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87권
대보적경 제87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22. 대신변회 ②
그때에 세존께서는 대중 가운데서 상주 천자(商主天子)를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너의 말과 같으니라. 천자야, 너는 문수사리가 말하는 신변(神變)을 듣고 그 밖의 신변까지도 분명히 알 수 있어서 다시는 놀라거나 두려워함이 없으리라.
왜냐하면 온갖 세간이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이를테면 항상 있는 생각[常想] 가운데 무상하다는 생각[無常想]을 말하고, 즐겁다는 생각[樂] 가운데 괴롭다는 생각[苦想]을 말하며, 나라는 생각[我想] 가운데 나는 없다는 생각[無我想]을 말하고, 깨끗하다는 생각[淨想] 가운데서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不淨想]을 말하며, 있다는 생각[有想] 가운데서 없다는 생각[無相]을 말하고, 모든 소견 가운데서 공하다는 생각[空想]을 말하며, 고요하다는 생각[寂靜想] 가운데서 모양이 없다는 생각[無相想]을 말하고, 삼계(三界) 가운데서 소원이 없다는 생각[無願想]을 말하며, 나와 내 것에서 집착이 없다는 생각[無着想]을 말하는 것이니, 만일 이런 가운데서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이것을 곧 바르게 조복한[正調伏] 데에 머물렀다고 하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만일 놀라고 두려워한다면 이 법을 받아 지닐 수 없으리니 말하자면 나와 내 것을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니라.
만일 집착함이 없으면 머무를 일도 없고, 머무를 일이 없으면 움직이는 일도 없으며, 움직이는 일이 없으면 오고 감도 없고, 오고 감이 없으면 받는 일도 없으며, 받는 일이 없으면 취할 일도 없고, 취할 일이 없으면 전도됨도 없고, 전도됨이 없으면 삿된 소견도 없으며, 삿된 소견이 없으면 바른 믿음이란 것도 없고, 바른 믿음이란 것이 없으면 바른 소견도 없느니라.
바른 소견이 없으면 바른 선정도 없고, 바른 선정이 없으면 산란한 마음도 없으며, 산란한 마음이 없으면 머무르는 곳도 없고, 머무르는 곳이 없으면 건립함도 없으며, 건립함이 없으면
아는 모양도 없고, 아는 모양이 없으면 생각함도 없으며, 생각함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고, 얻는 것이 없으면 반연도 없으며, 반연이 없으면 분별함도 없느니라.
또 분별함이 없으면 자기와 남을 보지도 않고, 자기와 남을 보지 않기 때문에 서로 이어짐도 없으며, 서로 이어짐이 없기 때문에 뜨거운 번뇌[熱惱]도 없고, 뜨거운 번뇌가 없기 때문에 번뇌의 원인도 없으며, 번뇌의 원인이 없기 때문에 광명을 보게 되고, 광명을 보기 때문에 지혜를 얻으며, 지혜를 얻기 때문에 광대한 마음을 얻고, 광대한 마음을 얻기 때문에 악마가 기회를 얻지 못하며, 악마를 꺾어 조복하기 때문에 곧 장애가 없고, 장애가 없기 때문에 바로 눈앞에서 온갖 불법을 얻게 되느니라.
이와 같아서 천자야, 온갖 법의 생김도 없고 지음도 없음에 대하여 열어 보이고 연설하면 이것을 곧 큰 신변을 말한다 하느니라.”
그때에 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제가 묻는 것을 당신께서는 모두 비밀스런 말씀으로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온갖 법은 문자를 합하고 모아서 임시로 이름을 붙여 세운 것일 뿐이니, 문자는 다함이 없으므로 좋아함에 따라 말하는 것이요, 모든 법은 성품이 없으므로 상응하는 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리불이여, 온갖 법은 제 성품을 여의었기 때문에 쌓아 모음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만 다만 좋아함을 따라 상응하는 대로 연설할 뿐이다. 그리고 이 법이란 어디서부터 오는 데도 없고 또한 가는 데도 없으며, 방위에 있지도 않고 방위를 여의지도 않으며, 모임도 없고 흩어짐도 없는 것이다. 만일 문자로써 온갖 부처님의 법과 온갖 중생의 법을 말하자면 몸으로부터 나오지도 않고 마음으로부터 나오지도 않으니 인연(因緣)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마치 저 문자에 쌓여 모임이 없는 것처럼 마음[心]과 마음 작용의 법[心所法]도 쌓여 모임이 없고, 마치 마음과 마음 작용이 쌓여 모임이 없는 것처럼 온갖 번뇌와 장애도 쌓여 모임이 없으며, 마치 번뇌와 장애가
쌓여 모임이 없는 것처럼 지혜 역시 쌓여 모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번뇌와 지혜 두 가지를 모두 버려 여의어 번뇌와 지혜가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곧 큰 신변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그때에 상주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어떤 것들이 보살의 지혜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고지(苦智)이니 모든 온(蘊)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요, 집지(集智)이니 선근을 쌓아 모으기 때문이며, 멸지(滅智)이니 생김이 있음을 보이기 때문이요, 도지(道智)이니 나쁜 길[惡道]을 여의기 때문이며, 인지(因智)이니 짓는 것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요 연지(緣智)이니 나고 죽음을 끊기 때문이며 불지(佛智)이니 증득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요 연생지(緣生智)이니 집착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온지(蘊智)이니 쌓임의 악마[蘊魔]를 제거하기 때문이요, 계지(界智)이니 법계가 평등하기 때문이며, 처지(處智)이니 공의 무더기를 잘 관찰하기 때문이니라.
시지(施智)이니 때가 아님[非時]이 없기 때문이요, 계지(戒智)이니 모든 파계(破戒)를 거두어 주기 때문이며, 인지(忍智)이니 중생을 수호하기 때문이요, 정진지(精進智)이니 착한 업을 짓기 때문이며, 선정지(禪定智)이니 안정된 마음[定心]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요, 지혜지(智慧智)이니 모든 법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며, 방편지(方便智)이니 중생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니라.
자지(慈智)이니 모든 존재[有]를 뽑아내기 때문이요, 비지(悲智)이니 고달픔이 없기 때문이며, 희지(喜智)이니 법을 좋아하기 때문이요, 사지(捨智)이니 불법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관찰지(觀察智)이니 4념처(念處)에 머무르기 때문이요, 정근지(正勤智)이니 평등함을 따르기 때문이며, 신족지(神足智)이니 작용이 없기 때문이요, 신근력지(信根力智)이니 온갖 집착을 여의기 때문이며, 정진근력지(精進根力智)이니 온갖 번뇌를 꺾어 부수기 때문이요, 염근력지(念根力智)이니 생각을 잃지 않기 때문이며, 정근력지(定根力智)이니 온갖 법이 평등하기 때문이요, 혜근력지(慧根力智)이니 모든 근성(根性)을 알기 때문이니라.
보리분지(菩提分智)이니 저절로 깨닫기 때문이요, 도지(道智)이니 모든 나쁜 갈래[惡趣]를 제거하기 때문이며, 진지(盡智)이니 선근이 그지없기 때문이요, 무생지(無生智)이니 무생인(無生忍)을 얻기 때문이며, 염불지(念佛智)이니 부처님 몸을 성취하기 때문이요, 염법지(念法智)이니
법륜을 굴리기 때문이며, 염승지(念僧智)이니 평등한 대중으로 들어가기 때문이요, 염사지(念捨智)이니 온갖 중생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염계지(念戒智)이니 온갖 서원이 원만하여지기 때문이요, 염천지(念天智)이니 온갖 악(惡)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중생근지(衆生根智)이니 한량없음[無量]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요, 원만지(圓滿智)이니 계율에 결함이 없기 때문이며, 중생업지(衆生業智)이니 사실대로 상응하기 때문이요, 처비처지(處非處智)이니 처(處)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며, 10력지(力智)이니 모든 성문과 연각을 포섭하기 때문이요, 무외지(無畏智)이니 장애와 장애가 아님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니라.
과거 세상의 무애지(無礙智)이니 집착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요, 미래 세상의 무애지이니 온갖 법이 나아갈 바가 없기 때문이며, 현재 세상의 무애지이니 머무르는 바가 없기 때문이요, 온갖 중생이 한량없는 몸을 받는 지혜[受無量身智]이니 언어(言語)로부터 생기기 때문이요, 온갖 중생의 언어와 음성의 차별되는 지혜[言音差別智]이니 마음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이니라.
온갖 중생이 마음으로 움직이는 지혜[心所動智]이니 능히 깨달아 알기 때문이요, 과실이 없는 지혜[無過失智]이니 온갖 중생의 과실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며, 사나움이 없는 지혜[無卒暴智]이니 온갖 모든 다툼을 잘 그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요, 기억을 잃지 않는 지혜[不失念智]이니 마음이 어지러운 중생을 편안히 머무르게 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거두어 주는 지혜[攝衆生智]이니 모든 게으름을 거두어 주기 때문이요, 부처님의 다른 이와는 다른 지혜[佛不共智]이니 응하여 화현하실 줄 알기 때문이며, 큰 방편의 지혜[大方便智]이니 반야(般若)에 의지하기 때문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의 지혜라 하나니, 이런 지혜 때문에 장차 여래의 걸림 없는 큰 지혜를 얻게 되느니라.”
그때에 상주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희유하고 희유하나이다. 이 보살의 지혜는 삼계(三界) 가운데서 가장 수승한 것이니, 조그마한 장엄으로써는 성취할 수 없겠습니다. 만일 이런 지혜를 일으킨다면 큰 신변(神變)이 될 것입니다. 문수사리여, 어떻게 보살은 이런 법을 구족하여 장엄할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온갖 중생이 본래부터 적멸(寂滅)함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바로 보살이 구족하여 장엄한다 하느니라.”
천자가 물었다.
“문수사리여, 어떤 것을 보살(菩薩)이라 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만일 보리를 행하면서도 머무르지 않으면 그것을 보살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마하살(摩訶薩)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이미 모든 행을 건너서 큰 지혜가 원만해지면 마하살이라 하는 것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이를 수승한 중생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지혜로 인한 까닭에 법에 집착하지 않고 방편의 힘으로써 온갖 것을 받아들이나니[攝受], 그러므로 수승한 중생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이를 청정한 중생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온갖 번뇌와 함께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요, 중생들의 번뇌의 병을 없애 주기 위하여 큰 정진을 일으킨 이를 바로 청정한 중생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이를 극히 청정한 중생[極淸淨衆生]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만일 온갖 중생들의 제도하고 해탈시키기 위하여 도품(道品)을 청정하게 닦으면 이런 이를 극히 청정한 중생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보살을 세간의 길잡이[導師]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만일 행하는 도에 편히 머무르면서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을 성숙시키면 이를 길잡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떻게 보살이 조복(調伏)에 머무릅니까?”
대답하였다.
“조복해야 할 중생을 구경조복(究竟調伏)에 편히 머무르게 하면 그것을 조복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떻게 하면 보살이 용맹(勇猛)을 얻습니까?”
대답하였다.
“만일 온갖 중생을 잘 성숙시키고 악마와 원수를 꺾어 부수어 나고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면 이것을 용맹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보살로서 무너뜨리기 어려운 것이라 합니까?”
“만일 옛날에 세운 서원을 원만하게 이루려고 성문과 연각의 도의 증득을 구하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로서 무너뜨리기 어려운 것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보살이 온갖 것에서 수승하게 벗어났다[勝出]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지혜와 방편으로 바른 법을 보호하고 지녀 중생을 성숙시키므로 온갖 하늘과 사람들이 우러러보지 않음이 없나니, 이것을 수승하게 벗어났다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법을 설한다[說法]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에 의거하여 온갖 삿된 이론[異論]을 꺾어 부수면 이것을 법을 설한다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계율을 설한다[說律]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스스로 계율에 머무르면서 중생의 번뇌와 나쁜 업을 잘 끊게 하면 이것을 계율을 설한다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구족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입니까?”
“쌓아온 선근을 온갖 중생에 회향하면 이것을 구족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곧은 마음[直心]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아첨하는 중생에 대하여 성을 내거나 방해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아첨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말이 진실로 참된 것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속이지 않는 말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진실하게 생각한 뒤에 하는 말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교만을 여읜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온갖 중생에 대하여 높은 체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큰 보시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쌓아온 얻기 어려운 최상의 보리조차도 오히려 중생에게 보시하거늘 하물며 세간에 있는 물건들이겠는가?”
또 물었다.
“어떤 것을 계율을 갖춘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목숨을 잃을지라도 끝내 보리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라.”
또 물었다.
“무엇을 참음[忍]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핍박을 능히 참고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정진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법에 조금도 얻을 만한 것이 없음을 간택(簡擇)하는 것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선정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욕심의 세계[欲界]를 보지 않는 것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지혜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자(慈)에 머무른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중생의 세계는 공하여 아무 것도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비(悲)에 머무른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법이 공한 줄 알아서 정진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희(喜)에 머무른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대적정의 즐거움[大寂樂]에 머물러 법을 구하되 싫증냄이 없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사(捨)에 머무른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고 세간을 능히 구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몸의 청정함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마음대로 몸을 나타내어 온갖 중생에 대하여 평등하게 보이고 나타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말의 청정함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설한 법을 끝내 헛되이 지나치지 않고 모든 중생을 만족시키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뜻의 청정함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온갖 중생들이 지닌 모든 마음의 생각을 한 마음 속에서 분명히 다 아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천안(天眼)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온갖 색상(色相)의 광명을 보면서도 집착함이 없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천이(天耳)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온갖 음성을 들으면서도 모든 음성의 모양을 여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타심(他心)이라 합니까?”
“모든 마음은 나고 없어짐의 흐름임을 분명히 아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숙명(宿命)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실제(實際)에 동요되지 않아서 전제(前際)를 분명히 아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신통(神通)이라 합니까?”
“악마의 일[魔業]에 동요되지 않고 모든 악마를 꺾어 부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조복(調伏)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온갖 조복하기 어려운 것을 잘 조복시키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보호한다[護]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감관이 흔들리거나 혼란스럽지 않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조순(調順)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법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적정(寂靜)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번뇌의 불길에 휩싸여도 타지 않고 오히려 번뇌 있는 이를 제도하면서 법을 연설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청정한 믿음[淨信]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만일 부처님의 몸이 바로 색상(色相)의 법이라 한다면 끝내 믿어 받지도 않고 파괴도 당하지 않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보살의 선교방편(善巧方便)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만일 중생의 번뇌와 허물을 보리와 동등하다고 보면 이것을 보살의 선교방편이라 하느니라.”
이 법을 설할 때에 1만 2천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켰고, 5백의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그때에 세존께서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문수사리야, 모든 보살의 행을 잘 연설하여서 이미 온갖
보살의 한량없는 공덕을 포섭하게 되었다.”
그때에 상주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당신께서는 옛날에 몇 분의 부처님 세존께 공경하고 공양하셨기에 이런 변재(辯才)를 얻으셨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비유하면 마치 환술로 만든 사람의 심수(心數)가 벌써 사라진 것과 같으니라.”
천자가 말하였다.
“중생심(衆生心)의 모양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환술로 만든 사람에게 마음이 멸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부처님 여래의 성품과 모양도 그와 같나니, 나는 이 법에 의거하여 여래께 공양하였느니라.”
천자가 말하였다.
“당신께서는 단(檀)바라밀을 행하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부처님의 교화를 받은 어떤 사람이 만일 묻기를, ‘얼마 동안이나 단바라밀을 행했습니까?’라고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되겠느냐?”
천자가 말하였다.
“대답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나도 역시 그와 같거늘 어떻게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는단 말인가?”
천자가 말하였다.
“당신은 아까워서 그러십니까?”
대답하였다.
“그러하니라.”
또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부처님의 법과 온갖 중생을 버리지 않나니, 그러므로 아까워하느니라.”
천자가 말하였다.
“문수사리께서 말씀하신 뜻대로라면 또한 계율을 깨뜨린[破戒]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그러하니라.”
천자가 말하였다.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답하였다.
“무릇 계율을 깨뜨린 이는 나쁜 길에 떨어지는 것이니, 나는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키기 위하여 나쁜 길로 들어가기 때문에 계율을 깨뜨린다 하느니라.”
또 물었다.
“당신은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키십니까?”
대답하였다.
“그러하니라.”
천자가 말하였다.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해치려는 마음이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나는 번뇌와 2승(乘)을 도무지 사랑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해치려는 마음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십니까?”
대답하였다.
“그러하니라.”
또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몸과 입과 뜻의 업(業)을 일으키지도 않고 나아가고 구하는 것도 없으며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기 때문에 게으르다 하느니라.”
또 물었다.
“당신은 산란(散亂)하십니까?”
대답하였다.
“그러하니라.”
천자가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답하였다.
“무릇 산란하다 함은 해탈에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말한 것이 아닌가?”
천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대답하였다.
“나는 온갖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해탈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산란하다 하느니라.”
또 물었다.
“당신은 지혜가 없습니까?”
대답하였다.
“그러하니라.”
또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지혜가 없다 함은 모든 어리석고 미혹된 이와 똑같아서 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니라. 어찌 그렇지 않겠느냐?”
천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대답하였다.
“나는 나고 죽음에 대하여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어리석고 미혹된 중생들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그들이 하는 일을 같이 하므로 지혜가 없다 하느니라.”
천자가 물었다.
“당신은 세간에서 공양을 받을 만한 분이십니다.”
대답하였다.
“나는 온갖 중생에 대하여 죽이고 해치려는 마음을 내느니라.”
또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저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을 죽이고 해치기 때문에 세간에서 공양을 받을 만한 이이니라.”
천자가 말하였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모든 세간을 놀라고 다 두렵게 만들 것입니다.”
대답하였다.
“천자여, 만일 실제(實際)적인 놀라움과 두려움이라면 세간이 놀라고 두려워하리라. 왜냐하면 온갖 세간이 곧 실제이기 때문이니라.”
또 물었다.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이런 말씀을 헐뜯는다면 장차 어디에 이르게 됩니까?”
대답하였다.
“장차 열반에 이르게 되느니라.”
또 물었다.
“그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대답하였다.
“거룩한 해탈 가운데는 문자가 없나니, 이 때문에 언설을 헐뜯으면 열반에 이르게 되느니라. 이런 이치 때문에 온갖 법은 본래가 해탈이요, 다시 해탈하는 것이 아니니라.”
또 물었다.
“그 이치는 어떠한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이미 해탈한 이가 어찌 다시 해탈하겠느냐?”
또 물었다.
“바른 법을 비방한 이가 어찌 지옥에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대답하였다.
“만일 이미 해탈하였다면 모든 때[垢]를 여의었거늘 어떻게 지옥으로 나아가겠느냐?”
천자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당신께서 하신 말씀대로라면 찬양하거나 돕는 이가 없겠습니다.”
대답하였다.
“공하고 모양과 소원이 없는 데서 그 무엇이 찬양하고 돕겠느냐?”
또 물었다.
“공의 행을 닦는 이는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자애로움[慈]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중생은 마치 환술[幻]과 같아서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천자가 물었다.
“문수사리여, 어떻게 하면 모든 중생의 경계를 분명하게 압니까?”
대답하였다.
“온갖 중생은 인연(因緣)으로부터 생기는 것이어서 아주 끊어지지도 않고[不斷], 항상 있지도 않다[不常]고 보는 것이니, 이 때문에 중생의 경계를 두루 알게 되느니라.”
또 물었다.
“중생의 경계란 무슨 뜻입니까?”
대답하였다.
“중생의 경계한 곧 법계(法界)이니라.”
“어떤 것을 법계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제 성품이 공한 경계를 법계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공한 경계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온갖 경계를 초월하는 그것이 바로 허공의 경계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바로 경계를 초월하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부처님의 경계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눈의 경계[眼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눈과 눈으로 보는 빛깔과 안식(眼識)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귀의 경계[耳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귀와 귀로 듣는 소리와 이식(耳識)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나아가 뜻의 경계[意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뜻과 뜻의 법과 의식(意識)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물질의 경계[色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물질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의 경계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무명(無明)의 경계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무명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늙고 병들고 죽음의 경계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늙고 병들고 죽음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욕심 세계[欲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탐내는 모양이 없기 때문이요, 형상 세계[色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탐욕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형상이 없는 세계[無色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무명의 소견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무위(無爲)의 경계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두 모양[二相]이 없기 때문이요, 유위(有爲)의 경계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세 모양[三相]이 없기 때문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부처님의 경계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경계로 온갖 경계에 들어가서 끝이 있거나 끝이 없거나 모두 다 섭수하는 것이니라. 보살은 이런 경계에 잘 들어가기 때문에 항상 세간의 온갖 경계를 행하면서도 악마의 경계를 초월하게 되며 부처님의 경계와 악마의 경계를 사실대로 분명히 알아서 고요하고 평등하나니 이것을 곧 가장 큰 신변[最大神變]이라 하느니라.
또 보살은 평등함에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평등한 법으로써 중생을 성숙시키느니라. 어떤 것을 평등하고 평등함이 아니라고 하느냐 하면, 온갖 모든 법은 제 성품이 공하고 적정하므로 이와 같은 것을 분명히 알면 평등함에 머무른다고 하고, 모든 법의 공한 성품에 들지 못하면 평등함이 아니라 하느니라.
보살은 이러한 중생을 성숙시키면서도 역시 공의 평등함에 머무르지 않게 하기 때문이니, 온갖 모든 법은 소원 없음[無願]의 평등이요, 지음 없음[無作]의 평등이며, 생김 없음[無生]의 평등이요, 소멸 없음[無滅]의 평등이며, 물듦을 여읨[離染]의 평등이요, 적멸(寂滅)의 평등이며, 성품 없음[無性]의 평등이요, 사라짐[滅]의 평등이며, 열반(涅槃)의 평등이지만, 그가 이 평등법을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면 보살은 이러한 중생을 성숙시키면서도 또한 평등함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평등함에 머무르지도 않고 평등함을 여의지도 않는데 그것이 보살의 행이니라.”
그때에 상주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원컨대 저를 위하여 모든 보살의 행[菩薩行]을 말씀하여 주소서.”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보살의 행이란 불가사의하느니라.”
천자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보살의 행이 불가사의합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탐내는 행[貪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탐냄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이요, 성내는 행[瞋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성냄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며, 어리석은 행[癡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어리석음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니라. 인색함[慳悋]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보시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요,
계율을 헐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계율의 모양[戒相]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며, 성을 내고 해치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참았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니라.
게으르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정진했다는 생각을 여의기 때문이요, 산란하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선정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며, 어리석음을 여읨이 보살의 행이니 선정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며, 어리석음을 여읨이 보살의 행이니 지혜라는 생각을 짓지 않기 때문이요, 번뇌가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끊을 것이 없기 때문이며, 탐애(貪愛)가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몸의 모양을 여의기 때문이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여인의 자애로움을 버리기 때문이니라.
물들거나 더러움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5욕(欲)을 꾸짖고 책망하기 때문이요, 법이 아닌 것을 여의는 것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선근을 쌓아 모으기 때문이며, 인색함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몸과 목숨을 버리기 때문이요, 모든 악(惡)을 없앰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뜨거운 번뇌가 없기 때문이며, 집착할 것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음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파괴할 것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번뇌를 바르게 관찰하기 때문이요, 두려워하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끝없는 나고 죽음에 들기 때문이며, 큰 정진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온갖 중생의 짐을 짊어지기 때문이요, 물러나지 않음이 보살의 행이니 옛날에 세운 서원을 원만하게 이루기 때문이며, 많은 보배로운 행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3보(寶)를 섭수하기 때문이니라.
온갖 행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도를 돕는 법[助道法]을 부지런히 닦기 때문이요, 장애가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두 가지 치우침을 여의기 때문이며, 허물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지혜 있는 이의 칭찬을 받기 때문이요, 마음에 편히 머무름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온갖 중생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분별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온갖 것을 평등하게 관찰하기 때문이니라.
훌륭한 장부[善丈夫]가 바로 보살의 행이니 짐을 짊어져도 게으름이 없기 때문이요, 용맹함이 보살의 행이니 온갖 번뇌를 꺾어 부수기 때문이며, 견고함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하는 일을 중도에 그만두지 않기 때문이요, 뛰어나게 초월함[勝出]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정진하면서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며, 수순(隨順)함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모든 도반에게 거스름이 없기 때문이니라.
기뻐함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악을 행하는 이에 기쁘게 여기기 때문이요, 믿고 좋아함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고 스승으로 섬기면서 즐거워하기 때문이며, 금강(金剛)의 갑옷을 입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율의(律儀)를 헐지 않기 때문이요, 불국토를 장엄함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그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온갖 것을 초월함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최상승(最上乘)에 들어가기 때문이요, 은혜를 알아 은혜를 갚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부처님의 종자를 단절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 지혜로운 방편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거두어 주면서[攝受]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의 행을 연설할 때에 5백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그때에 상주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이 보살의 행을 명쾌히 잘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만일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할 수 있었다면 벌써 여래의 수기(授記)를 받았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너의 말과 같으니라. 나는 옛날 이 행을 얻었을 때 연등(然燈)세존께서 나에게 수기하셨고, 나는 그때 무생법인을 얻었나니, 이것을 여래의 가장 큰 신변이라 하느니라. 만일 오래도록 청정한 업을 성취하게 되면 이 보살의 행을 닦아 익힐 수 있느니라.”
그때에 상주 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무생(無生)이라 하며, 어떻게 해야 이 무생인(無生忍)을 얻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생이라 함은 먼저 생긴 것이 있었는데 뒤에 생기는 것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저절로 생기지 않았기[無生] 때문에 생김이 없다고 하는 것이요, 먼저 일어난 것이 있었는데 뒤에 일어나는 것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저절로 일어나지 않았기[無起] 때문에 일어남이 없다고 하는 것이며, 먼저 모양이 있었는데 뒤에 모양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모양이 없기[無相] 때문에 모양이 없다고 하는 것이요, 먼저 지은 것이 있었는데 뒤에 짓는 것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저절로 짓는 것이 없기[無作] 때문에 지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며, 먼저 중생이 있었는데 뒤에 공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성품이 공하기[空] 때문에 공하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생김도 없고 소멸함도 없어서 본래부터 물들 것이 없음을 분명히 알면 이것을 무생(無生)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인(忍)이라 하느냐 하면, 이와 같이 온갖 중생과 온갖 세계가 본래부터 생기지 않음을 인가(忍可)하는 이것을 인이라 하고, 이와 같이 온갖 성문과 벽지불이 본래부터 생기지 않음을 인가하는 이것을 인이라 하며, 이와 같이 온갖 보살과 온갖 부처님이 본래부터 생기지 않음을 인가하는 이것을 인이라 하고, 이와 같이 온갖 법이 본래부터 생기지 않음을 인가하는 이것을 인이라 하느니라.
천자야, 모든 법은 생기지 않기 때문에 찰나마다 공하고, 찰나마다 공하기 때문에 모양이 없다 하며, 찰나마다 모양이 없기 때문에 물질이 공하고, 물질이 찰나마다 공하기 때문에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이 찰나마다 공하며, 의식이 찰나마다 공하기 때문에 계(界)가 찰나마다 공하고, 계가 찰나마다 공하기 때문에 처(處)가 찰나마다 공하니라.
만일 찰나마다 공하면 있는 것이 없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물든 것이 없으며, 물든 것이 없기 때문에 제 성품을 여의고, 제 성품을 여의기 때문에 이것을 온갖 법이 본래부터 적정하다고 하나니, 이와 같은 인(忍)으로 평등함에 들어가면 이것을 곧 무생인을 얻고 보리의 수기를 받게 된다 하느니라.
이 인을 얻더라도 얻는 것이 없나니[無所得], 어떤 것을 얻는 것이 있다[有所得]고 하느냐 하면, 나와 내 것에 두 모양을 얻을 수 있다고 보면 얻을 것이 있다고 하고, 중생(衆生)과 목숨[壽者]과 양육(養育)과 나[我]와 사람[人]에 두 모양이 있다고 보면 얻는 것이 있다고 하느니라. 무엇을 얻을 것이 없다[無所得]고 하느냐 하면, 나의 자성(自性)과 내 것의 성품에 둘이 없음을 분명히 알면 얻을 것이 없다고 하나니, 이러면 곧 인(忍)을 성취한다 하느니라.
천자야, 보살은 무수한 겁 동안에 이 인(忍)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여래의 가장 큰 신변[最大神變]이라 하느니라.”
이 인을 말씀하실 때에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큰 광명은 온갖 세계를 두루 비추었으며, 백천 가지의 음악은 치지 않아도 저절로 울렸고, 허공에서는 많은 묘한 꽃비가 내렸으며, 4만 2천 중생은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켰고, 9만의 보살은 수순하는 법인[隨順法忍]을 얻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신력으로 이 사바세계가 마치 연등부처님[然燈佛]께서 연화성(蓮花城)에 들어가실 때와 똑같아서 다름이 없게 하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빙그레 미소지으시니, 한량없는 백천 가지의 갖가지 빛깔의 광명이 부처님의 입에서 분출되어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계에서부터 범천세계에 이르기까지 두루 비추어서 해와 달의 광명이 모두 나타나지 않았으며, 다시 돌아와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도로 정수리로 들어갔다.
그때에 혜명(慧命) 아난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여 공경하며 곧 부처님의 앞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제가 여쭈옵니다. 광명이 장엄하고
광명이 견줄 데 없어서
모든 번뇌의 어둠을 깨뜨렸사옵니다.
미소지으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많은 악마를 꺾어 부수고
모든 외도를 항복받으셨나니
저는 10력(力)을 지니신 분께 여쭈옵니다.
무슨 일로 미소지으신 것입니까?
여래께서는 특별하고 묘한 빛깔로
32상(相)을 갖추셨으므로
시방에서 존경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미소지으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지혜의 바다와 지혜의 나무로
모든 중생을 깨우쳐 인도하시니
그 공덕은 끝이 없나이다.
무슨 일로 미소지으셨습니까?
명성은 3세에 두루하고
때[垢]를 여의면서 3명(明)을 갖췄으며
이미 3해탈(解脫)을 건너셨나이다.
무슨 일로 미소지으셨습니까?
나고 죽음을 깨뜨리신 의왕(醫王)은
발바닥에 망륜(輞輪)을 갖추셨고
금강 같은 몸은 파괴되지 않습니다.
미소지으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 누가 이 인(忍)을 능히 갖추고
그 누가 이 청정한 행을 닦아서
부처님의 공덕을 구하려 하겠나이까?
이 때문에 세존께서 미소지으셨습니까?
길잡이[導師]께서 나타내어 보이심은
반드시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니
거룩하십니다. 범음(梵音)으로 연설하시어
대중들이 다 함께 기뻐하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법문을 설할 때에 7만 2천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3만 2천 보살이 무생인(無生忍)을 얻었느니라. 아난아, 너는 이 상주 천자를 보았느냐?”
아난이 아뢰었다.
“예,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상주 천자는 이미 일찍이 수없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고, 한량없는 중생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권하여 일으키게 하였느니라.
아난아, 이 상주 천자는 3백 아승기겁을 지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리니, 명호는 공덕왕광명(功德王光明) 여래․응공․정등각․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 세존이시리라.
그 나라의 이름은 청정(淸淨)이요, 겁의 이름은 무구(無垢)일 것이며, 그 국토는 모두가 7보로 이루어지고 땅은 편편하여 손바닥과 같으며, 여덟 계단 길에는 보배의 그물로 두루 덮고 갖가지로 장엄할 것이며, 그 부처님의 세계에는 성문이나 벽지불이라는 이름과 그 밖의 외도로서 늑가(勒迦)와 파리라바야가(波利羅婆若迦) 등도 없고, 모든 악마의 일들로 정법(正法)을 파괴하는 일도 없으며, 또한 8난(難)과 모든 법답지 못하며 괴로워하는 소리도 없고, 생각하는 대로 음식이 저절로 나오며, 그 국토의 중생의 옷과 보배와 장난거리들은 마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하늘들과 같고, 몸은 모두가 금빛으로 32상을 갖추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무를 것이니, 이 때문에 청정세계라고 하는 것이니라.
그 공덕왕광명여래의 수명은 40소겁(小劫)이요, 그 부처님의 법 가운데에는 62구지의 보살들이 있을 것이며,
원력(願力) 때문에 부처님을 따라 열반할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어떤 보살이라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인(忍)을 얻으면 모두가 장차 이 청정세계에 날 것이니, 공덕왕광명여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시게 될 것이니라.”
그때에 이 모임 중에 관찰(觀察)이라는 천자가 있었는데 하늘의 만다라꽃[曼陀羅花]을 여래 위에 뿌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공덕왕광명여래께서 위없는 도를 이루실 때에는 저는 그 청정한 세계에 태어나서 전륜왕이 되어 그 부처님 세존과 모든 보살들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겠으며, 다음에는 부처님 처소를 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관찰 천자는 장차 저 공덕왕광명여래의 법 중에서 선견(善見)이란 전륜왕이 되어 한량없는 공양거리로 저 부처님 여래를 공경하고 공양하여 보리를 돕는 법을 구족하여 원만하게 할 것이요, 마땅히 그 국토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 명호는 보광명(普光明) 여래․응공․정등각이라 하시리라.
아난아, 그 선견왕은 그 장자(長子)를 세워 왕위를 이어받게 한 뒤에는 그 부처님에게 출가하여 도를 닦을 것이며, 그 부처님 세존께서 열반하실 때에 곧 그에게 수기하시면서 ‘이 선견 보살은 내가 멸도(滅道)한 뒤의 그 다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라’ 하시고, 부처님께서는 수기를 하시자마자 곧 열반에 드실 것이니라.”
그때에 사리자가 상주 천자에게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이미 당신에게 보리의 수기를 주셨습니다.”
천자가 말하였다.
“대덕이여, 마치 부처님께서 교화하는 사람에게 수기를 주시는 것처럼
저에게도 역시 그와 같이 하셨으니, 마치 진여(眞如)의 성품이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것처럼 여래의 수기 또한 더하거나 덜함이 없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법문을 너는 마땅히 받아 지녀 널리 사람들에게 말해주어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해야 하리니, 미래 세상의 모든 보살들을 섭수하기 위해서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정수리로 받았습니다. 이 경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설대신변경(說大神變經)』이라 하고, 또한 『문수사리소설밀어경(文殊師利所說密語經)』이라고도 하며, 또한 『상주천자소문경(商主天子所問經)』이라고도 하나니, 이렇게 받아 지녀야 하느니라.
아난아,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경을 믿고 받아서 읽고 외우며 다른 이들을 위하여 널리 해설하면, 이미 온갖 공덕을 섭수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혜명 아난과 그 밖의 비구들과 상주 천자와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 나유타의 모든 천자들과, 문수사리와 그리고 여기에 모인 한량없는 아승기의 시방세계의 모든 보살마하살들과 온갖 세간의 하늘․사람․아수라 등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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