 뿐이니라. 나아가 의식의 경계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반야바라밀과 보살과 보살이란 이름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두가 화합한 까닭에 있는 것으로, 이것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건만 단지 세간의 이름으로 그렇게 말할 뿐이니라. 이 이름은 또한 안에 있지도 않고 겉에 있지도 않으며, 가운데에 있지도 않느니라.
또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몸에서 머리[頭]라는 것도 단지 이름이 있을 뿐이고, 목덜미ㆍ어깨ㆍ팔ㆍ등ㆍ등마루ㆍ갈빗대ㆍ넓적다리ㆍ발뒤꿈치ㆍ다리 등도 모두가 화합한 까닭에 있는 것으로, 이 법과 이름 역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건만 단지 이름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 이름도 또한 안에 있지도 않고 겉에 있지도 않으며 가운데에 있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야, 반야바라밀과 보살과 보살이란 이름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두가 화합한 까닭에 있게 되고 단지 이름으로 그렇게 말할 뿐이니, 이것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안에 있지도 않고 겉에 있지도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몸밖에 사물로서 초목의 가지ㆍ잎ㆍ줄기ㆍ마디라는 이러한 온갖 것도 단지 이름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 법과 이름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안에 머물지 않고 겉에 머물지 않고 중간에 머물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야, 반야바라밀과 보살과 보살이란 이름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두가 화합한 까닭에 있게 되는 것으로, 이 법과 이름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안에 머물지 않고 겉에 머물지 않고 중간에 머물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과거의 모든 부처님의 이름도 또한 화합된 까닭에 있는 것으로, 이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건만 단지 이름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것 또한 안에 머물지 않고 겉에 머물지 않고 중간에 머물지도 않느니라. 반야바라밀과 보살과 보살이란 글자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또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꿈ㆍ메아리ㆍ그림자ㆍ허깨비ㆍ아지랑이와 부처님이 변화하신 것은 모두가 화합된 까닭에 존재하는 것으로 다만 이름만 가지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러한 법과 이름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안에 머물지 않고 겉에 머물지 않고 가운데에 머물지도 않느니라. 반야바라밀과 보살과 보살이란
이름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이러한 까닭에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름은 임시의 시설이고 수(受)도 임시의 시설이며 법도 임시의 시설이니, 이와 같이 배워야만 하느니라.
【經】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물질이라는 이름이 항상하다고 보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라는 이름이 항상하다고 보지 않으며, 물질이라는 이름이 무상하다고 보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라는 이름이 무상하다고 보지 않느니라. 물질이라는 이름이 즐거운 것이라고 보지 않고 물질이라는 이름이 괴로운 것이라고 보지 않으며, 물질이라는 이름에 나가 있다고 보지 않고, 물질이라는 이름에 나가 없다고 보지도 않느니라.
물질이라는 이름이 공하다고 보지 않고 물질이라는 이름이 모양 없는 것[無相]이라고 보지 않으며, 물질이라는 이름이 조작 없는 것[無作]이라고 보지 않고 물질이라는 이름이 고요히 그친 것[寂滅]이라고 보지 않느니라.
물질이라는 이름이 더럽다고 보지 않고 물질이라는 이름이 청정하다고 보지 않으며, 물질이라는 이름이 생겨나는 것[生]이라고 보지 않고 물질이라는 이름이 멸하는 것[滅]이라고 보지 않느니라.
물질이라는 이름이 안이라고 보지 않고 물질이라는 이름이 밖이라고도 보지 않으며, 물질이라는 이름이 가운데 머무는 것이라고도 보지 않으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눈[眼]과 빛깔[色]과 눈의 분별[眼識]과 눈의 접촉[眼觸]과 눈의 접촉으로 인하여 생한 모든 느낌[受]에서 뜻[意]과 법(法)과 뜻의 분별[意識]과 뜻의 접촉[意觸]과 뜻의 접촉으로 인하여 생한 모든 느낌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반야바라밀이라는 이름과 보살이나 보살이라는 이름을 유위의 성품 가운데에서도 보지 못하고 무위의 성품 가운데에서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러한 법으로써 모두 분별을 짓지 않느니라. 이러한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무너지지 않는 특성[不壞法] 가운데에 머무르니, 4념처를 닦을 때에 반야바라밀을 보지 못하고 반야바라밀의 이름을 보지 못하며, 보살을 보지 못하고 보살의 이름을 보지 못하느니라.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을 닦을 때에도 반야바라밀을 보지 못하고 반야바라밀의 이름을 보지 못하며, 보살을 보지 못하고 보살의 이름을 보지 못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단지 모든 법의 실상(實相)만을 아나니, 모든 법의 실상이라 함은 더러움[垢]도 없고 깨끗함[淨]도 없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름이란 임시로 시설된 것’이라고 이렇게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임시의 이름임을 안 뒤에는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 집착하지 않으며, 눈 내지는 뜻에 집착하지 않고 빛깔 내지는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눈의 분별 내지는 뜻의 분별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눈의 접촉에 집착하지 않고 나아가 뜻의 접촉에 이르기까지 집착하지 않으며,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의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不苦不樂]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나아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의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에 이르기까지도 집착하지 않으며, 유위의 성품에 집착하지 않고 무위의 성품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단나(檀那)바라밀ㆍ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에 집착하지 않고 32상(相)에 집착하지 않으며, 보살의 몸에 집착하지 않고 보살의 육안(肉眼)에 집착하지 않으며, 나아가 불안(佛眼)에 이르기까지 집착하지 않느니라.
지(智)바라밀에 집착하지 않고 신통(神通)바라밀에 집착하지 않으며, 내공(內空)에 집착하지 않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 집착하지 않으며, 중생을 성취시키는 데에 집착하지 않고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데에 집착하지 않으며, 방편의 법에도 집착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법에는 집착하는 자가 없고 집착하는 법이 없으며, 집착할 곳이 없어서 모두가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온갖 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곧
단나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을 더욱더 늘리면서 보살의 지위에 들고 아비발치의 지위[阿鞞跋致地]를 얻느니라.
보살의 신통을 두루 갖추어 한 부처님의 국토에서 다른 한 부처님의 국토로 다니면서 중생을 성취시키며,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여 부처님 세계를 정화하게 되고 모든 부처님을 뵙고 공양하느니라.
또한 선근을 성취하는 까닭에 공양물이 모두 뜻대로 얻어지고,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을 들을 수 있으며, 법을 듣고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도록 끝내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으며, 모든 다라니의 문과 삼매의 문을 얻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법의 이름은 임시로 시설된 것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 이것이 보살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이것이 보살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 이것이 보살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 이것이 보살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눈의 분별에서 뜻의 분별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보살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땅의 요소[地種]11)가 보살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물[水]ㆍ불[火]ㆍ바람[風]ㆍ허공[空]ㆍ의식[識]의 요소, 이것이 보살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무명(無明)이 보살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나아가 늙어 죽음[老死], 이것이 보살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을 여읜 것이 보살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의 여실한 모양[如相], 이것이 보살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나아가 늙어 죽음의 여실한 모양, 이것이 보살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여실한 모양을 여의고 나아가 늙어 죽음의 여실한 모양에 이르기까지를 여읜 이것이 보살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떠한 이치를 보았기에 ‘물질이 보살이 아니고 나아가 늙어 죽음에 이르기까지가 보살이 아니며, 물질을 여읜 것이 보살이 아니고 나아가 늙어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여읜 것이 보살이 아니며, 물질의 여실한 모양이 보살이 아니고 나아가 늙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실한 모양이 보살이 아니며, 물질의 여실한 모양을 여읜 것이 보살이 아니고 나아가 늙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실한 모양을 여읜 것이 보살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더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중생은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이 보살이겠습니까. 물질은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물질과 물질을 여읜 것과 물질의 진여[如]와 물질의 진여를 여읜 것이 보살이겠습니까. 나아가 늙어 죽음까지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늙어 죽음과 늙어 죽음을 여읜 것과 늙어 죽음의 진여[如]와 늙어 죽음의 진여를 여읜 것이 보살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얻을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이 보살의 이치[義]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이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의 항상함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항상함, 이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무상함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무상함, 이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즐거움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즐거움이 보살이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괴로움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괴로움, 이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나라는 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나라는 것, 이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나 아닌 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나 아닌 것, 이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의 공함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공함, 이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공하지 않음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공하지 않음, 이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모양[相]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모양, 이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모양 없는 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모양 없는 것, 이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조작[作]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조작, 이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조작 없는 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조작 없는 것, 이것이 보살의 이치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나아가 늙어 죽음[老死]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그대는 어떠한 이치를 보았기에 ‘물질이 보살의 이치가 아니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보살의 이치가 아니며, 나아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조작 없는 것이 보살의 이치가 아니며, 나아가 늙어 죽음도 또한 그러하다’고 말하는 것이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물질은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물질이 없는 것[無色]이 보살의 이치이겠습니까.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항상함은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물질의
무상함이 보살의 이치이겠습니까. 나아가 의식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즐거움도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물질의 괴로움이 보살의 이치이겠습니까. 나아가 의식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나는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물질의 나아닌 것이 보살의 이치이겠습니까. 나아가 의식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존재[有]는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물질의 공함이 보살의 이치이겠습니까. 나아가 의식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모양은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물질의 모양 없는 것이 보살의 이치이겠습니까. 나아가 의식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의 조작은 마침내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물질의 조작 없는 것이 보살의 이치이겠습니까. 나아가 의식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물질의 이치도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이치도 얻을 수 없으며, 나아가 조작이 없는 이치까지도 얻을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말하기를 ‘나는 이 법에서 보살이라 불리는 법을 보지 못한다’고 했는데, 수보리야, 모든 법은 모든 법을 보지 못하느니라. 모든 법은 법의 성품[法性]을 보지 못하고 법의 성품은 모든 법을 보지 못하며, 법의 성품은 땅의 요소[地種]를 보지 못하고 땅의 요소는 법의 성품을 보지 못하느니라. 나아가 의식의 요소[識種]는 법의 성품을 보지 못하며, 법의 성품은 의식의 요소를 보지 못하느니라.
법의 성품은 눈의 대상[色]과 안식의 성품을 보지 못하고 눈의 대상과 안식의 성품도 법의 성품을 보지 못하며, 나아가 법의 성품은 뜻의 법과 의식의 성품을 보지 못하고 뜻의 법과 의식의 성품은 법의 성품을 보지 못하느니라.
수보리야, 유위의 성품은 무위의 성품을 보지 못하고 무위의 성품도 유위의 성품을 보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유위를 여의고는 무위를 말할 수 없고 무위를 여의고는 유위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모든 법에 대하여 보는 바가 없나니, 이때에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으며, 마음이 위축되거나 후회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보지 않기 때문이며, 눈 내지 뜻을 보지 않고, 빛깔 내지 법을 보지 않고,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보지 않고, 무명 내지 늙어 죽음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라.
또 나 내지 아는 이[知者]ㆍ보는 이[見者]를 보지 않고,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를 보지 않고, 성문의 마음ㆍ벽지불의 마음을 보지 않고, 보살을 보지 않고, 보살의 법을 보지 않고, 부처님을 보지 않고, 부처님의 법을 보지 않고, 부처님의 도를 보지 않기 때문이니, 이 보살은 온갖 법을 보지 않기 때문에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으며, 마음이 위축되거나 후회하지 않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 때문에 이 보살은 마음으로 두려워하거나 위축되거나 후회하지 않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온갖 마음[心]과 마음에 속하는 법[心數法]을 얻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나니,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마음으로 두려워하거나 위축되거나 후회하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은 마음으로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의 뜻[意]과 뜻의 경계[境界]는 얻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나니, 이 때문에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행해야만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일체의 행처(行處)에서 반야바라밀을 얻지 못하고 보살의 이름을 얻지 못하며, 또한 보살의 마음도 얻지 못하나니, 곧 이것이 보살마하살에게 반야바라밀을 가르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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