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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66 불교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4권

by Kay/케이 2024.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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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4

 

 

마하반야바라밀경 제4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최봉수 번역
김형준 개역


11. 환학품(幻學品)거란본에는 환입품(幻入品)으로 되어 있음

그때에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幻人]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살바야(薩婆若)를 얻으며,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이 선나(禪那)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시라(尸羅)바라밀ㆍ단나(檀那)바라밀을 배우고 4념처(念處) 내지 18불공법(不共法)과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배우면 살바야를 얻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겠느니, 생각하는 대로 내게 대답해 보거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色]이 환(幻)과 다름이 있으며,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이 환과 다름이 있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눈[眼]이 환과 다름이 있으며, 나아가 뜻[意]에 이르기까지가 환과 다름이 있더냐? 빛깔[色] 내지 법(法)이 환과 다름이 있더냐? 눈의 경계[眼界] 내지 의식의 경계[意識界]가 환과 다름이 있더냐? 눈의 접촉[眼觸] 내지 뜻의 접촉[意觸],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 내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이 환과 다름이 있더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4념처(念處)가 환과 다름이 있으며, 나아가 8성도분(聖道分)에 이르기까지가 환과 다름이 있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이 환과 다름이 있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단나(檀那)바라밀이
환과 다름이 있으며, 나아가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가 환과 다름이 있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환과 다름이 있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물질이 환과 다르지 않고 환이 물질과 다르지 않아서 물질이 곧 환이요 환이 곧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환과 다르지 않고 환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과 다르지 않아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곧 환이요 환이 곧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눈이 환과 다르지 않고 환이 눈과 다르지 않아서 눈이 곧 환이요 환이 곧 눈이기 때문입니다.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에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4념처가 환과 다르지 않고 환이 4념처와 다르지 않아서 4념처가 곧 환이요 환이 곧 4념처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환과 다르지 않고 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다르지 않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곧 환이요 환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환에 더러운 것[垢]이 있고 깨끗한 것[淨]이 있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환에 나는 것[生]이 있고 없어지는 것[滅]이 있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법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면 이 법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살바야를 얻게 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5수음(受陰)1)의 임시의 이름[假名]이 바로 보살이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5수음(受陰)의 임시의 이름에 나고 없어지고 더럽고 깨끗한 것이 있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법에 이름[名字]만 있을 뿐, 몸도 아니고 몸의 업[身業]도 아니며, 입[口]도 아니요
입의 업[口業]도 아니며, 뜻도 아니요 뜻의 업[意業]도 아니며,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면 이와 같은 법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살바야를 얻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살바야를 얻게 되나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되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幻人]과 같이 배워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5음(陰)이 곧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이며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이 곧 5음이라고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5음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살바야를 얻게 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5음의 성품은 있는 바가 없으며, 이 있는 바가 없는 성품조차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치 꿈과 같은 5음으로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살바야를 얻게 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꿈의 성품은 있는 바가 없으며, 이 있는 바가 없는 성품조차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치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변화한 것[化]과 같은 5중(衆)으로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살바야를 얻게 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메아리나 그림자ㆍ아지랑이ㆍ변화한 것의 성품은 있는 바가 없으며, 이 있는 바가 없는 성품조차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6정(情)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분별[識]이 곧 6정(情)2)이요 6정이 곧 5중(衆)이니, 이 법은 모두 내공(內空)이기 때문에 얻을 수 없으며,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기 때문에 얻을 수 없습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새로 대승의 뜻[大乘意]을 일으킨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을 듣는다면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새로 대승의 뜻을 일으킨 보살이 반야바라밀에서 방편이 없고 또한 선지식(善知識)을 얻지 못한다면 이 보살은 혹은 놀라기도 하고 혹은 겁을 내거가 두려워하기도 하리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방편이기에 보살이 이 방편을 행한다면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게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살바야에 상응(相應)한 마음으로 물질의 무상(無常)한 모양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무상한 모양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한다면,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방편을 행한다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물질의 괴로운[苦] 모양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서도 또한 그러하며,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물질의 나 없는[無我] 모양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서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물질의 공(空)한 모양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서도 또한 그러하며, 물질의 모양이 없는[無相] 모양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서도 또한 그러하며, 물질의 조작이 없는[無作] 모양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서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물질의 고요히 사라진[寂滅] 모양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나아가 의식에서도 또한 그러하며, 물질의 여읜[離] 모양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나아가 의식에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방편을 행한다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물질의 무상한 모양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물질의 괴로운 모양ㆍ나 없는
모양ㆍ공한 모양ㆍ모양이 없는 모양ㆍ조작이 없는 모양ㆍ고요히 사라진 모양ㆍ여읜 모양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서도 또한 그와 같이 하면서 이때에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이 무상한 법 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해주어야 하며.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괴로운 모양ㆍ나없는 모양ㆍ공한 모양ㆍ모양이 없는 모양ㆍ조작이 없는 모양ㆍ고요히 사라진 모양ㆍ여읜 모양의 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고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단나(檀那)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으로써 물질의 무상함을 관하지 않으나 이것 또한 얻을 수 없으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으로써 분별[識]의 무상함을 관하지 않으나 또한 얻을 수 없느니라.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으로써 물질의 괴롭고 나가 없고 공하고 모양이 없고 지음이 없고 고요히 사라지고 여의는 것을 관하지 않으나 역시 얻을 수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識]에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시라(尸羅)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 모든 법의 무상한 모양 내지는 여읜 모양에서 참고 구하고 원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찬제(羼提)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살바야와 상응한 마음으로 물질의 무상한 모양 또한 얻을 수 없고, 나아가 여의는 모양 또한 얻을 수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역시 그와 같다고 관하며, 살바야와 상응한 마음으로써 버리지도 않고 쉬지도 않는다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과 그 밖의 착하지 않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선나(禪那)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느니라.
‘물질은 공하게 함으로써 물질이 공해지지 않나니,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와 같다. 눈을 공하게 함으로서 눈이 공해지지 않나니, 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눈이다. 나아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도 느낌을 공하게 함으로써 느낌이 공해지지 않나니, 느낌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느낌이다.
4념처를 공하게 함으로써 4념처가 공해지지 않나니, 4념처가 곧 공이요 공이 곧 4념처이며, 나아가 18불공법을 공하게 함으로써 18불공법이 공해지지 않나니, 18불공법이 곧 공이요 공이 곧 18불공법이다’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을 선지식(善知識)이 수호하기 때문에 이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도 않는다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의 선지식이라 함은 물질의 무상함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선근(善根)을 가져다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道)로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일체지(一切智)에 회향할 뿐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무상함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선근을 가져다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로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일체지에 회향할 뿐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선지식이 있나니, 물질의 괴로움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괴로움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며, 물질의 나없음도 또한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나 없음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며, 물질의 공하고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고 고요히 사라지고 여의는 것도 또한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공하고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고 고요히 사라지고 여의는 것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선근을 가져다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로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일체지에 회향할 뿐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선지식이 있나니, 눈의 무상함 내지 여읨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나아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의 무상함에서 여읨까지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선근을 가져다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로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일체지에 회향할 뿐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선지식이 있나니, 4념처의 법을 닦는 것 내지 여의는 것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선근을 가져다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로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일체지에 회향할 뿐이니, 수보리야,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나아가 18불공법을 닦고 일체지를 닦는 것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선근을 가져다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로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일체지에 회향하나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이 없이 삿된 친구[惡知識]를 따르기에 이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고는 놀라거나 두려워하게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일체지(一切智)의 마음을 여의고는 반야바라밀을 닦고 이 반야바라밀을 얻으며, 이 반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
찬제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단나바라밀을 생각하면서 모두 얻고 모두 생각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의 마음을 여의고는 물질[色]의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를 관찰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의 내공에서 무법유법공에 이르기까지를 관찰하며, 눈의 내공에서 무법유법공에 이르기까지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意觸因緣生受]의 내공에서 무법유법공에 이르기까지를 관찰하나니, 모든 법이 공한 데서 생각하는 바가 있고 얻는 바가 있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살바야의 마음을 여의고는 4념처(念處)를 닦으면서 또한 생각하고 또한 얻으며, 나아가 18불공법을 닦으면서도 생각하고 또한 얻나니,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이 없기 때문에 이 반야바라밀을 들으면 놀라고 두려워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악지식을 따르기에 반야바라밀을 듣고 놀라며 두려워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의 악지식(惡知識)은 반야바라밀을 여의도록 가르치고 선나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시라바라밀과 단나바라밀을 여의도록 가르치나니 수보리야, 이런 사람을 보살마하살의 악지식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삿된 벗이 있나니, 곧 악마의 일[魔事]을 말하지도 않고 악마의 죄[魔罪]를 말하지도 않으며 이러한 말을 짓지도 않는 자이니라.
악마는 부처님의 형상으로 변하여 보살에게 6바라밀을 여의도록 가르치면서 보살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야, 반야바라밀을 닦아서 무엇에 쓰려 하며, 선나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
찬제바라밀ㆍ시라바라밀과 단나바라밀을 닦아서 무엇에 쓰겠는가”라고 하나니, 이러한 자를 보살마하살의 악지식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악마는 또한 부처님의 형상으로 변하여 보살에게로 와서는 그를 위하여 성문의 경[聲聞經]인 수투로(修妬路)3)에서 우바제사(優波提舍)4)에 이르기까지를 말해 주며, 이러한 경을 가르치고 분별하고 연설하면서 끝내 그에게 악마의 일과 악마의 죄를 말해 주지 않나니, 이러한 자를 보살마하살의 악지식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악마는 부처님의 형상으로 변하여 보살에게로 와서 말하기를 “선남자야, 그대는 진실한 보살의 마음이 없고 아비발치(阿毘跋致)의 지위도 아니며, 그대는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도 없다”고 하면서 그에게 이와 같은 것이 악마의 일이요 악마의 죄라함도 말해 주지 않나니, 이러한 자를 보살마하살의 악지식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악마는 부처님의 형상으로 변하여 보살이 있는 곳으로 와서는 보살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야, 물질은 공하고 무아이고 내 것[我所]이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공하고 무아이고 내 것이 없으며, 눈은 공하고 무아이고 내 것이 없으며, 나아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까지도 공하고 나없고 내 것이 없으며, 단나바라밀을 공하고 나아가 반야바라밀까지도 공하며, 4념처가 공하고 나아가 18불공법까지도 공하거늘 그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무엇하러 닦느냐”고 하면서 이러한 것이 악마의 일이요 악마의 죄임을 말하지도 않고 가르쳐 주지도 않나니, 이러한 자를 보살의 악지식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악마는 벽지불의 몸으로 변하여 보살이 있는 곳으로 와서는 보살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여, 시방이 모두 공하여 이 가운데에는 부처님도 없고 보살도 없고 성문도 없다”고 하면서, 이러한 것이 악마의 일이요 악마의 죄임을 말하지도 않고 가르쳐 주지도 않나니, 이러한 자를 보살마하살의
악지식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악마는 화상(和尙)이나 아사리(阿闍梨)5)의 몸으로 변하여 보살이 있는 곳으로 와서는 보살의 도를 여의도록 가르치고 일체종지를 여의도록 가르치며, 4념처 내지 8성도분(聖道分)을 여의도록 가르치고 단나바라밀을 여의도록 가르치느니라. 나아가 18불공법을 여의도록 가르치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에 들어가게 하면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그대는 이 모든 법을 닦고 생각하여 성문(聲聞)을 증득하도록 하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닦아서 무엇하려는가”라고 하면서, 이와 같은 것이 악마의 일이요 악마의 죄임을 말하지도 않고 가르쳐 주지도 않나니, 이러한 자를 보살마하살의 악지식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악마는 부모의 형상으로 변하여 보살이 있는 곳으로 와서는 보살에게 말하기를 “아들아, 너는 수다원(須陀洹)의 과위를 증득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며, 나아가 아라한의 과위를 증득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거라. 네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닦아서 무엇하겠느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면 장차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나고 죽고 하면서 손을 잘리고 다리를 베이며 갖은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하면서, 이와 같은 것이 악마의 일이요 악마의 죄임을 말하지도 않고 가르쳐 주지도 않나니, 이러한 자를 보살의 악지식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악마는 비구의 형상으로 변하여 보살이 있는 곳으로 와서는 보살에게 말하기를 “눈의 무상함도 얻을 수 있는 법이요 나아가 뜻의 무상함도 얻을 수 있는 법이며, 눈의 괴롭고 눈의 무아이고 눈의 공하고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고 고요히 사라지고 여의는 것도 얻을 수 있는 법이요 나아가 뜻도 또한 그와 같다”고 하면서, 얻는 바가 있는 법[有所得法]으로써 4념처를 말하고 나아가 얻는 바가 있는 법으로써 부처님의 18불공법을 말하느니라. 게다가 수보리야, 이와 같은 것이 악마의 일이요 악마의 죄임을 가르쳐 주지 않고 말하지도 않나니, 이러한 자를 보살의 악지식이라고 알아야 하며, 그런 자라고 안 뒤에는 당연히 멀리 벗어나야 하느니라.”


12. 구의품(句義品)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이라는 어구(語句)의 뜻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구의 뜻이 없는 것이 바로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니라.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가운데에는 뜻[義]이 있는 곳도 없고 또한 나[我]도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어구의 뜻이 없는 것이 바로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새가 허공을 날 적에 발자국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에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꿈속에서 보는 것이 처소(處所)가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에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환(幻)에 진실한 뜻이 없고 마치 아지랑이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부처님께서 변화시킨 것에 진실한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에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여(如)와 법성(法性)과 법상(法相)과 법위(法位)와 실제(實際)에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에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幻人]에게 물질은 뜻이 없고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눈[眼]은 뜻이 없고 나아가 뜻[意]은 뜻[義]이 없는 것처럼, 수보리야,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빛깔[色]은 뜻이 없고 나아가 법(法)까지도 뜻이 없으며, 눈의 접촉[眼觸]에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意觸因緣生受]까지도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이 내공(內空)을 행할 때에 뜻이 없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을 행할 때에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이 4념처(念處)에서 18불공법(不共法)에 이르기까지를 행할 때에도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ㆍ아라하(阿羅訶)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6)에게 물질이 뜻이 없음은 이 물질이 없기 때문인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語句)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에게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뜻이 없음은 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없기 때문인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의 눈은 처소가 없고 나아가 뜻까지도 처소가 없으며, 빛깔에서 법에 이르기까지는 처소가 없고, 눈의 접촉에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까지도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에게 내공(內空)은 처소가 없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가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에게 4념처는 처소가 없고 나아가 18불공법까지가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유위의 성품[有爲性] 가운데에는 무위의 성품[無爲性]의 뜻[義]이 없고 무위의 성품 가운데에는 유위의 성품의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나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다는[不生不滅] 뜻에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짓지 않고[不作] 벗어나지 않고[不出] 얻지 않고[不得] 더럽지 않고[不垢] 깨끗하지 않다[不淨]는 뜻에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법이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으며, 어떤 법이 짓지 않고 벗어나지 않고 얻지 않고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물질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으며, 나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는 것까지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입(入)과 계(界)가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고 나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며, 4념처가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고 나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며, 18불공법이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고 나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는 것도 또한 그와 같나니,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4념처의 청정한 뜻[淨義]을 마침내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4정근(正勤) 내지 18불공법의 청정한 뜻을 마침내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청정함 가운데에서 나[我]를 얻을 수 없음은 나가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청정함 가운데에서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를 얻을 수 없음은 알거나 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해가 나왔을 때는 어둡고 캄캄함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겁의 불길로 태워질[劫燒] 때에는 온갖 물건이 남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의 계율[戒] 가운데에는 파계(破戒)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의 선정[定] 가운데에는 산란한 마음이 없고, 부처님의 지혜 가운데에는 어리석음이 없으며, 부처님의 해탈 가운데에는 해탈 아님이 없고, 해탈지견 가운데에는 해탈지견 아님이 없는 것처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語句)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부처님의 광명 가운데에는 해와 달의 광명이 나타나지 못하고 부처님의 광명 가운데에는 사천왕천(四天王天)ㆍ삼십삼천(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ㆍ범중천(梵衆天) 내지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 등의 광명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처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보살과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과 이 온갖 법은 모두가 합하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고 대할 수도 없는 한 모양[一相]이어서 이른바 모양이 없기[無相]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의 막힘없는 모양[無礙相] 가운데에서 배워야만 하고 또한 알아야만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온갖 법이며 어떻게 온갖 법 가운데에서 장애 없는 모양[無礙相]을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법이라 함은 착한 법[善法]ㆍ착하지 않은 법[不善法], 기법(記法)ㆍ무기의 법[無記法], 세간의 법[世間法]ㆍ출세간의 법[出世間法], 유루의 법[有漏法]ㆍ무루의 법[無漏法], 유위의 법[有爲法]과 무위의 법[無爲法], 공통하는 법[共法]과 공통하지 않은 법[不共法]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온갖 법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 온갖 법의 장애 없는 모양[無礙相] 가운데에서 배워야 하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세간의 착한 법이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착한 법이라 함은 부모에게 효순(孝順)하고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에게 공양하며 높은 어른을 공경하고 섬기면서 보시로 복 짓는 곳[布施福處]ㆍ계율을 지니어 복 짓는 곳[持戒福處]ㆍ선정을 닦아 복 짓는 곳[修定福處]과 복 짓는 일을 권하고 인도하며 방편으로 복덕을 내는 것과 세간의 10선도(善道)이니라.
그리고 아홉 가지 모양이란 창상(脹相)과 혈상(血相)과 괴상(壞相)과 농란상(濃爛相)과 청상(靑相)과 담상(噉相)과 산상(散相)과 골상(骨相)과 소상(燒相)이며, 4선(禪)ㆍ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과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사(念捨)ㆍ염천(念天)ㆍ염선(念善)ㆍ염안반(念安般)ㆍ염신(念身)ㆍ염사(念死) 등이니, 이것을 세간의 착한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착하지 않은 법인지요?”
“남의 목숨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이간질을 하고 거친 말을 하며, 때 아닌데도 말을 하고 탐욕을 내며, 괴롭히고 해치고 삿된 견해를 내는 등 이 10불선도(不善道) 등 이니, 이것을 착하지 않은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기법(記法)인지요?”
“착한 법과 착하지 않은 법 등이니, 이것을 유기의 법이라 하느니라.”7)
“무엇이 무기의 법[無記法]인지요?”
“무기의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과 무기의
4대(大)와 무기의 5중(衆)ㆍ12입(入)ㆍ18계(界)와 무기의 과보이니, 이것을 무기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세간의 법[世間法]인지요?”
“5중(衆)ㆍ12입(入)ㆍ18계(界)ㆍ10선도(善道)와 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이니, 이것을 세간의 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출세간의 법[出世間法]이라 하는지요?”
“4념처(念處)ㆍ4정근(正懃)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성도분(聖道分)과 공해탈문(空解脫門)ㆍ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ㆍ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과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ㆍ지근(知根)ㆍ지이근(知已根)의 3무루근(無漏根)과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ㆍ무각유관삼매(無覺有觀三昧)ㆍ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의 3삼매(三昧)와 명(明)ㆍ해탈(解脫)ㆍ염(念)ㆍ혜(慧)ㆍ정억념(正憶念)이니라.
다시 8배사(背捨)가 있느니라. 무엇이 8배사냐 하면, 안으로 물질의 모양[色相]이 있고 밖으로 물질을 관함은 첫 번째 배사요, 안으로는 물질의 모양이 없고 밖으로 물질을 관함은 두 번째 배사요, 청정한 해탈을 몸으로 증득함은 세 번째 배사이니라.
온갖 물질의 모양을 초월하는 까닭에 온갖 대함이 있는 모양을 없애고 일체의 다른 모양을 생각하지 않는 까닭에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에 들어감은 네 번째 배사요, 온갖 무변허공처를 초월하여 온갖 무변식처(無邊識處)에 들어감은 다섯 번째 배사요, 온갖 무변식처를 초월하여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감은 여섯 번째 배사요, 온갖 무소유처를 초월하여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들어감은 일곱 번째 배사요, 온갖 비유상비무상처를 초월하여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감은 여덟 번째 배사이니라.
다시 9차제정(次第定)이 있느니라. 무엇이 아홉인가 하면, 욕계(欲界)의 삿된 법을 떠나 거친 생각[覺]도 있고 세밀한 생각[觀]도 있으면서 애욕을 여읨에 의해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초선(初禪)에 들어가느니라.
모든 거친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없어지고 안으로 청정하기 때문에 한마음이 되면서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이 집중[定]에 의해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제2선(禪)에 들어가느니라.

기쁨을 여의는 까닭에 무관심[捨]을 행해 몸의 즐거움을 느끼는, 이른바 성인이라면 그 안에서 능히 말하기도 하고 능히 생각을 버리기도 하면서 몸의 즐거움을 행하는 제3선에 들어가느니라.
즐거움과 괴로움이 끊어지는 까닭에 이전에 있었던 기쁨과 근심이 없어져서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채 무관심한 염만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가느니라.
일체의 물질의 모양[色相]을 초월하고 대하는 모양을 없애며, 일체의 다른 모양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에 들어가느니라.
일체의 무변허공처를 초월하여 일체의 무변식처(無邊識處)에 들어가며, 일체의 무변식처를 초월하여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가며, 일체의 무소유처를 초월하여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들어가며,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초월하여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가느니라.
다시 출세간의 법이 있나니,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와 부처님의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4무애지(無礙智)ㆍ18불공법(不共法)ㆍ일체지(一切智)이니, 이것을 출세간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유루의 법[有漏法]인지요?”
“5수중(受衆)과 12입(入)과 18계(界)와 6종(種)ㆍ6촉(觸)ㆍ6수(受)와 선(禪) 내지 4무색정(無色定)이니, 이것을 유루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루의 법[無漏法]인지요?”
“4념처 내지 18불공법과 일체종지(一切種智)이니, 이것을 무루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유위의 법[有爲法]인지요?”
“법으로서 나고[生]ㆍ머무르고[住]ㆍ없어지는[滅]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5중(衆) 내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과 4념처로부터 18불공법까지와 일체지(一切智)이니, 이것을 유위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위의 법[無爲法]인지요?”
“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과 음욕의 마음이 다하고 성냄이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한 것과 여(如)ㆍ불이(不二)ㆍ법상(法相)ㆍ법성(法性)ㆍ법주(法住)ㆍ실제(實際)이니, 이것을 무위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공통되는 법[共法]인지요?”
“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의 이와 같은 것 등을 바로 공통되는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공통되지 않는 법[不共法]인지요?”
“4념처에서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이니, 이것을 공통되지 않는 법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 자상이 공한 법 가운데에서 집착하지 않아야 하나니,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또한 온갖 법의 둘이 아닌 모양[不二相]을 알아야 하나니,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보살의 이치[義]라 하느니라.”

13. 금강품(金剛品)거란본에는 마하살품(摩訶薩品)으로 되어 있음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마하살(摩詞薩)이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은 필정중(畢定衆) 가운데에서 우두머리[上首]가 되나니, 이 때문에 마하살이라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필정중이라 하며 이 보살마하살이 그의 우두머리가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필정중이라 함은 성지의 사람[性地人]8)과 8인(人)과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 및 벽지불(辟支佛)과 처음 발심한 보살[初發心菩薩] 내지 아비발치지(阿毘跋致地)의 보살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이 필정중이니, 보살은 그곳에서 우두머리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이 가운데에서 큰 마음[大心]을 내되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마치 금강(金剛)과 같으므로 당연히 필정중에서 우두머리가 되어야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큰 마음을 내되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마치 금강과 같다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나는 한량없이 나고 죽는 가운데에서 큰 서원[大誓]으로 장엄해야 한다. 나는 온갖 소유(所有)를 버려야 한다. 나는 동등한 마음으로 온갖 중생들을 대해야 한다. 나는 3승(乘)으로써 온갖 중생을 제도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해야 한다. 나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 뒤에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도 남김없이 열반에 들게 해야만 한다.
나는 온갖 법들의 나지 않는 모양[不生相]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순수하게 살바야(薩婆若)의 마음으로써 6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나는 지혜를 배워서 온갖 법을 환히 통달해야 한다. 나는 모든 법의 한 모양[一相]의 지혜문을 분명하게 통달해야 하며, 나아가 나는 한량없는 모양[無量相]의 지혜문에 이르기까지 분명하게 통달해야만 한다.’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큰 마음을 내되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마치 금강과 같다고 하며 이 보살마하살이 이런 마음 안에 머물러 모든 필정중 가운데에서 우두머리가 되나니, 이 법은 얻을 바가 없는[無所得] 것으로써 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나는 시방의 온갖 중생과 그리고 지옥의 중생과 축생의 중생과 아귀의 중생들을 대신하여 모든 고통을 받아야 하고,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한량없는 백천억겁 동안 다시 지옥 속의 고통을 받아야 하며, 나아가 이 중생들이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기까지 이런 법으로써 이 중생들을 위하여 갖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이 중생들이 무여열반에 들고 나면 그런 뒤에는 스스로 한량없는 백천만억의 아승기겁 동안 선근(善根)을 심으며 그리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한다.’
수보리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큰 마음을 내되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마치 금강과 같다는 것이며, 이런 마음 가운데에 머무르기에 필정중에서 우두머리가 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크고 흔쾌한 마음[大快心]을 내나니, 이 크고 흔쾌한 마음 안에 머무르므로 필정중에서 우두머리가 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크고 흔쾌한 마음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내면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음욕의 마음이나 성내는 마음이나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않고 괴롭히는 마음[惱心]도 내지 않으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도 내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크고 흔쾌한 마음이라 하며 이런 마음 안에 머무르므로 필정중에서 우두머리가 되며 그러면서도 또한 이런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동요하지 않는 마음[不動心]을 내어야만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동요하지 않는 마음이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일체종지(一切種智)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또한 이런 마음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동요하지 않는 마음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온갖 중생들에게 대하여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마음[利益安樂心]을 내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마음이라 하느냐 하면, 온갖 중생을 구제하고 온갖 중생을 버리지 않으면서 이 일에도 또한 이런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온갖 중생들에 대하여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필정중 가운데에서 가장 우두머리가 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법을 원하고[欲法] 법을 기뻐하고[喜法] 법을 좋아하는[樂法] 마음을 행해야 하느니라.
무엇이 법(法)이냐 하면, 이른바 모든 것의 실상(實相)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을 바로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법을 원한다 하고 법을 기뻐한다 하느냐 하면, 법을 믿고 법을 인정하고 법을 받는 것을 바로 법을 원한다 하고 법을 기뻐한다고 하느니라. 무엇을 법을 좋아한다 하느냐 하면, 항상 이 법을 닦는 것을 바로 법을 좋아한다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므로 필정중 가운데에서 우두머리가 될 수 있나니, 이법은 얻을 바가 없는 것으로써 하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내공(內空) 내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머무르므로 필정중 가운데에서 우두머리가 될 수 있나니, 이 법은 얻을 바가 없는 것으로써 하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4념처(念處) 안에 머무르며,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안에 머무르므로 필정중에서 우두머리가 될 수 있나니, 이 법은 얻을 바가 없는 것을 써서 하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여금강삼매(如金剛三昧)에서 이착허공불염삼매(離著虛空不染三昧)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머무르므로 필정중 가운데에서 우두머리가 되나니, 이 법은 얻을 바가 없는 것을 써야 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 모든 법 안에 머무르므로 필정중에서 우두머리가 될 수 있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마하살이라 하느니라.”

14. 요설품(樂舌品)거란본에는 단견품(斷見品)으로 되어 있음

그때에 혜명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또한 마하살(摩詞薩)이 되는 까닭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말해 보아라.”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아견(我見)과 중생견(衆生見)ㆍ수견(壽見)ㆍ명견(命見)ㆍ생견(生見)ㆍ양육견(養育見)ㆍ중수견(衆數見)ㆍ인견(人見)ㆍ작견(作見)ㆍ사작견(使作見)ㆍ기견(起見)ㆍ사기견(使起見)ㆍ수견(受見)ㆍ사수견(使受見)ㆍ지자견(知者見) 및 견자견(見者見)과 단견(斷見)ㆍ상견(常見)ㆍ유견(有見)ㆍ무견(無見)과 음견(陰見)ㆍ입견(入見)ㆍ계견(界見)과 진리에 대한 견해[諦見]ㆍ인연에 대한 견해[因緣見]와 4념처에 대한 견해 내지 18불공법에 대한 견해ㆍ부처님 도에 대한 견해[佛道見]ㆍ중생을 성취시키는 데에 대한 견해[成就衆生見]ㆍ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데에 대한 견해[淨佛世界見]ㆍ부처님에 대한 견해[佛見]ㆍ법륜을 굴리는 데에 대한 견해[轉法輪見] 등 이와 같은 모든 견해를 끊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한다면 이를 마하살이라 합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 때문에 물질에 대한 견해[色見]는
허망한 견해이며, 무슨 인연 때문에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 내지 법륜을 굴리는 데 대한 견해가 허망한 견해라 하는지요?”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방편이 없는 까닭에 물질에 대하여 견해를 일으키니, 얻을 바가 있는 것[有所得]으로써 하기 때문입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내지 법륜을 굴리는 데에 대하여 견해를 일으키니, 얻을 바가 있는 것으로써 하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에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의 힘으로써 모든 견해를 끊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게 되니, 이는 얻을 바가 없는 것으로써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또한 마하살인 까닭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말해 보아라.”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과 무등등의 마음[無等等心]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과는 함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체지의 마음[一切智心]은 무루(無漏)이고 매이지 않기[不繫] 때문이며, 이 일체지의 마음은 무루이고 매이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또한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마하살이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무등등의 마음으로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과는 함께하지 않는 것인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내면서부터 법에 나고 없어지는 것이 있다거나 더하고 덜한 것이 있다거나 더럽고 깨끗한 것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만일 법에 나는 것이 없고 없어지는 것이 없으며, 나아가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면, 이 가운데에는 성문의 마음도 없고 벽지불의 마음도 없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도 없고 부처님의 마음도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무등등의 마음이라 하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과는 함께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마치 수보리께서 말씀한 대로 일체지의
마음은 무루의 마음에도 매이지 않고 그런 마음 가운데에서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수보리여, 물질에도 집착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4념처에도 집착하지 않고, 나아가 18불공법에도 집착하지 않거늘 무엇 때문에 단지 마음에만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물질에도 집착하지 않고, 나아가 18불공법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범부의 사람의 마음도 또한 무루요 매이지 않나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과 모든 부처님의 마음도 또한 무루요 매이지 않나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사리불이 말했다.
“수보리여, 물질도 또한 무루요 매이지 않나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무루요 매이지 않나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도 무루요 매이지 않나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4념처도 또한 무루요 매이지 않나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18불공법도 또한 무루요 매이지 않나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마치 사리불께서 말씀한 대로 범부의 사람의 마음도 무루요 매이지 않나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18불공법도 또한 무루요 매이지 않나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마치 수보리께서 말씀한 대로 공하여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이 마음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물질이 없기 때문에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내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도 없기 때문에 느낌에 집착하지 않으며, 4념처가 없기 때문에 4념처에 집착하지 않고 나아가 18불공법이 없기 때문에 18불공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물질이
없기 때문에 물질 가운데에 집착하지 않고, 나아가 18불공법이 없기 때문에 18불공법 가운데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과 무등등의 마음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과는 함께하지 않으며, 이 마음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 마음에 집착하지 않나니, 온갖 법은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하살이라 합니다.”

15. 변재품(辯才品)거란본에는 부루나품(富樓那品)으로 되어 있음

그때에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마하살이 되는 까닭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말해 보아라.”
부루나미다라니자가 말씀드렸다.
“이 보살은 크게 장엄[大莊嚴]하며, 이 보살은 대승으로 나아가며, 이 보살은 대승에 오릅니다. 이 때문에 이 보살을 마하살이라 합니다.”
사리불이 부루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크게 장엄한다 하는지요?”
부루나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보살마하살은 그만의 사람들을 위하여 단나(檀那)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단나바라밀을 행하겠다고 분별하지 않고 온갖 중생들을 위하는 까닭에 단나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단나바라밀을 행합니다. 그만의 사람들만을 위하여 시라(尸羅)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시라바라밀을 행하지는 않습니다. 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 및 반야(般若)바라밀도 그와 같으며, 온갖 중생들을 위하는 까닭에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입니다.
보살마하살의 큰 장엄은 중생을 제한하면서
“나는 얼마쯤의 사람만을 제도해야 하고 그 밖의 사람은 제도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으며, “나는 얼마쯤의 사람만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게 하고 그밖에 사람은 이르게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널리 온갖 중생들을 위하는 까닭에 크게 장엄하면서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스스로 단나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고 또한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단나바라밀을 행하게 해야 하리라. 스스로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고, 스스로 반야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고서 또한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반야바라밀을 행하게 해야 하리라”고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있게 되는 보시를 살바야(薩婆若)에 상응한 마음으로 온갖 중생들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廻向)하나니,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단나바라밀로 크게 장엄한다고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로 향하지 않나니,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시라바라밀로 크게 장엄한다고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이 모든 보시의 법에 대하여 믿고 인내하고자 하나니, 이것을 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찬제바라밀로 크게 장엄한다고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부지런히 닦으면서 쉬지 않나니, 이것을
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비리야바라밀로 크게 장엄한다고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마음을 제어해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을 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선나바라밀로 크게 장엄한다고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모든 법은 마치 환과 같아서 보시하는 이도 얻지 못하고 보시하는 물건도 얻지 못하며 받는 이도 얻지 못한다고 관찰하나니, 이것을 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반야바라밀로 크게 장엄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모든 바라밀의 모양을 취하지도 않고 얻지도 않는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크게 장엄한다고 알아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시라(尸羅)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온갖 중생들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의 단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법을 믿고 인내하고자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시라라바라밀을 행할 때의 찬제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에 부지런히 닦으면서 쉬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의 비리야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의 선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법은 마치 환과 같다고 관찰하며 또한 이 계율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나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의 반야바라밀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바라밀을 섭수(攝受)하나니, 이 때문에 크게 장엄한다고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찬제(羼提)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온갖 중생들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찬제바라밀을 행할 때의 단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찬제바라밀을 행할 때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살바야의 마음만을 받아들이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찬제바라밀을 행할 때의 시라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찬제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이 정진하면서 쉬지도 않고 그치지도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찬제바라밀을 행할 때의 비리야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찬제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음을 한군데로 거두어 비록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찬제바라밀을 행할 때의 선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찬제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모든 법은 공하여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으며, 설령 어떤 이가 꾸짖고 욕하고 자르고 베는 이가 있다 해도 마음으로 마치 환과 같고 꿈과 같다고 관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찬제바라밀을 행할 때의 반야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면서 몸과 마음이 게으르지 않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을 행할 때의 단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비리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처음부처 끝까지 구족하고 청정하게 계율을 지니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을 행할 때의 시라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비리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인욕을 닦고 행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을 행할 때의 찬제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비리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마음을 거두고 욕망을 여의면서 모든 선정에 들어가나니, 이것을 비리야바라밀을 행할 때의 선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비리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온갖 법들의 모양을 취하지 않고, 모양을 취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또한 집착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을 행할 때의 반야바라밀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비리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바라밀을 섭수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선나(禪那)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선정의 마음으로 보시하면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의 단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선나(禪那)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계율을 지니되 선정의 힘 때문에 계율을 깨뜨리는 모든 법에 얻어 들지 않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의 시라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자비정(慈悲定)으로 모든 뇌해(惱害)를 참아내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의 찬제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선(禪)에 맛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항상 한층 더 나아가기를 구해 하나의 선[一禪]에서 또 다른 선에 이르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의 비리야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온갖 법에 의지함이 없고 또한 선(禪)을 따라서 나지도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의 반야바라밀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바라밀을 섭수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안팎의 소유한 물건을 보시하되 아까워하는 마음 없고 주는 이ㆍ받는 이ㆍ재물을 생각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의 단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계율을 지니고 계율을 깨뜨리는 두 가지의 일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의 시라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꾸짖는 이ㆍ욕하는 이ㆍ때리는 이ㆍ죽이는 이를 보지 않으며, 또한 이 공으로써 능히 인욕함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의 찬제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모든 법은 필경공(畢竟空)이라고 관하면서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大悲心] 때문에 모든 착한 법을 행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의 비리야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선정에 들어가서 모든 선정의 여의는 모양[離相]ㆍ공한 모양[空相]ㆍ모양이 없는 모양[無相相]ㆍ조작이 없는 모양[無作相]을 관찰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의 선나바라밀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바라밀을 섭수합니다.
사리불이여, 이와 같은 것을 바로 보살마하살의 큰 장엄[大莊嚴]이라 합니다. 이렇게 크게 장엄한 보살을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기뻐하면서 대중 가운데에서
이름을 부르며 찬탄하시되 “아무 세계의 아무 보살마하살이 크게 장엄하고서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세계를 맑히고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혜명 사리불이 부루나미다라니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대승(大乘)으로 나아가는지요?”
부루나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욕망을 여의고 모든 악과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서 거친 생각[覺]ㆍ세밀한 생각[觀] 있으며, 애욕을 여읨에서 생하는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드나니, 이와 같이 해서 제4선(禪)까지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심(慈心)이 광대하여 둘도 없고 한량없으면서 원(怨)도 없고 한(恨)도 없고 괴로움도 없는 마음의 작용이 두루 가득 차면서 하나ㆍ둘ㆍ셋 및 네 방향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로 온갖 세간에 두루하게 하나니, 비심(非心)ㆍ희심(喜心)ㆍ사심(捨心)에서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또한 이 보살은 선(禪)에 들어갈 때나 일어날 때에 모든 선의 한량없는 마음[無量心]과 그 갈래[支]를 온갖 중생과 함께 살바야에 회향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로써 대승으로 나아간다고 합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선의 한량없는 마음에 머무르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어야 하며 온갖 중생들의 번뇌를 끊어 주기 위하여 법을 설해야 한다”고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의 단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초선(初禪)에 머무르고, 2선ㆍ3선ㆍ4선에서도 그와 같이 하면서 다른 마음 즉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의 시라바라밀이라 합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모든 선에 들어가서 생각하기를 “나는 온갖 중생들이 번뇌를 끊게 하기 위하여 설법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 모든 마음을 원하고 구하고 참아 내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의 찬제바라밀이라 합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모든 선에 들어가 모든 선근(善根)을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면서 부지런히 닦고 쉬지 않는다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의 비리야바라밀이라 합니다.
만일 보살마하사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4선(禪)과 그리고 갈래에 들어가 무상한 모양[無常相]과 괴로운 모양[苦相]과 나 없는 모양[無我相]과 공한 모양[空相]과 모양 없는 모양[無相相]과 조작 없는 모양[無作相]을 관하면서 온갖 중생과 함께 살바야에 회향하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을 행할 때의 반야바라밀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고 합니다.
다시 보살마하살은 인자한 마음[慈心]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모든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悲心]에 들어가야 한다. 나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기뻐하는 마음[喜心]에 들어가야 한다. 나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동등한 마음[捨心]에 들어가야 한다. 나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번뇌가 다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무량심(無量心)을 행할 때의 단나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보살마하살이 이 모든 선(禪)의 무량심을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로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살바야에만 회향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무량심을 행할 때의 시라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4무량심을 행할 때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탐내지 않고 단지 참으면서 살바야를 구하고 원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무량심을 행할 때의 찬제바라밀이라 합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4무량심을 행하면서
단지 청정한 행만을 행한다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무량심을 행할 때의 비리야바라밀이라 합니다.
다시 보살마하살이 선정에 들어가고 무량심에 들어갈 때에 역시 선정과 무량심에 따라 태어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무량심을 행할 때의 방편(方便)반야바라밀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가 모든 종류의 4념처를 닦고, 나아가 모든 종류의 8성도분(聖道分)을 닦으며 모든 종류의 3해탈문(解脫門) 내지 18불공법을 닦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내공(內空) 안의 지혜는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요,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 안의 지혜는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 가운데에서 산란하지도 않고 안정되지도 않은 지혜가 있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대승으로 나아가되 항상한 것[常]도 아니고 무상(無常)한 것도 아닌 지혜와 즐거운 것[樂]도 아니고 괴로운 것[苦]도 아니며, 진실한 것[實]도 아니고 거짓[虛]도 아니며, 나[我]도 아니고 나가 없는 것[無我]도 아닌 지혜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 하나니, 그것은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의 지혜는 과거의 세상을 행하지 않고 미래의 세상을 행하지 않고 현재의 세상을 행하지 않습니다. 또한 3세(世)를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 하며 그것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가는
지혜는 욕계(欲界)를 행하지 않고 색계(色界)를 행하지 않고 무색계(無色界)를 행하지 않으며, 또한 욕계ㆍ색계ㆍ무색계를 알지 못한 것도 아니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 합니다.
다시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가는 지혜는 세간의 법[世間法]을 행하지 않고 출세간의 법[出世間法]을 행하지 않으며, 유위의 법[有爲法]을 행하지 않고 무위의 법[無爲法]을 행하지 않으며, 유루의 법[有漏法]을 행하지 않고 무루의 법[無漏法]을 행하지 않으며, 또한 세간의 법과 출세간의 법과 유위의 법과 무위의 법과 유루의 법과 무루의 법을 알지 못한 것도 아니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 합니다.

16. 승승품(乘乘品)

그때에 혜명 사리불이 부루나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승에 오른다고 하는 것인지요?”
부루나가 사리불에게 대답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단나(檀那)바라밀에 오르면서도 단나바라밀도 얻지 못하고, 또한 보살도 얻지 못하며, 또한 받는 이도 얻지 못하나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단나바라밀에 오른다고 합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에 올라 반야(般若)바라밀에 오르면서도 또한 반야바라밀도 얻지 못하고 또한 보살도 얻지 못하나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오른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에 오른다고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마하연(摩訶衍)의 한마음이 살바야(薩婆若)에 상응하면서 4념처(念處)를 닦되 법이 파괴되기 때문에, 나아가 한마음이 살바야에 상응하면서 18불공법까지를 닦되 법이 파괴되기 때문에 이것도 또한 얻을 수 없나니, 이와 같아서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에 오른다고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보살은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중생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에 오른다고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물질[色]은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물질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고, 느낌[受]ㆍ생각[相]ㆍ지어감[行]ㆍ분별[識]은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의식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눈[眼]은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눈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뜻[意]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다.
4념처는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4념처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8성도분에 이르기까지도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8성도분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공(內空)은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내공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도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무법유법공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18불공법까지도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18불공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법의 여(如)는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여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법상(法相)ㆍ법성(法性)ㆍ법주(法住)ㆍ실제(實際)는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법상(法相)ㆍ법성(法性)ㆍ법주(法住)ㆍ실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부처님은 단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니, 부처님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에 오른다고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처음 뜻을 내어서부터 보살의 신통을 두루 갖추면
중생을 성취시키고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면서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법의 가르침을 듣고 받게 되나니, 이른바 보살의 대승입니다.
이 보살은 대승의 탈것에 올라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면서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되 처음부터 부처님의 나라라는 생각이 없고 또한 중생이라는 생각도 없나니, 이 사람은 둘이 아닌 법[不二法] 안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몸을 받아서 그의 알맞은 바에 따라 그 형상을 스스로 변화하면서 그들을 교화시키며 이에 온갖 지혜[一切智]에 이르기까지 끝내 보살승(菩薩乘)을 여의지 않습니다.
이 보살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은 뒤에는 법륜(法輪)을 굴리시나니, 성문이나 벽지불과 그리고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라 및 세간의 인민들로서는 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에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기뻐하면서 이름을 부르며 찬탄하시되 ‘아무 방향 아무 나라의 아무개 보살마하살이 대승에 올라 일체종지를 얻고는 법륜을 굴리노라’고 하십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에 오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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