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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65 불교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3권

by Kay/케이 2024.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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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3

 

마하반야바라밀경 제3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최봉수 번역
김형준 개역


8. 권학품(勸學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단나(檀那)바라밀을 구족하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을 구족하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물질[色]을 알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나아가 분별[識]에 이르기까지를 알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눈[眼] 내지 뜻[意]을 알고자 하거나, 물질[色] 내지 법을 알고자 하거나, 안식(眼識) 내지 의식(意識)을 알고자 하거나, 눈의 접촉[眼觸] 내지 뜻의 접촉[意觸]을 알고자 하거나,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受] 내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을 알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婬瞋癡]을 끊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신견(身見)ㆍ계취(戒取)1)ㆍ의심[疑]ㆍ음욕(婬慾)ㆍ진에(瞋恚)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ㆍ도(悼)ㆍ만(慢) 및 무명(無明) 등의 온갖 결사(結使)2)와 전(纏)3) 등을 끊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4박(縛)과 4결(結)과 4전도(顚倒)를 끊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10선도(善道)를 알고자 하거나 4선(禪)을 알고자 하거나 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ㆍ4념처(念處) 내지 18불공법(不共法)을 알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각의삼매(覺意三昧)에 들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6신통(神通)과 9차제정(次第定)과 초월삼매(超越三昧)에 들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사자유희(師子遊戱)삼매를 배우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를 얻고 온갖 다라니문을 얻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수릉엄(首楞嚴)삼매ㆍ보인(寶印)삼매ㆍ묘월(妙月)삼매ㆍ월당상(月幢相)삼매ㆍ일체법인(一切法印)삼매ㆍ관인(觀印)삼매ㆍ필법성(畢法性)삼매ㆍ필주상(畢住相)삼매ㆍ여금강(如金剛)삼매ㆍ입일체법문(入一切法門)삼매ㆍ삼매왕(三昧王)삼매ㆍ왕인(王印)삼매ㆍ정력(淨力)삼매ㆍ고출(高出)삼매ㆍ필입일체변재(畢入一切辯才)삼매ㆍ입제법명(入諸法名)삼매ㆍ관시방(觀十方)삼매ㆍ제다라니문인(諸陀羅尼門印)삼매ㆍ일체법불망(一切法不忘)삼매ㆍ섭일체법취인(攝一切法聚印)삼매ㆍ허공주(虛空住)삼매ㆍ삼분청정(三分淸淨)삼매ㆍ불퇴신통(不退神通)삼매ㆍ출발(出鉢)삼매의 모든 삼매와 당상(幢相)삼매 등 이와 같은 모든 삼매문(三昧門)을 얻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온갖 중생들의 원(願)을 채워주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이와 같은 선근(善根)을 구족하여 항상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고자 하거나, 비천한 집에 태어나지 않고자 하거나,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머무르지 않고자 하거나, 보살의 정상[頂]에서 떨어지지 않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그때에 혜명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정상에서 떨어진다 하는 것인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사리불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방편으로써 6바라밀을 행하지 않은 채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삼매에 들어가서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고 또한 보살의 지위에도 들지 못한다면, 이것을 일컬어 보살마하살에게 법(法)이 생[生]4)하기 때문에 보살의 정상에서 떨어진다고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을 보살에게 생한 것이라 하는지요?”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생한 것이란 법애(法愛)5)를 말합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무엇이 법애인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물질은 공한 것이라고 염착(念著)을 일으키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공한 것이라고 염착을 일으킨다면,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道)를 따르면서도 법애(法愛)가 생한[生]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물질은 모양 없는[無相] 것이라고 염착을 일으키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모양 없는 것이라고 염착을 일으키며, 물질은 조작 없는[無作] 것이라고 염착을 일으키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조작 없는 것이라고 염착을 일으키며, 물질은 고요히 사라진 것[寂滅]이라고 염착을 일으키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고요히 사라진 것이라고 염착을 일으키며, 물질 내지 의식을 무상한 것이라고 하거나, 물질 내지 의식을 괴로운 것이라고 하거나, 물질 내지 의식을 나 없는 것이라고 하여 염착을 일으키면, 이것을 보살이 도를 따르면서도 법애가 생한 것이라 합니다.
나아가 ‘이것은 괴로움[苦]이니 알아야 하고, 쌓임[集]이니 끊어야만 하며, 다함[盡]이니 증득해야 하고, 도(道)이니 닦아야만 한다. 이것은 더러운[垢] 법이고 이것은 깨끗한[淨] 법이다. 이것은 가까이해야 하고 이것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보살로서 행해야 할 바요 이것은 보살로서 행해서는 안 될 바이다. 이것은 보살의 도이고 이것은 보살의 도가 아니다. 이것은 보살의 배움이고 이것은 보살의 배움이 아니다. 이것은 보살의 단나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이고 이것은 보살의 단나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이 아니다. 이것은 보살의 방편이고 이것은 보살의 방편이 아니다. 이것은 보살이 무르익은 것[熟]이고6) 이것은 보살이 무르익은 것이 아니다’라고 염착하기도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 모든 법에 염착(念著)을 일으킨다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를 따르면서도 법애가 생한 것이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무생(無生)이라 하는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내공(內空) 안에서 외공(外空)을 보지 않고 외공 안에서도 내공을 보지 않으며, 외공 안에서 내외공(內外空)을 보지 않고 내외공 안에서도 외공을 보지 않으며, 내외공 안에서 공공(空空)을 보지 않고 공공 안에서도 내외공을 보지 않으며, 공공 안에서 대공(大空)을 보지 않고 대공 안에서도 공공을 보지 않으며, 대공 안에서 제일의공(第一義空)을 보지 않고 제일의공 안에서도 대공을 보지 않으며, 제일의공 안에서 유위공(有爲空)을 보지 않고 유위공 안에서도 제일의공을 보지 않으며, 유위공 안에서 무위공(無爲空)을 보지 않고 무위공 안에서도 유위공을 보지 않으며, 무위공 안에서 필경공(畢竟空)을 보지 않고 필경공 안에서도 무위공을 보지 않으며, 필경공 안에서 무시공(無始空)을 보지 않고 무시공 안에서도 필경공을 보지 않으며, 무시공 안에서 산공(散空)을 보지 않고 산공 안에서도 무시공을 보지 않으며, 산공 안에서 성공(性空)을 보지 않고 성공 안에서도 산공을 보지 않으며, 성공 안에서 제법공(諸法空)을 보지 않고 제법공 안에서도 성공을 보지 않으며, 제법공 안에서 자상공(自相空)을 보지 않고 자상공 안에서도 제법공을 보지 않으며, 자상공 안에서 불가득공(不可得空)을 보지 않고 불가득공 안에서도 자상공을 보지 않으며, 불가득공 안에서 무법공(無法空)을 보지 않고 무법공 안에서도 불가득공을 보지 않으며, 무법공
안에서 유법공(有法空)을 보지 않고 유법공 안에서도 무법공을 보지 않으며, 유법공 안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을 보지 않고 무법유법공 안에서도 유법공을 보지 않나니,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보살의 지위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우고자 하면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곧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생각하지 않고 눈 내지 뜻을 생각하지 않으며, 빛깔 내지 법을 생각하지 않고 단나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 내지 18불공법을 생각하지 않아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이러한 마음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교만해지지 않아야 합니다. 무등등(無等等)한 마음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교만해지지 않아야 하며, 큰 마음[大心]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교만해지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마음은 마음이 아니며, 마음의 모양은 항상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마음의 모양이 항상 청정하다 하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만일 보살이 이 마음의 모양을 알면서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과 합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며, 전(纏)ㆍ유(流)ㆍ박(縛) 등 결사(結使)의 온갖 번뇌와 합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과 합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는다면,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컬어 보살의 마음의 모양이 항상 청정하다 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다시 수보리에게 물었다.
“이 무심(無心)의 모양에 마음이 있는지요?”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무심의 모양 안에서 마음이 있는 모양이나 마음이 없는 모양을 얻을 수 있겠는지요?”
사리불이 말했다.
“얻을 수 없습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만일 얻을 수 없다면 ‘이 무심의 모양 안에 마음이 있느냐’고 묻지 말아야 합니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무심의 모양인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모든 법에 대해 무너뜨리거나 분별하지 않는 이것을 무심의 모양이라고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단지 이 마음만을 무너뜨리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지요? 아니면 물질도 무너뜨리지 않고 분별하지 않으며, 나아가 부처님의 도까지도 무너뜨리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만일 마음의 모양이 무너지거나 분별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면, 이 보살은 역시 물질 내지 부처님을 무너뜨리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다고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때에 혜명 사리불이 수보리를 찬탄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당신은 실로 부처님의 제자이시고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셨으며, 법을 봄에서 나오셨고 법의 교화로부터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법의 몫[法分]을 취하면서 재물의 몫[財分]을 취하지 않으시며, 법 가운데에서 스스로 믿고 몸소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마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무쟁삼매(無諍三昧)7)를 얻은 이 가운데에서 으뜸이시니, 실로 부처님께서 칭찬하신 그대로이십니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이 가운데에서 역시 분별하면서 만약에 보살이 당신의 말씀대로 행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는다고 알려지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선남자ㆍ선여인이 성문의 경지를 배우고자 하면 역시 반야바라밀을 듣고서는 지니고 읽고 외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벽지불의 경지를 배우고자 하는 이도 역시 반야바라밀을 듣고서는 지니고 읽고 외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말씀대로 행해야 하며, 보살의 지위를 배우고자 하는 이도 역시 반야바라밀을 듣고서는 지니고 읽고 외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는 3승(乘)이 널리 설해지고 있으며, 이 가운데에서 보살마하살과 성문과 벽지불은 배워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9. 집산품(集散品)


그때에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얻지도 못하거늘 누구를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해야 하는지요?
세존이시여, 저는 온갖 법들의 쌓임[集]과 흩어짐[散]을 얻지 못합니다. 만일 제가 보살을 위하여 이름을 지어서 보살이라 말한다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이름이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물질[色]의 쌓임과 흩어짐에서 분별[識]의 쌓임과 흩어짐에 이르기까지를 얻지 못합니다. 만일 얻을 수 없다면 어떻게 이름을 짓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이런 인연 때문에 이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눈[眼]의 쌓임과 흩어짐에서 뜻[意]의 쌓임과 흩어짐에 이르기까지를 얻지 못합니다. 만일 얻을 수 없다면 어떻게 이름을 지어서 그것이 보살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눈의 이름 내지 뜻의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빛깔[色]의 쌓임과 흩어짐에서 법(法)의 쌓임과 흩어짐에 이르기까지를 얻지 못합니다. 만일 얻을 수 없다면 어떻게 이름을 지어서 그것이 보살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빛깔의 이름 내지 법의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안식(眼識)에서 의식(意識)에 이르기까지와 눈의 접촉[眼觸]에서 뜻의 접촉[意觸]에 이르기까지와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受]에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무명(無明)의 쌓임과 흩어짐에서 늙어 죽음[老死]의 쌓임과 흩어짐에 이르기까지를 얻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무명이 다함[無明盡]의 쌓임과 흩어짐에서
늙어 죽음이 다함[老死盡]의 쌓임과 흩어짐에 이르기까지를 얻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쌓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며, 모든 삿된 견해의 쌓임과 흩어짐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6바라밀의 쌓임과 흩어짐과 4념처(念處)의 쌓임과 흩어짐, 나아가 8성도분(聖道分)의 쌓임과 흩어짐,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쌓임과 흩어짐, 4선(禪)ㆍ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의 쌓임과 흩어짐,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사(念捨)ㆍ염천(念天)ㆍ염선(念善)ㆍ염입출식(念入出息)ㆍ염신(念身)ㆍ염사(念死)의 쌓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며, 저는 또한 부처님의 10력(力)에서 18불공법(不共法)에 이르기까지의 쌓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6바라밀에서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의 쌓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름을 지어서 그것을 보살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치 꿈과 같은 5음(陰)의 쌓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며, 저는 마치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허깨비와 같은 5수중(受衆)의 쌓임과 흩어짐도 얻지 못하니 역시 앞에서의 설명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읨[離]의 쌓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며, 저는 고요히 사라짐[寂滅]과 나지 않음[不生]과 없어지지 않음[不滅]과 보이지 않음[不示]과 더럽지 않음[不垢]과 청정하지 않음[不淨]의 쌓임과 흩어짐도 얻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ㆍ법상(法相)ㆍ법위(法位)의 쌓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니, 역시 앞에서의 설명과 같습니다. 저는 모든 착하고 착하지 않는 법의 쌓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며, 저는 유위(有爲)ㆍ무위(無爲)의 법과 유루(有漏)ㆍ무루(無漏)의 법의 쌓임과 흩어짐과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의 쌓임과 흩어짐과 과거가 되지도 않고 미래가 되지도 않으며 현재가 되지도 않는 법의 쌓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합니다.
무엇이 과거가 되지도 않고 미래가 되지도 않으며 현재가 되지도 않느냐 하면, 이른바 무위(無爲)의 법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무위의 법의 쌓임과 흩어짐도 얻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부처님의 쌓임과 흩어짐도 얻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성문승(聲聞僧)의 쌓임과 흩어짐도 얻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모든 부처님의 쌓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보살마하살에게 반야바라밀을 가르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보살의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있는 바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또한 이 모든 법의 실상의 쌓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거늘 어떻게 보살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이 보살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모든 법의 실상의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인(因)과 연(緣)이 화합하여 임시의 이름[假名]으로 시설되나니, 이른바 보살이라는 이 이름은 5수음(受陰) 가운데에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12입(入)ㆍ18계(界)에서 18불공법(不共法) 가운데에서도 설명할 수 없으며, 화합한 법 가운데에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마치 꿈을 모든 법 가운데에서 설명할 수 없고 메아리ㆍ그림자ㆍ아지랑이ㆍ허깨비 등을 모든 법 가운데에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으며, 비유하건대 마치 허공이란 이름도 또한 어떤 법 가운데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이란 이름도 어떤 법 가운데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계율[戒]ㆍ삼매(三昧)ㆍ지혜(智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이란 이름도 어떤 법 가운데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마치 수다원이라는 이름 내지 아라한ㆍ벽지불이라는 이름 같은 것도 어떤 법 가운데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마치 부처님이라는 이름과 법이라는 이름도 역시 어떤 법 가운데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이른바 ‘착하다, 착하지 못하다, 항상 있다, 항상 없다, 괴롭다, 즐겁다, 나이다, 나가 없다, 고요히 사라졌다,
여읜다, 있다, 없다’라고 하는 그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런 이치 때문에 마음으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온갖 법들은 쌓이고 흩어지는 모양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일 보살을 위하여 이름을 지어서 “이것이 보살이다”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이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의 이러한 모양과 이러한 이치에 관한 설명을 듣고도 마음이 위축되거나 후회하거나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 보살이야말로 틀림없이 아비발치의 성품[阿鞞跋致性] 안에 머무르는 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그는 머무르지 않는 법에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물질[色]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눈[眼]ㆍ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 뜻[意]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빛깔[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안식(眼識)으로부터 의식(意識)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눈의 접촉[眼觸]에서 뜻의 접촉[意觸]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受]에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땅의 요소[地種]와 물ㆍ불ㆍ바람ㆍ허공ㆍ의식의 요소[水火風空識種]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무명(無明)에서 늙어 죽음[老死]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물질은 물질의 모양이 공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양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이 공하므로 물질이라 하지 못하고 공을 여의고서 또한 물질도 없으니,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입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공하므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라 하지 못하고 공을 여의고서 또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없으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입니다.
세존이시여, 나아가 늙어 죽음은 늙어 죽음의 모양이 공합니다. 늙어 죽음이 공하기에 늙어 죽음이라 하지 못하고, 공을 여의고서 또한 늙어 죽음도 없으니, 늙어 죽음이 공이요 공이 곧 늙어 죽음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물질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나아가 늙어 죽음 가운데에도 또한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4념처(念處)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4념처는 4념처의 모양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4념처는 공하므로 4념처라 하지 못하고 공을 여의고서는 또한 4념처도 없으니, 4념처가 곧 공이고 공이 곧 4념처입니다.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4념처에서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단나(檀那)바라밀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단나바라밀은 단나바라밀의 모양이 공하고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 등의 모양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또한 바라밀은 공하므로 반야바라밀이라 하지 못하고, 공을 여의고서 또한 단나바라밀도 없으니, 단나바라밀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단나바라밀입니다.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6바라밀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문자(文字)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한 글자의
문[一字門]과 두 글자의 문[二字門]등의 이와 같은 갖가지 글자의 문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글자는 모든 글자의 모양이 공하기 때문이니, 역시 앞에서의 설명과 같습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모든 신통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통은 모든 신통의 모양이 공하기 때문이니, 신통이 공하므로 신통이라 하지 못하고 공을 여의고는 또한 신통도 없어서 신통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신통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모든 신통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물질이 무상(無常)하다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무상하다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무상은 무상의 모양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상이 공하므로 무상이라 하지 못하고 공을 여의고는 또한 무상도 없으니, 무상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무상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물질이 무상하다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무상하다든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물질이 괴롭다[苦]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괴롭다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물질이 나 없다[無我]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나 없다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물질이 공(空)하다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공하다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물질이 고요히 사라진다[寂滅]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고요히 사라진다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물질이 여읜다[離]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여읜다는 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역시 앞에서의 설명과 같습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진여[如]의 모양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의 모양은
여의 모양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여의 모양이 공하므로 여라 하지 못하고 공을 여의고는 또한 여가 없으니, 여가 곧 공이요 공이 곧 여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법성(法性)ㆍ법상(法相)ㆍ법위(法位)ㆍ실제(實際)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실제 등은 공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실제 등이 공하므로 실제 등이라 하지 못하고, 공을 여의고는 실제 등도 없으니, 실제 등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실제 등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온갖 다라니문[一切陀羅尼門]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온갖 삼매문[一切三昧門]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다라니문은 다라니문의 모양이 공하고 삼매문은 삼매문의 모양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다라니문과 삼매문은 공하므로 다라니문과 삼매문이라 하지 못하고 공을 떠나서도 또한 다라니문과 삼매문이 없으니, 다라니문과 삼매문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다라니문과 삼매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모든 다라니문과 삼매문 가운데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서 방편이 없기 때문에 나라는 마음으로써 물질 가운데에 머무르면 이 보살은 물질의 행(行)을 짓는 것이고, 나라는 마음으로써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가운데 머무르면 이 보살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행을 짓는 것입니다. 만일 보살이 행을 지으면 반야바라밀을 받지 못하고 또한 반야바라밀을 두루 갖추지도 못하며, 반야바라밀을 두루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살바야(薩婆若)를 얻거나 성취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방편이 없기 때문에 나라는 마음으로써 12입(入) 내지 다라니문과 삼매문 가운데에 머무르면 이 보살은 12입의 행을 짓고 나아가 다라문ㆍ삼매문의 행을 짓는 것이니, 만일 보살이 행을 지으면 반야바라밀을 받지 못하고 또한 반야바라밀을 구족하지도 못하며 반야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살바야를 얻거나 성취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받는 것이 아니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받는 것이 아니라면 곧 물질이 아니요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받는 것이 아니라면 곧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아니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12입은 받는 것이 아니고, 나아가 다라니문과 삼매문에 이르기까지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2입이 받는 것이 아니라면 곧 12입이 아니며, 나아가 다라니문과 삼매문이 받는 것이 아니라면 다라니문도 삼매문도 아니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도 또한 받지 않고 반야바라밀이 받지 않으면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함을 관찰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관찰하면 마음이 행한 곳이 없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불수삼매(不受三昧)라 하나니, 그 광대한 작용은 성문이나 벽지불과는 함께하지 않습니다.
이 살바야의 지혜[般若苦慧]도 또한 받지 않나니, 내공(內空)이기 때문이며 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ㆍ공공(空空)ㆍ대공(大空)ㆍ제일의공(第一義空)ㆍ유위공(有爲空)ㆍ무위공(無爲空)ㆍ필경공(畢竟空)ㆍ무시공(無始空)ㆍ산공(散空)ㆍ성공(性空)ㆍ자상공(自相空)ㆍ제법공(諸法空)ㆍ불가득공(不可得空)ㆍ무법공(無法空)ㆍ유법공(有法空) 및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살바야는 모양과 행으로써 얻을 수 없고 모양과 행은 때[垢]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때 있는 모양[垢相]이냐 하면, 물질의
모양에서 모든 다라니와 삼매문의 모양에 이르기까지이니, 이것을 때 있는 모양이라 하며 이 모양을 받고 닦으면 살바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니범지(先尼梵志)8)는 온갖 지혜 가운데에서 끝내 믿음을 내지 않았거늘 어떻게 믿었겠습니까. 반야바라밀을 믿되 분별하고 이해하고 헤아리고 생각하면서 모양의 법으로써 하지 않고 모양이 없는 법으로써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선니 범지는 모양을 취하지 않으면서 신행(信行) 가운데 머물러 성공(性空)의 지혜로써 모든 법의 모양에 들어가 물질을 받지도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받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자기 모양이 공[自相空]한 까닭에 얻거나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선니 범지는 내관(內觀)을 얻었기 때문에 이 지혜를 본 것이 아니고 외관(外觀)을 얻었기 때문에 이 지혜를 본 것도 아닙니다. 안도 바깥도 아닌 관[非內非外觀]을 얻었기 때문에 이 지혜를 본 것도 아니고 또한 지혜가 없는 관[無智慧觀]을 얻었기 때문에 이 지혜를 본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범지는 이 법과 아는 이[知者]와 아는 법[知法]과 아는 곳[知處]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범지는 안[內]의 물질 가운데에서 이 지혜를 본 것이 아니고 안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가운데에서 이 지혜를 본 것도 아닙니다. 바깥[外]의 물질 가운데에서 이 지혜를 본 것도 아니고 바깥[外]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가운데에서 이 지혜를 본 것도 아니며, 안팎[內外]의 물질 가운데에서 이 지혜를 본 것도 아니고 안팎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여읜 가운데에서 이 지혜를 본 것도 아니며, 또한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여읜 가운데에서 이 지혜를 본 것도 아니니, 안팎이 공[內外空]하기 때문입니다.
선니 범지는 이 가운데에서 마음으로 일체지(一切智)를 믿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범지는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믿었으니, 온갖 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믿고 이해하고 나서는 어떤 법도 받을 만한 것이 없었나니, 모든 법은 모양이 없고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범지는 모든 법에 있어서도 또한 얻을 바가 없었으니, 취하거나 버리거나 간에 취함과 버림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범지는
지혜도 또한 생각하지 않았으니, 모든 법의 모양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나니, 이 언덕[此岸]과 저 언덕[彼岸]을 건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보살이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받지 않음은 온갖 법을 받지 않기 때문이며, 나아가 모든 다라니문과 삼매문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받지 않음은 온갖 법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보살은 이 가운데에서 또한 열반을 취하지도 않고, 아직 4념처(念處)에서 8성도분(聖道分)까지를 구족하지 못하며, 아직 10력(力)에서 18불공법(不共法)까지를 구족하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4념처는 4념처가 아니고, 나아가 18불공법은 18불공법이 아니며, 이 모든 법은 법이 아니고 또한 법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서 물질도 받지 않고 나아가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도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무엇이 반야바라밀일까? 무엇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 하는가? 이것은 누구의 반야바라밀인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만일 법으로서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다면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다’라고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그때에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떠한 법이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는 것인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반야바라밀이 바로 법으로서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도 없습니다. 선나(禪那)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시라(尸羅)바라밀ㆍ단나(檀那)바라밀이 바로 법으로서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나니, 내공(內空)이기 때문이며 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ㆍ공공(空空)ㆍ대공(大空)ㆍ제일의공(第一義空)ㆍ유위공(有爲空)ㆍ무위공(無爲空)ㆍ
필경공(畢竟空)ㆍ무시공(無始空)ㆍ산공(散空)ㆍ성공(性空)ㆍ자상공(自相空)ㆍ제법공(諸法空)ㆍ불가득공(不可得空)ㆍ무법공(無法空)ㆍ유법공(有法空) 및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물질의 법은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법은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습니다. 내공은 법으로서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으며, 나아가 무법유법공은 법으로서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4념처(念處)는 법으로서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으며,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은 법으로서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모든 신통(神通)은 법으로서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으며, 여의 모양[如相]은 법으로서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습니다.
법성(法性)과 법상(法相)과 법주(法住)와 법위(法位)와 실제(實際)는 법으로서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부처님[佛]은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으며, 살바야(薩婆耶)는 법으로서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으며, 일체종지(一切種智)는 법으로서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 없으니, 내공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무법유법공이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생각하고 이와 같이 관찰할 때에 마음이 위축되거나 후회하지 않고,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이 보살은 반야바라밀의 행을 여의지 않는다고 알아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 때문에 보살이 반야바라밀의 행을 여의지 않는다고 알아야 하는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물질은 물질의 성품을 여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성품을 여의며, 6바라밀은 6바라밀의 성품을 여의고, 나아가 실제(實際)는 실제의 성품을 여읩니다.”
사리불이 다시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이 물질의 성품인지요? 무엇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성품이며, 나아가 무엇이 실제의 성품인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있는 바 없는 것[無所有]이 바로 물질의 성품입니다. 있는 바 없는 것이
바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성품이며, 나아가 있는 바 없는 것이 바로 실제의 성품입니다.
사리불이여, 이런 인연 때문에 물질은 물질의 성품을 여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성품을 여의며, 나아가 실제는 실제의 성품을 여읜다고 알아야 합니다.
사리불이여, 물질은 또한 물질의 모양[相]을 여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또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모양을 여읩니다. 나아가 실제는 또한 실제의 모양을 여의며, 모양도 또한 모양을 여의고 성품도 또한 성품을 여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와 같이 배우면 살바야(薩婆若)를 성취할 수 있는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살바야를 성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나지도 않고 성취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 때문에 모든 법은 나지도 않고 성취되지도 않는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물질은 물질의 공함이 바로 물질의 생겨남이고 성취이어서 그것은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공함이 바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생겨남이고 성취이어서 그것은 얻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실제는 실제의 공함이 바로 실제의 생겨남이고 성취이어서 그것은 얻을 수 없습니다.9)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배워 점차로 살바야에 가까워지며 점차로 몸의 청정과 마음의 청정과 모양의 청정을 얻나니, 점차로 몸의 청정과 마음의 청정과 모양의 청정을 얻기 때문에 이 보살은 물든 마음[染心]을 내지 않고 성내는 마음[瞋心]을 내지 않으며, 어리석은 마음[癡心]을 내지 않고 교만한 마음[憍慢心]을 내지 않으며, 간탐하는 마음[慳貪心]을 내지 않고 삿된 견해의 마음[邪見心]을 내지 않습니다.
이 보살은 물든 마음을 내지 않고, 나아가 삿된 견해의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끝내 모태 안에 태어나지 않고 항상 화생(化生)하게 되며,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또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면서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합니다.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도달하기까지 끝내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며,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10. 상행품(相行品)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방편이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한다면, 혹은 물질을 행하는 것으로 행상(行相)을 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행하는 것으로 행상을 삼으며, 혹은 물질 이것은 항상하다[常]는 행으로 행상을 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이것도 항상하다는 행으로 행상을 삼으며, 혹은 물질 이것은 무상(無常)하다 하는 행으로 행상을 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이것도 무상하다는 행으로 행상을 삼습니다.
혹은 물질 이것은 즐겁다[樂]하는 행으로 행상을 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이것도 즐겁다 하는 행으로 행상을 삼으며, 혹은 물질 이것은 괴롭다[苦] 하는 행으로 행상을 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이것도 괴롭다 하는 행으로 행상을 삼으며, 혹은 물질 이것은 존재한다[有]는 행으로 행상을 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이것도 존재한다는 행으로 행상을 삼으며, 혹은 물질 이것은 공하다[空]는 행으로 행상을 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이것도 공하다는 행으로 행상을 삼습니다.
혹은 물질 이것은 나[我]라는 행으로 행상을 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이것도 나라는 행으로 행상을 삼으며, 혹은 물질 이것은 무아(無我)라는 행으로 행상을 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이것도 무아라는 행으로 행상을 삼으며, 혹은 물질 이것은 여의는 것이라는 행으로 행상을 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이것도 여의는 것이라는 행으로 행상을 삼으며, 혹은 물질 이것은 고요히 사라진다[寂滅]는 행으로 행상을 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이것도 고요히 사라진다는 행으로 행상을 삼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방편이 없으면, 4념처(念處)를 행하는 것으로 행상을 삼고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을 행하는 것으로 행상을 삼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생각하기를 ‘나는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얻은 바의 행이 있으니, 이 역시 행상이다’라고 하거나,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이렇게 행하게 하는 것이 곧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으로, 이 역시 행상이다’라고 한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이 없다고 알아야만 합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물질[色]에 대한 기억[念]을 받아들여 망령되이 이해하거나, 혹은 물질에 대한 기억을 받아들여 망령되이 이해하면서 물질 때문에 행을 짓고 또는 물질로 삼는 행을 짓는다면,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와 우(憂)ㆍ비(悲)ㆍ고(苦)ㆍ뇌(惱)와 후세(後世)의 고통을 여읠 수 없습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방편이 없이 눈[眼]에 대한 기억을 받아들여 망령되이 이해하거나, 혹은 뜻[意]과 빛깔[色] 내지 법(法), 안식의 경계[眼識界] 내지 의식의 경계[意識界], 눈의 접촉[眼觸] 내지 뜻의 접촉[意觸],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受] 내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이나 4념처 내지 18불공법에 대한 기억을 받아들여 망령되이 이해하여 18불공법 때문에 행을 짓고 또는 18불공법으로 삼는다면, 이 보살은 생ㆍ노ㆍ병ㆍ사와 우ㆍ비ㆍ고ㆍ뇌 및 후세의 고통을 여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보살은 오히려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도 증득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습니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그러므로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이 없다고 알아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찌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이 있다고 알게 되는지요?”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할 때에 물질을 행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행하지 않으며, 물질의 모양[相]을 행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양도 행하지 않으며,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항상하다[常]고 행하지 않고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무상(無常)하다고도 행하지 않으며,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즐겁다[樂]고 행하지 않고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괴롭다[苦]고도 행하지 않습니다.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나[我]라고 행하지 않고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무아라고도 행하지 않으며,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공(空)하다고 행하지 않습니다.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모양 없다[無相]고 행하지 않고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조작 없다[無作]고 행하지 않으며,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여윈다[離]고 행하지 않으며,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고요히 사라진다[寂滅]고도 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이 물질은 공하여 물질이 아니로되 공을 여의고는 물질이 없고 물질을 여의고는 공도 없으니,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공하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아니로되 공을 여의고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여의고는 공이 없으니, 공이 곧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곧 공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18불공법은 공하여 18불공법이 아니로되 공을 여의고는 18불공법이 없고 18불공법을 여의고는 공이 없으니, 공이 곧 18불공법이요 18불공법이 곧 공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다면 사리불이여,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이 있다고 알아야 합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행(行)하는 것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고 행하지 않는[不行] 것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행하거나 행하지 않는[行不行] 것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고, 행하는 것도 아니고 행하지 않는 것도 아닌[非行非不行] 것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으며, 받아들이지 않는다는[不受] 것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무슨 인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이 행은 반야바라밀의 자기 성품[自性]은 얻을 수 없기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있는 바의 성품이 없는 그것이 반야바라밀이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행하는 것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고 행하지 않는 것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행하거나 행하지 않는 것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고, 행하는 것도 아니고 행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으며,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온갖 법의 성품은 있는 바가 없어서 모든 법의 행에 따르지 않고 모든 법의 모양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모든 법에 대해 ‘받아들임이 없는 삼매[無所受三昧]’라고 하니, 그 광대한 작용은 성문이나 벽지불과는 함께하지 않습니다. 이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를 행하면서 여의지 않는다면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합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단지 이 삼매만을 여의지 않으면 보살마하살이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는지요? 아니면 다시 그 밖의 삼매들이 있는지요?”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다시 그 밖의 삼매들이 있으니,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를 행하면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어떠한 삼매이기에 보살마하살이 이를 행하면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는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수릉엄(首愣嚴)이라는 삼매가 있습니다. 이 삼매를 행하면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합니다.
또한 보인(寶印)삼매와 사자유희(師子遊戱)삼매와 묘월(妙月)삼매와 월당상(月堂相)삼매와 제법인(諸法印)삼매와 관정(觀頂)삼매와
필법성(畢法性)삼매와 필당상(畢幢相)삼매와 금강(金剛)삼매와 입법인(入法印)삼매와 삼매왕안립(三昧王安立)삼매와 방광(放光)삼매와 역진(力進)삼매가 있습니다.
또한 출생(出生)삼매와 필입변재(必入辯才)삼매와 입명자(入名字)삼매와 관방(觀方)삼매와 다라니인(陀羅尼印)삼매와 불망(不忘)삼매와 섭제법해인(攝諸法海印)삼매와 변부허공(遍覆虛空)삼매와 금강륜(金剛輪)삼매가 있습니다.
또한 보단(寶斷)삼매와 보조(普照)삼매와 불구(不求)삼매와 무처주(無處住)삼매와 무심(無心)삼매와 정등(淨燈)삼매와 무변명(無邊明)삼매와 능작명(能作明)삼매와 보변명(普遍明)삼매와 견정제(堅淨諸)삼매와 삼매무구명(三昧無垢明)삼매가 있습니다.
또한 작락(作樂)삼매와 전광(電光)삼매와 무진(無盡)삼매와 위덕(威德)삼매와 이진(離盡)삼매와 부동(不動)삼매와 장엄(莊嚴)삼매와 일광(日光)삼매와 월정(月淨)삼매와 정명(淨明)삼매와 능작명(能作明)삼매와 작행(作行)삼매와 지상(知相)삼매가 있습니다.
또한 여금강(如金剛)삼매와 심주(心柱)삼매와 변조(遍照)삼매와 안립(安立)삼매와 보정(寶頂)삼매와 묘법인(妙法印)삼매와 법등(法等)삼매와 생희(生喜)삼매와 도법정(到法頂)삼매와 능산(能散)삼매와 괴제법처(壞諸法處)삼매와 자등상(字等相)삼매와 이자(離字)삼매와 단연(斷緣)삼매와 불괴(不壞)삼매가 있습니다.
또한 무종상(無種相)삼매와 무처행(無處行)삼매와 이암(離闇)삼매와 무거(無去)삼매와 부동(不動)삼매와 도연(度緣)삼매와 집제공덕(集諸功德)삼매와 주무심(住無心)삼매와 묘정화(妙淨華)삼매와 각의(覺意)삼매와 무량변(無量辯)삼매와 무등등(無等等)삼매와 도제법(度諸法)삼매와 분별제법(分別諸法)삼매가
있습니다.
또한 산의(散疑)삼매와 무주처(無住處)삼매와 일상(一相)삼매와 일성(一性)삼매와 생행(生行)삼매와 일행(一行)삼매와 불일행(不一行)삼매와 묘행(妙行)삼매와 달일체유저산(達一切有底散)삼매와 입언어(入言語)삼매와 이음성자어(離音聲字語)삼매와 연거(然炬)삼매가 있습니다.
또한 정상(淨相)삼매와 파상(波相)삼매와 일체종묘족(一切鍾妙足)삼매와 불희고락(不喜苦樂)삼매와 부진행(不盡行)삼매와 다다라니(多陀羅尼)삼매와 섭제사정상(攝提邪正相)삼매와 멸증애(滅憎愛)삼매와 역순(逆順)삼매와 정광(淨光)삼매와 견고(堅固)삼매와 만월정광(滿月淨光)삼매가 있습니다.
또한 대장엄(大莊嚴)삼매와 능조일체세(能照一切世)삼매와 삼매등(三昧等)삼매와 무쟁행(無諍行)삼매와 무주처락(無住處樂)삼매와 여주정(如住定)삼매와 괴신쇠(壞身衰)삼매와 괴어여허공(壞語如虛空)삼매와 이착여허공불염(離著如虛空不染)삼매 등이 있습니다.
사리불이여, 이 보살마하살이 이 모든 삼매를 행하면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됩니다.
다시 한량없는 아승기의 삼매문(三昧門)과 다라니문(陀羅尼門)이 있으니,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문과 다라니문을 배우면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됩니다.”
혜명(慧命)수보리는 부처님의 마음을 따르면서 말했다.
“이 보살마하살이 이 모든 삼매를 행한다면, 이미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 수기(授記)를 받고, 지금 현재 계신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이 보살에게 수기를 주신다고 알아야 합니다.
이 보살은 이 모든 삼매를 보지도 않고 또한 이 삼매를 생각하지도 않으며, 또한 ‘나는 장차 이 삼매에 들어갈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삼매에 들어간다. 나는 이미 이삼매에 들어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니, 이 보살마하살은 도무지 분별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이 모든 삼매에 머무른다면, 이미 과거의 부처님께 수기를 받은 것인지요?”
수보리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모든 삼매와 다르지 않고 모든 삼매는 반야바라밀과 다르지 않으며, 보살은 반야바라밀이나 삼매와 다르지 않고 반야바라밀이나 삼매는 보살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이 곧 삼매요 삼매가 곧 반야바라밀이며, 보살이 곧 반야바라밀이자 삼매요 반야바라밀이자 삼매가 곧 보살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만일 삼매가 보살과 다르지 않고 보살이 삼매와 다르지 않으며, 삼매가 곧 보살이요 보살이 곧 삼매라면, 보살은 어떻게 온갖 법들이 삼매와 동등함을 알겠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가령 보살은 이러한 삼매에 들어가면서도 이때에 ‘나는 이러한 법으로써 이러한 삼매에 들어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이 보살은 모든 삼매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알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않는지요?”
수보리가 말했다.
“모든 삼매는 있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알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찬탄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수보리야. 내가 말했듯이 그대는 무쟁삼매(無諍三昧)를 행함이 으뜸이니, 이 이치와 상응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선나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단나바라밀과 4념처에서 18불공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이 배워야만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것이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것이 되나니 이 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나아가 단나바라밀을 배우는 것이 되나니 이 법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4념처를 배우고 나아가 18불공법까지 배우는 것이 되나니 이 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도 이 법을 얻을 수 없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도 이 법을 얻을 수 없느니라.”
사리불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법을 얻을 수 없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我]를 얻을 수 없고 나아가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를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畢竟淸淨]하기 때문이니라. 5음(蔭)을 얻을 수 없고 12입(入)을 얻을 수 없으며, 18계(界)를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무명(無明)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나아가 늙어 죽음[老死]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요, 쌓임ㆍ사라짐ㆍ도의 진리[集滅道諦]를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욕계(欲界)를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요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를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4념처(念處)를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6바라밀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수다원(須陀洹)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ㆍ벽지불(辟支拂)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보살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부처님을 얻을 수 없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을 마침내 청정하다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벗어나지도 않고[不出] 나지도 않고[不生] 얻는 것도 없고[不得] 짓는 것도 없는[不作] 이것을 마침내 청정하다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와 같이 배우면 어떠한 법을 배우는 것이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운다면 모든 법에서 배우는 바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사리불아, 모든 법의 모양[法相]은 범부의 집착한 바와 같지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실상(實相)은 어떻게 존재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있는 바가 없이 이와 같이 존재하느니라. 이처럼 있는 바가 없나니, 이 일을 알지 못함을 무명(無明)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있는 바가 없으며, 이 일을 알지 못하면 무명이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물질[色]ㆍ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이 있는 바가 없나니 내공(內空)이요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기 때문이니라. 4념처 내지 18불공법은 있는 바가 없나니 내공이요 나아가 무법유법공이기 때문이니라. 이 가운데에서 범부는 무명의 힘으로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망령되이 보고 분별하나니, 이것을 무명이라 하며, 이 범부는 두 가지의 치우침[二邊]에 속박을 받느니라.
이 사람은 모든 법의 있는 바 없음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면서 생각하고 분별하여 물질과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 집착하나니, 이 사람은 집착하기 때문에 있는 바가 없는 법에 대해서 안다는 견해를 짓느니라.
이 범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느니라. 어떤 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하느냐 하면, 물질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며, 나아가 18불공법도 또한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느니라. 이 때문에 범부의 범주[數]에 떨어지니, 마치 어린아이와 같으니라.
이 사람은 벗어나지도 못하느니라. 어디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느냐 하면, 욕계(欲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색계(色界)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무색계(無色界)와
성문과 벽지불의 법 가운데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이 사람은 믿지도 않느니라. 무엇을 믿지 않느냐 하면, 곧 물질이 공함을 믿지 않고, 나아가 18불공법이 공함을 믿지 않느니라.
이 사람은 머무르지도 않느니라. 어떤 곳에 머무르지 않느냐 하면, 단나(檀那)바라밀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에 머무르지 않으며, 아비발치의 지위[阿毘跋致地]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18불공법에도 머무르지 않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범부라 하나니, 어린아이와도 같으니라.
또한 집착하는 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에 집착하느냐 하면, 물질에서 의식에 이르기까지 집착하고, 눈의 영역[眼入]에서 뜻의 영역[意入]에 이르기까지 집착하며, 눈의 경계[眼界]에서 의식의 경계[意識界]에 이르기까지 집착하고 음욕[婬]ㆍ성냄[怒]ㆍ어리석음[癡]에 집착하며, 모든 삿된 견해에 집착하고 4념처에 집착하며, 나아가 부처님의 도[佛道]에 이르기까지 집착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배움을 지으면 또한 반야바라밀을 배우지도 못하고 살바야(薩婆若)도 얻지 못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배움을 지으면 또한 반야바라밀을 배우지도 못하고 살바야도 얻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또한 반야바라밀을 배우지도 못하고 살바야도 얻지 못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방편(方便)이 없기 때문에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반야(般若)바라밀에 집착하고, 선나(禪那)바라밀과 비리야(毘梨耶)ㆍ찬제(羼提)ㆍ시라(尸羅)바라밀ㆍ단나(檀那)바라밀에서 18불공법과 일체종지(一切種智)에 이르기까기 생각을 따르면서 분별하고 집착하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또한 반야바라밀을 배우지도 못하고 살바야도 얻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또한 반야바라밀을 배우지도 못하고 살바야도 얻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반야바라밀을 배우지도 못하고 살바야도 얻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이제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살바야를 얻어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때는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살바야를 얻나니,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얻을 수 없다 하시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내공(內空)이며,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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