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84권
대보적경 제84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20. 무진복장회(無盡伏藏會) ②
“또 전득아, 보살이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하고 나면 모든 중생의 근기와 행과 의요(意樂)를 교묘하고 분명히 잘 알게 되느니라.
만일 탐애가 많은 중생을 보면 그의 병을 조복하고 치료해 주기 위하여 같은 범부로서 같이 모든 욕심을 받는 것을 나타내 보이면서 처자(妻子)를 모두 갖추고 집안 일과 살림을 살지만 마치 연꽃과 같아서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느니라.
그때에 어떤 중생들은 어리석고 지혜가 없기 때문에 보살의 교묘한 방편을 모르면서 생각하느니라.
‘어찌 지혜가 있는 이로서 모든 욕심을 탐내며 받는단 말인가? 범부와 다르지 않구나.’
그리고는 곧 그 보살이 보리를 멀리 여의었다고 여기느니라. 이러한 중생들은 마음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성을 내면서 공경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느니라. 이러한 업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큰 지옥에 가 떨어지지만 다시 보살이 은밀하게 교화하는 인연 때문에 죄의 과보를 마친 뒤에는 반드시 평등함에 들어가게 되느니라.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활활 타는 불을 풀과 나무 있는 데에 던지면 모두가 활활 타면서 다 불로 되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지혜의 불이 활활 타므로 모든 중생으로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이거나 착하고 착하지 않은 이거나 간에 보살이 그와 더불어 행동을 같이하면 모두가 활활 타듯이 다 지혜를 이루게 되나니, 이것을 보살의 특수한 법[不共法]이라 하느니라.
또 마치 수미산(須彌山)이 특수한 모양으로서 이른바 4면이 네 가지의 보배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중생들은 청․황․적․백의 갖가지 빛깔 모양을 따르게 되는데, 그가 만일 유리(琉璃)로 된 면(面)으로 나아가면 모두가 동일한 색깔이 되면서 그 유리와 같이 되고, 금빛으로 된 면으로 나아가면 모두가 금빛과 같이 되며,
은과 파리(頗梨)의 색깔 등도 모두가 다 그와 똑같이 되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특수한 법을 증득한 까닭에 모든 중생에 따라 탐을 내는 이나 성을 내는 이나 어리석은 이나 착한 이나 착하지 않은 이거나 간에 보살에게로 가서 그와 더불어 행동을 같이 하면 모두가 다 보살의 지혜에 들게 되느니라.
그러나 그의 마음이 청정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나쁜 업 때문에 혹은 지옥․아귀․축생이나 염마라세계[閻摩羅界]에 떨어지지만 이 보살의 특수한 공덕과 원력(願力) 때문에 죄의 과보를 마친 뒤에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되느니라.
전득아, 과거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겁의 5탁(濁)의 세상 때에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으니, 그 명호는 보취공덕성(寶聚功德聲)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 세존이었느니라.
그때에 세간의 수명은 120살이었고, 나의 오늘날과 같이 그 모든 중생들은 극히 중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번뇌에 가려져서 부모와 형제와 벗을 배반하고, 화상과 아사리에게 순종하지 않았으며, 은덕을 알지 못하고 항상 독해와 간사한 일과 도둑의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서로서로 파괴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행을 하였으며, 부처님[佛]․법(法)․승가대중[僧]에 대하여 공경심과 믿음을 내지 않고, 간탐과 인색과 비루한 일로 아귀의 법을 행하였으니, 그 부처님의 세계 안에는 이와 같은 등의 일이 있어서 그 악한 중생들은 조복하기조차 어려웠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역시 옛날의 서원의 힘 때문에 이 나쁜 세상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신 것이니, 그 부처님에게는 다시 2만 2천의 대성문(大聲聞) 대중들이 있었느니라.
그때에 광수(廣授)라는 왕이 있었는데 자재한 왕의 덕화로 염부제를 통솔하였고, 부처님 법 가운데에서 신심이 청정하였으므로 그 여래와 비구 대중들을 청하여 한여름 동안 안거(安居)하게 하면서
널리 공양을 베풀었느니라.
그때에 이름이 무구(無垢)라는 한 법사가 있었느니라. 변재를 두루 갖추고 설법을 교묘히 잘하였으므로 대중들이 듣기를 좋아하였고, 중생들에게 열어 보이되 항상 고달파하지 않았으며, 무릇 설법을 하면서도 바라는 바가 없었고 얼굴에는 웃음을 띠면서 먼저 안부를 물었으며, 혈색과 힘이 구족하고 얼굴이 단정하였으므로 중생들이 흠모하면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였느니라. 또 새로 배우는 연소한 비구들이 항상 그 무구를 따라 왕궁을 장애 없이 드나들자, 갖가지로 의복과 음식과 침구와 의약을 공양하였느니라.
그때에 그 대중 가운데 있던 많은 비구들은 몸의 계율과 마음의 지혜를 닦아 익힐 줄 모르고 부처님과 교법과 스님들을 공경하지 않았으며, 항상 있다는 소견[常見]과, 아주 없다는 소견[斷見]과, 나라는 소견[我見] 등으로 부처님 법을 비방하며 경솔하게 굴었으므로 조복하기 어려웠고, 모든 감관을 섭수하지 않고 그릇된 법에 머무르며 사문의 행이 없으면서도 자칭 사문이라 하였으며, 몸과 입과 뜻의 업은 모두가 삿되고 편벽되었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안거가 지난 후에 곧 열반에 드셨으므로 그 왕 광수는 붉은 전단나무로 화장하여 80구지(俱胝)의 보배 탑을 세우고는 붉은 전단나무로 난간을 만들었으며, 4면에는 모두 금빛의 연꽃이 있게 하였느니라.
무구 비구는 부처님께서 법을 많이 들어 아는 이 가운데에서 첫째[多聞第一]갈 것이라고 수기하셨던 터라,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널리 바른 법을 펴면서 돌아다닌 성읍과 마을마다 한량없는 백천의 중생들을 교화하여 모두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무르게 하였느니라.
그때에 많은 나쁜 비구들은 수행할 줄도 모르고 항상 질투심을 품었으며, 악마에게 미혹되어 있는 이들이었는데, 그 왕에게로 나아가서 말하였느니라.
‘왕이 스승으로 섬기면서 공경하는 무구 비구는 왕궁을 거침없이 드나드는데 그 비구는 아직 탐욕을 여의지 못하였습니다. 때 아닐 때에도
먹고 향과 꽃다발로 몸을 장엄하는 등 실로 범행(梵行)이 아니므로 공양하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이런 일 때문에 와서 왕에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그 후에 부처님의 바른 법 안에서 불신(不信)을 내게 하는 것이 이것보다 더한 일이 없었느니라.
그때에 극악(極惡)이라는 한 악마가 곧 자기 몸을 변화하여 비구의 형상이 되어 다시 그 왕에게로 와서 앞에서와 같은 일을 거듭 말하였으므로 광수왕은 이런 말을 자주자주 듣게 되자 이내 생각하였느니라.
‘무구 비구는 힘써 정진하고 지혜가 있는 이라 나의 존경을 받고 있는데, 만일 이런 일이 있다면 끝내 옳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때에 악마들이 허공 가운데서 몸을 반만 내놓고는 그 왕에게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왕께서는 마땅히 기예(技藝)를 배우되
그 기의(機宜)를 잘 알아야 합니다.
광수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하며
이는 인왕(人王)을 돕는 이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아라한 제자라면
이미 큰 지혜를 갖추었을 것이거늘
이러한 말씀에 의거하지 않나니
어떻게 단견(斷見)에 따르십니까?
비구들은 이익을 위하여
당신에게 정성스런 말을 하였지만
단견을 지닌 나쁜 갈래의 사람이요
실로 범행을 닦는 이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궁중 안에서
채녀(婇女)들과 함께 즐기고 있으니
왕께서는 시종(侍從)들과 함께 가서
친히 보시고 의심을 여의어야 합니다.
왕은 이러한 일을 듣고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는 마음 내어
즉시 시종들을 거느리고
속히 궁중으로 나아갔었다.
무구는 그때 궁중에 있으면서
첫째가는 이치[第一義]를 연설하며
‘모든 법은 제 성품이 공하고
나도 없고 목숨도 없다’고 하였다.
왕과 모든 병사들은
모두가 악마에 미혹되어 있었기 때문에
궁중의 채녀들이
비구를 에워싸고 있는 것만 보고는
취한 코끼리처럼 몹시 성을 내면서
이내 전다라(旃陀羅)에게
‘비구가 나의 궁전을 더럽히고 있으니
고통 주는 법으로 다스리도록 하라’고 명했다.
신하와 권속들도
모두 악마에 미혹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죄 없는 비구에게
분을 내면서 해를 끼쳤다.
망나니가 칼을 가지고 나아가자
무구는 곧 슬피 울었고
왕은 말하기를 ‘그대는 법답지 못하면서
무엇 때문에 또 슬퍼하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무구는 왕에게 아뢰기를
‘이런 일은 제 자신이 표현하기 어려우니
우선 잠깐 동안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밝게 증명하여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비구의 말을 듣고
곧 망나니에게 중지토록 하면서
‘어떤 일을 하려는지 시험해 보리니
그대는 빨리 말해보도록 하라.’
수승한 의요(意樂)를 성취하고
자비로 세간을 이롭게 하는 이가
열 손가락을 합치고 합장하고서
서원 하는 말을 하였다.
‘대왕이여, 당신은 아셔야 합니다.
만일 실로 이러한 일이 없다 한다면
원컨대 대지(大地)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공중에선 묘한 꽃이 비 내리듯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하자마자
대지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허공에선 하늘꽃이 비 내리듯 하였으므로
악마들은 근심하고 괴로워하였다.
왕은 그때 청정한 믿음을 내어
발에 예배하고 기뻐하면서 말했다.
‘저는 장차 지옥에 떨어져서
의지할 이 없으리니 보호하여 주소서.
쯧쯧 이러한 나쁜 일을 만나
어째서 독한 마음을 일으켰던가?
보호할 이도 없고 의지할 이도 없을 텐데
따를 이는 오직 나쁜 벗뿐이구나.
시방에서는 저를 보호해 줄 이 없고
오직 대사(大師)만이 계실 따름입니다.
저는 이제 왕위(王位)를 버리고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
비구는 그 왕과 권속들이
뜻하고 바라는 바를 알고
그들에게 첫째가는 이치를 말해주자
왕은 듣고 바른 믿음을 얻었다.
백억의 권속들과 함께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두타의 행을 닦아 익히면서
다른 사람들의 청(請)을 받지 않았다.
그때 왕의 후궁(後宮) 안에 있던
채녀 8만 사람들은
첫째가는 이치의 설법을 듣고
모두가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에 머물렀다.
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24년 동안을
밤낮으로 항상 참회하였으나
그 죄업은 아직도 다하지 않았다.
1백 구지의 권속들도
악한 마음으로 법사에 향하였기에
이로 말미암아 목숨을 마친 뒤에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었다.
여러 억 년 동안 고통을 받고
죄가 다하여 여래를 만났으나
옛날의 그 두려운 원인 때문에
남은 과보는 항상 파리하고 하열하였다.
점차로 차츰차츰 닦아 익히면서
천억의 부처님께 공양한 까닭에
저마다 다른 나라 안에서
모두가 다 정각(正覺)을 이루었으니
다 같이 동일한 명호로서
공덕명칭불(功德名稱佛)이라 하였다.
그때에 그 광수왕은
인자하고 인욕하는 비구에게
독해의 뜻을 일으켰기 때문에
여러 억 년 동안
모진 악업(惡業)의 과보를 받으면서
대규지옥(大叫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이 업보를 마친 뒤에는
도로 사람의 몸을 얻어
보안(普眼)여래를 만나게 된 까닭에
친근하면서 항상 공양하였다.
이로부터 차츰차츰 80구지나 되는
그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겼으며
그런 뒤에야 정각을 이루었으니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다.
죄 없는 법사를
해치려 하였던 그 비구는
장차 오는 세상에 성불하게 되리니
바로 지금의 미륵보살이 그다.
그때 그 왕궁 안의
8만의 모든 채녀들은
청정한 믿음으로 덕을 심으면서
한량없는 부처님을 받들어 섬겼으며
지금까지도 다시 수행하면서
큰 서원으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므로
장차 천 억의 부처님을 받들고 나서
저마다 부처님[等正覺]을 이루게 되리라.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이르나니
온갖 것에 해를 끼치지 말라.
자비를 닦아야 부처님의 칭찬을 받고
속히 큰 보리를 증득하느니라.
그러므로 전득아, 모든 중생들의 근성과 마음에 즐거워하는 것을 잘 알지 못하면 언제나 해치려하는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니라.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모든 산에서 수미산이 으뜸인 것처럼 여래의 지혜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지혜 중에서 가장 높고 위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온갖 모든 물 가운데서 바다가 가장 수승한 것처럼 여래의 지혜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지혜 중에서 가장 깊고 크니라. 또 마치 모든 국왕 중에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가장 높고 위인 것처럼 여래의 지혜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지혜 중에서 최상이니라.
전득아, 여래는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한 까닭에 중생들의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행으로 마음과 마음이 바뀌고 변한 것을 모두 다 아나니, 한 손가락을 튀기는 동안에 모두 섭수(攝受)할 수 있느니라.
전득아, 여래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성취함은 마치 눈이 밝은 사람이 자기 손바닥 안의 다섯 개의 암라과(菴羅果)를 볼 때에 공력을 들이지 않아도 분명히 알면서 의심할 것이 없는 것처럼, 여래도 그러하여 온갖 중생의 마음의 작용을 분명히 알아 대중 가운데서 갖가지로 설법하며, 한량없고 그지없는 부처님세계 안의 탐냄과 상응한 모든 중생들이 탐내는 뜨거운 번뇌 때문에 밤낮으로 거칠게 생각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도 나는 모두 알고 보며,
그 탐내는 뜨거운 번뇌 때문에 몸과 입에서 일으키는 갖가지의 업도 나는 모두 알고 보느니라.
또 성을 내는 중생이 성과 분으로 마음이 가려져서 서로가 미워하고 질투하면서 죽이고 해치기 때문에 무간(無間)의 처소에 떨어지는 것도 나는 모두 알고 보며, 어리석은 행과 상응한 모든 중생들이 무명(無明)의 어둠에 미혹되고 집착하면서 삿된 소견에 따르기를 좋아하는 것도 나는 환히 알며, 감당할 수 있는 이와 감당할 수 없는 이와, 더욱 정진함이 있는 이와 물러남이 있는 이와, 여래승(如來乘)에서 선근을 심는 이와 연각승(緣覺乘)에서 선근을 심는 이와 성문승(聲聞乘)에서 선근을 심는 이 등도 나는 모두 환히 아느니라.
여래는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한 까닭에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중생의 마음 작용의 차별을 환히 알지만, 때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잠자코 내버려두면서 다만 생각하기를, ‘이 모든 중생들은 법에 미혹되어서 환히 알지 못하고 있다. 여래는 수승한 근기와 힘을 구족하고 때를 잘 알기 때문에 조복할 수 있는 이와 수승한 뜻으로 구하는 이와 감당할 수 있는 이와 착한 말을 받아들이는 이들을 나는 모두 분명히 안다’고 할 뿐이며, 이렇게 안 뒤에는 그 중생들을 섭수하고 이익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전득아, 처음 업을 닦는 보살이 아직 정위(正位)에 들지 못하면 모든 중생의 수승한 뜻으로 바라는 행을 잘 알지 못할 것이므로 집에 있는 이나 출가한 이나 모두 싫어하거나 해치려는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되며, 밤새도록 스스로 쇠뇌(衰惱)에 이르지 말 것이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처음 발심해서부터 대승(大乘)에 머무른 이에 대하여는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내며, 그 밖의 중생에 대하여도 비록 그가 모든 악업을 짓고 있음을 본다 하더라도 역시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항상 말하기를 ‘만일 모든 중생이 희고 깨끗한 법[白淨法]에 조금이라도 결함이 있으면 끝내 열반에 들 수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만일 탐내는 행을 하는 중생을 보게 되면 생각하기를, ‘그가
탐욕의 뜨거운 번뇌에 타고 있음은 바로 나의 허물이다’라고 하여야 하고, 또 그가 성냄과 어리석음의 뜨거운 번뇌에 타고 있음을 보아도 모두 다 생각하기를, ‘이것은 나의 죄이다. 왜냐하면 나는 온갖 중생들이 병들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마땅히 그들을 위하여 약을 구해주고 방편을 쓰면서 치료하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니, 나는 먼저 중생의 병을 없애 주기를 서원했으면서도 지금 그대로 버려 두고 있으므로 이는 나의 허물이다’라고 해야 하느니라.
보살은 이와 같은 의요(意樂)를 성취하여 스스로 그의 허물을 반성하면서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깊이 인자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만일 자기 몸을 살해하거나 끊고 벤다 하여 그 원수에 대하여 보복하려는 마음을 낸다면 옳지 못하느니라.
전득아, 보살이 이와 같이 바르게 수행할 때에는 과거에 있던 온갖 착하지 않은 업도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게 되고, 미래에 착하지 않은 일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라.
전득아, 아주 옛날 한량없는 아승기겁의 연등부처님[然燈佛]께서 계시기 전에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으니, 명호는 승생(勝生)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 세존이었으며 그 세계의 이름은 광명(光明)인데 안온왕성(安隱王城)의 숲 속에 머물러 계셨느니라
그때에 가외(可畏)라는 전다라(旃陀羅)가 있었는데 흉악하고 살육을 좋아하며, 참지도 못하고 자비가 없어서 손에 피를 묻히고 다녔으므로 보는 이들은 모두가 두려워하였느니라.
그때에 그 전다라가 그의 집에다 소를 매어 놓고 막 죽이려고 하는데 소가 놀라서 줄을 끌고 달아나면서 승생여래께서 계신 숲으로 갔느니라. 그때에 전다라가 칼을 가지고 뒤쫓아가자 그 소는 당황하면서 엉겁결에 깊은 구덩이에 떨어졌으며, 살아날 수 없게 되자 몹시 괴로워하면서 울부짖었느니라.
전다라는 그런 소를 보고 더욱 더 성을 내면서 곧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서 칼을 들고 내리쳐 죽이려고 하였는데, 그때 마침 승생여래께서 숲 속에서 한량없는 백천의 대중에게 둘러싸여 계시면서 널리 그들을 위하여
연기(緣起)의 법문을 분별하고 계셨느니라.
이른바 무명(無明)이 있기 때문에 지어감[行]이 있고, 지어감이 있기 때문에 의식[識]이 있으며, 의식이 있기 때문에 이름과 물질[名色]이 있고, 이름과 물질이 있기 때문에 여섯 가지 감관[六入]이 있으며, 여섯 가지 감관이 있기 때문에 접촉[觸]이 있고, 접촉이 있기 때문에 느낌[受]이 있으며, 느낌이 있기 때문에 욕망[愛]이 있고, 욕망이 있기 때문에 잡음[取]이 있으며, 잡음이 있기 때문에 존재[有]가 있고, 존재가 있기 때문에 남[生]이 있으며, 남이 있기 때문에 늙고 죽고[老死],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함[憂悲苦惱]이 있나니, 이러한 인연은 모두가 다 순전히 큰 고통의 집합체라는 것이었느니라.
전득아, 이 인연 안에서 무명은 지어감에 대하여 생각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으며, 지어감도 무명에 대하여 역시 생각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으며, 나아가 나기[生]는 늙어 죽음에 대하여 생각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으며, 늙어 죽음도 나기에 대하여 역시 생각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느니라.
이와 같은 모든 법의 성품은 얻을 수 없으므로 행함도 없고 기어감도 없고 나와 내 것도 없어서 본래 성품이 청정하며 서로 알지 못하나니, 범부는 이와 같은 법을 듣지 못한 까닭에 물질[色]이 나라고 집착하여 ‘나는 모든 물질이 있고 물질은 나에게 속한다’고 하며, 나아가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에서도 역시 그와 같다 하느니라.
이 나와 내 것을 집착하는 까닭에 무상한 것을 항상 있는 것이라 헤아리고, 괴로운 것을 즐거운 것이라 헤아리며, 청정하지 않은 것을 청정한 것이라 헤아리고, 나 없는 것을 나라고 헤아리면서 네 가지의 뒤바뀜을 내나니, 이 뒤바뀐 소견 때문에 무명의 미혹으로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고 마음이 물들어 집착함을 따르면서 파괴하지 못하며, 존재와 욕망[有愛]에 얽매여 생사에 윤회하면서 계속 끊이지 않지만, 지혜로운 이는 법계의 모양을 잘 관찰하기 때문에 조금도 나와 사람과 중생과 나아가 수명이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과 얽매이고 살해되는 데에 얻을 만한 것이 있다고 보지 않느니라.
전득아, 그때 가외 전다라는 그동안에 멀리서 여래의 설법하는 음성을 듣고 이내 깨달으면서 즉시 죽이려는 마음을 멈추고 가졌던 칼을 버리고 구덩이로부터 나와서 부처님께로 나아가 머리 조아려 두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 법 안에 출가하여 도를 닦고 싶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그렇게 하여라. 어서 오너라, 비구야.’
그러자 곧 사문이 되면서 구족계(具足戒)를 얻었느니라.
그때에 승생여래는 그의 의요가 점점 벌써 성숙한 것을 아시고 널리 그에게 모든 보살의 행을 말씀하시자, 가외는 듣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였으며, 불법 중에서 영원히 물러나지 않았느니라.
그 소도 여래께서 말씀하신 연기의 법문을 듣고 그 음성의 미묘함에 마음이 기뻐지면서 목숨을 마치고는 도솔천(兜率天)에 나서 미륵(彌勒)을 만나 바른 믿음을 성취하였느니라.
이와 같아서 전득아, 모든 중생의 행은 심히 깊고 미묘하고 은밀하여 알기 어려운 것이니라. 그러므로 전득아,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중생의 근기와 행을 잘 알아서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평등한 마음과 걸림이 없는 마음에 머물러야 하며, 모든 법에 대하여 항상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이 가진 모든 물건을 버리고 청정한 계율을 닦아 지니며, 인욕에 편히 머무르고, 정진을 일으키며, 모든 선정에 들어가서 사실대로 모든 법의 성품을 관찰할 것이니라.
전득아, 보살이 이러한 여섯 가지의 법을 원만하게 하면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되느니라. 어떻게 원만하게 하느냐 하면, 이른바 일체지지(一體智智)에 의지하여 수행하기 때문이니라.
전득아, 어느 것이 모든 보살의 법의 복장[法伏藏]인가 하면, 보살이 온갖 물질을 보고는 본래 나지도 않고, 제 성품이 청정하다 함을 사실대로 분명히 아는 것이니, 보살이 물질을 다스림에 뛰어난 솜씨를 얻은 까닭에 곧 네 가지의 무애변(無礙辯)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의무애(義無礙)․법무애(法無礙)․사무애(詞無礙)․요설무애(樂說無礙)가 그것이니라.
의무애라는 것은 모든 물질의 이치[義]에 대하여 장애가 없기 때문이니라. 무엇을 물질의 이치라 하는가 하면, 제일의(第一義)를 말한다. 무엇이 제일의인가 하면, 물질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제일의의 지혜를 성취함을 의무애라 하느니라.
법무애라는 것은 모든 물질의 법을 사실대로 관찰하여 사실대로 분명히 아는 것이고, 사무애라는 것은 모든 물질에 대하여 장애 없는 지혜와 교묘한 언사로써 갖가지로 분별하는 것이며, 요설무애라는 것은 모든 물질에 대하여 중생의 근기를 따라 열어 보이고 연설하면서 물듦도 없고 집착함도 없는 것이니라.
보살이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한 뒤에는 두루 모든 물질[色]의 법에 미혹되고 집착한 중생에 대하여 그의 근성과 욕망에 따라 공용이 없는 지혜[無功用智]로써 알맞게 설법을 하되, 법계에 대하여 두 모양을 짓지 않으며, 더 나아가 냄새[香]․맛[味]․감촉[觸]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이 하느니라.
전득아,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법의 복장이라 하느니라. 보살이 이 법의 복장을 증득한 뒤에는 이와 같은 모든 경계 중에서 미혹한 중생들을 조복하기 위하여 그들의 의요에 따라 낱낱의 처소에서 1겁 또는 1겁이 지나도록 갖가지의 언사로써 뛰어나게 연설하며, 역시 모든 처소의 맨 끝의 가장자리를 얻지는 못하나 보살의 지혜 또한 줄어듦이 없나니, 법계를 여의지 않으면서 둘이 없고 차별이 없음을 수순하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보살이 모든 법의 차별이 없는 모양을 훌륭하게 연설한다 하나니, 이와 같은 법의 복장을 획득한 뒤에는 중생들을 위하여 알맞게 설법하여 그지없는 법의 재물[法財]을 구족할 수 있게 하며, 생사에서 빈궁함을 영원히 끊게 하느니라.
전득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다섯 가지의 복장[五種伏藏]․대복장(大伏藏)․ 다함 없는 복장[無盡伏藏]․두루하고 다함 없는 복장[遍無盡伏藏]․끝없는 복장[無邊伏藏]이니라. 보살이 이와 같은 복장을 성취하여 수승한 모든 공덕을 원만하게 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공력을 들여도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되느니라.”
이 복장의 법문을 말씀하실 때에 전득보살은 다라니(陀羅尼)를 얻었고, 5백의 보살은 전광명삼매(電光明三昧)를 얻었으며, 3만 6천의 천자(天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그때에 월당(月幢)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공용이 없는 지혜[無功用智]란 그 뜻이 어떤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월당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훌륭한 법 가운데서 신심(身心)이 상응하게 반연하고 조작하면 이것을 공용이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몸과 마음이 고르고 부드러우면서 생각함도 없고 의지함도 없어 수행하는 모양을 여의며, 그가 예전에 세운 서원과 지혜가 성취되어 억천의 부처님세계에서 시행해야 할 바를 갖가지로 보이고 나타내되 법계에서 역시 움직이는 바가 없으며, 항상 법을 연설하면서도 조그마한 법의 모양도 없고 네 가지의 거두어 주는 법[四攝法]으로써 중생을 성숙시키면서도 역시 중생으로서 제도해야 할 이가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고 청정하게 하면서도 역시 청정하지 않은 부처님의 국토를 보지 못하고 항상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면서도 색상(色相)을 보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세계에 노닐면서도 법계를 여의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의 공용이 없는 지혜라 하느니라.
보살은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하는 까닭에 중생의 온갖 희망을 만족시키면서도 그 짓는 일에 역시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이 공용이 없는 지혜를 말씀하실 때에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석제환인(釋提桓因)과 도리천(忉利天)들은 위의 공중에서 만다라(曼陀羅) 꽃과 우발라(優鉢羅) 꽃과 구물두(拘物頭) 꽃과 파두마(波頭摩) 꽃과 분다리(分陀利) 꽃 등이 꽃비가 되어 전단향 가루를 부처님 위에다 뿌렸다. 하늘의 북은 저절로 울리고 큰 광명이 두루 비치는 등 일찍이 보지 못했던 일들이었으므로 중생으로써 이를 만난 이들은 몸이 맑아지고 서늘함을 느꼈다.
그때에 세존께서 전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의 여래․응공․정등각께서도 모두가
이곳에서 이와 같은 법문을 열어 보이고 연설하셨으며,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장차 세간에 출현하시면 역시 이곳에서 이와 같은 법문을 열어 보이고 연설하실 것이며, 현재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 안에 계신 모든 여래께서도 이 법문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큰 광명을 놓고 계시느니라.”
그때에 장로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오며, 저희들은 장차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무진복장경(無盡伏藏經)』이라 하며, 또 『일체법무차별상경(一切法無差別相經)』이라고도 하나니, 이 이름으로 너희들은 받들어 지녀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전득보살과 장로 아난과 그리고 모든 4부대중과 온갖 세간의 하늘․사람․아수라․건달바 등이 부처님의 하신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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