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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68 불교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6권

by Kay/케이 2024.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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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6

 

 

마하반야바라밀경 제6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최봉수 번역
김형준 개역


20. 발취품(發趣品)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가느냐고 물었는데, 만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행할 때에 한 지위[地]로부터 다시 다른 지위에 이른다면 그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고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한 지위로부터 다시 다른 지위에 이르게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의 오고 가는 모양도 없고, 또한 어떠한 법도 오거나 가거나 이르거나 이르지 않거나 하는 것도 없는 줄 아나니, 모든 법의 모양은 소멸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모든 지(地)에 대하여 기억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지의 업[地業]을 닦고 다스리며, 또한 그 지를 보지도 않느니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초지(初地)에 머물러 있을 때에 열 가지의 일을 행하느니라. 첫째는 깊은 마음이 견고하나니, 그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온갖 중생들에 대하여 동등한 마음을 지니나니 중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셋째는 보시를 하나니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넷째는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하면서도 또한 교만해지지 않으며, 다섯째는 법을 구하나니 온갖 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여섯째는 항상 출가(出家)하나니 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일곱째는 부처님의 몸을 좋아하나니 상호(相好)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법의 가르침을 널리 펴내나니 모든 법의 분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아홉째는 교만의 법을 깨뜨리나니 법(法)과 생함[生]과 지혜[慧]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열째는 진실한 말을 하나니 모든 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초지 가운데에 머물러서 열 가지 일을 닦으며 지업(地業)을 다스리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2지(地) 안에 머무를 때에 항상 여덟 가지의 법을 염(念)하느니라. 무엇이 여덟 가지의 법이냐 하면, 첫째는 계율[戒]이 청정한 것이요, 둘째는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것이며, 셋째는 인욕(忍辱)에 머무르는 것이요, 넷째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며, 다섯째는 온갖 중생들을 버리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대비(大悲)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며, 일곱째는 스승을 믿고 공경하면서 물어 가르침을 받는 것이요, 여덟째는 모든 바라밀을 힘써 구하는 것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2지 안에 머무르면서 온전히 갖추어야 할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3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다섯 가지 법을 행하느니라. 무엇이 다섯 가지 법이냐 하면, 첫째는 많이 배우고 물으면서 만족해하지 않고, 둘째는 청정하게 법을 보시하면서 또한 교만해지지 않으며, 셋째는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면서 또한 교만해지지 않으며, 넷째는 세간의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싫증을 내지 않으며, 다섯째는 나와 남에게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3지 안에 머무르면서 온전히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의 법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4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열 가지의 법을 받아 행하고 버리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 법이냐 하면, 첫째는 아련야(阿練若)의 처소1)를 버리지 않고, 둘째는 욕망이 적으며, 셋째는 만족할 줄을 알며, 넷째는 두타(頭陀)2)의 공덕을 버리지 않으며, 다섯째는 계율[戒]을 버리지 않으며, 여섯째는 모든 욕망을 더럽게 여기며, 일곱째는 세간을 싫어하는 마음을 지니며, 여덟째는 온갖 가진 것을 버리며, 아홉째는 마음이 위축되지 않으며, 열째는 온갖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4지 안에 머무르면서 버리지 않는 열 가지의 법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5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열두 가지의 법을 멀리 여의느니라. 무엇이 열두 가지의 법이냐 하면,
첫째는 속인과 가까이하는 일을 멀리 여의고, 둘째는 비구니(比丘尼)를 멀리 여의며, 셋째는 다른 이의 집에 대한 간탐을 멀리 여의며, 넷째는 무익한 담론(談論)을 멀리 여의며, 다섯째는 성내는 일을 멀리 여의며, 여섯째는 자기 자신이 위대한 척하는 일을 멀리 여의느니라.
일곱째는 남을 멸시하는 일을 멀리 여의고, 여덟째는 10불선도(不善道)를 멀리 여의며, 아홉째는 크게 잘난 체하는 일을 멀리 여의고, 열째는 스스로 쓰는 일을 멀리 여의며, 열한째는 뒤바뀐 일을 멀리 여의고, 열두째는 음욕[婬]ㆍ성냄[怒]ㆍ어리석음[癡]을 멀리 여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5지 안에 머무르면서 멀리 여의는 열두 가지의 일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6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여섯 가지의 법을 구족해야 하느니라. 무엇이 여섯 가지의 법이냐 하면, 이른바 6바라밀이니라.
다시, 하지 않아야 할 여섯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무엇이 여섯 가지의 법이냐 하면, 첫째는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을 짓지 않고, 둘째는 보시하면서 근심하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하며, 셋째는 구한 바가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위축되지 않고, 넷째는 가지고 있는 물건을 다 보시하며, 다섯째는 보시한 뒤에는 마음에 뉘우치지 않고, 여섯째는 깊은 법을 의심하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제6지 안에 머무르면서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의 법이요 멀리 여의어야 할 여섯 가지의 법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7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스무 가지의 법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엇이 스무 가지의 법이냐 하면, 첫째는 나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고, 둘째는 중생(衆生)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셋째는 수명(壽命)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넷째는 중수(衆數)에서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에 이르기까지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다섯째는 단견(斷見)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여섯째는 상견(常見)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고, 일곱째는 상(相)을 짓지 않아야 하며, 여덟째는 원인[因]에 대한 견해를 짓지 않아야 하고, 아홉째는 이름과 물질[名色]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열째는 5중(衆)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열한째는 18계(界)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고, 열두째는
12입(入)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열셋째는 삼계(三界)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열넷째는 집착할 곳[著處]을 만들지 않아야 하며, 열다섯째는 바라는 곳[所期處]을 짓지 않아야 하느니라.
열여섯째는 의지하는 곳[依處]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열일곱째는 부처님을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열여덟째는 가르침[法]에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고, 열아홉째는 승가[僧]에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스무째는 계율을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나니, 이것이 집착하지 않아야 할 스무 가지의 법이니라.
다시 스무 가지의 법이 있나니, 구족하고 원만하게 하여야 하느니라. 무엇이 스무 가지의 법이냐 하면, 첫째는 공(空)을 구족해야 하고, 둘째는 무상(無相)을 증득하여야 하며, 셋째는 무작(無作)을 알아야 하고, 넷째는 3분(分)이 청정하여야 하며,3) 다섯째는 온갖 중생 가운데에서 자비(慈悲)와 지혜를 구족해야 하느니라.
여섯째는 온갖 중생들을 염(念)하지 않아야 하고, 일곱째는 온갖 법의 동등함을 관하되 이에 대해서도 집착하지도 않아야 하며, 여덟째는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알되 이 일도 또한 염(念)하지 않아야 하며, 아홉째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갖추어야 하며, 열째는 무생지(無生智)를 갖추어야 하느니라.
열한째는 모든 법은 한 모양[一相]임을 말해야 하고, 열두째는 분별하는 모양을 깨뜨려야 하며, 열셋째는 기억하는 생각을 변하게 해야 하며, 열넷째는 견해를 변하게 해야 하며, 열다섯째는 번뇌를 변하게 해야 하며, 열여섯째는 정혜(定慧)가 동등한 자리이어야 하며, 열일곱째는 뜻이 조복되어야 하며, 열여덟째는 마음이 고요히 사라져야 하며, 열아홉째는 막힘없는 지혜[無礙智]를 얻어야 하며, 스무째는 애욕에 물들지 않아야 하나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7지 가운데 머무르면서 구족해야 할 스무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8지(地) 안에 머물러서 다시 다섯 가지의 법을 구족해야 하느니라. 무엇이 다섯 가지 법이냐 하면, 중생의 마음에 따라 들어가고, 모든 신통에 유희하며, 모든 부처님의 나라를 관찰하고, 보게 된 부처님의 국토와 같이 자신의 국토를 장엄하며, 사실대로 부처님의 몸을 관하면서 스스로 부처님 몸을 장엄하는 것이니, 이것을 두루 갖추고 원만하게 하는 다섯 가지의 법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8지(地) 안에 머물러서 다시 다섯 가지의
법을 두루 갖추느니라. 무엇이 다섯 가지냐 하면, 위아래의 모든 근기를 알고,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며, 여환삼매(如幻三昧)4)에 들어가고, 항상 삼매(三昧)에 들어가며, 중생에게 알맞은 선근(善根)에 따라 몸을 받나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8이지 안에 머무르면서 두루 갖출 다섯 가지의 법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9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열두 가지의 법을 구족해야 하느니라. 무엇이 열두 가지냐 하면, 끝이 없는 세계에서 제도할 바의 몫을 받고, 보살로서 원한 바를 그대로 얻으며, 모든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의 말을 알아듣고는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며, 태(胎) 안에 드는 일을 성취하며, 집안에 대한 일을 성취하며, 태어날 바의 일을 성취하며, 성바지의 일을 성취하며, 권속에 대한 일을 성취하며, 태어나는 일을 성취하며, 출가하는 일을 성취하며, 불수(佛樹)를 장엄하는 일을 성취하며, 온갖 모든 착한 공덕을 원만하게 이루면서 두루 갖추는 것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9지 안에 머무르면서 구족해야 할 열두 가지의 법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10지(地)의 보살은 부처님과 같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그때에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깊은 마음으로 지의 업[地業]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살바야(薩婆若)에 상응한 마음으로 모든 선근(善根)을 쌓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깊은 마음으로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온갖 중생들에 대하여 동등한 마음을 지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4무량심(無量心), 이른바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를 내면 이것을 온갖 중생들에 대하여 동등한 마음을 지닌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보시(布施)를 닦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온갖 중생에게 베풀어 주되 분별함이 없나니, 이것을 보시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살바야 안에 들어가 머무르게 해주는 이러한
선지식을 친하게 가까이하면서 물어 그 가르침을 받고 공경하며 공양한다면, 이것을 선지식을 가까이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법을 구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법을 구하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나니, 이것을 법을 구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항상 출가(出家)하여 지의 업[地業]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세상마다 뒤섞이지 않는 마음으로 불법 안에 출가하되 장애하는 것이 없나니, 이것을 항상 출가하여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부처님 몸을 좋아하면서 지의 업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이 부처님의 몸의 모양[身相]을 뵙고서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부처님에 대한 염(念)을 여의지 않는다면, 이것을 부처님 몸을 좋아하면서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교법을 널리 펴면서 지의 업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부처님이 현재 계시거나 부처님이 멸도(滅度)하신 뒤이거나 간에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되 처음도 중간도 나중도 좋으며 묘한 이치와 좋은 말로써 정결하고도 순수하고 완전히 갖추나니, 이른바 수투로(修妬路)5)에서 우바제사(優婆提舍)까지이니라. 이것을 교법을 널리 펴면서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교만을 깨뜨리면서 지의 업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이 교만을 깨뜨리는 까닭에 끝내 하천(下賤)한 집에 태어나지 않나니, 이것을 교만을 깨뜨리면서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진실한 말로써 지의 업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말씀한 바대로 그 말씀을 따라 행하나니, 이것을 진실한 말로써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초지(初地) 안에 머물러 열 가지의 일을 수행하면서 지의 업을 다스리는 것이니라.
어떻게 보살은 계율이 청정하다[戒淸淨]고 하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과 계율을 깨뜨리고[破戒] 불도를 장애하는 법을 염(念)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계율이 청정하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느냐[知恩報恩]?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도를 행할 때에는
조그마한 은혜조차 오히려 잊지 않거늘 하물며 많은 것이겠는가. 이것을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인욕의 힘에 머무르느냐[住忍辱力]?
성내거나 괴롭히는 일도 없으면 이것을 인욕의 힘에 머무른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기쁨을 느끼느냐[受歡喜]?
이른바 중생을 성취시키는 이것으로써 기쁨을 삼나니, 이것을 기쁨을 느낀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온갖 중생을 버리지 않느냐[不捨一切衆生]?
만일 보살이 온갖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이것을 온갖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드느냐[入大悲心]?
만일 보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낱낱 중생들을 위하여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겁 동안 지옥 가운데에서 갖은 고통을 받겠으며, 나아가 이 사람들이 부처님 도를 얻어 열반에 들기까지 대신 받을 것이다”고 하면 이와 같은 것을 온갖 시방의 중생들을 위하여 고통을 참는다고 하며 이것을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든다고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스승을 믿고 공경하며 물어 가르침을 받느냐[信師恭敬諮受]?
만일 보살이 모든 스승에 대하여 세존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 이것을 스승을 믿고 공경하며 물어 가르침을 받는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힘써 모든 바라밀을 구하느냐[勤求諸波羅蜜]?
만일 보살이 일심으로 모든 바라밀을 구하면서 다른 일들이 없으면 이것을 힘써 모든 바라밀을 구한다 하느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제2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원만하게 갖추는 여덟 가지의 법이니라.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많이 배우고 물으면서 만족해함이 없느냐[多學問無厭足]?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으로서 이 세계와 그리고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남김없이 다 듣고 지니려 하나니, 이것을 많이 배우고 물으면서 만족해함이 없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청정하게 법을 보시하느냐[淨法施]?
법을 보시함이 있을 적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구하지 않거늘 하물며 그 밖의 일이겠는가. 이것을 명예와 이득을 구하지 않으면서 법을 보시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느냐[淨佛世界]?
모든 선근(善根)을 회향(廻向)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나니, 이것을 부처님세계를 청정하게 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세간의 한량없는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싫증을 내지 않느냐[受世間無量勤苦不以爲厭]?
모든 선근을 구비했기 때문에 중생을 성취시키고 또한 부처님 세계도 잘 장엄하며, 살바야(薩婆若)를 완전히 갖추기까지 끝내 고달파하거나 싫증내지 않나니, 이것을 한량없는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싫증을 내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나와 남에게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데에 머무르느냐[住慚愧處]?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을 부끄러워하나니, 이것을 나와 남에게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데에 머무른다 하느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제3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원만하게 갖추는 다섯 가지의 법이니라.
어떻게 보살은 아란야 처소를 버리지 않느냐[不捨阿蘭若住處]?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초월하게 되는 이것을 아란야 처소를 버리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탐욕이 적다고 하느냐[少欲]?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오히려 바라지 않거늘 하물며 그 밖의 탐욕이겠는가. 이것을 탐욕이 적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만족한 줄 아느냐[知足]?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는 것이니, 이것을 만족한 줄 안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두타의 공덕을 버리지 않느냐[不捨頭陀功德] ?
모든 깊은 법인(法忍)을 관하는 것이니, 이것을 두타의 공덕을 버리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계율을 버리지 않느냐[不捨戒]?
계율의 모양[戒相]을 취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계율을 버리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모든 탐욕을 더럽다 여기느냐[穢惡諸欲]?
욕망의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모든 탐욕을 더럽게 여긴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세간의 마음을 싫어하느냐[厭世間心] ?
온갖 법은 짓지 않는 것인 줄 알기 때문이니, 이것은 세간의 마음을 싫어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가진 것을 버리느냐[捨一切所有]?
안팎의 모든 법을 아까워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온갖 가진 것을 버린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마음이 위축되지 않느냐[心不沒]?
두 가지 식처(識處)에서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마음이 위축되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온갖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느냐[不惜一切物]?
온갖 물건에 대하여 집착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나니, 이것을
온갖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이것이 보살이 제4지(地) 가운데에서 버리지 않는 열 가지의 법이니라.
어떻게 보살은 속인과 친하는 일을 멀리 여의느냐[遠離親白衣]?
보살의 출가는 태어날 적마다 한 부처님의 세계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면서 언제나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물든 옷을 입나니, 이것을 속인과 친하는 일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비구니를 멀리 여의느냐[遠離比丘尼] 하면, 비구니와 함께 있지 않으며 손가락을 튀기는 한 순간까지도 또한 생각을 내지 않나니, 이것을 비구니를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다른 이의 집에 대한 간탐을 멀리 여의느냐[遠離慳惜他家] ?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중생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 주어야 한다. 다른 이가 이제 나의 안락을 돕고 있거늘 어떻게 간탐을 부리겠는가”라고 하나니, 이것을 다른 이의 집에 대한 간탐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무익하게 담론하는 처소를 멀리 여의느냐[遠離無益談處] ?
만일 어떤 담론하는 처소에 있으면서 혹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이 생기게 되면 “나는 멀리 여의어야 한다”고 하나니, 이것을 이익 없이 담론하는 처소를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성내는 일을 멀리 여의느냐[遠離瞋恚]?
성을 내는 마음이나 괴롭히는 마음이나 싸우려는 마음이 들어올 수 없게 하나니, 이것을 성내는 마음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스스로 위대한 척하는 일을 멀리 여의느냐[遠離自大]?
이른바 안의 법[內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자신이 위대한 척하는 일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남을 멸시하는 일을 멀리 여의느냐[遠離蔑人]?
이른바 밖의 법[外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남을 멸시하는 일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10불선도를 멀리 여의느냐[遠離十不善道]?
이 10불선도는 8성도(聖道)조차 장애하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겠는가. 이것을 10불선도를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크게 잘난 체하는 일을 멀리 여의느냐[遠離大慢]?
이 보살은 어떤 법도 크게 잘난 체할 만한 것을 보지 못하나니, 이것을 크게 잘난 체하는 일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자신이 쓰는 일을 멀리 여의느냐[遠離自用]?
이 보살은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어떤 법도 보지 않나니, 이것을 자신이 쓰는 일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뒤바뀜을 멀리 여의느냐[遠離顚倒]?
뒤바뀜의
처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이것을 뒤바뀜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멀리 여의느냐[遠離婬怒癡]?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처소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니, 이것을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이것이 보살이 제5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멀리 여의는 열두 가지 법이니라.
어떻게 보살은 제6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여섯 가지의 법을 두루 갖추느냐 ?
이른바 6바라밀이니라.
모든 부처님과 성문과 벽지불은 6바라밀 안에 머물러서 저 언덕[彼岸]을 건너가게 되나니, 이것을 여섯 가지 법을 두루 갖춘다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을 짓지 않느냐?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意]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道)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어떻게 보살은 보시하면서 근심하는 마음을 내지 않느냐 ?
“이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어떻게 보살은 구하는 바가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위축되지 않느냐?
“이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어떻게 보살은 소유한 물건들을 보시하느냐?
보살은 처음 마음을 일으켰을 때에 보시하면서 “이것은 주어야겠다. 이것은 주지 않아야겠다”고 말하지 않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보시한 뒤에 마음으로 후회하지 않느냐?
자비(慈悲)의 힘 때문이니라.
어떻게 보살은 깊은 법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느냐 ?
믿는 공덕[信功德]의 힘 때문이니라.
이것이 보살이 제6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멀리 여의는 여섯 가지 법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나[我]에 집착하지 않느냐 ?
결국에는 나가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중생(衆生)에 집착하지 않고 영혼[壽命]에 집착하지 않고 중수(衆數) 내지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에게 집착하지 않느냐 ?
이 모든 법은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단견(斷見)에 집착하지 않느냐?
어떤 법도 끊어지는 것이 없고 모든 법은 결국에는 생기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상견(常見)에 집착하지 않느냐 ?
만일 법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것은 항상 있다고 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모양을 취하지[取相] 않아야 하느냐?
모든 번뇌가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인과에 대한 견해[因見]를 짓지 않아야 하느냐 ?
모든 견해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이름과 물질[名色]에 집착하지 않느냐?
이름과 물질은 처소[處]와 모양[相]이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5중(衆)에 집착하지 않고 18계(界)에 집착하지 않고 12입(入)에 집착하지 않느냐?
이 모든 법의 성품이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삼계(三界)에 집착하지 않느냐 ?
삼계의 성품이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집착하는 마음[著心]을 짓지 않아야 하고, 보살은 어찌하여 원(願)을 세우지 않아야 하며, 보살은 어찌하여 의지(依止)하지 않아야 하느냐?
이 모든 법은 성품이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부처님[佛]을 의지하는 견해를 짓지 않느냐?
의지하는 견해를 지으면 부처님을 뵙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가르침[法]에 의지하는 견해를 짓지 않느냐 ?
가르침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승가[僧]에 의지하는 견해를 짓지 않느냐 ?
승가의 모양은 무위(無爲)이어서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계율[戒]에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느냐?
죄와 죄 없음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것이 보살이 제 7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집착하지 않아야 할 스무 가지의 법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공(空)을 구족해야 하느냐?
모든 법의 자상(自相)이 공을 갖추었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무상(無相)을 증득하느냐?
모든 모양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무작(無作)을 아느냐?
삼계(三界) 가운데에서는 짓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3분(分)이 청정한가?
10선도(善道)가 완전히 갖추어졌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모든 중생 가운데에서 자비의 지혜[慈悲智]를 갖추느냐 ?
대비(大悲)를 얻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온갖 중생을 염(念)하지 않느냐?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일을 갖추었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온갖 법을 동등하게 관[等觀]하느냐?
모든 법에 대하여 덜하거나 더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아느냐 ?
모든 법의 실상은 알음[知]이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무생인(無生忍)인가?
모든 법은 나지도 않고[不生] 멸하지도 않고[不滅] 짓지도 않기[不作]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무생지(無生智)인가?
이름과 물질[名色]이 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모든 법이 한 모양[一相]이라고 말하느냐 ?
마음이 두 모양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분별하는 모양[分別相]을 깨뜨리느냐?
일체의 법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생각[憶想]을 내느냐?
작건 크건 무량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견해[見]를 내느냐?
성문이나 벽지불에 대한 견해를 내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번뇌(煩惱)를 변화시키느냐?
모든 번뇌를 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하는 지위인가?
이른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뜻을 조복[調意]하느냐?
삼계(三界)에 있으되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그 마음이 고요히 사라지는가[寂滅]?
6근(根)을 제어하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무애지(無礙智)인가?
부처님의 눈[佛眼]을 얻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애욕[愛]에 물들지 않느냐?
6진(塵)을 버리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보살이 제 7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갖추는 스무 가지 법이라고 하느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중생의 마음에 순응하느냐?
보살은 한마음으로 일체 중생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心數法]을 아느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모든 신통을 부리느냐?
이 신통으로써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또한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며 또한 부처님의 나라라는 생각조차도 짓지 않느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의 나라를 관찰하느냐?
자기 자신의 나라에 머무르면서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나라를 보며 또한 부처님의 나라라는 생각조차도 없느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그가 본 부처님의 나라와 같이 자기의 나라를 장엄하느냐?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지위에 머물러 두루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고 그로써 스스로 장엄하느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여실히 부처님의 몸을 관찰하느냐?
있는 그대로 법신(法身)을 관하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보살이 제8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두루 갖추는 다섯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위아래의 모든 근기를 아느냐?
보살은 부처님의 10력(力)에 머물러 일체 중생의 위와 아래의 모든 근기를 아느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느냐?
중생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보살의 여환삼매(如幻三昧)라 하느냐?
이 삼매에 머물러 일체의 일을 잘 미루고 판별하며 또한 마음의 모양도 내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늘 삼매에 들어가느냐?
보살의 보생삼매(報生三昧)를 얻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중생에게 알맞은 선근(善根)에 따라 몸을 받느냐?
보살은 중생에게 알맞은 바를 알아 선근을 내면서 그들을 위하여 몸을 받아서 중생들을 성취시키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보살이 제 8지(地) 안에 머물러 갖추는 다섯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그지없는 세계에서 제도할 몫을 받느냐?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 안의 중생을 모든 부처님의 법 그대로 제도해야 될 이를 제도하느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바라는 그대로를 얻느냐?
6바라밀을 두루 갖추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하늘과 용ㆍ야차ㆍ건달바 등의 모든 말을 아느냐?
변재(辯才)의 힘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태생(胎生)을 성취하느냐?
보살은 세상마다 항상 화생(化生)하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집[家]을 성취하느냐?
항상 큰 집에 태어나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태어나는 곳을 성취하느냐?
찰제리(刹帝利)의 집에 태어나기도 하고 바라문(婆羅門)의 집에 태어나기도 하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성(姓)을 성취하느냐?
과거에 보살이 태어났던 곳의 성(姓) 가운데에서 골라 태어나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권속을 성취하느냐?
순수한 모든 보살마하살을 권속으로 삼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출생(出生)을 성취하느냐?
태어날 때는 광명을 놓아 한량없고 끝이 없는 세계를 두루 비추며 또한 그 모양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출가(出家)를 성취하느냐?
출가할 때에는 한량없는 백천억의 모든 하늘들이 출가를 시종(侍從)하고 모든 중생은 반드시 3승(乘)에 이르게 되느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불수(佛樹)의 장엄을 성취하느냐?
이 보리수(菩提樹)는 황금으로 뿌리가 되고
7보(寶)로 줄기ㆍ마디ㆍ가지ㆍ잎이 되었으며, 줄기와 마디와 가지와 잎에서는 광명이 나와 시방으로 아승기의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느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일체의 선근(善根)과 공덕을 원만히 성취하고 구족하느냐?
보살은 중생이 청정하고 부처님 나라 또한 청정함을 얻느니라.
이것을 보살이 제9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두루 갖추는 열두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어찌하여 제10지(地)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처님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고 하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과 4념처(念處) 내지 18불공법(不共法)과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원만하게 갖추고 온갖 번뇌와 습기(習氣)를 완전히 끊으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머무른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 제10지 안에 머물러 방편의 힘으로써 6바라밀을 행하고 4념처 내지 18불공법을 행하여 간혜지(乾慧地)ㆍ성지(性地)ㆍ8인지(忍地)ㆍ견지(見地)ㆍ박지(薄地)ㆍ이욕지(離欲地)ㆍ이작지(已作地)ㆍ벽지불지(辟支佛地)ㆍ보살지(菩薩地)를 지나며 이 9지(地)를 지난 뒤에 불지(佛地)에 머무르나니, 이것이 보살의 제10지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고 하느니라.

21. 출도품(出到品)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묻기를 ‘이 대승은 어느 곳으로부터 나와서 어느 곳에 이르러 머무르냐’고 했는데, 이제 내가 말해 주리라. 이 탈것은 삼계(三界) 안으로부터 나와서 살바야 안에 이르러 머무르나니, 둘이 아닌 법[不二法]이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마하연(摩訶衍)과 살바야의 이 두 가지 법은 함께하면서도 합하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대할 수도 없고 한 모양[一相]이어서 이른바 모양이 없기[無相] 때문이니라.
만일 사람이 실제(實際)로 하여금 출현하기를 바란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無相法]으로 하여금 출현하기를 바라는 것이니라. 만일 사람이
여(如)와 법성(法性)과 불사가의성(不可思議性)으로 하여금 출현하기를 바란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출현시키려 하는 것이 되고, 만일 사람이 물질[色]의 공(空)으로 하여금 출현하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출현시키려 하는 것이 되며, 만일 사람이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의 공으로 하여금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물질의 공한 모양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공한 모양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물질은 물질의 모양이 공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양이 공한 까닭이니라.
만일 사람이 눈[眼]의 공함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느니라. 만일 사람이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뜻[意]의 공함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며, 만일 사람이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意觸因緣生受]의 공함에 이르기까지를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눈의 공한 모양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나아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의 공한 모양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눈은 눈의 모양이 공하고, 나아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의 모양이 공한 까닭이니라.
만일 사람이 꿈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고, 만일 사람이 환(幻)ㆍ아지랑이[焰]ㆍ메아리[響]ㆍ그림자[影]ㆍ변화한 것[化]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꿈의 모양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환과 아지랑이와 메아리와 그림자와 변화한 것의 모양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사람이 단(壇)바라밀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느니라. 만일 사람이
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단나바라밀의 모양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시라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의 모양도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단나바라밀은 단나바라밀의 모양이 공하고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의 모양이 공한 까닭이니라.
만일 사람이 내공(內空)을 나오게 하려하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내공의 모양 내지 무법유법의 모양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내공은 내공의 성품이 공하고 나아가 무법유법공은 무법유법의 성품이 공한 까닭이니라.
만일 사람이 4념처(念處)를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4념처의 성품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4념처는 4념처의 성품이 공한 까닭이니라.
만일 사람이 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성도분(聖道分)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8성도분의 성품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8성도분은 8성도분의 성품이 공한 까닭이며 나아가 1
8불공법(不共法)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사람이 아라한이 나는 곳[生處]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고 만일 사람이 벽지불이 나는 곳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며, 만일 사람이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ㆍ아라하(阿羅訶)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가 나는 곳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아라한의 성품과 벽지불의 성품과 부처님의 성품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아라한은 아라한의 성품이 공하고, 벽지불은 벽지불의 성품이 공하며, 부처님은 부처님의 성품이 공한 까닭이니라.
만일 사람이 수다원(須陀洹)의 과위[果]ㆍ사다함(斯陀含)의 과위ㆍ아나함(阿那含)의 과위ㆍ아라한(阿羅漢)의 과위ㆍ벽지불(辟支佛)의 도(道)ㆍ부처님의 도ㆍ일체종지(一切種智)를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니라.
위에서 말했듯이, 만일 어떤 사람이 이름[名字]과 임시의 이름[假名]과 시설(施設)된 모양은 단지 말[語言]이 있을 뿐인데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이름의 공함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이름의 모양은 이름의 모양이 공한 까닭이니, 나아가 시설(施設)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만일 사람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법[不生不滅法]과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조작도 없는 법[不垢不淨無作法]을 나오게 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모양이 없는 법을 나오게 하려 하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나지 않기 때문이며, 나아가 조작도 없는 법의 성품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나지도 않는 성품에서 조작도 없는 성품에 이르기까지는 그 성품이 공한 까닭이니라.
수보리야, 이런 인연 때문에 마하연은 삼계안으로부터 나와서 살바야 안에 이르러 머무르나니, 움직이지 않는 법[不動法]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이 탈것[乘]은 어느 곳에 머무르는지를 물었는데, 수보리야, 이 대승은 머무르는 곳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온갖 법에도 머무르는 모양이 없기 때문이니, 이 대승이 가령 머무른다면 법의 머무름[法住]에 머무르지는 않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법의 성품[法性]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일어나는 것도 없고[無起] 짓는 것도 없으며[無作],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닌 것처럼, 수보리야, 이 대승도 또한 그와 같아서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법의 성품의 모양 내지 짓는 것이 없는 모양은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법의 성품은 법의 성품이 공한 까닭이요, 나아가 짓는 것이 없는 성품은 짓는 것이 없는 성품이 공한 까닭이니, 그 밖의 모든 법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이런 인연 때문에 이 탈것은 머무르는 곳이 없나니, 머무르지 않는 법이고 움직이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묻기를, 누가 이 탈것에 올라 벗어나느냐고 했는데, 그 누구도 이 탈것에 올라 벗어나는[出] 이는 없느니라. 왜냐하면 이 탈것과 벗어나는 이와 쓰는 바의 법과 벗어나는 때라는 이 온갖 법은 모두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
만일 온갖 법이 있는 바가 없다면 어떠한 법을 써서 벗어나게 되겠느냐? 왜냐하면 나[我]는 얻을 수 없고, 나아가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성품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중(衆)ㆍ입(入)ㆍ계(界)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단나(檀那)바라밀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반야(般若)바라밀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내공(內空)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4념처(念處)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수다원(須陀洹)도 얻을 수 없고, 나아가 아라한과 벽지불과 보살과 부처님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수다원의
과위 내지 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의 도ㆍ부처님의 도ㆍ일체종지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나지도 않고 멸하지 않는 것ㆍ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ㆍ일어나지 않는 것ㆍ짓지 않는 것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과거 세상ㆍ미래 세상ㆍ현재 세상의 나고[生] 머무르고[住] 없어지는 것[滅]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增減]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어떤 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느냐 하면, 법성(法性)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고, 여(如)ㆍ실제(實際)ㆍ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ㆍ법성(法性)ㆍ법상(法相)ㆍ법위(法位)와 단나(檀那)바라밀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으며, 나아가 반야(般若)바라밀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느니라.
내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고 나아가 무법유법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으며, 4념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고 나아가 18불공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으며, 수다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고 나아가 부처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느니라.
수다원의 과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고 나아가 부처님 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으며, 나지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不生不滅]에서 일어나지 않고[不起] 짓지도 않는[不作] 것에 이르기까지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초지(初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고 나아가 제 10지(地)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무엇이 초지이며 나아가 제10지인가 하면, 이른바 간혜지(乾慧地)와 성지(性地)와 8인지(人地)와 견지(見地)와 박지(薄地)와 이욕지(離欲地)와 이작지(已作地)와 벽지불지(辟支佛地)와 보살지(菩薩地)와 불지(佛地)이니라.
내공(內空) 안에서는 초지를 얻을 수 없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 안에서도 초지를 얻을 수 없으며,
내공 내지 무법유법공 안에서는 제2지ㆍ제3지ㆍ제4지ㆍ제5지ㆍ제6지ㆍ제7지ㆍ제8지ㆍ제9지 및 제10지도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초지는 얻는 것도 아니요 얻지 않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 제10지는 얻는 것도 아니요 얻지 않는 것도 아니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내공 내지 무법유법공 안에서는 중생을 성취하는 것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내공 내지 무법유법공 안에서는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일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내공 내지 무법유법공 안에서는 5안(眼)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들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마하연에 올라 살바야를 벗어나느니라.

22. 승출품(乘出品)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마하연(摩訶衍)과 마하연을 닦는 이는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납니다.
세존이시여, 이 마하연은 허공과도 같습니다. 마치 허공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듯이 마하연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마하연은 오는 곳도 보지 못하고 가는 곳도 보지 못하고 머무르는 곳도 보지 못합니다. 이 마하연은 전제(前際)를 얻을 수 없고 후제(後際)를 얻을 수 없고 중제(中際)도 얻을 수 없어서 3세(世)에 동등하니, 이것이 바로 마하연입니다.
세존이시여, 그 때문에 이 탈것을 마하연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은 이른바 여섯 가지의 바라밀인 단(壇)바라밀ㆍ
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은 온갖 다라니문(陀羅尼門)과 온갖 삼매문(三昧門)이니, 이른바 수릉엄(首楞嚴)삼매에서 이착허공불염삼매(離著虛空不染三昧)에 이르기까지이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4념처(念處)에서 18불공법(不共法)에 이르기까지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마치 수보리야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욕계(欲界)가 실제로 존재[實有]하면서 허망하지 않고 진리[諦]와 다르지도 않고 뒤바뀌지도 않으며 항상하고[常] 파괴되지도 않는 모양이어서 없는 법[無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그러나 욕계는 허망하고 기억으로 분별하며 이름[名字] 등이 화합한 것이요 모두가 무상한 모양이어서 없는 법이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가 만일 실제로 존재하면서 허망하지 않고 진리와 다르지도 않고 뒤바뀌지도 않으며 항상하고 파괴되지 않는 모양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그러나
색계와 무색계는 허망하고 기억으로 분별하며 이름 등이 화합한 것이요 모두가 무상하고 파괴되는 모양이어서 없는 법이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물질[色]이 실제로 존재하면서 허망하지 않고 진리와 다르지도 않고 뒤바뀌지도 않으며 항상있고 파괴되지 않는 모양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그러나 물질은 허망하고 기억으로 분별하며 이름 등이 화합한 것이요 모두가 무상하고 파괴되는 모양이어서 없는 법이니, 이 때문에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 나느니라. 느낌[受]과 생각[想]과 지어감[行]과 분별[識]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눈[眼] 내지 뜻[意], 빛깔[色] 내지 법(法), 안식(眼識) 내지 의식(意識), 눈의 접촉[眼觸] 내지 뜻의 접촉[意觸],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受] 내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이 만일 실제로 존재하면서 허망하지 않고 진리와 다르지도 않고 뒤바뀌지도 않으며, 항상하고 파괴되지 않는 모양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그러나 눈 내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은 허망하고 기억으로 분별하며 이름 등이 화합한 것이요 모두가 무상하고 파괴되는 모양이어서 없는 법이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만약 법성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모든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수보리야, 법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모든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만약 여(如)와 실제와 불가사의한 성품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모든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수보리야, 이 여와 실제와 불가사의한 성품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모든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단나(檀那)바라밀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모든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수보리야, 이 단나바라밀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모든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만일 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이 시라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내공 내지 무법유법공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이 내공 내지 무법유법공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4념처 내지
18불공법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이 4념처 내지 18불공법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성품과 사람의 법[性人法]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이 성품과 사람의 법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8인(人)의 법과 수다원의 법과 사다함의 법과 아나함의 법과 아라한의 법과 벽지불의 법과 부처님의 법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 및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이 8인의 법 내지 부처님의 법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성품[性]과 사람[人]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이 성품과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8인과 수다원에서 부처님에 이르기까지가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이 8인 내지 부처님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가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이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최초의 발심에서 도량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의 모든 마음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보살이 처음 발심해서부터 도량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마하살의 금강과 같은 지혜가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보살마하살은 온갖 번뇌와 습기가 존재하지 않고 법이 아님을 알지 못해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지 못하느니라. 하지만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금강과 같은 지혜는 존재하는 법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법도 아니니, 이 때문에 보살은 온갖 결사와 습기가 존재하는 법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법도 아닌 줄 알며, 이 때문에 마하연은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모든 부처님의 32모양[相]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모든 부처님의 위덕(威德)은 환히 비추면서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의 32상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위덕은 환히 비추면서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모든 부처님의 광명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모든 부처님의 광명은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두루 비출 수도 없느니라. 하지만 수보리야, 이모든 부처님의 광명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은 광명으로써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두루 비출 수 있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모든 부처님을 장엄하는 60종의 음성이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모든 부처님을 장엄하는 60종의 장엄한 음성으로써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의 세계에 두루 이를 수 없느니라. 하지만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을 장엄하는 60종의 음성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을 장엄하는 60종의 음성으로써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의 세계에 두루 이를 수 있느니라.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의 법륜(法輪)이 만일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모든 부처님은 법륜을 굴릴 수도 없고 모든 사문과 바라문과 하늘과 악마와 범천(梵天)과 그리고 세간 밖의 대중도 법다이 굴릴 수 있는 이가 없느니라. 하지만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의 법륜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은 법륜을 굴릴 수 있고 모든 사문과 바라문과 하늘과 악마와 범천과 그리고 세간 밖의 대중도 법다이 굴릴 수 있느니라.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하여 법륜을 굴리실 적에 만일 이 중생이 실제로 존재하는 법이어서 없는 법이 아니라면, 이 중생들로 하여금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위하여 법륜을 굴리실 적에 이 중생들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요 법이 아니니, 이 때문에 중생들은 무여열반 안에서 이미 열반하였고 지금 열반하고 있으며 장차 열반할 것이니라.”

23. 등공품(等空品)거란본에는 함수품(含受品)으로 되어 있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마하연(摩訶衍)은 허공(虛空)과 같다 하였는데,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하연은 허공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에는 동쪽이 없고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間方)과 위와 아래가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동쪽이 없고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가 없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며, 모난 것도 아니고 둥근 것도 아닌 것처럼, 수보리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며, 모난 것도 아니고 둥근 것도 아니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푸른 것도 아니고 누런 것도 아니며, 붉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며 검은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푸른 것도 아니고 누런 것도 아니며, 붉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며, 검은 것도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등하다 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현재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등하다 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생하는 일도 없고 멸하는 일도 없으며, 머무르는 일도 없고 달라지는 일도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생하는 일도 없고 멸하는 일도 없으며, 머무르는 일도 없고 달라지는 일도 없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착한 것[善]도 아니고 착하지 않은 것[不善]도 아니며, 결정된 것[記]도 아니고 결정되지 않은 것[無記]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착한 것도 아니고 착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결정된 것도 아니고 결정되지 않은 것도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등하다 하느니라.
마치 허공은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으며, 아는 것도 없고 식별(識別)하는 것도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으며, 아는 것도 없고 식별하는 것도 없느니라.
마치 허공은 알 수도 없고 식별할 수도 없으며, 끊을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으며 닦을 수도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알 수도 없고 식별할 수도 없으며, 끊을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으며 닦을 수도 없나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등하다 하느니라.
마치 허공은 물든 모양[染相]도 아니고 여읜 모양[離相]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물든 모양도 아니고 여읜 모양도 아니니라.
마치 허공은 욕계(欲界)에 매이지도 않고 색계(色界)에 매이지도 않으며 무색계(無色界)에 매이지도 않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욕계에 매이지도 않고 색계에 매이지도 않으며 무색계에 매이지도 않느니라.
마치 허공은 최초의 일으키는 마음[初發心]도 없고 또한 두 번째ㆍ세 번째ㆍ네 번째ㆍ다섯 번째ㆍ여섯 번째ㆍ일곱 번째ㆍ여덟 번째ㆍ아홉 번째ㆍ열 번째의 마음도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처음 발심한 것도 없고 나아가 열 번째의 마음도 없느니라.
마치 허공은 간혜지(乾慧地)와 성지(性地)와 8인지(人地)와 견지(見地)와 박지(薄地)와 이욕지(離欲地)와 이판지(已辦地)가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간혜지 내지 이판지가 없느니라.
마치 허공은 수다원의 과위가 없고 사다함의 과위도 없으며, 아나함의 과위도 없고 아라한의 과위도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수다원의 과위 내지 아라한의 과위가 없느니라.
마치 허공은 성문의 지위가 없고 벽지불의 경지도 없으며, 부처님의 지위도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성문의 지위가 없고 나아가 부처님의 지위도 없나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동하다 하느니라.
마치 허공은 형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색이 없는 것도 아니며,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상대[對]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할 수 없는 것도 아니며, 합한 것도 아니고 흩어진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형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색이 없는 것도 아니며,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상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할 수 없는 것도 아니며, 합한 것도 아니고 흩어진 것도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등하다 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며, 즐거운 것도 아니고 괴로운 것도 아니며, 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가 없는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며, 즐거운 것도 아니고 괴로운 것도 아니며, 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가 없는 것도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동하다 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공한 것도 아니고 공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며, 조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작이 없는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공한 것도 아니고 공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며, 조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작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동하다 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고요히 사라진 것[寂滅]도 아니고 고요히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며, 여읜 것[離]도 아니고 여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고요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고요히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며, 여읜 것도 아니고 여의지 않은 것도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동하다 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어두운 것도 아니고 밝은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어두운 것도 아니고 밝은 것도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동하다 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얻을 수 없는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얻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동하다 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허공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이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동하다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런 모든 인연 때문에 마하연은 허공과 동동하다 하느니라.”
수보리야, 그대가 말한 바와 같아서 마치 허공이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느니라.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중생은 있는 바가 없기[無所有] 때문에 허공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고 허공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마하연도 또한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마하연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느니라. 왜냐하면 이 중생과 허공과 마하연의 이 법은 모두가 얻을 수 없기[不可得]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마하연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아승기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고, 아승기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한량없는 것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한량없는 것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끝이 없는 것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고, 끝이 없는 것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모든 법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이 마하연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느니라. 왜냐하면 이 중생에서 아는 이ㆍ보는 이에 이르기까지와 실제에서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나[我]는 있는 바가 없고 나아가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도 있는 바가 없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도 있는 바가 없고, 여와 법성과 실제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이에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에 이르기까지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모든 법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마하연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나니, 왜냐하면 이 중생에서 아는 이ㆍ보는 이에 이르기까지와 실제에서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나가 있는 바가 없고, 나아가 아는 이ㆍ보는 이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불가사의성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물질[色]ㆍ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고,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한량없는 것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한량없는 것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끝이 없는 것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고 끝이 없는 것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모든 법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마하연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인다고 알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나에서 아는 이ㆍ보는 이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법은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나가 있는 바가 없고 나아가 아는 이ㆍ보는 이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눈[眼]도 있는 바가 없으며,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뜻[意]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고, 눈에서 뜻에 이르기까지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허공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허공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마하연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마하연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아승기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아승기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한량없음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한량없음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끝이 없음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끝이 없음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모든 법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마하연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나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나에서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나가 있는 바가 없고 나아가 아는 이ㆍ보는 이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단나(檀那)바라밀도 있는 바가 없고 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나아가 반야바라밀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허공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허공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마하연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마하연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모든 법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마하연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나니, 왜냐하면 나와 중생에서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나가 있는 바가 없고 나아가 아는 이ㆍ보는 이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내공(內空)도 있는 바가 없으며,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나아가 무법유법공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허공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허공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마하연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마하연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아승기와 한량없음과 끝이 없음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아승기와 한량없음과 끝이 없음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모든 법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마하연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나니, 왜냐하면 나와 중생에서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나와 중생에서 아는 이ㆍ보는 이에 이르기까지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4념처(念處)도 있는 바가 없고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에 이르기까지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4념처도 있는 바가 없고 나아가 18불공법까지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허공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허공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마하연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고, 마하연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아승기와 한량없음과 끝이 없음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아승기와 한량없음과 끝이 없음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모든 법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이 마하연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나니, 왜냐하면 나와 중생에서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나와 중생이 있는 바가 없고, 나아가 아는 이ㆍ보는 이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성지(性地)도 있는 바가 없고 나아가 이작지(已作地)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나아가 이작지에 이르기까지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허공도 있는 바가 없는 없다고 알아야 하며, 허공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마하연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마하연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아승기와 한량없고 끝이 없는 것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아승기와 한량없고 끝이 없는 것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모든 법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이 마하연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나니, 왜냐하면 나와 중생에서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나와 중생 내지 아는 이ㆍ보는 이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수다원(須陀洹)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수다원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사다함(斯陀含)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사다함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아나함(阿那含)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아나함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아라한(阿羅漢)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아라한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이 마하연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나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나에서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나에서 아는 이ㆍ보는 이에 이르기까지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성문승(聲聞乘)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성문승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벽지불승(辟支佛乘)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벽지불승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불승(佛乘)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불승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성문의 사람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성문의 사람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수다원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수다원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나아가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부처님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일체종지(一切種智)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일체종지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허공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허공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마하연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며, 마하연도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나아가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도 있는 바가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이 마하연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나니, 왜냐하면 나에서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수보리가 열반의 성품 가운데에서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 마하연도 또한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마치 허공이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 마하연도 또한 그와 같아서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받아들이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말하기를 ‘이 마하연은 오는 곳도 보지 못하고 가는 곳도 보지 못하며 머무르는 곳도 보지 못한다’고 했는데,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이 마하연은 오는 곳[來處]을 보지 못하고 가는 곳[去處]을 보지 못하며 머무르는 곳[住處]을 보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온갖 법들은 움직이지 않는 모양[不動相]이기 때문이니라.
이 법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으며 머무르는 곳도 없나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물질[色]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으며,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도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물질의 법(法)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법(法)도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물질의 여(如)는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여(如)도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물질의 성품[性]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머무르는 데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성품도 또한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머무르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물질의 모양[相]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양[相]도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눈[眼]과 눈의 법[眼法]과 눈의 여[眼如]와 눈의 성품[眼性]과 눈의 모양[眼相]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으며,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뜻[意] 내지 뜻의 법[意法]과 뜻의 여[意如]와 뜻의 성품[意性]과 뜻의 모양[意相]도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나니, 빛깔[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땅의 요소[地種]와 땅의 요소의 법[地種法]과 땅의 요소의 여[地種如]와 땅의 요소의 성품[地種性]과 땅의 요소의 모양[地種相]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또한 머무른 데도 없으며, 물[水]ㆍ불[火]ㆍ바람[風]ㆍ허공[空]ㆍ분별[識]의 요소 내지 의식의 법(法)과 의식의 요소의 여(如)와 의식의 요소의 성품[性]과 의식의 요소의 모양[相]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여(如)와 여의 법[如法]과 여의 여[如如]와 여의 성품[如性]과 여의 모양[如相]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실제(實際)와 실제의 법[實際法]과 실제의 여[實際如]와 실제의 성품[實際性]과 실제의 모양[實際相]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불가사의(不可思議)와 불가사의의 법(法)과 불가사의의 여(如)와 불가사의의 성품[性]과 불가사의의 모양[相]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또한 머무른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단나(檀那)바라밀과 단나바라밀의 법(法)과 단나바라밀의 여(如)와 단나바라밀의 성품[性]과 단나바라밀의 모양[相]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으며, 시라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의 법(法)과 반야바라밀의 여(如)와 반야바라밀의 성품[性]과 반야바라밀의 모양[相]도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4념처(念處)와 4념처의 법(法)과 4념처의 여(如)와 4념처의 성품[性]과 4념처의 모양[相]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으며,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과
보살의 법(法)과 보살의 여(如)와 보살의 성품[性]과 보살의 모양[相]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으며,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법(法)과 부처님의 여(如)와 부처님의 성품[性]과 부처님의 모양[相]도 오는 데도 없고 가는데도 없고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法)과 여(如)와 성품[性]과 모양[相]도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유위의 법[有爲法]과 유위법의 법(法)과 유위법의 여(如)와 유위법의 성품[性]과 유위법의 모양[相]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무위의 법[無爲法]과 무위법의 법(法)과 무위법의 여(如)와 무위법의 성품[性]과 무위법의 모양[相]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또한 머무르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수보리야, 이 마하연은 오는 곳도 보지 못하고 가는 곳도 보지 못하며 머무르는 곳도 보지 못하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말하기를 ‘이 마하연은 전제(前際)에도 얻을 수 없고, 후제(後際)에도 얻을 수 없으며, 중제(中際)에도 얻을 수 없으므로 이 마하연은 3세(世)가 동등하다고 하며, 이 때문에 마하연이라 한다’ 하였는데,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이 마하연은 전제에도 얻을 수 없고, 후제에도 얻을 수 없으며, 중제에도 얻을 수 없기에 이 마하연을 3세에 동등하다고 하며, 이 때문에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과거의 세상은 과거의 세상이 공하고 미래의 세상은 미래의 세상이 공하며, 현재의 세상은 현재의 세상이 공하고 3세의 동등함은 3세의 동등함이 공하며, 마하연은 마하연이 공하고 보살은 보살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이 공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고 넷도 아니며, 다섯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3세가 평등하다
하나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니라.
이 마하연 가운데에서는 동등하고 동등하지 않는 모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물들고 물들지 않는 것[染不染]도 얻을 수 없고 성내고 성내지 않는 것[瞋不瞋]도 얻을 수 없으며, 어리석고 어리석지 않는 것[癡不癡]도 얻을 수 없고 교만하고 교만하지 않는 것[慢不慢]도 얻을 수 없으며, 나아가 온갖 착한 법과 착하지 않는 법도 얻을 수 없느니라.
이 마하연 가운데에서는 항상한 것[常]도 얻을 수 없고 무상(無常)한 것도 얻을 수 없으며, 즐거운 것[樂]도 얻을 수 없고 괴로운 것[苦]도 얻을 수 없으며, 진실한 것[實]도 얻을 수 없고 공한 것[空]도 얻을 수 없으며, 나[我]도 얻을 수 없고 나 없는 것[無我]도 얻을 수 없으며, 욕계(欲界)도 얻을 수 없고 색계(色界)도 얻을 수 없고 무색계(無色界)도 얻을 수 없으며, 욕계를 건너는 것[度]도 얻을 수 없고 색계를 건너는 것도 얻을 수 없으며 무색계를 건너는 것도 얻을 수 없나니, 왜냐하면 이 마하연의 자기 법[自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과거의 물질[色]은 과거의 물질이 공하고 미래와 현재의 물질은 미래와 현재의 물질이 공하며, 과거의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은 과거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공하고 미래와 현재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미래와 현재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공하느니라.
공한 가운데에서는 과거의 물질을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공한 가운데에서는 공함도 또한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공한 가운데에서 과거의 물질을 얻을 수 있겠느냐. 공한 가운데에서는 미래와 현재의 물질을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공한 가운데에서는 공함도 또한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공한 가운데에서 미래와 현재의 물질을 얻을 수 있겠느냐.
공한 가운데에서는 과거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공한 가운데에서도 공함을 또한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공한 가운데에서 과거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얻을 수 있겠느냐.
공한 가운데에서는 미래와 현재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공한 가운데에서는 공함도 또한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공한 가운데에서 미래와 현재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얻을 수 있겠느냐.
수보리야,
과거의 단나(檀那)바라밀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단나바라밀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단나바라밀도 얻을 수 없으며, 3세가 동등한 가운데의 단나바라밀도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동등한 가운데에서는 과거의 세상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세상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세상도 얻을 수 없으며, 동등한 가운데의 동등함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니 하물며 동등한 가운데에서 과거의 세상과 미래의 세상과 현재의 세상을 얻을 수 있겠느냐. 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과거 세상 가운데에서는 4념처(念處)를 얻을 수 없고 나아가 과거 세상 가운데에서는 18불공법(不共法)도 얻을 수 없나니, 미래의 세상과 현재의 세상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3세가 동등한 가운데에서는 4념처를 얻을 수 없고, 나아가 3세가 동등한 가운데에서는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동등한 가운데에서는 과거 세상의 4념처를 얻을 수 없고, 동등한 가운데에서는 미래 세상의 4념처를 얻을 수 없으며, 동등한 가운데에서는 현재의 4념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동등한 가운데에서는 동등함도 또한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동등한 가운데에서 과거 세상의 4념처와 미래ㆍ현재 세상의 4념처를 얻을 수 있겠느냐. 동등한 가운데에서는 동등함도 또한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동등한 가운데에서 과거의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를 얻을 수 있겠느냐. 미래와 현재의 세상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과거 세상의 범부도 얻을 수 없고 미래세상ㆍ현재세상의 범부도 얻을 수 없으며,
3세의 동등한 범부도 또한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중생은 얻을 수 없고 나아가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과거세상의 성품과 벽지불과 보살과 부처님도 얻을 수 없고, 미래와 현재 세상의 성문이나 벽지불과 보살과 부처님도 얻을 수 없으며, 3세의 동등한 성문이나 벽지불과 보살과 부처님도 얻을 수 없나니, 왜냐하면 중생은 얻을 수 없고 나아가 아는 이ㆍ보는 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머물러 3세의 동등한 모양을 배워서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구족해야 하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이른바 3세의 동등한 모양으로 보살마하살은 이 마하연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온갖 세간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보다 뛰어나게 되며 살바야(薩婆若)를 성취하느니라.”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훌륭합니다.6)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오니, 왜냐하면 과거의 모든 보살은 이 마하연 가운데에서 배워서 일체종지를 얻었고, 미래세상의 모든 보살마하살도 또한 이 마하연 가운데에서 배워서 장차 일체종지를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 안에서도 모든 보살마하살이 역시 이 마하연 가운데에서 배워서 일체종지를 얻습니다. 이 때문에 세존이시여, 이 탈것[衍]7)이야말로 실로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은 이 마하연 가운데에서 배워서 이미 일체종지를 얻으셨고, 앞으로 얻으실 것이며, 지금 얻고 계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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