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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63 불교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1권

by Kay/케이 2024.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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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1

 

마하반야바라밀경(摩何般若波羅蜜經) 제1권


후진(後秦) 구자국(龜茲國)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최봉수 번역
김형준 개역


1. 서품(序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1)께서는 왕사성2) 기사굴산3)에서 대략의 수효 5천 명[分]4)으로 이루어진 큰5) 비구승과 함께 머무셨다. 그들은 모두 아라한6)으로 모든 누(漏)7)가 이미 다하고8) 다시는 번뇌가 없었다. 마음으로 잘 해탈하였고 지혜로도 잘 해탈하였으며, 마음이 길들여져 유연한 것이 마치 마하나가9) 같았다. 할 일을 이미 다하고 무거운 짐을 버리어 능히 공덕의 짐과 남에게 응하는 짐을 짊어질 수 있으며, 자기의 이득[己利]을 체득하고 모든 유(有)와 결(結)이 다했으며 바른 지혜로 이미 해탈을 얻었다. 오직 아난10)만을 제하니 그는 배움의 경지[學地]11)에서 수다원(須陀洹)12)을 얻었을 뿐이었다.
다시 5백 명의 비구니와 우바새13)ㆍ우바이14)가 있었으니, 모두가 성스런 진리15)를 보았다.
다시 보살마하살16)들이 있었으니,17) 모두가 다라니(陀羅尼)18) 및 모든 삼매19)를 얻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20)을 행하여 이미 등(等)과 인(忍)을 얻었다.21) 걸림 없는 다라니를 얻었고, 모두가 5통(通)을 얻었으며22) 그들이 말을 하면 반드시 다 받아 지녔다. 다시는 게을러지는 일이 없었고, 이미 이양과 명예를 버렸으며, 법을 설하되 바라는 바가 없었다. 깊은 법인(法忍)23)을 건너 두려움 없는 힘을 얻고 모든 마사(魔事)를 초월했으며 일체의 업장에서 남김없이 해탈했다.
인연24)의 법을 교묘하게 연설했으며, 아승기겁25) 이래로 대서원을 일으켰다. 얼굴빛이 화열(和悅)하여 항상 먼저 인사하고 말하는 바가 거칠지 않았으며, 대중 가운데서 두려움 없음[無所畏]을 얻었다.
헤아릴 수 없는 억겁 동안 법을 설했으니 교묘히 뛰어났다.
모든 법은 아지랑이[幻]26) 같고 불꽃[焰] 같고, 물속의 달 같고, 허공 같고, 메아리 같고, 건달바의 성27) 같고, 꿈 같고, 그림자 같고, 거울 속의 형상 같고, 변화한 것[化] 같다고 알았다. 마음에 걸림 없고[無礙] 두려움 없음[無所畏]을 얻었으며,
중생28)들의 마음 가는 곳을 모두 알아 미묘한 지혜로써 그들을 제도하여 해탈시켰으니, 뜻에 걸림이 없고 대인(大忍)을 성취하여29) 여실하고도 교묘히 제도했다.
그리고 한량없는 불국토30)를 받아들이기를 서원했으며, 한량없는 불국토의 부처님들의 삼매를 생각하니, 항상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능히 한량없는 부처님들께 청하고, 능히 갖가지 견해와 얽매임[纏]31) 및 모든 번뇌를 끊었으며, 백천 가지 삼매에서 유희하며 삼매를 냈다.
보살들은 이와 같이 갖가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했으니, 그들의 이름은 발타바라(颰陀婆羅)32)보살ㆍ계나가라(罽那伽羅)33)보살ㆍ도사(導師)34)보살ㆍ나라달(那羅達)35)보살ㆍ성득(星得)36)보살ㆍ수천(水天)37)보살ㆍ주천(主天)38)보살ㆍ대의(大意)39)보살ㆍ익의(益意)40)보살ㆍ증의(增意)41)보살ㆍ불허견(不虛見)42)보살ㆍ선진(善進)43)보살ㆍ세승(勢勝)44)보살ㆍ상근(常懃)45)보살ㆍ불사정진(不捨精進)46)보살ㆍ일장(日藏)47)보살ㆍ불결의(不缺意)48)보살ㆍ관세음(觀世音)49)보살ㆍ문수사리(文殊師利)50)보살ㆍ집보인(執寶印)51)보살ㆍ상거수(常擧手)52)보살ㆍ미륵(彌勒)53)보살이었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백천만억 나유타의 보살마하살들이 있었으니, 모두가 보처(補處)54)이자 거룩한 지위[尊位]를 이어받은 이들이었다.
여기에서 세존55)께서는 스스로 사자좌56)를 펴셨다. 그리고는 가부좌를 틀어 몸을 곧추시고는 염(念)을 모아 눈앞에 두고 삼매왕삼매(三昧王三昧)57)에 드시니, 모든 삼매가 모두 그 안에 들어갔다.
이때 세존께서는 삼매로부터 편안히 일어나시어 천안58)으로 세계를 관찰하시고 온몸으로 미소 지으셨다.59) 발바닥의 천폭상륜(千輻相輪)60)에서 6백만억의 광명을 놓으셨으며, 열 발가락ㆍ두 복사뼈ㆍ두 발꿈치ㆍ두 무릎ㆍ두 허벅지ㆍ허리ㆍ척추ㆍ배ㆍ등ㆍ배꼽ㆍ가슴ㆍ가슴의 덕자(德字)ㆍ어깨ㆍ팔ㆍ열 손가락ㆍ목ㆍ입ㆍ40개의 치아ㆍ
두 콧구멍ㆍ두 눈ㆍ두 귀ㆍ백호상ㆍ육계에서 각각 6백만억의 광명을 놓으셨다.
이 모든 광명으로부터 대광명을 놓아 삼천대천국토(三千大天國土)61)를 두루 비추시고, 삼천대천국토로부터 다시 동방으로 항하의 모래수62)같이 많은 불국토를 두루 비추셨다. 남ㆍ서ㆍ북 방과 네 간방과 위ㆍ아래도 그러하였는데, 어떤 중생63)이라도 이 광명을 만나는 자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64)를 얻었다. 다시 광명은 동쪽으로 뻗어서 항하사와 같은 불국토를 지났으며, 남ㆍ서ㆍ북 방과 네 간방과 위ㆍ아래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았다.65)
여기에서 세존께서는 다시 온몸의 털구멍으로 모두 미소를 지으시고,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국토를 두루 비추셨다. 그 빛은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까지 이르렀으니, 이 광명을 만난 중생은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여기에서 세존께서는 상광명(常光明)으로써 삼천대천국토를 두루 비추시니, 또한 동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모든 부처님 국토에까지 이르렀다. 나아가 시방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았으니, 어떤 중생이든지 이 광명을 만나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여기에서 세존께서는 광장설상(廣長舌相)66)을 내시어 삼천대천국토를 두루 덮으시고는 빙그레 미소 지으셨으며, 그 혀뿌리로부터 한량없는 천만억의 광명을 내셨다. 이 낱낱의 광명은 천 잎의 금빛 보배꽃으로 변하고, 그 꽃 위에는 모두 화현한 부처님이 가부좌를 맺고 앉아 6바라밀을 말씀하시니, 중생으로서 듣는 자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다시 시방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불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와 같았다.
여기에서
세존께서 짐짓 사자좌에 계시면서 사자유희삼매(獅子遊戱三昧)67)에 드시어 신통력으로 삼천대천국토를 감동시키시니, 여섯 가지로 진동68)하였다.
곧 동쪽에서 솟아 서쪽으로 잠기고, 서쪽에서 솟아 동쪽으로 잠기고, 남쪽에서 솟아 북쪽으로 잠기고, 북쪽에서 솟아 남쪽으로 잠기고, 가에서 솟아 중간으로 잠기고, 중간에서 솟아 가로 잠겼다. 그리고 다시 땅이 모두 부드러워지니, 중생들로 하여금 화평하고 기쁘게 했다.
이 삼천대천국토 가운데의 지옥ㆍ아귀ㆍ축생과 그리고 여덟 가지 어려운 곳[八難處]69)이 즉시에 해탈을 얻어 천상에 태어났으니, 사천왕천처(天王天處)70)에서 타화자재천에 이르기까지였다.
이 천인(天人)들은 스스로가 숙명을 깨달아 모두가 크게 기뻐하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는 머리 숙여 부처님 발에 절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이와 같이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국토의 땅이 모두 여섯 가지로 진동하니, 일체의 지옥ㆍ아귀ㆍ축생 및 여덟 가지 어려운 곳에 이르기까지 즉시에 해탈하여 천상에 태어남을 얻어 여섯째 하늘71)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이 삼천대천국토의 중생으로서 눈이 먼 이는 보게 되고, 귀먹은 이는 듣게 되고, 벙어리는 말하게 되고, 미친 이는 정신이 돌아오고, 마음이 산란한 이는 안정되고, 벗은 이는 옷을 얻고,72) 주리고 목마른 이는 배부름을 얻고, 병든 이는 치유되고, 모습이 흉하게 무너진 이는 형체가 갖추어졌다.
일체의 중생이 모두가 평등심[等心]을 얻어 서로 대하니, 마치 부모ㆍ형제ㆍ자매와 같았으며 또한 친척 같았고 선지식(善知識) 같았다.
이때 중생들은 10선업도(善業道)73)를 행하고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아 티가 없이 담연하고도 즐거워했다. 마치 비구가 제3선(禪)에 든 것과 같았으니, 좋은 지혜를 얻고, 계행을 잘 지니고, 스스로를 지켜 중생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여기에서 세존께서는 사자좌에 앉으시니, 삼천대천국토 안에서 그 위덕이 유달리 거룩하셨다.
광명과 모습과 위덕이 높고 높으시어[巍巍]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불국토에 두루 미치니, 마치 수미산왕74)은 광명과 색깔이 뛰어나서 뭇 산들이 미칠 수 없는 것과도 같았다.
여기에서 세존께서는 상신(常身)75)으로써 이 삼천대천국토의 온갖 중생들에게 보이시니, 이때에 수타회천(首陀會天)76)과 범중천(梵衆天)77)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78)과 화락천(化樂天)79)과 도솔타천(兜率陀天)80)과 야마천(夜摩天)81)과 삼십삼천(三十三天)82)과 사천왕천(四天王天)83) 및 삼천대천국토의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人非人]들이 하늘의 꽃ㆍ하늘의 영락ㆍ하늘의 택향(澤香)84)ㆍ하늘의 가루향과 하늘의 청련화ㆍ적련화ㆍ백련화ㆍ홍련화와 하늘의 나뭇잎 향을 가지고 부처님께 다가갔다.
이 모든 하늘 꽃 내지는 하늘의 나뭇잎과 향기로써 부처님 위에 뿌리니, 뿌려진 보배꽃이 이 삼천대천국토 위의 허공 가운데에서 커다란 누대[臺]가 되었다.
이 꽃 누대 주변에는 영락과 갖가지 빛깔의 꽃일산이 드리워지고 오색빛깔로 어지러웠으니, 이런 꽃 일산과 영락이 삼천대천국토를 두루했다.
이런 꽃일산과 영락으로 장엄스럽게 꾸민 까닭에 이 삼천대천국토는 모두 금빛을 이루고, 나아가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모든 부처님의 세계도 모두 이와 같았다.
여기에서 삼천대천국토와 시방의 중생들은 제각기 생각하기를 ‘부처님은 나만을 위하여 설법하실 뿐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여겼다.
그때 세존께서 사자좌에 계시며 빙그레 웃으시니, 광명이 입으로부터 나와85) 삼천대천국토를 두루 비추었다. 이 광명으로 인해서 이 편의 삼천대천국토의 중생들은 모두 동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불승(佛僧)을 뵈었고, 다시 저 편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국토의 중생들도 역시 이 편의
삼천대천국토 안의 석가모니부처님과 대중들을 뵈었다. 남ㆍ서ㆍ북 방과 네 간방과 위ㆍ아래 역시 그와 같았다.
이때에 동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국토를 지나 그 국토의 가장 끝에 국토가 있으니, 다보(多寶)86)라고 한다. 부처님의 명호를 보적(寶積)87)이라 하는데, 지금도 현존하시면서 보살마하살들을 위해 반야바라밀을 88)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그 국토에는 보살이 있었으니, 보명(普明)이라 했다. 그는 이 큰 광명을 보고 땅이 크게 진동함을 보며, 또한 부처님의 몸을 뵈옵고는 곧 보적불(寶積佛)께 가서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온 세상을 비추고 땅덩이가 크게 진동하며, 또한 불신(佛身)89)을 보게 되는지요?”
보적불께서 보명에게 알려주셨다.
“선남자90)야, 서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국토를 지나가면 사바(沙婆)91)라는 세계가 있느니라. 거기에 부처님이 계시니, 이름이 석가모니이시다. 지금 현재 보살마하살들을 위해 반야바라밀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이것은 그 분의 위신력[神力]이니라.”
이때 보명보살이 보적불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가서 석가모니부처님을 뵙고 예배 공양하며, 나아가 저들 보살마하살로서 거룩한 지위를 이어받은 이를 뵙고 다라니와 모든 삼매를 얻어 삼매 가운데에서 자재함을 얻으신 분들을 친견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가려거든 네 뜻대로 하되, 적절히 때를 알거라.”
그리고 보적불께서는 천개의 잎이 달린 금색 연꽃을 보명보살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는 이 꽃을 석가모니부처님의 머리 위에 뿌려 드려라. 그 사바세계에 태어난 보살들은 이기기 어렵고 미치기 어려우니, 그대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 세계를 다녀오너라.”
그러자 보명보살은 보적불에게서 천 잎새의 금빛 연꽃을 받아들고는 무수한 출가ㆍ
재가의 보살 및 동남ㆍ동녀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들은 모두 지나는 길에 동방의 부처님들께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온갖 꽃ㆍ향ㆍ영락ㆍ가루향ㆍ물향ㆍ태우는 향ㆍ바르는 향ㆍ의복ㆍ당기ㆍ일산[蓋]을 가지고 석가모니부처님께로 향했다.
도착해서는 머리와 얼굴을 부처님의 발에 대어 예를 올리고는 한쪽에 선 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보적 여래께서 세존께 문안하시기를 ‘세존께서는 번뇌 적으시고 병환 적으시며, 기거에 경쾌하시고 기력 있으시며 안락하신가’ 하십니다. 또한 이 천(千) 잎새의 금빛 연꽃으로 세존께 공양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이 천 잎새의 금빛 연꽃을 받으시자 동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의 부처님께 흩뜨리셨다. 그러자 흩뿌려진 연꽃이 동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불국토에 가득했으며, 낱낱 꽃 위에 모두 보살이 가부좌를 맺고 앉아서 6바라밀을 설하니, 이 법을 듣는 이는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모든 출가ㆍ재가의 보살들과 동남ㆍ동녀들은 머리와 얼굴을 석가모니부처님의 발에 대어 절하고, 제각기 공양구로써 석가모니부처님께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했다. 이 출가ㆍ재가의 보살들 및 동남ㆍ동녀들은 제각기 선근92)과 복덕의 힘 때문에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93)ㆍ아라하(阿羅呵)94)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95)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 공양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남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모든 부처님 국토를 지나서 그 국토의 가장 끝에 있는 나라를 ‘일체의 근심을 여읜 곳[離一切憂]’이라 부른다. 부처님의 명호를 무우덕(無憂德)96)이라 하고, 보살의 이름을 이우(離憂)97)라 한다.
서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모든 부처님 국토를 지나서 그 국토의 가장 끝에 있는 나라를 ‘악을 멸한 곳[滅惡]’이라 부른다. 부처님의 명호를 보산(寶山)98)이라 하고, 보살의 이름을 의의(儀意)99)라 한다.

북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모든 부처님 국토를 지나서 그 국토의 가장 끝에 있는 나라를 ‘뛰어난 곳[勝]’이라 부른다. 부처님의 명호를 승왕(勝王)100)이라 하고, 보살의 이름을 득승(得勝)101)이라 한다.
아랫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모든 부처님 국토를 지나서 그 국토의 가장 끝에 있는 나라를 선(善)이라 부른다. 부처님의 명호는 선덕(善德)이라 하고, 보살의 이름을 화상(華上)102)이라 한다.
윗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모든 부처님 국토를 건너서 그 국토의 가장 끝에 있는 나라를 희(喜)103)라 부른다. 부처님의 명호를 희덕(喜德)104)이라 하고, 보살의 이름을 덕희(得喜)105)라 한다.
이와 같이 해서 일체가 모두 동쪽과 같았다.
그때에 이 삼천대천세계가 보배로 변하고 두루 온 땅을 덮었으며, 비단 번기가 걸리고 향 나무와 꽃 나무로 남김없이 장엄되었다. 비유하건대 화적(花積)세계와 보화(寶花)세계에서 묘덕(妙德)보살과 선주의(善住意)보살 및 그 밖의 큰 위신력 있는 보살들이 그곳에 머무신 것 같았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일체 세계 가운데 혹은 하늘 세계, 혹은 마의 세계, 혹은 범천의 세계, 혹은 사문ㆍ바라문, 혹은 하늘, 혹은 건달바ㆍ인간ㆍ아수라106)들 및 보살마하살들로서 거룩한 지위를 계승한 자들이 모두 모였음을 아셨다.
부처님께서는 대중이 이미 모인 것을 아시고는 사리불107)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일체종(一切種)108)으로써 온갖 법을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마하살이 일체종으로써 온갖 법을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만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써109)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르고, 버릴 바 없는 법으로써110) 단나바라밀을 구족하나니111), 베푸는 이와 받는 이와 베푸는 물건을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또한 죄와 죄 아님을 얻을 수 없는 까닭에
시라바라밀을 구족하며, 마음이 요동치 않음에 의해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을 구족하느니라.
몸과 마음으로 정진하여 게으르거나 쉬지 않는 까닭에 비리야바라밀을 구족하고, 어지럽지 않고 맛들이지 않는 까닭에 선(禪)바라밀을 구족하며, 그리고 일체법에 집착되지 않는 까닭에 반야바라밀을 구족하느니라.
이처럼 보살마하살은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써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르되 머문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까닭에 4념처(念處)112)와 4정근(正勤)과 4여의족(如意足)과 5근(根)과 5력(力)과 7각분(覺分)과 8성도분(聖道分)과 공(空)삼매ㆍ무상(無相)삼매ㆍ무작(無作)삼매와 4선(禪)과 4무량심(無量心)과 4무색정(無色定)과 8배사(背捨)113)와 8승처(勝處)114)와 9차제정(次第定)115)과 10일체처(一切處)116)를 구족하며, 9상(相) 곧 창상(脹相)ㆍ괴상(壞相)ㆍ혈도상(血途相)ㆍ농란상(膿爛相)ㆍ청상(靑相)ㆍ담상(噉相)ㆍ산상(散相)ㆍ골상(骨相)ㆍ소상(燒相)과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사(念捨)ㆍ염천(念天)ㆍ염입출식(念入出息)ㆍ염사(念死)를 구족해야 하느니라.
10상(想), 곧 무상상(無常想)ㆍ고상(苦想)ㆍ무아상(無我想)ㆍ식부정상(食不淨想)ㆍ일체세간불가락상(一切世間不可樂想)ㆍ사상(死想)ㆍ부정상(不淨想)ㆍ단상(斷想)ㆍ이욕상(離欲想)ㆍ진상(盡想)을 구족해야 하느니라.
11지(智), 곧 법지(法智)ㆍ비지(比智)ㆍ타심지(他心智)ㆍ세지(世智)ㆍ고지(苦智)ㆍ집지(集智)ㆍ멸지(滅智)ㆍ도지(道智)ㆍ진지(盡智)ㆍ무생지(無生智)ㆍ여실지(如實智)를 구족해야만 하느니라.
3삼매, 곧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117)ㆍ무각유관삼매(無覺有觀三昧)ㆍ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를 구족해야만 하느니라.
3근(根), 곧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ㆍ지근(知根)ㆍ지이근(知已根)을 구족해야만 하느니라.
나아가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10력(力)118)ㆍ4무소외(無所畏)119)ㆍ4무애지(無礙智)ㆍ18불공법(不共法)120)과 대자대비를 두루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하느니라.
다시 보살마하살이
도혜(道慧)를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하며, 보살마하살이 도혜로써 도종혜(道種慧)121)를 구족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하느니라. 도종혜로써 일체지(一切智)122)를 구족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하며, 일체지로써 일체종지(一切種智)123)를 구족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하느니라. 일체종지로써 번뇌의 습(習)124)을 끊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만 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지위에 오르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성문과 벽지불125)의 경지를 지나서 아유월치(阿惟越致)126)의 지위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그리고 보살마하살이 6신통(神通)127)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온갖 중생들의 뜻이 가는 데를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또한 보살마하살이 온갖 성문128)과 벽지불의 지혜보다 뛰어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모든 다라니문(陀羅尼門)129)과 모든 삼매문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이 보시(布施)할 때, 더불어 기뻐하는[隨喜] 마음으로써 그보다 더 뛰어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이 계율을 지닐(持戒) 때,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그보다 더 뛰어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의 삼매(三昧)와 지혜(智慧)와 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脫知見)130)에 대하여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그보다 더 뛰어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의 모든
선정(禪定)과 해탈(解脫)과 삼매(三昧)에 대하여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隨喜心]131)으로써 그보다 더 뛰어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조그마한 보시[少施]와 조그마한 계율[少戒]과 조그마한 인욕[少忍]과 조그마한 정진[少進]과 조그마한 선정[少禪]과 조그마한 지혜[少智]를 행하면서도 방편132)의 힘으로써 회향하여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단나바라밀133)ㆍ시라바라밀134)ㆍ찬제바라밀135)ㆍ비리야바라밀136)ㆍ선나바라밀137)을 행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세상마다 몸이 부처님과 같고자 하거나 32상(相)138)과 80수형호(隨形好)139)를 구족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보살의 집에 태어나려 하고 동진(童眞)의 지위140)를 얻고자 하며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모든 선근 공양으로써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뜻대로 성취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온갖 중생141)들이 원하는 음식ㆍ의복ㆍ침구ㆍ바르는 향ㆍ탈것ㆍ방사ㆍ평상 및 등촉 등을 채워주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국토의 중생을 단나바라밀 가운데 세우고자 하고, 시라ㆍ찬체ㆍ비리야ㆍ선나바라밀 가운데 세우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그리고 어느 한 선근을 부처님의 복전(福田)142)에 심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기까지 다하지 않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의 이름을 칭찬해 주시기를 원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한 번 뜻을 일으켜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국토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다시 사리불아, 한 음성을 내어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 국토로 하여금 그 음성을 듣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국토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내공(內空)ㆍ외공(外空)ㆍ내외공ㆍ공공(空空)ㆍ대공(大空)ㆍ제일의공(第一義空)143)ㆍ유위공(有爲空)ㆍ무위공(無爲空)ㆍ필경공(畢竟空)ㆍ무시공(無始空)ㆍ산공(散空)ㆍ성공(性空)ㆍ자상공(自相蚣)ㆍ제법공(諸法空)ㆍ불가득공(不可得空)144)ㆍ무법공(無法空)ㆍ유법공(有法空) 및 무법유법공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의 인연(因緣)145)ㆍ차제연(次第緣)146)ㆍ연연(緣緣)ㆍ증상연(增上緣)147)을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온갖 법들의 여(如)ㆍ법성148)ㆍ실제(實際)149)를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삼천대천국토 안의 대지와 모든 산과 작은 티끌을 헤아려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하나의 털을 쪼개어 백 개로 나누고 그 쪼개진 하나의 털로써 삼천대천국토 안의 큰 바다와 강과 못과 샘의 물을 모조리 들어 올리면서도 그 물의 성품이 흔들리지 않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삼천대천세계
안의 모든 불이 모두 한꺼번에 일어나서 마치 겁(劫)150)이 다하듯 타오를 때 보살마하살이 한 번 입으로 불어서 꺼지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삼천대천세계 안의 모든 큰 바람이 일어나서 삼천대천세계와 모든 수미산을 마치 썩은 풀을 꺾듯이 불어 무너뜨리고자 할 때 보살마하살이 한 손가락으로 그 바람의 힘을 막아 일어나지 않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한 번 결가부좌하여 삼천대천국토 안의 허공에 두루 차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보살마하살이 한 개의 털로써 삼천대천국토 안의 모든 수미산[須彌山王]을 들어서 다른 방향의 한량없고 셀 수 없는 모든 부처님 국토에 던지면서도 중생들이 흔들리지 않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한 그릇 밥으로 시방으로 각각 항하의 모래수같이 모든 부처님과 승가[僧]에게 공양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한 벌의 옷과 꽃ㆍ향ㆍ영락ㆍ가루 향ㆍ바르는 향ㆍ사르는 향ㆍ등촉ㆍ당기ㆍ번기 및 꽃 일산 등으로 모든 부처님과 승가에게 공양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시방으로 각각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국토 안의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가 계율ㆍ삼매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을 갖추게 하고, 수다원의 과위[須陀洹果]151)ㆍ사다함의 과위[斯陀含果]152)ㆍ아나함의 과위[阿那含果]153)ㆍ아라한의 과위[阿羅漢果] 내지 무여열반(無餘涅槃)154)을 얻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보시할 때에는 “이와 같이 보시는 큰 과보를 얻는다. 이와 같이 보시에 의해 찰리(刹利)의
큰 성바지와 바라문(婆羅門)의 큰 성바지와 거사(居士)의 큰 집안에 태어나게 된다. 이와 같이 보시에 의해 사천왕천(四天王天)155)ㆍ삼십삼천(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156)ㆍ도솔타천(兜率陀天)157)ㆍ화락천(化樂天)158)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159)에 나게 된다. 이 보시로 인하여 초선(初禪)ㆍ2선(禪)ㆍ3선(禪)ㆍ4선(禪)ㆍ무변공처(無邊空處)160)ㆍ무변식처(無邊識處)161)ㆍ무소유처(無所有處)162)ㆍ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163)에 들게 되고, 이 보시로 인하여 능히 8성도분(聖道分)을 내며, 이 같은 보시로 인하여 능히 수다원의 도에서 부처님의 도에 이르기까지를 얻는다. 그러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한다”고 이처럼 분별해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보시를 할 때 지혜의 방편의 힘 때문에 능히 단나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보시할 때 어떻게 해야 지혜의 방편의 힘 때문에 단나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를 구족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베푸는 이[施人]와 받는 이[受人]와 재물(財物)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능히 단나바라밀을 구족하느니라. 죄가 됨과 죄가 되지 않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시라바라밀을 구족하게 되고, 마음이 동요하지 않기 때문에 찬제바라밀을 구족하게 되며, 몸과 마음이 정진하면서 게으르거나 쉬지 않기 때문에 비리야바라밀을 구족하게 되고, 어지럽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기 때문에 선나바라밀을 구족하게 되며, 온갖 법은 얻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유위ㆍ무위의 법의 저 언덕[彼岸]164)에 이르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보살마하살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법의 여(如)165)와 법상(法相)과 무생제(無生際)을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 앞에 있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을 곁에서 모시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안의 권속[內眷屬]이 되고자 하거나, 큰 권속을 얻고자 하거나, 보살의 권속을 얻고자 하거나, 청정한 과보를 받는 큰 보시를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간탐하는 마음ㆍ파계(破戒)하는 마음ㆍ성내는 마음ㆍ게으른 마음ㆍ산란한 마음ㆍ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의 복처와 지계의 복처와 수정(修定)의 복저와 권도(勸道)의 복처에 서게 하려 하거나, 중생으로 하여금 재물의 복과 법의 복의 처소에 서게 하려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다섯 가지 눈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무엇이 다섯 가지 눈인가? 곧 육안(肉眼)과 천안(天眼)과 혜안(慧眼)과 법안(法眼)과 불안(佛眼)166)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천안으로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국토에 안의 모든 부처님을 뵙고자 하거나, 천이(天耳)167)로써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듣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을 듣고 들은 뒤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잊지 않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과거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보고, 나아가 현재 시방의 부처님의 국토를 보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12부경(部經)168)인 수다라(修多羅)169)ㆍ기야(祇夜)170)ㆍ수기경(受記經)171)ㆍ가타(伽陀)172)ㆍ우타나(憂陀那)173)ㆍ인연경174)ㆍ아파타나(阿波陀那)175)ㆍ여시어경(如是語經)176)ㆍ본생경(本生經)177)ㆍ방광경(方廣經)178)ㆍ미증유경(未曾有經)179)ㆍ논의경(論議經)180)을 듣고, 또한 모든 성문들이 들었거나 듣지 못한 것을 모두 다 외우고 받아 지니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 안의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에 대하여 이미 말씀하셨고 지금 말씀하시며 장차 말씀하실 법을 들은 뒤에 일체를 믿고 지니면서 스스로가 행하고 또한 남을 위해 설해주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여 마쳤거나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 장차 말씀하실 것을 듣고 들은 뒤에는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세계 중간의 어두운 곳과 해와 달이 비추지 않는 곳을 광명을 가지고 두루 비추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그리고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 안에 부처님이라는 이름과 법이라는 이름과 승가(僧伽)라는 이름이 없을 때에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가 바른 견해[正見]을 얻고 3보(寶)라는 음성을 듣게 하려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또한 보살마하살이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안의 중생으로 하여금 나의 힘으로 눈먼 이는 볼 수 있고 귀먹은 이는 들을 수 있으며, 미친 자는 정신을 찾고 벌거벗은 이는 옷을 얻으며, 베고프고 목마른 이는 충분히 먹고 마시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만일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 안의 중생으로서 3악취(惡趣)에 있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나의 힘으로 모두가 사람의 몸을 얻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 안의 중생으로 하여금 나의 힘으로 계율[戒]ㆍ삼매(三昧)ㆍ지혜(智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에 서게 하고 수다원(須陀洹)의 과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를 얻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의 위의(威儀)181)를 배우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보살마하살이 마치 코끼리[象王]가 바라보듯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그리고 보살이 이러한 서원을 세우되 “나로 하여금 나아갈 때에는 땅에서 네 손가락만큼 떨어지면서 발로 땅을 밟지 않게 되고, 나는 장차 사천왕천(四天王天)에서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에 이르기까지의 한량없는 천만억의 모든 하늘들에 둘러싸여 공경 받으면서 보리수(菩提樹)182) 아래에 이르겠노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그리고 “내가 장차 보리수 아래 앉을 때 사천왕천에서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의 하늘옷으로 자리가 되게 하리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때 가고 서고 앉고 눕는 곳이 모두 금강(金剛)이 되게 하리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출가한 바로 그날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 바로 그날에 법륜(法輪)을 굴리며, 법륜을 굴릴 때에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는 중생이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 가운데서 법안(法眼)이 청정하게 되며,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는 중생이 온갖 법을 받지 않기 때문에 모든 번뇌 있는 마음이
해탈을 얻으며,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는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불퇴전(不退轉)을 얻게 하려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그리고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는 성문(聲聞)으로 승가[僧]를 삼겠으며, 내가 한 번 설법할 때에는 자리에 있는 이를 모두 아라한이 되게 하리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또한 ‘나는 한량없는 아승기 보살마하살로써 승가를 삼겠으며, 내가 한 번 설법할 때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는 보살이 모두 아유월치를 얻으며, 수명(壽命)은 한량없고 광명을 구족하게 하리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때 그 세계 안에는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고 또한 3독(毒)이라는 이름이 없으며, 온갖 중생들이 그 같은 지혜가 있어 선한 보시ㆍ선한 지계ㆍ선한 선정ㆍ선한 범행과 중생을 어지럽히지 않는 선한 법을 성취하게 하리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하느니라.
“내가 완전히 열반183)에 든 뒤에 법으로 하여금 소멸하여 다함[滅盡]이 없게 하고 또한 소멸하여 다한다는 말조차 없게 하리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 안에 있는 중생으로서 나의 이름을 듣는 이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리라”고 하는 등의 이와 같은 공덕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2. 봉발품(奉鉢品)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능히 이런 공덕을 짓는다면, 이때에 사천왕(四天王)이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생각하기를 ‘우리들이 네 개의 발우를 보살에게 바쳐 올림은
마치 먼저의 천왕들이 먼저의 부처님께 발우를 바치듯 해야만 한다’고 하느니라. 삼십삼천에서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모두 환희하며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보살을 받들어 모시고 공양하여 아수라의 종족을 줄이고 모든 하늘은 더욱 불어나게 하리라’고 하며, 삼천대천국토의 사천왕천에서 아가니타천(牙迦尼吒天)에 이르기까지도 모두가 크게 환희하며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장차 이 보살에게 법륜을 굴리도록 청하리라’고 하느니라.
사리불아, 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6바라밀을 더욱 늘려갈 때에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은 저마다 환희하며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이 사람을 위해 부모ㆍ처자ㆍ친족이 되고 벗이 되어 주어야만 한다’고 하느니라.
이때 사천왕에서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모두 크게 환희하며 저마다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방편을 지어서 이 보살로 하여금 음욕을 여의게 하여 처음 발심할 때부터 항상 동진(童眞)184)이 되게 하고, 색욕과는 함께하지 못하게 하리라. 설령 5욕을 받아도 범천에 나는 데에 장애가 되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랴’고 하느니라. 이 때문에 사리불아, 보살마하살로서 음욕을 끊고 출가한 이는 응당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테지만 끊지 못한 자는 그렇지 않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반드시 부모ㆍ처자와 친족이며 벗이 있어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보살은 부모ㆍ처자ㆍ친족과 아는 이가 있기도 하고, 어떤 보살은 처음 발심해서부터 음욕을 끊고 동진의 행을 닦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에 이르기까지 색욕을 범하지 않기도 하며, 어떤 보살은 방편의 힘 때문에 5욕을 받은 뒤에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도 하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사나 환술사의 제자가 환술의 법을 잘 알므로 환술로써 5욕을 만들어서는 그 가운데에서 서로 즐기는 것과 같으니라.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은 이 5욕을 실제로 받고 있는 것이더냐?”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방편의 힘으로써 변화로 5욕을 만들어 그 가운데서 즐거움을 받느니라. 중생을 성취하는 일도 역시 그와 같나니, 이 보살마하살은 욕망에 물들지 않은 채 갖가지 인연으로 5욕을 꾸짖으니, 곧 욕망은 활활 타는 불이고, 욕망은 더럽고 추하며, 욕망은 헐어 부서지며, 욕망은 마치 원수와 같다고 여기느니라. 이 때문에 사리불아, 보살은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5욕락을 받는 줄 알야야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해야만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을 보지 못하고, 보살의 이름을 보지 못하며, 반야바라밀을 보지 못하느니라. 내가 반야바라밀을 행함을 보지 못하고 또한 내가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음도 보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보살과 보살이란 이름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공한 가운데서는 물질[色]이 없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의식[識]도 없으며, 물질을 여의고도 공함이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여의고도 또한 공함이 없나니, 물질이 바로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바로 빈 것이요 빈 것이 바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니라.
왜냐하면 사리불아, 다만 이름이 있기 때문에 보리라 할 뿐이요 다만 이름이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 할 뿐이며, 다만 이름이 있기 때문에 공이라 할 뿐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實性]은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행하면서도 역시 생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멸하는 것도 보지 못하며, 더러운 것도 보지 못하고 깨끗한 것도 보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이름이란 곧 인연(因緣)이 화합하여 지어진 법이요 다만 분별하고 기억하고 생각하는 일에 임시로 이름 붙여 말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온갖 이름을 보지 못하며 보지 못한 까닭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3. 습응품(習應品)거란본에는 습상응품(習相應品)으로 되어 있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보살은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이고 부처도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 반야바라밀도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이고 물질도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역시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마치 나[我]가 다만 이름만이 있고 일체의 나는 항상 얻을 수 없듯이 중생(衆生)과 영혼[壽者]과 목숨[命者]과 나는 이[生者]와 기르는 이[養育]와 중수(衆數)와 사람[人]과 짓는 이[作者]와 짓게 하는 이[使作者]와 일어나는 이[起者]와 일어나게 하는 이[使起者]와 받는 이[受者]와 받게 하는 이[使受者]와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 등의 이 모두를 다 얻을 수 없으며 얻을 수 없고 공하기 때문에 다만 이름으로써 말할 뿐이니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러하여서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나를 보지 못하고 중생을 보지 못하며 나아가 아는 이와 보는 이에 이르기까지를 보지 못하나니, 말한 바의 이름 역시 볼 수 없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그 지혜가 일체의 성문이나 벽지불을 지나게 되니, 불가득공(不可得空)에 의하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이름과 법의 이름과 집착하는 곳도 역시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능히 이와 같이 행해 반야바라밀을 행하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염부제(閻浮提)에 가득 찬 대나무나 삼ㆍ벼ㆍ갈대의 수만큼의 비구들이 있고, 그 지혜가
모두 사리불이나 목건련과 같다 하여도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의 지혜에 비한다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ㆍ백천억분의 일 내지는 산수(算數)의 비유(譬喩)로써는 미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지혜에 의지해 온갖 중생을 제도하고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염부제 안에 가득 찬 사리불과 목건련 같은 이들은 그만두고,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사리불과 목건련 같은 이들도 다시 그만두고,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가득 찬 사리불과 목건련 같은 이들의 지혜로써도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의 지혜에 비한다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ㆍ백천분의 일 내지는 산수와 비유로써도 미칠 수 없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하루 동안 지혜를 닦아도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성문이 지닌 지혜는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 및 벽지불의 지혜와 부처님의 지혜 등 이 모든 뭇 지혜와는 차별이 없고 서로 어긋나지도 않으며, 나는 것이 없으면서[無生] 성품이 공[性空]합니다. 만일 법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무생이고 성품이 공하다면 이 법에는 차별이 없는데 어떻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하루 동안 닦은 지혜도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다’ 하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하루 동안 지혜를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도의 지혜를 행해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일체종지(一切種智)로써 온갖 법을 알고
온갖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고 하나니,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혜에서도 이러한 일이 있겠느냐?”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불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에게 ‘우리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온갖 중생을 제도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얻게 해야만 한다’고 하는 이런 생각이 행여 있겠느냐?”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알아야 하나니,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혜는 보살마하살의 지혜에 비한다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 또는 백천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 산수와 비유로써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에게 ‘우리는 6바라밀을 행하여 중생을 성취시키고 세계를 장엄하며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지(無礙智)와 18불공법(不共法)을 갖추어서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는 중생들을 제도하며 열반을 얻게 하겠노라’고 하는 이런 생각이 행여 있겠느냐?”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능히 생각하기를 ‘나는 6바라밀을 행하고 나아가 18불공법을 구족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해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는 중생을 제도하고 열반을 얻게 하리라’고 하느니라.
하지만 마치 개똥벌레는 ‘나의 힘으로 능히 염부제를 두루 비추어서 크게 밝히겠다’고 하는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하듯이 모든 아라한의 과위 벽지불도 역시 그와 같아서 ‘우리들은 6바라밀을 행하고 나아가 18불공법을 구족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는 중생을 제도하며 열반을 얻게 하리라’고 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아,
비유하건대 마치 해가 나왔을 때에는 광명이 염부제를 두루 비추어서 그 광명을 받지 않는 이가 없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6바라밀을 행하고 나아가 18불공법을 구족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지나 아유월치의 지위[阿惟越致地]에 머물러 부처님의 길을 청정하게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내면서부터 6바라밀을 행하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법에 머무르며 온갖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를 지나 아유월치의 지위에 머무르면서 부처님의 길을 청정히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마하살은 어떠한 자리에 머물러서 모든 성문과 벽지불을 위하여 복전을 짓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낼 때부터 6바라밀을 행하면서 도량(道場)에 앉기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언제나 모든 성문과 벽지불을 위하여 복전을 짓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세간에는 모든 착한 법이 생기느니라.
무엇이 착한 법인가? 이른바 10선도(善道)와 5계(戒)와 8분성취재(分成就齋)와 4선(禪)과 4무량심(無量心)과 4무색정(無色定)과 4념처(念處)와 4정근(正勤)과 4여의족(如意足)과 5근(根)과 5력(力)과 7각분(覺分)과 8성도분(聖道分)이 모두 세간에 나타나는 것이니라.
또 보살의 인연 때문에 6바라밀(波羅蜜)과 18공(空)과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지(無礙智)와 18불공법(不共法)과 대자대비(大慈大悲)와 일체종지(一切種智)가 모두 세간에 나타나고, 보살의 인연 때문에 찰리(刹利)의 큰 성바지와 바라문의
큰 성바지와 거사의 대가와 사천왕천 내지는 비유상비무상천(非有想非無想天)까지가 모두 세간에 나타나며, 보살의 인연 때문에 수다원(須陀洹)과 사다함(斯陀含)과 아나함(阿那含)과 아라한(阿羅漢)과 벽지불(辟支佛)이 모두 세간에 나타나는 것이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마하살은 청정해지고 난 후에 복을 베푸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왜냐하면 본래부터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큰 시주(施主)가 되어서 무엇을 베푸느냐 하면, 모든 착한 법을 베푸느니라. 착한 법이란 곧 10선도와 5계 내지는 18불공법과 일체종지이니, 이러한 것으로써 베풀어 주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응(應)하면 반야바라밀과 상응(相應)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물질[色]이 공함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의식[識]이 공함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눈[眼]이 공함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며,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마음[心]이 공함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빛깔[色]이 공함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며,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이 공함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안계(眼界)의 공함ㆍ색계(色界)의 공함ㆍ안식계(眼識界)의 공함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며, 이계(耳界)ㆍ성계(聲界)ㆍ이식계(耳識界)와 비계(鼻界)ㆍ향계(香界)ㆍ비식계(鼻識界)와 설계(舌界)ㆍ미계(味界)ㆍ설식계(舌識界)와 신계(身界)ㆍ촉계(觸界)ㆍ신식계(身識界)와 의계(意界)ㆍ법계(法界)ㆍ의식계(意識界)의 공함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괴로움[苦]이 공함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며, 쌓임[集]ㆍ사라짐[滅]ㆍ도(道)의 공함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무명(無明)이 공함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며, 지어감[行]ㆍ의식[識]ㆍ이름과 모양[名色]ㆍ여섯 감관[六處]ㆍ닿임[觸]ㆍ느낌[受]ㆍ욕망[愛]ㆍ집착[取]ㆍ존재[有]ㆍ남[生]과 늙어 죽음[老死]이 공함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온갖 법이 공하여 혹은 유위(有爲)이고 혹은 무위(無爲)임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성공(性空)185)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7공(空), 이른바 성공(性空)ㆍ자상공(自相空)ㆍ제법공(諸法空)ㆍ불가득공(不可得空)ㆍ무법공(無法空)ㆍ유법공(有法空)ㆍ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을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7공(空)을 익히고 응할 때는 물질이 상응한다거나 상응하지 않는다 함을 보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상응한다거나 상응하지 않는다 함을 보지 않으며, 물질의 나는 모양과 멸하는 모양을 보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나는 모양이나 멸하는 모양을 보지 않으며, 물질의 더러운 모양이나 깨끗한 모양을 보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더러운 모양이나 청정한 모양을 보지 않느니라.”
물질[色]과 느낌[受]이 합한 것을 보지 않고 느낌과 생각(想)이 합함을 보지 않으며, 생각과 지어감[行]이 합한 것을 보지 않고 지어감과 의식[識]이 합한 것도 보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법과 법이 합하는 일이 없고 그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물질이 공한 가운데는 물질이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공한 가운데에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과 의식이 없느니라.
사리불아, 물질이 공하기 때문에 괴롭히고 무너지는 모양[惱壞相]이 없고, 느낌이 공하기 때문에 느끼는 모양[受相]이 없으며, 생각이 공하기 때문에 아는 모양[知相]이 없고, 지어감이 공하기 때문에 짓는
모양[作相]이 없으며, 의식이 공하기 때문에 깨닫는 모양[覺相]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사리불아,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기 때문이며,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사리불아, 이 모든 법은 공한 모양이어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이 공한 법은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없으며,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없고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나아가 의식의 경계에 이르기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에 이르기까지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으며, 괴로움ㆍ괴로움의 원인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또한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수다원도 없고 수다원의 과위도 없으며, 사다함도 없고 사다함의 과위도 없으며, 아나함도 없고 아나함의 과위도 없으며, 아라한도 없고 아라한의 과위도 없으며, 벽지불도 없고 벽지불의 도(道)도 없으며, 부처님도 없고 부처님의 길도 없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사리불아,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거나 상응하지 않음을 보지 않으며, 단나(檀那)바라밀ㆍ시(尸)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과 상응한다거나 상응하지 않는다 함을 보지 않느니라.
또한 물질[色]과 상응한다거나 상응하지 않는다 함도 보지 않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의식[識]과 상응한다거나 상응하지 않는다 함도 보지 않으며, 눈[眼]으로부터 뜻[意]에 이르기까지와 빛깔[色]로부터 법(法)에 이르기까지와 눈ㆍ빛깔ㆍ안식계(眼識界)로부터 뜻ㆍ법ㆍ의식계(意識界)에 이르기까지 상응한다거나 상응하지 않는다 함도 보지 않으며,
4념처(念處)로부터 8성도분(聖道分)에 이르기까지와 부처님의 10력(力)에서 일체종지(一切種智)에 이르기까지 상응한다거나 상응하지 않는다 함을 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과 상응함을 알아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공과 공이 합하지 않고, 무상(無相)과 무상이 합하지 않으며, 무작(無作)과 무작이 합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공ㆍ무상ㆍ무작에는 합함과 합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법의 자상공(自相空)에 들어가느니라. 들어간 뒤에는 물질과 합하려 하지 않고 합하지 않으려 하지도 않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과 합하려 하지 않고 합하지 않으려 하지도 않느니라.
물질은 전제(前際)와 합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전제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후제(後際)와 합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후제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현재와 합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현재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전제는 후제와 합하지 않고 후제는 전제와 합하지 않으며, 현재는 전제ㆍ후제와도 합하지 않고 전제ㆍ후제도 역시 현재와 합하지 않나니, 3제(際)의 이름이 공한 까닭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살바야(薩婆若)는 과거의 세상과 합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과거의
세상조차 볼 수 없는데 하물며 살바야가 과거의 세상과 합하겠느냐. 살바야는 미래의 세상과 합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미래의 세상은 볼 수조차도 없는데 하물며 살바야가 미래의 세상과 합하겠느냐. 살바야는 현재의 세상과 합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현재의 세상은 볼 수조차도 없는데 하물며 살바야가 현재의 세상과 합하겠느냐.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물질[色]은 살바야와 합하지 않나니, 물질은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그와 같으니라. 눈은 살바야와 합하지 않나니, 눈은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그와 같으니라. 빛깔은 살바야와 합하지 않나니, 빛깔은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단나(檀那)바라밀은 살바야와 합하지 않느니라. 단나바라밀은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니,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 역시 그와 같으니라. 4념처(念處)는 살바야와 합하지 않으니, 4념처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8성도분(聖道分)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의 10력(力) 내지 18불공법(不共法)은 살바야와 합하지 않나니, 부처님의 10력 내지 18불공법은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부처님은 살바야와 합하지 않고 살바야는 부처님과 합하지 않으며, 보리는 살바야와 합하지 않고 살바야는 보리와 합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부처님이 곧 살바야이고 살바야가 곧 부처님이며, 보리가 살바야이고 살바야가 곧 보리이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물질[色]은 있는[有] 것이라고 익히지 않고 물질은 없는[無] 것이라고도 익히지 않나니,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의식[識]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물질은 항상한 것[有常]이라고 익히지 않고 물질은 무상(無常)한 것이라고도 익히지 않나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또한 그러하느니라.
물질은 괴로운[苦] 것이라고 익히지 않고 물질은 즐거운[樂] 것이라고도 익히지 않나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물질은 나[我]라고 익히지 않고 물질은 나가 아니라[非我]고도 익히지 않나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물질은 고요히 사라지는[寂滅] 것이라고 익히지 않고 물질은 고요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도 익히지 않나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물질은 공(空)한 것이라고 익히지 않고 물질은 공한 것이 아니라고도 익히지 않나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물질은 모양이 있는[有相] 것이라고 익히지 않고 물질은 모양이 없는 것이라고도 익히지 않나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물질은 조작이 있는[有作] 것이라고 익히지 않고 물질은 조작이 없는 것이라고도 익히지 않나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나는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거나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는다”거나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도 아니고 행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으며,
단나(檀那)바라밀ㆍ시라(尸羅)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선나(禪那)바라밀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느니라.
아유월치(阿惟越致)의 지위를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고, 중생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으며,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고 부처님의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4무애지(無碍智)ㆍ18불공법(不共法)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느니라.
내공(內空)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으며 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ㆍ공공(空空)ㆍ대공(大空)ㆍ제일의공(第一義空)ㆍ유위공(有爲空)ㆍ무위공(無爲空)ㆍ필경공(畢竟空)ㆍ무시공(無始空)ㆍ산공(散空)ㆍ성공(性空)ㆍ제법공(諸法空)ㆍ자상공(自相空)ㆍ불가득공(不可得空)ㆍ무법공(無法空)ㆍ유법공(有法空) 및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으며,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를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법의 모양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여의신통(如意神通)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고 천이(天耳)를 위하여 행하지 않으며, 타심지(他心智)를 위하여 행하지 않으며, 숙명지(宿命智)를 위하여 행하지 않으며, 천안(天眼)을 위하여 행하지 않으며, 누진신통(漏盡神通)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오히려 반야바라밀조차도 보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런데 하물며 보살의 신통을 보겠느냐.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나는 여의신통으로써 동방으로 날아가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공경하겠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나는 천이로써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을 듣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는 타심지로써 시방의 중생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아야겠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나는 숙명지로써 시방의 중생들이 전생에 지었던 일들을 알겠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나는 천안으로써 시방의 중생들이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는 것을 보겠다”고도 생각하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나니, 역시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제도하게 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악마도 그 틈을 얻을 수 없고 세간의 모든 일들이 바라는 대로 되느니라. 시방으로 각각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 이 보살을 옹호하면서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사천왕천(四天王天)에서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역시 이 보살을 옹호해 장애가 없게 하느니라. 이 보살에게 있는 중한 죄는 금생에 가벼이 받게 되나니,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두루한 사랑[慈]으로써 중생에게 가(加)하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신속히 모든 다라니(陀羅尼) 문과 모든 삼매(三昧)문을 얻고,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모든 부처님을 만나게 되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까지 처음부터 부처님 뵙는 일을 여의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법과 법이 합한다거나 합하지 않는다거나 동등하다거나 동등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이 법과 다른 법이 합한다거나 합하지 않는다거나 동등하다거나 동등하지 않음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나는 신속히 법성(法性)을 얻겠다”거나 “얻지 않겠다”고 생각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법성이란 얻는 모양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어떤 법이 있어 법성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지 못하나니,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법성은 모든 법을 분별한다”고 생각하지 않나니,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이 법으로 법성을 얻는다”거나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은
이 법으로써 법성을 얻거나 얻지 못함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법성이 공과 합하지 않고 공이 법성과 합하지 않나니, 이와 같이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눈의 경계[眼界]가 공과 합하지 않고 공이 눈의 경계와 합하지 않으며, 빛깔의 경계[色界]가 공과 합하지 않고 공이 빛깔의 경계와 합하지 않으며, 안식의 경계[眼識界]가 공과 합하지 않고 공이 안식의 경계와 합하지 않느니라.
나아가 뜻의 경계[意界]가 공과 합하지 않고 공이 뜻의 경계와 합하지 않으며, 법의 경계[法界]가 공과 합하지 않고 공이 법의 경계와 합하지 않으며, 의식의 경계[意識界]가 공과 합하지 않고 공이 의식의 경계와 합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사리불아, 이 공과 상응함을 일컬어 으뜸가는 상응[第一相應]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공으로써 행하는 보살마하살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고 능히 부처님 국토를 맑히며 중생을 성취시키면서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사리불아, 모든 상응한 가운데서 반야바라밀의 상응이 가장 으뜸이며 가장 높고 가장 수승하고 가장 묘하여 보다 위의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이 행하는 반야바라밀의 상응은 이른바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이 보살마하살은 수기(授記)를 받은 것과 다름이 없으며, 혹은 머지않아 수기를 받을 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상응하면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는 중생을 위하여 이익을 지음이 두터울 것이며 이 보살마하살은 또한
“나는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니, 모든 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셔야 한다”거나 “나는 머지않아 수기를 받을 것이다”거나 “나는 부처님 국토를 맑혀야 한다”거나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 법륜(法輪)을 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법성(法性)에서 벗어나는 어떠한 법도 보지 않고 또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어떠한 법도 보지 않으며, 또한 모든 부처님께서 수기를 주시는 어떠한 법도 보지 않고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는 어떠한 법도 보지 않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나라는 모양[我相]과 중생이란 모양[衆生相] 내지는 아는 이[知者]ㆍ보는 이[見者]라는 모양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중생은 마침내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중생은 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느니라. 만일 법에 나는 모양[生相]이나 멸하는 모양[滅相]도 없다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법이 있겠느냐.
그와 같아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보지 않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되며, 중생은 받지 않기 때문에, 중생은 공하기 때문에, 중생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중생은 여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의 모든 상응 가운데서 가장 으뜸가는 상응은 이른바 공과의 상응[空相應]이니, 이 공과의 상응이야말로 그 밖의 상응보다 수승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공을 익혀 능히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내며, 보살마하살은 이과 같이 상응을 익혀 인색한 마음을 내지 않고 계율을 범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고 게으른 마음을 내지 않으며, 산란한 마음을 내지 않고 지혜 없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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